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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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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9일 20시 48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frame01.jpg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1749 8 28,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태어났다. 귀족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넉넉한 중산층 집안에서 자라나며 어려서부터 문학과 예술을 가까이 접했고 8세에 신년시를 지어 조부모에게 선물하고 13세에 첫 시집을 낼 정도로 조숙한 문학 신동이었다. 괴테는 아들의 교육에 헌신적인 아버지의 덕으로 어려서부터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불어, 영어, 아탈리아어 등을 배웠고 그리스 로마의 고전문학과 성경 등을 읽었다.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20대 초반에 변호사로 개업했지만, 괴테의 관심은 이미 법률이 아니라 문학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여러 문인과 교제하고 광범위한 독서에 몰두하며 시와 희곡 등을 습작한다. 1767년에 첫 희곡 <연인의 변덕>을 완성했고 1770년 슈트라스부르크 대학 재학 당시 헤르더를 통해 호머, 오시안, 그리고 특히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에 눈을 떴으며, ‘질풍노도 운동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1772년에 괴테는 업무상 베츨라의 법률 사무소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던 중 요한 케스트너라는 새친구를 사귄다. 케스트너에게는 샤를로테 부프라는 약혼녀가 있었는데 괴테는 첫눈에 반해 그녀를 짝사랑하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괴테는 얼마 뒤에 한 친구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자살했다는 비보를 전해 듣는다. 이 소재에 자신의 체험을 섞어서 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은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괴테는 20대 중반의 나이로 하루아침에 유명 작가가 된다.

 

1775년 괴테는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이후 제2의 고향이 된 바이마르로 향한다. 인구 6천명의 이 작은 공국의 신임 군주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은 괴테를 전적으로 신임하여 국정을 맡긴다. 괴테는 행정가로 국정에 참여하여 교육, 재정, 건설, 군사, 산림 등 온갖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였고 식물학, 해부학, 광물학, 지질학, 색채론 등 인간을 설명하는 모든 관심을 기울였다. 성공적인 공직 수행에도 불구하고 괴테의 내면에서는 예술을 향한 갈증에서 비롯된 불안아 나날이 커지고 있었다. “나는 날개를 가지고 있지만 써먹을 수는 없다.” 지적인 애인 샤를로테 폰 슈타인이나 당대의 지식인 헤르더와의 교제도 그의 욕구 불만을 해소시키진 못했고 급기야 괴테는 바이마르 생활 10년 만에3년 동안의 이탈리아 여행을 감행한다. 괴테는 이탈리아의 주요 명소를 돌아보고 한동안 로마에 머물면서 느긋이 휴식을 취한 다음 1788년 여름에 바이마르로 돌아왔다. 이때의 경험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괴테의 인생에서 증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본 수많은 고전 예술품의 미적 기준을 이상으로 삼은 특유의 고전주의적 예술관이 확립된 것은 물론이고, 이 여행을 통해 크게 변모된 괴테의 내면을 이해하지 못한 옛 친구들과의 결별이 이어지며 긴 고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괴테는 실러라는 또 다른 독일 문학의 거장과 교류함으로써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셈이 되었다. 179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두 사라의 우정은 급기야 실러가 괴테를 따라 바이마르로 이주하기 이르렀다. 두 사람은 <크세니엔>(1795)이라는 풍자시를 공저했고,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며 집필을 독려했다. 희곡 <타우리스섬의 이피게니에>(1787) <에그몬트>(1788) <토르크바토 타소>(1790), 그리고 독일 교양소설의 전형인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1796) 등이 이 시대를 전후해 나온 괴테의 작품들이다.

 

1805년 실러가 46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하자 괴테는 존재의 절반을 잃은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환갑을 맞이한 1809년부터 사망 때까지 20여 년간 비교적 평온한 삶 속에서 괴테의 창작력을 절정에 달했다. 희곡 <파우스트> 1(1808), 소설 <친화력>(1809), 자서전 <시와 진실> 1~3(1811~13), 기행문 <이탈리아 기행>(1816), 시집 <서동시집>(1816) <마리엔바트의 비가>(1823),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9), <시와 진실> 4(1830) 등이 모두 이 시기의 작품이다.

 

1825년 괴테는 <파우스트> 2부의 집필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6년 뒤인 1831년에 드디어 탈고했다. 하지만 그는 간행을 서두르지 않았고, 원고를 봉인한 뒤에 자신의 사후에 발표하도록 지시했다. 평생의 역작을 완성한 이상, 이제는 자신의 최후가 가까웠음을 실감했기 때문일까? 이듬해인 1832 3 22일 괴테는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바이마르의 한 묘지에서 평생의 지기였던 실러 곁에 누웠다. 사망 다음 날 괴테의 유해를 본 에커만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평안한 기색이 고귀한 얼굴 전면에 깊이 어려 있었다. 시원한 그 이마는 여전히 사색에 잠겨 있는 듯했다.” 괴테는 독일문학사에 괴테시대’(질풍노도 시대에서 고전주의 시대를 거쳐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는 시기)라는 명칭을 남길 만큼 생애 자체가 곧 일국의 문화사로 평가 받고 있다.

 

[참고자료]

네이버 캐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500

<괴테자서전 시와 진실> 저자 소개

 

괴테 자서전을 읽으며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괴테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괴테가 아버지의 서재에 대해 묘사해 놓은 부분을 읽으며 나의 아버지의 서재와 나의 서재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물론 나의 아버지는 서재라는 것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다. 아버지가 신문을 읽는 모습은 자주 보았지만 책을 들고 계신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서재가 없다. 새집으로 이사가면 하나 만들어볼 생각이다. 괴테 아버지의 교육열이 괴테의 인생과 문학에 끼친 영향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지금 우리 아이들의 교육에 얼마나 열성적인가 반성해본다.

 

괴테는 아들의 교육에 열정적인 아버지 덕에 공부도 많이 했지만 여행도 많이 했다. 괴테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열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영향으로 괴테는 약 3년간 이탈리아 여행을 했고 그 이후 특유의 고전주의 예술관을 확립할 수 있었다. 사람은 두 가지로부터 배운다고 한다. 자신이 읽는 책과 만나는 사람. 괴테는 책을 읽고 여행에서 사람을 만나서 배워나갔다. 괴테는 또한 교양을 쌓기 위해 이런저런 취미생활도 많이 했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림을 자주 그렸으며 음악, 무도, 승마, 펜싱 등을 했다고 한다. 그의 자서전을 읽으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세어 보면 몇 명이나 될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자선을 쓰게 된다면 그 등장인물은 또한 몇 명이나 될까?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문구

 

1부  한 꺼풀 벗겨지지 않은 인간은 교육되지 않는다.

