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2011년 1월 11일 21시 57분 등록

북리뷰 67 :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 - 헨리 나웬

책: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 아이콘과 더불어 기도하기. 헨리 나웬 지음. 이미림 번역. 분도 출판사. 1989.
     원제: <Behold the beauty of the Lord> Henri Nouwen. 1987.

*** 저자에 대하여

헨리 나웬 Henri J.M.Nouwen 은 1932년 네델란드에서 출생했다. 3남 1녀의 맏이로 6살때부터 가톨릭 사제가 되기를 원했었다. 1957년 사제로 서품을 받았으며 그 후 6년간 심리학을 공부하였다. 미국으로 건너가 2년간 신학과 심리학을 통합하여 연구하였고 1963부터 노틀담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기 시작해서 1971년부터는 예일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74년에는 자신의 소명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알고자 엄률 수도회인 제네시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잠정 회원으로 받아들여져 여느 수도자와 똑같이 관상과 노동과 침묵으로 일관된 수도생활을 7개월간 하였다. 다시 학교로 돌아간 그는 여전히 명강의와 탁월한 저서로 세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81년 그는 자신의 풍요로움에 대한 죄책감과 하느님의 뜻을 알고자 하여 강단을 떠나 페루의 빈민가로 가서 민중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도 하였다.

1982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로서 심리학을 강의했다.

1986년 그는 다시 강단을 떠나 장 바니에가 창설한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정신지체 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슈 , 캐나다 공동체인 데이브레이크로 들어가 1996년 9월 21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 헨리 나웬 신부의 영성

헨리 나웬은 사제로서 심리학을 전공한 교수이다. 그는 자신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자신의 실제의 삶 사이에 너무도 깊은 골이 패어 있음을 괴로워하다가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가서 7개월간을 살아본다. 그는 거기에서의 생활을 소상히 일기로 적으며 자신의 내면세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그 현주소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정적만이 가득한 수도원 안에서 자신을 깊이 통찰하고 그의 심리학적 안목으로 인간의 내면세계가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솔직히 고백해나간다. 그의 고백은 그만의 고백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거의 다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웬은 지식이 많았기 때문에 하느님에 관해서는 많이 얘기하며 살았으나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는 부족했음을 시인한다. 또한 기도에 관해서도 글도 많이 쓰고 강의도 많이 했으나 기도를 얼마나 했느냐에 대하여는 너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의 하루 생활은 수도사들과 같았다. 기도하고 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 같은 맥락이라는 것에 대한 깨달음에 도달하기가 얼마나 힘드는지 토로한다.

나웬이 수도원에서 생활하면서 계속 고민했던 바는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자신의 비참함으로부터의 탈출이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것은 세상에의 집착이었으며 따라서 그는 누군가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었다.

편지함을 지날 때마다 내게 편지가 왔을까를 기대하고 안 왔으면 실망하며 밀려오는 괴로움에 휩싸인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다.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 존경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 때문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괴로워하며 맹목적인 분노까지 일어나는 것임을 일깨우는 나웬의 고백은 오늘날 컴플렉스(Complex)에 젖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 해결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어디엔가 집착하려는 욕구로 살지 않고 삶을 하느님의 선물들에 대한 감사 어린 응답으로 삼아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영적 생활이란 자신이 하느님께서 거처하실 수 있는 장소로 존재하게 하고 그분의 영광이 스스로 드러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이중성에 대하여 고뇌한다. 즉 한편으로는 성인이 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죄인의 기분을 즐기고 싶어 하고, 그리스도와 가까워지기를 바라면서도 많은 사람들한테 인기를 얻고 애정을 받기를 원하기에 삶이 피곤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며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는 자신의 방황을 솔직히 고백한다.

내적 자유가 한없이 그리워지는 우리에게 침묵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며 침묵 중에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어주실 때에야 나의 크리스찬 삶의 새 지평을 열게 될 것이라는 가르침은 오늘의 시끌벅적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귀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최기산 주교의 제네시 일기 서평에서)

헨리 나웬 신부가 생애의 말년에 선택한 또 하나의 길은 그의 수많은 저서에서 드러난 진정한 소명을 찾아서 끝없이 하느님의 뜻을 탐구하고 기도하고 영적지도를 받는 중에 선택된다. 무릇 영성이 종교적 체험의 성숙이라면 그는 이제 진정으로 그의 영성을 살아가는 모습을 하바드 대학을 떠나 장애인들을 위한 공동체 라르슈에서 볼 수 있다. 라르슈 공동체를 창설한 장 바니에 역시 토론토의 대학교수로 있었지만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난하게 살아가는 삶을 실천에 옮긴 또 하나의 복음의 가난한 사람이다.

그는 라르슈 공동체에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를 체험하고 그들이 바로 선물임을 깨닫는다. 수많은 정화의 단계를 거쳐 하느님의 놀라운 신비, 우리 가운데 사시려 오셨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그 놀라운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 저자의 약력

1932 1월 24일  네델란드 Nijkerk에서 출생
1957  네델란드 Utrecht 대교구에서 가톨릭 사제로 서품 받음
1957-1964  네델란드의 Nijmegen 가톨릭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학위를 받음
1964-1966  캔서스, 토페카 Menninger Clinic의 종교 프로그램에 합류

1966-1968 인디애나, 노틀담 대학에서 심리학과 초빙교수로 재직
         과목 : 임상심리. 발달 심리. 성격 이론. 종교 심리. 사목 심리를 담당

1968-1970  Utrecht대교구의 가톨릭 신학연구소의 연구원, Amsterdam Joint 사목 연구소 상임 연구원으로 재직.      과목 : 사목 심리, 크리스찬 영성 담당
           지도주임 : 사제 지망자들을 위한 사목직 담당

1970-1971 네델란드 Nijmegen 대학에서 신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학위 취득
1971-1981 커네티컷 뉴헤븐의 예일대 신학대학에서 사목 신학 부교수로 재직
          과목 : 1) 사목 코스 : 일반 입문 과정 - 제자직과 제자양성, 노인 사목, 교도 사목, 비종교인 기관의 사목, 병원       사목, The Ministry of Vincent van Gogh, 2) 영성코스: 사목과 영성의 관계성에 대한 일반과정, 그리스도교 영   성사, 기도 안에서의 토마스 머튼의 삶.

