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강훈
  • 조회 수 271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1년 5월 17일 06시 54분 등록

1. 저자 하워즈 가드너에 대하여

 

하워드 가드너( Howard Gardner)는 현재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교수이자,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겸임교수, 보스톤대학교 약학대학 신경학과 겸임교수, Harvard Project Zero의 추진위원장, Good Work Project 책임자로 재직 중에 있다. 우리에겐 다중지능이론을 개발한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972년부터 데이비드 퍼킨스(David Perkins)와 함께 Harvard Project Zero의 공동 소장으로 연구해 오면서, 기존의 지능관에 대한 회의를 펼치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여 1983 "Frames of Mind: The Theory of Multiple Intelligences"라는 저서를 통해 7개의 지능을 주장하였다.

 

가드너 부모는 나찌 독일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해 왔으며, 가드너는 1943년 미국 펜슬베니아주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즐겨 쳤으며, 이를 통해 많은 기쁨을 얻었다고 한다. 가드너는 1965년 하버드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런던대학의 경제학과에서 1년간 수학한 뒤, 다시 하버드 대학으로 되돌아와서 발달심리학을 전공하여 1971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바드 의과대학과 보스톤대학에서 Postdoc 과정을 밟았으며, 이 과정이 가드너로 하여금 두뇌손상을 입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인지적 문제들을 연구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가드너는 인간의 잠재적 능력과 그것의 발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피아제(Jean Piaget) 이론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는 피아제 이론보다 더 깊이 인간의 정신을 파고 들었다. 피아제 이론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너무 좁게 설명하고 있다고 재평가하면서, 인간의 사고 전체를 이끄는 한 가지 형태의 인지는 없으며, 적어도 일곱 가지의 지능이 있고 이들은 마치 파이(pie)의 조각들처럼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하였다.

Gardner n 7int.jpg

 

1981년 가드너는 HPZ를 지원하기 위한 5년간의 MacArthur Prize Fellowship을 받는데, 이 연구자금은 천재학자들만이 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연구 자금을 수여하는 재단에서는 가드너가 인지발달 부분에 기여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었으며, 훗날 그의 연구가 널리 인정받는데 힘을 실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외에도 가드너는 미국 심리학회에서 주는 William James Award, University of Louisville에서 Grawemeyer Award, 그리고 Claude Bernard Science Journalism Award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대부분의 그의 연구의 대상은 두 주류인데, 첫째는 일반 아동들과 영재아들이며, 둘째는 두뇌손상을 입은 어른들이었다. 가드너는 이 두 주류의 특성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다중지능 이론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 20여권의 책과 수백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의 저서>

그의 저서로는 <미래마인드 Five Minds for the Future>, <20세기를 움직인 11인의 휴먼파워 Leading Minds>, <마음의 틀 Frames of mind>, <예술, 마음, 두뇌 Art, Mind, and Brain>, <교육되지 않은 정신 The Unschooled Mind>, <창조하는 사람들 Creating Minds>, <비범성의 발견 Extraordinary Minds>, <다중지능 이론>, <다중지능: 인간지능의 새로운 이해> 등이 있다.  

<열정과 기질>이 전형적인 창조적 인물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책이라면 <교육 받지 않은 마음> 에서는 아이들이 아주 어린 시절에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자질을 갖추지만 학교에 들어가면 교과과정을 따라가거나 학습능력을 습득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상황에 대해 다루었다. <열정과 기질>, < 교육받지 않은 마음> 에서 동시에 추구했던 명확한 연구 방향들이 집합되어 <통찰과 포용>  책이 탄생되었다. 그 밖에 <Good Work> 에서는 훌륭한 전문인이 되는 것의 중요성과 해당 분야의 전문 직업이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해 다루고 있다. <체인징 마인드> 는 마음의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사람들의 사례제시와 변화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 하워드는 이런 다양한 저서를 통해 전문적 학술 연구를 일반인 대상으로 쉽게 알려 주고자 하고 있다.

 

<다중지능이론이란?>

다중지능 이론의 특성과 이론적 배경을 고려해 볼 때, 다중지능의 핵심은 서너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Armstrong, 1994). 첫째, 모든 개개인은 이 여덟 가지 지능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 이론은 어떤 사람에게 맞는 한 가지 지능을 결정하기 위하여 제시된 이론은 아니다. 하나의 인지적 기능에 관한 이론으로서 모든 개개인이 정도의 차이가 나겠지만 이 여덟 가지 지능을 모두 갖고 있다고 보며, 여덟 가지 지능이 합해져서 독특한 방식을 가진 한 사람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의 시인이자, 과학자이며 철학가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처럼 어떤 사람은 여덟 가지 지능이 모두 빼어 날만큼 우수할 수 있고, 야구선수 박찬호처럼 한 가지 지능이 다른 지능에 비해 특히 우수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박찬호 선수가 신체-운동적 지능만 우수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타자의 심리를 잘 읽어 낼 수 있는 대인관계 지능이나,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자기이해 지능, 더 나아가 자신이 던진 공의 속도와 더불어 타자가 방망이 휘두르는 속도, 바람의 속도 등을 계산해 내는 논리-수학적 지능이 남들보다 뛰어날 수도 있다.
둘째, 모든 사람은 각각의 지능을 적절한 어떤 수준까지 개발시킬 수 있다. 가드너는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만약 적절한 여건(용기, 좋은 내용, 좋은 교육)만 주어진다면, 비교적 높은 수준의 성취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가드너가 예로 든 것은 Suzuki Talent Education Program이다. 이 프로그램의 창시자이자 바이올린이스트, 교육자, 철학자, 인간주의자인 Shinichi Suzuki는 지난 반세기 동안 자국(
自國)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음악 교육에 영향을 끼쳐왔다. 특히, 그는 "음악적 재능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계발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고, 누구든지 적절하게 교육을 받으면 음악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이를 실천함으로써 증명하였다. 아마, 특기·적성 교육의 성공을 보여준 가장 시범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셋째, 여덟 가지 지능들은 여러 가지 복잡한 방식으로 함께 작용한다. 지능들은 항상 서로 교류하면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요리를 한다고 할 때에, 먼저 요리법을 읽어야 하고(언어적 지능), 이 때 요리를 몇 단계로 나눌 때도 있고(논리-수학적 지능), 가족의 모든 사람의 취향을 고려해야 하고(대인관계 지능), 뿐만 아니라 자신만이 잘 창출해내는 맛을 자아내게 해야한다(자기이해 지능). 축구나 야구처럼 운동 경기를 고려할 때도 이와 같은 예는 너무나 많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중지능 이론에서 각 지능의 특성을 살펴보고 이를 효율적으로 학습하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지 이들을 각각으로 분리하여 어떤 특출한 하나만을 집중적으로 계발하자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 여러 지능들은 서로 협응(
協應)하여 작용하기 때문이다
.
넷째, 각 지능 영역 내에서도 그 지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지능 영역에 있어서 지능적이라고 간주되어질 수 있는 한 가지 표준화된 특성은 없다. 어떤 사람은 읽지는 못하지만, 이야기를 참 잘하거나 다양한 어휘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운동장에서 달리기는 못하지만, 기민한 행동을 요하는 작업은 잘하는 사람도 있다. 다중지능 이론은 개개인이 가진 독특한 지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풍부한 방법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각 지능들 사이의 관계를 통한 지능 향상 방법을 추구한다.

 

(참고문헌)

1. www.harwordgardner.com

2. www.yes24.com

3. http://en.wikipedia.org/wiki/Howard_Gardner

4. http://blog.naver.com/hufsivf?Redirect=Log&logNo=100018151593

 

 

2.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감역자의 글 - 창조성의 비밀을 풀다

시대적 화두이자 가장 경쟁력 있는 인간 특질은 다름 아닌 창조성이다. (5)

 

아놀드 토인비는 이미 20세기 초반에 “역사의 변화는 언제나 창조적인 소수에 의해 주도된다”며 창조성의 중요성을 갈파했다. (5)

 

이 책은 다중지능론을 주창했던 저자가 실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창조성의 비밀을 역동적으로 풀어낸 교양서이다. / 다중지능이라는 정신능력의 이론체계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깊고, 창조성과 관련된 실제 개인들의 심리적, 사회적, 시대적 조건 모두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넓으며, 영역이 서로 상이한 창조적 거장들을 일곱 명이나 한꺼번에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방대하다. (6)

 

이 책의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창조성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창조자의 배출을 가능하게 한 현대사회(modern era)라는 시대적 특성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먼저 그 첫번 째인 ‘창조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서 가드너는 이 질문을 ‘창조성이란 어디에 있는가로 전환시켜 대답하고자 한다. 그는 <개인(Individual) - (The work) - 타인(Other person)>이라는 창조성 소재 모형을 제시한다. 이 모형에 따르면 개인은 내부에 어떤 분야의 대가(master)가 될 만한 소질을 싹으로서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것만으로는 창조성이 발휘되는 성인으로 성장해 가지 못하고, 우선 그러한 소질을 심화하고 강화시킬 수 있는 적절한 일의 체험기회(교육, 훈련 등)를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며, 이러한 체험의 과정에서 타인(가족, 친구, 경쟁자, 후원자 등)으로부터 격려와 지원을 받는 의미 있는 인각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7)

 

한 개인 속에 잠재한 창조성의 본질은 지능적 요소와 기질적 요소의 특이한 조합이었다. (8)

 

10년 주기론’, 창조적 대가를 연구한 결과 그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대체로 10년간의 준비를 거쳐 창조성이 성국하고, 10년간 창조성을 발휘하며, 다음 10년간 그 창조성을 다시 다른 분야로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9)

 

훗날의 창조적인 도약을 낳게 되는 지적 잉태기간을 보냈다. (10)

 

들어가는 글

 

이 책은 내 연구의 정점이자 출발점이다. 창조성이라는 현상과 역사적 실례(개별 사례)에 대한 평생 동안의 관심을 하나로 모았다는 점에서는 정점이며, 인간의 창조적 기질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는 출발점이다. (13)

 

대학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심리학에 대하여 거의 들어본 적이 없던 나는 자연스레 역사를 전공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에릭 에릭슨의 심리분석적 역사와 전기를 읽었을 때 나는 지적인 고향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곧 연구 주제를 사회적 관계(사회과학이나 행동과학)로 바꾸었고, 점차 인지발달에 관한 심리학에 관심이 쏠렸다. (14)

 

대학원에서는 발달심리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지만, 그처럼 눈부신 업적을 낳았으면서도 동시에 두 차례의 끔찍한 세계대전과 끈덕지게 지속된 냉전에 휘말려 들어간 인간 사회에 대한 관심이 이미 나의 내부에서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14)

 

인간의 인지능력이 다양한 측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의 지성도 비교적 자율적인 여러 능력, 즉 다양한 ‘인간지능’이 하나의 총체를 이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을 서술한 <마음의 틀(Frames of Mind)>(1983)은 많은 관심을 불러모았고 활발한 논란을 일으켰다. (16)

 

내가 궁금했던 것은 창조성이 어떻게 상이한 지능을 통해 발현되는가 하는 문제였고, 이 난해한 문제를 해결할 요량으로 서로 다른 지능을 대표하는 몇 명의 인물을 비교하고 검토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18)

 

