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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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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0일 10시 46분 등록

[북리뷰 42] 행복의 정복 Conquest of Happiness

 

1. 저자에 대하여

 

어항 속의 물고기가 물 밖으로 입을 내밀고 숨을 쉬기 시작한다. 아마도 물속의 산소가 부족해진 모양이다. 하루하루 숨쉬기조차 답답한 세상, 온통 주변은 기독교인들 천지다. 그런 세상에서 스스로를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공언한 물고기가 있었다. 그냥 적당히 신앙심 깊지 않은 기독교인양 살아도 될 것을... 그는 왜 굳이 세상을 향해서 ‘자신은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말했을까. 그는 행복해야 했다. 그는 오래 살아야 했다. 그의 말에 담긴 진실을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래서 그가 행복했어?” “그래서 그가 오래 살았냐고?” 물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노벨문학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상은 그에게 별 의미를 주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세상의 가치를 그런 유명한 상을 통해서 찾게 되는 많은 이들에게조차도 그의 생각과 행복바이러스를 전파하는데 필요한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표지의 그의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웃고 있다. 백발의 흰머리. 눈가에 자연스러운 주름... 세상을 꿰뚫어보는 깊은 눈.. 양복을 입었지만 와이셔츠의 깃은 빳빳하지 않은 수수함. 왼손으로 겉옷의 가운데 자락을 잡는 것은 당시 유행하던 양복쟁이들의 째도 부릴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오른손에 가볍게 쥔 파이프 담배.. 조끼 주머니 안쪽에는 제법 낡고 사연있는 줄시계가 하나쯤 들어 있을테다. 별로 치장을 많이 하지 않은 그의 부인이 옆에 서 있다. 그녀 또한 웃고 있다. 두 번째 부인인가 보다. 행복해 보인다. 부럽다.

 

“처음에는 작고 좁은 둑 사이를 흘러가고, 세차게 바위에 부딪쳐,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그 사이에 차차 강폭은 넓어지고, 마침내 바다로 흘러들어감으로써 아무 고통도 없이 개인적 존재를 소멸시키게 된다. 노인이 되어 인생을 이렇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죽음의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영국의 논리학자, 철학자, 수학자, 사회사상가로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사람으로로 철학, 수학, 과학, 역사, 교육, 윤리학, 사회학, 정치학 분야에서 40권 이상의 책을 쉬지 않고 출간할 정도로 왕성한 지식욕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1872년 영국 몬머스셔의 명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학의 강사가 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중 반전운동(反戰運動)에 참여한 것이 화근이 되어 사직했고, 1918년에는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후 유럽 및 러시아와 미국 등을 방문하여 대학의 강의를 맡기도 했으나 주로 저술활동에만 전념했다.

 

그의 탁월함은 자신의 지능을 최대한 사용하는 놀라운 능력(그는 하루에 거의 고칠 필요가 없는 3,000 단어 분량의 글을 썼다고 한다)과 기억력이 밑받침 되었지만 그의 활동력의 원천은 심오한 휴머니즘적 감수성이었다. 그의 사상은 분리된 두 개의 주제를 갖고 있었다. 그 하나는 절대 확실한 지식의 탐구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이었다. 전자는 그의 스승이며 협력자였던 화이트 헤드와의 공저 "수학원리"로 결실을 맺어 현대의 기호논리학과 분석철학의 기초를 이루었다. 이 책은 수학적 대상을 실재라고 간주하여 논리에 의해 기초를 세우고 수학을 논리로부터 도출하려는 그의 시도를 담고 있었다.

 

철학자로서의 그의 업적은 특히 이론철학에서 두드러지고 있다.그는 무어, 비트겐슈타인 등과 더불어 케임브리지 학파의 일원으로 19세기 말부터 영국에서 유력한 학설이었던 관념론에 대한 실재론을 주장했었다. 하지만 그는 곧 헤겔학파, A.마이농 등 당대의 철학 흐름 변화를 따라 자신의 사상을 조금씩 발전시켰으며 신실재론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는 인식론과 존재론을 사상의 소재로 활용했으며 영국 고유의 경험론을 그 바탕에 깔고 있었다. 그의 사상은 빈학파나 논리적 실증주의를 중시하는 철학자 및 논리학자에게 자극을 주게 된다. 논리학자로서의 러셀은 프레게의 업적을 계승했으며, 페아노와 쿠츨러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지며 데데킨트와 칸토어 등의 현대수학의 성과를 근거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을 집대성했다.

 

현실 사회에 대한 진솔한 관심과 스스로가 자유로운 무정부주의, 좌파, 회의적 무신론적 기질이라고 불렀던 그의 성향은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평화주의자로,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핵 무장 반대자로서 사회변혁운동에서 일관성 있게 표현되었으며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1979년 웨일즈에서 사망할 때까지 문필가, 철학자, 무정부주의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 대표적인 저서로는 『외계의 지식』,『철학이란 무엇인가』,『서양 철학사』,『사회개조의 제원리』, 『심리분석』, 『서양철학사』, 『물질의 분석』, 『의미와 진실의 탐구』, 『수리철학 서설』 등이 있으며, 특히 1950년에는 『철학에 있어서의 과학적 방법』, 『자유와 조직』, 『권위와 개인』 등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2. 가슴에 무찔러 드는 글귀들

 

한 마리 짐승이 되어 그들과 함께 살고 싶다.

저렇게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삶이 있는 것을.

나는 선 채로 오랫동안 짐승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걱정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 깨어 자신의 죄를 뉘우치면서 눈물짓지도 않고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들먹여 나를 역겁게 하지도 않는다.

불만을 드러내는 놈도 없고,

소유욕에 혼을 빼앗기는 놈도 없다.

다른 놈이나, 먼먼 조상에게 무릎 꿇는 놈도 없다.

이 지구를 통틀어 보아도 어느 한 마리

점잔 빼는 놈도, 불행한 놈도 없다.

- 휘트먼, <내 자신의 노래 32> 중에서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책은 학자들을 대상으로 쓴 책도 아니고, 현실적인 문제를 그저 이야깃거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쓴 책도 아니다. 이 책에는 일반인들이 모르는 심오한 철학이나 해박한 지식이 담겨 있지도 않다.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이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상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나는 불행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노력하기만 하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이 책을 썼다. p9

 

I.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

1. 자기 안에 갇힌 사람

부자들 자신이 불행하다면,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지금 당신이 불행하다면,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내 말에 선뜻 수긍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행복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친구 중 과연 몇 몇이나 행복한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그리고 나서 사람의 표정을 읽는 법을 익혀 평소 만나는 사람들의 기분을 살펴보라. p13

 

자신에 대한 생각은 말끔히 잊고, 대신 주위에 있는 낯선 이들의 존재가 차례차례 마음속에 들어앉게 해보라. 그러면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p14

 

내 나이 다섯 살 때, 만일 일흔 살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이제 겨우 일생의 14분의 1을 견딘 셈이니, 내 앞에 길게 뻗어 있는 인생의 지루함은 얼마나 견디기 어려울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사춘기 때믄 삶을 증오해서 늘 자살할 생각을 품고 있었지만, 수학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자살 충동을 자제할 수 있었다. ... 이렇게 삶을 즐기게 된 비결은 내가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서 대부분은 손에 넣었고, 본질적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단념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어떤 것들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이 명확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욕심 따위는 단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삶을 즐기게 된 비결은 자신에 대한 집착을 줄였다는 데 있다. 청교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나 또한 자신의 죄와 어리석음, 결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랬으니 나 자신을 불행한 괴짜로 여겼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p18

 

승려가 종교에 귀의한 덕분에 누리고 있다고 믿는 행복은, 그가 어쩔 수 없어서 도로 청소원이 되었더라도 누릴 수 있었던 행복에 불과하다. 지나치게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는 바람에 불행해진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외부적인 훈련뿐이다. p18

 

죄는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누구나 저지르기 마련인 것이 될 수도 있고, 아무도 저지르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말하는 죄인이란 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탓한다. 만약 이런 사람이 종교를 가지고 있다면 스스로 자신을 꾸짖으면서 이를 하나님의 꾸짖음이라고 해석한다.

이런 사람들은 마음속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과 마음속의 자아상이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킨다.

