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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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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6일 19시 55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니코스 카잔차키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부리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터키의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킨다. 1908년 파리로 건너간 그는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게 된다.

자유에 대한 갈망 외에도 카잔차키스의 삶과 작품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여행이었는데 1907년부터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두루 다녔고, 이때 쓴 글을 신문과 자지에 연재했다가 후에 여행기로 출간했다. 1917년 펠로폰네소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이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탄광 사업을 했고, 1919년 베니젤로스 총리를 도와 공공복지부 장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1922년 베를린에서 조국 그리스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참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카잔차키스는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적인 행동주의와 불교적인 체념을 조화시키려 시도한다. 이는 이듬해부터 집필을 시작한 <붓다>와 대서사시<오디세이아>로 구체화된다. 이후에도 특파원 자격으로 이탈리아, 이집트, 시나이, 카프카스 등지를 여행하며 다수의 소설과 희고그 여행기, 논문, 번역 작품들을 남겼다. 대표작의 하나인 <미할리스 대장>과 <최후의 유혹>은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교회로부터 맹렬히 비난받고 1954년 금서가 되기도 했다. 카잔차키스는 1955년 앙티브에 정착했다가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중국을 다녀온 뒤 얼마 안 되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두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었고,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에 비견될 만큼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고 있다.

우선 첫책을 살펴보았다. 23세,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에세이 <병든 시대>와 소설 <뱀과 백함>을 출간함. 희곡 <동이 트면>을 집필함. 헉. 타고난 작가셨구나. 나는 스물 셋 시절에 뭘 했었나. 열 여덟에 대학입학한 이후 내내 우울증에 시달렸다. 지금은 참 말하기도 쑥스럽지만 우짜리.. ‘대학만 가면 무조건 행복해진다더니..’ 세상에 사기당한 느낌이었다. 누구라도 붙들어 잡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넘쳐나는 자유가 오히려 저주처럼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하여간 이러저러한 이유로 1993년 1년을 보기 안스러울 정도로 방황한 끝에 내린 결론은 ‘아무래도 나는 독서실이 체질인가보다.’ 결국 휴학을 하고 평생 공부만 하면서 살아도 될 것 처럼 보이는 법관을 목표로 재수를 선택했다. 그치만 대학물을 1년이나 먹고 돌아간 독서실은 말 그대로 ‘감옥’이었다.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한다니 공부를 하면서도 자꾸만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슬그머니 지원 학과를 ‘심리학과’로 바꿨다. 이를 알게 된 부모님은 수심에 잠기셨다. 그럴거면 재수는 뭐하러 했니. 차라리 ‘신문방송학과’가 취직은 더 잘 되지 않겠니. 결국 이래저래 눈치를 보다 ‘경제학과’를 선택했었는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해 경제학과 합격점수가 법대보다 높았다. 불합격 통지를 받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면 나는 대체 그 1년 무슨 짓을 했던 걸까?

원래 다니던 학교로 복학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뭘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남들 다 하는 영어공부도 취직공부도 해본 적이 없다. 뭘해도 남들보다는 잘 할 것 같은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내게 스물셋은 현실적 자각이 시작된 나이였다. 졸업이 코앞인데 당췌 나라는 사람이 쓸만하다는 걸 증명해줄 근거가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던 거다. 이대로는 정말 죽도 밥도 안 되겠구나. 남들이 나보다 멍청해서 저러고 사는 게 아니었구나. 정신이 번쩍 났다. 뒤늦게 현실에 뛰어들 준비를 시작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기에 딴 생각할 틈이 없었다.

카잔차키스가 <동이 트면>으로 희곡상을 수상(24세)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앙리 베르그송과 니체를 호흡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던 20대 후반 나는 세상이 요구하는 틀에 나를 맞추기 위해 기를 쓰며 보냈다.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대가로 얻는 것이 *9***2 다섯자리 숫자 사원번호였다. 참..차이가 나도..이리 나서야 원! 그가 영혼의 양분을 위해 보냈던 시간을 육체를 위해 낭비한 어리석음의 대가를 치루고 있는 거구나. 게다가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난 지금 이 순간마저도 선뜻 현실을 포기하고 영혼의 작업에 올인하기가 망설여지는 걸 보면 그와 나는 처음부터 격이 다른 존재였던 게 분명하구나. 아. 이럴 바에야 끝까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뛸 수 있었다면 차라리 더 나았을텐데... 좌절의 구렁텅이로 진입하려던 찰라. 흥미로운 자료가 눈에 띈다.

1910(27세)

.... 생계를 위해 어린이책을 집필함

1917(34세)

갈탄을 캐려고 시도함..(아마 경제적인 이유로)

1930(47세)

돈을 벌기 위해 두 권짜리 <러시아 문학사>를 출간..

1932(49세)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프레벨라키스와 공동작업을 구상함. 여러 편의 영화 시나리오와 번역을 구상했으나 대체로 실패함

1933(50세)

돈을 벌기 위해 2,3학년을 위한 세 권의 교과서를 집필함. 이 중 한권이 교육부에서 채택되어 재정 상태가 잠시 나아짐

1936(53세)

돈을 벌기 위해 왕립 극장에서 공연 예정인 피란델로의 <오늘 밤은 즉흥극>을 번역함

1952(69세)

성공이 곤란을 야기함. 각국의 번역자들과 출판인들이 카잔차키스의 시간을 점점 더 많이 빼앗게 됨

위대한 작가 카잔차키스도 결국 현실의 구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거다. 그 역시 나와 같은 생활인으로서의 굴욕을 피해갈 수 없었던 ‘평범한’ 인간이었던 거다. 그가 이룬 빛나는 업적도 그 어렵디 어려운 선택 사이의 균형의 산물이었던 거다. ‘위대함’이란 처음부터 선택받은 자들의 몫이었다구! 핑계를 대며 도망치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한번 포커스를 나 자신에게 돌린다.

앞서간 자들이 당한 시련도 겪지 않고 너희는 至福의 낙원에 들어가려 하느냐 139_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더불어 또 하나의 희소식!! 그가 자서전 <영혼의 자서전>에 “내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으로 꼽은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중 조르바는 그가 영혼이 아닌 현실의 과제를 위해 선택했던 길위에서 만난 사람이 아니었던가?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1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뻘 속에 갇혀 있어서 무디고 둔한 것이다. 영혼의 지각 능력이란 조잡하고 불확실한 법이다 13

산투르는 짐승이요.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25

2

그 때는 내 피가 뜨거웠어요. 도무지 <왜>라든지 <어째서> 같은 걸 생각해볼 수가 없었으니까요 34

또 한가지 어려운 것은 조르바를 위해 단순한 설명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36 _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조르바에게 스며들 수 없었겠지? 피곤하다고 피하지 말자. 눈앞에 숙제가 있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임을 잊지 말자

씨앗이 친절하고 정직한 곳에서는 왜 꽃을 피우지 못하지요? 왜 피와 더러운 거름을 필요로 하느냐는 것입니다 37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 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의 노예근성이 아닐까? 이상이나 종족이나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따르는 전형이 고상하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좀 더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을 벗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 39 _ 고전적인 고민거리. 나의 경우 ‘天福을 위해 현실적인 의무에 쏟아왔던 정열을 희생해야할 것인가?’의 문제로 구체화되는 거겠지? 60세의 카잔차키스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면 내가 아직 이 문제의 영역에 있다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 아니겠는가? ^^

열매가 굵어지는 소리와 터지는 소리가 들려요 41

인생이 갑자기 동화, 아니면 세익스피어의 연극 <템페스트>의 도입부가 된 꼴이었다 45

3

표현해야 할 것은 위엄있게 표현하지만 엄격한 행간에서는 의외의 감성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49

과거의 필요가 여전히 그들의 행동 리듬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었다 50

내 가슴도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희미하긴 했지만 호소하는 듯한 소리가 내 내부에서 일었다. 나는 누가 나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소리는 무서운 예감과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내가 혼자 있을 때면 어김없이 나에게 호소하고는 했다 50

목소리가 수평아리처럼 쉬어가는 것으로 보아 젊은이는 제가 부르는 노래의 아픔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51

代를 이어 사람들은 시인의 혼으로 대화를 나누었고 마침내 노예 생활을 자유로 바꾸는 것이었다 51

그의 얼굴은 웃음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51

육체란 짐을 진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영혼을 팽개치고 말거라고요.

