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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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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0일 10시 44분 등록

* 원제 : The power of myth

저자 소개

조셉 캠벨(Joseph Campbell. 1904~1987)

 

미국의 신화종교학자, 비교신화학자.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린다. 1904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민담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맨하탄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을 즐겨 찾았다. 그 중 특히 박물관 한 켠에 있는 토템 기둥에 매료되었다고.

대학을 졸업하고 영문학 석사 과정을 수료하는 동안 자신이 어렸을 적 즐겨 있던 아메리카 인디언의 민담과 아서 왕에 나오는 많은 주제들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캠벨은 콜롬비아 대학을 비롯한 파리 및 뮌헨의 여러 대학에서 세계 전역의 신화를 두루 섭렵했다. 특히 파리 대학과 뮌헨 대학에선 중세 프랑스어와 산스크리트 어를 공부하였다
.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안에는 존 스타인벡과 생물학자 에드 리켓츠와 교류하였다. 1934년에는 캔터베리 스쿨에서 가르쳤으며, 이후 뉴욕 사라 로렌스 대학의 교수가 된 뒤 신화의 원형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 신화적 인물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영웅을 중심으로 한 그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다. 또한 1940년대와 50년대에는 스와미 니칼라난다를 도와 우파니샤드와 <스리 라마큐리슈나의 복음>을 번역하기도 했다
.

후일 방대한 정리 작업과 연구를 통해 그는 <신의 가면 the Masks of God>(4)을 펴냈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 볼링겐 시리즈의 탁월한 편집자로도 유명하며, <신화의 힘>, <신화와 함께 살기>, <신화의 세계>, <야생 수거위의 비행>, <신화 이미지> 등의 저서를 통해 왕성한 지적 연구 활동을 펼치다 1987년 호놀룰루에서 세상을 떠났다.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개정판_옮긴이의 말

 

한 문화 권역과 다른 문화 권역의 영웅, 혹은 구세주는, 두 문화권이 교섭한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서로 비슷비슷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바닥,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이집단 무의식이라고 부른 것, ‘원형이라고 부른 것이 서로 비슷비슷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캠벨이 우리에게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이다. 5

 

빌 모이어스의 서문

 

이 시각에도 현대판 오이디푸스의 화신과 <미녀와 야수>의 속편은 41번가와 5번가가 만나는 네거리에서 교통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8

 

모든 고통의 씨앗은 가장 중요한 인간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유한성이랍니다. 인생이라는 것을 알면 이것을 부인할 도리는 없는 것이지요.” 8

à 유한 존재인 인간은 욕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있다. 욕망이 죽음을 의식하는 인간의 단말마라면 죽음이 유예된 뱀파이어는 삶의 긴장이 이완되며 권태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환생을 통하여 두 번 사는 나폴레옹과 뱀파이어 여인의 공감대는 여기서 출발한다.

 

, 이그쥬가르쥬크 말이요? 북부 캐나다 카리부 에스키모의 샤먼이었소. 이 사람은 유럽 손님들에게, ‘참 지혜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서 아득히 떨어진 채 절대고속 속에 은거하는데, 이 참 지혜에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다. ’버리는 것과 고통스러워하는 것만이 세상으로 통하는 마음의 문을 열게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을 했지요.”9

 

이 국장은 대규모의 사회적인 소구가 의례화한 모습이랍니다. 우리의 사회라고 하는 것은 우리로 구성되어 있는 살아 잇는 사회 구조가 아닌가요. 이런 사회의 대표자인 대통령을 백주에 암살했다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에게서 살아 있는 순간을 앗아간 것이나 다름없지요. 결국 사회는 대동단결의 감각을 되찾기 위한 보상적인 의례를 요구하게 된 겁니다.그래서 온나라가 나흘 동안만은 만장일치의 분위기 속에서 하나의 상징적인 이벤트에 동시에 참가하게 되는 겁니다.”9

 

부서진 질그릇 부스러기가 문화인류학의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듯이신화 따위의 잔재가 우리의 믿음이라는 내면적 체계의 벽에 줄지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구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와 인연이 있는 이러한따위는 아직도 어떤 에너지로 작용한다. 그리고 의례가 바로 이 에너지를 촉발한다. 10

 

법의 권위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강제력 이상의 어떤 힘을 지니는 것이기 때문에 재판장의 권능이 의례화하고 신화화하는 것이다. 10

 

영웅의 역정에서 얻는 직관은 이성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랍니다. 영웅의 역정은 이성을 부인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지요. 부정적인 열정을 극복함으로써, 영웅은 우리에게도 우리 내부의 비합리적인 야만을 극복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답니다.”11

à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에서 이미 확인한 바다. 초자연이나 신비로 존재하지 않는 실체를 있는 양 꾸민 것이 아니다. 존재하지만 다만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캠벨은 언젠가, 인류는자기의 내부에 식인종적이고, 색정적인 열정을 지니고 있는데도 이러한 존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탄한 바 있다. 그는 이러한 열정을 인류의 전염병이라고 불렀다.11

 

괴테가 <파우스트>에다 쓴 게 바로 이것인데, 루카스는 시쳇말에다 옷을 입혔지요. 결국 테르놀로지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메시지 아니겠어요? 우리의 컴퓨터, 우리의 연장, 우리의 기계만으로는 넉넉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의 직관, 우리의 참 존재에 기대어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11

 

자기 내부에 자기 운명의 실을 풀어낼 힘이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는 그렇게 합리적일 수 없는 것이지요.” 12

à 운명에의 사랑(Amor fati)을 원한다면 삶의 우선순위를 단순명료하게 재배열해야 한다. 나폴레옹과 뱀파이어 여인에게 구원의 길은 무엇인가. 죽음이 피해간 일상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시간은 우리의 육체를 가둔 감옥이 아니었던가. 헌데 불꽃을 보았다. 희망이었다. 끝이 보인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구도의 궁극적인 과녁은 자기만을 위한 해탈이나 몰아가 아닌, 동아리를 섬기기 위한 지혜와 권능을 얻는 것이어야 합니다.” 12

 

그의 말에 따르면, 고명한 구도자와 영웅은 다른 점이 많은데, 그 다른 점 중에서도 가장 다른 점은 구도자는 자기만의 삶을 누리기 위해 도를 닦지만 영웅은 사회의 구원을 위하여 행동한다는 점이다. 12

 

그는 책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양을 읽으면서 평생을 산 사람이다. 그는 문화인류학, 생물학, 철학, 예술, 역사, 종교 책 속에 파묻혀 살았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세계로 난 가장 확실한 길은 인쇄된 책의 갈피에 나 있음을 깨우쳤다. 12

 

운명은 앞서서 뜻 있는 자를 인도하지, 뜻 있는 자의 멱살을 잡아끄는 것은 아니라오.” 14

 

목사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는, 말로써 사람을 믿음에 이르게 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오. 자기가 보았던 빛을 신도들에게 넌지시 보여주기만 하면 될텐데 말이오.”15

 

매튜 아놀드는 최상의 비평은, ‘이 세상에 기왕에 알려진 것, 기왕에 사유된 것을 알고, 다음에는 이 지식을 참되고 신선한 사상의 흐름으로 창조하는 행위라고 갈파한 바 있다.15

à 원전(text)보다 해석에 묘미가 있다. 해석을 통하여 뻔한 삶이 방기한 두근거림을 회복할

수 있다면 원전은 이제 또 다른 원전을 낳은 셈이다.

 

그는 자기의 작업을 관류하는중심 사상세계의 신화가 지닌 주제에서 공통되는 요소를 찾아내는 일임을 인정한 바 있다. 그가 보기에, ‘’세계 신화가 지니는 공통되는 주제는 심오한 원리를 통하여 중심에 이르려는 인간 정신의 욕구를 지향한다.15

 

그러면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군요.” 그는 대답한다.

아니지, 그게 아니요. 살아 있음의경험을 찾는 것이지요.”15

 

우리 존재의 가시적인 지평 너머, ‘어딘가 멀고 아득한 곳에 동물의 주님이 있는데’, 바로 이 동물의 주님이 인간에게 동물의 삶과 죽음을 다스리는 권능을 넘겨준다. 16

 

삶의 본질은 죽이는 것과 먹는 데 있다는 사실 그리고 신화가 다루어야 하는 위대한 신비가 바로 이것임을 깨닫게 된다.16

à 뱀파이어가 인간의 피를 먹는 것과 인간이 고기를 먹는 것은 다른 것인가. 인간이 고기를 먹는 것과 나폴레옹이 인민의 꿈을 이용해 권력을 찬탈한 것은 다른 것인가. 각자에게는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곡물의 씨앗이 영원한 주기를 표상하는 고귀한 상징이 된다. 곡물은 죽고 땅에 묻힌다. 그러면 그 씨앗이 곡물을 재생시킨다. 캠벨은 세계의 위대한 종교들이 모두 이 곡물의 씨앗이라는 상징적인 존재로써 영원한 진리(죽음에서 새 삶이 생긴다는 진리, 캠벨 자신의 말에 따르면희생에서 지복의 삶이 빚어진다는 진리’) 를 드러내는 데 매료 당하고 만다.16

 

너희가 참으로 하찮은 사람들을 대접하는 일이 곧 신에 대한 대접이 되느니라’17

 

영적인 사람이었던 그는 인간의 믿음에 관련된 문학에서 인류 공통의 영적인 원리를 찾아낸다. 그러나 그가 찾아낸 인류 공통의 영적인 원리는 인종의 굴레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이것이 해방되지 못하면 세계의 종교는 (오늘날 중동과 북아일랜드에서 그렇듯) 타인에 대한 능멸과 공격의 수단밖에는 되지 못한다.18

 

신화는 가시적인 세계의 배후를 설명하는 메타포이다.18

 

캠벨의 책에서,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은 방심하는 죄악, 깨어 있지 않는 죄악인 태만은 방기하는 죄악이다. 18

 