어릴 적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배웠던 도덕적 규칙들은 잊은 지 오래 되어서, 이제 그의 죄의식은 잠재의식 속으로 깊이 가라앉아 술에 취했거나 잠들었을 때에만 나타난다. p19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머니에게서 느꼈던 자애로운 애정을 기대하지만, 마음속에 새겨진 어머니의 모습 때문에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여자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애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그는 절망에 빠져 잔인하게 행동하고, 그리고 다시 잔인한 행동을 후회한다. 이런 식으로 상상 속의 죄악과 실재하는 뉘우침 사이를 지루하게 맴돌기 시작한다. 이것이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다. P20

 

이렇게 어머니에게서 배운 ‘도덕’의 희생양이 된 사람이 행복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에 가졌던 신념과 애정의 폭압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한다. P20

 

2. 이유 없이 불행한 당신

세상으로 나가라. 해적도 되어보고, 보르네오의 왕도 되어보고, 소련의 노동자도 되어보라. P27

 

전도서 Ecclesiastes : 구약성서의 한 책으로 솔로몬이 노년기에 썼다고 전해진다. 하느님과 인간의 근원적인 관계회복을 통해서만 영원한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이다. p29

 

사실 현대에 대한 크러치의 불평 중 하나는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흘러내려온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보자. ... 만일 강물에게 감정이 있다면, 강물은 셸리의 ‘구름’이 하던 대로 모험적인 순환을 즐겼을 것이다. p34

 

영국의 낭만파 시인인 셸리의 시 <구름 the cloud>의 시적화자는 구름이며,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나는 변하기는 하지만, 죽지는 않는다”고 말이다. p35

 

인간이 영원히 사는 존재라면 삶의 기쁨은 어쩔 수 없이 그 향기를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삶의 기쁨은 언제까지나 신선함을 지닐 수 있다.

나는 삶의 불꽃 앞에서 두 손을 따뜻이 쬐었다.

이제 불꽃은 꺼져가고 나는 떠날 채비가 되어 있다. p36

 

종교에 대해 냉소적인 노부인은 “나는 내 말을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나는 제7계명을 어기는 것은 제6계명을 어기는 것만큼 나쁜 짓은 아니라고 늘 말합니다. 어쨌든 제7계명을 어기려면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하니까요”라고 말했다. p40

 

나는 빅토리아 시대에 너무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크러치가 제시한 기준에 의거한 현대인이 되지 못한다. 나는 결코 사랑에 대한 신념을 상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믿는 사랑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이 칭송하던 그런 사랑이 아니다.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랑은 대담하고도 빈틈이 없는 사랑,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되 나쁜 것을 눈감아주지 않는 사랑, 그리고 신성한 척, 거룩한 척하지 않는 사랑이다. p42

 

우리는 지금 낡은 기준은 벗어던졌지만 아직 새로운 기준은 마련하지 못한 다소 혼란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곤란을 겪게 된다. 아직도 무의식 속에서 낡은 기준을 믿고 있는 사람들은 곤란에 부딪치게 되면 대개 절망과 후회, 냉소에 빠진다. p43

 

사람들이 사랑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를 간단하게 말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 이유를 밝혀보고자 한다. 우선 첫째로, 사랑은 그 자체가 기쁨을 빚어내는 원천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이것이 사랑이 지닌 가장 큰 가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랑이 가진 다른 가치를 발휘하려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p43

 

사랑은 기쁨을 주는 원천이기 때문에 사랑이 없다는 것은 고통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아름다운 경험을 해보지 못한 남자는 이러한 경험이 주는 마법의 힘을 전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다. 사랑은 생물학적 협력의 한 가지 방식으로 자아의 굳은 껍질을 깨뜨릴 수 있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각각 느끼는 흥분은 상대방의 본능적인 목적을 실현시키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협력이 가능하다. p44

 

글을 쓰려는 생각은 버려라. 그 대신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보라. 세상으로 나가라. 해적도 되어보고, 보르네오의 왕도 되어보고, 소련의 노동자도 되어보라. 기본적인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생활을 해라.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생활 방식을 권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크러치가 진단한 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만 이렇게 살아보도록 권한다. 예전에 지식인이었던 사람들은 몇 년 동안 이렇게 생활하고 나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시기에 도달하면 글을 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p49

 

3. 경쟁의 철학에 오염된 세상

꽃 이름 따위를 알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돈벌이에는 보탬이 안 될 텐데. p50

 

문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행복의 주요한 원천이라고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다. 성취감이 행복한 삶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p56

 

4. 인생의 끝, 권태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다 p63

 

간단히 말하자면 권태의 반대는 즐거움이 아니라 자극이다. 자극에 대한 욕망은 인간, 특히 남성에게 있어 매우 뿌리 깊은 것이다. 수렵시대에는 그 이후보다 자극에 대한 욕망이 쉽사리 충족되었을 것 같다. p64

 

스무 살 때는 서른 살이 되면 인생은 끝날 거라고 생각한다. 쉰여덟 살이 된 나로서는 그런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생각은 인생이라는 자본을 금전적인 자본처럼 소비하는 것으로 결코 현명하지 못하다. 권태의 어떤 요소는 인생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권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p67

 

자극이 지나치게 많은 삶은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환희에 가까운 감격이야말로 즐거움의 필수요소라고 여기기 때문에, 끊임없이 감격을 느끼기 우해서 점점 더 강력한 자극을 찾을 수밖에 없다. p69

 

지나치게 많은 자극은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즐거움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근본적인 만족감을 표면적인 쾌감으로, 지혜를 얄팍한 재치로, 아름다움을 생경한 놀라움으로 바꾸어버린다. ... 그러므로 어느 정도 권태를 견딜 수 있는 힘은 행복한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이것은 젊은 사람들이 배워야 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훌륭한 책들은 모두 지루한 부분이 있고, 위대한 삶에도 재미없는 시기가 있다. p69

 

칸트는 평생 동안 쾨니히스베르크에서 16킬로미터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다윈은 세계일주를 한 뒤 남은 생애를 자신의 집에서 보냈다. 마르크스는 몇 차례의 혁명을 선통한 뒤에는 여생을 대영박물관에서 보내기로 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조용한 삶이 위인들의 특징이며, 위인들이 누렸던 기쁨은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결코 흥미진진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끈질긴 노력이 없이는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수 없다. p70-71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영화 구경이나 맛있는 음식 같은 수동적인 오락거리를 너무 많이 제공하고 있다. ... 어린아이는 주로 자신의 노력과 창조력에 의지해서 스스로 환경으로부터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영화구경처럼 재미는 있지만 육체적인 활동이 전혀 수반되지 않는 오락거리를 어린아이들에게 자주 제공해서는 안 된다. p71

 

이번에는 사랑과 단순한 성적 매력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사랑이란 경험은 가뭄 끝에 단비로 식물이 되살아나듯이 우리에게 원기를 불어넣고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만든다. 사랑이 없는 성관계를 통해서는 결코 이런 경험을 할 수 없다. 순간적인 쾌락이 끝나면 피로감과 혐오감, 그리고 인생이 공허하다는 느낌만 남는다. 사랑은 대지의 생명의 일부이지만, 사랑이 없는 성관계는 그렇지 않다. p74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다. 진정한 기쁨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만 깃들기 때문이다. p75

 

5. 걱정의 심리학

요즘 선진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정신적인 피로다. 이상한 일이지만, 정신적 피로는 부유한 계층에서 가장 두드러지며, 육체노동자들이 사업가들이나 정신노동자들보다 정신적 피로가 훨씬 덜한 경향이 있다. p77

 

만일 일주일에 한 번씩 노동자들에게 사장의 코를 잡아당긴다거나, 사장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바를 말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노동자들은 정신적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p78

 

게다가 연설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신경을 덜 쓸수록 연설 솜씨가 더 나아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렇게 차츰 정신적 긴장이 덜해지면서 마침내는 거의 긴장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p81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면 자신의 자아는 세상에서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희망을 자아를 넘어선 어떤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은 일상생활의 걱정거리 속에서도 어느 정도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완전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p81

 

걱정의 심리학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나는 이미 정신적 훈련, 즉 적절한 때에 문제를 생각하는 습관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정신적 훈련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날의 일을 해낼 수 있게 한다는 점, 둘째 불면증을 고쳐준다는 점, 셋째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 효율성과 분별력을 증진시켜준다는 점이다. p83

 

대부분의 무의식은 한때 매우 감정적이었던 의식적 생각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금은 다만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의식적 생각들을 무의식 속에 숨기는 과정은 충분히 계획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는 일이며, 이렇게 한다면 무의식의 도움을 받아 여러 가지 유익한 일들을 할 수 있다. p84

 

밑도 끝도 없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있다.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인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특정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다. 어떤 사람은 암에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경제적 파멸을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수치스러운 비밀의 탄로를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질투어린 의심으로 괴로워하고, 어떤 사람은 밤이 되면 어릴 때 들은 지옥의 불구덩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두려워한다. p85

 

