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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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네딕트, 김윤식/오인석 옮김, 을유문화사, 1974)
(원제: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Patterns of Japanese Culture by Ruth Benedict, with a Foreword by Ian Buruma)
* 저자에 대하여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1887∼1948)는 1887년 뉴욕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결혼 전 이름은 루스 풀턴(Ruth Fulton)이다.
외과 의사이던 아버지의 사망(1989년)으로 교사이자 도서관 사서였던 어머니와 두 살 아래의 여동생과 함께 외가집에서 살며 경제적이나 정신적으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병으로 한쪽 귀의 청력을 잃기도 했으며, 신경질적이던 어머니는 그녀의 조울증의 원인으로 추정된다.
1905년 어머니의 모교인 뉴욕 소재의 배서대학에 진학해 영문학을 전공했고 우등으로 졸업했다. 교사와 시인으로 활동하다 1914년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 생화학자인 스탠리 베네딕트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의 결혼 생활은 갈등의 연속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충격과 별거로 이어지는 등 개인적인 사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그녀의 삶에 일생의 전기가 찾아왔다.
1919년 ‘사회연구를 위한 뉴스쿨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인류학에 매료되었고 그녀가 평생토록 고민했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찾을 가능성을 느끼게 된다. 1921년 34세의 나이로 컬럼비아 대학의 인류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고 프란츠 보아스 교수를 만나고 본격적인 인류학 연구를 시작한다.
1923년 아메리칸 인디언 종족들의 민화와 종교를 연구하여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34년 문화의 상대성과 문화가 개인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문화의 패턴Patterns of Culture>을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40년 <인종:과학과 정치 Race:Science and Politics>을 출간함으로써 미국 인류학계의 대표적인 학자가 되었다. 그 외 1935년 <주니족 신화>, 1943년 <타이의 문화와 행동>및 <루마니아의 문화와 행동>등을 집필하였으며, 1946년 역작<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을 출간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43년 전쟁공보청 해외정보 책임자로 일하였고, 미국인류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1947년에는 컬럼비아 대학에 현대문화연구소를 설치하여 대규모 연구과제를 추진하였다. 1944년 미국 내 반인종차별위원회 및 뉴욕 인간복지 남부지구회의상 등을 수상했고, 1948년 뉴욕에서 사망했다.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서문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루스 베네딕트가 말했듯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록 눈에 거슬리더라도 그 차이를 인정할 줄 아는 냉철한 인식이 요구된다. ...
세계 속 각 개인은 특정한 관심과 역사, 경험에 의해 형성된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
‘어느 정도의 관대함’
즉 다른 나라의 문화가 지닌 관점이 비록 자신의 견해와 충돌하더라도, 그것 나름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6]
내 주변의 사람에 대한 이해의 출발^^
베네딕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이런 인종적, 문화적 편견에 철저히 저항했다는 점이다. 그녀는 무엇보다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연구에 임했다. [8]
수치심이란 사회적인 의무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생긴다. 죄책감은 발각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 느끼지만,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여 생긴다. [10]
이 책이 고전인 것은 저자의 지적인 명확함, 그리고 유려한 문체 때문이다. 베네딕트는 난해한 용어를 쓰지 않고 복잡한 사상을 쉽게 풀어내는 능력을 지닌 작가였다. 문체는 그의 사람됨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베네딕트는 훌륭한 인간성과 영혼의 관대함을 지닌 작가였다. [13]
제 1장 연구과제 - 일본
이런 모든 모순이 일본에 관한 책에서는 날줄과 씨줄이 된다. 이런 모순은 모두가 진실이다. 칼도 국화와 함께 그림의 일부분을 구성한다. 일본인은 최고로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얌전하고,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불손하면서도 예의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력이 있고, 유순하면서도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고,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고,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고,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 [21]
일본인만??? 왠지 한국인의 특성도 상당히 많다는 느낌, 아니면 나의 특성인지.
