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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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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7일 19시 55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요슈타인 가아더

1952년 노르웨이에서 태어났으며, 고등학교에서 몇 년간 철학을 가르쳤다. 1986(34세)에 단편집으로 문단에 데뷔하여 주로 어린이와 젊은이를 위한 작품을 썼고, 인생의 신비에 관한 책도 여러권 냈다.

1990년(38세)에 <카드의 비밀>로 노르웨이 문학비평가협회와 문화부로부터 상을 받았고, <소피의 세계>와 <크리스마스의 비밀>도 수상 작품이다. 특히 <소피의 세계>는 북유럽과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94(42세)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비롯하여 갖가지 상을 휩쓸다시피하여 가아더를 하루아침에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도한 ‘95년에는 프랑스, 영국, 미국, 일본 등에서 출간되어 스테디 셀러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미 세계 35개국에서 출간되었다. 현재 가아더는 두 아들, 부인과 함께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살며 창작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 책 <소피의 세계>가 나를 이토록 매료시킨 걸 보면 나는 그를 부러워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개념을 통해 말하는 철학적 재능과 이미지를 통해 말하는 문학적 재능을 동시에 가진 행운아로 평가받는 그에 대한 질투를 한낱 부질없는 감정의 소모에 그치지 않게 하려면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

지난 삼천 년의 세월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깨달음도 없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리..괴테

에덴 동산 _ 그 무엇이 언제인가 無에서 생겨났으리라...

아빠는 가슴이 찡할 정도로 오로지 소피와 소피의 엄마를 돌보신다 10

너는 누구니? 10 _ 나에게 이런 질문이 주어진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이들만이 늘 소피의 마음을 달래주는 친구다. 엄마는 밤 늦게나 소피와 함께 놀아 줄 시간이 있고, 아빠는 늘 온 세상을 돌며 항해 중이기 때문이다 11

왜 자신이 누군지 제가 모를까? 제 모습을 제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친구는 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지만 제 자신은 선택하지 못한 것이다 13

무릇 사람들 대부분이 병에 걸리기 전에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전혀 깨닫지 못하니 슬프지 않는가? 15

너는 누구니? 세계는 어디에서 생겨났지? 질문을 해도 참 못됐다! 18

마술사의 모자 _ 훌륭한 철학자가 되려는 우리에게 필요한 오직 한 가지는 놀라워 할 줄 아는 능력이다..

어찌 되었든 가장 당연한, 제일 중요한 문제를 이해한다는 게 왜 이리도 힘들까? 23

소피는 바보처럼 그 모르는 사람이 보냈을 새로운 편지를 너무나 고대하고 있었다 23

철학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이 골똘히 생각해 봐야 할 그런, 여러 의문이 있단다. 이 강좌는 바로 그러한 의문들에 관한 강좌다. 사람이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24

모든 사람이 욕구를 충족한다고 해도, 사람에게 필요한 무엇이 여전히 남아 있을까? 철학자는 그러한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게 철학자의 생각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지. 또 사랑과 보호도 필요하지.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우리가 누구이며, 왜 사는지 알아내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지 25 ★

역사는 우리가 내놓은 개별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해답을 많이 제시해 주었다 26

오늘을 사는 우리도 모두 이러한 철학 문제에 오로지 자신의 해답을 구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다른 사람이 생각한 것을 글로 읽는 것은 우리가 인생과 세상에 관한 우리 자신의 견해를 일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테지 26

철학자는 가느다란 털을 붙잡고, 위대한 마법사를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위해 마냥 위로 기어오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란다 27

이상한 존재

어느 화창한 날, 네가 깜짝 놀라 발걸음을 뚝 멈추고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네 자신을 체험하게 될, 그런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31

이것은 습관의 문제다. 토마스 엄마는 인간은 날 수 없다고 배운 사람이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렇게 배운 일이 없다. 아직 이 세계에서 어떤 일이 가능한지, 또 어떤 일이 불가능한지 토마스에겐 확실치 않다 32

어쩌면 우리는 유년 시절을 보내는 동안 세상에 대해 놀라워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로 인해 무엇인지 근본적인 것을 상실하고 말았지. 즉 철학자들이 다시 생명령을 불어넣으려는 그 무엇을 말이다. 그 무엇은 우리 마음 속 어딘가에 있으면서 우리에게 인생은 하나의 거대한 수수께끼라고 늘 속삭인다 32

남자든 여자든 철학자에게 이 세계는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신비의 세계로 비쳐진다. 철학자와 어린이는 이처럼 중요한 공통된 특성을 갖고 있다. 철학자는 일생 동안 마냥 어린 아이마냥 감수성이 뛰어나다고 장담해도 좋으리라 33

그만두고 싶은 경우에는 나에게 소식을 전해주렴. 산 개구리 한 마리를 우편함에 넣어 두어라 33

오로지 철학자들만이 언어와 존재의 극한에 도달하는, 이 위험천만한 여행을 감히 실행에 옮기는 거다. 그들 중 몇 사람은 도중에 사라져 버리기도 하지만, 나머지 다른 이들은 토끼털을 꽉 잡고 흰 털 밑에 자리잡고는 그저 먹고 마시며 배나 두드리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신사 숙녀 여러분!”하며 외쳐 댄다 34

소피 자신은, 자기가 우주라는 마술사의 검은 모자에서 나온 토끼의 무성한 털 속에서 기어오르기 시작했음을 깨달았다 35

어른들은 세계를 아주 당연하게 여기지. 확실히 어른들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일상 생활이라는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게 틀림없어 35

신화 _ 선한 힘과 악한 힘 사이의 불안정한 균형

철학이란 기원전 600년경 생겨난, 아주 새로운 사고방식이다. 그전에는 여러 종교가 인간의 모든 문제에 답해주었지. 그러한 종교적 설명이 대대로 이어져 신화에 이르게 되었단다. 시화란, 삶이 왜 지금처럼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는 신들의 이야기이다 38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은 호메로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인간과 너무 유사하다고 비판하였지. 실제로 신들은 우리와 똑같이 이기적이며 믿지 못할 대상들이었다. 신화란 단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류 역사상 처음 언급한 셈이지 44 _ 나의 신화를 만든다는 것도 마찬가지일거야.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가 실현될 리 없으니까. 터무니 없다는 말로 상상의 힘을 조절하려고 들지 말자. 그냥 가고 싶은 곳으로 훨훨 날아가도록 내버려둬. 그 흔적을 따라가는 과정이 나의 인생이 될 테니까.

노예가 모든 육체 노동을 도맡았으므로 자유 시민이 정치와 문화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생활 조건 속에서 인간의 사고는 비약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지. 바로 각 개인이 ‘어떻게 사회를 조직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스스로 제기할 수 있게 된 점이다 45 _ 그래, 가정의 문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냐. 만들어가는 거라구!!!

우리는 이 때부터 바로 신화적 사고 방식에서 경험과 합리성에 근거하는 사고로 발전했다고 얘기할 수 있다.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은 자연의 진행과정에 관한 자연스런 해설을 모색해내려는 철학 목표를 갖고 있었다 45

소피가 깨달은 점은, 뭇사람들에겐 늘 자연의 진행 과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런 설명 없이는 살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과학이 존재하지 않던 그 옛날, 사람들은 신화를 지어낸 것이다 47 _ 내가 자꾸만 나의 삶을 해석하려드는 것도 같은 이유일 거다. 논리적으로 설명해낼 수 없으니 신비적인 설명이 되는 것도. 물론 전혀 나쁠 것 없다.

자연 철학자들 _ 무에서는 아무 것도 생길 수 없다

지금 내가 말하는 ‘그 철학자’란 남자 철학자를 가리킨다. 철학사를 남성이 결정해 왔기 때문이지. 게다가 여성은 성적 대상으로, 또 소유되는 존재로 인류 역사에서 늘 억압당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많은 중요한 경험을 상실했다는 사실 역시 퍽 유감스런 일이다. 여성은 20세기(시몬느 드 보봐르? ^^) 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철학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51 _ 그러니 여성의 입장따위는 고려되었을 리 만무한 것이겠지. 당연히도.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 54

아낙시만드로스는 이 세계를 ‘무한한 어떤 것’에서 생겨나 다시 그것으로 돌아가는 수많은 세계들 가운데 하나로 여겼다 54

아낙시메네스는 대기 또는 공기를 만물의 근원 55

엘레아 학파의 파르메니데스..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미 늘 존재하던 것 56

파르메니데스 역시 물론 자연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감각을 통해서 여러 사물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각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것을 이성적 설명과 일치시킬 수 없었다. 그런데 파르메니데스가 오관에 의존해야 할지 아니면 이성에 따라 판단해야 할 지 양자 택일을 해야만 했을 때, 그는 이성을 택하는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56

철학자로서 그는 여러 가지 형태의 ‘감각적 착각’을 밝혀 내는 것을 자신의 철학 과제로 삼았다. 이렇듯 인간의 이성에 대한 강한 믿음을 합리주의라고 한다 57

에페소스 사람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연의 기본 특성을 지속적인 변화라고 생각 57

세계는 지속적인 여러 대립쌍으로 규정할 수 있다 57

자연이 보여주는 모든 변화와 대립에도 불구하고 헤라클레이토스는 통일성과 전체성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만물의 바탕에 놓여 있는 이 어떤 것을 ‘신’ 또는 ‘로고스’라고 불렀다.

엠페도클레스는 자연은 모두 네 가지 원소, 그러니까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이 네 가지 원소로 흙, 공기, 불, 물을 꼽았다.

자연의 모든 변화는 네 가지 원소가 서로 혼합하고 다시 분리하면서 생긴다고 믿었다. 만물은 흙, 공기, 물과 불로 이루어진 혼합물이다. 단지 혼합 비율이 다를 뿐이다 60

그는 물질과 힘을 구분 62

아낙사고라스는 자연이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작은 소립자로 조립되어 있다고 생각했지. 만물은 더 작은 소립자로 분리할 수 있지만, 가장 작은 소립자로 그 속에 전체의 모습을 내포하고 있다 63

데모크리토스 _ 세상에서 가장 기발한 장난감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그의 유일한 도구는 이성 74

운명 _ 예언가는 원래 풀 수 없는 것을 애써 풀려고 한다

네가 절대 내 뒤를 몰래 따라다녀선 안 된다는 점을, 미리 확실하게 말해 두어야겠구나. 언젠가 우리는 서로 알게 될 테니까. 그러나 그 때와 장소는 내가 정할 것이다 81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은 인간은 결코 인간 이상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누구도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한다 83

히포크라테스의 전통적 의술에 따르면...병이 나는 것은 신체적 정신적 평형이 깨져 자연이 본 궤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건강해지는 길은 바로 절제와 조화 그리고 ‘건강한 신체 속에 깃든 건전한 정신’에 있다고 밝혔다 85

소크라테스 _ 가장 현명한 삶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본성적인 수치감이 있을까 91

사람보다 더 똑똑하지만, 실제보다 더 영리하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다 94

소크라테스 때부터 전체 철학 구상의 본질도 변했다 95

사상의 역사는 4막으로 된 연극과 같다 95

소피스트들은 아테네의 시민들을 가르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96 _ 나도 소피스트가 되고 싶은 걸까?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인간은 만물의 척도..그들은 '본성적인 수치감‘ 같은 말은 전혀 근거가 없음을 입증해 냈다 97

유랑하던 이 소피스트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절대적인 규범은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아테네 도시 사회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생각에 반대해서, 소크르테스는 실제로 몇몇 규범은 절대적이며 보편 타당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려고 노력했지 98

확실한 것은 소크라테스가 아주 못생겼다는 사실이다. 뚱뚱한 체구에다 키가 작았고, 툭 불거진 눈과 들창코를 하고 있었지. 하지만 그의 내면 세계는 ‘완벽하게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99

소크라테스는 맨 먼저 문제만을 제기하고선, 자신은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태도를 즐겨 취했다. 그러고는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종종 상대방이 자기 생각의 허점을 깨닫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그의 대화 상태를 궁지로 몰고 가, 결국 무엇이 옳고 그른지 깨닫도록 했지 100

소크라테스의 임무는 사람이 올바른 통찰력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사람의 인식은 내면 세계에서 생기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이식할 수 없기에 말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생긴 인식만이 참된 ‘통찰력’이다 100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역을 해냄으로써 다른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이성을 이용하도록 유도했다. 이 때 소크라테스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양, 혹은 실제보다 더 어리석을 척 꾸며 댔다 100 _ ㅋㅋ

자신에게 다른 선택을 전혀 허락하지 않는 그 무엇이 소크라테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내면에서 늘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말했다 101

소크라테스는 철학은 하늘에서 땅으로 불러내려, 각 도시와 집집마다 보금자리를 틀게 하고, 사람들이 인생과 윤리, 선과 악에 관해 깊이 생각하도록 했다 103

철학자..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103

소피스트들은 재치있는 몇 마디 말을 해주고는 돈을 받았지. 그리고 그런 ‘소피스트들’은 전체 역사 과정에서 계속해서 나타나고 사라져 갔다. 내 머리엔 조금 밖에 알지 목사는 지식에 만족해 하는 고집 세고 똑똑한 체하는 사람들이나 선생님들, 혹은 실제론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주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뻐기고, 잘난 체 하는 사람들이 떠오르는 구나 104

철학자는 자신이 근본적으로 아주 적은 것만을 알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는 거듭 참된 인식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바로 그 같은 드문 사람이다...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자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다. 또 그러한 사실이 자신을 괴롭히지 104 _ 그렇다면 나는 철학자가 분명하다.

묻는 사람은 항상 가장 위험 인물이다. 대답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지. 수천 가지 대답보다, 그저 질문 하나가 많은 불씨를 안고 있을 수 있다 108

이런 방식으로 인류는 두 부류로 나뉘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부분을 확신에 사로잡혀 있거나, 아니면 그저 무관심할 뿐이다 105

절대 포기할 줄 모르고, 지혜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철학자가 바로 소크라테스 105 _ 그렇다면 고통이야말로 철학자의 증표?

소크라테스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인식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롸 인간의 이성이라고 생각했지 106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확신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겠지 107 ★♥

사람들의 낡고 굳은 생각을 마구 휘저어 놓으니까요 108

아테네 _ 폐허에서 높은 건축물들이 솟아 올랐다

관자놀이가 죄는 듯이 긴장되었다 116

다음 순간 화면이 꺼졌다. 비디오 테이프를 앞으로 되감거나 또 뒤로 더 풀어 보아도, 지금까지 본 것이 전부다 117

플라톤 ...영혼의 고향을 향한 동경

소피의 얼굴 위로 갑자기 알아차렸다는 듯한 묘한 웃음이 번졌다 120

빵 굽는 사람이 똑같은 과자 50개를 만들려면 하나의 틀을 사용하면 된다 120

왜 말이 말일 수 있는지..인간에겐 불멸의 영혼이 있을까 121

마음은 늘 어린 소녀 같은데 몸만 늙어 간다 121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사회 속의 현실적 관계와 진리나 이상 사이에 어떤 모순이 있는지 플라톤에게 드러내 보여 주었지 123

스승 소크라테스의 법정 진술을 기록해서 <변명>을 만듬 124

플라톤이 아테네에서 직접 철학 학교를 설립..아카데미아 124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는 철학, 수학, 체육을 가르쳤다. 이 ‘가르치다’라는 표현이 아마 정확한 단어는 아닐 듯싶구나. 이 곳에서는 아주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124

플라톤의 관심은 영원하고 변치 않는 것과 흘러가는 것 사이의 관계를 구명하는 데 있었다 125

소크라테스는 사람의 행동에 대한 영원한 규칙이나 규범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이성을 사용한다면 변치 않는 규범을 모두 인식할 수 있다. 인간 이성이 바로 영원히 불변하기 때문에 125

플라톤은 영원히 변치 않는 고유한 ‘현실성’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철학자들은 모두 다 이른 파악하려고 애쓰고 있다 126

철학자는 그 같은 부질없고 일상적인 일들은 옆으로 제쳐놓은 채 영원히 참되고 아름다우며, 영원히 선한 것을 제시해 보이려고 노력한다 126

플라톤에 따르면 영원하고 변치 않는 것은 어떤 물리적 원질도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그것에 따라 모든 현상이 형성되는 정신적이고도 추상적인 밑그림인 것이다 127

플라톤은 ‘감각 세계’의 뒤편에 참된 현실이 있음을 믿었다. 그는 이 현실성을 이데아의 세계라고 불렀다. 여기서 우리는 영원 불변의 이상형을 곧 각양각색의 자연현상들 배후에 있는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129

특정 비누 방울의 현존에 관해 철학 논문을 쓰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130

감각 세계의 사물에 관해선 그저 불확실한 의견만을 가질 뿐이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이성으로 인식하는 것에 관해서만 확실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130

우리의 감각이 인지하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오직 불확실한 의견 밖에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성을 통해 인식한 것에 대하여 우리는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132

영혼이 육체 안에서 깨어나는 동시에 모든 이데아를 잊어버리는 일이 생겼다. 이 때부터 아주 놀라운 과정이 시작되었다. 곧 인간은 자연 속에서 여러 형상들을 체험해감에 따라 점점 영혼 속에 깃든 희미한 기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회상을 통해 영혼이 자리잡고 있던 고향에 대한 동경이 싹트게 된다. 플라톤은 이러한 영혼의 동경을, 사랑을 의미하는 에로스라고 불렀다. 영혼은 생겨난 곳을 향한 ‘사랑의 동경’을 감지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부터 영혼은 육체와 감각적인 것을 모두 불완전하고 비본질적인 것으로 경험하기에 이른다. 사랑의 날개를 단 영혼은 이제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고향’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감옥과도 같은 육체에서 벗어나려 한다 133 ★

여기서 특히 강조할 점은 플라톤이 여기서 이상적인 삶의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영혼을 이데아의 세계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도리어 감각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이데아의 ‘그림자’에 집착한다 134 _ 공부를 하면 할수록 분명해지는 그림이 있다. 짧은 공부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그림을 봤다는 건 아마도 이미 어느정도 윤곽이 드러난 영역이기 때문일거다. 머리보다는 몸이 기민한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게 주어진 역할은 선지자들이 눈으로 본 영토를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일인 것 같다. 기꺼이 삶을 바치고 싶은 사명이다.

플라톤은 모든 자연 현상을 영원한 형상의 그림자 혹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뭇사람들 대부분은 이 그림자와 자신들의 삶에 만족한다. 그들은 그 무엇이 이 그림자를 드리워야만 하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림자가 존재의 전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그림자를 그림자로 생각지도 않는다. 그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영원의 불멸성도 잊고 있다 134

동굴 안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자신을 묶인 상태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고 상상해 보아라. 처음에 그는 벽의 그림자가 어디서 온 것일까 자문한다. 마침내 그가 자신을 해방시키고 고개를 돌려 장벽 위에 놓인 여러 물체의 모조품을 보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것 같니? 당연히 처음에는 강렬한 빛 때문에 눈이 부시겠지. 물체의 또렷한 윤곽 역시 그의 눈을 부시게 할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그림자만 보고 살았으니까. 그가 장벽 위로 올라가 불을 지나 동굴 밖의 넓은 곳으로 올라온다면 더욱 눈이 부실 것이다. 그러나 두 눈을 비빈 뒤에 그는 모든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처음으로 색깔과 또렷한 윤곽을 본다. 그리고 진짜 동물들과 꽃들을 볼 것이다. 동굴 안의 물체들이란 그것들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제 그는 이 동물들과 꽃들이 어디서 왔는지 묻는다. 그는 하늘의 태양을 보고 그것이 자연의 동물과 꽃에게 생명을 준다는 것을 이해한다. 동굴 안의 불꽃이 그림자의 원인이었던 것처럼. 이제야 이 행복한 사람은 자연으로 뛰어나가 갓 얻어 낸 자유를 만끽한다. 그러나 그는 아직 저 아래 지하 동굴에 갇혀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다시 동굴에 도착한 그는 동굴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동굴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는 단지 실재의 모형일 뿐임을 알려 주려고 애쓴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지. 동굴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동굴 벽을 가리키며 그들이 거기서 보는 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136

‘동굴의 비유’는 철학자의 용기와 교육적 책임을 상징한다 136

플라톤은 절대로 자연이 어둡고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데아의 명증성과 비교했을 대 자연은 어둡고 슬프다고 생각했다 136

플라톤에 따르면 육체는 머리, 가슴, 배 세부분으로 되어 있다. 또 이 각 부분은 나름대로 특성이 있다. 머리의 특성은 이성, 가슴의 특성은 의지, 배의 특성은 욕구 또는 욕망으로 보았다. 신체의 각 능력은 자신의 고유한 이상 혹은 덕을 갖는다. 즉 이성은 지혜를 추구하고, 의지는 용기를 구하며, 욕망은 인간의 중용을 위해 억제되어야 한다. 이 세 부분이 하나가 돼 기능을 발휘할 때 우리는 조화롭고 올곧은 삶이 될 수 있다. 그에 따라 아이들은 학교에서 제일 먼저 자신의 욕망을 누르는 법을 배우고, 그 다음으로 담력을 키우고, 끝으로 이성과 지혜를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올바른 국가는 각 개인이 전체 국가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바르게 인식하고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존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137

플라톤이 남자뿐 아니라 여성도 국가를 잘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통치자은 오직 이성으로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여성도 남자와 같은 교육을 받고, 육아와 가사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남자와 똑같은 이성을 발휘한다고 믿었다 138 ★★★ _ 의미심장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육아와 가사노동의 의무가 여성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거다. 기본적으로 그에 동의하는 가운데 살짝 다른 각도로 접근해보면 ‘육아’와 ‘가사’는 오히려 여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육아는 오늘날 학교교육에서 익히기 힘든 소중한 덕목들을 단련해 주는 것 같다. 없어도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역시 몸에 익히고 나면 세상을 더욱 깊이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덕목들 말이다. 참 오랜 시행착오를 통해 알게 된 값비싼 교훈이다.

