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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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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6일 16시 57분 등록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카를 구스타프 융, A. 야페 편집, 조성기 옮김, 김영사)

 

 

 

I. 저자에 대하여

 

◆ 카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 1875~1961)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심리학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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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융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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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저자를 위대함으로 이끌었는가?

 

깨우침 하나, 무의식에 눈 뜨다

유년시절의 체험한 검은 옷을 입은 남자에 대한 환상과 남근상에 관한 꿈 등을 통해 나는 세상의 비밀들에 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때 이를테면 땅에 묻히는 매장식이 거행된 것이었다. 내가 다시 땅에 나오기까지는 여러 해가 지나갔다. 지금 나는 그 일이 가능한 한 많은 빛을 어둠 속으로 가져가기 위해 일어난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그때 나의 정신적 삶이 무의식적인 출발을 한 것이다.

 

나 자신도 그와 같은 꿈에 사로잡혀 있었고 열한 살 때부터 착수해온 '주요과업'이 있었다. 나의 생애는 하나의 과제, 하나의 목표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것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즉, 인격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과제요 목표였다. 모든 것은 이러한 중심점에서 설명되며 나의 모든 연구는 바로 이 주제와 연관된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가장 깊이 움직인 것은 선과 악, 정신과 물질, 빛과 어둠의 대극문제였다.

 

 

깨우침, 성당으로 떨어진 똥 덩어리 (두 번째 읽기)

나는 지옥의 불길 속으로 즉시 뛰어들려고 하는 것처럼 용기를 끌어 모아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나는 내 앞에 대성당과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보았다. 하느님은 세상 저 위 높은 곳에서 황금보좌에 앉아 있고, 보좌 밑으로부터 거대한 똥 덩어리 하나가 화려하게 채색된 새 지붕에 떨어져 지붕을 산산조각 내고 대성당의 벽들을 모조리 부수고 있다.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엄청난 안도감과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저주를 예상했는데 그 대신 은총이 나에게 임하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이 임했다. 나는 행복감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울었다. 내가 하느님의 가차없는 준엄함에 스러져 복종하자 하느님의 지혜와 선이 나에게 드러났다. 그것은 마치 내가 계시를 체험한 것과도 같았다. 내가 이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것이 나에게 분명해졌다.

 

 

깨우침, 정신의학의 길을 걷기로 하다

그 영매 소녀는 '조기 완성된 자'였다. 그녀가 죽어가는 최후 몇 달 동안 그녀의 성격들이 하나하나 그녀로부터 분리되어 결국은 두 살짜리 어린아이 상태로 돌아가서 마지막에 잠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나로 하여금 심리학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는 인간의 영혼에 관해 어떤 객관적인 것을 경험했다.

 

나는 크라프트 에빙의 정신의학 교과서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게 되었다. "정신의학 교과서들이 다소 주관적인 특색을 띠는 것은 아마도 그 분야의 특이성과 학문 형성의 불완전성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몇 줄 더 나가자 저자는 정신병을 '인격의 병'일고 일컫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가슴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심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나에게 정신의학 외에는 다른 목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전격적으로 계시처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정신의학에서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흐름이 합류하여 그 합해진 물의 힘으로 스스로 물길을 내어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내가 사방으로 찾아 헤매었으나 발견하지 못했던, 생물학적 사실에 관한 공동경험의 장이 있었다. 정신의학은 자연과 정신의 충돌이 실제 사건이 되는 결정적인 분야인 셈이었다. 소위 정상적인 것의 병적인 변형들은 내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잡았다.

