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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5일 05시 01분 등록

유리창 전체가 우리의 온전한 자아, 자신과 타인이 보는 자아 전체를 나타낸다. 자신은 내부에서 보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창밖에서 본다는 발상을 깔고 있다. 유리창을 네 개로 나누는 칸막이가 워낙 두꺼워서 누구도 전체를 꿰뚫어 볼 수는 없다. 타인은 A와 B를 통해 드러나는 부분을 보지만 C와 D는 보지 못한다. 한편 본인은 A와 D는 보지만 B와 C는 보지 못한다. 말하자면 A를 통해 보이는 못브은 모두한테 보이는 공통된 모습이지만 D는 본인만 보는 모습이며 B는 타인만 보는 모습, C는 아무한테도 보이지 않는 감춰진 영역이다. 조와 해리는 모두가 공통으로 인식하는 A영역을 늘릴수록 자신에게 충실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14


사적인 영역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행동을 업무 영역에서 태연히 자행하고 어떻게 이를 정당화하는가. 거기서 야기되는 혼란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문제는 윤리학 분야에서 풀리지 않는 난문중에 하나다. 친구나 친척과 함께 일하는 것이 지뢰밭을 걷듯 위험천만한 일임을 겪어보고서야 깨닫는 사람들이 많다. 사적인 영역과 업무 영역이 겹치기 때문이다. 친구란 누군가의 재능과 재주는 물론 기벽과 결점까지 모두 받아들이는 그런 존재다. 좋든 나쁘든, 어차피 그 사람이니까. 하지만 일이 개입되면 무조건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도 생기게 마련이다. 상사나 동료의 위치에서는 상대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심지어는 해고해야겠다고 느낄 수도 있다. 20


우정과 일은 서로 중복되지 않을 때 가장 잘 돌아가는 법이다. 그래야 자신이 누구인지, 즉 정체성에 혼란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친구가 아니었지만 일하다 보니 친구가 된 경우에도, 나름 곤혼스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의 최선은 조하리의 창에서 A부분을 가능한 많이 개방하고 미지의 영역인 C를 탐험을 통해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지 말고, 스스로에 대해 정직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21


우선 우리는 유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나의 경우 어렴풋이 어머니를 닮은 구석이 있으면서 전체적으로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부모님은 훌륭하셨지만 미남이나 미녀라고 할 만한 분들은 아니었다. 강연 때문에 벨파스트에 가기로 했을 때의 일이다.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그쪽 직원이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나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물었다. 당연히 내 비서가 전화를 받았을 거라 생각한 직원은 '통통하고 키가 작은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전화를 받은 사람은 아내였다. 아내는 '맞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통통하고 키가 작고 대머리입니다ㅣ' 하고 대답했다. 영락없이 우리 아버지 모습이다. 공항에서 만난 이후에 전화를 받은 사람이 아내였다는 사실을 알고 직원은 무척 당혹스러워했다. 나도 아내한테 내가 그렇게 작지도 뚱뚱하지도 않다고 항변했다. 아내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됨됨이지 외모는 아니에요'23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허미니아 아이바라Herminia Ibarra 교수는 서른 아홉명의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꾼 방법을 알아보았다. 문학교수였다가 주식중개인이 된 사람, 증권업자였다가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된 사람 등이 포함되었다. 조사결과, 아이바라 교수는 행동하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아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라고 주장했다. 일단 행동하고 경험하고 질문하고 다시 행동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할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정체성은 부분적으로는 타고나고 부분적으로는 초창기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 하지만, 정체성이 완성되는 것은 직접 부딪혀 많은 가능성들을 탐험해본 이후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감춰진 네 번째 판유리-조하리의 창에서 C부분-안을 들여다보고 가능한 많은 것을 밝은 빛 속으로 끌어내고자 노력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러다보면 생을 마감할 즈음에는 자신한테나 타인한테나 감춰진 영역이 없는 온전한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 27