이런 사람들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 모든 종류의 두려움은 그것을 직시하지 않으면 더욱 심해진다.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시선조차 마주치고 싶지 않은 어떤 무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오히려 부추기는 꼴이 된다. 모든 종류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올바른 방법은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그러나 매우 집중적으로 그 두려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두려움에 대해 친숙한 감정이 들게 된다. 이러한 친밀감이 생기면 마침내 두려움의 칼날은 무뎌지고, 모든 문제가 따분한 것이 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p86

 

하지만 이런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부도덕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실례를 린지 판사의 운명에서 보았다. 그는 오랫동안 존경받는 인생을 살았지만, 손윗사람들의 완고함으로 인해 고통받는 젊은 사람들을 불행에서 구해내고자 한 그의 노력은 죄악으로 비난받아야 했다. p88

 

자신의 생활을 구속하고 있는 법률이나 제도를 바꿀 도리가 없는 개인으로서는, 강압적인 도덕주의자들이 만들어내고 영구화시킨 상황에 맞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인생을 충만하게 만들 수 있는 기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자극의 도움없이 삶을 견디기란 어렵다고 생각하겠지만, 자극적인 쾌락은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중한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건강을 해치거나, 일에 방해가 될 만큼 과도하고 소모적인 쾌락에 빠져들지 않도록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p88

 

6. 질투의 함정

어린이들은 질투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어른들보다 조금 더 개방적일 뿐이다. p90

 

그러나 어린이들은 시샘이나, 시샘의 특별한 형태인 질투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어른들보다 조금 더 개방적일 뿐이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그렇지만 어른들 사이에서도 질투는 보편적인 것이다. p90

 

질투는 민주주의의 기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들 사이에 제일인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에페소스의 시민들을 모두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 도시 국가들의 민주주의 운동은 거의 전적으로 질투라는 감정에 의해 고무된 것이 틀림없다. p91

 

남성들 사이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을 모두 경쟁자로 보는 데 비해 남성들은 대부분 동일한 직업을 가진 다른 남성들에 대해서만 이런 감정을 갖는다는 점이다. p92

 

악어의 눈물...

질투는 평범한 인간 본성이 가진 여러 가지 특징 중에서 가장 불행한 것이다. 질투가 강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불행을 안기고 싶어하고, 또 처벌을 받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을 때는 반드시 행동으로 옮긴다. p93

 

이런 격정이 제멋대로 날뛰도록 방치할 경우 모든 장점에 대해서, 심지어는 남다른 능력을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조차 치명적인 해를 끼칠 것이다. 노동자는 걸어서 일터로 가는데, 의사는 왜 환자를 보러 갈 때 차를 타고 가는가? 다른 사람들은 험악한 비바람에 시달리고 있는데, 과학자들은 왜 따뜻한 방안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놓아두는가? 세계적으로 중대한 의미가 있는 비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왜 귀찮은 집안 일을 하지 않고 지내는가? 질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인간 본성에는 질투를 상쇄할 만한 다른 격정, 즉 탄복이라는 감정이 있다. 인류 행복의 증진을 바라는 사람은 틀림없이 탄복은 증가시키고 질투는 감소시키고 싶어할 것이다. p94

 

평범한 남녀의 질투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행복뿐이다. 하지만 질투 그 자체가 행복을 가로막는 무서운 장해물이라는 점이 문제를 어렵게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질투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여러 가지 불행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 p95

 

사실 질투는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일종의 나쁜 버릇이다. 질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사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보려는 데서 생긴다. p97

 

불필요한 겸손은 질투와 관계가 깊다. 사람들은 흔히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지만, 극단적인 형태의 겸손이 미덕으로 칭송받을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나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감이 상당히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 능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버릇처럼 들먹이는 사람들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생각한다. p98

 

공작새들은 저마다 자기 꼬리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믿는다.... 만일 자화자찬은 나쁜 짓이라고 배운 공작새가 있다면 그 새의 삶은 얼마나 불행할까? 그 공작새는 다른 공작새가 펼치는 것을 볼 때마다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매우 인상적인 공작새 이야기) ... 이것은 질투가 도덕으로 위장하여 승리를 얻는 예다. p98-99

 

거지들은 자신보다 형편이 나은 다른 거지들을 질투하기는 해도 백만장자를 질투하지는 않는다. 현대에는 사회적 지위를 불안정과 민주주의 및 사회주의가 주창하고 있는 평등주의 이론이 질투의 대상이 되는 영역을 크게 넓혀 놓았다. 질투의 영역을 넓혀 놓은 것은 지금 현재로서는 폐단이다. 하지만 이것은 보다 공정한 사회 제도에 도달하기 위해서 반드시 참고 견뎌야 하는 폐단이다. p100

 

현대는 특별히 질투가 만연해 있는 시대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가난한 나라는 부유한 나라를, 여자는 남자를, 정숙한 여자는 정숙하지 않으면서도 처벌받지 않는 여자를 질투한다. ... 하지만 질투의 결과로 빚어진 정의는 자칫하면 최악의 것, 즉 불행한 사람들의 즐거움을 증가시키기보다 오히려 행복한 사람들의 즐거움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는 정의가 되기 쉽다. p100

 

나쁜 일은 저마다 서로 관련되어 있고, 한 가지 나쁜 일은 다른 나쁜 일을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 쉽다. 특히 피로가 질투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맡고 있는 일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대해서 불만을 느끼는데, 이런 불만은 힘이 덜 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질투하는 방식으로 표출되기 쉽다. 그러므로 질투를 줄이는 방법 중의 하나는 피로를 줄이는 것이다. p101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자들을 볼 때마다 질투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여자들은 사실 본능적 생활에 있어서 불행한 사람들이다. 본능적인 행복이란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들,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는 보기 드물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문명은 잘못된 방향으로 엇나가고 있는 것 같다. p102

 

왜 선전활동은 우애를 선동하려고 할 때보다 증오를 선동할 때 훨씬 더 성공적인가? 그 분명한 이유는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인간의 심리가 우애보다는 증오 쪽으로 더 쉽게 기울어진다는 데에 있다. 현대인의 심리는 불만에 가득 차 있고, 이미 삶의 의의를 상실했다. 자신은 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누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서 깊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인의 심리는 증오로 더 쉽게 기울어진다. 현대인이 누리는 즐거움의 총량은 원시 사회에 비하면 엄청나게 커졌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즐거움을 반드시 누려야 한다는 의식 또한 훨씬 증대되었다. p103

 

원숭이가 느꼈을 것 같은, 긴장과 슬픔이 깃든 무언가가 문명인의 영혼에 스며 있는 것 같다. 문명인은 자기의 손이 미치는 곳에서 자신보다 훌륭한 것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절망에 빠진 그는 자신의 동료인 인간에 대해 분노한다. 그의 동료도 길을 잃고 불행해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p103

 

질투는 나쁜 것이며, 그 결과는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질투가 악의 화신인 것만은 아니다. 질투는 깜깜한 밤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영웅적 고통의 표현이다. 그 길은 어쩌면 더 나은 보금자리에 이르는 길이 될 수도 있고, 죽음과 멸망에 이르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절망에서 벗어나 올바른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 문명인은 지성을 확대했던 것처럼 감정 또한 확대해야 한다. 문명인은 자기를 뛰어 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주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을 손에 넣는 법을 배워야 한다. p104

 

7. 불합리한 죄의식

우리의 주님도 사도들과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던가! 그런 술을 죄악시하다니. p105

 

특히 신교도들의 견해에 따르면 양심이란 죄받을 일을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며, 그런 행동을 저지른 뒤에는 후회 혹은 회개의 두 가지 고통스러운 감정이 뒤따르는데, 후회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지만 회개는 죄를 씻어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신교도 국가에서는 종교적 확신을 잃은 사람들도 죄악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그것을 확대 또는 축소하여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다. p105

 

예전에 양심은 신비로운 것, 즉 신의 목소리로 여겨졌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더 이상 양심을 신비로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의 어느 곳에 있느냐에 따라 양심이 각기 다른 행동 방식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양심은 어디를 가든 그 종족의 관습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을 때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p106

 

‘양심’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다른 감정들과 관련되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단순한 감정은 발각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p106

 

발각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집단에서 추방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 하지만 종교개혁가나 무정부주의자, 혁명가는 다르다. 이들은 오늘 자신의 운명이야 어떻게 되든지 간에 결국 역사는 자신의 편이 될 것이며, 지금 자신이 비난을 받는 만큼 미래에는 존경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의 비난에 시달리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회의 도덕관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사회적 위신을 잃는 것을 커다란 불행으로 여긴다. 이런 사람들은 불행이 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혹은 그 불행이 현실이 되었을 때 겪는 고통 때문에, 아주 쉽게 자신의 행동을 죄악으로 여기게 된다. p107