나는 내가 읽고 싶어 하는 스타일의 책을 쓰고자 했다는 점을 밝혀둔다. 전문용어는 되도록 쓰지 않고, 꼭 필요한 시각 자료만을 제시했다. 다루는 주제는 복잡하지만 간단명료하게 쓰고자 했다. 복잡한 주제를 쉽게 다루기 위해 중간 중간에 서술 내용을 요약해 정리했으며, 나름대로 신중하게 고른 곳에 세 개의 짤막한 해설(간주곡,interlude)을 삽입했다. 그리고 누군가 내 생각을 도용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 책의 첫 부분에 내 이론의 요지와 중요한 결론을 기술했다. (19)

 

1부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 취리히에서의 우연한 만남

“모름지기 예술가라면 지금까지 다들 예술로 알고 있는 예술 따위에 신경 쓰면 안되지요... 요즘에는 예술가가 어떤 사람인가 하면, 무엇이든 자기가 하는 일을 예술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예술가란 불멸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아주 기발한 방법으로 충족시키는 마술사와 같습니다.(31)

 

나는 세 가지 중요한 목표를 염두에 두었다. 첫째, 나는 대체로 1885년에서 1935년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이들 각자가 살았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다. 두 번째 목표는 창조적인 행위(기획)의 본질에 관해 대략적으로나마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마지막 목표는 심한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어도 활기에 넘쳤던 시대, 즉 내가현대라고 부르는 시대에 관해서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36)

 

나는 창조적인 혁신에는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이 결합해 있다고 생각한다. 20세기의 고유한 천재들은 어린 아이의 감수성을 체화하고 있었다.(38)

 

우선 이 분석틀은 세가지 핵심요소로 이루어진다. 창조적 인물, 창조적인 행위의 대상이나 작업(), 그리고 창조적인 인물의 세계에 거주하는 다른 사람들이 바로 그것이다. (38)

 

모든 창조적인 행위는 우선 한 개인과 객관적인 작업 세계의 관계에서 생겨나고, 그 다음 두 번째로 그 개인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서 성숙한다는 점이다. (40)

 

시대를 통틀어 프로이트만큼 전인미답의 영역을 고독하게 개척했던 탐구자는 거의 없었다.(41)

 

고독한 탐구자로 출발해서 절친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아가 새로 탄생한 분야에 소속된 구성원들과 상호작용을 하게 된 변화의 궤적이 기본 틀이 된다. (41)

 

아인슈타인은 제1원리로 돌아가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단순하면서도 가장 포괄적인 설명 원리를 찾고자 했다.(41)

 

이는 아인슈타인이 유년기의 개념세계로 회귀한 것을 의미한다. 관습적인 설명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기본적인 이해 방식을 찾았다는 말이다. (41)

 

피카소는 일찍이 눈부신 솜씨를 발휘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불후의 업적을 남기게 된 ‘신동’에 대한 훌륭한 연구 대상이다. 우리 시대의모차르트 수수께끼라고 할 수 있다.(42)

 

하나의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기꺼이 이주하는 것은 현대의 두드러진 현상이며, 이 책에서 다루는 창조적인 거장들 역시 다양한 문화에 흠뻑 젖는 것이 필요하고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엘리엇은 다른 누구보다도 현대의 창조적인 인물이 지니는 경계성(marginality)을 고려하게 하는 인물이다. (43)

 

그레이엄은 이전 시기에 여성에게 부과된 여러 한계를 극복하면서 자기만의 예술 형식을 창조했고, 스스로 단체를 설립하고 자신의 예술적 유산을 남겼다. 그녀 스스로 행동의 귀감, 즉 역할 모델이 되어야 했을 터인데, (44)

 

정치를 비롯한 인간관계의 영역에서는 창조적인 도약이 수십 년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따라서 어떤 특정한 창조적인 도약을 특정한 역사적 순간에 활약한 특정한 개인과 동일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45)

 

 

사티아그라하(satyagraha)는 소모적인 대결과 비열한 복종, 그리고 폭력에 대한 호소 없이 귀중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방도를 찾는다. 간디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상적 영향을 미쳤는데, 좀 더 인상적인 사실은 몸소 용기 있는 행동을 실천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에게 행동의 귀감이 되었다는 점이다.(46)

 

간디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상적 영향을 미쳤는데, 좀더 인상적인 사실은 몸소 용기 있는 행동을 실천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에게 행동의 귀감이 되었다는 점이다. (46)

 

헤겔적 사고방식의 핵심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 역사에는 고요한 추동력이 있어서 일정한 시대에는 특정한 시대정신과 주제가 전면에 나서고 시대가 바뀌면 다른 시대정신에게 자리를 내주는 식으로 역사가 나선형적(변증법적)으로 진행한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특정한 시대정신을 예측할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과거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한 시대의 고유한 모습이 결정된다는 것이다.(48)

 

나는 이러한 시대정신, 즉 특정한 개인들이 우연히 그것을 일깨우고 결과적으로 그것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시대정신이 존재한다는 견해를 신봉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역사를 우연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49)

  

1900년경에 프로이트는 일련의 중대한 발견을 하면서 중산 계급이 견지하는 도덕성과 합리성의 허식을 깨뜨렸는데, 인간의 마음 깊이 잠복해 있는 성적이고 공격적인 무의식적 동기와 충동을 밝혀냈던 것이다. 몇 년 후에 아인슈타인은 안정되고 ‘객관적인’ 뉴턴의 세계상을 관측자에 따라 규정되는 상대적인 세계상으로 대체하면서, 오랫동안 받아들여졌던 시공간의 절대성을 무너뜨렸다. (52)

 

일단 전통과 관습이 특정한 예술 및 과학 분야에서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면, 다른 분야에서도 그런 전통과 관습이 도전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54)

 

관습에 도전한다는 것은 사실 모든 혁명적 시대의 특징으로서, 그 도전의 성격은 별개의 문제이다.(55)

 

 

2. 창조성의 연구 방법

길포드가 생각한 창조성의 핵심 개념은 발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였다. 표준적인 지능 검사에 의해 똑똑하다고 인정된 사람들은 주어진 자료나 문제에 대해 항상 올바른 대응법을 생각해낸다. 반면, 창조적인 사람들은 어떤 자극을 받거나 문제를 보면 아주 다양한 연상을 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매우 유별나고 엉뚱하기까지 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59)

 

일단 IQ 120이 넘으면 심리측정학적으로 창조성과 지능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60)

 

창조적인 사람은 바로 이 공간 안에서 당면 문제에 적합한 접근법과 해답의 실마리를 찾으며, 효율적으로 에너지와 시간을 배분하여 단계적으로 탐구해 나가고, 더 철저한 연구가 필요할 때와 손을 뗄 때, 그리고 연구를 지속할 때를 결정한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창조 과정을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다. (63)

 

우선 무의식 과정에 대한 프로이트의 명료한 설명은 창조적인 행동이 창조자의 사려깊은 의도를 직접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에 그 핵심이 있다. 창조적인 행동의 원동력과 의미는 창조자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속한 공동체 사람들에게도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66)

 

창조적인 작가와 놀고 있는 아이가 하는 일은 똑같다. 창조적인 작가는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이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 작가의 환상세계에는 그의 감정이 충전돼 있다. 물론 그는 환상의 세계와 현실을 날카롭게 구별한다.(67)

 

스키너의 행동과학적 관점에서 말하면, 사람들이 창조 행위에 나서는 것은 이전에 보상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긍정적인 강화가 주어졌기 때문이다.(68)

 

사회심리학자 테레사 아마빌라는 일련의 탁월한 실험을 통해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의 중요성에 주목하도록 했다. 아마빌라는 고전적인 심리학의 설명과는 반대로, 사람들이 외적인 보상을 노릴 때보다 순수한 즐거움만으로 행동을 할 때 창조적인 해법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보여주었다.(68)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해서 몰입 상태(flow state) 혹은 몰입 경험(flow experience)이라는 감정 상태에 관해 설명한 바 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내재적으로 동기화 된 경험(intrinsically motivating experience)에서 자신이 관심을 쏟는 대상에 완전히 몰입 되고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69)

 

이러한 연구 결과 생산성이 가장 높은 시기는 보통 35살에서 39살 사이로 나타났지만, 정확한 시기는 분야마다 조금씩 다르다. 가령 시인과 수학자는 20대나 30대에 절정에 이르는 반면, 역사가나 철학자는 이로서 수십 년 뒤에 정점에 이른다. (71)

 

유년기를 어떻게 보냈는가 하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탐구하면서 주변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면,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창조성 자본’을 많이 축적하게 된다. 반면에 이러한 발견 행위가 억압당하고 한쪽 방향으로만 떠밀리거나, 혹은 세상에는 정답이 하나밖에 없고 귄위자들만 그 정답을 알고 있다는 고정 관념에 짓눌린 아이들은 자기만의 해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78)

 

창조적인 인물은 유년기의 통찰과 감정, 그리고 경험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면에서 두드러진 모습을 보인다. 물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는 편이 어떤 점에서는 살아가기에 좀더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거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경우에는 유년기야말로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실상 창조적인 인물이란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에 품었던 수많은 의문점과 문제의식, 그리고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섬세한 감수성을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가장 선진적인 이해 방식과 ‘결혼’시키는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다. 창조적인 사람이 유년기의 ‘창조성 자본’에 되풀이해서 의존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78)

 

어느 분야의 전문 지식에 정통하려면 아무리 열광적으로 몰두했더라도 최소한 10년 정도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분야에서 통용되는 지식에 통달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10년 정도의 꾸준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의미 있는 도약을 이룰 수가 없다. (79)

 

공공연히 권위에 도전하든 그렇지 않든, 미래의 혁신가는 언제가 새로운 방향으로 시선을 돌릴 자세가 되어 있다.(80)

 

창조자는 자신의 직관을 믿어야 하고, 아무 보상도 없는 반복적인 실패에도 꿋꿋이 버텨야 한다. (82)

 

창조적인 인물이란 어떤 분야에서 처음에는 참신하게만 여겨지지만 종국적으로는 특정한 문화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고 작품을 창조하고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을 말한다. (83)

 

나는 어떤 한 사람이 모든 분야가 아니라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만 창조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83)

 

창조적 인물은 끊임없이 창조성을 추구하며 지속적으로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조정한다. (84)

 

창조성은 새로운 유형의 작품을 제작하는 것, 혹은 지금까지 무시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문제의식이나 주제를 발견하는 것과 관련된다.(84)

 

창조적인 행위는 특정한 문화에서 받아들여질 때에만 제대로 인식된다.(84)

 

바람직한 것은 비동시성에 압도되지 않는 범위에서 실질적인 비동시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94)

 

창조자들은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의 정서적인 지원도 필요로 하고, 자신이 이룬 획기적인 도약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인지적인 지원도 필요로 한다.(97)

 

나는 각각의 창조자들이 모종의 거래나 계약, 다시 말해서 파우스트적인 협정을 맺은 것을 발견했는데, 이들은 이 협정을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오랫동안 발휘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겼다. 대체로 창조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특히 원만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98)

 

대체로 창조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특히 원만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98)

 

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3.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세상에 홀로 맞선 사람

프로이트 스스로 가장 중요한 저작이라고 생각하는 <꿈의 해석>이 출간된 후에야, 그는 다른 사람들도 자기의 이론을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일 터이고, 어쩌면 그들을 보다 넓은 세계로 인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이다.(105)

