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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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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3일 18시 25분 등록

1. 칼 구스타브 융에 대하여

융의 생애와 나의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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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은 1875년 스위스 북동부 케스빌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서전에는 어린시절 그가 겪은 내면의 두가지 인격을 만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평생을 간직해왔다는 비밀을 만년의 자서전에 고백한 것이다.

무의식의 세계를 어둠의 세계로 비유하며 두려운 모험이라고 했다.

그는 혼자 있고 싶은 열망이 강했다.

<오쇼>가 자서전에서 자신의 어린시절을 설명한 것이 생각났다. 그는 자연속에서 혼자 놀기를 즐겼다.

융도 그랬다. 상상과 관찰을 깊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고 스스로 그 시간을 선택했다.

나에게도 그런면이 있었다. 중학교 이후였던것 같다.

어떤 계기로 진지한 아이가 되어야 겠다고 느꼈고, 밤중에 공부를 하면서 내면의 소리,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만났었다.

버스에 앉아서 처음으로 나와 타인의 경계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했던 낯선 순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왜 저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고 나로 태어났을까?', '나와 저 사람은 영혼은 왜 나누어 졌을까?'

'죽은후 나와 저 사람의 영혼은 합해지는 건가?' 이런 질문들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첫 대면을 했던것 같다.

융은 이렇게 고백한다.

"학교가는 길에 한순간 갑자기,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는 의식과 함께,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그 경험이후 융의 내부에는 '권위자'가 자리잡았다고 쓰고 있다.

그런 강렬한 느낌! 나에게도 2002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순간의 강한 햇살, 나뭇잎의 팔랑거림, 내가 있다는 느낌... 내가 존재한다는 느낌. 그 이후로 내 삶은 많이 달라졌다.

삶에 빛이 비춰진 느낌이다. 그 전에는 무의식적 행동과 생각들속에 허우적대던 시기였다면

그 순간 이후 '내'가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식적 선택'이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아직 무의식적 행동들에 빠져있을때가 많긴 하지만...

 

괴테와 니체, 쇼펜하우어와 칸트 등 서양철학자들이 융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직관과 무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의 사상은 비논리적이지 않고 과정없이 비약하진 않는다.

오히려, 무조적적인 믿음과 교리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 그의 사상의 핵심이다.

경험하고 증명된것만을 자신의 사상으로 표현하였다고 보인다. 철저한 경험주의자이다.

그리고 모르는 것은 솔직히 모른다고 이야기 한다.

이러한 사상은 동양철학의 비약과 모호함의 간극을 채워줄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아직은 동양철학도 서양철학도 잡히지 않는 공기처럼 느껴지지만 직감적으로는 그렇다.

 

융의 독서 경험은 조지프 캠벨의 경험과 유사하다.

내면에서 무언가를 찾고, 독서를 통해 대답을 찾는다. 그러다 누군가를 만나고 그와 정신적 교감을 한다.

그러다 또 다른 연결된 다른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깊게 연결된다.

 

나는 어떠한가. 책장을 들여다보며 정리를 해본다.

닐 도날드 윌시의 '신과나눈이야기'를 통해 나의 또다른 인격과의 대화를 시작했고

숭산, 데이비드 호킨스, 에크하르트 톨레의 책으로 '의식의 발전'과 '나'라는 존재의 인식을 했다.

삶의 방식을 고민하면서 헨렌니어링과 장회익 선생님을 만났고

중요한 삶의 전환점에선 파올로 코엘료의 소설을 만났다.

지금은 융과 조셉캠벨을 통해 무의식과 신화의 세계에서 길을 찾아야 할때인가 보다.

가장 끌리는 이들, 그들의 책들 속에서 내 삶의 의미도 찾는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이 구도의 길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어딘가로 인도되어 질 것이다.

 

융은 1961년 85세의 일기로 퀴스나흐트에서 죽었다.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의 융. 그 분의 사상이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묘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니 그 간격이야 찰나로 느껴진다.

그런 생각속에서 바라보니 인류의 전체성이 느껴진다.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그리고 먼저 돌아가신 수많은 사람들,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까지

하나의 인류로 느껴진다. 이 느낌이 참 소중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인생이 현존을 넘어서 무한정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융-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 심리학의 기초자

1875년 스위스의 케스빌에서 태어나 바젤 대학과 취리히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했다. 그는 취리히대학교 부설 정신병원에서 일하면서 단어연상검사를 연구하여 '콤플렉스' 학설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정신분열증의 심리적 이해와 정신치료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융은 이때 프로이트 이론을 접하면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파의 핵심인물로 활동하기도 했고 프로이트 역시 융을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였다. 1907년 부터 두사람은 공동연구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프로젝트는 5년만에 중단되었다. 융은 프로이트의 초기학설인 성욕 중심설, 즉 노이로제가 성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그의 이론의 부적절함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둘의 갈등은 1912년 융이 프로이트의 의견과 크게 다른 내용의 〈무의식의 심리학 Wandlungen und Symbole der Libido〉을 출판함으로써 심각해졌다. 결국 융은 독자적으로 무의식세계를 탐구하여 분석심리학설을 제창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의학, 고고학, 신비주의,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정신의 이해에 지대한 공헌을 한 창조적 사상가이다. 개인적 경험과는 상관없이 조상 또는
종족 전체의 경험 및 생각과 관계가 있는 원시적 감정, 공포, 사고, 원시적 성향 등을 포함하는 무의식인 '집단 무의식' 개념이 등장하면서 그 이전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신화, 전설, 꿈, 환상 등이 인간 정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부각시켰다. 

그의 학설은 치료와 병리적 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건강한 사람들을 넓게 이해하고 이들이 자기통찰을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또 시대적, 사회적 현상을 분석하는데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인간의 정신에 끊임없이 반복, 각인된 신화, 전설, 꿈, 환상 등은 어떤 기본적인 인간 상황을 나타내는 '원형' 이미지라는 생각은 심리학뿐만 아니라 예술과 과학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경력

바젤대학교 의학심리학 교수
취리히 연방과학기술전문대학 심리학 교수
1907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 공동 연구
1900 취리히대학교 부속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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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아래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프로이트-스탠리홀-융-페렌치-존스-브릴>

 

참고자료

네이버 오늘의 책 <인간과 무의식의 상징>,<인간과상징> : http://book.naver.com/bookdb/today_book.nhn?bid=194499

<카를 융, 기억 꿈 사상>(김영사, 2007)

네이버 인물정보

위키백과 : 카를 융

2.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 귀

옮긴이 서문

이 책은 융의 제자요 여비서인 아니엘라 야페가 융의 나이 82세가 된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줄기차게 대담을 한 결과 역어진 자서전이다.

그는 신을 가리켜 '위대한 위험'이라고 규정했다.

카를 융은 죽기 2년전 BBC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그때 기자가 융에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수백만의 시청자들은 융이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긴장하며 기다렸다. 융이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신을 압니다."

 

프롤로그

11.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11. 내적 견지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영원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보이는가는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

12. 인간은 자신을 무엇과도 비교해 볼 수 없다. 인간은 원숭이도, 암소도, 나무도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13. 인간의 생애는 일종의 애매한 실험이다... 인생은 허무하기 짝이 없고 너무나 불충분하여,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 그 자체라 할 만하다.

13. 언제나 나에게 인생은 뿌리를 통하여 살아가는 식물처럼 생각되었다. 식물의 고유한 삶은 뿌리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지상에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단지 여름 동안만 버틴다. 그러다가 시들고 마는데 하루살이같이 덧없는 현상이다.

13.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  그 땅속 뿌리가 무의식이라는 거겠지. 집단무의식, 인류의 역사 내내 축적된 어떤 의식인데 인식되지는 않는 것.

14. 내 생애의 외적 사실들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희미해졌거나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다른 실체와의 만남, 즉 무의식과의 충돌은 나의 기억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14.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15.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생애의 특이성을 이루며, 나의 '자서전'은 그러한 내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 언제 결혼했고, 무슨 공부를 했고, 무슨 외적 사건들이 있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정리되거나 표현되지 않는다. 내적인 사건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간헐적으로 나올 뿐. 참 특이한 자서전이다. 역시 융이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유년시절

23. 나의 기억은 두세 살 적부터 시작된다.

24. 그날 저녁은 알프스가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자, 저쪽을 보렴. 산들이 온통 붉구나." 그때 처음으로 나느 알프스를 바라보았다!

25. 호수는 끝도 없이 멀리 펼쳐져 있었다. 그 호수의 광활함은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고 비길 데 없는 장관이었다. 그때 호수 근처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내 마음에 깊이 박혔다. 물이 없이는 아무도 존재할 수 없을 것처럼 여겨졌다.

26. 그후로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항상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함을 뜻하기도 했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출발하면서 함께 가져가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28. 이러한  일들은 무의식적인 자살충동이나 이 세상의 삶에 대한 숙명적인 저항을 시사하고 있었다.