 

이와 같은 죄의식은 대부분 여섯 살이 되기 전에 어머니나 부모에게 받은 도덕 교육에서 비롯된다. 이 사람은 채 여섯 살도 되기 전에 욕을 하는 것은 못된 짓이며, 가장 고상한 말만 써야 하고, 술은 나쁜 사람들만 먹는 것이고, 담배는 최고의 미덕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그 중에 으뜸가는 가르침은 성에 대한 관심은 더럽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가르침이 어머니의 생각이며,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믿었다. p108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는 자신이 품고 있는 도덕적 규칙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것을 거역했을 경우 치러야 하는 대가가 어떤 것인지를 차츰 잊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속에는 그 도덕적 원칙은 물론이고, 그것을 어겼다가는 큰 일이 날 거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p108

 

합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 역시 대단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술이나 담배도 마찬가지다. 남부 유럽의 사람들은 술을 나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사실 우리의 주님도 사도들과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던가! 그런 술을 죄악시하다니, 이거야말로 불경스러운 생각이다. p109

 

그것이 발현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살펴보면 우리의 무의식 속에 박힌 도덕적 원칙이 얼마나 비합리적인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p109

 

요즘 교육받은 계층의 경우에는 죄의식으로 인해 왜곡되고 문란해진 남성들의 성생활이 여성들의 성생활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p111

 

성교육의 올바른 원칙은 간단하다. 사춘기가 되기 전에는 어떠한 성도덕도 가르치지 말고, 자연스러운 신체 기능에 대해 혐오감을 주입하지 말아야 한다. 성교육이 필요한 시기가 되면 합리적인 교육을 하고, 관련된 논점에 대해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p111

 

“악마는 병들었고, 이제 병든 악마는 성자가 되리라.”

그러나 약해지는 순간에야말로 우리가 건강할 때보다 훨씬 강력한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약해진 순간에는 유아기의 암시에 저항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렇지만 이런 암시가 여러 가지 능력을 충분히 갖춘 성인의 확고한 신념보다 나은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근거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원기를 잃지 않은 순간에 건전한 이성이 판단을 내린 신중한 확신을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 p112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사람들이 안겨준 기억에 대해서 불손하게 구는 것을 겁내서는 안 된다. 그때는 당신이 약하고 무지했기 때문에, 그들이 힘이 세고 현명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제 당신은 약하지도 않고 무지하지도 않다. 지금 당신이 할 일은 그들이 가진 외견상의 힘과 지혜를 신중히 검토해서, 당신이 그들에 대해서 습관적으로 표하고 있는 존경심이 과연 그들에게 어울리는가를 생각해보는 일이다. p113

 

그리고 정신적으로 노예나 다름없는 여성들에 의해 형성되어온 것이다. 이제 세상의 평범한 생활에서, 평범한 역할을 담당하는 남성들이 이 역겹고 터무니없는 도덕적 원칙에 저항해야 할 때가 되었다. p114

 

합리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내가 이제껏 해온 이야기가 아무런 설득력도 없는 시시한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개중에는 합리성이 제멋대로 활개를 치도록 내버려두면, 마음속 깊은 곳에 깃든 감정들은 모조리 메말라버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보기에 이런 생각은 이성이 인간 생활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능에 대한 그릇된 견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p117

 

합리적인 인간이 되면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합리성은 내면 조화의 중심부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내면의 갈등으로 늘 시달리고 있는 사람보다 훨씬 자유롭게 세상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외적인 목적을 성취하는 데 열정을 쏟을 수 있다. 자기 안에 갇히는 것은 대단히 따분한 일이지만, 바깥 세계를 향해서 관심과 정력을 돌리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다. p118

 

이성의 도움을 받아 이 병을 극복한 사람은 병에 걸려본 적도 없고, 치료한 적도 없는 사람에 비해 정신적으로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이성에 대한 혐오가 흔히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성의 작용에 대한 이해가 철저하고 근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p119

 

자아가 분열되어 있는 사람은 자극과 오락거리를 찾게 된다. 그는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지만, 건전한 이유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감정이 순간적으로나마 자신을 내면에서 벗어나게 학, 고통스러운 생각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열정은 모두 도취의 한 형태이며, 그는 근본적인 행복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도취의 형태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심각한 병적 증상이다. 이런 병이 없는 사람만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면서 최대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p119

 

정신이 최고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적은 순간에 사람은 가장 강렬한 기쁨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누리는 행복이 참된 행복인지를 시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뭔가에 도취해야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은 거짓된 행복이며, 충족감을 줄 수 없는 행복이다.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을 완전히 인식하면서 느끼는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충족감을 주는 행복이다. p119

 

8. 모두가 나만 미워해

특정한 상황에 처한 어떤 사람이 혼자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해코지를 당한다면, 그 사람 자신이 그런 일을 자초할 만한 원인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즉 자신이 실제로는 입지도 않은 피해를 입고 있다고 가상하고 있거나, 아니면 무의식중에 남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짜증나는 행동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p121

 

당신은 그가 한 행동이 못마땅하겠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당신이 한 행동이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당신이 입을 열지 않았던 아흔아홉 번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당신이 입을 열었던 백 번째 일에 대해서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p123

 

자신에게 결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이 당연한 사실을 지나치게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인다. 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p124

 

피해망상을 적절히 예방할 수 있다. 첫째 당신의 동기는 당신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반드시 이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둘째, 당신의 장점을 과대평가하지 마라. 셋째,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당신과 마찬가지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지 마라. 넷째,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을 해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만큼 당신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고 상상하지 마라. p128

 

가장 고상한 사람의 행동도 거의 대부분 이기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인데, 이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마약 이런 이기적인 동기가 없다면 인류는 존속하지 못할 것이다. p129

 

인습적인 윤리가 강요하는 이타심은 그렇지 않으며, 사실상 거의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자기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에 대해서 자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의 이타심에 도달했다는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 따라서 성자처럼 살아보려는 노력은 일종의 자기기만과 연관되고, 자기기만은 쉽게 피해망상으로 이어진다. p130

 

어떤 사람이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걸작을 쓰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리고 있다면, 이 사람이 앞에 말한 두 가지 경우 중 어디에 속하는지는 알 수 없다. 만일 그가 첫 번째 경우에 속한다면, 그의 고집은 영웅적인 것이다. 그러나 만약 두 번째 경우에 속한다면, 그는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죽고 나서 백 년쯤 지나서야, 그가 어느 경우에 속하는 사람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p131

 

즉 어떤 관념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트껴서 작품을 쓰는가? 아니면 갈채를 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작품을 쓰는가? 진정한 예술가에게 갈채를 받고 싶다는 욕구는 대부분 강렬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이차적인 동기다. 예술가는 어떤 종류의 작품을 쓰고 싶어하고 또 그 작품이 갈채를 받기를 바라지만, 비록 갈채를 받지 못할 것 같더라도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p131

 

9. 세상과 맞지 않는 젊은이

굶어죽지 않고, 감옥에 가지 않을 정도로만 여론을 존중하면 된다. p136

 

현대 사회의 특징은 도덕관과 신념이 철저하게 다른 여러 계층으로 갈라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는 종교개혁과 함께 시작되었다. 어쩌면 르네상스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특징은 그 후로 더욱 뚜렷해졌다. 청교도와 가톨릭교도는 신학뿐만 아니라 보다 실제적인 여러 문제에서 견해 차이를 보였다. p136

 

인습에 젖은 사람들은 간통을 극악한 범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터놓고 칭찬하지는 못하더라도 용서할 수는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톨릭교도 사이에서이혼은 철저히 금지되지만, 비가톨릭교도 대부분은 이혼을 꼭 있어야 하는 결혼 관계의 수정 정도로 받아들인다. ... 이렇게 다양한 견해의 차이 때문에, 특정한 취미와 신념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사회에서는 배척당하지만, 다른 사회에서는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이런 견해 차이로 엄청나게 많은 불행이 빚어진다. 이런 사정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특히 심각하다. 유행하고 있는 사상을 받아들인 젊은이는 그 사상이 자신의 속한 특수한 생활환경 속에서는 저주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p137

 

브론테 자매는 자신들의 책이 출판된 뒤에도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이런 사실은 대담하고 당당했던 에밀리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재능은 있었지만 늘 가정교사다운 견해에 상당히 치우쳐 있었던 샬럿에게는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p138

 

블레이크 William Blake(1757~1827)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이자 화가로, 평생 동안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지 못해 불우한 삶을 살았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오직 한 사람뿐이지,

나를 거의 토할 지경까지 몰아넣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람은 바로 터키인이자 유대인인 푸셀리.

