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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 버트런드 러셀 /1996/을유문화사
<저자에 대하여 - 저자에 대한 기록과 개인적 평가>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20세기 서양 철학자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가장 널리 알려진 철학자일 것이다.
러셀은 네 살이 되기 전에 양친을 잃고 고아가 되었다. 러셀의 양친은 자유 사상가였다. 2년 뒤 영국 수상을 두 번 역임했던 할아버지 존 러셀 백장이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가 러셀의 양육을 맡게 되었다. 할머니는 정치에는 자유로운 사상을 가겼으면서도 양심과 표준을 강조하는 청교도였다. 러셀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스위스와 독일과 영국 출신 가정교사의 지도를 차례로 받다가 1890년에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에서 처음 3년은 수학 공부에 전념하였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철학을 공식적으로 공부한 것은 4년째부터 2년 동안이었다. 당시 케임브리지대학의 철학과 교수진은 공리주의자 시즈윅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헤겔-브래들리식의 일원주의적 관념주의 형이상학자들이었다. 러셀도 이 흐름에 휩쓸려 칸트와 헤겔에 사로잡혀 6년을 지냈는데, 이 시기에 러셀은 그의 말대로 제 몫을 단단히 하는 헤겔주의자였다. 그러나 러셀은 1898년 말부터 무어와 함께 칸트의 철학과 헤겔의 철학에 반란을 일으키고 다원주의와 경험주의로 전향하였다.
이때부터 생애를 마칠 때까지 러셀은 왕성한 저술 활동을 하였다. 그가 다룬 주제는 철학, 논리학, 수학, 도덕, 정치. 그 밖의 수많은 사회적 문제, 반전과 반핵 등 이루 다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러셀의 저작들은 크게 보면 두 갈래로 분명하게 나누어진다. 첫째는 순수한 학문적 저작들이고, 둘째는 일상의 사회적 문제들에 관한 저작들이다.
학문으로서의 러셀의 철학은 20세기 “분석철학”이 다루는 온갖 주제에 걸쳐 진행되었다. 처음에 논리학과 수학을 통해 얻은 “논리 철학”과 “수학 철학”에서 시작하여 “인식론” “언어철학” “과학 철학” “형이상학” “정신에 관한 철학” “윤리학” 등 철학의 거의 전 분야를 서로 연관시키면서 넘나들고 있다.
러셀의 삶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이론과 실천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 철학을 한다는 것은 추상적인 것에서 시작해 구체적인 답을 찾아내거나,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해 추상적인 답을 찾아내는 것으로 어느 한쪽에 대해 답을 내기도 벅찬 문제들이다. 허나 러셀은 어디에서 질문을 시작하던지 어떤 답을 얻든지 그 둘을 통합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통합이 성공이든 실패이든 개의치 않고 신념대로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행복한 사람이었다.
1927년 그는 교육은 유년 시절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신념으로 쓴 <교육론>을 실제로 실험하는 비컨힐스쿨을 열었다.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자신의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나름의 학교를 세워보자는 것이었다. 자신의 아이들에겐 다른 아이들과의 교제를 통해 사회성을 길러야 하므로 학교라는 제도가 필요했던 것인데 기존의 학교에는 자신의 신념을 만족시키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첫째, 점잔을 빼는 교육, 종교 교육이 싫었고, 기타 전통적 학교에서 당연시되는 자유에 대한 무수한 제약들이 싫었으며, 둘째, 금욕주의적 교육을 중시하지 않거나 자제력 훈련을 완전히 도외시하는 대부분의 현대교육가들에게 동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원했던 교육의 근본태도는 ‘자유와 훈련의 적합한 조화'였다. 그의 학교는 당시로는 새로운 독창적 자유주의 교육을 하였기에 세간의 관심을 끌었지만, 10년쯤 후 이 학교에 위기가 찾아온다. 위기의 원인은 학교 운영 원칙들의 몇 가지 실수와 러셀과 부인 도라와의 교육가치관의 차이를 들 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러셀의 교육이론에 대한 실천의 결과는 표면상으로 실패한 것으로 불 수 있다. 하지만 러셀의 삶 전체에서 이 경험은 성공적인 삶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의미있는 시도였다. 그는 <교육과 사회질서>를 출판하고 2년 뒤에 비컨힐스쿨을 떠나, 오로지 사회이론에 관한 저작만을 하였다. 교육이 때로는 정치적 권력에 이용되고 어린이는 그 도구가 되거나 특정한 신념을 주입시키는 경우도 있음을 잘 알고 있는 그는 교육을 시키는 주체가 될 수 있는 세상 구성원들 모두에게 올바른 사회인식에 근거한 지식을 가져야 함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후 그는 사회구성원들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한 진실과 허위를 간파할 수 있는 비판정신을 함양할 수 있도록 자신의 다양한 저술 활동과 강연을 통해 도왔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인류역사상 힘든 시기를 거치는 데 러셀 개인적인 삶의 측면에서도 힘든 시기였다. 이른바 ‘버트란드 러셀사건’이라고 불리우는 러셀의 뉴욕시립대학 교수취임 발표에 대하여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그의 종교관과 정치관 등의 세계관에 대해 당시 미국사회의 보수적인 잣대가 적용된 것이다. 결국 1940년 러셀의 교수임명은 무효가 되었고 이 소동은 러셀 개인의 문제를 떠나 별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중요한 문제를 남겼는데, 연구와 교육의 자유를 사명으로 하는 대학이 외부의 정치세력에 짓밟혔다는 사례로서 역사적으로 큰 오점을 남긴 것이다. 이 사건이후로 러셀은 한 동안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그의 나의 70세에 세 자녀를 포함 한 가족을 거느리고 실업자가 되었으며 ‘미국 모든 대학의 철학적 처치 곤란한 존재’라는 언론의 비난과 가십으로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안팎으로 모진 역경을 어떻게 극복해 내었는가를 보면 우리는 러셀의 삶의 태도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는 아무리 고난과 불행을 만나도 조금도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 타개해야 될까 골몰하는 불굴의 의지는 결코 시들지 않았다. 그는 영국 출판사에 연락하여 자신의 저서에서 발생할 장래 인세액을 계산하여 자식들이 미국에서 대학을 마칠 수 있도록 선불을 받았으며, 반즈재단에서의 강의를 바탕으로 쓰기로 한 철학사 인세를 미국 출판사에서도 선불을 받게 되어 생활비와 교육비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대신 계약한 철학사를 정리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고 이 파란 많은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난 걸작이 바로 <서양철학사>인 것이다.
러셀은 귀족가문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지식인으로 표면상으로 보면 그는 우리가 쉽사리 범접하기 힘든 천재 철학자이다. 하지만 생애 전체를 통해서 그의 사상을 엿보면 그 또한 나와 같은 인간이자 따스한 인간애를 지닌 휴머니스트라는 점에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
러셀이 자신의 자서전을 마무리하며 쓴 다음의 내용을 보면 ‘지식과 사랑’이라는 ‘개인과 사회의 조화’를 통해 세상에 기여하고 싶어 했던 세기의 철학자의 다정한 인간애를 엿볼 수 있다. “인류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으로 가는 길을 너무 짧은 길로 판단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러한 세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세상을 앞당기는 것을 목표로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는 틀리지 않았다. 나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비전을 좇아 살아왔다. 개인적으로는 고귀한 것, 아름다운 것, 온화한 것을 좋아했고, 더욱더 세속화된 시대에 지혜를 줄 수 있는 통찰의 순간들을 두고자 했다. 사회적으로는, 개인들이 거리낌 없이 성장하는 사회, 증오와 탐욕과 질시가 자랄 토양이 없어 죽어버린 사회의 탄생을 그렸다. 이런 것들이 내가 믿는 것이며, 비록 끔찍한 것들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세상이 나를 흔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옮긴이 서문 *
p6 러셀은 철학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철학하는 방법의 측면에서 일관성을 유지했다. 그에게 철학이란 진리 추구의 열정을 품고 기존의 모든 지식을 비판하는 활동이었으며 분석적 방법을 통해 명료하고 확실한 지식을 얻고자 노력하는 여정이었다.
p6 <러셀 서양철학사>는 이러한 진리 탐구의 여정을 압축해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러셀은 바로 분석적 방법을 통해 고대, 중세, 근현대의 대가들을 차례차례 명료한 언어로 비판한다.
p8 철학하는 사람은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갑자기 깨닫는 순간에 지적 희열을 느낀다. 철학의 독창성은 기존의 사고방식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통찰하는 데서 나온다. 러셀은 철학사 전체를 꿰뚫으면서 각 철학적 주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 비판함으로써 독창적인 철학의 전형을 보여준다.
* 지은이 서문 *
p9 역사의 변화 과정에 통일성이 있으며, 먼저 일어난 일과 나중에 일어난 일이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하자. 이 점을 밝혀내려면 앞선 시기와 나중시기를 한 사람의 정신 속에서 종합해야 한다.
p10 나는 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철학자를 자신이 몸담았던 사회·문화적 환경이 산물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공유되지만 모호하거나 산만하게 흩어진 사상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애쓰며 집중하는 한 인간으로 조명했다.
p10 지금 내가 쓰는 책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상세히 다루지 않으면 빈약해져 흥미를 유발하지 못할 것이고, 상세히 다루다보면 과도하게 길어질 위험이 있다. 나는 어느 정도 중요한 가치가 있는 철학자들만 다루면서, 근본적인 면에서 중요하지는 않더라도 실례나 생동감을 전하는 설명으로서 가치가 있는 내용은 상세하게 언급하는 식의 타협점을 찾았다.
p10 철학은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는 역할을 했으며, 나는 바로 이 부분을 고찰하려 애썼다. 이러한 관점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 1. 사회가 다양화된다고 하지만 그와 비슷하게 개인화도 더욱 빠르게 팽배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다양화와 개인화를 통합하여 공동체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 ‘철학교육’이다.
* 서론 *
p17 내가 말하려는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
p17 명확한 지식은 무엇이든 과학에 속하는 반면, 명확한 지식을 초월한 교리는 모두 신학에 속한다.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자리 잡고 양측의 공격에 노출된 채,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 무인지대 No Man's Land가 바로 철학의 세계이다.
p18 한 시대와 한 민족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각각에 속한 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철학을 이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철학을 거의 결정하며, 거꾸로 사람들이 형성한 철학이 환경을 거의 결정한다. 수세기에 걸쳐 양자간에 일어난 상호작용이 앞으로 본문에서 다룰 주제이다.
p19 철학이 제기하는 질문을 망각해서도 안 되고, 철학적 질문에 대해 의심할 수 없는 답변을 찾았다고 자신을 설득해서도 안 된다. 확실한 진리는 없다고 주저하며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지 않고 의연히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 철학 연구자를 위해 철학이 지금도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p19 신학과 구별되는 철학은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p19 종교와 과학이 그렇듯이 사회 결속과 개인의 자유는 전 시기에 걸쳐 갈등을 빚거나 불안정한 타협 상태를 유지한다.
p24 르네상스기 예술은 여전히 질서와 규칙을 추구했지만, 사상은 오히려 무질서와 혼란을 추구함으로써 상대적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 2.‘무질서와 혼란’이란 다양성 추구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다양성을 추구하여 시도를 하다보면 결과가 풍성해질 수 있는 것이다.
▶ 마키아벨리 <군주론>
p25 가톨릭 교회는 세 가지 근원에서 유래한다. 성스러운 역사는 유대교에서, 신학은 그리스 사상에서, 지배 방식과 교회법은 최소한 간접적으로라도 로마 법제에서 유래한다.
p28 기원전 600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발전을 거듭하면서, 철학자들은 사회 결속을 강화하려는 자와 풀려는 자로 나뉘었다.
p28 규율주의와 자유주의의 갈등은 모습을 달리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졌고, 수세대에 걸쳐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3.‘규율주의와 자유주의’는 ‘보수와 진보’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법칙이 음과 양의 공존으로 이루어지듯, 사회를 존속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p28 한쪽에는 너무 강력한 규율과 전통에 대한 지나친 존경 때문에 경직될 우려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개인주의 성향과 개인의 독립심 때문에 협동과 협력의 토대를 상실하고 결국 분열되거나 외부 세력에게 정복당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p29 자유주의 학설은 지금까지 말한 끝없이 반복되어온 동요 상태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로서 등장한다. 자유주의의 핵심은 비합리적인 교의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서 사회 질서를 보장하는 동시에, 사회 보존에 필요한 이상으로 개인을 구속하지 않고서 사회 안정을 확보하려는 시도이다. 이런 시도가 성공할지는 오직 장래에 일어날 일이 결정할 터이다.
* 제1권 고대 철학 Ancient Philosophy*
* 제1부 소크라테스 이전 The Pre-Socratics
* 제1장 그리스 문명의 발흥
p34 모든 역사를 통틀어 그리스 문명의 발생만큼 놀랍고 설명하기 어려운 일은 없다.
p34 그들은 순수한 지성의 영역에서 훨씬 비범하고 이례적인 업적을 성취함으로써, 수학과 과학, 그리고 철학을 처음 만들어냈고, 단순한 연대기가 아닌 역사를 최초로 기록했다. 또 그들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전통에 구속되거나 얽매이지 않고 세계의 본성과 인생의 목적에 대한 사유를 자유롭게 펼쳐나갔다.
p35 철학은 탈레스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천문학자들이 기원전 585년에 일어났다고 말하는 일식을 탈레스가 예측한 사실에 비추어, 그가 살았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철학과 과학은 원래 분리되지 않는 상태로 기원전 6세기초에 동시에 탄생했다.
☞ 4. 인간의 사유의 시작이며 근본은 통합론적 사고였다. 지금 사회에 팽배해져 있는 이분법적 하고는 근본의 변질이다. 우리는 근본, 근원의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p37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법전은 바빌론 왕, 함무라비의 법전이다(기원전 2067-2025). 함무라비는 법전을 최고신 마르두크가 전해 주었다고 주장했다. 고대 시대 전체에 걸쳐 종교와 도덕의 관계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p42 그리스인들은 페니키아인들의 알파벳 문자를 빌려서 그들의 언어에 맞도록 변경했는데, 자음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모음을 추가하는 중요한 언어상 혁신을 이루었다. 이렇게 편리한 문자 쓰기 방법을 습득함으로써 그리스 문명의 발흥을 더욱 앞당길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p42 그리스문명에서 주목할 만한 최초의 결실은 호메로스였다.