31. 그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공포에 질려 허겁지겁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 계단을 후다닥 올라가서 다락방의 어두컴컴한 구석 들보 아래 숨었다. .. 물론 그후에 나는 검은 형상이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 카톨릭 신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카톨릭 신부, 예수회 수도사에 대한 두려움, 공포

31. 그 시기와 거의 같은 무렵에,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초의 꿈을 우연히 꾸었다.

 ☞ 꿈을 우연히 꾸었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할까. 꿈이란것이 우연하기도 하고 필연적이도 하다는 의미인가?

37. 이들 점잖고 쓸모있는 건장한 사람들은 나에게 낙천적인 올챙이들처럼 여겨진다. 그 올챙이들은 아주 얕은 비물웅덩이에 가득 모여들어 햇볕을 받으며 즐겁게 꼬리치고 있으나 바로 다음날에 웅덩이가 말라버릴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37. 지금 나는 그 일이 가능한 한 많은 빛을 어둠속으로 가져가기 위해 일어난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그때 나의 정신적 삶이 무의식적인 출발을 한 것이었다.

 ☞ 얼마나 자기 안으로 들어간 것일까?

38. 어느날 저녁, 아버지는 침대에 있는 나를 안고서 서쪽으로 나 있는 현관으로 데리고 갔다. 아버지는 나에게 휘황찬란하기 그지없는, 녹색으로 빛나는 저녁하늘을 보여주었다. .. 다른 날은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나가서 동쪽 지평선에 나타난 커다란 혜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 나도 민호에게 별, 호수, 바다, 산...을 보여주리라. 그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로서.

41. 여러 해 동안 나는 카톨릭 성당으로 들어갈 적마다 피와 넘어짐과 예수회 수도사들에 대한 은밀한 두려움을 느꼈다. .. 서른 살이 되어 빈의 성스테판성당으로 들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어떤 짓눌림 없이 '어머니 교회'를 느낄 수 있었다.

42.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혼자서 놀았다. . 다른 사람이 방해하지 말았으면 하고 바랐던 것은 기억하고 있다. 나는 놀이에 열중했고 노는 동안에 누가 지켜보거나 따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43. 내가 학교를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오랫동안 얻지 못했던 놀이친구를 드디어 거기서 찾았기 때문이다.

 ☞ 나에게도 동네 아이들과 저녁 먹을 시간까지 골목을 누비며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혼자인 민호에게도 그런 추억이 있어야 할텐데...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걸로 봐서 나보다는 친구가 많을것이다.

43.  온갖 종류의 일, 무섭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밤에 일어났다.

45. 그들은 내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는 다르게 되도록, 어찌해서든지 나를 유혹하거나 강요했다.

 ☞ 시골학교 학우들

46. 그 돌은 나의 돌이었따. 나는 혼자 있을 때 종종 그 돌 위에 앉아 생각의 유희를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이돌에 앉아있다. 나는 위에 있고 돌은 밑에 있다.' 그런데 돌도 '나'라고 말하며 '내가 여기 이 비탈에 누워 있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인다. 그러자 의문이 들었다.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인가, 아니면 내가 돌이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단 말인가? 이런 의문은 그때마다 나를 당황하게 했다.

 ☞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때 아마 14살정도였을 것이다. 버스 안에서 밖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왜 내가 나로 태어났고, 저사람은 저사람으로 태어났을까'라는 질문에 사로잡혔었다.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강렬했고 나란 존재를 느낀 순간이었다. 나와 타인, 그리고 관계라는 화두가 나를 사로잡았고, 그 질문이 나를 종교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갔던 것 같다.

47. 하지만 그 돌이 나와 비밀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몇 시간이고 돌 위에 앉아 돌이 나에게 내준 수수께끼에 사로잡혀 있었다.

49. 아무도 모르고 누구의 손도 미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 왜냐하면 나의 자신감이 그 비밀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1. 이런 회상을 함으로써 전통을 거치지 않고도 개인의 마음속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영혼의 고태적 구성요소가 있다는 확신이 처음으로나에게 생겼다.

52.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56. 그때 나는 처음으로 우리가 가난하다는 사실,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 목사요 나는 그보다 더 가난한 목사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59. 사태가 아주 나빠질 때는 다락방에 있는 나의 은밀한 보물을 생각했따. 그러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되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

 62. 만일 내가 학우들처럼 a=b, 혹은 태양=달, 개=고양이 들과 같은 공식들을 갈등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수학이 끝도 없이 나를 속였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노년에 이르기까지 고집스럽게 가지고 있다.

63. 수학수업은 나에게는 정말 무섭고 괴로운 시간이 되고 말았다.

 ☞ 다중지능 이론을 적용하면 그에겐 수학,논리 지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64. 무엇보다 나는 신비로운 세계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 세계에는 나무들, 물, 늪, 돌, 짐승들, 그리고 아버지의 서재 등이 속해 있었다. .. 나는 방랑, 독서, 수집, 놀이 등으로 시간을 빈둥빈둥 보냈다. 그러면서도 나는 거기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음을 막연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65. "... 만일 그 아이가 자립해서 살아갈 수 없다면 그 아이는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라는 아버지의 대화를 엿듣고, 나는 벼락을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현실과의 충돌이었다. '아 그래. 그렇다면 나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쳤다. 그후 나는 진지한 아이가 되었다.

 ☞ 너무나 나와 비슷하다. 개인적인 경험이 보편적인 공감을 일으키는 사건.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던날 밤, 난 어쩌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부모님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고, "저 녁이 어쩔려고 저래?"라는 아버지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때 나도 처음으로 공부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중학교 반편성고사 문제집을 사서 공부를 했다. 중학교부터는 다른 인생이 시작되었다.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서의 삶이었다.

67. 신경증은 나를 결국 아주 꼼꼼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특히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했다. 그럴 무렵 나는 성실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무언가 덕을 보려고 하는 외관상의 성실성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성실성이었다.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아침 5시에 일어났따. 때로는 학교에 가기 전에 새벽 3시부터 아침 7시까지 공부한 적도 있었다.

67. 나를 다른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돌 하나, 식물 하나, 그 모든 것이 생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형용할 수 업는 듯이 여겨졌다. 그 무렵 나는 자연으로 빠져들면서, 말하자면 자연의 본질 속으로 숨어들면서 모든 인간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68. 한순간 갑자기,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는 의식과 함께, 내가 짚은 구름 속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68. 지금은 '내'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 '내'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

71. 어느 날, 고풍스러운 녹색  마차 한 대가 슈바르츠발트에서 달려나와 우리집 앞을 지나갔다. .."저것이다! 저 마차는 분명히 '나의' 시대에서 온 것이다."

78. '그러므로 그들이 죄를 지어야만 하는 것이 하느님의 의도였다.' 이와 같은 생각이 나를 지독한 괴로움으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하느님 자신이 나를 이런 상황에 처하게 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80. 나는 지옥의 불길 속으로 즉시 뛰어들려고 하는 것처럼 용기를 끌어모아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나는 내 앞에 대성당과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보았따. 하느님은 세상 저 위 높은 곳에서 황금보좌에 앉아 있고, 보좌 밑으로부터 거대한 똥덩어리 하나가 화려하게 채색된 새 지붕에 떨어져 지붕을 산산조각내고 대성당의 벽들을 모조리 부수고 있다.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엄청난 안도감과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저주를 예상했는데 그 대신 은총이 나에게 임하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이 임했다.

81. 아버지는 살아서 직접 임하시는 하느님, 성서와 교회를 넘어서 전능하고 자유로운 하느님, 당신의 자유를 인간이 누리도록 촉구하고, 당신의 요청을 무조건 실현하기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견해와 신념들을 버리도록 강요할 수도 있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

84.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84. '부디 제발, 그 비밀에 대해 뭔가를 아는 누군가가 어디에 있어야 할 텐데.어딘가에 진리가 있어야 할 텐데.' '이 사람들도 모르는구나'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85. 내가 돌이라고 생각하자 갈등은 멈췄다. '돌은 불확실한 것도 없고 자기를 알려서 전하려는 욕구도 없다. 돌은 영원하며 수 천 년 동안 살아있다.' 나는 생각을 이어갔다. '이에 반해 나 자신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에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87.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 이런! 너는 항상 생각하려고만 하는구나. 사람은 생각해서는 안되고 믿어야 해." 나는 생각했다. '아니다. 사람은 체험을 해야한다. 그러고 나서 알아야 한다.'

91.  나의 전생애에 걸친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 간의 대립은 일반적으로 의학에서 말하는 그런 '분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와는 반대로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다.

93. 특히 인간보다는 하느님에게 더 순종하라고 재촉하는 말을 들을 때, 그런 말은 그저 강단위에서 생각없이 내뱉은 말이라는 것이 나에게 분명해졌다.

