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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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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9일 15시 13분 등록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알랜B.치넨/ 이나미 옮김

 

 

저자에 대하여

 

알렌 B 치넨, 그녀는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의학박사이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캘리포니아 대학교 정신 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융 학파에 속하는 그녀는 옛날 이야기와 신화를 통해 인간의 심리 현상을 해명하는 여러 권의 책을 쓰기도 했다. 특히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은 칼 융의 분석 심리학적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중년이 되면 자연스레 생겨나는 갈등과 번민들을 재미있고도 편안하게 설명해 놓았다.

 

주요 저서로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 따뜻한 자매애로 위기를 극복하는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자세한 설명과 심리학적인 분석을 곁들여 기술한 <젊은 여성을 위한 심리 동화> <영웅을 넘어서>, <어른스러움의 진실> 등이 있다.

 

역자인 이나미는 10년 전 뉴욕으로 융 심리학 연구원으로 발탁되어 두 아들을 데리고 유학길에 오른 재원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20여명의 대가족 살림을 하면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그녀는 신경정신과 과장으로 있으면서도 문학에 소질을 보여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물의 혼>으로 등단을 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현 이나미 신경정신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의 저서로는 여자의 허물 벗기’,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 ‘딱 한 번만 보고 싶다’, ‘사랑의 독은 왜 달콤할까’, ‘에로스타나 토스등의 저서를 펴냈으며 역서로는 성의 침묵이 있다.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들

 

서문

 

중년기란, 너무나 중요하면서도 너무나 사적이기 때문에 경직된 방법론에 기대서 학술적으로 명료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또한 중년기의 문제들은 너무나 세밀하게 구조화되었기 때문에, 다른 이론가들처럼 <죽음에 관한 문제> <성 역할로부터의 해방>에 대해서만 파악하면 모두 해결된다는 식으로 한두 가지 원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10]

 

중년이란, 언제나 거기에 숨어 있긴 했지만 위장되고 분열되고 함입된 채 잊혀진 자기 자신과 새롭게 다시 만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11]

 

1 :서른 이후, 젊음의 마법을 풀어놓다.

 

대부분의 중년들은 자신들을 당나귀와 동일시할 것이다. 순수와 자발성, 그리고 젊은이들의 자유는 포기한 채 짐만 잔뜩 지고 사는 짐승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쉽거나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성장에는 분명 슬픔과 비탄의 요소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29]

 

마법의 정령들이 사라진 것은 성인들이 () 때문에 (놀이)를 포기하고 (책임) 때문에 (순수)를 버리게 될 수밖에 없는 경향을 상징하고 있다.[33]

 

마법의 상실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발달 과정상의 문제인 것이다. 이는 ()이 아니라 단지 성장의 결과)인 것뿐이다.[35]

 

인간은 첫 30년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산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들의 본래 인생의 기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에 당나귀에게서 빼앗은 18년을 더 살기 때문에 쉬지 않고 일하고 채찍질을 당하며 일상의 짐을 지고 살아야 한다. 다음의 12년은 개에게서 받았기 때문에 불 곁에 앉아 웅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숭이로부터 받은 나이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기가 좋은 대로 행동을 한다.[36]

 

마흔이 되어야 일종의 충격적인 통찰의 경험을 하게 된다. 즉 이제 그들의 꿈을 성취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37]

 

대부분의 어른들이 옛날 이야기들을 황홀함과 행복한 결말로 결부시킬지 모르겠지만 중년의 이야기들은 놀라울 만큼 또렷한 특징, 즉 젊은 시절의 마법을 잃어버린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중년은 희망의 만족 따위로 그냥 버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주연의 이야기들은 중요하지만 대부분을 불쾌한, 그러나 항상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통찰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40]

 

중년들은 보다 성스러운 완벽성, 순진성, 그리고 젊음의 이상을 잃어버리는 대신 노동과 고통에 대해 배운다. 젊음의 이상을 잃지 않겠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더 큰 재난이 닥치기 때문이다,[41]