 

가장 중요한 점은 프로이트가 재능이 매우 뛰어난 아이였고, 주변 사람들이 그런 재능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107)

 

아들의 재능을 굳게 믿고 있는 아버지(“내 아들의 발가락이 내 머리보다 영리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 그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었다.(108)

 

프로이트는 법학을 전공할 생각이었다가, 괴테의 <자연론>에 관한 강의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자연을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 묘사한 세상 만물에 대한 이 위대한 송가는 프로이트가 의학을 공부하고 자연학도가 되는 데 촉매 역할을 했다.(108)

 

젊은 시절부터 그는 자신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중요한 성취를 이루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문제가 있다면, 자신이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 그런 성취를 이룰 것인가였다. (110)

 

프로이트는 언어지능과 인성 지능이 우수했다. , 언어와 인간을 다루는 분야에서 편안함을 느꼈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 (111)

 

하지만 히스테리 환자가 아닌 환자도 최면 상태에서는 히스테리 증상을 보인다는 샤르코의 실험 결과는 프로이트에게 새로운 사실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적어도 몇몇 신체증상은 완전히 심리적인 혹은 정신적인 요인에 의해서 발생했을 가능성이다. 또한 이러한 환자들이 최면상태에서 행한 경험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무의식의 강력한 작용에 처음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115)

 

프로이트의 20대는 일종의 ‘심리사회적 유예기간’이었다. 이 기간에 그는 자신이 어느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결정하기 위해 다양한 직업과 생활방식을 시도했었다. (117)

 

예전에 억압된 기억을 말로 풀어내면서 거기에 얹힌 묵은 정서를 발산하면, 증상을 없애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였다. (118)

 

이 대화 치료법은 말을 통해 억압된 감정을 발산하게 함으로써, 처음에는 소산되지 못했던 관념들의 작용력을 제거한다. 또한 그런 관념을 (가벼운 최면 상태에서) 정상 의식으로 끌어들이거나 치료자의 암시를 통해 제거함으로써, 그것을 연상 효과에 의해 교정하는 것이다.(119)

 

강력한 정서를 마치 물의 흐름을 막아놓은 댐처럼 막아버리면 히스테리 증상이 생기는데, 이 때 증상은 정서를 억누르지 않았을 경우에 소모되는 에너지와 똑같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치료는 카타르시스를 이용하는 방식인데, 억제된 에너지를 발산시켜 증상을 제거하려고 했다. (120)

 

대담하게도 프로이트는 이렇게 단언했다. “어떤 원인이나 증상을 출발점으로 삼든, 종국적으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성적 체험이다.”(121)

 

인생의 보다 이른 시기에 프로이트에겐 항상 가슴속의 생각과 두려움, 야심에 대해 털어놓을 가까운 사람들이 한두 명 있었다. (122)

 

<정신분석학 운동의 역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그 외로웠던 시절, 요즘과 같은 압박감이나 분망한 일이 없었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영광스러운영웅시대처럼 느껴진다. 나의찬란한 고립에는 분명 장점도 있었고 매력도 있었다.” 다른 혁신가들도 위대한 비약을 이루기 직전의 정신 상태를 회고할 때면, 감정상의 절정과 추락이라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127)

 

프로이트의 이론은 바로 이 개념을 중심 축으로 해서 여러 주요 개념들이 유기적인 전체를 이룬 것이다. 그 핵심 개념은 억압이다. 좀더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표상들을 의식 아래로 억누르는 심리 과정을 일컫는다. 프로이트 자신도 이 개념의 중요성을 확언한 바 있다. “억압이라는 교의는 정신분석학 이론 전체가 서 있는 주춧돌이다.”(129)

 

만약 억압이 프로이트 이론 체계의 중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면, 꿈은 억압 과정을 이해하고 그 밖의 정신 생활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프로이트는 꿈의 힘을 발견한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꿈을무의식에 이르는 왕도라고 불렀으며, 그 비밀을 밝히는 것은한 사람의 생애에 평생 한 번 허용될까 말까 한 통찰이라고 말했다.(130)

 

신경증은 다양한 방어 기제에 의존한다. 방어 기제란 두려운 생각이나 정서적 불안을 야기할 만한 관념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심리 기제이다.(131)

 

나 같은 사람은 무언가에 열정을 쏟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132)

 

모든 심리 기제는 신경의 연결과 에너지 상태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기술되었다. 프로이트가 경험적으로 입증할 수 잇는 마음의 기본 법칙(예를 들어, 뉴런 양()의 줄어드는 경향)을 기술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 논문은 뉴턴적인 관점을 갖는다고 여겨졌다.(134)

 

소통에 대한 이런 욕망은 인지적인 측면과 정서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는다. 창조적인 인물들은 학문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정서상으로도 무조건적인 격려와 지지를 원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통에 대한 이런 필사적인 노력은 엄마와 아이 사이에 맺어진 최초의 소통 관계와 어린 시절의 친구 관계를 회복하려는 심정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136)

 

창조적인 인물들은 근본적인 비약을 이루기 전에, 자신이 새로 만들어낸 언어를 믿을 만한 친구에게 시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도 자기가 아주 미친 것이 아니며, 정말 중요하고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확인 받고 싶은 심정 때문일 것이다. 창조적인 인물들은 학문적인 이해 뿐만 아니라 정서상으로도 무조건적인 격려와 지지를 원하기 때문이다.(136)

 

프로이트는 모든 꿈에는 모종의 소원이나 환상이 담겨 있다고 믿게 되었다. 꿈은 억압된 소원이 위장 실현되는 과정이며, 예전의 결심이나 근심 혹은 욕망을 마음속에서 지속적으로 처리하는 수단이다.(137)

 

꿈 분석과 자기분석을 통해 그는 어린 아이들은 유아기부터 강한 성욕(육체적인 쾌락뿐 아니라 정신적인 쾌락 추구)을 갖는다고 확신했다.(142)

 

프로이트는 기억 조직을 자세하게 탐구하면서 새로운 기반을 닦았다. 기억은 그 자체로는 무의식적이지만, 꿈은 무의식이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는 것이다.꿈의 동인은 무의식에서 생기며, 꿈에는 무의식적 소원이 잠복해 있다. 소원은 전의식으로 표출되고자 하는데, 낮에는 검열에 의해 왜곡되지만 저항이 약해지는 밤에는 다양한 위장과 타협 형성을 통해 꿈으로 분출된다. 그는 모든 신경증 증상을 무의식의 소원 성취로 간주해야 한다고 단언한다.(144)

 

“나의 재능에는 한계가 있다. 자연과학이나 수학에는 아무 재능이 없다. 양적인 것에는 아무 소질이 없다.(145)

 

프로이트의 과학적 사유는 그 본질이 언어적이며, 공간적 요소는 거의 없고 논리적 요소가 얼마간 담겨 있을 뿐이다.(145)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이론과 실천 양면을 대표했다. 진지한 학자라면 독창적인 사상을 발전시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직업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 실천 방안에도 관여하는 학자는 매우 드물며, 처리방법을 완전히 새로 만드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지구 반대편의 간디처럼 프로이트는 자유 연상, 꿈 분석, 치료개입 등 사람들을 돕는 데 실제로 사용되는 실천 기법을 발전시켰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상을 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153)

 

"고요한 확신이 내 마음에 들어차기 위해선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내게 응답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자네라네.“(155)

 

이는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우리의 첫 번째 사례이다. (159)

 

하나는 오랫동안 홀로 자기 생각을 발전시켰다는 점인데, 이런 혹독한 경험을 통해 프로이트는 다른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태도를 배웠을 것이다. 두 번째로 프로이트는 남들이야 어찌 생각했건 자신은 다른 사람과 유대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적인 관계는 아니고 보다 공적이고 지적인 관계였다. 마지막으로 프로이트는 스스로를 어려운 작전을 수행하는 군대 사령관으로 여겼다. 위험하고 무모한 작전도 당연히 필요하고, 결과가 불확실한 포위공격도 해야 한다. (159)

 

매 순간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면서, 자신에게서 나태한 구석이 보이면 스스로를 매섭게 다그쳤다. (160)

 

창조적인 인물은 한 분야에서 10년 정도 종사한 후에 혁신적인 도약을 이루어내며, 이후에는 다양한 요인에 따라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161)

 

암으로 인해 몸은 쇠약해지고 고향을 잃은 상황에서 곧 죽을 목숨이라는 것을 알고도 그는 의연했다. (162)

 

그는 특정 지능을 활용하여 창조성의 절정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인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성찰하는 자성 지능을 통해, 그리고 아무도 공감과 이해를 보이지 않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통해 그런 성과를 보였던 것이다. (165)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영원한 아이

아인슈타인은 아주 까다로운 물음을 제기해 놓고 그것에 대해 골몰하곤 했다.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내놓고 그 해답에 대해 골몰하는 이런 성향을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았다.(168)

 

아이의 마음과 창조적인 어른의 마음 사이에 깊은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70)

 

물리학자 라바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리학자들이란 인간 피터팬이다. 그들은 결코 어른이 도지 않으며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세상 물정에 밝아지면, 호기심을 갖기에는 너무 많이,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된다.(171)

 

말을 잘하고 다른 사람들의 세계에 흥미가 많았던 프로이트와 달리, 어린 알베르트는 사물의 세계에 호기심이 많았다. (172)

 

어린 아인슈타인에게 종교적 성향이 강했다는 점은, 그가 영혼의 진한 갈증을 느꼈으며, 궁극적인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고, 관습적인 지혜에 반발할 수 있는 능력(충동적인 반발이 아니다)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학교에서 출중한 학생이었지만, 아인슈타인은 정규 교육에 불만이 많았다. 그는 당시 독일 학교의 특징인 획일적이고 권위적인 교육방식을 매우 혐오했다. (173)

 

어린 아인슈타인에게 종교적 성향이 강했다는 점은, 그가 영혼의 진한 갈증을 느꼈으며, 궁극적인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고, 관습적인 지혜에 반발할 수 있는 능력(충동적인 반발이 아니다)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173)

 

“그 학교는 나한테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겼다. 자유로운 정신이 가득했고, 소박하면서도 진지한 교사들도 권위적인 모습이라곤 보이지 않았다.(175)

 

“기질상 저는 추상적인 사고나 수학에 이끌리고, 상상력이나 실제적인 분야의 재능은 부족합니다.(175)

 

이미 아인슈타인은 어린이의 호기심과 감수성을 어른의 단계적인 방법론과 접목시킨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176)

 

아인슈타인의 업적은 뉴턴의절대적역학이 더 이상 타당하지 않을 때도, 가령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경우에도 이런 상대성 원리가 유효하다는 점을 발견했다는 점이다.(183)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모든 지식은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다. … 위치는 명백히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간계를 표현하지 않는 용어로는 물체의 위치를 기술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공간에는 어떤 이정표도 없다. 공간의 어느 한 구역은 다른 모든 구역과 똑같다.” (184)

 

아마도 그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할 능력이 있으며, 물리학의 최신 성과물에 익숙해 있지만, 아직 현재 통용되는 관점에 지나치게 물들어 있지는 않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젊은이의 마음과 성숙한 어른의 마음을 모두 갖춘 사람일 것이다. (190)

 

프로이트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매료되었던 데 비해, 아인슈타인은 객관적 사물 간의 관계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91)

