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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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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6일 21시 40분 등록

* 원제 : Once Upon A Midlife

         - Classic Stories and Mythic Tales to Illuminate the Middle Years

 

. 저자  소개

 

알랜 B. 치넨(Allan B. Chinen, 1952~ )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을 두 번째로 읽었다. 중년에 대한 그의 성찰이 경탄스럽다. 그의 말마따나 실용적 철학이 가득하다. 환생한 나폴레옹의 삶을 그려보기 위해 이 책을 선택했는데 내가 은혜를 받았다. 그의 책들이 절판된 게 아쉬울 따름이다. 시중에 자기계발서나 심리학 서적이 많고 많지만 이 책에 버금가는 울림을 주는 책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의 삶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와 깨달음,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힘이다.

 

 

. 내 마음에 무찔러드는 글귀

 

서문

 

이 책을 읽는 것은 치료를 받는 과정과 비슷할 것이다. 9

 

이 책의 또 하나의 미덕은 우리가 중년의 가장 근본적인 현상들을 보고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연구 자료들, 전문적인 사례연구들, 또 옛날 이야기들을 통해서 다른 문화와 현대를 묶어줌으로써 여러 분야의 시간들을 초월하는 인용 사례를 매우 풍부하게 수록하려 했다. 이 모든 것들을 수입한 치넨 자신도 다른 세계의 이야기들과 자신의 환자들을 다루는 동시에 자기 자신이 중년이라는 <발달 과정>을 거치고 있는 사람이다. 11

 

중년이란, 언제나 거기에 숨어 있긴 했지만 위장되고 분열되고 함입된 채 잊혀진 자기 자신과 새롭게 다시 만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1

à 중년의 자신과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는 그간의 삶을 스스로의 언어로 정리하고 의식의 체로 거르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새롭게 만난다는 건 내 인생의 맥락을 잡았다는 얘기다. 맥락을 찬찬히 넓혀가며 현재에 적용에 해 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머리말

 

문학이 보다 일반화되고 서사 기술이 보다 발전함에 따라 성인들은 옛날 이야기들을 경멸하게 되었다. 이야기들은 사실상 무지한 농부와 아이들을 위해서는 충분히 좋은 것들이지만 잘 교육받은 성인들에게는 뭔가 부적절한 듯이 취급당했다. 15

 

두 개 다 그리스의 원어로 <단어>를 뜻하긴 하지만 로고스는 설명, 계산, 계획들에 쓰이는 말이고, 미토스는 이야기, , 꿈 등에 쓰이는 단어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이야기란 인간의 영혼과 닿아 무의식 세계의 베일을 벗기는 작용을 하고 있다. 16

à 개인사 개요를 동화로 써 놓고선 이것이 우연의 산물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이후 연구원칼럼을 보면 내 칼럼은 주로 이야기를 지향하는 글들이었다. 이야기에 대한 끌림이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었다. 중학교 때 소설을 쓴다고 끄적거린 것도 이런 성향과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뿌리가 꽤 깊은 욕망인데 나는 오래 전부터 내가 주도할 수 있는 세계를 꿈꾸었던 걸까.

 

옛날 이야기들은 보통, 힘든 일을 마치고 난롯가에 둘러앉는다던가 아니면 침대 머리맡같이 아주 편안한 상태에서 듣게 된다. 존 보우 John Boe같은 학자는 이야기꾼뿐 아니라 이런 환경이 무의식의 이미지와 상징들을 활성하게 끔 변화시키는 좋은 조건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16

 

꿈들은 너무나 각 개인별로 특별하기 때문에 꿈꾼 사람만의 독특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옛날 이야기들은 범세계적이고 누구나 공감하는 매력을 지닌다. 이는 옛날 이야기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탓이다. 이런 과정에서 순수하게 개인적으로 특이한 요소들은 제거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관심이 있는 주제들만 살아남게 된 것이다. 전통적인 옛날 이야기는 인간의 기본적인 화젯거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중년의 이야기들은 중년의 근본적인 과제들에게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17

 

놀랍게도, 중년의 이야기들은 관습적인 사회적 가치들을 반영하지 않는다. 이는 특히 여성들에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문화들은 가부장제이고 여성적인 면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년의 이야기들은 놀랄 정도로 페미니즘적이다. 중년에 관한 이야기들은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이용해서 엄청난 사회적인 저항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17

à 남녀 모두 중년의 이야기에서는 관습이나 제도에 눌려 있던 욕망의 원형이 드러나는 것 같다. 그 욕망을 제대로 건드려주지 않고 제도권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읽는 이는 감흥이 없을 것이다.

신화나 전설들은 보다 공적이고 사무적인 사회의 관념들을 표상하기 때문에 가부장제의 권위를 정당화시키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왕들은 보통 신들이나 신화 속 영웅들의 자손이다.> 반면에 중년을 다룬 옛날 이야기들은 인습 타파적이고 반문화적인 무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8

à 솔직함의 표현이 정화작용을 일으키고, 그것이 치유로 이어진다. 인습타파적이고 반문화적이라는 건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내 소설이 독자에게 통쾌함을 주려면 먼저 내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솔직함이 있어야겠다.

 

옛날 이야기들의 치유력은 수세기 동안 인정되어 온 바 있다. 나바호나 힌두의 전통에는 이야기해 주기가 치료 의식의 중요한 부분이다. 18

 

중년의 이야기들은 한 가지 특성으로 구별된다. 주인공들은 늙지도 젊지도 않았고, 결혼을 했으며 살기 위해 일한다. 현실에서 그들은 중년의 성격으로 확실히 정의될 수 있다. 20

 

문학평론가인 노스롭 프라이나 민속 연구가이며 철학자인 로버트 펠톤으로부터 얻은 첫번째 규칙은 옛날 이야기들을 해석하려고 들기 이전에 우선 귀를 열고 그 이야기들을 잘 듣는 것이다. 민속 연구가인 알란 던즈Alan Dundes가 말한 대로 옛날 이야기에 대한 심리학적 토의들은 먼저 잘 듣지 않고 해석부터 하려고 했기 때문에 자기들의 대수롭지 않은 이론들에다 이야기들을 억지로 꿰맞춰 나가려고 애썼다. 이는 마치 그림형제의 신데렐라 원본에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맞지 않는 구두에 발을 맞추기 위해 발가락을 자르는 것과도 비슷하다. 학자들은 옛날 이야기를 해석한다면서 오랫동안 스스로 작업해 온 중심 주제를 일단 선택한 후 그것에 맞는 이야기를 모은 다음 개인적인 경험들을 일반화시키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거드름을 피우며 이야기하는 것이다. 21

 

 나는 해석의 두번째 규칙을 노아의 방주 법칙이라고 명명했다. 이 이야기 선집에 포함되기 위해선 우선 또 다른 파트너, 즉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2

 

매우 상징성이 높은 이미지들은 보통 아주 개성화된 특이성을 보이기 때문에 실은 원형적이지도 범세계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중년의 이야기를 여럿 나란히 놓고 볼 때 너무나 유사한 횡문화적 특징들이 드러난다. 이것은 이들이 바로 중년의 원형적 과제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주는 것이다. 22

 

중년의 이야기들은 깊이를 희생하는 대신 명료함을 획득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과제들을 무시함으로써 성숙의 과제에 대해 보다 확실하게 집중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중년의 이야기들에는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이란,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웠던 외상들을 단순히 풀어버리기보다는 보다 크고 중요한 과제인 <완전한 인간이 되는 지점>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환기시켜 준다. 24

 

옛날 이야기나 중년의 인생 그 자체는 너무나 다양하고 풍부한 주제들을 가지고 있어서 단일한 해석 방법으로 하다간 곧 지치게 된다. 25

 

중년을 다룬 옛날 이야기들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숨어 있는 아이 같은 부분을 다시 일깨워 준다. 이 아이의 모습은 중년이 끝없는 허드렛일과 책임감으로 지쳤을 때에만 필요로 한다. 중년의 과제에 당황하여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모든 남자와 여자들이 엉뚱하게 기대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지혜의 원천을 찾을 수도 있다. 25

à For what은 세월에 마모되어 How to가 된다. 부모의 품에서 삶을 즐기던 아이는 생활인이 되어 생존의 경쟁에 나서면서 즐거움을 잊어버린다. 뼈빠지게 가난했을지라도 어린 시절이 그리운 것은 희로애락의 원형이 그 시절에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정서의 원형과 대면한다는 것은 나의 존재와 정면으로 맞닥트려진다는 것이다.

