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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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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9일 21시 22분 등록

1. 괴테에 대하여 (1749~1832)

독일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배경

독일은 유럽에서 최초로 종교개혁(1517)이 일어난 나라이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개신교의 성립, 이에 대한 카톨릭측의 대응인 카톨릭 종교개혁은 중세 유럽의 통일적인 신앙 공동체를 붕괴시켰다. 30년 전쟁(1618~1648)을 거치면서 더 이상 종교적 통일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이런 교파적 분열 양상은 오늘날까지도 독일의 문화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로 남아있다. 중세 이래로 독일은 '신성 로마 제국'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이 제국은 황제가 중앙집권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세속,종교 제후들이 분할 지배하고 있는 국가였다. 더욱이 신성 로마 제국은 다수의 세속,종교 제후들이 분할 지배하고 있는 국가였다. 더욱이 신성 로마 제국은 제위가 자동적으로 세습되는 세습 군주국이 아니라 제후들이 황제를 선출하는 선출 군주국이었다. 황제가 지배하는 제국이 아니라 제후들이 지역을 통치하는 개별 영역 국가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전면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지방분권적인 독일 사회의 특수성이 현대까지 남아있다.

30년 전쟁을 종식시킨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30년 전쟁이 종식될 때까지 독일은 심각한 분열을 경험하였다. 서로 다른 교파가 상대편을 정죄하고 자신만이 진실한 기독교임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지배계층이나 일반민중들이 종교와 신앙의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 역사학자들은 유럽이 진정으로 기독교화된 것은 중세가 아니라 바로 이 시기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피비린내 나는 종교적 대립을 거치면서 독일인들은 상대방에게 신앙의 문제를 폭력적으로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점차 종교적 관용이 점진적으로 퍼졌고, 결과적으로 사회를 세속화하는데 기여했다. 19세기에 독일 통일을 통해 근대국가 형성을 주도하는 것도 프로이센이나 오스트리아와 같은 개별적인 영역 국가들이었다. 이러한 독일 사회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괴테의 <시와 진실>을 읽어보면, 괴테의 자전적 이야기 속의 사건을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어, 독서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

7년전쟁(1756~1763)

괴테 유년시절의 배경으로 나오는 7년전쟁은 슐레지엔 영유를 둘러싸고 유럽대국들이 갈라져 싸운 전쟁이다.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에게 슐레지엔 지역을 빼았겼고, 탈환을 위하여 군비증강에 주력하고 프랑스, 러시아, 스웨덴, 작센 기타 독일의 제국과도 동맹을 맺으며 준비하였다. 한편 영국과 결탁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1756년 8월 기선을 제압하여 작센에 침입함으로써 전쟁이 터졌다. 프로이센은 초반의 승리를 거두었으나, 우세한 적군의 반격에 몰려 수세에 몰렸다. 특히 1759년에는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에게 베를린도 점령당하고, 영국의 군자금도 끊겨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엘리자베타 여제가 급사하고 프리드리히를 숭배하는 표트르 3세가 즉위하고부터 형세가 일변해서, 1763년 2월 후베르투스부르크 평화조약이 성립되어 프로이센은 슐레지엔의 영유를 확인받게 된다. 그 결과 프로이센은 유럽 열강의 지위에 올라 독일에서의 패권의 기초를 확고히 하였다.

젊은 베스트셀러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1749년 8월 28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태어났다. 귀족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넉넉한 중산층 집안에서 자라나며 어려서부터 문학과 예술을 가까이 접했고, 8세에 시를 짓고 13세에 첫 시집을 낼 정도로 조숙한 문학 신동이었다. 부친의 권유로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20대 초반에 변호사로 개업했지만, 괴테의 관심은 이미 법률이 아니라 문학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시와 진실>에서도 그의 문학에 대한 꿈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글이 있다. "소망할 가치가 있는 행운을 생각할 때면, 시인을 장식하기 위해 엮인 월계관의 모습이 가장 매력적으로 나타났다는 것 또한 부정하지 않겠다.(204쪽)"

젊어서부터 그는 여러 문인과 교제하고, 광범위한 독서에 몰두하며, 시와 희곡 등을 습작한다. 1772년에 괴테는 업무상 베츨라르에 머물며 요한 케스트너라는 새 친구를 사귄다. 케스트너에게는 샤를로테 부프라는 약혼녀가 있었는데, 괴테는 첫눈에 반해 그녀를 짝사랑하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괴테는 얼마 뒤에 한 친구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자살했다는 비보를 전해 듣는다. 이 소재에 자신의 체험을 섞어서 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은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괴테는 20대 중반의 나이로 하루아침에 유명 작가가 된다. 괴테는 이 시대의 분위기와 <베르테르>의 인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불만에 찬 오만에서 인생이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면 드디어는 자기 마음대로 생명을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벗 삼았고,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의 불쾌감과 권태감을 겨우 견뎌내고 있었다. 이런 기분이 널리 퍼져 있던 탓에 <베르테르>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어디서나 감정에 호소하면서 병적인 청연의 망상에 찬 내면을 노골적으로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표현했기 때문이다.(753쪽)" 이는 1900년도 우리나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분위기와 비슷하다. 풍요롭지만 권태로웠던 삶에 대한 몽롱한 반항이 담긴 분위기말이다.

괴테_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jpg

                   독일의 화가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1751-1828)이 그린 이탈리아 여행 중의 괴테 초상화(1787년 작)

프랑크푸르트를 떠난 괴테, 그리고 실러와의 우정

1775년, 괴테는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이후 제2의 고향이 된 바이마르로 향한다. 이는 <시와 진실>의 마지막 장면이기도 하다. 인구 6천 명의 이 작은 공국의 신임 군주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은 괴테를 전적으로 신임하며 국정을 맡긴다. 성공적인 공직 수행에도 불구하고 괴테의 내면에서는 예술을 향한 갈증에서 비롯된 불안이 나날이 커지고 있었다. “나는 날개를 가지고 있지만 써먹을 수는 없다.” 지적인 애인 샤를로테 폰 슈타인이나 당대의 지식인 헤르더와의 교제도 그의 욕구불만을 해소시키진 못했다. 급기야 괴테는 바이마르 생활 10년 만에 도망치듯 혼자 여행을 떠난다. 괴테다운 선택이다. “1786년 9월 3일, 새벽 3시, 칼스바트에서 몰래 빠져 나왔다.” 이렇게 시작된 3년여의 여행 동안 괴테는 이탈리아의 주요 명소를 돌아보고 한동안 로마에 머물면서 느긋이 휴식을 취한 다음, 1788년 여름에 바이마르로 돌아왔다. 이때의 경험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괴테의 인생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본 수많은 고전 예술품의 미적 기준을 이상으로 삼은 특유의 고전주의적 예술관이 확립된 것은 물론이고, 이 여행을 통해 크게 변모된 괴테의 내면을 이해하지 못한 옛 친구들과의 결별이 이어지며 긴 고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절 괴테는 여공 크리스티아네불피우스와 동거하다가 장남 아우구스트를 낳은 후 정식으로 결혼한다.

다행히도 괴테는 실러라는 또 다른 독일 문학의 거장과 교류하게 되었다. “자네는 내게 또다시 청춘을 안겨주고, 나를 또다시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네.” 179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우정은 급기야 실러가 괴테를 따라 바이마르로 이주하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며 집필을 독려했다. 희곡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1787), <에그몬트>(1788), <토르크바토 타소>(1790), 그리고 독일 ‘교양소설’의 전형인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1796) 등이 이 시기를 전후해 나온 괴테의 작품들이다.

실러의 죽음과 괴테의 만년

1805년에 실러가 46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하자 괴테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환갑을 맞이한 1809년부터 사망 때까지 20여 년간 비교적 평온한 삶 속에서 괴테의 창작력은 절정에 달했다. 희곡 <파우스트> 제1부(1808), 소설 <친화력>(1809), 자서전 <시와 진실> 제1~3부(1811~13), 기행문 <이탈리아 기행>(1816), 시집 <서동시집>(1816)과 <마리엔바트의 비가>(1823),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9), <시와 진실> 제4부(1830) 등이 모두 이 시기의 작품이다. 1825년에 괴테는 <파우스트> 제2부의 집필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6년 뒤인 1831년에 드디어 탈고했다. 하지만 그는 간행을 서두르지 않았고, 원고를 봉인한 뒤에 자신의 사후에 발표하도록 주위에 지시했다. 평생의 역작을 완성했고, 이제는 자신의 최후가 가까웠음을 실감했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이듬해인 1832년 3월 22일, 괴테는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바이마르의 한 묘지에서 평생의 지기였던 실러 곁에 누웠다.

주요작품

<괴츠 폰 베를리힝겐> 1773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774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1796

<색채론> 1810

<시와 진실> 1811~1830

<이탈리아 기행> 1816~1829

<서동시집> 1818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1829

<파우스트> 1790~1831

참고자료

네이버캐스트 <인물세계사>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500

유럽바로알기, 2006,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네이버 백과사전 : 7년전쟁, 후베르투스부르크 화약

Mr. 괴테에게 행복을 묻다, 2009, 리더스하이

2.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 귀

<시와 진실> 민음사 2009.5

1부 한 꺼풀 벗겨지지 않은 인간은 교육되지 않는다.

서언

10. 신판을 내게 되거든 작품들을 어느 정도 내적인 연관에 따라 정리하여 연대순으로 배열하고, 작품의 재료가 되었던 삶이나 정서 상태뿐만 아니라 당신께 영향을 미친 실례들, 또한 그에 못지않게 당신이 따랐던 이론적 기본 원칙들을 일정한 연관 속에서 제시해 주셨으면 해서입니다.

10. 작가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

☞ 현대인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메신저, 이메일... 등 더 많은 도구들이 있다. 그런데 난 그것들을 좀 멀리한다. 얼리 어답터는 아니다. 좀 시대에 뒤떨어진, 홀로 그냥 있는 존재, 소통에 둔감하고, 그저 가끔 인터넷 뉴스를 보고, 책을 읽고, 회사에 다니고, 찾아오는 사람들, 보고싶은 사람들을 아주 가끔 만나고, 연구원 모임을 가고... 좀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나를 알릴 도구를 활용해 보자.

1장

16. 우리 어린이들, 누이동생과 내가 가장 좋아한 공간은 아래층의 널찍한 현관 마루였다.

17. 접시 선반에 꽂힌 순서대로, 내 손이 닿는 대로, 그래도 옆집 사람들이 전혀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릇 중에서 내가 끌어 내올 수 있었던 것은 모조리 끌어내 똑같이 깨버렸다.

