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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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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5일 21시 41분 등록
<국화와 칼-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김윤식/오인석 옮김, 을유문화사)
* 원제: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Patterns of Japanese Culture  

. 저자 소개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는 미국 뉴욕 출생의 인류학자. 결혼 전 이름은 루스 풀턴(Ruth Fulton). 바사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교사와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사회연구를 위한 뉴스쿨(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인류학 강의를 접하고 매료되어 32살이 되던 1919년 뒤늦게 인류학에 입문하여 컬럼비아대학에서 프란츠 보아스의 지도로 대학원을 마쳤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본격적인 인류학 연구에 빠져 들어 아메리칸 인디언 종족들의 민화와 종교로 박사학위를 받고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녀는 인류학이라는 분야에 헌신하면서 20세기 초 미국사회의 보수성과 불행한 결혼생활에 묻혀 있던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했고,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현대의 정치적ㆍ윤리적 문제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1923년 아메리카 인디언 종족들의 민화와 종교에 관한 연구로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34년 문화의 상대성과 문화가 개인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문화의 패턴(Patterns of Culture)》을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어 인종(Race:Science and Politics)》을 출간함으로서 미국 인류학계의 대표적인 학자가 되었다. 1943년 전쟁공보청 해외정보 책임자로 일하였고, 1946년 만년의 역작인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을 출간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지성의 자유를 열렬히 옹호한 학자였고, 1930년대에는 활발하게 반 파시즘 운동을 벌였다.

 

 

. 내 마음에 무찔러드는 글귀


서문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베네딕트가 말한 이른바 어느 정도의 관대함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즉 다른 나라의 문화가 지닌 관점이 지록 자신의 견해와 충돌하더라도, 그것 나름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쉽게 흥분하는 열광자는 훌륭한 문화인류학자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6

 

이런 관대함이 더욱 필요한 이유는, 적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만이 사용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루스 베네딕트가 1944 6월 미국 정부로부터 일본 문화에 대한 분석을 의뢰 받았을 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이라는 먼 나라 사람들에 대해 다른 미국인들처럼 편견을 고수했다면, 매우 수월한 작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랬다면 한편으로는 완전히 쓸모없는 작업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7

 

일본 사회는 서구 사회보다 절대적인 윤리 기준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좋은 행위에 대한 외부의 인정에 더 의존한다. 일본인들은 타인의 의견에 매우 민감하다고 베네딕트는 말한다. 수치심이란 사회적인 의무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생긴다. 죄책감은 발각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 느끼지만,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여 생긴다. 10

 

역자 서문

 

연합군 수장들이 일본이 패전 후 어떻게 행동할 것안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베네딕트는 이런 불합리한 견해들을 헤쳐나가야 했다. 7

 

저자가 목적으로 삼은 것은 평균적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의 틀(Pattern)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지恥(수치, 부끄러움)의 인식에 놓인 문화다. 14

 

만년의 명작인 <국화와 칼>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4 6월 미국무부의 위촉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자 자신은 일본을 방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학문의 연구에서 그 대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는 쪽이 오히려 보다 엄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 책은 입증하고 있다. 부분적 체험은 전체적 방법론을 망쳐놓을 수도 있다. 15

 

1장 연구과제일본

 

일본이 문호를 개방한 이래 75년간 일본인에 대해 쓴 저작에는, 일찍이 세계 어느 국민에게도 쓰인 적이 없는 그러나 또한(but also)이라는 기괴한 표현이 자주 나온다. 20

 

그렇지만 이런 모든 모순이 일본에 관한 책에서는 날줄과 씨줄이 된다. 이런 모순은 모두가 진실이다. 칼도 국화와 함께 그림의 일부분을 구성한다. 일본인은 최고로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얌전하고,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불손하면서도 예의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력이 있고, 유순하면서도 겁쟁이이고,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 21

 

나의 연구과제는 매우 까다로운 문제였다. 미국과 일본은 교전 중이었다. 전쟁 중에는 적을 나쁘게 깎아내리는 것은 쉽지만, 적이 어떤 방식으로 인생을 보는가를 적의 입장에서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해야만 할 임무였다. 문제는 일본인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있지, 만일 그들과 같은 처지에 놓였을 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있지 않았다. 나는 전시에 일본인이 보여준 행동을, 부정적인 요소가 아니라 긍정적인 요소로서 이용하도록 노력했다. 나는 그들의 전쟁 수행방식을 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문제로 바라보았다. 24

 

