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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0일 06시 26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독일 문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위대한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괴테.jpg

독일의 화가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1751-1828)

그린 이탈리아 여행 중의 괴테 초상화(1787년 작).

 

내 마음은 사랑을 했지만 그 대상을 떨어져 나갔고, 삶을 살았지만 그 삶은 내게 고통이 되었다. 한 친구가 여러분들을 교육시키려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인다면 결코 즐거운 감정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여자가 여러분들과 즐겁게 놀려는 것처럼 보이면서 여러분들을 교육시킨다면 그녀는 마치 기쁨을 가져오는 성스런 천사처럼 숭배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서 아름다움의 개념을 불러일으켰던 그 모습은 멀리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은 참나무 그늘 아래에 있는 나를 자주 찾아 왔지만 나는 그것을 붙잡아둘 수 없었다. 나는 그것과 비슷한 어떤 것을 넓은 세상에서 찾아보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본문 중에서)

 

독일 문학의 최고봉을 상징하는 괴테의 생애를 돌아보면 ‘거인’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80년이 넘는 긴 생애 동안 활동하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베스트셀러에서 [파우스트] 같은 대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도 폭넓은 작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나폴레옹은 1808년에 괴테를 만나고 다음과 같은 묘한 말을 남겼다. “여기도 사람이 있군.” 일각에서는 당대 최고의 영웅이며 천재로 칭송되던 나폴레옹이 괴테를 자신에 버금가는 인물로 인정한 것이야말로 최상의 찬사라고도 여긴다.

괴테는 모든 것을 앞서 받아들여 저수지처럼 고이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넘쳐흐르게 한 것이다. 괴테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여하튼 내가 긴 생애 동안 자랑할 만한 일을 많이 해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솔직히 보고 듣고 구별하고 선택하는 능력이나, 보고 들은 것을 정신을 사용해 살려내고 기교를 부려 재현하는 능력을 빼면 정말로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작품에 재료를 제공해준 무수한 사물들과 사람들의 힘을 입은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과 현명한 사람, 개방적인 사람과 고루한 사람, 아이와 청년과 노인도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내게 그들의 감정과 생각, 생활과 일의 형편과 지신들의 경험 등을 말해주었다. 나는 그저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뿌려준 씨앗으로 수확을 거둬들인 것뿐이다."

 

이렇듯 그는 열여덟 살에 첫 시집 <아네테 시집 Das Buch Annettede>을 내 놓은 이래 평생 동안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또 흘러 넘치게 하여 세상에 돌려 주었다. 격정적 성격의 그가 바이마르의 수련시대를 거쳐 이탈리아 여행에서 절제와 조화, 종합의 감각을 터득하고,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문화유산의 세례를 받으면서 성장해간 작가적 도정은 질풍노도와 낭만주의 및 고전주의를 거쳐 독일 민족 특유의 신비주의와 그리스도교 문화를 통합시켜간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의 독일정식과 그대로 대응한다. 문화적 거인으로서의 풍모를 괴테에게서 찾아내는 일은 결코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괴테의 주요 작품들

 

1)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가 25세 때 집필한 작품이다. 주인공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를 모아놓은 서간체 소설이다. 1770년대 독일의 문학사조인 질풍노도의 영향을 받아, 당시의 계급차별, 속물과 범용, 사회적 인습에 대해 경멸적이고도 도전적인 시선을 담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당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켜 '모방자살'을 유행시키기도 하였으며, 나폴레옹 역시 이 작품의 애독자로서 진중에서도 되풀이해 읽었다고 한다. 괴테는 "이 작품을 젊었을 때 읽어보고 자신을 위해 쓰의어진 것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했다.

 

2) 친화력

괴테가 60세의 나이에 사랑에 빠져버린 18새의 미나 체르츠리브에 대한 추억담으로 알려진 이야기이다. 두 원소가 친화력으로 새로운 화합물을 만드는 자연 논리를 인간의 애정관계에 적용한다. 자연의 친화력이 새로운 화합물을 만들듯 인간의 애정이 결합할 때 인간의 의지가 작용하여 어떤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가에 대한 사회소설이다.

 

3) 헤르만과 도로테아

라인 강변의 여관집 아들 레르만은 프랑스 혁명으로 피난 온 난민들 중에서 도로테아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히지만 어머니와 이웃의 설득으로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는 내용이다.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변함없는 인간성의 건전한 세계를 목자적으로 묘사하여 괴테의 고전주의 사상을 잘 보여준다.

 

4)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편력시대

50여년에 걸려 완성한 교양소설의 대작이다. <파우스트>가 괴테의 생애를 내적으로 압축시켜 놓은 것이라면 이 작품은 외적으로 팽창시킨 것이고 평가된다.

이 작품에서 괴테는 아무런 목적이 없는 체념이 아니라 적극적 체념의 개념을 통해 흩어진 힘을 모아 인생과 사회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일에 기여하는 사회적 과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 개인의 창조적 개성은 오로지 유용한 생산과 사회로의 성공적인 통합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본격적인 산업사회로 진입하던 당시의 시대를 배경으로 사회의 변화를 따라잡기 위한 세태여행을 그린 작품이다.

 

5) 이탈리아 여행기

괴테는 37세인 1786 9 3일 독일을 떠나 1 9개월 동안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하였다. 특히 로마에서는 화가 티슈바인, 여류화가 안젤리카 카우프만 등과 어울리며 화가가 되려고 많은 그림을 그렸다. 시실리 섬까지 건너가 자연풍경을 그리고 원초식물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리얼하게 기록한 이 책은 눈과 마음을 열고 그리스, 로마의 고대 문명을 새롭게 배우는 괴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폰타네Theodor Fontane "이 작품은 이탈리아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괴테를 알기 위해 무한한 가치를 지닌 책이다."고 하였다.

 

6) 파우스트

무려 60여년의 세월을 쏟아부은 끝에 <파우스트>를 완성한 괴테는 2부 집필이 끝날 무렵 에커만에게 "앞으로의 내 생명은 덤"이라고 했다. 그만큼 이 작품은 괴테 문학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파우스트>를 깊게 읽는 것은 괴테의 본질에 곧바로 달려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말은 동시에 <파우스트>를 한 번 읽고는 이해하기 어려우며, 살면서 몇 번 읽어야 서서히 다가온다는 애기도 된다.

<파우스트>는 인간의 보편적인 구원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실수를 범할 수 있지만 성실히 노력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는 시공을 초월해서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괴테의 주요한 생애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1749 8 28,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태어났다. 귀족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넉넉한 중산층 집안에서 자라나며 어려서부터 문학과 예술을 가까이 접했고, 8세에 시를 짓고 13세에 첫 시집을 낼 정도로 조숙한 문학 신동이었다. 부친의 권유로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20대 초반에 변호사로 개업했지만, 괴테의 관심은 이미 법률이 아니라 문학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여러 문인과 교제하고, 광범위한 독서에 몰두하며, 시와 희곡 등을 습작한다.

 

1772년에 괴테는 업무상 베츨라르에 머물며 요한 케스트너라는 새 친구를 사귄다. 케스트너에게는 샤를로테 부프라는 약혼녀가 있었는데, 괴테는 첫눈에 반해 그녀를 짝사랑하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괴테는 얼마 뒤에 한 친구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자살했다는 비보를 전해 듣는다. 이 소재에 자신의 체험을 섞어서 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은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괴테는 20대 중반의 나이로 하루아침에 유명 작가가 된다.

1775, 괴테는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이후 제2의 고향이 된 바이마르로 향한다. 인구 6천 명의 이 작은 공국의 신임 군주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은 괴테를 전적으로 신임하며 국정을 맡긴다. 성공적인 공직 수행에도 불구하고 괴테의 내면에서는 예술을 향한 갈증에서 비롯된 불안이 나날이 커지고 있었다. “나는 날개를 가지고 있지만 써먹을 수는 없다.” 지적인 애인 샤를로테 폰 슈타인이나 당대의 지식인 헤르더와의 교제도 그의 욕구불만을 해소시키진 못했다. 급기야 괴테는 바이마르 생활 10년 만에 도망치듯 혼자 여행을 떠난다.


 
1786 9 3, 새벽 3, 칼스바트에서 몰래 빠져 나왔다.” 이렇게 시작된 3년여의 여행 동안 괴테는 이탈리아의 주요 명소를 돌아보고 한동안 로마에 머물면서 느긋이 휴식을 취한 다음, 1788년 여름에 바이마르로 돌아왔다. 이때의 경험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괴테의 인생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본 수많은 고전 예술품의 미적 기준을 이상으로 삼은 특유의 고전주의적 예술관이 확립된 것은 물론이고, 이 여행을 통해 크게 변모된 괴테의 내면을 이해하지 못한 옛 친구들과의 결별이 이어지며 긴 고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 중에 티슈바인을 만나 함께 나폴리에 다녀오기도 했다.

다행히도 괴테는 실러라는 
또 다른 독일 문학의 거장과 교류함으로써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셈이 되었다. “자네는 내게 또다시 청춘을 안겨주고, 나를 또다시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네. 179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우정은 급기야 실러가 괴테를 따라 바이마르로 이주하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크세니엔](1795)이라는 풍자시를 공저했고,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며 집필을 독려했다. 희곡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1787), [에그몬트](1788), [토르크바토 타소](1790), 그리고 독일 ‘교양소설’의 전형인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1796) 등이 이 시기를 전후해 나온 괴테의 작품들이다.