 

 

견딤 하나,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다

친구들은 놀라고 의아해하며 나를 바보로 여겼다. 내가 내과의사로서 출세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코 앞에 있었는데도 정신의학 같은 하찮은 것과 바꿔버리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회는 누구나 당연히 잡으려고 하며 나에게도 무척 유혹적이었다. 나는 아무도 나를 따라오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분명히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나 결심은 섰고 그것은 숙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나의 확신을 흩뜨려놓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강물이 합류하여 세차게 흘러가면서 먼 목적지로 나를 가차없이 실어가는 것과도 같았다. '통합된 이중성'이라는 고양된 감정에 힘입어 나는 마법의 파도를 탄 것처럼 시험을 치러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견딤 둘, 배움이라는 용암의 흐름 그리고 불길의 열정 (두 번째 읽기)

취리히 대학 정신병원인 부르크휠츨리에서의 수년간(1900년~)은 나의 수련기간이었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의 중심주제로 삼은 것은 '무엇이 정신병자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화급한 의문이었다. 처음 반년 동안 나는 정신병원 생활과 그 정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나 자신을 수도원 벽 안에 가두고는, 정신의학적인 사고방식을 익히려고 <정신의학 잡지> 50권을 처음부터 통독했다. 나는 인간의 정신이 스스로 붕괴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싶었다. 정신의학은 정신병이 생겼을 때 이른바 건전한 정신을 엄습하는 생물학적 반응을 조리 있게 표현한 것이라고 여겨졌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물론 연구에 몰두하고 스스로를 밀실로 몰아 넣는 바람에 동료들로부터 멀어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나의 내적 이미지를 추적하던 그 몇 년(1913~1917)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 기간에 온갖 본질적인 것이 정해졌다. 그 무렵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세부적인 것은 단지 보충하거나 명료하게 하기만 하면 되었다. 내 후기의 작업은 모두 그 기간에 무의식에서 솟아나와 나를 휩쓸었던 자료들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는 데 있었다. 그것은 필생의 작업을 위한 원재료였다. 내가 그 무렵 체험하여 기록한 것을 과학적 작업의 그릇 속에서 추출해내기까지 따지고 보면 45년이나 걸렸다. 젊은이로서 나의 목표는 학문에서 뭔가를 성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 그 용암의 흐름을 만났고, 그 불길의 열정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 원료인 셈이었다. 나의 작업은 그 뜨거운 물질을 우리 시대의 세계관에 접목시키는 일이었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성공한 시도였다. 그 최초의 환상과 꿈은 불에 녹아 흐르는 현무암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단단해져 돌이 되었고, 나는 그 돌을 다듬을 수 있었다.

 

 

견딤 셋, 프로이트와의 결별

프로이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 가장 위대한 업적은 아마도 신경증 환자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들의 독특한 개인적인 심리를 파고 들어간 데 있을 것이다. 그가 우리 문화에 준 충격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꿈을 무의식과정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인정함으로써, 잃어버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진 가치를 과거와 망각으로부터 되찾아 왔다.

 

그러나 그는 한쪽 면에만 치우쳐 있었고 개인적 권위를 진리보다 더 내세웠다. 나는 그 순간 그에게서 비극적인 모습을 보았다. 그는 위대한 인물이었으며, 더 나아가 그 무엇에 홀린 사람이기도 했다. 프로이트는 왜 자신이 성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야만 하는지, 왜 그러한 생각이 자신을 그토록 사로잡고 있는지 한 번도 자문해보지 않았다. '해석의 단조로움'이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도피, 혹은 아미도 '신비주의적'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자신의 또 다른 면으로부터의 도피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가 그러한 측면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는 결코 자신과의 일치에 이를 수 없었다. 그는 무의식 내용들의 역설과 모호성을 보지 못했으며, 무의식에서 떠오르는 모든 것은 위와 아래가 있고 안과 밖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밖에 관하여 말할 때, 프로이트가 그랬듯이, 전체의 반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무의식에서 반작용이 일어나는 법이다.

