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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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저자에 대하여>
전 세계에 글쓰기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자 시인이며 소설가다. 오랜 세월동안 동양적인 가치를 체험하며 배우고 느낀 것들을 글 속에 담아냄으로써 글쓰기를 갈망하는 독자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전해왔다. 작가의 삶을 동경하면서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때로는 강철처럼 단단하게 때로는 어머니처럼 따듯하게 등을 두드리며 “머뭇거리지 말고 펜을 들라”고 독려하는 글을 써왔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수업에 참가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으며, 여러 권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그녀의 집필과 강의, 명상 등 인생 전반에 대해 동행취재 하였으며, 2006년에는 밥 딜런의 생애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Tangled Up In Bob>의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전 세계 14개 언어로 번역된 <Writing Down the Bones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비롯하여 <Old Friend From Far Away> <Banana Rose>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Wild Mind -Living the Writer's Life 글쓰며 사는 삶> 등이 있다.
특히 1986년 자신만의 독특한 글쓰기 철학을 담은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출간하면서 미국인들의 글쓰기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이 책은 백만 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하면서 세계 각국으로 번역되었고, 글쓰기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보아야할 새로운 바이들로 떠올랐다. 출간된 후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독자들의 이러한 열기는 식지 않아서 이 책은 현재에도 아마존 베스트셀러 상위를 점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자신이 25년간 이어온 禪체험과 글쓰기를 접목시킨, 혁명적이고도 강력한 글쓰기 노하우를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한 작법론이 아니라, 진정한 창조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내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지를 일깨우는 데까지 이른다. 그녀가 말하는 창의력의 비밀은 글을 첨가하는 것이 아닌 ‘덜어내기 법칙’이다. 글쓰기에 대한 이런 독특한 관점은 오랜 명상 체험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용맹한 전사처럼, 때로는 깊은 통찰력을 가진 현자처럼 삶과 글쓰기를 관통하는 어떤 진실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http://www.nataliegoldberg.com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 추천의 말
p5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수용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
*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p.15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학창시절 A학점을 받았던 답안지처럼 기가 막힌 답이 나올 수는 없었다. 이때가 내가 자신의 마음만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 최초의 시기였다.
p.16 언젠가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네가 사랑을 믿을 때만이. 사랑이 네가 가야할 길을 이끌어 주는 법이지.” 나는 여기에 조금 덧붙이고 싶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믿음을 갖고 계속해서 밀고 나갈 때만이, 그 일이 자신이 가야 할 길로 이끌어 주는 법이지.”
p.16 여러분에게 안정된 삶의 방식을 가지려고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당부하고 싶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시작할 때 이미 당신은 끝까지 그 일을 따라갈 깊은 안정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p.16-17 어디서 누구를 가르치든 나는 항상 똑같은 방법론을 주장한다. 바로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이 경험한 인생에 대한 확신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아무리 반복해도 싫증이 나지 않을뿐더러 나 자신을 더욱 높은 이해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p.17 글쓰기를 배우는 길에는 많은 진리가 담겨 있다. 실천적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겠다는 뜻이다. 글쓰기 공부는 일차원적인 과정이 아니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A에서 B를 거쳐 그 다음은 C로 가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없다. 이것이 내가 글쓰기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진실이다.
p.17-18 이 책에 소개하는 방법들은 상황과 형편에 따라 달라진다. 그때그때 가장 알맞게 적용되는 기술이 다르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어느 하나의 방법만이 절적으로 옳고 다른 것은 틀린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p.18 수업을 할 때 나는 학생들에게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고 요구한다. 자기 마음의 본질적인 외침을 적으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여러분 분명하고 아주 솔직하게 써야 해요”라는 말만 던져 버린다면 그것은 선생이 아니다.
p.18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은 긴장을 풀고, 몸과 마음 전체로 이 책을 흡수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읽는 데서 끝내지 말라. 부디 써라. 그리고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요구가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여러분이 이 책을 쓰임새 있게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 첫 마음, 종이와 연필
p.19 나는 첫 번째 수업을 무척 좋아한다. 글쓰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글 쓰는 사람으로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그 ‘첫 마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첫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돌아가야 하는 자리일 것이다.
p.19 솔직히 나는 새로운 글을 쓸 때마다 전에 어떻게 글을 완성했었는지 의아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글쓰기는 매번 지도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생이다.
p.22 노트에 글을 쓰지 않고 직접 타자기로 치는 경우도 생각해봐야 한다. 글쓰기는 정신적이면서 동시에 육체적인 작업이기에 사용하는 도구와 장비에 많은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나는 감정적인 글을 쓸 때는, 적어도 처음에는 직접 손으로 쓴다. 손으로 쓰느느 것이 심장의 운동과 더욱 가깝게 연결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이나 긴 이야기를 쓸 때는 주저없이 타자기 앞에 앉는다.
p.23 내면 세계가 외부 세계를 창조한다는 말은 참말이다. 하지만 이 외부 세계와 우리가 쓰고 있는 연장 또한 우리의 사유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하늘에 대고 글쓰기를 하지 못할 것도 없다.
p.23 글쓰기를 위한 연장을 신중하게 선택하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잇는 시간보다 문구점에서 헤매는 시간이 더 길어질 정도로 장비를 구하는 데 겁을 먹지는 말라. * ‘첫 생각’을 놓치지 말라
p.24 명상법 중에는 방석에 다리를 포개고 앉은 다음, 등을 곧게 펴고,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리거나 또는 앞으로 내미는 좌선법이 있다. 이때는 하얀 벽을 바라보며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해야 한다. 좌선을 하는 동안 수행자는 어떤 감정이 찾아오든지(회오리바람처럼 강력한 분노와 저항심, 천둥같이 크게 울리는 기쁨과 회한 등) 등을 펴고, 다리를 포개고, 벽을 마주보고 앉은 처음 자세를 끝까지 견지해야 한다. 감정과 사유에 대한 집착을 흘려 보내는 것, 끝까지 계속 앉아 있는 것, 이것이 좌선의 규칙이다.
p.24-25 글쓰기도 이와 똑같다. ‘첫 생각’과 만나서 거기서부터 글을 퍼낼 때 당신은 싸움에 나선 전사가 되어야 한다. 특히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감정과 에너지의 힘에 지렬 겁을 먹을지 모른다. 하지만 손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생각의 심장부로 뚫고 들어가도록 손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
p.25 자신의 감정을 넘어서야만 저 반대편 심장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눈물을 넘어 진실을 파고들라. 이것이 원칙이다.
p.25 시간의 길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글쓰기에 할애한 시간이 얼마이든 간에 그 시간동안만큼은 글쓰기로만 완전하게 채우도록 집중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도움이 될 것이다.
p,25-26
° 손은 계속 움직이라. 방금 쓴 글을 읽기 위해 손을 멈추지 말라. 그렇게 되면 지금 쓰는 글을 조절하려고 머뭇거리게 된다.
° 편집하려 들지 마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가라.
° 철자법이나 구두점 등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 여백을 남기고 종이에 그려진 줄에 맞출려고 애쓸 필요 없다.
°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 생각하려 들지 말라. 논리적 사고는 버려라.
° 더 깊은 핏줄로 자꾸 파고들라.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거기에 바로 에너지가 있다.
p.26 목표에 닿기 위해서는 이 규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목표는 첫 생각에 불을 활활 붙여 주는 것, 사회적 체면 또는 내면의 검열관에게 방해를 받지 않고 에너지의 심장부에 도달하는 것, 피상적인 느낌이 아니라 진짜 마음이 보고 느끼는 것을 쓰는 것이다. 이 규칙을 지키다 보면 괴팍하기 그지없는 우리 마음의 정체를 들여다 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닳아빠진 사고의 끄트머리를 계속 탐색해야 한다.
p,26 첫 생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마음에서 제일 먼저 ‘번쩍’하고 빛을 낸 불씨다. 이 불씨의 뿌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잠재력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 불씨는 대개 우리 내부의 검열관에 의해 진화되어 버린다. 두 번, 세 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우리의 의식은 일상의 관념 세계로 다시 돌아와 맨 처음 피어난 신선한 불꽃과 교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p.27 첫 생각은 에고 또는, 우리를 통제하려고 드는 논리적인 메커니즘(세상은 영구불변하며, 견고하고, 지속적이며,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에 얽매이지 않은 생각이다. 세계는 불변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실들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자신의 의식 차원을 넘어선 글을 쓸 때, 그것은 있는 그대로 사물의 진실을 나타낸 것이 된다. 그래서 이런 글은 에너지가 넘칠 수밖에 없다. 글쓰기를 가로막던 ‘에고’라는 짐을 벗어 던지는 순간 당신은 더 큰 조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p.27-28 어째서 첫 생각에는 이처럼 굉장한 에너지가 들어 있는 것일까? 첫 생각은 참신함 그리고 영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감이 오는 순간에 당신은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번득이는 첫 생각과 만나는 순간, 당신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큰 존재로 변화한다. 우주의 무한한 생명력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첫 생각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당신이 그동안 겪어 온 감정과 사건과 정보가 밑바탕이 되어 발산되는 것이기에 엄청난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이것이 바로 첫 생각이 가진 에너지다.
p.28 "당신이 바로 지금, 현재에 존재할 때, 세상은 진정으로 살아 움직이게 된다,“
* 멈추지 말고 써라.
p.29 글쓰기 훈련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몸과 육체를 믿는 법, 다시 말해 인내심과 공격하지 않는 마음을 키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p.29 예술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세계다.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간에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법칙은 없다. 진짜 중요한 것은 작품과 더불어 우리의 삶을 꾸려 나가는 과정이다.
p.29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시와 소설을 방편으로 삼아 진정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p.30 티베트 불교 승려인 초감 트룽파는 이런 말을 했다. “무서운 적을 만나게 되더라도 계속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겹겹이 쌓여 있는 마음의 층을 벗겨 내야만 합니다.”
p.30 글씨기 훈련은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마음을 지속적으로 열어 나가게 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스스로에 대해 믿음을 키워 나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옳았을 때만 좋은 글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글쓰기 훈련은 진정으로 쓰고 싶어하는 어떤 것을 쓰기에 앞서 몸을 데우는 워밍업 단계다. 훈련은 작품을 만들어내기 전에 거쳐야 하는 가장 기초적이며 본질적인 바탕 그림에 해당한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법을 배운 다음 글을 쓰게 되면, 그것이 사업상의 서류이든 장편 소설이든 박사논문이든 또는 여행기이든, 그 글에는 힘이 실리게 된다.
p.30 소설을 쓰겠다는 결심은 좋다. 하지만 훈련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p.31 달리기는 마찬가지로 글도 많이 쓰면 쓸수록 실력이 향상된다.
p.31 육상 선수들은 달리기가 힘들고 지겨워져도 달리는 행위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연습을 쉬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서 계속 달리고 싶게 만드는 뜨거운 열망이 찾아올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더구나 열망은 절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거나 회피하는 사람에게 저절로 생각지 않는다.
더욱이 규칙적으로 달리기 훈련을 하게 되면, 이 훈련 자체가 저항감을 잘라내고 무시해 버릴 수 있는 또 다른 훈련이 된다. 당신은 계속 달린다. 이렇게 한참 동안 달리다 보면 당신은 어느새 달리기를 사랑하게 된다. 게다가 목적지가 보이게 되면 절대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골인을 하고 난 후에는 다시 또 달려 보고 싶다는 갈증에 사로잡힌다.
p,31 글쓰기도 훈련을 통해서만 실력을 쌓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깊은 자아를 믿게 되면, 이제 그곳에는 글쓰기를 두려워하라는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설 자리가 없어진다.
p.32 만약 당신이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무언가 위대한 작품을 쓰리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대개 커다란 절망으로 끝나기 쉽다는 걸 명심하라. 이런 기대감이 글쓰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p.32 나는 한 달에 노트 하나를 채우는 것으로 내 임무를 다 한다(나는 작품을 쓸 때마다 나 자신만을 위한 글쓰기 안내서를 항상 새롭게 만든다). 그저 이 노트를 채우면 그만이다. 그것이 내가 정한 나의 글쓰기 훈련법이다. 물론 매일 글을 쓰는 것을 이상적인 방법으로 정해 놓았다. 이것이 나한테만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이것을 지키지 못할 때도 스스로를 심판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으려 한다. 아무튼 자신의 이상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 몇 안 되지 않는가.
p.33 나는 점점 더 확장되고 느슨해진다.
p.33 나는 그들의 모습을 슬쩍 보기만해도 그들이 얼마나 몰입하고 잇는지, 그 주어진 시간에 얼마나 충실하게 ‘현존’하고 있는지 여부를 금세 알아차린다. 진지하게 글에 빠져 있는 학생의 몸은 점점 느슨해진다.
p.33 글쓰기 훈련은 당신의 인생 전체를 끌어안을 것이다.
p.34 지금 당장 자리에 앉으라. 지금 당신의 마음이 달려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적어 내려가라. 제발 어떤 기준에 의해 글을 조절하지는 말라. 무엇이 다가오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것을 잡아라. 손을 멈추지 말고 계속 쓰기만 하라.