 

올림피아 아카데미 성원들은 함께 도보 여행이나 캠핑을 떠났고 수영을 했으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서로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유쾌한 농담을 나누었고 서로의 열망과 두려움을 얘기했다.(192)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 둘 다 자신들이 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확고하게 알고 있었고, 누구라도 그들이 가는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고독한 처지를 일부러 구하진 않았으나, 프로이트와 달리 고독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 “나는 시골에서 고독하게 살았으며, 단조롭고 조용한 삶이야말로 창조적인 정신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193)

 

“나 같은 사람에게 발달의 전환점이란, 그저 덧없을 뿐인 개인적 관심사를 서서히 뒤로 하고 사물을 관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집중한다는 사실에 있다.(195)

   

"나 자신과 나의 사고 방법에 관해 살펴보노라면, 공상하는 재능이 실증적인 지식을 흡수하는 재능보다 나한테는 더 큰 의미가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196)

 

그의 혁신적인 업적은 공간적 이미지와 수학공식, 경험 현상, 그리고 기본적인 철학 주제를 통합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필립 프랭크가 지적한 대로 아인슈타인은 자기 생각을 다양한 표상 방법을 통해 나타내는 일을 즐겼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문제에 관해 사고할 때 항상 이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정식화해서 사고방식이나 교육 배경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197)

 

실제로 그의 혁신적인 업적은 공간적 이미지와 수학 공식, 경험 현상 그리고 기본적인 철학 주제를 통합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권위에 반발하는 기질을 타고 난 아인슈타인은 특히 젊은 시절에는 윗사람들에게 도전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그는 가장 야심적인 도전 앞에서 몸을 사리는 과학자들에 대한 경멸감을 감추려 들지 않았다. 또한 그는 자신이 원하는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198)

 

프로이트는 자기 이론의 진가를 올바로 평가 받기 전에 먼저 하나의 분야와 장을 스스로 창조해야 했다. 아인슈타인도 분명 하나의 분야를 변화시켰지만, 그 장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

 

물리학의 표준 절차는 현상을 관찰하고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한 후에, 이로부터 원리와 이론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와 정반대로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는 높은 추상 수준에서 기본적인 물리 법칙, 가령 광속 일정의 원리를 우선 제기한 후에 이에 근거하여 경험적 현상을 추측하고 그 기본 원리를 다른 법칙과 연결시켰다. (208)

 

“1900년이 지나고 얼마 후에…… 나는 기지의 사실을 토대로 추론을 통해 참된 법칙을 발견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다. 더 오랫동안 필사적으로 노력하면 할수록, 오직 보편적인 공식(원리)을 발견했을 때만 확실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커졌다.”(209)

 

26살의 특허국 직원이 물리학자들(결국은 일반 사람들까지도)이 현실에 대해 사고하는 방법을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209)

 

우선 특정 분야의 연구결과와 원리를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이미 알려진 사실을 다시 발견하는 경우가 생긴다. (210)

 

아인슈타인의 도약은 물리학적 분석의 여러 요소를 통합하려고 했고 낡은 사례와 원리를 좀더 광범위한 이론틀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는 고전적인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이후 우리가 시간과 공관, 물질과 에너지에 대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혁명적이다.(211)

 

이러한 사례는 새로운 혁명적 과학 사상이 기성세대, 즉 장의 권위자들에게 수용되는 일은 드물다는 토마스 쿤의 주장에도 부합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수용되려면 입장이 굳어지지 않은 새로운 세대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216)

 

아인슈타인은 프로이트처럼 자기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치는 성격이 아니었다. ...

아지만 아인슈타인은 적절한 연구 환경과 좋은 동료들, 그리고 세상의 인정을 나름대로 중요시했고, 그래서 불행했던 학창 시절 이래 별로 애착을 갖지 않았던 땅에서 제안한 직위를 받아들였다. (219)

 

나이가 들어서도 그는 걱정 없이 살아가는 낙천적인 아이(아이들이란 자기 행동을 규율하려는 사회의 관습이나 기성세대의 잔소리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법이다)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220)

 

이전에는 우주의 모든 물질이 사라져도 시간과 공간은 그대로 남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 역시 물질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지요. (222)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10년 동안 전문 지식을 익힌 아인슈타인은 아직 젊은 나이에 결정적인 도약을 이루어 물리학의 연구 방향을 쇄신했다. (229)

 

어느 쪽도 상대방의 견해를 뚜렷하게 바꾸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진심과 성의로써 상대방을 대했는데, 이 점은 프로이트와 그의 적대자들 간의 관계와 뚜렷하게 대조된다. (230)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230)

 

마흔 살 이후에도 자연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룰 수 있을까? 대단한 위업을 달성하는 그런 소수의 과학자들도 대개는 젊은 시절에 그런 업적을 이룬다. (232)

 

참신한 생각은 젊음의 특권이요, 일단 지나가면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재능이다. (233)

 

젊음과 원숙함의 결합은 창조적인 과학 천재의 고유한 특징일 것이다. (233)

 

만약 아인슈타인이 20년 늦게 태어났더라면, 그의 재능과 세계관은 논리-수학지능이 공간적 재능보다 더 중요한 양자 역학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233)

 

탁월한 젊은 과학자가 중년과 만년에도 계속해서 혁명적인 업적을 이루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체계가 느슨하고 발전 방향이 다양한 분야, 가령 사회과학처럼 아직도 발전 도상에 있는 분야에서 활동하는 경우이다. 또 하나의 방식은 매우 중요한 발견을 이룬 다음에 남은 생애 동안 그 발견에 따른 지적 자본으로 연구 생활을 지속하는 경우이다.(234)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로서보다 전반적인 사색가로서 끊임없이 성숙했다.

단지 뛰어난 과학자로서만 아니라 (과학에 대해서 뿐 아니라 과학이 인간의 삶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도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원숙하고 성찰적인 인간으로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천재란 주로 명민하고 신속하게 직관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직관과는 다른 이해 능력, 즉 성찰적 지혜라고 부를 만한 능력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 성숙한다. (236)

 

"나는 신이 어떻게 우주를 창조했는지 알고 싶다. 이런저런 현상이나 이런저런 요소에 대한 각양각색의 견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신의 생각이다. 나머지는 지엽적인 것이다.“(236)

 

과학과 인식론은 긴밀하게 연결되었다는 점, 과학적 사유란 단지 상식의 확장에 다름 아니라는 점, 과학자와 예술가는 모두 일상에서의 도피를 추구한다는 점, / 그는 분명한 확신을 갖고 일관성 있게, 그리고 인상적인 태도로 그런 주장을 했고, 덕분에 그의 주장은 우리 시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이 될 수 있었다. (236)

 

그는 우주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는 점과 우주의 근본적인 합리성과 질서, 조화를 강조했다.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이 현대의 창조자는 계몽주의의 자식임을 자처했다. 시작은 유년기의 날카로운 직관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탁월하고 포괄적인 철학이 되었다. (237)

 

아인슈타인은 겉으로 보면 모순적인 인물이다. 어떤 면에서는 젊은이와 같지만 다른 면에서는 나이보다 원숙한 모습을 보여 준다.(238)

 

나는 사회 정의와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열정적일 만큼 관심이 많은데 비해, 이와는 이상하리만치 대조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직접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

나는 관습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와 같은 변덕스런 토대에 내 정신을 의존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240)

 

간주곡1

인문학자들은 문학과 예술, 개인들의 생애, 역사적 사건과 같은 구체적인 현상에 주목하고 이 분야에 어울리는 이론 모델을 활용한다. 반면 과학자들은 실체의 종류와 사건의 유형을 설명할 수 있고 나아가 특정한 조건 하에 이러한 물체와 사건에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 있는 이론 모델을 세우려고 노력한다.  (242)

 

이미 다른 학자들이 제기한 문제의 해답을 마련하는 수준을 넘어설 때 과학자의 소명은 더욱 빛이 난다. (243)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은 모두 위대한 도약의 시기에 고립된 생활을 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이론적이고 정서적인 도움을 받았다. 또한 모두 처음의 좌절을 극복하고 끈기 있게 노력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245)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이 유년기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는 점은 현대에 대한 이 책의 연구에 적절한 면이 있다. 프로이트는 유아기의 사건을 성년의 감정과 인격을 좌우하는 주된 추진력으로 여겼다. 아인슈타인은 어린 아이의 마음을 중시해서 아이들이 물리학에 대한 직관적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246)

 

5.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 신동과 천재

신동이 재능을 보여주어야 하는 영역이란 이미 해당 문화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분야이고 최소한 그 아이의 행동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분야인 것이다. (251)

 

신동의 출현은 특정 분야에 대한 어떤 문화권의 관심과 지원 이외에도, 언제나 여러 요인들이우연히 맞아 떨어져야가능한 현상이다. 그러니까, ‘재능이 갖춰진아이와 그 분야에우호적인 문화뿐만 아니라,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252)

 

(신동들은) 특히 서구에서는 지금까지는 자기들이 그저 열성적으로 밀어붙이는 부모나 강압적인 선생님, 혹은 다른 누군가의 야망을 대신 실현해 주는 대리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런 주위 사람들의 야망은 그들 자신의 오랜 관심사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도해 나가야 하고, 이렇게 주도권을 되찾게 되면 지금까지 그들의 경력을 ‘관리’해온 사람들과 여러모로 충돌을 빚게 된다. (253)

 

오랜 친구인 거트루드 스타인은피카소는 다른 아이들이 abc를 쓸 때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언제나 그가 말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254)

 

다중지능이론의 견지에서 보면, 피카소의 조숙함은 시각-공간 영역, 신체-운동 영역, 대인 영역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255)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집요한 실험 정신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피카소는 다양한 화면 구성을 시도하고 똑 같은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그렸으며, 호소력 짙은 극적인 감정을 화폭에 담았다.(258)

 

내가 보기에 이런 실험적인 성향이 생긴 이유는 좀더 내생적인 요인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그의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질, 미술에서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표준적인 학과 공부를 하는 데서 어려움을 느끼는 능력 간의 불균형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학생이면 마땅히 잘 해내야 하는 일을 잘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자기가 강점을 보이는 분야를 맹렬하게 파고들어서 개인적인 좌절감을 극복하고 가족들에게 자기의 진면목을 보이고자 하는 법이다.(259)

 

모든 아동은 외상적인 체험을 하며, 그런 체험이 얼마나 그 아동에게 깊은 충격을 주고 거기서 받은 상처가 얼마나 오래 남는지에 대해 정확히 계산하기는 불가능하다. 피카소는 유아 시절부터 자신이 몸소 겪은 사건이나 사람의 외양을 생상하게 기억할 만큼 감수성이 아주 예민했다. (260)

 

음악과 달리, 회화 분야의 신동은 없습니다. 어린 천재란 그저 유년기의 천재일 뿐이지요. 나이가 좀더 들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집니다. 그런 아이도 미술가가 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263)

 

피카소는 아동 전시회에 관해 다소 수수께끼 같은 말을 농담처럼 던지기도 했다. “그 나이 적에 이미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지만, 그 아이들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기까지는 평생이 걸렸습니다.”(263)

 

다작과 풍작은 폭력과 활력이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르다. (268)

 

피카소는 긴 생애 내내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무척 어려움을 겪었다. 대개의 경우는 죽음을 아예 부정하려고 했다. (271)