‘이 그림은 어디가 이상한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나는 이런 질문을 되풀이하면서 읽었다. [27]
인류학자는 경험상 아무리 기괴한 행동이라도 결국은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30]
어떤 미개 부족에도 또 어떤 문명국에도, 인간의 행동은 일상생활 속에서 학습되는 것이라는 인류학제의 전제에 중요한 의의를 부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행위나 의견이 아무리 이상할지라도 어떤 인간의 느낌과 사고방식은 그의 경험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31]
종교적 교리와 경제적 관습과 정치는 결코 명료하게 격리된 작은 연못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넘어 흘러간다. 그래서 그 물은 서로 섞여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모르게 합쳐진다. [32]
차이가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비로소 안심한다. 그들은 차이를 존중한다. 그들의 목표는 차이가 있더라도 안전이 확보되는 세계, 세계 평화를 위협하지 않고도 미국은 철저히 미국답고, 같은 조건으로 프랑스는 프랑스, 일본은 일본다울 수 있는 세계이다. [35]
국가 간의 일만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 가족 간에도 차이가 존재한다는 신념을 갖는 것, 그로서 나는 나답게, 그는 그답게, 그것이 오히려 서로의 차이를 더 조화롭게 만든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읽는 이유이다.
종교의 비교연구는 사람들이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매우 관대했을 때에만 활기를 띠었다. [36]
그런 사람들은 다른 생활양식을 알게 됨으로써 자신의 문화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즐겁고도 풍부한 경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키고 있다. [36]
제2장 전쟁 중의 일본인
가장 중요한 것은 계층제도에 대한 신앙과도 같은 신뢰이다. [45]
“기회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연히 부딪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시기가 찾아오면 반드시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내야 한다.” [52]
미국인은 생활양식을 끊임없이 도전해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하고,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반면 일본인은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양식에서만 안심을 얻을 수 있으며, 예견하지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53-54]
이처럼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천황을 비판을 초월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회의적인 조사와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고 인식하는 미국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58]
서양의 군인들은 최선을 다해 싸운 후에 도저히 대적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항복한다. 그들은 항복한 뒤에도 여전히 명예로운 군인이라 생각하며, 그들이 살아 있음을 가족에게 알리기 위해 명단을 본국으로 통보해주기를 원한다. 그들은 군인으로서도 국민으로서도 또 자신의 가정에서도 모욕을 받지 않는다. ...
일본인에게 명예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었다. [65]
새로운 페이지에 쓰인 것과 낡은 페이지에 쓰인 것은 정반대였지만, 그들은 새 페이지에 쓰인 구절을 한결같이 충실하게 실천했다. [69]
제 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우리에게 평등은 압제와 간섭과 원치 않는 무거운 짐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것은 법 앞의 평등과 개인이 스스로의 처리를 개선할 권리를 의미한다. [73]
우리는 가족에게는 형식적 예의를 벗어버린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예의범절을 배우고 세심하게 이행하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77]
일본에서 ‘효도’는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한정된 가족 사이의 문제이다. [81]
가족의 의사에 복종하는 것은, 그 요구가 부당하더라도 가족 전체에 관계되는 문제라는 명분으로 요구한다. 즉, 공동체에 대한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요구한다. [85]
제 4장 메이지 유신
일본인의 생활양식은 알맞은 권위를 할당하고, 각각의 권위에 알맞은 영역을 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웃어른’에게는 서양 문화보다도 더 큰 존경-따라서 더욱 큰 행동의 자유-을 주지만, 웃어른도 체통을 지켜야 한다. ‘모든 것을 알맞은 장소에 둔다.’ 이것이 일본의 좌우명이다. [122]
‘알맞은 위치’가 보장되어 있는 동안 일본인은 불만없이 살아간다. 그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최대의 행복이 보호되는가 하는 의미에서는 ‘안전’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럼에도 계층제도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이유에서 안전하다. 이것이 일본인이 인생에 대해 판단하는 특징을 이룬다. [133]