18. 내가 회상하는 할머니는 이를테면 하나의 정신이며, 아름답고 마른 모습의, 늘 깨끗한 흰 옷 차림의 여인이다.

19. 그곳은 자라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슬퍼서는 아니어도 그리움에 가득차 머무는 곳이 되었다.

☞ 그런 공간이 있으면 평생의 추억이 되는구나.

19. 오래되고, 구석지고, 군데군데 음침한 집의 구조는 아무튼 어린 마음 속에 무서움과 두려움을 일깨우기에 알맞았다.

20. 어머니는 우리가 밤에 무서움을 참아내면 아침마다 복숭아를 실컷 먹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21. 어느 해 성탄절 저녁 할머니는 그간 베풀어주신 모든 것 중에서도 으뜸가는 멋진 일을 베푸셨다. 우리를 위해 인형극을 상연하게 해서 이 낡은 집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냈던 것이다.

24. 내가 가장 좋아한 것은 마인 강의 큰 다리 위를 산책하는 일이었다.

☞ 나에게도 마인 강을 산책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괴테를 느껴볼텐데...

31. 세상이란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어내며, 상이한 곳에 사는 세상 사람들이 서로 그것을 교환한다는 관념이 형성되었다.

☞ 자본주의적 사고

36. 이런 시골 잔치들이 아마도 내가 기억해 낼 수 있는 첫인상들의 하나일 것이다.

37. 아버지는 몸소 카이슬러와 네마이츠의 작품들을 정정하고 보완하는 일을 낙으로 삼으셨다. 꼭 필요한 보조 서적들도 적잖이 곁에 두셨다.다양한 언어의 사전들이며 백과사전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도록 가까이 두셨으며, 또 유익함과 즐거움을 주는 다른 많은 책도 곁에 두셨다.

☞ 상류 지식층의 자식을 산다는 것은 이런 유익함이 있구나. 교육적인 환경 말이다.

39. 그렇지만 비범한 세계사적 사건 하나로 인해 소년의 정서적 안정이 처음부터 밑바닥까지 뒤흔들리게 되었다. 1755년 11월 1일 리스본에서 지진이 일어나 어느새 평화와 안정에 익숙해져 있는 세상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한 순간 전만 해도 평안하고 느긋했던 6만 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멸망하였다... 이 사건으로 풀린 범죄자들의 무리가 날뛰었다. 살아남은 불행한 사람들은 약탈과 살인, 비행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온 사방에서 자연이 무한정의 횡포를 자행했다.

42. 자신이 이루지 못한 일이 아들 세대에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아버지들의 숙원이다.

42. 아버지는 나의 타고난 재능을, 그것이 아버지에게 없었던 만큼 더 평가해 주셨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오로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노력과 끈기와 반복을 통하여 획득하셨기 때문이다.

44. 공동 수업은 나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 엘리트를 위한 교육이 필요하단 거여?

46. 내 어린 머릿 속은 재빠르게 수많은 그림들과 사건들, 수많은 중요하고 기이한 인물들과 사건들로 채워졌다. 이렇게 얻은 것을 나름으로 가공하고 반복하고 다시 이끌어내느라고 늘 바빠서 나는 결코 심심할 수가 없었다.

☞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로빈슨크루소 >등의 문학작품들과 함께한 괴테

49. 사람들은 지배적인 선입견에 따라 될 수 있는 대로 환자를 따뜻하게 감싸주었고 그래서 역병은 더 심화되었다.

54. 할아버지가 여자들에게 말했다. "몽당 초를 주지 말고 긴 초 하나를 주도록 하시오.. 나를 위하여 수고하고 있는 사람 아닌가." 이 발언은 효과를 나타냈다. 정말로 할아버지가 시장이 된 것이다.

56. 우리에게 전승된 교회적 프로테스탄티즘은 사실 일종의 건조한 도덕에 불과했으니, 재치 있는 강론은 생각조차 못했고 교리는 영혼에도 가슴에도 와 닿지 않았다.

57. 많건 적건 분파에 속한 사람들은 늘 소수자였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은 독창성, 진실함, 집요함, 그리고 독자성으로 인해 마음을 끌었다.

☞ 괴테의 성향을 알 수 있는 문장. 그리고 소수자들의 사고방식이 실로 우리 삶을 다양하게 해주는 것은 사실 아닌가.

2장

60. 1756년 8월 28일 내 일곱 번재 생일이 지나자 마자, 곧 내 인생의 다음 일곱 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세계적으로 유명한 저 전쟁이 발발했다.

☞ 7년 전쟁 : 프로이센이 흥기하는 계기가 된 전쟁

63. 나는 나 자신으로 돌아가서, 여섯 살 때 리스본 지진 이후에 신의 은혜를 어느 정도 의심하게 되었듯이, 이제는 프리드리히 2세 때문에 대중의 정의라는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63. 당파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기도 한 당파에 소속한다는 것, 그것에 대해서 소년은 말하지 못했다.

64. 지금 내가 그것을 좀 더 정확하게 의구심을 가지고 생각해 보면, 나는 여기서 평생 나를 따라다녔고 나주에 나이가 들고서야 통찰과 교양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대중에 대한 무시, 실로 대중에 대한 경멸의 싹을 발견한다.

☞ 노년의 지혜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본 구절, 허나 자존심 강한 엘리트적인 사고방식이 느껴진다.

신 파리스-소년의 동화

68. "넌 이 사과를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명의 젊은 사람에게 주어야 해."

72. "좋소, 그러나 그러자면 몇 가지 조건을 지켜야 합니다."-"조건이 무엇입니까"?" 내가 성급히 물었지. --"모자와 칼을 여기에 놓아두고, 나와 동행하는 동안 내 손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그러고말고요!"

73. "안 될 거야 없지만 새로운 조건이 있지요."

82. "누가 그걸 알려주었소?" 그가 놀라서 의심쩍어하며 물었지. - "사과 세 개죠. 보석 세 개 말예요." - "그런데 보상으로 뭘 원하시오?" 그가 외쳤어.- 나는 말했지. "무엇보다 그 작은 소녀요.

83. 나는 두 번째 모험이 첫 번째 처럼 꿈이었다고 믿어야만 할 지경이었지... 나는 그 모험을 다시 계속해 가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해볼 거야. 내가 너희들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을 지 아니면 그게 나한테 분명하게 금지될 것인지 그건 내가 말할 수 없어.

☞ 동화속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들, 괴테에게서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이 보인다. 당연한 것인가?

85. 사람들이란 유약함과 환상적 즐거움에 탐닉하는 대신, 불가피한 화를 견뎌내든지 아니면 그것들에 맞서기 위해서 스스로 단단해질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또다시 인지하게 되었다.

88. 폭력이란 오히려 폭력으로 몰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한 생각을 갖고, 사랑과 연민에 애착이 있는 아이는 조롱과 악의에 별로 맞설 줄 모른다.

90. 함께 노는 건 어린이들에게서는 늘 변함없는, 확실한 화해 수단이다.

93. 1757년...

☞ 지루한 책을 읽는 기분에서 이 숫자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든다. 1757년의 한 순간의 생생함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거장 괴테의 펜 끝에 살아있는 그의 시대를 읽으며... 그러니 깨어서 읽자.

95. 우리 아버지는 여행을 하고 자유로운 세계를 접하면서, 같이 살아나가는 시민들 가운데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멋지고 더 진취적인 생활방식에 대한 개념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 노마드적인 방식, 세계여행이 자유로운 현대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급속히 번져가고 급속히 사라져 가는...

102.이 모든 서적들을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통독했고 부분적으로는 외웠기 때문에 손님들이 왔을 때 나는 여흥으로 자주 불려 갔다.

104. 어린이들과 민중은 위대한 것, 고결한 것을 놀이로, 심지어 익살극으로 변모시키곤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그들이 그런 것을 지속시키고 감당해 낼 수 있겠는가!

3장

105. 평소에는 쉽게 집 밖을 나오지 않던 사람도, 은혜를 입은 사람이며 친구에게 잠시나마 친절하고 예의를 갖추기 위하여 가지고 있는 최고의 옷을 입었다.

108. 토랑 백작은... 갖가지 소소한 불쾌한 일들은 그저 농담으로 처리해 버리는 사람이었다.

110. 어느날 어머니는 연회 식탁에서 우리들에게 보내온 빙과를,... 위가 소화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쏟아 내버림으로써 우리를 몹시 슬프게 하였다.

115. 나는 한 언어의 울림과 음향, 그 움직임, 악센트, 음색과 그 밖의 외적 특성들을 쉽게 포착할 수 있었다.

115. 내 즐거움은 오로지 몸짓 유희와 연극과 어조에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만큼 더 동작이며 몸짓 표현, 대사 표현 등에 주의했다.

☞ 프랑스 연극을 보며 괴테가 느낀것들.

116. 실로 나는 전체 구절을 외웠고, 그 구절들을 마치 기계적으로 암기한 앵무새처럼 낭송했다.

121. 행동에 열이 올라 드론의 칼긑이 내 칼자루의 나비 모양으로 묶인 리본에 걸렸다. 리본이 찢어졌고 그 애는 내게 이제 자기는 가장 완벽한 명예 회복을 했노라고 단언했다. 그다음ㅇ는 역시 정말 연극적으로 나를 포옹했고, 우리는 가까운 커피점으로 가서 아몬드 우유를 한 잔 마셔 우리의 감정의 동요를 진정시켰고 오랜 우정의 끈을 그만큼 더 단단하게 맺었다.

122. "그런데 뭣 하러 이렇게 시끄럽게 구시죠? 오늘 홍안이어도 내일이면 백골인데!" 이 말에 부인은 할말을 잃을 것 같았다.

123. 믿음과 미신의 형식들이 모든 민족과 모든 시기에 있어서 항상 똑같은 형식이었다는 것은 언제나 참으로 특이한 점이다.

125. 누구라도 곤궁한 자기 동포를 돕기 위해서라면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내놓으려는 듯이 보였다.

132. 그거야 남들을 위한 거지 나 자신을 위한 게 아니지. 그러나 순간에 바로 행하고, 나의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고, 내 명예를 아무것도 손상시키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마음 쓰는 바지. 우리는 벌써 말을 너무 많이 했네. 이제 가게. 그리고 감사는 내가 용서하는 그 배은망덕한 사람에게 가서 받게나!"

☞ 문학적인 용서의 한 장면. 진실인가? 시인가?