1974 재임
1997 사목 신학 전임교수로 일함
1976 미네소타 Collegeville에서 에큐메니칼 연구소에 합류
1978 로마의 North American대학에서 장학생으로 재학
1979 뉴욕 피파의 제네시 공동체에서 6개월간 머뭄

1981-1982 남아메리카에 6개월 동안 머뭄
1983 1-5월 메사추세스, 캠브리지의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Lenz 강의
1983-1985 6월 메사추세스 캠브리지의 하버드 신학대학의 영성 교수

1985-1986 프랑스 심신 장애자들을 위한 라르쉬 공동체 9개월간 머뭄
1986-1996 캐나다 토론토 근처의 라르쉬 새벽 공동체의 거주 사제로 지냄

1996 9월21 네델란드에서 심장마비로 선종

*  헨리 나웬 신부의 저서

ADAM: GOD'S BELOVED/ 아담,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빛두레(비매품)
AGING: THE FULFILLMENT OF LIFE
BEHOLD THE BEAUTY OF THE LORD/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 분도출판사
BEYOND THE MIRROR
BREAD FOR THE JOURNEY
CAN YOU DRINK THE CUP?/이 잔을 들겠느냐/ 바오로딸
CLOWNING IN ROME
COMPASSION: A REFLECTION ON THE CHRISTIAN LIFE
CREATIVE MINISTRY
A CRY FOR MERCY /자비를 구하는 외침 /한국기독교연구소
GENESEE DIARY /제네시 일기/ 바오로딸
GRACIAS! A LATIN AMERICAN JOURNAL /소명을 찾아서/ 성요셉출판사
HEART SPEAKS TO HEART /나의 마음이 님의 마음에다/ 성바오로
HERE AND NOW
IN MEMORIAM /소중한 추억 나의 어머니/ 바오로딸
THE INNER VOICE OF LOVE /마음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소리/ 바오로딸
IN THE NAME OF JESUS
INTIMACY /친교/ 가톨릭출판사
JESUS &MARY

A LETTER OF CONSOLATION
LETTERS TO MARC ABOUT JESUS /예수-내 인생의 의미/ 분도출판사
LIFE OF THE BELOVED
LIFESIGNS
THE LIVING REMINDER/생활한 상기자로서의 사목자/ 분도출판사
LOVE IN A FEARFUL LAND

MAKING ALL THINGS NEW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고/ 바오로딸
MINISTRY AND SPIRITUALITY
MORNINGS WITH HENRI J.M. NOUWEN/나우웬과 함께하는 아침/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NOUWEN THEN
THE ONLY NECESSA
Y THING
OUR GREATEST GIFT / 죽음, 가장 큰 선물/중앙적성출판사
OUT OF SOLITUDE/고독/ 성바오로
PATH SERIES
THE PRIMACY OF THE HEART
REACHING OUT /발돋움하는 사람들/ 성요셉출판사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THE ROAD TO DAYBREAK/새벽으로 가는 길/ 바오로딸
THE ROAD TO PEACE
SABBATICAL JOURNEY: THE FINAL YEAR
SEEDS OF HOPE
SHOW ME THE WAY
SPIRITUAL JOURNALS
THOMAS MERTON: CONTEMPLATIVE CRITIC
WALK WITH JESUS
THE WAY OF THE HEART /마음의 길 / 분도출판사
WITH BURNING HEARTS /뜨거운 마음으로/ 분도출판사
WITH OPEN HANDS: NEW REVISED EDITION /열린 손으로 / 성바오로
THE WOUNDED HEALER/상처입은 치유자 / 분도출판사
WOUNDED PROPHET

http://nouwen.net/  헨리나웬의 홈페이지입니다.

그의 책에는 카톨릭 영성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고마운 메시지가 가득 들어있다. <상처입은 치유자 ><제네시 일기> <마음의 길>은 내게도 깊은 묵상으로 들어가게 해주었다.
<마음의 길>은 현대인에게 부족한 고독, 침묵, 기도의 중요성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고독과 침묵이 선행될 때 진정한 기도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리는 은총의 상황 안에서만 우리의 죄에 직면할 수 있고, 치유의 장소에서만 우리의 상처를 보여줄 수 있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주의에서만 우리의 고착된 두려움을 포기하고 우리 자신의 참된 본성을 대면할 수 있다. "

침묵은 우리를 순례자로 만든다.
침묵은 마음 속에 있는 불을 지킨다.
침묵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가르친다.


***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감사의 말

1983년 가을, 나는 카나다인 장 바니에가 창설한 정신 박약자들을 위한 공동체 라슈(l'Ache)를 방문하기 위해 처음으로 프랑스의 트로슬리에 갔었다. 만일 장 바니에의 조수인 바바라가 내가 머물던 방 책상위에 루블료프의 <삼위일체>아이콘을 놓지 않았더라면, 결코 이 책을 쓰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아이콘을 여러주일 동안 응시한 후에, 나는 내가 서서히 보게 된 것에 대해서 쓰고 싶은 충동을 깊이 느꼈다.

6.. 아이콘을 신적인 것에로 들어가는 출입구로 보게끔 내 눈을 뜨게 해준 모든 이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콘과 더불어 기도하면서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 (시편 27) 바라보게 된 남녀들이 많이 있다. 이 책이 우리도 그들과 함께 이러한 기도를 바치는 데에 격려가 되길 바란다.

머리말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 결혼하셨을 때, 두 분은 마르끄 샤갈이 그린 작은 그림을 하나 사셨다. 그 그림은 창 앞에 놓여 있는 단순한 꽃병에 꽃이 가득 담겨있는 그림이었다.