제 5장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
동양 여러 국민은 완전히 반대이다. 그들은 과거에 빚을 진 사람들이다. [137]
일본에서의 의義란 조상과 동시대인을 포함하는 거대한 채무의 망상 조직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는 것이다. [138]
남에게 빚이 있는 사람은 매우 화를 잘 내는 법인데, 일본인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138]
온溫의 여러 용법을 모두 관통하는 의미는, 사람이 짊어질 수 있는 부담, 채무, 무거운 짐이다. [139]
미국인은 사랑이란 의무의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141]
일본인은 조상숭배의 대상을 자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최근의 조상만으로 한정한다. [142]
‘온의 힘’은 항상 개인적 기호를 짓밟을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143]
일본인은 우연히 다른 사람에게 온을 받음으로써 보답의 빚을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144]
이처럼 사소한 일에 관한 신경과민이나 쉽게 상처받는 현상은, 미국에서는 젊은 폭력배들의 기록이나 신경쇠약증 환자의 병력 기록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것은 미덕이다. [150]
제 6장 만분의 일의 은혜 갚음
일본인에게 온은 중요하고도 결코 소멸할 수 없는 채무이다. [159]
채무에 대한 한없는 변제는 기무義務라고 불린다. 이에 관해 일본인은, “받은 온의 만분의 일도 결코 갚을 수 없다"고 말한다. 기무는 부모에 대한 보은인 고孝와 천황에 대한 보은인 주忠라는, 두 종류의 의무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이 두 개의 기무는 모두 강제성이 있어 어느 누구도 면할 수 없다. [161]
중국의 윤리체계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했던 런仁은 일본에서는 윤리체계 밖으로 추방된 덕목이 되었다. [164]
일본인들은 이처럼 중국의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을 완전히 달리 해석하여 그 지위를 격하시키고 말았다. 그 대신 일본에서는 효행이 무조건적 기무였다. 따라서 효행은 부모가 악덕이나 부정을 저지른 경우라도 이행해야만 하는 의무가 되었다. [166]
일본의 이런 이야기는, 미국에서는 대단한 어려움 속에서도 참고 견디며 채권자에게 빚을 다 갚은 정직한 사람의 이야기와도 같다. 그는 정말 고결한 사람, 스스로의 인격을 존중할 권리를 힘써 얻은 사람, 개인적 소망을 기꺼이 희생한 강한 의지의 소유자라는 것을 몸소 증명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같은 소망의 억압은 아무리 덕 있는 행위로 평가받더라도 가슴속에 울분이 남게 마련이다. [169]
일본인은 인간과 신 사이에 서양인처럼 큰 차이를 두지 않는다. 일본인은 누구든 죽으면 가미神가 된다. [175]
일본은 유사 이래 서른여섯이나 되는 왕조가 교체된 중국과는 달랐다. 일본은 이제까지 여러 가지 변천을 거쳤지만, 그 어떤 변혁에서도 결코 사회 조직이 지리멸렬하게 파괴된 일 없이 항상 불변의 형태로 지켜져온 나라였다. [175]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법률에 복종하는 것은 그들의 최고 의무, 즉 고온을 갚는 일이다. ...
미국에서는 ... 새로운 법률이 나올 때마다,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온 나라가 분개한다. 연방 법규는 이중으로 의문시된다. 그것은 나아가 각 주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
많은 시민은 이런 법률에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그 반대가 오히려 그들의 자존심에는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178]
양국의 국민의 자존심은 각각 다른 태도와 결부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일은 자신이 처리한다는 태도에 의존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자신이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 [178-179]
그것이 뜻밖이라고 느낀 것은 인간의 행위를 좌우하는 감정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인정할 수 없었던 서양인뿐이었다. [180]
제 7장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
기리는 ‘올바른 도리, 사람이 좇아야만 할 길, 세상에 대한 체면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하는 일’이다. [184]
‘기리의 세계’를 부채를 상환하는 미국인의 생각과 비교해보면, 일본인의 태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일본인은 어떤 사람이 기리를 갚을 수 없는 경우, 그 사람이 파산했다고 여긴다. 더구나 인생의 모든 접촉은 반드시 이런저런 기리를 초래한다고 생각한다. [193]
기리는 정확히 같은 양으로 갚아야 한다는 점이다. [193]
제 8장 오명을 씻는다
어떤 것은 서양인에게는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 충분한 일관성을 지닌다. [199]
타인의 호의에 반응하는 경우와 타인의 경멸이나 악의에 반발하는 경우의 행동을 왜 하나의 덕으로 포괄할 수 없다는 것일까?