▶ 호메로스 <일리아드>, <오디세이>
p42 호메로스의 시는 중세 후기의 궁정 소설과 마찬가지로 교양을 갖춘 귀족 계급의 관점을 대표하며, 민중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온갖 미신을 서민적이고 비속하다고 해서 무시한다. 훨씬 후대에 이러한 미신들 가운데 다시 햇빛을 보게 된 미신도 많았다.
p43 호메로스는 원시성과 거리가 먼 검열관의 위치에서 고대 신화들을 정리한 18세기식 합리주의 해석자이며, 상류층에 어울리는 도시풍의 세련된 계몽적 이상을 간직했다.
p44 호메로스 작품에서 찾아야 할 진정한 종교심은 올림포스의 신들보다는 오히려 숙명이나 필연, 혹은 운명과 같은 더욱 어둡고 실체가 없는 존재와 관련이 깊은데, 제우스조차 이에 복종해야 한다. 숙명은 그리스 사상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이 자연법칙에 대한 믿음을 도출하게 된 원천 가운데 하나였다. 호메로스의 신들은 정복을 일삼는 귀족 계급의 신들로서 실제로 땅을 일구는 농부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풍작의 신이 아니었다.
p45 더할 나위 없는 위업으로 평가되는 호메로스의 작품은 이오니아, 즉 그리스의 소아시아 일부 지역을 비롯해 인접한 섬나라들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호메로스의 시들은 늦어도 기원전 6세기 어느 시점에 오늘날의 형태로 고정되었다.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 수학도 바로 이 무렵 형성되었다. 기원전 6세기 문화의 근원이 된 중요한 사건들이 세계 곳곳에서 줄줄이 발생했다. 만약 존재했다면, 공자와 붓다, 조로아스터도 이 시대에 속한 인물들일 것이다.
p47 고대 그리스에는 우리가 이해한 의미에서 종교라 생각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종교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아니라 디오니소스나 바쿠스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 디오니소스를 다소 불명예스러운 주신酒神이자 만취의 신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주신 숭배로부터 후대 여러 철학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심오한 신비주의 神秘主義 mysticism가 발생하고, 그리스도교 신학의 형성에도 한몫을 하게 되는 도정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그리스 사상의 발전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경로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p48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주로 사려, 좀 더 의미가 넓은 용어를 쓰자면 예상이다. 문명인은 장래의 괘락을 위해, 설령 장래의 쾌락이 꽤 먼 미래에 주어질지라도 현재의 고통을 기꺼이 참아낸다. 이러한 인내습관은 농업의 발생과 더불어 중요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 에우리피데스의 <바쿠스의 무녀들>
p49 진정한 의미의 예상은, 충동과 아무 상관 없이 이성이 장래의 어느 날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경우에만 일어난다. 사냥은 현재의 쾌락을 즐기려는 것이므로 예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경작은 노동인데, 자연적인 충동에 따라서는 경작을 할 수가 없다.
p49 극단에 치우치지 않더라도, 사려하면 인생에서 맛보아야 할 최선의 요소들 가운데 일부를 쉽게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디오니소스 숭배자는 사려에 맞선 반동 세력으로 등장한다. 그는 육체적, 정신적 도취 상태에 들어가 사려 탓으로 훼손된 강렬한 감정을 회복한다. 그가 기쁨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세계를 알아보자마자, 상상력은 일상적인 걱정이나 근심이라는 감옥에서 갑자기 해방되면서 자유로워진다. 바쿠스 종교 의식은 ‘종교적 열광’을 불러일으키는데, 어원을 따져보면 신이 그를 숭배하는 사람 속으로 들어온다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서 신의 숭배자는 자신과 신과 하나가 되었다고 믿게 된다. 인간이 성취한 가장 위대한 업적에는 도취의 요소, 즉 사려를 단번에 날려버리는 열정의 요소가 어느 정도 들어 있다. 바쿠스 신과 관련된 요소가 없다면 인생에는 아무 재미도 없겠지만, 바쿠스의 요소가 들어오면서 우리 인생은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p.50 사려와 열정 사이에 나타난 갈등은 역사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그것은 우리가 완전히 어느 한편에 서기를 강요하는 갈등은 아니다.
☞ 5. 앞서의 ‘규율주의와 자유주의’의 갈등과 ‘사려와 열정’의 갈등은 일맥상통한다. 어느 한편에 치우칠 수는 있으나 두 가지 특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p50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면, 사상의 영역에서 문명이란 대체로 과학과 동의어이다. 그러나 순수 과학만으로 문명을 충분하게 설명할 수 없는데, 인간에게는 열정을 비롯해 예술과 종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지식에 한계를 그을 수는 있지만, 상상력에 한계를 그어서는 안 된다.
p50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준 디오니소스 숭배는 원래 형태가 아니라, 오르페우스의 영향으로 걸러진 정신적으로 변모한 형태였다.
p54 피타고라스는 오르페우스가 디오니소스교의 종교 개혁가였던 것처럼 오르페우스교의 종교 개혁가였다. 오르페우스교의 특징은 피타고라스를 거쳐 플라톤의 철학에 유입되었고, 플라톤을 통해 어느 정도 종교적 색채를 띤 이후 대부분의 철학 속으로 스며들었다.
p54 여성주의는 피타고라스의 사상 속에 더욱 짙게 나타나며, 플라톤의 철학 속에서는 여성들이 정치적 측면에서 남성과 완벽하게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수준까지 나아간다.
p.57 그리스 문화를 지배한 두 가지 경향이 있었다. 하나는 열정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다. 다른 하나는 명랑하고 경험을 중시하며 합리주의를 내세우고 다양한 사실에 대해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이다.
* 제2장 밀레토스 학파
p62 탈레스가 살았던 연대를 추정할 가장 좋은 증거는 천문학자들이 기원전 585년에 일어났다고 말하는 일식을 탈레스가 예측했다는 유명한 사실이다.
p.63 탈레스는 그리스 일곱 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유명하며, 일곱 현자는 저마다 현명한 격언 한마디로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격언으로 유명하지만, 이 가정은 오류이다.
p63-64 탈레스의 과학과 철학은 모두 투박하고 불완전하지만, 그 자체로 사사의 형성과 관찰을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
p66 밀레토스 학파는 성취한 업적이 아니라 철학적 시도로 인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학파는 그리스 정신이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문화를 만나 빚어낸 성과였다. 밀레토스는 부유한 상업도시로서 여러 나라와 교역을 하는 사이 원시적 편견이나 미신의 영향이 약해졌다. 이오니아는 기원전 5세기 다리우스 대왕에게 정복당할 때까지 문화적 측면에서 보자면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p66-67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의 사변적인 이론은 과학적 가설로 보아야 하는데, 의인화하려는 갈망이나 도덕관념을 부당하게 끌어들인 부분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이 제기한 문제는 대부분 충분히 제기할 만한 질문이었으며, 정력이 넘치는 활기찬 문제 제기는 후대의 탐구자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 제3장 피타고라스
p68 피타고라스는 지성사의 측면에서 보자면 현자이든 아니든, 지금까지 생존했던 아주 중요한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증명하는 연역 논증이란 뜻의 수학은 피타고라스와 더불어 시작되며, 색다른 형태의 신비주의 사상 역시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수학이 철학에 미친 영향의 일부는 피타고라스에서 기인하며, 이후 심오하지만 유감스러운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p72 수학은 사색적인 생활을 찬미하는 윤리적 수단으로서 기능했다.
p73 낱말의 의미가 변해 온 과정을 살펴보면 종종 매우 유익한 교훈을 얻는다. - ‘이론theory’
p73 피타고라스에게 ‘정열과 공감에 휩싸인 관조’는 지성적 관조이며 결국 수학적 인식에 해당한다. 이로써 ‘이론’이라는 말은 피타고라스 사상을 거치면서 점차 현대적인 의미를 획득했다. 그러나 피타고라스로부터 영감을 받은 모든 이들에게는 이론이란 낱말이 황홀경 속에 드러난 계시적 요소를 그대로 지녔다. 이는 학교에서 마지못해 수학을 배운 사람들에게는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갑자기 수학적 깨달음에 이르러 황홀한 기쁨을 맛본 사람이나 그러한 기쁨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볼 때, 피타고라스의 견해는 진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자연스러워 보일 터이다. 경험만을 믿는 철학자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에 매달리는 노예로 전락하기도 하지만, 순수한 수학자는 음악가처럼 질서정연한 미의 세계를 창조하는 자유로운 존재에 가깝다.
☞ 6. 나에게 수학은 암기과목이었다. 나에게 수학 공식은 숫자의 배열에 불과했다. 학창시절에 수학이 숫자놀음이 아니라 철학의 다름 아님을 알았더라면 그러한 가르침과 힌트를 얻었더라면 더욱 즐거운 학교생활을 했을 것 같다. 어째서 철학의 자식인 수학이 부모를 알아보지 못하는 교육을 하게 되었을까?
p.75 누구나 알듯이 피타고라스는 “만물은 수이다”라고 말했다. 이 진술은 현대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논리적으로 무의미하지만, 그가 말한 바를 정확히 알아보면 무의미하지 않다. 그는 음악에서 수가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발견했으며, 음악과 수학 사이에 확립된 관계는 수학의 전문 용어인 ‘조화평균’이나 ‘조화수열’로 살아남아 사용된다. 그는 수를 주사위나 놀이 카드에 나타나는 모양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도 수의 입방이나 평방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피타고라스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그는 직사각형수, 삼각형 수, 피라미드 수 같은 용어도 사용했는데, 해당되는 모양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갈의 수(또는 더 자연스럽게 말한다면 어림수)로 표시되었다. 그는 세계가 원자들로 구엇ㅇ되며, 물체는 갖가지 모양으로 배열된 원자들로 이루어진 분자들에 의해 형성된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이런 식으로 그는 수학을 물리학뿐만 아니라 미학에서도 필요한 기초 연구분야로 만들기를 바랐다.
p75 피타고라스와 그의 직계 제자들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직각삼각형에 관한 정리, 즉 직각에 닿는 두 변의 제곱의 합은 나머지 변에 해당하는 빗변의 제곱과 갔다는 진리이다.
▶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
p76-77 기하학이 철학이나 과학의 방법에 미친 영향은 뿌리 깊고 의미심장했다. 그리스인이 체계를 세운 기하학은 자명한(혹은 자명하다고 생각된) 공리들에서 시작하여, 연역추리를 통해 조금도 자명하지 않은 정리들로 나아간다. 공리와 정리들은 경험 속에 주어진 현실 공간에 들어맞는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먼저 자명한 공리를 인지한 다음, 연역을 사용하여 현실 세계에 관한 정리들을 발견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견해는 플라톤과 칸트,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있었던 철학자들 대부분에게 영향을 주었다.
p77 정확히 스콜라 철학의 형식에 해당하는 신학도 에우클레이데스 방법에서 표현방식을 빌려온다. 개인적 성향의 종교는 무아경에서 도출되고, 신학은 수학에서 도출된다. 그리고 무아경과 수학은 둘 다 피타고라스에서 근원을 찾아야 한다.
▶ 뉴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p.77 나는 수학이 초감각적인 지성계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영원하고 정학한 진리에 대한 믿음을 발생시킨 주요 원천이라 생각한다.
p78 사사의 영역에서 피타고라스만큼 영향력이 큰 사람은 더 없을 터이다. 플라톤 사상처럼 보이던 점이 분석을 거치고 나면 실제로는 피타고라스 사상으로 드러난다. 지성에는 드러나지만 감각에 드러나지 않는, 순수하고 영원한 세계의 착상은 피타고라스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피타고라스가 없었다면 그리스도교도가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여기지는 못했을 것이며, 신학자들 역시 신과 영혼의 불멸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려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피타고라스 사상 속에 암시되어 있다.
* 제4장 헤라클레이토스
p80-81 어떤 철학자를 연구할 때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는 그를 숭상하지도 경멸하지도 말고 이론 가운데서 믿을 만한 점을 알아낼 때까지 우선 일종의 가설로서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비판적 태도를 회복할 수 있는데, 이러한 태도는 가능한 한 이제까지 주장하던 의견을 포기할 수도 있는 정신 상태를 닮아야 한다. 경멸은 가설로서 공감을 표현하는 데 방해가 되며, 숭상은 비판적 태도의 회복에 방해가 된다. 두 가지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
p81 어떤 지성인이 분명히 불합리한 견해를 표현할 때, 우리는 그의 의견이 어떤 식으로 참인지 입증하려 해서는 안 되고, 어떻게 참인 것처럼 보이게 되었는지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역사적 상상력과 심리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활동은 동시에 우리의 사고 폭을 넓혀주며, 우리의 마음속에 도사린 여러 편견이 다른 정신적 기질의 지배를 받는 시대에는 얼마나 어리석어 보일지 깨닫게 한다.
☞ 7. “참”이라도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단지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다 ‘참’일리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싶은 것만을 느낀다. 과거에 참-진실이었던 것이 오늘날에 참이 아닐 수도 있고, 오늘날 참이었던 것이 미래에는 참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참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디자인해 나가면 그뿐이다.
p87 신이란 따져볼 것도 없이 우주적 정의의 화신이다.