 

신성한 마법은 젊은이들의 이상과 버전을 상징한다. 그런 야망은 세계의 평화에 대한 희망, 진정한 사랑에 대한 낭만적인 꿈, 운동 경기에서 챔피온이 되는 것 등의 여러 가지 형태를 지니게 된다. 다니엘 레빈슨등은 꿈의 내용이 사람마다 다르지만 꿈속의 신성한 힘은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47]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우상과 이상을 포기하고 결국에는 자기에게 맞는 만큼의 좋은 일을 하는데 만족하게 된다. 융 분석학자인 도널드 샌드너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젊은이들은 진정한 성인이 되기 위해 자신들이 갖고 있는 하느님과 유사성을 포기한다.[47]

 

젊은이들의 성스러운 마법을 희생하는 것은 종종 중년의 위기가 일찍 다가오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어떤 사람이 어느 날 잠에서 깨면서 자신의 상황을 절감하게 된다. <이제 나이 마흔인데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다. 이 세상에 내 자취를 남겨놓은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들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30대나 40대의 나이에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들이다. [47]

 

젊은 시절의 마법을 상실한다는 것은 단순히 마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 가족으로 또 다음 세대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회로 변하는 것뿐이다.[50]

 

중년의 기본적인 과제는 베풂의 미덕 (Generativity)이다. 이는 자기 자식을 돌보는 태도이자 다음 세대 전반, 즉 학생들, 피부양자, 후배들까지를 후원하는 태도를 뜻한다.[54]

 

책임 있는 베풂의 미덕은 개인적인 만족을 대치하는 것이다. 베풂의 미덕이란 각자의 작업에 대한 헌신의 형태를 띠게 된다. 프로이트는 사랑과 일은 성인들의 생활에 기초적인 것이며 일에 대한 헌신은 마치 사랑처럼 스스로의 생성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바 있다.

 

창조적인 영감을 현실로 변형시키는 과정과 유사하다. 작가는 자신들의 직관을 소설로 형상화하여야만 하고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직접 검증해야만 한다. 즉 오랜 노동과 헌신이 요구되는 것이다.[55]

 

다섯은 중년에만 있는 특별한 숫자이다. 다섯은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넷이 완전성과 완성을 상징한다면, 다섯이란 숫자는 넘침을 의미한다. 흰두교와 불교의 전통에는 다섯이란 오감과 연관이 되고 오감이란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것과 또다시 연관이 된다. 다섯이란 다섯 손가락을 의미하면서 잡고, 쥐고, 간직하고 숫자를 세는 일과도 통한다.[61]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며 보다 안락한 생활을 꿈꾸는 물질적인 관심은 중년의 제일 큰 과제이긴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탐닉할 경우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61]

 

마법의 상실은 슬픈 게 아니라 발달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일 뿐이고 이를 거절할 때는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상실이란 단순히 마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서 가족으로 또 다음 세대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도 사회로 변하는 것뿐이다.[61]

 

2 : 남자가 가는 길과 여자가 가는 길

 

중년 남자들은 동료들과의 관계나 가정에서의 행복을 보다 강조하게 된다. 나이 든 남자들은 사실 점점 더 집안의 잡다한 일을 더 하게 되고 자신의 용모에 관심을 더 많이 갖는다. 반면 <남자로 변한 여성>인 중년 여성은 남편을 리드하면서 그간의 습관들을 아주 빠른 속도로 깨버린다.[65]

 

모로코의 민담들은 중년의 성역활 바꾸기에 대해 극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야기 속에서 모든 남자는 백 개의 악마와 함께 태어난다. 그리고 소녀들은 백 개의 천사와 함께 태어난다. 해가 갈수록 남자와 여자는 서로 악마와 천사를 교환한다. 따라서 만약 백년을 산다면 남자는 백 개의 천사를 갖게 되는 것이고 여자는 백 개의 악마를 갖게 되는 것이다.[75]