 

제1부.    서른 이후, 젊음의 마법을 풀어놓다

 

대부분의 중년들은 자신들을 당나귀와 동일시할 것이다. 순수와 자발성, 그리고 젊은이들의 자유는 포기한 채 짐만 잔뜩 지고 사는 짐승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쉽거나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성장에는 분명 슬픔과 비탄의 요소가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29

 

마법의 상실은 세계 어느 나라건 중년의 이야기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이 주제의 중요성은 구두장이와 요정 이야기를 젊은이들의 이야기와 구별해 보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후자에서는 젊은이들은 오로지 뭔가 탐욕하고 사악한 일을 했을 때만 마법의 보물들을 잃게된다. 32

à 천하를 호령하던 나폴레옹. 환생한 그에게 권력은 흐릿한 과거일 뿐이다. 그는 자신의 앞가림에 바쁜 중년의 편의점 주인이다. 지나간 영광이나 바깥 풍경에 집착하는 한 그에게 구원이란 없다. 자신의 힘으로 문을 열고 나오지 않는 한 아무도 그를 구원해 줄 수 없다.

 

마법은 요정에게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성은 그들 요정이 벌거벗었고 모든 금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웠다는 점이다. 순수하고 장난기 많은 그들은 아직 사회적 관습이나 자의식이라는 짐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젊은이나 아이들의 무관심한 영혼을 의인화시킨 것이다. 마법의 정령들이 사라진 것은 성인들이 <>때문에 <놀이>를 포기하고 <책임>때문에 <순수>를 버리게 될 수밖에 없는 경험을 상징하고 있다. 32

 

의복이란 사회적인 장식이자 관습적인 행동들을 반영한다. 요정들에게 옷을 줌으로써 구두장이는 상징적으로 그들을 사회화시키려고 한 것이다. 33

 

크리스마스와 옷이란 사회화와 훈련을 반영한다. 모자이크와 조각들처럼 상세한 조목들은 그 자신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한데 모아놓으면 의미 있는 그림이 되는 것이다. 33

 

크리스마스와 옷이란 사회화와 훈련을 반영한다. 모자이크의 조각들처럼 상세한 조목들은 그 자신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한데 모아놓으면 의미 있는 그림이 되는 것이다. 34

à 나폴레옹이 환생했다. 누구보다 나폴레옹 자신이 그 사실을 확신한다. 그렇다고 나폴레옹의 전철을 밟아 살아야 하나. 시대가 바뀌었다. 그는 영웅이었지만 과거의 인물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의식하는 게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이미 밑그림이 완성된 그림에 무엇을 그린다는 말인가.

 

젊음의 마법이 사라진 후에 오는 것은 바로 <>이다! 구두장이는 꼬마 요정의 마법을 잃어버렸지만 자기 자신의 기술과 훈련으로 이를 변형시킨다. 35

 

그들은 마흔이 되어야 일종의 충격적인 통찰의 경험을 하게 된다. 즉 이제 그들의 꿈을 성취할 수 잇는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37

à 전생의 꿈에 집착하다가 스무 해 청년기가 사라졌다. 이처럼 허무한 일이 있을까.

 

마법의 새들과 같이 난다는 것은 젊은이들의 자유와 황홀경을 뜻한다. 땅으로 가면서 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젊은이의 마법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들이 둥지에 안착한다는 것은 젊음의 마법을 포기한 채 삶에 정착하여 가정을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38

 

요정들이 선물을 받자마자 떠난다는 것은 사실은 의식이 창조성을 방해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38

 

창조성은 의식의 판단과 의도를 유보했을 때만 나온다. 특히 유치하고 장난기 많은 어린 시절의 흔적들은 창조성에는 꼭 필요한 요소다. 너무 정밀한 조사나 비평이나 명령을 받도록 강요하는 것은 요정이 갖는 창조성을 재빨리 도망가게 한다. 39

 

젊은이들의 특징인 <발작적인 창조적 불꽃>은 계속되는 일의 습관으로 진화해서 성숙하고 기댈 만한 기술로 변하는 것이다. 만약 젊은이들의 창조성을 99퍼센트의 영감이라고 한다면 성숙한 창조성은 99퍼센트의 땀이다. 39~40

 

중년기에 잃는 젊음의 이상들

 

중년들은 보다 성스러운 완벽성, 순진성, 그리고 젊음의 이상을 잃어버리는 대신 노동과 고통에 대해 배운다. 젊음의 이상을 잃지 않겠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더 큰 재난이 닥치기 마련이다. 41

 

신성한 마법은 젊은이들의 이상과 비전을 상징한다. 그런 야망은 세계의 평화에 대한 희망, 진정에 사랑에 대한 낭만적인 꿈, 운동 경기에서 챔피온이 되는 것 등의 여러 가지 형태를 지니게 된다. ……젊은이들의 신성한 야망 뒤에는 완전한 사회, 완전한 게임, 완전한 사랑 등 완벽성에 관한 이미지가 숨어 있다. 46

 

작은 인간의 잘못들과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약점들이 완벽성에 대한 신성한 꿈을 깨버린다. 신학자인 아드리안 반 캄Adrian Van Kaam은 이 과정을 <우상 파괴(de-idolization)>과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우상과 이상을 포기하고 결국에는 자기에게 맞는 만큼의 좋은 일을 하는 데 만족하게 된다. 융 분석학자인 도날드 샌드너Donald Sandner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젊은이들은 진정한 성인이 되기 위해 자신들이 갖고 있는 하느님과의 유사성을 포기한다.> 47

 

문제는 그들이 젊었을 대의 휘황찬란한 이상을 자신들의 현재와 비교하고는 의기소침해지는 데 있다. 48

 

젊은 시기에서 성인의 시기로 넘어가면서 남성과 여성은 은유적으로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셈이다. 그들은 보다 성스러운 완벽성, 순진성, 그리고 젊음의 이상을 잃어버리는 대신 노동과 고통에 대해 배운다. 49

 

젊음의 마법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

 

젊은 시절의 마법을 상실한다는 것은 단순히 마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서 가족으로 또 다음 세대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회로 변하는 것뿐이다.50

à 나폴레옹은 평범하게 살기로 한다. 그런데 뱀파이어 여인의 등장이 사건을 불러온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내면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젊음의 마법은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멀리 떠나보내는 것이다. 54

à 사건을 통하여 그는 비로소 현재에 몰입하게 된다. 현재의 그를 둘러싼 환경이 현실이 된다. 과거는 이제 과거가 되었다.

 

그가 생각하는 중년의 기본적인 과제는 베풂의 미덕(Generativity)이다. 이는 자기 자식을 돌보는 태도이자 다음 세대 전반, 즉 학생들, 피부양자, 후배들까지를 후원하는 태도를 뜻한다. 이런 베풂의 미덕을 발전시키는 데 실패할 경우에는 노년이 되었을 때 비참하게 되거나 침체될 수 있다는 점을 에릭슨은 경고한 바 있다. 54

 

프로이트는 사랑과 일은 성인들의 생활에 기초적인 것이며 일에 대한 헌신은 마치 사랑처럼 스스로의 생성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55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창조적인 영감을 현실로 변형시키는 과정과 유사하다. 작가는 자신들의 직관을 소설로 형상화하여야만 하고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직접 검증해야만 한다. 즉 오랜 노동과 헌신이 요구되는 것이다. 어부와 인어는 이런 과제를 수행하는 데 실패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않아 결국 장남은 죽고 말았다. 비슷한 식으로 한 개인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감들을 세세하게 작업화하지 않는다면 창조적 섬광들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55~56