나는 사회과학자들이 추구하는 해답의 대부분은 일본 문화의 규범과 가치 속에 깊이 배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실제로 그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탐구하는 편이 더 만족스러운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25

 

많은 다른 동양인과는 달리 일본인은 자기 자신을 기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본인은 그들의 세계 확장 계획은 물론 일상의 사소한 일에 관해서도 기록했다. 일본인은 놀랄 만큼 솔직했다. 26

 

나는 일본인의 행동에서 무엇인가 당혹감을 느낄수록, 그것은 일본인의 생활 속에 그러 당혹감을 만드는 당연한 조건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생겼다. 만일 그런 조건의 연구가 나를 일상적 교섭의 사소한 일에 끌어들인다면 더 없은 좋은 일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이 학습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31

 

20세기의 핸디캡 가운데 하나는, 일본을 일본인의 나라답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을 미국인의, 프랑스를 프랑스인의, 러시아를 러시아인의 나라답게 만드는 것에 관해 여전히 가장 막연하고도 편견에 가득 찬 관념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편견으로 세계 각국은 서로 오해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닮은 두 나라 사이에서 불화가 일어난 경우에도,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33

 

차이가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비로소 안심한다. 그들은 차이를 존중한다. 그들의 목표는 차이가 있더라도 안전이 확보되는 세계, 세계 평화를 위협하지 않고도 미국은 철저히 미국답고, 같은 조건으로 프랑스는 프랑스, 일본은 일본다울 수 있는 세계이다. 35

 

2장 전쟁 중의 일본인

 

일본은 전쟁의 원인을 이와는 다른 시각에서 보았다. 각국이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있는 동안 세계는 무정부 상태가 계속된다. 일본은 계층제도(hierarchy)를 수립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이 질서의 지도자는 물론 일본인이다.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따라서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44

 

그러므로 계층제도에 대한 일본인의 전제를 바탕으로 뒤처진 동생인 중국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대동아 여러 나라와 동일한 인종이므로 이 지역에서 먼저 미국을, 다음엔 영국과 소련을 쫓아내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차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세계 모든 나라는 국제적 계층 조직 속에 제각기 알맞은 위치를 주고 하나의 세계로 통일해야 하는 것이다. 45

 

심지어 일본이 이기고 있을 때에도 일본의 정치가, 대본영, 군인들은, 이 전쟁은 군비의 싸움이 아니라 미국인의 물질 신앙과 일본인의 정신 신앙의 싸움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46

 

소형 비행기로 미국의 군함에 뛰어들어 자폭하는 조종사들은 물질에 대한 정신적 승리의 교훈이 되었다. 48

 

미국인은 생활양식을 끊임없이 도전해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하고,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반면 일본인은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양식에서만 안심을 얻을 수 있으며, 예견하지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54

 

서양의 군인들은 최선을 다해 싸운 후에 도저히 대적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항복한다. 그들은 항복한 뒤에도 여전히 명예로운 군인이라 생각하며, 그들이 살아 있음을 가족에게 알리기 위해 명단을 본국으로 통보해주기를 원한다. 그들은 군인으로서도 국민으로서도 도 자신의 가정에서도 모욕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본인은 이런 상황을 전혀 다른 식으로 규정한다. 일본인에게 명예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었다. 65

 

많은 미국인이 포로수용소에서 웃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며, 또 그 웃음이 교도관을 얼마나 자극하는지를 진술하고 있다. 일본인의 관점에서 보면 포로란 치욕을 입은 자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66

 

서양 병사와 일본 병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일본 병사들이 포로로서 연합군에게 협력한 점이었다. 그들은 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규칙을 알지 못했다. 68

 

일본인은 모든 것을 건 어떤 행동방침이 실패할 경우, 다른 방침을 취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것 같았다. 69

 

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질서와 계층제도를 신뢰하는 일본인과, 자유와 평등을 신뢰하는 미국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71

 

가량 민간인이었을 때는 친분이 돈독해 따로 인사를 안 하는 사이였어도, 한 사람이 군복을 입으면 평복을 입은 친구가 경례를 한다. 계층제도를 지켜가려면 수많은 인자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77

 

여자아이는 연령에 관계없이 남자 형제 모두에게 머리를 숙인다. 78

 

19세기 중반까지 성은 귀족과 사무라이 집안에만 허용되었다. 79

 

일본에서 효도는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한정된 가족사이의 문제이다. 81

 

부모에게 의견을 말하려는 자식은, 머리를 기르려는 승려와 같다. 그 이유는? 이에 대한 답은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81