*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아니다.
p.35 우리가 경험한 일이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잡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p.36 우리의 지각 능력이나 판단력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각과 판단력은 우리의 의식과 육체를 거쳐서 나온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p.36-37 똑같은 시간을 주었음에도 남보다 많은 분량의 글을 써내는 학생을 보면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긴 글이라고 해서 우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개 그런 학생들은 자신의 마음을 하나의 재료로서 탐색하고 있는 게 보인다. 이런 학생들이야 말로 그저 ‘나도 글을 써 보겠다’는 소망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훈련 과정을 충실히 거쳐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p.37 우리 안에 들어 있는 그 풍요의 정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p.38 카타기리 선사는 말했다. “당신의 작은 힘으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일을 하게 만드는 건 ‘위대한 결정자’입니다. 당신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당신이, 당신 배후에 존재하는 우주만물 즉 새, 나무, 하늘, 달, 그 밖의 무수한 생명의 흐름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에만 위대한 결정자가 당신을 도와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p.38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비료를 마련해 놓은 다음, 갑자기 당신은 한 순간 별과, 당신 머리 위에 걸려 잇는 거실 샹들리에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런 연대가 이루어지면 당신의 몸이 열리게 되고, 이제는 그 몸이 말을 하게 된다.
p.38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p.39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것은 그저 사람마다 때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세에서 그 때를 만날 수 있고, 죽은 후에야 찾아올 수도 있다. 빠르고 늦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계속 써라.
*예술적 안정성을 얻는 과정
p.41 정말 그랬다. 내 안에는 겉모습과 다른 또 다른 내 모습이 잇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마음도 있었으니까. 우리 모두는 저마다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신화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고 그것을 받아들여 준다면, 그보다 더 고마운 일은 없지 않은가.
p,42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글을 썼던 네가 지금처럼 멋진 글을 쓰게 되었다니 놀라워! 너를 보면서 나 역시 세상에서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 것 같아.”
그녀는 온통 불평불만과 진부한 묘사 그리고 악에 받친 분노로 점철된 내 노트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고 고백했다.
“나탈리, 나는 네가 ‘이런 일을 하는 나는 정말 바보다”라는 생각을 할 때조차, 그 사실을 계속해서 글로 옮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p.42-43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는 이 노트를 통해 내가 진보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안다. 이 노트는 한 인간의 존재 증명이다.“
p.43 우리는 스스로가 게으르며 불안정하고 자기혐오나 두려움에 쌓인 존재, 정말 말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직면하는 순간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때 당시은 더 이상 어디로도 도망을 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다. 이제 당신은 별수 없이 자신의 마음을 종이 위에 풀어 놓아야 하며, 그 가련한 목소리가 들려 주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p.43-44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이런 인식이 생긴 뒤에는 아름다움과 다정한 배려, 명료한 진실을 선택할 수 있는 튼튼한 갑옷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두려움을 등에 진 채 무작정 아름다움을 좇아 거칠게 달려가지 않게 된다.
* 습작을 위한 글감노트 만들기
p.45 "아, 무슨 이야길 쓰지? 뭘 써야 좋을 지 생각나지 않아.“ 이런 때를 위해 평소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오를 때마다 아이디어를 적어 두는 노트를 따로 마련해 두자. 단 한 줄 짜리 짧은 글일 수도 있다. 번개처럼 지나가는 기억도 주제 목록에 첨가될 수 있다.
p.46 어떤 것이든 모두 글의 재료가 된다. 글을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오르면 언제라도 노트에 적어 두라. 그것이 한 단어이든 한 문장이든 이러한 목록들은 당신이 다음에 글을 쓰고자 할 때 요긴하게 끄집어 내어 사용할 수 있는 글감이 될 것이다.
이처럼 목록을 만들어 보는 일은 글쓰기 훈련에 있어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이 방법은 일상 속에 숨어 잇는 글쓰기의 재료들을 찾아내는 훈련이 될 뿐 아니라, 글쓰기가 바로 당신의 인생과 그 인생에서 탄생하는 산물임을 깨닫게 한다.
이런 식으로 삶의 경험들을 삭혀서 퇴비로 만드는 것이 바로 글쓰기의 시작이다.
p.47-50 다음은 내가 제안하는, 글감 노트를 만들고 활용하는 방법들이다.
1.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빛의 성질에 대해 써 보자. 어떻게 쓸까 겁내지 말고 용기있게 무작정 뛰어들라. 글을 쓰는 시작이 밤이건 낮이건, 또는 방에 커튼이 있건 아니건 그런 것에 개의치 말라.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써 내려가라. 10분, 15분, 30분, 시간을 정해 놓고 멈추지 말고 계속 적어 가라.
2. ‘기억이 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보자. 아주 작고 사소한 기억이라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모두 적어 본다. 그러다가 중요한 기억이나 선명한 기억이 떠오르면, 바로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어 내려간다. 멈추지 말라. 계속 적어라. 그 기억이 5분 전에 일어났던 일이건 5년 전 일이건 중요하지 않다. 그 모든 것이 당신이 쓰는 행위를 통해 기억으로 살아나게 만들라. 만약 막히면, 다시 ‘기억이 난다’라는 첫 구절로 돌아가 계속 적어 보라.
3. 긍정이든 부정이든 아주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골라서 아주 사랑하는 것처럼 글을 써 보라.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처럼 생각을 확장시켜야 한다. 다음에는 같은 것을 두고 싫어하는 시작으로 글을 적어 보라. 이어서 끝으로, 완전히 중립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글을 써 보라.
4. 한 가지 색, 예를 들면 분홍색만을 생각하며 15분 동안 산책해 보자. 산책하는 동안 주변의 자연과 사물에서 분홍색을 발견할 수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자. 그리고 이제 노트를 펼치고 그 경험에 대해 15분 동안 적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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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2 당신 속에서 싸움을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싸우도록 그냥 내버려 두라. 하지만 그 싸움의 한 구석에서, 제 정신을 차리고 있는 실제적인 마음이 조용히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 마음이 노트로 옮겨져 더 깊고 평화로운 곳에서부터 나온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p.52 게으름을 물리치고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는 방법을 만들어 내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이 방법을 찾아 내지 못한다면 설거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또 무엇이든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핑계를 잡아 수시로 옆길로 새게 도리지도 모른다.
p.53 선가 禪家 ???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말할 때는 오로지 말 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걷는 그 자체가 되어라, 죽을 때는 죽음이 되어라.”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쓰기만 하라. 열등감과 자책감으로 중무장한 채 자신을 학대하는 싸움은 하지 말라.
p.53-55 다음은 예전에 글이 잘 써지지 않았을 때 나 자신을 달래던 방법들이다.
1, 한동안 글 한 줄도 쓰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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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어떤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고, 곧장 책상으로 달려가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글을 쓰기 시작해버린 것이다. - 낭만왈 : 모닝페이지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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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내가 쓴 글이 명문 名文이든 쓰레기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노트 한 권을 채우는 일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여러분도 자신에게 편리한 방법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는 글이 안 써질 때도 무조건 계속해서 글을 써야만 한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죄의식과 두려움,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만 있다면, 어떤 글이든지 쓰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 낭만왈 : 운동도 마찬가지 아닐까?
*편집자의 목소리를 무시하라.
p.56 습작 시절부터 ‘자기 속의 작가’를 내면의 편집자 또는 검열관과 분리시키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만 작가가 자유롭게 호흡하고, 탐험하며 표현할 공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눈앞에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p.59 이곳 학생들은 아주 따뜻한 마음과 나약할 정도록 민감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시는 물이 어떤 샘에서 솟아나는지 알고 있다. 달릴 때 이마를 간질이는 머리카락의 느낌이 어떤지도 알고 있다. 이런 학생들에게 사실상 내가 시를 운운하며 가르칠 것은 없다. 이들은 이미 시 속에서 살고 있다. 세상의 사물과 가까이 있다.
p.59 나는 수업 계획을 미리 세워 두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때그때 주어지는 상황에 겁먹지 않고, 항상 열린 마음으로 충실하려 애쓴다. 그리고 매번 이 방법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결이 있다면 마음을 계속 열어 두고 있는 것이다.
p.61 작가는 작품을 쓸 때 모든 것을 항상 처음 대하는 기분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p.61 "아이들 책상 밑을 한번 보세요. 바닥이 온통 신발에서 묻어 온 흙 때문에 아주 지저분하죠. 정말 좋은 신호예요. 봄이 왔다는 신호니까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들은 다움에야 처음으로 신기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p.62 어떤 것이 이상적인 글쓰기인가? 무엇에 대해 써야 할까? 당신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하라. 그런 다음 그 속으로 파고들어라. 당신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라.
정보가 부족해서 자신이 쓴 글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걱정하지 말라. 내가 얼크톤을 둘러싼 들판을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 것은 그곳의 지리학적인 정보를 안다는 뜻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 들판 속으로 영원히 산책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뜻이었다.
p.62 당신의 글쓰기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면 그 무엇이든지, 그것이 가는 대로 풀어 놓아라.
*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p.63 글을 쓰는 데 자신의 재능이나 잠재력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재능과 실력은 훈련을 거쳐가면서 커지는 법이다. 카타기리 선사가 말했다. “우리의 잠재력은 지구 표면 밑에 있는, 보이지 않는 지하수면과 같습니다.” 누구라도 이 지하수면에 가 닿을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글쓰기 훈련을 계속하라. 그런 다음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목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곧장 나가라.
p.64 공교육이 저지르는 가장 끔찍한 잘못은 타고난 시인이자 소설가인 어린 학생들에게서, 그들의 문학을 빼앗는 것이다.
p.65 우리는 그냥 그 시에 최대한 몰입해야만 한다. 그 시를 쓰며 시인이 보았던 이미지를 다시 불러와야만 한다. 그러니 학교에서 가르치듯이, 정작 시의 온기에서는 발을 떼고 시에 ‘대하여’ 말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시에 머물 수 있도록 가까이 다가가라. 작품 자체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이 시 쓰기를 배우는 방법이다.
* 작가와 작품은 별개다
p66 우리가 실존하고 있다는 생각,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는 우리가 쓰는 글이 견고하며 영구불변한 구조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순간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p.67 스스로 속지 않도록 경계하라. 시시각각 우리는 변한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변한다는 사실. 이것처럼 좋은 기회도 없다. 우리는 한 순간에 얼어붙어 있던 자신과 자신의 이상으로부터 빠져 나와 신선하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글쓰기이다. 글쓰기는 우리를 동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p67 당신은 더 이상 내면에 있는 것들과 싸우지 않는다. 그래서 당신은 자유롭게 된다. 이전까지 싸움의 대상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당신과 하나가 되고 당신을 도울 것이다.
p67 나와 내가 쓴 작품은 별개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 물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반응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상관없다. 우리가 힘을 얻는 곳은 언제나 글 쓰는 행위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p68 당신은 좋은 시를 쓰고, 그 시에서 떠나라. 당신이 쓴 시를 세상 사림이 읽게 만들고, 당신은 계속 또 다른 시를 쓰는 것이다.
p.68-69 우리는 새로운 시작으로 새로운 꿈을 꾸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만고불변의 형태로 존재할 수 없다. 시 한 줄 속에 처박혀있어도 영원히 만족할 수 있는 영구불변의 진실이란 없다. 자신이 만들어 낸 작품과 자신을 지나치게 일치시켜서는 안 된다.
당신은 또 다른 흐름에 몸을 맡기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에 들어가 있는 단어는 당신이 아니라. 당신 몸을 빌어 밖으로 표출되었던 ‘위대한 순간’이다. 그 순간을 잡아내 글로 옮길 수 있도록 항상 깨어 있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다.
* 사고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뜨려라
p71 작가는 두려움 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을 써 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p71 글쓰기와 인생 그리고 정신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경계가 없다. 자동차를 먹는 사람을 창조해 낼 정도로 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만이 개미를 코끼리로 만들고 남자를 여자로 바꿀 수 있다. 이런 사람만이 각각의 분리되어 있는 형태들을 무너뜨리고 모든 형태 속에 이미 들어 있는 공통된 무언가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p71-72 은유란 논리나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그와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부터 비롯된다. 은유를 위해서는 사물을 바라보던 익숙한 시각에서 기꺼이 벗어나야 한다. 개미 한 마리와 코끼리 한 마리 안에서 공통된 무언가를 볼 수 있는 열린 시각을 가져야하며 그것을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p72 그저 평소의 사고 방식에서 한발 물러서서 머릿속을 지나가는 생각들을 계속 기록해보라. 이런 연습은 사고를 부드럽게 해 줄 뿐 아니라 창조력을 키워 준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생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엄청난 도약을 하게 된다. 마음이란 순식간에 위대한 도약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p72-73 아주 오랫동안 한 가지 생각에 머물러 본 적이 있는가? 바로 그런 상태가 지속되다가 어느 한순간 생각이 비약적으로 튀어오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섬광같은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영감의 근원은 만물의 근원과 맞닿아 있기에 자연히 그것들의 공통적인 법칙과 본질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p73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은유는 이러한 진실을 반영한 것이기에 종교적이다. 개미와 코끼리 사이에는 어떤 구별도, 분리됨도 없다. 은유의 세계에서는, 안개 낀 저녁에 가로등이 켜진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처럼 모든 사물의 경계가 사라지게 된다.