 

서언

 

P11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열정적으로 자신의 길을 가는 만큼 길을 잃고 헤매지 않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요청을 조급하게 거부해 버리는데 비해, 나이가 들면 오히려 그러한 관심이 우리에게 자극을 주어 고맙게도 새로운 활동을 촉발해 주지나 않을까 하고 소망하기 때문이다.

 

P12 개인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시대를 잘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1

 

P20 이탈리아의 언어며 이탈리아에 관계된 모든 것에 대한 아버지의 애착은 편견에 가까울 만큼 유별났다.

 

P37 맨 먼저 정돈한 것은 아버지의 장서였다. 그중에서 가죽 장정 혹은 반가죽 장정으로 묶인 제일 좋은 책들은 아버지의 서재와 연구실 벽을 장식하도록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라틴 작가들의 책을 아름다운 네덜란드판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보기에 들쭉날쭉하지 않도록 전부 4절 크기로 마련했던 것이었다. 고대 미술품에 관한 책과 품위 있는 법률서가 많았다. 최상의 이탈리아 시인들이 빠지지 않았는데, 특히 타소에 대해서 아버지는 각별한 애정을 보이셨다. 최상급의 최근 여행기들도 있었는데, 아버지는 몸소 카이슬러와 네마츠의 작품들을 정정하고 보완하는 일을 낙으로 삼으셨다. 꼭 필요한 보조 서적들도 적잖이 곁에 두셨다. 다양한 언어의 사전들이며 백과사전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도록 가까이 두셨으며, 또 유익함과 즐거움을 주는 다른 많은 책도 곁에 두셨다.

è  나의 아버지의 책 읽는 모습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집엔 서재라는 것이 없었고 물론 아버지의 책들도 없었다. 나는 나의 서재를 만들고 싶다.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도 읽고 이야기도 하고 싶다. 괴테의 천재적인 문학성에는 아버지의 불타는 교육열의 기여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P38 아버지에게는 자주, 심지어 열정적으로 토로하던 원칙이 있었는데, 살아 있는 대가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고, 작고한 대가들에게는 그 평가에 선입견이 아주 많이 끼어들게 되는 만큼 주의를 덜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P42 자신이 이루지 못한 일이 아들 세대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것은 모든 아버지들의 숙원이다. 이를테면 마치 두 번째 인생을 살면서 첫 번째 인생의 체험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이용해 보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è  나도 부모가 되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자녀에게는 자칫 이런 모습이 자녀의 꿈이 아닌 부모의 꿈을 이루려는 과도한 욕심으로 비춰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나더러는 같은 길을 가되 좀 더 편안하게 멀리 가라는 것이었다.

 

P53 할아버지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중요한 꿈을 통해 계시를 받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다.

 

P57 내 고해신부로 말하자면 아주 고귀하신 분이지. 다름 아니라 바로 다윗 왕의 고해신부라네.

 

2

 

P80 여자애의 손찌검에는 우악스러운 입맞춤이 제격이라고 늘 들어온 나는 그녀의 두 귀를 잡고 연거푸 입맞춤을 해버렸지.

 

P84 그렇게 해서 나는 인간이란 아주 단순하고 쉽게 토론되는 문제에 있어서도 한껏 어긋나는 견해들을 가질 수 있고 주장할 수 있다는 예를 일찌감치 보았다.

 

P85 사람들이란 유약함과 환상적 즐거움에 탐닉하는 대신, 불가피한 화를 견뎌내든지 아니면 그것들에 맞서기 위해서 스스로 단단해질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또 다시 인지하게 되었다.

 

P87 나는 차후로는 조금만 모욕을 당해도 어느 놈이든, 아주 목졸라 죽이지 않으면 눈알을 후벼 파내고 뜯어내겠다고 선언했다.

 

인간이 다른 삶들은 어떠하며 자신도 인생에서 무얼 기대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고,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하든 간에, 그 일은 자신이 특별히 행복하거나 불행한 사람이기에 닥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닥쳐 드는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는 사실이야말로 바로 그런 도덕적 이야기들이 전하는 풍부한 교훈이기 때문이다. 그런 앎이 화를 피하는데는 별로 쓸모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상황들을 발견하고 견뎌내고 실로 극복하기를 배우는 데는 매우 쓰임새가 있다.

 

P89 우리 아버지는 어느 귀족의 사생아인데, 저 선량한 시민인 우리 할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해주겠다고 나섰다는 것이었다. (중략) 우리 재산은 외할머니한테서 받았을 뿐이라는 둥, 프리트베르크나 다른 어디 있는 나머지 방계 친척들 역시 재산이 없다는 둥, 그리고 뭔지 그 의미가 그저 악의에서나 비롯될 수 있는 그런 주장이었다.

 

P90 그 점도 나한테는 괜찮겠다고, 인생이란 누구 덕에 자기가 사는지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을 만치 멋진 거라고, 왜냐하면 결국 인생이란 신에게서 받은 것이며 신 앞에서 우리 모두는 평등하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그애들은 자기들이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쯤 해두고 놀았다.

 

P91 사람의 몽매함을 내면적으로 강화시켜 주며 그의 남모르는 허영에 아첨하는 모든 것을 인간은 얼마나 바라는지, 혹여 그것이 자기에게 그 어떤 식으로든 명예가 될 수 있는지 치욕이 될 수 있겠는지 더 이상 묻지 않는다는 말은 정녕 사실인 것이다.

 

P94 아버지는 직책을 가지는 일이 불가능하도록 궁정 고문관이라는 직함을 마련하였는데, 그것은 시장이나 가장 연장자인 배심원들이 특별한 명예의 칭호로 가지는 직함이었다.

 

P104 그렇게 어린이들과 민중은 위대한 것, 고결한 것을 놀이로, 심지어 익살극으로 변모시키곤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그들이 그런 것을 지속시키고 감당해 낼 수 있겠는가!