그런데 친애하는 가톨릭 친구들이여, 평안하십니까? p139

 

블레이크나 에밀리 브론테처럼 당당한 태도를 갖추지 모한 사람들이 이러한 환경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으려면, 여론의 횡포를 완화시키거나 모면할 수 있어야 하고, 지적 소수파의 성원들이 서로 교제하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쓸데없는 소심함이 필요 이상으로 문제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여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여론의 횡포는 여론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여론의 횡포에 비해서 훨씬 난폭하다. p141

 

대중 역시 이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대중을 무서워하고 있다는 낌새를 보이는 사람을 발견하면, 대중은 좋은 사냥감을 만났다는 기대에 들뜨게 된다. 반면에 대중에 대해서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발견하면, 대중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다. p141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지나치게 발전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어떤 의견을 내놓으면 사회적인 적의에 직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바람직한 해결책은 바로 이러한 적의를 될 수 있는 한 대수롭지 않은 것, 또한 될 수 있는 한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p144

 

일단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나이 많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인 똑같이 스스로 결정할 권리, 필요하다면 시행착오를 겪을 권리가 있다. 어떤 중요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나이 많은 사람의 압력에 굴복하고 마는 젊은이는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p146

 

태생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었던 귀족 제도는 괴팍스러운 행동이 허용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자유의 원천이 상실된 현대 사회에서는 획일화가 위험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 내가 주장하는 것은 그저 자연스럽게 타고난 성격대로 행동하되, 결코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p148

 

옛날에 비해서 가까운 이웃에 대한 두려움은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새로운 종류의 두려움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언론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중세에 있었던 마녀 사냥에 대한 두려움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언론이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을 속죄양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대단히 심각한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의 주목을 끌지 않는 방법으로 이런 재난을 피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p150

 

설사 어떤 사람이 나쁜 평판을 얻게 될만한 언행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악의적으로 보도하여, 무고한 개인의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이러한 관행은 금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행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치료법은 단 하나, 대중이 관대한 태도를 기르는 것뿐이다. 대중에게 관대한 태도를 기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참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의 수를 늘려서, 그들이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데서 으뜸가는 즐거움을 찾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p150-151

 

II. 행복으로 가는 길

10. 인간이 느끼는 행복

나는 강을 수집한다. 볼가 강이나 양자강을 오르내리노라면 즐거워진다. 그리고 아직 아마존 강이나 오리노코 강에 가보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p155

 

친구들과 나눈 대화나 친구들이 쓴 책을 통해서, 나는 현대 세계에서 행복은 더 이상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사색을 하고, 외국을 여행하고, 정원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생각이 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앞 장에서는 학문을 하느 친구들이 맞이하게 된 불행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장에서는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행복한 사람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p155

 

행복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이 두 종류의 행복 사이에는 당연히 중간적인 상태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의 행복이 존재한다. 내가 말한 두 종류의 행복은 평범한 것과 엄청난 것, 또는 동물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감정적인 것과 지성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p156

 

내 정원을 돌보는 정원사가 누리는 행복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일년내내 토끼들과 씨름을 한다. 그는 토끼 이야기를 할 때, 마치 런던 경시청이 볼세비키에 대해 이야기할 때와 같은 말투를 쓴다. 그는 토끼는 음흉하고 교활하며 사납기 때문에 토끼와 맞먹는 꾀를 쓰지 않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한다. p156

 

칠십이 넘은 그는 하루종일 일하고도 20킬로미터도 넘는 산길을 자전거로 다니면서 일터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는 마르지 않는 기쁨의 샘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원천은 바로 ‘그놈의 토끼들’이었다. p157

 

오늘날 사회에서 상당한 학식을 갖춘 사람들 중 가장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들은 바로 과학자들이다. 저명한 학자들은 대부분 감정적으로 단순하며, 자신의 직업에서 얻는 만족감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음식을 먹는 데서도 기쁨을 얻고, 결혼 생활에서도 기쁨을 얻는다. 예술가들이나 문학가들은 자신의 결혼생활이 불행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과학자들은 옛날식의 가정적 기쁨을 누리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과학자들은 고도의 지능을 과학 연구에 몽땅 쏟아붓고, 자신이 특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영역에는 발을 들여놓을 엄두도 내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 p158

 

감정을 단순화해야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복잡한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다. 복잡한 감정이란 강물의 거품 같은 것이다. 강물의 거품은 고요히 흘러가는 강물의 흐름을 막는 장애물 때문에 생긴다. p158

 

과학자가 예술가보다 행복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일반인들은 그림이나 시를 이해할 수 없으면 나쁜 그림, 나쁜 시라고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이 부족하다고 결론을 내린다.(사실이다) 결국 최고 실력의 화가들이 다락방 안에서 굶주리고 있는 동안 아인슈타인은 만인의 존경을 받는다. ...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뜻을 같이하는 동아리 속에 파묻힌 채 냉혹한 바깥 세계를 잊고 사는 경향이 있다. p159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 가운데는 영국인들이 이스라엘의 사라진 열 지파의 후손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 독자들에게 이런 신념들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권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이런 신념들이 그릇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릇된 신념에 원천을 둔 행복을 옹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p166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일시적인 열광이나 취미는 근본적인 행복의 원천이 아니라 현실 도피의 수단에 불과하다. ... 근본적인 행복은 무엇보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 행복을 가져오는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개인들의 특성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랑이며, 만나는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거나 열광적인 찬사를 받아내려고 하는 대신, 그들의 관심과 기쁨의 폭을 넓혀주려고 하는 사랑이다. 이런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원천이 될 것이며, 그 대가로 친절을 되돌려 받을 것이다. p168

 

11. 열정이 행복을 만든다

이런 사람들은 지진을 만나도, 지식이 늘어났다며 즐거워한다. p172

 

그리스 인들이 가졌던 중용에 대한 원칙은 실제적으로 이런 경우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밤에 체스를 한다는 기대에 부푼 채로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하루 종일 체스를 두기 위해서 직업까지 버린 사람은 중용의 미덕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p182

 

기원 후 첫 천년 동안, 성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 가족을 버린 사람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렇게 속세를 떠나더라도 가족들을 위해서 얼마간의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는 쪽으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p183

 

우리 삶에는 반드시 자유가 필요하다.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 열정을 잃게 되는 주된 원인은 바로 자유에 대한 제한이다. p185

 

여성들의 경우에는 품위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열정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옛날에 비하면 요즘에는 상당히 줄어든 편이지만, 아직도 심각한 형편이다. 여성이 남성에 대해서 솔직하게 관심을 표현하거나, 남들 앞에서 지나치게 활발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 남성에 대한 관심없는 태도를 몸에 익히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모든 일에 대한 관심을 잃게 되거나, 기껏해야 특정한 종류의 바른 행동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는 경우가 대단히 많았다. p187

 

진정한 의미에서 남성의 미덕과 여성의 미덕은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비록 어떤 차이가 있다고 해도 관습이 주입해온 것과 같은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성에게도 그렇지만, 역시 여성에게도 행복과 번영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열정에 있다. p189

 

12. 사랑의 기쁨

진정한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치명적인 것은 사랑에 대한 신중한 태도다. p190

 

사랑을 받지 못하면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는 본능적으로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철저하고 완전하게 지배하는 습관을 들인다. 자진해서 변함없는 일과의 노예가 되는 태도는 대개 냉담한 외부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가면 그런 세계와 부딪히지 않으리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p192

 

그러나 인생에 대한 일반적인 자신감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만큼 올바른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을 때 생긴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열정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정신적인 태도에 관한 것이다. 물론 안정감은 호혜적인 사랑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정확히 구분하자면 안정감은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받는 사랑에서 나온다. 엄격히 말하자면, 사랑뿐만 아니라 존경심도 안정감을 주는 효과가 있다. p192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정은 진실로부터의 피난처다. 사람들이 가정에 있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들이 가정에서 진정시켜야 할 두려움과 소심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현명하지 못한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것을 아내에게서 받고 싶어하지만, 막상 아내가 자신을 몸집만 큰 어린애로 취급하면 깜짝 놀란다. p195

 

다른 사람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걱정에 비해 크게 나을 것이 없다. 게다가 그것은 소유욕의 위장된 형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태도가 의도하는 것은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상대방에 대한 보다 완전한 지배권을 획득하는 데 있다. 이것은 남자들이 겁 많은 여자를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다. 남자는 여자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그 여자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상처 없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이 과연 어느 정도냐는 것은 그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p195