139. 나는 다시 서둘러 살아 존재하는 것에게로 다가갔다. 연극을 훨씬 더 열성적으로 보았고, 좀 더 성실하게 끊임없이 읽었다.

☞ 괴테에게는 연극과 책이 살아 존재하는 것이었다.

140. 몇 명이서 하나의 그림에 공동으로 일한 부분들이,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좋은 효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마침내 누구나 자신의 작업이 남들의 작업으로 망쳐지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마터면 화가들 사이에 알력이 생기고 화해 불능의 적대 관계가 생길 뻔했다.

☞ 예술가의 협업은 쉽지 않다. 각자가 작업하고 기획자가 다른 것들을 잘 구성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하나의 작품을 함께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다.

144. 백작은 서인도 제도의 어느 프랑스령 식민지 한 곳에서 총독으로 생애를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다.

4장

146. 나는 이제 다시 내 지붕 밑 방에 거처했는데, 방 안에 있다 보면 이따금씩 많은 그림의 유령들이 내 눈앞을 오락가락했다. 그럴 때면 나는 일과 공부로 그걸 쫓아버리려고 했다.

147. 아버지는 지속적이고 지칠 줄 모르는 근면성으로 훌륭한 두상 수집 전체를 그 번호에 따라 모두 다 그려내는 데까지 이르렀다.

148. 오른손과 왼손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별명을 붙여놓고, 그 손가락이 쓰여야 될 때면 아주 재미난 별명으로 손가락을 불러주었다.

☞ 상징, 비유는 재미있는 교육방법이다. 거기에 유머를 섞는다면 더욱!

149. 그림 그리기는 누구나 배워야 한다는 것이 우리 아버지의 주장이었다.

150.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들 역시 합치고 연결시키는 것보다는 자주 가르고 나누는 것을 통하여, 살리기보다는 오히려 죽이기를 통해서 배운다고 믿는다.

151.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나날이 늘어갔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가정교사를 구하느라 두리번거렸는데, 개개 가정이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같은 뜻을 이루려는 몇몇 가정이 힘을 합쳤다.

152. 나이가 들었으면서도 스스로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는 것 이상으로 젊은 사람을 고무하고 자극하는 것은 없으며, 새로운 것을 숙련하기에는 어려운 나이임에도 열성과 끈기를 통하여 자연에서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젊은 사람들을 앞서려 해보아야 한다는 원칙 말이다.

157. 이 놀라운 형식을 위해 나는 내가 만든 인물들이 머무는 고장의 지리를 연구하고, 저 건조한 장소에다 갖가지 인물의 성격과 그 활동에 어느 정도 친근성을 주는 인간적인 일을 덧붙여 꾸며냄으로서 약간씩 내용을 찾아나갔다. 이런 식으로 내 연습장은 점점 늘어갔다. 아버지는 만족하셨지만, 나는 오히려 내 자신의 기존 지식과 완성도 면에서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게 되었다.

☞ 흩어져 살는 예닐곱 명의 형제자매들이 서로의 상황과 느낌을 편지로 교류하는 소설 형식 --> 모든 것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에...

161. 읽고 번역하고 되풀이하고 외우면서 책의 내용이 그만큼 더 생생하게 다가와 손해는 없었는데, 이야말로 내가 우리 늙은 선생으로부터 배우고자 했던 바였다. 전승된 것과 현실적이고 가능한 것과의 모순이 벌서 오래전에 몹시 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163. 인간이란 자기가 원하는 곳을 향하고 무엇을 행하든 간에, 언제나 자연이 그에게 지시한 저 길로 되돌아오는 것 같다. ..언어를 얻기 위한, 성서의 내용 자체를 얻기 위한 노력이 결국은 저 많이 칭송되는 아름다운 땅과 그 주변 인근에 대하여 또 지구의 저 지점을 수천 년 동안 빛내온 민족들과 사건들이 내 상상력 속에서 더욱 생생한 표상이 되어 나오는 것으로 귀착되었다.

☞ 성경의 인물들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 내었다.

170. 사냥꾼은 모든 사람 중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다. .. 경작을 하고 땅에 몸을 바쳤으며, 집이며 거둔 것을 간직할 광을 지은 인류의 한 부분은, 그의 상태가 지속과 안정을 약속하기 때문에 이미 자신이 상당하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 대신 양치기엑는 가장 무한의 상태와 무한정의 소유가 몫으로 돌아간 듯 보인다. .. 이 세 계급은 처음에는 서로를 언짢게 경멸하며 바라보았을 것이다. 도시민에게 양치기는 공포였고, 양치기 역시 도시민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했다. 사냥꾼들은 우리의 눈을 벗어나 산속으로 모습을 감추며 다만 정복자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 사냥꾼과 도시민과 양치기. 기억하고 싶은 분류.

174. 보편적이고 자연적인 종교에는 사실 믿음이 필요하지 않다. 생서하고, 질서를 부여하고, 인도하는 위대한 존재가 스스로를 우리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이를테면 자연 뒤에 숨겨져 있다는 확신, 그런 확신은 개인 누구나의 마음속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178. 나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 일에는 내용이 필요하며, 내용이란 오로지 체험을 통한 인지에 의하여 스스로 솟아 나올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182. 우리 아버지는 한번 시작한 일은 제아무리 그사이에 부편함, 지루함, 불쾌함, 실로 시작한 일의 쓸모없음이 뚜렷하게 드러나더라도 끝내야 했다. 아버지는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 자체를 유일한 목적으로, 끈기 있게 버텨내는 것을 유일한 미덕으로 여기시는 것처럼 보였다.

☞ 완전 나구먼. 내 시대에 뭔가를 이룰려면 좀 더 유연할 필요가 있어. 아니면 그저 하루를 최고로 즐기던가.

190. 다른 사람들의 처지에 나를 넣어보고, 인간 존재의 특별한 종류를 뭐든 느껴보고 거기에 즐겁게 참가하는 것이 내 천성이라, 심부름을 계기로 많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일하는 방식을 알게 되었으며, 삶의 방식의 이런저런 불가결한 조건들이 어떤 기쁨, 고통, 고난, 유익을 수반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 작가로서의 자세

190. 아버지는 내적 가치가 있으면서도 좋은 외양을 지닌 물건을 마련하는 데는 인색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195. 무궁무진한 다양성이 나를 몹시 즐겁게 했다. 가장 비천한 일에서부터 확실한 예술적 가치를 거부할 수 없는 일들에 이르기까지 그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은 극도로 매력적인 것이었다.

197. 나는 어린 시절부터 늘 책의 첫머리와 작품의 구절들을 외우는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처음에는 모세 5경을, 그 다음에는 <아이네이스>와 <변신이야기>를 외웠다.

203. "신에게서도 나는 잘못을 발견하지" 폰 말라파르트

204. 나로 말하면 나도 무언가 비상한 것을 이루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일지는 도무지 분명해지질 않았다. 그렇지만 사람이란 이룰 공적보다는 받을 대가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 소망할 가치가 있는 행운을 생각할 때면, 시인을 장식하기 위해 엮인 월계관의 모습이 가장 매력적으로 나타났다는 것 또한 부정하지 않겠다.

☞ 그는 궁정인, 사업가, 법률가의 길을 갈 수 도 있었다. 주변의 어른들이 그렇게 그를 교육하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꿈은 시인의 월계관이었음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젊어서의 소망은 늙어서 온전히 이루어진다.

5장

205. 모든 새들에게 미끼가 되는 모이가 있듯이 모든 인간은 나름으로 유도되고 오도된다.

210. 그 순간부터 이 소녀의 모습이 어디를 가도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한 여성이 처음으로 낭게 남긴 인상이었다. ... 나는 그녀를 보러 교회로 갔고, 곧 그녀가 어디 앉는지 알아냈다.

☞ 그레트헨이라는 소녀. 나도 해심을 보러 교회에 갔었지...^^

213. "만약 당신을 잘 알고, 평가하고, 존경하고, 경배하는 누군가가 당신 앞에 저런 종이를 놓는다면, 그리고 당신에게 정말 절박하게, 정말 진심으로 다정하게 청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 그녀가 미소를 짓고, 한순간 생각해 보더니 펜을 들고 서명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황홀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펄쩍 뛰어 일어나 그녀를 포옹하려 했다. --"키스는 안 돼요!"

☞ 사랑을 노래한 연극의 한 장면 같다.

222. 나는 꽃들을 들여다보고 고르는 동안 다시 창가에 있는 그 여인을 흘깃 보았다. 그레트헨과 믿을 수 없게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결국은 그게 바로 그레트헨이라고 확신해야 했을 때 나의 놀라움이 얼마나 컸는지!

236. 백성들은 신성로맞국 황제로 포고된 요젭 2세의 이름을 들었다. 1763년?

240. 우리는 독일인으로서 또 프랑크푸르트 시민으로서 이 영예로운 날에 갑절로 또 드높이 고무된 느낌이었다.

245. 죽음의 친구=잠

254.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축전은 끝없는 매력을 지닌다. 권력의 모든 상징으로 에워사인 지상의 권위를 우리는 눈앞에 보고 있다. 그러나 그 권위는 천상의 권위 앞에 절함으로써 우리에게 두 권위의 공통성을 생각하게 한다.

259. 그레트헨을 그녀의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을 때 그녀는 내 이마에 키스하였다. 이런 호의를 그녀가 내게 증명해 보인 건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 저녁 이후 다시는 그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261. 나는 자네를 구하러 왔네, 문제는 간단한게 아니고 바로 필체모방, 위조된 유언장, 바꿔친 차용증서 같은 일들일세.

267. 그레트헨이 자발적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치욕적으로 추방당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 첫 사랑의 슬픔, 너무나 소설적인 이야기. 여기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잉태 되었나.

2부. 젊은 시절에 소망한 것은 노년에 풍성하게 이루어진다.

6장

276. 나는 도그마적인 강연에서 전혀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내 친구가 나와 함께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바로 이런 철학의 역사가 몹시 재미이있었다. .. 아주 옛 사람들과 학파들에서 가장 내 마음에 든 것은 시, 종교, 그리고 철학이 완전히 하나로 일치한다는 점.

283. 그런 광활한 풍경을 그림으로 포착하자면 얼마나 높은 뜻이, 얼마나 많은 재능이, 얼마나 혹독한 연습이 필요한가!

☞ 현대에는 사진이 있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할 도구가 있다. 그 순간의 감정을 살릴 수 있다면 더 좋은 기록의 도구가 될 것이다.

288. 그만큼 더 강하게 누이의 호감은 나에게로 향했다. 이 경우는 충분히 독특한 것이었다.