 

여성들은 만약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내세울 때 가까운 이들로부터 소외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이는 사실상 헌신적으로 있을 수 있는 공포이기도 하다. 일터에서 그들은 떳떳하게 사는 여성들에 대한 예민하면서도 무의식적인 편견들을 본다. 집에서는 남편들이 너무 자기 주장이 강한 아내에 대해 위협감을 느끼기도 한다. [81]

 

만약 젊은이들이 타인에게 <투사>를 하지 않고 자신의 단점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세상에 나가 위험을 무릎 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쉽게 비난하면서 젊은이들은 세상에 반항할 수가 잇고 용감하게 인생에 뛰어드는 것이다.[82]

 

적극적으로 문제를 개선하려는 태도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성숙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82]

 

중년의 이야기에서는 여성의 현명함은 칭찬받을 만한 것으로 그려진다. 사실 여성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통합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는 정도 교활해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가 많다.,[86]

 

중년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여성의 억압은 대부분의 문화에서 보이는 어두운 현실을 반영한다.[98]

 

여성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자신들의 권위를 여성들이 주장할 때 바뀌게 된다. 자신이 비상하는 이미지는 중년 여성들의 꿈이나 공상 속에서 보다 확실하게 두드러진다.[106]

 

남자가 자신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했을 때만이 여성들은 숨어 있는 자신들의 힘과 재능을 발견해 내고 자기 자신에게 의지해 일어나는 것이다.[109]

 

때때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은 마음속에서 어떤 형태를 갖춘 채 꿈이나 공상에 나타난다. 융은 이들 신비하고 매력적인 남성상을 <아니무스>형태라고 말했다. 그는 아니무스가 여성의 남성적 측면, 즉 당당함, 독립성, 힘 등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110]

 

숫자 5는 중년의 중요한 과제인 불균형과 실수를 조화와 자아 정체성으로 변화시킴을 잘 요약해 주고 있다.[113]

 

여성들이 개인적인 흥미나 직업을 추구하게 되면 폐경이란 하나의 해방으로 다가올 수가 있다. 아이들이 없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폐경>이란 단지 좁은 의미에서 어머니로의 역할에만 자신을 얽어 매는 여성들에게만 우울할 뿐이다. 대부분의 비서구 여성들은 폐경을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폐경이 지난 여성들은 많은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사회적 금기에서 자유롭다.[121]

 

현대 여성들은 중년이 되어 그들의 재능을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많은 젊은 여성들은 진취적이고 독립적이면서 내향적이고 동시에 자주적이다. 주연이 되면 오히려 좀더 내향적이고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성향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과제는 언제 그것이 힘과 친밀성에 관해 중년이 되면 이해하게 되고 그들이 젊어서는 내버려두었던 반쪽과 대면하게 된다.[129]

 

3 서른 이후 , 운명을 받아들이다.

 

중년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의 세월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남아 있는 나이를 생각할 때 시작하는 것이다.[135]

 

죽음의 문제는 중년 이야기에서 특별한 것이다. 청소년 이야기는 죽음을 가볍게 다루고 젊은 영웅들은 대개 죽음의 신을 피하거나 속인다. 노년의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도 약시 죽음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노년의 이야기들은 죽음을 단순히 삶의 한 사실로 다룰 뿐, 삶의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죽음의 공포는 실제의 삶에서 중년의 위기를 유발하고 죽음의 공포가 크면 클수록 고통은 더 강렬해진다..[137]

 

죽음은 종종 생성의 가장 좋은 스승이 된다.[142]

 

중년의 남녀는 일에 몰두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식이요법을 하면서 죽음의 불가피성을 부정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청춘의 감각을 되살리려고 나이 어린 연인들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노력 중 어떤 것도 성공하지 못한다.[145]

 