어린이 교육은 각 개인에게 맡기기엔 너무 큰 중대사라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지. 플라톤은 이처럼 공공 유치원과 전일제 학교를 처음으로 주장한 철학자다 139

플라톤은 여성을 교육하지 않는 국가는 마치 오른팔만을 단련하는 사람과 같다고 덧붙였다. 근본적으로 플라톤의 여성관은 당시 플라톤이 살던 고대 아테네 시대에 비추어 무척 긍정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예로, 플라톤의 <향연>의 한 대화에 등장하는 디오티마라는 여인은 소트라테스가 철학적 통찰력을 갖도록 도와주고 있다 139

지금 이 육체를 얻기 이전에 정말 소피의 영혼이 실재했을까? 소피가 자신의 내면에 시간과 더불어 절대로 소멸하지 않는 작은 금괴를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 맞을까? 141

소령의 오두막 _ 거울 속의 소녀가 두 눈을 깜빡였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 걸까? ‘무엇’인가 소피를 그리 하도록 유도하는 것 같다 143 _ 알 것 같은 느낌!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제자 소피 올림 151

고양이는 분명 기뻐하거나 슬퍼할 수 있겠지만 신이 존재하는지, 불멸의 영혼이 자신에게 있는지 스스로 물을 수 있을까? 153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153

내가 열 다섯 살이 됐을 때 어땠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구나. 나는 이미 그 때 다 컸다고 느꼈지. 소피야, 참 이상하지 않니? 그 때 이후로 내가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드니 말이다 154

아리스토텔레스 _ 지나치리만큼 정확하고 조직적인 한 사나이가 우리의 개념들을 정리하려 했다

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은 영원한 형상 혹은 ‘이데아’에 깊이 빠져 연구했고 자연변화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은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늘날 우리가 자연 진행과정이라고 표현하는 바로 그 자연 변화에 관심을 쏟았다 157

그러니까 플라톤은 오직 이성에 의지해서 살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에도 의지해서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157

플라톤이 시인이고 신화작가였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책들은 마치 사전처럼 상세하면서 무미건조했다. 그 대신 가장 참신한 자연 탐구가 저술의 바탕이 되었다 158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제기한 반론을 들어보고, 아리스토델레스가 어떻게 독자적인 자연철학을 형성해 냈는지 살펴보자. 그 다음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전의 자연 철학자들의 생각을 어떻게 집대성해 놓았는지 알아보고, 그가 어떻게 우리의 개념들을 정리하여 논리학의 체계를 세웠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끝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관과 사회관에 관해 얘기하기로 하자 158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모든 것의 질서를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고 여겼다 19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의 ‘형상’을 모든 말이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바로 이 점에서 후추 과자를 만드는 틀의 비유는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후추과자를 만드는 틀은 개별 후추 과자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159

철학적 사색의 극적인 전환...플라톤이 현실의 최고 단계를 우리가 이성으로 ‘생각’하는 것에 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의 최고 단계를 우리가 감관으로 인지하고 지각하는 것에 두었다. 플라톤은 우리 주변의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이데아 세계 및 사람의 영혼 속에 실재하는 원형적 존재의 반영이라고 간주하였는데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와 정 반대로 사람의 영혼 속에 있는 것은 자연적 대상의 반영일 뿐이라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플라톤은 인간의 표상과 실제 세계를 혼동하는 신화적 세계상에 아직 사로잡혀 있다 160_ 신화적 개념인 ‘모성’과 실제 ‘엄마’도 이런 관계가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 마음속에 생각과 관념의 형태로 존립하는 모든 것은 우리가 보고 들음으로써 우리의 의식 속에 처음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선천적 이성도 있다. 즉 우리는 모든 감각적 표현을 서로 다른 무리와 종류로 정리 정돈할 수 있는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것인데, 그 능력을 통해 ‘돌’과 ‘식물’, ‘동물’과 ‘사람’, ‘말’과 ‘가재’, 그리고 ‘카나리아 새’에 대한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161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도리어 이성이란 사람이 갖는 가장 중요한 특색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것도 지각하지 않으면 우리 이성은 완전히 빈 채로 있으므로 우리에겐 어떠한 본유 관념도 없는 것이다 161 _ 결국 많이 체험해야 현명해진다는 얘기!! 동감이다!! 여행이 인격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그래서인 것 같다. 이태리 꼭 가야징!! ^^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자신의 철학의 관계를 밝힌 후, 현실은 형상과 질료의 통일이라 표현할 수 있는 서로 다른 낱낱의 사물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질료는 사물을 이루는 재료이며, ‘형상’은 사물의 특성을 나타낸다 161

질료는 특정한 형상을 얻은 가능성이 있다. 또한 우리는 질료가 자신 속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애를 쓴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자연에서 생기는 모든 변화는 질료가 가능성의 상태에서 현실성의 상태로 변형되어가는 과정이다 162 ★ _캬!! 멋진 표현!!!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 만물은 특정한 형상을 실현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달걀은 닭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 물론 모든 달걀이 다 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달걀 안에 내재하는 형상을 실현하지 못한 채 반숙이나 오믈렛 혹은 달걀 후라이가 되어 아침 식탁에 오르지. 하지만 달걀이 거위가 될 리는 전혀 없다. 달걀이 거위가 될 가능성이 달걀 안에 없는 것이다. 사물의 형상은 사물의 가능성과 아울러 사물의 한계도 표현해 준다 163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 안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아리스토텔레스가 ‘목적원인’이라고 부른 것을 정확히 이해하는 ‘목적원인’이라고 부른 것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64

비의 재료의 원인 혹은 ‘질료 원인’은 대기가 차가워졌을 때 바로 거기에 수증기(구름)가 잇었다는 사실이다. 작용하는 원인, 즉 ‘작용 원인’은 수증기를 냉각시키는 일을 뜻한다. 그리고 형상적인 원인, ‘형상원인’은 바로 땅에 덜어지는 것이 물의 본성 혹은 물의 형상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네가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덧붙일 것이다. 즉 비가 내리는 것은 식물과 동물이 자라는 데 빗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것이 비의 목적 원인인 셈이다. 네가 보듯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방울 하나에도 일종의 삶의 과제와 의도를 부여했다.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말할 수도 있다. 식물이 자라는 것은 습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소피야, 그 차이를 알겠니? 아리스토텔레스는 삼라 만상에 합목적성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165

질료와 형상의 구분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 방법을 설명하는 데에도 중요한 구실을 한다 165

스무고개 놀이를 창안해 낸 이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다. 반면에 숨바꼭질 놀이를 처음 생각해 낸 이는 플라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우리는 이미 데모크리토스를 레고 발명가로 여기고 있다. 지나치리만큼 정확한 질서를 추구해서, 우리가 쓰는 개념 또한 체계적으로 정리 정돈하려 했던 아리스토텔리스는 이런 식으로 논리학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했다 168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 현상을 여러 다른 무리들로 구분했을 대 그가 구분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은 사물의 특성, 정확히 말하자면 각 사물이 할 수 있는 일과 능력이었다 170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비추어 볼 때, 사람은 자연의 온전한 삶을 사는 존재다. 우리 인간은 식물처럼 양분을 섭취하고 성장하며, 동물처럼 감정이 있고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주 고유하고 특별한 성질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다 170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다르면 우리는 ‘식물적 영혼’과 ‘동물적 영혼’, ‘이성적 영혼’을 모두 지니고 있는데, 바로 그것이 인간의 ‘형상’이다. 이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인간이 훌륭한 삶을 사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 인간은 자기의 모든 능력과 가능성을 발휘하고 있을 때 행복하다. 그는 행복의 세 가지 형상을 믿었다. 첫 번째 형상은 쾌락과 만족을 누리는 삶이다. 두 번째 형상은 자유를 누리며 책임지는 시민의 삶이다. 세 번째 형상은 연구하는 철학자의 삶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 세 형상이 모두 같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171 ♥ _ 내면의 욕망을 따르되 책임질 줄 아는 삶. 연구는 바로 자유와 질서의 조화로운 균형점에 대한 탐구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내 삶 또한 상당히 괜찮은 삶임에 틀림없네. ㅋㅋ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에 관하여도 ‘중용의 도’를 지키라고 했다.172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윤리학은 “균형과 절제를 통해서만 행복하고 ‘조화로운’ 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그리스의 의학을 떠오르게 한다 172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이란 뭔가 좀 모자라는 존재라고 생각했다...정말 아리스토텔레스답게 말하자면 남성은 ‘형상’을 제공하고, 여성은 ‘질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그토록 명석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그릇된 여성관을 가졌었다니 정말 애석하다...이것은 남성이 철학과 학문 분야를 독점할 때, 어떻게 모든 일이 잘못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시사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릇된 여성상은 중세에 이르러 지배적인 여성관으로 자리잡아, 교화마저 성서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그런 여성상을 이어받기에 이르렀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성을 싫어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174 _ 내가 열심히 철학을 해야하는 이유!!

소피는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하여 읽은 후 여러 개념과 관념의 경우에도 질서를 지키는 것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75

개개인의 적극적인 참여와 개인적인 생각이 중요..소피는 중요한 이 두 가지를 위한 확고한 토대가 서서히 마련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179 _ 철학적 기반이란 말이지? ^^

헬레니즘 _ 한줄기 불꽃..

한 철학자가 다른 철학자의 등에 올라탄다면, 부드러운 토끼 털안에서 점점 더 높이 올라갈 것이다 184

한 인간의 인생관을 규정하는 몇 가지 요인들 : 교육과 환경, 개인적 경험, 인간의 이성(소크라테스는 이성의 도움으로 그 시대의 지배적인 견해에서 벗어난 인간의 좋은 예) 185

양심이란 옳고 그름에 반응하는 인간의 능력 186

소피스트들은 각 개인이 자라온 환경이, 그가 옳다고 여기는 것과 그르다고 여기는 것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그에 반해 소크라테스는 모든 인간의 양심은 같다고 생각했다. 둘 다 옳을지도 모른다 186

이성과 양심은 근육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가 근육을 이용하지 않으면 서서히 약해져 이완하고 만다 186

알렉산더...수많은 출정을 통해 이집트와 인도에 이르는 전체 오리엔트를 그리스 문명과 연결시켰다. 이렇게 하여 인류사에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 즉 그리스 문화와 그리스 어가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국제적인 공동체가 생겨난 것이다. 줄잡아 300년간 지속된 이 시키를 종종 헬레니즘 시대라고 부른다. 헬레니즘이란 당시 세 개의 큰 지역 마케도니아, 시리아, 이집트에서 융성했던 그리스적 문화를 일컫는다 189

로마 인이 헬레니즘 세계를 정복하기 전에 로마 자체는 이미 그리스의 문화적 식민지가 되어 있었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가 정치적 힘을 상실한 뒤에도 그리스 문화와 그리스 철학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0

예전 사람들은 자기의 민족과 국가에 결속되어 있다고 ale었다. 그러나 민족과 국가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인생관에 관하여 많은 사람이 의구심과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이 시기에 생겨난 새로운 종교는 공통적으로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다 191

헬레니즘 문화는 오늘날의 우리 세계와도 흡사하다. 20세기 역시 점점 더 개방된 국제 공동체가 특징을 이루고 있잖니 191

옛 것과 새 것의 혼합, 즉 종교와 철학과 과학의 혼합이 ‘세계관의 장터’에서 선보일 새로운 신상품의 기초를 어떻게 형성해 낼 수 있는지,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에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새로운 지식’ 거의 대부분이 실제로 무엇보다 헬레니즘까지 거슬러 그 뿌리를 감지할 수 있는, 오랜 사상의 부스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192 ★★★★★★

헬레니즘 철학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델레스가 제기한 문제들을 더 자세히 다루었다. 그들 철학의 공통점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가장 유덕하게 살다 죽을 수 있는지’ 그 질문에 해답 찾기를 소망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윤리학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윤리학은 새로운 국제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과제가 되었다. 문제는 어디에 진정한 행복이 있고, 어떻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192 ♥

견유학파(통) : 견유학파 학자들은 진정한 행복이 물질적 사치, 정치 권력, 건강 같은 외적인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도리어 그와 같은 우연적이고도 덧없는 것에 의존하지 않는 것 자체가 참된 행복이다. 행복이 그런 것들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므로, 행복은 또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진정한 행복을 이루면, 다시 잃게 되는 일은 없다고 하였다 .

가장 잘 알려진 견유학파 철학자는 안티스테네스의 제자인 디오게네스다. 그는 평생 동안 통 안에서 살면서 옷 한 벌, 지팡이 하나, 빵 주머니 하나 외에 아무것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에게서 행복을 빼앗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 그는 알렉산더 대체가 방문했을 때 바로 통 앞, 양지바른 곳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알렉산더 대제가 이 현자 앞으로 다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당장 그 소원을 이루어 주겟다고 했더니,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제가 자기 앞에 비치는 햇빛을 가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디오게네스는 자기가 위대한 최고 통치자보다 더 부유하고 더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지. 왜냐하면 디오게네스는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진 셈이었으니까.

견유학파 철학자들은, 인간이 자신의 건강 때문에 근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고통과 죽음조차 인간을 슬프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지.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근심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냉소적인(cynical)','냉소주의(cynicism)'라는 낱말은 견유학파의 이런 측면, 즉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에서 유래한 것이다 194

스토아 학파(기둥) :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는 제논. 헤라클레이토스처럼 스토아 학자들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세계 이성에 혹은 동일한 로고스에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개인을 축소 형태의 세계로, 즉 ‘대우주’에 대응하는 ‘소우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보편 타당한 법률, 이른바 자연법 사상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194

스토아 학자들은 개인과 우주의 차이를 없애듯이 ‘정신’과 ‘질료’의 대립도 부인하고, 오로지 하나의 자연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같은 견해를 일원론이라고 한다. 이는 현실을 양분한, 플라톤의 이원론과는 명백히 상반되는 것이다 .

그들은 인간의 공동체적 삶을 중요시하고 정치에 관심을 보였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적극적인 정치가였는데, 예를 들면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들은 로마에서 그리스 문화와 철학을 전파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같은 노력을 경주한 사람으로 특히 웅변가이자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키케로를 꼽을 수 있다. 그는 개인을 중심에 두는 ‘인문주의’라는 세계관을 세웠다. 그 뒤를 이어 스토아 학자인 세네카는 “인간은 인간에게 신성하다.”고 썼다. 이 말은 후세 사람들에게 일종의 인문주의의 표어가 되었다.

그 밖에도 스토아 학자들은 질병과 죽음과 같은 모든 자연 진행 과정이 변치 않는 자연 법칙을 따른다고 힘주어 말했지. 그래서 인간은 자기의 운명에 순응할 줄 알아야만 한다고 여겼지. 이들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니만큼, 운명이 문을 두드릴 때 자기의 곤경을 한탄해 봤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생의 행복한 상황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모든 외적인 것에 대해 초연한 태도를 취한 견유학자들과 유사하다. 오늘날에도 인간이 사사로운 감정에 쉽싸이지 않을 때 ‘동요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스토아적 태연함’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196

에피쿠로스 학파(정원) :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인간이 유덕하게 살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견유학자들과 스토아 학자들은 인간이 물질적인 사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정도로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풀이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리스티포스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감각적인 향락을 누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간주하였다. 그는 최고선은 쾌락이고, 최대악은 고통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여러 가지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삶의 기술을 개발하려 했지. 견유학자와 스토아 학자들의 목표는 고통의 각 형상을 참고 견뎌 내는 것이었으나 아리스티포스의 목표는 좀 달리 고통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기원전 300년경 에피쿠로스는 아테네에서 에피쿠로스 학파를 창시하였다. 그는 아리스티포스의 쾌락의 윤리학을 계속 발전시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과 결합시켰지.

“이방인이여, 여기서 네가 행복할 것이다. 이 곳에선 쾌락이 최고선이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얻으려고 한 행위의 결과는 경우에 따라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부작용과 늘 비교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었다고 한다 197

에피쿠로스는 단기간에 얻은 쾌락의 결과를, 장기적 안목으로 좀 더 지속적이거나 집중적인 더 큰 쾌락과 비교해 보려고 했다...우리는 동물과는 달리 자기 인생을 계획할 수 있고 ‘쾌락을 계산’할 능력이 있지...또한 에피쿠로스는 ‘쾌락’이 감각적인 향락과 무조건 같지는 않다고 강조하였다. 우정을 돈독히 하고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 역시 초콜릿이 쾌락을 주듯 우리에게 쾌락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삶을 즐길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절제와 중용 그리고 마음의 평정 따위의 오랜 그리스적 이상이 조건으로 갖추어져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값싼) 욕망은 통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마음의 평정은 고통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을 찾은 사람들은 특히 종교적 불안에 휩싸인 사람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데모크리스토스의 원자론은 종교와 미신에 대응하는 유용한 수단이었다. 선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이 문제에서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스토스의 ‘영혼 원자’이론에 의존하고 있다. 소피야, 우리가 죽으면 ‘영혼 원자’가 사방으로 흩어지기 때문에 데모크리스토스는 죽음 뒤의 삶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아직 기억하겠지?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가?”

에피쿠로스가 말했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현존하지 않으며, 죽음이 현존하는 경우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죽는 것은 본래 누구에게도 고통을 준 적이 없다고 할 수 있지. 에피쿠로스는 직접 자기의 해방 철학을 스스로 네 가지 치유법으로 요약하였다.

o 우리가 신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o 죽음에 대해서 전혀 근심을 할 필요도 없다.

o 선은 쉽게 얻을 수 있다.

o 두려움은 견뎌 내기 쉽다.

철학자의 사명과 의사의 사명을 비교하는 것은 그리스에선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 같은 비교에 따르면 인간은 이미 말했듯, 네 가지 중요한 약을 갖춘 ‘철학 여행용 구급상자’를 준비해야 한다 .

스토아 철학자들과는 달리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은 정치와 사회 문제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숨어서 살아라!”하는 것은 에피쿠로스의 조언이었지. 그들의 정원을 오늘날의 생활 공동체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에피쿠로스의 뒤를 이은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은 일면적인 향락을 추구하는 방향(일종의 변질?)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들의 좌우명은 바로 “지금을 만끽하라!”였다. 오늘날, ‘에피쿠로스주의자’라는 말을 곧잘 나쁜 의미에서 ‘향락가’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199

견유학파,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는 소크라테스의 이론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 학파들은 이밖에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인 데모크리토스(원자론)와 헤라클레이토스(만물유전) 이론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9

신플라톤주의 : 신플라톤주의자 가운데 제일 중요한 철학자는 플로티노스. 그는 그리스 철학과 오리엔트 신비주의의 거대한 교차 지점이었던 도시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플로티노스는 세계가 양극 사이에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한끝에는 플로티노스가 ‘하나’라고 이름 붙인 신적인 빛이 있는데, 그는 때때로 그 빛을 신이라고 일컬었다. 다른 끝에는 ‘하나’의 빛이 닿지 못하는 절대적 어둠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플로티노스에겐 이 어둠이 근본적으로 비존재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어둠은 단지 빛이 없는 상태일 뿐이다. 물론 어둠은 없다. 존재하는 유일하나 것은 ‘신’ 또는 ‘하나’이다. 그러나 빛의 원천이 어둠속에서 점차 사그라지듯, 어느 지점에서는 신의 빛이 미치는 범위 역시 한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플로티노스에 따르면 질료는 본래 존재가 없는 어둠인 반면에, ‘하나’의 빛은 영혼을 비추고 있으며 자연 속의 형상들도 이 ‘하나’를 반영하고 있다....인간의 영혼은 ‘불꽃의 불씨’이다. 하지만 자연 어디에서나 신성한 빛의 일부가 비치고 있다. 우리는 모든 생물에게서 그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한 송이 장미나 초롱꽃조차 그와 같은 신적인 광휘를 지니고 있다. 그에 비해 흙과 물과 돌은 살아있는 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내 말은 우리가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만물 속에 성스러운 신비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영혼 속에서 신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다. 우리는 오로지 영혼 소에서 거대한 인생의 비밀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순간에 우리 자신을 이와 같이 성스럽고 신비로운 것으로 체험할 수 있다.

플로티노스가 영혼을 한 줄기 불꽃에 비유하는 것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생각하게 한다. 동굴 입구에 우리가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모든 존재의 근원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나 플라톤이 현실을 날카롭게 둘로 나눈 것과는 달리, 플로티노스가 보여준 사고의 과정은 전체성의 체험을 특징으로 한다. 모든 것은 하나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신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동굴 안에서 어른거리는 그림자조차도 플로티노스에게는 신적인 ‘하나’의 흐릿한 반영이었다. 플로티노스가 자기의 영혼이 신과 융합된 것을 체험한 것은 일생동안 몇 번밖에 되지 않았다. 이를 가리켜 신비적 체험이라고 한다. 201

신비적 체험은 사람이 신이나 ‘세계 영혼’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뜻한다. 많은 종교는 신과 인간 사이에 심연이 있어서 양자를 갈라놓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신비주의자는 이러한 심연을 체험하지 않고 남자든 여자든 신에 ‘동화’되는 경험을 몸소 겪는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본래의 자아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어떤 짧은 순간에 우리 자신이 하나의 더 큰 자아와 동일하다는 체험을 할 수 있다...신비주의자는 마치 바다로 섞이면서 물방울이 스스로를 잃어버리듯 망아탈혼의 경지를 체험함으로써, 자기를 잃고 신의 내부로 사라지거나 없어진다고 했다. 이를 가리켜 인도의 한 신비주의자는 “내가 존재했을 때는 신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신이 존재하고, 더 이상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기독교 신비주의자인 안젤루스 실레우스는 “물방울이 바다로 흘러들면 바다가 된다. 영혼이 신의 영접을 받으면 신이 된다.”고 말했다.

지금 ‘자기를 잃는다.’는 말이 너에게 별로 달갑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 소피 네가 여기서 얻는 것에 비하면 네가 잃는 것은 무한히 적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 네가 지니고 있는 모습을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너는 실제로는 무한히 더 큰 어떤 것이 되는 것이다. 이제 네가 전체 우주다. 그렇다. 네가 세계 영혼이며 신이다...어차피 언젠가는 이 ‘일상의 자아’를 떠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네게 위로가 될 것이다. 너의 참된 자아는 오직 네가 스스로를 벗어날 수 있을 때만 체험할 수 있는 것인데, 신비주의자들은 그것을 영원히 타오르는 놀라운 불로 여긴다....신비주의자는 신을 만나기 위해 종종 ‘정화와 순화의 길’을 걸어야 한다. 이 길은 간소하게 생활하면서 명상하는 것이다. 신비주의자는 이 길을 가다 어느 순간 뜻을 이루어 “나는 신이다.” 혹은 “나는 너이다!”하고 탄성을 지를 수 있다 203

신비주의자가 자기의 신비적 체험을 종교나 철학적으로 해석하려 할 때, 비로소 문화적인 배경이 두드러지게 된다. 서양의 신비주의 즉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는 개인적인 신과 만나는 체험을 중요시한다. 신이 자연과 인간의 영혼 속에 존재하지만, 또한 이 세계를 높이 초월해 있다. 신이 자연과 인간의 영혼 속에 존재하지만, 또한 이 세계를 높이 초월해 있다. 동양의 신비주의에서는 즉 힌두교, 불교, 중국의 종교에서는 신이나 ‘세계 영혼’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경지를 체험하는 것을 숭상한다. 예의 신비주의자는 “나는 세계의 영혼이다.” 혹은 “나는 신이다.”하고 말할 수 있다. 신은 이 세계에 임재할 뿐 아니라, 또 그 밖에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에서는 플라톤이 등장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여러 신비주의적 흐름이 있었다. 힌두교 사상을 서양에 전하는 데 기여한 스와미 비베카난다는 “어떤 종교에서는 자기만 믿고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무신론자라고 부르듯이, 우리는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무신론자라고 말한다. 자기 영혼이 숭고함을 믿지 않는 것을 우리는 무신론이라고 말한다.”하고 표현했다 204

라다크리슈난, “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 네가 바로 네 이웃이기 때문+이다. 네 이웃이 네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204

나는 세계다!! 여태까지 두렵고 헤아리기 어렵던 우주가 바로 소피 자신이었다. 소피는 이제 이 거대하과 위풍 당당한 우주만큼 커졌다...그 순간에 소피의 내면에 있던 무엇이 이마로 솟구쳐 나와 다른 모든 것과 융합되는 거 같았다 205

우편 엽서 _ 나는 나 자신에게 엄격한 검열을 받고 있다

철학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잠시 잊고 쉬게 돼서 홀가분했다 208

너도 알다시피 무엇이든 점점 커지면 혼자만 간직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214

레바논에서 소인이 찍히는 그 순간, 이 엽서들이 이 곳 거울 속에서 특 떨어졌단 말은 아니겠지?