진리는 하나이되, 현자는 여러 이름으로 이를 언표한다.” 18

 

캠벨은 비관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환상과 진리의 갈등 너머 존재하는 지혜의 해각을 믿는다. 그의 믿음에 다르면 이 지혜가 우리의 삶을 원초의 상태로 되돌린다. 이 지혜의 해각을 찾는 일은어느 시대에서든 그 시대의 중심과제이다. 19

 

그는 인간을 타락하게 한 것, 인간으로 하여금 신성한 것들과 헤어지게 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의 발달은 인간을 타락하게 하기는 커녕 이 온 우주가우리의 내적 자연이 확대 ㆍ투사된 것임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우리를고대와 만나게 했다’. 말하자면 과학이 우리를 깨우쳐, 우리 자신이 실은 우리의 내적인 자연의 귀이자 눈이자 사고이자 그 말이라는 사실(신학적으로 말하자면, 하느님의 귀이자 하느님의 눈이자 하느님의 생각이자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했다는 것이다. 19

 

그가, 신화를 지나치게 심리학적인 입장에서 해석한다, 신화의 당대적 역할을 지나치게 이념적ㆍ치료적 기능에 국한시키는 듯하다는 비판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20

 

그가 우리에게 열어준 많은 가르침의 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 살았던 삶 자체의 진정성이다. 그는, 신화란 우리 심층의 영적 잠재력에 이르는 실마리이며, 신화야말로 우리를 기쁨과 환상, 심지어는 황홀의 세계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고 믿는 한편, 우리를 그 세계로 불러들이기를 좋아했다. 이렇게 우리를 불러들이는 그는 마치 그 세계를 다녀온 사람 같았다. 21

 

1.  신화와 현대 세계

 

내가 신용하는 것은 어찌어지 하다보니 사로잡히게 되는 주제입니다.25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우리가 정신의 문학과 친해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 일어난 일이나 그 시각에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에만 겨우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25

à 우리 시대에는 경계가 모호한 접경지대가 용납되기 어렵다. 논리로 설명되는 인과율에 치중하다 보니 현상을 원인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인류의 삶을 떠받쳐오고, 문명을 지어오고, 수천 년 동안 종교의 틀을 지어온 고대의 정보는 심원한 내면적 문제, 내면에 관한 신비, 내면적인 통과의례의 문턱을 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 우리는 바로 이 신화라는 것에서 우리로서는 도저히 손에서 놓아버리고 싶지 않은 전통의 느낌, 깊고 풍부하고 삶을 싱싱하게 하는 정보가 솟아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26

 

제임스 조이스와 토마스 만은 나의 스승이었어요. 이분들이 쓴 것은 죄다 읽었으니까요. 이 두 분이 쓴 작품들은 신화적 전통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에 대단히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27

 

만일 이 세상에 유식한 인간을 시인으로 만들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과 살아 있는 것과 일상적인 삶을 사랑하는 나의 고향일 것입니다. 따사로움의 모든 것, 정겨움의 모든 것, 유머의 모든 것은 내 고향이 알고 있는 이 같은 사랑에서 유래합니다. ‘천사의 혀와 인간의 혀로 모두 말하는’, 그러나 사랑이 부족하여꽹과리나 시끄러운 바라 소리나 내는 사람 이야기가 있는데, 나는 이들의 사랑이 심지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사양하지 않습니다.”27

 

토니오는 작가는 진실에 진실해야 한다고 한다고 씁니다. 그런데 토니오가 진실에 진실하면서 애정을 기울이는 사람은 살인자입니다. 왜냐, 인간을 진실하게 그려내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이 지닌 불완전함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인간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합니다. 세상을 떠날 즈음의 석가가 어떠했습니까? 석가의 모습은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불완전한 모습이었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은 작가가 진실한 언어의 창을 던지면 상처를 입고 맙니다. 그러나 그 창은 사랑의 창입니다. 이것이 토마스 만의 이른바에로틱 아이러니라는 것입니다. 잔혹하고 분석적인 언어를 통해 자기 손으로 죽이고 있는 대상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이지요.28

 

사람들이 집에서 기르는 우스꽝스런 강아지를 보세요. 불완전해서 사랑스러운 겁니다.28

 

완전한 것은 비인간적입니다. 보고 듣는 사람에게 초자연적인 인간이나 불사신이라는 느낌을 주는 대신, 아슬아슬한 것, 인간이라고 느끼게 하는 인간미…… 이게 사랑스러운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몹시 힘이 드는 사람이 생기는 게 이것 때문입니다. 하느님에게는 불완전한 데가 없거든요. 하느님에게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 느낌은 진정한 사랑으로 연결될 수 없어요. 그러나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는 사랑스럽지요. 28

 

M : 그건 무슨 뜻입니까?

C : 고통이라는 거지요. 고통은 불완전한 존재만 체험하는 것이 아니던가요.29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의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어떤 실마리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랍니다. 29

 

M : 선생님께서는 신화의 정의를의미의 모색에서의미의 경험으로 바꾸셨는데요?

C : ‘삶의 경험이라고 하기로 합시다. (……)모이어스씨, 당신이라는 분의 의미는 그저 거기에 있다는 것뿐입니다. 외적 가치를 지닌 목적에만 너무 집착해서 움직이는 바람에,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내적 가치임을, 즉 살아 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삶의 황홀이라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게 되었지요.30

 

M : 선생님께서는 그런 것을 어떻게 경험하실 수 있었습니까?

C : 신화를 읽었지요. 신화는 사람들에게 내면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줍니다. 신화를 읽으면 사람들은 상징의 메시지를 해독하기 시작하지요. , 다른 민족의 신화를 읽어야 하지,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를 읽는 것은 아니랍니다.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보다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어야 하는 까닭은, 우리에게는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를 믿음이라는 문맥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으면 메시지를 느끼게 됩니다. 남의 신화를 읽으면 경험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신화가 가르쳐주는 바에 따르면, 결혼은 분리되어 있던 한 쌍의 재회랍니다. 결혼으로 재회하는 둘은 원래 하나였어요.31

 

오랫동안 연애하던 사람이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결혼하고 나서는 얼마 되지 않아 갈라서고 마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봅니다. 왜 갈라설까요? 이른바 연애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절망과 함께 끝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영적인 동일성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31

 

M : 결혼이자기자기의 재회, 우리의 뿌리가 되는 남성 혹은 여성과의 만남이라면, 우리의 현대 사회에서 결혼이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이루어지고 깨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C : 그건 결혼이 아니라니까요. 감히 말합니다만, 결혼으로 맺은 관계를 인생의 가장 중요한 관계로 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혼을 아직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결혼은 원래 하나였던 것이 지어내는 둘의 관계, 둘이 하나의 육을 이루는 관계입니다. 어느 한쪽에서 시시각각으로 변덕을 부리는 대신, 결혼의 관계가 충분히 오래 계속되고, 그러한 관계에 묵시적으로 동의하게 되면 그걸(둘은 실제로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깨닫게 됩니다.32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32

 

결혼은 관계이지요. 우리는 대개 결혼을 통해서 한두 가지씩은 희생을 시킵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관계를 위해서 희생시켜야지, 상대를 위해서 희생시켜서는 안 됩니다.33

 

결혼한 사람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결혼한 사람은 자기의 정체를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결혼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지요. 결혼은 시련입니다. 이 시련은관계라는 신 앞에 바쳐지는자아라는 제물이 겪는 것이지요. 바로 이관계안에서 둘은 하나가 됩니다.33

 

젊은이의 결혼은 어느 대목에 이르면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드는데, 이것이 내가 바로연금술적 단계라고 이름붙인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둘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바로 이 단계에서 부부는 내가 앞서 말한 희생의 의미를 서로 아름답게 깨닫게 됩니다.

 

M : 결혼의 두 단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사태인지요?

C : 전념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34

 

M : 선생님께서는 결혼은 사회적 계약이 아니라 영적인 수련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C : 중요한 것은 영적 수련입니다.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게 해야 하는 것이고요. 사람은 사회를 섬겨야 하게 되어 있지가 않아요. 사회가 사람을 섬겨야 하지요. 사람이 사회를 섬기게 되면 우리는 괴물이나 다름없는 상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34

à 나폴레옹이 살던 19세기는 사람이 사회를 섬기는 시대였다. 사회가 사람을 섬기는 시대에 그는 환생했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제국으로 회귀하려다가 그는 정신병원에서 10년을 썩는다.

 

롤로 메이는 오늘날 미국 사회에 범죄가 이토록 많이 일어나는 것은 젊은 남녀에게 위대한 신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위대한 신화가 젊은 남녀로 하여금 세계와의 관계를 알게 하거나, 가시적인 사회 이면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계를 이해하게 해주어야 했다는 것이지요. 35~36

 

어떤 문화권이든지 우리가 문화권이라고 부르는 모듬살이에는 삶의 규범이 될 만한 룰, 그 문화권 사람들 사이에 묵시적으로 이해되는 불문율 같은 게 잇는 법이지요. 그런 문화권에는 에토스라고 할 수 있는 것, 삶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우리는 그런 식으로는 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어떤 묵시적 양해 사항이 있어요.36

 

신화에 우리 삶에 유효한 메시지가 있다는 말을 처음으로 한 분이 침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전까지는 신화 하면 학자들이나 우려먹는 것인 줄 알았지요. 38

 

카톨릭 가정의 아이는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탄생하고, 무리를 가르치고, 십자가에 매달리고, 부활하고, 하늘 나라로 돌아가는 이 순환적인 주기를 계절적으로 체험하면서 자랍니다. 말하자면 1년 내내 계속되는 의례가 가변적인 존재의 불변하는 핵 같은 것을 어린아이의 마음속에다 새겨놓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자라는 아이에게 죄악이라는 것은 그러한 조화의 관계에서 이탈하는 행위이지요.39

à 19세기에는 세계가 실체로 다가왔다. 글로벌화된 세계는 공간적 한계를 많이 좁혔지만 사람간의 간극이 확대됨으로 인해 관계에 대한 실체감은 오히려 모호해졌다.