à 소설을 처음 쓰겠다고 할 때는 몰랐다. 헌데 생각해 보니 소설을 쓰던 칼럼을 쓰던 우리는 연구원과정을 통하여 정리된 자신의 인생을 책의 형식을 빌어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 나 역시 내 영혼 속 어두운 구석에 숨어 있는 비밀스런 자만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한 부분 역시 젊은 시절의 원대한 꿈에 집착하고 있었고 폴과 다름없이 현실 세계에 닻을 내리길 거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면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역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59

 

<중년의 이야기>들은 자녀들이 세계에 닻을 내려 부모로서의 과제를 마친 이후 부모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해 반성해 보면서 개인적인 성취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심리적인 과제들에 대해 미리 그려보는 것이다. 59

 

셋이란 삼각관계 등에서 잘 나타나는 것처럼 갈등과 경쟁을 의미한다. 트리스탄, 마르크 왕그리고 이졸데 이야기처럼 두 명의 라이벌은 제3의 사람의 애정을 갈구하면서 싸운다. 그 같은 경쟁은 젊은 시절에는 매우 흔한 이야기이고 따라서 젊은이의 이야기에는 자주 등장한다. 60

 

넷이란 숫자는 융이 지적한 대로 완전성, 완성, 그리고 전체성과 연결되어 있다. 60

 

내가 이미 『Ever after』에서 말한 바 있듯 완전함과 통합은 인생 후반부의 가장 중심적인 과제다. 넷이란 숫자가 노년의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사실은 따라서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60

 

다섯은 중년에만 있는 특별한 숫자이다. 다섯은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넷이 완전성과 완성을 상징한다면, 다섯이란 숫자는 넘침을 의미한다. 60

à 분례는 다섯 자매 중 막내다. 아들을 희구하다가 딸만 다섯을 낳았다. 그 넘침 속의 결핍이 분례를 거친 풍랑 속으로 몰아 넣었다.

 

이런 넘침은 모두 물질적인 관심들과 연관이 되기에 다섯은 물질주의와 연관이 된다. 61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며 보다 안락한 생활을 꿈꾸는 물질적인 관심은 중년의 제일 큰 과제이긴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팀닉할 경우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61

 

마법의 상실은 슬픈 게 아니라 발달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일 뿐이고 이를 거절할 때는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상실이란 단순히 마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서 가족으로 또 다음 세대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회로 변하는 것뿐이다. 61

à 나폴레옹이 전생의 삶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집착할수록 그의 두번째 삶은 텅 비어간다.

 

2부 서른 이후, 남자가 가는 길과 여자가 가는 길

 

중년 남녀의 성역할 바꾸기

중년 남자들은 동료들과의 관계나 가정에서의 행복을 보다 강조하게 된다. 나이 든 남자들은 사실 점점 더 집안의 잡다한 일을 더 하게 되고 자신의 용모에 관심을 더 많이 갖는다. 반면 <남자로 변한 여성>인 중년 여성은 남편을 리드하면서 그간의 습관들을 아주 빠른 속도로 깨버린다. 65

 

중년의 이야기에서 이런 역할의 전도는 왜 일어나는가? 칼 융은 이렇게 설명한다. 성인의 발달 과제에 대해 연구한 초기 심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융은 중년 남자들이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기호나 필요들과 싸우기 시작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중년의 남자들은 젊은 시기에 그들을 움직이게 했던 힘과 지위에 대한 남성적인 경쟁 심리를 옆으로 치워버린다. 그 대신 그들은 관계와 감성에 대해 관심을 두는데 이들 특성들은 젊었을 때는 너무나 여성적인 것이라서 거부했던 성격들이다. 73

à 환생한 나폴레옹에게 어머니는 세계와 그를 연결하는 유일한 관계다. 괴테가 세계의 축소판이라 경탄했던 전생의 나폴레옹이 아니다. 그는 어떻게 사회와의 끈을 복원하게 될까.

 

반대로 여성들은 자신감, 자발성, 그리고 모험심 같이 전통적으로 남성 특성이었던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관심을 갖게 된다. 여성들은 어린 시절 사회가 소녀들에게 요구했던 복종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역할을 벗어버리고자 시도한다. 융이 지적한 대로 <인생의 아침에 활짝 피었던 모든 이상과 가치관들이 인생의 정오쯤에는 바뀌게 되는 것이다>. 74

à 분례는 다섯 자매 중 막내로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숨죽이며 살았다. 자아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그녀는 백여 년 간의 떠돌이생활을 통해 성숙한다. 육체는 여전히 스물 두 살이지만 마음은 인생의 쓴 맛을 달관한 중년의 여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은 폐경이 지나면 공적으로도 훨씬 더 권위를 갖게 되고 자기 주장이 강해진다. 75

 

모로코의 민담들은 중년의 성역할 바꾸기에 대해 극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야기 속에서 모든 남자는 백 개의 악마와 함께 태어난다. 그리고 소녀들은 백 개의 천사와 함께 태어난다. 해가 갈수록 남자와 여자는 서로 악마와 천사를 교환한다. 따라서 만약 백년을 산다면 남자는 백 개의 천사를 갖게 되는 것이고 여자는 백 개의 악마를 갖게 되는 것이다! 75

 

정신 분석은 이런 여성성의 거부를 남성의 발달에 있어 꼭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소년과 소녀들은 정체성을 보다 명료하게 가지려면 이런 어머니와의 애착을 깨고 나와야 한다. 그러나 어머니와의 관계는 깨기가 매우 힘들다. 어머니가 의존성과 친밀성에 대한 모든 필요를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 위해 소년들은 보통 극단적인 방법을 쓴다. 그들은 어머니만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의존성과 친밀성의 영역을 거부한다. 이들 감정들은 여성적인 것과 동일하게 생각되고 따라서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76

 

내가 쓴 글에는 중년에 관한 나 자신의 사적인 경험들, 감정들, 그리고 생각들이 빠졌던 것이다. 78

à 질문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게 옳다. 그 답도 나로부터 찾아지는 게 맞고.

 

중년이 되면 보통 주부들은 남편을 리드하면서 그간에 익숙해졌던 습관들을 아주 빠른 속도로 깨버린다. 그녀의 변화는 남편까지도 더욱 성숙하도록 강요한다. 79

à 동감 100%. 결혼생활을 뒤돌아 보면 와이프와의 관계로 인해 타의적으로 변한 부분이 많다. 솔로로 살았다면 내게 그런 면이 있는 줄도 몰랐을 것들.

 

그녀는 물리적인 힘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설득> <관계>로부터 나오는 힘에 의지한 것이다. 80

 

중년의 이야기에서는 반대로 자만하고 심술궂고 고약한 성격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잘못을 보고 개선한다. 그 같은 자기 개선이 없다면 중년의 이야기는 단순한 비극에 불과하게 될 것이고,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국 슬픈 결말에 다다르게 되며 너무나 인간적인 결점들은 통째로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82

à 자신에 대해 물음표가 생기면서 주위가 눈에 들어온다. 자동차는 운전만 잘 해서 구를 수 없다. 주유소가 있어야 하고 정비사도 필요하다. 억대 자동차를 몰고 다닌다고 예외일 수는 없다. 젊을 때는 비싼 자동차를 소유한 것이 다인양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만약 젊은이들이 타인에게 <투사>를 하지 않고 자신의 단점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세상에 나가 위험을 무릅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쉽게 비난하면서 젊은이들은 세상에 반항할 수가 있고 용감하게 인생에 뛰어드는 것이다. 82

à 사회가 유지되려면 그래서 젊은이와 중년과 노년이 적절히 뒤섞여야 하나 보다. 다양한 사람이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에너지의 근원이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문제를 개선하려는 태도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성숙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융통성이 중년에 요구되는 큰 덕성이라면 젊은 시절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젊은 영웅들이나 여자 주인공들은 성공하기 위해 계속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융통성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82~83

à 나이를 먹고도 성숙하지 못하면 볼썽사나울 뿐만 아니라 젊은이와 같은 물에서 놀게 되니 아무래도 경쟁력이 떨어진다. 노는 물을 달리 해야 편안히 살 수 있다.