 

남녀를 막론하고 성애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큰 불행이다. 이런 경우에 그 사람은 인생이 제공하는 가장 큰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열정을 잃게 되고, 내향적인 성격이 된다. 어린 시절에 겪을 불행이 훗날 사랑을 얻을 수 없게 만드는 성격적인 장애를 초래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p196

 

이제부터는 베푸는 사랑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하나는 삶의 열정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표현으로서의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을 드러내는 표현으로서의 사랑이다. 나는 전자는 매우 바람직한 것이지만, 후자는 기껏해야 위안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p197

 

첫 번째 사랑은 어떤 사람이 안정감을 느끼고 있거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위험에 대해서 무관심한 경우에만 가능한 사랑이다. 하지만 두 번째 사랑은 불안감에서 비롯되는 사랑이다. 불안감으로 인한 사랑은 안정감으로 인한 사랑에 비해서 훨씬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은 상대방을 본질적인 특성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 사람이 베푸는 봉사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p197

 

낡은 불행에서 벗어나려는 사랑보가 새로운 행복을 바라는 사랑이 더 바람직하다. 가장 바람직한 사랑은 서로 생명력을 주고받는 사랑이다. 두 사람은 애쓰지 않고도 기쁨으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둘 다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결국 세상에 대해서도 더 큰 흥미를 느낀다. p198

 

서로를 단순히 자신의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결합체로 보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자아를 철벽 속에 가두어 놓아서 자아를 확대할 수 없는 사람은 설사 직업에서 성공한다고 해도 인생이 베푸는 최고의 행복은 놓치게 되기 마련이다. p199

 

세상을 완전히 즐기려는 사람은 지나치게 강한 자아라는 이름의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아의 감옥에서 벗어난 사람이 가진 특징 중에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된다. p199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진정으로 가치 있는 성적 관계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지 않는 관계, 두 사람의 모든 인격이 융합하여 새로운 공동의 인격을 형성하는 관계라는 점이다. 여러 종류의 신중함 가운데 진정한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치명적인 것은 사랑에 대한 신중한 태도일 것이다. p200

 

13. 좋은 부모가 되려면

이제 부모 노릇은 겁나고, 불안하며, 양심에 걸리는 고민거리가 많은 일이 되었다.

 

행복의 정복이라는 문제와 관련된 경우를 다루되, 사회구조의 변혁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각 개인의 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개선사항에 대해서만 다룰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매우 중대한 제한 사항이다. 오늘날 가족의 불행은 대단히 다양한 원인, 즉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 교육적 및 정치적 원인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p202

 

옛날에는 독신 여성에게 주어진 견디기 힘든 생활 조건이 여성들을 결혼으로 몰아갔다. 독신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가족에게 의존한 채 살아야 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다음에는 그들을 성가시게 여기는 남자형제들에게 의존해야 했다. 이들에게는 하루하루를 메워나갈 직업이 없었고, 집 울타리 밖에서 즐거움을 추구할 자유도 없었다. 이들에게는 성적모험을 즐길만한 기회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이들은 혼인 관계를 기초로 하지 않는 성적 모험은 추악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런저런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어떤 음흉한 남성의 계략에 넘어가 정조를 잃게 되면, 이들의 처지는 극단적으로 가련해진다. 이 점은 ‘웨이크필드의 목사’에 아주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p202

 

그녀의 죄를 덮고

그녀의 수치를 만인의 눈으로부터 가려주고

그녀의 애인을 뉘우치게 하며

그이 가슴을 쥐어짜는 방법은 단 하나,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p203

 

여성이 겪어야 하는 부당한 대접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가족들 옆에서 충실하게 의무를 수행한 대가로 가족의 사랑을 잃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이 여성이 가족을 소홀히 여기고 쾌활하고 매력적인 생활을 유지했다면 아마 가족들은 이 여성을 사랑했을 것이다. p205

 

부모와 자녀의 관계 변화는 민주주의가 보편적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가지 특별한 예다. 부모들은 자신에게 자녀들의 의사를 막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확신을 잃어버렸고, 자녀들은 부모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이유를 따질 필요 없이 강요되던 순종의 미덕은 케케묵은 것이 되었는데, 이것은 온당한 일이다. p208

 

예전 같으면 부모 노릇은 당당하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부모 노릇은 겁나고, 불안하며, 양심에 걸리는 고민거리가 많은 일이 되었다. 독신 여성으로 남아 있을 경우에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자유 때문에, 여성들은 어머니가 될 각오를 하려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이제는 예전에 부모 노릇을 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단순한 기쁨은 사라지고 없다. ... 양심적인 어머니는 자녀에게 요구하는 것이 지나치게 적고, 비양심적인 어머니는 요구하는 것이 지나치게 많다. 양심적인 어머니는 자연스러운 애정 표현을 삼가고 조심스러워지며, 비양심적인 어머니는 자신의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기쁨을 자녀에게서 보상받기를 원한다. 양심적인 어머니의 품에서 자란 아이는 사랑에 굶주리고, 비양심적인 어머니의 품에서 자란 아이는 지나친 사랑을 받는다. 가정이 최선의 상태에서 제공할 수 있는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행복은 이 두 가지 경우 중 어느 쪽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p209

 

서구 국가들의 도덕주의자들은 훈계와 감상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들은 설사 아이들이 건강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결혼한 부부는 하느님이 원하는 대로 아이를 낳을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남자 성직자들은 모성의 성스러운 기쁨에 대해 떠들어대며, 설사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더라도 아이를 많이 낳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고 주장한다. 국가는 총알받이로 쓰려면 충분한 인구가 필요하다며 거들고 나선다. 전쟁을 할 수 있을만한 충분한 인구가 없다면, 아무리 정교한 살상 무기가 있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p210

 

국가의 이론은 너무나 무자비하다. 사람들은 남들을 총알받이로 쓰는 것에는 동의할지 몰라도, 자신의 자녀들이 이런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러니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가난한 사람들이 계속 무식한 상태로 남아 있도록 노력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통계가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이상하게도 서구 국가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뒤떨어진 국가를 제외하고는 이런 노력이 성공을 거둔 경우가 없다. p211

 

앞으로는 공적인 의무감에서 자녀를 낳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남녀가 만나 자녀를 낳는 것은 자녀가 자신들을 더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믿고 있거나, 혹은 피임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직도 두 번째 이유가 큰 힘을 발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힘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국가나 교회에서 출산율이 계속 감소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p211

 

헤카베는 트로이 왕인 남편 프리아보스보다 자식을 더 사랑했고, 맥더프는 아내보다 자식을 더 사랑했다. ‘구약성서’를 보면, 남성이나 여성이나 할 것 없이, 자손을 남기는데 대단히 관심이 많았다. ... 이러한 욕망은 조상 숭배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진실은 정반대인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조상 숭배야말로 가족의 지속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에서 나온 현상인 것이다. p212

 

가족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느끼는 특별한 사랑이다. 이 사랑은 부부가 서로에게 느끼는 사랑이나, 남의 아이에게 느끼는 사랑과는 전혀 다른 사랑이다. p214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가진 특별한 가치는 다른 어떤 사랑보다도 믿을만한 사랑이라는 데에 있다. 친구는 당신이 가진 장점 때문에 당신을 사랑하고, 애인은 당신이 가진 매력 때문에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이 가진 장점이나 매력이 줄어들면, 친구와 애인은 모두 떠나갈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당신이 불행에 처했을 때에도 가장 큰 의지가 된다. 부모가 올바른 사람들이라면, 부모는 당신이 병들었을 때는 물론이고 치욕을 당했을 때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 p215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서 얻는 즐거움이 과거에 비해서 훨씬 줄어들었고, 자녀들이 부모 밑에서 겪는 고통 역시 예전 세대에 비해서 훨씬 줄어들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부모들이 자녀로부터 얻는 행복이 과거에 비해서 줄어들어야 할 현실적인 이유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또한 부모들이 자녀들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버려야 할 타당한 이유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양쪽 모두가 만족감을 얻으려면 상대방의 인격이 다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p216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느끼게 되는 즐거움의 근원은 두 가지다. 한편으로 우리는 자녀를 보고 있으면, 자기 신체의 일부가 독립된 생명을 얻었으니, 자신이 죽고 난 후에도 생명은 계속될 것이며, 이후에도 그 새로운 생명의 일부가 같은 방식으로 독립된 생명을 얻게 되면서 생식질은 영원히 사멸하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에 즐거워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는 권력과 자애를 자녀에게 행사하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다. p217

 