 

신성한 힘의 체험은 사람을 고양시키기도 하고 동시에 추락시키기도 한다. 프로이트가 성욕이 신성한 힘이며 그것은 일종의 신이면서 악마라는 심리학적인 진리를 좀 더 고려했다면, 생물학 개념의 한계에 갇히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어떤 종류의 꿈들을 다루는데 전혀 무력하여 그 자신의 교리에서 도피처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나는 그와 결별했다. 그 후 나의 모든 친구나 친지들은 나를 떠나갔다. 사람들은 나의 책을 쓰레기라고 내놓고 말했다. 나는 신비주의자로 간주되었고, 이것으로 사태는 끝장을 보게 되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그와 함께 할 것이다. 연구를 제한하고 진리를 숨기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나는 경력 따위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넘어섬 하나, 나의 스승들 (두 번째 읽기)

 

#1. 위대한 괴테는 나의 대부요 보증인

파우스트는 제2의 인격의 살아 있는 등가물이었으며, 나는 괴테가 그 시대에 제공한 답이 바로 파우스트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이러한 통찰은 나에게 위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적 안정감과 인류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확신을 더욱 강하게 해주었다. 나는 더 이상 고립된 존재가 아니며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나 이를테면 잔인한 자연의 희롱물도 아니었다. 나의 대부요 보증인은 위대한 괴테 바로 그 자신이었다.

 

#2. 쇼펜하우어와 칸트

나의 탐구가 가져다 준 큰 소득은 쇼펜하우어였다. 그는 눈에 보이도록 여실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고통, 그리고 혼란과 고난과 악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이었다. 칸트는 순수한 본체, 즉 '사물 그 자체'를 인격화하고 그 성질을 규정하여 형이상학적인 진술을 하는 심각한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칸트의 인식론에 의해 밝혀진 것으로, 그 인식론은 어쩌면 쇼펜하우어의 '염세적'인 세계상보다 더욱 큰 깨달음을 나에게 주었다.

 

#3. 프로이트

프로이트는 나에게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히스테리와 꿈의 심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탐구를 그가 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트의 견해는 나에게 개별적인 사례들에 대한 보다 폭 넓은 연구와 이해의 길을 열어주었다. 프로이트 자신은 정신의학자가 아니고 신경학자였지만 심리적인 문제를 정신의학에 도입했다.

 

 

넘어섬 둘, 만다라ㆍ연금술 그리고 나의 저서들 (두 번째 읽기)

 

#1. 만다라, 나의 중심 '자기'로 향하는 길

만다라가 참으로 무슨 의미인지 나는 차츰 깨달아갔다. 그것은 '형성, 변환, 영원한 마음의 영원한 재창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즉 인격의 전체성이었다. 모든 것이 잘 돼가면 조화로우나 자기기만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의 만다라 그림들은 날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자기' 상태와 연관되는 암호와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어떤 핵심적인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꼈고, 그 기간에 '자기'에 관한 생생한 개념을 얻게 되었다. 자기는 나 자신인 동시에 나의 세계인 단자와 같은 것이라 생각되었다. 만다라는 이 단자를 표시하며 정신의 소우주적 성질에 해당했다.

 

만다라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 모든 것, 내가 걸어온 모든 길, 나의 모든 발걸음이 하나의 점, 즉 중심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다라가 중심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것은 모든 길의 표현이다. 그것은 중심을 향한 길, 즉 개성화의 길이다. 대략 1918~1920년(43~45세)에 나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가 '자기'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직선적 발달은 없고 다만 자기를 중심으로 한 순환이 있을 뿐이다.

 

#2. 나의 사상을 뒷받침해주는 역사적 증거, 연금술

나는 내적 체험에 관해 역사에서 예시의 증거를 찾아야만 했다. 다시 말해 나는 "나의 가설이 역사 속에서 어디에 나타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 그런 증거를 찾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내 생각을 증명할 수가 없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연금술과의 만남은 나에게 결정적인 경험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때까지 부족했던 역사적 기반을 나에게 제공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연금술은 하나의 중세 자연철학으로서 한편으로는 과거 즉 그노시스주의에,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 즉 현대 무의식의 심리학에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연금술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의 하나는 물질의 변환이 완성되는 그릇이었다. 나의 심리학적 발견의 핵심도 이와 같은 내면의 변환과정, 즉 개성화였다. 나는 곧 분석심리학이 연금술과 기묘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금술사들의 경험은 나의 경험이었고, 그들의 세계는 어떤 의미로는 나의 세계였다.