94.  하느님의 의지를 아는 체하는 자들 중에 하느님이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시켰는지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95. 그 무렵 나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며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97. 나는 혼자서 나 자신의 생각들에 빠졌다. 그러는 것이 나는 가장 좋았따. 나는 혼자서 놀았고 혼자 돌아다니며 공상하면서 나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품고 있었다.

102.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일을 갑자기 알게 되는 일이 내 생애에서 자주 일어났다. 그 인식은 나 자신의 착상인 것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어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06. 나는 성찬식이 뭔가 이미 계획되고 인습에 맞는 격식에 따라 행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버지 역시 그 일을 무엇보다 규범에 맞게 수행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듯이 보였다. .. 거기서는 예수가 죽은지 이제 1860년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한 마디 말도 없었다.

110. 나는 매우 진지하게 성찬식을 준비하고 은총과 계시를 체험하기를 기대했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느님은 그 자리에 없었다. 원, 세상에!

111.  종교란 ‘인간이 하느님과 자립적인 관계를 맺는 영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15. 하느님이 대극의 세계를 창조하여 하나가 다른 것을 잡아먹도록 하고 인생이 죽음으로 향한 탄생이 되도록 의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120. 어떻게 하느님이 나에게는 자명한 것이 되었을까? 하느님의 존재는 머리 위에 떨어지는 벽돌과도 같이 너무나 분명한데도, 이 철학자들은 어찌하여 하느님은 일종의 관념이며 자기들이 만들어낼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임의적인 가설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121. 그 무렵 나는 하느님은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경험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 나에게 하느님은 무엇일까?

129. 그들은 자신들이 질서있는 우주 속에, 신의 세계 안에, 온갖 것이 태어나고 온갖 것이 이미 죽어있는 영원 속에 살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131. 식물들은 무엇을 의도하는 일도 없고 이탈하지도 않으면서 신의 세계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표현했다. 나무들은 특히 신비로웠으며 나에게는 생명의 불가해한 의미를 직접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숲은 사람들이 생명의 심오한 의미와 그 경이로운 작용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131. 돌은 존재의 끝없는 신비, 영혼의 진수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 자체이기도 했다. 

132.  나는 학교와 도시생활에 정신을 빼앗겼고, 증가된 나의 지식은 예감으로 가득한 영감의 세계를 차츰 침투해들어가 억압했다.

133.  나의 탐구가 가져다준 큰 소득은 쇼펜하우어였다. 그는 눈에 보이도록 여실히 우리르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고통, 그리고 혼란과 고난과 악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이었다. 여기에 비로소 세계가 어쩐지 가장 좋은 것만을 기초로 세워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철학자가 나왔다. 그는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창조의 섭리나 피조물의 조화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134. 그 대신 인류역사의 고통스러운 과정과 자연의 잔인성에는 일종의 결함, 즉 세계창조의지의 맹목성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136. 행복과 불행은 용돈의 액수보다 더 깊은 원인에 의해 좌우되었다. 나는 이전보다 더 많은 더 좋은 친구를 얻었다. 내 발을 받쳐주는 훨신 든든한 기반을 느끼며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까지 갖게 되었다.

 ☞ 그것은  철학을 통해서였다.

138. 모든 ‘초인간적’인 것들, 눈부신 빛, 심연의 어두움, 시공의 무한성이 지닌 차가운 무감정, 비합리적인 우연세계의 으스스한 괴기성 등이 ‘신의 세계’에 속했다. ‘신’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139.  나로서 서운한 점은, 자연과학에서는 의미의 문제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었고, 종교학에서는 경험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었다.

144. 세속적인 사람들은 물론 그다지 고결하지는 못했으나 그 대신 훨씬 호감가는 사람들이었다. 

145. 언제나 방학은 혼자서 즐길 수 있는 굉장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적어도 여름이면 아버지는 정기적으로 작셀른에서 휴가를 보내느라 집을 떠나 있었다.

149. 이제 나는 이 어마어마한 산에 와 있다. 나는 산과 나 둘 중에서 어느 편이 더 큰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 내 고등학교시절의 북한산의 경험. 그 경이로움이 떠오른다. 그 뒤로 힘이 들때면 북한산의 나의 비빌언덕이 되어주었다.

 158. 식물은 외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하며 철학적인 경탄을 가지고 바라보아야만 했다.

 

아름다운 시간들 _ 대학시절

164. 그 순간 나는 자연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70. 그것은 소용돌이치는 안개에 내가 들고 가는 불빛으로 비친 나 자신의 그림자였다. 나는 또한 그 작은 등불이 나의 의식이라는 것과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하고 유일한 보물이었다. 그것은 어둠의 힘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약했으나 그래도 하나의 빛이었고 나의 유일한 빛이었다.

 ☞ 불빛 = 의식

173. 인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개성적인 기질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며, 무엇보다 먼저 부모의 환경과 그들의 정신세계를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개성 때문에 부모의 정신세계와는 제약된 범위 안에서만 일치할 뿐이다. 그런데 가족정신은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나름대로 시대정신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는다. 시대정신 그 자체는 대게 무의식적이다.

  ☞ 집단 무의식이란 개념의 등장

174. 어린아이는 어른들의 말보다는 주위 분위기의 헤아릴 수 없는 미묘한 것들에 대해 훨씬 더 잘 반응한다. 어린아이는 그 분위기에 무의식적으로 적응한다. 즉, 어린아이 마음 가운데 보상적인 성격의 상호작용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175.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 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176. 서양종교는 분명히 말해 이러한 내적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2천년 전부터 내적 인간을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려 그 인격의 특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진지하게 노력해왔다.

 ☞ 동양철학는 분명히 말해 이러한 내적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2천년 전부터 내적 인간을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려 그 인격의 특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진지하게 노력해왔다. 결국 동서양의 종교와 철학의 깊은 곳은 같다.

179. 인식들 역시 증명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도 나에게 명백했다. 그것은 마치 일출의 아름다움이나 밤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공포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과도 같았다.

181. 만일 그들이 그 빛을 보았다면 '신학적인 종교'를 가르칠 리 만무했다. 그 신학적 종교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신에 대한 체험과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주지 않고 믿기만을 요구했다.

186. "아버지가 꿈속에서 돌아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아버지가 그토록 '실재'처럼 보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잊을 수 없는 체험으로,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사후의 삶에 대해 생각하도록 했다.

193. 나는 철학 강의를 통해 마음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있을 수 없었다. 

194. 왜 유령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무엇보다 그들의 불안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가? 나에게는 그러한 가능성이 아주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이었다. 그것은 나의 삶을 몇 배나 더욱 아름답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세계는 깊이와 배경을 획득하게 되었다.

196. 도시의 세계는 시골의 세계, 즉 산과 숲과 강, 동물과 '신의 생각' 들의 진실된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199.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호기심에 끌려 마침내 니체의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반시대적 고찰>이었다. 나는 무척 열광하여 그 다음 곧바로 <차라투르스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다. 이 책은 괴테의 <파우스트>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아주 강렬한 체험이었다. 차라투르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였다.

200. 니체는 제2의 인격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세상에다 그것을 거리낌없이 앞뒤 재지도 않고 밝혀버렸더. 그는 자신이 겪은 황홀경을 함께 느끼고 '모든 가치의 전도'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리라는 유치한 희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 니체에 대한 융의 이해

201. 나는 새로운 관념이나 단지 특이한 측면까지도 오직 사실로써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사실들은 남아 있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책상 밑에 버려져 있지 않고 언젠가 어떤 사람이 그것을 만나게 되고, 그는 자기가 찾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202. 철학자들은 온통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만 말을 늘어놓고, 정작 사실들을 가지고 답변해야 할 때는 침묵해버리기 일쑤였다.

206. 왜, 어떻게 해서 식탁이 갈라지고 칼이 파열된 것일까? .. 라인강이 우연히 단 한 번 거꾸로 흐른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210. 정신의학은 자연과 정신의 충돌이 실제 사건이 되는 결정적인 분야인 셈이었다.

211. 내 옛날의 상처, 즉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서 소외자가 되는 느낌이 아프게 되살아났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유를 한층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이런 동떨어진 세계에 흥미를 가지리라고는 그 누구도, 아니 나 자신까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친구들은 놀라고 의아해하며 나를 바보로 여겼다. 

213. 정신의학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병든 정신과 ‘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의사의 정신 간의 대화이며, ‘병든’ 인격과 치료자 인격 간의 대결이다. 그런데 치료자 인격이라는 것도 병든 인격과 마찬가지로 원래 주관적인 것이다.

216. 반년 동안 나는 정신병원 생활과 그 정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나 자신을 수도원 벽 안에 가두고는, 정신의학적인 사고방식을 익히려고 <정신의학 잡지> 50권을 처음부터 통독했다.