나는 당시 육신의 쾌락을 업신여기고 있었다. 가능하면, 먹어도 부끄러운 짓이라고 하는 것처럼 은밀하게 먹어치웠다 52 _ 음...반성하자!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거든요 53

지금 우리앞에 있는 건 육반입니다. 우리 마음이 육반이 되게 해야 합니다. 내일이면 갈탄광이 우리 앞에 있을 겁니다. 그때 우리 마음은 갈탄광이 되어야 합니다. 어정쩡하다 보면 아무짓도 못하지요 54 ★ _ 이게 어렵다. 참... 그치만 하루만큼씩 나아지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지? ^^

나는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야 힘이 펄펄 솟아납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늙은 암탉을 먹기 전에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 55 _ 명쾌한 조르바!

술 속에 있던 장난꾸러기 마귀가 여자를 세월 좋던 옛 시절로 되돌려 놓았다. 여자는 다시 옛날처럼 다정하고 유쾌하고 콧대높은 여자로 변했다 57 _ 그래 이게 마법인 거지. 내 앞에 있는 바로 그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거. 것도 마음을 다해.

현재가 중요한 거지! 61

4

조용히, 애무하듯이 그는 꿀처럼 짙고 느린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 67

조르바는 저항도, 질문도 하지 않고 행복하게 떠내려가고 있었다 67

나 자신도 햇살이 장밋빛으로 들어오는 아침에 가만히 몸을 일으키는 행복감에 저항하기 어려웠다 67

사람, 동물, 나무, 별은 모두가 상형문자, 그 상형문자를 해독하려 하고 그 의미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화 있을진저, 보는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사람이며 동물이며 나무며 별이라고 생각할 뿐. 이해할 나이에 이르면 때는 늦는 법 68 _ 엥! 이거 난데...하지만 안심하자. 나는 최소한 그들을 취조하지는 않으니까. 나는 그저 그들이 스스로 전해주는 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을 뿐

나는 그 모든 것에 숨겨진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68 _ 억지로 알아내려 하지 말자. 그냥 다가오는 메시지를 즐기면 그뿐.

논리에 의존하지 않고도 세계의 기원이며 생성이며 사멸을 확연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69

여자란 건강에 해롭고 토라지기 잘하는 동물이랍니다. 누가, 사랑한다, 갖고 싶다고 하면 여자는 웃음을 터뜨립니다. 여자는 당신을 전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당신이 여자에게 입맛이 없을 수도 있고, 또 여자가 싫다고 할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건 문제가 안 됩니다. 여자를 보는 남자는 모두가 여자를 갖고 싶다고 말해야 합니다. 여자란 가엾게도 그걸 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남자라면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고, 여자를 기쁘게 해줘야하는 겁니다 70 _ 순간 반감이 치솟았으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치만 조르바. ‘~해야한다.’고 말할 필요까진 없잖아요? 아무리 당신이라도 남의 느낌에까지 관여하는 건 오버라고 생각해요. 그런 값싼 처세라면 당신까지 떠들어대지 않아도 이미 차고 넘치니까요.

할마시는 세레나데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여든 살에! 두목 알겠지요? 71 _ 하지만 그게 당신이 말하는 그런 ‘동정적’ 세레나데였을까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진심으로 어여삐여겨줄 그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거겠죠.

인간의 영혼 구석구석을 누빈 사람 77

나는 저 여자란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거요 77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78 _ 실보다 득이 많은 거 인정해요. 부분적으로 수용해 볼께요.

나는 다른 양식의 인생을 살아보려고 노력했고 실제적인 일을 사랑하고 내 수중으로 떨어진 인적 자원을 사랑하고 이해하려고 애썼으며, 언어와 관련된 것이 아닌 살아 있는 인간들에게서 오래 그리던 기쁨을 맛보려고 했다 79 ★ _ 인생에는 선택의 영역과 숙명의 영역이 있는 것 같다. 카잔차키스가 ‘다른 양식의 인생’에 대한 결핍을 느꼈다면 아마도 ‘선택의 영역’에 과한 비중을 할애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자유로운 ‘선택’만으로 채워진 인생을 산다해도 이런식의 결핍이 남는다는 얘기. 그러니 ‘주어진’ 영역을 그리 끔찍하게 여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두목이 그렇게 다독거리면 인부들 자신이나 우리 일에 방해가 됩니다. 무슨 짓을 해도 당신은 핑계를 만들어 주는 꼴이에요...두목이 세게 나오면 인부들도 두목을 존경하고 일도 잘합니다. 두목이 물렁하게 나오면 인부들은 일을 몽땅 두목에게 밀어버리고 나 몰라라 한단 말입니다 80

인생이란 오르탕스 부인처럼 단순하고, 살아 볼 만한 것이며, 진부하지만 느긋하고 너그러운 것인 듯했다 81

인간이란 짐승이에요...이 짐승을 사납게 대하면, 당신을 존경하고 두려워해요. 친절하게 대하면 눈이라도 뽑아 갈 거요. 두목, 거리를 둬요 82 _ ★ 이해가 가는 가운데 잘 모르겠는 부분..@@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조르바뿐이기 때문이오 82

강인했기 때문에 그토록 인간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그들과 함께 살고 일하려는 그를 나는 존경했다. 나라면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금욕주의자가 되었거나 그들을 가짜 깃털로 꾸며놓을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83 ★★★★★

붓다에서 벗어나고 모든 형이상학적인 근심인 언어에서 나 자신을 끌어내고 헛된 염려에서 내 마음을 해방시킬 것.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과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접촉을 가질 것 84 ★★★ _ 이 시기 이미 카잔차키스는 ‘종이’에 염증을 느꼈던 것 같다. ㅎㅎ 조르바가 버찌에 물렸듯 말이다.

5

두목, 사람들 좀 그대로 놔둬요. 그 사람들 눈 뜨게 해주려고 하지 말아요. 그래, 뜨여놓았다고 칩시다. 뭘 보겠어요? 비참해요! 두목, 눈 감은 놈은 감은 대로 놔둬요. 꿈꾸게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93 ★

나는 타파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93

이 땅의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도 이제는 암호 이상의 예언을 들려줄 수 없다. 암호가 모호할수록 선지자는 위대한 것이다 94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 95

당시 나는 한밤중에 혼자 있을 때, 주위가 침묵에 휩싸이면서 그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96

이제 초자연적인 짐에서 나 자신을 해방시킬 대가 온 것이다 97

쓰는 게 아니라 받아 적는 것이었다. 연민과 거부와 대기로 이루어진 전 세계가 내 앞에 나타났다 97

6

돌연한 영감의 돌풍은 한갓 꿈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언어에 감금되고 언어에 의해 타락한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98

뿌리를 깊이 내리다 서로 만나 하나가 되는 모든 사람의 영혼은 얼마나 흡사한 것인가! 99

원래 까마귀는 까마귀답게 점잖고 당당하게 걸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까마귀에게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려 보겠다는 생각이 난 거지요. 그날로 이 가엾은 까마귀는 제 보법을 몽땅 까먹어 버렸다지 뭡니까. 뒤죽박죽이 된 거에요. 기껏해야 어기적거릴 수 밖에는 없으니까 말이오 101

당신은 머리끝에서 손톱끝까지 조르바라는 겁니다 104

우리가 여기 온 건 그것 때문이 아닌가요? 생각을 실천한다는 것 104

이제 좀 살 것 같군. 피를 좀 뽑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이제 말할 수가 있겠어요 107

나는 원래 중심을 못 잡는 놈입니다. 악마는 이쪽에서 당기고, 하느님은 저쪽에서 당기지요 108

내 속에는 소리치는 악마가 한 마리 있어서 나는 그놈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감정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면 이놈이 소리칩니다. <춤춰!> 그러면 나는 춤을 춥니다. 그러면 숨통이 좀 뚫리지요 109

조르바라는 학교에 들어가 저 위대한 진짜 알파벳을 배울 수 있다면...내 인생은 얼마나 다른 길로 들어설 것인가! 내 오관과 육신을 제대로 훈련시켜 인생을 즐기고 이해하게 된다면!...내 정신을 육신으로 채워야 했다. 내 육신을 정신으로 채워야 했다. 그렇게 하자면 내 내부에 도사린 두 개의 영원한 적대자를 화해시켜야 했다 112 ★★★★