 

3

 

P118 소녀들이란 자기보다 어린 소년들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훨씬 어른답다고 망상하고 청년들만 쳐다보면서, 자기들에게 첫 애정을 쏟는 소년들에 대해서는 아주머니 같은 몸가짐을 하는 법이다.

è  괴테의 분석이 참 재미있다.

 

P122 그런데 뭣 하러 이렇게 시끄럽게 구시죠? 오늘은 홍안이어도 내일이면 백골인데!

 

P135 인간이란 자기가 그걸 해낼 수완이 있든 없든, 누군가 하는 것을 보면 본 것을 차리리 스스로 해보려 한다.

 

4

 

P150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미 나는 자연물에 대한 연구욕을 느꼈다.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들 역시 합치고 연결시키는 것보다는 자주 가르고 나는 것을 통하여, 살리기 보다는 오히려 죽이기를 통해 배운다고 믿기 때문이다.

 

P163 인간이란 자기가 원하는 곳을 향하고 무엇을 행하든 간에, 언제나 자연이 그에게 한번 지시한 저 길로 되돌아오는 것 같다. 현재의 내 경우도 그렇게 되었다. 언어를 얻기 위한, 성서의 내용 자체를 얻기 위한 노력은 저 많이 칭송되는 아름다운 땅과 그 주변 인간에 대하여 또 지구의 저 지점을 수천 년 동안 빛내온 민족들과 사건들이 내 상상력 속에서 더욱 생생한 표상이 되어 나오는 것으로 귀착되었던 것이다.

 

P182 아버지는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 자체를 유일한 목적으로, 끈기 있게 버텨내는 것을 유일한 미덕으로 여기시는 거처럼 보였다.

 

P204 나로 말하면, 나도 무언가 비상한 것을 이루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일지는 도무지 분명해지질 않았다. 그렇지만 사람이란 이를 공적보다는 받을 대가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 소망할 가치가 있는 행운을 생각할 때면, 시인을 장식하기 위해 엮인 월계관의 모습이 가장 매력적으로 나타났다는 것 또한 부정하지 않겠다.

 

5

 

P234 본성상 어느 정도 조화롭게 이루어진 한 젊은 쌍에게는, 여자가 배우고 싶어 하고 청년이 학식이 있을 때 이상으로 아름다운 결합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법. 그런 데서 근본적이고도 유쾌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P250 프란츠 1세의 대관식에 참석한 바 있는 더 나이 든 사람들 이야기로는, 그때는 굉장히 아름다운 마리아 테레지아가 뢰머 바로 옆에 있는 프라우엔슈타인 가옥의 발코니에서 저 축전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런 모습 가운데서 모든 그리스도교 중에서 가장 지고한 한 쌍의 선하고 자연스러운 부부 관계의 진면목을 눈으로 보고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è  마리아 테레지아란 여인을 괴테 자서전에서 발견했다. 합스부르크가의 유일한 상속인으로 로트링겐 공 프란스 슈테판과 결혼해 그 남편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시키고 실질적인 정치를 한 여인. 그녀는 혹시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남편에게 지극정성으로 대했고 아이를 16이나 낳아 10명을 살려 길렀다고 한다. 김정미 씨가 쓴 <역사를 이끈 아름다운 여인들> <세계사 여자를 만나다>를 읽어 봐야겠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관계'라는 키워드의 롤 모델로 삼을만 할 것 같다.

 

P256 나는 팔츠 가문의 하급 직원이 보이기에 그 사람한테 나를 함께 통과시켜줄 수 있겠느냐고 말을 걸었다. 그는 오래 생각해보지 않고 마침 들고 있던 은그릇 중 하나를 나에게 주었다.

è  어린 시절 괴테는 참으로 대담했던 것 같다.

 

P257 나의 애인을 만났을 때 벌써 도시는 곳곳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그레트헴에게 팔을 내밀고, 우리는 여러 공사의 숙소를 이리저리 구경했으며, 함께 매우 행복했다.

 

P259 그레트헨의 곁에서 나는 정말로 저 행복한 낙원의 땅을 거니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수정 그릇을 나무에서 따면 그것이 금방 원하는 술로 채워지고, 과일들을 흔들면 뭐든 원하는 음식으로 변하는 저 낙원 말이다. (중략) 그레트헨을 그녀의 집 앞까지 바래다 주었을 때 그녀는 내 이마에 키스하였다. 이런 호의를 그녀가 내게 증명해 보인 건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 저녁 이후 다시는 그려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è  , 첫사랑의 달콤함이여! 그 달콤함으로 역시 오래가지 못하는구나!

 

P267 마지막에 그레트헨 이야기를 할 때면 사람들이 가장 오래 주저했는데 나 또한 그것을 좋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자발적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치욕적으로 추방당한 것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런 말들로 내 육신과 정신의 상태가 나아지지는 않았다. 즉 괴로움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나로 말하자면 그 뒤로 오래도록, 슬픈 사건과 불가피한 파국으로 이루어진 기이한 소설을 자학하며 그려내고 또 그려내었다.

 

2부  젊은 시절에 소망한 것은 노년에 풍성하게 이루어진다.

 

6

 

P274 그녀가 서류에 나를 어린아이라고 선언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끔찍하게 불쾌한지, 그녀에 대한 모든 열정으로부터 내가 단번에 치유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나보다 기껏 몇 살 더 많은 여자가 나를 어린아이로 여겼다는 것이 참을 수 없게 느껴졌다. 아주 똑똑하고 노련한 청년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믿었던 나를 말이다. 전에는 나를 그토록 자극했던 그녀의 냉정함과 쌀쌀함이 이제는 아주 거슬리게 느껴졌다. 자기 자신은 내게 그렇게 하면서도 내게 그렇게 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던 허물없는 태도들도 아주 미웠다.

è  괴테가 이런 생각을 하는걸 보면 그는 첫사랑에 빠진 시절 어린아이가 맞았던 것 같다.

 

P276 종교와 시에 철학이 이미 완전하게 포함되어 있는 만큼 분리시켜 낸 철학이란 별도로 필요없다고 내가 주장한 점이었다.