 

그같이 한 가지 목적에만 집중하는 감각은 젊은이들에게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마치 젊은이들인 양 쉽게 결정해 버리고, 꼼짝도 않는 것은 중년에게는 완고하고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중년 이야기들은 이같이 융통성을 강조하게 된다. 83

 

중년기의 여성 해방

 

그녀는 『여성 소설에서의 집단 무의식적 형태들Archetypal Patterns in Womens Fiction』이란 책에서 지난 수세기에 걸쳐 영국과 미국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해 본 결과, 결혼을 모욕과 수감 생활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공포로 묘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99

 

많은 동화에서 여성의 계략이 부정적인 것으로 그려지는 반면, 중년의 이야기에서는 여성의현명함은 칭찬받을 만한 무언가로 그려진다. 사실 여성들은 가부정제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통합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교활해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가 많다. 100

à 헐리웃 영화, 특히 공포나 호러 영화에서 여성은 비극의 잉태자이다.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때 호기심에 나섰다가 일행을 몰살로 이끈다거나 사려깊지 못한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위기로 빠트리며 비명을 지르기 일쑤다. 가부장적인 관점이 노골적으로 반영된 캐릭터 설정이었구나!

 

젊은 시절에 여성들은 자신감을 억압하면서 자기 자신의 필요는 무시해 버리고 다른 사람들을 돌보도록 배운다. 102

 

극단적으로 말해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는 여성들이 학대받는 관계에 있을 때 여성들을 덫에 걸리게 만드는 성격이 된다. 102

 

오늘날, 중년의 여성들은 자녀들을 세상에 내보낸 다음 새로운 일을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사회가 만든 여러 가지 장애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놀랄 만큼 성공을 거둔다. 이것은 단순히 현대 페미니즘의 결과는 아니다. 이 과정은 오히려 무의식적인 원형이다. 103

 

융 학파의 사고 방식에서 자기란 무의식적이건 의식적이건 한 개인적 존재의 중심이 된다. 자기는 의식적인 생활의 중심일 뿐인 <자아Ego>와는 명백히 다르다. <자기>는 또한 각 개인들이 해내야 할 사회적 역할-예컨대 어머니라든가 사장님들 같은-과도 역시 많이 다르다. <자기>란 개인의 가장 진실한 본성을 표상한다. 융은 <자기>란 전형적으로 꿈속에서 <행복의 새>같이 성스럽고 마술적인 상징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주목했다. 성스러운 새는 부인의, 진정한 자기, 즉 자신의 깊은 존재를 상징한다. 외적인 억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에게 진실했으며 그녀의 통합성을 지켜나갔다. 따라서 내적인 그녀 자신의 상징이 겉으로 표현된 것이다. 105~106

 

여성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자신들의 권위를 여성들이 주장할 때 바뀌게 된다. 자신이 비상하는 이미지는 중년 여성들의 꿈이나 공상 속에서 보다 확실하게 두드러진다. 106

 

결국 남자가 자신들이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했을 때만이 여성들은 숨어 있는 자신들의 힘과 재능을 발견해 내고 자기 자신에게 의지해 일어나는 것이다. 110

à 백마 탄 왕자의 포기는 여자는 물론 남자에게도 축복이다. 희망이 떠난 빈자리를 냉소로 채우지만 않는다면.

 

아니무스는 당당함을 상징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위협하는 것처럼 보인다. 111

 

결국 이 같은 과도함은 부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힘, 자발성, 그리고 개성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게 했다. 역설적으로 과도함이 오히려 자아 통합과 개성으로 이끌어준 것이다. 숫자 5는 중년의 중요한 과제인 불균형과 실수를 조화와 자아 정체성으로 변환시킴을 잘 요약해 주고 있다. 113

 

중년의 남자와 여자

 

심리적으로 여성들은 중년에 이르면 다시 젊은이처럼 된다. 엄격하고 보다 여성적인 편견을 지니기 이전의 시기인 것이다. 대개 소녀들은 마치 소년들처럼 보다 적극적이고 독립적이면서 모험심에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안다. 그러나 청소년 시기가 되면 대부분의 소녀들은 사회적인 압력에 의해 자신들의 그런 남성적인 면을 억압하라고 강요받게 된다. 반면에 소년들은 보다 적극적이고 독립적으로 자라도록 격려받는다. 소녀들은 생존하기 위해 진정한 자신들을 감추고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심리적으로는 동면기에 들어간다. 120

à 여자로 산다는 건 그렇게 끔찍한 일인가. 중년 여성들의 삶이 그렇게 억세지는 걸 보면

그 전의 삶이 그만큼 고통스러웠다는 애기인 것도 같고. 와이프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고요한 물에 돌을 던지는 일인 것 같아 주변사람들 먼저 탐문해봐야겠다.

 

많은 연구에서 중년기가 되면 심리적인 양성성이 늘어난다는 점을 지적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양성성이란 나이 들면서도 깊이 행복할 수 있는 성공적인 심리 특성과 비례한다는 것이다. 120

 

<폐경>이란 단지 좁은 의미에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에만 자신을 얽어매는 여성들에게만 우울할 뿐이다. 대부분의 비서구 여성들은 폐경을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폐경이 지난 여성들은 젊은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사회적인 금기에서 자유롭다. 더 이상 임신할 가능성도 없기 때문에 성적으로도 자유로워지고 남성들과도 음담패설을 거리낌없이 주고받는다. 122

à 폐경 후 갱년기 우울증을 익숙하게 들어온 나로서는 의외다. 폐경이 해방의 다른 이름이라니. 이성적으로 이해는 간다. 폐경 이후에는 남자와 여자가 생리학적으로 다른 점이 없지 않는가.

 

단테는 중년에 들어선 자신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끌어내어 글을 썼는데 이는 정치적 격변을 거친 후 자신의 고향인 플로렌스를 떠나도록 강요당했기 때문이었다. 단테는 유형 생활 동안 자신의 힘과 위엄을 모두 잃어버린 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 123

 

자기 자신에 대해 그려보라고 하면 초기 청년기까지는 남자들은 자기를 점점 더 크게 그리게 되는데 이는 자신감과 자존심이 점점 더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년이 넘으면 남자들은 자신을 점점 더 작게 그린다. 이는 예민함과 굴욕감을 훨씬 더 많이 느낀다는 점을 뜻한다. 124

 

중년의 위기는 창조적인 남자들 사이에 훨씬 더 뚜렷하다. 124

 

제럴드 오콜린스도 이런 고통스러운 중년의 경험을 <두번째 여행>으로 묘사한다. 첫번째 여행은 젊은 시절에 거치는 것인데, 이때 남자들은 모험과 행동을 통해 유명해지고 행운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한다. 두번째 여행에서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자발적이지 않은 여행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영광과 재산보다는 지혜를 얻게 된다. 125

à 인생이 계획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게 중년의 입장에서는 축복이란 거다. 하지만 최소한 뜻하지 않은 질곡에 숨이 멎지 않도록 인격은 닦아놔야겠다.

 

남자들은 대개 작은 실망들을 여러 번 겪고 나서 자신들이 젊었을 때 가졌던 큰 야망들을 줄여나간다. 그리고 극적인 특별한 위기 없이 수년 간 적당히 타협해 나간다. 중년의 이야기들은 저속도 촬영 사진같이 느리고 점진적인 이러한 과정들을 빠르게 돌려준다. 125

 

고통은 오래된 방식의 사고와 행동을 태워버리고 새로운 길을 위하여 깨끗하게 청소된다. 여기서 새로운 요소들의 가장 중요하고 첫번째 가는 것은 여성적인 것이다. 125

 

즉 영웅적인 힘을 포기하고 대개는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투사하고 있는 유약함이라는 용어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126

 

로버트 블라이Robert Bly가 우아하게 묘사한 「철의존」이야기에서 남성들은 중년에 이르면 젊었을 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여성들에게 깊이 상처를 받기 보다는 다른 남자 특히 아버지들에게 상처받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126

 

남자들은 오로지 공공의 영역에 나타나는 것만을 보지 그 뒤에 숨어 있는 개인을 알지 못한다. 이는 남자들이 개인간의 상호 작용과 관계를 습득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128

à 동감 100%. 은퇴한 이후 남자들이 심한 우울증을 겪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에 보이는 권력, 성취, 명예를 좇다가 더 이상 그것들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갑자기 머리가 멍멍해지는거다.