그는 소리를 지르다 개처럼 짖다 말처럼 힝힝 거리다 수탉처럼 꺼이꺼이 울었다. 이 텅빈 밥에 그의 영혼은 동물과 친화한 것이었다 113

하고 싶지 않대요...그러니 억지로 시키지는 말아야지요 116

7

지금 한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120

성자가 성상에서 당신을 보며 윙크하고 축복을 보내는데 당신은 그걸 키스라고 부를 수 있겠어요? 121

여자가 영원한 사업이란 이야기는 대체 몇 번이나 해야 합니까? 131

8

모든 사람에겐 그 키에 알맞은 행복이 있다는 뜻이겠네 135 ★ _ 그렇다고 지금의 자리에서 안주해 성장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에 힘쓰되 현재에서 찾은 행복을 그 동력으로 삼으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성장’의 과정에서 힘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는 자칫 성장욕을 부정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건 그들에겐 저주에 다름이 아니다. 존재는 모두 저마다의 생존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웃으면서도 몸을 떨고 있었지 138

우리에겐 감정을 숨기는 버릇이 있어서 그때 하지 못했던 내 생각을 새삼스럽게 밝혀 보는 것일세 139

그러나 어찌하랴. 불을 끄고 마누라를 품고도 자꾸 저 여자를 상상하게 되는 것을.. 145 _ ㅋ

“말썽이 생기는 건 딱 질색이에요!” 내가 짜증으로 응수했다.

내가 짜증을 낸 것은 내 내부의 욕망 역시 암내를 풍기며 지나간 그 탄탄한 몸을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50 _ ★ 카잔차키스가 위대한 이유..이런 자기를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과연 그만큼 용기있는 작가일 수 있을까? 쩝...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란 말이오! 151 _ 헙..그래서 당신이 멀게 느껴지는 거에요. 당신에게 닿기 위핸 그 사이에 징검돌이 몇 개는 더 필요할 것 같아요.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의 사랑과 책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라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151 _ 그렇담 나도 타락해 있는 게 맞다. --;;

당신은 다른 천국을 찾고 있는 모양인데, 한심해요. 그런 건 없어요! 신부가 하는 말은 믿지 말아요. 그런 건 없으니까! 152 _ 지금이 천국이죠? 완전 동감!!!

당신은 영원히 귀머거리의 집 대문만 두드리는 군! 155

9

10

와요. 어서 와요. 인생은 한줄기 빛처럼 지나가는 것. 어서 와요. 와요. 와요. 너무 늦기 전에! 168

그러나 밤이 되면 내 마음은 무기를 놓았다. 문이 열리면서 과부가 들어왔다 169 _ ㅋㅋ 글 전반에 이르는 최고의 갈등. 삼십대 중반의 기혼자에게 주어진 가장 힘겨운 도전이 바로 이 문제인가부다.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나는 갑자기 그 모든 것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174

확대경으로 음료수를 들여다보면 물에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쬐그만 벌레가 우글거린답디다. 보고는 못 마시지...안 마시면 목이 마르지...두목, 확대경을 부숴 버려요. 그럼 벌레도 사라지고, 물도 마실 수 있고, 정신이 번쩍 들고!! 175 ★★★★★★ _ 최고의 처방!!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았다. 미적지근하고 모순과 주저로 점철된 몽롱한 반생이었다 178

하느님, 회사의 이익, 그리고 과부가 조르바의 머릿속에서는 아무 모순도 없는 조화를 이뤄내고 있었다 179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180

11

과부의 실룩거리는 엉덩이, 웃음, 눈, 가슴을 내 생각에서 몰아내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몰아낼수록 다시 내 생각에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숨이 막혔다 182 ★ _ 이렇게 쓸 수 있냐구..아니 너 네 속에 이런 생각들이 있다는 거 인정할 용기도 없는 거 아니니? 대답하라. (갈등의 현장으로부터 25년이 지난 다음이니까 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당시의 카잔차키스는 이혼중이었다. 참고하자! ㅎㅎ)

여자란 늘 자기 운명을 슬퍼하는 동물이랍니다 184

나는 우주와 인간이 그처럼 다정하게 맺어진 예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195

12

인간 본질은 야만스럽고, 거칠며 불순한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과 육체와 불만의 호소로 이루어진 것이다 198

최후의 인간(모든 믿음에서 모든 환상에서 해방된, 그래서 기대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어진)은 자신의 원료가 되어 정신을 산출한 진흙이며, 이 정신이 뿌리내리고 수액을 빨아올릴 토양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인간이다. 최후의 인간은 자신을 비운 인간이다 198

<내 기필코 언어를 동원하고 언어의 주술적인 힘을 빌리고 그 마술적인 율동에 의지하여 그를 포위하고 무찔러 내 오장 육부에서 내쫒고 말리라.>하고. 불경을 베껴 쓴다는 것은 더 이상 문학을 위한 공부일 수는 없었다 199 ★★

예술이란 사실은 마법의 주문...예술은 우리의 오장 육부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의 살인적인 힘을 충동질한다. 필사적으로 살인과 파괴와 증오와 타락을 충동질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술은 다시 달콤한 노래로 다시 나타나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이다 199 ★★

그리스의 바위에 달라붙은 삿갓조개, 제 지위를 놓치지 않으려고 조직에 달라붙어 있는 관료같은 자여 203 _ 조직에 달라붙어 있는 것 자체를 자책하진 말자. 카잔차키스...그대로 접수하기엔 넘 이상이 강하시잖아.

죽기 전에 되도록 많은 땅과 바다를 보고 촉감하고 싶었다 206

행동하기 싫어하는 내 스승이여. 행동, 행동...구제의 길은 그것뿐이네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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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이 두 조르바가 맞붙어 싸워야 합니까? 215 _ 그렇게 자유로워보이는 그도 역시 싸움을 멈추지 못한다. 아마 숨이 붙어있는 한 그렇겠지? ^^

당신 속에도 악마 한 마리가 있지만 아직 이름은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걸 모르니까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 거예요. 두목, 그 놈에게 세례를 베풀고 이름을 지어 주세요 216 ★★★

속에 불이 나도 손끝 하나 대어서는 안 됩니다 221

나는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자유를 원하지 않아요. 그런데 여자도 인간일까요? 224 _ ㅎㅎㅎ

인생의 껍질(논리와 도덕과 정직성의 껍질)을 깨고 표면으로 뛰쳐나오려는 이 원시적인 인간에게 그저 감탄만 하고 있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우리에게는 그토록 편리한 자질구레한 덕성이 그에겐 없었다 225

그는 인간의 원초적인 문제에 지배당한다. 조르바는 이들 문제를 목전의 급한 필요로 인식하는 것이다 225

그 소리는 조르바 존재의 심연에서 울려나오는 것이었고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보잘 것 없는 껍질이 깨어지면서 불사의 야수, 털복숭이의 신, 무서운 고릴라로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226

조르바는 내 내부에서 떨고 있는 추상적인 관념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살아 있는 육체를 부여했다. 조르바가 없으면 나는 다시 떨게 되리라 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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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전처럼 필사적으로 서둘지는 않았다. 포위망을 뚫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 터였다 229

오르탕스 부인은 고귀한 쌍돛대의 쾌속 전함 같았고 부인의 애인들은(오르탕스 부인은 자그만치 현역으로 45년을 뛰었으니) 그 위에 탄 승무원들 같았다 233 ★ _ 이 아줌마의 일생. 음...이 아줌마는 과연 이번 생에서 자신의 숙제를 다 풀어낼 수 있었던 걸까?