1805년에 실러가 46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하자 괴테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환갑을 맞이한 1809년부터 사망 때까지 20여 년간 비교적 평온한 삶 속에서 괴테의 창작력은 절정에 달했다. 희곡 [파우스트] 1(1808), 소설 [친화력](1809), 자서전 [시와 진실] 1~3(1811~13), 기행문 [이탈리아 기행](1816), 시집 [서동시집](1816) [마리엔바트의 비가](1823),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9), [시와 진실] 4(1830) 등이 모두 이 시기의 작품이다.


1825
년에 괴테는 [파우스트] 2부의 집필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6년 뒤인 1831년에 드디어 탈고했다. 하지만 그는 간행을 서두르지 않았고, 원고를 봉인한 뒤에 자신의 사후에 발표하도록 주위에 지시했다. 평생의 역작을 완성한 이상, 이제는 자신의 최후가 가까웠음을 실감했기 때문일까? 이듬해인 1832 3 22, 괴테는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바이마르의 한 묘지에서 평생의 지기였던 실러 곁에 누웠다. 사망 다음날 괴테의 유해를 본 에커만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평안한 기색이 고귀한 얼굴 전면에 깊이 어려 있었다. 시원한 그 이마는 여전히 사색에 잠겨 있는 듯했다.

 

[참고 문헌들]

1 네이버 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500

2. 도서 <괴테와 다산 통하다> 2007. 최종고 지음, 추수밭 출판

3. 도서 <광기에 관한 집학사전> 2009. 미하엘 코르트 지음. 을유문화사

 

 

 

2.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 한 꺼풀 벗겨지지 않은 인간은 교육되지 않는다.

작가란 아무리 나이가 든다 해도 그러한 장점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겁니다.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 또 설령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더라도, 고령의 나이에 예기치 않았던 영향력이 큰 작품들을 들고 새롭게 등장하는 것 등의 장점을 말입니다. 그러니 인식이 좀 더 완벽해지고, 의식이 보다 분명해지는 바로 그런 시점에 이미, 이루어진 것을 다시 소재로 삼아 최종적인 것으로 손질하는 일은 매우 흥미롭고 새로운 활기를 주게 될 것입니다. (11)

작가의 삶을 응축적으로 그리고 담담하게 나타내고 있다. 나 또한 나를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이 변화할 것이다. 그런 것을 스스로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하겠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열정적으로 자신의 길을 가는 만큼 길을 잃고 헤매지 않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요청을 조급하게 거부해 버리는 데 비해, 나이가 들면 오히려 그러한 관심이 우리에게 자극을 주어 고맙게도 새로운 활동을 촉발해 주지나 않을까 하고 소망하기 때문이다. (11)

 

이런 풍경들은 일찍부터 내 마음 소에 한 가닥 고독의 감정을,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그리움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자연이 내 속에 넣어놓은 진지하고 예감에 찬 것에 조응하면서, 그 감정은 그 영향력을 곧 그리고 연이어 한층 더 분명하게 나타내었다. (19)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인생 중 많은 시간을 이탈리아어로 된 여행기를 쓰는데 바치셨으며, 그것의 필사와 편집을 손수 한 권 한 권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완성해 나가셨다. (20)

이런 부모로부터 괴테도 영향을 받아 나중에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거기에서 받은 영감을 책으로 내게 된다. 부모의 역할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껴본다.

 

진짜 중요한 일은 어둠이 내릴 때에야 일어났는데 , 그러니까 눈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으로 믿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32)

 

특히 많은 좋은 일이 부분적으로는 가정 자체에서 생겨나고 부분적으로는 바깥에서 가정으로 흘러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비범한 세계사적 사건 하나로 인해 소년의 정서적 안정이 처음으로 밑바닥까지 뒤흔들리게 되었다. (39)

[참고] 1755 11 1일 리스본 지진 : 모든 성인의 축일이라 불리던 만성절 날이었다. 리스본의 모든 이들이 미사를 보려던 시점 땅은 크게 요동쳤다. 저 멀리 스코틀랜드까지 진동이 느껴질 정도의 큰 지진은 90분 후 세 차례의 큰 해일로 리스본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처음 지진이 나고 사람들은 지진에서 안전해 보인 해안가로 몰려들었는데 이후 닥친 해일을 피할 수 없었다. 리스본의 모든 것들은 무너졌고 왕조차 지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성직자들은 리스본의 타락을 이야기했고 신의 징벌이라 외치며 회개를 강요했다. 무너져 버린 왕궁 탓에 천막으로 된 임시처소에 머문 왕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수도를 옮겨야 된다는 이부터 회개를 이야기하는 성직자들 틈에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때 한 카르발류라는 대신이 왕을 알현했다 그는 왕에게 " 죽은 자를 묻고 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했는데 유일하게 현실적인 대답을 한 사람이었다. 카르발류는 곧 왕의 전권을 뒤에 엎고 지진현장을 정리해나갔다.....

(http://blog.aladin.co.kr/rainaroma/4816693)

 

복음서 첫 장의 설명이 그토록 슬기롭고 자비롭다고 소개해 준, 창조자요 하늘과 따을 지키는 자인 하느님이 정의로운 자들과 정의롭지 못한 자들을 똑같이 파멸에 희생시킴으로써 자신이 결코 아버지답지 못했음을 증명한 것이다. 어린 마음은 이런 인상을 지워보고자 했으나 허사였다. 현자들과 학자들조차도 그런 현상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그 방식에 대해 일치점을 찾지 못하는 판이었으니 어린 아이로서는 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41)

사실 이 리스본 대지진은 단순히 지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유럽의 지성들에게도 큰 사건이었고, 유럽인들에게도 큰 일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에 지진이 발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대도시가 지진에 의해 폐허가 된 것은 유럽에서는 처음 있는 일었다.  상식적이었던 유럽의 철학자들 눈에 신의 징벌이라는 소리는 말이 되지 않았다. 당시 리스본은 종교적인 도시의 대표였기 때문이다. 물론 개신교와의 갈등이 있었긴 하였지만 철학자들이 보기에 신의 징벌이 될만한 도시들은 따로 있었다. 즉시 볼테르는 그이 낙관주의 철학을 버렸고 루소 또한 지진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영국의 지질학자들은 지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역사적으로는 거의 주목 받지 못했지만 리스본 대지진은 유럽의 근대화를 촉진시켰다. 당시 낙관적 계몽주의는 인간이 얼마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냐며 이성과 신학의 화해를 시도했다. 그러나 리스본 대지진으로 이런 낙관적 계몽주의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특히 성인의 축제일에 일어난 이러한 사건은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져왔다. 바로 볼테르를 비롯한 철학자들이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http://blog.aladin.co.kr/rainaroma/4816693)

 

그 무엇에서도 기초가 닦여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해하고 나름으로 받아들이고 간직하는 것이 빨라서, 아버지나 다른 가정교사들의 수업이 나를 감당할 수 없었다. 문법은 내 눈에 오로지 자의적인 법칙으로 보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법칙이란 게 우스워 보였다. 그 법칙이란 내가 모두 다시 특별하게 익혀야 했던 그토록 많은 예외들에 의하여 무용지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43)

어렸을 때 천재성이 기미를 보인다.

 

드러나 보이는 진실의 표시 하나를 발견해 내는 것이 나로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46)

 

특히 이런 나의 최초의 책들을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내 어린 머릿속은 재빠르게 수많은 그림들과 사건들, 수많은 중요하고 기이한 인물들과 사건들로 채워졌다. 이렇게 얻은 것을 나름으로 가공하고 반복하고 다시 이끌어내느라고 늘 바빠서 나는 결코 심심할 수가 없었다.

괴테는 어린 시절 이미 지금의 내가 하고 있는 연구원 수업을 하고 있었구나.

 

이 상처의 흔적은 가장 크고 화려한 광석으로 가려놓을 수는 있었지만, 다시 제물을 드릴 용기는 사라져버렸다. 그는 이 우연을 거의 신에게 그 같은 길로 해서 다가가려 하는 것 자체가 도무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하는 하나의 암시이자 경고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59)

 

그러나 지금 내가 그것을 좀 더 정확하게 의구심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나는 여기서 평생 나를 따라다녔고 나중에 나이가 들고서야 통찰과 교양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대중에 대한 무시, 실로 대중에 대한 경멸의 싹을 발견한다. (64)

어렸을 적 트라우마와 같은 것, 평생을 같이 하는 삶의 그림자와 같은 것. 나에게도 있지만 나는 괴테처럼 통찰과 교양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나는 거짓말과 왜곡을 싫어했고, 결코 경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일찍이 자신과 세계를 살피는 데서 우러나온 내적 진지함이 외면에 있어서도 엿보였다. (84)

 

그런 앎이 화를 피하는 데는 별로 쓸모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상황들을 발견하고 견뎌내고 실로 극복하기를 배우는 데는 매우 쓰임새가 있다. (87)

 

그러나 성장이란 그저 발전만이 아니다. 한 사람을 결정하는 다양한 유기적 체계가 서로 떨어져 나가고, 서로 따르고, 서로 스며들며 변화하고, 서로를 몰아내고, 서로를 집어삼킨다. 그리하여 어떤 능력들, 어떤 힘의 발현은 얼마만큼 지나면 더는 거의 자취를 찾아 볼 수가 없게 된다. (92)

일반적인 성향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 개성이 몰개성화 되고, 차별은 보편의 미덕에 함몰되는 것, 그것은 성장이 가지고 있는 다른 얼굴이다. 어쩌면 대중 교육의 속성에 기인한 피치 못할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남매는 우리가 할 수 있을 때 자유 시간이면 그 어떤 구석에 숨어서 가장 눈에 뜨이는 구절을 외우고 특히 가장 섬세하고 가장 격렬한 구절들을 한껏 재빠르게 기억 속에 붙들어 그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었다.(103)

할머니가 보여준 인형극의 경험과 이런 연극적 경험이 괴테의 본질적 재능을 더욱 키워준 것이다. 나는 그러하지 못했지만 내 아이에게는 이런 재능이 어떤 것이 있는지 잘 살펴서 안내해 주면 좋을 듯하다.