 

내 무의식의 심리학은 역사에서 대응물을 만나게 된 셈이었다. 이제 나의 심리학은 역사적 토대를 얻게 되었다. 연금술과의 비교는 그노시스주의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정신적 연속성과 함께 나의 심리학에 실체성을 부여해주었다. 원초적 이미지와 원형의 본체가 내 연구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고, 역사 없이는 심리학, 특히 무의식의 심리학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무의식이 변환하기도 하고 변환을 야기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금술을 배워서 알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무의식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무의식 내용에 대한 자아의 관계에 의해 정신의 변환과 발달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각 개인의 경우 그 과정을 꿈이나 환상에서 읽어낼 수 있다. 집단적인 세계에서는 그것이 반영된 표현이 특히 다양한 종교상징의 변환에서 발견된다.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변환과정에 대한 연구와 연금술의 상징에 대한 이해를 통해 나는 '개성화의 과정'이라는 내 심리학의 중심개념에 이르게 되었다.

 

#3. 나의 저서, 내 생애의 정류장들

나의 책은 단지 대중들이 숙고 하기를 바라고 기대하는 한 개인의 목소리요 문제제기일 뿐이었다. 나의 저술들은 내 생애의 정류장들이라 여겨질 만하다. 그것들은 나의 내적 발달의 표현이다.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생애는 내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이것들은 하나하나 떼어놓을 수가 없다.

 

나의 모든 저술은 말하자면 내부로부터 부과된 과제인 셈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강요로 이루어졌다. 내가 쓴 것은 내부로부터 나에게 엄습해온 것들이다. 나는 나를 충동질하는 영혼으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허용했다. 나는 나의 저술에 대해서 어떤 뜨거운 공감을 기대한 적이 없다. 그 글들은 내가 살아온 동시에 세계에 대한 보상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특히 연구 초기에는 완전히 외톨이가 된 느낌을 자주 받았다. 나는 사람들이 싫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의식세계에 대한 보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일찍이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이토록 성공을 거둔 것이 무척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내가 말해야만 했던 것이 말해졌다는 사실이다. 저작들은 이승과 저승의 조화에 대한 물음에 답을 주려는 늘 새로워지는 시도였다.
 

 

넘어섬 셋,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격 역시 무의식의 조건에 다라 발달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려고 한다.

 

꿈은 영혼의 가장 깊고 비밀스러운 곳에 숨어 있는 작은 문이며, 이 문은 우주의 밤을 향해 열려있다. 그 밤은 자아의식이 생겨나기 오래 전부터 정신으로 존재했고, 또한 우리의 자아의식이 얼마나 멀리 확장되건 간에 정신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모든 자아의식은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독립적이고, 구별이 되며, 개별적인 것들만 알고, 자아에 관계될 수 있는 것들만 본다. 그것이 별들 가운데 가장 멀리 있는 성운까지 미친다 해도, 자아의식의 본질은 '한계'다. 모든 의식은 독립적이다. 하지만 꿈속에서 우리는 태초의 밤의 어둠 속에 살고 있는 좀 더 보편적이고 진실하고 영원한 자의 모습을 하고 나온다. 그곳에서 그는 여전히 전체이며, 그의 안에 전체가 있다. 자연과 구분할 수도 없으며 모든 자아를 벗어 버린 상태이다. 꿈은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된 깊은 곳으로부터 생겨나며, 너무나도 유치하고 기괴하며 비도덕적이다. 꽃처럼 피어나는 그 솔직함과 진실함 앞에서 우리는 기만에 찬 우리 삶에 대해 얼굴을 붉히게 된다.