☞ 동생과의 관계

293. 그는 카톨릭 신자여서 이 신부들의 연설 기술을 연구할 충분한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 다른 사람이 되어 보기. 재미있는 놀이.

298. 특히 독일 문학을 살펴볼 때, 한 민족 전체에 한 번 주어져 어떤 형식으로든 성공적으로 취급된 대상을 사람들은 저버리지 못하고 온갖 방식으로 되풀이하려 한다는 것이 관찰된다.

☞ 독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시각

300. 자신들의 현존의 어느 순간에든 스스로를 완성된 것으로 여길 수 있으며, 참 거짓을 따지지 않고, 높고 깊음을 따지지 않고 그저 자기들에게 맞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야말로 젊음의, 실로 인간 전반의 행복한 모자람 아닌가!

304. 두 발로 서고 독립하려는,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그런 시도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언제나 자연의 뜻에 맞는 것이다.

☞ 파우스트적 사고방식의 일면, 서구 근대화의 대표적인 인물을 그려낸 괴테의 철학이 담겨있다.

314. 고지 독일 사람들 그리고 어쩌면 주로 라인 강과 마인 강가에 사는 사람은 비유와 암시를 많이 써서 표현하고, 삶을 이해하는 내적 능력이 있기에 속담의 관용구를 사용했다.

320. 나는 나의 옛 방식대로 편지에 쓰기를 좋아했던 조그만 이야기를 늘 바탕으로 깔곤 했다.

321. 좀 나이 든 사람들이 정말 교육적 방식을 취하려 한다면, 그들은 어떤 젊은이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금하거나 싫어하면 안 된다. 동시에 뭔가 그에게 다른 것으로 바꿔주거나 떠맡길 줄 모른다면 말이다.

323. 많은 심적 갈등을 겪은 뒤, 나는 시작해 놓고 끝내지 못한 나의 글들을 얼마나 경멸하게 되었는지, 어느 날 시와 산문, 계획, 스케치와 초안 들을 몽땅 화덕에서 태워버렸다. 온 집 안을 채운 연기가 착한 늙은 여주인을 적잖은 공포와 두려움에 빠뜨렸다.

☞ 라이프치히에서의 갈등

7장 (독일 문학사)

325. 이 시기에 이미 천재적인 작품들이 나왔고, 여기서 독일적인 자유로운 사고와 쾌활함도 싹텄다. 솔직한 진지함이 동반된 이런 사고는 사람들에게 순수하고도 자연스럽게, 외국어의 개입 없이, 그리고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의미로 쓰도록 촉구를 했다.

330. 조형예술은 이미지들을 눈앞에 세우고, 시는 상상 속에 세운다. 그러니까 시적 이미지들은 고찰된 첫 번째 것이었다.

332. 독일 시문학에서 빠진 게 무엇인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내용이다. 그것도 민족적인 내용이다.

☞ 역설적으로 이러한 깨우침이 독일인들이 민족성을 찾아가는 역사적 사실과 맞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338. 몰취미하고 장황하고 공허한 시대로부터 벗어나자면 그 첫걸음은 오로지 단호함, 정치함 그리고 간명함을 통하여 디뎌질 수 있다는 점이다.

345. 나 개인적으로는 성서를 좋아하고 귀히 여긴다. 왜냐하면 나는 거의 성서를 통해서만 도덕적 교양을 형성해 왔기 때문이다.

356. 내 상황은 매우 제한되어 있어서 친구들은 무심하고 선생들은 소극적이었으며 교양 있는 시민들은 제각각 외떨어져 있는 데다 곁의 자연 대상들도 전혀 의미 없는 터라 나는 부득불 모든 것을 내 안에서 찾을 수 밖에 없었다.이제 나는 내 시들에 진정한 바탕, 느낌과 성찰을 요구했다. 그러자면 내 가슴속을 뒤져 찾아야 했다.

356. 그렇게 해서 내가 평생을 두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었던 제 방향이 시작되었다. 즉 나를 기쁘게 하거나 괴롭히는 것, 혹은 그 밖에 열중시키는 것을 하나의 이미지로, 한 편의 시로 변화시키고 나아가 나 자신과 결말을 지어, 외적 사물에 대한 나의 개념을 바르게 하고 또한 그것을 통해서 내면에서 자신을 진정시키는 것 말이다.

☞ 좀더 쉽게 말할 수 없나? 그러니까, 내면의 감정들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정화시킨다는 의미렸다.

361. 나는 애정의 덧없음, 인간 본질의 변화무쌍함, 도덕적 감각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높이와 깊이에 대해 숙고해 보는 데 있어서 지치는 일이 없었다.

373. 이 친구는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이상스러운 괴짜였다. 젊은 린데나우 백작 댁에 가정교사로 있던 베리쉬.

381. 시에 대한 주석 : 시 원문에는 어려운 라틴어가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에 상응하는 번역을 하기 위해 잦은 한자 사용으로 비슷한 느낌을 전달해 보았다.

☞ 번역이 쉬운게 아니구나, 독일어, 라틴어부터.... 우리말, 한자까지 다양하게 알아야 하니.

385. 나는 덧없이 언짢게, 지금껏 장점으로 여겼던 것을 나쁘게 받아들였고, 그럼으로써 지금까지 그럭저럭 지내왔던 많은 사람들을 멀리했다.

385. 진정한 경험이란 아주 고유한 것이어서, 경험하는 자가 경험을 경험하며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하면 그게 경험이라는 것이었다.

☞ 뭐여? 진짜 말을 꽜다 꽜어~

388. 경험이란,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경험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적어도 세상 일의 대부분은 그렇게 치닫지요.

8장

389. 외저 : 그도 편암함 가운데서 꿈꾸듯 인생을 살아나가는 사람 중의 하나다.

390. 예술과 수공은 결합하여 단순함을 만들어내는 사명을 받고 있었다.

☞ 미술사가 빙켈만 고대 예술의 중요한 특징 "고귀한 단순성", "고요한 위대함" -->독일 고전주의의 이상이 되었다.

393.정신과 육신 자체에 관해 그는 우리에게 형태보다는 생각을, 비율보다는 태도를 전해 주었다. 그는 우리에게 형상의 개념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 마음속에서 생생하게 만들도록 요구했다.

394. 어쨋든 근면이 나의 장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영감처럼 떠오른 것이 아니면 나는 즐겁지가 않았다.

397. 향토적 대상이냐 도시적 대상이냐, 살아 있는 대상이냐 살아 있지 않은 대상이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였다. 물음은 늘, 예술에 합당한 것인가라는 점이었다.

398.정신의 기쁨은 두 가지 방식으로 가장 높게 누릴 수 있으니 바로 관조와 개념을 통해서다.

408. 폐허가 된 모렌 거리나 금이 간 탐이 있는 십자가 교회가 내게 깊이 각인되어 아직도 내 상상력 속에 검은 얼룩으로 남아 있다.

409. 지식의 증가는 불안의 증가라는 저 옛말의 진실이 온 힘으로 내게 닥쳤었고, 본 것을 정리하여 내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415. 나는 집에서부터 어느 정도 우울증 증상을 가지고 왔었는데, 그것은 앉아서 살금살금 기는 듯한 새로운 생활 속에서 약화되기는커녕 심화되었던 것이다.

416. 루소가 제기한 것을 오해해서 뒤따른 이런저런 바보짓들이 우리를 약속한 대로 자연에 가깝게 인도하고 미풍양속의 파멸로부터 구한다는 것이었다.

416. 외적으로는 진저리 쳐지는 고통이 나를 위협할 때도 나의 내면을 자유롭게 느껴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422. 젊은이들과 군중은 늘 위험과 소란에 마음이 이끌리는 법

425. 동생은 아버지가 명령하거나 지시하는 대로 모든것을 하기는 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지 않은 방식으로였다. 동생은 해오던 대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또한 그 이상도 이하도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425. 아버지는... 잘 지내셨고 하루의 대부분을 내 여동생의 수업으로 보내셨으며 여행기를 쓰셨고, 만돌린을 연주하는 것보다 더 오래 조율하셨다.

☞ 집안일은 하인들이 하니 시간이 많긴 했나보다.

429. 육신의 구원은 영혼의 구원과 너무도 가까운 관계에 있다.

433. 대체로 젊은 시절에는 얼마만큼 자만하는 망상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다. 이 자만은 방금 지나간 것에 대해서 스스로 쉽게 경멸한다는 점을 통해 드러난다.

438. 인간 본성은 특유의 끈질김과 다면성을 소유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에게 다가오거나 자신이 받아들이는 모든 것을 극복하며 또 그것을 동화시킬 수 없을 경우, 적어도 무관심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니 말이다.

440. 신 플라톤주의가 바탕에 놓였다. 난해하고, 신비적이고, 카발라적인 것도 기여를 했다. 그렇게 하여 나는 자신을 위한 세계 하나를 만들었는데 그 모습은 매우 기이했다.

443. 모든 종교와 철학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인간이 없이 지낼 수 없는 이 위대한 진리가 다양한 민족들에 의해 다양한 시대에 갖가지 방법으로, 실로 기이한 우화와 심상으로 제한된 가운데서 전승되고 있다는 점이다.

9장

446. 젊은 사람들은 대학에서 일반적인 개념들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그것이 아주 옳고 훌륭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들이 매우 현명하다고 망상하기 때문에, 그런 개념들을 눈앞에 있는 대상들에다 잣대로 들이대고 그러다 보면 대개는 그 대상들 쪽이 질 수밖에 없다.

☞ 대학교육이 대상이 가진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생각.

455. 백성들에게 세상에는 위대함이 있다는 것을 주목하게 만든 갖가지 잔치

462. "그 일은 아주 쉽게 해결되겠는데요." 내가 대꾸했다. "저를 떠나게 해주시지요. 나중에 보상을 해주시고요."

464. 나름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내 식이 있었던 만큼 누구를 대해도 그가 그인 것으로, 그가 인정되고 싶은 것으로 인정되게 하는 것은 나에게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477. 내가 늘 말하잖나. 배은망덕이 가장 큰 악덕이라고. 그런데 말이야 건망증만 없다면 세상의 그 어떤 인간도 배은망덕하진 않아!

☞ 공감되는 말이다. 건망증은 사람에 대한 예의를 일순간 무너뜨린다.