 

어린 소견의 술책을 발휘하여 보통 내가 날라다 주곤 하던 제카츠이 커피를 그 방문턱에 놓아두고 올 정도로 그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요란스럽게 지켰던 것이다.(115)

원칙을 고수하고자 하는 괴테의 태도.

 

요컨대 이날은 그로서는 자기 평생 가장 속을 태웠던 날이면서 또한 가장 영광에 찬 날이었다. (133)

 

그런 혼란, 불안, 근심이 지나가고 나면 곧 이전의 안전과 무사태평이 다시 찾아온다. 특히 젊은이란 형편이 그저 어느 정도 되어가기만 하면 무사태평으로 매일 매일을 살아간다. (134)

 

인간이란 자기가 그걸 해낼 수완이 있든 없든, 누군가 하는 것을 보면 본 것을 차라리 스스로 해보려 한다. (135)

 

나는 될 수 있으면 한껏 입을 다물고 있겠노라고 약속했고, 벌써 마음속에서는 내 작품의 제목이 거리와 광장의 모퉁이에 커다란 활자로 나붙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136)

 

이 실패한 시도는 나를 심사숙고하게 만들었으며, 나는 이제 이 이론들, 누구나 끌어대는, 특히 내 주제넘은 스승 드론의 비행으로 혐의를 두게 된 법칙들을 그 원천에서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138)

스스로 실험해 보고, 깨닫는 것 배운 것을 적용해보는 것. 이것이 참다운 배움이고 배움의 목적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이런 식으로 공부하도록 자극을 받으면 내 쪽에서 그 만큼 더 그러려고 했다. 자유 시간조차도 갖가지 놀라운 일에 할애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미 나는 자연물에 대한 연구욕을 느꼈다. 어린이들이 그저 한동안 가지고 논 물건들을 이리 다루고 저리 다루다가 마침내는 토막토막 내고 갈가리 찢고 조각조각 내는 것을 사람들은 이따금씩 잔인한 성향으로 분석한다. 그렇지만 물건들이 어떻게 지탱되고 있으며 속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는 호기심 역시 그런 식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150)

예술을 하는 사람은 일반인과 다른 눈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눈은 어떻게 생가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 궁금증을 괴테가 설명해주고 있는 부분이다. 자세히 보아야 하고, 세상에 태어나서 마치 처음 본 듯한 호기심의 눈으로 보아야 하고, 해체와 결합을 통해서 새로운 특질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들 역시 합치고 연결시키는 것보다는 자주 가르고 나누는 것을 통하여, 살리기보다는 오히려 죽이기를 통해서 배운다고 믿기 때문이다. (150)

사람의 마음, 생각도 그렇다. 분석하고 해체하고 추적하여 그것의 끝을 보아야 한다. 그래야 깊어져서 통하는 것이리라.

 

인간이란 자기가 원하는 곳을 향하고 무엇을 행하든 간에, 언제나 자연이 그에게 한번 지시한 저 길로 되돌아오는 것 같다. 현재의 내 경우도 그렇게 되었다. 언어를 얻기 위한, 성서의 내용 자체를 얻기 위한 노력이 결국은 저 많이 칭송되는 아름다운 땅과 그 주변 인근에 대하여 또 지구의 저 지점을 수천 년 동안 빛내온 민족들과 사건들이 내 상상력 속에서 더욱 생생한 표상이 되어 나오는 것으로 귀착되었던 것이다. (163)

 

나이 든 부모와 늦게 안 외아들. 여기에 드디어 가정의 평화, 지상의 행복이 기대될 만하지 않은가! 그러나 결코 그렇지 못했다. 신들은 이 시조에게 다시 가장 어려운 시련을 마련한다. (169)

 

이 예지는 인간의 내면에서 자체적으로 개발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것은 태고 시대로부터의 유래와 보증을 요한다. (169)

 

사냥꾼은 모든 사람 중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다. 사냥꾼에게서 전사와 지배자가 발전되어 나왔다. / 그 대신 양치기에게는 가장 무한의 상태와 무한정의 소유가 몫으로 돌아간 듯 보인다. (170)

 

역사의 연속을 훑어가다 보면 또 다른 성찰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시조들의 종교가 아무리 인간적이고 멋지고 밝게 보여도, 거기에는 야만성과 잔인성의 면모가 면면히 흐르고 잇는데, 인간이란 거기를 벗어 나오거나 또는 다시 거기에 빠져들 수도 있다. 증오가 피를 통하여, 정복한 적의 죽음을 통하여 화해된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171)

 

중요한 특성이 신의 마음을 따르는 사람들에게서 빠져서는 안 되니, 그것은 흔들림 없는 믿음, 신이 그들과 그들의 족속을 특별히 돌봐준다는 믿음이다. (174)

 

그러면서 알려진 유명한 작가들을 모방하는 기회를 남몰래 찾았기 때문이다. (180)

 

나중에 모든 젊은이들이 쉽고 재미있고 편안한 방식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교육원리들을 세우게 만들었다. (186)

 

나는 거의 모든 작업장에 가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처지에 나를 넣어보고, 인간 존재의 특별한 종류를 뭐든 느껴보고 거기에 즐겁게 참가하는 것이 내 천성이라...삶의 방식의 이런 저런 불가결한 조건들이 어떤 기쁨, 고통, 고난, 유익을 수반하지도 알게 되었다. (190)

어린 나이지만 삶을 보는 눈, 사람을 보는 눈,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

 

그렇게 해서 강화된 것은 모든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모든 인간적 상황은 평등하다는 느낌이었다. 내 눈에 적나라한 현존이 주요한 조건이고, 나머지 모든 것은 아무래도 좋고 우연한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190)

 

나는 어린 시절부터 늘 책의 첫머리와 작품의 구절들을 외우는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197)

 

나로 말하면, 나도 무언가 비상한 것을 이루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일지는 도무지 분명해지질 않았다. 그렇지만 사람이란 이룰 공적보다는 받을 대가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 소망할 가치가 있는 행운을 생각할 때면, 시인을 장식하기 위해 엮인 월계관의 모습이 가장 매력적으로 나타났다는 것 또한 부정하지 않겠다. (204)

나도 그렇다. 나의 소명만을, 그 자체만을 생각하자 하면서도 무수한 시간 월계관을 쓰고 환호하는 자신을 그린다. 아마도 뗄 수 없는 욕망의 구성인가보다.

 

속임수란 이제나저제나 변함없이 한가한, 다소간의 재치 있는 사람들의 즐거움이다. 죄가 안 되는 악의나 잘난 척하며 남의 괴로움을 고소해하는 기쁨 같은 것은 자기 자신에게 열중하지도 못하고 바깥에 도움이 될 만한 영향력을 줄 수도 없는 사람들한테는 낙이다. 나이가 몇 살이든 그런 근질거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208)

속임수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이다.

 

새로운 아름다움과 탁월함의 세계가 열렸다. 나는 나의 시 편지를 수백 번 통독하고, 서명을 바라보고, 서명에 키스하고, 서명을 가슴에 대고 눌렀으며 이 사랑스러운 고백을 기뻐했다. (214)

사랑의 설렘, 모든 범인에게 한번씩은 손잡아 주는 신의 공평한 악수처럼 그런 사랑을 한다.

무수한 기쁨과 무수한 해석을 낳는 설레는 청춘의 사랑. 그립다.

 

2. 젊은 시절에 소망한 것은 노년에 풍성하게 이루어진다.

 

아주 똑똑하고 노련한 청년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믿었던 나를 말이다. 전에는 나를 그토록 자극했던 그녀의 냉정함과 쌀쌀함이 이제는 아주 거슬리게 느껴졌다.

사람의 마음이란 생각의 코드를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쉽게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바꾸려 해도 바뀌어지지 않는 것도 있다.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그러는 사이 갈고리가 달린 이 화살은 가슴에서 뽑혀나가, 어떻게 하면 내면의 젊은 치유력을 도와 줄 수 있을까를 자문하게 되었다.

 

여자 하나 때문에 잠과 안정과 건강을 희생했다는 것이 끔찍하게 생각되었다. 나를 젖먹이로 여기고 자기가 내 유모라도 되는 양 똑똑한 척 굴며 잘난 척하기를 좋아했던 여자를 말이다. (275)

그녀에 대한 그의 원망이 원한 정도로 느껴질 만큼 분노하고 있는 듯하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괴테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하겠다.