 

1942년 봄, 한 중령은 육군성의 대변자로서 공영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은 그들의 형이며, 그들은 일본의 아우이다. 이 사실을 점령 지역의 주민에게 철저히 인지시켜야 한다. 주민을 지나치게 배려하면, 그들이 일본의 친절에 편승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통치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바꾸어 말하면, 형은 아우를 위한 일이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그것을 강요할 때 지나치게 배려해서는 안 된다. 82

 

일본인은 가정생활에서 전제적인 권력을 존중하도록 배우지 않는다. 가족의 의사에 복종하는 것은, 그 요구가 부당하더라도 가족 전체에 관계되는 문제라는 명분으로 요구한다. , 공동체에 대한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요구한다. 85

 

특권과 특권사이의 형식적인 경계선은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데서 조종하고 있다 하더라도 파괴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부분이 실제 지배관계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특권관계는 변경되거나 수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여전히 침범할 수 없다. 형식적 신분의 구속을 받지 않고 실권을 행사하는 쪽이 오히려 유리하다. 공격당할 위험성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85

 

일본의 가장은 물질적ㆍ정신적 재산의 관리자에 가깝다. 86

 

일본에서는 카스트가 역사시대를 일관하는 생활 원리였다. 일본은 이미 7세기에 카스트 제도가 없던 중국에서 들여온 생활양식을 일본 고유의 계급 문화에 적용했다. 7세기에서 8세기에 걸쳐 일본의 천황과 궁정은, 일본사절단의 눈을 놀라게 한 위대한 중국 왕조의 고도문명을 받아들여 일본을 풍요롭게 만드는 사업에 착수했다. 86~87

 

세계사에서 어떤 국가도 일본만큼 계획적으로 문명을 훌륭하게 수입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87

 

일본이 받아들인 관직 제도는 중국에서는 과거에 급제한 행정관에게 주어졌으나, 일본에서는 세습적 귀족이나 봉건 영주에게 주어졌다. 88

 

일본에는 황실과 궁정 귀족 밑에 신분 순으로 무사(사무라이), 농민, 공인, 상인의 네 가지 카스트가 있었다. 91

 

실제로 그들이 사는 부락을 통과하는 큰 길의 이정표에는, 그 지역의 토지나 주민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여 마을로 간주하지 않았다. 91

 

상인계급은 늘 봉건제도의 파괴자였다. 실업가가 존경받고 번영하면 봉건제도가 쇠퇴한다. 92

 

도쿠가와 바쿠후는 정해진 한도 이상의 배를 만들고 운항하면 극형에 처함으로써 이런 추세를 막으려고 시도했다. 허가된 작은 배로는 대륙 사이를 항해하거나 상품을 싣고 다닐 수가 없었다. 92

 

농민은 쇼군의 정치기구, 다이묘의 여러 기관, 사무라이의 봉록 등을 포함해 200만 명을 웃도는 기생적 상류계급 전체를 짊어진 아틀라스였다. 농민은 수확량의 일정 비율을 현물세로 다이묘에게 바쳤다. 다른 쌀 생산국인 태국에서는 전통적인 연공이 수확량의 10퍼센트였는데, 도쿠가와 시대의 일본에서는 40퍼센트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아 80퍼센트에 달하는 영지도 있었다. 96

 

일본의 법과 질서의 요구는, 농민의 탄원에 바쿠후가 판결을 내리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못했다. 그들의 불평은 정당하며 국가가 그 불평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한 조처였다. 그러나 농민 폭동 지도자는 엄격한 계층제도의 법을 어긴 셈이다. 설령 유리한 판결을 받았을지라도, 그들은 상전(다이묘)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법도를 어긴 것이다. 이 점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그들은 사형을 언도받았다. 동기의 정당성은 법을 어긴 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농민들도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체념했다. 97

 

신성 수장이 죽으면 하늘이 텅 비었다는 말로 그의 죽음을 발표했다. 101

 

일보에서는 각각의 카스트가 절대로 동일한 카스트 안에서만 혼인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카스트와의 통혼을 가능하게 하는 공인된 절차가 있었다. 그 결과 마침내 부유한 상인이 하층 사무라이 계급에 합류했다. 105

 

4장 메이지유신

 

일본 근대화 초기의 구호는 손노조이尊王攘夷, 왕정을 복고하고 오랑캐를 추방하라는 것이었다. 109    

 

왕정복고 이후의 정치가들은 번을 폐지함으로써 영주에 대한 충성과 국가에 대한 충성 사이의 모순을 없앴다. 114

 