☞ 8. 나는 신이란 존재한다고 믿는다. 난 종교는 없다. 하지만 절대자인 신의 존재를 믿는다. 신은 다름 아닌 전우주적 존재의 다른 표현이다. 인간은 우주의 일부분이다. 곧 우리 인간도 신의 DNA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은 어떠한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없다고도 할 수 있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p88 인간을 철학으로 이끄는 깊은 본능 가운데 하나가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다. 이러한 본능은 당연히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나 위험을 피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우리는 불운이 겹치는 격변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서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 더욱 열정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5장 파르메니데스
p.92 그리스인들은 이론에서든 실천에서든 온건한 입장이나 주용을 취하지 않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이 변한다고 주장했고, 파르메니데스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맞받아쳤다.
p93 파르메니데스는 형이상학적 논증 형식을 고안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며, 그의 논증은 후대에 등장한 헤겔을 비롯한 형이상학자들 대부분에게서 발견된다. 그가 논리학을 고안했다고 자주 말하곤 하지만, 실제로 논리학에 근거한 형이상학을 고안했을 뿐이다.
p95 파르메니데스는 말이란 불변하는 일정한 의미를 가진다고 가정하는데, 이것이 실제로 파르메니데스가 펼치는 논증의 기반이며 이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전이나 백과사전에 어떤 말에 대해 공식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승인된 의미가 실려 있기는 해도, 같은 말을 쓰는 두 사람이 마음속에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지는 않다.
p97 그후 철학이 꽤 현대에 이른 시기까지도 파르메니데스에게서 수용한 사상은 역설의 극단을 보여준 모든 변화의 불가능성이 아니라 실체의 불멸성이었다.
* 제6장 엠페도클레스
p105 엠페도클레스가 과학 분야 밖에서 보여준 독창성은 4원소(흙, 공기, 불, 물) 설을 내놓고 사랑과 다툼이라는 두 가지 원리를 이용하여 변화를 설명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일원론을 거부했으며, 자연의 변화 과정은 목적이 아니라 우연과 필연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제7장 아테네의 문화
p108 아테네는 단지 위대한 두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이름을 남김으로써 철학에 이바지했다.
p109 아테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활약으로 철학 분야에서는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도시가 되었다.
*제8장 아낙사고라스
p111 아낙사고라스는 만물은 무한히 나뉠 수 있으며, 물질의 가장 작은 부분이라도 네 원소의 일부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p113 그에게서는 윤리와 종교에 열중한 자취를 찾을 수 없지만, 이러한 자취는 피타고라스에서 소크라테스로, 소트라테스에서 플라톤으로 넘어가면서 그리스 철학 속에 반계몽주의적 편견을 심어놓게 된다. 그는 일급 철학자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처음으로 아테네에 철학을 전파하고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 철학자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제9장 원자론자들
p117 원자론자들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목적이나 목적인 같은 개념을 끌어들이지 않고 세계를 설명하려 했다. 어떤 일의 ‘목적인’은 그 일을 발생시키는,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다. 이러한 개념은 인간의 일상사에 적용해도 된다.
p124 테모크리토스는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그리스 철학자들 가운데 고대 후기와 중세 사상을 타락시킨 특이한 결점을 보이지 않은 마지막 철학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다룬 철학자들은 모두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사심 없이 노력했다. 그들은 세계를 이해하는 일을 실제보다 더 쉽게 생각했지만, 이러한 낙관주의가 없었던들 그들은 감히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주로 당대의 편견을 그저 답습하지 않을 때는 언제나 진정으로 과학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그들은 단지 과학적인 태도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상상력이 넘치고 원기왕성했으며 지적 모험에서 얻는 기쁨으로 충만했다. 그들은 일식과 월식, 물고기, 회오리바람, 종교, 도덕 등 모든 것에 흥미를 느꼈으며, 날카로운 지성과 아울러 아이들 같은 호기심도 지녔다.
*제10장 프로타고라스
p126 우리가 살펴본 소크라테스 이전의 위대한 사상 체계는 기원전 5세기 후반 회의주의 운동에 직면했는데, 이 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한 인물이 바로 소피스트들의 우두머리 격인 프로타고라스이다. ‘소피스트’라는 말은 원래 나쁜 의미를 포함하지 않고, ‘교수’나 ‘교사’라는 말과 거의 비슷한 뜻으로 쓰였다. 소피스트는 실제 생활에 유용한 지식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며 받은 수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교육에 필요한 공공 설비가 전무한 상태에서 소피스트들은 사유재산을 소유한 사람이나 사유 재산을 소유한 부모를 둔 사람들만 가르쳤다.
p130 그는 주로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즉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한다는 척도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척도이다”라는 학설로 주목받는다.
p130-131 객관적 진리를 불신하게 되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는 다수가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프로타고라스는 법과 관습과 전통 도덕을 옹호한다. 이미 보았듯이 그는 신들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알 수 없는 반면, 신들이 숭배를 받아 마땅하다는 점은 확신했다. 이것은 분명히 이론상 철저하고 논리적으로 회의주의를 주장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올바른 관점이다.
* 제2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Socrates, Plato, and Aristotle
* 제11장 소크라테스
p138 ▶ 아리스토파네스 <구름>
p138 총명한 사람의 말을 우둔한 사람이 전하게 되면 도무지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는 까닭은, 우둔한 사람은 자신이 들은 내용을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이해할 수 있게 바꾸어 말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철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보다는 차라리 철학자들 가운데 나를 가장 호되게 비판하는 철학자가 내 사상을 전달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철학의 어려운 논점을 포함하든 소크라테스가 부당하게 유죄판결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논증의 일부이든 크세노폰이 한 말을 액면 그대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그렇더라도 크세노폰이 소크라테스에 대해 회상한 일부 내용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크세노폰은 (플라톤이 말하듯이) 소크라테스가 유능한 자를 권력자로 만드는 문제에 얼마나 끊임없이 몰두했는지 전한다.
☞ 9. 사람의 기억은 유한하다. 일례로 어린 시절 자신의 기억이 실제로 일어난 사실인지 아니면 자신의 상상인지 구별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역사서든 철학서든 저자의 기억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책 속에 적힌 내용이 다 옳다는 보장은 없다. 독자의 비판적인 책읽기가 필요하다.
▶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론>
p151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만큼 충분한 지식을 이미 가졌지만 사고하는 도중 혼란에 빠지거나 제대로 분석하지 못해서, 즉 이미 아는 지식을 논리적으로 능숙하게 이용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들은 소크라테스식 방법을 활용하여 적합하게 다룰 수 있다.
p152 논쟁의 대상이 사실이 아닌 논리와 관련된 경우라면 언제든 토론이 바로 진리를 이끌어내는 좋은 방법이다.
p152 내 생각에 논리적 오류를 분별하는 능력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준보다 실제 생활에서 훨씬 중요하다. 왜냐하면 논리적 오류는 오류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주제를 다룰 대마다 단지 자기 마음에 드는 편한 의견만을 주장하도록 조장하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일관된 이론 체계라도 얼마간 현재 통용되는 편견을 포함하면서 기존의 편견에 반대하게 되어 있다. 변증법, 혹은 일반인이 더 잘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하자면 자유로운 토론 습관은 논리적 일관성을 증진하기 때문에 유용하다. 그러나 새로운 사실의 발견이 목적이라면 소용없는 방법이다.
☞ 10.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제12장 스파르타의 영향
p.153 스파르타는 그리스 사상에 이중으로 영향을 끼쳤는데, 현실과 신화가 제각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플루타르코스 <리쿠르고스의 생애>
p155 스파르타에서 여자들의 지위는 특이했다. 그들은 그리스 다른 지역의 신분이 높은 여자들과 달리 격리된 생활을 하지 않았다. 소녀들은 소년들과 똑같은 체육 과정을 이수했다.
p.160 사람들의 상상 속에 면면히 이어진 스파르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묘사한 스타르타가 아니라 플루타르코스가 <영웅전>에서 묘사한 스파르타와 플라톤이 <국가>에서 철학을 통해 이상화한 스타르타이다. 수세기에 걸쳐 젊은이들은 <영웅전>과 <국가>를 읽으며 리쿠르고스가 되거나 철인 왕이 되려는 야심을 불태웠다. 이상주의와 권력애가 통합된 결과로 인간은 몇 번이고 길을 잃었으며, 오늘날도 여전히 헤매고 있다.
▶ 플루타르코스가 <영웅전>
▶ 플라톤 <국가>
* 제13장 플라톤 사상의 근원
p.166 플라톤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는 다섯 가지이다. 첫째는 이상향으로서, 기나긴 역사 속에 등장한 최초의 형태에 속한다. 둘째는 이상이론으로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보편자 문제를 다룬 선구적 시도로 평가된다. 셋째는 영혼 불멸을 지지하는 논증이고, 넷째는 우주론이며, 다섯째는 지각이 아닌 상기로 간주되는 지식 개념이다.
p169 ‘현명한’ 사람들의 무리를 찾아 통치를 맡기는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한 과제이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궁극적 이유이다.
* 제14장 플라톤의 이상향
p.170 <국가>는 플라톤의 가장 중요한 대화편이며 대략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부분에서는 이상 국가의 구조를 설명하는데, 이상향의 역사 속에 등장한 최초의 형태에 속한다. 이상 국가론에서 도출된 한 가지 결론은 통치자가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p170 <국가>의 명목상 목적은 ‘정의正義’라는 말을 정의定義 내리는 것이다.
p171 우선 교육 문제를 고찰해보자. 교육은 두 부분, 즉 음악과 체육으로 나뉜다. 음악과 체육은 제각기 현재 받아들이는 의미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포괄한다. ‘음악’은 뮤즈 신이 관장하는 모든 영역을 가리키고, ‘체육’은 체력 훈련과 건강에 관한 모든 영역을 가리킨다. ‘음악’은 우리가 ‘문화’라 불어야 할 정도로 넓은 의미로 쓰이며, ‘체육’은 우리가 ‘운동경기’라 부르는 의미보다 조금 넓게 쓰인다.
p177 철학이 시작되기 전부터 그리스인들은 우주에 대한 이론이나 느낌을 표현했는데, 종교 이론이라 하기도 하고 윤리 이론이라 하기도 한다. 그리스 우주론에 따르면 인간과 사물은 어느 것이나 다 정해진 자리가 있으며 정해진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운명이 제우스의 명령에 의존하지 않는 까닭은 제우스도 다른 사물과 동일한 법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우주론은 숙명 혹은 필연의 사상과 연결되며, 당연히 천체들에도 적용된다. 그런데 활력이 존재하는 곳에는 바로 한도를 넘으려는 경향이 존재하기 때문에 투쟁이 벌어진다.
p182 플라톤의 국가는 근대에 등장한 이상향과 달리 현실 속에 세우기 위해 계획되었다. 플라톤의 국가 건립은 우리에게 당연하게 보이듯 공상에 그치거나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스파르타는 우리가 보면 당연히 실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몇 가지를 비롯해, 이상 국가에 필요한 여러 조건을 실제로 갖추었다.
* 제15장 이상 이론
p188 플라톤에게 철학은 일종의 통찰, 곧 ‘진리통찰’이다. 철학은 순수 지성의 활동만이 아니다. 철학은 지혜일 뿐만 아니라 지혜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며, 이러한 사유와 감정의 친밀한 합일은 스피노자가 말한 ‘신에 대한 지적 사랑’과 거의 같다.
p189 나로서는 어떤 주제로 책을 쓰고 싶으면 우선 주제와 관련된 다른 내용들 하나하나에 익숙해질 때까지 세부 사항을 차근차근 알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운이 좋으면 각각 다른 내용이 서로 알맞게 연결되면서 전체 윤곽을 파악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파악한 내용을 적어 내려갈 따름이다. 꼭 닮은 비유를 들자면, 우선 안개 속에서 산책로와 산등성이와 산골짜기에 따로따로 익숙해질 때까지 구석구석 산을 돌아다녀보고 나서, 멀리서 밝은 햇빛에 드러난 산 전체를 보는 체험과 같다.
☞ 11. 책쓰기에 대한 팁! 주제를 잡고 세부적인 다양한 경험, 소재를 채집하고 그것을 하나로 엮어내는 것이다. 각각의 흩어진 구슬을 꿰어 하나의 목걸이는 만드는 것처럼.
p192 플라톤의 이상 이론에는 명백해 보이는 오류가 많다. 하지만 오류가 있더라도 이상 이론은 철학의 발전 과정에서 중대한 진전을 이루는데, 보편자 문제를 역설한 최초의 이론이며 형태가 다양하게 바뀌면서 오늘날까지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설명할 때 초기 이론들이 조잡하다 해도 독창적인 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제16장 플라톤의 영혼 불멸설
p200 <파이돈>은 소크라테스 생애의 마지막 순간, 곧 독배를 마시기 직전부터 독배를 마신 다음 의식을 잃을 순간까지 나눈 대화를 묘사한다. 여기서 최고 현명하고 선하며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플루톤의 이상적인 인간형이 등장한다. 플라톤이 묘사한 죽음 직접의 소크라테스는 윤리적인 면에서 고대에나 근대에나 위대하다고 평가되었다.
p200-201 <파이돈>은 이교도 철학자나 자유사상을 표방한 철학자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소크라테스가 마지막 순간에 보여준 침착함은 영혼 불멸 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파이돈>은 순교자 한 사람의 죽음뿐만 아니라 나중에 그리스도교에 스며든 많은 학설을 설명하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성 바울로와 교부들의 신학은 대체로 직접이든 간접이든 <파이돈>의 사상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플라톤을 무시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 <파이돈>
p211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타난 소크라테스는 여러 세대에 걸쳐 후대 철학자들에게 추앙받은 모범이다. 소크라테스의 어떤 면을 윤리적이라고 평가해야 할까? 소크라테스의 장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속세에서 추구하는 성공에 관심이 없었으며, 임종하는 순간에도 평온하고 품위가 있었으며 기지를 발휘하여 다른 무엇보다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바를 더 염려했다.
* 제17장 플라톤의 우주론
▶<티마이오스>p215 시간이 존재하기 전에는 낮도 없고 밤도 없었다. 우리는 그 영원한 본질에 대해 존재했다거나 존재할 것이다라고 말해서는 안 되며, 존재한다고만 말해야 맞는다. 이것은 ‘움직이는 영원한 영상’에 대해서는 존재했다거나 존재할 것이라는 말도 맞음을 함축한다.