어떤 사람이 요술병에 죽음을 잡아 넣었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죽지 않기 때문에 전세계에 걸쳐 많은 문제들이 일어났다. 아픈 사람은 끝도 없이 고통스러워했고, 노쇠하고 허약한 사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예수와 베드로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 사람에게 죽음을 풀어주도록 했다. 죽음은 갇혀 있기에 너무나 중요한 존재였다.[149]

 

여성은 어느 문화에서든 남성보다 죽음의 공포를 더 표현하며 죽음에 대한 불안감에 있어 높은 점수를 기록한다. 그러나 여성은 대개 그들의 공포에 관해 개방적인 반면 남성은 습관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포함한 모든 불안을 부정하고 축소한다. 이것이야말로 죽음에 관한 중년의 이야기에서 남성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가 된다. 이 이야기는 남성이 의식적 삶에서 회피하고 억압하는 문지들을 끄집어 내고 있다.[153]

 

여성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역할을 하기 위해 일찍 사회화 되는 반면 남성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남성에게 있어 베풂이란 중년에 들어서 배우기에 훨씬 더 어렵다. 베풂이 죽음의 공포를 없애는 데 중요하기 때문에 남성은 죽음에 관해 좀 더 많은 문제를 갖게 된다. 남성과 여성은 중년에 정반대 방향에서 죽음에 접근한다. 남성에게 있어 죽음에 직면하는 것은 대부분의 중년 남성들이 그러하듯 절망적이다.  여성에게 있어 죽음과의 조우는 종종 자유스러운 것이 된다. 여성은 그들의 삶이 다 끝나감을 깨달으면 전형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을 개척한다. 죽음은 그들에게 매력적인 왕자를 기다릴 수 없음을 경고한다.[153-154]

 

중년의 여행은 근본적으로 내적 탐험이며 무의식으로서의 순례 여행이다.[157]

 

젊은 시절의 정신과 비교해 볼 때 중년의 비극적 관점은 우울하고 침울한 것같이 보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중년에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유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159]

 

운명은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성공에 익숙해 있는 누구에게나 경험되는 문제이며, 중년에 는 무기력과 연약함에 직면하도록 강요한다.[166]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년에 반성적이고 철학적인 태도를 발전시켜 나간다고 확인해 준다. 성숙함은 <큰 그림>을 몰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며 이것은 종종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직관을 향한 변화와 관련된다.[168]

 

운명이나 행운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대 그리스풍으로 말하자면 비극적(tragic) 예견에 굴복하는 것이다. 비극은 불행한 결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형성하는 통제할 수 없는 힘을 통찰하는 것을 의미한다.[169]

 

그녀는 강렬하고 신비로운 평화와 즐거움의 순간을 경험했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때에 일어났다. 그녀가 해변을 걷고 있을 때, 또는 숲속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아침에 고양이와 같이 식사할 때 이러한 새로운 경험의 아이러니에 주목했다, 그녀는 예전에 그러했듯이 더 이상 오랫동안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운명의 수용은 자유로운 것이었고 그녀의 인생에 즐겁고 명상적인 단계를 시작할 수 있게 했다.[171]

 

운명, 행운 그리고 자신의 통제를 능가하는 힘과의 갈등 같은 똑 같은 문제가 중년의 대부분의 남녀와 부딪히게 된다. 운명은 또한 많은 형태를 띤다. 직장에서 물러나는 것, 자식들의 얄물 문제와 씨름하는 것, 치매에 걸린 부모를 돌보는 것, 어떤 이름으로, 어떤 설명으로든 운명이나 행운은 중년에 그의 의무를 요구한다.[172]

 

심리 분석가들은 젊음을 부러워하는 것이 젊은이와 자녀들에 대한 중년의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한다. 중년의 오이디푸스적 질투를 이기지 못하고 베풂의 미덕을 발전시키는 데 실패한 사람은 자신의 괴로움과 분노로 소모되고 만다.[173]

 