놀란 새들이 포르르 날아 올랐다 216

두 문화권 _ 그래야만 네가 빈 공간에 둥둥 떠다니지 않게 될 것이다

인도 게르만 인세계를 선한 힘과 악한 힘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싸움을 벌이는 드라마로 파악하였다. 이것은 인도 게르만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세계관이다. 그러므로 인도 게르만 인은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되는지를 ‘예언’하려고도 했다...인도 게르만 인은 세상 이치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얻고자 했다 222

인도 게르만 인은 주기적 역사관을 가졌다...역사에는 시작도 종말도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는 영원한 변화속에서 생성하고 소멸하는 다양한 세계의 이야기가 존재할 뿐이다. 두 가지 위대한 동양의 종교(힌두교와 불교)는 인도 게르만 문화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 철학에도 마찬가지고 적용된다. 우리는 한편으론 힌두교와 불교와, 다른 한편으론 그리스 철학 사이에 분명한 유사성을 발견한다. 오늘날에도 힌두교과 불교는 철학적인 성찰에 중점을 두는 명백한 특징을 지닌다 223

힌두교와 불교에서는 만물에 신성이 존재하고(범신론) 종교적인 통찰을 통해 인간이 신과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종종 강조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대체로 엄격한 자기 성찰과 명상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동방에서는 소극적 태도와 은둔이 종교적 이상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그밖에도 인도 게르만 문화에서는 영혼의 윤회에 대한 믿음에 큰 의미를 두었고, 힌두교에서는 언젠가 윤회를 면하는 것이 모든 신자의 목표였다. 플라톤이 영혼의 윤회를 믿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도 알고 있는 얘기지 224

셈족.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셈족 문화를 배경으로 한다. 유일신. 역사를 ‘처음과 끝을 갖는’ 선으로 이해하는 직선적인 역사관...세 가지 위대한 서양 종교가 보여주는 중요한 종교적 특징은 바로 역사의 역할이다. 즉 역사에 신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단지 신이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유일신, 즉 하느님이 인간의 삶을 ‘최후의 심판’에 이를 때까지 역사를 통해 인도한다는 것이지. 그러고 나서 세계의 모든 악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셈족은 역사 속에 나타나는 신의 행위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수천년 전부터 역사 서술에 몰두하였다. 그래서 역사적 뿌리를 추구하는 것이 그들의 종교 경전의 중심을 이룬다 226

네가 조금씩 그 관련성을 예감하고 있다면 그 예감이 맞다. 그렇다고 다른 경우에도 사건의 경과를 미리 앞질러 예측해서는 안 된다 226

인도 게르만 인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이 바로 시각이라고 했는데 셈족 문화권에서는 청각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226

동양의 종교와는 반대로 서양 종교는 신과 신의 창조물 사이에 하나의 넘을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음을 강조한다. 구원이란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밖에도 종교 생활은 자기 성찰과 명상보다는 기도와 설교, 교리에 중점을 둔다 227

유대인들은 물음을 던졌다. 왜 다윗 왕국이 멸망하고 유대인이 오랫동안 불행을 겪게 되었을까? 분명히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겠노라 약속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역시 하느님의 명령을 지키겠노라 서약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이 벌을 내린 것이라는 견해가 결국에는 널리 퍼지게 되었다 229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 왕 치하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스런 상황에 처했을 때, 예언자들은 다윗의 족속에서 새로운 왕이 출현할 것을 예언했다. 즉 메시아 또는 하느님의 아들이 그 백성을 구원하고, 이스라엘은 다시 위대한 힘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예언을 ‘救贖의 예언’이라고 한다 229

예수는 자신이 어떤 군사 및 정치 지도자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자신을 메시아라고 내세웠던 다른 모든 사람과 구별된다. 예수의 사명은 훨씬 더 큰 것으로 모든 인간에게 구원과 하느님의 죄 사함을 알리는 것이었다. 예수는 사람들 사이를 다니면서 “하느님이 너의 죄를 용서하셨다.”고 말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일찍이 들어 보지 못한 말이었다. 오래지 않아 율법학자들 사이에 예수에 대한 반감이 싹텄으며, 결국 그들은 예수를 처형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231

예수는 비범한 방식으로 그 시대의 언어를 사용하여 낡은 상투어에 대단히 새롭고 큰 뜻을 붙였다. 그가 십자가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의 급진적인 구원의 가르침은 많은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협했으며, 그 결과 그는 이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232

예수는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벌을 면하게 하기 위해 인간의 모든 죄를 떠맡았던 ‘고난 받는 종’이었다 233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의 마음이 신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236 ★★★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구약’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예수가 맺은 ‘신약’으로 바뀌었다 237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 그 자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삶을 살았고, 실제로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한 ‘진정한 인간’이었다. 그것은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교회의 복음은 바로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半神이 아니다. 그러한 반신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와 헬레니즘 종교에서 아주 보편화해 있었다. 교회는 예수가 ‘완벽한 신이요, 완벽한 인간’이라고 가르친다 238

지난 삼천 년의 세월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깨달음도 없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리. 괴테

네 역사의 뿌리를 알 수 있을 때만 너는 인간이 될 것이다. 그럴 때만 너는 벌거벗은 원숭이 이상의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럴 때만 너는 빈 공간을 둥둥 떠다니지 않게 될 것이다 239

소피는 이 지구에서 잠시 살다 가는 인간일 뿐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소피 자신의 역사이기도 하다면, 소피는 어떤 면에서는 수천 살을 먹은 셈이다 239

제2부

중세 _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방황하는 것과는 다르다..

소피가 흘려 보내는 한 주나 두 주는 우리가 보내는 한 주나 두주와 똑같은 시간이 아니란다 244

소피는 가끔 엄마가 홀로 집에 있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248

4세기에 로마는 한편서는 북쪽에서 밀어 닥치는 이민족들의 위협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부적인 붕괴의 위협에 직면한다. 33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의 수도를 황제 자신이 흑해 입구에 새로이 건설한 콘스탄티노플로 옮겼다. 이 도시는 이 때부터 ‘제2의 로마’라고 불렸다. 395년에 로마 제국은 동∙서로 분열되었다. 서로마 제국의 수도는 로마였고, 동로마 제국의 수도는 새로이 건설된 콘스탄티노플이었다. 서로마는 476년에, 동로마제국은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이 터키 인들의 손에 함락될 때까지 존속했다 252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또 다른 연대는 529년이다. 플라톤이 아테네에 세웠던 아카데미아가 이 해에 문을 닫았다. 같은 해에 베네딕트 수도회가 창설되었지...529년은 어떻게 기독교가 그리스 철학 위에 덮개를 씌우고 그 세력권을 넓혀 갔는지 상징하는 해지 252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중세를 고대 문화와 르네상스 사이에서 유럽을 뒤엎었던 ‘천년의 암흑 시대’로 여겼다. 지금도 우리는 권위적이고 경직된 것을 가리켜 ‘중세적’이라고 하지만 중세를 ‘천년의 성장시대’로 간주하는 사람도 많다. 예를 들자면 중세에 이르러 학교 제도가 생겨났다. 12세기에는 성당 부속학교가 생겨났고, 1200년경에 최초로 대학이 창설되었다. 오늘날에도 대학은 중세 때처럼 다양한 학부와 학과로 나뉘어 있다 252

중세라고 부르는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노르웨이, 영국, 독일과 같은 이름의 나라들을 가능하게 한 민족적 동질성의 토대가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었다 253

우리가 강조해야 할 점은 기독교가 결국 유일 무이한 지배적 세계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254

고대 로마 제국은 차차 서로 다른 세 문화권으로 나뉘어 졌다. 서유럽에 라틴어를 쓰는 기독교 문화권이 로마를 수도로 생겨나고, 동유럽에선 그리스어를 사용하며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하는 그리스 정교 문화권이 자리를 잡았지. 이 콘스탄티노플은 비잔티움이라는 그리스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로마 카톨릭의 중세’와 구별해서 ‘비잔틴의 중세’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반면에 로마 제국에 속했던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은 중세에 아랍어를 쓰는 회교 문화권으로 발전했다 255

그리스 로마 문화가 한편에서는 서쪽의 로마 카톨릭 문화를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동로마 문화를 통해 그리고 남쪽에서는 아랍 문화를 통해 각기 달리 전승된 것 역시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경향은 있지만, 신플라톤주의는 서유럽(아우구스티누스?)에서, 플라톤은 동유럽에서,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쪽의 아랍인들을 통해 전승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중세 말엽에 북이탈리아에서 이 세 지류가 거대한 하나의 물줄기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그리스와 비잔틴 제국은 그리스 문화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가 막을 열었다. 이제 고대 문화가 ‘재탄생’한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고대 문화가 그 긴 중세 시대에 줄곧 살아 있었던거야 256

‘당신은 누구신데 내 생활 한가운데로 불쑥 파고들었지요?’

소피의 심중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 수도사는 말했다.

“앞으로 우리는 훨씬 더 친해질거야....”

중세 철학자들은 지독교가 진리라는 사실은 거의 기정 사실로 받아들였다. 문제는 기독교의 계시를 무조건 믿을 것인지, 아니면 이성적 사유 역시 기독교적 진리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하는 것이었다. 또 그리스 철학과 성서의 관계는 어떤가? 성서와 이성 사이에 모순이 없나? 믿음과 인식은 서로 일치하나? 중세 철학의 거의 대부분은 이런 문제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257

중세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 아우구스티누수 vs 아퀴나스

아우구스티누스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작은 도시 타카스테에서 태어나 열여섯 살 때 카르타고로 가서 공부했다. 그 뒤 로마와 밀라노를 방문하였고 히포라는 곳에서 주교로 재직하며 말년을 보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처음부터 기독교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는 여러 가지 종교와 철학적 흐름(고대 마니교-스토아 철학 - 신플라톤 학파)을 몸소 익히고 체험했다...신 플라톤 학파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았다. 여기서 그는 ‘모든 존재자는 신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접하게 된다...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 사상은 플라톤 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중세의 기독교에 발을 들여놓는다고, 그리스의 철학과 극단적인 단절을 하게 되는 건 아니란다. 그리스 철학에서 비롯된 많은 것들을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교부가 새로이 중세 시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50%는 기독교도고, 50%는 신플라톤주의자란 말씀인가요?

그 자신은 물론 100% 기독교도라고 말했겠지. 그러나 그는 기독교와 플라톤의 철학 사이에는 아무런 심각한 모순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플라톤 철학과 기독교 교리 사이의 일치점이 너무도 분명해서, 혹시 플라톤이 구약 성서의 일부라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자문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을 기독교화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이성이 종교 문제에 미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했단다. 기독교는 우리가 믿음을 통해서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신성한 신비이기도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믿음을 가질 때 하느님은 우리 영혼을 ‘밝히고’, 우린 하느님에 대한 일종의 초자연적 인식을 얻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철학이 삶의 모든 문제에 완벽한 대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체험했던 사람이다. 그는 기독교도가 되고 나서야 영혼의 안식을 찾았다. 그리고 그는 ‘주님 안에서 평안을 찾기까지 우리의 영혼은 불안합니다’라고 말했지 259 _ 설사 그렇다해도 어찌 철학없이 인생을 감당해나갈 수 있겠는가? 종교는 다음 문제다. 일단 가던 길을 계속 가보도록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이 세계를 창조하였고, ‘이데아’란 하느님의 생각안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영원한 이데아를 하느님에게 귀속시켰고, 이를 통해 영원한 이데아라는 플라톤적 관념을 구해낸 것이다. 그것은 또 아우구스티누스와 다른 교부들이 그리스와 유대의 사상을 합일하려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나타내주고 있다...그는 플로티노스와 마찬가지로 악을 신의 不在에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악은 어떠한 자립적 존재도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창조물은 모두 선하기 때문이다. 그는 악은 인간이 순종하지 않는데서 생긴다고 했다. 또 ‘선한 의지’는‘신의 역사’이며, ‘악한 의지’는 ‘하느님의 역사에서 이탈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지 260 _ 조화되지 모순은 없나부다. ^^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어떤 인간도 하느님의 구원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저주에서 구원받을 몇 사람을 선택하셨다. 따라서 그에겐 누가 구원받고 누가 저주받았는지 비밀로 감추어져 있지 않다. 그것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손에 쥐어진 찰흙과도 같이 전적으로 그분의 은총에 매여 있다...그렇다고 그가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 우리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면제해 주지도 않았다. 그는 권하기를, 우리가 스스로의 삶 속에서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에 속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미리 알 수 있다 202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를 ‘하느님의 나라’와 ‘현세의 국가’가 싸우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두 나라는 정확하게 분리된 국가가 아니다. 그들은 각 개인 속에서 주도권을 놓고 다툰다. 그러나 대체로 볼 때, 하느님의 나라는 교회 안에서 더 분명한 형태로 존재하며 현세 국가는 지상(교회 밖)에서 정치적 형태로 존재하는데, 아우구스티누스 생시에 붕괴되기 시작한 로마 제국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역사관은 중세 전체에 걸쳐 교회와 국가가 권력을 놓고 싸움에 따라 점점 더 분명해졌다. 그리고 이제 ‘교회 밖에서는 어떤 구원도 없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급기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느님의 나라가 조직으로서의 교회와 동일시되기에 이르렀다(교조화?) 263

아우구스티누스가 역사를 철학의 영역에 끌어들인 최초의 철학자라는 점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선과 악의 투쟁을 가정한 것 자체는 절대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새로운 점은 이러한 투쟁이 역사 속에서 전개된다고 본 것이다 _ 내면세계가 외재화된다는 관점을 대중화시켰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철학은 한 개인의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역사를 진행해가기 위해서, 바꾸어 말하면 개인의 삶을 해석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역사를 해석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툴임이 분명하다. ‘완벽’을 기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치더라도 충분히.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이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는 과정을 총체적인 역사라고 했지. 곧 역사는 인간을 교육하고 악을 파괴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263

중세 전성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는 토마스 아퀴나스다. 그는 1225년에서 1274년까지 살았다. 로마와 나폴리 사이에 있는 작은 도시 아퀴노에서 태어났고, 파리에서 대학 강사로 일했다. 내가 그를 ‘철학자’라고 불렀지만 신학자이기도 하다. 아퀴나스는 중세 초기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을 기독교화시켰듯, 아리스토텔레스를 ‘기독교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265

두 사람의 위대한 그리스 철학자를 기독교화 시켰다는 것은 더 이상 기독교에 위협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 두 철학자를 이해하고 해석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뜻에서 사람들은 아퀴나스가 ‘투우의 두 뿔을 꽉 잡았다’고들 말한다...믿음과 인식 사이에 훌륭한 종합을 이루어 냈다고 할 수 있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그의 개념들을 받아 들임으로써 이 종합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다 265 _ 프리초프 카프라가 과학과 철학을 종합한 것과 비견되는 걸까?

아퀴나스는 철학이나 이성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과, 기독교의 계시나 믿음이 이야기해주는 것 사이에 피할 수 없는 모순이 있으리라곤 절대로 믿지 않았다. 기독교와 철학은 종종 똑같은 것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성의 도움을 빌려서도 성서적 진리들을 탐구할 수 있다...그는 신에게 이르는 길이 둘이라고 믿었다. 하나는 믿음과 계시를 통한 길이며, 또 하나는 이성과 감각을 통한 길이다. 두 길 중에서 믿음과 계시를 통한 길이 더욱 안전한 길인데..이유는 인간이 단지 이성에만 의지할 땐 쉽게 혼돈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기독교의 교리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사이에 전혀 모순이 없음을 강조했다 266

아퀴나스는 진리는 하나뿐이라는 것을 밝히려고 했다. 이성의 힘으로 올바른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기독교의 교리와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진리의 한 부분을 이성과 관찰로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가 식물계와 동물계에 대해 말하는 것이 그런 종류의 진리다. 진리의 다른 부분은 성서가 밝혀 주는데, 이 두 부분은 여러 가지 중요한 점에서 서로 겹쳐 있어서 성서와 이성이 똑같이 정확하게 대답해줄 수 있는 몇몇 문제도 있지 267

아퀴나스는 앞으로 더욱 생각을 진척시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이성을 토대로 하느님의 실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하느님은 성서와 이성을 통해 자신을 계시했다. 따라서 신학 역시 계시 신학과 자연 신학이 있는 것이다 268

우리가 장님이라고 해도 천둥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 또 귀머거리라고 해도 비가 내리는 것을 볼 수는 있다. 당연히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으면 가장 좋은 경우겠지. 그러나 어떻든 우리가 보는 것과 듣는 것 사이엔 서로 모순이 되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지. 오히려 두 감각이 서로 도와서 인상을 더욱 뚜렷하게 해 준다 269 ★

우리가 자연을 두루 살펴보면 하느님이 계시다는 건 알 수 있지. 그리고 하느님이 꽃과 동물을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을거야. 그렇지 않다면 하느님은 그것들을 만들지 않았을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지식은 하느님의 자서전인 성서를 읽어야 알 수 있다 270

천사는 인간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알기 위해 우리 인간처럼 단계적으로 앞을 더듬어 나갈 필요가 없다. 천사에겐 육체가 없기 때문에 절대로 죽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천사 역시 일찍이 하느님이 만든 것이므로 하느님처럼 영원하지는 않다 271

아퀴나스는 유감스럽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상을 그대로 전수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여성을 일종의 불완전한 남자로 여겼다는 말 기억하고 있지? 그는 아이가 아버지의 특성만을 물려받는다고 믿었다. 여성은 소극적으로 형상을 부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밖에도 아퀴나스가 자연적 존재로서의 여성을 존재의 위계질서에서 남성보다 아래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도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성의 영혼은 남성의 영혼과 똑같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하늘 나라에는 육체적인 성의 차이가 없으므로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이다 272

중세의 교회는 남자들이 강력하게 독점하고 있었단다. 그렇다고 여성 사상가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여성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이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다...그녀는 수녀였는데, 1098년부터 1179년 독일의 라인란트에서 살았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전도사, 작가, 의사, 식물학자, 과학자로 일했지. 중세에 때때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실제적이며, 과학적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기독교와 유대교에 하느님이 단지 남성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동시에 여성적인 면이나 ‘모성 기질’도 지녔다는 오래된 관념이 있었지. 왜냐하면 여자도 하느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으니까 말이다. 하느님의 여성적인 면모를 가리켜 그리스 어로 소피아라고 부른단다. ‘소피아’ 또는 ‘소피’는 지혜를 뜻한다...하느님의 모성적 면모를 지닌 ‘소피아’ 여신이 중세 내내 유대인들과 그리스 정교에서는 일정할 역할을 해냈지만, 서유럽게선 잊혀지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 등장했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환상 속에서 여신 소피아의 환영이 자기에게 나타났다고 이야기했다 273 ★_ 책 제목을 굳이 ‘소피’의 세계라고 한 이유는 뭘까? 작가가 페미니스튼가? @@

르네상스 _ 오,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의 족속이여...

누구도 너한테 철학을 좋아하라고 요구하진 않아. 하지만 철학은 중요해. 철학은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를 다루고 있어 277

어차피 아무도 그런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어.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배운 적이 없잖아 278

참 이상하다. 소피가 쓰러질 만큼 피곤할 때면 언제나 그 같은 신비스런 일이 일어나다니? 279

한 세대가 늙는 동안에 또 다른 세대가 자라고 있지. 그동안에도 역사는 흐른다. 유럽의 역사를 인생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았니? 고대를 유럽의 유년기로 본다면, 긴 중세는 유럽의 학창시절이란다. 그리고 나서 이제 긴 학창시절이 끝나고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청년 유럽이 세상으로 나가게 되었다. 르네상스를 아마 유럽의 열다섯번째 생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얘야, 이제 유월 중순이구나. ‘아,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283

우리는 고작 우리가 속한 시대에만 살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자신 안에 우리의 역사를 갖고 있는 거다. 네가 지금 보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처음엔 아주 새로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우리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 세상에 보내져 여기서 서로 만나 인사를 나누곤, 잠시 함께 걷는 거란다. 그러곤 다시 헤어지고 우리가 왔을 때처럼 갑자기, 그리고 까닭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287

토마스 아퀴나스가 죽은 지 채 몇 년이 안 되어 통일된 기독교 문화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철학과 과학은 교회 신학에서 점점 더 멀리 벗어났으며, 그에 따라 종교 역시 이성과 보다 독립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제 사상가들은 결코 우리의 사유로 신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이성으로써 신에게 다가갈 수 없음을 더욱 힘주어 주장했다. 요컨대 인간이 기독교의 신비를 이해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신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이 중요하단 말이지.