 

종교와 시에 철학이 이미 완전하게 포함되어 있는 만큼 분리시켜 낸 철학이란 별도로 필요 없다고 내가 주장한 점이었다. (276)

 

소크라테스는 나에게 삶에서나 죽음에서나 어쩌면 그리스도와 비교될 탁월한 현인으로 여겨졌다. (277)

 

내가 내 자신과 고독에게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긴 지금, 절반은 선천적으로 절반은 후천적으로 이 재능이 나왔다. 어디를 바라보든 나는 심상하나를 보아냈으며, 내 눈에 뜨인 것, 나를 기쁘게 한 것은 붙잡아 두려 하였다. 그리하여 아주 서툴게 그리기 시작하였다. (280)

 

나는 아주 깨끗한 질 좋은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는데, 마치 나의 무능력이 하얀 백지라는 시금석을 두려워라도 하듯이 오래된 회색 종이, 실로 한쪽 면은 벌써 글씨가 쓰인 종이가 나를 가장 유혹했다. (282)

글을 쓰는 것도 그렇다. 백지를 두고 써야겠다 작심하고 덤비면 한 줄도 나아갈 수 없을 때가 있다.

 

누구도 자기 자신의 모습이 싫은 사람은 없고, 가장 못생긴 사람이든 가장 잘 생긴 사람이든 현재 자신의 모습을 기뻐할 권리는 있다. (287)

 

기품이란 어떤 것이든 지금 여기에서 드러나고 있으면 타인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288)

 

연설의 가장 좋은 점은 설득이며, 설득할 생각이 없는 사람은 연설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하는데 남을 납득시키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296)

 

알고자 하는 욕구가 계속 나를 몰아대어 나는 고대 문학사에 빠져들었는데, ...이를 통해 학설과 인생에는 얼마나 많은 기이한 것들이 나타났었는지 모른다는 일반적인 개념 하나를 얻으면서 백과사전주의 빠져들었다. (299)

 

자신들의 현존의 어느 순간에든 스스로를 완성된 것으로 여길 수 있으며, 참 거짓을 따지지 않고, 높고 깊음을 따지지 않고 그저 자기들에게 맞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야말로 젊음의, 실로 인간 전반의 행복한 모자람 아닌가! (300)

 

그때로서는 그 부담에서 해방되는 길이 나에게 지정되어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인생계획을 생각해 내려 노력하는 것 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법학공부는 내던지고 오로지 언어들, 고대, 역사,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모든 것에 나를 바칠 생각이었다. (301)

자기 삶의 길에 대한 확신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신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리라.

 

시적으로 모작해 보는 것이 나에게는 언제든 가장 큰 즐거움이기는 했다. 나는 그런 일을 점점 더 쉽게 해 나갔는데, 그건 본능에서 이루어지며 어떤 비판도 나를 헷갈리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01)

글을 쓰는 것이 그러했다. 주제가 없어도, 딱히 무엇을 써야겠다 하는 생각이 없어도 누구에겐가 생각을 글로 적어 보내는 것이 즐거움일 때가 있었다. 이런 본성에 가까운 즐거움은 어떻게 사람의 마음 속에서 만들어 지는 것인지?

 

자기 자신의 인생행로의 윤곽을 미리 그려본다는 것은 내게 심지어 낭만적이고 명예롭게 보였다. (303)

 

묶였던 사슬이 끊기고 감옥의 쇠창살도 곧이어 줄질로 잘려나갔을 때 수인이 느끼는 남모르는 기쁨도, 나날이 지나가고 10월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내가 느낀 기쁨보다 더 클 수 없었을 것이다. (303)

 

나는 내 꿈을 만들어갔고 거기에 전적으로 매달렸으며, 먼 곳에는 행운과 만족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기대를 걸고 있었다. (303)

이런 집중과 확신은 어디에서 기인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내 꿈을 만들어 가는 길에서 걱정과 근심이 많다. 걱정과 근심은 미래에 대한 풍광을 자꾸 흐트러뜨린다. 자기 확신이 강한 인성이 참으로 부럽다.

 

그렇게 어떤 시절이 되면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하인은 주인으로부터, 호의를 입은 자는 호의를 베푼 자로부터 떠나기 마련이다. 자신의 두 발로 서로 독립하려는,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그런 시도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언제나 자연의 뜻에 맞는 것이다. ★★★★★★

천복을 향한 시도, 자기 실현의 역사 그것을 맛보고 운 좋게 살아 볼 수 있는 삶이라면 잘 살았다 이야기 할 수 있는 대목을 얻은 것이다. 괴테의 자기실현에 대한 사상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부문이다.

 

어느 고장이든 그 사투리를 사랑한다. 사투리란 사실 영혼이 그 호흡을 길어내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314)

 

속담이란 말을 이리저리 미적대며 돌려 표현하는 대신 바로 정곡을 찌르는 것인데 말이다. (315)

 

나는 사람은 모름지기 쓰는 대로 말하고, 말하는 대로 쓰라는 말을 들었다. 나에게 말하기와 쓰기란 언제든 각각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별개의 두 가지 종류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315)

 

예의 바른 정중함이란 무릇, 크고 넓은 생활방식의 개화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닐 경우, 한정적이고 정체되어 보이며 시점에 따라서는 멍청해 보임이 틀림없다. (316)

예의 바름에 대한 색다른 해석, 그렇게 보일 수 있겠구나. 우러나오는 예의 바름에 대해서 생각해볼 것

 

모든 편안한 생활과 명랑하고 자족적이며 살아 있는 모든 시 예술에 있어서의 두 숙적, 풍자와 비평 말이다. (324)

 

이미지들로 말하잠녀 자연 이외에 달리 어디서 가져오겠는가? 화가는 드러내 놓고 자연을 모방한다. 왜 시인리라고 못 그러겠는가? 그러나 자연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그대로 모방될 수가 없다. 무척이나 많은 무의미한 것, 값어치 없는 것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330)

 

가장 의미 있는 것은 늘 새로운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말이다. 그리고 이 점을 한동안 이리저리 생각해 본 다음 그들은 놀라운 것이란 언제나 다른 모든 것보다 새로운 것이라고 느낀다. (330)

 

자연을 모방하되 그럼에 있어서 놀라우면서도 동시에 도덕적 목적과 유용함이 있는 문학 장르가 최선이자 최고의 장르로 인정될 터였다. 그리하여 이 큰 우선권은 많은 숙고 끝에 드디어 매우 확신을 가지고서 이솝 우화에 주어졌다. (331)

 

그렇게 바깥과 비교를 해가면서 자신을 측정했다. 시 작품의 양이 점점 늘어나가 마침내 내면을 향한 비교도 이루어질 수 있었다. (343)

나는 양에 신경 쓸 테니 신이시여 당신은 질을 책임지소서 하는 말처럼 사람이 무언가에 빠져서 하나의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양적인 것에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누구든 철학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차츰차츰 철학자로 여길 권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철학은 다소간에 상식이자 훈련된 오성이었다. 보편적인 것을 향해 나아가고 내적 외적 체험에 대해 결정적 판단을 감행하는 그런 오설 말이다. (344)

 

깊은 심성을 가진 사람들은 과거에서나 미래에서도 살아 있어야 할 필요성이 있게 되었다. 그들이 시대가 흐르면서 현재까지 드러난 계시의 예언들과 가까운 미래와 또 가장 아득한 미래를 가리고 있는 지혜의 예언을 존중하지 않으면 세상사는 그들에게 의미 있을 수가 없었다. (347)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남겨두는 한에서가 아니라, 활동하고 즐기고 다른 사람들에 영향을 끼치며 즐기도록 자극하는 한에서 의미 있게 남는 법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자극할 것인가? 결국이 이것이 내가 나를 알리는 내가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1차의 주제가 될 텐데.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내가 평생을 두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었던 저 방향이 시작되었다. 즉 나를 기쁘게 하거나 괴롭히는 것, 혹은 그 밖에 열중시키는 것을 하나의 이미지로, 한 편의 시로 변화시키고 나아가 나 자신과 결말을 지어, 외적 사물에 대한 나의 개념을 바르게 하고 또한 그것을 통해서 내면에서 자신을 진정시키는 것 말이다. (356)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자신에게 복수한 바보짓들은 신체적으로 병이 나는데 아주 큰 촉진제 역할을 했고, 그 병으로 인해 나는 내 인생 최고의 시절을 몇 년 잃어버렸다. 그렇다. 만약 여기서 시적인 재능이 그 치유력으로 특별히 도움을 많이 주었음을 증명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쩌면 이 상실로 인하여 파멸해 버렸을 지도 모른다. (358)

 

우리에게는 가슴이 언제나 정신보다 가까이 놓여 있고 우리를 창작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리고 정신이야 자구책을 잘 알기에 가슴의 문제들이 나에게는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였었다.

가슴과 머리가 싸우면 90%는 가슴이 이기게 된다. 나의 특성인가 했지만 보편의 특성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무의식과 만나는 것은 자신의 머리 속의 생각에 집중하는 것보다 마음 속에서 이는 느낌들을 천천히 분석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고 싶다. 하기 싫다. 설렌다. 무감각하다. 재미있다. 재미없다. 흥분된다. 평온하다. 등등 모든 감정은 생각이 하는 것일까 마음에서 그냥 생기는 것일까.