두 분은 그 그림을 사랑하셨고, 그 그림에 대해서 깊은 애정을 품고 말씀하셨다. 오늘, 53년이나 지난 후에,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샤갈의 예술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나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어머니가 우리 집 거실에서 그 샤갈 꽃 옆에 앉아 계신 모습을 종종 떠 올린다. 어머니의 아름다우심은 그 부드러운 색감의 꽃다발이 지닌 아름다움과 깊이 연결되게 되었다.

샤갈의 그 그림처럼 , 이 아이콘들은 나의 내적 삶속에 깊이 새겨져서 내가 위로와 위안이 필요할 때마다 매번 나타난다. 나는 기도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13. 이 아이콘들을 그냥 응시함으로써 나는 그 아이콘들을 서서히 외게 되었다. 이제는 실제로 있건 없건, 그 아이콘들을 본다. 그 아이콘들을 외고 있고, 어디를 가든 그 아이콘들과 더불어 기도한다.

응시라는 말이 아마도 동방 영성의 핵심을 찌르는 가장 좋은 말이겠다. 서방 영성의 기조를 마련한 성 베네딕도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먼저 들으라고 권하지만, 그리스 정교회의 교부들은 응시에 초점을 둔다. 이 책에 실린 글은 내가 아이콘들을 응시함으로써 쓰게 된 것이다. 이 글이 여러분의 마음에 와 닿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14. 내가 아이콘을 선택한 것은, 아이콘을 그린 단 하나의 목적이 우리로 하여금 보이는 문을 통해 보이지 않는 신비에 접근할 수 있게 하려는데 있기 때문이다.

아이콘은 첫눈에 참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우리가 참을성있게 기도하면서 그 앞에 오래 머문 후에야 비로소 서서히 우리에게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말을 할 때도, 우리의 외적 감각에 대고 이야기하지 않고 내적 감각에 대고 이야기 한다. 아이콘은 하느님을 찾는 마음에게 이야기 한다.

아이콘은 영원을 내다보는 창문과도 같다. 그 아이콘의 이차원적 표면 뒤에는, 차원이나 크기를 초월한 하느님의 정원이 놓여있다. 그들은 내가 사랑의 하느님과 한층 더 깊은 친교를 나누게 이끌어 주었다.

16. 이 아이콘들이 여러분의 여정을 인도하는 충실한 길잡이가 되고 영속하는 기쁨과 평화를 주는 생명의 원천이 되기를 바란다.

첫째 아이콘 <삼위일체> 사랑의 집에서 살기

서론
19. 공포와 증오와 폭력으로 점철된 세상 속에 살면서 거기에 휘말려 파멸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상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은 영성생활의 본질을 요약한다. 우리의 참된 집은 증오와 폭력의 힘이 지배하는 집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시는 사랑의 집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한다.

20. 나는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위대한 러시아의 성인 세르게이(1313~1392)를 추모하기 위해 1425년에 그린 <삼위일체>아이콘만큼 사랑의 집을 아름답게 표현한 그림을 아직 보지 못했다.

부드러운 초대
21.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이 아이콘을 그린 것은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해 자기가 묵상한 것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 뿐 아니라 정치적 불안 속에 살면서도 늘 마음을 하느님 안에 모으고 사는 길을 동료 수도자들에게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이 아이콘 앞에 앉아 기도하다 보면, 우리도 세 거룩한 천사가 나누고 있는 친밀한 대화에 동참하라고, 그리고 식탁에 더불어 앉으라고 부드럽게 초대하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이 침묵의 기도는 차차 내적 불안을 녹여 없애주고, 나를 드높여 세상의 권세가 해체시킬 수 없는 모임, 원을 이루며 둥글게 앉아있는 저 사랑의 모임 안으로 들어가게 해주었다.

22.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낸다.”(1요한 4,18)

루블료프의 아이콘은 우리에게 완전한 사랑의 집을 엿보게 해준다. 공포가 사방에서 우리를 습격하겠지만, 우리가 하느님 안에 편히 머무를 때 이들 세속적 공포는 우리에게 궁극의 힘을 미치지 못한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십시오. 내가 세상을 이겼습니다.“ (1요한 16, 33)

마음이 마음에게 이야기 하는 곳
23.러시아 신비가들은 기도란 이성이 마음속으로 내려가 거기서 하느님 앞에 서 있는 것이라고 묘사했다. 기도는 마음이 마음에게 이야기하는데서, 즉 하느님의 마음이 기도하는 이의 마음과 일치되는데서 이루어진다.

이 거룩한 모임 안에서, 이 사랑의 집 안에서부터, 하느님의 신비가 우리에게 드러난다. 그 신비는 마므레 상수리나무 곁에 나타나 사라가 준비한 식사를 들고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생기리라는 뜻밖의 소식을 알린 저 세 천사의 신비이다.(창세기 18장)

이 천사들의 출현은 하느님께서 우리 죄를 희생하라고 당신 외아들을 보내시고, 그리고 성령을 통해 새 생명을 주신 거룩한 사명의 예시이다. 마므레의 나무는 생명의 나무가 되고, 아브라함의 집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거처가 되고, 그 산은 기도와 묵상의 영적 고지가 된다.

24. 그러므로 이 아이콘과 더불어 기도하는 것은 우리를 하느님의 자기 계시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게 이끈다. 그 신비는 역사를 초월하는 신적 신비이지만 인간적 신비이기도 하다. 그 신비는 인간의 모든 감정을 초월한 즐겁고 슬프고 영광스런 신비이지만, 모든 인간적 감정을 다 건드리는 신비이기도 하다.

모임과 십자가와 해방
25. 성삼위의 친밀한 삶의 신비가 보이게 되면서, 우리의 눈은 차차 성작 밑 앞쪽에 열려있는 작은 사각형을 의식하게 된다. 우리는 이 열려진 공간에 온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곳은 성령이 가리키시는 자리이며 우리가 그 거룩한 모임에 들어가게 되는 입구이기 때문이다. 이 사각 공간은 하느님의 집으로 가는 좁은 길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길은 고통의 길이다.