지금 생각해보면 삶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고정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진정 어떤 일에 재능이 있는지를 끝내 모른 채 죽는다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27


이베이이의 공동창립자인 제프 스콜은 아버지가 말기암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던 날의 대화를 평생 간직하고 산다. 당시 겨우 열네 살이었던 제프에게 아버지는 '곧 죽는다는 사실은 두렵지 않다만, 삶에서 하려고 했던 모든 것을 다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고백했다. 말하자면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경험하기 전에 죽을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다행히 진단이 잘못되었던 탓에 제프의 부친은 한 번 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제프의 부친처럼 운이 좋지는 않으리라. 30


세상을 보는 방법이 하나뿐이라고 믿으며 성장하고, 이를 아무런 의문 없이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쉬운가도 깨닫기 시작했다. 상반되는 관점을 접할 기회가 없고, 속한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똑같은 신문만 읽고, 같은 학교, 같은 파티에 가고, 같은 클럽과 사교모임에 가입하면 특히나 그럴 수밖에 없다. 이제 나는 참으로 황당무계한 인생관을 주장하는 이가 동시에 참으로 마음씨 고운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뒤늦게야 나는 고정관념을 넘어 세상을 보는 법을 터득했다. 39


기질적으로도 나는 아일랜드 사람이 아니다. 무리를 좋아하고 위트가 넘치는 그런 사람도 아니고, 파티를 즐기는 그런 인사도 아니고, 선술집이나 바를 편안해하는 그런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고 전형적인 영국계 아일랜드인도 아니다. 총을 잘 쏘고, 사냥과 낚시를 즐기는 시골 사람 말이다. 내가 아일래느드 서부에 낚시를 즐길 만한 저택과 부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예비 장인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휴가때면 아일랜드에서 낚시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시던 양반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40년 넘게 살고 있지만 진정으로 영국인 또는 영연방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영국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싶은 것도 아니다. 옥스퍼드 학생이 되어 하숙집을 구하는데, 많은 하숙집 문에 '흑인, 개, 아일랜드인 사절'이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44


지금은 삶의 물리적인 부분이 훨씬 수월해졌기 때문에 - 스위치만 누르면 전기와 난방이 해결되고,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되는 인스턴트식품은 물론 주문배달 식품도 도처에 널려 있다. - 오히려 단순한 생계 해결 이상의 목적을 찾아야 한다. 힘든 일이다. 그리고 필요한 온갖 것들을 살 만큼 충분한 돈을 벌기 위해 한 가지 일을 '충분히' '잘'해야 한다. 이 또한 힘든 일이다. 이런 현실은 사람을 이기적으로 만들고, 남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을 챙기게 만든다. 더구나 발전이란 참 묘한 것이어서 두 발짝 앞으로 나갔는가 싶으면 한 발짝 뒤로 물러서게 된다. 심지어 그 반대일 때도 있다. 46


역사의 매력도 알게 되었다. 역사적 사실들의 원인을 밝혀내고, 인물, 정황, 사건 사이의 얽히고설킨 연결 관계를 드러내려 애쓰는 과정에서 즐거움도 커졌다. 예부터 역사가들은 삶이란 보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런 사고 방식이 그대로 나의 일부가 되었다. 당시에 말해준 사람은 없지만 내가 혼자서 터득한 이런 사고방식이 알고 보니 '시스템 사고'라는 것이었다. 훗날 런던경영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특히 뛰어난 학생중에 역사학도가 많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철학은 역사와는 또 달랏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읽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옥스퍼드의 길지 않은 학기에 흥미로운 다른 책들이 많은 상황에서는, 철학 지도교수가 다음 주 에세이 주제로 제시한 과제를 붙잡고 항상 고생을 했고 번번이 기가 꺽이는 경험을 했다. 51