 ☞ 캠밸처럼 그도 책 속에 깊이 들어갔었구나. 자신의 분야를 알아차리고 꾸준히 정진하는 모습.

217.  결국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 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 217.

 

상처입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221.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의 중심주제로 삼은 것은 '무엇이 정신병자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화급한 의문이었다.

 ☞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문제에 호기심으로 접근하여 질문을 던지는 모습. 질문이 중요하다. 그렇게 화두를 잡고 찾아가는 거다.

226.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꿰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230. 나에게는 환자 스스로 어떤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해가는지 환자 자신으로부터 들어서 아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꿈이나 무의식의 다른 표현들을 주의깊게 분석해보는 것이 필요했다.

 ☞  스스로 할 수 있다. 모닝페이지, 꿈일기, 아티스트 데이트... 자신의 반응에 대한 관찰 등

236. 결정적인 점은 환자 '사연'의 문제다. 그것이 인간적인 배경과 인간적인 고통을 드러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의 치료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237. 내가 우왕좌왕하며 암중모색을 하고 있는데 반해 그들은 확신이 넘치는 듯이 행동했다. 나는 정신의학의 주요과제는 병든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보았으나 그때까지는 그런 것들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이제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분야의 직업에 들어선 셈이었다!

241. 우둔하고 감정없이 멍청하게 행동하는 듯한 환자들의 마음속에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일, 훨씬 의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정신병에서 새로운 것이나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의 존재의 바탕과 마주치게 된다.

242. 사람들은 환상의 내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이를테면 그냥 일반적으로 '피해망상'이라는 식으로 말해버렸다.

247. 그후 나는 정신병 환자의 고통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그들의 내적 체험의 의미있는 현상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248. 나는 환자들을  될 수 있는 한 모두 개별적으로 다루는 편이다. 문제의 해결은 항상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원칙은 다만 최소한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249 의도적으로 체계적인 것을 멀리하고 있다. 나에게는 각 개인에 대한 개별적인 이해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환자에게 각각 다른 언어가 필요한 법이다.

250. 마음은 이를테면 세계의 절반으로, 우리가 그것을 의식할 때에만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은 단순히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제이며, 정신과의사는 전체 세계에 관여해야 한다.

251. 환자의 치료는 말하자면 의사로부터 시작된다.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251. 교육분석에서 의사가 개념체계를 습득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의사는 피분석자로서 분석이 바로 자기 자신과 관계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교육분석은 실제적인 삶의 한 부분이지 무조건 암기하여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252.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이 이 상황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가?"하고 항상 자문해보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꿈을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세심한 데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자기 자신을 환자와 마찬가지로 관찰해야 한다.

 ☞ 정신과 의사의 자세

253.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Persona)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254. 여자들은 남자가 보지 못하는 측면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남편이 초인이라고 확신하는 부인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257. 그가 나에게 꿈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그의 정상성은 일종의 보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내가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망각의 힘이 강한것이 내면의 분열에 대한 외적 보상인가?

259.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부인들이 질투심이 많아 남편의 교우관계를 깨뜨리는 일은 흔히 일어나는 법이다. 그러한 부인들은 자신들이 남편에게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남편이 자신에게 전적으로 속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

 ☞ 사실일까? 정말? 관계에 있어서 나 자신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질투에 의해 나의 교우관계 마저 포기 해서야 되겠는가.

261. 집단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의 공감'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261. 나에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환자가 자기 자신의 견해를 가지도록 하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환자의 숙명과 부합하는 대로 이교도는 이교도요, 기독교도는 기독교도요, 유대인은 유대인일 뿐이었다.

264. 오늘날에도 신자는 교회에서 상징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미사나 세례, 그리스도 본받기, 그리고 다른 많은 체험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징의 삶과 체험은 신자의 활발한 참여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은 바로 이것이 결여되어 있다.

266. 저항은 특히 완강할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개 그런 저항은 그냥 지나쳐서는 안되는 경고를 뜻하기 때문이다. 치유에 효과적인 것은 독일수도 있어 모든 사람이 다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는 하지못하도록 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그런 수술이 치료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268. 그 환자에게 필요했던 것은 남성적인 반응이었다. 이 사례에서는 환자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전적으로 틀린 것이 되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 주도하라! 나의 남성성을 찾아라!

269. 환자와 의사 간의 교감은 끊임없는 비교와 조정, 그리고 서로 마주 대하고 있는 두 정신적 실재의 변증법적 대결 속에서 이루어진다.

270. 문제는, 신화의 상실을 견디지 못하고, 외적인 것에 불과한 세계, 즉 자연과학의 세계상으로 향한 길을 찾을 수도 없고, 지혜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언어의 지적인 즉흥연주로 만족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271. 개념적인 것으로 옮기는 것은 체험으로부터 실체를 빼앗고 그 대신 단지 이름들만 붙이는 셈이다. 이제는 진실의 자리에 이름들만 들어서게된다. 개념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혼은 개념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사실들 가운데 깃들어 있다.

272. 심리적 수준이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로서는 유명인사들과의 단편적인 대화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었다. 나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성과가 있었던 대화들은 이름없는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275. 나의 정신적 발달을 향한 모험은 정신과 의사가 됨으로써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나는 정신병 환자를 임상적으로 밖에서부터 관찰하기 시작했다.

278. ".. 사람은 인생을 거짓 위해 세울 수 없다."

279. 1907년 2월 빈에서 우리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오후 1시에 만나 열세 시간 동안이나 그야말로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프로이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281. 교리, 즉 논의할 필요도 없는 신앙고백은 오직 의심을 단번에 눌러버리려고 할 때 사람들이 내세우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과학적 판단과는 더이상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개인적인 권력충동과 관계가 있을 뿐이다.

 ☞ 프로이트에 대한 그의 생각

282. 심리적으로 더 강력한 공포의 대상에 '신적'이거나 '악마적'인 속성이 부여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프로이트에게는 '성적 리비도'가 '숨은 신'의 역할을 맡게 된 셈이었다.

287. 신성한 힘의 체험으로 마음이 격렬히 동요하게 되면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실이 끊어질 위험이 항상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사람은 절대적인 긍정으로, 또 다른 사람은 그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부정으로 빠지게 된다.

287. 마음의 진동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모든것은 지나간다. 어제의 진리가 오늘은 허위가 되며, 그저께 잘못된 결론으로 간주되던 것이 내일은 하나의 계시가 될 수도 있다.

289. 덧없을 정도로 작은 의식이 어떤 것을 인식해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는 아직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294. 나는 진리탐구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개인적인 명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295. 그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의 권위를 위태롭게 할 수는 없어!" 그 순간 그는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300. 식물이 가능한 한 자라나려 하고 동물이 가능한 한 먹이를 찾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이, 꿈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어떤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301. 무의식이 의식의 경향에 대해 얼마나 강하게 저항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307. 자연(본성)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물론 신경증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조로운

일상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때에만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부터 억압해오던 것에 머물기를 너무 좋아하기만 한다.

 ☞ 가족이 함께 할 수있는 자연 활동이 뭐가 있을까? 생태적 감수성을 깨울 수 있는 활동, 산책, 등산, 캠핑, 별보기...

308. 인간은 어떤 삶의 방식도 그것이 다른 것으로 교환되지 않는한 버릴 수 없다. 완전히 이성적인 삶의 영위란 경험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대개 불가능하다.

310. 프로이트와 결별하게 된 후 나의 모든 친구나 친지들은 나를 떠나갔다. 사람들은 나의 책을 쓰레기라고 내놓고 말했다. 나는 신비주의자로 간주되었고, 이것으로 사태는 끝장을 보게 되었다.

311. 그가 우리 문화에 준 충격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꿈을 무의식과정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인정함으로써, 잃어버려 이제는 어쩔수 없다고 여겨진 가치를 과거와 망각으로부터 되찾아왔다.

312. 철학적으로 성찰해보면, 오늘날의 문화의식은 무의식개념과 거기에 따르는 결과들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반세기가 넘게 무의식과 직면해왔으면서도 말이다. 우리 정신의 존재가 두 개의 극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통찰은 여전히 장래의 과제로 남아 있다.

 

내 안의 여인 아니마

315. 나는 단지 질문만을 던졌다. "그것과 관련하여 당신에게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당신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여깁니까?" "그것은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 "당신은 그것에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의 질문이었다.

316. 꿈은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사실이다.

316. "너 자신은 그 신화 속에서 살고 잇는가?" "솔직히 말해, 아니오! 나는 그 신화 속에 살고 있지 않소" "그럼 우리는 이제 아무런 신화도 가지고 있지 않단 말인가?" "그렇소. 우리는 이제 아무런 신화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오." "그러면 무엇이 너의 신화인가? 너는 어떤 신화 속에서 살고 있는가?"

318.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 자신의 환상에 주의를 기울이며 기다리는 것밖에 없어다.