중년의 오이디푸스적 갈등은 남성의 또는 여성의 심리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부모와 지도자 즉 다음 세대에 의해 어떤 방법으로든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심리를 다룬다. 심리학자와 심리 분석가들은 젊음을 부러워하는 것이 질투와 증오 중년의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한다. 만약에 개인이 인간 마음속에 이러한 어둡고 그늘진 면을 체념하지 않는다면 많은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183]

 

운명은 그것 자체로는 중년의 질투를 해결하지 못한다. 운명이 부여하는 것은 다소 비극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이다. 인간의 통제력을 능가하는 힘의 수요이다. 중년의 비극적 통찰의 발전은 남녀가 인생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도록 도와준다.[185]

 

4 : 서른 이후, 삶을 깨닫다.

 

젊은이들과 중년은 세상을 대하는 데 대조적인 태도를 취한다. 젊은 사람들의 세련되고 미적인 감각과, 중년의 거칠지만 효과적인 실용주의가 그것이다. 이것은 젊은 시절에 대개 익히는 책 속의 이상과 인생의 성숙함에서 오는 실용성의 차이로 비유할 수 있다.[193]

 

성숙한 성인은 책에서 배우는 것과 삶에서 배우는 것을 구별하며 후자가 그들에게는 더 실리적이라는 것을 안다.[198]

 

다른 사람과 공감하기 위해서 개인은 다른 사람이 느끼고 경험하는 것을 상상해야만 한다. 이것은 타인의 복잡한 인격의 유형을 해석할 것을 요구한다. 공감은 과학과 관련된 똑 같은 추산적 사고를 사용하며 단지 사물과 사고보다는 사람과 감정을 다룬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201]

 

나는 단지 나의 본질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동시에 나는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점에 나의 본질을 일치시켰다. 그리고 나는 옳은 것을 안다. 나의 본질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다. 세상에서 나를 지치지 않게 하고 나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나로부터 뒷걸음치지 않는 유일한 것이다.[202]

 

여성은 그들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단순히 주관적인 듯한 것이 심오하고도 우주적으로 인간적임이 판명된다. 마지막 단계에서 여성은 개인적이고 사고적인 지식에 대한 그들 최초의 관심과 공적이고 우주적인 통찰력과 균형을 이룬다.[203]

 

전통적으로 남성은 로고스를 시작하여 에로스를 포용하는 반면, 여성은 에로스로 시작하여 그 다음에 그들의 삶에서 로고스와 통찰한다. 냠녀 모두에게 있어 성숙이란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의 이성적 유형의 조화를 요구한다.[203]

 

악에 대한 관용은 중년의 미덕이다. 몇 년 간의 삶을 경험한 후에 남자와 여자는 고통스럽게 괴로움과 악을 깨닫고 또한 종종 상황을 바꿀 수 없음을 깨닫는다. 중년의 지혜는 바로 이러한 비극적 통찰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207]

 

심리적으로 젊은 남녀는 악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할 뿐 결코 그들 자신 안에 악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모든 것들 중에 가장 어려운 악, 즉 자기 자신 안에 악을 산뜻하게 회피한다.[210]

 

이탈은 중년에 항상 존재하는 유혹이다.[213]

 

유머란 그저 웃어넘기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지혜인 것이다. 유머는 중년의 여성과 남성이 인생의 비극적인 면을 다루는데 큰 힘이 된다.[222]

 

유머는 깊은 공감력, 자기 확신, 그리고 창조적 재능과 비례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유머는 대처 능력 중 가장 고귀하고 성숙한 방식이라고 말 한 바 있다.[228]

 

유머는 중년의 여성과 남성이 인생의 비극적인 면을 다루는 데 큰 힘이 된다. 이 주제는 죽음에 이르러서 자신의 자리를 내줘야 하는 문제를 농담을 통해 극복한 제왕 이야기에 이미 등장한다. 프로이트가 지적한 바대로 유머는 인간에게 죽음의 불가피성을 극복하고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해준다. , 죽음조차도 농담의 재료로 만드는 것이다. [231]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깥에서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을 소재로 농담을 할 수 잇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과는 상관없는 상황을 볼 때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너무 완전히 상관하지 않을 때는 무관심과 냉정한 객관성만을 지닐 수 있을 뿐이지 유머가 나오지는 않는다. 몰입과 적당히 유지되는 거리는 유머의 핵심적인 조건이 된다.[234]