플라톤에게는 우리가 보거나 아는 모든 것이 참된 존재의 그림자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지하는 진실일 뿐이며,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직하는 진실일 뿐이며,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란 언제나 불가지로 남아있다. 우리의 감각에 의존해 실제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 물론 감각을 믿는 양 행동하긴 해야겠지만, 스코틀랜드 출신 실용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사람은 아무 것도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을 스스로 흡족하게 증명한 뒤에, '그래도 지금 나는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식사하러 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물리적인 세계에서 관념이라는 영역으로 주제를 옮기면 진리는 한층 까다로운 문제가 된다. 달리 말하자면 삶은 하나의 커다란 가설이다. 더구나 완전히 끝날 때까지 옳음을 입증하기도, 오류를 증명하기도 어려운 가설. 53


영국인들은 오랫동안 사업은 낮은 신분의 직업이라고 간주했고 군복무에 비해 결단코 열등한 직업이라고 보았다. 무뚝뚝한 늙은 장군이셨던 종조부는 나한테 진짜 쌉쌀한 드라이 마티니 맛을 처음 알게 해준 분이셨는데, 내가 입대 권유를 뿌리치고 셸에 입사하자 겁쟁이라고 책망하시는 바람에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솔직히 고백하지만 겁쟁이라는 종조부의 말이 옳았던 듯도 하다. 종조부는 유어장 상속자 명단에서 나를 빼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하셨다. 종조부가 돌아가시고 몇 달 뒤에 정말 나를 빼버린 것을 알고 당황했었다. 종조부가 보기에는 군복무가 스스로 '장사'라고 불렀던 회사일보다 훨씬 가치 있는 직업이었다. 철저한 플라톤주의자였으니까, 비단 종조부만이 아니었다. 기업 근무를 직업으로 택한 나는 옥스퍼드 동기들 중에서도 별종이었다. 54


내가 토론이나 논쟁에서 반대의견을 잘 받아들이고 오히려 즐기는 데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 대화체로 기술한 저서들을 많이 읽은 탓도 크다. 이런 태도는 유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합의된 결론에 이르는데는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이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내 생각과 조언은 필요하다면 비공식적으로 막후에서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런 판단이 서자 그동한 관여했던 일곱 개의 위원회 및 이사회에 같은 날 사직서를 제출했다. 59


요즘은 나쁜 기억력이 오히려 창조적 발상을 촉진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며, 어떤 아일랜드 사람이 했다는 말을 종종 인용한다. '내 말을 들을 때까지는 나도 내 생각을 모른다니까' 나는 혼자 하는 공부보다 대화와 토론에서 더욱 많은 것을 배웠으며 때로 대화와 토론 과정에서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과거의 지혜에 의지하되 필요한 경우에는 거기서 탈피할 줄도 알 만큼 나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던 셈이다. 63


그즈음 셸은 관리자 교육에서 몰입이론을 신봉하고 있었다. 예비 관리자들을 무턱대고 물속에 집어넣고 - 말하자면 현장에 던져놓고 -헤엄치는 법을 알아서 터득하는지 보자는 이론이다. 몰입이론에는 물론 장점도 많다. 하지만 내 입장을 말하자면 발령지로 가서 일을 시작하기 전, 하게 될 일에 대해 어렴풋한 암시라도 해주었다면 참으로 감사하고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거나 나는 대학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 철학을 공부했고 광대한 땅에 산재한 200여명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데 필요한 전문 지식은 커녕 등유와 휘발유의 차이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68


보르네오에서의 경험이 그가 생각하는 방향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한테는 분명 도움이 되었다. 다른 것은 다 빼고라도, 남은 평생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무엇인가는 확실히 알았다. 누군가는 이를 '부정적 학습'이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나는 경험을 통해 얻은 유용한 결과라고 보았다. 살면서 시도하는 모든 일이 잘되면, 본인을 채찍질해 더욱 멀리 나가볼 유인을 찾기 어렵다. 대담하게 틀을 깨고 나가보면,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셸에 지원할 무렵 나는 거기서 어떤 일을하게 될지, 내가 얼마나 좋아하게 될지, 얼마나 잘할지에 대해 아주 막연한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 한층 뚜렷해졌다. 77