484. 씩씩하고 희망에 찬 옛 독일 속담 "젊은 시절에 소망한 것은 노년에 풍성하게 이루어진다." --> 우리의 소망이란 우리들 속에 들어 있는 능력의 예감이다. 즉 우리가 이룰 능력이 있는 것을 예고하는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들 바깥에서 그리고 미래의 모습으로 우리 상상력에 그려진다. 우리는 우리가 이미 남모르게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열정적인 선취야말로 진정으로 가능한 것을 꿈꾸어 얻은 현실적인 것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496. "난 숨기는 게 없고 너그러워. 그래서 누구나 나는 금방 다 알아버렸으니 소홀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넌 숨기고 조용하지. 그래서 사람들은 네 뒤에는 무엇인가 놀랍게 감추어져 있다고 믿는 거야. 그러나 뒤에는 아무것도 없어.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해 희생시킬 줄만 아는 차갑고 이기적인 마음뿐이지."

☞ 대사가 재미있다. 조용한 나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고.

10장

506. 오래 지나지 않아 그의 본질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을 물리치는 성향이 나타나 나를 적잖이 불편하게 만들었다.

511. "신들로부터 유래한, 고트족으로부터 혹은 코트(Kot:똥)로부터 유래한..."

☞ 장난기어린 말 장난들...

524. 여행에서는 물의 흐름을 알아보고, 실로 아주 작은 개울에게도 어디로 흘러가는 거냐고 물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 지리적인 지식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는 뜻. 정치적 이해와 기억, 문화적 이해...

537. 헤르더는 듣는 사람이 진행의 얼마만큼의 부분을 알아듣고, 거기서 바르게 느끼고 마땅하게 생각할 수 있는 각오가 될 때까지 기다려내지를 못했다.

554. 사랑과 필요는 뭐든 만들어내는 최고의 명인들인 법

559. 쓴다는 것은 일종의 언어의 오용이며, 가만히 혼자 읽는다는 것은 연설의 처량한 대용품이다.

3부 나무들은 하늘까지 자라지는 않도록 되어 있다.

11장

570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으면 시간은 언제나 빨리 흐르는 법.

573. 벌칙으로 시를 읇어야 할 때면 사람들은 대개 나를 지목했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 미리 준비해 두고 있었기에, 그러한 기회에 그 집의 안주인이나 혹은 나에게 가장 다정하게 굴었던 여인을 칭송하는 시를 읊을 수 있었다.

573.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흥적으로 쏟아놓은 말들이 언제나 가장 성공적이었다.

☞ 언변의 달인, 나와 전혀 다른 면.

575. "저는 소설책 읽는 걸 참 좋아해요." 그녀가 말했다. "소설 속에서 우리가 닮고 싶은 멋진 사람들을 보게 되니까요"

579. 저 불행을 예고해 주는 키스

595. 나는 내 논문으로 이 주제의 전반부를 택했다. 즉 입법자에게는 성직자도 일반 신도들도 따르지 않으면 안 될 규칙을 제정할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598. 1771년 8월 6일 나는 학위를 받았다.

☞ 법학 박사 학위. 스물 두살정도니 지금보다는 빠르다.

599. 역사 지식은 어디를 가든 환영을 받으며, 사교적인 성격은 어디서든 인간관계를 맺게 해주기 때문이다.

606. 논의하고 토의하는 것은 독일인들의 유전적이자 근본적인 결점이며, 회화하는 것은 프랑스인들의 대표적 장점으로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있었다.

609. "우정, 사랑, 동포애, 이것들은 저절로 흘러나오지 않는가?" -Gilles Menage

614. 사람들은 좋은 것, 새로운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주 새로운 것은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617. 그들은 또한 예술에서부터 자연으로 우리를 몰아갔던 것이다.

☞ 루소와 디드로!

622. 반면 살아있는 지식, 경험, 행위, 그리고 시작에 우리는 더욱더 생기 있고 열렬하게 헌신하게 되었다.

624.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자신과 직접 관계되는 부분들에 줄을 긋지 않는가?

☞ 밑줄 긋는 행위에 대한 사색. 기억해서 나의 내면의 무언가를 건드리고 개념화 해서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한 작업. 그래서 뭔가 창조하려는 의지의 행위.

625. 나는 리듬과 운율을 존중한다. 이 양자를 통해서 시는 비로소 시가 되는 것이다.

634.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던가요?" -- "탑 자신이죠."하고 내가 대답했다.

635. 내가 팔 년 후에 이 꿈에서 보았던 옷을 걸치고, 그것도 일부러가 아니라 우연히 입고서 프리데리케를 다시 한 번 방문하기 위해 이 길을 지나갔다는 것이다.

639. 전체를 산산조각 내는 식의 비판을 가하지 않고 향유하면서 수용한 그러한 인상에서 암암리에 얻는 수확은 참으로 귀한 것이다. 청년은 훌륭하고 선한 것을 비판적인 태도로 조사하거나 분리하려 들지 않고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내버려 둘 때, 그러한 최대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 괴테의 포용적인 성격을 다시한번 보여준다.

12장

643. 메르크...전 시대와 전 지역을 망라한 세계사와 인류사에 박식했다.

☞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모델

648. 성서에서 모순이 발견된다는 것은 오늘날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649. 우리들에게 전승되는 모든 것, 특히 글을 통해 전승되는 모든 것들에서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의 기저, 내용, 의미, 방향이다. 여기에 근원적인 것, 신적인 것, 영향을 미치는 것, 침해할 수 없는 것, 파괴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시간도 또 어떤 외부의 영향이나 조건도 이 내적인 원초적 본질을 해칠 수는 없다.

650. 나는 성서를 마치 신교도들의 종교 수업에서처럼 몇 번이고 통독했다.

655. 하만, "인간이 성취하려고 하는 모든 일은, 그것이 행위를 통해서건 말을 통해서건 혹은 그 밖의 어떠한 방법에 의해서 생겨나든지간에 총체적인 힘의 결집에서 나와야만 한다. 분리된 것은 어떤 것이든 모두 배척하지 않으면 안된다."

656. 하만, 자연과 정신이 은밀한 곳에서 합쳐지는 가장 심오하고 신비스러운 직관, 이와 같은 결합을 통해 분출되는 빛나는 오성의 섬광, 이러한 영역에서 부표하는 의미 깊은 형상들, 수도사와 속인들이 쓴 강하게 호소하는 경구, 그리고 기타 해학적으로 첨가할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그의 문체와 의사 표현의 경이로운 전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659. 아름다운 영혼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은, 그것이 비판을 통해 예술이라는 전문 분야로 넘겨져서 다루어지는 일이 적으면 적을 수록, 자유롭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비평이 예술을 살려야 하는데, 어찌 생명을 죽이는 일을 할까.

663. 나는 누구든지 그저 어느 정도라도 창작에 대한 애착이 있고 자기 기량에 자신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방식대로 무엇이건 독창적으로 써보라고 촉구했고, 동시에 나 자신도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창작과 집필에 대한 권유를 받았기 때문이다.

663. 하등의 이론적인 지표도 없이 자유로운 가슴을 지닌 수많은 청년들에 의해서 제각기 타고난 성격에 따라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추진되었던 이러한 교란과 창작, 이처럼 스스로도 살고 남도 살게 하기, 이러한 주고받음에서 저 유명한, 평판도 높고 악명도 높은 문학의 한 시대가 생성된 것이었다.

☞ 질풍노도의 시대

667. 승마, 스케이팅 --> 괴테의 전인사상에는 육체 및 육체적인 운동에 대한 기쁨도 포함된다.

☞ 왜 노동은 빠졌는가. 귀족적인 사고다.

676. 무정부 시대에야말로 유능한 인물이 가장 확고하게 제 주장을 하며, 좋은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자기의 위치에서 제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678. 2만건의 소송사건이 쌓여 있었는데, 매년 처리될 수 있는 사건은 육십 건에 불과한 데다, 그 수의 두 배나 되는 건수가 새로이 발생했다.

679. 제국 VS 황제, 계급 VS 계급, 구교도 VS 신교도...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다양한 의견이 대두되었으며, 항상 새로운 논쟁과 반박의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 독일의 대립적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683. 이같이 끊임없이 그 범위를 확대해 가던 독일 시인 결사의 내부에서는, 다양한 문학적인 업적과 더불어, 내가 본래 무엇이라고 명명해야 할지 모를 또 하나의 다른 정신이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자립 욕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684. 반대로 평화시에는 인간의 자유정신이 점점더 두두러지게 나타나며,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더욱 자유롭고 싶어진다.

☞ 노무현정권이나, 과거 4.19후 우리사회의 일시적 자유의 물결을 떠올린다. 역사는 거꾸로 돌아갔지만, 더 길게보면 자유라는 시대정신은 없어지지 않았다.

686. 나는 여전히 시를 나의 감정이나 기분의 표현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691. 도대체가 이론을 따진다는 것은 창작력의 결핍 혹은 정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692. 고찰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찰의 대상이 아주 풍성하게 우리 앞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 또 자기 재능과 타인의 재능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보아야 한다는, 아니 실패해 봐야 한다는 사실을 나에게 너무나 생생하게 확신시켜 주었던 것이다.

☞ 진실되게 다가온다.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뚫고 가야하는 것이다.

693. 자연과 예술은 오로지 인생을 통해서 접촉하는 것이다.

693. 나는 내적으로는 모든 낯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으며, 외적인 세계는 사랑에 가득 차서 관찰하고자 한다.

702. 어느 맑은 날 아침 해 뜨기 전, 나는 혼자 베츨라에서부터 란 강을 따라 아름다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런 도보 여행은 또다시 나를 지극히 행복하게 했다.

704. "제가 보는 바에 의하면 문학에도, 자연의 경우와 같이, 서로 바뀌며 어떤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차례로 반복하는 계절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문학의 어느 시기를 전반적으로 칭찬하거나 비난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특히 한 시대가 불러오는 특정한 종류의 재능 있는 작가들을 아주 높이 치켜세웟 찬양하고 이와 반대로 다른 작가들은 비난하고 경시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13장

716. 우연히도 그때 나는 좋은 주머니칼을 왼손에 갖고 있었는데, 그 순간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마치 명령하듯 다음과 같은 생각이 울려 나왔다. 내가 이 칼을 서슴지 않고 강물 속으로 집어 던져야 하며, 내가 그 칼이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되면, 나의 예술가로서의 소망은 이루어질 것이다.

☞ 법학을 전공한 법학도로서 그의 내면에는 다른 꿈이 자리잡고 있었으니, 이 장면에서 확연히 느껴진다. 예술가로의 그의 꿈이...

718. 비범한 인물인 루소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었던 사람은 누구나 루소로부터 발산되는 후광을 일부 입었으며, 루소의 이름으로 은밀한 공동체의 씨앗이 도처에 뿌려졌던 것이다.