☞ 12. 과거나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지 현재, 지금 이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고로 우리는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것에 집중하여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p217 나는 위에서 인용한 아주 어려운 구절을 완벽하게 이해한 척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여기서 말하는 이론은 기하하적 반성에서 생겨났음이 틀림없으며, 기하학적 반성은 산수처럼 순수 이성의 문제로 드러나지만 감각계에 속한 공간과 관계가 있었다. 대개 후대 철학자들과 유사한 점을 찾아내는 일은 공상에 지나지 않지만, 누구나 자신의 것에 친근감을 느끼듯 칸트가 앞서 말한 공간론을 틀림없이 좋아했으리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 제18장 플라톤의 지식과 지각
p221 근대인들은 대부분 경험적 지식이 지각에 의존하거나 지각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플라톤이나 다른 특정 학파에 속한 철학자들 사이에는 ‘지식’이라 부를 만한 지식은 감각에서 유래하지 않으며, 유일하게 진정한 지식은 개념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전혀 다른 학설이 존재한다.
p221-222 “제게는 무엇을 인식하는 사람은 인식하는 사물을 지각하며, 지금 아는 한도내에서 지식은 지각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닌 듯합니다.”
p224 담론과 지식이 가능하려면 조금이라도 불변하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내 생각에는 이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끝없는 흐름과 양립할 수 있다.
* 제19장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p233 17세기가 시작된 이래 지성사에 중요한 획을 그은 거의 모든 사상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논리학의 경우 이런 경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나타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선대 철학자들 가운데 어느 누가(아마 데모크리토스를 제외하면) 동등한 권위를 얻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재앙의 수준이 그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공정하게 다루려면 애초부터 과도하게 추앙된 사후의 명성뿐만 아니라 그 반동으로 나타난 과도한 비난도 잊어야 한다.
☞ 13. 누구나 자신의 삶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갖고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p235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로서 여러 가지 점에서 선대 철학자들 중 그 누구와도 달랐다. 그는 오늘날의 교수처럼 글을 쓴 첫 인물이다. 그가 쓴 논문은 체계를 갖추어 토론 내용이 항목별로 분류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영감을 받은 예언자가 아니라 전문 교사이다.
p.239 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자 이론을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자체가 명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자 이론은 플라톤의 이상 이론에게 한 단계 진보한 이론이라 확신하며, 철학의 진정한 문제를 다룬 매우 중요한 이론이라는 점도 확실하다.
p242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 이론은 가능태 可能態와 현실태 現實態의 구별과 관계가 있다.
p244 신은 영원히 순수 사유로서 행복, 즉 완전한 자기충족의 상태에 있어 실현되지 않은 목적이 하나도 없는 존재이다. 이와 반대로 감각 세계는 불완전하지만, 불완전한 생명, 불완전한 욕망, 불완전한 사유에서 비롯된 염원을 드러낸다. 모든 생물은 정도가 크든 작든 신을 의식하기에, 신에 대한 염원과 사랑으로 활동하며 신을 향해 움직인다. 따라서 신은 모든 활동의 목적인이다. 변화는 질료에 형상을 부여할 때 일어나지만, 감각 사물이 관련된 경우 질료라는 기체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신만이 질료 없는 형상으로 이루어진다. 세계는 등급이 더 높은 형상으로 진화하기 때문에 신과 더 많이 닮은 단계로 계속 진보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완성되지 못하는 까닭은 질료가 완전히 제거될 수 없는 탓이다. 이것이 진보와 진화의 종교인데, 바로 신의 정적인 완전성은 유한한 존재들이 신을 느끼는 사랑을 통해서만 세계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수학에 기울였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에 기울었다.
☞ 14. 신의 세계과 인간 세계의 차이를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비물질세계와 물질세계의 차이 속에서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에 대한 원론적인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 제20장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
p248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학에서 제시한 견해는 주로 당시 교양 있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된 의견을 대표한다. 그의 견해는 플라톤과는 달리 신비 종교가 스며들어 있지 않으며, <국가>의 재산과 가족에 대한 논의에서 나타난 정통에서 벗어난 이론을 장려하지도 않는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예의바름의 정도가 떨어지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은 사람들, 곧 품행이 바른 시민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원칙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을 보게 될 터이다.
p255 사실 최고 행복은 오로지 철학자에게, 그것도 행복이 선이라는 이론에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만 열려 있는 경지이다.
☞ 15. 최고 행복이란 자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모두의 것이다. 자신만의 특별함을 알아채고 그것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행복이 함께 한다.
* 제21장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p263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데, 당시 교육받은 그리스인들의 공통된 편견을 보여주기 때문에 흥미롭고, 중세 말기까지 영향을 미친 여러 원리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p274 교육의 목적은 ‘덕’이지 유용성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의미의 ‘덕’은 <윤리학>에 나와 있으며 <정치학>서도 자주 언급한다.
p274 아리스토델레스가 <정치학>에서 제시한 근본 가정들은 어떤 현대 저술가와 비교해도 차이가 뚜렷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국가의 목적은 교양을 갖춘 신사, 말하자면 귀족다운 심성과 아울러 지식과 예술에 대한 사랑도 지닌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다.
☞ 16. 교육의 목적이 유용성이 아니라 ‘덕’에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에 동의한다.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일부의 지식의 양적인 부분에만 치중되어 있는 교육에 ‘덕’의 항목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금 깨우칠 필요가 있다. 지와 덕의 조화에 대한 문제가 이렇게 오래전부터 계속된 것인데 불구하고 여전히 덕보다 지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한 많은 교육현장의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 제22장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p276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학문 분야에 영향을 크게 미쳤지만 논리학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p277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에서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은 삼단논법 학설이다. 삼단논법은 대전제, 소전제, 결론 세 부분으로 구성된 논증이다. 삼단논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각각에 스콜라 철학자들이 붙인 이름이 있다. 가장 친숙한 삼단논법은 ‘바르바라’라고 부르는 형식이다.
p282 나는 ‘범주’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아리스토텔레스에서든 칸트나 헤겔에서든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로서는 ‘범주’라는 용어가 철학을 할 때 명료한 관념을 표상하는 용어로서 어떤 식으로도 유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범주가 열 가지 있는데, 실체, 양, 질, 관계, 장소, 시간, 위치, 상태, 능동, 수동이다. ‘범주’란 용어에 대해 유일하게 내린 정의는 ‘어떤 식으로든 혼합되지 않은 표현들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 제23장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p.288 도토리는 도토리나무의 ‘가능태’라는 말이다.
☞ 17. 황금씨앗을 심어야 황금열매를 맺을 수 있다.
* 제24장 초기 그리스 수학과 천문학
p292 그리스인들이 보여준 뛰어난 재능은 다른 분야보다 수학과 천문학에서 분명하게 발휘된다.
p292 수학적 증명 방법의 기원은 거의 다 그리스인에게서 시작한다.
p302 코페르니쿠스 가설의 장점은 진리성이 아니라 단순성에 있다. 운동의 상대성이란 관점에서 보면 진리 문제가 개입될 필요는 없다. 그리스인들은 ‘현상을 구해내는’ 가설을 찾는 과정에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과학의 측면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정확하게 천체의 운동 문제를 다루었다.
☞ 18. 과학적 원리 뿐 아니라 삶의 원리에서도 진리에 대한 복잡한 증명보다 단순한 삶의 원칙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큰 깨달음으로 다가오고 실천적 영역에서 효과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 제3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고대 철학 Ancient Philosophy After Aristotle *
* 제25장 헬레니즘 세계
p310 전문화는 학문의 세계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걸쳐 당대를 다른 시대와 구분하는 특징이었다. 기원전 5세기부터 4세기에 그리스 자치도시들의 경우 유능한 사람이란 모든 면에서 능력을 갖춘 인재였다. 유능한 사람은 경우에 따라 군인, 정치가, 입법자가 되거나 철학자가 되기도 했다.
p316 철학은 이제 용맹한 소수의 진리 탐구자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불기둥이 아니었다. 오히려 철학은 생존 투쟁의 흔적을 뒤따르며 병약자와 부상자를 치료하는 야전병원 같은 역할을 하게 한다.
* 제26장 키니코스 학파와 회의주의 학파
p317 뛰어난 지성인과 사회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아주 다른 양상을 나타냈다.
☞ 19. 이는 단지 서양철학사에 국한된 것이 아닌 어느 사회에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내용이다. 어떤 능력을 지녔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어떠한 사회에 속해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자신이 속한 사회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한다면 자신의 주변 환경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 제27장 에피쿠로스 학파
p333 에피쿠로스는 순수하고 인간적인 우정을 맺는 아주 비범한 재능을 타고난 인물로, 공동체에 소속된 회원들의 어린아이들에게도 상냥하고 유쾌한 편지를 쓰곤 했다. 그는 감정을 표현할 때 고대 철학자들이 나타내리라 예상되는 점잔 빼는 행동과 자제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의 편지들은 놀라우리만치 자연스럽고 꾸밈이 없었다.
p333 에피쿠로스 학파의 공동체 생활은 매우 단순하고 소박했는데, 한편으로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물론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 20. 지금의 우리는 인간적이며 꾸밈없는 단순하고 소박한 원칙을 지켜면서 물질과 정신의 풍요가 조화를 이룬 삶을 사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 제28장 스토아 철학
p348 스토아 학파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변치 않은 주요 학설은 우주에 관한 결정론과 인간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p349 스토아 학파에서 자연의 행로는 18세기 신학에서 주장하듯이 자비로운 섭리라 부르는, 입법자가 정해놓은 것이었다. 아주 사소한 세부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자연을 수단으로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p351 스토아 철학자는 선을 행하기 위해 덕을 얻으려 하지 않고, 덕을 얻기 위해 선을 행한다. 그에게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사랑이 피상적인 의미가 아니라면 스토아 학파의 덕 개념에는 결여되어 있다. 이렇게 말할 때, 나는 사랑을 원리가 아닌 감정으로 생각한다. 스토아 학파는 보편적 사랑을 원리로서 가르쳤다.
☞ 21. 러셀의 의견처럼 나도 사랑은 원리가 아닌 감정으로 생각한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발현이다.
p357 에픽테토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거의 동시에 철학의 모든 문제를 다룬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것은 사회 상황이 한 시대의 철학에는 영향을 미치지만, 개인이 처한 상황이 개인의 철학에 생각보다 더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암시한다. 철학자들은 보통 사생활 속에서 빚어지는 우연한 사건들을 대체로 도외시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철학가들조차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문제가 되는 훨씬 큰 선이나 훨씬 큰 악에 무심할 수 없는 법이다. 철학자들은 난세에는 위안을 찾고, 태평 시대에는 훨씬 순수하고 지적인 연구에 관심을 쏟는다.
☞ 22. 철학자들의 사회적 역할과 경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사유하는 철학자라고 할 때 어떤 포지션을 취할지 과거의 철학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제29장 로마 제국의 문화
p369 로마 제국은 다방면에 걸쳐 각각 다른 방식으로 문화사에 영향을 미쳤다. 첫째는 로마가 헬레니즘 사상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이다. 이 영향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깊숙이 파고들지도 못한다. 둘째는 그리스와 동방 세계가 로마 제국의 절반을 차지한 서방 지역에 미친 영향이다. 이 영향은 그리스도교를 포함했기 때문에 깊고도 지속적인 것이었다. 셋째는 문화를 널리 보급하고 사람들이 단일 정치와 결합된 단일 문명이란 생각에 익숙해지도록 기여한 로마의 오랜 평화기가 갖는 중요한 가치이다. 넷째는 헬레니즘 문명을 이슬람교도들에게 전하고. 마침내 서유럽에 전달한 역할이다.
* 제30장 플로티노스
p400 풀로티노스의 철학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외면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조장하는 결함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안을 들여다볼 때 신성한 정신을 보게 되고, 자신의 바깥을 바라볼 때 감각계의 불완전한 면을 보게 된다.
☞ 23. 우리는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 때문에 갈등과 혼란을 겪는다. 그 갈등과 혼란은 우리의 내면과 외면을 모두 뒤 흔들게 된다. 삶은 이런 갈등과 혼란이라는 물결을 진정시켜과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p401 플로티노스는 끝이자 시작이다. 즉 그리스인의 관점에서는 끝이고 그리스도교 세계의 관점에서는 시작이다.
* 제2권 가톨릭 철학 *
p.405 고대 세계와 대조를 이루는 중세 세계의 특징은 가지각색의 이원성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성직자와 속인의 이원성. 라틴족과 튜튼족의 이원성. 신의 왕국과 현세의 왕곡의 이원성, 정신과 육체의 이원성이 나타난다. 이런 갖가지 이원성은 교황과 황제의 이원성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제1부 교부철학
p.414 유대교는 바빌론 유수 시기를 전후해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p.430 그리스도교는 처음에는 유대교의 개혁을 목표로 유대인이 유대인에게 설교한 가르침이었다.
p.436 아우구스티누스의 젊은 시절이 성직자들 대부분과 달리 더 많이 알려지게 된 이유는 그가 자신의 <고백록>을 통해 말했기 때문이다. <고백록>을 모방한 여러 책 가운데 특히 루소와 톨스토이의 작품이 유명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전에는 비견될 만한 수작이 없었다.
p.458 그리스도교 신학은 두 부분야로 나뉘는데, 하나는 교회와 관련되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영혼과 관련된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사상 속에서는 두 분야가 동등하게 조화롭게 공존한다.
p.468 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론에서 시간을 마음과 관련시킨 부분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이론은 분명히 진지하게 고찰해볼 만한 뛰어난 이론이다. 더 나아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론이 그리스 철학에서 시간을 주제로 다룬 어떤 이론보다 훨씬 앞섰다는 말도 당연히 해야 하겠다. 또 그의 시간 이론은 칸트의 주관적인 시간 이론보다 더 우수할 뿐만 아니라 명료한 주장을 포함하고 있으며, 칸트 이후 철학자들이 수용하게 되는 이론이다.
p.495 6세이 이후 수세기에 걸친 끝없는 전쟁으로 문명이 전반적으로 쇠퇴하던 시기, 무엇보다도 교회는 살아남은 고대 로마문화를 보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다루는 시가에 나타난 교회의 세 가지 활동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수도원 운동이다. 둘째는 교황 체제의 영향, 특히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의 재위 시절이 두드러진 영향이다. 셋째는 선교를 통한 이교도 야만족들의 개종이다.