이처럼 종교와 과학이 서로 더욱 독립적인 관계를 맺게 됨에 따라 새로운 과학적 방법과 종교적 내면성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15세기와 16세기에 걸친, 중대 변혁인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의 토대가 마련되었지 289

나침반, 화약, 인쇄술은 우리가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새 시대를 여는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 되었다. 나침반은 항해를 쉽게 해주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먼 거리 탐험여행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 나침반이었다. 그 밖에 화약을 중요한 것으로 꼽는데, 이 새로운 무기는 유럽인으로 하여금 아시아와 아메리카 문화를 능가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인쇄술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새로운 사상을 보급하는데 긴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교회에 빼앗긴 학문 전수권을 되찾는 데도 이바지했다 291

문화와 경제 영역에서 변화..현물경제에서 화폐경제로의 이행이 그 변화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291

르네상스는 그 무엇보다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었다. 르네상스의 인간상은 죄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속성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중세와는 뚜렷한 대조를 보여준단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을 한없이 위대하고 가치있는 존재로 간주했다.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너 자신을 인식하라, 오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의 족속이여!’하고 외쳤다 292 _ 내 자아상의 변천양상과 유사하네!! ^^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는 고대 인문주의보다 더욱 강하게 개인주의 경향을 띠었다. 우리는 인간인 동시에 유일무이한 개별자다. 이런 생각은 거의 무제한적인 천재 숭배로 이어졌다. 그 이상형은 우리가 ‘르네상스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그것은 삶과 예술과 학문의 모든 분야에 정통한 사람을 가리킨다...인간은 다시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려 하였다. 그리고 더 이상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 수치심을 갖지 않아도 되었지 293

새로운 인간상은 완전히 새로운 인생관을 낳았다. 인간은 신을 위해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신도 역시 인간을 위해서 인간을 창조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지금 여기의 삶에 대해 기뻐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자신을 자유롭게 전개시킬 수만 있다면,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모든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 이제 인간의 목표였다. 그 점이 또한 고대의 인문주의와 르네상스의 차이란다. 고대 인문주의자들은 인간이 마음의 평안과 중용 그리고 자제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지. 그렇지만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은 특별히 중용을 지키지는 않았다....모든 분야에서 유일무이한 전성기가 되었다. 그것은 미술과 건축, 문학과 음악 그리고 철학과 과학에 모두 해당하는 것이었다 293 ★★★★★

르네상스 문화 정책의 목표가 로마를 부활시키는 것..또 한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새로이 등장한 자연관이다. 인간이 지금의 삶을 고향처럼 느낀다는 것, 그리고 땅 위의 삶을 더 이상 하늘의 삶을 위한 준비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물리적 세계에 대한 전혀 새로운 태도를 함축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제 자연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신은 창조물 속에 계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은 무한하다. 따라서 신은 자연 어디에나 존재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견해를 범신론이라고 일컫는다. 중세의 철학자들은 늘 신과 피조물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있다고 했지. 그런데 이제 자연은 신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급기야는 ‘신의 자기 실현’으로까지 간주되었다. 이 새로운 사유를 교회가 언제나 호의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그 극단적인 예가 조르다노 부르노의 운명이다. 그는 신이 자연 안에 있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우주가 무한하다고 주장하다가 중벌을 받았다 295

르네상스 시대는 마녀 재판과 화형, 마법과 미신, 피비린내 나는 종교 전쟁이 있었고 무엇보다 무자비한 아메리카 대륙 정복인 감행된 시대였다. 오로지 좋은 시대 또는 나쁜 시대라고 단정지어 얘기할 수 있는 시대는 없단다. 선과 악은 두 가닥의 붉은 실처럼 전체 인류의 역사에 드리워져 종종 서로 얽히기도 한다 295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모든 기술적 발달을 위해 결정적 전제가 된 것이 새로운 과학 방법이었다. 새로운 과학벙법이란 과학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의미한다...새로운 방법은 자연을 인간 고유의 감관으로 탐구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이미 14세기 초에 낡은 권위주의에 대한 맹신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낡은 권위에는 교회의 교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도 들어간다. 게다가 단순히 형식 논리적 추론과 심사숙고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도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이성의 능력에 대한 바로 그와 같은 과장된 신뢰가 중세 전체를 지배했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자연을 근본적으로 관찰하고 경험, 실험을 바탕으로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연구 방법을 경험적 방법이라고 한다. 먼지로 뒤덮인 두루마리 책이나 몽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제의 경험을 통해서 사물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는 뜻이다...특히 강조된 것은 과학적인 관찰을 정확한 수학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17세기의 가장 중요한 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양을 잴 수 있는 것은 양을 재야하며, 양을 잴 수 없는 것은 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첫 단계는 새로운 과학적 방법이었다. 새로운 방법은 기술혁명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기술의 발달은 그 이후의 모든 새로운 발명을 가능하게 했다.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해도 좋겠지.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의 부분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었다. 자연은 인간이 사용하고 이용할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 297

프란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앎의 실제적 효용을 강조한 말인데, 그것 역시 이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사고였다. 이제 인간은 자연에 손을 대고, 지배하게 되었다 297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환경 오염과 파괴 앞에서 많은 이들은 기술 발달이 바로 자연이 우리리에게 준 삶의 조건으로부터의 위험한 일탈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낙관적인 사람들은 지금의 기술 수준이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기술 문명은 어린 시절의 병을 앓기는 하겠지만, 인간은 끝내 자연을 위험없이 지배하는 것을 배우게 되리라는 것이 이들의 예상이다. 두 주장에 다 일리가 있지. 비관론은 인간은 더 이상 자연에 개입해서는 안 다는 것이고, 낙관론은 계속 그래도 좋다는 것인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느쪽이나 중세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르네상스 이후로 인간은 단순히 신의 피조물의 한 부분이 아니라 스스로 자연에 개입해서 자신의 생각대로 자연 만들어 내는 존재가 되어있다298

케플러는 그 박에 우주의 어느 곳에서도 똑같은 물리학 법칙이 적용된다는 점을 강조했지.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가 있었지요? 그건 케플러가 고대인들이 한 말을 덮어놓고 맹신하지 않고 자신의 감관으로 생성의 운행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299

아이작 뉴턴, 1642년에서 1727년까지 살았던 사람. 우리가 태양계와 그 안의 행성들의 운동을 최종적으로 기술할 수 있게 된 것은 뉴턴의 덕분..만류인력을 공식화. 모든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가졌는데 그 힘은 물체가 클수록 세고, 서로 떨어진 거리가 멀수록 약해진다는 것 304

갈릴레이..여러 다른 힘들이 한 물체의 운동을 어떻게 조종할 수 있느냐를 보인 사람 305

모든 행성이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로 움직이는 것은 행성이 동시에 두 가지 다른 힘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태양계가 생길 때 태양에서 떨어져 나오려는 힘(원심력)에 의해 지배되는 직선운동이고, 또 하나는 중력에 의한 운동 즉 태양을 향해 가까이 가려는 힘(구심력)에 의한 운동이다 37

새로운 세계상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큰 짐. 다윈이 인간이 짐승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증명했을 때의 상황과 비교해 볼 수 있겠구나. 두 경우 모두 인간은 창조의 질서속에서 차지하고 있던 자신의 특별한 지위를 상실했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교회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308

우주 전체에 동일한 물리적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을 뉴턴이 증명했을 때, 사람들은 뉴턴이 신의 전능함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뉴턴 자신의 신앙은 그것 때문에 흔들리지는 않았다. 도리어 그는 보편적 자연 법칙을 위대하고 전능한 신의 존재에 대한 적극적 증거라고 생각했지. 그러나 이 시대의 보다 심각한 문제는 신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자기 이해에 대한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르네상스 이후로 인간은 자신이 거대한 우주에서 지구라는 우연한 행성에 산다는 사실을 당연하고 익숙한 사실로 받아들여야만 하게 되었다 308

르네상스 시대는 또한 새로운 神觀도 제시했다. 즉 교회조직과 개인의 관계보다 신과 개인의 개별 관계가 더 중요해졌지 309

루터, 인간이 하느님의 죄사함을 받기 위해 꼭 교회나 성직자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 그는 구원이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인간에게 주어지는 대가없는 은혜라고 보았다 310

루터는 인간이 원죄를 통하여 전적으로 멸망 속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오직 하느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인간은 의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의 값은 죽음이라고 성서에서 말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311

광장에 다다라서야 소피는 절박하게 필요한 순간에 10크로네를 발견한 행운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313

바로크 _ 꿈과 질적으로 같은...

전쟁과 폭력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소규모의 철학 강좌일지도 모른다 322

머릿속에서 생각이 소용돌이쳤다 322

삶이란 한 줄로 꿴, 우연들의 긴 사슬이다 326

바로크라는 명칭은 원래 ‘불규칙한 형태의 진주’를 듯하는 ‘barroco'라는 포르투칼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바로크 예술은 비교적 단순하고 조화로운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과는 달리 화려하고 대비가 풍부한 형식을 갖추었다. 17세기의 일반적 특징은 화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모순이 팽팽한 긴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한편에는 삶을 긍정하는 르네상스의 세계관이 남아 있었으나, 다른 한편에는 세계를 부정하고 종교적 은둔 생활을 고집하는 정반대의 극단적 경향이 싹텄단다. 예술에서나 실제 생활에서 화려한 삶의 전개 양상을 볼 수 있는가 하면 동시에 속세를 멀리하는 수도원 운동이 일어났지...바로크 시대의 구호로’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란 라틴어 속담. ‘오늘을 즐기라’ -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329

정치적으로 볼 때도 바로크 시대는 엄청난 대립의 시대(1618~1648, 30년 전쟁) 330

17세기의 특징은 엄청난 사회 계급의 격차...바로크의 정치 상황은 동시대의 예술, 건축 양식과 비교될 수 있다. 바로크 건축물의 네 귀퉁이가 소용돌이 무늬로 장식된 것이 많듯 정치도 암살, 음모, 책략의 소용돌이였지 330

스웨덴의 바로크 시대는 근본적으로 구스타프 3세의 죽음과 함께 끝나고 말았다. 구스타프 3세 국왕의 정치는 배년 전 루이 14세 때의 프랑스와 같은 계몽 전제 군주제였다. 구스타프 3세는 그 밖에도 프랑스실 의식과 미사 여구를 좋아했고 매우 허영심이 강했다. 더불어 그가 연극을 좋아했다는 점을 기억해라...연극은 바로크 시대에 단순한 예술 형식 이상이었다. 그것은 시대의 첫 번째 상징이었지.

무엇을 상징했는데요?

인생이지...극장에서는 하나의 환상이 무대 위에 올려졌다. 그것은 무대 위의 장면이 한갓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하여 연극은 인간의 삶의 상징이 되었다 331

셰익스피어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양 다리를 걸치고 있는 셈 332

바로크 시대의 시인들은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지 않으면, 꿈에 비유했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꿈과 질적으로 같다. 그리고 이 짧은 인생은 한 순간의 잠일뿐.’

한 텍스트 안에서 현세와 천상, 즉 이승과 저승을 그리고 있단다. 이 모두가 플라톤이 구체적인 감각 세계와 불변하는 이데아의 세계를 나누었던 것을 연상케 한다 334

바로크 시대의 철학 역시 상반되는 사고방식들이 서로 격렬하게 맞부딪치고 있음을 철학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지. 수많은 철학자들은 존재를 근본적으로 정신적 본질을 갖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런 입장을 관념론이라고 한다. 이와 맞서는 학설을 유물론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존재의 모든 현상을 구체적인 물질로 환원시키려는 철학을 뜻한다 334

관념론과 유물론은 전체 철학사에서 시종 일관 변함없이 맞서 왔지만 두 견해가 바로크 시대처럼 같은 시대에 그렇듯 극명하게 대립한 경우는 매우 드물지 335

17세기의 가장 중요한 두 명의 철학자는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337

데카르트 _ 그는 건축 현장의 낡은 재료들을 모두 없애려 하였다...

르네 데카르트는 1596년에 태어나 일평생 유럽 각지를 여러 번 여행하였지. 그는 젊은 나이에 인간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얻으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는 철학을 배우고 난 뒤에는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되었다...더불어 데카르트는 소크라테스처럼 이성만이 우리에게 분명한 인식을 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우리는 옛사람들이 책에 써 놓은 것을 무조건 믿을 수 없다. 또한 우리의 감각이 알려주는 것도 믿을 수 없다 338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데카르트까지 하나의 직선으로 이어져 있다. 이들은 모두 명백한 합리주의자들이며, 이성을 단 하나뿐인 확실한 인식의 원천으로 간주하였다. 데카르트는 폭넓은 연구 끝에 중세부터 전수된 지식을 무조건 신용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그럴 경우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스스로 철학하기를 시작하겠지요. 339 _ 지금의 나처럼!!

옳은 말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유럽여행을 결심했다...그는 오직 내면 세계에서 혹은 ‘세계라는 거대한 책 속에서’ 지식을 구하려고 했다 339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창시자...자연과 인간을 새로이 발견한 황홀한 르네상스 시대 이후, 또 다시 동시대의 사유를 서로 연관된 하나의 철학체계로 통합하려는 욕구가 생겨났다. 데카르트가 처음으로 체계를 세웠고, 그 뒤를 이어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로크와 버클리, 그리고 흄과 칸트가 등장했다 340

철학 체계 : 철학의 모든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하나의 대답을 얻으려는 철학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고대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체계 설립자가 있었고, 중세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기독교 신학 사이에 사리를 놓으려고 한 토마스 아퀴나스가 있었지. 이어서 자연과 과학, 신과 인간에 대한 낡은 생각과 새로운 생각이 뒤엉킨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17세기 들어 비로소 철학에서 다시 새로운 생각들을 하나의 철학체계로 묶으려는 시도가 있었지. 그리고 이를 해 낸 최초의 인물이 바로 데카르트다. 그는 ‘무엇이 다음 세대에 가장 중요한 철학적 과제인가’하는 문제에 첫 출발 신호를 했다...‘인식의 확실성’ ‘육체와 영혼의 관계’ 340 ★

우리 인간이 어떻게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전적으로 철학적 회의론을 표방했지...그렇지만 데카르트는 만족하지 않았다 340

물리적 세계를 점점 더 기계적으로 파악하면 할수록 육체와 영혼의 관계는 더욱 절실한 문제가 됐다...17세기에 들어 처음으로 철학자들은 영혼과 육체를 철저히 분리해서 동물이나 인간의 육체를 포함한 모든 물리적 대상을 기계적 과정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을 ‘기계적 육체’의 일부라고 할 수는 없잖니? 그게 아니라면 무엇일까? 더구나 ‘정신적인’ 것이 어떻게 기계적 과정을 움직일 수 있는지도 해명해야 겠지 341

데카르트 철학 목표는 존재의 본성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얻는 것 343

그는 자신의 철학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예전의 사유를 모두 물 속으로 던져버렸다 344

그는 자신을 생각하는 자아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 생각하는 자아가 우리가 감각으로 인지하는 물리적 세계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이해했지 345

신의 관념은 ‘마치 예술가가 자기 작품에 아로새겨 넣는 표시’라는 데카르트의 말처럼, 태어날 때 우리 마음 속에 심어져 있는 본유 관념인 것이다 346

모든 성질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성질, 즉 실존이 빠진다면 완전한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 347

명백한 ‘합리주의적’ 사고 과정. 데카르트는 소트라테스와 플라톤처럼 사유와 존재 사이엔 연관이 있다고 보았다. 어떤 것이 명석하게 생각되면 될수록 그것의 존재 역시 더욱 확실해지는 것이다 347

영혼은 의식의 능력일 뿐, 공간 가운데서 아무런 위치도 차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더 작은 부분으로 쪼개지지도 않는다. 그에 반해 물질은 부피를 가지고 공간을 차지하며 한없이 작게 쪼갤 수 있으나 의식이 없다 348

데카르트는 인간을 제외한 공간적 존재를 유물론자처럼 철저하게 기계론적으로 보았다 349

데카르트는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공간을 차지하는 이중적 존재라는 결론을 이끌어 냈지 349

데카르트의 목표는 영혼에게 삶의 지배권을 주는 일이었다 350

무엇을 모른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인식에 이르는 과정의 맨 첫 단계란다 353

소피는 어깨 위에 드리운 선생님의 팔을 느꼈다 353

스피노자 _ 신은 꼭두각시 조종자가 아니다

스피노자는 성서의 모든 내용이 철자 하나하나까지도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씌여진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했다. 그리고 우리가 성서를 읽을 때 그것이 씌어진 시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358

많은 저항 때문에 결국 스피노자는 완전히 철학에 전념하는 조용한 삶을 선택하게 되었지. 그는 안경 렌즈를 세공하는 일로 생활비를 벌었단다...그가 렌즈 세공으로 연명했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철학자들은 사람들이 새로운 관점에서 존재를 직시하도록 도와야 한다. 스피노자 철학의 근본은 사물을 영원의 관점에서 관찰하려는 바람이었다 359

스피노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연이라고 말하면서 신과 자연을 같은 것으로 보았다. 그는 존재하는 만물 속에서 신을 보았고, 신 속에서 만물의 존재를 보았다 360

철학자들은 윤리학을 인간이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루는 학문이라고 이해한다...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윤리학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으로 환원되어 버린 셈이 되었다 360

합리주의자인 스피노자는 자신의 윤리학에서 자연 법칙이 인간 생활을 조종하는 원리를 보여주면서 인간은 감정과 지각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마음의 평정을 얻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다 361

실체...어떤 것의 존재 근거, 즉 바탕에 놓여 있는 것 혹은 존재의 모태. 데카르트는 모든 것이 생각이거나 연장이라고 생각한 반면 스피노자는 실체를 이렇게 둘로 나누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일 무이한 실체가 있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거기에 귀속한다고 했다. 그는 이 ‘하나’를 간단히 실체라고 하고 때로는 ‘신’ 또는 ‘자연’이라고 불렀다 361

스피노자가 신과 자연 혹은 신과 피조물을 동일시했기 데카르트의 생각과 아주 동떨어지고, 유대교나 기독교의 교리와도 멀어진 거란다 362

스피노자가 ‘자연’이라는 말을 사용할 땐 공간적 자연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다. 실체, 신, 자연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들, 그러니까 정신적인 존재 역시 포함하는 것을 뜻한다. 데카르트가 말한 생각과 연장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지. 스피노자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신의 두 가지 성질 혹은 발현 양식을 알고 있다. 스피노자는 이런 성질을 신의 속성이라고 하였는데, 그 둘이 바로 데카르트가 말한 생각과 연장이란다. 이때 신은 생각과 연장 외에 무한히 많은 속성을 지닐 수 있지만, 우리 인간은 고작 이 두 속성을 알고 있을 뿐이다 362

꽃이나 헨리 베르케란트의 시처럼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접하는 개별 현상들은 사유와 연장이라는 속성의 다른 양상이다. 양상이란 실체나 신 또는 자연이 자기를 나타내는 특정한 방식을 뜻한다. 꽃은 연장이라는 속성의 한 양상이고, 이 꽃을 노래한 시는 사유라는 속성의 한 양상이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꽃과 시는 실체, 자연 혹은 신이라고 하는 하나의 동일한 것에 대한 두 가지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363

넌 누구냐? 넌 소피 아문젠이다. 그러나 너는 무한히 큰 무엇의 표현이기도 하다. 넌 네가 생각하거나 네가 움직인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자연이 너의 사유를 생각하고 자연이 네 안에서 움직인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문제는 어떤 렌즈를 통해 그것을 관찰하느냐에 달려있다...너 역시 전체 속에서 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란다. 얘야. 너는 소피지만 신의 몸에 달린 손가락이기도 하지? 364 _ 그렇다면 박미옥은 무엇의 표현인걸까?

스토아 철학자들도 모든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고 하지. 그 때문에 그들에겐 모든 사건을 ‘동요하지 않는 평정’을 갖고 대하는 것이 정말 중요했단다. 인간은 자기 감정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간단히 이해하자면 그것이 스피노자 윤리학이 말하고 있는 점이다...간단히 삼만 년 전에 살던 석기 시대 소년 얘기를 다시 하자. 그 소년이 자라면 동물에게 창을 던지고, 자식을 낳아 줄 여자를 사랑하겠지. 그 밖에도 그가 자기 종족의 신을 숭배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거야. 그런데 너는 어떤 의미에서 소년이 모든 일을 혼자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거니. 아니면 아프리카에 사는 사자를 상상해 보아라. 그 사자가 스스로 육식 동물로 살기로 결정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 그래서 무력한 영양을 덮치는 걸까? 사자가 채식주의자로 사는 게 더 좋다고 결정했더라면 어땠을까? 사자는 제 본성에 따라 사는 거다. 바로 자연 법칙에 따라 살지. 너도 그렇단다. 소피야. 너 역시 자연이기 때문이다 365

갓난 아기를 생각해 봐라. 아기는 소리치고 움직인다. 그리고 젖을 주지 않으면 바로 손가락을 빤다. 이런 젖먹이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겠니? 이 어린 것이 언제 자유 의지를 갖게 될까? 두 살배기 아이는 근처를 헤집고 돌아다니며, 아무 생각없이 눈에 띄는 것은 모조리 가리킨다. 세 살이 되면 칭얼거리며 쏘다니고, 네 살이 되면 갑자기 어둠을 무서워한다. 어디에 자유 의지가 있다는 거냐...열 다섯 살이 되면 거울 앞에 서서 화장을 해 보겠지. 이 때쯤 혼자서 결정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까?...그 아이가 바로 너고, 이는 확실하다. 하지만 그 소녀는 자연의 법칙을 따라 살고 있지. 중요한 사실은 소녀가 하는 모든 행동 뒤에 엄청나게 복잡하고 많은 원인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그것을 통찰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똑 같은 나무 두 그루가 커다란 정원에서 자라고 있다. 한 나무는 양지 바르고 물기와 양분이 많은 땅에 있고, 다른 한 나무는 좋지 않은 땅의 응달에 있다. 둘 중 어떤 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겠니?

물론 성장이 좋은 조건을 가진 나무겠죠.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 나무는 자유롭다. 그것은 자기의 가능성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과나무라면, 그 나무는 사과나 자두 가운데서 아무것이나 원하는 대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갖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직 사과 열매만을 맺을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정치적 상황이 우리의 성장과 인격적 발달을 저해할 수도 있다. 또한 어떤 다른 외적인 강제가 우리를 억압할 수도 있다. 오직 우리가 우리안의 가능성을 자유롭게 발전시킬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우리 역시 내부의 소질과 외부 조건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라인란트의 석기 시대 소년이나, 아프리카의 사자나 정원의 사과나무와 다를 바 없다 367 ★★★ _ 그러나 내가 그들과 다른 것은 스스로 외부 조건을 조율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스스로 양지바른 곳을 찾아갈 수 있는 능력 아닐까? 작가로서의 자아가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자. 그렇게 나의 가능성을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건강한 에너지는 내 가족에게 그들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기름진 토양으로 기능할 수 있는 거다. 그렇게 서로 상생해 나가는 거다.

스피노자는 오직 하나의 존재만이 철저히 자기 원인으로서 완전한 자유 속에서 행동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신이나 자연만이 이처럼 자유롭고 ‘필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은 외부의 강제 없이 살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할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자유 의지’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육체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우리의 육체는 연장(물체)라는 속성의 한 양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선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유로운 영혼이 없는 존재다. 그것은 기계적인 육체 안에 갇혀 있단다...명예욕이나 탐욕과 같은 인간의 열정이 진정한 행복과 조화를 방해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필연에서 생기는 것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자연 전체에 대한 직관적인 인식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것이 하나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체험할 수 있다. 우리의 목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368 ★★★★ _ 지금 내 머릿속의 생각의 방식, 철저히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인상이다. 점점 더 흥미 진진해지는 철학 여행!!! ^^

로크 _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기 전의 텅 빈 칠판처럼...