*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다
p75 아직 해결되지 않은 당신의 감정들은 밖으로 표출되고 싶어한다. 그것이 당신 생각에 방해받기 전에, 솟아나는 감정들을 일단 종이 위에 표현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대로 글을 조절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그때그때 솟아 나오는 감정들을 글로 써 내려가라.
p75 글을 쓸 때는 모든 것을 풀어주라. 아주 쉬운 말로 단순하게 시작하고, 당신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을 그래도 표현하도록 애써라. 처음에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대로 서투르고 꼴사나운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당신은 지금 스스로 자신을 발가벗기고 있는 것이다.
p75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절대 자신의 에고를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대로 연출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이 그저 하나의 인간 존재임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나는 글쓰기가 종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당신이 쓰고 있는 딱딱한 껍질을 벗기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다가가도록 한다.
p76 글을 쓰는 데는 당신의 온몸, 즉 심장과 내장과 두 팔 모두가 동원되어야 한다. 바보가 되어 시작하라. 고통에 울부짖는 짐승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시작하라.
p76-77 엄청난 분량의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여유를 주자. 자신의 목소리가 지닌 힘을 믿는 법을 배우자. 자연히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방향 설정을 하고 목적지가 어딘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목적지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장소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
p77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다. 패스트푸트가 아니라 슬로푸드다. 요리는 천천히 익어 가고 있으며, 시작 단계에 있는 당신은 그 음식이 구이가 될지, 바비큐가 될지, 국이 도리지 아직 모르는 것이다.
- 내글이 뭐가 될지는 오직 신만이....
* 강박관념을 탐구하라.
p78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나를 괴롭히는 강박관념들을 목록으로 정리해 본다.
p78 나는 학생들에게 자신을 괴롭히는 요소들을 적게 한다. 깨어 있는 동안 각자의 강박적 요소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그리고 의식적으로) 얼마나 생각하는지 확인시키기 위해서다. 아무튼 이렇게 글로 정리된 목록들은 이제 좋은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 목록은 그대로 우리가 쓸 이야기 목록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p79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강박증에는 힘이 있다. 당신이 글을 쓸 때마다 언제나 같은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바로 이 강박증의 변두리에서 우리는 오나전히 새로운 이야기들을 창조해 낼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그리고 이번에는 당신을 괴롭히던 강박증에 일부러 에너지를 쏟아 부어보라. 이제 우리는 강박증이 자신을 위해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p80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강박 충동의 조정을 받는다. 강박증은 엄청난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 힘을 거부하지 말고 이용하라. 글쟁이 친구들 대부분이 글 쓰는 일에 대해 강박증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글에 대한 강박증도 초콜릿에 대한 내 강박증과 똑같이 작용한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든지 간에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떠나보낼 수 없는 사람들이다.
p81 창작에 대한 강박증은 무언가 가치 있는 길을 찾아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강박증이라고 해서 모두 몹쓸 것은 아니다. 평화에 대한 강박증은 좋지 않은가. 하지만 평화를 생각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평화롭게 만들어야 한다.
p81 글쓰기에 대한 강박증은 직접 글을 써서 풀어 내야 한다. 쓸데없이 수에 취하는 엉뚱한 방식으로 풀려고 하지 말라.
* 세부 묘사는 글쓰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p82 인생이란 너무도 다양해서 만약 당신이 사물의 과거와 현재의 진정한 모습을 세세하게 써 내랴갈 수만 있다면 당신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다.
p83 당신은 상상력의 힘을 빌어 이것을 얼마든지 변경시킬 수 있다. 변경된 상황에다 당신이 실제로 알고 있거나 보았던 것을 세밀하게 묘사해서 이식을 한다면, 그 글에 뛰어난 생동감이 생기며 개연성과 진실성이 배어나게 된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항상 깨어 있는 눈으로 관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너무 인위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p83 우선 마음을 편안하게 열어 놓고 결혼식을 즐겨라. 당신이 주변 상황에 자연스럽게 몰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당신이 글을 쓸 때 정말 살아 숨쉬는 듯한 생생한 기억들을 불러낼 수 있다.
*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라
p84 글쓰기에서 우리가 살았던 장소와 그 공간을 채우던 사물들의 이름을 불러 주고 그것을 우리 삶의 세부사항으로서 써 내려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p84 우리의 삶은 모든 순간순간이 귀하다. 이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다. 작가는 의미없어 보이는 삶의 작은 부분들마저도 역사적인 것으로 옮겨 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작가는 인생의 모든 면들에 대해, 한 모금의 물, 식탁에 묻어 있는 커피 얼룩에 대해서까지 “그래!”하고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p85 작가가 쓰는 글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재료로 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소중한 존재들이며,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작가가 되려는 당신은 알고 있는가? 덧없이 지나가 버리는 세상의 모든 순간과 사물들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것, 그것이 작가의 임무다.
p86 세부 묘사는 우리가 만나는 세상 모든 것들과 모든 순간들에 이름을 붙여 주고, 그 이름을 불러 주고, 기억하는 일이다.
☞ 널 기억할께!!!
p86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가 부둥켜 안아야 할 현실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은 지극히 평범한 동시에 신화적이다.
p86 작가의 임무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의 삶을 이루는 실체들에 대해 경건하게 “네!”라고 긍정하는 것이다.
* 케이크를 구우려면
p87 하나의 케이크를 탄생시키려면 반죽을 오븐 속에 집어 넣고 열을 주어야 한다. 이따 만들어진 케이트는 원래의 재료 성분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해 있다. 우유와 계란이 케이트에게 “넌 우리 것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60대 부모가 자신들의 히미 자식에게 “너는 우리가 낳은 자식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다. 그렇다. 케이크는 계란도 아니고 우유도 아니다. 이것이 케이크의 연금술이다.
p88 당신이 소설 한 권을 채울 만한 파란만장한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브룩클린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생존해 있고 나는 여자다.” 여기에 당신 마음에서 나오는 열과 에너지를 첨가시켜야 한다.
p88 단지 재료만 섞기만 한 반죽에는 아무런 생명이 없다. 사랑과 증오라는 감정의 에너지를 가해 세부를 채워 나가야 한다. 하나의 숨 쉬는 생명체로 창조해야 한다.
p88 삶의 모든 세부 사항들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다정하게 접촉하라. 당신을 둘러싼 것에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라. 강에 대해 쓰고 있다면 그 강에 온몸을 적시라. 그 강이 탁한 황토 빛으로 둔하게 흐른다고 적는다면 당신의 몸이 그 탁한 느낌을 그대로 느껴야 한다. 글쓰기에 깊이 빠져들면 쓰는 사람과 글은 분리되지 않는다.
☞ 아이들과 교사의 소통...내가 할 일
p88 카타기리 선사는 말했다. “좌선을 할 때 당신은 사라져야만 한다. 좌선이 좌선을 하도록 만들어라.” 이것은 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글이 글을 쓰도록 하라. 당신은 사라진다. 당신은 그저 당신 속에서 흐르고 있는 생각들을 글로 적어 내고 있을 뿐이다.
p89 ‘오, 난 내 인생이 싫어. 뉴욕이 아니라 일리노이 주에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식의 생각으로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말라. 그저 당신의 상황과 진실을 적어 내려 가라.
p89 열을 가하다 중단한다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p89 세부묘사를 사용하면 당신이 느끼는 환희나 슬픔은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전달하려는 감정이 어떤 맛인지 정확하게 표현해 준다면, 그것을 맛보고 싶어 하는 미식가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p90 "아주 맛있어요. 일품이야!“라는 말에는 에너지가 없다. 어떻게 대단한 것인가? 독자에게 그 대단함의 냄새를 맡게 하라. 바꿔 말해서 세부 묘사를 이용하라. 세부 묘사야말로 글쓰기의 기본 요소이자 단위다.
* 작가는 비를 맞는 바보
p91 작가는 인생을 두 배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먼저 첫 번째 인생이 있다. 길에서 만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건널목을 건너고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넥타이를 매는 그런 일상생활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생활의 또 다른 부분이 있다. 모든 것을 다시 곱씹는 두 번째 인생이다. 이들은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마다 자신의 인생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모습을 면밀하게 음미한다. 삶을 이루고 있는 재질과 세부 사항을 들여다본다.
p92-93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조금 어수룩한 바보가 되어도 괜찮다. 당신 속에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느림보가 들어있다. 그 느림보가 당신이 모든 것을 팔아버리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당신에게 어딘가로 가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고,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모자도 쓰지 않은 채 이마에 주룩주룩 떨어지는 빗방울을 느끼며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응시하게 만든다.
☞ 일상속에서 일탈이 글을 쓰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 글쓰기는 육체적인 노동이다
사람들은 글쓰기가 육체적인 노동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글쓰기는 생각하는 행위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각, 촉각, 후각, 청각 등 모든 지각 능력과 관계하고 있다. 또 반드시 ‘손을 계속 움직여 써 내려가는’과정이 있어야 하나의 작품이 탄생된다.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만으로는 아무런 결과물도 생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쓰기 훈련은 하나의 글을 완성하기까지 중간에 포기하거나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써 내려가는 것, 끊임없이 글쓰기를 방해하는 생각들을 육체적으로 물리쳐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글쓰기가 단지 사고 능력과 아이디어만으로 이루어지리라는 고정관념을 잘라 내는 과정이 포함된다.
p95 당신의 감정과 느낌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연필을 잡고 있는 손, 그 손과 연결된 팔, 이렇게 육체적으로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마음과 육체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당신은 글을 쓰고 있는 육체적 행위를 통해 마음의 장벽을 능히 부술 수도 d있다.
p95 진짜 글쓰기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은 더 이상 껌을 씹지 않는다. 대신에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린다. 그리고 호흡이 아주 깊어진다. 글을 쓰는 손은 느슨해지고, 그들의 몸은 몇 킬로미터를 내처 달려도 좋을 만큼 잘 이완되어 있다.
p95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 보라. 작가가 영감을 받고 글을 써 내려가던 순간의 호흡이 생생히 느껴질 것이다.
p96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불후의 명작을 완성시키고 싶다면 위스키를 마셔서는 안 된다. 대신에 세익스피어와 테니슨, 키이츠, 네루다, 홉킨스, 밀레이, 휘트먼..... 이들의 글을 소리내어 읽고 또 읽어 당신 몸을 그들의 운율에 맞춰 춤추게 만들어야 한다.
* 잘 쓰고 싶다면 잘 들어라
p98 만약 음악을 온전하게 듣는다면 그것이 온몸을 채우게 되고, 자연히 입을 열어 노래를 할 때 음악이 자동적으로 몸 밖으로 나오게 된다는 말이었다. 몇 주일 후 나는 일부러 친구와 같이 노래를 부를 기회를 만들었는데, 평생 처음으로 음을 틀리지 않고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나는 내가 계속해서 발전하고 변화되어 가는 존재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공부를 잘 하고 싶다면 잘 들어라. 모닝페이지반을 운영하며 강조했던 것이 경청!!!
p98 글쓰기 역시 90퍼센트는 듣기에 달려 있다. 열심히 들으면 당신을 채우고 있는 내면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자연히 나중에 글을 쓸 때, 당신은 그 내면의 소리를 저절로 분출시킬 수 있게 된다. 내면의 진실한 소리를 듣게 된다면, 글쓰기에는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 없다.
p99 계절이 만들어 내는 음향과 바람에 실려오고 있는 온갖 색상의 음향을 받아들여라. 과거와 미래와 현재 당신이 있는 곳에 귀를 열어 두어라. 귀로만 듣지 말고 온몸으로, 당신의 위장과 심장과 피부와 머리카락으로 들어라.
p99 작가는 사물의 진실을 읽는 이의 마음에 각인시키는 임무를 띠고 있고, 따라서 마음에다 사물에 대한 기록을 해나가는 훈련이 되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사부님이 오프수업 때 연구원의 발표하는 것을 듣고 코멘트 하시는 것을 보면 딱..이 느
낌이다. 감탄!
p100 열심히 들어 주되 어떠한 비평도 가하지 않는 이런 듣기 훈련은 당신의 내면에서부터 그 이야기가 말하려는 진정한 의미와 영상을 일깨워 준다. 이런 식의 청취 훈련은 당신의 현실과 당신 주변의 현실을 반영하는 아주 선명한 거울이 되어 준다.
p100 좋은 작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많이 읽고, 열심히 들어 주고, 많이 써 보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냥 단어와 음향과 색깔을 통해 감각의 열기 속으로 뛰어들어가라. 그리고 그 살아 있는 느낌이 종이 위에 생생히 옮겨지도록 계속 손을 움직이라.
p100 작품 진행을 하고 있을 때 좋은 작품을 읽는 것은 글에 좋은 영향을 준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근원을 찾아가야 한다.
p100-101 시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시를 읽고, 시를 들어야 한다. 논리적으로 시를 분석함으로써 시로부터 멀어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그저 시가 당신의 몸 속으로 스며들게 하라.
p101 위대한 선승인 도겐道元은 “안개 속을 걷는 사람은 안개에 젖는다”고 했다. 그러니 그저 듣고, 일고, 쓰라. 당신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조금씩 당신만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너무 조바심을 내지 말고 그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라. 그냥 흐르는 대로 운율에 맞춰 노래하고 쓰라.