 ☞ 꿈에 대한 기록, 모닝페이지... 환상의 기록(토피카)

  

320. "이토록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둬보자." 그리하여 나 자신을 의식적으로 무의식의 충동에 맡겨버렸다.

320. 내가 그 시절과 다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돌아가 아이의 놀이를 하면서 아이의 삶을 한번 더 살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 융은 그래서 다시 돌을 모으고 작은 집을 만들었다.

322. 내 후반기 인생에서 장애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언제나 그림을 그리거나 돌을 다루었다. 그런 일은 늘 그 다음에 이어지는 생각과 일을 위한 통과의례였다.

325. 나는 자주 흥분되어 내 감정을 요가로 제어해야만 했다. 그러나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경험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기 때문에, 요가는 내가 안정되어 무의식과 더불어 다시 작업을 시도할 수 있을 때가지만 했다. 나 자신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느낌을 갖자마자 나는 감정제어를 풀고 환상의 이미지와 내부의 소리가 새롭게 말하도록 했다. 인도 사람들은 이와 반대로 다양한 정신 내용과 이미지를 완전히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요가를 사용하고 있다.

326. 나는 최선을 다해 환상을 기록해나갔다. 그리고 환상이 생기게 된 정신적인 전제들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327. 가장 심각한 어려움들 중 하나는 나의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는 일이었다.

 ☞ 융도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는게 가장 힘들다고 했는데, 하물며 나와 해심이는 어쩌랴.

336. 나는 내가 알지 못하고 내 생각이 아닌 것들을 말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내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것은 심지어 나에게 적대적일 수 있는 것들까지도 말할 수 있었다.

339. 환상을 기록하는 동안 .. 내 안에 어떤 소리가 있었다. "이것은 예술이에요." 나는 매우 놀랐다. 나의 환상이 예술과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340. 왜 사람들은 그것을 여성적인 것으로 상상하는가? 나중에 나는 내 안에 있는 여성상이 남성 무의식 속에 있는 전형적인, 또는 원형적인 형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아니마'라고 불렀다.

341. 나는 편지를 쓰면서 될 수 있는 한 정직하려고 노력했다. 옛 그리스 격언을 따른 것이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라. 그러면 받으리라."

341. 우리가 그 내용을 인격화하여 의식으로 하여금 그 인격들과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무의식 내용에서 힘을 제거할 수 잇다. 그렇지 않으면 무의식이 그 힘을 의식에 행사하게 된다.

 ☞ 의식과 무의식 내용을 구별하는 방법, 내 무의식에 이름을 붙이자. Little Yang(L.Y)  어때? 아니마는 무의식의 대변자이다. 결정적인 것은 언제나 의식인데, 의식이 무의식의 표현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자기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무의식 내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법을 알게 된다면 중재자도 필요없게된다.

345. 삶을 대체할 만한 완전한 언어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언어가 삶을 대체하려고 시도한다면 언어뿐 아니라 삶도 망가지고 말 것이다. 무의식의 전제의 횡포에서 자유를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지적인 작업을 완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윤리적 의무를 갖는 일이다.

346. 환상에 관한 작업을 하던 바로 그 무렵, 물론 나는 '이승'에 발판이 필요했다. 그것은 가족이며 직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니체는 현실의 발판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내면세계가 그를 소유하게 되었다고 표현한다.

347. 비현실성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었다. 나는 저 세상이 아닌 이 세계의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나의 좌우명은 '도전에 맞서 싸워라!였다.

349. 변칙이 없는 세계는 얼마나 암울할 것인가!

351. 나의 저작, 즉 내가 정신적으로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은 다 초기의 명상과 꿈에서 나온 것이다. 1912년에 그러한 명상이 시작되었으니 이제 거의 50년이나 되었다. 인생 후반기에 내가 이루어놓은 것도 모두 초기의 체험 속에 이미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감정이나 이미지의 형태로 있었지만 말이다.

 ☞ 꾸준한 명상과 꿈의 기록. 서양적인 해석의 노력에 그의 성향이 얹혀져, 새로운 것을 세상에 드러내게 되었다.

351. 사람들은 이미지들이 그대로 떠오르도록 하면서 거기에 대해 무척 놀라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고 만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려고 고심하지 않는다. 거기서 윤리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일은 더구나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결국 무의식의 부정적 작용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353. 뭔가 엄청난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것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내 인생을 충만히 채울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 나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355. 어쨌든 현대예술은 무의식으로부터 예술을 창조해내려고 모색하고 있다. 이런 주장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공리주의와 자만심은 내 마음에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360. 중앙이 목표다. 누구도 중앙을 넘어서 갈 수 없다. 그 꿈에서 나는 '자기'가 방향성과 의미의 원리이며 그것들의 원형임을 이해했다. 그 안에 치유의 기능이 들어있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나는 내 신화에 대한 예감을 처음으로 가졌다.

361. 나의 내적 이미지를 추적하던 그 몇 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 기간에 온갖 본질적인 것이 정해졌다. 그 무렵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세부적인 것은 단지 보충하거나 명료하게 하면 되었다. 내 후기의 작업은 모두 그 기간에 무의식에서 솟아나와 나를 휩쓸었던 자료들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는데 있었다. 그것은 필생의 작업을 위한 원재료였다.

 

 연금술을 발견하다.

367.연금술은 하나의 중세 자연철학으로서 한편으로는 과거 즉 그노시스주의에,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 즉 현대 무의식의 심리학에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371. 어느날 밤 그 문헌을 공부하고 있을 때, 문득 내가 '17세기 안에 갇혔던' 꿈이 생각났다. 마침내 나는 그 의미를 파악했다. "아, 그렇구나! 이제 나는 연금술을 처음부터 전부 연구해야 될 운명에 처했구나!"

373. 원초적 이미지와 원형의 본체가 내 연구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고, 역사 없이는 심리학 특히 무의식의 심리학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74. 그때 나 자신에게 던진 첫 질문은 "무의식과 더불어 무엇을 하는가?"였다. 거기에 대한 회답으로 저술된 것이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였다.

 ☞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자신 안에서 답을 찾는다. 그게 1인격이든 2인격이든...

377. 리비도를 에너지로 본다면 일종의 통일된 관점을 갖게 된다. 내가 심리학을 위해 이루려고 한 것은 자연과학영역의 일반적인 에너지론과 같은 그러한 통일성이었다.

377. 연금술을 배워서 알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무의식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무의식 내용에 대한 자아의 관계에 의해 정신의 변환과 발달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82. 목수의 아들 예수가 복음을 전파하고 세상의 구주가 된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는 것은 심각한 오해일 것이다. 그는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그 시대의 기대를 그토록 완벽하게 표현하고 기술할 수 있을 만큼 비범한 재능을 지닌 인격의 소유자였음에 틀림없다.

390. 물리학자가 원자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떤 성질을 가졌다고 말하거나 그 모형을 그린다고 해서 그가 영원한 진리를 표현하고자 의도하는 것은 아니다.

395. 인간은 신적인 소명 앞에서도 결행을 유보하는 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자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자유를 위협하는 자를 위협할 수 없다면 그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397. 초월적인 것, 원형 그 자체의 본질에 관해서는 더이상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397. 나의 모든 저술은 말하자면 내부로부터 부과된 과제인 셈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강요로 이루어졌다. 내가 쓴것은 내부로부터 나에게 엄습해온 것들이다. 나는 나를 충동질하는 영혼으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허용했다. 나는 나의 저술에 대해서 어떤 뜨거운 공감을 기대한 적이 없다.

 ☞ 스스로 assingment를 하고, 스스로 작업을 한다. 그를 통해 말해져야 할 것들을 놓치지 않고 표현했던 것이다.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402. 그 탑에서 내가 누린 휴식과 재생의 느낌은 처음부터 매우 강력했다. 그곳은 나에게 모성적인 장소 같은 의미가 있었다. 

406. 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생각들, 그에 따라 먼 미래를 내다보는 생각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여기서는 창조의 고통이 완화되며 창조성과 유희성이 거의 하나로 어울린다.

 ☞ 그런 공간, 나 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409. 사람들에게 무의식이 얼마나 낯선 것인지,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인상적인 경험이다.

 ☞ 우리의 대화, 활동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곳에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나, 교류가 있는가? 거의 없다. 그것은 홀로 있을때 불쑥불쑥 찾아오긴 하지만, 그나마 잘 알아차려지지 못한다.

417.  부모로부터 아이들에게 넘겨진 비개인적인 카르마가 가족에게 존재한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나는 조상들에게 숙명적으로 던져졌으나 아직 해답을 얻지 못한 물음에 내가 대답해야 하며, 지나간 세대가 완성하지 못한 채 남긴 것을 내가 완성하거나 계승해야만 할 것같이 늘 여겨진다.