 

캐롤 피어슨이 그녀의 책 『숨어 있는 영웅 The Hero Within』에서 관찰한 대로 젊은 시절에는 순교자였던 여성들이 중년에 이르면 영웅이 된다. 남성 구원자와 여성 희생자가 그 여할을 바꾸는 것이다. 128

 

남성들의 이야기는 보통 승리와 영광으로 시작해서 결국에는 재난과 희생자가 되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는 유아 초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이카루스처럼 남자들은 높이 날아서 결국 충돌한다. 소년들은 비슷한 수준으로 젊고 남성적인 데에 초점을 맞추어 권력이나 영광, 성취 그리고 독립이 너무나 한쪽 측면만 강조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재난으로 끝난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128~129

à 남자들이 철이 늦게 드는 이유다.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고 파랑새를 좇아 바깥을 떠돌면

   남는 게 없다.

 

중년의 이야기들은 여성들이 그들의 힘을 중년에 재선언하고 남성들은 고통을 겪는 지혜를 배운다는 것을 보여준다. 129

 

여성의 새로운 경력은 남편이 그의 능력 이상의 것을 더 이상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시작하게 된다. 131

 

「피리 부는 왕비」같은 중년의 이야기는 <도전>이란 모두가 같이 공유하면서 많은 사람이 같이 해야 성공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131

 

3부 서른 이후, 운명을 받아들이다

 

중년에 바라보는 죽음

 

노년의 이야기들은 죽음을 단순히 삶의 한 사실로 다를 뿐, 삶의 문제로 다루지는 않는다. 137

 

중년의 이야기에서 죽음은 중심 주제가 되고 중년의 주인공은 죽음과 고통스럽게 싸운다. 죽음의 공포는 실제의 삶에서 중년의 위기를 유발하고 죽음의 공포가 크면 클수록 고통은 더 강렬해진다. 중년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의 세월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남아 있는 나이를 생각할 때 시작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대개 극적인 한순간에 죽음을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몇 십 년의 세월 속에서 직면하게 된다. 137

à 죽음에 대한 전조가 길어지면 권태가 스며든다. 죽음이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쳇바퀴를 도는데 그럼 새로울 게 없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거다. 나 하기에 따라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게 아니라면 죽음의 순간에 붙잡을 푯대를 마련해놔야 한다.

 

개인이 자기 본위의 관심에만 쌓여 있는 한 죽음은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죽음은 자아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만약에 개인이 사적인 관심을 초월하여 개인적인 이익을 초월한 것에 스스로를 위임하게 된다면-예를 들어 자신의 아이들이나 사회적 활동-죽음은 덜 위협적이게 된다. 개인은 죽어야만 되나 아이들이나 사회적 이상은 계속 살아나간다. 139

 

중년에 개인은 진로를 바꾸기를 요구받고 그들의 개인적인 꿈을 초월하여 그들 자신을 <큰사진>의 작은 부분으로 간주하게 된다. 140

à 큰 사진의 작은 부분. 그래 내가 날고 기어도 나는 세계의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한 개인이 영원히 살 수 없다면 그는(그녀는) 대신 지속될 수 있는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고 상징적 불멸의 형태를 얻는다. 141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기 본위의 요소는 덜 중요한 동기이며 생성 능력이 주요한 동기이다. , 다음세대를 풍요롭게 하고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남겨놓고자 하는 소망이다. 만약 생성이 죽음의 공포를 해결하도록 도와준다면 죽음은 또한 생성을 양육하는 것이 된다. 왕이 제시하고 있듯이 죽음의 충격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기 중심을 초월하도록 만든다. 141~142

 

죽음은 종종 생성의 가장 좋은 스승이 된다. 142

 

젊은이에게 죽음은 극적이고 영웅적이며 낭만적이다. 그리고 젊은이와 여성은 사랑과 진실과 정의를 위해 기꺼이 죽는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 죽음은 단지 추상적인 것일 뿐이다. 중년의 남녀는 이런 환상은 버린다. 중년에게 죽음이란 엄연한 현실이며 단호하고 불가피한 것이며 영광의 문제가 아니라 한계의 문제인 것이다. 143

à 모든 면에서 저돌적인 나폴레옹은 사랑처럼 논리적이지 못한 일에서조차 그의 타고난 조직력을 발휘하여 조세핀과 결혼을 한다. 그는 내가 새로운 승리와 영광의 기반을 닦지 않으면 내 권력은 무너져버릴 것이다. 정복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하였다. 정복만이 현재의 나를 유지시킬 것이라고 했다. 승리가 나를 존재하게 한다. 그것을 희생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던 그가 자신이 평범한 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 동안에 얼마나 지독한 고통이 있었던 걸까.

 

유머는 자기 초월을 키운다. 144

 

죽음과 중년의 내면 여행

 

「우리는 죽고 싶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에 지쳐 있어요. 파라다이스라고 불리는 곳에 대해 들었는데 그곳은 죽은 자만이 갈 수 있답니다」그들이 말했습니다. 백만장자는 고개를 저었습니다.「나는 결코 죽고 싶지 않아!147

à 중년은 허망의 늪에 빠져 죽거나 권태의 사슬에 걸려 말라 죽기 쉽다. 원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과거의 영토를 버리고 떠나야 한다.

 

「너는 인내도 가지지 못했고 믿음도 가지지 못했다. 영생과 영원의 신비는 너를 위한 것이 아니다」그러고 나서 하늘의 사자는 책을 한 권 꺼냈습니다.「집과 가족에게로 돌아가거라. 너의 몫에 만족하거라. 신이 너에게 지혜의 책을 내리셨다. 그 충고를 따르도록 해라. 성실히 일해라. 아이들을 잘 길러 미래를 준비시켜라. 그리고 너의 이웃을 도와라. 그리하면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148

à 주변으로, 후대로 나의 존재가 흐르게 하라. 존재는 땅에 떨어져 썩어가며 우주로 돌아간다. 존재를 유지하려고 발버둥치면 아무 것도 생성해 내지 못한다.

 

죽음은 삶을 가치 있고 흥미롭게 만든다. 그리고 죽음은 휴식을 약속해 주며 삶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도피처를 제공한다. 영원한 생명의 땅에 사는 사람들이 외치듯이, 죽은 자만이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곳에 갈 수 있다. 그곳은 그들의 땅보다 더 멋지다고 상상하는 곳이다. 149

 

신이 준 지혜의 책에서 전달하는 두번째 주제는 단순한 실용주의이다. 신은 고결한 철학적 통찰이나 정신적 계시를 제공하지 않는다. 신은 인간에게 단지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잘 부양하고 이웃을 공경하라고 말한다. …… 죽음과의 조우는 개인으로 하여금 평범한 일상의 삶을 긍정적으로 만든다. 숭고한 정신적 수양이나 세상을 버리는 것 대신 죽는다는 것은 중년의 남녀에게 세속적인 질서를 긍정하도록 촉구한다. 151

à 철학은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철학이어야 한다. 현실과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 철학은 교양에 불과하다. 살면서 부딪히는 갈등을 스스로 풀어내는 과정을 통해 인격이 변한다.

 

여성은 어느 문화에서든 남성보다 죽음의 공포를 더 표현하며 죽음에 대한 불안감에 있어 높은 점수를 기록한다. 그러나 여성은 대개 그들의 공포에 관해 개방적인 반면 남성은 습관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포함한 모든 불안을 부정하고 축소한다. 이것이야말로 죽음에 관한 중년의 이야기에서 남성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가 된다. 이 이야기는 남성이 의식적 삶에서 회피하고 억압하는 문제들을 끄집어내고 있다. 153

 

여성들은 죽음에 관해 충분히 의식의 영역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죽음을 다루는 동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출산 때마다 죽음의 위험에 직면했다. 남성은 전쟁에서 주로 죽음과 직면했고 평화시에는 그들의 죽음을 부정할 수 있었다. 153

 

여성은 젊을 때 여러 형태의 사회적 압력을 경험한다. 고통과 상처에 직면해 보았기 때문에 죽음이란 요소는 그들에게 덜 위협적이다. 반면 권력과 영광에 익숙한 남성은 개인적 죽음이 더 큰 충격이고 절망이다. 여성은 또한 아이를 낳을 수 있고 그들에게 죽음의 불가피함에 대한 강력한 보상을 제공한다. 사실상 여성이 모성애를 생각할 때 죽음에 대한 공포는 경감한다. 반면에 남성은 다른 방법으로 죽음을 다루어야 한다. 결국 여성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역할을 하기 위해 일찍 사회화되는 반면 남성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남성에게 있어 베풂이란 중년에 들어서 배우기가 훨씬 더 어렵다. 베풂이 죽음의 공포를 없애는 데 중요하기 때문에 남성은 죽음에 관해 좀더 많은 문제를 갖게 된다. 153

à 나는 지금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죽음 앞에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가. 지금 죽는다면 내가 해야할 것은. 유언장을 읊던 연구원 첫 수업으로 돌아간다.