새로 태어난 생명은 무력하므로, 부모의 마음속에는 새 생명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이 충동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만족시켜줄 뿐만 아니라, 부모의 권력욕까지 만족시켜준다. 갓난아이를 무력한 존재로 여기면서 기울이는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연약한 일부분을 보호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p217

 

나는 부모의 사랑을 매우 높게 평가하지만,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서 손수 하는 일이 되도록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녀 양육과 관련된 지식이라곤 나이 많은 여성이 젊은 여성에게 전수해주는 잡다한 비과학적인 정보뿐이었던 시절에는 이런 인습도 꽤나 쓸모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자녀 양육의 일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들이 자녀 양육과 관련하여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p220

 

전문적인 기술이 있는 여성은 어머니가 된 후에도 계속해서 그 기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그 여성 자신을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유익하다. p221

 

여성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아이를 제대로 돌보는 것인지 일깨워주는 천부적인 본능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지나치게 자식을 염려하는 것은 소유욕의 위장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어머니의 무지하고 감상적인 태도 때문에 심리적인 장애를 입는 아이들이 많다. p222

 

여성들의 생활이 불필요한 속박에서 벗어나고, 자녀들이 아동기의 신체적, 정신적 양육에 대해 나날이 늘어가는 과학적 지식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장차 어머니와 자녀 사이의 관계는 현재 아버지와 자녀 사이의 관계와 비슷해질 것이다. p223

 

14. 일하는 사람이 덜 불행하다

부자들 중에서도 영리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처럼 열심히 일한다. p224

 

남다른 독창성을 가진 사람이 아닌 한, 하루 중 어느 시간에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지시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다. 물론 이것은 그 지시가 지나치게 불쾌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p225

 

하지만 그렇게 신나는 일들이 끝없이 많지도 않은데다가, 젊음이 시든 후에는 더욱 사정이 딱해진다. 따라서 부자들 중에서도 영리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처럼 열심히 일한다. 부유한 여성들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수없이 많은 사소한 일들을 하느라 분주하게 살아간다. 그러므로 권태의 예방책으로 가장 적절하고, 바람직한 것은 일이다. 재미는 없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동안에 느끼는 권태는 하는 일없이 허송세월을 하는 사람이 느끼는 권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p225

 

실제로 이런 태도를 보이는 혁명가들과 군국주의자들, 그 밖에 폭력의 전도자들이 적지 않다. 본인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들을 행동에 나서게 하는 것은 바로 증오다. 이들은 증오하는 대상을 파괴하는 것이 진정한 목적일 뿐, 파괴가 끝난 후에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관심하다. p230

 

당신이 정적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정적이 죽는 순간 당신의 역할은 끝나고, 승리를 거두었다는 만족감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린다. 한편 건설적인 일은 마치고 나면, 그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게다가 그 일은 더 이상 아무런 할 일이 없을 만큼 완벽하게 끝이 나는 일도 아니다. 가장 깊은 충족감을 줄 수 있는 목적이란 한 가지 성공이 다음 성공으로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결코 완전한 종결이 있을 수 없는 목적이다. p230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건설적 업무에서 성공을 거둔 끝에 느끼는 만족감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만족감 중의 하나다. 남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이 이런 고차원적인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중요한 일을 성취한 사람에게서 행복을 앗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한 일이 형편없는 것이라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뿐이다. p231

 

관개사업을 실시하여 황무지를 장미꽃이 피어나는 아름답고 비옥한 땅으로 만든 사람이 느끼는 만족감은 대단히 구체적인 만족감에 속한다. 조직을 만드는 일이 엄청난 의의를 가지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혼란한 사회를 바로잡아 질서를 세우는 일에 생애를 바쳤던 정치가들이 했던 일이 바로 그런 일이었는데, 그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우리 시대의 정치가로는 레닌을 들 수 있다. 건설을 통해 구체적인 만족감을 누리는 사람들 중에는 가장 두드러진 예는 예술가와 과학자다. p231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시를 놓고 이렇게 말했다.

“인간들의 허파가 호흡을 멈추지 않는 한, 인간들의 눈이 시력을 잃지 않는 한, 이 시는 영원히 살아 있으리라.” 그는 불행할 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위안을 얻었던 것이 틀림없다. p232

 

위대한 예술가들과 훌륭한 과학자들이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즐거운 일이다. 그들은 즐거운 일을 하면서 권위 있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그 일을 통해서 가장 중요한 힘, 즉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좌지우지하는 힘을 얻는다. 이들은 자부심을 가질 만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p232

 

미켈란젤로를 생각해보라. 그는 아주 불행한 사람이었고, 스스로도 가난한 친척들의 빚을 갚는 일만 없었더라면 고생스럽게 예술 작품 창작에 매달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나는 이것은 그의 진심어린 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예술을 창조하는 힘은 기질적인 불행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기질적 불행은 대단히 심각한 것이어서, 만일 작품 활동을 하는데서 기쁨을 얻지 못한다면 그 예술가는 자실하고 말 것이다. p232

 

현대 지식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 중 하나는 상당히 많은 지식인들, 특히 문필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속물스런 경영자’가 운영하는 부유한 회사에 고용되는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속물스런 경영자는 지식인들이 보기에 해롭고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만들어내라고 강요한다. p233

 

그러나 굶지 않고도 건설적 충동을 만족시키는 일을 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보수가 훨씬 많다는 이유로 노력할만한 가치가 없능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곰곰이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자부심이 없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고, 자기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결코 자부심을 가질 수 없다. p234

 

인생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태도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지혜와 참된 도덕의 근간이며, 교육을 통해서 길러져야 할 덕목 중 하나다. 견실한 목적이 행복한 인생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수조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견실한 목적은 대개 일을 통해서 구현된다. p235

 

15. 폭넒은 관심, 튼튼한 인생

자신의 생활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태도는 불행과 피로, 그리고 정신적 긴장의 원인이 된다. ... 잠재 의식 속의 사고가 서서히 지혜를 성숙시키고 있는 동안에도, 의식적인 정신은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결코 쉬지 못한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결국 자극에 민감해지고, 분별력과 균형감각을 잃게 된다. p237

 

따라서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하룻밤 자면서 생각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주 현명한 셈이다. p238

 

남성들은 직장인 사무실을 떠날 때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지만, 직장을 다니지 않는 여성들은 일터가 곧 집이기 때문에 장소의 변화에서 오는 기분 전환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집이 아닌 곳에서 일을 하는 여성은, 남성은 물론이고 집이 일터인 여성과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집 밖에서 일하는 여성은 자신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좀처럼 관심을 갖지 못한다. 목적의식이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에 이런 여성은 자신의 업무와 관련이 없는 일에는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p239

 

현대의 고등교육은 특정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훈련에만 지나치게 치중하고 있으며, 치우침이 없는 세계관을 키움으로써 지성과 감성을 확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소홀히 해왔다. 이것이야말로 현대 고등교육이 안고 있는 여러 결정 중의 하나다. p241

 

설사 비열한 수단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면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그 당면한 목적이란 것 역시 극히 순간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에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이 원대한 목적 속에서 보자면, 당신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인류를 문명적 존재로 만들어 온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다. 이러한 관점이 확립된 사람은 개인적으로 어떤 운명을 산다고 해도 강한 행복감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삶은 앞선 시대를 살았던 위인들과의 교제가 될 것이며, 죽음은 하찮은 사건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p242-243

 

오래 전부터 공인되어온 종교들은 극소수의 젊은이들과 일반적으로 지적 수준이 가장 낮고 반계몽주의적인 경향이 가장 심한 사람들에게만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p243

 

그는 인간의 생명은 짧고 하잘것없지만, 인간 개개인의 정신에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이 집약되어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며, 세계를 반영하는 정신을 가진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만큼 위대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p244

 

진심으로 사랑하던 사람이 죽은 경우처럼 엄청난 슬픔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이 슬픔에 잠기도록 놓아두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슬픔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당연히 찾아올 것이라고 예상은 하겠지만, 그 슬픔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찾아서 해야 한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으로부터 최대한의 고통을 이끌어내려는 것은 감상주의적인 태도일 뿐이다. p245

 

내가 해악을 끼치고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는 기분 전환 방법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라 할지라도 사고 작용을 파괴하는 효과를 가지는 음주와 마약이 모두 포함된다. p246

 

죽음은 불시에 찾아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쓰러뜨릴 수 있으며,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대상들은 죽음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인생의 폭을 협소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 인생의 폭이 협소할수록, 우연한 사건이 우리 인생의 모든 의미와 목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된다. p246

 