부인의 실제적인 여자 마음은 다른 것, 이를테면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것을 바랐다 234

나 혼자만 발기 불능의 이성을 갖춘 인간이었다. 내 피는 끓어오르지도, 정열적으로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했다. 나는 모든 것은 팔자소관이라고 주장하면서 겁쟁이로 사태를 바로잡아 보려고 했던 터였다 240

죽자니 청춘이오, 살자니 고생이라! 240

내겐 불만이 없어요. 뿌리가 깊이 내렸으니까. 그러나 이놈의 인생을 또 한번 살아야 한다면 파블리처럼 목에다 돌을 꼭 매달고 물에 빠져 죽고 말겠소. 인생살이는 힘든 것이오. 암, 힘들고 말고...팔자가 늘어져봐도 별수가 없어요. 저주받아 마땅하지. 241

내 가슴은 기쁨으로 터질 것 같았다 243

15

내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경고였다. 생명이란 모든 사람에게 오직 일회적인 것, 즐기려면 바로 이 세상에서 즐길 수 밖에 없다는 경고였다. 이토록 끔찍한(동시에 동정적이기도 한) 경고를 들은 마음은 약점, 천박함, 나태 그리고 헛된 희망을 극복하고, 전력을 기울여 영원으로 흘러가는 시간에 매달리는 법이다 248

동행이 있어서 둘이서 웃고 떠들다보면 파도와 새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니, 새와 파도가 말을 걸지 않는지도 모른다. 둘이서 수다의 구름속을 거니는 걸 보고 입을 다물어 버리는지도 모른다. 248

종교는 내 내부에서 변질하여 예술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253

나는 순간순간이 영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254 ★

나는 맨몸을 땅과 바다에 밀착시키고 이 사랑스러운, 그러나 덧없는 것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다 255

자라면서 나는 <영원>이라는 말, <사랑>,<희망>,<국가>,<하느님> 같은 말 쪽으로 가파르게 기울어졌다. 한 단어 한 단어를 정복하면서 나는 흡사 위험에서 벗어나 무럭무럭 발전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나는 겨우 말을 바꾸어 놓고 그것을 구원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셈이었다. 그런 경력이 있는 내가 2년 전부터는 <붓다>라는 말에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확신했다. 붓다는 최후의 우물, 마지막 심연의 언어이며 영원한 구원의 문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256 _ 天職의 의미. 그것을 찾았다고 해서 그리고 거기에 충분히 몰두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고 해서 삶의 모든 문제로부터 완전히 도망칠 수는 없다. 한끼 배불리 먹어도 때가 되면 배가 고프게 마련이니까. 그게 살아있다는 거니까. 하지만 어차피 배고파지긴 마찬가지라하여 눈앞의 산해진미를 못 본 척 한다면 그 또한 위선이 아니겠는가? 다음 일을 걱정하느라 현재의 기쁨을 훼손하지 않는 것. 이것이 적어도 자신의 기쁨을 찾은 자의 나아갈 바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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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던 광맥은 바로 이것이구나! 더 무엇이 필요하랴...264

그와 함께 있으면 일은 포도주가 되고 여자가 되고 노래가 되어 인부들을 취하게 했다 264

낮은 사내들 시간이야. 밤에는 즐기고. 그러니 밤은 계집들 거지 265

명상도 일종의 광산이 아닌가. 그럼 나도 파야지.. 265 ★★★★★★★_ 자기와 다른 조르바를 무조건 동경만하던 그에게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자기 다움을 받아들이는 것..그것이 시작이 아닐까

자기 자신 안에 행복의 근원을 갖지 않은 자에게 화 있을진저!

남을 즐겁게 하려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금생과 내생이 하나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266

세상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은 것이에요 267 ★★★ _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고마운 지식. 내가 善이라고 동경하는 것도 惡이라고 혐오하는 것도 ‘나’라는 좁디 좁은 맥락을 벗어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우리들의 정신도 이와 같아요. 정신을 한 곳, 오직 한 곳에 집중시키면 당신도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지요. 알아듣겠어요? 조르바!

닥쳐요, 닥쳐! 왜 내 마음에다 독을 푸는 겁니까? 나는 여기, 이대로가 좋아요. 왜 사람의 기를 죽이는 겁니까? 268

두목, 당신은 당신의 수도원을 세우고 싶어 해요. 수도원이 서면 수도승 대신에 당신 비슷한 펜대 운전사들을 몇 끌어다 놓을 거고, 거기에서 밤이나 낮이나 뭘 끼적거리면서 세월을 보낼 거요 270

음식이 드디어 기적을 일으켰도다! 주렸던 육신은 조용해지고....질문을 퍼붓던 영혼도 잠잠해 졌도다!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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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몸처럼 병든 마음은 동정과 역겨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277

산을 오르다 보니 내 마음의 영역을 넘어 속세와 자질구레한 근심을 지나 더욱 고상한 경지로, 일상사의 유쾌한 진실에서 험한 관념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280

마귀 한 마리씩 안 품은 놈은 하나도 없어...뭐가 답답해서 속세로 기어내려가 원하는 걸 실컷 처먹어 대가리를 씻어내지 못한담? 285

내가 뭘 먹고 싶고 갖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 줄 아십니까? 목구멍이 미어지도록 처넣어 다시는 그놈의 생각이 안 나도록 해버려요 285 ★_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게 있다면 바로 그게 운명이다. 운명의 대상을 찾았다면 그땐...그래..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그와 함께 하지 못할 바에에 어차피 살아도 살아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 뻔하니까...

터질 만큼 처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금욕주의 같은 걸로는 안 돼요. 생각해봐요. 두목. 반쯤 악마가 되지 않고 어떻게 악마를 다룰 수 있겠어요?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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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사랑으로 흐르고 있었다 294 _ 후~ 아름답다.

별 아래서 울고 묵상하면서 그는 공포로 떨고 있는 자신의 불쌍한 인간의 육신을 달랬다294

소수의 사람, 인간성의 꽃 같은 사람만이 이 땅 위의 덧없는 삶을 영위하면서도 영원을 살지요 297

내가 느끼는 신선하고 상큼하고 소박한 희열 자체가 하느님인 듯했다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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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원대한 희망(결혼)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며 빛을 발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늙은 세이렌은 매력을 깡그리 상실한 것이었다. 세이렌은 과거를 말끔히 지우고 파샤와 터키 유지들과 제독들에게서 얻어 낸 깃털 장식을 모조리 벗어 버린 것이었다. 부인에겐 진지하면서도 존경을 받는 범부, 착하고 현숙한 아내 이상의 열망은 더 이상 없었다 307

조르바의 무릎은 천 번 하고도 한 번 더 난파했던 그 가엾은 여자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한치의 땅이었다 308

조르바는 허구와 진실이 서로 뒤섞여 오누이처럼 닮아 버리는 경지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309

여자는 드디어 오래 갈망하던 항구에 입항한 것이었다. 노래하고 춤추며 여염집 숙녀를 우습게 보던 전성시대...그러나 부인의 가슴은 갈가리 찢겨 나가는 것 같았을 터이다. 진한 화장에 향수까지 잔뜩 끼얹고 요란한 옷을 펄럭거리며 알렉산드리아, 베이루트, 콘스탄티노플 거리를 지나노라면 어쩌다 젖꼭지를 아이에게 물린 여자를 보는 수가 잇는데 그러노라면 자기 젖가슴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젖꼭지가 빳빳하게 일어서며 아이의 입술을 그리워했을 터이다. <서방을 얻고, 아이를 가져야지...> 이것이 오랫동안 꾸어온 부인의 꿈이었다 315

인생의 신비를 사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을 몰라요 317

그 양반들은 여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킨 겁니다. 언젠가 시골 구석을 다니다 이 양반은 욕망과 회한으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노처녀, 혹은 아리따운 유부녀를 보았습니다. 남편은 멀리 떠나고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 양반은 성호를 척 긋고 변장합니다. 여자가 좋아할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러고는 그 여자 방으로 들어갑니다 317 _ ㅋㅋ 조르바다운 해석. 근데 정말 그랬던 건 아닐까...세상을 향한 참을 수 없는 연민으로..