일본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 훌륭한 사람은 모욕도 그가 받은 은혜만큼이나 강하게 느낀다. 어느 쪽도 그것에 보답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훌륭한 행위다. [200]
중국인은 모욕이나 비방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은 ‘소인’, 즉 도덕적으로 보잘것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
그들은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을 오히려 조롱거리로 여긴다. ...
태국인.. “상대방이 비인간적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상대방에게 져주는 것이다” [202]
이름에 대한 ‘기리’는 복수 이외에 조용하고 감추어진 많은 행동을 포함한다. 체면을 소중히 여기는 일본인에게 요구되는 스토이시즘, 즉 자제는 이름에 대한 기리의 일부분이다. [203]
여러 민족의 문화를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진정한 존엄성’이란 민족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 즉 각 민족이 무엇이 굴욕인지 나름대로 규정하는 것을 인정한다. [206]
중요한 것은 일본이 오늘날 우리의 기초 위에서가 아니라, 일본의 기초 위에서 자존심을 재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그것을 일본 특유의 방법으로 순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206]
이처럼 기리의 모든 용법에서는 공통적으로 한 인간과 그가 하는 일을 극단적으로 동일시한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의 행위나 능력에 대한 비판은 자동적으로 그 사람 자체에 대한 비판이 된다. [208]
미국인은 일본인처럼 자기방어에 급급하지는 않는다 .... 본심은 아는 체하기보다는 정직하게 모른다고 하는 편이 훌륭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208]
일본에서는 자기방어가 대단히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면전에서 직업상의 과오를 지적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 예의이며 또한 현명한 태도라고 여긴다. [209]
그들은 자기 자신과 비교하여 능률을 측정할 때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다. [210]
일본인은 사람이란 스스로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모욕을 받을 수 없다거나, 사람을 모욕하는 것은 모욕을 당하는 ‘당사자의 문제’일 뿐, 다른 사람이 그 사람에게 한 말이나 행동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는 윤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220]
그들의 신조에 따르면, 자살은 적절한 방법으로 행한다면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판을 회복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는 자살을 죄악시하여 절망에 자포자기하여 굴복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자살을 존경하는 일본인에게는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행하는 훌륭한 행위가 된다. [225]
기분의 변화에 따라 열정적 노력과 단순한 무기력 사이를 움직이는 것이 일본인의 본성이다. [230]
일본인의 영원불변의 목표는 명예이다. 타인에게 존경을 받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231]
유럽인은 개인이나 국가가 싸우는 경우에는 먼저 그들이 내세운 주장의 정당성을 확신하고, 가슴속에 축적된 증오나 도덕적 격분에서 힘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33]
이와 간이 상황에 따른 현실주의는 일본인의 이름에 대한 기리의 밝은 면이다. 달처럼 기리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235]
제 9장 인정의 세계
일본인은 자기 욕망의 충족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청교도적이지 않다. 일본인은 육체적 쾌락을 좋은 것, 함양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쾌락은 추구되고 존경받는다. 그렇지만 쾌락은 일정한 한계 내에 머물러야 한다. [239]
미국인은 쾌락을 일부러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관능적 쾌락에 빠지는 것은 배울 필요가 없는 일이고, 이미 알고 있는 유혹을 극복하는 일이 중요할 뿐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의무와 마찬가지로 쾌락을 배운다. [240]
일본인은 육체적 쾌락을 일부러 함양한 후에, 엄숙한 생활양식에서는 쾌락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도덕률을 제정해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다. [240]
그들은 아내에 속하는 영역과 성적 향락에 속하는 영역 사이에 울타리를 쳐서, 그 둘을 명확하게 구별한다. 두 영역은 모두 공공연히 인정된다. [247]
이 둘은 한쪽이 인간의 주요한 의무의 세계에 속하는 데 반해, 다른 한쪽은 사소한 기분 전환의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 구별된다. [248]
우리는 연애를 인정하고, 그것이 배우자 선택의 기초가 된다. ‘연애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훌륭한 결혼 사유가 된다. 결혼 후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육체적으로 끌리는 것은 아내를 모욕하는 일이다. 그것은 당연히 아내의 소유로 돌아가야 할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은 이와는 다른 견해를 갖는다. [248]
일본인은 나름대로 해도 좋은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자중하는데, 그 경계선은 우리의 경계선과 다르다. [251]
육체와 정신이라는 두 개의 힘이 각자의 생활에서 패권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고 생각하는 서양의 철학을 근본적으로 뒤엎는다. [253]
그들은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영혼이 있다고 믿고 있는데, 그것은 서로 다투는 선과 악의 충동이 아니다. 그것은 ‘온화한’ 영혼(니기타마)와 ‘거친’ 영혼(아라타마)이다. 그들은 모든 인간의 생애에는 ‘온화’해야 할 경우와 ‘거칠’어야 할 경우가 있다고 믿는다.