729. 누구나 제아무리 중대하고 긴급한 사무가 있어 그 일에 낮 시간을 다 바친다고 하더라도 밤에 연극을 관람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없다.

☞ 좋은 시대야.

730. 독일의 연극은 국민의 진지한 성격에 걸맞게 금방 도덕적인 것으로 전향해 갔고, 이러한 전향은 외적인 동기에 의해서 더욱 촉진되었다.

☞ 극장개혁을 통해 광대역,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이 추방되었다.

734. 천성이 선량하고 관대한 독일인은 누구든지 학대받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737. 내 문학의 본질이 나를 언제나 통일성을 지향하도록 재촉했기 때문이다.

740. 내가 각별히 주목해 왔던 작가들을 사람들이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수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관찰해 왔기 때문이다.

741. 일반 대중의 대부분이 작품 구성보다는 소재를 통해 흥미를 느끼는 것처럼 내 작품에 대한 젊은 청년들의 관심도 대개가 소재에 관한 것이었다.

746. 다양한 현상들이 우리들의 관여 없이 우리 앞에서 기복을 겪고 순환하게 되면, 우리는 이렇게 사랑스럽게 제공된 것들에 대해서 무감각해진다. 그러면 최대의 불행이자 최악의 질병이 나타나는 것이니, 우리는 인생을 구역질 나는 짐으로 방관하게 되는 것이다. 날마다 옷을 입고 벗기가 싫어서 목 매달아 죽었다는 영국인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나는 어느 널따라 공원을 관리하는 성실한 정원사를 알고 있었는데, 그는 어느 날 화를 터뜨리며 이렇게 외쳤다. "도대체 언제까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비구름을 쳐다봐야 한단 말인가!" 또 독일의 아주 훌륭한 인사 중의 하나는 초봄에 다시 파랗게 싹이 트는것을 보자, 화를 내면서 변화 있게 한번은 좀 빨간 싹이 돋기를 원했다고 한다. ... 인생에 대한 권태의 징후들

☞ 인상깊다. 인생 자체의 고통을 보여주는 듯.

749. 진정한 시는 현세의 복음으로서, 내적인 명랑성과 외적인 즐거움을 통하여, 우리를 짓누르는 지상의 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750. 가장 경쾌한 작품도 가장 심각한 작품도 똑같은 목적을 갖고 있으니, 교묘하고 재치 있는 표현으로 쾌락이건 고통이건 고르게 유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753. 사람들은 불만에 찬 오만에서 인생이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면 드디어는 자기 마음대로 생명을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벗 삼았고,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의 불쾌감과 권태감을 겨우 견뎌내고 있었다. 이런 기분이 널리 퍼져 있던 탓에 <베르테르>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어디서나 감정에 호소하면서 병적인 청연의 망상에 찬 내면을 노골적으로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760. 전체의 구도든 혹은 어떤 부분을 다루든 사전에 미리 지면에 써놓지도 않고 나는 <베르테르>를 사 주일 만에 써버렸다.

760. 나는 이 길지 않은 작품을 마치 몽유병자처럼 거의 무의식중에 서 내려갔었기 때문에, 이제 좀 변경하고 수정하기 위해 죽 훑어보았을 때 나 스스로가 이 작품에 대해서 놀랐다.

☞ 명작은 이렇게 나오는 것인가.

760. 그런데 평상시의 습관과는 달리 그것에 대해서 사전에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또 내 의도를 밝히지도 않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 작품은 한층 더 효과를 나타냈다.

763. 이 책의 영향은 컸다. 아니 엄청났는데, 특히 그 책이 시기를 잘 만났기 때문에 그러했다. 강력한 지뢰를 폭발시키기 위해서는 조금만 도화선만 있으면 되듯이, 대중 속에서 일어난 폭발은 젊은 세대가 이미 스스로를 파괴했었기 때문에 더욱 강렬했으며, 그 진동은 각자가 과도한 요구나 채워지지 않는 정열, 그리고 망상으로 인한 고민을 폭발시켰기 때문에 더욱 컸다.

764.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혼돈에 빠진 주인공이 죽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현명한 정신과 의사가 그 환자에게 닭의 피가 장전된 권총을 슬쩍 바꾸어놓음으로써 지저분한 광경을 빚어내긴 하지만 당행히도 불행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게 한다. 로테는 베르테르의 아내가 되며, 만사는 누구에게나 만족하게 끝을 맺고 있다.

☞ 나도 민호와 다니엘의 이야기를 써볼까. <젊은 배영태의 사랑?>

767. 있는 그대로의 내 작품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으며, 모두가 그 사건에 있어서 도대체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하는 것을 꼭 알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769. 나는 작가와 대중이 거대한 심연으로 갈려 있으며, 동시에 다행히도 그것을 쌍방이 전연 모르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분명히 알게 되었다.

14장

777. 일반대중 사이에 퍼진 저 동요

☞ 감상주의, 질풍노도의 기기의 감정상의 동요

785. 나는 언제나 사람의 외모부터 시작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 인물에 대한 묘사, 이미지부터...

786. "모든 것은 자연의 손에서 나온 그대로가 좋다!"라고 외칠 수 있는 인간이었다. (클링어), 그러나 또 그것에 이어지는 "모든 것은 인간의 손에서 나빠진다!"는 말도, 어떤 불쾌한 경험을 통해 그에게 각인되었다.

786. 철저한 오성, 순수한 감정, 활발한 상상력,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적절한 관찰, 각각의 타고난 차이점에 관한 특색있는 묘사가 있다. 그의 소녀나 소년 인물들은 솔직하고 귀엽고, 그의 청년 인물들은 정열적이고, 성인 남자들은 소박하고 이해심이 있으며, 그가 비호의적으로 묘사한 인물들도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진 않다.

☞ <소나기> 같은 단편 소설을 쓰고 싶다.

792. 꽃다운 시절의 청년이던 그는 곧 직업 조합원으로서 공공의 문제에 대해서 찬성표나 반대표를 던져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된다.

☞ 어른이 된다는 것, 현실에 발을 딪어야 한다는 것

798. 관용주의가 지배하던 그 시대에는 각자는 자기 나름의 종교와 자기 나름의 숭배 양식을 갖는다는 주장이 반복되었다.

799. 신앙에 있어서는 믿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무엇을 믿는가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신앙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커다란 확실성의 느낌으로, 이 확실성은 엄청나게 위대하고 강력한, 탐구되지 않은 존재에 대한 신뢰에서 생겨난다.

800. 그런데 바로 지식은 이것과는 정반대다. 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아느냐, 얼마나 잘 아느냐, 그리고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 신앙 VS 지식

806. 나는 무도가 한 번씩 끝날 때마다 바제도한테 뛰어 올라갔고, 그는 즉시 가각의 문제에 대해서 기꺼이 이야기하고 논쟁했으며, 잠시 후에 내가 다시 춤추러 서둘러 나가면, 내가 등 뒤의 문을 채 잡아당기기도 전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침착하게 구술하면서 자기 논무의 논지를 거머쥐는 것이었다.

813. 내 기분은 설교조로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너그러운 호의를 통해 마음을 열고, 진정한 관심을 통해 복종하도록 자극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 누구나 그렇지.

817. 저 놀라운 말, "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신 또한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만사에 있어서 사적 욕심을 차리지 않는 것, 사랑과 우정에서 가장 사적 욕심을 차리지 않는 것이 나의 최대의 욕구이며 강령이요 실천이었다. 그리하여 훗날에 쓴 저 대담한 말 "내가 너를 사랑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랴?" 는 진정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모든 것을 조화시키는 스피노자의 평온함은 모든 것을 동요시키는 나의 추구와 대립되는 것이었다.

824. 이 천재가 성격과 정신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능가할 수 있는 일체의 것이, 그리고 또 그가 어떻게 승리하며 패배하는지가 여기서 표현되어야만 할 것이었다.

15장

832. 예루살렘에 한 구두장이, 아하스베루스의 이야기

834. "그대는 나를 이 모습으로 다시 보게 될 때까지 지상을 배회하리라."

835. 대개 나는 모든 것을 아주 이른 새벽에 썼다.

☞ 역시 작가들은 새벽에 글을 쓰는경우가 많구나.

836. 나도 어떤 의미 있는 것은 스스로를 격리시킬 때에만 창조된다는 것을 아주 잘 느끼고 있었다. 많은 찬사를 받았었던 나의 작품들도 고독이 잉태한 것들이었다.

844. "상전들과 같이 먹으면 버찌도 맛이 없다."

846. 이런 것을 발췌해 두면 언젠가 인형극의 에필로그로서 유쾌한 착상이 떠오르게 해줄 것이다.

☞ 토피카의 중요성! 하고 있는가?

849. 셰익스피어에 대한 존경은 우리들 사이에서 숭배의 정도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858. "자기가 미리 갖고 오지 않은 것은 받을 수 없다."

860. 우리가 살았던 그 시대를 우리는 요구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아직 아무도 이룩하지 못한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867. 습관이란 참 이상야릇한 것이다. 우리 둘은 차차 이러한 관계를 무엇보다도 더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내게 점점 더 귀한 존재가 되었고, 나와 같이 있는 그녀의 태도는 아름답고 조용한 신뢰를 나타내고 있었기에, 만일 목사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생각할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렸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870. 이미 상당 기간 전부터 빈둥대며 세월을 보내고 있는 저 아무 목적 없는 혼잡스러운 나의 생활이 어머니에게 기분 좋을 리 없었다.

870. 게다가 하나같이 재산 하나 없는 그렇게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학문과 문학만을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인생을 즐기기 위해 모여들었으니, 서로 간에 그리고 틀림없이 마지막에는 내게 짐이 되고 손해를 끼치게 되리라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자명했다.

☞ 풍요로운 사회분위기

4부 신을 제외하고는 신에 맞설 자가 없다.

16장

877. 흔히 불행은 홀로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행복도 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관련된 것은 스스로 끌어당기는 힘을 인간이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시크릿의 법칙

879. 우리의 본질을 보충하기 위해 외부로부터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으며, 반대로 매우 귀찮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많은 일들은 강요당한다.

☞ 인생이란 참 모순덩어리야.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쩔까, 내 스스로 찾아야 하지 않겠나.

882. 자연은 영원하며, 필연적이고, 신 자신도 변경시킬 수 없을 만큼 신성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889. 나는 만일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물동이를 받아서 넘겨주고 넘겨받으면 구조 효과가 두 배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889. 나의 권유와 내가 몸소 참가한 것이 지지를 얻어, 입구에서부터 불타고 있는 현장까지 곧 줄이 완성되었으며 골목은 빈틈없게 되었다.