* 제2부 스콜라 철학
p.525 ‘암흑기’라는 말로 600년부터 1000년에 이른 시기를 가리키는 관행은 서유럽에 집중하는 부당한 처사에서 비롯된다. 중국의 경우 이 시기는 당 왕조 시대로. 중국 시문학이 꽃을 피운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시기이다. 인도에서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이슬람교 문명이 번성했다. 이 시기 그리스도 세계는 문명을 잃어버리기는커녕 그와 정반대였다. 아무도 서유럽이 후대에 권력과 문화를 장악하게 되리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는 서유럽 문명이 곧 문명이라 생각하지만, 이것은 협소한 견해이다. 우리 문명의 문화에 속하는 내용은 대부분 동부 지중해 연안, 그리스인과 유대인에게서 유래한다. 권력의 측면에서 서유럽은 포에니 전쟁부터 로마의 몰락까지, 대략 기원전 200년부터 서기 400년까지 6세기 동안 우위를 차지했을 따름이다. 이후 서유럽의 어떤 나라도 권력으로는 중국, 일본, 이슬람교 국가를 따라잡지 못했다.
p.536 유럽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11세기 처음으로 후대에 잃어버리지 않는 급속한 진보를 이룩했다. 카롤링거 르네상스 동안 그렇게 진보하기는 했으나 견고하지 않았다. 11세기에 이룩한 개선과 진보는 오래 지속되었으며 다채로웠다. 이러한 진보는 수도원 개혁과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그 다음 교황 체제와 교회 조직으로 확대되었다. 11세기 막을 내릴 무렵 최초의 스콜라 철학자들이 배출되었다.
p.551 이슬람교의 기원 헤지라는 622년에 일어났으며, 무하마드는 10년 후에 죽었다. 그가 죽은 직후 아랍인은 정복을 시작하여, 엄청난 속도로 정복 사업을 이어갔다.
p.562 우리의 흥미를 끄는 12세기의 네 가지 양상은 다음과 같다. 1. 황제권과 교황 체제의 계속되는 갈등 2. 롬바르디아 도시들의 발흥 3. 십자군 4. 스콜라 철학의 성장
p.578 중세 시대는 13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로마의 몰락 이후 점차 형성되기 시작한 종합은 도달 가능한 수준만큼 완결되었다. 14세기에 여러 제도와 철학 체계들이 해체되고, 15세기에는 우리가 지금도 근대적 특징으로 간주하는 제도와 철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3세기의 위대한 인물들은 정말 위대했다. 인노켄티우스3세, 성 프란체스코, 프리드리히 2세, 토마스 아퀴나스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각 유형에서 최고 권위를 갖는 대표자들이다.
p.591 토마스 아퀴나스 1225또는 1226~1274는 스콜라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 생각된다. 철학을 가르치는 모든 가톨릭 교육 기관에서는 단 하나뿐인 옳은 체계로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체계를 가르쳐야 한다. 이것은 1879년 레오 13세가 내린 교서 이후 규칙이 되었다. 그러므로 토마스 아퀴나스는 단지 역사 속 인물로서 관심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과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영향을 미치는 철학자이며, 사실 뒤의 두 학자보다 영향력이 더 큰 인물이다.
p.604 아퀴나스 철학 체계 안에 진정한 철학 정신을 드러내는 부분은 거의 없다. 그는 플라톤 대화편 속의 소크라테스와 달리 논증이 이끄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따라가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는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는 탐구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그는 철학을 시작하기 전에 벌써 진리를 알고 있다. 진리는 가톨릭 신앙 안에서 선언된다. 만약 그가 신앙의 어떤 부분을 지지하기 위해 분명한 이성적 논증을 찾을 수 있었다면, 훨씬 더 나은 철학을 하게 되었으리라. 만약 그럴 수 없다면, 그는 그저 계시로 후퇴하는 길밖에 없다. 결론이 미리 주어진 논증의 발견은 철학이 아니라 특별한 변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아퀴나스가 그리스 근대 양 시대의 최고 철학자들과 어개를 나란히 견줄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제3권 근현대 철학 Modern Philosophy*
* 제1부 르네상스에서 흄까지 From the Renaissance to Hume
* 제1장 일반적 특징
p638 보통 ‘근대’라고 부르는 역사적 시기의 정신적 전망은 여러 가지 점에서 중세에 속한 사고방식과 달랐다.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특징은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 과학의 권위가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그 밖의 다른 특징은 이 두 가지 특징과 관련이 있다. 근대 문화는 성직자보다 속인의 삶과 관계가 더 깊다. 국가의 힘이 점점 터지는 가운데 문화를 조정하는 정부 권력 기구가 교회를 대체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p640 교회의 권위에서 해방되면서 개인주의가 출현하고, 심지어 무정부주의까지 생겨났다.
☞ 24. 귄위주의의 억압에 대한 반동으로 자유를 갈망하면서 개인주의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p640 근대 철학은 대부분 개인주의와 주관주의적 경향을 그대로 간직했다.
p.642 근대세계는 요즈음 고대와 비슷한 해결을 향해 나아가는 듯하다. 즉 사회 질서는 힘에 의해 재편되어 보통 사람들의 희망보다는 오히려 강자의 의지를 대변한다. 지소 가능하고 만족스러운 사회 질서를 실현하려면 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법체계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에서 제시한 이상주의를 결합해야만 가능할 텐데, 이를 성취하려면 새로운 철학이 등장해야 할 것이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 <신국>
* 제2장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
p643 중세적 사고방식과 대립하는 근대적 사고방식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과 더불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p649 르네상스기는 철학에서 위대한 성취를 이룬 시기는 아니지만, 17세기 위대한 철학이 도래에 꼭 필요한 예비 단계였다. 우선 르네상스 운동은 지성을 옥죄는 덮개가 되어버린 엄격한 스콜라 철학의 체계를 무너뜨렸다. 다음으로 르네상스 운동은 플라톤 연구를 부흥시킴으로써 적어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서 선택할 경우에 필요한 수준만큼 독자적인 사유를 가능하게 했다. 이런 두 가지 점에서 르네상스 운동은 신플라톤주의자와 아랍의 주석가가 갖다 붙인 허황된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원전을 통해 직접 얻는 진정한 지식을 증가시켰다. 지적 활동은 예정된 정통 신앙의 보존에 지향을 두면서 수도원에 틀어박힌 채 빠져드는 명상이 아니라, 기쁨에 한 사회적 모험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장려한 점은 더욱 중요했다.
p650 르네상스는 대중의 지지를 얻은 운동은 아니었다. 소수 학자와 예술가들이 참여한 운동으로서 자유사상을 지지한 후원자들, 특히 메디치 가문과 인문주의에 경도된 교황이 장려한 지적 흐름에 속했다. 그러나 어쩌면 이 후원자들 때문에 르네상스 운동이 크게 성공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 25. 대중이 아닌 소수의 자본주의 후원자들 덕분에 르네상스의 꽃이 피어나게 되었다. 당시의 다수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다수의 사람들은 아직도 서양의 문화가 꽃피운 때를 르네상스시대라고 평가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소수의 리더에 의해 사회가 크게 도약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그 소수의 리더를 따라가는 경향이 짙다.
p653 도덕적 영역 바깥에서 보면 르네상스 운동은 여러 면에서 탁원한 장점이 있다. 건축, 회화, 시 분야에서 르네상스 운동은 명성을 유지했는데,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같은 위대한 인물을 배출했다. 르네상스 운동은 교육받은 지식인을 중세 문화의 편협성에서 해방시켰으며, 여전히 고대 숭배의 노예 상황에 놓인 학자들로 하여금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뿐만 아니라 권위가 논박되기도 한다는 점을 의식하게 했다. 그리스 세계에 대한 지식의 부흥을 이끈 르네상스 운동은 고대 그리스의 업적과 성취에 맞서 다시 경쟁하는 정신적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천재들은 제각기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 이후 맛보기 어려웠던 자유를 누리면서 재능을 꽃피웠다. 르네상스기의 정세는 개인의 발전을 지지했으나 불안정한 상태였다.
p653 안정된 사회 체계는 필요하지만, 여태까지 고안된 모든 안정된 체계는 비범한 예술가와 지성인의 장점을 살리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곤 했다.
☞ 26. 창의성이 발현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틀에 맞춰 안정된 삶을 사는 사람들보다 자신만의 특별한 삶을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발현될 수 있다.
* 제3정 마키아벨리
p654 르네상스기에 중요한 이론 철학자는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지만, 정치철학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린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출현하였다.
▶ 마키아벨리 <군주론>,<로마사 논고>
p662 마키아벨리는 문명인이 비도덕적인 이기주의자가 된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하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오늘날 공화국의 수립을 소망한다면, 그는 대도시에 사는 사람보다 산간벽지에 사는 사람과 협력하여 세우면 더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될 터이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문명인으로서 이미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비도덕적인 이기주의자라면, 그가 할 가장 현명한 행동 노선은 조종하고 조작해야 할 전체 주민에 의해 정해지게 된다.
* 제4장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무어
p664 유럽 북부 여러 나라에서는 르네상스 운동이 이탈리아보다 뒤늦게 시작되어, 곧 종교개혁과 뒤얽혔다.
p664 북부 르네상스는 여러 면에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와 아주 달랐는데, 무정부 상태를 야기하지도 비도덕성을 조장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경건한 신앙심이나 공공의 덕과 결합되었다. 북부 르네상스의 선구자들은 학문연구의 표준을 성서에 적용하거나 불가타성서의 원본보다 더 정확한 원본을 입수하는 데 더욱 흥미를 느꼈다. 또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자들보다 화려한 면은 부족했으나 기초가 튼튼하고 충실했으며, 개인의 학문적 성과를 내세우기보다는 학문을 가능한 한 널리 보급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p664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모어 경, 두 사람은 북부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로 알맞다.
▶ 에라스무스 <우신예찬>, <그리스도교 병사 필독서>,<대화집>
▶ 토머스 모여 <유토피아>
p676 다양성과 변화는 행복한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데, 유토피아에서는 다양성과 변화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점은 바로 계획에 의해 조직된 모든 사회가 지닌 결점인데, 상상 속에서든 현실 속에서든 마찬가지이다.
☞ 27. 행복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볼 필요가 있다. 안정되고 평화롭게 살 것인가. 다양성을 기초로 한 흥미진진한 변화를 통해 즐거운 삶을 살 것 인가. 자신의 성향에 따라서 행복의 기준은 다르다. 자신에게 맞는 행복의 기준을 알고 거기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 제5장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p677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은 둘 다 문명의 발전이 더딘 나라들이 지적인 문명의 발전이 앞선 이탈리아의 지배에 맞서 일으킨 반란이었다.
p678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세 위인이 바로 루터, 칼뱅, 로욜라이다. 세 사람 모두 지적인 면에서 보면 철학 안에서는 중세에 속하는데, 그들 직전에 활동한 이탈리아인들이나 에라스무스나 모어 같은 사람들과는 대조를 이룬다. 종교개혁이 개시된 다음 이어진 세계는 철학의 관점에서는 불모의 시대이다.
* 제6장 과학의 발흥
p681 근대와 근대 이전 시대의 차이는 17세기 과학의 눈부신 발전에서 비롯된다.
p681 과학에 도입된 새로운 개념은 근대 철학에 광범위하면서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근대 철학의 정초자로 평가받는 데카르트는 바로 17세기 과학을 창안한 과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p682 위대한 과학자 네 사람,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은 과학을 창조한 뛰어난 인물들이다. 이들 가운데 코페르니쿠스는 16세기에 살았으나 당대에 미친 영향력은 전무했다.
p.695 과학의 발전이 초래한 다른 결과는 인간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일이다. 중세의 세계관에 따르면 지구는 하늘의 중심이며, 만물은 인간과 관련된 특정한 목적을 가졌다. 뉴턴의 세계관에서 지구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앟는 작은 행성에 불과하며, 천문학적 거리는 너무나 고아대해서 지구는 상대적으로 핀 끝만큼 작아 보였다. 거대한 우주 체계가 전부 핀 끝 위의 작은 인간을 휘해 계획되었다는 생각은 그럴듯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과학의 일부가 되어버릴 정도로 친숙한 목적 개념은 과학적 탐구 절차에서 제거되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하늘이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을지도 모르지만, 천문학적인 계산을 할 때 종교적 믿음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세계에는 목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과학적 설명을 할 때는 목적 개념이 더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p698 공간과 시간을 시공간으로 통합한 상대성 개념은 갈리레오나 뉴턴의 연구 결과로 탄생한 근대적 우주관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렸다.
☞ 28. 이는 더 이상 이분법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공간을 통합한 우주관이 바로 이 시대의 새로운 세계관이다.
* 제7장 프란시스 베이컨
p.699 베이컨 1561-1626의 철학에 불충분한 면이 많다고 해도, 베이컨은 근대 귀납법의 창시자요, 과학적 탐구 절차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려 노력한 선구자로서 영원히 기억할 만하다.
p703 베이컨의 귀납적 방법은 가설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한 결점을 안고 있다. 그는 자료들을 순서대로 배열하기만 하면 올바른 가설이 명백하게 세워진다는 희망을 품었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p703 과학 연구 분야에서 연역법은 베이컨의 생각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
* 제8장 홉스의 리바이어던
p705 홉스는 대륙 철학의 결점도, 영국 경험론으 결점도 지니지 않았다. 홉스를 예외로 하면 경험론자이면서 수학을 강조한 철학자는 우리 세대에서나 발견된다, 이러한 면에서 홉스 철학의 장점은 실로 대단하다. 그런데 그에게는 일류 철학자의 지위에 오르기 힘든 심각한 결점이 있었다. 그는 난해하거나 미묘한 문제를 다루게 되면 참을성이 부족해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는 방식으로 과격하게 해결하는 성향이 짙었다. 문제 해결 방식은 논리적이었지만 다루기 곤란한 사실을 여럿 생략해서 불완전했다. 그는 원기 왕성하지만 세련된 기교가 부족한 학자로서, 예리한 쌍날칼이 아니라 무단 전투용 도끼를 휘두른다. 그렇지만 그가 제안한 국가론은 주의 깊게 고찰해볼 만한데, 실상은 이전 어떤 이론보다, 심지어 마키아벨리의 이론보다 더 근대적이다.