이 두 영혼은 각각 다른 경우에 필요하며 모두 선하다. [254]
일본에서 인간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며 신뢰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나쁜 반쪽과 싸울 필요가 없다.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다만 마음의 창문을 깨끗하게 하고 경우에 따라 적합한 행위를 하는 것뿐이다. 만일 그것이 ‘더럽혀졌다’하더라도 더러움은 쉽게 제거되며, 인간의 본성인 선이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256]
제 10장 덕의 딜레마
일본인은 ‘인간의 의무’가 마치 지도 위의 여러 지역처럼 몇 개의 부분으로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인생이 ‘주의 세계’, ‘고의 세계’, ‘기리의 세계’, ‘진의 세계’, ‘인정의 세계’, 그밖의 많은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표현한다. 저마다의 세계는 각각 특유하고 세밀하게 규정된 법을 가지고 있다. [261]
옳다고 여겨지는 행동은 그 행동이 나타나는 세계와 상대적이다.
각각의 세계에서 법도는, 그 ‘세계’속의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당연히 행동 기준이 변한다. [262]
이런 점은 서양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인간은 인품에 맞게’ 행동한다. [262]
인생을 선과 악이 싸우는 무대로는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264]
그런 식으로 그려져 있는 갈등은 모두 자체적으로는 구속력을 가진 두 의무 사이의 갈등이다. 이들 의무는 모두 ‘선’이다. [265]
서양인은 대개 인습에 반기를 들고 수많은 장애를 극복하고 행복을 얻는 것을 강함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인의 견해로는 강자란 개인적 행복을 도외시하고 기무를 완수하는 인간이다. [277]
아내는 ‘고의 세계’ 주변에 자리하지만 부모는 중심을 차지한다. [277]
일본인이 ‘성실’이라는 말을 쓸 때의 근본적인 의미는, 일본의 도덕률이나 ‘일본 정신’에 의해 지도상에 그려진 ‘길(road)’을 따르는 열정을 말한다. [289]
사람은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물론 행위의 파생적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일본인의 신조를 반영한다. [290]
덕의 원리는 여전히 선한 어떤 행동과 선한 다른 행동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290]
일본인의 죄의 중요성보다도 수치의 중요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295]
참다운 죄의 문화가 내면적 죄의 자각에 의거해 선행을 하는데 비해, 참다운 수치의 문화는 외면적 강제력에 의거해 선행을 한다. 수치는 타인의 비평에 대한 반응이다. [296]
제 11장 자기 수양
일본인의 타인에 대한 봉사의 배후에 있는 강제력은 물론 이런 상호의무이다. 그것은 남에게서 받은 만큼 같은 양을 변제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계층적 관계에 선 사람끼리 서로 그 책임을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자기희생의 도덕적 지위는 미국의 경우와 매우 다르다. [308]
수양은 ‘자기 몸에서 나온 녹’을 갈아 떨어내는 것이다. 수양은 사람을 잘 갈아 예리한 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가 바라던 일이다. [310]
일본은 불교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윤회와 열반 사상이 국민의 불교적 신앙의 일부분이 된 일이 없다. [314]
관능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은 생활의 지혜의 일부분이 되어 있다. 유일한 조건은 인생의 중대한 의무 앞에서는 관능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316]
일본인은 영혼의 삼매경에 몰입하여 자기 감시가 부과하는 제약을 잊을 때, 지금까지 목둘레에 매여있던 무거운 맷돌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329]
죽은 자는 이제 온을 갚을 필요가 없다. 죽은 자는 자유롭다. 따라서 ‘나는 죽은 셈치고 산다’는 표현은 모순으로부터 궁극적 해방을 의미한다. [331]
제 12장 어린아이는 배운다
일본인의 육아법은 이것과는 전혀 다르다. 일본의 생활 곡선은 미국은 생활 곡선과 정반대이다. 그것은 큰 U자형 곡선으로, 갓난아이와 노인에게 최대의 자유가 허락된다. [336]
자기 집단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은 다른 집단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는 동안에 한정된다. 만일 외부 사람이 찬성하지 않거나 비난했다면, 다른 집단이 그 비난을 철회할 때까지 그가 속한 집단은 그에게 등을 돌려 징벌을 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 세계’에서 인정을 받는 것은, 다른 어떤 사회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361]
가정교육은 ‘습관’이지 규칙이 아니다.