 

피카소는 일종의 결산을 의미하는 작품을 캔버스에 그렸다. 이 경우엔 캔버스의 크기도 커졌고, 사전 준비 과정도 길어졌으며, 밑그림과 스케치 역시 훨씬 많이 그렸다. 피카소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은 대개 이런 과정을 거쳤다.(273)

 

피카소의 중요한 작품들은 거의 모두 하나의 정점이자 선취(anticipation)이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그가 이전에 보았던 것, 그리고 최근까지 작업해 왔던 것을 훌륭하면서도 독창적으로 ()창조한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인생」은 이 재능 있는 스페인 예술가의 작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상징이자 징후이며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277)

 

피카소에겐 현재의 영예에 만족하는 것을 막는 무언가가, 아마도 어린 시절에 형식을 해체하도록 했던 것과 동일한 충동일 터인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맞서 새로운 경지에 오르고자 했으며, 전례가 없는 깊이에 도달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와 같은 가차 없는 도전 의지는 이 책에서 다루는 창조적인 거인들 모두의 특징이며, 그들을 그들답게 만드는 특징이다. (279)

 

초상화가 스타인을 닮지 않았다는 비난을 듣자 피카소는 세기의 농담이라고 할 만한 유명한 말로 대꾸했다고 한다. “별로 걱정할 필요 없어. 결국은 스타인이 저 그림을 닮게 될 테니까.”(279)

 

내 작품은 일기와 같다.”(284)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287)

 

두 화가는 새로운 시도에 나서게끔 서로를 자극했다. 피카소는 브라크의 엄격한 태도가 없었다면 지나치게 왕성한 창작력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리지 못했을 터이고, 브라크 역시 피카소의 창조적인 사례와 자극이 없었다면 온갖 종류의 대상과 시각 요소를 작품에 구현하지 못했을 것이다.(295)

 

피카소는 여러 차례 이런 가벼운 여행을 통해 지친 심신을 달래고 낙천성과 삶에 대한 애정을 되찾았다. (300)

 

아무리 친밀하고 좋은 관계를 맺은 사이라도, 서로 떨어져서 자기만의 시간과 장소를 확보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낡은 주제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는 법이다. 고독의 시간은 친밀한 어울림의 시간 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이다.(302)

 

내가 나 자신을 반복해서 흉내 낼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과거는 더 이상 내게 흥미거리가 되지 못한다. 나 자신을 베낄 바에야 차라리 다른 사람을 모방하겠다. 그러면 적어도 새로운 면을 추가할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난 새로운 걸 발견하기를 좋아한다.

화가란 결국 무엇이겠는가? 다른 사람의 소장품에서 본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소장품으로 만들고 싶은 수집가가 아니겠는가. 시작은 이렇게 하더라도 여기서 색다른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307)

 

“관람자에게 아무런 감정상의 동요도 일으키지 못하고 관람자가 그저 대충 훑어보는 예술작품은 아무 의미가 없다. 관람자가 비록 상상 속에서라도 어떤 반응을 보이고 스스로 창조에 대한 열망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 관람자를 마비 증상에서 일깨워야 한다.(309)

 

완성된작품이란 있을 수 없다. 한 작품의 상이한 상태가 있을 뿐이다.”(313)

 

내 그림은 탐구다. …이 탐구에는 논리적인 순서가 있다. 내가 번호를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간 순서에 따라 실험을 하고, 여기에 번호와 날짜를 적어두었다. 이런 점을 고맙게 생각할 날이 올 것이다.” 이를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예술가의 작품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가 언제, 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작업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는 과학이 존재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과학이라고 불릴 수도 있을 터다. 창조적인 인물을 탐구해서 인간 일반에 관해 알고자 하는 그런 과학이다.”(313)

 

그림이란 기본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다. 외양은 어떨지 몰라도 처음의 구상은 거의 온전하게 남는다.”(317)

 

“정신적 가치가 삶을 영위하고 작품 활동을 하는 토대인 예술가들은 인간성과 문명의 가장 숭고한 가치가 위기에 처한 갈등 상황에 대해 오불관언의 태도를 보일 수도 없고 보여서도 안 된다. 항상 나는 이렇게 믿어 왔다.(321)

 

예술가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백치이다. ……정치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심장을 뒤흔드는 정열적이거나 행복한 사건에 민감한 사람이다. ……그림은 집 따위를 꾸미는 수단이 아니다. 그림은 적을 공격하고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전쟁의 수단이다.(322)

 

평생에 걸쳐 성장과 발전이 가능한 분야에서 활동했기에 피카소는 새롭고 신선한 경험과 예술적 자극을 얻을 수 있었고, 스스로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324)

 

어떤 의미에서 피카소는 난마처럼 뒤얽힌 복잡성과 날카로운 단절로 점철된 삶에서 오히려 기운을 얻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324)

 

다른 창조적인 인물 역시 주변 사람들의 죽음이나 불행에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피카소와 관련된 사람들이 비참한 운명에 처한 경우는 그 정도가 심했다. (328)

 

비록 우리 모두는 결국 인간으로서 평가 받아야 하겠지만, 예술가(혹은 과학자)의 업적을 그들의 인간적 약점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330)

 

피카소는 자신의 재능을 초월해서 생각할 능력이 없었다. 그는 여러모로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였는데, 이를테면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성숙한 어른’의 세계를 경멸했다. (331)

 

그는 예술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세속적인 관심사보다 자신의 작품과 생존을 우선시했다. (331)

 

6.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Igor Stravinsky - 음악가이자 정치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자서전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음악은 그 본질상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는 무력하다.” 그는 음악가라는 장인이 작업하는 소재인 가락과 리듬은 그 자체로는 목수의 대들보나 보석 세공사의 보석과 마찬가지로 표현할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334)

 

모든 창조자들, 특히 음악가들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폭넓은 대중과 더불어 자신이 창조한 작품의 운명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주위 동료들 사이에서 적절히 처신해야 한다.  (335)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에 심취하기는 했지만 음악 신동은 아니었다. 실상 그는 음악 자체보다는 회화나 연극에 더 흥미를 느낀 아이였다. (339)

 

학습 능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었던 피카소와도 달라서 그저 정규 교육에 흥미가 없었을 뿐이고 평생 동안 스스로 배워 익히는 방식을 선호했을 뿐이다. (340)

 

“무엇을 배우든 신참자가 걸어야 할 길을 하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학습 과정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지만, 이것은 자기만의 표현 방법을 자유롭고 힘차게 추구할 수 있는 수단으로만 삼아야 한다.(342)

 

젊은 스트라빈스키는 디아길레프의 활동 모습에서 공동작업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교훈 두 가지를 배웠다. 하나는 마감 시한을 지켜야 한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예술적 이상은 각기 다르면서 고집은 무척이나 센 사람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며 타협을 이끌어내는 방법이었다. (348)

 

공전의 성공을 거듭하는 가운데서 이례적인 실패를 맛보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아무리 창조성이 뛰어난 혁신가라 해도 길을 잘못 들어설 수가 있는 법이며, 이들은 본래부터 오류 따위는 범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만 그 실패를 딛고 재기하는 방식이 보통 예술가와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우는 사실인 까닭이다.

위대한 창조자들은 걸작이든 태작이든 작품 자체를 다량으로 창조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증거 자료를 모아놓았다. (355)

 

분명히 이 작품은 여러 이유로 처음 듣는 청중을 소외시킨 면이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와 똑같은 이유로 결국에는 수용되고 인정받았던 것이다. 물론 변한 것은 작품이 아니라 장이었다. (366)

 

「봄의 제전」에 대한 드뷔시의 평이 정곡을 찌른다. “기상천외하고 난폭한 음악이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모두 갖춘 원시 음악 같다.”(367)

 

탁월한 창조자들은 언제나 완벽주의자이다. 처음의 구상을 세목 그대로 애써 실현하고자 하며, 수정이 꼭 필요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경도 가하지 않으려고 한다. 용기 있는 창조자들은 어떤 권리도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으려 하며, 설사 의식적으로는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도 무의식적으로 원래의 착상을 그대로 고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 타인의 말을 듣기를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374)

 

처음 10년 동안 해당 분야의 지식과 기법을 완전히 터득하고 이후 대략 10년을 주기로 혁신적인 작품과 새로운 방향 전환을 이룬 작품(이론)을 창조한다는 법칙이 스트라빈스키에도 적용된다는 얘기다. (379)

 

두 작품 모두에서 우리는 스트라빈스키가 외부에서 받은 다양한 영향과 자기 내부에서 느낀 여러 종류의 압력을 조정하고 화해시키려는 노력을 했음을 감지할 수 있다. (379)

 

부쿠레슐리프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음악사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다. 당시 그가 매혹되고 영감을 받은 것은 무엇이든 때와 여건을 불문하고 활용하여 스트라빈스키 자신의 색깔이 담긴 새로운 작품으로 창조하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이다.”(381)

 

젊은 시절에 직관적으로 수용한 것을 이제는 좀더 의식적이고 거리를 둔 상태에서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물론 이미 과거와 단호하게 결별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과거가 압도적인 무게로 다가오지 않는다. (383)

 

시간상으로 우리와 더 가까운 시기가 더 먼 시기보다 일시적으로는 우리와 더 많이 떨어져 있는 게 세상 이치다.”(383)

 

스트라빈스키와 피카소가 과거와 자극적인 대화를 지속적으로 했다는 점은 두 사람이 오랫동안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를 재창조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한층 더 심화시킬 수 있었다. (383)

 

엘리엇과 내가 낡은 배를 수리하지 않았는가? 낡은 배를 수리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진정한 임무다. 예술가는 이미 말해진 것을 그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말할 수 있을 뿐이다.”(384)

 

나의 재능은 신이 주신 것이다. 나는 매일 그 재능을 활용할 수 잇는 힘을 달라고 신에게 기도한다. 어린 시절에 이미 이 재능은 내가 잠시 보관하는 것에 불과함을 깨달았을 때, 내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맨 처음에 말한 생각이 중요하다. 재능은 신이 주신 것이라는.”(386)

 

그는 오랜 세월에 걸쳐 하루에 적어도 열 시간 동안 일을 했다. (387)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작곡 행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성찰했다. “창조적인 음악가로서 나는 매일매일 짐을 풀 듯이 내 마음 속의 아이디어를 표출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나는 작곡가라는 운명을 타고났고 다른 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곡을 했다. ……나는 영감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잘 모를 수도 있다.”(프로이트 역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영감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맞으러 마중 나간다.”)(388)

 

음악의 시학의 마지막 대목에서 스트라빈스키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의 행동 반경을 좁힐수록, 그리고 내 주위에 장애물을 더 많이 쌓아둘수록, 나의 자유 역시 더욱 커지고 풍부해진다. 속박을 없애면 그만큼 내가 발휘할 힘도 줄어든다. 더 많은 제한을 부과할수록 우리는 영혼을 구속하는 사슬에서 더 자유로워진다.”(390)

 

스트라빈스키는 이 책에서 논하는 다른 창조자들보다도 유년기에서 흘러나오는 중요한 어떤 것을 간직할 줄 알았고, 또 만년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열매를 만끽할 수 있었다. (399)

 