▶ 홉스 <리바이어던>
p.717 홉스의 정치사상의 장점은 이전 정치 이론가들과 대조해 보면 대부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미신적 요소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서 탁한 시기에 아담과 이브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그는 명료하고 논리적인 철학자이다. 그의 윤리학은 옳든 그르든 간에 완벽하게 이해되며 진의가 분명치 않는 모호한 개념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지성 능력이 훨씬 모자란 마키아벨리를 제외하면, 홉스는 근대 정치이론을 세운 명실상부한 저술가이다. 그가 틀린 주장을 했다면 지나친 단순화 때문이지, 사유의 기초가 실제와 동떨어져 환상에 빠져버렸기 때문은 아니다. 그래서 홉스는 여전히 논박해볼 만한 이론가이다.
* 제9장 데카르트
p719 르네 데카르트 1596-1650는 흔히 근대 철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데, 내 생각에도 옮은 평가이다. 그는 고도의 철학적 능력을 갖춘 최초의 인물로서, 그의 철학관은 새로 등장한 물리학과 천문학에서 깊은 영향을 받는다. 스콜라 철학의 잔재가 어느 정도 보이기는 해도, 데카르트는 선대 철학자들이 닦아 놓은 기초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완전한 철학 체계를 새롭게 구성하려 노력했다. 새로운 철학 체계의 구성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일어난 적이 없던 일로, 과학의 진보로 생겨난 새로운 자기 확신의 표시이다. 그의 철학 저술에는 플라톤 이후 저명한 철학자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신선한 면이 드러난다. 중간에 등장한 철학자들은 모두 철학자라는 직업에 종사한, 전문능력을 찾춘 우수한 교사들이었을 따름이다. 데카르트는 교사가 아니라 찾아낸 진리를 전달하려는 열망을 품은 발견자이자 지적인 탐험가로서 저술에 임했다. 그의 문체는 쉬우면서 현학적인 티가 나지 않아서, 학생보다 오히려 세계의 지성인에게 말을 건다. 더구나 문체가 유별나게 탁월하다. 근대 철학의 선구자가 격찬을 받아 마땅한 문학적 감각을 소유했으니 대단한 행운이다. 뒤를 이은 후계자들로 유럽 대륙에서나 영국에서나 칸트에 이르기까지, 작업상의 굴레에서 벗어난 데카르트 철학의 특성을 이어받는데, 그들 가운데 몇몇은 문체의 유려한 면의 활용할 줄 알았다.
☞ 29. 나는 사실 기존의 이론들을 수용하기에 바쁘다. 그 이론들에 문제제기를 하고 나만의 색깔이 있는 이론을 정립하여 새롭게 제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그 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기존 이론들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그 바탕 위에서 자신만의 견해를 피력할 힘이 생길 것이다. 특히나 데카르트처럼 사실에 대한 단순한 전달이 아닌 열망을 품은 발견자이자 지적인 탐험가의 마인드로 문학적이면서도 쉬운 문체로 책을 써서 많은 대중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내는 내공을 기르기란 쉽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작가가 지녀할 요소로 생각된다.
▶ 데카르트 <방법서설>, <성찰>
p727 데카르트 이후 대부분의 철하자는 인식론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대체로 데카르트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주장은 물질보다 정신을, 타인의 정신보다 나의 정신을(나에 대해) 더 확실한 존재로 만들었다. 따라서 데카르트에서 파생된 철학에는 주관주의 경향과 물질은 오직 정신에 알려진 대상들에서 추론을 통해 알려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 제10장 스피노자
p733 스피노자 1632-1677는 위대한 철학자들 가운데서 고결한 품성을 갖춘 매력 넘치는 인물이다. 지적인 면에서 그를 능가한 철학자가 몇 사람 있지만, 윤리적인 면에서는 아무도 따르지 못할 최고 수준에 이른 철학자이다.
p739 스피노자의 철학적 견해는 공포의 전횡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자유로운 인간은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명상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 스피노자는 이런 지침을 삶 속에서 그대로 실천했다. 그는 임종하는 날에도 끝까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 채 <파이돈>의 소크라테스처럼 흥분하지 않았으며, 여느 날처럼 흥미로운 문제에 골몰하며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여느 철학자들과 달리, 그는 자신이 내놓은 학설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실천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아주 격분했을 때조차 윤리학에서 비난하던 흥분과 분노에 휘둘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논쟁할 때에도 점잖고 합리적인 태도로 일관했으며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설득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 30.‘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한 철학자라는 지식이 스피노자에 대한 전부였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사상과 삶을 하나로 통합하여 살았던 그는 사유와 실천이 하나 된 진정한 철학자였다고 생각된다. 많은 철학자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 깨달음과 자신의 현실에서 삶을 분리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갈등과 혼란이 생기는 것이리라. 스피노자처럼 자신의 깨달음을 삶 속으로 끌어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다. 내가 추구해야할 바이기도 하다.
p746 스피노자의 견해에 따르면 당신에게 닥친 불행한 사건들이 실재하는 일이든, 태초부터 끝까지 이어진 원인들의 연쇄과정의 일부이든, 당신은 불행한 사건들이 당신에게만 불행일 뿐 우주의 차원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당신에게 닥친 불행이란 궁극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일시적인 부조화일 따름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수용하기 힘든 까닭은 개별 사건이 그 자체로 존재하며 전체로 흡수되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잔인한 행동 하나하나는 영원히 우주의 일부가 되며, 나중에 일어난 일이 잔인한 행동을 악이 아닌 선으로 만들지도 못하고, 잔인한 행동을 일부로 포함한 전체에 완전성을 부여해서도 안 된다.
p746 그런데도 당신의 운명이 인류의 범상한 운명보다 더 비참한(혹은 당신에게 비참하게 보이는) 역경을 참고 견디어낼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우주 전체를 생각하거나 아니면 당신의 슬픔보다 더 큰 문제를 생각하라는 스피노자의 원리는 유익한 교훈이다. 온갖 악과 고통으로 가득한 인생을 우주적 차원의 생명에 속한 극히 작은 일부로 생각하면,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사색은 하나의 종교를 구성하기에는 불충분할지 몰라도, 고달픈 세상에서 제정신 차리고 사는 데 힘을 보태며, 아득한 절망의 늪에 빠져 무기력해진 경우에는 무력감을 치유할 해독제가 되기도 한다.
☞ 31.스피노자는 어찌 보면 동양철학의 禪사상에 가까운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삶은 우주론적인 큰 틀에서 놓고 볼 때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행복도 불행도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우주의 법칙일 뿐이다. 인생만사 새옹지마.ㅋ
* 제11장 라이프니츠
p747 라이프니츠 1646-1716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최고 수준의 지성 능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되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칭찬할 만하지 않다. 사실 그는 유망한 피고용인의 특징이 될 만한 덕을 고루 갖춘,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절제하는 생활이 몸에 배어 재정 관리도 깔끔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의 삶에서 두드러진, 고상한 철학자의 덕은 갖추지 못했다. 라이프니츠가 제안한 최고 수준의 사상은 인기를 얻기 어려운 내용이어서 그 사상이 담긴 저술을 출판하지 않은 채 책상 서랍 속에 묻어두었다. 그는 군주와 여왕의 승인을 받을 만한 저술만을 출판했다.
p757 라이프니츠 철학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여러 가능 세계가 존재한다는 학설이다. 어떤 세계는 논리 법칙과 양립하면 ‘가능하다’. 무한 수의 가능 세계가 존재하는데, 신은 현실 세계를 창조하기 전에 모든 가능 세계에 대해 미리 응시하며 숙고했다. 그런 다음 선한 존재인 신은 가능 세계들 가운데 최선의 세계를 창조하기로 결정하고, 선이 악을 능가해서 최대로 초과한 세계를 최선의 세계라 생각했다. 신은 악이 전혀 없는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을 텐데, 악이 없는 세계는 현실 세계만큼 선하지 않았으리라. 그 까닭은 어떤 위대한 선은 특정한 악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 32. 악은 선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신이 태초에 이런 구분을 하지 않았다면 인간에게 갈등이란 존재할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선과 악에 대한 구분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어쨌거나 지금은 선과 악이란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살고 있다. 위대한 선에 대한 인식을 하면 상대적으로 관련된 그만큼의 크기의 악을 동시적으로 떠올린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인식 자체를 하지 않는다면 악이 생기지도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p764 라이프니츠는 단조로우며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하는 저술가여서, 그의 영향으로 독일 철학은 현학적이고 무미건조해졌다.
p764 그렇지만 라이프니츠는 여전히 위대한 인물이며, 그의 위대성은 이전 시대보다 오늘날에 와서 더욱 두드러진다. 수학자나 미적분학의 발명자로서 누리는 명성과는 별개로, 그는 수리 논리학의 개척자로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던 중요한 의미를 통찰했다. 또 그의 철학에서 세워진 가설들은 비록 공상적이긴 해도 매우 명료하고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가 가정한 단자들도 창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어려워도, 여전히 지각 현상을 검토하는 가능한 방식을 암시해주어 쓸모가 있다. 내가 단자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상은 두 가지 공간이 존재한다는 주장인데. 하나는 주관적 공간으로서 단자 각각의 지각들로 나타나며, 다른 하나는 객관적 공간으로서 다양한 단자들의 관점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내 생각에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상은 지각과 물ㄹ학을 관련시키는 경우 여전히 유용하다.
☞ 33. 어찌 보면 라이프니츠는 그 시대에 적합한 인물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가 좀 더 나중의 시대에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의 위대성이 더욱 빛을 발했을 것이다. 사람의 재능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발휘되는 정도가 다르다.
* 제12장 철학적 자유주의
p766 나는 양 극단 사이에 진실이 놓여 있다고 믿는다. 여느 경우처럼 사상과 실생활은 대등한 수준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느 쪽이 원인이고 어느 쪽이 결과냐는 질문은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는 질문만큼이나 어리석고 쓸데없는 질문이다. 나는 이런 문제를 추상적으로 논의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중요한 문제, 즉 자유주의 발전과 17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자유주의 문파의 역사를 고찰해보려 한다.
☞ 34. 양 극단이란 동양철학에서의 음과 양을 뜻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음과 양이라는 것은 동시에 존재하면서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수 없는 그냥 그 자체이다. 인간의 몸에서 삶까지의 모든 문제가 이 음양의 동시적 존재로 파악될 수 있다. 음이 먼저냐 양이 먼저냐의 질문 또한 달과 달걀의 문제와 같다.
* 제13장 로크의 인식론
p774 존 로크 1632-1704는 역사상 일어난 혁명 가운데 가장 온건했으며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둔 1688년 명예혁명의 주창자이다. 명예혁명이 겨냥한 목표들은 가장 온건했지만 대부분 착오 없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이후 영국에서 더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 로크 <인간 오성론>,<관용에 대한 서한>,<정부론>
p788 로크의 논증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오로지 쾌락을 요구한다. 하지만 사실상 많은 사람들은 쾌락 자체가 아니라 가까운 쾌락을 욕구한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쾌락 자체를 욕구하기 때문에 악하다는 학설과 모순을 일으킨다.” 철학자들은 대부분 각각의 윤리 체계 안에서 먼저 거짓인 학설을 단언하고, 그 학설이 거짓임을 보여주는 행동은 악하지만 문제의 학설이 참이었다면 악한 행동은 불가능했으리라고 주장한다. 로크는 이러한 유형에 속하는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 제14장 로크의 정치철학
p815 로크의 정치철학은 산업혁명 때까지는 전반적으로 적절하고 유용한 사사잉었으나, 이후 점점 중요한 문제들에 대처해나갈 수 없게 되었다.
p815 우리 시대는 조직이 지배하며, 이 시대의 갈등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분리된 개인들이 아니라 조직들 간의 갈등이다. 로크가 말한 대로 자연 상태는 국가와 국가 사이에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가 정부가 약속한 이점을 누리려면, 먼저 국가들 간의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어야 한다. 일단 국제 정부가 수립되고 나면 로크 정치철학의 많은 부분을 다시 적용할 가능성이 있겠지만, 사유재산과 관련된 문제를 처리하지는 못할 것이다.
☞ 35. 러셀이 말한 조직이 지배하는 우리 시대는 지금의 나의 시대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예전엔 조직이란 많은 개인들이 모여서 이룬 단체를 의미했다면 이제는 개인도 하나의 조직이 된다. 시대의 흐름은 조직에 대한 범위를 더욱 넓혀놓았다.
* 제15장 로크의 영향
p822 현대인의 안목으로 보자면 로크와 제자들이 제시한 정치적 견해에 들어 있는 크나큰 결점은 재산을 지나치게 숭배했다는 점이다.
p823 대체로 로크의 사상에서 비롯되어 계몽된 자기이익의 추구를 가르친 학파는 영웅주의와 자기희생의 이름으로 인간의 행복을 경시했던 학파들보다 인간의 행복을 더 증진시키고 비참한 고통을 경감시켰다. 나는 초기 산업사회의 참상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참상의 정도는 산업사회 체계 안에서 차츰 줄어들었다. 이 반대편에 러시아 농노제, 전쟁의 사아성과 전쟁의 여파로 생긴 공포와 증오, 그리고 이미 생명력을 잃은 구식 체계를 존속시키려는 자들이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개화 반대론이 버티고 있다.
*제16장 버클리
p824 버클리 1685-1753는 철학사에서 물질의 존재를 부정했다고 알려진 중요한 인물로서 재치 있고 교묘한 논증들을 통해 이 점을 지지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물체는 오로지 지각됨으로써 존재한다.
p824 실제로는 신의 지각으로 인해 나무, 바위, 돌 들이 상식에 따라 가정된 것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이는 신의 존재를 입증한 설득력 있는 논증이다.
▶ 버클리 <신 시각 이론>,<힐라스와 필로누스의 대화>
p837 어떤 사건들은 정신적인 것도 물질적인 것도 아닐 수 있으며, 다른 사건들은 정신적인 것이면서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다. 오로지 경험에 의거해 상세하게 고찰해보아야만 이 문제에 대한 어떤 결정이든 가능할 것이다.