419. 나는 미래가 장기적인 전망으로 미리 무의식적으로 준비되며, 그리하여 투시력을 가진 사람은 훨씬 이전부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아맞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지금도 일반인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418. 파우스트가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고 나에게 구원과도 같은 말을 하긴 했지만, 그런 이분성의 원인을 규명해주지는 않았다.

420. 파우스트가 간과한것. 영원한 인간권리에 대한 존경, 옛 것에 대한 인정, 그리고 문화와 지성사의 연속성.

421. 사람들은 모든 좋은 것이 나쁜 것들의 대가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422.  시간을 단축하는 조치들은 아주 불쾌한 방식으로 속도만 빠르게 하여 이전보다 더 시가닝 부족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옛스승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모든 성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다."

 

여행

427.  나는 유럽인들을 한번 외부에서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어느 모로 보나 생소한 환경 속에서 유럽을 보고 싶었다.

 ☞ 융의 전제조건이 서양 기독교인이라면, 나의 전제조건은 샤머니즘, 유교,불교,기독교적 동양인이라는 것.

431. 시계라는 것은 소위 중세 이래로 시간과 그 동의어인 진보가 유럽인에게 슬며시 들어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그들로부터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436. 아랍문화와의 만남은 충격! 격정적이고 기분대로 살아가며 생 그 자체에 한층 가까이 있으면서도 성찰을 모르는 이렇나 인간존재가 우리 안에 있는 저 역사적 층에 강력한 암시효과를 주었다.

437. 어린이답다는 것은 다른 한편 그 순진성과 무의식성 덕분에 훨씬 완벽한 '자기'의 이미지, 즉 꾸밈없는 개성을 갖춘 전인격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어린이나 원시인을 보게 되면 성숙한 문화인의 마음속에, 채우지 못한 욕구와 필요로 말미암은 갈망이 일어난다.

438. 유럽인은 합리적인 특성을 꽤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이 생의 열정을 희생하고 얻은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원시적 인격 부분이 국부적인 지하존재로 떨어지는 운명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439. '하지만 위험이 있는 곳에 또한 구원이 싹튼다'는 휠덜린의 말이 그런 상황에서 주주 떠올랐다. 그 '구원'은 경고해주는 꿈의 도움으로 무의식작용을 의식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439. 살아있는 정신구조에서는 단순히 기계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관리되며 전체와의 관계성 속에서 일어난다.

441. 비평의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대상의 외부에 관점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를 밖에서 볼 기회를 한 번도 갖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나라의 특성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 (떨어져서 바라보라!)

443. "우리는 여기서 생각하오" 그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448. 누구도 태양이 주는 엄청난 인상을 피할 수는 없지만, 이 성숙하고 위엄에 찬 남자들이 태양에 관해 말할 때 숨길 수 없는 감동에 사로잡히는 것을 본다는 것은 나로서는 깊은 울림을 안겨주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451. 지식은 우리를 성숙하게 해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이전에 살던 신화적인 세계에서 더욱 멀리 떨어지게 한다.

452. '신과 우리'라는 이러한 동등한 관계가 인디언들의 저 부러워할 많나 의젓함의 근거가 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한 인간은 문자 그대로, 참으로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이다.

457. 연금술에서는 "자연이 불완전하게 둔 것을 예술이 완전하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행위를 창조주의 몫으로만 돌려왔다.

457.  인간은 창조의 완성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비로서 객관적 실재가 되게 하는 두 번째 세계창조자인 것이다.

458. 인간의 의식은 비로소 객관적 실재와 의미를 만들어냈으며 이로써 인간은 그의 위대한 존재확립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 신과 인간의 관계를 고찰한 부분, <신과 나눈이야기>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무의식의 발견이 인류 의식의 고양을 이뤄낸 것이 맞나보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인식이 보편적인 관점이 될 수 도 있겠다.

463. 흑인들의 직관적인 인식방법 가운데 하나는 상대방의 말씨, 몸짓, 걸음걸이를 기가 막히게 흉내내면서, 이런 방식으로 상대방이 되어 보는 것이다.

 ☞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법, 다른 삶을 체험하는 방법 : 상대방의 말씨, 몸짓, 걸음걸이를 흉내내 보는 것!

467. 무의식적인 질서는 장애가 발생하면 금방 무너지고 만다. 그 장애는 오직 의식작용에 의해서만 보상될 수 있고 또한 그렇게 보상되어야 한다.

469. 나는 백인여성의 남성화가 그녀들의 천연적인 전체성의 상실과 연관된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여성의 결핍에 대한 보상이 아닌가, 그리고 백인 남성의 여성화는 여성의 남성화에서 야기된 후속 결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자문해보았다.

  ☞ 결국 현대사회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화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조화 Blance!는 나의 중요한 주제이다.

477. 이 평원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날마다 나를 새롭게 압도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479. 짐승의 눈에는 슬픔이 배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짐승의 혼인지 혹은 저 태초의 존재가 표현하는 간절한 마음인지 알지 못한다.  빛에대한 동경은 의식에의 동경인 셈이다.

486. 아프리카 내륙에서 이집트로 향한 여행은 나에게 마치 빛의 탄생의 드라마와 같은 것이었다.

488. 나는 소위 '성자'라고 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모두 피했다. 내가 그들을 피한 것은 나 자신의 고유한 진리로 만족해야만 했기 때문이며, 나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것 이외의 다른 것들은 받아들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지혜는 그들에게 속하고, 나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만이 나에게 속할 뿐이다. 

491. 나에게는 해방이란 것이 없다.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을 때 비로서 가능한 법이다.

491. 사람들이 너무 많이 포기하고 내버려두고 겉으로 잊어버린 체하고 있을 경우, 그 포기한 것과 내버려둔 것이 두 배의 힘으로 되돌아올 가능성과 위험이 상존한다.

495. 그리스도 역시 부처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구현자다. 하지만 전혀 다른 뜻에서 그러하다. 둘 다 세상을 극복한 자들이다. 부처는 이를테면 이성적 통찰로써, 그리스도는 숙명적인 희생으로써 그 일을 이루었다. 기독교에서는 더 많이 고통을 겪는 데 주안점을 두고, 불교에서는 더 많이 깨닫고 행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496. 역사적 발전은 '그리스도 모방'으로 이어져, 개인이 전체성에 이르기 위해 자기 고유의 숙명적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간 길을 본받아 따라가려고 한다. 동양에서도 부처를 신앙적으로 모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 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

497. 그리스도도 유대인들에게 "당신들은 신들이다<요한 10:34>"라고 외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 신과학, 뉴에이지, 시크릿류의 철학에 영향

503. 인도은 어떤 자위초 없이 나를 스쳐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영원에서 다른 영원으로 옮겨가는 자취들을 나에게 남겨놓았다.

 

환상들

507. 남자의 아니마는 현저히 역사적인 성격을 띤다. 아니마는 무의식의 인격화로 역사와 선사에 깊이 물들어 있다.

509. 나는 우리가 무의식에 대한 이론을 확립하기 전에 무의식과 관련하여 더 많은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516. '나'(자아)는 성취된 것과 지금까지 있었던 것의 그와 같은 묶음이다... 나는 말하자면 객관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즉 나는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이었다. 나는 마침내 나 자신 또는 나의 인생이 어떤 것과 역사적으로 관련되어 있는가를 이해하게 되리라 또한 확신했다. 나는 무엇이 내 이전에 있었고 왜 내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내 인생이 어디로 계속 흘러갈 것인지 알게 될 것이었다.

526. 전체성을 대면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 현상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그만 말을 잃게 된다.

527. 어떤 순간에도 우리가 과오나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안전한 길을 가는 자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

528.  나는 또한 사람이 자기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온갖 평가를 뛰어넘어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사후의 삶에 관하여

531. 엄밀히 말해 내 저작들은 이승과 저승의 조화에 대한 물음에 답을 주려는 늘 새로워지는 시도였다.

532. 요즈음의 비판적 이성은 다른 많은 신화적 관념뿐만 아니라 사후의 삶에 관한 관념도 없애버린 듯하다... 합리주의와 교조주의는 우리가 앓고

있는 시대병이다. 그것들은 모든 것을 아는 체한다.

533.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치가 있고 치유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화롯가에 앉아 파이프담배를 피우며

유쾌하게 유령이야기를 나누는 것과도 같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에 관해서는 확실한 증거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534.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인생이 현존을 넘어서 무한정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535. 우리가 어떤 것을 알 수 없는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지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을 단념해야 한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 우주만물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문제를 학문적이거나 지적인 문제에서 제외시켜야만 한다. 하지만 거기에 관한 어떤 관념이, 예를 들어 꿈이나 신화적인 전승을 통해 나에게 제공된다면 나는 그것들을 기록해둘 것이다

536.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약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화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과대평가된 이성은, 그것이 지배하면 개인이 궁핍해진다는 면에서 독재국가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539. 신화는 과학의 맨 처음 형태다.

540. 시간과 공간에 관한 우리의 관념과 인과론이 다 함께 불완전하다는 점이 판명된다.