* 파리와 결혼하지 말라
p103 작가 스스로 글의 방향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은 채 글을 써 내려가거나, 다루고 있는 글의 소재에 밀착되어 있지 못한 경우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런 부분이 생기면 글의 초점이 흐려지고 결국에는 독자들의 흥미를 떨어뜨리게 만든다. 아무리 작은 부분일도 윤곽이 흐릿해지면, 그 틈새로 독자들이 정신은 그 작품이 아닌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고 마는 것이다.
p103 문학의 책임은 사람들을 깨어 있게 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하고, 살아 숨 쉬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방황한다면, 독자 역시 방황하게 된다.
p103 자세한 묘사와 제멋대로인 방종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선이 있다.
p103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고 그 목표에 집중해 매달려야 한다. 만약 당신의 마음과 글이 목표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있다면, 원래 돌아가야 할 자리로 부드럽게 잡아당겨야 한다.
p103-104 글을 쓸 때는 마음 속에 무수한 길들이 한꺼번에 펼쳐지는 법이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잇는 들판으로 달려가서는 안 된다.
* 글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p105-106 세상에는 자신이 글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가지고, 자기 체면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한 방편이나 도구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p106-107 작가인 우리는 늘 의지할 것을 찾아다닌다. 동료들로부터, 비평가로부터 인정받아야만 안심하려 든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이나 작품에 대해 보내는 타인의 칭찬에 기대어 살아가는 한, 그 작가는 다른 이들의 비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보다는 우리의 근원적인 원조자에 대해 아는 편이 작품성을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우리는 이미 매 순간 무엇엔가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神의 존재를 인정하자! 그 안에서 우리는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다.
p107 우리가 서 있는 대지, 폐를 채우고 비우는 공기...., 이 모두가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질 때 그 대상을 멀리서 찾지 말라. 바로 지금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 아침의 침묵, 이런 것들로부터 시작하라. 그런 다음 마주 보고 있는 친구가 “난 네 작품이 너무 사랑스러워”하고 말하면 그 좋은 기분을 그저 간직하면 된다. 대지와 의자가 당신 몸을 쓰러지지 않게 받쳐 준다는 사실을 믿는 것처럼 그 친구의 말을 그대로 믿어라.
☞ 사람들의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스스로가 축복받은 존재임을 인정하고 허용하자.
p108 우리는 정직한 지원과 격려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막상 누군가 칭찬을 해 주면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반대로 비평하는 소리를 들으면,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고 결국 자신은 별볼일 없고 진짜 작가도 못 된다는 쓸데없는 믿음만 키워가려 한다.
p109 그만! 누군가 당신을 칭찬해 준다면, 정말 그 말에 귀를 기울려야 한다. 아무리 그런 일이 익숙하지 않고 계면쩍더라도, 계속 숨을 들이마시고 귀를 기울이고 그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칭찬을 받는 것이 이렇게도 좋다는 것을 반드시 느껴 보아야 한다. 작가가 되려면, 자신을 향한 긍정적이고 솔직한 격려를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여유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 나는 칭찬을 하는 것에도 인색하고 받아들이는 것에도 인색하다. 칭찬을 하고 칭찬을 받는 상호작용에 익숙해지자. 우주는 내가 허용한 만큼의 행복을 허락한다.
* 꿈에 대해 써라.
p110 "여러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꿈에 대해서 지금부터 5분 동안 써 보세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꿈이 무엇인지 모르며, 아니 꿈이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p111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에 대해 5분에서 10분 동안 써 보도록 하라. 이때 우리는 마음 속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다니는 소망과 있는지조차 몰랐던 소망들을 적어야 하는 강요를 받는다. 이 소망들을 글로 적는 것은 우리 인식의 한 가운데에 그 소망을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리고 소망에 대해 쓴 글을 다시 읽어 보라. 적혀 있는 꿈과 소망을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만약 자신의 진짜 꿈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면, 가고자 하는 방향이라도 잡아 두라.
p112 우리는 자신이 지닌 꿈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향하게 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꿈에 의해 언젠가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다 꿈은 우리가 삶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게 틀린 말이라면 우리는 꿈과 함께 영원히 상상 속을 표류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p112-113 일단 자신의 목소리를 믿고 자신 안에 내재된 창의적인 힘을 허락하는 것을 배우게 될 때, 당신은 단편이든 장편이든 또는 시든, 그것을 쓰는 방향을 잡게 된다. 당신에게는 꿈을 채워 나가게 하는 기본적인 연장인 ‘글쓰기’가 있다. 또 기억할 것이 있다. 이런 식의 글쓰기를 통해 비로소 당신 안에 숨겨져 있던 은밀한 꿈들(티베트로 떠나고 싶다. 뉴멕시코 주에 태양열 작업실을 가지고 싶다 등과 같은)과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제 당신은 절대 당신의 꿈을 회피할 수 없다.
* 문장 구조에서 벗어나 사유하라
p114 우리의 사고 방식은 문장 구조에 맞추어져 있고 사물을 보는 관점도 그 안에서 제한된다.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방식이 ‘주어-동사-목적어’의 틀에 짜맞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런 문장론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고, 신선한 세상과 만날 수 있으며, 글쓰기에 색다른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다.
p115 카라기리 선사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친절하게 배려해 주십시오.” 나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러한 배려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물들이란 어떤 것인가요?” 그는 의자. 공기, 종이 그리고 심지어 거리에 대해서조차 마음을 가진 존재로 다정하게 대해야 한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것이 이 세상 속에서 우리 마음이 이루어 내야만 하는 제일 큰 일이라고 했다.
☞ 나와 세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가진 자의 글에 따스함이 배어있을 것이다.
p115-116 결국에는 인간이 만든 언어 체계 속으로 돌아가겠지만, 당신은 작가로서 이 세상을 이루고 지탱하며 관통하고 아우르는 그 근원적인 큰 흐름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p116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소통하는 법을 많이 알게 될수록, 당신을 글을 쓸 때 상황에 따라서는 구문론이라는 틀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때로는 이처럼 문자구조를 깨고 글을 씀으로써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 말하지 말고 보여 주라
p117 독자들에게 당신의 감정을 강요하지 말고, 상황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감정의 모습을 그냥 보여 주라는 말이다.
p117 작가는 슬픔과 기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독자의 마음을 슬픔과 기쁨의 골짜기로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p119 그 이야기에 당신만의 숨결을 불어넣었는지 확인하라는 뜻이다. 당신의 숨결을 느낄 수 없는 글은 당신이 그 글 속에 들어있지 않는 것이다.
* 그냥 ‘꽃’이락 말하지 말라
p120 고유성을 허락하라. 그냥 ‘과일’일고 말하지 말라. ‘이것은 석류 열매다’처럼 어떤 종류의 과일인지 분명히 밝혀 주라. 사물의 이름을 불러 주어 그 사물의 고유성을 만들어 주라.
p121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근원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우리 마음속 흐릿한 부분이 선명해지면서 이 지상의 삶에 더 튼튼한 주을 이어 주기 때문이다. 나는 거리를 걷다가, 내가 아는 식물들인 산딸나무나 개나리를 보면 그 장소에 더 깊은 친근감을 느낀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이름을 하나씩 불러 줄 때 느끼는 기분은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명쾌한 증명인 거만 같다.
☞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해서 불러주어야 한다. 그런데...우리반 40명 빼고 300명 넘는 이름을 외우기란 쉽지 않다.
p122 우리가 우리들 코앞에 있는 사물에 더 가까이 갈수록, 그 사물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 많이 가르쳐 줄 것이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순수의 전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p122 사람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같이 글쓰기 수업을 받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가능한 한 빨리 알아 두라. 그러면 자신이 속해있는 모임의 성격을 빨리 파악하게 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작품 토론에 훨씬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 몰입하기
p124-125 선 명상법에 행선行禪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아주 천천히 걷는 것을 배우는, 일종의 걸어다니는 명상법이다. 행선은 서있는 자세에서 출발한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발뒤꿈치와 바닥이 맞닿아 있는 발가락을 들어 1인칭 정도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아주 천천히 발자국을 앞으로 내딛는다. 이때 당신은 양 무릎이 굽어지고, 발꿈치가 바닥에 닿는 것을 느낀다. 이 모든 동작이 아주 느린 속도록 진행된다. 그런 다음 반대편 발로도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행선은 약 10분동안 계속 된다.
p125 이렇게 느린 동작을 하다보면 사소한 발걸음 하나하나도 온몸과 연결되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공기와 창문, 햇빛의 존재도 느끼게 된다. 만약 바닥이 없다면, 하늘이 없다면, 생명의 원천인 물이 없다면, 우리는 단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를 관통하고 있다. 계절조차도 우리의 걸음을 지탱하게 해 준다.
p125 글쓰기 속에 몰입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차단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세상이 실체를 보여주기 위한 몰입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균형을 잡는 데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 평범과 비범은 공존한다.
p128 우리는 모든 것이 이미 평범함과 비범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열릴 때도 있고 닫힐 대도 있는 것이 우리 마음이다. 세부 묘사는 무엇이 좋고 무엇은 나쁘다라는 식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것이 세부 묘사의 본질이다.
p128-129 모든 사물을 올바로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주 깊이 들어가야만 한다. 그 다음에는 세부 묘사가 독자의 눈앞에 그러한 현실을 창조할 것이다,
p129 우리 모두는 그물망처럼 얽혀서 서로의 우주를 창조해내고 있다. 누군가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 사람은 살아남은 다른 사람들에게 슬픈 파장을 남기게 된다.
☞ 남겨진 사람들에게 슬픈 파장을 지워내는 미션이 주어진다. 그것이 삶의 과제.
p129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을 친절하게 대할 책임이 있다. 먼저 자신에게 친절할 때에만 세상을 친절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글쓰기를 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를 대하는 올바른 눈이 떠질 때 우리는 세부 묘사를 개인적이고 물질적인 대상이 아니라 모든 진실을 반영시키는 것으로 다르게 된다.
p130 카타기리 선사는 말했다. “찻잔 하나에도 아주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이 찻잔 또는 바위 언덕, 하늘이나 개미에 대한 글을 쓰고 있을 때 그 대상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 대상들에게 선의의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되고, 글Tm기를 통해 초월적인 세계로 도약할 수 있게 된다.
* 이야기 친구를 만들라.
p131 마음에 맞는 친구에게 당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자.
p132 뉴욕에 살고 있는 단편 작가 그레이스 팔레이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작가는 모든 소문과 지나가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책임이 있다. 이야기꾼은 이런 방식으로 인생을 배워 나간다.”
p132 이야기를 지어 보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이런 일을 부끄러워하거나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마라. 이야기 만들기는 글쓰기 훈련의 자원이다. 이야기를 해봄으로써 무엇이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고 무엇이 지루하게 만드는지 의사전달력과 표현력을 배우게 된다.
p132 우리가 글쓰는 방법을 배우는 이유는 누군가를 심판하거나 탐욕과 질투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경탄하고 애착을 가지기 위해서다.
p133 작가는 일반적인 묘사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작가는 어떤 사건에 대해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 주기‘를 원한다.
p133-134 말하기는 혼자선 펜과 종이만을 상대로 보내야 하는 길고 긴 창작의 시간에 앞서 하는 준비운동이다. 당신이 수없이 누군가에게 말했던 이야기들을 목로으로 만들어 보라. 그것으로 글쓰기의 많은 부분은 이미 이루어졌다.
* 작가는 위대한 애인이다.
p136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과 수시로 사랑에 빠진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글쓰기를 배우는 방법이다. 그들은 한 작가에게 다가가, 그가 쓴 모든 자품들을 통해 그가 움직이고 휴식을 취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
p136 자신에게서 빠져 나와 다른 누군가의 피부 속으로 옮겨 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사랑하게 되는 능력이 당신 안에 있는 능력을 흔들어 깨운다는 뜻이다. 남의 글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당신을 더 크게 해줄 뿐 절대 남의 것을 탐내기만 하는 도둑고양이로 만들지 않는다. 다른 작가가 쓴 글이 아주 자연스럽게 당신 것으로 변해 가면, 당신은 글을 쓸 때 그것들을 활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작위적이어서는 안 된다. 위대한 연인들은 자신이 사랑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다.
p137 작품은 그냥 글을 쓰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글쓰기는 다른 작가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절대 질투심이 자리 잡아서는 안 도니다. 만약 누군가가 대단한 작품을 썼다면, 그가 작품을 통해 세상을 좀더 명료하게 만들어 준 것에 대해 당신은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p137 "그들도 훌륭하고 나도 훌륭하다.“라고 말하자. 이 말은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 준다. ”그들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 그러니까 나는 잠시 그들의 경로를 따라 가면서 배우면 돼.“ 얼마나 솔직하고 마음 편한 고백인가. 다른 작가들과 동지가 되어라. 마음 속에 있는 진실의 한 부분만을 찾아내기 위해 세상을 버리고 자신에게만 틀어박힌 존재가 되는 것보다, 자신의 통해 많은 목소리를 반영시키는 작가들과 동지감을 느끼는 것이 더 낫다.
p137 우리는 더 큰 사람이 되어 두 팔로 세계 전체를 담는 글을 써야 한다. 거친 황야에서 홀로 떨어져 글을 쓸 때도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과 같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인간만이 이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생각은 자기 본위에서 나온 우월감일 뿐이다.
p138 예술가 외롭고 고통스러운 존재라는 생각 같은 것은 떨쳐버려라.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고통스럽다. 자신만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해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이유는 없다.