 

신화는 문학과 예술에 무엇이 있는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 삶이 어떤 얼개로 되어 있는가를 가르쳐줍니다.41

 

우리가 일어서서 경의를 표하는 대상은 판사 자체가 아니라 신화적인 인격인 것이지요. 42

à 독자들이 나폴레옹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인물 자체 보다는 캐릭터가 지닌 역사적 후광효과 때문이다.

 

입대해서 군복을 입는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개인적인 삶을 방기하고, 자기가 속한 사회를 섬기기 위해 사회적으로 조직된 삶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어떤 개인이 전시에 한 일을 상식의 잣대로 잴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요. 전시에 그 개인은 개인으로서 행동한 것이 아니라 개인보다 훨씬 상위 개념인 어떤 무리, 바로 그 자신이 섬기기로 한 무리의 대리자로서 행동한 것 아닙니까? 따라서 그런 사람의 행동을 개인으로서의 행동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부적당한 것이지요.42

 

보수 종교는 퇴화한 어떤 형태, 더 이상 삶을 섬기지 못할 어떤 모습을 지향합니다.43

 

의식을 머리가 지닌 특수한 기능으로 여기는 데카르트식 사고방식의 일부이지요. 데카르트파 사람들은 머리가 의식을 일으키는 기관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머리라고 하는 것은 의식에 영향을 미쳐 어떤 방향, 혹은 어떤 목적에 맞게 작용하게 하는 기관이지 의식을 일으키는 기관은 아니지요.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온몸에 두루 존재합니다. 이 의식은 의식을 하는 주체에게 살아 있는 세계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합니다.46

à 뱀파이어는 감각체계에서 인간보다 민감하다. 오감을 균형적으로 활용하여 의식을 도출한다.

 

신화는 이 세상의 꿈이지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닙니다. 신화는 원형적인 꿈입니다. 48

 

텔레비전의 퍼스낼러티라고 하는 것은 극장이라는 이름의 특별한 신전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보는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50

à 극장은 신전이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영화산업이 여전히 희망적인 건 신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원자폭탄을 만들었던 오펜하이머는 최초의 원자탄이 폭발하는 것을 보고는, “나는 이 세계의 파괴자인 사신이 되었구나고 했다지요.51

 

인간은 이승의 속박에서 영혼을 해방시키고자 하는데, 뱀이 이승의 속박을 상징한다면 새는 이승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상징하지요. 이제부터 비행기가 그 역할을 맡는 겁니다.53

 

인간은 외부에서 들어온 권능에 복종하지 않아요. 다스릴 따름이지요. 문제는 어떻게 다스리느냐 하는 거지요.54

 

<스타워즈>의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크는 결국 자기 아버지의 가면을 벗기고야 말지요? 그는 자기 아버지의 가면과 함께 아버지가 맡았던 기계의 역할을 벗겨버립니다. 그의 아버지의 가면은 제복에 지나지 않았지요. 그건 힘입니다. 국가가 하는 역할이 바로 그것이지요.55

à 괴테는 나폴레옹을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했다. 나폴레옹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시대를 이끌었다고 생각하지만 시대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기생체를 찾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컴퓨터 말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것들을 신들을 섬기듯 섬기고 있어요. 신들과 동일시하는 것이지요. 이 기계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금제만 잔뜩 요구할 뿐 자비로운 구석이라고는 도무지 한 군데도 없는 《구약성서》의 신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55

 

6세기에 유태인들이 바빌론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문득 이 세계의 구주라는 관념이 생기면서 성서의 신은 새로운 차원으로 발돋움합니다.57

 

나는 현대의 진정한 공포의 도가니를 베이루트에서 봅니다. 거기에서는 서양의 3대 종교,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한 덩어리로 어울려 치고 받고 합니다. ? 성서에 나오는 같은 신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인정하지 못해요. 메타포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그 참 의미는 도무지 깨닫지 못한다고 할까요.58

 

육신의 에너지에서 부추김을 받는 상상력의 노래, 이것이 신화입니다.59

 

내가 아는 한, 지구라는 행성의 신화학에 가장 가까운 것은 불교입니다.61

 

내가 아는 형제애는 모두 구속적인 사회에 갇혀 있어요. 어떤 범주에 구속된 사회에서는 공격성이 밖으로 투사되지요. 61

 

신화는 인류 안에 있는 영적 잠재력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61

 

자연이 악마로 간주되는 순간부터 사람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고 하는 대신 통제하려고 합니다. 62

 

참여와 사랑의 신화는 오로지 무리의 안을 맴돕니다. 밖을 향하면 태도는 표변합니다. ‘이방인이라는 말이 드러내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방인과는 한솥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거지요.61

 

신은 인간의 삶과 우주에 기능하는(개인의 육신과 자연에 기능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힘, 혹은 가치 체계의 화신입니다. 신화는 인류 안에 있는 영적 잠재력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 삶의 기운을 북돋우는 힘은 이 세계의 생명의 기운을 복돋우기도 하지요.61

 

성서적 전승은 사회 지향적 신화학입니다.(……) 여기에서 자연은 쫓겨납니다. 자연이 악마로 간주되는 순간부터 사람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고 하는 대신 통제하려고 합니다.62

 

미합중국은 이 세계에서 전쟁이 아니라 이성을 바탕으로 세워진 최초의 국가입니다.64

 

독수리는 제우스의 신조입니다. 이 독수리는 속()의 시간이라는 장으로 임재하는 신을 뜻합니다. 이 새는 따라서 신의 화신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려진 독수리는 대머리 독수리입니다. 즉 아메리카의 독수리입니다. 따라서 최고신인 제우스의 독수리의 아메리카판입니다. 67

 

아홉이라는 숫자는 이 세상에 내린 신의 힘을 상징합니다.68

 

탐욕은 인간을 타락케 합니다. 우리가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지 않고 측면에 있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71

 

M : 건국 초기의 국부들이 종교의 편협성을 용납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겠고요?

C : 그럼요. 그래서 그들은 에덴 동산 이후 인간이 타락했다는 교설을 용납하지 않았어요. 그들의 믿음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든지 하느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누구에게만 특별한 계시가 내리는 일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거죠.71

 

존재의 바탕, 우주의 근본적인 구조를 고려에 넣고 무엇을 생각해야 비로소 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73

 

신화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네 가지 기능을 지닙니다. 첫째는 신비주의와 관련된 기능입니다. 우주라는 것이 얼마나 신비스러운지를 아는 순간, 우리는 이 엄청난 신비 앞에서 이미 경이를 경험합니다. 신화의 두 번째 기능은 우주론적 차원을 연다는 것입니다. 과학이 관심을 두는 영역이 바로 이 차원입니다. 그러나 과학은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신화는 신비의 샘으로서의 우주를 보여줍니다. 신화의 세 번째 기능은 사회적 기능입니다. 신화는 한 사회의 질서를 일으키고 그 질서를 유효하게 합니다. 신화의 기능 중에서 우리 세계를 가장 폭넓게 지배하고 있는 기능이 바로 이 사회적 기능입니다. 시대착오적이지요. 신화에는 네 번째 기능이 있어요. 오늘날 우리가 한번 음미해보아야 할 것이 바로 이 기능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이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교육적 기능입니다.74

 

성서에 바탕을 둔 우리 서구의 이야기는 선사 시대의 우주관 위에 서 있어요. 이런 이야기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든지, 우주에 관한 오늘날의 개념과는 맞지 않아요. 이건 그 시대 사람들의 것이지 더 이상 우리 것은 아닙니다.76

 

하느님은 자연에서 분리되었고, 자연은 하느님에게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창세기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세계의 주인이 된 것이지요.77

 

이러한 신화는 다른 모든 신화가 다루었던 문제를 고루 다루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유아기에서 성장기를 거쳐 성인기에 이르고, 성인기에서 이 세상을 하직하기까지의 모든 문제, 심지어는 이 사회와의 관계, 이 사회가 지니는 자연의 세계와 우주와의 관계까지 고루 다루어진 신화여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신화가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 이야기가 한결같이 반영하는 신화인 것입니다. 77

 

M : 그러니까 우리 시대의 새로운 신화는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거군요?

C : 그렇지요. 그것이 바로 미래 신화의 바탕입니다. 그 바탕은 벌써부터 여기에 있어요. 내 나라의 눈이 아닌 이성의 눈, 내가 속하는 종교 사회의 눈이 아닌 이성의 눈, 내가 속하는 언어 집단의 눈이 아닌 이성의 눈……. 아시겠지요? 이렇게 태동한 신화는 이 집단, 저 집단, 그 집단의 철학이 아닌 이 땅의 철학이 될 것입니다.78

 

워싱턴에 있는 대통령은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뜻을 전합니다. 하지만 하늘을 어떻게 사고 팝니까? 땅을 어떻게 사고 팝니까? 우리에게. 땅을 사겠다는 생각은 이상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맑은 대기와 찬란한 물빛이 우리 것이 아닌 터에 어떻게 그걸 사겠다는 것일는지요?” 78

 

2. 내면으로의 여행

 

우리는 3만년 전에 살았던 크로마뇽인의 몸과 그 기관이 똑같고 에너지도 똑 같은 몸을 지니고 있어요. 이 뉴욕이라는 인간의 삶을 살건, 동굴에서 인간의 삶을 살건 우리는 똑 같은 삶의 단계를 거칩니다.83

 

신화의 이미지는 아득한 옛날부터 앞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전수된 것이겠군요. 85

 

신화에는, 심연의 바닥에서 구원의 음성이 들려온다는 모티프가 있어요. 암흑의 순간이 진정한 변용의 메시지가 솟아나오는 순간이라는 거지요. 가장 칠흑 같은 암흑의 순간에 빛이 나온다는 겁니다.86

à 신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어둠이 짙을수록 변화가 가까이 있다는 메시지.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이 바로 이 세상 잡사의 근원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87

 

사람은 다 어떤 종류의 문턱을 넘어야 달라질 수 있습니다. 87

à 소설 속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되는 부분이다. 심적인 변화가 요동치면서 에너지 레벨이 급등하는 대목이다. 한 발은 권태의 늪에, 한 발은 지난 상처의 늪에 빠진 주인공이 직면한 문턱은?