합리주의자는 이성을 지식의 원천이라고 믿고 있지. 그는 종종 인간의 선천적 관념을, 즉 그때그때의 경험과는 무관하게 인간에게 내재해 있는 본유 관념을 믿고 있다...이 같은 합리주의적 사유는 17세기 철학의 전형이지만 그 주장은 중세에도 널리 퍼져 있었고, 또한 우린 그것을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에게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상은 18세기에 들어 점점 더 심한 비판에 처하게 되었다. 상당수의 철학자들이, 우리가 감각으로 경험하지 못하는 한 아무런 의식 내용도 갖지 못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와 같은 생각을 경험주의라고 생각한다 377

가장 중요한 경험주의자 혹은 경험 철학자는 로크와 버클리와 흄이다. 모두 영국 사람이지. 17세기의 주도적인 합리주의자들은 프랑스의 테카르트, 네덜란드의 스피노자, 독일의 라이프니츠였다 377

경험주의자는 세계에 대한 모든 지식의 근거를, 감각이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것에서 찾는다 377

영국의 경험주의자들은 인간의 모든 관념이 참된 경험을 통해 증명될 수 있는지 탐구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378

영국인 존 로크, 1632년에서 1704년까지 살았다. 1960년 발간한 저서 <인간 오성론>에서 ‘인간은 자기의 생각과 관념을 어디로부터 얻는가’, ‘우리의 감각이 전달해주는 것을 신뢰할 수 있는가’ 두 질문에 대답해보려고 했지 379

로크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표상은 우리가 이미 얻는 감각 인상에 대한 반성을 통해 생긴 것이라 확신하였다. 우리가 어떤 것을 감각하기 전의 우리 의식은 ‘아무것도 쓰지 않은 칠판’과 같다는 것이다 379

서두르는 것은 참된 철학자에게 금지된 유일한 사항이다 381

로크는 사상의 자유와 관용을 옹호하였다. 그 밖에도 남녀 평등권을 역설하였다. 여성의 종속적인 사회적 지위는 인간이 만들어 낸 모순이므로 인간의 힘으로 이러한 불평등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로크는 근대 철학사에서 최초로 남녀의 성 역할 문제를 다루었다 383 ★

로크는 매우 일찍이 많은 자유주의 사상을 표명하였는데, 그것은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383

흄 _ 그 책을 불속에 던져 버려라

흄, 1711년부터 1776년까지, 흄의 철학은 가장 중요한 경험 철학으로 간주되며 임마누엘 칸트에게 철학적 영감을 준 점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 385

흄의 부모는 그가 법률가가 되기를 원했지. 하지만 흄 자신은 ‘철학과 보편적인 학문’ 외의 다른 것엔 억제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낀다고 고집했지. 그래서 그는 프랑스의 위대한 사상가 볼테르와 루소처럼 계몽주의 시대를 살면서 유럽을 두루 여행하고, 다시 에든버러에 정착했다 386

제가 고유의 철학을 구상해낸다면, 이제껏 들어 온 철학과는 아주 다른 양상일 거예요...우선, 지금까지 선생님이 말씀하신 철학자들은 모두 남자예요. 남자들은 그들 고유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제 관심은 실제 세계에 있어요. 태어나서 자라는 꽃과 아이들의 세계 말이에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철학자들은 부단히 인간에 대해 언급하고, 계속 인간 본성에 관한 논문을 썼지요. 한데 그들이 언급한 인간은 모두 중년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삶이란 임신과 출산으로 시작되는데, 지금까지는 그들의 철학 세계 속에는 아이 기저귀와 빽빽거리는 울음 소리가 없었어요. 또 어쩌면 사랑과 우정이 적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386 ★★★★★★★

흄은 일상적인 세계를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흄은 또한 새로운 세계 시민인 어린이가 세계를 어떻게 체험하는지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흄은 경험론자로, 네 말처럼 그때까지의 남자 철학자들이 고안한 불명확한 개념과 사고 구조를 모조리 없애는 것을 자기의 과제라고 생각했지...흄은 어떤 철학도 우리를 일상적 경험과 배치되는 것으로 인도할 수 없으며, 또한 우리가 일상의 삶에 대한 반성을 통해 얻은 것과 다른 어떤 행위 규범들을 제시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387 ★★★

흄은 아직 의식 속에 사유와 반성이 자리잡지 않은 어린애가 세계를 어떻게 체험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고자 했다...흄은 제일 먼저 인간이 한편으로는 ‘인상’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는 인상이란 외부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감각이고, 그러한 인상에 대한 기억이 바로 관념이라고 했다 388

흄은 현실 속에서는 그에 대응하는 복합적 사물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떤 관념들을 합성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거짓된 사물의 관념이 생겨난다 389 _ 완벽한 엄마라는 말도 그런 관념 아닐까?

흄은 인간의 관념을 분석하는 비판적인 방법을 수립했는데, 그는 이 방법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관념을 정리하고자 했다.390

우리는 단순한 인상을 경험하지요. 그런데 모든 단순한 인상을 한데 이어 붙여 하나의 환상을 만들어 버리고 말았죠...흄은 인간이 꿈을 꿀 대, 우리의 환상들을 이루는 모든 재료들이 한번쯤은 단순한 인상으로 우리 의식속에 비집고 들어왔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391 _ 환상은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도 기능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네가 우리의 철학 강좌를 통해 한 가지만은 분명히 배우게 되길 바란다. 즉 너무 성급한 결론을 내려선 안 된다 392

먼저 ‘나’의 관념이라는 것이 단순 관념인지 복합관념인지 그것부터 알아봐야겠군요...제 느낌이 상당히 복합적임을 시인해야겠어요. 예를들면 전 무척 변덕스러워요. 또 무엇을 잘 결정하지 못해요. 게다가 저는 한 사람을 좋아하면서 싫어하기도 해요. 그러니 저의 자아 관념은 복합관념인 거죠 393

변함없는 인격적 실체가 있다는 느낌은 잘못된 관념이다. 우리의 자아 관념은 실제로는 네가 결코 동시에 체험할 수 없는 낱낱의 인상들의 긴 사슬로 이루어져 있다. 흄은 이것을 가리켜 ‘끊임없는 흐름과 운동 속에 있으며 엄청난 속도로 계속 이어지는 수많은 의식 내용들의 다발’이라고 표현했다. 우리의 의식은 일종의 극장과도 같다. 무대 위에서는 ‘수많은 의식 내용들이 뒤따라 등장하며, 왔다가 사라지고, 무수히 다양한 배열과 배치 방식에 따라 서로 서로 뒤섞인다.’ 흄에 따르면, 오고 가는 생각과 느낌들의 배후에나 근저에 숨어있는 인격적 실체 따위는 없다. 의식이란 스크린 위를 지나가는 영상과도 같다. 스크린 위의 영상은 너무도 빨리 바뀌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가 낱낱의 화면들이 모여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원래 이 그림들은 서로 연관된 것이 아니다. 즉 실제로 영화는 순간들의 총합이다 393 ★

흄처럼 인간의 의식을 분석하고 불변하는 인격적 실체를 부정했던 사람이 이미 2500년전에 지구의 반대편에 살고 있었다. 그는 석가다. 석가는 인간의 삶을 정신과 육체가 끊임없이 변해가는 과정의 연속이며, 이 과정에서 인간은 순간마다 새로워진다고 했지 394

흄은 영혼 불멸이나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모든 철학적 시도를 거부했다. 이 말은 흄이 이 두 가지를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게 아니다. 다만 종교적 믿음을 인간의 이성으로 증명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이 합리주의로 위장한 난센스라는 것이다 395

흄은 확실히 감각적으로 경험한 진리만을 받아들이고, 다른 모든 가능성을 열린 채로 놔 두었지. 그는 예수에 대한 믿음이나 기적에 대한 믿음을 반박하지 않았다 395 _ 경험한 것만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아닌 거다. 중요한 포인트!!

질문하는 것은 철학자에게 절대로 잘못된 일이 아니다 396

너와 어린 아이가, 훌륭한 마술사가 무엇을 공중에 뜨게 하는 마술을 같이 본다면, 둘 중에 누가 더 즐거워할까?...흄은 그 아기가 아직 자기 기대에 사로잡힌 노예가 되지 않겠다고 말했겠지. 따라서 어린 아이는 소피 너보다 선입견을 덜 가지고 있는 거야. 우리는 아기가 가장 위대한 철학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 아기에게는 아무런 선입견이 없으니까 말이다. 소피아, 바로 이것이 철학의 첫째 덕목이다. 아기는 세계를 있는 글대로 느끼지. 자기가 경험하는 것 이상의 사물에 얽매이는 일이 없이 말이다 398

흄은, 한 사건이 다른 사건에 이어서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의식 속에 들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우리가 ‘자연 법칙’이나 원인과 결과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실은 인간적 습관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 법칙이란 이성적인 것도 아니고 비이성적인 것도 아니다. 자연 법칙이란 그냥 있는 것이다 399

흄은 변치 않는 자연 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자연 법칙 자체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잘못된 결론을 내릴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지...내가 평생 동안 새까만 까마귀들만 본다고 해도, 그것이 하얀 까마귀가 없음을 뜻하지 않는다. 그래서 철학자나 과학자에게는 하얀 까마귀의 존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어쩌면 하얀 까마귀 사냥이 과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할 수도 있지 400

20세기의 경험주의자 ‘버틀런드 러셀’은 좀 더 섬뜩한 예. 닭 주인이 뜰을 지나가면 모이가 생긴다는 사실을 날마다 체험한 병아리라 마침내, 닭 주인이 지나가는 것과 그릇에 든 모이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는 거야. 그러던 어느날 닭 주인이 뜰을 지나와서 그 놈의 목을 비틀었다는... 401

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람들이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지 않도록 경고하는 일이야. 특히 성급한 결론은 어려가지 미신을 유발한다...학문에서 인과 관계를 연구할 때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401

흄은 윤리와 도덕에 관해서도 합리주의적 사고를 반대했다 402

흄은 모든 인간이 다른 사람의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공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거야. 그렇지만 그것은 이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 402

흄은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사실판단으로부터 윤리적 판단을 이끌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했다 403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행위해야 할 것인지 이성을 통해 논증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책임 있는 행동은 이성을 예민하게 갈고 닦음으로써가 아니라, 도리어 타인의 고통과 행복을 같이 느낄 수 있도록 우리의 감정을 예민하게 갈고 닦음으로써 가능해진다 404 _ 그래서 공감능력이 필요한 거다. 그치? ^^

홍수가 나고 전염병이 만연해서 많은 이재민이 생겼을 때, 그 사람들을 도와 줄지 말지는 우리의 감정이 정한다. 만일 그 결정을 무정하게도 ‘냉정한 이성’에 맡겨 버린다면, 우리는 어쩌면 모르는 체하고 넘어가는 것이 인구급증으로 생기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405

버클리 _ 불타는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처럼

조지 버클리는 1685년부터 1753년까지 산 아일랜드의 주교, 그는 로크, 데카르트, 스피노자가 물질 세계를 하나의 현실적 대상으로 본 점을 의심했다. 문제의 답을 얻기 위해 경험주의에 철저히 손을 뻗쳤지. 그는 말하기를, 존재하는 것은 오직 우리가 감각하는 것뿐이라고 했어. 하지만 우리는 ‘물질’ 또는 ‘실체’를 감각하는 게 아니란다. 우리는 사물을 손에 잡을 수 있는 ‘사물’로 감각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감각하는 것의 이면에 어떤 실체가 놓여 있다고 전제한다면 너무 성급한 결론을 내린거야 408

버클리는 우리의 모든 관념의 원인이 우리의 의식 밖에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원인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정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내 영혼이 내 관념의 원인일 수도 있다. 내가 꿈을 꿀 때처럼 말야. 하지만 어떤 다른 의지와 정신만이 우리 물질 세계를 이루는 관념의 원인이 될 수 있지. 모든 것은 정신에서 유래한다. 곧 ‘정신은 만물 속에서 모든 것에 작용하고, 모든 것은 정신을 통해 존재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버클리는 이 ‘정신’을 신을 염두해두고 말했다. 심지어 우리가 신의 존재를 인간의 존재보다도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409

버클리에 따르면, 신은 우리의 의식 속에 임재하면서 우리가 경험하고 의식하는 모든 관념과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주위의 전체 자연과 우리의 현존재는 신에 의존하는 거야. 신이야말로 존재하는 만물의 유일한 원인이지. 그러니까 문제는 ‘존재하느냐 않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살과 피로 된 육체가 인간의 실체냐? 우리 세계는 실제의 사물로 이루어져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단지 의식에 둘러싸여 있을 뿐일까? 버클리는 물질적 현실에만 의심을 품은 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 독립적 존재라는 말도 의심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체험 역시 우리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것일 수 있다. 우리가 체험하는 한 주나 두 주가 신에게는 한두 주의 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 410

악몽같아요. 413

비예켈리 _ 증조 할머니가 집시 여자에게서 산 요술 거울

알베르트는 늘 대작을 쓰려는 꿈을 품고 있었다. 한번은 장편소설을 쓰려고 애썼지만 아직 미완성인 채 남아 있다 417 _ 작가라면 누구나 이런 꿈을 꾸는 건가보구나.. ㅋㅋ

동시에 두 눈으로 윙크 하는 일은 제 그림자에서 빠져나오는 일 만큼이나 어려웠다 417

여자나 여성적인 것이 문제될 때 사전이란 달의 분화구처럼 침묵할 뿐이다. 어떤 남성 단체가 사전 검열을 하고 빼 버렸나보다 434

계몽주의 _ 바늘 생산에서 대포 주조에 이르기까지

소피의 세계에서 힐데의 아버지는 전능한 신인 것이다 439 _ 작품의 세계에서 작가는 전능한 신인거지.

힐데의 아버지가 모든 것을 조종한다는 걸 알게 된 지금,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지만 그들은 정말로 알고 있을까? 그들이 무엇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힐데의 아버지는 마치 그들이 무엇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만일 소피와 철학 선생님이 모든 것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정말로 알게 된다면, 그때 그들은 어떤 의미로든 마지막을 맞게 될 것이다 442

인간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자연 법칙에 휘몰린다. 하지만 철학과 과학의 퍼즐 게임의 마지막 조각을 제자리에 맞춘 뒤에도 인류의 역사는 존속할 것인가? 442

저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무지의 자각이야말로 참된 철학자의 첫째 덕목이지. 그렇게 짧은 동안에 그것을 배웠다니 자랑스럽구나!

아무것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서 두려워요.

그것은 실존적 불안이라고 하는 것인데, 한층 새로운 인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일 뿐이다 446 ★★★

아르키메데스는 그리스의 과학자였지. ‘내게 고정된 점을 다오. 그러면 지구를 움직여 보이마.’하고 말했다. 우리는 그런 점을 찾아야해. 소령의 마음 속에 있는 이 우주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말이야 449 _ 아르키메데스의 점. 멋진 표현이다!!!

그 자가 비예켈리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가 그 환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 우리는 사라지고 말거야 449

아버지가, 크녹스 선생님과 소피에게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 알지는 못했으리라는 것도 분명하다. 아마 무엇인가를 너무 빨리 쓰느라고 실수를 했는데, 그것을 다 쓰고 나서 한참 뒤에야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실수’ 덕으로 소피와 크녹스 선생님이 약간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451 _ 다 이렇게 글을 쓰는 거구나!!

로크는 신과 어떤 도덕 규범에 대한 믿음을 인간 이성의 본질적 구성 요소라고 보았지. 그런데 그것은 또 프랑스 계몽 철학의 핵심이란다 455

영국 사람의 상식은 ‘건전한 인간 이성’이라고 옮겨 풀이할 수 있고, 프랑스 사람들의 명증성은 또렷하고 명료함을 뜻한다 455

학제는 중세에 생겼고 교육학은 계몽주의 시대에 생긴 거 군요 456

계몽주의자들은 이성과 지식이 널리 보급되고 나면 인류가 커다란 진보를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것은 단지 시간문제며, 비합리성과 무지가 사라지고 계몽된 인간이 출현하리라고 생각했지. 이런 생각은 몇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유럽에서 지배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지식이 많아질수록 세상이 더 좋아지리라는 말을 무턱대로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실은 이러한 문명 비판적인 생각 역시 프랑스 계몽주의자들 자신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456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표어는 장자크 루소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자연이 선하기 때문에 인간도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는 선하다고 생각했지. 모든 나쁜 요소는 인간을 자연과 멀어지게 만드는 문명에 있다는 거야. 그래서 루소는 어린이를 될 수 있으면 오래도록 순진한 ‘자연스러운’ 상태에 있도록 놔두려고 했다. 유년기의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한 것은 계몽주의 시대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전에는 유년기를 단지 어른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고, 이미 어린이일 때부터 지상의 삶을 살고 있지 457

프랑스 계몽 철학자들은 인간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이론에만 만족하지는 않았어. 그들은 시민의 ‘자연권’을 위해 싸웠지. 무엇보다 그들은 언론의 자유를 위해 사전 검열에 반대하여 투쟁했다. 종교와 도덕, 정치의 영역에서는 개인에게 자유롭게 생각하고 견해를 표현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밖에도 그들은 또 노예 해방을 위해 싸웠고, 법을 위반한 자도 좀더 인간적으로 대우하도록 노력했다 459

이미 1787년 계몽 철학자인 콩도르세는 여성의 권리에 대한 글을 발표해 여자에게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자연권이 있음을 인정했다 459

이들은 남자와 동등한 정치적 권리 외에도 여성을 위한 새로운 결혼법을 제정하고, 생활 조건을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프랑스 혁명 기간 중에 여성의 권리를 위해 아주 열렬히 투쟁한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 올랭 드 구쥬지. 올랭 드 구쥬는 1791년, 그러니까 혁명이 시작된 지 2년 뒤에 <여성 권리 선언>을 출판했다. 프랑스 인권 선언은 여성의 자연권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장을 할애하지 않았거든. 올랭 드 구쥬는 여성에게 남성과 똑같은 권리를 줄 것을 요구했지...1793년에 처형되었다. 그리고 여성은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당했다...19세기에야 비로소 여성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났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말야. 그러자 이 운동은 서서히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460

구쥬, 마리 올랭(1748~1793), 프랑스의 여류 작가. 프랑스 혁명 중에 특히 사회 문제에 관한 수많은 책자들과 일련의 극작품들을 통해 매우 적극적으로 혁명에 참여함...루이 16세를 옹호하고 로베스피에르를 비판했다는 죄목으로 1793년에 처형당했음. <현대 여성운동의 기원> 463

제3부

칸트 _ 머리 위엔 별빛 가득한 밤하늘, 내 마음 속엔 도덕 법

이마누엘 칸트는 1724년 동프로이센의 도시인 쾨니히스베르트에서 마구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80세로 죽을 때까지 거의 평생을 그 곳에서 보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 사람이었지. 그래서 기독교에 대한 확신은 그의 철학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버클리처럼 칸트도 역시 기독교 신앙의 토대를 지키려고 했다...칸트는 또 우리가 다른 철학자 중에서는 최초의 대학교수였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전문 철학자’다. 오늘날 ‘철학자’란 말은 쉽게 두 가지 의미로 구분해서 쓴다. 철학자란 무엇보다도 철학 문제에 대해 독자적인 대답을 구하려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꼭 자기 고유의 철학을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철학의 역사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철학자라고 한다 471

합리주의자와 경험주의자는 모두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무엇을 알 수 있느냐’는 문제에 전념했다. 데카르트 이후 모든 철학자들의 공통적인 철학 과제. 그들은 두 가지 가능성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즉 세계는 우리가 지각하는 그대로인가? 아니면 우리의 이성이 파악하는 대로 존재하는가? 471

칸트는 우리가 가진 모든 지식이 감각 경험 덕분이라는 흄과 경험주의자의 생각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외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결정하는 중요한 전제 조건들이 우리의 이성에 내재한다고 함으로써 합리주의자와 손을 맞잡지. 다시 말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함께 규정하는 어떤 조건들이 우리 내면에 있다는 것이다 472 ★

네가 보는 세계는 네 외부에 있는 세계의 일부다. 그러나 네가 모든 것을 보는 방식은 안경알과도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 순간 세계가 빨갛게 보이더라도, 너는 세계 자체가 빨갛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거다 473

눈으로 보는 것은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특히 ‘시간’과 ‘공간’속의 현상으로 파악할 것이다.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사람이 지닌 ‘직관의 두 형식’이라고 했다. 이러한 두 형식은 모든 경험에 앞서서 우리의 의식속에 주어져 있다. 즉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기 전에 이미 그것이 시간과 공간 속의 현상으로 파악되리란 사실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473

시간과 공간은 무엇보다 우리 의식의 속성이지 세계의 속성은 아니란다 473 ★★★★★★

사람의 의식은 단지 외부에서 받은 감각 인상을 적는 수동적인 칠판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적으로 형성하는 기관이다. 의식 자체는 세계에 대한 우리 인식의 근본 구조를 결정한다. 아마 그것을 물병의 물과 비교할 수 있을텐데, 네가 물을 병에 부으면 물은 병과 똑같은 형상이 되지. 이처럼 감각 인상 역시 우리 직관의 형식을 따르게 된다. 칸트는 의식이 사물에 따를 뿐 아니라 사물 역시 의식에 따른다고 주장했다 475

흄에 따르면 우리가 증명할 수 없을 것이라던 그것을 칸트는 이성의 속성으로 보았지. 인과율은 언제나 절대적으로 타당하다. 왜냐하면 사람의 이성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그것을 고찰하기 때문이지 475 _ 따라서 스토리는 인과율에 따라 구성되어야 편안하게 받아들여진다.

칸트는 세계 ‘그 자체’를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없다는 점에서는 흄과 생각을 같이 한다. 우리는 세계가 나에게 어떤 것인지, 다시 말해 모든 사람에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뿐이다. 칸트가 ‘사물 자체’와 ‘우리에게 보이는 사물’을 구분한 일은 그가 철학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사물 ‘자체’가 어떤지 우리는 절대로 확실히 경험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그 사물이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만 알 수 있지. 그 대신 우리는 사물을 사람의 이성이 어떻게 파악하는지 경험하지 않고도 말할 수 있단다 475

넌 사람이니까 무조건 모든 사건의 원인을 찾을거야. 그러므로 인과율은 너를 구성하는 일부다 476

지각해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외적인 관계가 있다. 그것을 인식의 재료라고 부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론 사람 안에 자리잡은 내적 관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시간과 공간 속의 사건으로 관찰하고, 게다가 그것을 변경할 수 없는 인과율에 따른 진행과정으로 간주한다. 그것을 우리는 인식의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477

칸트는 이전 철학자들의 중대한 철학적 문제, 즉 사람은 불멸하는 영혼을 갖고 있는가? 또 유일한 신이 존재하는가? 자연은 더 쪼갤 수 없이 작은 미립자로 이루어졌는가? 그리고 우주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하는 문제들에 대해 결코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단다. 칸트는 바로 이 중대한 철학적 문제에 대한 이성이 우리 인식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 작용한다고 생각했다...이성은 언제나 전체에 대한 인식을 추구하지만, 우리 자신이 전체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까닭에, 이성은 존재 전체를 결코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없다 479 ★

세계 전체에 관계된 물음의 경우, 서로 모순되면서도 똑같이 정당하기도 하고 똑같이 부당하기도 한 한 쌍의 대답이 늘 있게 마련이다 479 _ 그러니 결국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해진다는 의미겠지!! 정답이 아닐 순 있지만 기준은 될 수 있는 거니까.