 

P279 ! 왜 이 귀한 장소는 더 깊은 황야에 있지 않는 걸까. 왜 우리는 이 자리와 우리들을 성스럽게 하고 세상으로부터 갈라놓을 울타리 하나를 둘러쳐서는 안 되는가. 확실히 이보다 더 아름다운 신에의 경배는 없으며, 이 경배를 위해서는 어떤 우상도 필요하지 않구나. 자연과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저절로 우리 가슴으로부터 솟아 나오지 않는가! (중략) 확정되지는 않은, 넓게 확장된 젊음의 감정과 교양 없는 백성의 감정 그 둘이 결합되어 드높은 것이 되었다는 것 말이다.

 

P280 내 가슴이 너무나도 호강을 하여 진정이 되질 않았던 것이다. 사랑을 했었는데, 대상을 낚아채인 것이다. 살았는데, 삶이 발육을 정지당한 것이다. 우리를 교육할 생각이 있음을 너무도 명백하게 알아차리게 만드는 친구란 유쾌함을 주지 못한다. 반면 우리를 키워주는 여성은, 우리를 호강시키는 듯 보임으로써 기쁨을 가져오는 천상의 존재처럼 경배된다.

 

P284 사랑이 충만하고 호의를 품고 있기는 하지만 엄격한 아버지는 내면적으로 아주 섬세한 감정을 지녔기 때문에 외면적으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강철 같은 엄격함을 모범으로 보이셨다. 당신 자녀들에게 최상의 교육을 시키고, 터를 잘 잡은 집을 짓고, 정돈하고 유지하려는 목적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반면 어머니는 거의 어린아이 같은 분으로 제일 큰 두 자녀들과 더불어, 또 그들 가운데서 비로소 철이 나면서 성장한 분이셨다. 세상을 건강한 시선을 인지했던 이 세 사람은 생활의 능력이 있고, 현재를 즐기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 가정 안에서 떠도는 갈등은 해가 갈수록 더해갔다. 아버지는 확도 부동하게 중단 없이 당신의 뜻을 따라가셨고, 어머니와 아이들은 자기들의 감정, 자기들의 욕구, 자기들의 소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P304 그렇게 어떤 시절이 되면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하인은 주인으로부터, 호의를 입은 자는 호의를 베푼 자로부터 떠나가게 마련이다. 자신의 두 발로 서고 독립하려는,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그런 시도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언제나 자연의 뜻에 맞는 것이다.

 

7

 

P345 나 개인적으로는 성서를 좋아하고 귀히 여긴다. 왜냐하면 나는 거의 성서를 통해서만 도덕적 교양을 형성해 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건들, 가르침들, 상징들, 비유들, 모든 것이 내게 깊이 흔적을 남겨 이런저런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도록 한 것이다.

 

P348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남겨두는 함에서가 아니라, 활동하고 즐기고 다른 사람들에 여향을 끼치며 즐기도록 자극하는 한에서 의미 있게 남는 법이다.

 

P361 우리에게는 가슴이 언제나 정신보다 가까이 놓여 있고 우리를 창작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리고 정신이야 자구책을 잘 알기에 가슴의 문제들이 나에게는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였었다. 나는 애정의 덧없음, 이간 본질의 변화무쌍함, 도덕적 감각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높이와 깊이에 대해 숙고해 보는 데 있어서 지치는 일이 없었다. 높이와 깊이의 결합은 우리 본성 가운데서 인간 삶의 수수께끼로 성찰 될 수 있으니 말이다.

è  그렇다. 정신보다 가슴이 문제인 경우가 훨씬 많은 듯싶다.

 

P365 현세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결국 우리들 자신의 두 발로 서는 데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P368 내가 신교도로서 배운 바로, 우리는 고해소에 들어가 고백해야 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에 바로 그래서 우리가 가톨릭교도보다 훨씬 훌륭하며, 실로 우리가 고해를 하고자 하더라도 그건 결코 어울리는 일이 아니리라는 것이었다.

 

8

 

P398 정신의 기쁨은 두 가지 방식으로 가장 높게 누릴 수 있으니 바로 관조와 개념을 통해서다. 그러나 관조는 늘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으며 품위 있는 대상을 요구하고, 바로 도달할 수 없는 상당한 교양을 요구한다. 반면 개념은 수용력만을 요청하고 내용을 주며 그 자체가 교양의 도구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가장 탁월한 사상가가 어두운 구름을 뚫고 우리에게로 유도해 주는 저 빛줄기가 최고로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P401 그가 자신의 협소하고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바라보는 명랑한 방식, 고난과 불편함에서 조차도 이끌어내는 농담, 인생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자산이라는 굳건한 확신이 편지를 읽는 사람에게 전달되었으며, 적어도 얼마간 그와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어주었다.

 

P403 그의 자산은 믿을 만한 인간 오성이었는데, 그것은 명랑한 심성 위에 기초하며 균일하고 전통적인 활동 가운데서 편안해 하는 것이었다.

 

P409 지식의 증가는 불안의 증가다.

 

P415 많은 비범한 인물들에게서 그러하듯이 운명이 기이하고 원망스러운 종말에 의해 그를 출중하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P424 내 누이동생은 엄격함과 부드러움이, 고집과 유연성이 아주 특이하게 뒤섞인, 뭐라고 정의내릴 수 없는 존재였고 변함없이 그러했다.

 

P426 바로 그녀(폰 클레텐베르크 여사)의 환담과 서신들에서 <빌헬름 마이스터>에 있는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중략) 그녀의 지극히 사랑스럽고, 실로 어쩌면 유일한 환담거리는 스스로를 관찰하는 인간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도덕적 체험이었다.

 

P429 육신의 구원은 영혼의 구원과 너무도 가까운 관계에 있다.

 

P443 구원이란 오로지 영원에 의해 결정될 뿐만 아니라 영원히 필연적이라고 생각되었다는 것, 실로 구원이 생성과 존재의 전체 시간을 통하여 거듭거듭 갱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모든 종교와 철학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인간이 없이 지낼 수 없는 이 위대한 진리가 다양한 민족들에 의해 다양한 시대에 갖가지 방법으로, 실로 기이한 우화와 심상으로 제한된 가운데서 전승되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우리를 끌어내리고 억누르는 듯 보여도, 그럼에도 신성의 의도를 충족시키고 우리 자신을 끌어올릴 기회를 주고 실로 의무로 만드는 상태에 우리가 있다는 것이 인정되기만 하면 충분하다, 우리가 한쪽에서는 우리 자신을 응집하는 집아의 필요를 느낌으로써 또 다른 편에서는 규칙적인 맥박 가운데서 자신을 벗어나는 탈아를 소홀히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9

 

P455 오스트리아의 황녀,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 길로 해서 슈트라스부르크를 경유하여 파리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P460 현실은 자주, 가끔씩은 픽션이라는 니스 칠을 새로 해야 할 만큼 그 광채를 잃는다.