 

남성과 여성은 중년에 정반대 방향으로 죽음에 접근한다. 남성에게 있어 죽음에 직면하는 것은 대부분의 중년 남성들이 그러하듯 절망적이다. 여성에게 있어 죽음과의 조우는 종종 자유스러운 것이 된다. 여성은 그들의 삶이 다 끝나감을 깨달으면 전형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을 개척한다. 죽음은 그들에게 매력적인 왕자를 기다릴 수 없음을 경고한다. 154

 

죽음은 여성들에게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준다. 죽음은 남성에게도 같은 통찰을 가져다주는데, 남성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들의 역할이 더 작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좀 다르다. 154

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죽는 순간에 해야 할 일은 살아온 인생에 대한 자화자찬이나 비탄은 아닐 것이다. 나의 생을 다해 주변 사람의 생에 축복을

  비추는 일일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힘을 주는 씨앗으로 남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꿈이 금지된 소망을 숨기고 수용되지 못하는 충동이 의식 세계로 나오는 것을 가려주거나 제외시킨다고 주장한다. 융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고 꿈은 억압에 대항하고 개인이 회피하는 문제를 끄집어냄으로써 무의식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156

 

꿈은 중년에 억압에서 계시로 옮아가게 된다. 156

 

중년의 이야기와 현실적 삶에서 죽임이 비록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남녀가 받아들여야 하는 필연적인 결과만은 아니다. 똑같이 강력하게 받아들이기에 아마도 더 어려운 힘이 있다.<그것은 운명이다!> 158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중년

 

계몽화된 현대 문명들은 개인적 노력과 소질이 중요함을 주장하고 개인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자유로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운명은 이러한 현대적 미신을 거부한다. 164~165

 

중년이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는 종종 단순한 불운인 반면, 성공은 일을 열심히 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기 보다는 적기적소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165

 

운명과 행운은 개인의 통제를 능가하는 단순한 힘이다. 죽음은 이러한 힘의 으뜸가는 예이다. 165

 

운명은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성공에 익숙해 있는 누구에게나 경험되는 문제이며, 중년에는 무기력과 연약함에 직면하도록 강요한다. 166

à 하면 된다 무의식의 뿌리에까지 침투해 있는 관념이다. 그래서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되면 노력이 부족한 거고 부족한 자신을 탓하며 또 달려 들어야 한다. 하면 된다의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가 이명박이다. 근데 이명박이라고 하니까 모범적인 롤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어째 떨떠름하다. 갑자기 좀비 이미지가 중첩된다. 좌절하지도 지치지도 않고 그는 달린다. 세상의 모든 이가 그럴 수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그를 따라갈 수 없는 이들은 실패한 인생으로 보이지 않을까. 좌절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는

    성공한 인생일까.

 

석공은 「운명의 신」의 형과 같이 질투와 상실에서 시작한다. 167

 

연구 결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년에 반성적이고 철학적인 태도를 발전시켜 나간다고 확인해 준다. 성숙함은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며 이것은 종종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직관을 향한 변화와 관련된다. 168

 

침묵한 채로 그 불쌍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나 합리성에 기초한 정상적인 이성 작용을 일시적으로 보류한다. 그 때에 그는 큰 그림과 운명의 신의 본질을 본다. 비록 명확히 진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이야기는 만약 그 불쌍한 사람이 미리 말을 했거나 질문을 했다면 운명의 신이 하는 일을 방해하게 되어 운명의 전체적 순환을 관찰하지 못했을 것이다. 168

à 이야기는 사람들을 통해 흐르고 전승된다. 인간은 물질적 존재이기에 앞서 흐르는 존재다. 흐르지 않으면 人이지 間은 아니다. 나는 퍼즐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나란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이 만들어진다. 퍼즐은 주변의 조각이 무엇이냐에 따라 각기 다른 이야기로 직조된다.

 

유사하게도 남녀는 중년이 되면 운명에 순응하는 것을 배우게 되고, 운명을 무시하고 바꾸려는 젊은 날의 노력들을 포기한다. 169

à 젊은 날을 포기하지 못하는 삶은 암세포와 같은 역기능을 할 수도 있다. 죽지도 늙지도 않으려 영양분을 빼앗는 바람에 주변의 세포들은 말라 죽는다.

 

비극은 불행한 결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형성하는 통제할 수 없는 힘을 통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비극적 관점은 모든 것이 가능한 듯 보이고 충분한 개인적 노력과 기지와 작업이 주어진 젊은 시절의 영웅 정신과 날카롭게 대조된다. 젊은 시절의 정신과 비교해 볼 때 중년의 비극적 관점은 우울하고 침울한 것 같아 보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년에 운명과 행운을 수용한다는 것은 자유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169

 

운명의 수용은 자유로운 것이었고 그녀의 인생에 즐겁고 명상적인 단계를 시작할 수 있게 했다. 171

à 청년기의 나폴레옹은 운명을 거부하기 보다는 운명에 순응했다. 그는 운명의 광포한 힘을 직감하고 그 힘 앞에 속절없이 쓰러질 수도 있음을 알았지만 운명의 선함을 믿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선할 것이라고. 그가 간과한 것은 그 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우주이자 세계라는 것이다. 

 

중년기의 오이디푸스 갈등

 

부모가 아이들과의 경쟁을 참아낼 수 없다면 아이들은 상처받고 분노하면서 자랄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승리하는 시기는 단시일 내에 끝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성인이 되고 부모는 늙어 쇠약해지기 때문이다. 베풂의 정신이 없다면 불행한 결과가 두 세대에게 일어날 것이다. 183

 

운명은 그것 자체로는 중년의 질투를 해결하지 못한다. 운명이 부여하는 것은 다소 비극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이다. 인간의 통제력을 능가하는 힘의 수용이다. 중년의 비극적 통찰의 발전은 남녀가 인생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셰익스피어와 찰스 디킨스의 문학 작품들이 이러한 과정을 반영한다. 둘 다 중년 이후에 가장 심오한 비극을 썼고 그들의 비극은 고통과 악과 연약함을 수용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185~186

 

오이디푸스는 그의 삶에서 운명의 힘을 깨달으면서 죄의식에서 자신을 해방시킨다. 그는 죄와 자책감보다는 운명과 비극의 관점에서 그의 삶을 이해한다. 삶의 이러한 비극적 비전을 갖는 것은 젊은이의 심리에서 성숙의 심리로의 결정적인 전환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자책감과 비난은 필연적으로 젊은이의 영웅주의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젊은 남녀는 대개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그들이 삶을 관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이 잘못되면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든지 아니면 적어도 다른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186~187

à 영웅주의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젊음은 비극적이다. 아이러니다. 운명의 힘을 거부하는 삶이 오히려 극적인 비극을 연출한다.