한단 뒤, 싱가포르 대학에서 석유사업의 미래에 관해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그때 나는 또 하나의 귀중한 교훈을 깨달았다. 어떤 주제를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보라는 것이다. 청중보다 내가 많이 알고 있으므로 강연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을 테지만, 강연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밤늦도록 책과 통계자료를 살폈다. 이후로 나는 새로운 청중이나 독자를 위해 강연을 하고 글을 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보다 내가 더 많이 배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80


업무가 너무 작아 생기는 문제점을 흔히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업무과다 때문에 분주한 사람이 느끼는 스트레스만큼 못지않은데도, 업무가 과다한 사람들은 지치고, 질리고, 때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자신들이 쓸모 있는 존재, 필요한 존재라고 느낀다. 내가 경험한 업무과소 상황은 심리적으로 훨씬 비참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쓸모없는 존재요,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88


무엇보다 나의 출신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영국에서는 어떤 자리에서 내가 말을 시작하는 순간 사람들은 내가 어떤 집안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 대충 감을 잡았다. 미국에서는 달랐다. 억양을 듣고 영국인이라는 정도만 구별할 뿐이었다. 사실은 아일랜드 사람이라고 말을 해도 그저 그뿐, 그 말이 함축하는 복잡한 의미를 알지도 못했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나서 알고 느낀 대로 나를 대했다. 마침내 과거로부터 해방된 느낌이었다. 아마 많은 이민자들이 그런 해방감을 맛볼 것이다. 101


교수들이 설명해준 기본 규칙들은 사례조사 자료를 통해 보완되었다. 학생들은 사례조사 시간에 특정 기업에 관한 자료를 보고 문제점과 대책을 토론했다. 이런 과정은 자료를 분석하고, 축적도니 정보에서 체질하듯 양질의 정보를 서녈하고, 향후 방향을 체계화하는 데는 좋은 훈련이 되었다. 책에 적힌 이론이 아니라 실제 문제를 다루는 이런 수업은 나한테는 새롭고 흥미로운 방식이었다. 하지만 주어진 사례연구 자료를 보고 진행하는 수업이다 보니 우려점도 없지 않았다. 바로 관련자들의 평가를 포함한 생생한 자료 수집을 간과하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사례연구 수업은 암암리에 분석이 핵심이고, 결정 사항의 실행은 부차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위험이 있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반대다. 특정 상황에 맞는 대책을 찾기는 쉽지만 정작 실행은 어려운 경우가 너무나 많다. 114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헤럴드 리빗 교슈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리는 생각해내기도 힘들 것 같은 참으로 요상한 경영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이를 실천해왔다. 피교육자들을 한쪽으로 치우친 두뇌, 얼음처럼 차가운 심장, 움츠린 영혼을 가진 괴상한 생물체로 일그러뜨리는 그런 교육을' 120


철학과 윤리를 논하는 집단토의 시간의 첫 작품으로 <안티고네>가 안성맞춤이다 싶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등장하는 안티고네는 테베의 통치자인 외삼촌의 명령과 본인의 양심 및 종교적 책무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외삼촌인 크레온은 왕위 쟁탈 전쟁에서 조카이자 안티고네 오빠인 폴리네이케스를 죽이고, 시체를 매장하지 말고 성 밖 들판에 두어 금수의 밥이 되게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안티고네 입장에서 매장금지는 오빠를 불멸지옥에 빠뜨리는 일이었다. 당시 그리스인들의 종교관에 따르면 편안히 잠들지 못한 영혼은 영원히 복수의 여신에 쫓기게 된다. 그러므로 시체를 매장하는 것은 오빠에 대한 안티고네의 의무였다. 하지만 통치자인 크레온은 누구든 자신의 명을 거역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겠다고 포고를 내렸으니, 시민으로서 안티고네의 의무는 외삼촌의 명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티고네에게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안티고네는 종교적 신념과 오빠에 대한 도리에 합당한 일을 해야 했다. 결국 안티고네는 그렇게 했고 크레온이 처형하기 직전 스스로 목을 매 죽었다. 127