è  그래서 괴테는 자신의 자서전에 픽션을 가미했나 보다.

 

P484 젊은 시절에 소망한 것은 노년에 풍성하게 이루어진다.

è  나의 절은 시절에 소망한 것이 정말 노년에 풍성하게 이루어질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의 소망이란 우리들 속에 들어 있는 능력의 예감이다. 즉 우리가 이룰 능력이 있는 것을 예고하는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들 바깥에서 그리고 미래의 모습으로 우리 상상력에 그려진다. 우리는 우리가 이미 남모르게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열정적인 선취야말로 진정으로 가능한 것을 꿈꾸어 얻은 현실적인 것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è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싶다. 나의 소망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예감한 것들을 형상화한 것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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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11 한 인간의 이름이란 이를 테면 그저 둘렀다가 아무 때나 벗을 수 있는 외투 같은 게 아니다. 피부 자체처럼 그에게 켜켜로 자라나 있는 완벽하게 맞는 옷과 같다. 그것은 해치지 않고는 깎아낼 수도 벗겨낼 수도 없다.

 

P517 나는 본성상, 그 어떤 사람보다도 감사를 잘 못한다. 받는 선을 잊어버릴 경우 그 순간의 난처함이 주는 느낌이 격렬해서 그것이 나를 아주 쉽게 배은망덕으로 오도할 수 있다.

 

P524 내가 세상을 얼마 안 돌아다녔는데도 벌써 나는 알아차렸다. 여행에서는 물의 흐름을 알아보고, 실로 아주 작은 개울에게도 어디로 흘러가는 거냐고 물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è  이 문장이 단순히 지리학적인 통찰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어디로 나 자신을 흘려 보낼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는 작업 역시 인생에서는 필요할 것이다.

 

P559 인간은 실은 오로지 현재에서 작용하도록 소명을 받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생각해보시기를.

 

3부  나무들은 하늘까지 자라지는 않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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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65 천성이 활동적인 사람은 과도한 계획을 세운 나머지 과중한 업무에 허덕이게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아주 잘 되어 나가다가 결국은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이상이 생겨, 계획에 비해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이다.

è  내 모습을 보고 괴테가 말하는 듯하다.

 

P582 훌륭한 자질을 갖춘 사람은 누구나 교양을 쌓으면 쌓을수록 그들이 이 세상에서 이중의 역할, 즉 실제적인 역할과 관념상의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P584 사람들은 거울을 바라볼 때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신을 느끼고 인정하게 된다.

 

P594 대체로 내가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려면 그 일에서 내가 무언가 얻을 것이 있어야만 했다. 즉 그 일이 성과가 있을 듯 보이게 하며 기대를 품게 하는 무엇인가를 그 일에서 인정할 수 있어야만 했다.

è  괴테 또한 다분히 성취주의자의 성향이 컸던 듯하다.

 

P606 논의하고 토의하는 것은 독일인들의 유전적이자 근본적인 결점이며, 회화하는 것은 프랑스인들의 대표적인 장점으로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있었다.

 

P609 도대체가 독일인들에게는 고상한 취향이 부족하다는 반복된 무례한 주장이었다.

 

P624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자신과 직접 관계되는 부분에 줄을 긋지 않는가? 특히 철저한 교양이 부족한 젊은이들은 훌륭한 부분에서 흥분하게 되는데, 이는 칭찬해줄 만한 일이다.

è  나 또한 괴테 자서전을 읽으며 나와 관계되는 부분에 줄을 치고 훌륭한 통찰력이 보이는 부분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P635 나는 육안이 아니라 심안으로, 나를 향해서 나와 같은 길을 말을 타고 오는 나 자신을 보았던 것이다. (중략) 그러나 신기한 것은, 내가 팔 년 후에 이 꿈에서 보았던 옷을 걸치고, 그것도 일부러가 아니라 우연히 입고서 프리데리케를 다시 한 번 방문하기 위해 이 길을 지나갔다는 것이다.

 

P639 청년은 훌륭하고 선한 것을 비판적인 태도로 조사하거나 분리하려 들지 않고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내버려 둘 때, 그러한 최대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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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49 우리들에게 전승되는 모든 것, 특히 글을 통해 전승되는 모든 것들에서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의 기저, 내용, 의미, 방향이다. 여기에 근원적인 것, 신적인 것, 영향을 미치는 것, 침해할 수 없는 것, 파괴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P655 하만의 모든 발언이 귀결되는 원칙은 이것이다. “인간이 성취하려고 하는 모든 일은, 그것이 행위를 통해서건 말을 통해서건 혹은 그 밖의 어떠한 방법에 의해서 생겨나든지 간에 총체적인 힘의 결집에서 나와야만 한다. 분리된 것은 어떤 것이든 모두 배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

 

P666 프리데리케의 정황에 대한 아픔이 나를 불안하게 하던 그 시기에, 나는 전에 하던 대로 이번에도 또 문학작품을 씀으로써 구제받으려고 했다. 나는 이러한 자학적인 참회를 통해서, 내적 면죄를 받기에 합당하도록 하기 위해 재래의 문학적 고백을 다시 계속했다.

 

P676 인간은 설사 거기서 결과가 나올 만한 어떤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일에 대한 기량만 갖고 있으면 자기가 매일 매일 종사하고 있는 일에만 종사한다.

 

P692 고찰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찰의 대상이 아주 풍성하게 우리 앞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 자기 재능과 타인의 재능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보아야 한다는, 아니 실패해 봐야 한다는 사실을 나에게 너무나 생생하게 확신시켜 주었던 것이다.

 

P698 이 전원시에 풍요한 토지가 산문을 부여했고, 순수한 사랑이 시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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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16 나는 고대에 사람들이 통탄해 마지않았던 신탁의 기만적인 애매성을 경험해야만 했다. 칼이 강물에 잠기는 것은 버드나무 끄트머리 가지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칼이 떨어지는 반동으로 물이 힘찬 분수처럼 위로 치솟는 것이 내게 완연하게 보였던 것이다. 이 현상을 나는 내게 유리하도록 해석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행동으로 내 마음 속에 싹튼 의혹은 그 후 내가 이러한 연습을 더 자주 중단하고 소홀히 하여 결국 내 스스로가 이 신탁의 해석이 들어맞도록 동기를 제공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했던 것이다.