 

유머는 아이러니뿐 아니라 착각이나 적개심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치유라는 또 다른 덕목과도 관계가 있다. 성경에서 말한 대로 <즐거운 마음은 좋은 약과도 같다> 심리적으로 유머의 역할은 명확하다. 즉 스트레스와 비극을 완화시켜 주는 것이다. 유머는 신체적인 치유도 원활하게 해준다.[235]

 

치유란 중년의 중요한 관심사이고 중년의 이야기는 놀랄 만큼 이 문제에 대해 여러 통찰을 준다.[236]

 

젊은이들은 치료되지 않는 상처도, 낫지 않는 고통도 있다는 인생의 어두운 부분을 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반면에 중년들은 인간 조건들의 비극적인 차원을 경험하고 나서야 보다 깊은 동정심을 배우게 된다. 이는 중년들이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게 하는 덕목이 된다.[237]

 

여성들의 억압은 단순히 남성으로부터 오지 않고 전체 문화, 특히 여성에 대한 여성의 걱압과 이웃에 대한 이웃의 억압으로부터 온다.[241]

 

젊은이들에게 치료란 영웅주의에 속하는 무언가를 해내는 또 다른 한 가지 방법이다. 치료란 영웅주의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너무 멀리 지나치게 되어 치료의 힘을 놓치고 결국 생명도 잃게 된다. 중년 이야기에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 치유의 능력을 남용하지 않는다. 치료란 힘이나 영광의 수단이 아니라 역경과 비극을 극복하는 방법이다.[243]

 

치유는 정말 놀랍게도 노인들에 대한 옛날 이야기에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노인에게 질병이 훨씬 더 일반적인 상황임에도 노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치유보다는 초월에 더 관심이 많다. 노인들은 몸을 고치는 대신 신체적인 과심을 넘어서는 승화와 정신적인 통찰을 얻게 된다. 노인들은 물질적인 세계로부터 후퇴하게 되는 것이다. 중년들은 세상의 책임을 같이 져야 하기 때문에 그런 호사스러움을 가질 수가 없다. 중년들은 물질적인 관심에 빠져 잇고 천천히 쇠약해지는 육체에 갇혀서 자연히 치유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243]

 

질병이란 각 개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삶을 반성하고 그들의 어두운 부분인 잘못과 단점, 악덕들을 반성하게 된다.[245]

 

자기 반성과 재생이라는 치유의 과정은 사실 정화의 경험이다.[245]

 

페르소나가 중년에 이르러 비틀거리면서 각 개인들은 내면으로 향하도록 강요된다. 이상적으로는 각 개인은 내면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자원들을 발견해야 한다. 이것이 치료와 재생의 내적 에너지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런 깊은 영감이 신과의 접촉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랑, 생명력, 신비, 죽지 않는 영혼에 대한 내적인 갈망이 된다.[246]

 

치유와 재생이 절망과 고통 속에 감추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유의 악마적 측면은 질병이란 사악한 것이며 나쁜 귀신이 원인이라는 거의 세계적인 인류의 믿음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자신이 그 원인이기 때문에 악마적 존재는 질병을 고칠 수도 있는 것이다.[261]

 

중년이 되어서야 젊은 시절의 억압이 사라지고 거칠고 다듬어진 정신적 에너지들이 전면에 나선다. [262]

 