타인의 전문성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결국에는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넘겨주는 꼴이 된다. 129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 판단에서 안이하고 나태한 태도를 보여준다. 전문가를 상징하는 흰색 가운을 입었거나 그럴듯해 보이는 신분증을 찬 사람이 시키는 일이면 따져 묻지 않고 요청받은 대로 하는 식이다. 131


밀그램의 실험을 보면 나치의 강제수용소 경비병들이 상부의 잔인한 명령에 복종하게 된 맥락과 이유를 알 것같다. 이라크에서 죄수를 학대한 혐의로 고소된 병사들은 어디까지나 명령에 따랐을 뿐 이라는 말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이들이 명령에 따랐다는 말이 잘못된 행동에 대한 충분한 해명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밀그램의 실험 결과로 설명될지 모른다. 밀그램의 실험은 심지어 내가 말레이시아에 근무할 때 가격담합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이유도 설명해주는 것 같다. 당시 나는 말레이시아에 딱 두 개뿐인 석유회사중에 하나에서 일했는데, 입을 맞춰 정부제출 가격을 고정시키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132


지금 생각해보면 경영대학원 학생들한테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읽히는 것도 괜찮았겠구나 싶다. 섬에 고립된 소년들이 하나의 유기적인 조직체로 똘똘 뭉치면서, 각자의 정체성과 더불어 책임감까지 상실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135


경영대학원을 떠날 즈음 나는 분석 능력은 교실에서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지만, 실질적인 관리능력과 훈련은 그런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관리는 주로 현장에서 습득되는 상식이 중요하며, 개인은 실제 경험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관리에 필요한 개인적인 자질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멘토의 세심한 가르침과 실전에서의 시행착오다. 경험, 그중에서도 특히 실수한 경험을 돌아보는 일은 언제나 큰 도움이 된다. 경험을 곱씹어보는 일은 유년시절부터 계속되는 가장 중요한 학습방법이다. 141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존재가 되려면 먼저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 스스로 가치관과 야망을 결정하는 대신, 남의 가치관과 야망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잘못된 것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고통과 정신적 충격, 혹은 거절과 좌절 등을 경험한 뒤에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생각한다고 한다. 나도 다르지 않다. 


'직업이나 경력은 의미가 없습니다. 대신 중요한 것은 삶이지요. 우리의 삶은 평생 몇 번에 걸쳐 변화하게 됩니다. '얼마 전 한 아일랜드 청년이 들려준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삶을 바꾸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별 볼일 없는 삶이 될 것이 뻔해도 그냥 익숙한 생활에 머무는 편이 훨씬 편하다. 삶을 바꾸려면 새로운 사닥다리의 바닥에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현재 오르는 사다리가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결정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가급적 빨리 새로운 사다리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과 현실에서 결정을 실행하는 것은 별개다. 147


새로운 삶을 모색할 시기, 새로운 직업이나 투자를 시작할 적절한 시기는 상황이 잘 돌아가고 있을 때이다. 하지만 일이 잘 될 때 다른 길을 모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한테도 그렇고 조직도 마찬가지다. 덧붙이자면 정당도. 보통은 내가 앞서 이야기한 충격을 경험한 뒤에야 안일한 사고에서 벗어난다. 시그모이드 곡선을 설명할 때마다 받는 질문이 있다. 'A지점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하는 질문이다. 지난 후에 뒤돌아봤을 때를 빼고는 결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난 뒤에 아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 하지만 A지점임을 짐작케 하는 실마리들은 있다. 편안함도 그 중에 하나다. 너무 편안하고 삶이나 일이 마음대로 된다 싶으면, 만족감 때문에 본인이 안전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고 방심하기 쉽다. 그러므로 성공에 안주하는 것은 항상 위험하다. 개인의 삶에서든 사업에서든. 151