 

우리가 존경하는 그가 아니라 그의 직책이고, 우리가 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그의 신호가 아니라 그가 내리는 축복이기에, 그만큼 더 장엄하다. (367)

 

경험 많은 사람에게서 요구되는 바는, 행복과 불행 둘 중 어느 것에 대해서도 놀라지 않으며 또 거기에 너무 지나치게 활발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387)

 

그런데 어쨌든 근면이 나의 장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영감처럼 떠오른 것이 아니면 나는 즐겁지가 않았다. (394)

 

선한 것과 옳은 것에 대한 생각이 같고 이미 교양을 쌓은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나란히 살 수 있다면 한 도시에 그보다 더 큰 행운은 없을 것이다. (396)

생각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인생에서 행운이라 확신한다. 마음의 길이 다른 사람은 아무리 자주 만나도 즐겁지 아니하고 만남 자체가 부담이다.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는 이런.

 

정신의 기쁨은 두 가지 방식으로 가장 높게 누릴 수 있으니 바로 관조와 개념을 통해서다. 관조는 늘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으며 품위 있는 대상을 요구하고, 바로 도달할 수 없는 상당한 교양을 요구한다. 반면 개념은 수용력만을 요청하고 내용을 주며 그 자체가 교양의 도구다. (398)

 

개념과 관조가 서로 교대로 요구하는 것처럼, 나는 이 새로운 생각들을 오랫동안 이리저리 굴리며 이해하려 하다 보니, 중요한 예술 작품들을 좀 더 많이 보고 싶다는 무한한 욕구가 솟구쳤다. (400)

 

설령 그들이 내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더라도 그 안에서 아무런 가벼운 뜻도 찾아내지 못했으리라. 지식의 증가는 불안의 증가라는 저 옛말의 진실이 온 힘으로 내게 닥쳤었고, 본 것을 정리하여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조용히 그 여운이나 음미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409)

 

젊은이들은 가르침을 받기보다는 고무 받고자 하는 법이니까. (413)

 

많은 비범한 인물들에게서 그러하듯이 운명이 기이하고 원망스러운 종말에 의해 그를 출중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415)

 

관계가 완성되려 한다면 더 깊은 곳이 열려야 하니 그것은 종교적 신념, 즉 불멸의 것에 관련되며, 우정의 바탕을 굳히고 아울러 그 결정을 장식하기도 하는 마음의 문제들이다. (420)

 

우리 영혼의 조화가 가장 정신적으로 나타날 때 세상사의 거칠고 날카로운 음이 가장 세차고 요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하고... (422)

 

스스로를 관찰하는 인간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잇다는 도덕적 체험이었다. (426)

 

매우 추천할 만한 카드놀이가 나의 취미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진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435)

 

시간은 무한이 길고 하루하루란 정말 채우고자 한다면 아주 많은 것을 부어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436)

 

인간은 누구나 결국 자기 자신의 종교를 갖는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기 때문에, 나도 내 자신의 종교를 세워볼 수 있겠다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은 없게 느껴졌고 나는 이를 매우 편안하게 행했다. 난해하고 신비적이고, 카발라 적인 것도 기여를 했다. 그렇게 하여 나는 자신을 위한 세계 하나를 만들었다. (440)

 

구원이란 오로지 영원에 의해 결정될 뿐만 아니라 영원히 필연적이라고 생각되었다는 것, 실로 구원이 생성과 존재의 전체 시간을 통하여 거듭거듭 갱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43)

 

모든 종교와 철학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인간이 없이 지낼 수 없는 이 위대한 진리가 당연한 민족들에 의해 다양한 시대에 갖가지 방법으로 실로 기이한 우화와 심상으로 제한된 가운데서 전승되고 있다는 점이다. (443)

 

우리가 한쪽에서는 우리 자신을 응집하는 집아(執我)의 필요를 느낌으로써 또 다른 편에서는 규칙적인 맥박 가운데서 자신을 벗어나는 탈아(脫我)를 소홀히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443)

 

젊은이는 인식할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것에 열정을 가지고 몸을 던진다. 부분적으로는 그것이 자체로서 그의 관심을 끌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그것이 그에게 독립과 호의의 즐거운 전망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454)

 

정말로 달변이며 모든 마음의 문제들, 이 가장 섬세하면서도 가장 힘 있는 문제들을 적합하고도 호감을 주게 표현하는 능력이 있었다. 똑같은 경우가 바로 선한 사람 융이었다. (466)

융과 괴테의 만남

 

"늙지 않으려면 댁도 청춘에 목을 매달 걸 그랬지!" (475)

 

우리의 소망이란 우리들 속에 들어 있는 능력의 예감이다. 즉 우리가 이룰 능력이 있는 것을 예고하는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들 바깥에서 그리고 미래의 모습으로 우리 상상력에 그려진다. 우리는 우리가 이미 남모르게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열정적인 선취야말로 진정으로 가능한 것을 꿈꾸어 얻은 현실적으로 것으로 변모 시키는 것이다. (484) ★★★★★

그렇다. 소망이란 내 안의 알 수 없는 능력이 노래하는 희망이다. 낭중지추처럼 그렇게 내 안에서 나를 뚫고 나오고 싶어 하는 존재의 울음인 것이다. 그것에 마음을 다하여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은 나에 대한 그리움인 것이다.

 

"젊은 시절에 소망한 것은 노년에 풍성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런 작용들이 여러 세기에 걸쳐지고 시간에 의탁하여 오로지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면, 반대로 익은 과일처럼 신선한 채로 젊은 시절에 즐겨야 하는 다른 것들이 있다. (487)

 

더 없이 탁월한 인간도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며 그저 얼마 안 되는 생계를 누렸다는 사실에서 교훈을 받았다면 말이다. 그런 사람도 너무 심하게 자기 자신에게로 되던져졌고 외적인 세계의 충만에 손을 넣어 뒤져보지 못했으며, 거기서 다만 자신의 성장을 위한 영양과 동시에 그것의 척도 한 가지를 찾을 수 있었을 뿐인 것이다. (504)

이리 보면 인생 뭐 별거 있는가 싶기도 한데...

 

한 인간의 이름이란 이를테면 그저 둘렀다가 아무 때나 벗을 수 있는 외투 같은 게 아니다. 피부 자체처럼 그에게 켜켜로 자라나 있는 완벽하게 맞는 옷과 같다. 그것은 해치지 않고는 깎아낼 수도 벗겨낼 수도 없다. (511)

 

감사하기 싶음은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본질로서 자선에 대응하는 것으로 이는 매우 드물며 탁월한 인간들에게서만 나타난다. (516)

 

<파우스트>라는 의미 있는 인형극 우화는 내 마음 속에서 아주 다음(多音)의 반향을 윙윙 일으키고 있었다. (519)

파우스트에 대한 그의 초기 느낌이 그런 것이었구나.

 

나 역시 인생에서 갖가지를 시험해 보았고, 언제나 불만족스럽게 또 보다 괴롭혀져서 되돌아왔었다. 이제 나는 이것들을, 다른 많은 것들처럼 마음 속에 품고 다녔으며 외로운 시간이 되면 그것에서 즐거움을 맛보았다. (519)

 

내가 세상을 얼마 안 돌아다녔는데도 벌써 나는 알아차렸다. 여행에서는 물의 흐름을 알아보고, 실로 아주 작은 개울에게도 어디로 흘러가는 거냐고 물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럼으로써 지금 있는 어느 강물 지역이든 조감을 얻고, 서로 연관되어 있는 높이와 깊이에 대한 개념을 얻을 수 있으며, 이렇게 가장 확실하게 이어지는 근에 따라 몸을 튼다. (524)

자신과 대화하는 것, 자연과 대화하는 것. 그래서 삶과 조응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하고 싶고, 글에 담고 싶은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란, 한번 무엇인가가 자기에게 적용하면 그 작용이 그들 자신의 마음속에서 가공되어야만 하고, 거기서 이런저런 좋은 점과 이런저런 화가 생성된다는 행복 혹은 불행을 가지기 때문이다. (538)

 

나는 늘 그런 종류의 모임에서 그런 연습들을 곧 멈추어야만 했다. 그것을 통해 내가 너무 심하게 삶의 향락과 자유로운 정신의 촉진을 잃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저 두 가지 부모님의 재능은 제3의 것, 즉 나를 수사적으로 그리고 비유적으로 표현하려는 욕구와 결합되어 나의 전 생애를 함께 하였다. (560)

 

 

3. 나무들은 하늘까지 자라지는 않도록 되어 있다.

헤르더는 독일 문학의 빈곤을 보지 못하도록 나를 가리고 있던 장막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던 것이다. 그는 내가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선입관을 무자비하게 파괴해 버렸다. 그는 그 자신이 가려고 생각한 넓고 찬란한 길로 나를 이끌어 갔고,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에 대해 나로 하여금 관심을 갖게 하여, 나를 굴복시킬 때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566)

인생의 스승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 계기가 되는 힘. 그것을 스승은 가지고 있는 듯하다.