칸트는 이성도 경험도 신의 존재를 증명할 확실한 토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지. 이성으로 판단하면 신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칸트는 우리의 경험과 이성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다가 실제로 종교를 위한 자리를 남겨 놓았다. 이 자리를 바로 종교적 믿음이 채울 수있지...그러나 칸트는 이런 중대한 문제를 단순히 사람의 믿음에 내맡겨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그는 한층 더 나아가서 사람이 불멸의 영혼을 지니며, 신이 존재하고, 사람에게 자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도덕의 가능성을 위한 필수 불가결의 전제로 간주하였다 481 _ 이는 칸트의 개인적 믿음인 셈인 거지?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엇인지 인해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꽃이나 곤충을 정말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우주 전체를 이해할 수 있겠니? 484

이성과 감각이 우리에게 실제로 무엇을 설명해 줄 수 있느냐는 흄의 회의가 칸트로 하여금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여러 가지를 한번 더 철저하게 생각해 보도록 했다. 그것은 특히도덕의 영역에 해당한다 484

칸트는 모든 사람에게 도덕 영역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늘 말해주는 ‘실천 이성’이 있다고 믿었다. 이는 이성의 다른 속성과 마찬가지로 선천적이란다. 모든 사람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인과적으로 규정된 것으로 파악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은 동일한 보편적 도덕 법칙에 다가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도덕 법칙은 우리가 모든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말해 준다 485

칸트는 자신의 도덕 법칙을 ‘정언적 명령’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도덕 법칙이 정언적이라는 것이다. 즉 그것이 모든 상황에서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 밖에 그것은 강제적인 동시에 명령이고 절대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485

첫째로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따라 행하는 규칙이 모든 이에게 동시에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이기를 바랄 수 있도록 행해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일을 행할 때, 다른 사람도 모두 그와 같은 상황에서 그와 같이 행하기를 내가 바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만 너의 내부에 있는 도덕적 법칙과 일치하게 행위하는 거다. 486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언제나 목적 자체로 대해야지, 단지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우리는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 역시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486 _ 섣불리 순교자를 자처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네가 인기를 얻으려고 다른 사람과 관계한다면, 넌 도덕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너는 도덕 법칙에 대한 내적 존경에 따라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겉으로만 도덕 법칙과 일치하게 행동할 뿐일 것이다. 물론 표면적인 일치라고 해서 백안시할 것 까진 없겠지만, 도덕적 행위라고 하는 것은 자기 극복의 결과여야 한다. 네가 도덕 법칙을 따르는 것을 의무라고 여기고 무엇을 할 때에만 너는 그것을 도덕적 행위라고 얘기 할 수 있는 거다. 그래서 칸트의 철학을 종종 의무 윤리학이라고 한다 487

칸트는 올바른 태도야 말로 행위의 결과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칸트의 윤리학을 마음가짐의 윤리학이라고도 부른다 488

우리는 이성적 존재로서 세계 자체에, 즉 우리가 감각하는 것과는 무관한 세계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오로지 자기의 ‘실천 이성(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늘 말해주는)’에 따른다면, 그래서 우리가 도덕적 선택 능력을 갖는다면 오직 그 때 우리는 자유 의지를 얻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스스로 도덕 법칙에 복종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따를 법칙을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489 ★★★★★ _ 결국 칸트도 ‘마음의 북소리’를 따라야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구나.

사람은 가능한 모든 것의 노예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이기주의의 노예가 될 수도 있다. 스스로 쾌락과 악덕을 극복하는 데도 바로 독립성과 자유가 필요하지 489

철학이 합리주의자와 경험주의자가 빚은 논쟁의 혼란에서 벗어날 길을 칸트가 제시하였다 490

내가 그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새롭고 더욱 큰 경탄과 외경심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내 머리 위의 별빛 찬란한 하늘과 내 마음 속의 도덕법이다. 이것이 칸트와 그의 철학을 움직인 위대한 수수께끼다 490

네가 보는 것에 속지 말아라 491

우리는 ‘내 눈으로 직접 봐야 믿을 수 있다’고 자주 말하지. 그렇더라도 넌 네가 본 것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491

철학은 마술의 주문과는 다르다. 492

낭만주의 _ 내면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

낭만주의는 18세기 말에 시작되어 19세기 중반까지 계속 502

낭만주의는 독일에서 시작. 이성만을 편파적으로 찬미하는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지. 칸트와 그의 냉철한 이성 철학에 짓눌렸던 독일의 젊은이들이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 쉬는 듯 보였다. 그들은 이성의 자리를 감정, 환상, 체험, 동경 등으로 대체했다 503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낭만주의자들은 심지어 자신들을 칸트의 후계자로 알았지. 물론 칸트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한편으로 자아가 인식에 얼마나 중요하게 기여하는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 낭만주의에 이르러 개인이 존재의 개별적인 해석을 위한 소위 자유 통행권을 얻게 되었지. 낭만주의자들은 거의 거리김없이 자아를 찬미하였다. 그래서 낭만적 인격의 총괄 개념은 예술적 천재이기도 하다 503

베토벤의 음악에는 그의 고유 감정과 동경을 표현해 낸 베토벤이란 개인이 표현, 신의 영광을 위해 엄격한 규칙에 따라 작품들을 작곡한 바하와 헨델 같은 바로크의 거장들과는 대조적 503

르네상스와 낭만주의는 유사한 점이 많았다...그중 하나는 인간의 의식에서 예술이 갖는 의미를 강조한 것. 이 점에서도 칸트는 낭만주의의 기초를 닦은 셈. 칸트는 미학에서 우리가 아름다운 것에, 예를 들어 예술 작품에 사로잡히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연구했다. 우리가 사심없이 어떤 예술 작품을 가능한 한 집중적으로 ‘체험’하려고 예술 작품에 다가간다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즉 우리 이성의 한계를 초월하게 된다 503 ★★★

칸트에 따르면 예술가는 자신의 인식 능력을 자유로운 놀이 가운데서 발휘한다. 독일의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는 칸트의 사상을 계속 발전시켰다. 그는 예술가의 활동은 하나의 놀이이고, 놀이를 즐기는 사람만이 자유롭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자기 스스로 법칙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제 낭만주의자들은 오로지 예술만이 우리를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에 더욱 가까이 가게 해 준다고 믿었다 504

예술가는 일종의 ‘세계를 창조하는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고들 말한다. 예술가는 예술적 무아지경에서 꿈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고 말이다 504

당신이 잠을 자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자면서 꿈을 꾸면 어떻게 될까? 또 꿈 속에서 천국에 올라가 신기하고 아름다운 꽃을 꺾으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잠에서 깨어날 때 손에 그 꽃을 쥐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아, 그러면 어떻게 될까?...이처럼 먼 것과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은 낭만주의자들의 전형이었다 505

낭만주의는 무엇보다도 도시의 현상이었다. 바로 19세기 전반기에 유럽 각 지역에서, 특히 독일에서 도시 문화가 전성기를 맞았다. 전형적인 낭만주의자들은 젊은 청년들, 종종 공부에는 별로 뜻이 없는 대학생들이었지. 그들은 눈에 띄게 반시민적 성향을 띠었고, 평범한 일반인, 예를 들어 경찰이나 자기들의 셋방 주인을 ‘속물’이나 ‘적’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본다면 낭만주의 운동은 심지어 150년 후의 히피 문화와 아주 뚜렷한 유사점도 갖고 있지 506

낭만주의자는 마땅히 인생을 직접 체험해 보거나, 아예 꿈이나 공상에 잠기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일상의 일들은 고리타분한 속물들이 돌봐야 한다는 거지 506 _ 나는 ‘탈’낭만주의 한 게 틀림없네.

이들은 흔히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낭만주의자가 아니었다. 서른 살 정도에 이르면 낭만주의자 생활을 청산하는 게 일반적인 추세였지. 일부는 나중에 아주 보수적인 시민이 되기도 했다 507

1774년에 발간된 괴테의 서간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낭만적 열애의 전형 507

자연에 대한 동경과 철저한 자연 신비주의는 낭만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에 속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낭만주의는 도시의 현상이었다. 시골에서 그런 현상이 생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낭만주의 시대에 와서야 정말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낭만주의는 특히 계몽주의 시대의 기계적인 세계상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났기 때문에, 낭만주의를 가리켜 그 옛날 총체적 사유의 르네상스가 다시 도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508

낭만주의자들은 스파노자의 철학에 의존했고, 르네상스 철학자들과 플로티노스의 사상도 받아들였지. 그들이 모두 자연에서 신적 ‘자아’를 체험한 사람들이다 508

데카르트와 흄은 자아와 ‘연장’된 사물을 명확히 구분했다. 칸트 역시 인식하는 자아와 자연 자체를 명확히 분리했다. 그런데 낭만주의자들은 이제 자연을 유일한, 큰 ‘자아’라고 부르게 되었지. 그들은 ‘세계 영혼’ 혹은 ‘세계 정신’ 같은 표현도 썼다 508

가장 중요한 낭만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셸링(1775년~1854년), 전체의 자연은 사람은 물론 물리적 현실도 유일신이나 ‘세계정신’의 표현이다. 즉 ‘자연은 볼 수 있는 정신이고, 정신은 볼 수 없는 자연이다’. 우리는 도처에 자연의 질서를 잡고 구조를 갖게하는 정신을 예감하기 때문이라는 거지. 그는 물질을 일종의 정지 상태에 있는 지성으로 간주했다 509 _ 완전 동감!! 내가 세상을 해석하는 관점!!

셸링은 자연 속에서 어떤 세계 정신을 보았지만, 이 세계 정신을 사람의 의식 속에서도 보았다. 그렇게 볼 때 원래 자연과 삶의 의식은 동일한 것을 표현한 것이지 509

노발리스는 우리 내면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가 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 전 우주를 자기 안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기 내면으로 들어갈 때 세계의 비밀을 가장 잘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509 ★★

낭만주의자들에겐 철학과 자연 연구 그리고 시문학은 보다 고차원적인 통일을 지향한다. 이제 자연은 죽은 기계가 아이고 살아있는 세계 정신이므로 연구실에 앉아 영감을 받아 시를 쓰는, 꽃의 생활과 암석의 합성을 연구하든 정신과 물질은 단지 한 동전의 양면일 뿐이란다 510

노르웨이의 과학자 헨릭 슈테펜스, 자연 상태로 있는 물질을 애써 통과하려는 영원한 시도에 지친 우리는 다른 길을 선택했고, 서둘러 무한한 존재를 향해 달려간다. 즉 우리는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510 _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의 내용과 일치

낭만주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특징은 물론 신플라톤 학파의 특징도 나타내고 있다 510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1744~1803)..역사의 흐름을 정해진 목표에 따른 진행 과정의 결과로 보았다 511

계몽주의 철학자와는 반대로 헤르더는 역사의 각 시기가 완전한 고유 가치를 지니며 각 민족은 아주 특별한 본래의 성향, 즉 고유한 ‘민족혼’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문제는 ‘우리가 다른 시대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지,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511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처지에 있어 봐야 하는 것처럼,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문화의 배경을 생각해야겠지요 511

낭만주의는 각 민족이 갖고 있는 고유한 동질성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 511

낭만주의 : 보편적 낭만주의 vs 민족적 낭만주의 512

낭만주의의 이 두 가지 양상을 하나로 묶는 연결 고리는 바로 ‘유기체’라는 표제어였다. 낭만주의자들은 모두 식물은 물론 민족까지도, 심지어는 문학 작품까지도 살아있는 유기체로 간주했다. 그러니까 두 양상 사이엔 어떤 명확한 경계가 없는 셈이지. 세계 정신은 자연과 예술에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과 민중 문화에도 내재한다고 생각했다 512

노르웨이에서는 아스뵈른젠과 모에가 ‘민중의 시문학’을 수집하려고 온 나라를 두루 여행했다. 그것은 맛 좋고 영양가가 있다고 순식간에 알려진 물 좋은 열매를 수확하는 일과도 같았다 513

창작 동화는 안데르센 같은 한 작가가 상상해서 쓴 글을 말하지 513

바로크 시대의 예술 형태가 연극이엇던 것처럼, 동화는 낭만주의자들의 문학적 이상이었지. 특히 동화는 작가 자신의 창작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었다. 작가는 허구의 세계 속에서 신의 역할을 할 수 있었지 513

낭만주의 철학자들은 ‘세계 영혼’이라는 것을 다소 꿈 같은 상태에서 이 세상의 사물을 창조하는 ‘자아’로 파악했다. 철학자 피히테는 자연은 무의식적인 고도의 표상 활동에서 유래한다고 설명했다. 셸링은 단도 직입적으로 세계는 ‘신 안’에 있다고 말했다. 신은 세계의 어떤 부분은 의식하지만, 자연에는 신 안의 무의식적인 부분을 드러내는 면도 있다고 생각했지. 신도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지 513

동화는 작가에게 세계 창조의 상상력을 발휘할 가능성을 주었다. 그리고 창조 행위는 늘 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자기가 쓰고 있는 이야기가 스스로에게 내재한 능력에서 나온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거의 최면 상태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514

작가는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의 존재 역시 동화적인 것임을 독자에게 환기 시킬 수 있다. 환상을 깨는 이런 형식을 낭만적 아이러니라고 부른다 514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두 소령이란 자의 깊은 의식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금은 4월 28일, 토요일 늦은 밤이다. 아직 깨어 있는 소령 주위의 모든 유엔 병사들은 잠들어 있을테지. 벌써부터 소령에게도 졸음이 몹시 쏟아지기 시작하지만, 헬데의 열다섯 번째 생일에 선사할 책의 글을 다 써놔야 한다 517

우리가 체험한 모든 일이 다른 사람의 의시 속에서 일어난다는 걸 상상해 보면, 우리의 의식은 다른 사람의 바로 그 의식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본래 영혼이 벗고, 우리의 여혼은 다른 사람의 영혼이지 519

우리에게 이 작가는 숨은 신과 같다. 그가 우리의 신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말, 하는 행동이 모두 그에게서 비롯된 것이지만 우리는 결코 그에 관해 알 수 없을 것이다. 우린 맨 안쪽 상자 속에 틀어박혀 있는 거다 521

헤겔은 낭만주의가 모든 것을 정신 속으로 용해시켜 버린 이후, 철학을 구하려고 한 최초의 철학자다 522

헤겔 _ 이성적인 것이 생명력을 갖는다

헤겔은 1770년 슈트트카르트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에 튀빙겐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1799년(29세)부터는 낭만주의 운동의 폭발적인 전성기를 체험한 예나에서 셸링과 공동 연구를 하였다. 거기서 대학 강사로 있다가, 독일의 민족 낭만주의의 중심지였던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강의를 했지. 그러다가 1818년(48세) 베를린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바로 이즈음 이 베를린이란 도시가 유럽의 정신적 중심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헤겔은 1831년 11월 콜레라에 걸려 숨졌다. 하지만 그 당시 ‘헤겔주의’는 독일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많은 추종자를 갖고 있었다 525

헤겔은 낭만주의자들에게서 발전한 거의 모든 사상들을 자신의 철학에 접합해 계속 발전시키고, 셸링 철학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셸링과 다른 낭만주의자들은 존재의 가장 깊은 근원을, 이른바 세계 정신에서 보았다. 헤겔도 ‘세계 정신’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지만, 그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헤겔이 세계 정신이나 세계 이성이라고 말한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자기 표현의 총체를 뜻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만 정신이 있기 때문이지. 이런 의미에서 헤겔이 역사를 통한 세계 정신의 진행을 말할 수 있었지. 우리는 헤겔이 사람의 삶, 생각 그리고 문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그 정신은 더 이상 돌과 나무 속에 매복해 잠들어 있는 지성이 아닌 거지 525

헤겔이 독창적인 철학을 발전시켰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헤겔의 철학은 무엇보다도 역사의 과정을 파악하는 방법이다...헤겔의 철학은 원래 존재의 가장 내면적인 본성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는 않지만 ‘효과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526

헤겔은 그처럼 시간을 초월하는 전제는 발견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는 인간 인식의 기초는 세대가 바뀜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헤겔은 ‘영원한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시간을 초월하는 이성도 없다고 보았다. 철학적 사유의 유일하고 확고한 출발점은 역사 그 자체라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강도 끊임없이 변한다. 그렇다고 그 강에 대해 전혀 말할 수 없는 건 아니지. 단지 네가 계곡에서 강의 어느 부분이 ‘가장 진정한’ 강이냐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헤겔에겐 철학이 강의 흐름과 같은 것이었다. 강의 특정한 지점에서 이는 가장 작은 물결도 강의 상류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나거나 물이 흘러내려 생기는 것이지. 그러나 또 중요한 사실은 네가 관찰하는 강의 그 지점에 어떤 종류의 돌과 굽은 부분이 있느냐는 것이다. 사유나 이성의 역사도 그와 같은 강의 흐름과 같다. 그것은 네 이전 세대 사람들이 생각해 왔던 모든 생각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네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삶의 조건이나 너의 생각을 결정짓는 모든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는 어떤 특정한 사상이 영원히 옳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한 특정한 사상이 네가 발 딛고 서 있는 그 곳에선 옳을 수도 있지. 무엇이든 단지 역사적인 맥락과 관계되어 옳거나 그를 수 있다 527 ★★★★★ _ 뭔가 무지 멋지고 명쾌한 설명!!!

헤겔은 세계 정신은 점점 더 크게 그 자체를 의식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설명하고 있지.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강의 너비가 점점 더 넓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세계 정신이 서서히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에 눈뜨는 것이다. 예전부터 세계는 언제나 현존하고 있었지만 세계 정신은 인류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그 본질을 점점 더 확실히 의식하게 되었다. 그는 세계 정신은 고작 예언이 아니라 증명해 낼 수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하였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인류가 점점 더 커지는 자기 인식과 자기 발전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똑똑히 알게 된다고 하였다. 역사는 점점 더 나은 합리성과 자유를 향해 분명히 발전해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529

헤겔에게 역사란 일정한 규칙에 따라 단 한줄로 길게 이어진 사상의 사슬이다 530

주장의 설정을 定立이라 불렀다. 그러나 한 가지 주장이 나올 때마다 맞서는 주장이 등장하지. 그것이 ‘부정’이다. 이렇게 두 사유 방식 사이의 긴장이 생기는 데 이 긴장은 두 주장에서 옳은 부분들을 가려내 새로운 사유방식으로 지양함으로써 해소되었다 531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를 정립이라고 할 경우, 이에 흄의 경험주의를 반정립으로 내세울 수 있다. 이같이 서로 다른 두 사유 방식 사이의 긴장이나 대립은 칸트의 종합으로 지양되었다 531

한창 토론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면 무엇이 가장 이성적인지 확정하기란 쉽지만은 않을 거야. 그래서 근본적으로 역사만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보여준다. 헤겔은 오직 이성적인 것만이 생명력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533

헤겔 시대의 많은 남자들은 여성의 열등함에 대해 그런 터무니없는 발언을 함으로써 오히려 여성운동을 더 북돋아 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534

‘존재’와 ‘무’ 사이의 긴장은 ‘생성’이라는 개념으로 융합한다. 무엇이 생성하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것이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헤겔의 이성은 동적인 이성이다. 현실 자체가 대립을 본질적인 특징으로 갖기 때문에 현실 묘사 역시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535

헤겔은 세계 정신이 세 단계를 거쳐 자기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여주려 하였다. 그것은 세계 정신이 세 단계를 거쳐 자기 자신을 의식하게 된다는 걸 뜻한다. 우선 세계 정신은 개인에게서 자기 자신을 의식하게 된다. 그것을 헤겔은 주관적 이성이라고 했다. 세계 정신은 가족, 사회, 국가에서 더 높은 단계의 의식에 도달한다. 이것을 헤겔은 객관적 이성이라 했다. 이것은 인간들의 상호 작용에서 나타나는 이성이기 때문이다. 세계 정신은 절대 정신에서 자기 인식의 최고 형태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러한 절대 정신은 예술, 종교, 철학이다. 그 중에서도 철학이 이성의 최고 형태다. 세계 정신이 철학을 통하여 역사 속에서 자신이 할 역할을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세계 정신은 철학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과 만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철학을 세계 정신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39 ★★★★★★★★★★★★★

어떤 아이가 종이에 무엇을 그리고 있는데 종이에게 그 그림이 무엇을 묘사하고 있는지 물어 볼 수는 없는 거다 540

키에르케고르 _ 유럽은 파산해 가고 있다

갑자기 제가 보는 모든 것이 이어져 있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이 하나의 의식이란 느낌이 들어요.

그건 범신론이거나 합일 철학이다. 그것은 낭만주의자들의 세계 정신이지. 그들은 모든 것을 하나의 커다란 ‘자아’로 체험하였다. 헤겔 역시 그렇다. 그는 한편으론 각각의 개체를 완전히 무시하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론 모든 것을 하나의 세계 이성으로 파악하였지 546

오직 경탄할 만한 동화에서나 나오는 완전한 우주예요...파란 병은 개인주의다. 그것은 낭만주의의 합일 철학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반응이었다. 그리고 동화 작가 안데르센이 케에르케고르와 동시대인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자연의 무궁무진함에 대해 마찬가지로 예리한 시각을 가졌다. 라이프니츠는 이미 백 년 전에 그러한 시각을 가졌고, 스피노자의 합일 철학에 해 그가 보인 반응은 헤겔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반응과 똑 같다 548

키에르케고르는 낭만주의자들의 합일 철학과 헤겔의 역사주의가 개인으로부터 삶에 대한 책임을 박탈했다고 생각했다 549

소크라테스는 키에르케고르에게 낭만주의자들과는 반대로 실존사상가였다. 즉 자기의 실존 전체를 철학적 성찰을 향해 던지는 사람을 뜻한다 . 키에르케고르는 유희에 열중하는 낭만주의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였지 551 ★★★

키에르케고르는 헤겔 철학이 전념한 ‘객관적 진리’가 개별 인간의 실존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551

키에르케고르에게는 유일한 대문자 진리를 추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개인의 삶에 중요한 진리들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 관한 진리’를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552

석가와 키에르케고르 모두 그들이 단지 짧은 시간 동안 존재한다는 것을 매우 강하게 느꼈다. 이미 말했듯이, 그럴 땐 책상 앞에 앉아 세계 정신에 대해 사색하기만 할 수는 없지 553

네가 만일 물에 빠졌다면, 너는 익사를 할지 안 할지 하는 문제에 대해 아무런 이론적 관심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물 속에 악어가 있는지 업는지는 한갓 이론적 관심과 흠미의 대상이 아니다. 사느냐 죽느냐가 문제지 553

기독교가 진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나에게 진리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555

키에르케고르의 인생 항로 3단계론...그는 상이한 실존 가능성이 세 가지(미적 단계, 윤리적 단계, 종교적 단계)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단계’라는 말을 선택한 것엔 사람들이 두 가지 하위 단계 중 한 단계에서 살다가 갑자기 더 높은 단계로 비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뜻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한 단계에서 전 생애를 보낸단다.