현재 직원 없이 사주만 있는 기업-1인 기업-이 영국에 거의 3백만 개나 된다. 여기에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2백만 명을 더해보라. 회사에서 시간제 근무를 하면서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도 포트폴리오 생활자라고 봐야 하는데, 통계에서는 시간제 근무자로만 분류된다. 은퇴했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도 포트폴리오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하는 잡다한 활동 중에 일부는 보수를 받는 것이지만 모두 신고가 되어 통계에 잡히지는 않는다. 더구나 영국에는 노동연령이지마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1천만 명의 인구가 있는, 대부분은 여성이다. 주부나 어머니를 보면 알겠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들 중에 일부는 부업으로 약간의 돈이 생기는 일까지 하고 있지만 여전히 포트폴리오 생활자로는 분류되지 않는다.


나는 이런 현상을 '벼룩 경제 flea economy'라고 부른다.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각종 소규모 기업과 자유로운 개인, 즉 프리랜서들로 이루어진 경제다. 그들은 과거 산업사회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직업에 대한 정의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산업사회가 아니라 지식정보사회에 살고 있다. 소규모 기업, 독립된 개인들이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사회다. 내가 벼룩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들 중 다수는 포트폴리오 노동자다-을 모두 합치면 등록된 영국 노동인구의 절반을 넘는다. 요즘 직업의 세계는 공식통계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세분화되어 있다. 우리는 이제 세상으로 나가는 젊은이들에게 세상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어야 한다. 그들이 준비해왔고 부모 세대가 이미 경험한 세상은 앞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며, 만약 존재한다 해도 그들의 노년기까지 지속되지는 않으리란 사실을. 171


수수료는 한 일에 대해서 지급되는 돈이고, 급여나 임금은 시간당으로 지급되는 돈이다. 수수료는 일한 사람이 계산하여 청구하는 돈이고, 급여는 고용주가 계산하여 지급하는 돈이다. 173


포트폴리오 인생이라는 사고방식에는 대부분의 생활이 일이며 어떤 것은 따분하고, 어떤 것은 돈이 되고, 어떤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일과 생활의 균형'이 아니라 

'일의 균형'이다. 174


이것은 철학의 임무라고 볼수도 있다. 내가 어느 날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그런 종류의 철학 말이다.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어쩌면 종교가, 내가 아버지한테 부러워했던 확신과 삶의 목적에 대한 해답을 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원저성은 말하자면 일하면서 현장에서 배우는 일종의 도제기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곳에서 4년을 일하는 동안 백 명이 넘는 신학자들의 강연을 들었다. 종교도 믿음도 다양한 신학자들이었다. 또한 당시 영국 국교회 주교 대부분을 만났다. 그들은 성직생활의 대부분을 보내게 되는 교구를 잠시 벗어나 넓은 세상을 보고자 세인트조지 하우스를 찾은 것이었다. 유망한 교구 사제 20명을 선발해 재교육시키는 것도 세인트 조지 하우스의 임무였다. 1년에 두 번 진행하는 교육과정에 참가한 사제들 대부분을 알게 되었다. 예배당을 찾는 성실한 남자들 - 당시까지는 모두가 남자였다.- 많이 만낫다. 각자의 일에 헌신하고 예배당에서 고백하는 교의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을 믿는 경건한 사람들이었다. 이는 소위 말하는 몰입교육이었고 나는 실로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믿는 것을 나는 믿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201


'한마디만 충고하겠네.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대 반드시 할 일이 있어야 한다는 거네. 안 그러면 은퇴 여파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202


'프리랜서, 그러니까 독립 생활자가 되겠다는 겁니다. 전일제 직장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으로 삶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서 사는 사람 말입니다. 물론 집필을 중심에 두면서 말입니다. '


'음, 생계를 거기에 의존하지는 마세요'거의 단정조였다. '제가 관리하는 100명쯤 되는 저자들 중에 책으로 연간 1만 파운드 이상을 벌어들이는 사람은 두세 명밖에 안 됩니다' 205