오, 하느님. 언제면 좀 편히 쉴 수 있을까요? 죽을 지경입니다. 317

상상력에도 함정이 있어서 그는 이따금 거기 빠지기도 했다. 그는 자기가 신바람 나게 지어낸 이야기를 실제로 믿기 시작했다 319 _ 조르바가 누린 행복의 비결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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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런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324

내가 나 자신을 제법 진짜 사내라고 생각했을 때는 계집에게 눈 한 번 돌리지 않았어요. 잠깐 만져 보고는, 수탉처럼 오다가다 말입니다. 그러고는 갈 길을 갔습니다. 나는 자신을 타일렀지요. <더러운 족제비들, 저것들은 내 힘을 쭉 빨아버리고 말 것이야. 퉤! 계집은 지옥에나 가라! > 326 _ 결국은 균형의 문제인 것이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이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329

나는 조르바란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버린 것이다 331 _ ★★★★★ 길이 달랐던 것 아닐까? 육식동물은 고기를 먹어야 살고, 초식 동물은 풀을 먹어야 산다. 사슴이 사자의 용맹함을 배우려고 고기를 주식으로 삼겠다고 마음먹는 게 현명한 일일까? 사자가 사슴의 초연함이 부러워 풀만 먹겠다 다짐했다고 상상해보자. 문제는 자신이 사슴인지 사자인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사슴이 본인의 사슴성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선, 그렇다 한번은 고기맛을 볼 필요도 있는지 모른다.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해질 때까지는 실험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자기를 찾는 실험으로 무너질 존재 같으면 살아있어도 그저 무력한 고깃덩이 이상의 가치가 있을 턱이 있을 리 없을 테니까.

두목, 저기 저 건너 가슴을 뭉클거리게 하는 파란 색깔, 저 기적이 무엇이오? 당신은 저 기적을 뭐라고 부르지요? 바다? 바다? 꽃으로 된 초록빛 앞치마를 입고 있는 저것은? 대지라고 그러오? 이걸 만든 예술가는 누구지요?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조르바, 혹 돌아버린 건 아닌가요?

무얼 비웃고 있어요? 당신 눈에는 안 보이는가요? 두목, 봐요. 저 모든 기적 뒤에 도사리고 있는 마술을 말이오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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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만큼 젊었더라면! 어디든 한번 이 대가리를 처넣어 볼 겁니다. 일, 포도주, 사랑, 뭐든 말이오. 나 같으면 하느님도 악마도 두렵지 않을 겁니다. 젊음이라는 건 그런 겁니다 340 _ 그런 거란다. 명심하자! ^^

몇 번 말했지만 다시 말하건데, 하느님이나 악마는 하나고 똑같은 거에요. 342

일과 술과 사랑에 자신을 던져 넣고, 하느님과 악마를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342

나는 돌아서고 싶었다. 그러나 조르바의 말이 내 머리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었다. <바다, 여자, 술...>

“납니다. 들어가게 해주세요.” 내가 대답했다.

나는 공포에 사로잡힌 채로 이 한마디를 겨우 했다. 그러나 돌아서고 싶었다. 몹시 창피했다. 나는 그런 나 자신을 격려했다.

“나라니, 내가 누구예요?”

부인이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다가와 허리를 구부렸다 344

내 존재의 심연에서 전날 밤에 느낀 즐거움이 솟아올라 필경은 흙으로 빚어졌을 내 육체라는 대지에 물을 대어 주는 것 같았다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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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피가 덥고 뼈가 단단한 사나이. 슬플 때는 진짜 눈물이 뺨을 흐르게 했다. 기쁠 때면 형이상학의 채로 거르느라고 그 기쁨을 잡치는 법이 없었다 362 ★★★★★ _ 조울증. 대체 누가 만들어낸 단어야! 이 단어와의 연관성을 피하느라 내가 놓쳐버린 아름다운 순간들이 아쉬울 뿐이다. 기쁨도 슬픔도 아낌없이. 감정을 위한 근육을 힘껏 쓰며 살자. 그렇게 살아내야 진짜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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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했던 말년, 참아 내어야 했던 숱한 조롱과 험구, 문 앞에서 두꺼운 털양말을 짜며 홀로 보내어야 했던 슬픔 밤도 사라져 가고 있었다 375 _ 오르탕스 부인과 ‘엄마는 부탁해’의 엄마가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을까? 어떤 삶이 더 낫다고 볼 수 있을까? 바보같은 질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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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년 동안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을 겁니다.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50톤 씹어 삼켰을 테지요. 그래서 얻어낸 게 무엇이오? 389

조르바, 우리는 구더기랍니다. 엄청나게 큰 나무의 조그만 입사귀에 붙은 아주 작은 구더기지요. 이 조그만 잎이 바로 지굽니다. 다른 잎은 밤이면 가슴 설레며 바라보는 별입니다. 우리는 이 조그만 잎 위에서 우리 길을 조심스럽게 시험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잎의 냄새를 맡습니다. 좋은지 나쁜지 알아보려고 우리는 맛을 보고 먹을 만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이 잎의 위를 두드려 봅니다. 잎은 살아 잇는 생물처럼 소리를 냅니다. 어떤 사람은(겁이 없는 사람들이겠지요) 잎 가장자리까지 이릅니다. 거기에서 고개를 빼고 카오스를 내려다봅니다. 그러고는 부들부들 떱니다. 밑바닥의 나락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게 되지요. 멀리서 우리는 거대한 나무의 다른 잎들이 서그럭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는 뿌리에서 우리 잎으로 수액을 빨아 올리는 걸 감지합니다. 가슴이 부풀지요. 끔찍한 나락을 내려다보고 있는 우리는 몸도 마음도 공포로 떨고 맙니다. 그 순간에 시작되는 게...위험이 시작됩니다. 어떤 사람은 정신이 아찔해지거나 정신을 잃고 또 어떤 사람은 겁을 집어먹습니다. 이들은 자기의 용기를 북돋워 줄 해답을 찾으려다가 <하느님!>하고 소리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잎사귀 가장자리에서 다시 심연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용감하게 <다는 저게 좋아>하고 말하지요 390_ 어렵당@@

저항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필연을 극복하여 외부적 법칙을 영혼의 내부적 법칙으로 환치시키고 존재하는 것을 깡그리 부정하고 자기 정신의 법칙에 따른 새 세계를 창조하려는 인간의 긍지에 찬 돈키호테적 반동이 아닐까 391 _ 이것도 어렵당!! @@

나는 변화하는 나 자신을 보았다 391

다시 한번 내 가슴은 고뇌로 가득했다. 세계란 무엇일까? 나는 궁금했다. 세상의 목적은 무엇이며 우리 한순간의 목숨이 어떻게 하여 세상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조르바에 따르면, 인간이나 사물의 목적은 쾌락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혹자는 정신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한 차원을 높여서 보면 똑같은 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왜? 무슨 목적으로? 육체가 와해되어 버린 뒤에도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영원불멸을 그리는 우리의 끝없는 염원은 우리가 영원 불멸하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짧디짧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인가 영원불멸한 것을 섬기는 데서 유래하는 것은 아닐까? 393 _ 카잔차스키도 역시 못말리는 질문덩어리..

내 몸은 상처가 아문 자리투성이지요 394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잠자고 있네.><그럼 잘 자게.><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잘해 보게><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하는가?><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394 _ 흠...

진짜 여자는 남자에게서 얻어 내는 것보다 자기가 주는 데 훨씬 더 큰 기쁨을 누리는 법입니다 395 _ 남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지만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자에겐 가져다 버릴 지언정 아무것도 주고 싶은 게 또 사람의 마음인 것 같다. 결국 진짜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연습은 잘 고마워하는 게 아닌가 싶다.

피레에프스 레스토랑에서 날 낚으려고 당신이 던진 미끼 기억나세요? 당신은 그때 기가막힌 수프를 만들 수 있다고 했지요. 그런데 사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맛있는 수프거든. 대체 어떻게 그걸 눈치챘지요?

조르바는 웃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목, 그건 말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저 내 머리에 턱 떠오리는 거니까...당신이 까페 구석에 조용히 점잖게 앉아 금테 두른 책을 읽고 있는 걸 보고는...글세 모르겠지만, 그저 당신이 수프를 좋아할 것 같았지요. 그뿐입니다. 그저 머릿속에 턱 온 다니까요. 그러니 설명할 방도가 있을 수 없지요. 396

지나가면서 수도원장은 나를 개처럼 걷어찼습니다. 수도승들이 와락 웃음을 터뜨렸구요 397

밤은 잉크를 풀어놓은 듯이 캄캄했습니다 398

저 친구는 수도원을 불사른다는 생각에 완전히 빠져 있었던 거예요. 불을 지르고 나니 그 악마가 조용해진 겁니다. 고기를 먹고 싶고 술을 먹고 싶던 생각이 속에서 익어 구체적인 행동이 된 겁니다. 그는 금식으로 그 생각을 성숙시켰을 거요 401

조르바, 사람이란 누구나 배 속에 악마 몇 마리쯤은 갖고 있으니 그런 걱정은 마세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지요. 중요한 건, 이 악마들이 하는 짓은 달라도 목적이나 같으면 되는 것이지요 401★★★★★★★★★★★

나라는 인간은 완전히 러시아 샐러드죠. 자, 그러니 두목, 날 좀 도와주슈. 이 문제 좀 풀어보게...무슨 목적이오?