 

P742 내가 위대한 존재의 꽃을 따 모을 줄 알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꼼꼼한 원예가로 여기고 있었다.

 

P753 비탄에 빠지기 쉬운 자는 자연이 준 상처보다 더 많은 상처를 알았으리라. 그의 망상이 비참한 상들을 어둡고 관념적인 가공의 색조와 공포로 그려내는 동안.

 

P761 나는 이제 현실을 문학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마음이 가벼워지고 맑아진 느낌이었으나, 내 친구들은 이 작품을 읽고 혼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문학을 현실로 변화시켜야만 하며, 이런 유의 소설을 모방하여 급기야는 권총 자살이라도 해야만 한다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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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97 나는 나와 라바터의 영향력의 거리를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다. 그의 영향력은 그가 있는 곳에서 나타나고 나의 영향력은 나의 부재중에 나타났던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그에게 불만을 품었던 사람도 가까이에 있으면 그와 친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 작품을 통해서 나를 다정한 사람으로 생각했던 사람은, 완고하고 배타적인 인간에 부딪치면서 큰 환멸을 느끼는 것이었다.

 

P799 신앙에 있어서는 믿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무엇을 믿는가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신앙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커다란 확실성의 느낌으로, 이 확실성은 엄청나게 위대하고 강력한, 탐구되지 않은 존재에 대한 신뢰가 생겨난다. 모든 것은 이 신뢰의 확고함에 달려있다.

 

P800 그런데 바로 지식은 이것과는 정반대다. 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아느냐, 얼마나 잘 아느냐, 그리고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에 대해서는 논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P805 나 자신도 여러 명의 옛친구들을 거기서 발견했는데, 수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청년으로서는 오랫동안 알 수가 없게 마련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남자들은 나이를 먹고 여자들은 변한다는 사실이었다.

 

P817 저 놀라운 말, “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신 또한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그 말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모든 전제와 거기서 유래하는 모든 결론과 더불어 나의 전체적인 성찰을 남김없이 충족시켰다. 만사에 있어서 사적 욕심을 차리지 않는 것, 사랑과 우정에서 가장 사적 욕심을 차리지 않는 것이 나의 최대의 욕구이며 강령이요 실천이었다. (중략) 본래 가장 긴밀한 결합은 대립된 것들에서만 생긴다는 것이다.

 

P822 나는 탁월한 인물이란 자기 내부에 있는 신적인 것을 외부에 전파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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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35 우리가 모두 짊어져야 할 인간 공통의 운명은 정신적인 능력이 비교적 일찍 그리고 광범위하게 발달하는 사람에게 가장 무겁게 놓이는 법이다. (중략) 여하간 종국에는 언제나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신조차도 인간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인간이 품고 있는 외경, 신뢰, 사랑에 언제나 대답할 수 있도록, 적어도 아주 긴박한 바로 그 순간에 대답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è  결국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 나는 모든 것을 아주 이른 새벽에 썼다.

è  새벽에 글을 쓰는 사람이 여기 또 있네. 융은 새벽 5시에 일어나 매일 공부를 했다.

 

P836 나도 어떤 의미 있는 것은 스스로 격리시킬 때에만 창조된다는 것을 아주 잘 느끼고 있었다. 많은 찬사를 받았던 나의 작품들도 고독이 잉태한 것들이었다.

è  무엇인가 창조하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한가 보다.

 

4부  신을 제외하고는 신에 맞설 자가 없다.

 

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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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87 흔히 불행은 홀로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행복도 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화를 이루면서 우리 주위에 몰려드는 다른 상황들도 역시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운명이 우리에게 그런 것들을 부과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서로 관련된 것을 스스로 끌어당기는 힘을 인간이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P880 우리는 한 열정을 다른 열정으로 교체한다. , 사랑, 오락, 취미 등 모든 것을 다 시험해 본 다음에 결국은 모든 것이 헛되도다하고 탄식하게 된다.

 

P891 어느 재치있는 프랑스인이 일찍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두뇌가 뛰어난 자가 가치 있는 업적을 통해 대중의 주의를 끌게 되면, 세상 사람들은 그가 언젠가 똑 같은 업적을 다시 해내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가능한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고.

 

17

 

P913 새벽 몇 시간 동안은 시를 쓰기 위해 바쳤으며, 오전 중의 몇 시간은 세속적인 일을 위해 보냈는데, 나는 이런 일들을 온전히 내 방식대로 처리했다.

 

P924 우리의 상태는 어딘가에도 쓰여 있듯이 나는 자리에 들었어도, 정신은 말짱하다.”라고 할 수 있었다. 밝을 때나 어두울 때나 똑같았다. 대낮의 빛도 사랑의 빛을 능가할 수 없었고, 밤은 정열의 빛으로 휘황찬란한 대낮이 되었다.

 

P928 어떠한 일이든 그 절정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18

 

19

 

P1002 천재란 그 행위에 의해서 법칙을 부여하는 인간의 힘이라고 단언하게 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그 당시는 다만 기존 법칙의 한계를 벗어나고, 기성 규정을 뒤엎고, 자신은 어떠한 구속도 이탈할 수 있다고 자칭함으로써 천재임을 공언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20

 

P1024 이 자전적인 진술이 진행되는 동안 독자는 한 아이가, 소년이 그리고 청년이 어떻게 여러 길을 통해서 초감각적인 것에 접근하려고 노력했는지를 자세히 보았을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호감을 가지고 자연종교 쪽을 바라보았으며, 다음에는 애정을 품고 실제 종교에 집착했다가, 더 나아가서는 내면적 집중을 통해 자기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보았으며, 마침내는 혼연하게 일반적인 신앙에 귀의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영역들의 중간 지대에서 이리저리 방황하고 탐구하고 모색하는 사이에, 그는 그 모든 것들 중 어느 영역에도 속하지 않을 듯한 많은 것들과 조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 거대한 것,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는 생각을 돌리는 편이 더 나으리라는 것을 점차 인식하게 되었다고 믿었다.