892. 이미 밤이 늦었으나 나는 무슨 일이든지 즉석에서 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여느 때처럼 단정하게 옷을 입고 그를 따라갔다.

901. 내게는 남이 하는 말에 대해서는 무엇으든지 항변하려고 하는 불손한 버릇이 있었는데, 그러나 나는 자기가 어디까지나 옳다고 고집하는 사람이 여하튼 웃음거리가 되는 정도까지만 양보하지 않고 완강하게 굴었던 것이다.

906.

너를 그 청춘의 꽃이,

그 사랑스러운 자태,

진실되고 선한 그 눈길이

한없는 매력으로 사로잡았니?

내 재빨리 그녀에게서 몸을 빼내,

용기를 내 도망치려 하면,

그 순간 나의 길을 나를 다시

아, 그년에게 돌아가게 하네.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이 마술의 가는 실타래 끝에,

이제 그녀 지시대로 살아야만 하네.

아 이 얼마나 큰 변화인지!

사랑아! 사랑아! 나를 풀어주렴!

913. 새벽 몇 시간 동안은 시를 쓰기 위해 바쳤으며, 오전 중의 몇 시간은 세속적인 일을 위해 보냈는데, 나는 이런 일들을 온전히 내 방식대로 처리했다.

916.

즐거운 시간엔 언제나,

사랑과 포도주로 마음이 부풀면,

우리 모두 다 함께 이 노래를

한 목소리로 부르리라!

우리 모두 하나로 지켜주시네.

우리를 이 자리에 불러 모은 주

새롭게 태우자 우리의 불길,

그분께서 이 불길 지피셨도다.

924. 밝을때나 어두울 때나 똑같았다. 대낮의 빛도 사랑의 빛을 능가할 수 없었고, 밤은 정열의 빛으로 휘황찬란한 대낮이 되었다. 우리들은 아주 맑게 갠 밤하늘의 별빛을 받으며 밤늦도록 교외를 거닐었고, 나는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을 한집 한집 제각각 바래다주고 마지막으로 그녀와 작별을 한 후에도 좀처럼 졸린 기운을 느끼지 않았기에 지체하지 않고 혼자 또다시 새로운 산책을 하기로 했다.

☞ 내 젊은날의 추억

928. 험악한 대립은 해소되었고, 집요한 분열도 조정되었다. 충동적인 자연의 욕구, 영원히 경고를 되풀이하는 여성, 폭군처럼 지배하는 본능, 지성의 법칙 등 보통 때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며 우리에게 대항해 오던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친근하게 조화를 이룬 가운데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928. 어떠한 일이든 그 절정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933. 체스메 항에서 불타는 터키 함대를 보고 문명국가들은 도처에서 축하연을 베풀었다.

933. 젊은 국왕은 상류계층에 맞서기 위해서 하류계층에게 은혜를 베풀고 그들과 유대를 맺지 않으면 안 되었으므로 사람들은 그에 대해 더욱더 호의적으로 생각했다.

934. 남의 말을 잘 믿는 청년들은 자신들과 동시대인들 전체에게 아름답고 찬란한 미래를 약속해도 좋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934.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아는 것이었으며, 인간들 전체에 대한것은 굴러가는 대로 기꺼이 방관하고 있었다.

935. 가장 높은 자에서 가장 미천한 자에 이르기까지, 위로는 황제로부터 밑으로는 유대인에 이르기까지 그 천차만별의 차등이 모든 인간을 분리시키기보다 서로 결속시키는 듯이 보이는 것은 일종의 흐뭇한 감정을 자아냈다.

☞ 당시 통일독일을 이루어가는 독일지방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18장

946. 우리들은 삶을 살고자했지 배우고자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953. 어머니는 색깔이 선명한 포도주를 세공한 유리병에 담아 가져다 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진짜 폭군의 피가 있어요! 이것을 즐기세요. 그렇지만 사람을 죽일 생각 같은 것은 일체 우리 집 밖으로 내다버리도록 하세요. "이것이야 말로 폭군의 피다!"하고 나는 외쳤다.

☞ 어머니가 유머가 있군! 즐길줄 알아~

956. 인간은 자연 상태로 돌아가도록 힘써야만 한다는 관념에서 나온 당시의 몰상식한 일들 가운데에는 천연수에 담그는 노천 목욕도 속했다.

963. 그들의 집은 넒고 관직에 어울리게 멋지고 훌륭했으나, 사교생활이라고는 없었다.

973.

내 만일, 사랑하는 릴리, 널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이 광경은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을까!

하지만 그래도 릴리, 내 만일 널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내게 행복이란 있었을까? 그 무엇이 내 행복이었을까

-산에서-

☞ 루미의 시와 비슷하다. 아름다운 꽃을 보고, 당신이 없다면 이 아름다운 꽃이 의미가 있겠느냐는 내용

978. 이 두 사람은 지난날의 정열을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현재의 정열에 매달린 채, 실현되지도 않을 계획을 세우고 쾌적한 힘이 솟구침을 느꼈으며, 그렇게 공상의 나라에서 탐닉해 거닐면서 부지불식간에 일종의 자연 상태에 몰입했던 것이다.

19장

990. 즉 흥미 있는 대상을 포착하여 몇 개의 선으로 그 윤곽을 대충 종이에 스케치한 다음, 화필로는 그려낼 수 없거나 표현할 수 없는 구체적인 점은 바로 그 옆에다 글로 상술하는 것이었다.

☞ 풍경화, 그림 그리는 법 : 스케치하고 느낌을 적어놓는 방법

991. 자연 그대로의 자유를 실현하고자 하던 그 당시의 절대적인 경향을 우선 먼저 떠올린다면,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 스위스야말로 자기들의 싱싱한 젊은 기질을 목가적으로 표현하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한 것을 용납할 수 있을 것이다.

996. 관념적인 것을 현실화 하고자 하는 그의 끊임없는 경향으로 인해 그는 몽상가라고 불리게 되었다.

998.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고 복된 영생을 누리게 된 인류의 위대한 가치에 감동되어 있었고, 동시에 정신과 감정 면의 다양한 욕구도 익히 알고 있으며, 한없는 지식욕과, 별이 뜬 하늘만 보아도 가고 싶도록 감각적으로 유혹받는 저 무한의 세계 속으로 자기를 확장시키려 하는 저 욕망을 스스로 느끼는 가운데,

999. 누구든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타인에게도 전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1004. 보라, 224세의 꽃 같은 청년을! 가벼이 부유하며 떠다니는 탄력 있는 인간을! 그는 누워 있지 않는다. 서 있지 않는다. 기대지 않는다. 날지 않는다. 그는 부유하거나 떠다닌다.

1016. 나는 <괴츠 폰 베를리힝엔>에서 세계 역사상 중요한 한 시대의 상징을 내 방식대로 조명한 다음, 국사에서도 비슷한 전환기가 있을까 하여 주의 깊게 찾아보았다.

20장

1024. 그는 생명의 유무, 영혼의 유무를 불문하고 자연 속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고 믿었는데, 이것은 오로지 모순으로만 제 모습을 드러내며, 따라서 한마디 말로는커녕 어떤 한 개념으로도 파악될 수 없을 어떤 것이었다. 그것은 비이성적으로 보이니 신적인 것은 아니었고, 오성을 갖고 있지 않으니 인간적인 것도 아니었다. 선을 행하니 악마적인 것도 아니었고, 종종 남의 불행을 보고 고소해하니 천사 같은 것도 아니었다.

☞ 데몬적인 것에 대한 설명

1028. "신을 제외하고는 신에 맞설 자가 없다." 라는 잠언이 생겨났으리라.

1041. "자! 자! 이젠 그만! 보이지 않는 정령들의 채찍질을 받는 듯, 시간이라는 일륜의 말들이 우리 운명의 가벼운 마차를 끌고 쉬지 않고 달리나니, 우리에겐 용감하게 고삐를 단단히 잡고, 때론 우로, 때론 좌로, 이 돌맹이, 저 낭떠러지를 피해 수레를 모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구나. 어디로 가는지를 누가 알랴? 어디서 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거늘."

작품해설 - 전영애 서울대 교수

<시와 진실>의 진실과 시

1043. 자서전의 원형이자 전범으로 꼽히는 <시와 진실>은 만년의 괴테가 사회,역사와의 연관 속에서, 또 자신의 작품과의 연관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절반은 역사적으로, 절반은 문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1044. 원 제목은 <나의 삶에서, 시와 진실>이며, 출생에서부터 청년 괴테가 스물여섯 살에 바이마르로 떠나는 시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1044. 큰 역사적 혼란(나폴레옹의 침공, 신성로마제국의 붕괴)과 개인적으로 큰 타격이 된 상실(쉴러의 죽음1805), 아난 아말리아 모후의 죽음1806, 어머니의 죽음1808)

1045. 이 저작이 자신의 개별 작품들을 유기적 전체로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는 동기에서 비롯했다는 점을 밝히며,

1048.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간들에 대해 스스로의 언어로 요약한다. 인간사를 "인식에 도달하려 노력함으로써 안정을 상실하는 운명"으로 보는 관점

1049. 7장 : 소략한 당대 문학사가 된다. 더불어 종교에 대한 회의는 제도로서의 종교의 문제점에 대한 새로운 성찰에 이르게 한다.

1050. 본의 아니게 교사의 두 딸 사이에 끼게 된 불운의 경험을 픽션성을 많이 가미해 서술. 다음장의 프리데리케 이야기의 복선을 만드는 소설적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1051. 3~4부에서는 슈투라스부르크 시절 이후, 돌연히 바이마르로 떠나기까지의 비교적 짧은 기간을 수직적이기보다는, 나선형에 가까운 형태의 구성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흐름을 보인다. .. 바이마르를 향해 출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운명에 몸을 맡기고 거침없이 말을 몰아가는, 열정적인 달림의 이미지를 독자에게 남겨놓는 것으로 청년기의 대단원이 끝나고, 대작의 막이 내리는 것이다.

1052. 그사이 괴테에 대해 쓴 글도 어느덧 연구서 한 권 분량으로 쌓여 독일 발슈타인 출판사에서 금년 중에 출간할 예정이다. 또 내용이야 비교의 언급조차 할 수 없겠으나 분량에 있어서는 비견할 만한,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글도 거의 저절로 한 권 쓰여졌다. <시와 진실>은 보잘것없는 번역자에게조차 그런 힘을 불어넣는 책이다.