26. “여러분이 만일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면
       세상은 여러분을 한집안 식구로 여겨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에....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 (요한 15, 19)

그래도 이 길만이 유일한 길이다. 그 길은 하느님의 길이요, 그 길은 세상은 알지 못하는 기쁨과 평화를 향해 나 있는 길이기에 우리가 믿고 갈 수 있는 길이다. 그 길은 많은 이가 택한 길이다.; 디트리히 본 회퍼, 마틴 루터 킹,.....오스카 로메로뿐 아니라, 지난 수십년간 사랑의 하느님의 증인으로 목숨을 바친 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익명의 남녀노소가 택했던 길이다.

결론
28. “여러분은 장차 닥쳐올 이 모든 일을 피하여 인자 앞에 자신있게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십시오” (루가 21, 36)

29. 루블료프의 <삼위일체> 아이콘을 오랫동안 응시한 후에, 그 말씀은 새로운 힘을 갖고 내게 다가왔다. “항상 기도한다”는 말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산다”는 뜻이 되었다.“닥쳐올 모든 일을 피한다”는 말은 이제는 더 이상 세상을 지배하는 공포와 증오와 폭력의 희생물이 되지 않아도 됨을 말해준다. 즉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나에게 열어준다.

둘째 아이콘 <블라디미르의 성모> 하느님께 속하기

서론
33. 우리는 누구에게 속하나? 이는 영성 생활의 핵심적 질문이다.

<블라디미르의 성모>아이콘은 나더러 강압적이고 분열된 세상의 환경을 떠나 자유롭게 하며, 일치시키는 하느님의 환경 속으로 들어오라고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서서히 초대하기 시작했다.

34. <온유의 성모>라고도 알려진 이 아이콘은 모든 러시아 아이콘 중 가장 존경받는 아이콘의 하나이다. 12세기 초엽에 한 익명의 그리스 화가가 그린 것으로, 1183년 경 콘스탄티노플에서 키에프로 옮겨졌고, 약 20년 후에 키에프에서 블라디미르로 옮겨져 1395년까지 그곳에 소장되었다. 지난 6세기 동안 모스크바에 소장되었으나, 지금도 여전히 <블라디미르의 성모>로 불린다. 이 거룩한 국보는 많은 화재와 약탈자로부터 매년 기적적으로 구출되었다. 수차에 걸쳐 복원되었으나, 어머니와 아이의 얼굴만은 비잔티움의 걸작품인 원본 그대로이다.

성모님의 눈
35. 모든 것을 지극히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보는 한 현대인으로서, 나는 만나는 사람들과 늘 눈이 마주치게 하려고 애쓴다. 그래야 받아들여진 느낌이, 또는 적어도 나를 진지하게 대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블라디미르의 성모>의 눈은 안팎을 동시에 본다. 그 눈은 안으로는 하느님의 마음을 , 밖으로는 세상의 마음을 바라보고 있기에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심오한 일치를 드러낸다.

36. 성모님은 아기 예수를 보시는 바로 그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신다. 마리아는 당신의 아이 예수를 보시듯이 당신에게 기도하는 이들을 바라보신다.

37. 성모님의 눈은 우리가 옛 소속 방식을 떨쳐버리고 우리는 정녕 하느님께 속한다는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라고 초대하신다.

성모님의 손
38. 성모님의 손은 이 아이콘에서 두 번째로 내게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한손은 아이를 안고 있고, 다른 한손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손을 펴서 초대의 손짓을 하고 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시다. 성모님의 전존재는 전적으로 오로지 그 아이를 위해 거기 계심을 보게된다.

39. 이 아이콘 앞에서 기도할 때, 마리아의 안내하는 손은 점점 중요성을 띠게 된다. 성모님은 우리가 예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하시며 말씀하시는 것 같다. ; “나는 다만 너를 예수님께 인도하기 위해 여기에 있다.” 마리아는 우리가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당신이 그러셨듯이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리라”( 루가 1, 45)는 것을 믿기 원하신다.

40. 부활하신 주님의 몸에는 고통의 상처 자국이 여전히 남아 있듯이, 하느님의 영광스런 어머니도 가슴을 슬픔에 찔리셨던 여인이시다. 성모님은 가난하고 억압받고 피난민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앞날이 불확실하고 당황하게 된다는 것이, 따돌림을 받는다는 것이, 십자가아래 서있다는 것이, 그리고 어느 누구하고도 나눌 수 없는 생각과 느낌을 품은 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아신다.

성모님은 우리의 “네”라는 대답을 받게 될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시는 참을성 있는 어머니이시다. 그러나 성모님의 인내는 강하고 동요하지 않는 끈기있는 인내이다.

성모님의 아이
마리아의 눈과 손은 이 아이 때문에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41. 이 아이는 어른 옷을 입은 지혜로운 남자다. 더구나 그 빛나는 얼굴과 황금빛 옷은 이 현자야말로 정년 위엄과 광휘가 가득한 하느님의 말씀이심을 암시한다.

42. 그러나 그 아이 안에는 훨씬 더 깊은 뜻이 담겨있다. 이 거룩한 아이는 마리아에게 자신을 온전히 주고 있다. 그의 팔은 마리아를 다정하게 끌어안고 있고, 그의 눈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리아한테 고정되어 있으며 입은 마리아 입 가까이서 그의 거룩한 숨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이 강생의 신비는 인류를 전적으로 무한정 보살피시는 하느님의 모습과 얼마나 비슷한가!

43. 이 아이콘은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신비스런 교류가 말씀의 강생을 통해 가능하게 된 것을 나타내는 초상화이다.

44. 아이의 목은 성령을 나타내기에 매우 굵게 그려졌다. 성령은 “숨결”이다. 하느님의 숨결이다. 바로 이 숨결을 예수께서는 인류에게 주신다.

결론
45. 나는 우리가 기도하는 눈으로 이 아이를 주시할 때, 이 아이야말로 우리가 찾아야할 바로 그 사람임을 보게 되고, 그리고 그 아이는 자신의 입김을 , 곧 영적 생활을 우리에게 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고 강조했다.