 

P1044 ! ! 이젠 그만! 보이지 않는 정령들의 채찍질을 받는 듯,, 시간이라는 일륜의 말들이 우리 운명의 가벼운 마치를 끌고 쉬지 않고 달리나니, 우리에겐 용감하게 고삐를 단단히 잡고, 때론 우로, 때론 좌로, 이 돌멩이, 저 낭떠러지를 피해 수레를 모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구나. 어디로 가는지를 누가 알랴? 어디서 왔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거늘.

 

작품해설 – <시와 진실>의 진실과 시, 전영애(서울대교수)

 

P1043 자서전의 원형이자 전범으로 꼽히는 <시와 진실>은 만년의 괴테가 사회, 역사와의 연관 속에서 또 자신의 작품과의 연관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절반은 역사적으로, 절반은 문학적으로그려낸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와 진실이라는 제목은 과감하게 문학과 사회혹은 해석과 사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중략) 기록과 픽션의 이러한 혼합은 전기를 독특한 문학작품으로 변모시키고, 그 고도의 문학성은 오히려 예술가괴테를, 그의 삶과 작품에 기반하여 더욱더 진실하게 증언해 내는 역할을 한다. 간간히 덧붙여지는 스스로의 해석에는 문학과 인생에 대한 노시인의 통찰력과 만년의 예지가 번득인다.

 

20장으로 세분된 총 4(1 1811년 출간, 2 1812년 출간, 3 1814년 출간, 4부 사후출간)로 이루어진 이 방대한 저작은 통상 <시와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불리지만 원 제목은 <나의 삶에서, 시와 진실>이며 출생에서부터 청년 괴테가 스물 여섯 살에 바이마르로 떠나는 시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P1045 이 저작이 자신의 개별 작품들을 유기적 전체로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는 동기에서 비롯했다는 점을 밝히며, 다음과 같은 전기의 주요 과제를 명시한다. “인간을 그 시대 연관 속에서 그리는 것, 그리고 전체가 어느 정도나 그에게 저항했는지, 얼마나 그에게 우호적이었는지, 즉 그가 거기서 어떻게 세계관과 인간관을 형성해 갔는지, 예술가나 시인이나 작가인 경우, 그 세계관과 인생관을 어떻게 다시 외부로 되비추어 냈는지 보여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전기의 주 과제라고 말한다. 작품을 반쯤은 역사적으로, 반쯤은 시적으로다루는 기술 방법은 이런 의도에 호응할 수 있도록 고안된 방법이다.

 

노년의 괴테가 덧붙이는 문장들에는 삶의 지혜가 보석처럼 박혀 있다.

 

P1048 인간사를 인식에 도달하려 노력함으로써 안정을 상실하는 운명으로 보는 관점을 드러낸다.

 

P1049 절망은 언제나 보다 높은 극복의 형식을 찾아 낸다.

 

P1053 무엇보다 이 방대한 책의 요소요소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대시인 괴테의 노년의 삶의 지혜를 읽어내는 일은 나 자신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작품해설 우정과 사랑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순수한 노력의 시대의 고백록, 최민숙(이화여대 교수)

 

 

P1056 <시와 진실> 1~2부의 묘미가, 평온하지만 천재성이 번득이는 소년 괴테의 유년기와, 내적으로 화산을 간직한 듯 불안정한 대학생 괴테의 청년기를 보는 데 있다면, 3부의 묘미는 슈트라스부르크 시절 밤새 말을 타고 달려가 파란 하늘 아래서 시골 처녀 프리테리케와 펼치는 소꿉장난 같은 사랑 이야기, 그리고 세기를 풍미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배경이 된 베츨라 시기의 로테와의 만남과 그 주변 이야기를 보는 데 있다.

 

P1059 괴테는 스피노자를 공부함으로써 예감에 가득 찬 것, 운명적인 것, 피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감동과 함께 일종의 평온함을 얻었다고 쓰고 있다.

 

마치 에그몬트처럼 자기 가슴 속에 있는, 이 운명적인 비밀스런 목소리가 자신을 앞으로, 인생이 그에게 던지는 새로운 과제로 내몰았다는 고백은 괴테가 식물변형론을 모델로 그때까지 써왔던 모든 것을 전복시키는 인상을 준다. 작품 마지막에 외치듯, “어디로 가는지를 누가 알랴? 어디서 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거늘이라니! 과연 어디까지가 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P1060 괴테는 자기 인생을 역사적으로 진실하게 묘사하고자 했지만, 인생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중략) 괴테는 과거를 재생시키는 것 자체를 시인의 작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P1061 자비네 아비스주스는 여기서 진실이란 괴테의 인격의 단계적인 형성, ‘집필 과정에서 비로소 구체적 형태를 취하게 되는 것을 뜻하는바, 여기서는 현실적인 것뿐만 아니라, 가능한 것, 즉 실현되지 않았지만 의미가 있는 것에 속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자서전이 의식적으로 계획된 문학 형식으로서, 괴테가 자신의 전기를 예술적 작품으로 기획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1062 우리 생애의 사실들은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중략) 괴테 자신에게서 일찍이 예시된 재능과 인격은 원칙적으로 훗날에야 증명되며 노년의 지혜와 회상을 통해서야 비로소 밝혀진다는 것으로, 여기서 바로 자서전이라는 장르로서의 존재의 정당성과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괴테가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파편적으로 출간된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자신의 삶의 공백을 메워 자신에 대한 총체적인 예술가의 상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P1063 괴테는 자신이 얼마나 왔는지, 미래에 피할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더 달성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뒤돌아보는 것이다. ‘그 안에 침몰하지 않고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기’ ‘망상을 가지지 않고 순수하게, 그 끝없는 깊이를 감히 들여다 보기이것이 괴테 전기의 과제인 듯 보인다.

è  이것이 바로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는 주된 이유일 것이다.

 

P1064 그가 위기 때마다 작품을 씀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P1065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아는 것이었으며, 인간들 전체에 대한 것은 굴러가는 대로 기꺼이 방관하고 있었다.