 

그러나 중년의 남녀는 운명이나 숙명의 힘을 깨닫고, 그들은 단지 일어나는 일에 대해 제한된 통제력만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통제하지 못한다 해도 어떤 책임도 없으며 어떤 자책감이나 비난도 없다. 냉정하지만 그 통찰력은 궁극적으로는 자유스럽게 해주며 남녀가 과거의 후회를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중년은 불운과 실수에 대해 그들 자신을 용서하게 된다. 187

 

젊은 남녀는 그들이 부모가 되었을 때 그들 자신의 한계를 발견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부모가 사랑이나 보호를 거절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더 이상 사랑과 보호를 줄 수가 없었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실패와 죄의 문제가 아니라 한계와 비극의 문제이다. 젊은이의 분노는 그래서 탄식과 슬픔과 분노로 바뀐다. 겸손과 동정은 비극적 통찰에서 나온다. 187

 

에릭 에릭슨은 이러한 자기 수용을 자아 통합(ego-integrity)이라 부른다. 그것은 꼭 이루어져야만 하고, 어떤 대안도 허락하지 않는 무엇으로서 인생의 긍정적인 면을 보는 것이다. 187

 

4부 서른 이후, 삶을 깨닫다

 

젊음의 추상적 이성 vs. 중년의 실리적 지혜

 

성숙한 성인은 책에서 배우는 것과 삶에서 배우는 것을 구별하며 후자가 그들에게는 더 실리적이라는 것을 안다. 198

 

젊은 시절 은유는 <내 사랑은 빨간색, 한 송이의 빨간 장미>와 같이 쓰듯이 시적이고 미적이며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씌어진다. 중년에 은유는 장식이라기보다는 도구와 같이 변한다.

199

à 내 소설에서 은유는 장신구인가 도구인가. 중심을 향하여 수렴하지 못하고 느끼한 뒷맛을 남긴다면냉철하게 판단해 봐야겠다.

 

전통적으로 남성은 로고스로 시작하여 에로스를 포용하는 반면, 여성은 에로스로 시작하여 그 다음에 그들의 삶에서 로고스와 통합한다. 203

 

악마의 도전에 대한 중년의 방어

 

심리적으로 젊은 남녀는 악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할 뿐 결코 그들 자신 안에 악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모든 것들 중에 가장 어려운 악, 즉 자기 자신 안에 내재한 악을 산뜻하게 회피한다. 210

à 내면의 악을 산뜻하게 회피하면 자신의 삶을 살 수 없다. 떠도는 인생이 이런 것이다.

고상한 이유로 젊었을 때 목숨을 거는 사람은 전형적으로 중년에 개혁을 포기한다. 생계를 꾸려가고 아이들을 길러야 하는 필요성이 우선하는 것이다. 212

 

솔로몬의 충고(옛길을 고수하라)는 너무 자주 새로운 로맨스나 일자를 찾고자 하여 자신의 길에서 지나치게 멀어져 방황하는 것에 대한 경고가 된다. 213

 

악에 대한 관용은 중년이 미덕이다. 몇 년 간의 삶을 경험한 후에 남자와 여자는 고통스럽게 괴로움과 악을 깨닫고 또한 종종 상황을 바꿀 수 없음을 깨닫는다. 중년의 지혜는 바로 이러한 비극적 통찰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214

 

전형적인 유형과는 반대로 사람들은 대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 관용적이고 덜 도덕적으로 된다. 젊을수록 그들의 비타협적 이상주의 때문에 종종 도덕적으로 경직된다. 215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솔로몬의 충고는 중년들이 종종 느끼는 유혹, 즉 자신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하는 태도와 상충된다. 솔로몬의 충고는 귄위의 극점에 있는 남녀에게 세상에는 그들이 이해하고 관장할 수 없는 많은 상황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216

à 환생한 나폴레옹이 깨달아야 하는 진실이다. 이명박도 깨달았으면 하는 진실이다.

 

이 중년의 이야기는 중년의 지혜가 악이나 추상적이고 도덕적인 원칙에 관한 심오한 정신적 통찰과 통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단순한 상식과 더 유사하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다. 중년의 이야기는 또한 평범하고 너무나 인간적인 어떤 것으로서의 악을 드러낸다. 219

 

악은 평범하고 진부하기까지 하다. 219

 

「나는 백만 달러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 당신에게 왔습니다. 그러나 겨우 5센트 값어치의 충고만을 얻어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가 필요로 하는 전부라는 걸 깨달았습니다」220

 

중년의 유머와 기지

 

유머란 그저 웃어넘기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지혜인 것이다. 유머는 중년의 여성과 남성이 인생의 비극적인 면을 다루는 데 큰 힘이 된다. 222

 

심리학자들은 농담이 적개심을 중화시킨다는 사실에 오랫동안 주목해 왔다. 농담과 기지는 참을 수 없고 폭력적인 감정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서로 바꾸어놓는다. 227

 

유머란 그저 웃어넘기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지혜인 것이다. 228

 

유머는 깊은 공감력, 자기 확신, 그리고 창조적 재능과 비례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유머는 대처 능력 중 가장 고귀하고 성숙한 방식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연구자들은 이 점에 주목한다. 한 사람이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보다 많은 유머를 사용한다. 한 사람의 심리적인 행복감이 클수록 유머 감각이 늘어난다. 228

 

우선 남자들은 여성들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기에 여성들보다 유머에 대한 욕구가 훨씬 더 많다. 229

 

프로이트가 지적한 바대로 유머는 인간에게 죽음의 불가피성을 극복하고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해준다. , 죽음조차도 농담의 재료로 만드는 것이다. 231

 

오직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깥에서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을 소재로 농담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과는 상관없는 상황을 볼 때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너무 완전히 상관하지 않을 때는 무관심과 냉정과 객관성만을 지닐 수 있을 뿐이지 유머가나오지는 않는다. 몰입과 적당히 유지되는 거리는 유머의 핵심적인 조건이 된다. 234

 

아이러니란 어떤 것을 인지할 때 그것이 동시에 완전히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확신할 때 거칠게나마 만들어진다. 다른 말로 하면 아이러니란 두 관점을 동시에 견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변증법적이거나 파라독스가 있는 사고이다. 234

 

성숙한 개인은 불확실한 것이나 파라독스를 견딜 힘이 있다. 의식적으로는 서로 모순되는 생각들조차 즐길 수 있는 것이다. 235

 

중년의 고통과 치유

 

젊은이들은 치료되지 않는 상처도, 낫지 않는 고통도 있다는 인생의 어두운 부분을 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반면에 중년들은 인간 조건들의 비극적인 차원을 경험하고 나서야 보다 깊은 동정심을 배우게 된다. 이는 중년들이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게 하는 덕목이 된다. 237

 

융 학파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페르소나는 일단 중년이 되면 붕괴된다. ……페르소나가 중년에 이르러 비틀거리면서 각 개인들은 내면으로 향하도록 강요된다. 이상적으로는 각 개인은 내면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자원들을 발견해야 한다. 이것이 치료와 재생의 내적 에너지이다. 이것이 치료와 재생의 내적 에너지이다. 246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치유자와 자신을 동일하게 생각하기 쉽다. 왜냐하면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돌봐주고 동정심을 갖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역할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251

 

치유가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을 모두 요구하기 때문에 좋은 치료자가 되기 위해 남자들은 돌보는 측면을 지녀야 하고 여성들은 적극적인 힘을 키워야 한다. 251

 

재생과 지하 세계

 

남자들은 내부에 숨어 있는 <여성성>에 접근하면서 치유자가 된다. 259

 

치유의 악마적 측면은 질병이란 사악한 것이며 나쁜 귀신이 원인이라는 거의 전세계적인 인류의 믿음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자신이 그 원인이기 때문에 악마적 존재는 질병을 고칠 수도 있는 것이다. 261

 

중년이 되어서야 젊은 시절의 억압이 사라지고 거칠고 다듬어진 정신적 에너지들이 전면에 나선다. 262

 

악마적인 것에 대한 관용은 각 개인이 악마로 나타나는 것들 뒤로 숨어 있는 원시적 생명력을 발견해 내는 것을 도와준다. 악마로부터 도망치거나 거부하는 것은 원시적인 치유력과의 조우를 알려주는 전주곡이다. 그러나 그런 만남은 동시에 매우 위험하다. 관습적인 선악에 대한 관념을 버린다는 행위는 니체의 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팽창시키는 동시에 독약을 먹이는 행위이기도 하다.264

à 두렵다. 자칫 사회와의 공동 보조를 끊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용의 덕을 세워 생각해 볼 일이다.