☞ 36. 이것은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오로지 자신이 그 사람을 경험한 것을 토대로 이루어져야지 직접 겪어 보기 전에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들은 자신의 스펙트럼으로만 대상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의 스펙트럼으로 그 사람을 보게 될지언정 다른 사람의 것으로 나의 인식을 대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제17장 흄
p838 흄1711~1776은 매우 중요한 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로크와 버클리의 경험주의 철학을 발전시켜 논리적 결론을 이끌어냈고, 일관성을 보여줌으로써 경험주의 철학이 대단한 사상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어떤 의미에서 경험주의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기 때문에 흄이 제시한 방향을 따라 앞으로 나가기는 불가능하다.
▶ 흄 <인간 본성론>
p839 흄은 직접 쓴 사망 기사, 다시 말하면 ‘장례식사’에서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온순한 사람으로, 기분을 조절할 줄 알 뿐만 아니라 솔직하고 사교적이며 쾌활한 유머도 구사하고 누구나 친근감을 느낄 만큼 정감이 풍부하다. 다만 적대감을 견디기 힘들어하기는 하나, 모든 정념을 기막히게 조절할 줄 아는 온건한 성품을 갖추었다. 심지어 나를 지배하던 문학적인 명성을 향한 갈망조차, 실망하는 일이 잦았는데도 온화한 기질을 까다로운 성격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이러한 묘사는 그에 대해 알려진 모든 일에 비추어 사실로 입증된다.
☞ 37. 자신이 쓴 장례식사와 그가 남긴 발자취를 보고 사람들이 그 장례식사에 동의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마무리를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살고 못살고의 가치판단은 무의미하다. 적어도 자신에 대한 주체파악을 하고 생을 마무리했다는 것이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나의 장례식사를 써봐야겠다.
p841 버클리가 물리학에서 실체의 개념을 추방했듯, 흄은 심리학에서 실체란 개념을 몰아냈다.
* 제2부 루소에서 현대까지 From Rousseau to the Present Day
* 제18장 낭만주의 운동
p858 18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예술, 문화, 철학, 심지어 정치학도 넓은 의미의 낭만주의 운동의 특징인 감정이나 격정에서 영향을 받았다.
p858 초기 낭만주의 운동은 철학과 아무 관련도 없었으나, 오래지 않아 철학과 연결되었다. 낭만주의 운동은 또한 루소에 의해 처음부터 정치학과 이어져 있었다.
p861 낭만주의 운동 전체의 특징은 한마디로 공리적 기준을 미적 기준으로 대체한 것이다. 지렁이는 유용하지만 아름답지 않고, 호랑이는 아름답지만 유용하지 않다. 다윈은(낭만적이지 않았던)은 지렁이를 보며 감탄했으나, 블레이크는 호랑이를 찬미했다. 낭만주의자들의 도덕은 일차적으로 미적인 동기를 포함한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의 특성을 구분해내려면 미적 동기의 가치와 의의뿐만 아니라, 그들의 미적 감각을 선대 낭만주의자들의 감각과 달라지게 만든 취미의 변화를 설명해야 한다. 이에 대한 가장 명백한 사례 가운데 하나는 낭만주의자들이 고딕 건축을 선호한 점이다. 또 다른 사례는 풍경을 좋아하는 취미이다.
☞ 38. 서양의 낭만주의자 특성을 구분하는 근거를 우리나라에 적용시켜보면 나는 한옥과 풍경을 좋아하니 낭만주의자인가? 낭만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1년동안 써온 낭만이라는 요소가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인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사람들에게 나의 낭만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도 없다. 나조차도 모호한 상태.
p868 낭만주의 운동의 본질은 인간의 개성을 사회적 규약과 도덕성의 족쇄에서 자유롭게 하려는 목표에 있다.
p869 낭만주의 운동은 무법적인 새로운 자아를 자극하고 고무함으로써 사회적 협조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그 후예들은 무정부주의나 전제정치 가운데 하나를 대안으로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본위 의식은 우선 사람들로 하여금 타인들에게 부모의 부드러운 애정을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타인들 역시 자신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자 분개했으며, 부드러운 애정에 대한 좌절된 욕망은 증오와 폭력으로 변해버렸다. 인간은 고립된 고독한 동물이 아니며, 사회생활을 통해 살아하는 한에서 자아실현이 윤리학의 최고 원리일 수는 없다.
☞ 39. 낭만주의는 인간의 개성을 중시한 나머지 사회와의 융합이 힘들어지게 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개성의 표출이 현실을 딛고 현실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실을 부정하거나 초월하려는 쪽으로 흘러 본인도 사회도 모두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럼 나의 낭만은 나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도구이지만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속에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 제19장 루소
p870 루소 1712-1778는 18세기 프랑스어의 의미에 따르면 계몽철학자였으나 오늘날 말하는 의미의 철학자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문학, 취미, 예법. 정차뿐만 아니라 철학에도 무시하지 못할 만틈 강한 영향을 주었다. 루소가 사상가로서 지닌 장점에 어떤 의견을 갖든, 그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 중요한 인물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주로 루소가 가슴, 당시의 용어로는 감수성에 호소한 데서 기안했다. 그는 낭만주의 운동의 시조이자 인간의 감정에서 인간성이 위배되는 사실을 추론한 사상 체계의 창시자이며, 전통적인 절대 군주제에 대립하는 유사 민주주의적 독재정치를 옹호한 정치철학을 고안한 사상가였다.
p870-871 현대에 와서 히틀러는 루소의 후예로, 루스벨트와 처칠은 로크의 후예로 평가한다.
p871 루소의 전기는 <고백록>에서 아주 상세하게, 그것도 비굴하게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솔직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는 자신을 대 죄인으로 비하하는 일을 즐겼으며, 때로는 이 점을 과정하기도 했다. 그가 일상의 덕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는 증거는 매우 많다. 그렇지만 그는 기본적인 행동에 전혀 방해를 주지 않는, 가장 친한 친구들을 향한 따뜻한 가슴이 있다고 언제나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리곤 했다. 이제 그의 사상과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그이 생애를 알아보자.
☞ 40. 러셀의 철학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는 방법이 참 재미있다. 이런 저술방식이 서양철학사라는 긴호흡의 책을 좀 더 쉽게 가까이할 수 있는 매력적 요소로 다가온다.
▶ 루소 <신 엘로이즈>,<사회계약론>,<에밀>
p876 '자연의 원칙‘에 따른 교육론에 해당하는 <에밀>은 「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을 포함하지 않았다면 당국에서 무해한 저술로 간주했을지도 모른다.
* 제20장 칸트
p893 일반적으로 칸트를 근대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생각한다. 나 자신은 이러한 평가를 동의하지 않지만, 칸트 철학이 지닌 탁월한 의의와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일이겠다.
☞ 41. 러셀이 철학자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여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부럽다. 자신의 확고한 철학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당당함이라고 생각된다.
p895 칸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순수이성비판>이다. 이 책의 목적은 우리의 지식이 경험을 초월할 수 없지만 일부는 선험적이어서 경험에서 도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 지식의 선험적인 부분은 논리뿐만 아니라 논리의 한계 내의 귀납법에 의해 도출되거나 논리적으로 연역될 수 없는 것도 많이 포함한다.
p902 칸트의 공간․시간 이론을 분명하게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은데, 그의 이론 자체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 제21장 19세기 사상의 흐름
p921 새로운 사고방식은 이미 사회․정치적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대변동을 일으켰으며, 물론 앞으로 그 이상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거의 무한한 힘의 전망이 도취되어 약자에 대해서는 냉담해진 사람들에게 대처하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철학의 구성이 우리 시대가 부여받은 가장 절박한 과제이다.
p.922 인간관계를 다루면서도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현대에 어울리는 윤리 체계를 세우려면,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사람들 상호간의 권력 행사에 바람직한 한계를 긋는 일도 필요불가결하다.
☞ 42. 이제 현대의 철학은 인간관계를 근본으로 다루어야 그 다음의 문제를 짚어갈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개인은 전체의 일부분으로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모여 전체를 이룰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 제22장 헤겔
p923 헤겔 1770-1831은 칸트와 더불어 시작된 독일 철학 사조의 정점에 위치한 철학자이다. 헤켈은 자주 칸트를 비판했지만, 칸트가 없었던들 자신의 철학 체계를 결코 세울 수 없었을 터이다. 오늘날 권위를 잃기는 했어도, 헤겔의 영향력은 독일에만 국한되지 않았으나 주로 독일 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로 이어졌다.
p923 내가 믿는 바에 따르면 설령 헤겔의 학설들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거짓이라고 해도, 그는 역사적인 면에서 중요할 분만 아니라 다른 면에서는 정합성과 포괄성이 떨어지는 가장 대표적인 철학 체계를 세운 자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p924 헤겔 철학은 난해하며 위대한 철학자들 전부를 통틀어 가장 이해하기 힘든 철학이다.
p942 헤겔은 만약 어떤 사물을 다른 모든 사물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지식을 갖게 되면, 그 사물의 모든 속성을 논리에 의해 추론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명백한 오류인데, 이러한 오류에서 헤겔 체계의 당당해 보이는 전체 구조가 형성된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한 진실, 즉 논리가 형편없을수록 거기서 생겨난 귀결은 더욱 흥미롭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 제23장 바이런
p943 우리는 최근 일어난 사건의 추이에 따라 19세기의 비범한 인물들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는데, 어떤 사람은 이전보다 덜 중요한 위치를, 또 어떤 사람은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생각보다 더 큰 가치와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받아야 할 인물들 가운데 바이런 1788-1824은 단연 으뜸 자리를 차지할 만하다.
☞ 43. 철학자들에 대한 평가는 시대별로 다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시 시대의 분위기와 기득권층에 따라 그들의 평가에 상이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현재의 관점으로 그들의 의의를 재조명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는 역사가 단지 과거의 것으로 사장되지 않을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p.943 바이런의 감수성과 인생관은 외국에 전해져 발전하고 변형되면서 널리 퍼져나가, 중요한 대사건을 발생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p945 바이런의 철학은 역사의 각 단계에 맞추어 지성인과 예술가들이 사유하고 느끼는 방식에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p950 바이런은 온화한 성격이 아니라 폭풍처럼 난폭한 성향의 인물이었다. 그가 루소에 대해 한 말은 바로 바이런 자신에게 적용해도 도니다. 그는 루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p951 바이런의 낭만주의가 단지 절반만 진지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p951 세상은 바이런을 단순한 존재라고 우기며 우주적 절망 속에 빠진 정신 상태와 인류에 대한 공공연한 경멸적 태도를 생략하고는 한다. 그는 다른 저명한 여러 인물처럼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 인물로서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제24장 쇼펜하우어
p.952 쇼펜하우어는 19,20세기에 유학한 철학의 큰 특징인 의지를 강조하고 철학적으로 부각시켰는데, 그에게 의지는 형이상학의 근본이자만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악이다. 이러한 대비는 염세주의자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에 속한다.
p959-960 쇼펜하우어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두 가지로 압축하면, 하나는 염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의지가 지식보다 우월하다는 학설이다. 그의 염세주의 사상은 모든 악이 설명되어 사라질 수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지 않고도 인간이 철학에 몰두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것은 염세주의가 해독제로서 유용하다는 뜻이다.
p960 의지가 우월하다는 학설은 염세주의보다 더욱 중요하다.
☞ 44. 인간에게 ‘의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 때문에 인간은 변화를 추구하고 종내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제25장 니체
p961 니체는 당연히 자신을 쇼펜하우어의 후계자로 여기지만, 여러 면에서 특히 학설의 일관성과 정합성의 측면에서 쇼펜하우어보다 뛰어났다.
p961 니체는 대학 교수였으나 전통에 얽매여 학문에만 몰두한 철학자가 아니라 문학적 성향이 짙은 철학자였다.
p961 우선 윤리학의 측면에서 중요한 인물이며, 다음으로 예리한 역사 비평가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p964 니체는 자기 생각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거나 틀에 박힌 독자들의 비위를 상하게 할 만한 견해로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그는 자신의 표현 방식을 일상적으로 쓰이는 의미의 ‘선’과 ‘악’이란 말에 적용하여, 오히려 ‘악’이 ‘선’보다 낫다고 말한다.
☞ 45. 니체는 충격 요법을 쓰는 듯하다. 사람들은 충격을 통한 강렬한 자기 인식이 없이는 변화하기 힘들다.
p966 니체의 윤리학이 응용된 두 가지 경우는 주목할 만한데, 하나는 여성을 경멸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교를 지독하게 비판한 경우이다.
p976 내가 니체를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그가 고통에 대해 숙고하기를 좋아하고, 기만을 의무로 세우며, 그가 찬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복자들로서 평범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영리함을 명예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니체의 철학에 맞선, 불쾌하지만 체계 내적인 일관성을 갖춘 윤리에 맞선 최종적인 반대 논증은, 그의 윤리가 사실에 호소하지 않고, 감정에 호소한다는 데 모인다고 생각한다. 니체는 보편적 사랑을 경멸하지만, 나는 보편적 사랑이야말로 세계에 대해 바라는 모든 일을 추진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니체의 추종자들이 전성기를 누리는 상황이지만, 이러한 현상은 빨리 종말을 맞게 되리라고 희망을 품어도 좋으리라.
☞ 46. 과거는 소수의 영웅을 위한 시대였다면 현대는 보편적인 영웅을 위한 시대이다. 그러므로 러셀의 말처럼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스스로가 영웅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 제26장 공리주의자들
p978 벤담의 철학은 두 가지 원리에 근거하는데, 하나는 ‘연합원리’이고 다른 하나는 ‘최대행복원리’이다.
p981 제임스 밀은 벤담처럼 쾌락이 유일한 선이고 고통은 유일한 악이라 보았다.