웃어른에게는 서양 문화보다도 더 큰 존경-따라서 더욱 큰 행동의 자유-을 주지만, 웃어른도 체통을 지켜야 한다. 모든 것을 알맞은 장소에 둔다. 이것이 일본의 좌우명이다. 122

 

군대에서는 가문에 구애받지 않고 본인의 실력만으로 누구든지 병사에서 장교의 계급까지 출세할 수 있었다. 이처럼 철저하게 실력주의가 실행된 분야는 달리 없었다. 127

 

많은 점에서 군대는 민주적 평등주의의 역할을 했다. 128

 

일본에서 나리킨이란 일본의 장기놀이에서 온 말로, 여왕으로 승격된 졸卒을 의미한다. 나리킨은 아무런 계층적 권리도 없으면서, 거물처럼 장기판 위를 사납게 날뛰는 졸이다. 일본인은 사람을 속이고 이기적으로 이용하여 돈을 모은 사람이 나리킨이라고 믿고 있다. 133

 

가정이나 개인 간의 관계에서는 연령, 세대, 성별, 계급 등이 알맞은 행동을 지정한다. 정치, 종교, 군대, 산업에서는 각각의 영역이 신중하게 계층으로 나뉘어 있어,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자신들의 특권의 범위를 넘어서면 반드시 처벌받는다. 133

 

일본인은 스스로에게 요구한 일을 다른 나라에도 요구할 수는 없었다.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그들은 각자 알맞은 지위를 받아들이는 일본의 도덕체계가, 다른 곳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른 국가에는 그런 도덕률이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일본만의 산물이었다. 일본의 저술가들은 이 윤리체계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 그것에 대해 기술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도덕체계를 이해해야 한다. 135

 

5장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

 

일본에서 의義란 조상과 동시대인을 포함하는 거대한 채무의 망상網狀 조직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는 것이다. 138

 

남에게 빚이 있는 사람은 매우 화를 잘 내는 법인데, 일본인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138

 

어떤 사람이 지고 있는 크고 작은 모든 채무를 나타내는 오블리게이션에 해당하는 일본말온恩이다. 139

 

온의 여러 용법을 모두 관통하는 의미는, 사람이 짊어질 수 있는 부담, 채무, 무거운 짐이다. 사람은 윗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다. 윗사람이 아니거나, 적어도 자신과 동등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 행위는 불쾌한 열등감을 준다. 일본인이 나는 누구에게서 온을 입었다고 말하는 것은, 나는 누구에게 의무의 부담을 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들은 채권자나 은혜를 베푼 사람을 온진恩人이라고 부른다. 139

 

일본의 모든 역사 시대에 일본인이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그들이 소속하는 세계의 최고 윗사람이었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방 영주, 봉건 영주, 쇼군 등으로 변했다. 오늘날엔 그것이 천황이다. 그러나 윗사람이 누구인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몇 세기에 걸쳐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인의 습성속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41

 

일본인은 조상숭배의 대상을 자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최근의 조상만으로 한정한다. 이런 사실은 일본인에게, 자신이 유년시절 조상에게 현실적인 신세를 졌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142

 

자식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것은, 자신이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는 것이다. 143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해서 부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해가 갈수록 이자가 붙는 것처럼 부채는 더욱 불어난다. 어떤 사람에게서 온을 입는다는 것은 중대한 일이다. 일본인이 잘 쓰는 표현에도 나타나듯이, 사람은 온의 만분의 일도 갚을 수 없다. 그것은 대단한 짐이다. 또한 온의 힘은 항상 개인적 기호를 짓밟을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143

 

일본의 거리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모인 군중이 수수방관하는 것은 단지 자발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경찰이 아닌 민간인이 제멋대로 참견하면 그 사람에게 온을 입히는 행위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145

à 지하철에서 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고 희생된 이수현 사건이 일본에서 사회적 이슈가 된 배경?