542. 어쨌든 부인하는 자는 '무'를 향해 가는 반면에, 원형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두 사람 다 불확실성 속에 있다. 그런데 전자는 자신의 본능을 거스르고 있고, 후자는 본능을 따르고 있다. 이것은 현저한 차이이며 후자에게 이로운 점이 있음을 의미한다.

543. 무의식의 형상들도 '정보를 잘 받지 못한다'. 그래서 '앎'에 이르기 위해서는 의식과의 접촉이나 인간을 필요로 한다.

545. 그것은 단지 적절한 시간의 상황에서만 의식에 의해 파악될 수 있을 뿐이다. .. 그는 아마 여러 해 동안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을 품고 지내다가 나중 어떤 순간에 그것이 참으로 깨달아질 것이다.

  ☞ 내가 현재 품고 있는 예감은? 내 안의 잠재력이 발휘될 것이다. 난 자유인이 될 것이다.

551. 아주 오랜 옛적부터 어떤 잠재의식적 과정의 진행을 표현하는 신화소가 있었지만 오늘날에 와서야 비로소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551. 신화는 피할 수도 면할 수도 없는, 의식적 인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간단계다.

556. 다른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하나의 즐거운 사건으로 여겨진다. 영원의 관점에서 죽음은 일종의 결혼이며 융합의 비의다. 영혼은 이를테면 자신에게 결여된 반쪽에 도달하여 통합을 이루게 된다. 무덤으로 소풍가는 풍습.

558. 시공간의 상대성 때문에 무의식은 지각만을 처리하는 의식에 비해 더 나은 정보원을 가지고 있다.

559. 동양적 존재의 정신적 특성에 어울리게 출생과 죽음의 연속은 끝없는 현상이요, 목표도 없이 계속 굴러가는 영원한 운명의 수레바퀴로 여겨진다. 사람은 살고 인식하고 죽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오직 부처에 이르러 목표에 관한 관념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이를테면 지상적 존재의 극복인 셈이다.

서양인과 동양인의 차이.

560. 서양인은 의미를 투사하여 객체에 의미가 있는 듯이 추정한다. 동양인은 그 의미를 자신 속에서 느낀다. 그런데 의미는 밖에도 있고

안에도 있는 것이다.

561. 추측하기로는, 내가 죽으면 나의 한 일들이 따라올 것이다. 나는 내가 한 일을 함께 가지고 갈 것이다.

562.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가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563. 내가 보기에 하나의 믿음은 믿음의 현상을 증명할 뿐 그 믿은 내용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내가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경험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565. 자신을 성찰하고 이미지로 바꾸는 회고는 '전진을 위한 후진'을 의미하게 된다. 내 인생을 통하여 이 세계 안으로 이끌었고 다시 이 세계 밖으로 인도하는 그 줄(노선)을 보려고 시도한다.

570. '아, 그렇구나. 그 사람이 나를 명상하고 있었구나.' 그가 하나의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나다. 그가 깨어난다면 나는 더이상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572. 무한한 것이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 때에야 비로소 나는 결정적인 의미가 없는 하찮은 일에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다.

573. 오로지 삶의 공간을 넓히고 합리적인 지식을 어찌해서든지 증가시키는 데만 관심을 두는 시기에는 자신의 단일성과 유한성을 의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574.  우리가 인실할 수 있는 한, 인간실존의 유일한 의미는 존재 그 자체의 어둠속에 빛을 밝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무의식이 우리에게 작용하듯 우리 의식의 증가가 무의식에 작용한다는 사실까지도 추정해볼 수 있다.

  ☞ 매트릭스의 세계관이 닮았다. 융을 통해 철학의 진화를 본다.

 

○ 만년의 사상

578.  이미 기독교 초기에 성육신 관념은 '우리 속의 그리스도'라는 관념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로써 무의식의 통합성은 내적 체험의 심리영역으로 엄습해왔고 인간에게 통합적인 형상을 예감하게 했다. 그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창조주에게도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580. 중독 대상이 알코올이든 아편이든 또는 이상주의든 그 어떤 형태의 중독이든 똑같이 모두 악에서 나온다. 우리는 선악의 대극에 더이상 이끌려서는 안된다.

580. 선과 악(또는 불완전함)이 상대적이라고 해서 선악이라는 범주가 가치가 없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도덕적 판단은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하며 특유한 심리적 결과가 뒤따른다.

582. 교육은 오로지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각 개인의 사적인 경험에 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그것을 결코 실현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실현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 다만 직책상 그런 것들을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 교육자체의 문제다.

583. 우리는 오직 의식을 확장해주는 학문을 통해서만 자연의식에 이르게 된다. 그와 같이 심화된 자기인식도 학문, 즉 심리학을 필요로 한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광학지식 없이 이른바 손목이나 좋은 의지만으로 만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584. 신화가 생동하지 않고 더이상 발전하지 않으면 신화는 죽은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의 신화는 벙어리가 되었고 아무런 해답도 주지 못한다. 잘못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은 신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런 방면의 온갖 시도를 억압한 우리 자신에게 있다.

588. 사람들은 우리가 중요한 시대적 전환점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만, 그것이 핵의 분열과 융합이나 우주 로켓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늘 그렇듯이 사람들은 그와 동시에 인간정신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

 ☞ <의식혁명>이라든지, 인도철학의 전파, 심리학의 발전.... 조금씩 이루어지고 알려지고 있다.

589. 긴장을 느끼는 쪽에서 통합을 통하여 타협을 꾀한다. 이 타협의 중개는 상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591. 과학적 의식은 '무의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럼으로써 과학은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다.

593. 신화는 결국 유일신교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전능하고 선한 신 곁에 영원한 어둠의 적수를 지금까지 두고 있는 이원론은 포기해야 한다.

 ☞ 서양의 신에 대한 논증을 떠올리게 한다.

595. 창조주가 자신을 의식했다면 그는 의식을 가진 피조물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과 피조물을 생산해내는 데 수백만 년을 소비한 지극히 우회적인 창조과정이 목적지향적인 의도에서 나왔다는 것은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다.

 ☞ 창조주는 자신을 의식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것을 인간의 정신의 역사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595. 정신의 역사는... 의도되거나 미리 내다본 것이 아니라 '어두운 충동'으로부터 예감되고, 느낌으로 알게 되고, 손으로 더듬어 찾아진 것이다.

596. 통찰이 생기지 않는다면 사색은 의미가 없다.

597. 우리는 '영감'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착상'이 우리가 궁리해낸 결과가 아니라 그런 생각이 어떤 식으로든지 '다른 곳에서' 우리에게로 스며들어왔다는 것을 안다.

601.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되어 자기 자신의 발로 서는 것이 개인의 고유한 과제임을 여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온갖 집단적인 동일성, 예를 들어 어느 조직체의 일원이 되는 것. 무슨 주의나 그와 같은 것들을 신봉하는 것등은 장애물이 될 수 있다.

 ☞ 비밀결사는 개성화에 이르는 과정의 중간단계일 뿐이라는 말의 설명. 개성화는 융의 중요한 개념으로 보인다. 자기실현의 다른 말 같기도 한데, 더 공부해봐야 겠다.

602. 그는 홀로 걸아갈 것이며 동반자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 그 자신이 여러 가지 의견과 경향으로 이루어진 다양성 그 자체인 셈이다.

 ☞ 자기 안에 인간의 모든 성향이 담겨있다고 보진 않는다.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성향과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행동적,사고적 모습들이 있기 마련이다. 진정한 도반 공동체나, 집단을 통해 그길을 갈 수 도 있다. 가까운 곳의 거울이 되어주는 사람들... 그런데 결국 그 과정이 홀로,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은 틀림없다.

604. 두 가지를 다 하려는 사람, 즉 개인적인 목표를 따르면서도 집단성에 보조를 맞추려는 자는 누구나 신경증적인 사람이 된다.

605.. 내적 대극과의 대결만큼 의식화를 증대시키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 예측하지 못한 사실들이 고발될 뿐만 아니라 변론 역시 아무도 일찍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반론을 구상해내야 한다. 그럼으로써 한편으로는 외부세계의 적잖은 부분이 내면에 이르게 될 뿐 아니라 외부세계도 그만큼 비고 부담을 덜게 된다. 

613.  정신은 자신을 뛰어넘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정신은 절대적 진리를 확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고유한 양극성이 진술의 상대성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614. 비정신적인, 초월적인 객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관해 자연과학은 묵묵히 확신하고 있다.

615. 나는 나의 무지로 자족해야만 한다. .. 우리는 온통 정신적인 세계에 어쩔 도리 없이 갇혀있다.

616. 정해지지 않은 수의 개인이 내적인 충동에서 동일하게 진술하고 각자 어떤 하나의 견해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 그 진술이 저지되거나 무시되면... 노이로제, 집단적인 망상 형성이 발생한다.