* 현상을 넘어 사물 속으로 파고들라
p140 당신이 누군인지 잊어버려라. 당신이 쳐다보고 있는 모든 사물들 안으로, 거리속으로, 물 잔에 담긴 물 속으로, 옥수수 밭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사라져 버려라. 당신이 느끼는 바로 그것이 되어 그 감정을 태워버려라. 걱정하지 말라. 당신은 초조함에서 벗어나 환희에 도달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감정을 잡았다거나,. 그 감정과 완전히 하나가 된 바로 그 순간을 냄새 맡거나 보게 되면, 당신은 이미 위대한 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p140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이를 수 있는지 밝혀 주는 작품을 읽고 또 읽어라.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키우고 다정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거듭 체험하게 된다.
* 먹잇감을 응시하는 고양이처럼
p141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대도 당신은 작가다. 당신이 작가라는 사실은 언제 어디서든 떨쳐버릴 수 없다. 이제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 주변의 모든 것을 사냥해 보자. 동물처럼 자신의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야 한다.
☞ 매순간 몰입하기!!! 1월의 과제...언제 어디서나 나의 첫책에 대해 생각하자!!!!
p142 고양이는 언제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튀어 오르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당신이 당장 네 발로 기고 꼬리를 치켜 세우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고요하게 응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p142 카타기리 선사는 말한다. “당신은 지금이라도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바쁘거나 두려움에 빠져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길을 잃어버릴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항상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작가로서 우리가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들-거리의 간판, 모퉁이, 소화전, 신문 가판대를 보고 듣고 감지해서 자신을 이루는 한 부분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p142-143 어떤 글을 쓰겠다고 계획했을 때 동물처럼 행동해보자. 동물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동물처럼 당신이 쓰려는 이야기의 먹잇감을 하나씩 비축해 두자. 어떤 바업이든지 상관없다. 일상의 찌거기에서 발굴해내든지, 도서관을 찾아가든지, 정신의 정원으로 나가든지 마음대로 하라.
무엇이 되었든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라. 논리적인 마음은 꺼버려라. 마음을 비워 놓고 생각이 들어가지 않게 하라. 언어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껴라. 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내리고 소화시켜라. 당신 육체가 양분을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라. 인내심을 가지고 한결같은 균형을 유지하라. 생각의 지층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당신의 핏줄 속으로 글쓰기를 삼투시켜라.
그런 다음 드디어 당신이 튀어나올 때. 가령 아침 10시에 글을 쓰겠다고 작정했다면 그 주어진 시간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 1시간이건 20분이건, 시간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시간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손을 멈추지 말고 모든 것을, 정맥에서부터 곧장 펜을 통해 종이 위에 토해 놓게 만들라. 멈추지 말라. 망설이지 말라. 백일몽을 꾸지 말라. 제한된 시간이 끝날 때까지 쓰라.
하지만 염려 말라. 이것이 마지막 기회는 아니다. 오늘 생쥐를 놓쳤다 해도 내일 잡으면 도니다. 당신은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는다.
☞ 새벽시간이든 어떤 시간이든 정해진 시간에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투입해야한다. 이후 반사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어느때나 글이 써지도록 해야 한다. 무의식을 점령하라!!!
p143 당신은 자신의 부분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킬 수 없다.
p144 제일 좋은 글은 당신의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실린 글이다. 작품을 쓰다가 세상으로 나갈 때는 당신의 모든 것을 데리고 나가라.
☞ 내 삶을 글 속에 담아내자. 자연스럽게 내 생각이 묻어나오게...작가는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어야겠다.
* 자신을 믿어라
p145 여성의 언어 - 여성들이 자신이 했던 말에 인증이나 확인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함, 항상 다른 사람의 감정과 의견을 강요하는 느낌, ‘어쩌면, 아마도, 아무튼’ 같은 부정형의 수식어를 자주 사용.
☞ 놀랍다. 정말 내 말투!!!
p146 세상이란 언제나 흑백으로 갈라지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면 분명하고 확실하게 진술하는 것이 필요하다. “글쎄, 웃기는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마 그것이 푸른 말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이런 글은 곤란하다. “이것은 푸른 말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하라.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의 사고 속에 똑바로 서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 나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자신감!!, 그리고 책임감!!! 단정적인 어투로 말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내가 한 말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두려웠다. 자신감의 부족으로 기인한다.
p146 비록 우리 인생이 언제나 선명한 것은 아닐지라도, 명확하게 인생을 표현해 보는 것이 좋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이 순간의 나다.” 이렇게 쓸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지만, 당신은 훗날 그만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 그래서 일까...내 삶은 항상 모호했다. 이제는 명확한 인생을 살 것이다. 당당하게 나는 나다라고 말할 것이다.
p147 스스로 경계할 부분은 바로 질문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질문에는 스스로 대답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질문 하나를 만들 수 있다면 아주 잘된 일이다. 하지만 즉시 더 깊은 단계로 내려가 바로 그 다음 줄에서 그 질문에 답을 해주어야 한다.
p147 '혹시 내가 만든 질문에 답을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떨쳐버려라. 글쓰기는 안개에 싸여 있는 마음에 불을 지피는 행위다.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 설사 확실하지 않을 때라도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라. 훈련은, 문장을 훨씬 힘차고 생동감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 교사의 역할을 하면서도 자심감이 필요하다. 글쓰기를 하면서도 자신감이 필요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자신감이 필요하다. 삶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 카페에서 글을 쓰는 일에 대하여
p148 글을 쓸 작정으로 카페에 들어간다면 당신은 먼저 인간 관계부터 만들어야 한다. 나는 사실 배가 고프지 않을 때도 음식을 주문하고 그 음식을 먹은 다음 노트를 꺼냈다.
p149 카페에서 글을 쓰는 나의 방식이, 모르는 사람 눈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호사스러운 것으로 생각될지 모른다. 하지만 처음에만 그럴 뿐이다. 처음 안면을 트는 시기가 지나면 다음부터는 한결 쉽게 주기적인 일상으로 만들 수 있다. “어머, 작가 선생님! 요즘 글 잘 되세요? 커피 다시 채워 드릴까요?”
p149 당신도 모든 것이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핑핑 돌아가는 경직된 공간이 아니라 인간적인 분위기를 누릴 수 있는 장소를 원할 것이다.
p150 카페에서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집에서 작업을 했을 때보다 더 빨리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마음이야말로 얼마나 변덕쟁이인가. 나는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이 작업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들이 백 가지도 넘게 나를 유혹하는 것을 느낀다.
p151 마음은 항상 일과 집중력에 대해 저항하려 든다.....나중에 이런 상태에서 빠져 나왔을 때 나는 카타기리 선생에게 내가 보낸 시간에 대해서 말했다.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오, 그건 그냥 게으름일 뿐입니다. 어서 가서 일하세요.”
☞ 사부님의 꾸짖음처럼 들린다. 으아~ 그냥 게으름이었다. 무의식에 세팅된 게으름에 완전 쩔어 있었다. 지각인생에 대한 변명이다. 이젠 그런 변명따위는 하고 싶지도 않고 통하지도 않는다.
p151 카페에서 작업하는 것은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카페의 번잡스러운 환경은 글을 쓰겠다는 충동을 감소시키기는커녕 중추신경을 계속 바쁘게 움직이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당신이 집중하고 있는 더 깊고 고요한 부분이 자유롭게 흘러나오도록 유도한다. 모차르트가 작곡을 할 때 아내에게 이야기 책을 읽게 한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p151 파리에 갔을 때 발길 닿는 곳마다 카페가 많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p152 파리에서는 길 하나마다 카페가 적어도 다섯 개씩은 있었고, 이 카페들은 모두 손님이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글 쓰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p153 여러분은 무슨 말을 듣더라도 항상 웃고, 반응해 주고, 친구처럼 대해 주길 바란다.
* 작업실에 대하여
p154 글을 쓸 공간을 구할 생각이라면, 그야말로 방 하나만 구하도록 하라. 대단한 공사를 해서 뜯어 고칠 생각일랑 하지 말라. 비가 새지 않고, 창이 하나 있고, 난방만 된다면 그만이다. 책상과 선반, 푹신한 의자 하나만 들여놓으면 당장이라도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p155 구실은 좋다. 하지만 이것이 도리어 글쓰기를 꺼리게 만드는 이유가 되어버린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공간을 만들어 놓고서도 작업을 하지 못하는 친구를 여럿 보아 왔다. 나는 차라리 부엌 식탁에 앉아서 글 쓰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작업 자체가 우리의 불완전성을 자꾸 들추어 내는 일인데, 더 이상 손 볼 데 없을 정도록 아름다운 공간에 앉아서 이 사실을 애써 잊으려 하는 것은 아주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p156 하지만 나는 글쓰기 공간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약간 지저분하고 정리되어 있지 않은 공간을 볼 때 그 공간의 주인인 작가는 아주 비옥하고 힘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완벽하게 꾸며 놓은 작업실에 갈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그 곳의 주인은 자신의 마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내적 조절력의 필요성을 외적 환경으로 강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자기의 창조성이 완전히 그 반대편, 즉 조절력을 포기하는 데서 나오는 것임을 모르는 것이다.
☞ 정리력이 없는 나에게 위안이 되는 구절.
p156 거기가 어디든지 자기가 있는 그 자리에서 글을 쓴다.
* 성, 그 거창한 주제에 대하여
p157 초조함으로 작품을 시작하게 되면 자신이 진짜 하려는 말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길을 잃거나, 과연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지 회의를 품게 된다. 그리니 우리는 먼저 긴장을 풀어야 한다.
p158 언제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시작이 자신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
p158 때로는 대답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작해서 거꾸로 돌아오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p158 글쓰기는 발견의 기록이다. 당신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화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당신과 그 화제와의 관계를 발견하기를 원한다.
p158 언제나 한 주제만을 계속 공격할 수는 없는 법이다. 때로는 다시 돌아오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
☞ 글쓰기는 여행이다. 삶은 여행이다.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다.
p158-159 카타기리 선사는 부부에 대해서 ‘그들은 마주보고 걷는 사이가 아니라 나란히 옆에 서서 걸어가는 사이다’라는 정의를 내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제를 향해 접근해야 하는 방식이다. 즉, 머리를 바싹 쳐든 공격적인 태도가 아니라 비스듬히 서서 춤을 추는 것이어야 한다.
p160 거창한 주제를 다른 시각으로 보려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당신이 다루려는 주제 속에 들어 있는 작은 편린들을 들여다 보라.
p160 ‘에로티시즘’이라는 단어를 다루기가 벅차다면, 이렇게 질문해 보라......마치 지금 애인과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글을 써 보라. 단 10분 간이다. 위에 있는 것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써보라. 계속 써라. 손을 멈추지 말라. 수정이나 삭제, 첨가도 하지 말라.
* 자신이 사는 마을을 순례하라.
p161 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작가의 임무는 평범한 사람들을 살아 있게 만들고, 우리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p161 어떤 한 장소에 오래 살게 되면 그 장소에 대한 감각이 점점 둔해지게 마련이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거꾸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항상 흥미롭다. 새로운 장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신선한 방식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해준다.
p162 평범한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배우라. 오래된 커피잔, 참새, 도시버스, 얇은 햄 샌드위치에 존경을 표해 보라. 당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라. 계속 그 목록을 늘려가라.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기 전 글의 형태와 장르에 상관없이 이 목록에 들어 있는 것들을 단 한 번이라도 언급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라.
☞ 자신의 일상에서 글감을 찾아내라. 자신이 딪고 있는 현실이 글을 쓰는 재료가 되게 하라.
*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p164 쓰라, 그냥 쓰고, 또 쓰라. 세상의 한복판으로 긍정의 발걸음을 다시 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 언제 어디에서든 쓰고 또 쓰라. 살아있어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고 긍정하라.
p164 결국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진정 글을 쓰고 싶다면 모든 것을 잘라내고 쓸 수밖에 없다. 글을 쓰기 좋은 완벽한 환경도, 습작 노트도, 펜도, 책상도 없다면, 자신을 유연하게 훈련시킬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낯선 환경 속에서도,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도, 글쓰기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p165 우리가 글쓰기에 열중해 있다면 장소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글쓰기에 빠져 잇는 것 자체로 충분히 완벽한 것이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든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는 위대한 자율성과 안전성이 있다. 진정 글을 쓰고자 갈망한다면, 결국 당신은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는 길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 문득, 앙코르와트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앙코르와트 유적지 곳곳에서 그 타는 듯한 석양아래에서 글을 쓰고 싶다. 여행지에서의 단상을 책으로 낼 것이다.