 

어떤 예감이든 그 예감이 사건을 통해 확인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남보다 더 고귀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먼 곳의 어떤 일을 감지할 만큼 자기가 섬세한 감각을 지녔다거나, 혹은 필연적이긴 하나 확실치는 않은 연관 관계를 알아챌 만큼 자기가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것이다. (569)

 

예의 미신적인 믿음을 내 마음속에 키우고 있었던 것은 일종의 자부심이었다. 즉 내 입술이 내게는 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저 매혹적인 우월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 우월감을 포기하더라도 순진무구한 처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허다한 천진난만한 즐거움을 거부함으로써 내 금욕적인 행실을 의식하고 적잖은 자만심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579)

 

사람들은 프리데리케의 성품뿐만 아니라 나의 신실함을 신뢰하고 있었다. 내가 그리 죄 될 것도 없는 가벼운 애무조차도 이상하리만큼 삼갔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온전히 믿을 수 있다는, 내게는 아주 유리한 선입감을 가지고 있었다. (584)

 

사랑하는 존재와의 관계는 너무나 절대적이어서 환경은 별로 중요한 의의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그 존재에 어울리는 자연스럽고 익숙한 환경이기를 우리의 마음은 요구한다. (590)

 

아니 많은 재능이 있는 사람들의 오류는 그들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되려면 청년들은 오히려 이런 입장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된다. (593)

 

대체로 내가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려면 그 일에서 내가 무언가 얻을 것이 있어야만 했다. 즉 그 일이 성과가 있을 듯 보이게 하며 기대를 품게 하는 무엇인가를 그 일에서 인정할 수 있어야만 했다. (594)

 

그러나 이런 사정들은 그들의 독특한 방식으로 우리를 붙잡는다. '무엇'이라는 것은 우리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 '어떻게'라는 것은 우리 의지와는 거의 상관이 없다. ''라고 질문해서는 안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라고 질문할 때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다. (603)

 

독일적인 자연애와 진리애를 소유한 우리 청년들에게는, 인생과 학습에서 가장 훌륭한 길잡이가 우리 자신과 타인에 대한 성실성이라는 사실이 늘 목전에 있었으므로, 볼테르의 편파적인 비성실성과 또 그가 가치 있는 많은 대상들을 왜곡시키는 것이 점점 더 혐오스러워졌다. (612)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 이런 모든 것들과 여러 가지 다른 것들, 즉 옳은 것, 그른 것, 진실된 것, 반쯤만 진실된 것 등이 개념들을 혼란 시키는데 기여했다. 우리는 여러 번 길을 잘못 들거나 우회로를 택하는 등 방황했고, 그리하여 다방면에서 또한 저 독일의 문학적 혁명이 준비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혁명의 증인이었고, 의식이 있건 무의식 중이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혁명에 끊임없이 협력했던 것이다. (620)

 

실제 우리들은 한 편의 작품 전체를 그 가치대로 섭취할 수 있을 정도로 언제나 집중해 있는 것도, 그렇게 현명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자신과 직접 관계되는 부분들에 줄을 긋지 않는가? 저 뛰어난 개성, 위대한 격언들, 딱 들어맞는 묘사하며 유머러스 한 필지 등 모두가 하나하나 강력하게 내 마음을 울렸었다. (624)

 

나는 리듬과 운율을 존중한다. 이 양자를 통해 시는 비로소 시가 되는 것이다. (625)

 

청춘기에 이처럼 아무런 목적도 없이 품은 애정은 밤에 던져진 폭탄에 비교할 수 있으니, 이 폭탄은 부드럽고 광채 나는 선을 그으며 솟아올라 별들 사이에 섞여 일순간은 그들 사이에 머무는 듯 보이지만, 그 다음엔 아래를 향하여 똑같은 궤도를 단지 거꾸로 그으며 내려오고, 그 행로가 끝나는 곳에서 결국은 파멸을 가져오는 것이다. (632)

 

전체를 산산조각 내는 식의 비판을 가하지 않고 향유하면서 수용한 그러한 인상에서 암암리에 얻는 수확은 참으로 귀한 것이다. 청년은 훌륭하고 선한 것을 비판적인 태도로 조사하거나 분리하려 들지 않고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내버려둘 때, 그러한 최대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639)

 

우리들에게 전승되는 모든 것, 특히 글을 통해 전승되는 모든 것들에서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의 기저, 내용, 의미, 방향이다. 여기에 근원적인 것, 신적인 것, 영향을 미치는 것, 침해할 수 없는 것, 파괴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649)

 

인간이 성취하려고 하는 모든 일은, 그것이 행위를 통해서건 말을 통해서건 혹은 그 밖의 어떠한 방법에 의해서 생겨나든지 간에 총체적인 힘의 결집에서 나와야만 한다. 분리된 것은 어떤 것이든 모두 배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 (655)

절박함은 그렇지 않을 때와 다른 힘을 나타낸다. 이런 집중의 힘은 나를 새롭게 한다. 어쩌면 일반적이고 편안한 상황에서의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닌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든지 그저 어느 정도라도 창작에 대한 애착이 있고 자기 기량에 자신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방식대로 무엇이건 독창적으로 써보라고 촉구했고, 동시에 나 자신도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창작과 집필에 대한 권유를 받았기 때문이다. (664)

 

마치 어려서 이미 놀랄 만큼 지능이 발달한 재능 있는 아이들이 허락만 받으면 지극히 단순한 소년 시절의 놀이로 다시 돌아가듯이, 우리들도 보다 진지한 일에 대한 사명을 너무도 쉽사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669)

 

어느 한 사안이 어떤 다른 사안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묵직한 사건들이 쇄도할 때는 어려운 일이며, 또 그 선택에는 이미 편파적인 감정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677)

 

사람이란 전시에는 적나라한 폭력을 가능한 한 견디어내며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상처를 입었다고 느낄지 모르나, 정신적으로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강제를 치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으며, 시대에 봉사하는 것은 결코 수치스러운 봉사가 아니다. 적으로부터나 내 편으로부터나 고통을 당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희망사항은 있으나 신념이란 것은 없다. 하지만 반대로 평화 시에는 인간의 자유정신이 점점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더욱 자유롭고 싶어진다. 사람들은 자기 위에 어떤 것도 용납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압박 당하고자 하지 않으며, 아무도 압박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684)

 

자연과 예술은 오로지 인생을 통해서 접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모든 사색과 행동의 결과는 옛날의 그 결단대로 남았으니, 그 결단이란 내적, 외적 자연을 탐구하고 깊은 애정으로 자연을 모사하며, 이 모사에서 바로 자연 자체가 지배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693)

나에게도 자연은 항상 큰 가르침으로 서있다. 삶을 살수록 자연에 눈과 마음을 담게 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사람들이 말하듯이 동경 속에 최대의 행복이 있다면, 그리고 진실한 동경은 도달할 수 없는 것만을 향해야 하는 것이라면, 지금 우리가 그의 방황의 자취를 같이 따라가고 있는 그 청년을 가장 행복한 유한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한 조건들이 여기서 모두 조우하고 있었던 셈이다. (701)

 

셰익스피어 작품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나는 내 정신적 시야를 넓혔기 때문에, 좁은 무대와 공연에 할당된 짧은 시간은 내게 어떤 의미 있는 것을 연출하기에는 전혀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되었다. (736)

 

우리는 군인이 되어 전쟁에 나갈 것을 결심하고 또 용감하게 위험이나 장애를 견뎌내고 또한 부상이나 고통, 아니 죽음까지도 감수하리라고 마음을 먹지만, 이렇게 막연하게 일반적으로 예측되던 재앙이 갑자기 닥쳐 우리를 극도로 불행하게 하거나 놀라게 할 수 있을 그런 특수한 경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듯 용감하게 이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모든 사람, 특히 작가는 그런 경험을 하기 마련인데,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741)

 

진정한 시는 현세의 복음으로서, 내적인 명랑성과 외적인 즐거움을 통하여, 우리를 짓누르는 지상의 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시는 마치 고무풍선과도 같이 우리를 우리에게 지워져 있는 짐과 한층 고고한 영역으로 들어 올려, 이 지상의 얽히고 설킨 미로를 조감도처럼 우리 눈앞에 전개시켜 준다. (750)

시에 대한 멋진 표현이다. 지상의 얽히고 설킨 미로를 조감도처럼 펼친다니....

 

우리가 여기서 다룰 인물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상태에 있으면서 대체로 행위의 결핍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과도한 요구로 인해 인생이 싫어진 사람들이다. 나 자신이 그런 경우에 처해 있었으며, 그런 가운데 내가 얼마나 고통을 받았고 또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대가로 치러야 했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으므로, 여기서 나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갖가지 죽음의 방법에 대해 내가 심사숙고하며 고찰한 것을 숨김없이 말해 보려고 한다. (754)

 

예루살렘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일반적인 소문이 퍼진 직후 그 사건에 대해 아주 정확하고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 순간에 <베르테르>에 대한 구상이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결빙점에 있는 항아리 속의 물이 아주 미세한 진동을 받고 순식간에 단단한 얼음으로 변해 버리는 것처럼, 전체가 온 사방에서 몰려들어 견고한 덩어리를 이루게 되었다. 이 진기한 수확을 확보하고, 중요하고도 다채로운 내용을 지닌 이 작품을 내 마음속에 생생하게 그려보며, 그 모든 부분들까지 완성하는 것은 내게 한층 중요한 관심사였다. 왜냐하면 내가 이미 또 다시 이전의 경우들보다도 더 희망이 적고, 혐오까지는 아닐지라도 불쾌한 감정만이 예상되는 괴로운 지경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757)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모티프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한 줄 글을 쓸 수 없는 순간은 마음이 어느 무엇에도 움직이지 못한 시간의 침체이다. 글이 잘 써질 때는 정신과 마음이 벌에 쏘이는 순간처럼 무엇엔가 가슴을 내어 놓은 순간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 길지 않은 작품을 마치 몽유병자처럼 거의 무의식 중에 써 내려갔었기 때문에, 이제 좀 변경하고 수정하기 위해 쭉 훑어보았을 때 나 스스로가 이 작품에 대해서 놀랐다. (760)