 

이 치욕을 의미하는 하지恥는 일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147

 

사랑, 친절, 너그러운 마음 등은 미국에서는 부수적인 대가가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존중받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런 행위를 받은 사람은 채무자가 된다. 157

 

6장 만분의 일의 은혜 갚음

 

일본인은 양에서나 기한에서나 무제한적인 온에 대한 보답과 받은 분량과 똑같이 갚고 특정한 기한에 끝나는 보답을, 각기 다른 규칙을 가진 별개의 범주로 나누고 있다. 채무에 대한 한없는 변제는 기무義務라고 불린다. 이에 관해 일본인은, 받은 온의 만분의 일도 결코 갚을 수 없다고 말한다. 기무는 부모에 대한 보은인 고孝와 천황에 대한 보은인 주忠라는, 두 종류의 의무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161

 

기리義理 : 자신이 받은 은혜와 같은 수량만을 갚으면 되고, 또 시간적으로도 제한된 부채 (세상에 대한 기리, 이름에 대한 기리) 163

 

중국의 윤리체계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했던 런仁은 일본에서는 윤리체계 밖으로 추방된 덕목이 되었다. 런은 일본에서는 진이라 발음하는데, 한자는 중국인이 사용한 것과 같다. 진을 행한다, 혹은 그 변형인 진기를 행한다는 것은 상류층 사람들 사이에서 결코 덕목으로 요구되지 않았다. 그것은 일본인의 윤리체계에서 완전히 추방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법의 범위 밖에서 행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164

 

진기를 행한다는 말은 또한 법의 범위 밖이라는 의미, 즉 무법자 사이의 덕을 말할 대 쓴다. 165

 

많은 저서가 일본인은 추상적 사색이나 현존하지 않는 사물을 머릿속에 그려내는 것에 흥미가 없다고 논한다. 169

 

가미神god로 번역되지만,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머리頭, 즉 계층제도의 정점이다. 일본인은 인간과 신 사이에 서양인처럼 큰 차이를 두지 않는다. 일본인은 누구든 죽으면 가미가 된다. 사실 봉건시대에 주는 전혀 신성을 지니지 않았던 계층제의 우두머리에게 바쳐졌다. 175

 

일본은 유사 이래 서른여섯이나 되는 왕조가 교체된 중국과는 달랐다. 일본은 이제까지 여러 가지 변천을 거쳤지만, 그 어떤 변혁에서도 결코 사회 조직이 지리멸렬하게 파괴된 일이 없이 항상 불변의 형태로 지켜져온 나라였다. 175

 

미국에서는 자신의 일은 자신이 처리한다는 태도에 의존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자신이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 179

 

7장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

 

기무가 태어나자마자 생기는 친밀한 의무의 수행이라면, 세상에 대한 기리는 계약관계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리는 법률상의 가족에 대한 일체의 의무를 포함하고, 기무는 직계 가족에 대한 일체의 의무를 포함한다. 185

 

어쨌든 기리는 아주 괴로운 일이자 본의 아닌 일이다. 따라서 기리 때문이라는 표현은 일본인에게는 번거로운 관계를 나타내는 데 적합한 말이다. 187

 

기리를 따라야 하는 것은 세상의 소문이 무섭기 때문이다. 192

 

기무는 아무리 애써도 도저히 완전하게는, 아니 완전히 가까운 정도까지도 갚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리는 무한정한 것이 아니다. 194

 

일본인은 기리에 관해 서양의 채무변제 관례와 비슷한 또 한가지 관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갚는 기한이 늦어질수록 마치 이자가 느는 것처럼 커진다는 것이다. 195

 

8장 오명을 씻는다

 

세상에 대한 기리가 친절을 갚는 의무이며, 이름에 대한 기리가 주로 복수를 내포하고 있다고 해서, 두 기리를 구별하지는 않는다. 서양의 여러 언어가 양자를 감사와 복수라는 전혀  상반된 범주로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인은 분명하게 납득하지 못한다. 타인의 호의에 반응하는 경우와 타인의 경멸이나 악의에 반발하는 경우의 행동을 왜 하나의 덕으로 포괄할 수 없다는 것일까? 일본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 훌륭한 사람은 모욕도 그가 받은 은혜만큼이나 강하게 느낀다. 어느 쪽도 그것에 보답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훌륭한 행위다. 200

 

일본인은 모욕이나 비방이나 패배가 보복되거나 제거되지 않는 한, 세상이 뒤집어졌다고 말한다. 201

 

체면을 소중히 여기는 일본인에게 요구되는 스토이시즘(Stoicism), 즉 자제自制는 이름에 대한 기리의 일부분이다. 여자는 분만할 때 큰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되고, 남자는 고통이나 위험에 직면하여 초연해야 한다. 203

 

중요한 것은 일본이 오늘날 우리의 기초 위에서가 아니라, 일본의 기초 위에서 자존심을 재건해야 한다는 것이다. 206

 

교사는 나는 교사로서 이름에 대한 기리 때문에 그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208

 