 

꿈은 우리 의식적인 삶을 지탱시키는 깊고 어두운 심층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반면 신화는 사회가 꾸는 집단적인 꿈입니다. 그러니까 신화는 공적인 꿈이요, 꿈은 사적인 신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89

 

M : 만일 개인의 사적인 꿈이 공적인 꿈과 발이 맞지 않으면…….

C : 문제가 생기는 거지요. 억지로 체제에 적응하려다 보면 신경증에 걸립니다. 89

à 나폴레옹이 정신병원에 들어간 건 19세기와 달리 사적인 꿈이 공적인 꿈과 불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는 19세기와 21세기의 차이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시련을 극복하고, 기왕에 해석되어 있는 경험에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용기, 이게 바로 영웅의 용기입니다. 89

à 나폴레옹은 중년이 되어 새로운 길로 접어들 것이다. 그것은 영웅의 길일까?

 

꿈은 상상력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아니겠어요? 상상력은 우리 육신의 각 기관 에너지에서 흘러나옵니다.90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사적인 꿈은 신화적인 테마를 표현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꿈은 신화의 아날로지 없이는 해석이 안 됩니다.91

 

생명은 생명을 먹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의식하는 인간의 마음과, 먹는다는 아주 근본적인 사실에 대한 인식을 화해시키는 것이 곧 주로  생명을 죽이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잔인한 의례의 기능인 것이지요.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이 세속적인 세상은 원초적인 범죄에서 비롯되는데, 바로 이 원초적인 범죄를 모방하고, 사회의 구성원이 모두 이 모방의 의례에 참가함으로써 위에서 말한 마음과 인식을 화해시키는 것이지요. 인간의 마음과 삶의 조건을 화해시키는 일, 이것은 창조 신화의 기본 구조를 이룹니다.92

 

이 두 이야기에서 뱀은, 과거를 벗어던지고 계속해서 새 삶을 사는 생명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96

à 권태는 지난 허물을 벗지 못한 뱀이 느끼는 미래부재증후군이다.

 

뱀이 무엇을 잡아먹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원형질적인 삶의 모습에 원초적인 의미의 충격을 받게 됩니다.96

 

여성과 죄악, 뱀과 죄악, 결국은 삶과 죄악을 동일시하는 것은 대단한 왜곡입니다. 97

 

죽어서 부활하고 허물을 벗음으로써 그 삶을 새롭게 하는 뱀은 시간과 영원히 만나는, 이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세계수입니다. 결국 뱀은 에덴 동산의 실질적인 신이었던 겁니다.98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면서 가나안 백성을 정복한 것과 관련된 역사적인 설명이 있어요. 가나안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신은 여신이었어요. 그런데 이 신은 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요. 바로 삶의 신비를 상징하는 존재인 것이지요. 남성신 지향적인 민족이 이런 신관을 거부하지 않을 리 없어요. 달리 말하면 에덴 동산 이야기에는 역사적으로 모신을 거부하는 태도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지요.99

 

M : 타락의 책임을 물어 이브를 쫓아냄으로써 여성을 몹쓸 것으로 치부하는 것 같은 것이요? 타락의 책임을 왜 여자가 지게 된 것입니까?

C : 여성은 삶을 상징하거든요. 남성은 여성을 통해서만 삶의 장으로 나올 수 있어요. 따라서 대극하는 것과 고통이 있는 이 세상으로 우리를 나오게 한 것은 여성인 셈이지요. 100

à 뱀파이어 여인이 나폴레옹의 각성에 한 몫을 한다. 둘은 19세기를 경험했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지만 서로 다른 대극적 깨달음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은 결국하느님이라는 이름을 초월해서 존재합니다. 하느님은 이름과 형상 너머에 있는 존재인 것이지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궁극적인 만남, 최고의 떠남은, 하느님을 위한 하느님으로부터의 떠남, 모든 관념을 초월하는 경험을 위해 하느님이라는 관념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101

 

M : 하지만 인간으로서 이 어마어마한 존재를 더듬기 위해서는, 초라하지만 언어의 도움을 빌려 남성신이다, 여성신이다 할 수밖에는 없지 않겠습니까?

C : 그렇기는 합니다만, 문제는 남성이니, 여성이니 해서는 그 존재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남성이니, 여성이니 하는 것이 초월성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도약대라고는 할 수 있겠지요. 초월성이라는 것은 초월하는 것, 이원성을 넘어서는 것을 뜻합니다.104

 

즉 밀교에 따르면, 한 개인이 일련의 입문 의례를 통하여 자기의 깊은 곳을 하나 하나씩 드러내다 보면, 이윽고 자기는 영생불사하는 존재인 동시에 필멸의 팔자를 타고난 인간이며, 남성인 동시에 여성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104

à 저 태양은 어제 나의 등 뒤로 그림자를 만들었고 오늘도 또한 그렇다. 그러나 세계를 인식하는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일단만의 외로움을 느끼면자기는 다른 것과 함께 있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되고, 그런 욕망을 느끼게 되면 이자기는 둘로 나뉩니다. 이것이 바로 빛의 세상이 비롯됨이요, 한 쌍의 대극이 비롯됨입니다. 106

 

삶이라고 하는 것은 금제에 불복하는 순간에 시작되는 것이지요. 106

 

M : 유사성의 문제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C : 한 가지 설명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 인간이 세계 어디에 살든 기본적으로는 같다는 설명입니다. 마음은 인간의 육체가 하는 내적인 경험입니다. 같은 기관, 같은 본능, 같은 충동, 같은 공포를 가졌으니 인간은 같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바로 이 공통되는 바탕에서, 융 박사의 이른바 원형이 산출된다는 것입니다. 107

 

융이 말하는 무의식의 원형과 프로이트의 콤플렉스에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무의식의 원형은 우리 몸의 각 기관과 그 기관이 지닌 힘의 드러남입니다. 원형은 생물학적인 바탕에  섭니다만,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개인의 삶의 과정에서 억압된 트라우마(정신적 상흔)  경험의 덩어리입니다. 다시 말해서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개인적인 무의식으로서 생리적인 것입니다만, 융이 말하는 무의식의 원형은 생물학적입니다. 생리적 원리는 생물학적 원리에 견주면 2차적인 것입니다. 107

 

내가라고 하는 것은 언어로 된 것이 아니고 행위와 모험으로 이루어진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는 행위를 초월한 어떤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이런 시를 접하면 우리 자신이 우주적인 존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겁니다.113

 

종교라는 것은 제2의 자궁 같은 것입니다. 종교는 인간의 삶이라는 극도로 복잡한 것을 우리 안에서 익게 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익으면 스스로 동기도 유발시킬수 있고, 스스로 행동하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죄악이라는 관념은 우리를 평생 처참하게 만들어버립니다.115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서적 전승은 모두 이른바 자연 종교의 타락이라는 문맥에서 논의되고는 합니다. 자연 종교가 사회적 종교로 변질하면 자연과의 관계를 제대로 가지기가 어렵습니다.115

 

예수가 승천했다는 말을 은유적 코노테이션(내포된 의미)의 문맥에서 읽는다면, 예수가 사실은 내면화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예수가 들어간 곳은 외계가 아니고 내부의 세계인 겁니다.117

 

내면의 세계는, 외면의 세계와 접하는 우리의 요구와 희망과 에너지의 구조의 가능성이 반영된 세계입니다. 외계는 우리가 드러나는 세계입니다. 우리의 자리가 바로 이 외면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내면의 세계, 외면의 세계와 함께 발을 맞추어야 합니다. 노발리스가 말했듯 영혼의 자리는 외면의 세계와 내면의 세계가 만나는 자리인 것입니다. 117

 

부처라는 말은 깬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 여기에 이르러야 합니다. 우리 모두 깨어서,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 혹은 부처의 의식에 다가서야 합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기독교 사고방식에서 보면 독신입니다. 그러나 한편, 그노시스파 기독교나 토마의 복음에 의하면 기독교의 정수이기도 합니다. 118

à 나는 왜 환생했을까? 나는 이 생에서 전생에서 못다한 무엇을 이루어야 할까.

 

만일 상징과 은유가 예술을 통해 되살아나지 못한다면, 삶은 신화에서 떨어져나가 버립니다.

 

그러니까, 환생할 때마다 다른 인격으로 나타나지요. 따라서 우리가 환생할 경우, 지금 이 모습으로 환생할 것이라는 생각은 틀린 것이지요.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은 모나드가 벗어버리는 옷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나드는, 그것의 당사자가 이 시간의 장에서 지은 업을 깨끗이 씻을 때까지, 남자가 되든 여자가 되든 다른 육신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지요. 119

à 전생의 모습으로 후생을 사는 것은 따분한 일이다. 새로운 육신으로 태어난 자는 새로운 과업을 받은 것이다.