중년의 개인들은 오랫동안 고통받아야 한다는 자신의 몫을 기억하고 성숙의 생성을 위해 젊은 시절의 영웅주의를 버림으로써 이런 자아 팽창과 원시성을 피한다. 정말로 젊은이들은 무의식의 원시적인 에너지들과 직면할 때 에고가 대개는 압도되어서 정신병이 생기기도 한다. 대재는 중년이 되어 확고한 에고를 확립한 이후가 되어야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원시적 생명과 안전하게 접촉할 수 있다. [265]

 

젊은 시절에 확립해 놓았던 개인적인 확신, 헌신들, 가치관 그리고 사회적 역할이 중년에 이르러 파괴된다. 이는 마치 황금나무의 가지와 잎들이 소용돌이 속에서 없어졌다 다시 형성되는 과정과도 비슷하다.[268]

 

왕비는 노인의 집에서 잠이 든 후 황금의 나무가 아름다운 정원에서 자라는 꿈을 준다. 그녀의 꿈은 평화롭고 생기를 주게 한다. 이는 똑 같은 나무가 등장하는 왕의 악몽과 대비가 된다. 이런 차이는 남자와 여자가 중년에 겪는 변화를 반영한다. 그 전에 말한 바대로 남자들은 보통 이 시기에 기진맥진한 인생을 보내야 하는데, 이는 젊은 시절에 즐겼던 영광과 명예를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반면에 여성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힘과 자발성 그리고 자아 정체성을 깨닫기 시작하여 젊은 시절에 고통스럽게 겪었던 억압과 균형을 맞추게 된다.[271]

 

황금이 녹아 공기와 맞닿으면 식어버려 나뭇잎과 가지가 되어버린다. 이런 가지들은 다시 샘으로 떨어지고 다시 녹아 내린다. 공기로 뿜어나오면 또 다시 새로운 나무와 가지가 된다. 이는 중년에 거쳐야 할 과정들을 단숨에 요약해 준다. 젊은 시절에 확립해 놓았던 개인적인 확신, 헌신들, 가치관, 그리고 사회적 역할이 중년에 이르러 파괴된다.. 이런 삶의 구조들이 중년에 이르면 녹아서 다시 재형성되는데, 이는 마치 황금나무의 가지와 잎들이 소용돌이 속에서 없어졌다 다시 형성되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녹아내리는 샘은 인간이 중년에 다시 형성되는 과정과도 비슷하다.[281]

 

어떤 시점에 이르러 특별한 목표를 지니고 있고 또 상황이 바뀌면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 남성상과 여성상의 원형은 플라톤의 영원한 이상들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삶의 구조물들처럼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 목표를 재수정한다.[287]

 

융은 연금술의 심리적 상징들을 광범위하게 탐색한 바 있다. 그는 납이 황금으로 변하는 것에 대한 연금술의 논의는 중년에 일어나는 심리적 변환을 상징한다고 했다. 연금술에서의 첫 단계는 니그레도 즉 검은색의 시기이다. 이때 모든 것은 다 부서져서 원형의 물질로 변한다. 이는 우울과 고통을 경험하는 중년과 통한다. 이때가 되면 그 동안 편안하고 친숙했던 역할들은 모두 녹아버린다. 그 다음에 알베도, 즉 배색의 시기가 온다, 이는 젊은 시절에는 억압했지만 중년의 위기시 다시 제기되는 갈등들과 과제들을 다시 재작업하는 것의 비유이기도 하다. 세번째 연금술의 단계가 루베도, 즉 정열을 포함하는 적색의 시기이다. 이는 무의식 속에 있는 보다 원시적인 치유의 생명력과의 조우를 상징한다. 따라서 연금술이란 중년에게는 극적인 은유이기도 하다. 납이 금처럼 고귀한 금속이 되어가는 것처럼 기본적인 요소의 변이는 중년의 도전을 반영한다. 즉 질투나 죽음 혹은 고통과 같은 인생의 어두운 부분을 변형시켜 지혜와 성숙한 베풂의 의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290]

 