조르바, 내 말이 틀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소위, 살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돈 벌고 명성을 얻는 걸 자기 생의 목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한 부류는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인류의 삶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그걸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지요. 이 사람들은 인간은 결국 하나라고 생각하고 인간을 가르치려 하고, 사랑과 선행을 독려하지요. 마지막 부류는 전 우주의 삶을 목표로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라 짐승이나 나무나 별이 모두 한 목숨인데, 단지 아주 지독한 싸움에 휘말려 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요. 글쎄 무슨 싸움일까요?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싸움이지요 402

내 너를 축복해서 말하거니와,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내면 못쓰느니라! 403

내 말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내 말들은 머리에서 나와는 것이어서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것이었다. 말에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그 말이 품고 있는 핏방울로 가늠될 수 있으리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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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젊은이! 종이와 잉크는 지옥으로나 보내 버려!...당신이 춤을 배우고 내 말을 배우면 우리가 서로 나누지 못할 이야기가 어디 있겠소!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화가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420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421 _ 알 것만 같다.

내 적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호령했다. <내 영혼에는 들어오지 못해.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니까. 내 불을 끌 수도 없어. 나를 뒤엎다니, 어림없는 수작!> 421

행복이란 의무를 행하는 것. 의무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행복은 그만큼 더 큰 법 423

내 존재의 심연에서 이상한 확신, 이성보다 더 구체적이고 순전히 동물적인 확신이 나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동물들이 지진을 예지하는 그런 확신이었다. 내 내부에서 눈을 뜨는 것은 이 땅에 처음 나타난 인간의 영혼, 우주에 밀착하여 이성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주의 진리를 직접 흡수하는 그런 영혼이었다 427 ★ _ 욕심낼 필요 없다. 물론 오는 것을 물리칠 방법도 없지만 현재를 희생하면서 뭔가를 더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그냥 지금 이순간 내게 허락된 것들에 충실해보는 거다. 불완전을 즐기면 된다. 많이 가지면 그만큼 더 힘들어진다는 거..이젠 도저히 거부할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재수없는 사람은 자기의 초라한 존재 밖에도 스스로 자만하는 장벽을 쌓는 법이다. 이런 자는 거기에 안주하며 자기 삶의 하찮은 질서와 안녕을 그 속에서 구가하려 하는 게 보통이다. 하찮은 행복이다. 만사는 정해진 순서를 따라 진행된다. 험한 길, 신성한 길을 따르다 안전하고 단순한 법칙을 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로부터의 공격이 차단된 하찮은 확신의 테두리 안에서 지네처럼 꼼지락거리다 보면 아무 도전도 받을 수 없다. 숙명적인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되는 강력한 적은 오직 하나, 터무니없는 확신 뿐이다. 확신은 내 경험의 벽을 허물고 내 영혼을 덮치려하고 있었다 428 ★★★ _ 다가오는 질문을 들을 줄 아는 용기를 가져야한다는 말이겠지? ㅎㅎ 카잔차키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 안심이 된다.

26

나도 당신 방법을 채용해볼까 합니다. 당신은 버찌를 잔뜩 먹어 버찌를 정복했으니 나는 책으로 책을 정복할 참이에요. 종이를 잔뜩 먹으면 언젠가는 구역질이 날 테지요. 구역질이 나면 확 토해버리고 영원히 손 끊는 거지요 429 ★★★★_ 카잔차키스가 조르바를 만나 얻은 최종적인 깨달음이었던 것 같다.

우린 둘 다 이 쓰라린 감정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431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를 거요” 내가 오기를 부렸다. 조르바의 말이 정통으로 내 상처를 건드려 놓았기 때문이었다.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 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 나가겠지요.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이 잡것이! 줄은 놓쳐 버리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노란 카밀레 맛이지. 멀건 카밀레 차 말이오. 럼주 같은 맛이 아니오.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432 ★ _ 다 잃어봐야 알 수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다 걷어내야 나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건 이해하겠다. 하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서두르지 말아야겠다. 기본을 흩트리지 않는 범위내에서 순차적으로 실험해나가도록 하자. 그러나 때가 되면 가슴이 터질 것 만큼 절실한 그때가 오면 그때는 한번 미쳐보도록 하자.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때를 알아볼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어릴 때부터 나는 초인에 관한 야망과 충동에 사로잡혀 이 세상 일에 만족하지 못했다.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조용해졌다. 나는 한계를 정하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가르고 내 鳶을 놓치지 않도록 꼭 붙잡았다 433 ★★ _ 나다. 나. 헙.

내 속에 있는 새들이 날개를 치며 가자고 졸랐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았다. 또 한 번 나는 비겁했던 것이었다. 나는 내 내부의 신성한 야만의 목소리를 따르지 않았다. 나는 조리에 닿지 않는 고상한 행위를 포기한 것이었다 439

시간이 흘러가면서 달콤한 추억의 독물로 오염되어 같다. 내 친구의 그림자도 내 영혼에 그늘을 드리웠다. 그 그림자는 나를 떠나지 않았다. 떠나는 걸 바라지 않아서 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림자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과만 은밀하게 대화했다. 덕분에 나는 죽음과도 화해할 수 있었다. 440 ★ _ 카잔차키스에게 조르바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超人이었던 것 같다. 조르바를 따르기에 카잔차키스는 너무나 카잔차키스였던 것이다.

아, 세계가 너무 좁다는 영혼을 어쩌랴! 443

나는 그와 더불어 크레타 해안에서 함께 보냈던 생활을 재구성하고, 기억을 더듬어, 조르바가 내 마음에게 뿌렸던 말, 절규, 몸짓, 눈물, 춤을 모아 보존하고 싶다는 욕망을 주체할 수 없었다 444

나는 다른 걸 쓰거나 하루종일 나돌아다니거나 책을 읽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따돌릴 때마다 쓰는 나의 전략이었다 445

나는 과거를 현재로 재현시키고 조르바를 기억해 내어 실체 그대로 소생시키면서 미친듯이 써내려갔다. 그가 사라지면 그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가능한 이 옛친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나갔다. 나는, 꿈에 본 조상의 모습을 동굴에다 생생하게 그려 놓으면 조상들의 혼이 자기 몸인 줄 알고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믿던 아프리카 야만족의 마술사처럼 일했다. 몇 주일만에 조르바에 대한 나의 연대기는 완성되었다 445

옮긴이의 말 _ 이윤기

일정한 도덕률의 틀 속에서 온전하게 제 몫의 삶 누리기를 마다하고 떠돌이 앞소리꾼이 되어 영혼의 자유를 외치는 거인. 자기 내부에 잠재하는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드높이고, 그 드높이는 과정에서 조우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문학적 표정을 부여하는, 참으로 초인적인 작업을 시도한 거인이 있다. 신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니코스 찻잔차키스가 바로 그 사람이다. 카잔차키스의 문학은 존재와의 거대한 싸움터, 한두 마디로는 싸잡아 정의할 수 없는 광활한 대륙을 떠올리게 한다 449

내 삶을 풍부하게 해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449 ★ _ 나도 그렇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그가 <여행>이라고 부르는 것은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그 자신의 <육체>, <꿈>이라고 부르는 것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그 자신의 <영혼>인 듯하다. 구체적인 체험으로서의 여행이 추상적인 꿈을 심화시키고 그 꿈이 여행의 무대를 확장시키듯이, 그의 삶이라는 것도 육체와 영혼의 상호작용을 통한 심화와 확장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여행과 꿈이 상호작용을 통하여 늘 그의 삶을 풍부하게 하듯이, 영혼과 육체는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통해 그의 존재를 드높이는 것이다 450

카잔차키스의 삶은,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내재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 사색과 행동 등등의, 영원히 모순되는 반대 개념에서 하나의 조화를 창출하려는 꾾임없는 투쟁으로 이루어진다 452 ★ _ 대립되는 개념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 그것이 마법이라면 카잔차키스 역시 마법사였던 거다. 위대한 마법사!