 

은유는 신의 가면입니다. 이 신의 가면을 통해 사람들은 영원을 경험하지요. 123

 

신비 체험을 한 사람은 상징적인 드러냄이 말짱 헛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상징이라는 것은 체험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124

 

체험한 사람은 체험한 것을 최선을 다하여 이미지에 투사시켜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사회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기술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124

 

초월자라는 말의 본뜻은 모든 개념을 초월해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칸트는, 우리의 모든 경험은 시공에 한정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경험은 어떤 공간안에서, 어떤 시간대에 생기는 것이지요. 시간과 공간은 우리의 경험을 한정시키는 감각 능력을 형성시킵니다. 우리의 감각은 시공에 장에 갇히고, 우리의 마음은 생각의 범주라는 틀에 갇힙니다. 그러나 우리가 접촉하려고 하는 궁극적인 존재(이것은 사물이 아닙니다)는 갇혀 있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을 하려고 함으로써 이것을 가둘 뿐입니다. 궁극적인 실재는 존재와 비존재의 모든 범주를 초월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있느냐, 없느냐는 시비의 대상의 될 수 없다는 겁니다. 126

è 신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 시간의 관념을 버려야겠다. 일상을 이해하는 그릇으로 신화를 이해하려니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노시스파 기독교에 따르면 야훼가 지닌 문제 중 하나는, 자기가 메타포라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127

 

산타클로스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이어주는 은유이지요.132

 

말썽? 인생이라는 게 어차피 말썽 아닌가”(조르바) 133

 

우리는 사악한 일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참여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잘한다고 하는 일이 어느 누구에게는 반드시 사악한 일이 됩니다. 이 세상 피조물이 피할 수 없는 아이러니이지요. 133

 

세속성(상실하고, 상실하고, 상실하는 것으로 인한 슬픔의 원인)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삶은 삶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삶을 긍정하고, 이대로도 훌륭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의도가 이러한 것이었으니까요.134

 

제임스 조이스의 한마디가 기억납니다. 그는 역사는 내가 헤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악몽이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이 악몽에서 헤어나는 길은,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의 모습 자체가 만물을 창조한 무서운 힘의 현현임을 깨닫는 일입니다. 134

 

영웅의 행동 반경은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선악이 있는 시간의 장, 대극이 있는 곳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초월의 장을 나서면 대극의 장으로 들게 마련입니다. 135

 

상상력 속에 존재하는 궁극적인 한 쌍의 대극은 남성과 여성입니다. 이 경우 남성은 공격적이고, 여성은 수용적이며, 남성은 전사이고 여성은 몽상가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랑의 영역과 전쟁의 영역이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에로스(사랑)와 타나토스(죽음)라고 하지요. 135

 

우리는, 우리가 정한 원칙에 어긋난다고 해서아니라고 할 것이 아니라, 이 삶의 기적 앞에서 고개를 끄덕거려야 할 것입니다. ((남의 생명을 먹고 사는 생명의 이미지-키르티무카(영광의 얼굴)))137

 

영원이라는 것은 뒤에 오는 것이 아니에요. 영원은 그리 긴 시간도 아닙니다. 아니, 영원이라는 것은 시간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세속적인 생각을 끊는 바로 지금의 이 자리에 있습니다. 천국의 개념이라는 문제로 보면, 거기에서 지복을 누리면서는 영원이라는 것을 생각에도 두지 않게 됩니다. 138

 

3. 태초의 이야기꾼들

 

어린 시절에는 이 세상의 질서와, 복종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 시기에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서 살지요. 그러나 성숙하면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가 책임지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지요. 이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면 신경증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내것처럼 사는 시절이 지나면, 이윽고 세상을 남에게 양보하는 때가 옵니다.142

 

젊은이를 이 세상의 삶과 만나게 할 때도 신화가 끼여들고(여기에서 바로 종족 특유의 관념이 기능합니다), 이 삶에서 해방될 때도 신화가 개입합니다. 말하자면, 종족적 관념은 인류의 근본적인 관념의 껍질을 벗기는데, 이 근본적인 관념이 바로 우리를 내적인 삶으로 안내해준답니다.142

 

육체는 의식의 수레와 같은 것입니다. 143

 

그리스 신화는 인간성과 젊음의 아름다움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어요.143

 

어디에선가, 가시적인 우리 삶의 버팀목 노릇을 하는 불가시적인 삶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신화의 기본적인 테마를 이루는 관념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군요.

 

초기 신화는, 삶에 필요한 행위일 경우이면 그 일에 기꺼이 참여하게 하면서도 공포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해줍니다. 말하자면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지요. 148

 

대초원 사냥꾼들이 짐승을 보는 시각은 짐승을 하등하게 보는 오늘날의 우리 시각과는 다릅니다. 이들에게 짐승은 적어도 동등한 존재, 때로는 우월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151

 

만물이 비롯될 때에는, 지혜와 지식은 짐승들에게만 있었다. ‘절대적 존재인 티라와가 인간에게는 직접 말을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티라와 신은 어떤 짐승을 인간에게 보내고, 그 짐승을 통해서만 인간에게 현현한다. 인간은 그런 짐승, 하늘의 해, , 별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156

 

소녀는 초경을 맞으면서 여자가 됩니다. 여자에게는 이런 일(의례)이 저절로 일어나는 거죠. 164

 

고대의 의례가 지닌 중요한 역할은 개인을 부족의 한 구성원으로, 한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한 모듬살이의 구성원으로 통합시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서구 문명은 개인을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분리시켜왔습니다. 그래서 결국, ‘먼저, 개인 먼저가 되어버렸지요. 165

 

미사를 뜻하는 라틴어는 우리를 일상성의 마당에서몰아낸다는 뜻을 지닙니다.166

 

신화를 살아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을 살아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입니다. 예술가들의 기능은 마땅히, 환경과 세계를 신화화하는 것이어야 합니다.168

 

민중의 문화를 빚겠다는 최초의 충동은 위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아래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168

 

샤먼은 남자든 여자든 소년기 후반, 혹은 청년기 초반에 심각한 심리적 격동을 경험하고 이로 인해 완전히 내면화해버린 사람입니다.168

 

악시스 문디(axis mundi, 세계의 축)’ 는 중심점, 모든 사물의 회전 중심인 극점을 말합니다. 세계의 중심점은 움직임과 정적이 함께 하는 점입니다. 움직임은 시간이지만 정적은 영원합니다. 우리 삶에서 이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곧 영원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일시적 체험에서 그 일시적 체험이 지닌 영원한 측면을 체험하는 것, 이거야말로 신화 체험인 것입니다.174

 

4. 희생과 천복

 

사는 곳을 성화시키는 것, 이것은 신화의 기본적인 기능입니다. 177

 

창조의 실재에 대한 느낌이야말로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178

 

이 생명의 힘과 권능과 가능성은 우리의 것은 아닙니다만, 그것들이 삶의 일부분이 되면 우리에게로 열리게 됩니다. 178

 

우리에게는 여백, 혹은 여백 같은 시간, 여백 같은 날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여백이야말로 우리가 무엇인지, 장차 무엇일 수 있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 여백이야말로 창조의 포란실입니다.179

 

우리는 모든 땅에서 삶의 에너지의 상징을 찾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옛날의 전통은 그랬어요.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 땅을 성별했던 것입니다. 183

 

자연 위에서, 자연에 군림하는 것으로서의 초자연적인 존재라는 관념은 정말 몹쓸 것입니다. 중세에, 이 세상을 황무지로 만들어버린 것이 바로 이러한 관념입니다.188

 

정신이라는 것은 삶의 향연입니다. 그것은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189

 

M :  오늘날 자연의 본성인 신성은 누가 해석합니까? 누가 우리의 샤먼입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해주는 이는 누구입니까?

C : 그것은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술가들이야말로 오늘날에도 신화와 교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예술가는 신화와 인간성을 이해하는 예술가이지, 대중에게 봉사하기를 좋아하는 사회학자는 아닙니다.189

 

M : 시인도 예술가도 아니고, 초월적인 접신경험도 해보지 못한 보통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C : 방에 앉아서 읽는 겁니다.읽고 또 읽는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은 행위를 통해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삶에서 삶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항상 다른 깨달음을 유발합니다.190

 

우림에는 복수로서의 신들이 있었어요. 사막으로 나오면 하늘도 하나요, 세상도 하납니다. 그러니 신이 하나일 수밖에 없지요.192

 

이런 사회의 구성원은 자기네를 보호해주는 사회에만 헌신합니다. 사회라는 것은 언제나 부계적입니다. 그러나 자연은 항상 모계적입니다.193

 

여성에게는 마력이 있습니다. 그 마력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대지처럼 출산하고 먹여 기르는 힘입니다.194

 

사냥꾼에게는 동물이 신화를 촉발합니다. 권능과 지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숲으로 들어가 금식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러면 동물이 나타나 권능과 지식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농경문화에서는 식물의 세계 자체가 스승 노릇을 합니다. 식물의 세계는 생멸의 반복이라는 의미에서 사람의 삶과 동일시됩니다. 그래서 내계 지향적 관계가 이루어지지요.194

 

숲과 농경문화에는 종국적인 것으로서의 죽음이 아닌, 새 생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서의 죽음이 있어요. 여기에서는, 개체라고 하는 것은 완전한 개체가 아니라 식물의 한가지에 불과한 것이지요. 195

 

성서 문화에서는 승자가 되는 쪽, 선한 쪽은 늘 둘째아들이에요. 둘째아들은 나중 온 자 아닙니까? 즉 히브리인을 상징하지요. 둘째아들이 그 땅으로 왔을 때, 이미 그 땅에는 맏아들, 즉 가나안 사람들이 있었지요. 그러니까 카인은 농경에 기초를 두고 있는 당시의 도시 문화를 상징하지요.200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 의식과 동일시합니다. 이런 삶에서 육신은 의식을 나르는 수레에 지나지 않아요. 수레로는 죽고, 의식과 이 수레에 실려 있는 것은 동일시해야 합니다. 이 수레에 실려 있는 것, 그것이 곧 신입니다. 농경 문화권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표면적인 이원성의 이면에 존재하는 동일성 관념입니다. 이 모든 드러남의 이면에는 빛으로 만물을 비추는 하나의 광원이 있어요. 예술의 기능은 창조작업을 통해 이 광원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잘 짜여진 예술 작품을 볼 때마다 우리는, , 하고 감탄하고는 합니다. 이렇게 감타하는 까닭은 이 작품이 우리 삶의 질서를 드러내고, 종교가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기 때문이겠지요. 204~205

 

이 형이상학적 깨달음이란우리라고 하는 존재가 사실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깨달음우리라는 것은 한 생명의 두 측면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우리가우리라는 것을 서로 별개인 둘로 인식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조건 아래서 형상을 경험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211