 

나는 죽기 1959년 BBC 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그때 기자가 내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신을 압니다."

 

 

※ 동영상

"I know God exists

 

 

 

※ 자료 출처

1)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카를 구스타프 융, A. 야페 편집, 조성기 옮김, 김영사)

2)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Carl_Jung)

3)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124008)

4) 동영상 (http://www.youtube.com)

5) 사진 (http://danielson81.files.wordpress.com/2010/10/11jung.jpg)

 

 

◆ 마음 세계의 개척자, 마음의 지도를 내게 건 내다

 

#1. 첫 번째 읽기

융을 몰랐더라면 내 마음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되었을까? 적어도 그로 인하여 마음 세계의 지도 하나는 얻었다. 물론 그것은 지도일 뿐 영토는 아니다. 실제 내 마음 속은 그가 지도에 표시 해 놓은 것과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지도를 통해 나는 적어도 여행을 떠날 수는 있다. 나에게 '무의식'을 알게 해준 것은 프로이트지만, '진짜 무의식'을 알게 해준 것은 융이다. 이것은 다분히 감정적인 것이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어둡고 음흉하여 마주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를 괴롭게 했다. 그러나 융의 무의식은 선과 악으로 판별되지 않는 태곳적 자연스러움 그 자체다. 그래서 나는 융이 좋았다.

 

융의 분석심리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그 주관적인 특성으로 말미암아 학문에 있어서 주류 심리학은 아니지만 심리학도가 된 사람치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왜 그랬을까?" 라는 우리의 근본적 질문 중 하나에 깊게 답을 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융의 개념들은 훨씬 더 주관적이고 상징적이어서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마치 '신화'에 나오는 은유를 어려워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어려움이다. 개념적 사고만을 하는 좌뇌의 비애다. 마음은 전체적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열고 우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내가 세상을 경험하는 것은 오감의 전기적 신호를 수렴하는 뇌의 생리학적 작용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적 체험도 포함된다. 그것은 온통 주관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그런 주관적인 내적 체험을 융은 객관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첫 번째 피험자로 하여 수많은 모험을 감행했다. 그렇다 그것은 참으로 위험한 모험이었다. 무의식의 무규범과 위력에 제압당하여 자신 안에 갇혀 속된 말로 미쳐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모험을 떠났고, 자기의 중심과 만나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여정을 꼼꼼하게 지도로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길을 잃지 않도록 배려했다.

 

무엇보다도 융에게서 얻은 가장 값진 보물은 '자기 실현'의 개념이다. 융의 삶 자체가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이듯 그는 나에게 내 마음을 깊이 탐구하는 것도 자기실현의 역사가 될 수 있음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개성화' 즉 나다워진다는 것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것임을 융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마음이라는 거대한 구슬과 같은 내면의 우주, 그 우주의 중심에 이르는 것. 그렇게 자아가 자기를 만나 자신의 전체성을 깨닫고 자기답게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내가 궁극적으로 삶을 통해 깨닫고 싶은 '메타노이아'가 아닐까? 그렇게 융은 그 중심에 이르는 양피지로 된 허름한 보물 지도를 내게 건 내주었다.

 

 

#2. 두 번째 읽기

나에게도 융과 같은 일이 있었는가? 어느 날 새벽,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깜빡 졸았다. 순간 평생 잊지 못할 체험을 했다. 내 안에 거대한 우주가 펼쳐져 있음을 보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 본 우주보다 더 광대한 그런 우주였다. 그곳은 여러 개의 달이 떠 있고, 밝은 별이 둥둥 떠 다니며, 파도가 넘실대는 검푸른 빛의 바다였다. 그렇게 신비로운 감상에 젖어 있다가 문득 저 멀리 바다 한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한 사내의 뒷모습을 보았다. 의연해 보였고, 조금은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결코 낯설지 않은 아주 오래 전, 내가 생명을 받기 전부터 알아온 듯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 났다.