* 제27장 카를 마르크스
p987 나는 마르크스를 한 사람의 철학자로서 그가 다른 철학자들에게 미친 영향만을 다루려 한다. 이 점에서도 그는 분류하기 어렵다. 마르크스는 어떤 면에서 호지스킨처럼 철학적 급진파의 영양으로 성장한 철학자로서 급진파의 합리적 성향과 낭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이어받는다. 다른 면에서 보면, 그는 유물론을 부화시킨 학자로서 유물론을 새롭게 해석해서 인간의 역사와 새로운 방식으로 관련시킨다. 한편 마르크스는 위대한 체계를 구성한 마지막 철학자이자 헤겔의 후계자로서 헤겔처럼 인간서의 진화를 종합하는 이성의 정칙定則이 있다고 있었다.
p989 나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과거 철학자들이 말한 지식 추구의 과정은 객체가 불변한 상태로 존재하고 인식하는 자가 모든 면에서 적응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주체와 객체, 인식하는 자와 인식된 사물은 양측이 상호 적응하는 과정 속에 있다. 그가 이것을 ‘변증법적’과정이라 부른 까닭은 과정이 결코 완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 47.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주의가 예전에 비해 지금 초라하게 후퇴하게 된 이유 자체가 그가 주장한 ‘변증법적’ 과정 자체가 불완정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이 완벽한 실천원리라고 생가하면 불변의 원리로 인식한 것에 있던 것 같다. 하지만 불변하는 것이 없다. 주체와 객체 모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의 과정에 적응하면서 사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p989 내가 아는 한 마르크스는 실천의 관점에서 ‘진리’ 개념을 비판한 첫 철학자이다.
p994 순수하게 철학자로 고찰하면 마르크스에게는 심각한 결점이 있다. 그는 지나치게 실천에 치우치고 당대 문제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휘둘리고 말았다. 그의 시야는 지구라는 이 행성에 그것도 지구 안의 인간에게 국한되었다. 코페르니쿠스 이후, 인간은 이전에 스스로 부당하게 부여했던 중요한 자리를 우주 안에서 더는 차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 48. 이제는 인간에게 국한 되어 있는 시선을 인간을 둘러싼 주위 환경에 돌리고 그것에도 애정을 쏟아야 할 때이다. 더 이상 인간만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오만은 통하지 않는다. 인간은 사랑받을 우주적 존재 중의 일부일 뿐이다. 이제는 부분이 아닌 전체적이고 우주적인 관점에서 삶을 바라봐야 한다.
* 제28장 베르그송
p1008 베르그송은 생명을 포탄이 터지면서 파편들이 다시 포탄들이 되어 파열되는 모양에 비유한다.
p1008 베르그송이 이 세상에 실현되기를 소망한 선은 활동을 위한 활동이다.
* 제29장 윌리엄 제임스
p1009 윌리엄 제임스는 두 가지 측면에서 철학에 관심을 가졌는데, 하나는 과학적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 관심이었다.
* 제30장 존 듀이
p1019 존듀이는 1859년에 대어났으며 일반적으로 미국을 이끄는 살아있는 철학자로서 인정받는 인물이다. 나는 이러한 평가에 두말없이 동의한다. 그는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교육, 미학, 정치 이론을 다루는 연구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고매한 인격자로서 견해는 자유롭고 대인관계에서는 관대하고 친절하며 지치지 않고 연구하는 인물이다. 나는 그가 제시한 많은 견해에 거의 완전히 동의하는 편이다. 듀이의 친절을 몸소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존경하고 경애하기 때문에 완전히 동의하기를 바라야 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가장 독특한 학설, 말하자면 논리학고 인식론의 근본 개념으로서 ‘진리를 ’탐구‘로 대체한 학설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 49. 개인에 대한 매력 때문에 그 개인의 모든 것을 다 수용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훌륭한 점을 인정해주되, 전적으로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생각이 다른 측면을 확실하게 짚을 수 있는 러셀과 같은 용기가 필요하다. 나와 타인의 다름에 대한 차이를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p1027 듀이와 나의 주된 차이는, 듀이가 믿음을 결과에 의해 판단하는 반면 나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관련된 원인에 의해 믿음을 판단한다는 점이다. 나는 믿음이 그것의 원인과 특정한(때로는 아주 복잡한) 관계를 맺는다면, 이러한 믿음은 ‘참’다시 말하면 우리가 믿음을 형성할 수 있는 만큼 거의 ‘참’이라고 생각했다. 듀이박사는 믿음이 특정한 결과를 낸다면 ‘보장된 주장 가능성’을 지닌다고 주장하며, 그는 ‘진리’를 ‘보장된 주장 가능성’으로 대체한다. 이러한 일탈은 세계관의 차이와 관련이 있다.
p1027 내가 보기에 인간의 능력에 대한 미음과 ‘엄격한 사실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기계 생산에 의해 생겨난 희망과 인간의 물리적 환경을 과학의 힘을 빌려 조작할 수 있다는 기대와 관계가 있는 듯하다.
p1028 듀이 박사의 세계는 내가 보기에 인간의 상상의 산물로 채운 세계인 듯하다. 그러니까 천문학이 다루는 우주는 물론 존재한다고 인정되기는 하지만, 대개는 무시된다는 말이다. 듀이의 철학은 니체의 철학처럼 개인의 힘을 강조한 철학은 아니지만 힘의 철학으로서 공동체의 힘을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여전히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한계보다는 자연의 힘을 통제하는 인간의 지배력에 더 깊은 인상을 받은 사람들에게, 도구주의 철학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요인도 바로 사회적 힘이다.
☞ 50. 공동체의 힘을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그의 철학적 논리 때문에 현대의 초기 교육사에서 그가 미치는 영향은 지대했다. 하지만 다양성과 개성을 인정해야 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그의 교육철학은 더 이상 절대적 대안이 될 수 없다.
* 논리 분석철학
p.1038 광신 행위들이 뒤죽박죽 뒤엉켜 갈등을 빚는 혼란한 상태에서 통일을 이루어내는 소수의 힘들 가운데 하나가 과학적 진실성으로서, 이는 우리의 믿음을 가능한 한 지역적 편견이나 기질적 편견에서 벗어난 객관적인 관찰과 추론에 바탕을 두게 하는 습관을 의미한다. 이러한 덕을 철학에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철학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의 고안은 내가 속한 분석철학 학파의 주요한 장점이다. 객관적인 철학 방법을 실천에 옮기면서 획득한 주의 깊게 진실을 말하는 습관은 인간 활동의 전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으며, 객관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어느 것에서나 광신 행위는 감소하고 공감 능력과 서로 이해하는 능력은 증가하게 될 것이다. 철학이 독단적인 일부 주장을 포기한다고 해서.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 삶에 영감을 불어넣는 일까지 멈추지는 않는다.
<내가 저자라면>
러셀의 <서양철학사>는 역대 철학자의 학설을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의 정치 및 사회적 배경과 아울러 철학사상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려는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시도이다.
이 책은 광범위한 영역의 서양철학사를 고대철학, 가톨릭 철학, 근현대 철학으로 나누어 단 한명의 저자가 서술하고 있다. 철학사를 서술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자는 철학사를 전적으로 해설적으로 서술하면서 이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저 사람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를 제시하는 것이다. 후자는 해설에 어느 정도의 비판을 더해 철학상의 논의가 어떻게 나아갔는가를 제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 책은 후자의 입장에서 철학사를 서술하고 있는데, 이 때 작자는 자신이 수용하고 싶지 않은 사상가이더라도 객관적인 사실을 명확하게 기술하여 그의 사상에 오해가 없도록 하고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가를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작자의 폭넓은 서양철학사에 대한 지식과 그것을 하나로 꿰뚫는 통찰이 겸비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러셀은 비교적 훌륭하게 서양철학사를 서술하는 작자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아마도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러셀이기에 가능했던 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작자는 각각의 철학사상을 논하기 전에 반드시 사상이 등장한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기술하고 있다. 철학이라는 것이 사유의 과정이라고 볼 때 시대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언급을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날 철학의 문제가 느닷없이 무(無)에서 생긴 것이 아니므로 그 근간이 되는 철학이 태동하게 된 시대의 흐름을 아는 것은 필수이다. 특히 서양철학의 근간인 고대철학과 가톨릭철학(중세철학)에 비중을 두고 책을 서술한 것은 마땅하다. 그리고 그리스시대의 철학사상이 이후의 서양철학사상 전반에 적용됨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각각의 철학사상 마다 제시하는 그의 통찰력과 분석력에 감탄한다.
대체로의 철학사를 서술한 책들은 전자의 서술 방법을 이용하여 철학사의 객관적 기술에만 그치고, 독자는 그 사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러셀은 철학사의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철학자의 사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적용을 전제로 한 철학자의 중요한 논제를 제시하면서, 그 논제에 대한 촌철살인 같은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는 점이 매우 참신하다. 이 책은 작자가 강의를 하는 내용을 서술하는 형식을 취고 있다. 그래서 한 철학에 대한 객관적인 기술을 하고 강의하는 사람의 생각을 밝히는 것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학생이 강의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그 철학사상에 대해 강의자가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 지가 더욱 궁금할 것이다. 작자가 의도한 것도 바로 이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철학 사상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철학사상을 통해 철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 한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철학을 했는지를 보여주고, 그것에 대해 작자의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하여, 독자로 하여금 “과연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하는 등의 스스로에게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 비판정신을 기르도록 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러므로 러셀의 서술에 있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내 주장에 대해 책임진다.”라는 뉘앙스를 느낀다.
작자가 독자들의 철학사상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시대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기술한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형식상 아쉬운 점은 해당 철학사상에 대한 역사적 배경 설명이 작자가 대략적으로 제시하려고 노력한 것은 같으나 지나치게 길어지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철학사상에 대한 설명을 하기도 전에 읽는 흐름에서 지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지금 제시된 자료보다 간략하게 전반적 경향의 개요를 제시하는 정도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아니면 구성을 바꿔 예를 들어 고대철학의 부분에서 철학사상가나 그의 사상이 등장할 때 마다 기술했던 역사적 배경을 따로 떼어 앞부분에 고대철학의 흐름 전반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먼저 기술한 후에 철학사상에 대한 내용만을 독립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물론 역사와 철학이 같은 흐름 속에서 함께 숨쉬고 있는 것이지만, 처음 철학을 접하거나 철학이라는 것 자체를 삶과 분리시켜 어려워하는 대중을 위해서는 일단 영역을 나누어 이해를 돕고 나중에 통합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것이다.
내용상 아쉬운 점은 작자가 분석철학의 대가이기 때문인지 제3권 근현대 철학에서 실존철학에 대한 제시가 없었다는 것이다. 헤겔과 마르크스를 다루었다면, 실존철학 경향의 선구자로 19세기에 활동했던 철학자 키르케고르나 포이어바흐에 대한 서술이 함께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양철학사 전반에 대한 객관적 개관을 통해 독자들의 철학적 사유를 돕기 위해 이 책을 썼다면, 자세한 서술은 아니었어도 제21장 19세기 사상의 흐름에 간략한 언급정도는 되어있어야 할 것이다.
☞ 2번째 책읽기를 통한 나의 생각
기존에 나의 철학에 대한 관점은 사유와 사상에 대해 집중되어 역사와 분리해서 생각해왔다. 하지만 철학이 역사와 한줄기의 다른 가지로 두 분야가 통합적으로 인식되어져야 함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서양철학사의 고대철학부분은 그리스문명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한다. 그리스 문명에 지식은 올림푸스신들의 이야기에 국한되어있던 나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었다. 디오니소스나 바쿠스에 대한 지식이 酒神이라는 정도였는데 그들이 오히려 그리스도교 신학의 발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에 덧붙여서 근현대의 학자들이 그리스 종교와 철학 연구 자료에 대한 견해에 반박하거나 수용하여 보편타당한 의견에 근거한 설명임을 입증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읽은 대부분의 철학사의 내용은 사실의 나열이다. 하지만 러셀은 사실의 나열이후에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여 독자로 하여금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철학적 사유를 하게 하는 장치라는 생각이 든다. 러셀은 철학적 사상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호불호의 관점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반박하는 견해를 비친 사상이라고 해도 그것의 존재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고 궁극의 철학적 사유로 가기 위한 과정, 여정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플라톤의 사상이 많은 사상에 영향을 지대하게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에 큰 비중을 두는 것만큼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플라톤의 사상적 단점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독자들이 한 사상에 매몰되지 않도록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주는 면에서 매우 좋은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러셀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야기하면서 그가 영향을 받은 플라톤과 그가 영향을 준 니체까지도 동시에 언급하고 있다. 철학의 한 부분을 다루면서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주고 있어 철학에 대한 문외한이 읽어도(물론 방대한 양에 처음부터 질려버리지만 않는다면) 전체흐름을 파악하는 재미에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저력을 갖고 있다.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서 그런지 책을 읽다보면 러셀의 이야기를 그의 호흡에 맞게 직접 듣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백과사전 두께에도 불구하고 한 호흡으로 함께 따라 책을 읽게 하는 매력이 있는 철학의 깊이를 조금 깊게 느끼고 싶은 교양인을 위한 철학사 책이다.
러셀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설명하기에 앞서 인물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는데, 특히 비유적인 그의 설명은 어려운 사상을 접하기 전에 좀 더 친근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의 삶에 대한 철학과 위트를 볼 수 있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이다. 철학자가 사유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철학자의 기질을 타고났다. 러셀은 사람들 누구나에 있는 철학자적 기질을 이 책을 통해 자극하려고 한다. 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역할도 철학을 바탕으로 “사유하는 교사”가 될 수 있다면 더욱 교사나 학생 모두에게 의미있는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다음주 읽을 책으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과 루소 <에밀>이 가슴에 들어왔다. 아직 둘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정하지 못하겠다. <명상록>은 어린시절부터 관심있던 책이었고 <에밀>은 교육업계 종사자로 읽으만한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명상록>은 두께가 얇은 편에 짤막한 글들이 모아져 있어 술술 읽힐 것같은데, <에밀>은 학교다닐때 읽었던 책은 완전 얇은 포켓북 수준이었는데 완역판을 찾아보니 <서양철학사>만틈 두꺼워서 충격받았다. 둘 다 읽고 싶지만 1주일에 2권을 모두 읽는 것은 힘에 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