* 충분하다고 느낄 때 한번 더
p166 글쓰기에서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될 때, 조금만 더 자신을 밀고 나가 보라. 당신이 종점이라 생각하는 곳이 실은 초입에 들어선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끝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멈추었던 곳에서 조금 더 멀리 나갔을 때, 당신은 제어할 수 없는 아주 강한 감정과 만나게 될 것이다.
p167 필요하다면 시간 제한을 무시하고 적어 내려가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자기통제를 포기해야만 하는 정말 두려운 요구가 뒤따른다. 하지만 분명히 약속하건데, 당신에게는 충분히 그 반대편을 뚫고 올라가 나중에는 노래를 부르며 빠져나올 능력이 있다. 물론 노래를 부리기 전에 울음을 터트릴지도 모르지만, 우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저 당신의 느낌이 가는 대로 계속 글을 쓰는 것만은 잊지 말라. 매우 드문 일이긴 하지만, 나는 최고의 글을 쓰고 있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낀다.
p167 당신이 글을 밀고 나가 그저 적당한 종점에서 끝맺으려고 한다면, 그 글에는 당신의 진정한 숨결이 배어날 수 없다. 글쓰기는 자유를 향해 헤엄칠 수 있는 위대한 기회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
p167 심지어 당신이 자신을 충분히 밀고 나갔고 철저하게 자아가 깨졌다고 느낄 때조차도, 조금만 더 앞으로 밀고 나가라. 중간에서 멈추지 말라. 이 순간은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나중으로 미룬다면, 지금 작품을 끝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순전히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멀리,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
☞ 나의 글쓰기는 이제 시작이다. 연구원1년이 되어간다. 연구원이 끝난 것이 아니다. 마무리하는 단계가 아니라. 이제 나의 글쓰기 인생의 시작이다.
* 삶을 사랑하라
p168 여기는 그리스의 어느 섬이다.
☞ 서유럽, 동유럽, 북유럽, 남부유럽 등으로 여행을 가자!
p169 나는 결국 혼자 있어야 할 필요를 절감한다. 산책을 한 다음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인생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이 하나씩 있다. 나의 두려움은 고독이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 나의 두려움은 부족함, 결핍이다. 능력이 없음에 대한 부족함때문에 끊임없이 결핍을 느끼고 부족함을 채우려고 이것저것 시도하고 벅차한다. 이미 나의 능력이 충분함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p172 '인간은 고통을 안고 산다‘라는 사실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라. 결국에는 너무나 보잘것없고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들의 인생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민의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발 아래 깔린 시멘트와 혹독한 폭풍에 짓이겨진 마른 풀들마저도 다정스레 바라보게 한다. 예전에는 추하게 생각했던 주변의 사물들을 이제는 손으로 만지게 되고, 사물의 세부를 있는 그대로 보아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그 사물이 여기 잇다는 사실, 우리 인생을 싸고 있는 일부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인생을 사랑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지금이 순간의 인생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 의심이라는 생쥐에게 갉아먹히지 말라
p174 지금 세상에 나온 책들 가운데 출판조차 못했을 뻔한 책이 아마 수천 구너도 넘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저 계속 가야만 한다는 진실이 있을 뿐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쓰라! 설령 그 글이 출판되지 않더라도 또 다른 글을 계속해서 쓰라. 훈련은 당신의 글을 점점 더 훌륭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 pre-book fair를 앞둔 지금, 명심할 것. 어떠한 상황에서든 글쓰기의 길을 계속 갈 것. 멈추지 말고 쓰고 또 쓸 것.
p175 비평가가 지껄이는 말에는 신경 쓸 것 없다. 거기에는 당신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게 하나도 없다. 대신 자신의 글쓰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라.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인내심과 유머 감각을 키우라. 의심이라는 생쥐에게 갉아먹히지 말라. 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잃지 말고 저 너머에 있는 광활한 인생을 바라보라.
*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다.
p176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부터 글쓰기는 좋은 것이며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글쓰기를 적이 아니라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
p176 실제로도 글쓰기는 당신의 친구다. 글쓰기는 절대로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 당신이 셀 수 없이 많은 글을 버릴 수는 있어도 글쓰기가 당신을 버리는 일은 절대 없다. 글쓰기 과정은 인생과 생명력의 끊임없는 자원이다.
p177 고어 비달은 아주 멋진 말을 남겼다. “모든 작가와 독자들은 글을 잘 쓰는 것이 그들 모두에게 최고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글을 ‘잘’ 쓰는 것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말라. 그냥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니까.
* 장대 위에서 발을 떼라.
p178 더 나가기를 원한다면 그 끄트머리에서 발을 떼야만 한다. 성공적이느 글을 썼다고 해서 결코 쉴 수는 없다는 뜻이다. 실패한 글을 썼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p178-179 "나는 정말 좋은 글을 써냈어.“ 하지만 지금은 또 다른 새로운 시간이다. 다른 것을 써야 한다. 목표를 달성해다고 해서 또는 큰 실패를 맛보았다고 해서, 글을 쓰지 않고 이 시간을 흘려 보내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건 당신은 계속 앞으로 나가야 한다. 이것만이 당신을 건강하게 또 살아있게 지탱해 준다. 사실, 백 미터짜리 장대에서 발을 뗀다고 해서 꼭 떨어진다는 법은 없다. 어쩌면 당신은 하늘을 날게 도리지도 모른다. 이 세상 어디에도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은 없다. 그러니 그저 계속해서 글을 쓰라.
p179 만물은 아무런 이유 없이 생겨나고 또 사라져간다. 이거야 말로 더 바랄 것이 없는 기가 막힌 기회다. 당신은 언제라도 다시 새롭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다. 이전의 실패는 모두 놓아 버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무언가 위대한 글을 쓰라, 아니면 실패한 후에 느낀는,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에 대해서라도 쓰라.
* 왜 글을 쓰는가
p181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아주 좋은 질문이다. 우리는 이따금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그 질문 안에 모든 대답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
p182 한 가지 알아야 할 점은, 글쓰기가 인생을 치료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글쓰기 자체가 치료술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연을 당한 사람이 초콜릿을 사랑의 대체물로 여겨 마구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오면 그는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고(물론 이런 자신을 깨닫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초콜릿 먹는 것을 중지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당신은 애정결핍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가 흐지부지 중단할 수도 있다. 글쓰기는 치료술보다 훨씬 심오하다. 그래서 당신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p183 글쓰기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만약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찾아낸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든지, 글쓰는 행위를 부정하기보다는 자신을 더 깊이 불사르며 글쓰기 속으로 몰입하게 해 줄 것이다.
p183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또는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가?“라고 묻되, 깊이 생각하지는 말라. 그 대답은 펜을 잡고 종이 위에 분명하게, 단정적인 진술로 하라, 모든 진술이 100퍼센트 진실일 필요는 없으며, 하나의 문장이 나머지 문장들과 모순되어도 상관없다. 아니, 거짓말로 꾸며서라도 계속 끌고 가보라. 설령 왜 글을 쓰려는 것인지 모른다 해도 글을 쓰는 이유를 아는 것처럼 대답해 보라.
☞
p185 1984년 4월, 나의 단골 제과점인 크로와상 익스프레스에서 쓴 글이다. 지금 다시 이 글을 쓴다면 아마 전혀 다르게 씌여질 것이다. 우리의 글 속에는, 그것이 쓰여지던 순간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그 순간의 환경이 모두 용해되어 있기 때문이다.
* 관통하는 글쓰기
p188-189 명심해야 할 것이 또 있다. 당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 자체가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그 일을 하고 있는가, 어떤 방법으로 그 일에 접근해 나가는가 그리고 그 일에서 어떤 가치를 얻는가 하는 점이다.
p189 우리는 모두 전체의 한 부분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우리를 통해서 글로 쓰여지고 잇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케이트와 나는 월요일 온종일 서로를 관통하고, 모든 거리, 커피를 관통해서 글을 썼다. 이런 관통하는 글쓰기만이, 흐르는 피가 땅에 스며들 듯 다른 곳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힘이 생긴다.
p190 친구와 같이 공동 글쓰기를 시도하다 보면 자기 안에만 깊이 처박혀 있는 자기 자신을 바깥으로 한걸음 내딛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작가로 살아남기
p192 우리는 작품 속과 작품 바깥이라는 두 가지 세계를 하나로 묶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은 비공격의 실천이다. 우리는 작품 속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도 이 기술대로 살아야만 한다.
p192 카타기리는 말한다. “우리의 목표는 매순간 모든 존재에 대해서 상식적으로 대하고 친절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 말은 종이에는 멋진 시를 적으면서 자기의 삶에는 침을 뱉지는 말라는 뜻이다.
p193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가장 깊은 비밀이다.
* 자신이 쓴 글에서 떠나라
p194 학교, 교회, 명상센터, 탁아소에서 주최하는 바자회나 사육제를 그냥 놓치지 말라. 그 행사에 공헌할 일이 없다는 생각은 버려라. 이런 장소에 당신은 즉흥적인 ‘글쓰기 창구’를 만들 수 있다.
☞ 해피엔딩 1page 자서전 써주기! 꿈그림 써주기! 갑자기 서예를 배우고 싶다. 시를 멋진글씨로 써준다면 좋을 것이다. 아님 내가 써준 글에 멋진 맺음말을 써주는 것도. 예술이 1page 안에 공존하는 것.
p195 나는 노트 한 쪽을 완전히 채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절대 다음장으로 행을 넘기지 않고, 내가 쓴 글을 읽기 위해 중간에 멈추지 않는 것도 원칙에 들어갔다. 또 운율에 맞추어 글을 쓰겠다는 생각도 버렸다. 이렇게 나는 내 습작노트를 채우듯 한 장 한 장을 채워나갔다. 이 방법 역시 또 다른 글쓰기 훈련이었다.
p195 위대한 불교 지도자인 초감 트룽파
☞ 님포차???
p196 즉흥 글쓰기 창구는 바로 이러한 위대한 전사가 될 수 있는 기회다. 글을 쓰는 동안 모든 것을 집중시켜야 하며, 그 다음에는 아무 미련없이 자기가 쓴 글을 고객에게 넘겨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빠르게 글을 쓰게 되면 실제로 자기제어가 통하지 않게 된다. 내 경우는 처음에 쓰려고 했던 것보다 항상 더 많은 글을 쓰게 되었다.
p196 우리는 대중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대중은 진실의 단면을 보고 싶어 한다. 내가 만든 ‘글쓰기 창구’는 대중성의 한 극단을 보여 주는 것이다.
p198 자신이 쓴 글을 완전히 떠나 보내는 것. 그럴 수 있을 때 당신은 작가로서 완전하게 설 수 있다.
☞ 자신의 학생을 완전히 떠나 보내는 것이 되어야 교사로서 완전하게 설 수 있다. 이전의 좋은 기억으로 올해의 아이들과 비교를 하거나 이전의 나쁜 기억으로 올해의 아이들을 판단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이전의 아이들이 성장을 위해 떠나는 것을 축복하고 완전하게 보내주자. 그리고 새롭게 맞이하는 아이들에게 완전하게 집중을 하자.
* 문학의 형식, 삶의 형식
p199 글을 장편소설이나 단편, 시, 희곡 등 장르마다 모두 특별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어떤 정해진 형식에 맞는 글을 쓰고 싶다면 그 형식으로 적은 글을 많이 읽는 게 최고다. 그 형식만이 가지고 있는 호흡을 눈여겨 보라. 맨 첫 문장이 무엇이었나? 어떻게 긑을 맺었는가? 같은 형식의 글을 많이 읽으면 그 형식이 당시의 의식에 저절로 각인이 된다. 그래서 직접 글을 쓰려고 할 때 그 구조에 맞는 글을 쓰게 된다.
p201 많은 하이쿠 작품을 읽다 보면 그 안에는 반드시 독자들의 마음을 도약시키는 순간이 들어 있음을 보게 도니다. 독자들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초월적인 세계를 일깨우는 순간이다. 바로 이런 순간 우리는 신을 경험하며 저절로, ‘아!’하는 감탄사를 터뜨리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하이쿠가 가지는 미덕이다.
p202 3행시 짓는 법을 아무리 많이 연습해도, 그 짧은 행간에 신과 접촉하는 경험을 담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p202-203 우리는 한 편의 좋은 장편을 얻기 위해 세 편의 장편을 쓰는 훈련을 거칠 수도 있다. 형식이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문학의 형식도 배워야 하지만 우리는 또한 인생이라는 형식을 채워 나가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인생의 형식에도 훈련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 익숙한 초원을 떠나라
p207 내 말은, 우리 삶에는 반드시 미쳐 버려야 할 시기, 사물을 바라보는 일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렇게 견고하지도 않고, 구조적으로 완벽하지도 않으며, 영원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배워야 할 때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삶은 언젠가는 당도할 죽음을 향해 하고 있는 것이며, 이 죽음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p207 LSD에 취하지 말라. 그저 아무도 모르게 사흘 동안 숲속에 들어가 지내보라. 당신이 말을 겁내는 사람이라면, 말 한 마리를 사서 말과 친구가 되어라. 자신을 규정하는 경계를 확장시켜라. 잠시 동안이라도 그 경계선 끄트머리에서 살아보라.