 

영웅이란 자신의 물리적인 삶을 이러한 진리 인식의 질서에다 바친 사람을 말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우리를 바로 이러한 진실에 던져넣으라는 뜻입니다.211

 

예수가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한 것은, 사실은네 이웃은 곧이니까 사랑하라는 뜻이겠군요.211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속량전, 혹은 벌금을 무는 행위가 아니라, ‘화해(atonement)’, 하나됨(at-one-ment)’의 행위라고 한 12세기 철학자 아벨라르의 견해에 동의하시는 거군요?212

 

아벨라르의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에다 삶의 고통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유발하기 위해, 이로써 이 세상의 물질에 멀어버린 인간의 눈을 열어주기 위해 십자가에 달렸다는 겁니다.213

 

자살이라는 것은 우리가 우연히 어떤 시간대에 처하게 된 삶에 대한 심리적인 자세 자체를 버리는 행위입니다. 말하자면 더 나은 시간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죠. 하지만 융 박사의 말마따나 상징적인 상황에 사로잡히면 안 됩니다. 우리는 육체적으로는 죽을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죽어야 하는 죽음은 영적인 죽음입니다. 이 죽음을 통해서 더 큰 삶의 길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213

 

사람들은, 살아 있음의 경험을 절실하게 하기 때문에 전쟁을 좋아한다고 고백하곤 합니다.215

 

목숨을 아끼되 그 목숨의 원수가 되어라” 216

 

중세 신화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은 인류의 마음이 연민의 가슴으로 열린 순간, 열정(passion)’연민(compassion)’으로 변모한 순간입니다. 성배 전설에 나오는, 상처 입은 성배왕에 대한 사람들의 연민이 바로 이러한 변모를 드러냅니다.218

à 뱀파이어 여인과 나폴레옹이 나누는 연민은?

 

그리스도처럼 고통을 받는 자는 인간을 조잡한 육식동물에서 참 인간으로 바꾸어놓을 만한 어떤 본을 보이기 위해 우리에게 옵니다. 이 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연민입니다.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즈》에서 채용하고 발전시키는 테마가 바로 이 연민입니다. 그래서 스티븐 디달러스가 자기의 영웅을 자각하고, 레오폴드 볼룸과 연민을 나눔으로써 어른이 됩니다. 이 깨달음은 자기에서 사랑할 힘이 나오고, 이로써 길을 열 수 있다는 깨달음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218~219

 

조이스는 죄 많은 역사를 거치면서, 인류의 삶을 통해 이루어진, 실로 공적 ㆍ사적으로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의식의 심층을 무자비하게 파헤친 것입니다. (로마서 1132 :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220

 

사고의 경우, 다수는 항상 그릅니다.221

 

영적인 문제에 관한 한 다수라는 것은 항상 먹을 것, 살 데, 자식들, 재물 이상의 경험을 한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221

 

C : 부모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자식들로 하여금 자기 천복을 찾게 해줄 수 있습니까?

M : 아이를 잘 알아야 하고, 아이에게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223

 

세상이 뭐라고 하건 자네가 정말 좋아하는 것만 붙잡고 살면 행복하겠다 싶거든 그 길로 나가게.”225

 

내 의식이 제대로 된 의식인지, 아니면 엉터리 의식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존재가 제대로 된 존재인지, 아니면 엉터리 존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일에 천복을 느끼는지 그것은 안다. 그래. 이 천복을 물고늘어지자. 이 천복이 내 존재와 의식을 데리고 다닐 것이다.”226

 

우리 자신의 경험은 바로 이곳에서 하는 것이지, 천국에서 하는 것이 아니에요. 227

 

천복을 좇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할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227

 

 

5. 영웅의 모험


영웅이라는 말은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요.229

 

육체적인 행적을 보면, 영웅은 싸움에서나 남을 구하는 데서 용기있는 행동을 보여주지요. 또 하나의 행적은 정신적 행적입니다. 이런 행적에 따르면, 영웅은 여느 인간의 영적인 삶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서 존재하는 희한한 체험을 하고는 우리 삶에 유용한 메시지를 가지고 귀환합니다. 보통, 영웅의 모험은 무엇인가를 상실한 사람, 자기 동아리에게 허용되어 있는 정상적인 경험에는 무엇인가 모자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의해 시작됩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뛰어들어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고난을 겪으면서도, 자기가 상실한 것, 혹은 생명의 불사약 같은 것을 찾아 헤맵니다. 영웅의 모험에는, 출발과 귀환 사이에 일종의 주기가 있지요.229

à 나폴레옹이 정신병원으로부터 나와 현실에 복귀했을 때 그가 내놓은 메시지는?

 

오토 랑크는 《영웅의 탄생 신화》라는 책에서, 양수에서 수생동물 상태를 지나고, 공기를 호흡하는 포유동물 상태를 지나 홀로 서기까지는 엄청난 심리적ㆍ육체적 변모 과정을 거치기에, 인간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영웅이라고 주장하지요.230

 

전장에서 전사한 병사와 출산 때 죽은 어머니는 똑같이 최고천(最高天)을 배정받지요.231

 

얼마나 영웅적인지 상관없이, 늘 일어나는 일은 뉴스거리가 되지 못해요. 그러니까 모성은 이제 별로 신기할 것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할까요?232

 

M : 영웅의 시련, 시험, 난관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C : 굳이 말하자면, 이 사람이 정말 영웅인지 아닌지, 이 사람이 과연 이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여부, 정말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지 여부, 용기, 지식,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누군가가 예비해놓은 어떤 관문이라고 보면 되겠지요.233

à 영웅의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기 확신이 아닐까. 캠벨의 생각에 따르면 모든 사람에게는 신성이 내재되어 있다. 영웅은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기꺼이 직관이 이끄는 방향으로 자신의 운명을 던지는 사람이다.

 

이 땅의 3대 종교가, 영웅 여행의 시련은 생명의 일부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극기와 대가의 지불이 없이는 상도 없다고 가르치는데도, 우리는 이걸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는 겁니다.233

 

자신을 버려서 자신을 더욱 높은 목적, 혹은 타인에게 준다는 겁니다. 이것만 알면 이 자체가 바로 궁극적인 시련이라는 걸 깨달아낼 수 있지요.233

 

도덕적인 목표는 자기가 속한 민족을 구하는 것, 특정 개인을 구하는 것, 어떤 관념을 받드는 것이 될 수 있지요. 영웅은 무엇인가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합니다. 이것이 바로 도덕적인 것이지요. 물론 반대 입장에서 보면, 영웅이 자신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옹호하려는 관념이 반드시 옳은 것일 수만은 없지요. 하지만 이것은 반대편 입장에서 보아서 그럴 뿐입니다. 반대 입장의 견해가 영웅이 이룬 업적이 지닌 고유의 영웅적 속성을 훼손시킬 수는 없는 겁니다.(안중근은 의사인가? 암살자인가?)235

 

영웅은 원래 살던 세계에서 의식하지 못하던 것, 혹은 의식에서 빠져 있던 것과 만납니다. 이렇게 되면 영웅에게는 문제가 생깁니다. 즉 그것을 만난 상태로 그곳에 머물 것인지, 세계로 하여금 그것을 포기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그 홍익이 될 만한 것을 가지고 원래 있던 세계로 귀환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237

 

우리 삶이 우리 기질의 잠을 깨웁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찾아볼 필요가 있어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모습 이상의 무엇을 촉발시킬 만한 상황으로 자신을 던져넣을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지요. 우리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이하의 무엇으로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라는 말이 있는 겁니다.239

 

영웅은 영적인 필요에 더 이상 반응하지 못하는 딱딱해진 세계와의 싸움에서 진이 빠지고 마는 것이지요.240

 

옛날의 세계는, 영웅이 대적하러 달려나가던 세계는 기계적인 세계가 아니라 살아있는 세계, 영웅의 영적인 준비에 반응하는 세계였어요. 그런데 이 세계가 지금은, 우리의 물리학, 마르크시스트 사회학, 행동심리학 등을 통해 해석되는 순전히 기계적인 세계가 되고 말았어요.240

 

우리 문명권에서 중년의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건 의미심장한 겁니다. 241

 

신화의 이면에 있는 세계는, 영적 가치라고는 모두 고갈되어버린 우리 세계인 것 같고요. 사람들은 발기 불능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저에게는, 불감증, 권태, 보편적인 질서로부터의 소외감……. 이것이야말로 현대인에게 내려진 저주 같아 보입니다. 242

 

이런 삶은 우리의 영적인 삶, 우리의 잠재력, 우리의 육체적인 힘을 촉발할 수 없지요.242

 

이런 위험한 길을 갈 때는 자기 욕망과 열정과 감정을 따르되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위험이 우리를 다리 밑으로 밀어버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244

 

분열 증세를 보이는 이 모든 경향을 한곳으로 모아 바람직한 목표를 향하게 할 수 있는 별자리 같은 이미지가 필요한 거지요. 245

 

헛되도다,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런 끔찍한 말이 있지요? 하지만 이 말에서도 모든 것이 헛된 것만은 아니랍니다. 이런 말이 나오는 순간은 헛된 순간이 아니라 승리의 순간, 열락의 순간인 것이지요. 승리의 순간에 맞게 되는 이 완전성의 정점에 가해지는 악센트, 대단히 그리스적이지 않습니까? 248

 

신화는 내어놓는 목숨에서 새 생명이 비롯된다는 메시지도 전하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영웅의 목숨이 아니라 새 생명, 새로운 존재, 혹은 육화의 길일 겁니다.248

 

전설적인 영웅은 큰 일을 한 사람, 무엇을 세운 사람인 경우가 보통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연 사람, 새 종교를 세운 사람, 새 도시를 세운 사람, 새로운 삶의 양식을 세운 사람인 것이지요. 이 새로운 것을 세우기 위해서 영웅은, 기왕에 살던 땅에서 새로운 것을 싹 틔울 잠재력이 있는 씨앗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251

 

우리 삶(남의 삶을 시늉하는 것이 아닌 우리만의 삶) 역시 탐색의 여행에서 나온 것입니다.251

 

신학이 들어와서는, 이것은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신화는 시예요, 시적 언어는 대단히 유동적인 것이에요. 그런데 종교는 시를 산문으로 바꾸지요.259

 

좋은 스승은 충고를 할 뿐 명령은 하지 않습니다.263

 

제임스 조이스나 토마스 만 같은 사람들의 책을 통해서 배웠어요. 이 두 사람은 기초적인 신화 테마를, 현대 젊은이들이 경험하는 개인적인 문제, 어려움, 깨달음, 관심의 해석에다 응용하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문제의 본질을 잘 알고 있는 소설가의 작품에서 신화 모티프를 선택해서 길잡이로 삼는 것도 좋겠지요.263

 

다스 베이더는 자기 인간성을 완전히 발달시키지 못했던 거지요.265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속한 시대의 역사를 사는 법을 익히는 일입니다. 265

à 시대에 따라 사는 법은 달라진다. 냉동인간이 백 년 만에 사회로 복귀한 경우를 상상해

보자. 그는 걸음마를 통해 사회의 메커니즘을 새로 익혀야 한다.