문제를 경쟁으로 해결하려 하면 피험자들은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빼앗겨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들은 경쟁을 자신에 대한 외부의 공격이라고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그들은 종사하는 일에 전념하는 대신 주의력을 자신과 공격자의 관계에 빼앗긴다. 210

 

일본인은 항상 싸움을 걸 생각도 없으면서 상대방을 업신여기는 사람을 성실하지 못한 인간이라 생각한다. 그런 조소는 무례한 것이며 불성실의 증거이다. 218

 

일본의 윤리에서 기리란 가신이 주군이 죽을 때까지 충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주군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느끼면 갑자기 증오의 대상으로 돌변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221

 

일본인은 실패나 비방, 배척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 따라서 타인을 괴롭히기보다는 너무도 쉽게 자신을 괴롭힌다. 223

 

미국에서는 자살을 죄악시하여 절망에 자포자기하여 굴복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자살을 존경하는 일본인에게는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행하는 훌륭한 행위가 된다. 225

 

봉건시대에는 용기와 결단의 최후 표명이었던 자살 행위가 오늘날에는 스스로 선택한 자기 파멸이 되었다. 227

 

기분의 변화에 따라 열정적 노력과 단순한 무기력 사이를 움직이는 것이 일본인의 본성이다. 230

 

기리는 항상 침략 행위의 추구와 상호존중 관계의 준수를 동시에 의미했다. 그리하여 패전에 이르자 일본인은 자기 자신에게 심리적 폭력을 가한다는 의식은 전혀 하지 않고, 단지 침략 행위에서 상호존중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지금도 그들의 목표는 여전히 명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233

 

9장 인정의 세계

 

일본인은 자기 욕망의 충족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청교도적이지 않다. 일본인은 육체적 쾌락을 좋은 것, 함양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쾌락은 추구되고 존경받는다. 그렇지만 쾌락은 일정한 한계 내에서 머물러야 한다. 쾌락은 인생의 중대 사항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240

 

일본인은 육체적 쾌락을 일부러 함양한 후에, 엄숙한 생활양식에서는 쾌락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도덕률을 제정해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다. 그들은 육체적 쾌락을 마치 예술처럼 연마하고, 쾌락을 충분히 맛보았을 때 의무를 위해 그것을 희생한다. 240

 

그들은 아내에 속하는 영역과 성적 향락에 속하는 영역 사이에 울타리를 쳐서, 그 둘을 명확하게 구별한다. 두 영역은 모두 공공연히 인정된다. 247

 

동성애도 전통적인 인정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 구시대의 일본에서 동성애는 사무라이나 승려처럼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공인된 즐거움이었다. 251

 

일본의 성인 남자는 소년을 상대로 선택한다. 성인이 수동적 역할을 하는 것은 위신에 관계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51

 

일본에서 인간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며 신뢰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나쁜 반쪽과 싸울 필요가 없다.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다만 마음의 창문을 깨끗하게 하고 경우에 다라 적합한 행위를 하는 것뿐이다. 만일 그것이 더렵혀졌다하더라도 더러움은 쉽게 제거되며, 인간의 본성인 선이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256

 

행복 추구를 인생의 최대 목표로 하는 사상은, 그들에게는 놀랄 만한 부도덕한 가르침이다. 행복은 사람이 그것을 탐닉하여 기분 전환을 할 수 있을 때에만 의미 있는 것이다. 256 

 

10장 덕의 딜레마

 

그들은 미국인처럼 어떤 사람을 부정하다고 비난하는 대신, 그 사람이 해야 할 의무를 완전히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261

 

일본인은 중국 도덕의 가르침조차, 중국인이 그와 같은 도덕을 필요로 하는 국민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중국인의 열등성을 증명한다. 264

 

그들은 의무의 법도를 저버리고 개인적 욕망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을 약자로 판단한다. 277

 

일본인은 중국인처럼, 일체의 덕은 인애仁愛의 마음이 명하는 바에 의거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최초에 의무의 법도를 세우고, 제일 마지막에 몸과 마음을 다하고 모든 지혜를 동원해 그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를 덧붙인다. 285

 

마코토의 의미는 영어의 sincerity와는 다르다……. 서양인은 때때로 일본인이 어떤 사람에 대해 성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다만 그 사람이 그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286

 

일본인은 죄의 중요성보다도 수치의 중요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295

 

그들은 수치는 덕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수치를 느끼기 쉬운 사람이야말로 선행의 모든 율법을 실행하는 사람이다. 297

 