☞ 떠나고 싶다. / 인적이 드믄 그곳, 시원한 바람에 더위를 식히고 맑은 시냇물 소리에 머리를 식히는 그곳. / 뜨끈한 온돌의 기운에 온몸의 피로가 녹아내리고 창호지로 새어 들어오는 겨울바람에 정신이 명료해지는 곳. / 낯선 이들로 가득한 공항의 새벽, 시내로 가는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싣고 파리의 몽마르뜨언덕으로 간다. 이른 아침 문을 연 카페에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에메랄드 빛 눈동자의 청년이 인사를 건낸다. 따끈한 차 한잔을 시켜놓고 모닝페이지를 써내려간다.
p207 우리는 스스로를 영원불멸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며, 이런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그 시간조차 알지 못한다. 오래 살다가 편안하게 자연사하기를 바라지만 당장 몇 분 후에 죽을 수도 있다.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우리의 숙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해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숙명에 대한 깊은 고찰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더욱 생동하게 만들고, 현실에 충실하게 만들며,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만들어 준다.
p208 글쓰기에도 커다란 들판이 필요하다. 너무 고삐를 세게 잡아당기지 말라.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할. 아무 이름도 없는 곳에서 철저하게 길을 헤맨 다음에라야 당신은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
* 규칙적인 연습은 창조력을 마비시킨다.
p209 다른 운동이 그렇듯, 글쓰기를 발전시키는 데는 연습만이 지름길이다. 하지만 글쓰기 훈련은 의무적으로 치러질 수 없다는 점이 여느 훈련과 다르다. “그래, 나는 오늘 한 시간 동안 글을 썼지. 어제도, 그제도 한 시간씩 훈련했어” 이렇게 그냥 시간만 채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시간 속에 엄청난 압력을 가해야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는 목숨을 기꺼이 그 글 속에 집어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기계적으로 펜을 끄적거리면서 언제 시간이 끝날까 자꾸 시계만 쳐다보게 될 것이다.
p209-210 "매일 글을 쓰라.“ 이 규칙대로 실행하는데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의무감으로 했기 때문이다. 규칙을 따지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다. 마음은 다른 곳에 두고 단지 규칙에 맞추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는 것처럼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는 없다. 만약 당신의 기본 자세가 이렇다면 당장 글쓰기를 중단하라. 일주일에서 멀게는 1년이 되어도 좋으니 글쓰기에서 떨어져 있으라. 무언가를 말하고 싫은 갈증을 느껴, 말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을 때까지 기다려라. 그런 다음 글쓰기로 돌아가라.
p210 만약 하루도 쉬지 않고 몇 날 며칠을 계속 글쓰기에만 매달리고 있다면, 잠시라도 완벽한 휴식을 가져야 한다. 글쓰기와 완전히 다른 일을 시작해 보라. 어둡고 칙칙한 방에 칠을 다시 해볼 수도 있다. 그래, 흰색으로 칠해 보자. 신문에 소개된 요리법대로 간식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당신의 모든 에너지를 글이 아닌 다른 일에 몰입시키는 것이다. 아이들과 2주일 내내 놀아 주어도 좋다. 이러는 사이 당신은 당신의 리듬, 즉 언제 글을 쓰고 싶어지고 언제 휴식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 리듬은 자신과 더 깊은 관계를 맺도록 도와 준다. 이제는 맹목적으로 규칙에 매이지 않게 된다.
p211 우리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만 배울 뿐, 규칙이 왜 그리고 얼마나 가치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p212 인생에는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반복되는 일상이 때로는 유동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학교에 가서 글을 배우고 파란 줄이 쳐진 종이 위에 편지 쓰기를 배우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p212 글쓰기에도 이러한 유동성의 공간이 필요하다.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글을 쓰면 단어들이 가득 채워진 종이 몇 장은 얻을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당신은 우울한 느낌이든, 끔이든, 희망이든, 진정한 자신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p212 만약 오랜 시간에 걸쳐 썼던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글Tm기에 충분히 몰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되겠다는 희망을 오직 연습 시간의 경과로만 채우고 있다면, 당신은 평생을 연습해도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다. 따로는 더 멀리 가기 위해 인생을 변화시켜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p214 자신의 규칙대로 미리 단정하지 말라.
p214 모범생이 되기 위한 모범생은 되지 말라. 규칙에 얽매이면 글쓰기에 필요한 ‘진짜 현실’이라는 반석을 얻지 못한다. 그냥 옥수수밭으로 들어가라. 심장 전체로 글을 쓰라. “난 매일 글을 쓰겠어” 따위의 규칙으로 자신을 마비시티는 짓을 하지 말라.
p214 글쓰기에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인생을 바꾸어야 했던 내 친구처럼, 그 반대 역시 진실이라는 사실이다. 글쓰기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면 결국에는 글쓰는 작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시간이 흘러 다시 규칙을 지키는 ‘착실한’ 사람으로 돌아가겠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진실은 말하지 않게 된다. 글쓰기 훈련에 자신을 충실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몰입하는 사람만이 자기 인생에도 몰입할 수 있다.
p215 글쓰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에게는 진실을 말할 신성한 임무가 있으며. 그 임무는 종이에서부터 걸어나와 우리의 인생 전체로 들어가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지 못하다면 작가로서의 우리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우리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도 넓어진다. 이런 이유로, 인생이 무엇인지 그리고 글을 쓰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큰 도전이다. 그 도전을 받아들이라.
*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p216-217 결혼, 히피 체험, 여행, 미네소타와 뉴욕에서의 생활. 교사직, 영적 훈련 등 모든 일을 다 해 보고 나서 자신에게 예정되어진 문명이 글쓰기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 이제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게 된다. 그동안 글쓰기를 회피하려 얼마나 애써왔는지 상관없다. 어느 순간 당신 앞에는 글쓰기만이 버티고 서 있다. 그 이후부터 당신은 하루하루의 기분에 의해 당신의 마음이 좌우되거나 흔들리지 않게 된다.
p217 이제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 당신은 지금 글을 쓰는 방법 또는 글을 쓰게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든지 이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기계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 만약 글을 쓰기로 결심한 날인데 아이를 치과로 데려가야 한다면, 치과 대기실에서 글을 쓰면 된다. 아니면 글을 한 줄도 쓰지 않아도 괜찮다. 그거 꼭 해야 하는 일 밑에, 이 거칠고 가련하고 놀라운 글쓰기 훈련이 닿아 있다는 사실만 명심하라.
p217 글쓰기를 항상 우호적으로 대해야 한다. 당신이 돌아가야 할 곳이 적이기보다는 다정한 친구인 것이 훨씬 위로가 되는 법이다. 13세기의 선승인 고겐은 이렇게 말했다.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다.” 이것이야말로 부침이 심한 인생에서 우리가 글쓰기를 향해 가져야 할 궁극적인 태도와 신념이다.
p218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전술의 변화와 상관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글쓰기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p218 글쓰기는 숨을 쉬는 것과 똑같다. 아무리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어도 숨쉬기를 잊어버릴 순 없다. 정원을 손질해야 하고, 지하철을 타야 하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소중한 일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글쓰기의 기본이다.
p219 작가가 되려면 아주 깊은 믿음이 따라야 한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깊은 진실이다. 그리고 만약 작가가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작가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나머지 인생동안 가야 할 길이다. 나는 이 사실을 다시 또 다시 기억할 것이다.
* 음식에 대해 써 보라
p220 글쓰기를 하다가 막히거나 글이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되어갈 때, 음식을 주제로 글을 써 보라. 언제라도 떠올릴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 가운데 음식만한 것도 없다.
p221 가장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써 보자. 뭉뚱그리지 말고 구체적으로 음식 하나를 골라야 한다. 거기에 살을 붙여 나가자. 어디에서 누구와 같이 먹었는지, 어느 계절에 그 음식을 먹었는지 등의 세부 사항을 가능한 한 자세하게 묘사해야 한다.
p221-222 음식을 소재로 삼아 당신은 추억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 수도 있으며, 아주 철학적인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로, 러시아로, 종교적인 장소로, 나무사이로, 보도 위로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다. 바로 당신 앞에 있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이고 분명한 음식에서 글을 시작해 보라.
p222 물론 여러분 중에는 사교적이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이제껏 정말로 근사한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뉴욕 1번 가에 있는 당신의 싸구려 아파트 한 구석에서 썩어가는 치즈 샌드위치와, 바퀴벌레가 빠진 채 이틀이 지난 시커먼 커피에서 시작해 보자. 이것이 인생이니, 인생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 외로움을 이용하라
P223 "당신은 혼자 살아가야 합니다.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해요. 그것이 당신의 궁극적인 주소지이니까요.” - 카타기리 선사
P224 "아니요. 고독은 익숙해질 수 없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 냉수 샤워를 합니다. 그때마다 물의 차가운 기운에 펄쩍 놀랍니다. 하지만 나는 물줄기를 피하지 않고 계속 서 있습니다. 고독은 언제나 우리를 물어뜯습니다. 우리는 익숙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서 있을 수 있는 법을 배우기 고독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P225 고독을 이용하라. 고독의 아픔은 당신에게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만들어 줄 것이다. 고독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그 고독을, 당신의 더 깊은 곳을 탐사하는 내시경으로 이용하라.
* 스스로에게 넌덜머리가 났을 때
P227 하나의 작은 자극이 때로는 위축된 창조력을 되살려 줄 때도 있다.
P227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만 된다면 얼마든지 파격적인 변신을 해도 좋다.
*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라
P229 가끔 다른 사람의 인생만이 재미있고 내 인생은 무의미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이렇게 자기중심을 놓쳐 버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만 찾기 시작하면 우리는 균형을 잃어 한쪽으로 기울고 만다. 이 말은 오직 자신의 이야기만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타인에 대해서 그렇듯 자신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시선을 가져야만 한다는 뜻이다. 즉 ‘그들도 부자고 나도 부자다.’
P230 습작을 할 때 글의 리듬을 주시해 보라.....글 속에 미묘하게 작용하는 리듬은 그 자체로 하나의 표현 수단이다.
P231 가족의 말투와 독특한 표현을 목록으로 작성해 두면 좋은 글쓰기 자료가 된다.
P231 그저 머물기 위해서라면 집으로 가지 말라. 당신이 집에 가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더 큰 자유를 얻기 위해서다. 자신이 누군인지 확인하고, 그것을 더 이상 회피하지 않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무언가 회피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장 글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P231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여 더 큰 창조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명심하라. 뿌리로 돌아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뿌리에 고착되어서는 안 된다. 뿌리 위에는 가지와 잎사귀와 꽃이 있다. 이것들은 무한한 하늘을 향해 뻗어간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P233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작가들은 도자들로부터 이해받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만든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러니 당신의 글을 읽을 독자에게 당신 심장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오는 기회를 만들어 주라. 당신은 카톨릭 신자, 남자, 남부사람, 흑인, 여자, 양성애자 그리고 하나의 인간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독자에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당신은 이 모든 것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알고 있다.
P233 나는 누구인가? 또 네 글의 원천은 어디인가? 이것을 이해하고 다시 이것을 다른 이들에게 이해시켜 줄 때, 당신이 전달한 것은 비단 당신의 뿌리에 대한 편협한 기록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근원에 대한 기록일 것이다.
* 이야기 모임 만들기
P237 우리는 누구나 이런 소중한 이야기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다. 친구들과 이야기 모임을 만들어 보라. 촛불 하나만 있으면 도니다. 약물이나 술에 취할 필요는 없다. 일단 이야기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이 매혹될 테니까 말이다. 그런 다음 나중에, 당신의 이야기를 글로 적어 보라. 글을 시작할 때는 이야기를 할 때처럼 꾸밈이 없어야 한다. 글을 시작하는 데 애를 먹은 경험이 있다면 대화하듯 써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 벌거벗은 자만이 진실을 쓸 수 있다.
P238 첫 번째 10분간 모두가 글을 쓴다. 이 10분이 지나면 각자가 썼던 글을 차례대로 읽는다. 글에 대해 비평하는 시간은 없다.
P239 아무튼 수업은 자연스럽게 슬러가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P239 이 수업의 특징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쓰고, 읽고, 다시 쓰고 읽기 때문에 의식이라는 것을 챙길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이며, 어떤 비평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쓸 수 있다는 자유를 얻게 된다.
P239-240 다른 사람 작품에 평을 하지 않는 이 방식은 글로써 모든 것을 표현하겠다는 건강한 욕구를 만들어 준다. 말하고 싶은 에너지를 다음 번 글쓰기에 쏟아 붓는 것이다. 쉬지 않고, 쓰고 읽고 쓰고 읽는 것을 반복하는 이 방법은 내부의 검열관을 잘라 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또 마음 속에 들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글로 나타내게 만드는 엄청난 자유를 허용해준다.
P241 마라톤 수업은 자신을 열어 보는 대단한 경험이다.
P243 나 혼자서 오랜 시간 동안 글쓰기를 할 때도 이와 비슷한 감정이 찾아온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당연한 반응이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자신을 열어 보이는 데 익숙하지 않은 존재들이다. 자신을 벌거벗기고 해체시키는 기분, 하지만 이것도 괜찮으니 받아들이라. 벌거벗은 자만이 어느 것에도 왜곡되지 않는 진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므로.