46. 따라서 <블라디미르의 성모>는 니고데모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아이콘으로 설명한 도해적 언어이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요한 3, 16)

셋째 아이콘 <즈베니고로드의 구세주>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49. 그리스도를 보는 것은 하느님과 온 인류를 보는 것이다. 이 신비는 예수님을 뵙고자 하는 타오르는 열망을 내 안에 불러 일으켰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그리스도를 보았을 때,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것을 보았고, 일찍이 느껴보지 못한 것을 느꼈다. 그리고 즉시 내 눈이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축복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류블료프는 15세시 초엽에 즈베니고로드의 러시아 도시에 있는 어떤 교회를 위해서 일련의 아이콘을 그리면서 그 일부로 이 그리스도를 그렸다.

루블료프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은 장기간에 걸쳐 더욱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신을 차리고 보아야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손상된 모습을 바라보기
51. 연작 아이콘 중앙에 그려진 이 판넬화에는 한때는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의 얼굴도 들어 있었는데 지금은 이 그리스도의 얼굴 하나만 남아있다.

크게 손상된 이 아이콘은 즈베니고로드에 있는 예수 승천 대성당 근처의 어떤 헛간에서 1918년에 발견되었다.

52. 오늘날까지 즈베니고로드에서 발견된 그 구세주는 러시아 예술사에서 <평화를 주시는 분>이라고 불린다. 그보다 더 적합한 통칭을 찾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러시아인 얼굴에 깊은 생각이 담긴 친절하고 지적인 눈을 지닌 그 구세주는 거의 6세기에 걸쳐 러시아를 자자손손 지켜보셨기 때문이다.

53. 분실과 재발견의 역사인 이 아이콘의 역사는 경고와 확신 둘 다 의미한다. 그 얼굴은 꾸짖으시는 것 같다. “네가 평화를 위한 방편을 알았더라면”(루가 19,42). 그러나 초대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십시오. 내가 편히 쉬게 하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우십시오.”(마태 11, 28)

그지없이 상냥한 인간의 얼굴을 바라보기
54. 루블료프의 그리스도와 낯이 좀더 익게 되면서, 그 구세주의 모습이 손상된 주위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 그리스도의 아이콘이 한층 뛰어난 점의 하나는 이 아이콘 화가는 가벼운 움직임을 그렸다는 점이다. 어깨와 윗가슴은 3/4 각도로 그리는 한편, 얼굴, 눈, 코, 입술은 우리를 완전히 정면으로 바라보게 그렸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향해 돌아서신 모습을 본다.

베드로가 배반한 후에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이 생각난다. “주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똑바로 바라보시자 베드로는 주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그 말씀을 회상했다.”(루가 22, 61) 베드로는 예수님의 눈이 자기의 가장 깊은 존재를 꿰뚫어보시는 것을 느꼈을 때, 그리고 즉시 자신의 나약함과 주님의 사랑을 보았을때, “그는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루가 22, 62)

55. 루블료프의 구세주를 바라볼 때, 우리는 베드로의 눈물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눈물을 우리 안에서 느낀다. 그 눈물은 참회의 눈물이자 또한 풍만한 사랑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다.

57. 루블료프의 그리스도는 “고상함과 힘이, 온유함과 단호함이 드믈게 잘 배합되어 있어 인간적 덕성의 온갖 매력을 초월하는 조화를 이룬다.”

예수님의 잘생기고 개방적인 얼굴은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을 자아낸다. 그 분은 엠마뉴엘, 우리와 함께 게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분은 말씀하신다: “바로 나입니다. 나를 만져 보십시오.”(루가 24,39)

하느님과 사람마다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눈을 바라보기
59. 루블료프의 아이콘을 바라보는 것이 그렇듯 깊은 영적 체험이 되게 하는 것은 결국은 그 구세주의 눈 때문이다. 그 눈길은 너무도 신비스럽고 깊어서, 그 눈길을 묘사하려고 애쓴 그 어떤 말들도 적합하지가 않다.

그 눈은 엄격하거나 판단하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다 본다. 그 눈은 그 아이콘의 참 핵심을 이룬다.

60. <구세주>아이콘 앞에 있으면 우리는 그분과 마주 보고 있음을 느끼고, 그 분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그분한테 친근감을 느낀다.

62. 그 분은 어둠속에서 비치고 있던 새날의 그 빛이시며, 어둠이 이겨본 적이 없는 그 빛이시다.(요한 1,5) 그분은 모든 사람을 비추는 그 참 빛이시다.(요한 1,9) 그 빛을 참으로 보시는 유일한 분의 눈을 바라보는 것은, 그 바라보심이 그 살고 계신 삶 자체와 다를 바 없는 그런 분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은 정녕 두려운 일이다.

63. 하느님의 무한한 선하심을 끈임없이 보시는 그분께서 세상에 오시어, 세상이 인간의 죄로 박살난 것을 보시고 연민을 느끼게 되셨다. 하느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바로 그 눈이 하느님의 백성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요한 11, 36)

하느님의 마음속을 꿰뚫어보며 불꽃처럼 타오르는 그 눈에는 언제나 또 어디에나 있는 인간의 슬픔을 보며 눈물 흘리는 눈물의 바다가 담겨있다. 그것이 바로 루블료프의 그리스도의 눈이 지닌 비밀이다.

결론
우리는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그 사건 안에서 묵상과 연민으로 하나가 되고, 이 안에서 우리는 보고 깨달아 아는 영원한 삶을 준비하게 된다.

넷째 아이콘 <성령 강림> 세상을 해방하기

서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영성생활을 지극히 사사로운 것으로 생각한다.

67. 15세기 말엽에 그려진 러시아 아이콘 <성령강림>은 나에게 성령안에서 사는 삶이란 근본적으로 공동체 안에서의 삶임을 강하게 상기시켰다.