일본인 특유의 문제는, 일정한 법도를 지키며 행동하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행동 동기를 인정해줄 것이라는 안도감에 의지하여 생활하도록 길들여졌다는 것이다. 298

 

11장 자기 수양

 

미국에서는 자기 희생과 남을 위해 하는 일들 모두가, 다른 문화에서는 상호교환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308

 

일본인은 이제까지 항상 특히 기독교 선교사의 자기희생의 가르침에 대해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그들은 유덕한 사람은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자기 소망의 억압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308

 

윤회설은 일본적 사상의 틀이 아니다. 열반 사상 또한 일반 민중은 전혀 알지 못했고, 승려들이 이에 손질을 가하여 결국 없애버렸다. 학문을 한 승려들은 사토리(깨달음)를 얻은 인간은 이미 열반의 경지에 있다고 말한다. 열반은 지금 여기 시간의 한가운데에 있다. 315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육체와 정신이 대립한다는 교리이다. 315

 

그는 니체가 고대 그리스인에 대해 말한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기에 머물고, 시민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318

 

고대 그리스인처럼 섬세함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은, 요가 수행을 인간을 완전하게 하는 자기 훈련, 인간과 그 행위 사이에 머리카락 한 올의 틈도 없는 숙달을 획득하는 수단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319

 

정신적 훈련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스승을 모시는 일은 있어도, 스승이 서양적인 의미로 가르치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제자가 지기 이외의 원천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323

 

미국인이 양심이 없는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행에 당연히 수반되는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런데 일본이 동일한 표현(무심, 무념무상 )을 사용할 때는, 이미 굳어지지 않고 방해받지 않는 인간을 의미한다. 332

 

12장 어린아이는 배운다

 

일본의 생활곡선은 미국의 생활 곡선과 정반대이다. 그것은 큰 U자형 곡선으로, 갓난아기와 노인에게 최대의 자유가 허락된다. 유아기를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구속이 커지고, 결혼 전후의 시기에 이르면 자신의 의지대로 할 자유는 최저에 달한다. 이 최저선은 장년기를 통해 몇십 년 동안 계속된다. 그후 곡선은 다시 점차 상승하여 60세가 지나면 유아와 마찬가지로 수치나 외부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다. 336

 

일본인은 정부가 외국의 승인을 받기 위한 운동의 일환으로 선전하기 전까지는 나체로 목욕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자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은 매우 부끄러워했다. 353

 

여자는 이름에 대한 기리의 법도를 배우지 않으며, 사내아이처럼 중학교나 군대 교육이라는 근대적인 경험을 하지 않는다. 366

 

남자는 결혼 후 공공연히 밖에서 성적 쾌락에 빠지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조금도 아내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결혼생활의 안정을 위협하지 않는다. 373

 

일본인은 서양에서 말하는 순결한 부인 또는 음탕한 여자와 같은 고정적 관념이 없다. 나이에 따라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적합한 행동을 취한다. 374

 

그들은 미래에 천국을 그릴 필요가 없다. 그들은 과거에 천국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인간은 본디 선하고 신들은 자애로우며 일본인이라는 사실은 더없이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유년 시대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다. 375

 

서양인을 놀라게 하는 일본 남성의 행동적 모순은, 그들이 어린 시절에 받았던 훈육의 불연속성에서 생겨난 것이다. 덧칠을 한 다음에도 그들의 의식에는 그들이 자신의 작은 세계에서 작은 신이었던 시절, 마음대로 투정을 부릴 수 있었던 시절, 어떤 소망이든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의 깊은 흔적이 남아 있다. 380

 

스스로를 존중하는(자중하는) 인간은 이냐 이냐가 아니라,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이 되느냐 기대에 어긋나는 인간이 되느냐를 목표로 삼아 진로를 정한다. 그들은 세상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요구를 포기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부끄러움(하지)을 알고 한없이 신중하고도 훌륭한 인간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자기 가정에, 자기 마을에, 또한 자기 나라에 명예를 가져오는 사람이다. 이렇게 하여 빚어지는 긴장은 대단히 커서, 일본을 동양의 지도자이자 세계의 일대 강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고상한 대망으로 나타난다. 384

 

13장 패전 후의 일본인

 