어른들은 때가 되면 아이가 올바른 습관을 ‘스스로 익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369]
지나친 압박을 느끼지 않을 경우, 그들은 생활을 즐기는 능력과 함께 어릴 적 훈육으로 심어진 능력을 이용하여 타인의 감정을 해치지 않는 용의주도한 면모를 보인다. [382]
그들이 그렇게 공격적 행동을 취하는 경우는 미국인처럼 자신의 주의주장이나 자유가 도전을 받았을 때가 아니라, 모욕당했거나 비방당했다고 느꼈을 때이다. 그때 그들의 위험한 자아는 만일 가능하다면 그 비방자에게,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게 폭발한다. [384]
이 고리를 뗄 기회를 얻은 스기모토 부인의 흥분은 행복하고도 순수한 것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작은 화분 속에서 꽃잎 하나하나까지 정성껏 가꿔진 국화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데 대한 순수한 즐거움을 발견했다. [386]
국화는 철사 고리를 떼어내고 그처럼 정성껏 손질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게 피어 자랑스러울 수 있다. [387]
그들이 ‘몸에서 나온 녹’은 그들 자신이 처리한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자기책임의 태도이다.
사람은 각자 자기 행동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약점, 지속성의 결여, 실패 등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를 승인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일본에서 자기 책임은 자유로운 미국에서보다도 훨씬 철저하게 해석된다. 이런 일본적인 의미에서 칼이란 공격의 상징이 아니라, 이상적이고도 훌륭하게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의 비유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시대에서 이 덕은 가장 평형의 역할을 한다. [387-388]
제 13장 패전 후의 일본인
일본이 서양적 이데올로기 위에 서기보다는 과거와의 연속성에 기초하는 편이 훨씬 쉽게 시민적 자유의 범위를 확장하고 국민 복지를 이룩할 수가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397-398]
일본인은 일정한 행동방침을 취하고 그 목표달성이 불가능해지면 ‘잘못’을 범했다고 판단한다. 그는 어떤 행동이 실패로 끝나면 실패한 주장을 버린다. 실패한 주장을 집요하게 계속 고수하지는 않는다. [400]
그들의 윤리는 사람은 자기 행위의 결과로 생기는 모든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며, 어떤 과오의 결과에 의해 그 행위의 잘못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당연한 결과 속에는 총력전에서의 패배와 같은 참혹한 사건까지 포함된다. [402]
“노동자가 공장을 점거하고 계속 일을 해서 생산을 증대하는 것으로 경영자의 면목을 잃게 한다.” [407]
진주만 습격에 이르기까지 약 10년간 군비와 군대 유지를 위해 세입의 절반 정도를 써야 했던 일본 같은 나라에서, 만일 그런 지출을 없애고 농민에게 받는 세금을 경감한다면 건전한 경제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
유럽이나 아시아의 어느 나라도 앞으로 10년간 군비를 갖추지 않는 나라는 군비를 갖추는 나라를 능가할 가능성이 있다. 군비가 없는 나라는 경제 건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아무리 많은 배상을 요구하더라도 재군비가 허용되지 않는 독일은, 앞으로 10년 내외에 프랑스를 능가할 것이다. 만일 프랑스가 강대한 군사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한, 프랑스에서는 아마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건전하고도 윤택한 경제의 기초를 독일은 쌓을 수 있을 것이다. [410-411]
일본이 만일 군국화를 예산에 포함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럴 뜻이 있다면 머지않아 그들 스스로의 번영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동양의 통상에서 필수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411]
미국이 할 수 없는 것-어느 나라도 할 수 없는 것-은 명령으로 자유로운 민주적 일본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런 방법은 어떠한 피지배국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을 거둔 일이 없다. 어느 외국인도 자기와 같은 습관이나 가정을 갖지 않은 국민에게 자기와 같은 생각이나 생활방식을 따르라고 명령할 수 없다. [412]
* 내가 저자라면