미적 단계에 살고 있는 사람은 그 순간을 살며 늘 향락을 추구한다. 좋은 것은 아름답고, 멋지고, 편하다. 그러헤 볼 때 그와 같은 사람은 완전히 감각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탐미주의자는 자기 자신의 쾌락과 기분의 노예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듯이 지루한 것이나 선정적이 아닌 모든 것은 부정적이란다. 전형적인 낭만주의자들은 역시 탐미주의자란다. 감각적인 향락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해 혹은 자기가 종사하는 예술이나 철학에 대해 놀이하는 듯한 태도를 지닌 사람도 미적 단계에 살고 있는 거다. 우리는 근심과 괴로움에 대해서조차 미적으로 관찰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미적 단계에서 사는 사람은 불안과 공허의 감정에 빠지기 쉽지만 그가 그런 감정을 체험하면 아직도 희망이 있는 거란다. 키에르케고르에게 이 불안은 긍정적인 어떤 것이었다. 그것은 누군가가 ‘실존적 상황’에 있다는 표시란다. 탐미주의자는 그 때 더 높은 단계로 비약해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비약하지 못하면서 거의 비약할 뻔한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양자택일이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사람은 아무도 너를 위해 비약해줄 수 없다. 너 스스로 결정하고 비약해야 한다...내면의 절망에서 기인하는 실존적 선택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는 다른 작품으로는 러시아 작가 도스토에프스키의 <죄와 벌>이 있다....다음은 윤리적 단계. 이 단계는 진지성과 시종 일관 도덕적 척도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특징이다...사람들이 무엇을 옳거나 그르다고 여기는지는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옳거나 그른 것에 대한 스스로의 태도를 결정하는 일이다 . 탐미주의자들은 무엇이 재미있고 무엇이 지루한지에만 관심이 있지. 키에르케고르는 윤리적 단계로도 아직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의무를 이행하는 인간도 언젠가 한번은 늘 의무를 의식하고 질서를 지키는 것에 실증을 낼 것이라고 보았다. 이미 오래 전에 어른이 된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싫증과 권태의 단계를 체험한다. 또 상당수의 사람들이 지금 어쩌면 미적 단계에 있는 놀이에 열중하는 삶으로 되돌아 간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바로 다음 단계인 종교적 단계로 새로운 비약을 한다. 그들은 신앙의 ‘칠만 길 물’ 속으로 정말 대단한 비약을 감행한다. 그들은 미적 향락과 이성의 명령보다 신앙을 선택한다. 그리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이 키에르케고르가 표현하듯이 엄청난 일이지만, 인간은 그때 비로소 자기의 삶과 화해할 수 있다 559 ★★_ 키에르케로그만 해도 ‘놀이’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있었나보다. 그가 말하는 ‘종교적 단계’란 결국 의미있는 재미를 추구하는 단계가 아니겠는가? 의미로서 삶의 본질을 꿰뚫고, 재미로서 에너지를 얻는 삶이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궁극의 삶의 형태 아니었을까?

우리가 사는 세기에 이른바 실존 철학이 생겼는데 그것은 키에르케고르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 559

마르크스 _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우리에게 영원한 창조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창조된 것을 잡아채어 다시 무로 되돌리는 것밖에는! 564

엄마는 철학 가든 파티가, 지난 몇 주 동안 집중적으로 철학 수업을 받은 소피가 현실로 되돌아오는 길을 발견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확신하시는 듯했다 564

정신적인 감금 상태 565

그가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데 성냥팔이 소녀가 굶어죽을 이유가 없다 567

키에르케로그와 마르스크는 둘 다 헤겔의 철학에서 출발했다. 둘 다 헤겔의 사고 방식에서 큰 영향을 받았지만 헤겔이 주장한 세계 정신의 관념, 즉 우리가 헤겔의 관념론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거대한 철학 체계의 시대는 헤겔과 함께 끝났다고 말하지. 헤겔 이후의 철학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거대한 사변적인 체계 대신 이제 이른바 ‘실존 철학’이 등장한다. ‘행동하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곧이어 마르크스는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단지 세계를 해석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고 말하면서 활동을 개시하였다. 바로 이 유명한 말이 철학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마르크스의 생각은 실천적, 정치적인 목표를 가지고있다. 그는 철학자만이 아니라 역사가이면서 사회학자였고 경제학자였다 571

다른 어떤 철학자도 실천 철학에서 마르크스를 능가하지 못했다 571

‘마르크스주의’라고 하는 것을 마르크스 자신의 생각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571

마르크스의 친구이자 동료인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나중에 마르크스주의로 불리게 된 사상 체계를 위해 기여했다 571

그는 무엇보다 한 사회의 물질적 삶의 조건이 우리의 생각과 의식을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유물론적 관계는 또한 역사 발전에도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마르크스는 물질적 삶의 조건의 변화가 역사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572

하부주조와 상부 구조의 상호 작용 또는 변증법적 관계, 즉 갈등이 있다는 것을 통찰하였기 때문에 변증법적 유물론자라고 불린다 574

우리도 그 사회의 하부 구조를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맨 밑에 마르크스가 한 사회의 자연적인 생산조건이라과 부른 것이 있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말하자면 한 사회가 이용할 수 있는 자연 상태, 즉 여러 가지 식물 종류, 원료, 지하 자원 등등으로 이해했다. 그것들이 본래의 하부구조를 형성하고 이러한 하부 구조가 그 사회에서 어떤 생산이 가능한지 명확한 경계를 정해 준다. 그로써 대체로 어떤 장소에 어떤 사회와 어떤 문화가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경계를 분명히 설정해 준다. 다음 단계는 한 사회의 생산력이다. 이 경우 마르크스는 인간의 노동력은 물론 이른바 생산 수단인 도구, 연장, 기계도 생각하고 있다. 다음은 생산 관계. 한 사회에서 누가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노동은 어떻게 조직되는지, 즉 소유 관계와 노동 분배 양상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한 사회의 생산양식이 그 사회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관계를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마르크스는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자연법을 믿지 않은 셈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하부 구조가 그 사회의 도덕률을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옛날 농경 사회에서 부모가 자녀의 배우자가 될 사람을 결정하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결국 누가 농장을 상속하느냐가 문제였던 것이다. 현대의 대도시에서는 사회적 관계가 다르다. 그러므로 자기 인생의 반려자도 다른 방식으로 구한다 575

마르크스는 한 사회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결정하는 것은 대개 지배 계급임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역사가 계급 투쟁의 역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즉 생산 수단을 누가 소유하느냐에 관한 대결의 역사라고 생각했다. 그는 역사의 모든 단계에서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사이에 갈등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지배 계급은 자신들의 주도권을 결코 자진해서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혁명을 통해서만 변할 수 있다고 했다 576 _ 부드럽고 조용한 혁명이 내게 주어진 미션일거다. 관계 당사자가 상생할 수 있는 혁명의 메커니즘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나의 사명일 것이다.

공산주의자가 되기 전 청년 마르크스는 인간이 노동을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헤겔도 그 문제를 분석하여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상호 관계, 즉 변증법적 관계를 인식하였다. 청년 마르크스도 그와 같은 인식을 하였다. 인간이 자연에 변화를 주면 인간도 스스로 변한다는 것이다. 좀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이 노동을 하면 자연에 작용하여 자연을 바꾸어 버린다. 반면 이렇게 노동하는 과정에서 자연 역시 인간에 작용하여 인간의 의식을바꾼다 577

마르크스는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의 의식을 규정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규정한다고 생각하였다. ‘손’과 ‘머리’ 사이에 상호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이런 식으로 인간의 의식은 인간이 하는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577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즉 자본가를 위해 노동을 한다. 그래서 일이 자기 자신 외부에 있는 것 혹은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것이 된다. 노동자는 자기 일과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도 소외된다. 그는 인간의 품위를 상실한다 578

자기 일을 싫어하면, 어떻게든 자기 자신도 싫어할 수 밖에 없다 578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가 실제로 다른 사회 계급을 위해 노예로 일하도록 조직되어 있단다. 그렇게 해서 동자는 자기 자신의 노동력뿐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까지도 자본가에게 양도한다 578

노동이 노동자를 짐승으로 만들었다 579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속에서 잃을 것이라곤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새로운 세계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579 ★★★★ _ 우리가 타도해야할 것은 이보다는 훨씬 복잡하다. 불합리한 문화를 체화하고 있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없애버릴 수 없지 않은가? 벼룩 한 마리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집은 남기고 불편한 벼룩만 깔끔하게 잡을 수 있을까. 그게 내가 풀어야할 숙제인 거다. 마르크스가 역사에 남긴 교훈을 되새겨 지혜로운 솔루션을 도출해보자.

자본주의가 자기 파괴적 581 _ 가부장제도 마찬가지!!

사회주의가 인간적인 사회를 쟁취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어쨌든 오늘날 유럽에서 우리는 마르크스 시대의 사람들보다는 더 공평한, 그리고 더 연대감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모든 사회주의 운동의 덕분이다 583

마르크스 이후 사회주의 운동은 두 갈래의 중요한 방향으로 갈렸다. 한편으론 사회민주주의가, 다른 한편으론 레닌주의가 생겼지. 더 사회적이고 공평한 사회질서를 구현하기 위해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길을 택하려고 한 사회민주주의는 서유럽에서 확산 584 _ 내가 추구할 노선!!

혁명만이 낡은 계급 사회를 극복할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신념을 계속 유지했던 레닌주의는 동류럽,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중요해졌다. 이 두 운동이 모두 자기 방식대로 빈곤과 억압에 대항해 싸웠다 584

공산주의 자체가 만일 존재했더라면 인간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실수를 한다는 것을 마르크스가 너무 등한시했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할 때 지상낙원이란 결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문제를 만들 테니까 말이다 584

도덕학자 존 롤즈의 실험. 네가 미래 사회의 모든 법률을 만들어야 하는 어떤 위원회의 위원이라고 상상해 봐. 그들은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은 합의를 하자마자, 법률에 서명을 하자마자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초 후에 그들이 만든 법률이 있는 바로 그 사회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 트릭은 단지 이런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그 사회의 어디에서 다시 살아날지, 즉 그 사회에서 어떤 지위를 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자기가 남자로 다시 태어날지 여자로 다시 태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은 반반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여자를 위한 사회와 남자를 위한 사회를 똑같이 잘 마련할 것이다 586 ★★★★★★★ _ 멋진 아이디어!!!

다윈 _ 유전자를 가득 싣고 삶을 항해하는 배

마르크스는 자신의 위대한 저서 <자본론>을 다윈에게 바치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589

엥겔스, 다윈이 유기적 자연의 진화 법칙을 알아냈듯이, 마르크스는 인류 역사의 발전법칙을 알아냈다 589

다윈과 연관성이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사상가는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다...프로이트는 다윈의 진화론이 자신의 정신 분석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소박한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589

자연주의란 인식할 수 있는 자연적 세계 밖에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관이다. 따라서 자연주의자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보지. 자연주의자는 합리주의적 사변이나 혹은 어떤 신의 계시도 아닌 오로지 자연이 준 사실에서 연구를 시작한다 590

다윈, 1809년 슈루즈버리 출생. 찰스 다윈이 상급학교에 다닐 때 교장 선생님은 찰스를 가리켜 ‘이리저리 쏘다니며 말도 안 되는 소리만 떠들어 내고 괜히 화를 내는 똑똑하지 못한 소년’이라고 했다 591 _ 위대한 인물들의 어린 시절을 연구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비글호’...2년 걸린다던 여행이 결국 5년이나 걸렸지 592

다윈은 이리하여 자연과 생물의 역사에 관해 많은 생각들을 혼자 간직하게 되었다. 스물일곱 살에 고향에 돌아온 다윈은 이미 유명한 자연 과학자가 되어 있었지. 훗날 진화론이 된, 분명한 관념을 다윈은 이미 남모르게 간직하고 있었지. 하지만 자신의 주저를 발표하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렸지 593

끊임없이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은 물방울의 힘이 아니라, 바로 그 부단함이란 말이다 596

그는 평생의 연구 생활 동안 아주 사소하고 점진적인 변화라도 긴 시간에 걸쳐 계속되면 극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596

문제 제기는 중요하지만 대답은 그리 급하지 않다 596

만일의 경우에는 적어도 맛이 나쁜 것도 장점이지 602

생존 경쟁을 통한 자연 도태가 이런 진화의 이면에 있는 원동력 혹은 그것의 메커니즘이다. 자연 도태는 언제나 최강자나 가장 잘 적응한 자가 살아 남도록 한다 604

다윈은 결국 명예로운 대우를 받았지만 처음에는 영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고 불렸다 606

신진화론은 그런 변이 형태의 정착에 대한 명확한 원인(돌연변이)을 제시함으로써 획득된 특성은 유전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충했다 608

개체가 ‘산을 넘도록’ 도와주는 것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인간의 저항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610

생명에 대한 가장 간단한 정의는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신진대사를 하며 독자적으로 번식한다는 것이다 613우주 광선은 다양한 지구의 화학물질을 거대 분자로 접합하는 에너지이기도 했지 615

모든 생명을 구성하는 복잡한 분자가 생기려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다는 거다. 즉 대기 중에 산소가 없어야 하며, 우주에서 오는 광선이 지구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지 615

파우스트..

멈춰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내가 세상에 남긴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지고한 행복을 예감하며

나는 지금 최고의 순간을 맛본다 618

악마..

지나갔다고! 어리석은 말이다. 왜 지나갔단 말인가?

지나간 일과 순수한 무는 완전히 같다.

우리에게 영원한 창조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창조된 것을 잡아채어 다시 무로 되돌리는 것밖에는!

‘지나갔다’는 말에 무슨 뜻이 있을 것인가?

본래부터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인 것을,

그런데 마치 무엇이 있기나 한 듯이 빙빙 맴을 돌고 있으니.

나였으면 그보다는 영원한 공허 쪽을 택했으리라 618

우리 각자는 유전자라는 짐을 싣고 항해하는 배이기도 하지. 우리가 이 짐을 다음 항구로 실어갈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헛된 것은 아니겠지 619

뵈른슈테네르네 뵈른손의 시편 Ⅱ

인생의 짧은 봄날을 찬양하라.

봄날은 모든 것을 불고 지나가나니!

아주 작은 것에도 부활이 있으니

형식은 사라질 뿐일세.

모든 족속은

향상되려고 애쓰고

종은 종을 만들어 낸다.

무한한 시간 속에서

세상은 스러졌다 솟아나는 것!

삶의 환희에 잠기어라, 그대 꽃송이는

봄 언덕 위에서

영원을 찬미하며

그대의 짧은 존재를 누릴지어다.

그대 또한

그대의 창조하는 작은 힘을

보태어라.

힘이 있는 한

영원한 시간 속에서 호흡할지어다!! 619

프로이트 _ 추악하고 이기적인 욕망이 그 여자의 마음 속에 떠올랐다

분명히 아버지는 힐데의 마음에 새로운 현이 떨리도록 만들었다 622

문화철학자, 프로이트. 사람과 사회적 환경 사이에는 언제나 긴장이 존재한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충동이나 욕구와 그가 속한 사회 환경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지 625

이성이 언제나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사람은 18세기의 합리주의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종종 비합리적인 충동이 우리의 사고와 꿈 그리고 행동을 결정한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충동이 우리 안에 깊이 숨어 있는 욕구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다...프로이트는 이러한 근본적인 욕구는 우리가 그것의 기원과 정체를 간단히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형태를 띠고 나타나,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행동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625

프로이트는 많은 심리적인 고통의 유형들이 유아기의 갈등에서 비롯한다고 확신하고, 우리가 일종의 ‘영혼의 고고학’이라고 말하는 치료 방법을 발전시켜 나갔지. 정신 분석 학자는 환자의 심리적 고통의 원인이 된 체험을 끌어내기 위해 환자의 도움으로 그의 의식 속에 ‘피고 들어갈’ 수 있다. 프로이트에 다르면 우리는 모두 과거에 대한 기억을 우리 내부에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 정신분석 학자가 만일 환자의 의식 속을 들여다본다면 아마도 환자가 언제나 잊어버리려고 했지만 깊숙이 가라앉아 환자의 에너지를 붙들고 늘어지는 나쁜 체험을 발견하겠지. 그런 ‘외상성의 경험’을 다시 의식으로 불러들이면 환자는 그것으로써 ‘완치’되어 다시 건강해질 수 있지 626

우리는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 때, 몸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욕구를 마음껏 표현한다. 우유를 먹지 못하면 울지. 기저귀가 젖어도 아마 그럴 것이다. 따뜻한 살갗과 닿고 싶으면 분명히 표현을 한다. 이러한 우리 안의 충동 또는 쾌락의 원리를 프로이트는 원자아 즉 ‘이드’라고 표현했다. 젖먹이 때에 우리는 거의 ‘이드’일 뿐이지. ‘이드’는 우리가 성인이 되어도 평생 동안 남아 있단다 628 _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 안에 남아 있는 이드의 원형을 확인하게 되는 것 같다. 베베꼬인 욕망이 명쾌하게 해석되는 느낌이랄까? 애들이랑 있는 시간이 더욱더 의미있어지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서히 우리의 쾌락을 통제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거지. 프로이트는 조절 능력을 수행하는 자아를 우리가 형성한다고 했다. 우리가 일정한 연령이 되면 무언가에 대한 욕구를 가지게 되더라도 소망이나 욕구가 충족될 때까지 단순히 주저앉아 울 수는 없다. 또 우리가 희망하는 것을 주변 세계가 승낙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가끔 우리의 희망을 억압한다. 즉 우리는 그 희망을 밀어내고 잊어버리려고 한다. 프로이트는 사람 마음 속에 있는 제3의 요구도 염두에 두었다. 어린 아이일 때 우리는 이미 부모와 주위 세계의 도덕적 요구들과 접하게 된다. 우리가 그른 일을 할 때, 우리 부모는 ‘그만둬!’ 또는 ‘창피한 줄 알아야지!’하고 말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그런 도덕적인 요구와 판단의 메아리를 듣는다. 우리 주변 세계의 도덕적인 기대는 우리 안에 숨어 있고 우리의 한 부분인 것처럼 보이지. 그것을 프로이트는 ‘초자아’라고 했다. 프로이트는 초자아가 양심으로서의 자아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추하거나 부적절한’ 소망을 갖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소위 초자아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특히 성적 욕망에 적용된다. 이미 말했듯이 프로이트는 그러한 욕망이 유아기 초기에 설정된다고 지적했다 628 _ 그러니까 잘 해보겠다고 읽은 책들이 ‘초자아’가 되어 죄의식을 증폭시키고 있었던 거구나. 그러니 이제라도 초자아를 제대로 재구성하지 않으면 평생 말도 안 되는 죄의식에 시달리며 살게 될지도 몰라. 철학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모든 사상에는 비판의 단초를 안고 있는 거 잖아. 그 단초가 또 새로운 국면으로의 발전을 이끄는 거고. 그런데 어느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은 완전무결한 인격체가 되어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으니 괴로울 밖에. 정말 다행이야.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프로이트는 이런 죄의식이 초자아 안에 저장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동안 모든 성적인 요소들과 얽힌 채 남아 있다고 믿었다. 동시에 프로이트는 성적인 욕구나 욕망이 인간 본성의 자연스럽고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니까 소피야, 우리는 우리를 한 평생 쾌락과 죄의식의 갈등 속에 밀어넣는 모든 요소를 다 갖고 있는 셈이다 628

프로이트는 인간의 의식이 그 정신의 일부분을 이룰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식된 것은 수면 위에 튀어 나온 빙산의 일각과 같다는 것이지. 그 수면 아래에는, 즉 의식의 문턱 밑에는 심층 의식 또는 무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고 경험한 모든 일과 우리가 곰곰 생각할 때만 일어난 모든 일을 프로이트는 전의식이라고 했다.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은 우리가 억압한 모든 일을 가리킨다. 즉 추하고 부적당하고 구역질나는 일이기 때문에 무조건 잊어버리고 싶은 모든 일을 말한다. 우리는 우리 의식 도는 초자아가 용납할 수 없는 쾌락을 요구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것을 지하실로 처넣어 버리지. 꺼져 버려라 하고. 이렇게 억눌린 생각은 언제나 곧 다시금 의식위로 떠오르려고 하기 때문에, 이러한 충동이 비판적인 의식의 눈에 띄지 않도록 억압하고 숨기는 데에 우리는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야 한다 630

훼방꾼은 다시 들어오려고 한다. 우리의 억압된 생각과 충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억압된 생각의 지속적인 압력 아래서 사는데, 그것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뛰쳐나오려고 갖은 애를 쓰지. 그런 까닭에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일들을 무의식의 인도에 따라 말하거나 행하게 된다. 이런 방식을 통해 무의식은 우리의 느낌과 행위를 지배하는 것이다. 失言이 이런 메커니즘중 하나다. 즉 이전에 우리가 억압했던 어떤 것을 부지 불식간에 우리가 말하거나 행도하는 거지 631

합리화,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행한 일에 대해 실제 이유와는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노라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거지. 그 실제 이유가 너무도 수치스런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우리는 거의 날마다 이렇게 이중적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632

투사, 우리 자신에게서 억압하고 싶은 특징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 버리는 거지. 예를 들어 지독한 구두쇠가 다른 사람더러 욕심이 많다고 말하는 경우지. 섹스에 대한 생각에 골똘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섹스에 사로잡혀 있다고 흉보기도 한다 633

프로이트는 우연한 실수를 한 가지 징후로 간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실언은 우리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누설하는 것일 수 있다 633

너는 네 무의식적인 충동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우리가 유쾌하지 않은 것을 무의식 속으로 밀어 넣을 때에 지나치게 긴장하지 않는 것이다. 네가 들죄가 드나드는 구멍을 막아 버리려고 하는 것과 꼭 같은 이치다. 그 일을 할 수는 있겠지만 들쥐는 정원 어느 다른 곳에 또 나타난다는 것을 너는 알 수 있을거야.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문을 느슨하게 해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634

신경증 환자는 바로 유쾌하지 못한 일을 자기 의식에서 쫒아내는 노력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람이지. 어떤 사람은 아주 특정한 체험을 그렇게 해서 억압해야만 한다. 그것이 ‘외상성 체험’인데 프로이트는 이를 트라우마라고 한다 634 _ 쥐가 걱정했던 것보다 끔찍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오히려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러니 구태여 구멍을 막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순간 나의 그 끔찍하던 신경증은 사라진 것 같다.

프로이트는 치료할 때에 닫힌 문을 조심스럽게 열거나 새 문을 내려고 했을거다. 그는 환자와 같이 작업하면서 억압된 체험을 다시 불러내려고 했지. 물론 환자는 제가 억압되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지. 그러나 프로이트는 의사나 정신 분석학에서 말하는 분석자가 환자가 숨겨진 외상으로 가는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프로이트는 그런 조치를 자유 연상 기법이라고 했다. 환자가 완전히 긴장을 풀고 눕게 하고는 그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게 하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든, 우연한 일이든, 불쾌하거나 고통스러운 일이든 가리지 않고 말하게 한다. 정신 분석가는 환자가 긴 의자에 누워 연상하는 일 속에 언제가 환자의 외상과, 또 그것이 의식화되는 것을 막은 저항의 단서가 포함되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무의식중에 환자는 늘 자기의 외상에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635

잊으려고 애쓸수록 무의식중에 더 생각하게 되는 군요?