 

10년 전쯤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시절 가위에 눌린 적이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애써서 눈을 뜨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가늘게 눈을 뜨고 보니 나의 발치로 희미한 형상들이 보였다. 희미한 형상들 가운데 한 형상은 박수무당 같은 색동저고리를 입고 있었고, 다른 형상은 백발에 하얀 소복을 입은 할머니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두려워 불교의 반야심경, 기독교의 주 기도문 등 내가 아는 기도란 기도는 다 했던 것 같다. 한 순간 그 형상들이 화들짝 놀라며 반쯤 열려 있는 나의 방문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내가 한 환성 체험이다. 더욱 더 흥미로운 것은 다음날 어머니께 그 이야기를 하니 어머니도 같은 형상이 문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셨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모두 내가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실제로 체험한 것이다. 융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비판적이기만 한 나의 이성은 무의식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럴수록 나의 존재의 영역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허나 이성 너머에 존재하는 무의식과 신화의 광활한 영역을 끌어 안음으로써 우리는 수많은 가능성을 취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꿈과 신화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상징을 받아들일수록 우리는 '자기실현'이라는 전체적 모습과 더욱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자연이 우리에게 무한하게 제공하는 풍성함과도 같다. 스승께서 우리에게 융을 읽으라고 한 참 뜻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비록 나의 칸막이는 융처럼 투명은 아니지만, 적어도 형상은 식별할 수 있는 '반투명'쯤 되지 않을까? 그렇기에 적어도 나는 그 뒤에 아무 것도 없다고 부정하지는 않고 그 배후의 과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것이 직관으로 상징되는 나의 '감'이며 백발 백중은 아니더라도 열에 일곱, 여덟은 정중 한다. 나는 융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무의식의 영역이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세계라 하여 그것을 부정하여 편협해지는 것보다, 과감하게 그 세계를 끌어안음으로써 풍성하게 존재하고 싶다.

 

 

 

 

II.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내마음을무찌르는글귀_카를 융(기억 꿈 사상)_두번읽기.doc

 

 

 

 

III. 내가 저자라면

 

◆ 전체적 구성에 대하여

마음 세계의 개척자의 자서전인 만큼 겉으로 보여지는 외적 사건보다는 내적 체험위주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큰 뼈대는 일부 서사적인 흐름을 따라 '유년시절 - 학창시절 - 대학시절 - 정신의학자로써의 삶'으로 편성되어 있고, 큰 틀 아래 내용의 구성과 전개는 시간의 흐름에 구속 받지 않고, 내적 체험 위주로 자유롭게 기술되어 있다. 이런 구성은 자칫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서사적 구조에 익숙한 독자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융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임을 감안할 때, 그의 마음 세계를 들여다 보는 듯한 내적 체험위주의 기술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결국 그의 마음을 드러내는 수단은 글로 정리된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것 또한 어찌 보면 서사적일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앞뒤로 시간을 넘나드는 그의 내적 체험이 겉으로 드러난 그의 삶에 언제쯤 일어난 일인지 시간의 순서로 정리된 연표가 없다는 것은 매우 아쉽다. (그래서 나는 직접 연표를 만들어 가며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어서 불편했다.)

 

이 책의 제목은 '기억, 꿈, 사상'이다. 그의 마음에 각인된 내적 체험이 바로 '기억'이고, 그것을 이루는 가장 큰 줄기가 '꿈과 환상'이다. 그것들이 모여 그의 '사상'의 강을 이룬다. 따라서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그의 '분석심리'에 대한 선행 학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쉽지 않다. 따라서 책 뒤편의 '분석심리학의 개념과 용어'를 배치한 것은 독자를 위한 훌륭한 배려다. 주가 없어 깔끔해 보기 좋지만, 군데군데 어려운 심리학 용어가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덕지덕지 늘어 놓지 않는 수준으로 '주'를 달아 놓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 내가 저자라면

 