** 전체적인 뼈대 & 보완점
이 책은 일본에 대해 워낙 유명한 고전으로 알려져 있어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내용은 정확히 모르지만 제목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어설픈 선입견과 추측으로, 평소 예의바르고 겸손한 겉모습(국화)과 이중적인 속마음(칼)을 지적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나의 선입견과는 완전히 달랐다. 물론 책이 쓰여진 시기가 1946년으로 지금으로부터 벌써 60년이 넘었고, 전쟁의 승리를 앞두고 있는 미 국무부의 의뢰로 쓰여졌다는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야 했지만 그래도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한 인류학자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었다.
저자는 ‘아무리 기괴한 행동이라도 결국은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30p)을 가지고 일본이라는 자신이 한 번도 방문해 보지 못한 나라를 바라본다. 또한 자신의 문화와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이 알아야 하는 것을 고민하며(27p) 일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개방적인 자세가 바로 일본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고전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 이 책을 만들어 냈다.
단순히 일본과 일본인의 외면에 나타난 행동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이끌어내는 사고와 그 사고의 밑바닥에 숨겨진 사회 전체의 경험과 문화적 패턴을 읽어내려는 노력은 결국 일본 문화의 핵심을 끌어낼 수 있었다.
목차를 보면 그녀가 어떻게 일본과 일본인에게 접근해 들어갔는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전쟁 중의 일본인’에서 행동과 표현에서 나타난 일본과 미국을 포함한 서양의 근본적인 차이를 찾아내기 시작했으며,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에서 일본 문화의 핵심인 ‘계층제도’를 분석한다. 이러한 사회적 제도 속에서 주忠와 고孝를 포함한 기무義務, 그리고 세상에 대한 기리와 이름에 대한 기리를 포함한 기리義理를 일본인의 공통적인 사고와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층층이 고달픈 의무의 세계와 자유롭고 쾌락적인 인정의 세계를 구분하는 기준과 존재의 양식을 파악하고 이로서 일본인의 선악에 대한 가치관, 그리고 도덕관까지 확장해서 설명한다.
이렇게 육아를 포함한 일본인의 가정생활과 학교, 군대를 포함한 사회조직, 그리고 그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습관까지 세밀한 조사를 통해서 일본 문화의 구조를 분석해 낸 결과, 저자는 종전 후 일본이 취할 공식적 반응과 일본인들이 나타낼 사회적 반응을 예측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일본인에게 ‘모욕’을 가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까지 명확히 설명할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군비 확대 경쟁에서 제외된 일본의 장래 번영까지 예견해 낼 수 있었으니 이 책이 전후 미국의 패전국 일본을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칼’이 ‘군국주의와 무력’을 숭배하는 상징이기도 하지만, 한편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이상적인 인간’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희망을 끝내 버리지 않음으로써 인간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놓치 않고 있다.
‘다른 생활양식을 알게 됨으로써 자신의 문화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과 이해할 수 없는 것의 이유를 찾으려는 개방적인 태도의 가치에 대한 재확인이 이 책의 가장 큰 성과였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책이 벌써 60년 전의 역작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일본인은 이 책의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의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일본인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첨부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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