16. 노력과 체념 사이

중용은 재미없는 이론일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많은 문제에 관한 한 정확한 이론이다. p248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행복은 마치 무르익은 과실처럼 운 좋게 저절로 입안으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행복의 정복’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p249

 

어떤 사람이 어떤 종류의 힘을 원하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분야에 특별한 열정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의 사상을 지배하는 힘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물질적 환경을 변화시키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문적 지식을 갖추는 데서 힘을 느끼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p252

 

힘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형태의 권력욕은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의 자질 중 하나로 인정된다. p252

 

체념 역시 행복을 쟁취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체념이 담당하는 노력이 담당하는 역할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현명한 사람은 막을 수 있는 불행을 감수하지도 않겠지만, 피할 수 없는 불행을 만나도 결코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며, 피할 수 있는 불행이긴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들여야 하는 시간이나 노력이 보다 중요한 목적으로 추구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 불행을 감수할 것이다. p253

 

체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절망에 근원을 둔 체념이고, 다른 하나는 정복할 수 없는 희망에 근원을 둔 체념이다. 전자는 나쁜 것이고, 후자는 좋은 것이다. 중요한 일에 실패해 원대한 성공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버린 사람은 절망적 체념을 몸에 익히기 쉽다. 절망적 체념을 몸에 익힌 사람은 진지한 활동이라면 인간의 참된 목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절망감을 감추기도 한다. 하지만 내면의 좌절을 숨기기 위해서 어떤 위장을 한다고 해도 이런 사람은 본질적으로 쓸모없는 인간, 철저히 불행한 인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p254

 

심각하지 않은 불행이 닥쳤을 때, 기상천외한 비유와 절묘한 비교를 동원해서 위안을 찾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문명인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화상을 가지고 있고, 그 자화상을 더럽힌다고 생각할만한 일이 일어나면 속이 상할 것이다. 이런 경우 가장 좋은 방법은 자화상을 하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자화상으로 가득 찬 화랑을 통째로 가지고 있다가 문제 상황에 맞는 그림을 하나 골라내는 것이다. p257

 

17. 나는 행복한 존재다

외부적 환경이 불행하지 않은 경우라면, 열정과 관심을 자기 내부가 아니라 바깥 세계에 쏟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그리고 자신을 세계에 적응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을 통해서 감정적으로 자신에게 몰입하는 것을 피하고, 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애정의 대상과 관심거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p260

 

이런 위험한 감옥 중의 하나가 자신을 스스로 자기 안에 가두는 감정들이다. ... 두려움과 질투, 죄의식, 자기연민 그리고 자기도취다. 이런 감정에 빠진 사람의 욕망은 자신에게 집중된다. 이런 사람은 외부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그저 외부 세계에서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거나, 자신이 상처받지 않는 데만 관심이 있다. p261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애정관계가 복잡하다는 비난을 받지는 않겠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열정을 바치는 대상이 늘 변함없다는 것 때문에 견딜 수 없는 권태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죄의식에 시달리는 사람은 특별한 형태의 이기심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이 광대한 우주에서 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도덕성을 지키는 일이다. 이런 특별한 형태의 자기도취를 조장해왔다는 것이야말로 전통적인 종교의 특정 종파들이 저지른 중대한 실책 중 하나다. p261

 

사랑을 받는 것은 행복을 부르는 가장 유력한 원인이지만, 사랑은 졸라댄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이자를 받을 생각으로 돈을 빌려주듯이, 되돌려 받을 것을 계산해서 베푸는 사랑은 허망한 것이다. 계산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며, 사랑을 받는 사람도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느끼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p262

 

도덕적 용기와 지적 용기에 대한 연구가 다른 분야에 빟서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 분야에 관해서도 비법이 있다. 적어도 하루에 한 가지씩 고통스러운 진실을 스스로 인정하라. p263

 

인생은 살 만한 보람이 있다고 느끼도록 자신을 훈련하라. 이러한 훈련을 몇 년간 계속하다 보면 두려움 없이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매우 광범한 분야에서 권력을 행사해왔던 두려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다 p263

 

나는 행복을 선이라고 여기는 쾌락주의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썼다. 그러나 쾌락주의자 입장에서 권장하는 행동은 분별 있는 도덕론자가 권장하는 행동과 다르지 않다. p264

 

우리는 마땅히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바라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고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 실제로 자기부정의 이론은 자아와 자아가 아닌 세계가 대립하고 있다는 전제를 내포하는 개념인데, 자아와 자아가 아닌 세계 사이의 대립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진정한 관심이 생기는 순가 사라져버린다. 이러한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은 자신이 당구공처럼 다른 존재와 충돌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단단하고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마치 강물처럼 부드럽게 흘러가면서 다른 것들을 포용하는 삶의 일부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p265

 

행복한 사람의 인격은 분열되어 있지 않으며, 세상에 대항하여 맞서고 있지도 않다. 행복한 사람은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한 성원임을 자각하고, 우주가 베푸는 아름다운 광경과 기쁨을 누린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은 자신의 뒤를 이어 태어나는 사람들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할 때도 괴로워하지 않는다. 마음 속 깊은 곳의 본능을 좇아서 강물처럼 흘러가는 삶에 충분히 몸을 맡길 때, 우리는 가장 큰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p266

 

역자후기 : 최고의 행복지침서

러셀의 이 책은 최고의 행복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러셀의 행복론은 불행한 현실의 벽을 잠시 잊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그 벽이 왜 만들어졌고, 어떻게 하면 부술 수 있는지 알려주고 그 벽을 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p268

 

이 글을 읽으면서 또 한가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일부러 세상의 기준에 맞추느라고, 혹은 종교적인 계명에 순종하느라고 자신이 원하는 것과 정반대의 삶을 사는 태도다. 자신의 욕구와 관심을 부정하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나’와 ‘세상’이 대립하고 있다는 관점에 서 있다. ‘나’는 자유롭고 싶은데, ‘세상’은 나를 경쟁 속에 떠밀어 넣고 이러저런 잣대로 평가하고 속박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러셀은 세상이야말로 나의 생존을 지탱하는 토대이며, 나에게 행복한 생활을 가져다주는 기회이므로, 외부세계에 대해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세상과 교류하면서 행복을 찾아가라고 설득한다. p270-271

 

3. 내가 저자라면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 버틀런드 러셀 자서전 중에서

 

나도 그처럼 살 수 있을까.

이 책은 학자들을 대상으로 쓴 책도 아니고, 현실적인 문제를 그저 이야깃거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쓴 책도 아니다. 이 책에는 일반인들이 모르는 심오한 철학이나 해박한 지식이 담겨 있지도 않다.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이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상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나는 불행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노력하기만 하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이 책을 썼다. p9

 

나도 그처럼 쓸 수 있을까.

이 책은 철학이론서가 아니다. 오직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해서 얻은 기쁨을 맛 본 사람만이 가슴을 울리는 행복론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치열하게 삶을 사랑하고 행복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 온 사람만이 세상에 남기는 유산처럼 책을 써 낼 수 있을 것이다.

 

너는 강을 사랑하느냐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타인과 더불어 행복한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정말 마음 끝까지 열어 놓고 발가벗고서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 하나둘 쯤 바라는 것도 욕심일까. 선생님은 때로 억울함도 열정이 된다고 하셨다. 분노가 힘이 된다는 것도 배웠다. 그렇지만 나는 써보면서 알아간다. 그런 억울함의 열정 끝에서 나오는 글은 칼날처럼 예리해지고, 분노로부터 치솟는 힘은 공허하다는 것을. 그런 글은 가슴을 후벼들되 상처를 남기고, 아픔 또한 깊게 한다는 것을. 억울함도.. 분노도.. 삭혀진 오랜 시간의 숙성을 통해 나온 책을 내고 싶다. 내게 강은.. 더 낮은 데로 흘러야 한다고 하고, 막힌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하고, 시간이 지나면 채워 넘게 된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말하고 있다. 애둘러 감쌀 줄 알아야 하고, 제 몸이 썩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흘러드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 하나로 포용하라고 한다.

 

강이 네게 말하던 것이 무엇이더냐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대에게 강은 무엇이냐고. 강길을 따라 걸으면서 무심히 묻기도 하고, 강의를 하는 도중 종이를 나눠주고 적어보라고도 했다. 저마다 달랐다. 모두의 기억속에 저마다 다른 강을 품고 있었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강을 사랑했다. 다르면서도 같을 수 있는 것. 서로 다른 자기를 잃지않으면서도 크게 하나될 수 있다는 것. 내가 세상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코드.. 강이 우리에게 무엇이라 하더냐... 강에게 묻는다.

 

물길이 사람살이를 닮고, 다시 삶이 물길을 닮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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