그에게 여행은 사색의 샘이자, 사고의 실천이었다 453

혼자 수니온까지 갔다. 여름이어서 소나무 둥치의 갈라진 틈에서는 송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기에서 송진 냄새가 났다. 메뚜기 한 마리가 내 어깨 위에 앉았다. 그 순간 나는 소나무가 되었다...나는 젊은 여인의 얼굴에서 노파의 얼굴을 읽으려는 나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리스라는 이름의 노파 얼굴에서, 이제는 사라져 버린 소녀의 생기와 젊음을 다시 창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행이 끝날 즈음, 내 눈은 그리스로 가득 찼다. 투쟁을 방불케 하는 그 여행에서 내가 얻은 것은, 동양과 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명에 대한 인식, 그리스의 업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이었다는 깨달음이었다. 나를 이끌어 성인의 세계로 안내한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책임감이었다 453 _ 크~. 아름답다. 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아름답다.

고행을 통하여 날개를 얻었다고 믿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본 미치광이 수도승들의 백골이다 455 _ 어찌보면 조르바도 미친 수도승이었던 건 아닐까? 아무래도 난 조르바처럼은 못 살 것 같다.

고행을 통하여 혼자 천국에 드는 것이 마침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455

인간이 이렇듯이 죄악과 악마에 시달리는 것은 하느님 탓이라고 하더라고 전해 주세요. 하느님이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 만든 탓이라고요 457

전날까지만 해도 나는 기쁨을 모르는 인간, 기뻐해서는 안 되는 줄만 알고 있던 인간이었어요. 그러나 여자를 알게 되는 순간 나는 다른 인간이 되었지요 458

죄 역시 하느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닐까 458

베르그송에 따르면 인간이 보편적으로 경험해 온 기나긴 진화의 역사는, 경화된 메커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창출하기 위한 <생의 도약>의 역사다. 따라서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부단한 창조의 영원을 향한 도약과 생의 충동으로 이루어져있다...인간 존재란, 신이 어떤 목적에 따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딛고 넘어가게 마련된 단계에 불과한 것, 따라서 <신>이라고 하는 것은 그 도약의 디딤돌로 인간이 창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기의 예감을 베르그송의 생철학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459

니체..구원의 문은 우리 손으로 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우리에게 <초인>은 희망이다. <초인>은 대지의 종자이며, 해방은 그 종자 속에 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우리를 심연의 가장자리로 데려다 놓았다. 인간은 마땅히 저 자신의 본성을 뛰어넘어 하나의 초인이 되어야 한다. 신의 빈자리를 우리가 차지해야 한다. 주인의 명령이 없어진 지금, 우리 의지로써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것이다 460

그의 <초인>은 초월을 완성시키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호전적인 인간, 차라투스트라의 말처럼 <목적지가 아닌, 도상의 다리 같은> 인간이다. 그의 믿음에 따르면, 진정한 초인은 인간 조건을 극복하고, 베르그송의 이른바 <생의 도약>을 성취하는 인간이다. 460

정복하라. 이 세상의 모든 유혹 가운데 가장 무서운 유혹인 희망을 정복하라 460

주님, 마음대로 하소서. 부러뜨리든 말든 뜻대로 하소서 461

그는 인식의 주체인 <나>와, 인식의 객체인 세계를 하나로 통합함으써로, 말하자면 대극하는 무수한 개념을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초라한 언어를 통한 온갖 시비를 삶 속으로 녹여든다 462 ★★★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464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임계 상태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 이것이 <메토이소노>다. 물리적 화학적 변화 너머에 존재하는 변화, <거룩하게 되기>가 바로 이것이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는 것은 물리적 변화다. 포도즙이 마침내 포도주가 되는 것은 화학적인 변화다.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가 되는 것이 바로 <메토이소노>다 464 ★★★ _ <메토이소노>가 마법이란 이야기로 들린다.

나는 조르바라고 하는 위대한 자유인을 겨우 책 한권으로 변화시켰을 뿐이다 465

<성자의 병>이라는 희귀한 병입니다. 중세의 금욕주의자들은 어두운 동굴에 은거하고 극기를 통해 육체를 마멸시킴으로써 영혼의 자유를 얻으려고 했지요. 하지만 많은 수도자들은 마침내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울부짖으며 마을로 달려 내려가고 했답니다. 바로 그 순간 그들의 얼굴에는 발진이 돋고 진물이 흘러내렸다지요. 당신은 모르고 있겠지만 당신의 영혼은 당신을, 당신의 육체를 질책하고 있어요. 여인을 포기하고, 미련을 버리고 빈을 떠나세요. 당신이 빈에 있는 한, 여자를 잊지 않는 한 이 병은 절대로 나을 수 없습니다 467

그에게 육체와 영혼은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467

온몸으로 대극을 초월한 전형적인 자유인 468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468

개역판에 부치는 말 이윤기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를 살다 간 두 거인 카잔차키스와 조르바는 21세기를 맞은 나에게 여전히 현실이다. 내 연하의 친구들에게도 그러리라고 확신한다 474

3. ‘내가 저자라면’

조르바를 만나기전 카잔차키스

나는 당시 육신의 쾌락을 업신여기고 있었다. 가능하면, 먹어도 부끄러운 짓이라고 하는 것처럼 은밀하게 먹어치웠다 52

나는 다른 양식의 인생을 살아보려고 노력했고 실제적인 일을 사랑하고 내 수중으로 떨어진 인적 자원을 사랑하고 이해하려고 애썼으며, 언어와 관련된 것이 아닌 살아 있는 인간들에게서 오래 그리던 기쁨을 맛보려고 했다 79

붓다에서 벗어나고 모든 형이상학적인 근심인 언어에서 나 자신을 끌어내고 헛된 염려에서 내 마음을 해방시킬 것.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과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접촉을 가질 것 84

조르바라는 학교에 들어가 저 위대한 진짜 알파벳을 배울 수 있다면...내 인생은 얼마나 다른 길로 들어설 것인가! 내 오관과 육신을 제대로 훈련시켜 인생을 즐기고 이해하게 된다면!...내 정신을 육신으로 채워야 했다. 내 육신을 정신으로 채워야 했다. 그렇게 하자면 내 내부에 도사린 두 개의 영원한 적대자를 화해시켜야 했다 112

어릴 때부터 나는 초인에 관한 야망과 충동에 사로잡혀 이 세상 일에 만족하지 못했다.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조용해졌다. 나는 한계를 정하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가르고 내 鳶을 놓치지 않도록 꼭 붙잡았다 433

영원히 닿을 수 없는 超人, 조르바

강인했기 때문에 그토록 인간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그들과 함께 살고 일하려는 그를 나는 존경했다. 나라면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금욕주의자가 되었거나 그들을 가짜 깃털로 꾸며놓을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83

당신 속에도 악마 한 마리가 있지만 아직 이름은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걸 모르니까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 거예요. 두목, 그 놈에게 세례를 베풀고 이름을 지어 주세요 216 ★★★

조르바는 내 내부에서 떨고 있는 추상적인 관념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살아 있는 육체를 부여했다. 조르바가 없으면 나는 다시 떨게 되리라 228 ★

내가 뭘 먹고 싶고 갖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 줄 아십니까? 목구멍이 미어지도록 처넣어 다시는 그놈의 생각이 안 나도록 해버려요 285

조르바는 허구와 진실이 서로 뒤섞여 오누이처럼 닮아 버리는 경지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309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런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324

나는 조르바란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버린 것이다 331

그는 피가 덥고 뼈가 단단한 사나이. 슬플 때는 진짜 눈물이 뺨을 흐르게 했다. 기쁠 때면 형이상학의 채로 거르느라고 그 기쁨을 잡치는 법이 없었다 362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잠자고 있네.><그럼 잘 자게.><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잘해 보게><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하는가?><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394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464

카잔차키스가 25년만에 완성시킨 <메소이토노>

조르바, 사람이란 누구나 배 속에 악마 몇 마리쯤은 갖고 있으니 그런 걱정은 마세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지요. 중요한 건, 이 악마들이 하는 짓은 달라도 목적이나 같으면 되는 것이지요 401★★★★★★★★★★★