 

중년의 개인들은 오랫동안 고통받아야 한다는 자신의 몫을 기억하고 성숙의 생성을 위해 젊은 시절의 영웅주의를 버림으로써 이런 자아 팽창과 원시성을 피한다. 264

 

인생의 샘

 

여기서 함축되어 있는 것은 남성의 행복은 궁극적으로는 여성에게 달려 있다는 가정이다. 이는 젊은이들의 낭만적인 꿈에도 반복된다. 젊은이들은 자기를 잘 보살펴주는 아름다운 여성을 꿈꾼다. 278

à 남성들에게 잠재된 모성의 원형이 아닐까. 아이에게는 세상 그 자체였던 어머니. 그 어    

머니를 대체할 존재를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게 남자의 숙명이 아닐까. 보완재는 있을 지언정 대체재는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남자들은 중년에 힘과 명예의 자리를 버리게 되고 굴욕과 연약함을 배우게 된다. 왕은 고통받는 도중 자기가 버린 왕비가 자신에게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는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고 젊은 시절 그의 무감각과 무지를 고친다. 그의 고통은 치유적이다.279

 

기다림이란 수동성과 무기력함의 징표로 해석되고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조한다. 그러나 황금가지나 다른 중년의 이야기에서는 조금 다르게 이를 그리고 있다. 왕비는 의식적으로 침묵을 택했고 그녀를 드러내도 좋을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그녀의 기다림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현명함에서 나온 것이고 무기력한 희생자라기보다는 판사처럼 행동한 것에 가깝다. 280

 

생명의 나무로서 이는 생명력과 베풂을 상징한다. 이런 두 주제는 중년에는 가장 중심적인 주제이다. 한 사람의 믿음이나 역할 그리고 행동들은 얼마나 인간 생활을 풍부하게 했느냐에 의해 판가름이 난다. 285

 

중년의 원형적 통찰은 인간 관계에 근거한다. 성경의 구절들은 다시 해석해 보자면 남자와 여자는 신의 말씀만으로는 살 수 없다. 286

à 혁명적인 발언이다. 진실인데 참 낯설다. 금기의 영역을 건드린 말이다.

 

긍극적으로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양극이라는 기능은 인간의 이식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은 우리가 인간 생활의 모든 면을 비교하고 대비할 때 항상 쓰는 틀이다. 288

 

연금술에서의 첫 단계는 니그레도nigredo 즉 검은색의 시기이다. 이때 모든 것은 다 부서져서 원형의 물질로 변한다. 이는 우울과 고통을 경험하는 중년과 통한다. 이때가 되면 그 동안 편안하고 친숙했던 역할들은 모두 녹아버린다. 그 다음에 알베도albedo, 즉 백색의 시기가 온다. 이는 젊은 시절에는 억압했지만 중년의 위기시 다시 제기되는 갈등들과 과제들을 다시 재작업하는 것의 비유이기도 하다. 세번째 연금술의 단계가 루베도rubedo, 즉 정열을 포함하는 적색의 시기이다. 이는 무의식 속에 있는 보다 원시적인 치유의 생명력과의 조우를 상징한다. 290

à 연금술이 인간의 성장단계를 이렇게 명쾌하게 설명해주다니. 연금술을 만들어낸 사람들

이 이것을 알고 있었을까.

 

이야기는 상상력이란 시원적 샘물과 인간 영혼의 창조성이라는 보다 깊은 실재로부터 솟아났다. 그리고 이는 중년을 병들게 하는 전복과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통찰과 재생 그리고 치유가 기다리고 있다는 중년 이야기들의 궁극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292

à 그래서 나도 소설을 쓰기로 한 것인가 보다. 무의식에서 벌어지는 일을 아직 섬세하게

   잡아 내지는 못하지만 무의식이란 놈이 점점 궁금해진다.

에필로그

 

그림 형제의 「인생의 시간 동안」이라는 이야기에서 중년이란, 짐을 잔뜩 싣고 가는 가축에 불과한 당나귀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책임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지구를 떠받들고 있는 아틀라스처럼 중년의 남자와 여자들은 젊은이를 먹여 살리고 노인들을 부양하며 이 사회의 버팀목이 되는 것이다. 295

 

중년이 되면 남자들과 여자들은 권력과 무기력, 자발성과 관계성, 승리와 고통에 대한 지혜를 직접 경험한다. 296

 

대부분 남녀 모두를 가장 진지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 자신이 희생자일 뿐 아니라 악한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고 악함이 남들뿐 아니라 그 자신의 마음에도 존재한다는 점을 배우는 일이다. 자신의 한계에 대한 자각이 젊은 시절의 끝없는 희망을 대신한다. 운명이 믿음을 가리게 하는 것이다. 297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절망과 냉소주의이다. 젊은이들이 너무 확신에 찬 것이 문제라면, 중년들은 너무 믿음을 적게 가진다는 함정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치는 위로와 치유를 준다. 297

 

유머는 잠시 동안이라도 다른 사람들 입장에 서게 해준다. 297~298

à 배우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무대에서 떨어져 자신의 연기를 바라보는 여유. 관객의 여유를 갖지 못한 배우는 배우가 아니다. 그저 생활인이다.

 

더욱 기적적인 것은 사람들은 위기에 깊숙이 빠졌을 때 치유의 힘을 발견해 낸다는 점이다. 298

à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건 비극이 나에게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게 아니라 그 환란을 통하여 재생을 예감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궁극적으로는 중년에 이르러 지혜를 얻게 된다. 지혜란 숭고하거나 철학적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인간의 삶 속에 필요한 실제적인 통찰력을 의미한다. 299

 

중년의 남녀는 그들의 이상주의와 선악을 뚜렷하게 정의하는 젊은 시절의 고지식한 도덕주의를 버린다. 윤리적인 판단은 보다 복잡하고 모호하며 불확실하게 변한다. 정치와 윤리와 종교와 철학에 관한 절대적이고 우주적인 진리는 젊은 시절에는 너무나 중요했지만 이제는 단순한 의견들이고 부분적인 진실들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된다. 299~300

 

균형과 변환이 중년에는 보다 진지한 과제가 된다. 301

 

중년의 오랜 허덕임은 자신들의 영혼 속에 깊이 숨어 있는 시원적 원천과 대면할 때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302

 

중년의 방랑 여행은 지혜의 나무로부터 생명의 나무로 가는 여행이자, 의식에 국한된 정신과 죄의식에 갇혀 있는 단계에서 베풂과 창조의 단계로 이행되는 과정이다. 302

à 생각에서 실천으로 옮겨가는 단계다. 베풂은 대상과 관계가 없으면 실현될 수 없는 미덕이다.

 

쉬지 않는 모색은 중년과 중년의 이야기의 주제이다. 그리고 바로 이 중간 지점의 정신이 통합과 변환 그리고 인생 그 자체인 것이다. 304

 

.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을 읽고 나에게 주어진 현재의 시간에 더욱 감사하게 되었다.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는 시기가 중년임을 새삼스럽게 알았다. 가을이 멀쩡한 심장에 울렁거림을 불러오듯 청년기에 쌓인 침잠물들이 썩고 발효되어 지긋한 향기를 발산하는 때가 아닌가. 유감스럽게도 관계와 일에 치여 가장 갈등이 많은 때이기도 해서 호시절을 실감하기가 쉽지 않다.

 

중요한 사실은 찾아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거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을 잘 찾아먹은 듯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떠도는 이야기들로 어쩜 이런 감동스러운 자기류를 창조해 냈겠는가. 이 책은 서문, 머리말, 1부 서른 이후, 젊음의 마법을 풀어놓다, 2부 서른 이후, 남자가 가는 길과 여자가 가는 길, 3부 서른 이후, 운명을 받아들이다, 4부 서른 이후, 삶을 깨닫다, 에필로그로 엮여져 있다. 구성이 치밀하다는 느낌보다는 입에 딱딱 달라붙는 목차다. 저자의 삶을 뼈대로 차례와 내용을 구성한 느낌을 받았다. 개인의 이야기에서 원형을 찾아내는 솜씨와 통찰이 탁월하다. 이야기와 저자의 Gap을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책이다. 울림의 대상이 누구보다 자신이어야 함을 통쾌하게 보여 준 책이다. 한 수 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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