책은 일종의 판촉보조물이었다. 나라는 사람과 나의 아이디어를 홍보할 가장 점잖은 방법이었다. 무소속의 독립 생활자들은 누구나 자기 선전활동을 해야한다. 210


아담 스미스는 모든 사람의 생활이 한결 편해진다는 점에서는 경제성장이 분명 좋은 것이지만, 너무 오래 너무 많은 성장이 이루어지면 온갖 불필요한 물건이 넘쳐나는 부작용이 야기도리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의 쇼핑몰을 보면 그가 옳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이런저런 자문을 해본다. 일부는 꼭 필요하지 않더라도 삶을 풍요롭게 해주리라 생각되는 것들을 사기 위해 돈을 버는 것 아닐까? 게다가 어떤 것이 필요하고 어떤 것이 불필요한지 구별해줄 사람이 또 누구란 말인가? 불필요한 물건들이 일자리가 필요한 제 3세계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한테 일자리를 주고 있지 않은가? 식품과 같은 생필품보다는 불필요한 제품에 부가가치세가 부과되므로, 불필요한 제품이 많이 팔릴수록 정부에서 복지사업을 펴는 데 쓰일 세입이 높아질 것이다. 경제학자들 입장에서는 탐욕,시샘, 대식 등은 죄악이 아니라 번영의 토대다. 219


 주주회사에는 최우선으로 이론상의 주인, 즉 주주들의 기대를 만족시켜야 하는 명백하고 중요한 의무가 있다. 하지만 주주가 진정한 주인인가? 대부분의 주주는 투자자, 혹은 투기꾼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그들은 주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긍지나 책임감 따위는 전혀 없으며, 오직 돈과 이익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필요와 목적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필요를 목적으로 만드는 일은 논리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논리학 용어로 말하자면 필요조건을 충분조건으로 혼동하는 일이다. 사람은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 그르므로 음식은 삶의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우리가 먹기 위해 산다면, 다시 말해 음식을 삶의 충분조건, 즉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하등동물과 다를 바 없어진다 바꿔 말하면 비지니스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더욱 큰일 또는 더욱 훌륭한 '뭔가'를 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다. 기업의 존재이유, 즉 목적은 바로 '뭔가'에 있다. 주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투자자들은 그저 자기 몫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으니까. 238


 날짜 배분을 지키려면 자제력이 필요하다. 가령 강연회 등 일하는 날을 늘리고 싶은 유혹은 항상 있다. 날짜를 늘리면 곧 돈이 늘어나는 셈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집필과 사진 촬영에 투자하지 않으면 일도 곧 없어지리라는 것을 잘 안다. 이는 우리 삶의 R&D(연구개발)이므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261


가족은 직업과 관심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무엇보다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가치관이 아이한테서 엿보일 때, 때로는 정신이 번쩍 나기도 하고, 때로는 흐믓하기도 하다. 아내와 나는 늘 돈보다는 일에 대한 흥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생계를 해결할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한은 돈보다 일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두 아이 모두 같은 태도를 보이자 기쁘면서도 내심 걱정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아이들이 정말 그만하면 충분하다 싶은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더구나 요즘은 '충분하다'는 기준이 우리가 젊었을 때보다 훨씬 높아졌는데,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들한테배우는 취미생활 정도로 하고, 변호사를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말한 적이 있다. 변호사도 무대에 서는 직업 아니냐는 나름의 근거까지 덧붙이면서, 아들이 놀랐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아버진 항상 돈이 아니라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가라고 하셨잖아요'279


참으로 많은 부모가 아이의 성장과 교육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랫 탁아소로 놀이방으로 학교로 아이들을 떠나보낸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인가?  사실 학교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프랑스에서 '육성'이라고 표현하는 어린아이의 발달과정 전체를 가정에서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닐 것이다. 280