작품해설 - 최민숙 이화여대 교수

우정과 사랑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순수한 노력의 시대의 고백록

1057. <시와 진실>은 사실 이상의, 예술성을 고려한 자서전이라는 것으로, 이 저서의 제목에 대해서도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1057. 이는 어디까지나 '시'일뿐 '진실'은 아니다. '진실인가, 꾸민 이야기인가" 하는 문제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는 주제인 동시에, 이 자서전 자체에 끊임없이 제기되는 핵심 질문이기도 하다.

1059. 괴테는 스피노자를 공부함으로써 예감에 가득 찬 것, 운명적인 것, 피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감동과 함께 일종의 평온함을 얻었다고 쓰고 있다.

3. 내가 저자라면

<시와 진실>에 대한 오해

오해가 있었다. "어디까지가 진짜 자기 이야기인가?" 라는 것과 "왜 쓸데없이 자서전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길게 펼쳐놓았는가?"라는 것이었다. '<시와 진실>의 진실과 시'라는 전영애 교수의 작품해설 첫 머리의 "자서전의 원형이자 전범으로 꼽히는 <시와 진실>은 만년의 괴테가 사회,역사와의 연관 속에서, 또 자신의 작품과의 연관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절반은 역사적으로, 절반은 문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라는 문장을 접하고서야 괴테 자서전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천 페이지가 넘는 두께 때문에 쉽게 한 문장 한 문장 집중하기 어려웠던 내용이 머릿속에 스쳐가면서 괴테는 자신의 이야기를 또 하나의 문학으로 승화시키려고 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려서 쓴 동화도 등장하고, 3장에서의 토랑 백작과 아버지와의 극적인 충돌과 화해의 장면을 상세히 그리는 부분은 한 편의 소설로 봐도 좋다. 4장의 구약성서의 인간들에 대해 스스로의 언어로 설명한 부분은 인간의 역사를 보는 괴테의 관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5장에서의 첫사랑의 파국, 6장에서의 라이프치히에서 겪은 절망, 7장의 독일 문학에 대한 탐구, 9장의 교사의 두 딸 사이에 끼어 겪게된 사랑의 장면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픽션인지 헷갈리게 한다. 이것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인기 때문에 그 소설의 진위에 대한 질문에 시달렸던 괴테의 경험을 떠올린다. 4부에서는 약혼녀 릴리와의 관계, 스의스 여행 등을 그리는데 픽션의 강도가 높아진다. 마지막 장면은 운명에 몸을 맞기고 말을 몰아가는 열정적인 달림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와 진실>의 대단원이 끝나게 된다. 독일의 대문호였던 괴테는 자신의 자서전 조차 픽션을 가미해서 문학으로 승화시키고자 했을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문학적 구성과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창조적인 모습들을 담아내는 것이 자서전을 쓴 더 큰 목적이었던 것이다.

자서전의 다양한 형식들

연구원 과정을 통해 세 권의 자서전을 보았다. 모두 특징이 달랐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매일 일어난 사건들을 일기형식으로 짧고 강한 느낌으로 기록한 것이었고, 칼 융의 <기억,꿈,사상>은 자기 내면에서 일어난 경험들을 중심으로 외적인 사건은 최대한 간략히 넘어가면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부분엔 칼 융의 사상이 정리된 느낌이다. 더 이번 괴테의 <시와 진실>은 자신이 겪은 사회, 역사와 본인의 작품들의 연관 속에서 본인의 역사를 문학적으로 그려내었다. 연극적인 문체, 다양한 형식과 소설적인 장면들이 곳곳에 들어가 있다. 이 세 권의 자서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서전이 저자의 삶을 알면 더욱 깊게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순신이 문학작품 쓰듯이 자신의 역사를 썼다면 어땠을까? 융이 외적인 인물들과 역사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 괴테가 밋밋하게 일상의 사실들을 기록만 했다면 어땠을까? 연결시켜 상상하기 어려운 형식일 뿐아니라 전혀 그답지 않은 자서전이 됬을 것이란 느낌이다. 그렇다. 자기다운 글이 역사에 남아 그 사람의 인생을 기억하게 한다. 나의 인생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과 형식의 자서전을 써야한다. 변화경영사상가 구본형은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란 자신의 사십대 10년의 기록을 책으로 냈다. 더 나아가 "평범한 개인의 미시사(微視史)는 본인이 남기지 않으면 유실된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자신의 세계도 없다. 기록의 형태는 일기여도 좋고, 메모여도 좋고, 홈페이지여도 좋고, 사진첩이어도 좋고, 이 책 같은 자서전의 형태여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에 의해 편찬되어야 한다. 이것이 군중 속에서, 군중으로, 흔적 없이 매몰되어 가는 자신을 잊지 않는 길이다

." 라고 제안하며 자신의 사상을 전한다. 저자는 이것을 'Me-Story Project'라고 명명했다. 서로 다른 형식의 자서전들을 읽어보니, '의미와 형식이 밀접히 연관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사람이라면 그런 책을 쓸 것이다.'라는 느낌이 주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켜야 한다. 아니면 기획자에 의해 대필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꿈을 향해 가는 방법

어떤 자서전을 쓸 수 있을까? 먼저 내 삶의 목적지가 구체적으로 그려져야 하고, 내 하루의 일상이 그 방향으로 정렬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목적을 향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낸 자서전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5월까지만 해도 그 목적이란 것이 분명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연구원 과정을 진행해 가면서 나의 이상이 전혀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의 예술가'라는 애매한 모습의 이상이 하루의 일상을 정렬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저 연구원 과제를 해내야 하고, 회사생활과 가정에서의 역할도 해야만 하는 쫓겨사는 삼십대 후반의 남자에 불과하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지가 불명확해졌다. 어떻게 그 목적을 찾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티븐 코비의 제안들과 구본형 선생님의 코멘트, 그리고 얼마전 다시 시작한 모닝페이지와 아티스트데이트, 간단한 명상의 도구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왜! 그것들을 해야하는지 동기부여가 희미해지고 안주하고 싶은 마음에 끌려 뒷걸음질 친다는 것이다. 많이 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단순하지만 내가 무언가 하나를 잡고 내 삶에 적용해서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단순한 방법을 선택해보자. 나의 성향을 파악하고 적합한 것을 살펴보자. 5년이상 사용해온 플래너로 일상을 계획하고 단순한 기록을 하며, 복잡한 머릿속을 풀어낼 아침의 '모닝페이지' 또는 '108배', 일상의 활력을 가져올 '나 만의 데이트', 그리고 하루의 마무리 '수련일지'. 이 네 가지의 방법을 가지고 가보자. 나의 무기인 꾸준함과 근기로 밀고 가보는 것이다.

내가 자서전을 쓴다면

5월 오프수업에서 그려낸 내 미래의 모습은 이랬다. "2012년 그는 여전히 평범한 회사원의 몸으로 사진학교를 들어간다. 2012년 말에 그는 권위있는 단체에서 주관하는 사진비평상의 평론부분에 뽑혔다. 그는 전문사진과 아마추어 사진, 예술사진과 상업사진을 연결하는 많은 글들과 평론을 썼다. 그는 파워블로거가 되었으며, 다음해 초에 아름다운 책을 한 권 낸다. 그의 가족은 여행을 떠났다. 세계의 실험적인 공동체들을 찾아나선 여행이었다. ... 그 여행을 다녀와 그는 사진전을 열고 사진 에세이집을 출간하게 된다. 그의 사진과 글은 파편화된 현대 이후의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전해주었고 사람들은 서서히 그 가치를 삶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전히 사람들의 삶은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사회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가까운 중국과 일본에도 그의 사진과 글이 알려졌다. 그는 수도권 근방에 작은 도시 공동체를 만들게 된다. 그곳은 여행자들의 쉼터이기도 했고, 예술가를 키워내는 학교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새로운 시대의 향기가 그 곳에서부터 퍼지게 되었다. 그것은 아시아 르네상스 시대의 서막이었다."

지금 다시 보니 미래의 꿈과 지금의 내 처지 사이의 괴리감이 느껴진다. 내면의 갈등이 계속된다. 좀 떨어져서 깊이 생각해보며 내 미래의 모습의 바탕에 깔린 생각들을 살펴본다. 내 활동들을 규정하는 바탕 키워드는 '조화, Balance' 이다. 이상 VS 현실, 일 VS 여가, 전쟁 VS 평화, 생활 VS 예술(영성), 자유 VS 평등, 개인 VS 공동체, 이성 VS 감성, 서양 VS 동양, 좌 VS 우. 이런 대립되는 것들의 조화를 이루어 균형을 잡는 것이 내 생각의 중심에 있다. 내 삶이 '조화'를 찾아가는 길에 있기를 소망한다. 괴테가 <시와 진실>에서 말했듯이 "소망이란 우리들 속에 들어 있는 능력의 예감"(484쪽) 이다. 내 안에 있는 재능들을 꿈에서 멈추게 하지 않기 위해, 난 '꿈을 향해 가는 네 가지 방법'을 매일 사용할 것이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자유의 자리에 서기 위해 부던히 움직일 것이다. 마치 거위의 발이 수면 아래에서 겁나게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내 자서전의 모습은 이런 나의 사상을 담은 형식이 될 것이다. 감성을 담은 사진을 직관적으로 선택해서, 이성적인 글과 조화롭게 배열할 것이다. 내용은 구체적인 사건의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일생과 내면을 통해 경험되어지는 갈등들의 해소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내적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칼 융의 말 처럼 외적인 사실들은 쉽게 사라지지만 내적인 경험은 개인에게 생생하게 기억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건 개인적인 성향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나 다운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의 결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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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0 15:03:44 *.124.233.1
모순과 역설, 조화와 균형
참 어려운 화두이면서도 매력적인 화두인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괴테와 실러와의 관계가 너무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괴테의 자료가 많지는 않더라구요.
시간의 압박도 있었구요.

<시와 진실>을 스물 여섯까지 나와 실러가 없어 아쉬웠는데,
형님 리뷰에서 실러를 만나 좋네요.
우리들도 서로에게 괴테와 실러와 같은
아름다움 '지음(知音)'의 관계가 될 수 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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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2011.06.21 03:52:51 *.166.205.132
다음번 괴테의 책에서 더 깊게 만나보자꾸나.
나도 많이 쫓겨서 써서~ 아쉬움이 많다.

'지음'이 무슨 뜻인가 했더니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이르는 말. "
이구나. 백아와 종자기의 일화~
멋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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