 

신화에는 개인이 지닌 완전성과 무한한 힘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고 그 세계를 날빛 아래로 드러내는 힘이 있어요.272

 

M : 어떻게 하면 우리 안에 있는 괴물을 죽일 수 있습니까?

C : 내가 일반적으로 학생들에게 내리는 처방은그대의 천복을 따르라는 겁니다. 천복을 찾아내되, 천복 따르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272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용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아에 속박된자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용 우리에 갇혀 있어요. 분석 심리학은 용을 쳐부수고 무너뜨림으로써 우리를 더 넓은 관계의 마당으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궁극적인 용은 우리 안에 있어요. 우리를 엄중히 감시하고 있는 우리의 자아, 이게 바로 용입니다.273

à 과거의 상처가 용이다. 과거의 실패가 용이다. 한계는 스스로 쳐놓은 인식의 덫이다.

 

서구인들은안에 잠재해 있는 삶의 과녁이자 이상을 살지, 절대로 남의 안에 있는 가능성을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277

 

그러나 동양의 전통적인 사회, 거의 모든 전통 사회를 보면 개인은 기계로 찍어낸 과자 같아요. 이런 사회 구성원의 의무는 정확한 용어로 정확하게 정의되어 부과된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지요.277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면 인생은 전처럼 다시 즐거워집니다. 죽음을 받아들여야, 삶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측면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무조건적인 긍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278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이 모습은라는 존재의 궁극적인 모습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가 이미 성취한 자기성을 끊임없이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279

à 완전함은 불완전함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완전함은 종결된 하나의 고리가 아니라 미래를 향하여 열린 고리다.

 

아이의 자기 성취를 방해하는 것이면 모두 다 아이가 버려야 할그대의 미래이지요. 낙타에게그대의 미래, 낙타를 순치하는 수많은 강제(must)인 겁니다. 낙타는 이 순치를 통하여 인류의 동물에서 문명화된 인류의 동물로 변모합니다. 그러나 청년기는 자기 발견의 시대, 사자로 변모하는 시기입니다. 이 청년기에는 법률이 적용되기는 하되, 강압적인그대의 미래에 복종시키는 방향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지를 갖게 하는 방향으로 적용됩니다. 284

 

행복을 찾으려면,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잘 관찰하고 그것을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 이렇게 행복을 관찰하는 데는 약간의 자기 분석 기술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남이 뭐라고 하건 거기에 머물면 됩니다. 내식으로 말하자면천복을 좆으면 되는겁니다.286

à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기억하는 장면들이 현재의 삶에서 천복을 찾아내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어머니가 정해준 범위를 넘어서지 않으면, 기존의 질서를 부수지 않으면, 기존의 법을 어기지 않으면 창조적인 행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287

 

고통에서 놓여나고 싶거든 고통이 곧 삶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말고 용감하게 인정하세요. 우리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고상한 존재가 될 수 있답니다.”297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에의 사랑’297

 

진정한 예술가는, 조이스의 이른바 만물의광휘, 그 자체가 가진 진리의 드러냄으로 인식하고 해석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301

 

신화의 진리는 말씀 너머, 이미지 너머, 불교에서 말하는 전륜의 테 밖에 있어요. 신화는 우리의 마음을 이 테 밖으로 보냅니다. 이 테 밖에 있는 것은 앎의 대상은 될망정 드러냄의 대상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진리에 버금가는 진리인 것이지요.303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삶의 모험을 진심으로 반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지요.303

 

M : 모험이라면 영웅의 모험 말씀이진지요?

C : 그래요. 영웅의 모험, 즉 살아 있음의 모험이지요.303

 

6. 조화여신의 은혜


결국 신화라고 하는 것은 어머니 이미지가 승화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답니다.305

 

개성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고, 몸과 때로 마음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는다는 말이 있어요. 307

 

여성은 시공 그 자체인데, 이 여성 너머에 있는 신비는 곧 한 쌍의 대극을 초월하는 신비인 것입니다.309

 

제국주의 나라의 국민의 특징은 침략한 나라의 지역 신을 우주의 어정쩡한 촌뜨기로 만들어버린다는 거예요.313

 

남성 위주의 신화는 남신을 불러들여 창조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합니다.314

 

성서에서 볼 수 있는 극단적인 예로서, 우리 서구인들의 여성 경시 풍조는 다분히 성서적 사고의 산물일 겁니다.316

 

처녀 수태 관념은 그리스 전통에서 기독교로 흘러들어 왔습니다. 사복음서를 읽어보세요. 처녀 수태가 언급된 복음서는 <누가복음>뿐입니다. 누가는 그리스인이에요.318

 

모이어스씨, 누가 신인지 아세요? ‘우리가 곧 신이에요. 이 모든 신화의 상징이 수다스럽게 말하는 게 바로 이것이라고요. ‘거기에 매달려, 모든 것은거기에만 있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를 생각하면거기에서 그가 받은 고통을 떠올리고는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고통은 우리 안에서 일어났던 거에요. 우리가 영적으로 거듭나 보았던가요? 우리가 언제 동물의 근성을 죽이고 자비로운 인간으로 화신해본 적이 있던가요?320

 

처녀가 낳은 것은 정신이에요. 그건 영적인 탄생을 말하는 거지요. 처녀는 귀로 들어간 말씀으로 잉태를 한 거에요.320

 

영웅이나 반신은 자비로움이 육화된 존재로 태어나지, 성적인 욕망의 소산, 혹은 종의 보존을 위한 소산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건 어떤 의미에서는 두 번째 탄생이에요. 두 번째 태어남이란, 중심인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가슴 아래쪽에 있는 세 차크라는 바로 우리가 초극해야 할 대상입니다. 우리가 초극할 수 있을 때 그것은 비로소 우리 가슴을 섬기는 종이 됩니다.322

 

1225일은 동지 전후, 그러니까 그동안 자꾸만 길어지던 밤이 짧아지면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이지요. 말하자면 빛이 부활하는 날입니다. 328

 

영적인 권능과 세속적인 권능의 통합을 상징하는, 가부장제적이고 유실신적인 히브리의 구세주관념과, 처녀신의 몸에서 태어나 한 번 죽었다가 부활하는 위대한 여신의 아들이라는 그리스의 관념이 만나는 겁니다.330

 

여성 원리는 자식에 대한 배타적인 사랑이 아닌 포괄적인 사랑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엄격합니다. 아버지 이미지는 사회 질서나 사회 성격과 밀접한 관계를 지닙니다. 실제로 아버지 이미지는 사회 속에서도 그런 방향으로 기능하지요. 어머니가 자식에게 본성을 부여한다면, 아버지는 자식에게 사회적인 성격을 부여합니다. 말하자면 그 사회 속에서 어떻게 기능할 것이냐를 가르치는 것이지요.334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면서 야훼는 남성을 창조하되 먼저 형상을 빚고 여기에다 생명을 부여합니다. 결국 야훼 자신은 그 형상 안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신은 다릅니다. 여신은 우리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곧 여신의 몸이기도 합니다. 우주와 우리가 별개가 아니라 결국은 하나라는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이것이 신화인 것입니다.336

 

7. 사랑과 결혼 이야기

 

에로스적인 사랑이 충동에 따르는 것이니까 개인적인 열정이라고 할 수 없듯이, 아가페적인 사랑도 사랑이라기보다는 자비에 가깝겠군요.341

 

아모르적 사랑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성격을 지니는 사랑입니다.343

 

이런 사랑은 교회가 주장해온 사랑과는 극과 극이지이요. 이것은 개성적인 사랑, 개인적인 사랑의 경험입니다. 나는 서구를 위대하게 한 것, 다른 전통과 전혀 다른 전통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이 경험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곤 한답니다. 343

 

바로 그 용기덕분에 서구문화에서 개인이 중요해지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종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은 남들에게서 이어받은 체험이 아닌 자기만의 체험, 그 체험에서 우러난 신념을 중요시할 수밖에요.343

 

서구에서 낭만적인 사랑이 대두되는 것에 대해서 선생님께서는,크레도에 대한 리비도의 승리라고 하셨는데, 어떤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까?343

 

삶의 의지를 짓밟아놓는 것, 이게 바로 크레도라는 겁니다……. 리비도는 삶의 충동입니다. 가슴에서 나온 것이지요. 344

 

진정한 결혼은, 상대에게서 동일성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런 결혼에서 육체적인 하나 되기는 정신적 하나 되기를 확증하는 순서에 지나지 않는 거지요. 거꾸로 말하자면, 결혼은 육체적 관심에서 시작되어 정신화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진정한 결혼은 사랑, 즉 아모르의 영적인 충돌에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345

à 거듭된 삶에서 오리무중에 빠진 나폴레옹과 뱀파이어 여인이 동일성을 인식하고 연민을 공유하게 된다.