그렇다. 그러니까 무의식의 신호에 주의해야 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는 꿈을 통한 길이라고 말했다. 프로이트는 꿈에는 우연이 없다고 했지. 무의식적인 생각들은 꿈을 통해서 의식에 동참하려고 한다는 거야. 그는 모든 꿈이 근본적으로 욕구를 채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들에게서 그런 점을 명백히 볼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과 버찌 꿈을 많이 꾸지. 그러나 성인들의 꿈에는 성취할 수 없는 욕망들이 자주 변장을 하고 나타난단다. 왜냐하면 잠을 자면서도 엄격한 검열이 우리에게 허락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잠을 짤 때에는 이런 검열이나 억압의 메커니즘이 깨어있는 상태에서보다는 약해져 있긴 하지만, 우리가 고백할 수 없는 욕망을 꿈 속에서 왜곡할 수 있을만한 충분히 강력한 힘을 여전히 갖고 있다. 그래서 꿈을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635

프로이트는 다음날 아침에 기억나는 꿈의 내용과 그것의 참된 의미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했지. 그는 꿈의 영상 자체를, 그러니까 우리가 꿈꾼 ‘영화’나 ‘비디오’를 꿈의 명시적 내용이라 불렀다. 그러나 꿈은 의식에 드러나지 않는 보다 깊은 의미도 갖고 있다. 그 의미를 프로이트는 꿈의 잠재의식이라고 했지. 꿈의 영상과 그 소도구들은 대개 가까운 과거에서 유해하며, 바로 전말 체험한 것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꿈 속의 잠재의식은 먼 과거에서 유래할 수도 있다 636

환자들은 자신의 정신 요법의와 함께 그 일을 해야한다. 환자의 꿈을 의사가 홀로 해석할 수 없으므로 의사는 환자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는 해석을 돕는 산파 역할을 한다 636

꿈의 잠재 의식을 명시적 내용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꿈의 작업이라고 명명했다...꿈을 해석하려면 굼의 발생 과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우리는 꿈의 본래 ‘주제’를 찾아내기 위해 꿈의 ‘동기’를 해독해야 한다 636

프로이트는 꿈을 ‘억압된 욕망의 변장된 성취’로 간주 637

프로이트는 억압, 실언 또는 합리화 같은 현상들을 자신이 창작해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인간의 그런 경험을 정신병학에 적용한 최초의 인물일 뿐이었다. 그의 정신분석학은 1920년대부터 예술과 문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시인과 화가들은 자기들의 창조적인 작업에서 무의식적인 능력을 이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그런 일은 소위 초현실주의자들이게 해당되지 638

1924년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 선언>, 예술이 무의식에서 산출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럴 경우에만 예술가가 자유로운 영감 속에서 자기가 가진 꿈의 영상을 불러일으키고 꿈과 현실의 구별이 지양된 ‘초현실’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예술가들에게는 언어와 영상이 자유롭게 솟아날 수 있도록 의식의 검열을 파괴한 것이 중요한 일일 수 있지 639 _ 하지만 예술가라고 해서 자기 욕망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도 명심해야 할 거다.

매일 밤 두 시간에서 세 시간까지 꿈을 꾼다는 말이지. 그 과정이 진행하는 동안 방해를 받으면, 우리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고 한다. 그건 모든 사람이 자기의 실존적 상황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려는 욕구를 타고났다는 것을 뜻한다. 꿈은 우리 자신을 다루고 있는 거란다. 우리가 무대 감독이 돼서 모든 소도구를 모아 연기를 하지. 자기는 예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지 639

예술적 발상이 떠오르는 순간엔 갑자기 모든 문과 기록실의 모든 서랍이 열려서 필요한 자료들이 저절로 나타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게 솟아 나오지.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말과 영상을 정확히 찾아낼 수 있는 거지. 무의식으로 통하는 문을 조금 열어두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단다. 그런 걸 영감이라고 하지. 그때 우린 그리거나 쓰는 능력이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갖는다 640 ★★★★★★★

이성과 심사 숙고가 자유롭고 자발적이며 무의식적인 활동을 통해 더 잘 표현될 수 있는 어떤 것을 통제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문제로 다가올 때가 있다 641

예술가에게는 ‘걷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 중요하단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모든 일이 스스로 생겨나는 상태로 자신을 몰입시키려고 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백지를 앞에 놓고 무엇을 쓸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쓰기 시작한다. 그것을 그들은 ‘자동저술’이라고 했지...초현실주의 예술가도 어떤 관점에서는 영매다. 그 사람은 자신의 잠재 의식을 위한 영매인거다. 아마 모든 창작 과정에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요소가 들어 있을지도 모르지 642

독창성은 환상과 이성의 섬세한 합작이다. 그런데 이성은 너무 자주 환상을 억압한다. 환상 없이는 정말로 새로운 일이 생겨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현상은 좋지 않은 일이다. 나는 환상을 진화론적 체계로 본다. 진화론은 자연 속에서 돌연 변이가 계속 일어난다는 점을 밝혀 냈지. 자연은 이러한 돌연 변이 중 소수만을 필요로 한다. 즉 소수만이 살아남는다는 거지.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가 영감을 받았을 때, 그리고 많은 새로운 관념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생각의 돌연 변이가 우리 의식 속에서 계속 출현한다. 우리가 엄격한 검열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많은 생각들 가운데 소수만을 실제로 적용한다. 여기서 이성이 자기의 권리를 행사한다. 낮의 노획물이 식탁에 놓이면, 우리가 취사 선택하는 것을 잊지 않듯! 643

환상은 참된 의미에서 선택을 행하지는 못한다. 환상은 조합하지 못한다. 모든 예술 작품은 조합이다. 그런데 조합이란 환상과 이성, 느낌과 생각 사이의 놀라운 합작에서 생긴다. 창조적 과정에는 언제나 우연적인 요소가 있다. 그런 과정의 어떤 단계에서는 우연적인 착상들을 차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양들도 우리에 모아 들이기 전에 먼저 풀어 놓아야 하는 법이다 644

나는 원래 환상이 우리 철학자등레게도 중요하다고 말하려고 했다. 새로운 사실을 생각하기 위해서 우리는 걷도록 내버려두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러내 내가 약간 애매하게 표현한 것 같구나 644

자기 자신의 꿈을 고통스럽게 의식하고 있을거다. 그 자는 우리가 말하고 행동한 모든 것에 경도되어 있다. 꿈꾸는 사람이 꿈의 명시적 내용을 기억하는 것처럼. 그러면서 그 자는 글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자는 우리가 서로 이야기한 것을 기억할 때조차도 온전히 깨어 있는 건 아니란다. 그 자는 꿈의 잠재의식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는 그것도 역시 변장한 꿈이라는 것을 잊고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의 꿈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리고 그런 일에 대해서 우린 기뻐해야 한다 645

그 사람을 생각해보렴. 그러면 그도 너를 생각할거다 646

우리들의 시대 _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았는데...

의식이란 무엇일까? 우주의 가장 큰 수수께끼 중 하나가 아닐까? 기억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가 보고 경험한 모든 일을 생각나게 할까? 무엇이 우리가 보고 경험한 모든 일을 생각하게 할 까? 거의 매일 밤 동화같은 꿈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는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648

이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들의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657

인간의 실존적인 상황에 근거를 둔 몇 가지 철학 사조들을 한데 묶어 20세기의 실존철학이라고 한다 658

독일의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니체의 철학은 헤겔 철학과, 그것에서 출발한 독일 ‘역사주의’에 대한 반동의 성격을 갖는다. 니체는 헤겔과 그 추종자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실은 살아있는 역사에 대한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했고, 그 관심을 삶 자체에 돌렸다. ‘가치전도’에 대한 그의 주장, 특히 그가 ‘노예의 도덕’이라고 한 기독교 도덕의 전복을 요구한 것이 유명한데, 그것은 강자의 삶의 실현이 더 이상 약자 때문에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니체는 ‘대지에 충실하라. 그리고 초현실적인 희망을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고 말했지 659

샤르트르(1905~1980), 실존주의의 대표자로 여겨짐. 그는 생의 반려자인 시몬느 드 보봐르도 한 까페에서 알게 되었다 659

샤르트르는‘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고 했지. 실존주의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근거를 두고 있다는 말이지. 사르트르의 인본주의는 르네상스 시대에서 우리가 공부한 인본주의와는 달리 더욱 우울한 모습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대표적인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였다. 그의 철학은 신이 죽어버린 상황에서 인간의 실존을 냉혹하게 분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존’이란 단순히 현재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식물과 동물도 현재 있는 것이고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지는 않는다. 인간은 자기의 존재를 의식하는 유일한 생물이지 660

인간의 존재는 존재가 처한 그때 그때의 의미에 선행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무엇’이냐는 것보다 내가 ‘있다’는 것이 앞서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고 했다. ‘본질’이란 어떤 것이 원래 무엇인가 하는 것, 그러니까 어떤 것의 본성을 뜻한다. 그러나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원래 그런 본성이 없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본성, 자기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 661

전체 철학의 역사에서 철학자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또는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다. 반면에 사르트르는 인간에게는 인간이 되돌아 갈 그런 ‘영원한 본성’이 없다고 했지. 따라서 사르트르에게는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 역시 대체로 무의미했다. 즉 우리는 즉흥연기를 맡은 배우라는 거다...우리는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661

사르트르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또 자기가 언젠가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식할 때, 그리고 삶에 대해서 아무 의미도 인식할 수 없을 때 불안을 느낀다고 말했지. 키에르케고르에게도 불안이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표현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음을 기억하고 dTrpT지?

사르트르는 또 인간은 세계에서 무의미하게 소외되어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사르트르는 세상에서 낯선 이로 존재한다는 인간의 느낌이 회의, 권태, 구토, 부조리의 감정을 유발한다고 했지 662 ★★★

사르트르 자신은 인간의 자유를 저주로 체험했다. 그는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았다’고 썼다. 인간은 선고받은 존재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창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롭다. 왜냐하면 인간은 한 번 세상에 던져지면 자기가 한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662

우리는 자유로운 개체다. 우리의 자유는 우리로 하여금 전생애 동안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선고를 내렸다. 영원한 가치나 규범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만큼 우리 자신의 결정과 선택이 더욱 중요하지.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을 결코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부인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해야만 했다거나 어떤 특정한 시민 사회적 생활방식에 순응해야만 했다는 식으로 변명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익명의 대중 속에 휩쓸려 사는 사람은 인격을 상실한 군중의 일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참된 자기에게서 도피해 거짓된 삶으로 숨어 버린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는 무엇인가를 우리 스스로 행한 것을, 즉 참되고 본래적인 실존을 영위할 것을 명령한다 663

삶이 자기 안에 내재하는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그 말에 그에게 아주 적합한 표현은 아니었다. 그는 허무주의자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고 또 모든 것이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허무주의자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삶이 의미를 가져야만 한다고 보았다. 그것은 명령형이다. 우리 자신도 우리 삶의 뜻과 의미를 창조해야만 한다. 그래서 실존이란 자신의 현존을 창조하는 것이다...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감각할지 결정하기 위해 스스로 기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주위 세계를 지각할 때 우리의 의견이나 관심을 개입시키기 때문이다 664

사르트르는 우리가 우리에게 의미가 없는 것을 어떻게 無化시키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바로 그런 카페 방문을 이용했다...네가 사랑에 빠져 네 연인의 전화를 기다린다면 너는 아마도 저녁 내내 그 연인이 전화하지 않는 걸 ‘들을거다.’ 바로 그가 전화하지 않는다는 걸 너는내내 확인하는 거다 665

시몬느 드 보봐르는 실존주의를 성 역할을 분석하는데 적용하려고 했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영원한 본성을 부인했다. 우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창조해야 한다. 시몬드 드 보봐르는 영원한 ‘여성성’이나 ‘남성성’은 없다고 지적했지. 그러나 전통적인 인간 이해는 그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종래에는 남성이 초월적인 본성, 즉 한계를 넘어서는 본성을 가졌다는 주장이 반복되었다. 그런 까닭에 남성은 자기의 집 밖에서 삶의 의미와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거지. 여성에 관해서는, 그들이 정반대의 경향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은 내재적이어서, 그들이 이미 있는 곳에 늘 있으려 한다는 거지. 그들은 가정이나 자기 주위 가까이에 있는 일들을 염려해야 하고 또 그러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부드럽고 섬세한 일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적합하다는 식의 말을 들을 수 있지. 그런 말 역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일종의 본질적인 구별에 기초하고 있다. 시몬느 드 보봐르는 여성과 남성이 그런 뿌리 깊은 선입견이나 관념에서 무조건 해방되어야 한다고 믿었지 666

1949년 <제2의 성>, 여성은 인간의 역사에서 겨우 ‘제2의 성’으로 간주되어 왓다는 거지. 남성만이 주체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여성은 남성의 객체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여성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상실한다. 그녀는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되찾아야 한다고 했단다. 여성은 자신을 되찾아야 하며 자기 남편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쉽사리 넘겨주지 말아야 한다는 거지. 왜냐하면 남성만이 여성 자신을 스스로 억압하는 게 아니라,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떠맡지 않으면, 여성도 여성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667 ★★★

실존주의는 전체적으로 사십 년 동안 유럽의 문학을 지배했다. 프랑스의 알베르 카뮈, 아일랜드의 사무엘 베케트, 루마니아의 유진 이오네스코와 폴란드의 비톨드 곰브로비츠가 있지. 이들은 비롯한 많은 현대 작가들의 특징은 부조리한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다 667

부조리극은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을 보여주려 한다. 그런데 이 때 부조리극은 관객이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응하기를 바란다. 부조리극의 목표는 부조리한 것이나 무의미한 것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관심 없이 지나쳐 버리는 부조리한 상황을 묘사하고 폭로해서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하고 본래적인 현존의 가능성을 깊이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부조리극은 종종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상황을 소재로 한다. 즉 그것은 인간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그러나 만약 아주 평범한 아침에 아주 평범한 가정의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정확히 그대로 무대위에 올린다면,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릴 것이다. 이 웃음은 자기 자신의 우스운 꼴이 무대 위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데 대한 저항으로 해석할 수 있지 668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의 희극성은 자기에게 일어난 여러 가지 부조리한 사건들을 보고도 채플린이 놀랄 줄 모르는 데 있다.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웃고는 자기의 놀라움과 저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매우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668

때로는 비록 내가 어디로가야 할지 아직 알 수 없어도, 어떻든 여기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 수도 있다 668

실존주의 철학의 뿌리는 키에르케고르와 소크라테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와 비슷하게 과거의 다른 철학 사조들도 20세기에 부활해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누리지. 예를 들어 신토마스주의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전통에 속하는 사상의 재발견이었다. 소위 분석 철학이나 논리적 경험론은 흄과 영국의 경험론,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서 유래했다고 할 수 있지. 또한 20세기에는 네오마르크스주의와 거기서 파생된 많은 사상 조류들이 유행했다.

우리가 언급해야 할 마지막 사조는 유물론, 그 뿌리도 역시 역사적으로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669

사르트르는 실존적인 의문이 최종적인 대답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한 점에서 옳다. 철학적인 물음은 그 물음의 본질상 각 세대의, 모든 개인이 언제나 새로이 제기해야 할 물음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의문을 제기할 때, 우리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 아니겠니? 인간이 큰 문제에 대한 대답을 추구할 때, 비로소 작은 문제에 대한 명석하고 최종적인 대답을 찾게 되는 것 아니겠니? 과학과 연구와 기술은 모두 언젠가 철학적인 반성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겠니? 그리고 인간을 끝내 달에까지 보낸 것은 근본적으로 존재에 대한 인간의 경이가 아니었니? 670

우리 시대에도 많은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무엇보다도 환경 문제가 우리 시대에 제기된 중요한 문제다. 그리하여 생태철학이 20세기의 중요한 철학 조류의 하나가 되었다 671

생태철학은 서구적 사유 전체가 무엇인가 결함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특히 진화의 관념을 문제시했다. 진화론은 인간이 자연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는 생각, 그러니까 우리가 자연의 주인이라는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지. 많은 생태학자들은 이런 사고를 비판하면서 다른 문화, 예를 들면 인도의 사고와 관념을 끌어왔다 671

학문적 영역에서도 최근에는 우리의 학문적 사유 전체가 구조적 변혁 앞에 서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즉 우리가 학문적 사유 일반의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우리는 그런 것의 예를 전체적 사유에 무게를 두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소위 ‘대안적 운동’에서 볼 수 있다 672

새롭다는 것이 모두 좋은 것이 아니며 옛것이라고 해서 모두 내버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이 철학 수업을 하는 거다. 너는 이제 우리 사고의 역사적 배경을 알고 돌과 보석을 더 쉽게 가려 낼 수 있을 거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할 때 스스로 어떤 삶의 방향을 정립하려고 노력한다면, 더 쉽게 그 일을 할 수 있지 672

참된 철학과 이런 책들의 관계는 쉽게 말해 참된 사랑과 도색 잡지 사이의 관계와 같다 675

사람들은 자기들이 힘든 일상을 몰아 낼 만한 다른 어떤 것, 즉 신비한 것을 동경하기 때문이다. 矯角殺牛인 셈이지 676

우연은 늘 있단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우연을 ‘모아들이는 게’ 문제다. 그들은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모아들이지. 수십억 사람들의 삶에서 그런 일들을 모아 책을 내면, 어떤 사람에겐 무시 못할 증거로 보일거다 677

프로이트는 이미 우리 자신이 우리의 무의식에 대한 일종의 영매라고 했지 678

이런 영매를 모두 사기꾼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 중 몇몇은 아마 자기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영매 노릇을 할 거다. 또한 그들은 진짜로 영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기 자신의 잠재의식의 영매일 뿐이다 679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특이한 일은 대개의 경우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단다. 언뜻 보기엔 우연한 일인 듯이 보이는 이런 일에도 실은 객관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전화를 받은 그 순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내가 친구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같이 들었던 노래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이런 숨겨진 연관관계를 의식하지 못할 뿐이지 679

‘초자연’이란 표현이 내게는 조금 우스꽝스럽게 들리는구나. 나는 오직 하나의 자연이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자연은 그 자체로서 엄청나게 경이로운 것이다 680

참된 철학자는 모두 눈을 뜨고 깨어 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흰 까마귀를 전혀 보지 못했을 때라도 우리는 그걸 찾는 일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언젠가는 나와 같은 회의론자가 이전에 믿으려고 하지 않았던 현상을 인정할 수도 있을거다. 이런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는 독단론자일거야. 그렇게 되면 나는 참된 철학자가 아니겠지 680

가든 파티 _ 흰 까마귀

힐데가 가장 놀란 것은 검은 머리 소녀였다. 소피, 소피! 도대체 너는 누구니? 너는 어디서 왔니? 너는 왜 이렇게 나의 삶에 끼어들었지? 683

참된 철학자에겐 이상한 질문이란 없습니다 691

실존적 재해...우리는 자신의 존재 전체가 붕괴되는 일에 대비해 보험을 들 수는 없습니다 697

기성 세대인 우리가 학교와 교회와 더불어, 미래의 세대이며 언젠가 우리의 모든 소유물을 물려받을 차세대에게 심어주려고 하는 건전한 관점들을 파괴시키려고 합니다 698

우린 소피 엄마도 다른 어느 누구도 보고 싶지 않을 거예요. 그것은 여기에 여러분 모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우리를 그리워할 이유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699

대위법 _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멜로디가 동시에 울려퍼진다

서로 다른 멜로디가 함께 어울려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을 대위법이라고 한다. 원래 그 말은 음표 대 음표라는 뜻이야 708

참된 철학자는 ‘결코’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709

우리에게 속한 사람들은 본다 711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공기 같은 허구란다 717

여기서는 대개 이야기로 갚지. 커피 값으로 짧은 이야기 하나면 충분해 721

우리는 ‘보이지 않는 민족’이야 729

빅뱅 _ 우리 또한 별들의 먼지에 지나지 않는 것을 731

우리가 우주를 바라볼 때는 과거를 보는 셈이다. 우리는 이 우주가 ‘현재’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우리가 수천 광년 떨어진 별 하나를 올려다볼 때, 우리는 우주의 역사 안에서 사실상 수천 년 전으로 돌아가 여행을 하는 것이거든 733 _ 사람도 마찬가지 일지도 몰라...

약 150억년 전 어느 때에 우주의 모든 원소가 아주 작은 한 공간에 모이게 되었다. 그 물질은 매우 높은 밀도를 지니고 있었고, 중력과 열 또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결국 한 순간에 모든 것이 폭발했지. 이 폭발을 ‘대폭발’, 영어로 ‘빅뱅’이라고 한다 735

아마 이 정원에도 ‘행간’에 숨어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 거예요 741

사람이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원래 수천, 수백만년 된 우주의 화석이라는 것이다. 점성술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과거’를 예언하는 것뿐이다 741

우리가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로 가는 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란다 742

우리는 수십억 년 저에 점화된 거대한 불의 불꽃이다 743

참된 철학자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우리가 여기 이걸 풀 수만 있다면...743

너는 소피가 또 일을 해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744

옮긴이의 말

‘이야기’로 들려주는 철학사 745

단순히 소설만은 아니며, 또한 철학에 관한 책만도 아닌, 철학 정신에 관한 역사적 배경을 그린 책 745

‘소피’의 이야기가 물을 머금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우리의 가슴이 보다 예지로운 삶의 열매를 보듬게 되기를 희망한다 746

감수한 이의 말

철학은 본시 개념을 통해 말하는 반면 문학은 이미지를 통해 말하는데, 한 사람이 이 두 가지 능력을 같이 갖기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플라톤의 <잔치(Symposium)>처럼 철학적 사변과 예술적 형식이 완벽히 조화된 작품을 쓰는 것은 플라톤 같은 천재에게만 허락된 예외적인 행운이었다 747

작가는 철학적인 사색의 길이 비로 고통스런 정신의 노동과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다른 곳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아름다움과 기쁨이 있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줌으로써 읽는 이의 마음 속에 철학적 삶과 태도에 대한 자연스런 동경을 불러 일으킨다 748

일상성 속에 빠져 있는 의식을 일깨워 자기에게 가장 익숙하고 자명한 듯이 보이던 것, 바로 자기 자신과 주변 세계의 존재를 도리어 끝없이 낯설고 불가사의 한 것으로 체험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이 이룰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성취의 하나이다 749

3. ‘내가 저자라면’

이야기라는 당의를 입은 철학 개론서 <소피의 세계>, 재미있는 전개덕에 서양철학사의 흐름을 한 호흡에 섭취할 수 있었다. 작년 <서양철학사>를 통해 실현해보려다 좌절된 꿈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고맙고도 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감수자는 저자를 플라톤에 비견된다 말하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고 있지만 나로서는 저자의 재능 역시 놀라울 뿐이어서 플라톤과 굳이 차등을 둘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 얼마나 더 열심히 공부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걸까?

그렇다고 넘 기죽을 건 없다. 쫄지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거다! 우선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철학적 렌즈로 내 삶을 해석해보는 것부터 출발하는 건 어떨까? 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아 메워가는 작업을 계속하다보면 비판적 여과없이 동서고금의 온갖 사상에 동등한 자격을 부과한데서 비롯된 나의 정신적 혼란과 무질서를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실타래를 풀어가다보면 삶도 철학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그날이 성큼 다가와주지 않을까?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하지 못할 이유는 또 어디에 있겠는가?

돌이켜보라. 길이 막힌다고 목적지에 이르지 못했던 적이 있었던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다면 분명 결국은 목적지에 도달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러니 ‘결과’에 대한 의심으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어쩌면 우리의 삶의 완성도는 목적지에 도달했는가 여부보다는 가는 길을 충분히 즐겼는가에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한발짝 한발짝 길과의 스킨십을 만끽하며 오늘만큼 길을 즐기는 것 뿐 아니겠는가?

IP *.237.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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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2011.06.18 00:20:20 *.35.19.58
대학 때 은사님이 번역한 책이라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역시 좋은 책인가봐요.
맞습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목적지에 닿게 될거예요.
연구원 1년차 과정과 같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길을 걷는 모습 참 보기 좋아요.
저도 응원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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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6.18 10:48:01 *.237.209.28
응원 고맙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꾸준히 가보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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