 

P1068 <시와 진실>상징적 교양소설로 볼 수 있는 근거는, 괴테가 이 자서전의 상징 구조로 삼은 것이 바로 식물변형론이라는 것과 미학적 견지에서 허구적 화자를 존재하게 했다는 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P1073 그는 프랑스의 폭력적인 혁명을 끝낸 나폴레옹에 대해 그가 자신과 같은 천재라는 친화력을 느끼고 있었으며, 나폴레옹이 사회를 변혁시키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P1074 여기서 우리는 괴테가 결국 이 자서전을 집필하는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가고 있으며, 나폴레옹의 몰락과 당대의 문학의 제 현상들을 위기로 인식하면서 처음의 기획 의도와는 다르게 집필을 일찍 종결하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물론 그 사이 <이탈리아 기행>등 많은 다른 자전적 저술을 한 것도 그 한 이유이기는 했을 것이다. 괴테 자신은 이 갑작스러운 단절에 대해 변명처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도대체 한 개인에게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발전의 시기이다. 내 경우 이 발전의 시기는 내가 자세하게 기록한 진실과 시와 함께 끝난다. 그 이후에는 세상과의 갈등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거기서 무엇인가가 나오는 한에서만 흥미로운 것이다. – 요한 페터 에커만, 1824 1 27일 화요일 괴테와의 대화

 

3.    내가 저자라면

 

참으로 이상하다. 그래도 대학 4년간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는데 괴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머리에 남아 있지가 않다. 아무리 취업을 위해 독어보다는 영어를 열심히 했다 하더라도 독일 문학에서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괴테의 존재가 이리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니. 대학시절 독문학개론이란 수업도 들었고 몇 개의 독일 작품도 원서로 읽었다.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이 이런저런 자료를 배껴 짜깁기 논문을 만들 때, 그래도 나는 독일 통일을 주제로 한 희곡을 분석해 나름 성의 있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도 괴테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니 이상하다.

 

괴테 자서전을 읽으며 힘들었던 것은 독일어 직역으로 인해 이해하기 힘든 만연체 문장이었다. ‘마음은 나아가 자주 다양한, 특히 사교적이고 섬세한 미덕에 유리하게 감동을 받으며 다양한 감정들이 그 안에서 일깨워져 개발된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당신은 알겠는가? 카프카를 읽을 때도 그랬다. 독일 문학 작품은 번역을 해 놓아도 그 뜻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스무 개의 각 장에 소제목을 붙여 놓으면 독자의 이해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문 같은 4개의 부의 제목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듯 하다. 괴테는 자서전에 픽션을 가미했다. 그는 말한다. “현실은 자주, 가끔씩은 픽션이라는 니스 칠을 새로 해야 할 만큼 그 광채를 잃는다.” 괴테의 현실 또한 광채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지루하고 평범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 픽션을 가미해 광채를 더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 이유로 자서전을 읽으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인지 종잡기 힘들었다. 융은 외부적 사건보다는 자기 의식의 변화와 흐름에 대해서 자기의 자서전을 기술했다면 괴테는 사실과 허구를 혼합해 자서전을 구성했다.

 

내가 괴테 자서전을 새로 쓴다면 괴테 아버지를 집중 탐구해 그의 인생과 그가 자신의 아들에게 끼친 영향을 알아보고 싶다. 괴테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수많은 언어를 배웠고 음악, 미술, 무도, 승마, 스케이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취미생활을 섭렵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스위스로 이탈리아로 기타 지방으로 여행도 많이 다녔다. 부모가 그 자녀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위대한 인물의 부모를 테마로 책을 내보는 것은 어떨까?

 

또한 괴테가 읽은 책들에 대해서 탐구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훨씬 많다고. 괴테는 그리스 로마 문학으로 시작해 성경, 스피노자와 같은 철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책을 읽으며 자신의 문학성을 구축해갔다. 최근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는 리딩으로 리드하라처럼 위대한 인물들이 어떤 책을 읽었고 그로 인해 어떤 사고를 구축했는지에 대해서 탐구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다.

 

괴테의 여인들에 대해서 눈 여겨 봐두었다.  첫사랑인 연상의 그레트헨, 식당주인 쇤코프의 딸 안나 카타리아 쇤코프, 제젠하임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 그리고 짝사랑의 열병을 앓게 한 샤를로테 부프, 약혼까지 했지만 결국 파혼한 릴리 쇠네만까지. 괴테는 39세에 평민 출신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만나 동거를 시작하고 이듬해 아들 아우구스트까지 얻지만 오랜 세월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57세에 나폴레옹의 점령군이 괴테의 저택을 침입하자 크리스티네가 이를 목숨을 걸고 막았고 이를 계기로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을 하였다. 젊은 나이로 사망한 여동생 코르넬리아와 천성이 밝고 명랑했던 어머니 안나 아말리아도 그의 곁에 있던 여인이었다. 괴테의 여인들이 괴테에게 끼친 영향과 사랑이야기에 대해 탐구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괴테 자서전은 괴테가 바이마르로 떠나기 전 스물 여섯의 시기로 멈추어 있다. 괴테는 그 이유를 그때까지가 자신에게 발전의 시기였고 이후에는 세상과의 갈등의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의 인생에서 발전의 시기는 언제까지였던가? 마흔을 앞두고 있는 이 나이에도 아직 발전하고 있으니 내 인생은 언제까지 발전의 시기가 될 것인가?

IP *.35.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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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9 23:39:22 *.166.205.131
나에게 최고로 해석하기 어려운 문장은 이거였죠.

"진정한 경험이란 아주 고유한 것이어서, 경험하는 자가 경험을 경험하며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하면 그게 경험이라는 것이었다." 385쪽
이게 뭔말이래요~~헐
독어독문학 전공자님~! 좀 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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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6.20 16:13:42 *.35.19.58
엥, 그런 문장이 있었나?
'개인의 경험이란 것은 고유한 것이며 경험 또한 경험해봐야 진정한 경험이 된다.'정도의 뜻이려나?
원문을 보면 더 모르겠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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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0 14:59:30 *.124.233.1
18세기 독일 풍경이 그려지지 않아 읽는데 애를 많이 먹은 것 같아요 누나.
번역체, 만연체 문장도 눈에 잘 안 들어왔구..
정말 고생 많았구~ 다들 대단한 것 같다 누나 그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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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6.20 16:14:30 *.35.19.58
그럼, 어찌 되었던 이 책을 일주일에 읽고 리뷰를 썼다는 것 자체가 엄청 훌륭한거지.
땡7이들 모두 대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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