이 이야기들은 스스로 변하고 발전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이야기들은 또한 미래가 되면 녹아 없어지고 재형성될 것이다. 이야기는 상상력이란 시원적 샘물과 인간 영혼의 창조성이라는 보다 깊은 실재로부터 솟아났다. 그리고 이는 중년을 병들게 하는 전복과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통찰과 재생 그리고 치유가 기다리고 있다는 중년 이야기들의 궁극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292]

 

에필로그

 

중년에 대한 이야기들을 요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와 비교를 해 보는 것이 되겠다. 두 개의 장르는 나란히 놓고 볼 때 젊은 시절과 중년의 다양한 과제와 뚜렷한 통찰들을 훨씬 더 잘 볼 수 있게 한다.[293]

 

중년이란, 짐을 잔뜩 싣고 가는 당나귀일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때 조금 더 어렵고 깊이 있는 전복이 일어난다. 짐만 싣고 살아야 하는 당나귀와는 달리, 인간은 두번째 인생으로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293]

 

 

내가 저자라면

 

중년이 가야할 여행은 아직도 길고 복잡하다

 

이야기란 자신만의 무의식으로 가는 명확한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으로부터 다시 깨달았다. 이 책에서 이야기는 사람을 자유롭게 놔두도록 하는 일종의 주문처럼 작용했다. 마치 할머니가 해주시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 어린 시절에 선과 악을 깨우쳤던 경험과 유사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를 통해 어떤 !’ 의 느낌을 받는데 이는 마치 정신분석의 자유연상과 유사한 과정을 거쳐 무의식이 드러나게 도와준다. 프로이드나 융의 단어로 애기하면 옛날 이야기란 일종의 꿈과 같지만 꿈보다 범세계적이고 누구나 공감하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더욱이 중년의 이야기들은 중년의 과제들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페미니즘적이어서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이용하여 엄청난 사회적인 저항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옛날 이야기들의 치유력은 수세기 동안 인정되어 온 바 있다.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사람들의 생활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데 이용하고 있는데, 중년의 이야기도 치료적인 동시에 사람들에게 희망과 지혜, 그리고 중년의 갈등과 의심들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을 해주고 있다.

 

나를 찾아가는 여행

 

나는 중년인가? 요즘 인간의 평균 수명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나는 아직 중년이 아니라며 슬쩍 피해 보려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중년을 살고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고, 중년이 겪는 많은 것들을 지금 겪고 있고 앞으로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중년의 과제는 중년의 도전을 반영하여 인생의 어두운 면을 변형하여 지혜와 성숙한 베풂 의식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중년, 우리의 인생을 사계절로 구분해 본다면 중년은 분명히 가을이다. 가을은 성숙의 계절이요 수확의 계절이며 또한 고독을 동반한 낭만의 계절이기도 하다. 중년기는 인생에 있어서 황금기라 말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다. 하지만 중년기는 전체 삶의 단계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를 겪는 시기이며 여러 가지 심각한 위기와 갈등들을 겪는 시기이다.

 

지금까지 내가 중요하게 여겨왔던 많은 것들을 갑자기 상실해 버릴 것 같은 허무한 느낌 역시 갑자기 찾아 오는 준비되어 있지 않은 손님과 같이 당황이 된다. 심리적 변화, 신체적 변화로 인해 어디론가 멀리 사라지고 싶은 마음,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유혹들이 자주 머리에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이런 변화들로 가치관이 흔들리기 쉽고, 과거에 세웠던 목표들을 성취하지 못하고 이대로 끝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오며, 성취했다고 해도 그것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는 날도 있다. 과거에 대한 평가와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현재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중년기에 경험하는 것들인 것 같다. 중년기에 오는 이러한 위기와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개인에게 변화와 성장의 두 번째 기회의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중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중년기에 들어선 사람은 정립된 가치관을 중심으로 자기의 삶을 중년기에는 내적인 에너지로 쏟아내야 할 때 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이 책의 주제로 남은 성숙베풂이 이 겨울 마음속 가장 깊고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작은 문을 열고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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