68. 하느님께서 먼저 공동체 안에서 신적인 사랑을 충만히 드러내신다는 것, 그리고 복음 선포는 주로 거기서 시작된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성령강림> 아이콘을 보면 볼수록, 다른 아이콘들이 내게 보여주지 않은 영성 생활의 많은 새로운 면을 서서히 보게 된다. 먼저 나는 어떻게 하느님께서 성령강림절에 내재하시는 하느님으로 드러나시는가를 보았다. 그다음, 이 내재하시는 하느님께서 어떻게 일치와 다양성이 상호 심화되는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를 창조하시는가를 알아차렸다.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
69. 이 아이콘을 처음 볼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 아이콘의 고요함이다. 반 타원형으로 매우 차분하게 앉아있는 복음사가와 사도 열 두 사람은 질서와 평화와 엄숙함을 발산한다. 그들의 조화된 모습은 이 아이콘 전체의 대칭과 균형을 한층 힘있게 한다.

70.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계시는 하느님과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만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이 되심으로써, 우리가 예수님의 약속대로 신적 생명에 대해 완전한 지식을 갖게 해주신다.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성령께서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요한 14, 26)

71. “내가 떠나가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유익합니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여러분에게 오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 분을 보내겠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해주실 것입니다.”(요한 16, 7.13.)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성령강림절에 나타나시게 될 성령 안에 사는 새 생명에 대해 미리 보여 주셨다. 그 생명은 온전한 진리 속에 사는 생명이 될 것이다.

이 아이콘 맨 위에서 볼 수 있는 열두 개의 빛줄기는 제자들이 받았던 충만한 성령을 상징한다. 혼돈 오해 불신 공포의 시간은 지났다. 하느님께서는 제자들 안에 사시고, 그들을 새로운 희망과 용기와 신뢰로 채워 주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성령이시다. 바로 이 성령께서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하게 하시고 “압바, 아버지”라고 외치게 하신다.

72. 이 <성령 강림>아이콘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은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에 관해 쓴 어떤 글보다도 그 새 생명을 더 잘 표현하고 있다. 그 새 생명은 그리스도께서 성령 안에서 일생을 사셨듯이 우리도 그 꼭 같은 성령 안에서 사는 신적인 사랑의 삶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 20)

믿음의 공동체
내재하시는 영, 사랑의 하느님의 영,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영은 믿는 이들 안에서 새 공동체를 창조하시는 성령이시다.

우리는 무척 고독한 시대에 살고 있다.

<성령 강림>은 서로간의 관계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공동체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그리고 있다. 이 아이콘은 공동체란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의 선물로서, 상호 공존성이나 공동 관심사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거룩한 분의 똑같은 숨결을 받고 똑같은 신성한 불로 타오르게 된 가슴을 받고, 똑같은 신성한 사랑에 감싸인 체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임을 상기시킨다.

74. 그들은 내재하시는 하느님께 함께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들을 일치시키는 것은 그들의 공통된 심리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들은 얼마나 서로 다른가!

그들을 일치 안에 한데 묶는 것은 위에서부터 그들에게 내려오시는 신적인 영의 빛줄기이다. 이 성령께서 그들이 예수께 받은 그 말씀을 이해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여기서 교회의 신비가 드러난다. 이 아이콘이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은 교회의 다양성 안의 일치라는 것이다.

75. 열두 사도 하나하나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들은 제각기 자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바울로는 똑바로 앉아 있고 매우 엄격하고 지적으로 보인다. 베드로는 약간 구부리고 있고, 좀 더 듣고 싶어하는 듯 보인다. 요한은 머리를 기울이고 정을 주는가 하면, 마태오와 마르코는 팔을 뻗치고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애쓴다.

세상의 해방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이신 성령께서 만드신 그 믿음의 공동체는 그 구성원만의 안녕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해방을 위해서 형성되었다. 이것이 이 아이콘에서 볼 수 있는 영성생활의 셋째 측면이다.

77. 성령강림절은 구원 이야기의 아름다운 끝이 아니라 세상에 나아가 온 세상을 제자로 만들고 그들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그들에게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치라는 사명의 시작이다.

78. 이 아이콘 하단에 자리한 그 깜깜한 동굴을 모른 체 할 수 없다. 그 동굴은 “개화된” 인류에 의해 발명되고 축적된 파괴적 세력으로 날로 위험스러워지는 위성인 우리 혹성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쓰라린 투쟁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79. 누가 이 해방의 과업을 짊어질 수 있을까?

비록 이 공동체는 매우 한정된 능력을 지닌 연약한 인간으로 구성된 공동체이지만, 그 공동체에게 해방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해주시는 분은 하느님의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이 아이콘은 우리에게 세상의 해방에 대해 희망을 제시하고 또한 그를 위해 일하도록 우리를 격려한다.

결론
81.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한 것처럼 나도 여러분을 사랑해 왔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요한 15, 9. 12)

8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을 아는 저들은 공동생활을 통해서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라는, 그래서 무서운 세상 한가운데서 희망의 징표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맺음말

83. 이 책에 한데 모아놓은 아이콘들은 나에게 오랫동안 낯익은 것들이다. 나는 이 아이콘들의 복사판을 여러 성당과 수녀원, 피정의 집 그리고 가정집에서 많이 보아왔다.

나는 본래 이 아이콘들을 하나씩 따로 보았는데, 그러는 동안에 이들은 서서히 하나의 일치를 이루기 시작했다.

84. 네 아이콘은 모두가 눈부시게 찬란한 신적인 빛 속에 숨어 계시지 않고, 자유를 갈망하는 세상으로 손을 뻗치시는 그런 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85. 이 묵상에 대해 쓰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었다. 기도하는 게 쓰는 게 되었고 쓰는 게 기도하는 게 되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소모된 힘보다 더 많은 힘을 받았다. 이 묵상을 읽는 여러분도 똑같은 기쁨을 어느 정도 체험하게 되길 바란다. 그래서 이 거룩한 모습들 안에 표현된 주님의 아름다우신 모습을 더욱 보고픈 마음이 한층 간절해지길 바란다.