7. T.S.엘리엇 T.S. Eliot - 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45년 후에 초고가 발견된 일은 문학상의 미스터리를 밝혔음은 물론, 뛰어난 문학 작품의 탄생 과정을 통찰할 수 있는 값진 실마리를 제공했다. , 우호적이면서 솔직한 비판을 삼가지 않는 친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 준 것이다.(403)

 

빈민가의 세계와 하버드 신사들의 세계, 가난한 자의 고통과 안락한 사교계의 위선이 마구 충돌하는 모습은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의 영혼을 깊이 흔들었다. (408)

 

그는 나이 든 여자들이 휘어잡은 집안에서 자란 사람답게 자기 또래의 여자들을 사귀는 범에 서툴렀고, 여자들에게 위협감을 느꼈을 뿐더러 성적 욕망을 해소하지 못해 좌절감을 느꼈다.(409)

 

1914년에 에즈라 파운드를 만난 일은 내 삶을 바꿔놓았다. 그는 내 시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고, 오래 전부터 받기를 단념했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기질은 달랐어도 출신 배경이 같았던 두 사람은 급속히 친해졌다. (414)

 

엘리엇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여전히 확신이 없었다. 한결같은 경계인답게 그에겐 젊은 시절의 프로이트나 아인슈타인 혹은 피카소가 지녔던 대단한 자신감이 별로 없었다. (420)

 

황무지의 작시 과정은 창조적인 걸작품의 탄생에는 다른 사람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시를 쓸 무렵 엘리엇은 절망적인 위치에 놓여 있었다. 개인적으로 불행했고, 문학계에서의 자기 위치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럼에도 엘리엇은 행운아였다. 가까운 두 사람이 작업을 도와주었고 그들이 비판을 건설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엘리엇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429)

 

<황무지>의 작시 과정은 창조적인 걸작품의 탄생에는 다른 사람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429)

 

중대한 혁신을 감행한 창조자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엘리엇도 새로운 상징체계 혹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투했다. 자신의 개인적인 절망과 유럽 문명의 몰락을 담아낼 수 있는 시적 목소리를 창조하기 위해 힘겹게 노력했다. (430)

 

<황무지>는 극심한 불안감에 사로잡힌 정신, 즉 현대인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온갖 생각을 농밀하고 강렬하게 묘사한 작품이었다. (435)

 

엘리엇은 20대 초반에 <프루프록>을 썼고, 30대 초반에 <황무지>를 썼다. 이번에도 앞서 말한 10년 규칙이 적용됨을 볼 수 있다. 대략 10년 사에에 두고 엘리엇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436)

 

“위대한 시인은 모두 요절했다. 소설은 중년의 예술이고, 에세이는 노년의 예술이다.(437)

 

엘리엇은 시를 정서나 개성의 표출이 아니라, 오히려 정서와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로 여겼다. 그는 개성과 정서를 소유한 사람만이 거기서 도피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완벽한 예술가일수록, 번민하는 자아와 창조하는 자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그는 미숙한 시인은 선배의 작품을 그저 모방만 할 뿐이지만 성숙한 시인은 그 핵심을 훔쳐내서 더욱 개성적이고 훌륭한 작품으로 빚어낸다고 지적했다. (443)

 

그의 생각대로 시인은 어떤 종류의 경험도 소화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닌 존재이다. 시인의 마음은 무수한 감정과 말씨와 이미지 등을 붙잡아 저장해둘 수 있는 용기와 같다. 이러한 요소들이 무의식적이고 정리되지 않는 산만한 형태로 남아있다가, 서로 융합하여 새로운 화합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444)

 

시를 읽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논리가 개입하면 방해가 될 수 있는 정서적인 체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시를 가장 좋은 시라고 생각했다. , 무의식의 리듬에 기반해서 창조되고, 그 리듬에 부합하는 시를 가장 좋은 시라고 생각한 것이다.(444)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정서를 명확히 표현하는 일련의 객관 대상이나 상황, 사건인데, 해당 정서를 환기하려면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부적인 상()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객관적 상관물을 창조할 수 있는 시인이 가장 훌륭한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비상한 감수성과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결합시킬 줄 아는 시인이 없다면, 우리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능력까지도 퇴화할 것이다”(444)

 

냉소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경력을 높이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고 서로의 경력에 관심을 내비친 예술가는 다른 ‘미래의 거장들’을 찾아나선 ‘미래의 거장들’이 아니라 성공 지상주의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447)

 

재능이 뛰어난 젊은이들은 한 분야에서, 드물게는 여러 분야에서 기존의 업적을 완전히 배워 익힌다. 이미 당대의 첨단에 이른 자들은 한층 더 나아가기를 열망한다. (447)

 

경계인으로 살았던 엘리엇의 생애는 역설적이다. 그는 유서깊은 가문에서 태어나서 세계 최대의 강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엘리엇 가문의 다른 남자들처럼 주류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경계인으로 살았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런 길을 선택했다. 주류에 속하지 않는다고 느끼면서 일부러 경계인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455)

 

그는 일종의 파우스트적인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기를 요구한다. 가족도 버리고 오직 예술만을 좇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예술은 인간이 어느 가족이나 계급, 당 혹은 동인의 일원이 아니라 그저 그 자신일 뿐이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456)

 

경계인이란 오직 공동체를 전재하고서야 성립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창조적인 인물의 생애에서는 경계인이라는 느낌을 갖는 순간과 공동체에 속한다는 느낌을 갖는 순간이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궤적을 엿볼 수 있다.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세계 전체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만 홀로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양극을 오가는 모습이야말로 창조자의 생애에 긍정적인 비동시성과 부정적인 비동시성을 동시에 가능케 한 요인일 것이다. (457)

 

간주곡2

피카소는 젊음을 유지하고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가학적으로 대했고, 스트라빈스키는 친분 관계를 희생해서라도 법정 싸움의 불씨를 지피는데 주저치 않았으며, 엘리엇은 프로이트처럼 금욕적인 삶을 선택하고 동시에 가학적이라 할 만큼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무시했다. (459)

 

특정 장르에서 새로운 예술 작품을 창조하고, 자신들의 변화하는 예술적 비전을 반영하는 창조물을 축적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인 것이다.(461)

 

피카소와 세잔, 스트라빈스키와 드뷔시, 엘리엇과 라포르그 사이에는 연속성이 개재한다. 이들 혁신가들 사이에는 인상적인 유사점이 있다. 파편적인 요소와 형태 자체에 대한 관심, 일상의 세속적인 삶에서 겪는 긴장, 원시에의 동경, 과거의 무거운 주제, 세속의 사소한 일들과 고상한 전체 주제 사이를 왕복한다는 점이 그것이다.(462)

 

이들은 장인 정신이 투철한 예술가였다. 매일같이 작업실에 들어가 거의 홀로, 완성까지 몇 달 혹은 몇 년씩이나 걸리는 작품 제작에 몰두했다. (462)

 

어느 경우든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는 창조자의 삶에 본질적인 부분을 이루었다. (463)

 

실상 엘리엇이나 스트라빈스키는 좀 뒤늦게 태어났다면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그들의 모든 작품을 창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카소 역시 그런 것에 익숙하다면, 아예 작품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컴퓨터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세명의 예술가들은 앞 장에서 다루었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연구실 혹은 작업실의 창조자라고 할 수 있다.(464)

 

8. 마사 그레이엄 Martha Graham - 무용계에 혁명을 몰고 온 여자

흔히 이사도라는 신체를 무엇보다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로 여겼다고 한다. 그녀는 무용을 위대한 음악 작품의 반주에 맞춰 공연하는 진지한 예술 형식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467)

 

의식에 기반한 이러한 무용은 수백 년 동안 그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관습과 가치관과 감정을 반영한다. (467)

 

이사도라의 성공요인은 제자나양녀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주로 그녀의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와몸의 본능적인 움직임에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사도라는 통상적으로 새로운 무용 전통의 창시자라기보다는 고독한 선구자로 여겨진다. 날카로운 식견을 지닌 무용 비평가 애그니스 드 밀은 이렇게 말한다. “이사도라는 무대에 널린 쓰레기를 모두 청소했다. 그녀는 거대한 빗자루였다. 그녀로 인해 비로소 무대가 깨끗하게 청소된 것이었다.”(468)

 

네가 거짓말을 하면 내가 모를 줄 아니? 네가 나를 속인다는 걸 항상 네 몸짓이 말해 준단다. 네가 말하는 내용과는 상관 없이 네 모습에 다 써 있어. 몸짓은 거짓말을 못하는 법이란다.” 딸의 잘못에 대한 이런 통찰력 있는 부모의 대응은 나중에까지 커다란 의미로 남았다. (471)

 

그 순간 내 운명은 결정되었다. 나는 여신처럼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을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었다고 훗날 그레이엄은 회상했다.(472)

 

거의 서른 살이 된 이 시점에서 그녀는 마음속에 번지는 모든 의심을 접어두고 프로이트나 피카소에 비견할 만한 태도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나는 정상에 오를 것이다. 누구도 아무 것도 나를 막지 못한다. 그리고 나 홀로 그 길을 갈 것이다.”(475)

 

뛰어난 무용가들은 반복해서 감상할 수 있는 영상 화면을 경멸했다. 그들은 단 한 번의 공연이 주는 인상으로 기억되고 싶어했다.(478)

 

모든 것을 잃을 걸 각오하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했고, 각자가 우리의 모든 전통을 바다에 내던진 지 오래였다. (480)

 

“오늘날의 삶은 신경을 자극하고 날카롭게 후비는, 뒤죽박죽 엉켜 있는 삶이다.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하다.... 내 무용에 표현하려는 것이 바로 이런 삶이다.(480)

 

가벼운 즐거움과 여흥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실망해서 돌아갈 것이다.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 프로그램에는 열정과 항의가 생생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무용가로는 용서 받지 못할 일을 하는 셈이다. 관객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484)

 

1930년경 그레이엄은 현대 무용의 적통을 확립했다. 동작에서 일체의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감정 표현의 정수만을 표현하는 무용, 동시대의 주요 사안과 대화하는 무용이 그것이다.(489)

 

<프론티어> 6 30초 분량의 작품으로서, 무용이 무엇이며 무용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걸작이었다. 그레이엄은 미국인이란 누구이며 미국이란 세계는 어떤 곳인지를 박진감 넘치는 표현으로 관객에게 전달했다. 그것은 “순수한 미국, 솔직하고 자유로운 미국, 불굴의 의지로 서쪽을 향해 나아가는 미국인의 정신”이었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초기 작품에 비해 엄숙함은 덜하지만 훨씬 간결하고 집중된 어조와 표현으로 미국 개척자 여성의 경험을 규정하는 고독감과 소원함, 그리고 드문 기쁨의 순간을 전달한 것이다. (498)

 

“미국 무용의 문제에 대해 길을 찾아야 할 사람들 입장에서 내놓을 해답이란 이 땅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황량함과 비옥함이 참으로 흥미로울 정도로 대조를 이룬 이 땅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498)

 

자기를 복제하고 반복하는 진부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해서 관객을 놀라게 하면서 참신한 새 작품을 선보였다. 그녀는 언제나 위험을 감수할 태세가 되어 있었고, 가끔은 신랄한 비판에 의욕이 꺾이기는 했어도 다시 도전할 용기를 잃은 적이 없었다. (502)

 