경험하고 싶구나. '진정 내가 이것을 썼단 말인가' 하는 그런 경험을

 

나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이 작품의 구성을 통하여 폭풍우처럼 격렬한 경지에서 구제되었다. 자신의 죄과와 타인들의 죄과로 인해서, 우연적인 삶의 방식과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으로 인해서, 계획과 무모함으로 인해서, 또 고집과 양보로 인해서 아주 난폭하게 이리저리 쫓겨 다니고 있었던 경지에서 말이다. 나는 마치 총 고해를 하고 난 후처럼 다시 즐겁고 자유롭게 느꼈으며, 새 인생을 시작할 권리가 주어진 것처럼 느꼈다. (760)

 

나는 작가와 대중이 거대한 심연으로 갈려 있으며, 동시에 다행히도 그것을 쌍방이 전연 모르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서언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일찍이 통찰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가 자기의 의도를 밝히려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는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동기를 제공하게 되기 때문이다. (769)

 

우리들이 존중하고 숭배하고 있는 것을 가능한 한 우리 것으로 할 뿐 아니라, 그러한 것을 우리 자신으로부터 생산해 내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들의 가장 아름답고 달콤한 공상으로, 비록 이러한 공상이 인생에 있어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유발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들은 그것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776)

 

도대체가 그는 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 중 하나였으니, 이들에게서는 외적 직업과 내적 사명이 완전히 일치하며 젊은 시절의 교양이 언제나 후일의 교양과 연계되면서 그들의 여러 가지 능력을 자연스럽게 펼치도록 해주는 것이다. (791)

 

왜냐하면 자기중심적인 인간은 대개 선량하기도 한 까닭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만 부드러운 작용을 가함으로써 열매를 맺을 씨앗을 감싸고 있는 딱딱한 껍질을 벌어지게 하는 것이다. (796)

 

신앙이란 하나의 신성한 그릇으로, 그 안에 각자가 자기의 감정, 오성, 상상력을 능력껏 채워 제물로 바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지식은 이것과는 정반대다. 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아느냐, 얼마나 잘 아느냐, 그리고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800)

 

나를 스피노자에게 매료시킨 것은 문장 하나하나에서 빛나는, 사적 욕심을 철저히 배제하는 생각이었다. 저 놀라운 말, "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신 또한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그 말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모든 전제와 거기서 유래하는 모든 결론과 더불어 나의 전체적인 성찰을 남김없이 충족시켰다. (817)

 

사물을 두 번째 보게 되면 첫 번째 본 것과 머릿속에서 혼합되는 것이 상례이며, 또 나는 생각에 잠긴 채 내가 경험했던 많은 일들을 정리하고 내게 영향을 끼친 것을 소화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821)

 

대체로 나는 무엇인가를 실행에 옮기기 전에 우선 그것을 마음속으로 정리해 보아야만 했다. (824)

나와 비슷하다.

 

여하간 종국에는 언제나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신조차도 인간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인간이 품고 있는 외경, 신뢰, 사랑에 언제나 대답할 수 있도록, 적어도 아주 긴박한 바로 그 순간에 대답할 수 있도록, 적어도 아주 긴박한 바로 그 순간에 대답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835)

 

문학 작품이란 원래 도덕적인 것이나 감각적인 것을 초월하여 부표하면서, 기껏해야 우회적으로 그리고 그 경우에도 그저 우연히 유용하게 될 수가 있는 것이다. (843)

 

그리스 신들과 영웅들은 도덕적인 특성이 아니라 순화된 감성적 특성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잘 알려져 있는 터다. (849)

 

바그너는 명사들에게서 흔히 보는 또 다른 특색도 겸비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와 대화 나누기를 기대하거나 원하는 바로 그런 주제에 대해서는 그리 쉽사리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었다. (855)

 

우리가 살았던 그 시대를 우리는 요구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아직 아무도 이루지 못한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즉 사색과 감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자연에 관한 직접적이고 독창적인 견해, 그리고 그에 기반한 행동이야말로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상의 것으로, 그것에 도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861)

 

 

4. 신을 제외하고는 신에 맞설 자가 없다.

흔히 불행은 홀로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행복도 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화를 이루면서 우리 주위에 몰려드는 다른 상황들도 역시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운명이 우리에게 그런 것들을 부과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서로 관련된 것은 스스로 끌어당기는 힘을 인간이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877)

 

나는 언제나 어떤 사람이 어떻게 생각했어야 했으리라는 말을 제삼자에게 듣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당사자 자신에게 듣고 싶어 했다. (878)

 

나는 이미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같은 말을 가지고도 남과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 동일한 대화나 동일한 책이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각기 다른 상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너무나 명백하게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데카르트의 제자로서 수학과 유대 신학 연구를 통해 사유의 정상에까지 도달했으며, 또 오늘날까지도 모든 사변적인 노력의 지표인 듯 보이는 이 인물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자만심을 내 스스로가 품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독자는 믿어주리라. (881)

 

시적 재능의 발휘는 본래 외적인 동기에 의해서 자극되고 규정될 수 있었지만, 그것이 가장 기쁘고 풍성하게 발휘되는 것은 무의식 중에, 아니 오히려 의지에 반해서 나타나는 경우였다. (884)

 

내 실질적인 근로에 대해서는 사람들에게 실제 보수를 요구해도 되지만, 그 반면 자연의 선물인 저 사랑스러운 재능은 성스러운 것이기에 사리사욕 없이 계속해서 남에게 베풀어도 된다는 생각은 아주 기분 좋은 것이었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서 나는, 바로 사람들이 그토록 요구하고 경탄해 마지 않는 재능이 독일에서는 법률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멋대로 유린 당하고 있음을 인정해야만 했을 때 내 마음 속에 일어날 수도 있었을 괴로운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887)

 

자신의 도덕적인 교양 형성을 위해서 정진하는 것은 인간이 계획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행하기 쉬운 일이다. (896)

 

각성이라든가 개심이라는 것으로 이는 어떤 위대한 원리의 인지로, 이것은 언제나 천재적인 정신 작용이다. 사람들은 직관에 의해서 그곳에 도달할 뿐 사색이나 교리나 전승에 의해서는 도달할 수가 없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신앙 속에 닻을 내리고 그리하여 굽이치는 파도 한복판에서도 담대하게 확신을 잃지 않는 가운데 자각하는 정신적인 힘의 인지이다. (897)

 

자기를 맞이할 근심스러운 아내의 모습과 자기에게 호의를 품고 있던 장인 장모의 전과 다른 태도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장인 장모는 너무나도 자신감 넘치는 그가 지고 있는 막대한 부채의 보증인으로서 딸의 배우자를 잘못 택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터였다. (902)

 

그녀는 자신에게 사람을 끄는 일종의 천부적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 했음을 부인할 수 없었고, 동시에 자제력이 없는 특성이 이것과 결부되어 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우리는 예사롭지 않은 지점에 이르렀다. 즉 그녀는 이 재능을 내게 대해서도 시험해 보았으나, 그 벌을 받아 자기 자신도 내게 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905)

 

나는 아버지가 나의 실무보다는 시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내가 문학 연구와 창작을 위해서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온갖 배려를 다 하는 것을 잘 알아챌 수 있었다. (914)

 

충동적인 자연의 욕구, 영원히 경고를 되풀이 하는 이성, 폭군처럼 지배하는 본능, 지성의 법칙 등 보통 때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며 우리에게 대항해 오던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친근하게 조화를 이룬 가운데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928)

 

이미 옛날부터 근거 있는 의미심장한 말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것은 어떠한 일이든 그 절정에 오르면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928)

 

행운은 자기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을 대개의 경우 다시 빼앗아 가며, 그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도 그것이 외부 사람들과 연계되어 있는 한, 우연에 좌우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지. (939)

 

학식을 통해 출세한 자를 시기하는 무식한 사람은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쌍한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불쌍한 인간으로 치부될 수 있을 걸세. (940)

 

사람들은 음률과 음운에 대한 요구를 전반적으로 버릴 수는 없었다. 불확실한 원칙을 따르긴 했지만 자기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엄격했던 람러는 이러한 엄격함을 다른 사람의 작품에 대해서도 적용했다. (945)

 

적당히 드십시오! 왜냐하면 달콤한 맛과 주정으로 여러분을 포로로 삼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포도나무는 근절시켜야 할 천하의 폭군이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수호신으로 트라키아의 성 리쿠르고스를 추대해서 모셔야 할 겁니다. (954)

 

나는 가슴 속에 수수께끼 같은 감정을 품고 떠났는데, 내 애정은 이 감정을 먹고 계속 연명해 갔다. 왜냐하면 희망의 여신이 단호한 발걸음으로 떠나갈 채비를 하면, 바로 그 때 사랑의 천사는 더욱더 집요하게 그 옷자락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964)

 

라바터의 저서를 다시 한 번 훑어가다 보면 내게는 우스꽝스럽고도 유쾌한 감정이 생긴다. 마치 내가 전에 아주 잘 알던 사람들의 그림자를 눈앞에 보는 듯한데, 내가 그들에 대해서 일찍이 화가 난 적이 있었기에 지금도 그들을 보고 기뻐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967)

 

마침내 우리는 여러 개의 조그마한 안개 호수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이들이 대기의 띠들과 거의 구별되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지 않아 안개 속에서 건물이 하나 나타났다. 그것은 순례자를 위한 숙소였는데, 우리는 우선 손님을 후대하는 이 지붕 밑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커다란 만족감을 느꼈다. (983)