*** 내가 저자라면

4개의 아이콘을 가지고 기도하듯 써내려간 글이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생각이고 글이다. 이 글을 쓴 헨리 나웬은 토마스 머튼과 더불어 금세기 최고의 영성가이며 영성 수련가로 존경받는 사제이다. 심리학과 신학으로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그는 해박한 지식으로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하고 책을 쓰는 일을 주로 해왔다. 그러나 어느 날, 기득권자로서 그가 누리는 모든 편안함에 반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론만 있고 실천이 따르지 않는 신앙에 대해 깊은 회의를 하게 된다. 그는 바로 일어서서 보다 낮은 곳으로 나아갔고 그곳에서 진정한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고 실천하려고 애썼다.

그는 일기를 썼고 영성 수련 지침서를 썼고 그 자신의 생활과 묵상을 썼다. 그의 책은 매우 이해하기 쉽고 설득력이 있다. 특히 영성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의 솔직함과 내면세계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으로 기록한 그의 글들은 진지한 회심을 불러 일으킨다.

한번 그의 책을 읽고 그를 알게 되면 다음에 새 책이 나오면 꼭 구해서 읽게된다. 그가 사람들에게 깊은 신뢰를 주고 있고 마치 자기 자신을 대신해서 자신의 양심을 따라가며 성찰하는 듯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상처입은 치유자>를 처음 읽고 자기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싸안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상처를 돌보는 예수님의 모습이자 곧 사목자의 모습을 그려낸 것을 보고 깊은 울림을 받았고 위로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이 책을 쌓아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을 했다. 그 젊은 날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가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는 과정을 기록한 글이 있다.. < 소중한 추억 나의 어머니>라는 책이다. 나는 나의 어머니가 병상에 계실 때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사제로서 그리고 바쁜 사람으로서 시간이 항상 부족했던 그가 고향으로 가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는 이야기는 우리 형제들에게도 참 많은 위로를 주었다. 그 순간 우리와 함께 하고있는 사목자의 모습을 보았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는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해 갈비뼈가 여러대나 부숴진 얘기, 공동체 생활을 하던 중에 발생한 갈등들, 아버지와의 관계들을 심리학자의 섬세한 눈으로 써놓고 매우 솔직하게 그 자신의 의식의 흐름을 기록하고 있어서 나도 그를 따라 영성일지를 써 본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역동적이고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기에 사건과 사례들이 많았다. 그리고 항상 강의나 피정지도를 하고 있었기에 기도와 묵상이 늘 그를 따랐다. 그랬기에 그 많은 일을 하고 그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구원의 씨앗을 잘 심어준 것 같다.

어쨌든 내가 무심코 보고, 또 무심코 걸어두었던 아이콘을 다시 꺼내 놓았다. 이제 이 책을 읽었으니 다시 그의 인도로 깊이 묵상하며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영화 <루블료프>를 보고 15년 동안 붓을 꺾고 침묵을 지키는 것을 보았다.그리고 잿더미 속에서 일어나 다시 붓을 잡고 그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 <삼위일체>가 있는 달력도 찾아냈다.  그 모든 해설을 읽기 전에도 사실 이 <삼위일체>아이콘은 그 아름다움 때문에 시선을 강하게 끄는 그림이었다.

이 책의 구성과 목차를 살펴보자.

- 머리말

첫째 아이콘 : 삼위일체 - 사랑의 집에서 살기
서론
부드러운 초대
마음이 마음에게 이야기하는 곳
모임과 십자가와 해방
결론

둘째 아이콘 : 블라디미르의 성모 - 하느님께 속하기
서론
성모의 눈
성모의 손
성모의 아이
결론

섯째 아이콘 : 즈베니고로드의 구세주 -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서론
손상된 모습을 바라보기
그지없이 상냥한 인간의 얼굴을 바라보기
하느님과 사람마다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눈을 바라보기
결론

넷째 아이콘 : 성령 강림 - 세상을 해방하기
서론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
믿음의 공동체
세상의 해방
결론

- 맺음말

비록 85페이지의 얇은 책이지만 내용은 성경의 기본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이 깊은 묵상에 들어가고 싶어서 아이콘을 오랜 시간 응시하면서 에센스를 기록해둔 저자의 간절함이 담겨있는 글이다. 네 개의 아이콘은 표지의 앞과 뒤에 두 장씩 사진판으로 편집해 두었다. 만약 우리가 영성 수련을 가고 싶거나 피정을 가려고 할 때에는 이 책 한권만 손에 들고 가도 좋을 것 같다. 아이콘을 고요히 응시하는 동안 매우 깊은 영적 교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가득 담아 안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리뷰하고난 첫 느낌은 이제 익숙한 그 모든 것에서 깊은 의미를 찾아보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파랑새를 찾으러 우리는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지만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찾은 파랑새는 결국 집 안에, 그리고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닌지...그런 깨우침이 찾아왔다. 어쨌든 루블료프에서 헨리 나웬까지 우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에게 새로운 길을 안내하고 있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이런  이끌림은 그 시점이  예사롭지 않다. 무언가 천지창조 이전에 기획된 어떤 프로그램 속에 내가 이끌려 들어가는 것 같다. 이제 기도할 시간이 되었나 보다.  침묵 속에 깊이 침잠해 들어가 흐트러진 영혼을 정화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IP *.67.223.154

프로필 이미지
범해
2011.01.26 01:24:18 *.67.223.154

위에서 말한 네개의 아이콘을 찾아서 옮겨놓으려고 검색을 하다가 나웬 신부님의 번역서 목록을 보았습니다.
참고하세요.