처음 10년은 해당 분야의 기예를 익히는 기간이고, 두 번째 10년은 가장 인상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을 창조하는 기간이며, 세 번째 10년은 또 다른 절정의 작품, 그러니까 앞선 시기의 혁신에 기반을 둔 작품이자 그런 혁신을 좀더 명확하고 포괄적으로 해당 분야 전체에 연결시킨 작품을 창조하는 기간이다. (505)

 

그녀에게 있어 공연이란 삶 자체였고, 자신의 페르소나를 완전히 실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형식의 삶이 요구하는 긴장은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509)

 

신체-운동 지능은 자립적인 상징체계를 통한 사유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여 실험하고 여러 차례 변형하는 과정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517)

 

“그레이엄은 그녀의 몸이었다. 그것()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강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단련시킨 덕분에 그녀는 그녀 자신이 된 것이다. 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따라 그녀가 고안할 수 있는 무용의 한계가 규정되며, 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있기에 그녀는 연습을 통해 더욱 더 무용 테크닉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517)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을 갖추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니진스키는 단 한 번의 탁월한 도약을 위해 수천 번이나 도약 연습을 했다.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차이점은 감정을 느끼는 능력에 있지 않다. 비밀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감정을 객관화하고 명백하게 드러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521)

 

... 나는 무용을 삶에서 분리시킨 적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그레이엄은 다른 현대의 거장들과 마찬가지로 순수 추상의 세계에 매혹되지 않았다. “나는 이해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를 느끼기를 원한다.(522)

 

“나는 도둑이다. 하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플라톤, 피카소, 베르트람로스 등 누구라도 최고의 인물들에게서 생각을 훔친다. 나는 도둑이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 나는 내가 훔친 것의 진가를 잘 알고 있고, 늘 소중하게 간직한다. 물론 나만의 재산이 아니라 내가 물려받고 물려줘야 할 유산으로 여긴다.(523)

 

그레이엄은 작업 과정에서 초자연적인 기적을 바라지 않았다. 그녀는 안무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억에 의존합니다. 내가 인생을 이해한 방식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한 방식에서 많은 걸 얻지요. 우리가 읽고 마음 깊이 흡수한 것이 보석처럼 우리의 존재를 이루는 겁니다.(524)

 

나는 무용가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는 무용가로 선택된 것이다.”(524)

 

그레이엄은 헌신과 대담함이 부족한 사람들을 조금도 이해하지 않았다. “누구나 실패할 권리는 있다. 실패했더라도 더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용기만 있다면 실패를 발판으로 새로운 단계로 오를 수 있다... 한 가지 대죄가 있다면 그건 범용이다. 이게 내 믿음이다.(526)

 

무엇보다도 그녀는 모험을 꺼리지 않았다. 현재의 영예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위험을 감수할 태세가 되어 있었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실패하면 새로운 열정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다시 도전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다른 창조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한계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하면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더욱 과감하게 밀고 나갈 줄 알았다. (538)

 

무용가의 도구는 탄생과 죽음의 운명에 매여있는 그의 육체이다. 그가 사멸하면 그의 예술도 사멸한다.(540)

 

9. 마하트마 간디 Mahatma Gandhi - 신념을 실천한 정치 지도자

“나는 보통 이하의 능력밖에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다.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괘념치 않는다. 지성의 발달에는 한계가 있지만 마음의 성장에는 그런 한계가 없다.(544)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람들 간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여러모로 역량이나 능력이 부족하고 감정적인 여유도 없고 또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나 세상 경험, 동기 부여에 대한 지식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상회와 정치, 종교, 윤리 분야에서 조숙한 모습을 보이기가 쉽지 않다. (545)

 

별다른 특징이 없이 평범하고 결점이 많고 허둥대던 변호사로 1891년 런던을 떠난 간디와, 수백만의 위대한(마하트마) 지도자 사이에는 거의 닮은 점이 없다.” (549)

 

기회가 문을 두드리면 아무리 먼 곳으로 떠나야 하고 또 자신과 가족에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해도 그 기회를 붙잡는다는 점이다. (550)

 

배워야 할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공부하고 발견해 가면서 능력을 향상시켰다. 이 과정에서 간디는 필요할 때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는 훌륭한 능력을 찾아냈다. 간디는 언제나 사랑 받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목표를 추구하는 끈질기고도 침착한 태도는 널리 존경 받았다. (554)

 

간디는 이처럼 가혹하고 단단한 현실에 부딪치고도 두려움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변호사로서 더욱 원숙해지고 투쟁 결의를 더욱 굳건하게 다졌다. 유혹도 받았지만 그는 자신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 (554)

 

그는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시간을 분 단위로 지켰고 자신이 관장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신중하게 기록했다. (555)

 

간디는 적극적 실천가답게 자신의 사상과 종교를 직접적으로 실행할 길을 찾아 나섰다. (556)

 

간디는 스스로 도덕적인 삶을 모범적으로 실천해서 도덕적 권위를 얻지 않으면, 자신이 인도인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윤리적인 실천가로 활동할 만한 자격이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557)

 

진정한 치유는 영국이 이기심과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문명을 버리는 것, 아무런 목적도 없고 헛되기만 할 뿐인, 그리고기독교의 정신을 부정하는 그런 현대 문명을 버리는 것에 있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558)

 

간디는 사티아그라하가 단지 수동적인 저항에 그쳐서는 안 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생명의 힘이 되어야 한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559)

 

간디와 같은 정치적 창조자들에게는 창조적인 작업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보다 넓은 목적을 위해 움직이도록 추동하는 능력에 있다.(561)

 

나는 영국법을 어겨야 했다. 내가 복종하는 것은 그보다 더 높은 법, 내 양심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563)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일의 진행 과정이 불확실한 경로를 따를 여지가 다분한 공공의 광장에서 실험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경우에는, 궁극적인 실천 모델이 오직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습 과정을 통해 서서히 확립되는 법이다. (563)

 

그는 신념의 세기를 강조하기 위해 자기의 존재, 자기의 생명을 걸었던 것이다. (565)

 

어떤 시련도 기회로 삼을 줄 알았던 간디는 구속 수감을 일시적인 유예로 여겼다. 그는 과거의 행적을 반추하면서 폭넓은 독서와 사색에 전념할 수 있었고,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기 전에는 결코 멈출 수 없는 저항운동의 다음단계를 준비할 수 있었다. (572)

 

간디는 행동이 바로 자신의 분야임을 증명한 셈이었고, 이 과정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572)

 

간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편에 독서와 저작과 성찰이 있고 다른 한편에 몸소 용기 있는 모범을 보이는 지도력 있는 두 가지 활동의 항구적이고도 생산적인 변증법적 관계를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573)

 

무엇보다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은 톨스토이의 저작이었다. 톨스토이를 읽은 경험으로 말미암아 그는 영원히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서 폭력에 호소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났을 뿐 아니라, 인간의 권리보다는 의무, 그리고 모든 인간 문제에서는 사랑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574)

 

종교적인 혁신가란 자신의 개인적인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해답이 궁극적으로는 보다 넓은 공동체의 난국을 해결하는 데도 효과가 있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 (575)

 

“종교는 정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종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그러나 아무런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576)

 

사티아그라하의 신봉자는 폭력과 고통 혹은 위협을 통해서 서로 대결하는 대신, 몸소 고통을 짊어짐으로써 상대방의 양식과 양심을 일깨운다. (577)

 

폭력을 사용해서 정부가 법안을 폐기하도록 강제한다면, 나는 몸의 힘을 사용하는 셈이다. 법에 복종하지 않고 그 대가로 주어지는 처벌을 달게 받는다면, 나는 영혼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엔 자아의 희생이 수반된다.”(578)

 

사티아그라하의 유별난 점, 그리고 사티아그라하를 인간의 위대한 성취로 만든 요소는 그것이 실천적인 철학을 대표한다는 점에 있다. (581)

 

간디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584)

 

간디의 천재성은 영적인 인물이 사람들을 이끄는 전통적인 호소력과 사람들로 하여금 민족의 이상을 위해 복수심이나 이기심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삶을 희생하게끔 인도하는 전혀 새로운 행동 방식을 결합한 데 있다. (588)

 

그는 자신이 믿는 것을 말했고 말한 것을 실천에 옮겼다. 그의 정신과 영혼과 몸은 일치했다. (589)

 

자유는 여러분의 생득권이듯 우리의 생득권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 피를 흘리는 것을 우리는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께 솔직하게 말씀 드립니다. 자유를 얻는 데 희생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갠지스 강을 피로 물들인다 해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600)

 

아인슈타인은 좀더 시적인 말로 이런 생각을 표현하기도 했다. “아마도 후세대인들은 이런 인물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으로서 이 지구상에 걸어 다녔다는 사실조차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609)

 

“간디는 일반적인 권모술수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우월한 삶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정치 영역에서 더 높은 수준의 인간관계를 실현하기 위해 싸운 유일하게 참다운 정치가였다. (609)

  

간주곡3

“나의 전문 분야는 행동이다. (610)

 

간디와 그레이엄은 아주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들의 육체로서 창조 활동을 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적인 외양, 그리고 자신들의 몸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그들의 창조 활동의 핵심이다. 몸을 위주로 한 삶은 작업실이나 실험실에 기반한 다른 창조자들의 삶과는 전혀 종류가 다르다. 건강을 챙겨야 하고 어느 정도는 자기 현시를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관객과 동료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거기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들은 끊임없이 몸의 이상을 걱정하며 살아간다. 단식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스텝을 잘 못 밟아 작품을 그르칠 수 있다는 두려움, 혹은 그럴싸하게 보이지 못한고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실존의 순간 마다 그들은 엄청난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611)

 

이들 창조자 가운데 오직 간디만이 어떤 집단이나 분야에 속한 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성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말을 걸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이력과 재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뜻이 통하는 그런 이야기와 사상과 존재 방식을 창조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한 분야를 쇄신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새로운 인간의 이야기를 창조하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614)

 

그레이엄에게 공연은 그 자체로 목적이 있었던 반면, 간디에게 실행이란 정치와 사회 및 종교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이었다.(614)

 

3부 창조성의 조건

 

10.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

모든 창조적인 활동에는 역동적인 면이 있다고 가정했다. 재능 있는 개인과 전문분야, 그리고 창조물의 질을 판단하는 장 사이에 이루어지는 변증법적 관계가 그것이다. (620)

 

집안 분위기는 따뜻하기보다는 반듯한 편이고, E.C.는 자신의 생물학적인 가족에는 다소 소원함을 느낀다. 비록 부모와 친밀한 사이일 수는 있어도 감정에는 애증이 섞여 있다. 오히려 유모나 보모 혹은 다소 먼 친척과 더 가깝게 지내는 경향이 있다. E.C.의 가족은 교육 수준이 높지는 않아도 배움과 성취를 높이 평가해서 이런 방면에 대해 자식들에게 거는 기대가 큰 편이다.

 

E.C.는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재능을 보이고 가족은 안정된 직업인이 될 수 없다는 우려를 하면서도 이런 관심을 고무한다. 집안에서 종교적인 분위기까지는 아니라도 도덕적인 분위기가 배어 있어서 E.C.는 엄격한 양심의 소유자로 자라나는데, 덕분에 스스로 가책을 받는 일이 많을 뿐 아니라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 행실이 바르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입바른 소리를 한다. 그리고 한 때는 종교를 거부했다가도 훗날 다시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가 많다.