 

자기 천복을 따를 때는, 어떤 사람의 어떤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든지, ‘삶과 행동은 나름의 가치를 지녀야 하는 겁니다.347

 

그에게 지옥의 상태라고 하는 것은 결국 그가 이루려 했던 어떤 상태이겠지요.348

 

서구 선진사회는,개인을 살아 있는 실재로 인식하고 존중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사회의기능은 반드시 개인을 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개인을 꽃피게 하는 것이 사회의 기능이지, 사회를 꽃피게 하는 것이 개인의 기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350

 

함께 고통을 받는다는 의미지요. ‘passion’은 곧 고통인데 이걸함께(com-)’하는 것이 곧자비(compassion)’인 것이지요.353

 

상처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 생긴 고통과 고뇌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상처를 낫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고통과 고뇌를 안긴 사람뿐이라는 뜻입니다. 356

 

성배는 뭐라고 할까……. 참 삶을 산 사람들이 획득한 것, 혹은 깨달은 것을 표상합니다. 성배는 결국, 인간 의식의 가장 고귀한 영적 잠재성의 성취를 상징하는 것이지요.357

 

영적인 삶이라는 것은 인생의 꽃이자 향기인 동시에 개화이자 성취이지,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주어진 미덕이 아니라는 겁니다. 따라서 삶을 삶답게 하는 것은 자연의 충동이지 초자연적인 권위에서 내려오는 율법이 아닌 것입니다.358

à 영적이라는 단어에는 초자연적이라는 권위라는 선입견이 진하게 개입되어 있다. 이것이

 영적인 삶을 사는데 장애물이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존재인 것은 바로 인간에서 물질과 정신이 만나기 때문이다”(토마스 만) 358

 

가장 바람직한 삶은 빛을 향하여, 남을 이해함으로써 남의고통에 동참하는 자비를 통해서 가능해지는 화합의 관계를 향하여 나아가는 삶입니다.359

 

융 박사는영혼은, 그 짝을 찾지 않고는 평화를 얻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짝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360

 

우리는 우리 세계에 살고 있는가 하면, 밖에서 강요하는 또 하나의 세계에 살고 있기도 하지요.360

 

유럽 역사의 근본적인 충동은 권력 충동이에요. 그런데 그게 우리의 종교 전통으로 흘러 들어왔어요.362

à 나폴레옹은 권력 충동의 화신이다. 환생한 나폴레옹의 정체성은 어떻게 바뀔까?

 

기독교 교회가 생기면서 이스라엘이 고물이 되어버린 것처럼, 개인적인 경험이 생기면서 이번에는 교회가 고물이 되는 것입니다.363

 

결혼은 평생의 약속입니다. 평생의 약속이니까 우리 삶의 가장 큰 관심사일 수 밖에 없지요. 만일에 결혼을 하고도 그 결혼을 가장 큰 관심사로 치지 않는 사람은 결혼한 사람이 아니지요.365

 

어떤 시련이나 고통이 따르더라도 진심을 다하는 것, 이러한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속이는 않는 태도, 약점을 따지지 않는 태도……. 이런 걸 성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365

 

인생은 관계 속에 들어 있어요. 우리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이런 관계 안에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 관계가 바로 결혼입니다. 366

 

결혼은 우리의 동일성, 즉 한 사물에 두 측면이 있음을 상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366

 

사랑은 도덕성에 도전하지요.370

 

사랑은 인생의 발화점이지요. 인생이라는 게 슬픈 것이기 때문에 사랑도 종국은 슬픈 겁니다. 사랑이 깊으면 괴로움도 깊은 법이지요. 373

 

사랑 자체가 고통, 혹은 진정하게 살아 있음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지요.373

 

8. 영원의 가면

 

서구인 사고방식은 하느님을 우주의 에너지와 경이의 종국적인 근원, 혹은 본원으로 봅니다. 그러나 동양의 사고방식은-원시적인 사고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만-신들을 결국 비인격적인 에너지의, 그 자체로서의 드러남이자 에너지의 공급자로 파악하지요.376

 

내 마음속에 있는 가장 힘센 신의 영향력이 바로 나의 결정을 주도하게 되겠지요.376

 

나는왜 궁극적인 신비가 비인격적인 자연이면 안 되느냐고 반문하게 될 테지요.377

 

기도는 신비에게 말을 걸고 명상하는 행위이지요.378

 

언어 밖에 있는 깨달음에 이르려면 하느님의 이미지부터 넘어서야 합니다. 분석 심리학자 융 박사는종교는 하느님의 체험에서 인간을 방어하는 수단이라는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있어요.379

 

우리가 뛰어넘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예수의 이미지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어떤 신의 이미지는 결정적인 장애, 궁극적인 장벽이 되는 수가 많아요. 자기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자기 나름의 소아병적인 생각에 집착해 있는 사람은, 하느님에 대한 어마어마하게 큰 체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보다 큰 체험이 접근해오는 순간에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이미지에 매달림으로써 거기에서 도망쳐버리려고 합니다. 이걸 사람들은 신앙으로 오해하고는 하지요. 379

 

모든 존재의 이 궁극적 바탕은 두 가지로, 즉 한 가지는 형상을 통하여, 또 한가지는 형상이 없는 존재, 혹은 형상을 초월한 존재로 체험될 수 있습니다. 형상을 통하여 신을 경험할 경우 거기에는 우리의 형상을 짓는 마음이 개입합니다. 따라서 형상을 짓는 우리의 마음이 신에 반영되게 마련입니다. 여기에는 주체가 있고 객체가 있지요. 그러나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가 믿는 신과 하나 되기여야 합니다. 신과 하나가 된다면 이원성은 초극되고 형상은 사라집니다.380

 

우리는 자아나 욕망에 의지하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 안의 인류(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자각하는 문맥에서 살아야 한다.(……) 신을 경배하고 신의 말씀에 따라 살자면자신과 그 신이 표상하는 영적인 원리를 동일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381

 

우리의 목표는자기를 넘어서는 것, ’자기에 대한 모든 관념을 넘어서는 것, 이로써 자기라는 것은 불완전한 존재의 드러남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어야 합니다.381

 

M : 원수의 도발을 받아보지 않고, 원수가 하는 일을 용서하지 않고,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C : 가르쳐드리지요. 원수의 눈에 들어 있는 티끌을 뽑아내려 하지 말고, 내 눈에 들어있는 들보를 뽑아내는 겁니다. 383

 

원은 바로 시간의 장과 공간의 장에서 완결된 완전성을 상징하는 겁니다.

 

자기 자신과 범용해 보이는 어떤 대상의 동일시는 쉬운 것 같아도 사실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범용해 보이는 것에 깨달음의 촉매라는 가치를 부여하면 이때부터는 이 범용해 보이는 것이 상당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경험하지 못하면 천국에 가서도 경험하지 못합니다. 천국은 영원한 곳이 아니에요. 천국은 영속하는 곳일 뿐입니다. 405

 

천국은 끝나지 않은 시간입니다. 끝나지 않은 시간과 영원은 달라요. 영원은 시간 너머에 있어요. 시간이라는 개념은 이미 영원을 나타낼 수 없어요. 405

 

시에서, 정확하게 선택된 언어는 언어 자체를 훨씬 뛰어넘는 암시 효과와 함의의 효과를 지닙니다, 이런 효과를 지니는 시를 통해서야 우리는 저 광휘, 저 에피파니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에피파니는 정수를 통해서만 드러납니다. 411

 

쇼펜하우어는, 우리 인생은 한 사람이 꾸는 큰 꿈, 꿈속에 나오는 인물이 또 꿈을 꾸는, 말하자면 규모가 방대한 꿈이 아니겠느냐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렇게 해서 그 본질상 우주의 의지라고 할 수 있는 한 개인 의지의 동기 부여에 따라, 만사가 만사와 빈틈없이 연결되지 않느냐는 겁니다.411

à 세상은 각자가 꾸는 꿈을 모아 놓은 매트릭스이자 액자 소설이다.

 

나는 인생에 목적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인생은, 확대 재생산하고 존재를 계속하려는 충동을 지닌 원형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412

 

이 세상의 종말은 미래의 어떤 순간이 아닙니다. 심리적인 변화가 오는 순간, 세계를 보는 방법이 바뀌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413

à 예술가가 되는 시점이다. 바위를 보고 상상하는 조각이 다들 다르다. 내가 돌로 만든 조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에서 필멸하는 측면과 영생하는 측면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415

 

M : 의미는 결국 언외에 있군요.

C : 그렇습니다. 말이라는 것에는 조건이 있고 제한이 있어요. 415

 

내가 저자라면

 

《신화의 힘》을 근 10개월 만에 다시 펼쳤다. 삶을 이해하는데 이 만한 보고가 또 있을까.  철학이 세계라는 집의 뼈대를 구성한다면 신화는 살을 붙이고 호흡을 불어넣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덤에서 꺼낸 두개골이 캠벨을 통하여 비로소 생명을 얻어 말을 하고 걸어다니는 느낌이다. 소설의 이야기 얼개와 캐릭터 설정에 도움을 받고자 심층읽기의 첫 대상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캠벨의 입을 통해 우리 삶에 너무나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의식하지 못했던 일상적인 것들이 재정의되었다. 결혼, 남자, 여자, , 영원, 대담을 책으로 엮었기 때문인지 책이라기보다는 그의 쏟아지는 이야기를 경이로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말대로 그는 자기 삶에서 살아 있음의 경험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해 그의 책을 읽으며 기독교 신앙에 대해 내 나름대로 재정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존 체계를 고수한 채 신화를 이해하기에는 상호 모순적인 면이 너무 많았다. 머리 속이 정리되지 않은 채 뒤죽박죽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신앙은 대극적인 모순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해야 한다. 성직자의 생각을 그대로 차용하여 생활에 적용하는 것은 신앙을 인스턴트 식품처럼 소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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