2007/02/08 11:52

사용자 삽입 이미지

헨리 나우웬의 국내 번역서들


거울 너머의 세계 | 윤종석 역 | 두란노 | 1998년 03월

고독의 영성 |  홍은해 역 |  아침 |  2001년 06월
긍휼
 | 김성녀 역 | IVP | 2002년 07월

기도의 삶 : 꼭 필요한 것 한가지 | 윤종석 역 | 복있는사람 | 2001년 12월

나우웬과 함께하는 아침 | 편집부 역 | IVP | 2002년 01월

나홀로 주님과 함께 | 신선명 역 | 아침 | 2006년 11월

내 주를 가까이 | 엄성옥 역 | 은성 | 1992년 12월
노인의 영광은 백발 |  최종수 역 |  한국기독교연구소 |  2001년 11월
두려움을 이긴 사랑: 순교자의 사랑이야기
| 최규택 역 |  그루터기하우스 | 2006년 12월

뜨거운 마음으로(소책자) |  정한교 역 |  분도 |  1997년 03월
로마의 어릿광대 |  김광식 역 |  가톨릭대학교 |  2004년 06월
마음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소리 |  한정아 역 |  바오로딸 |  2001년 11월
마음의 길 |  이봉우 역 |  분도 |  1989년 03월
모든 것을 새롭게
| 윤종석 역 | 두란노 | 2002년 09월
묵상의 영성 |  심영혜 역 |  아침 |  2002년 07월
사막의 영성
|  신현복 역 |  아침 |  2002년 09월

상처입은 치유자 |  최원준 역 |  두란노 |  1997년 03월
새벽으로 가는 길 |  성찬성 역 |  성바오로출판사 |  1992년 05월
새벽의 영성 |  신현복 역 |  아침 |  2004년 02월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
| 편집부 역 | IVP | 1986년 02월

숲 속의 영성 |  신영혜 역 |  아침 |  2003년 01월
스무살 마크에게 띄우는 헨리 나우웬의 영성편지
| 복있는사람 | 2000년 09월

아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 |  김명희 역 | IVP |  |  1998년 11월
안식의 여정
| 윤종석 역 | 복있는사람 | 2001년 11월

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 장미숙 |  은성 | 1995년 01월

영성에의 길 (개정판) | 김명희 역 | IVP | 1996년 11월

영성의 씨앗 | 송인설 역 | 그루터기하우스 | 2003년 05월

영적 발돋움 | 이상미 역 | 두란노 | 2002년 09월

영원한 계절 : 교회 절기 | 최규택 역 | 그루터기하우스 | 2005년 03월
영혼의 양식
| 박동순 역 | 두란노 | 1997년 12월
예수 내 인생의 의미 |  이경우 역 |  분도 |  2000년 01월
예수, 우리의 복음
| 윤종석 역 | 복있는사람 | 2002년 12월

예수님과 함께 걷는 삶 | 김명희 역 | IVP | 2000년 10월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 피현희 역 | 두란노 | 1999년 09월

예수님의 이름으로 | 출판부 역 |  두란노 |  1998년 04월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 김명희 역 | IVP | 2002년 01월

이 잔을 들겠느냐 |  한정아 역 |  바오로딸 |  1999년 10월
위로의 편지 |  송은경 역 |  가톨릭출판사 |  2004년 11월
자비를 구하는 외침 | 한국기독교연구소 |  2001년 02월
제네시 일기
| 성찬성 역 | 바오로딸 | 1998년 12월

주님 감사합니다 | 신선명 역 | 아침 | 2006년 11월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 | 이미림 역 |  분도 | 1989년 04월
죽음 가장 큰 선물 |  홍석현 역 |  홍성사 |  1998년 02월
춤추시는 하나님
| 윤종석 역 | 두란노 | 2002년 01월

친밀함 | 윤종석 역 | 두란노 | 2001년 07월

탕자의 귀향 | 김항안 역 |  글로리아 |  2000년 06월
평화에 이르는 길 |  조세종 역 |  성바오로출판사 |  2004년 08월
헨리 나우웬의 영성편지
| 윤종석 역 | 복있는사람 | 2003년 05월
희망의 씨앗 | 편집부 역 | 두란노 | 2001년 11월

헨리 나우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 마이클 포드 저 | 박조앤 역 | 두란노 | 2003년 05월

헨리 나우웬과 떠나는 길 | 찰스 링마 저 | 홍순원 역 | 죠이선교회 | 2004년 03월

헨리 나우웬과 영성 | 드아드르 라누에 저 | 유해룡 역 | 예영커뮤니케이션 | 2003년 10월
헨리 나우웬의 실천하는 영성| 양참삼 저| 예찬사 | 2007년 01월


* 이 외에도 가톨릭 쪽에서 번역한 책들이 많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2 3-10.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 로버트 존슨 콩두 2014.09.23 8532
111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 조셉캠벨 [4] [6] 낭만 연주 2010.04.26 8539
110 [2-9] 더 보스, 쿨한 동행 - 구본형 콩두 2013.08.01 8541
109 뒤늦은 약속 (히로나카 헤이스케-학문의 즐거움) file [3] [1] 주환영 2004.11.23 8546
108 [22] 구본형의 <사람에게서 구하라> -저자 및 내가 저자라면 file [6] 먼별이 2009.09.21 8659
107 16. 철학이야기 - 윌 듀란트 file [1] 미나 2011.07.18 8688
106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박혜홍 2019.03.24 8736
105 [2-11] 반 고흐, 영혼의 편지 file 한정화 2013.07.04 8744
104 겅 호 [1] 최미경 2004.10.10 8751
103 [북리뷰 014] 버트런드 러셀 <서양의 지혜> file [2] 김경인 2011.07.03 8767
102 성공이 그대를 부르기 전에 떴다손 2004.10.07 8773
101 [선의 북리뷰]<사랑의 기술>에릭 프롬 선형 2012.01.15 8809
100 내장비만 백경선 2004.10.12 8909
99 [2-8] 신화의 이미지 - 조셉 캠벨 file 한정화 2013.06.07 9042
98 한국인의 심리에 관한 보고서.. [3] 김미영 2005.07.01 9066
97 '여성을 위한 비즈니스 파워툴' [1] openwide 2004.10.01 9096
96 찰스 핸디 - 코끼리와 벼룩 file [2] 숙인 2009.10.26 9159
95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1] 장우석 2004.10.10 9189
94 잔인함도 때론 아름답다 - 잭웰치, 끝없는 도전과 용기 [1] [1] 정재엽 2006.09.02 9219
93 소중한 것을 먼저하라 [1] 주환영 2004.10.11 9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