* 누구에게나 천재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
P245 우리 안에 들어 있는 목소리를 글로 표현하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 일이 어렵다는 사실에 대한 선입견이 어찌나 강한지, 많은 사람들은 내면의 목소리를 성공적으로 글로 옮겨놓고 나서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세익스피어 같은 대문호라는 말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정직한 고결함과 세심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표현해 내는, 천재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능력과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고,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의 글이 우수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P246 교사로서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학생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믿고 거기서부터 우러나온 글을 쓰게 하지 위해서다. 이 목표에 이르기 위해 나는 여러 각도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본다. 그러나 내가 가르치는 것은 칠면조 구이 위에 드레싱을 뿌리는 것이 전부다. 칠면조는 학생들이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P247 카타기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 우리 모두가 부처입니다. 나는 당신이 부처라는 것을 압니다. 당신은 내 말이 믿어지지 않겠죠. 당신이 자신이 부처임을 자각할 때, 당신은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P247-248 자신의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 그 가치를 올바로 이해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바깥에서 보여지는 모습으로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쉽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이 좋은 글을 썼음을 인정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속에 들어 있는 진정한 재능과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 사이를 가로막던 장애물을 치워버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하는 이 작업이 아름답고 창의적인 인간의 작업이라는 사실을 끌어안아야만 한다. 때로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 사실이 보일 때가 있다. “아, 그대 나는 정말 괜찮았어.” 하지만 그건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깨달음일 뿐이다.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P248 내 말은, 우리 안에는 누구나 뭔가 천재적인 것이 들어 있으며 그것을 바깥으로 발산시켜야만 한다는 뜻이다. 내면에 있는 풍요로움을 외부에 있는 작품으로 연결시키는 것, 이것이 예술가들이 바라마지 않으면서도 다가서기 힘든, 고요한 평화와 확신감을 얻는 열쇠다.
P248 "나는 좋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좋은 글을 막는 벽을 뚫고 나가 그 글이 바로 나 자신임을 주장할 능력이 있다“라고 말하라. 이것이 우리가 맨 먼저 떼어 놓아야 할 첫 걸음이다. 이것이 우리가 채워 나가야 할 내용이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고 더불어 우리의 작품도 훌륭할 때, 그것이 좋은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그것과 함께 서 있어야 한다.
* 작품을 평가하는 스스로의 잣대를 가져라
P251 작품을 평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을 두고 읽어 보는 것이다. 만약 확신이 생기지 않는담녀 잠시 미루어 두라. 그리고 6개월 후 다시 작품을 읽어 보라. 무언가 더 분명하게 보일 것이다. 어쩌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지만 당신의 눈에는 정말 마음에 드는 시가 보일지도 모른다.
P251 만약 6개월이 지난 후 다시 읽었을 때에도 작품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낙담하지 말라. 당신이 쓴 좋은 부분은 이미 당신을 위한 퇴비가 되기 위해 발효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무언가 좋은 것이 되어 밖으로 나올 것이다. 인내심을 가지라.
* 사무라이가 되어 써라
P254 자신이 쓴 글에서 어느 부분이 살아 있고 깨어 있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글이 계속 타 들어가 환한 빛을 내는 그 지점이 결국 하나의 시와 산문이 된다. 그리고 이 차이는 누구나 알 수 있다. 완전히 태워버린 것, 첫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것만이 모든 사람을 깨우고 모든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다. 누군가 정말 뜨거운 작품을 읽을 때, 그것이 듣는 모든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수업을 하면서 많이 보아왔다.
P255 자신의 작품을 솔직하게 쳐다보라. 무언가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된 것이다. 만약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죽은 말에 채찍질하는 짓은 멈추라. 다른 글을 쓰라. 무언가가 나타날 것이다. 나쁜 글은 세상에 이미 너무 많다. 그래서 좋은 글을 단 한줄만 써도 당신은 유명해질 것이다. 미적지근한 글은 사람을 잠들게 만든다.
* 고쳐 쓰기
P256 자기가 쓴 글을 쓰자마자 다시 읽어 보지는 말라.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기 전에는 잠시 시간을 두고 기다리라. 작품에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한 달 정도 걸려 노트 한 권 분령의 글을 썼다면, 이제는 마치 다른 사람의 글을 대하듯이 처름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보아야 한다.
☞ 모닝페이지 쓰는 것과 같은 기법이다. 8주동안 보지 않고 이후에 세세하게 읽는 시간을 갖는 것.
p256 건너뛰지 말고 한 페이지씩 차례대로 읽어라. 글을 쓰던 당시에는 아둔하게 느껴졌던 것들도 다시 읽을 때는 나름대로의 패턴과 리듬을 보여 줄지도 모른다.
p257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기회다.
p257 평범한 존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이 가진 위대한 힘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p259 산만한 정신을 뚫고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훈련이다. 한 달 수 당신은 그 시절 당신이 썼던 노트를 읽으며 그 글의 훌륭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의 무의식과 의식이 만나 서로를 깨닫고 하나가 되는 시점이다. 이것이 작품이다.
p259 다시 읽는 도중 좋은 글이 보이면 동그라미 표시를 하라. 때로는 한 페이지 전체가 빛나는 글일 수도 있다. 이런 글은 다음 작품의 도입 부분으로 이용하거나 또는 그 자체를 하나의 시로 삼아도 좋다. 좋은 부분들을 타이핑해 놓으라. 흰 종이에 검은 활자를 만들어 놓으면 그 작품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지 알아보기가 한결 쉬워진다. 오점이 있는 곳, 다시 말해 당신 마음이 들어가 있지 않은 부분은 떼어내라. 하지만 단어를 수정하지는 말라, 왜냐하면 이것은 자신의 목소리를 믿는 능력을 심원화 心願化하는 훈련이기 때문이다. 만약 글을 쓸 때 당신이 진정으로 글 속에 있었다면, 글로써 나타나게 마련이다.
P259 글쓰기를 벌거벗는 것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다시 읽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을 얻게 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조금도 과장시키거나 공격하는 일 없이 그저 수용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P260 작품을 다시 돌아볼 때는, 지금 이 순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라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전사, 즉 사무라이가 되어야 한다. 미련 없이 적을 잘라 내는 사무라이처럼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을 때는 기꺼이 감상을 버려야 한다. 깨끗하게 본질을 꿰뚫는 마음으로 자신의 글을 쳐다 보라.
* 나는 죽고 싶지 않다
P264 카타기리는 이 영적인 사람들이 평화를 느끼게 되기까지는 지난한 삶의 노력과 그 순간을 움직이는 우연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예술가들이 생명력 있는 작품을 얻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요한 평화와 접촉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접촉을 이루지 못할 경우 예술가는 파멸한다고 헸다.
P264 작품에 매여 아무리 바쁘더라도, 우리는 평화의 장소에서부터 나온 것으로 불타는 생명력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P264 우리는 스즈키 선사가 죽음을 앞두고 내뱉은 “난 죽고 싶지 않네”라는 말 속에 씁쓸하지만 명료한 진실이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분노나 자기 연민, 자기 비난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진실을 수용해야 한다.
P265 만약 우리가 글쓰기를 통해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계속 작가로 지켜 주는 골인 지점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뉴욕이나 뉴저지의 책상 앞에 있지 않고 티베트의 고원에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인생이 눈앞에서 으르렁대고 죽음이 바로 등 뒤에 쫓아오더라도, 그저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쓰기 위해 언제라도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에필로그
P267 가장 힘든 싸움은 글 쓰는 행위가 아니었어요. 내가 과연 괜찮은 것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싸우는 게 제일 힘들었죠.
P268 카타기리 선사가 언젠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쪽에서 당신 책을 출판하겠다고 하면 아주 잘된 일이지만, 그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당신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일입니다. 계속해서 글을 쓰는 데만 정신하십시오.”
<내가 저자라면>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 라는 제목 자체가 의미심장했다. 겉핥기식이 아닌 내면의 깊은 곳의 울림을 글로 써내라는 것이었다. 61개의 꼭지글을 읽는 내내 저자는 시종일관 세상의 눈치를 보지 말고 오직 내가 경험한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자신의 내면의 울림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을 한다. 명상을 통해서 자신의 깊은 내면과 만날 수 있듯이 글쓰기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진정성이 기반이 된 글쓰기가 가능할 때 나의 글을 읽는 독자들도 반응을 할 것이다.
글을 쓰고 싶은 꿈이 있어도 몇 번의 시도를 통해 자신이 화려한 글쓰기를 하지 못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좌절할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오는 진심을 담는다면 훌륭한 글이다.
저자가 25년 이상을 명상수련을 통해서 얻은 삶의 통찰을 글쓰기와 연결시켜 풀어내고 있다. 곳곳에 등장하는 카타기리 선사와 스즈키 선사의 통찰력 있는 이야기들이 읽는 재미를 더 하고 있다. 명상수련이라는 것이 꾸준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서 순간의 깨달음을 얻고 삶에 적용해가듯이 글쓰기라는 것도 일상의 경험을 꾸준하게 글쓰기를 통해 녹아내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 <아티스트 웨이>에서 사용하는 도구들과 비슷한 기법들이 있었다. 역시 진리는 하나로 통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내면의 비판자가 기능하지 못하도록 자신이 쓴 글을 한동안 읽지 말고 몇 개월 뒤에 자세하게 읽으면서 자신의 내면을 확인해보는 것, 사람들과 이야기모임을 만들어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할 뿐 비판하고 평가하지 않아 긍정의 에너지를 보내주는 것, 일상의 경험을 소중하게 다루어 이야기의 소재로 삼고 내면의 울림을 글로 표현하라는 것 등이 모두 같은 원리였다.
결국 이 책의 용도는 <아티스트 웨이>가 직접 12주간 실천을 해보는 것에 가치가 있듯이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다양한 글쓰기를 위한 팁들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에 있다. 단지 읽는 감동으로만 끝내지 말고 실천을 통해 체화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2011년을 맞이하여 저자가 제시한 글쓰기 팁을 하루에 하나씩 실천해 볼 것이다.
그 첫 번째 실천은 다음이다.
p183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또는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가?“라고 묻되, 깊이 생각하지는 말라. 그 대답은 펜을 잡고 종이 위에 분명하게, 단정적인 진술로 하라, 모든 진술이 100퍼센트 진실일 필요는 없으며, 하나의 문장이 나머지 문장들과 모순되어도 상관없다. 아니, 거짓말로 꾸며서라도 계속 끌고 가보라. 설령 왜 글을 쓰려는 것인지 모른다 해도 글을 쓰는 이유를 아는 것처럼 대답해 보라.
☞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어느새 잊고 살았던 명제이다.
1. 감히 말하기 가슴 아팠던 동생의 이야기를 말이 아닌 글로라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싶었다.
2. 내 머리와 가슴에 가득한 뭔가를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 뭔가는 연구원을 통해서 하나 둘 찾아낼 수 있었고 지금도 찾아가는 중이다.
3. 누군가에게 글을 통해 인정받고 싶었다. 최근에 알게 된, 아니 예전에 알았겠지만 외면하고 싶었던 사실, 나는 인정받고 싶은 존재라는 강력한 에고가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글이 그러한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고 바랬다.
하지만 글쓰기가 나의 어떤 욕구에서 비롯되었든 지금은 어느새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글쓰기가 그냥 나의 일상인 것이다. 나는 숨 쉬고 살아있기에 글을 쓴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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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2 | 41. <내 인생의 첫책쓰기> 오병곤, 홍승완 | 박미옥 | 2011.01.03 | 2971 |
2671 | 북리뷰41-<뼛속까지내려가서 쓰라> | 박경숙 | 2011.01.03 | 2471 |
2670 | [리뷰]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최우성 | 2011.01.03 | 2485 |
2669 | 북리뷰 41.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_나탈리 골드버그(한문화) | 박상현 | 2011.01.03 | 2477 |
2668 | [북리뷰]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 이선형 | 2011.01.03 | 2468 |
2667 | 내 인생의 첫책쓰기_발췌 | 맑은 김인건 | 2011.01.03 | 2857 |
2666 | 내 인생의 첫책쓰기_저자, 구성 | 맑은 김인건 | 2011.01.03 | 2873 |
2665 | 북리뷰 64 : 모리의 마지막 수업 - 모리 슈워츠 | 범해 좌경숙 | 2011.01.02 | 3255 |
2664 | 북리뷰- 뼈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 이은주 | 2011.01.02 | 2847 |
2663 | [북리뷰 41]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Writing down the Bones | 신진철 | 2011.01.02 | 2611 |
» |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 김연주 | 2011.01.02 | 2398 |
2661 | 코리아니티_발췌 | 김인건 | 2010.12.30 | 2450 |
2660 | 코리아니티_저자,구성 | 김인건 | 2010.12.30 | 2876 |
2659 | [리뷰] 코리아니티, 구본형 | 최우성 | 2010.12.29 | 2497 |
2658 | [북리뷰 40] 코리아니티 경영 | 신진철 | 2010.12.29 | 2498 |
2657 | 북리뷰40-<코리아니티> [1] | 박경숙 | 2010.12.28 | 2582 |
2656 | < 코리아니티 > / 구본형 / 휴머니스트 | 김연주 | 2010.12.28 | 2218 |
2655 | 북리뷰 40. 코리아니티 경영_구본형(휴머니스트) | 박상현 | 2010.12.28 | 2466 |
2654 | [북리뷰] 코리아니티, 구본형, | 이선형 | 2010.12.28 | 2381 |
2653 | [남편탐구]주제가 있는 독서 일기+코리아니티 | 박미옥 | 2010.12.28 | 2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