 ☞ 신경증의 증가, UFO, 종말론 등

619. 내게는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이라고 한 바울의 조건문이 모든 인식 중에서 최초의 인식이며 신성 그 자체의 진수인 것처럼 여겨진다. 

619. 오직 전체만이 의미가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딘다"<고린도전서 13:7>. 이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 아무것도 덧붙일 것이 없다.

620. 그는 사랑에다 온갖 이름을 마음대로 갖다붙일 수 있겠지만 그는 단지 끝없는 자기기만에 빠질 뿐이다. 그가 한줌의 지혜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며 미지를 미지라고, 즉 신의 이름으로 명명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열등함, 불완전성, 그리고 의존성을 시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진실과 오류 사이에서 선택의 자유를 증언하는 것이다.

  

회고

623. 어떤 사람이 강에서 한 번 모자로 물을 가득 퍼냈다고 하자.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그 강물이 아니다. 나는 강에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624.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때 생기는 법이다.

625. 고독은 반드시 공동체에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고독한 사람보다 공동체에 대해 더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모든 개체가 자신의 개성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동일시되지 않는 곳에서만 만개하게 된다.

628.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한다... 나 자신이 달라졌더라면 많은 일이 다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 대로 그렇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생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 긍정주의자. 낙관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629. 하지만 내가 그런 어리석음을 갖지 않았다면 나의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실망하면서도 실망하지 않는다.

629. 무의미와 의미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하다고 믿느냐 하는 것은 기질의 문제다.

630. 모든 형이상학적 문제가 그렇듯이 아마도 양족이 다 진실일 것이다. 인생은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또는 인생은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가지고 있지 않기도 하다. 나는 의미가 우세하여 전투에서 이겼으면 하고 마음 졸이며 희망하고 있다.

630. 그렇다. 마치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와 갈라놓았던 저 생소함이 나의 내면세계로 옮겨와서 나 자신에 대한 예기치 않은 낯설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 노년의 사상. 마지막 구절이다. 인간속에 있는 영원한 것들이 그를 충족시켰다고 말한다.

 

편집자의 말

633. 1958년 봄에 융은 그의 유년시절, 학창시절, 대학시절에 관한 세 장을 마무리 했다.

 ☞ 사후의 삶에 관하여, 만년의 사상, 케냐와 우간다, 푸에블로 인디언

635. 섬광처럼 유의 외적인 삶과 그의 작업을 단지 잠깐만 비추어줄 뿐이다. 그 대신 그 장들은 마음을 가장 진정한 현실로 여겼던 한 인간의 체험과 그의 정신세계의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다.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없었다.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정수 만이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640. "중세였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화형시켰을 것이다.!"

643. 느낌을 따라 인도한다는 그러한 목적을 융의 '자서전'은 고도로 충족시키고 있다.

-1961년 12월, 아니엘라 야페-

 ☞ 이 책과 함께 편집자 또한 인류의 유산이 되는 구나.

3. 내가 저자라면

책에 대하여

이 책은 융의 제자요 여비서인 아니엘라 야페가 융의 나이 82세가 된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줄기차게 대담을 한 결과 엮어진 자서전이다. 융에 의해 직접 쓰여진 장도 있는데, 그것은 '유년시절', '학창시절', '대학시절' 인 성장기의 이야기와 '여행' 에 관한 장의 일부이다. 나머지는 편집자와의 대담과 미발표 원고, 정기 세미나, 젊은 의사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내용으로 쓰여졌고, 최종적으로는 융에 의해 보완되고 수정되어 승인을 받고 탈고되었다. 융의 전집에 이 자서전은 빠져있는데, 그것은 융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이 자서전이 자신의 저작들과는 구별되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흔적으로서 쓴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의 프롤로그는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한 문장으로 다가온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자서전에서 기대할 수 있는 그에 대한 역사적사실이 중심이 아니라, 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주로 자유연상적인 흐름으로 따라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시작이다. 그는 마음을 가장 진정한 현실로 여겼다. 편집자도 융에게 외적인 사실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정수만이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서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나 개인의 역사를 되돌아 보아도 그렇다. 어떤 사건이 몇년도에 일어났는지는 기억에 가물가물하지만 그 사건을 통해 내가 경험한 감정과 느낌만은 내 온 몸의 세포속에 남아있는 것이다. 특히 감정이란 것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억압하거나 회피하려고 하면 꿈속에서라도 나타나 나를 일깨우기까지 한다. 융은 그 정신적인 경험을 의식적으로 기록하고 스스로 해석해서 자신만의 학문과 자기실현을 이루었다. 그가 발견한 길을 이 자서전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과 내용에 대하여

 옮긴이는 이 책을 '자서전 문학의 백미'라고 표현하고 있다. 다른 자서전과는 사뭇다른 분위기의 저작이기 때문이리라. 융의 정신적인 경험들을 위주로 쓰여진 내용이 그의 평생의 작업들과 맞닿아 있다. 정신적인 흐름을 쫓다가 놓칠 수도 있는 구성적인 면이 현실적인 편집자의 도움으로 그나마 뼈대를 갖추고 있다. 크게는 <성장기의 이야기, 그의 학문적 작업과 프로이트와의 관계, 만년의 그의 사상> 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는 외적인 사건이라기 보다, 그가 그 사건을 통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아 가는 이야기이다. 공허한 외적 사실들로 채워진게 아니라 융의 내부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들을 써나간 것이다. 이러한 융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구성에 편집자의 세밀한 자료조사와 대담의 기록이 이 책을 빛나게 하고 있다. 나에게 이 책의 프롤로그는 전체를 암기하고 싶을 정도의 명문이다. 후반부 '여행' 편 이후의 장들은 아직은 명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현대의 심리학에는 물론이고, 예술과 신화학, 그리고 미국을 휩쓸었던 뉴에이지적인 사고와 시크릿류의 철학에도 영향을 준것으로 보인다. 원형에 대한 인식은 연구원 4월의 주제인 '신화'의 조셉 캠벨을 통해 구체화된 것으로 보인다. 예술사의 '표현주의'라는 것도 자신의 무의식적 심상(심리적인 어떤 것)을 회화로 나타낸 것이니 '융'으로부터 영감을 받은것이 아닐 수 없다. 융은 학문적으로 프로이트와의 비교 등 많은 오해를 겪었다고 한다. 비전문가로서 판단내리기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그의 진정성있는 자서전의 고백이 그를 상아탑 속의 학자가 아닌 인류의 스승으로 보이게 한다.

 

그의 실천적 요구

이 책을 통해 오늘날의 우리는 자기 정신 속 에서 일어나는 일을 놓치지 말고 기록하고, 해석하고, 형상화 할 것을 실천적으로 요구받는다. 융은 '정신의 역사는... 의도되거나 미리 내다본 것이 아니라 '어두운 충동'으로부터 예감되고, 느낌으로 알게 되고, 손으로 더듬어 찾아진 것이다.'(595쪽) 이라고 말했다.  그 알 수 없는 두려운 길을 먼저 더듬으며 찾아간 융이 있기에 우리의 의식은 내면으로 더 깊게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내 삶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도구는 '모닝페이지'와 '꿈기록', '명상', '요가', '사진이미지 해석' 등이 떠오른다. 그것들이 나를 어떠한 길로 이끌지는 모르지만 내 안의 무한한 잠재력을 만나게 하는 통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목차

(파란색 표시는 융이 직적 저술)

옮긴이 서문│자서전 문학의 백미
프롤로그│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 유년시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불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 학창시절
신경증 발작을 일으키다
너는 누구냐
자연과 사원
두 인격의 어머니
악의 기원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다
자연과학 vs. 신의 세계
여행과 환상, 매력적인 모험의 세계로!
┃아름다운 시간들 - 대학시절
파우스트와 요한복음
아버지의 죽음과 궁핍한 시절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
정신의학에서 길을 찾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환자들꿈의 분석
집단 무의식의 원형에 대하여
┃프로이트와의 만남
이론적인 불화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내 안의 여인 아니마
신화와 환상
필레몬과의 대화
죽은 자를 향한 일곱 가지 설법
┃연금술을 발견하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성배전설과 동물 상징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곳
카르마
┃여행
북아프리카, 순진한 인류의 청소년기로!
푸에블로 인디언,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들
케냐와 우간다, 아프리카의 고독을 겪다
인도, 이방의 문화에서 유럽의 뿌리로!
라벤나와 로마, 보이는 환상과 보이지 않는 실재
┃환상들생의 한계점에 이르러
융합의 신비
┃사후의 삶에 관하여
꿈과 예감
신화,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
단일성과 무한성
┃만년의 사상
대극의 통합을 위하여
원형, 그 역동적인 에너지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회고비밀로 가득 찬 세계
모든 사람들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
편집자의 말│A.야페카를
구스타프 융 분석심리학 개념 및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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