나도 당신 방법을 채용해볼까 합니다. 당신은 버찌를 잔뜩 먹어 버찌를 정복했으니 나는 책으로 책을 정복할 참이에요. 종이를 잔뜩 먹으면 언젠가는 구역질이 날 테지요. 구역질이 나면 확 토해버리고 영원히 손 끊는 거지요 429 ★★★★_ 카잔차키스가 조르바를 만나 얻은 최종적인 깨달음이었던 것 같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임계 상태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 이것이 <메토이소노>다. 물리적 화학적 변화 너머에 존재하는 변화, <거룩하게 되기>가 바로 이것이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는 것은 물리적 변화다. 포도즙이 마침내 포도주가 되는 것은 화학적인 변화다.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가 되는 것이 바로 <메토이소노>다 464 ★★★

<조르바> 지난 8월 그리스 여행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었던 이름이었다. 대체 뭘까?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조르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틈에서 ‘그게 뭐냐’는 질문을 할 용기를 모으는데만 열흘을 꼬박 써야만 했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조르바>라는 단어를 둘러싼 맥락들속에서 그 어휘의 의미를 추론해 보는 것 뿐이었다. 여행이 끝나갈 즈음 ‘조르바는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할 최종 목적지의 상징’ 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그리스인 조르바>를 주문했다.

이야기를 뛰어넘어 조르바의 꽁무니만 따라 다니는 식의 책읽기가 되었던 건 아마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어서 빨리 내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조르바 따라잡기는 100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고 끝나버리고 말았다. 조르바가 보여준 상스런 표현과 주책스런 행동이 내게 준 충격은 상상을 너머선 것이었다. ‘조르바’의 삶이 나와 함께 여행을 나눈 이들이 가고자 하는 길의 최종목적지라면 나는 어서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할 정도였다. 얼마나 어렵게 선택한 길이었는데...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머리가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혼란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나는 서둘러 책장을 덮어 버리는 것으로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육탄전을 저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 개월. 조금은 안정되었다고 자신하며 다시 책장을 열었다. 피할 수 없는 관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담담히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있어서였을까? 의외로 책장은 술술 넘어갔다. 신기하게 느끼던 중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영혼의 결벽증 환자였던 젊은 카잔차키스가 ‘조르바’라는 백신을 맞고 25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며 항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조르바는 ‘언어’라는 수레를 통해 영혼의 목적지에 이르고자 했던 카잔차키스에게는 꼭 필요했던 해독제같은 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달콤한 추억의 독물로 오염되어 갔다. 내 친구의 그림자도 내 영혼에 그늘을 드리웠다. 그 그림자는 나를 떠나지 않았다. 떠나는 걸 바라지 않아서 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림자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과만 은밀하게 대화했다. 덕분에 나는 죽음과도 화해할 수 있었다.

나보다 적어도 십수년이나 영혼의 여행을 먼저 시작했던 카잔차키스도 25년에 걸쳐서 힘들게 소화해낸 독물을 순식간에 내 것으로 만들고자 욕심을 부렸으니 온 몸이 뒤집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라는 부작용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언어’가 내 영혼의 샘물을 퍼올리기 위해 내게 주어진 도구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나도 몰래 자라기 시작한 강박이 있다. 언어를 갈고 닦는 것 이외의 용도로 에너지를 쓰고 있는 스스로를 견딜 수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선 안 된다고, 그건 아니라고 수도 없이 다짐해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강박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생활은 분명 ‘돈’을 필요로 하고, 아이들은 분명 ‘엄마’를 필요로 하는데 어찌된 셈인지 내 안의 경영자는 이런 현실의 요구를 번번히 묵살해버렸다. 그런 건 ‘북소리’가 아니야. 지금도 늦었는데 왜 자꾸 허튼 곳에다 에너지를 낭비하려고 하니? 혹시나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위해 에너지를 집행할 때도 그는 꼭 잊지 않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럴 여유 없는 거 알지? 현실에 매여 삶을 누리지 못하는 부자유가 싫어 시도한 영혼의 정권교체였는데...어느틈엔가 ‘자유’라는 이름의 또 다른 구속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내게도 <그리스인 조르바>는 역시 구원이였다. 하지만 이는 지난 여름 내가 <조르바>를 만나며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구원이었다. 나를 위로한 것은 <조르바>라는 인물로 상징되는 ‘자유’의 이미지가 자체가 아니라 카잔차키스가 조르바라는 인물을 소화해내는 과정이었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식의 ‘자유’를 무작정 모방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조르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하고 숙성하기 위한 시간을 견뎌내고 참아낼 줄 알았던 것이다.

서둘러선 안 된다. 지난 여름 ‘조르바 따라잡기’에 대한 지나친 강박으로 오히려 <조르바>와 끝까지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또 하나. 역사속 현자들의 가르침을 나의 현실에 축자적으로 적용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의 요구를 가장 잘 감지할 수 있는 것은 나다. 내가 추구하는 꿈과 내가 처한 현실을 가장 아름답게 중재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지혜와 가르침도 한낱 잔소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아! 여행 내내 나를 따라다니던 <조르바>는 처음부터 그런 의미였는지도 모르겠구나. 흠...늦었지만 이제라도 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IP *.10.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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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수
2011.05.07 22:02:29 *.111.51.110
대단한 묙선배님!
저도 2년차까지 리뷰를 지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더해 제 리뷰도 이런 정성스러움을 담은 리뷰였으면 더욱 좋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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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5.09 07:24:39 *.10.44.47
격려해줘서 고마워요.
2년차 조금은 초연해진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이리저리 출렁대는 저를 감출 수가 없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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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1.05.10 22:15:51 *.34.224.87
초연하지 마라.
너답지 않다.
좋은 리뷰..계속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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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5.11 09:20:51 *.10.44.47
ㅋㅋ
글치않아도 생각중이었답니다. 
'주화입마'에 빠지기 쉬운  피라는 사부님 말씀이 이런 뜻이었던가?
무신 놈의 생각들은 이리도 심각한 몰염치신지...
이제 그만 됐다는데도 통 저를 쉬게 두질 않아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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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조셉캠벨 [2] [2] id: 문윤정 2012.04.23 2916
1671 현경과 앨리스의 神나는 연애.. [4] 김미영 2005.10.21 2917
1670 북리뷰15-<네루다자서전: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4] 박경숙 2010.06.15 2917
1669 <사기열전> 사마천 지음 ( 2회 읽기 ) file jeiwai 2013.07.22 2917
1668 #24. 그들이말하지않는23가지 / 장하준 file [1] 쭌영 2013.10.29 2917
1667 쟈크 아탈리-인간적인 길 [11] 도명수 2007.04.27 2920
1666 [독서15]다산문선/정약용 [1] 素田최영훈 2007.06.25 2920
1665 44. 나만 위로할 것_김동영 지음 한젤리타 2013.03.03 2920
1664 [북리뷰 15]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사/노/투 file [5] 신진철 2010.06.15 2921
1663 [9] 이은상의 난중일기 file 지희 2008.06.02 2924
1662 <세월이 젊음에게 - 우리가 가져야 할 일과 인생에 대한 마음가짐 > - 구본형 [2] [1] 김연주 2011.03.08 2924
1661 (09) 난중일기 - 이순신 이한숙 2008.06.02 2925
1660 (21) 피터 드러커 자서전 - 피터 드러커 이한숙 2008.10.06 2927
1659 숨겨진 힘 사람 [4] 박소정 2006.05.04 2929
1658 [북리뷰] <내 인생의 첫 책 쓰기> 오병곤, 홍승완 이선형 2011.01.10 2929
1657 [34]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아르놀트 하우저 2008.12.29 2933
1656 [양갱]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사진강의노트_ 김성민 [1] 양갱 2012.05.01 2933
1655 착한 미개인과 동양의 현자.. [2] 김미영 2005.05.20 2934
1654 한국인의 심리에 관한 보고서 -프레드 앨퍼드 지음- 문요한 2005.06.28 2934
1653 [부드럽게 말하고 강력하게 행동하라, 제임스 M. 스트록] 통찰맨 2005.09.14 2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