 

E.C.는 이미 10년 이상 어느 분야를 완전히 통달하기 위해 노력한 상태이고 그 분야에서 거의 최전선에 와 있다.

E.C.는 이제 동료들과 고립되어 홀로 자신만의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 자신이 도약의 문턱에 왔음을 감지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기 자신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놀랍게도 이 중대한 순간에 E.C.는 인지적, 정서적인 도움을 받아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도움이 없다면 좌절하기 십상일 것이다. (624)

 

E.C. 유형의 인물들은 실제로 자신감과 기민함,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근면함, 일에 대한 집중력 등을 지니고 있다. (628)

 

창조성의 현저한 특징은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의 결합에 있다. 이런 결합은 성격만이 아니라 사고방식(관념)에서도 나타난다. 아이다운 특성이 순진함과 참신함으로 나타나면 긍정적인 색채를 띠게 되지만, 반대로 이기심과 보복심리로 나타나면 부정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629)

 

각각의 인물들은 상당히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음에도, 유모의 보살핌 말고는 조건 없이 따뜻하고 친밀한 애정을 충분히 받지는 못했다. ... 모두가 업적과 성취에 기반한 조건 있는 사랑을 받았을 뿐이다. 아미도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일이야말로 자신의 전부라고 느끼는 성향이 짙어졌을 것이다. (633)

 

프랑스의 소설가 구스타브 플로베르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남들은 도착이라 할지 모르나 나는 내 작품을 미친 듯이 사랑한다. 마치 고행자가 배를 할퀴는 마모직 셔츠를 사랑하듯이 말이다.”(633)

 

10년간의 견습 기간을 거쳐야 중대한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약은 대개 일련의 시험적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는 편이지만, 일단 도약을 하게 되면 과거로부터 결정적인 단절을 이룬다.(637)

 

프로이트의 「프로젝트」와 아이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엘리엇의 『황무지』, 그레이엄의 「프론티어」, 간디의 아메다바드 파업을 결정적인 도약으로 간주한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혹은 『토템과 터부』), 아이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 피카소의 「게르니카」, 스트라빈스키의 「결혼」, 엘리엇의 「4개의 사중주」, 그레이엄의 「애팔래치아의 봄」, 간디의 소금행진 등이 두 번째로 정점에 오른 도약이라 할 수 있다.(638)

 

두 번째 도약 이후에 벌어지는 일은 창조자 개인의 재능과 포부보다는 해당분야의 성격에 따라 좌우된다. (638)

 

우리의 주제와 관련해서 내 눈길을 끈 것은 그들이 매일 창조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640)

 

10년이라는 기간은 이런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독립적인 작품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한정된 기간 안에 한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진정으로 혁신적인 작품이나 사상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41)

 

하나의 패러다임이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는 것은 새로운 접근 방법이 매우 빠른 속도로 폭넓게 수용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최적의 표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646)

 

개인과 분야, 그리고 장 사이에 일종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 개인의 창조성에 대한 궁극적인 결론은 내릴 수 없다. (654)

비동시성의 즐거움과 고통을 느낀 자는 다른 많은 이들이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주류라는 안락한 지위를 찾아 돌진하는 가운데서도 대개는 계속해서 비동시성을 추구한다는 사실도 그에 못지않은 진실이다. (656)

 

무조건적인 지지로 격려하는 정서적인 차원이 있어야 하고, 혁신적인 도약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 본질에 관해 유용한 조언을 해주는 인지적인 차원이 있어야 한다. (661)

 

파우스트 전설이란 창조적인 인물은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점에서 특별나지만 그런 재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치르거나 모종의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통념의 가장 유명한 판본일 뿐이다. (663)

 

에필로그 - 현대와 현대 이후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란, 기회의 시간이자 과거의 짐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뜻에 따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시간이며 표면 아래에 꿈틀거리고 있는 긴장과 불확실성을 표현해야 하는 시간이었다.(675)

 

이 급진적인 작품은 마치 인생의 의미란 오직 죽음에서만 찾을 수 있고 죽음은 황홀경과 다를 바 없으며 창조는 파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676)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예술의 현대적인 특질을현대성이란 파편화된 삶이며 시간의 급속한 변화이고 조각난 경험이다.” “현대성이란 덧없고 우연한 것이다. 이게 예술의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다.”(677)

 

현대 예술은 끊임없는 변화라는 맥락에서 탄생한다. 그것은 전통을 송두리째 거부하고 비평가 헤럴드 로젠버그의 말대로 ‘새로움의 전통’을 창조하려는 단호한 노력이다. (678)

 

모든 창조적인 도약에는 겉보기엔 전혀 이질적인 두 영역의 결합이 있다. 하나는 관련 분야에 대한 철저하고 조숙한 통달이고, 다른 하나는 유년기의 의식과 관련된 이해 방식과 직관이다. 창조적인 도약은 이런 두 영역의 성공적인 결합에 있으며, 이런 결합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그 도약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682)

 

현대의 거장들은 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아이다운 천진성과 자기 분야의 가장 선진적인 사고방식을 결합할 수 있었다.(683)

 

창조자가 젊은 시절에 해당 분야를 거의 터득하고 그 정점에 오르지 못하면 창조적인 업적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그들의 창조적인 도약은 원숙한 인물의 원숙한 작업의 결과이다. 그러나 아주 어린 시절, 거의 유아기의 감각과 시점을 보유할 수 있는 자만이 창조적인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보들레르가 말한 대로 천재란 유년기를 다시 찾을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685)

 

모더니즘은 자유이다. 하지만 이 자유는 오직 역사와 선대의 속박을 인정한 상태에서 추구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과거와 유년기를 부인하고 모든 형태의 속박을 인정하지 않으며 과거의 뿌리를 모두 근절하려고 한다. (690)

 

인간이란 어쩌면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방향, 장르 혼융의 방향으로 무한정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혁신과 전통, 모더니즘과 역사주의, 창조적인 도약의 시기와 인간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는 정체 혹은 퇴행적인 시기를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운명일지도 모른다.(691)

 

옮긴이의 글

우리는 흔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보고똑똑하다거나지능이 우수하다고 말하곤 하지만, 가드너는 이런 발상이 틀렸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지능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서어떤 한 사람이 무조건 지능이 우수하다거나 열등하다고 단정짓는 생각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처럼 언어 지능과 논리 지능이 우수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카소처럼 공간 지능과 신체 지능이 우수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능이 다원적이라면 창조성 역시 다원적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692)

 

바쁜 일상과 홍수처럼 밀려드는 정보 속에 자칫 삶을 적극적으로 살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치이기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어릴 때 품었던 꿈을 이제는 기억조차 못할 정도로 아스라이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가드너는 창조성이란 바로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693)

 

이 책에서 역자가 가장 공감한 대목 가운데 하나는 창조성은 단지 한 개인의 탁월한 재능만으로 실현되거나 발휘될 수는 없고, “오직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 그리고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694)

 

각자 자신이 가진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이 우리에게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롭고 창조적인 상상력이 중요시되는 방침이 교육계나 일반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생각이다.(695)

 

프루스트는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소처럼 그때그때의 먹을 풀을 위하여 살아간다.”고 말했다. (695)

 

 

3. 내가 저자라면

 

창조성은 어디서 오고 어떻게 육성되는가? 이 명제를 하버드의 교육 심리학과 교수이자 '다중 지능 이론'의 창시자인 하워드 가드너는 특정 시대의 다양한 분야의 역사적 인물들을 통하여 질문에 대한 자진의 생각과 근거를 풀어놓고 있다. 하워드 가드너는 거장들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들여다 보며 그들의 창조성에 대해 일정한 특성을 발견하고 이를 자신만의 '창조성 모형'으로 분석하고 있다. 요약해 보면 개인의 타고난 기질이 교육과 훈련 또는 체험을 통하여 그 창조성이 발현되는데 반드시 타인의 후원과 영향 같은 상호작용으로 완성된다는 이론이다.

 

부연하면 재능 있는 특정인은 그가 지향하는 영역(학문/예술/정치...)에서 제 3자로부터 비판과 후원 등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통하여 특정 분야의 창조성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분석 틀을 20세기 전후의 역사적 거장들의 삶에 투영하여 여러 공통점을 발견하고 정형화 함으로써 교육을 통하여 창조적 인재의 양성이 가능하다는 점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천재들의 삶을 통해서 얼마나 다르고 특이한가를 밝히는 특이성 연구와 천재들간의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유사점을 씨줄과 날줄로써 짜내려 가고 있다.

 

모든 이론 연구가 그렇듯이 이론의 배경에 대한 설명이 전반부에 전개되지만 이는 중반의 각 인물들의 평전을 읽는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이 책을 통해 각기 다른 거장들의 삶을 비교하며 그들이 이루어낸 창조성의 근원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가 있다. 우리는 심오한 지성의 소유자이자 교육 심리학자가 쓴 7인의 위대한 역사적 거장들의 평전을 이 한 권의 책으로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단순한 전기작가가 쓴 평전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저자의 위대함을 느낀 대신 한편으로 과연 이 책을 읽기 전에 창조적 사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나의 범주가 새로운 이론 혹은 모델로서 확장되었는가, 혹은 나의 일상을 통해 창조적인 사고를 적용해 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여보면 답을 하기 어렵다. 내가 너무 지엽적인 것을 기대했는가 하고 생각해보지만 '창조성'이라는 꼭지에 집착했던 나에게 기대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남아 있다.

IP *.53.37.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832 9th Review-사람에게서 구하라 file 사샤 2011.05.30 2653
2831 09.<사람에게서 구하라> 구본형 [2] 강훈 2011.05.30 2940
2830 9. 사람에게서 구하라 - 구본형 미선 2011.05.29 2614
2829 북No. 9 – 구본형 ‘사람에게서 구하라’ file 유재경 2011.05.29 4648
2828 [북리뷰 009] 구본형 <사람에게서 구하라> file 김경인 2011.05.29 4147
2827 09. 사람에게서 구하라 - 구본형 [2] 미나 2011.05.29 2906
2826 [리뷰] 사람에게서 구하라 _구본형 [2] 양경수 2011.05.29 4110
2825 [북리뷰5] <월든> H.D. 소로우 [1] 2011.05.23 3699
2824 8th Review-사기열전 두번 읽기 [9] 사샤 2011.05.23 5211
2823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 고운기(두번읽기) 루미 2011.05.23 2889
2822 08.<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_두번째> 고운기 강훈 2011.05.23 2654
2821 8.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 두 번 읽기 file 미선 2011.05.23 2416
2820 08. 사마천의 사기열전 두번읽기 file 미나 2011.05.22 4933
2819 [북리뷰 008] 고운기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두 번 읽기 file [1] 김경인 2011.05.22 6080
2818 북 No.8 – 사마천 ‘사기열전’ 두번읽기 유재경 2011.05.22 5856
2817 [북리뷰4] 스님의 주례사, 법륜스님 [4] 2011.05.20 3887
2816 54. <깊은 인생> 구본형 [2] 박미옥 2011.05.18 2867
2815 7th Review- Creating Minds (열정과 기질) file [1] 사샤 2011.05.17 2812
» 07.<열정과 기질_Creating Minds> 하워드 가드너 file 강훈 2011.05.17 2718
2813 열정과 기질 - 하워드 가드너 루미 2011.05.17 2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