전제적 권력이 표면에 드러나는 것을 철저히 방지하고, 일체의 행위는 언제나 실제 권력 행사에서는 분리된 상징적 지위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보이도록 온갖 노력이 기울여진다. 그런데도 가면이 벗겨져 권력의 근원이 드러날 때는, 일본인은 그것을 고리대금업자나 나리킨처럼 사리를 채운 자로 규정하여 그들의 제도에 알맞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인은 그들의 세계를 이런 식으로 보기 때문에 사리나 부정에 대해 반항하는 일은 있지만 결코 혁명가는 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세계의 조직을 파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찍이 메이지 시대에 행한 것처럼 제도 그 자체에는 조금도 비난을 퍼붓지 않고도 가장 철저한 변혁을 실현할 수가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복고, 즉 과거고 복귀하기라고 이름붙였다. 396

 

일본인은 양자택일적인 윤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전쟁으로 알맞은 위치를 얻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들은 이제 그 방침을 포기할 수가 있다. 여태껏 받아온 일체의 훈련이 그들을 방향 전환에 응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399

 

현재 일본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파업 또한 생산 속도를 둔화시키지는 않는다. 노동자가 공장을 점거하고 계속 일을 해서 생산을 증대하는 것으로 경영자의 면목을 잃게 한다 407

 

. 내가 저자라면

 

O 책의 특징 및 구성

이 책은 일본의 패전 이후 일본 통치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정부가 저자에게 의뢰하여 진행한 연구과제의 결과물이다. 국책 과제임에도 차이 자체에 주목하는 문화인류학의 관점이 유지될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책의 최대 장점이다. 서문과 역자 서문을 통하여 이 책이 출간 60년이 넘게 베스트셀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안 부루마가 지적했듯이 문화인류학자로서 저자의 지적인 명확함, 명료하고 쉬운 문체 또한 이 책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일본인의 의식체계와 일본 문화의 틀을 특징지우는 계층의식, 기리義理, 기무義務, 고孝와 주忠, 온恩, 현세의식 등을 적절한 사례와 함께 병렬로 엮은 목차 또한 무난하고 독자의 호기심을 고려한 배치로 지속적인 흥미를 유발시켰다. 다만, 원전에 본래 저자의 서문이 없었는지 사정이 있어 빠진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저자가 직접 쓴 서문이 없는 점이 아쉬웠다.

 

O 키워드를 중심으로

* 차이

일본의 패전은 역설적으로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형님국가임을 자칭하며 大東亞共榮이라는 거대한 명분을 내세워 세계대전을 일으켰지만 일본을 제외 한 어느 나라도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자신의 진실을 세계의 진실로 오해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일본 패망 전에 미국이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일본인과 일본문화의 뿌리를 이해하려 한 시도와 대조되는 부분이다.

 

차이를 인정하는 태도, 관용(tolerance)은 오늘날 선진사회의 특징 중 하나이다. 물론 똘레랑스의 의미 뒤에는 가진자의 오만이란 뉘앙스가 없는 바 아니지만 범위를 좁혀 개인의 범주에서 상대성의 존중은 언어에 앞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의식의 틀이라고 할만하다.

 

* 하지恥

 『국화와 칼』을 통해 일본인이 지극히 현세중심적인 사고를 지녔음을 알게 되었다. 단독자로서 대면할 神이 없고, 사후세계를 기대하지 않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생의 완성이고 그것의 가치는 주변사람들의 평에 좌우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들이 세상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요구를 포기할 수 있는 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줄 神이 곧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웃국가이긴 하지만 생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일본은 너무나 이질적인 나라로 다가왔다. 일본인이 양자택일적 윤리관을 추구한다거나 변혁을 추구할 지언정 근본을 뒤엎는 혁명을 추구하지 않는 건 그들이 머물 유일한 세계로서 현생이 주는 절박함 때문일 것 같다.

 

 * 이중성

   국화와 칼이란 책 제목처럼 일본인들은 상호 대조적인 것들을 함께 아우르고 있다. 이것이 일본인들이 자신을 질서의 관리자로 인식하기 때문은 아닐까. 자신의 품위를 관리하고, 가족과 사회의 위계를 관리하고, 주변의 기대를 관리하느라 그들은 홀가분하게 본능에 충실할 틈이 별로 없다. 하지만 하루 24시간 내내 질서의 관리자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책에서 소개된 몇 가지 사례는 질서의 바탕 위에서 교묘히 본능을 충족시키며 살아가는 일본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집주인이 평상복으로 갈아입기 전에 나는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 규정하며 손님 앞에서 스스럼 없이 옷을 갈아입는다거나, 남자가 결혼 후 공공연히 두 집 살림을 하는 것, 동성애자가 어른으로서의 위신을 생각하여 어린아이를 연애의 대상으로 삼는 것 등은 본능에 벌거벗을 때조차 질서의 투구는 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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