 

어려서부터 풍경을 그림으로 보는 습관은, 내가 자연에서 어떤 풍경을 바라보게 되면 그것을 그림으로 고정시켜 그 순간을 확실한 기념으로 남기고자 시도하게끔 나를 유혹했다. (990)

 

자신의 내면에 충분한 통합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원래는 분석할 권리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는 외부에 표출된 개별적인 부분에서 자신의 내면 전체를 시험하고 입증하기 때문이다. (995)

 

천재란 그의 행위에 의해서 법칙을 부여하는 인간의 힘이라고 단언하게 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1002)

 

다른 방법으로 그런 평화를 도저히 바랄 수 없을 때, 불확실하지만 실제적인 교양을 추구한 덕택으로 영혼의 은밀한 평화를 얻었던 것이다. (1018)

 

어떤 무서운 힘이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며, 그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을 모든 생물, 심지어는 현성에 이르기까지 끼치게 된다. (1028)

 

서로를 소유하고 오래 함께 같이 살리라는 희망 위에 구축된 애정은 단번에 사멸되지 않는다. 아니 그러한 애정은 오히려 우리가 품고 있는 정당한 갈망과 솔직한 희망을 관찰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해 나간다. 이러한 경우 여자 쪽이 남자 쪽보다 더 빨리 단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판도라의 후예인 아름다운 처녀들에게는 바람직한 재능이 부여되어 있다. (1028)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이럴 때 남자들은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칭얼거리는 어린애가 된다.

 

자유로이 즐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재회가 천국이라면, 오로지 도리상 헤어진 두 사람의 재회는 견딜 수 없는 연옥이요, 지옥의 앞뜰이었다. 내가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났을 때에는 그녀가 이미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1029)

 

이곳을 떠나려는, 내가 있음으로 해서 그녀에게 괴로움을 주지 않으려는, 그녀를 정말로 단념하려는 굳은 결단, 그리고 내가 갑자기 나타남으로 야기하게 될 소동에 대한 생각만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사랑하는 그녀 곁을 떠날 결심을 하게 했다. (1034)

 

결국 청년이나 우리 인생은 도대체가 전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전술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순수한 사업상의 과정에서라면 그러한 우연은 쉽게 설명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오류와 결탁하고는 평범한 자연의 진리에 반하는 공모를 너무나도 기꺼이 꾀한다. 마치 카드놀이에서 행여 우연의 몫이 줄어들기라도 할까 봐 카드를 나누어 주기 전에 섞듯이 말이다. (1035)

 

! ! 이젠 그만! 보이지 않는 정령들의 채찍질을 받는 듯, 시간이라는 일륜의 말들이 우리 운명의 가벼운 마차를 끌고 쉬지 않고 달리나니, 우리에겐 용감하게 고삐를 단단히 잡고, 때론 우로, 때론 좌로, 이 돌멩이, 저 낭떠러지를 피해 수레를 모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구나. 어디로 가는지를 누가 알랴? 어디서 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거늘. (1041)

그렇다. 매 순간 집중하여 삶을 사는 것만이, 찰나 같은 삶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다. 수레를 낭떠러지로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혹은 마차에서 스스로 낙마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 제대로 사는 것, 자신만의 세상을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아야 하리라.

 

 

작품 해설

<시와 진실>은 명확히 '위기의 산물'인 동시에 괴테가 갖가지 개인적 위기에 직면하여 오히려 문인으로서 유난히 돋보이는 성취를 이루었음을 증언하는 저작이기도 하다. (1044)

 

인간을 그 시대 연관 속에서 그리는 것, 그리고 전체가 어느 정도나 그에게 저항했는지, 얼마나 그에게 우호적이었는지, 즉 그가 거기서 어떻게 세계관과 인간관을 형성해 갔는지, 예술가나 시인이니 작가인 경우, 그 세계관과 인생관을 어떻게 다시 외부로 되 비추어 냈는지 보여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전기의 주 과제"라고 말한다. (1045)

 

괴테는 자기 인생을 역사적으로 진실하게 묘사하고자 했지만, 인생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1060)

 

괴테는 과거를 재생시키는 것 자체를 '시인의 작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1060)

 

'사건의 결과'를 그 사건의 이야기보다 우선시하는 가운데, '자기 관찰'에서 '자기 인식'으로 가는 도정을 그려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영향을 주고 교훈을 주고자 하고 있다. 주지할 것은 괴테 자신에게서 일직이 예시된 재능과 인격은 원칙적으로 훗날에야 증명되며 노년의 지혜와 회상을 통해서야 비로소 밝혀진다는 것으로, 여기에 바로 자서전이라는 장르로서의 존재의 정당성과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1062)

'자기관찰&자기인식' 이런 주제로 칼럼을 한번 써보는 것도 괜찮을 듯.

 

자서전에서 괴테가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파편적으로 출간된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자신의 삶의 공백을 메워 자신에 대해 총체적인 예술가의 상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1062)

 

그는 '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그리고 '내가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환경, 즉 자신에게 유리한 영향과 불리한 영향, 또 자신을 형상한 힘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1063)

 

자신이 얼마나 왔는지, 미래에 피할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더 달성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뒤돌아보는 것이다. '그 안에 침몰하지 않고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기', '망상을 가지지 않고 순수하게, 그 끝없는 깊이를 감히 들여다보기' 이것이 괴테 전기의 과제인 듯 보인다. (1063)

내가 무엇을 이야기 하든, 나는 나를 충분히 이해하고 스스로 납득되지 않은 상태에서 삶을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를 이해하는데 지침으로서 삼을 만한 구절이다.

 

괴테는 당시 교양소설 장르가 처한 위기를 자신의 자서전을 집필함으로써 극복해 보고자 했다. (1068)

 

괴테가 결국 이 자서전을 집필하는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해가고 있으며, 나폴레옹의 몰락과 당대 문학의 제 현상들을 위기로 의식하면서 처음의 기획 의도와는 다르게 집필을 일찍 종결하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1074)

 

한 개인에게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발전의 시기이다. 내 경우 이 발전의 시기는 내가 자세하게 기록한 '진실과 시'와 함께 끝난다. (1074)

 

 

3. 내가 저자라면

괴테 자서전 <시와 진실>은 아우구트티누스의 <참회록>, 루소의 <고백론>, 안데르센의 <내 생애의 이야기>, 크로포트킨의 <한 혁명가의 회상>과 더불어 세계 5대 자서전으로 꼽힌다.

나는 그의 자서전을 통해서 18세기 유럽문화의 대강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개인적인 기록에서 보이는 보통의 기록을 훨씬 넘어 생생한 묘사는 한편의 잘 정돈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가 어린 시절에 겪은 7년 전쟁으로 인한 삶에 대한 시야의 확대, 화려하기 그지 없는 요제프 2세의 대관식, 열렬한 종교적 체험 등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당시의 풍속을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더불어 그가 성장하면서 느꼈던 자연, 감정, 사랑, 그리고 개인을 중시했던 질풍노도운동의 태동과 전개를 마치 그림처럼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방대한 그런 시대적, 역사적인 흐름은 괴테의 개인적인 삶이 궁금했던 나에게는 조금 지루하고 당혹스러운 장황함을 주는 느낌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괴테의 한가지 느낌은 '천재'라는 느낌이다. 한 인간의 전인적인 교양이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지를 따라가 보는 맛은 이 책이 가지는 또 하나 빼어난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세상을 보는 남다른 눈의 깊이, 삶과 사람을 보는 마음의 깊이는 글을 쓰고자 하는 나에게 세상과 인생을 어떻게 잘 보아야 하는 지를 알려주는 교범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괴테의 천부적 재능은 완성을 향한 그의 예술적 노력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책에는 괴테 자신이 노력한 문학적 열정뿐 아니라, 그가 성장하면서 품었던 종교, 사상, 과학 등에 대한 방대한 관심과 철저한 고민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괴테는 엄격하고 지적이면서 아버지와 자유분방하고 예술적 감성을 지니고 있던 어머니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가 그의 감성을 따라 잘 나타나 있고, 특히 그의 첫사랑부터 사랑했던 많은 여인들이 등장해 그것이 그의 문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는 것도 매력 중의 하나이다.

 

어느 한 개인의 기록이 그저 개인의 성장과정이나 개별의 사건들에게 집중하게 되면 흥미는 있을지 모르나 의미를 주는 것에는 충실하지 못할 듯하다. 그런 의미에게 괴테 자서전 <시와 진실>은 내가 나의 생을 어떻게 조감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고 있다.

 

나 또한 나의 삶을 우리 사회의 문화적, 사회적 관점에서 해석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저 나라는 외로운 섬으로서가 아닌 전체의 부분으로서 나를 점검해보고 그것들 사이에서 나를 구분되게 하는 나의 특질을 살피는 것이 나에 대한 또 다른 이해의 시작이라고 보여진다.

사회적, 문화적인 틀을 배경으로 나에 대한 이해는 그저 감성적이고 개별적인 사건의 합에 대한 이해에 기초와 배경이라는 튼튼한 버팀목을 제공할 것으로 생각된다.

 

처음 연구원에 지원하면서 썼던 Me-Story의 구성에서 나의 인생관, 직업관등을 기술하게 했던 사부님의 생각에 대한 배경이 이제서야 조금 이해가 된다. 나는 나의 인생관, 직업관이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핵심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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