무엇보다 학교가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전통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종교와 공동체 어르신들이 이런 역할을 대신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종교도 공동체 연장자도 권위를 상실했고, 모든 규범이 혼란에 빠져 있다. 쉽게들 잊어버리지만 우리 사회에 종교적 전통은 생각보다 뿌리 깊고 그만큼 미치는 영향도 컸다. 신앙이 없다고 공언하는 사람들한테도 종교적 젙농이 미치는 영향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특히 기독교적 사고는 서구인들의 생활을 지탱하는 토대로 작용해왔다 .우리가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수많은 생활규범들이 실은 기독교 교리에서 나온 것들이다. '무엇이든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등등 수도 없이 많다. 이런 가르침대로 행동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알고는 잇다. 하지만 신화가 망각되면 그 안에 담겨 있던 메세지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282


'아버지는 항상 아들한테는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나한테는 너무 기대가 적었어요' 아이는 편지에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저 아이의 압박감을 덜어주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아이는 나름대로 상처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어떻게든 힘든 교육기간을 잘 견디고 살아남는다. 그러면 우리 부모들은 학교 선택을 놓고 왜  그리 고심했던가, 친구들이 입에 침을 튀기며 자식의 학위며 성적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을 때마다 왜 그리 안절부절못하고 괴로워했던가, 오히려 의아해하는 심정으로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ㅏ. 그리고 서서히 엄청난 진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진정한 자녀교육은 집에서, 부모가 바삐 자신들의 생활을 영위하는 동안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아이들은 부모를 배운 다음, 나중에 반대로 할까, 모방할까를 결심한다. 대개 부모는 어느 쪽이 옳다고 딱히 확신하지 못한다. 부모가 항상 아이들의 본보기가 될 만한 이상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299


세계화된 시장에서 증가하는 소득 격차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세계화된 시장에서는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재능과 노동력도 국가라는 경계를 넘어 거래된다. 그러므로 최상의 재능에 대한 가격이 국제적으로 결정되고, 반대쪽 끝에 있는 노동력의 가격도 그렇게 결정된다. 시장은 일제히 그리고 고집스럽게 가격하락 압력을 행사하면서 일부만 가격을 올린다. 책 제목처럼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승자독식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빈자는 절대적인 조건으로 보면 부유해진다고도 볼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더욱 가난해지게 된다. 339


임종훈련은 내가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하도록 해준다. 다들 그렇듯이 나도 항상 결심한 대로 지키지는 못하지만, 다행인 것은 나이가 들수록 결심을 지키기가 한결 쉬워진다는 사실이다. 야망이 시들해지고, 겉보기에 나보다 성공한 것 같은 타인에 대한 시샘도 마찬가지로 시들해진다. 야망과 시샘이 시들해지는 주된 이유는 오래전에 기회가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그쯤 되면 현실에 맞춰 편안하게 살고자 자신의 과거와 실패를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신문의 인물소개란에서 저명인사들에게 본인의 최대 실수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면, 처음엔 몰랐지만 결국에는 실수가 중요한 학습기회였다는 대답이 나온다. 지나고 보니 그런 배움의 기회가 있어 다행이다 싶더라는 요지다. 최악의 실수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는 유인이 되어 결과적으로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348


나이가 들수록 잘 보이고 싶은 대상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본 대로 말하고, 바라는 대로 살고, 자신의 가치에 따라서만 시간을 쓰게 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인생을 유혹의 사다리에 비유했다. 순서대로 한발 한발 밟으며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인데 단계마다의 유혹을 깨부수면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보통의 오르막길과는 반대로 인생의 사다리를 오르는 발걸음은 나이가 들고 성장할수록 가벼워지는 것 같다. 대부분의 유혹을 오래전에 끊어버린 탓은 아닐까. 349


집필의 목적이 집필활동 자체에서 얻는 기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괴로움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한동안은 책을 쓰는 이유가 팔리지 않는 데 대한 보상심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양자가 아무런 상관이 없어지자 집필 주체를 그야말로 순수한 주제로 마음껏 바꿨습니다. 자신이 사는 세상을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그런 내용이었죠'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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