#1. 첫 번째 읽기

융이 견뎌야 했던 것은 시대가 아닌 자신의 마음이었다. 자신의 무의식과 만난다는 것은 아주 주관적인 체험이므로 겉으로 보여지는 행동과 그가 이야기하는 언어를 통해 유추할 수 밖에 없다. '상처 입은 자 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는 마음이 아팠었고 스스로 딛고 일어났다. 또한 환자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평생의 과업이었던 마음의 이해를 통해 스스로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을 향해 모험을 떠났다. 속된 말로 자발적으로 미치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무의식에 제압당해 귀환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던 모험이었던 셈이다. 다행히 그는 귀환했고 그 영약이 바로 그의 '분석심리'이다.

 

융은 프로이트의 황태자였지만 그와 결별하고, 독립하여 마침내 자신 만의 이론과 사상을 구축했다. <신>이 저자 김용규는 "세상에는 '몇 권의 책'이 있고, 그 '몇 권의 책에 관한 책'이 있으며, 쓰레기와 같은 책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몇 권의 책'은 고전을 의미하는데, 융의 이론과 사상은 바로 그 '몇 권의 책' 중 한 권이라 여길만하다. 만일 그가 프로이트의 제자로 남았더라면 그의 책은 '몇 권의 책에 관한 책'이 되지 않았을까. 마음의 구조, 즉 자아, 페르소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 자기, 심리적 유형론 등은 이후 많은 '몇 권의 책에 관한 책'을 이끌었다. 헤세의 <데미안>,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등은 창작물이지만 융의 이론에 큰 영향을 받은 책들이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도 '몇 권의 책' 중 한 권을 쓸 수 있을까? 융은 아주 어린 나이에 이미 '마음을 향한 눈'을 떴다. 상대적으로 늦은 감은 있지만 고교시절 '밀실의 인간, 광장의 인간'이란 책을 접하여 나 또한 그 눈을 떴다. 이후 심리학과 신경언어프로그래밍(NLP)을 공부 했고, 법정스님의 수필을 접하며 마음을 향한 그 눈이 향한 그곳이 내가 갈 길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2002년 처음 만든 나의 홈페이지 김경인 닷컴(http://kimkyungin.com) 에 '마음의 산업'이란 용어를 만들어 내가 몸담아야 할 분야임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런 깨우침이 내게 왔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밥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길을 외면하고,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을 따라갔다.

 

그로부터 5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나는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융이 당시 비주류인 '정신 의학'을 선택했던 것처럼, 또한 학교에 남아 교수로서의 안정된 삶이 아닌 반 미치광이가 되는 마음을 향한 모험을 떠났던 것처럼 나도 모험을 떠난다. 다시는 마음을 향한 그 눈을 외면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아리아드네의 실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몸담고 있는 곳을 훌쩍 떠난다는 거취의 선택이 아닌 '정신적 선택'이다. 스승의 배를 타고 떠난 지금의 모험이 끝나면, 나는 나의 배를 타고 출항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학문적인 깊이가 될 수도 있고, 학문의 응용이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마음, 변화, 성장'이라는 놓칠 수 없는 화두가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내가 저자라면 나의 이론과 사상을 담되 안과 밖이 조화가 된 나의 삶을 담을 것이다. 타고난 나의 그릇에 부족하지도 않고 넘쳐 흐르지도 않는 딱 그 크기만큼 나의 삶을 담을 것이다. 융이 미처 다루지 못했던 것들, 가족들과 사랑 그리고 내게 주어진 삶의 아름다운 광휘에 관한 경험을 나는 더 많이 담고, 더 많이 이야기 할 것이다. 또한 내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이야기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평생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 거듭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의 첫 번째 주인공은 물론 나, '김경인'이다.

 

 

#2. 두 번째 읽기

내년 연구원 2년 차에 집중적으로 수련하고자 하는 분야가 바로 융의 분석심리다. 사실 지난해 연구원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 이부영 교수의 <분석심리학>을 비롯하여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자기와 자기실현> 등 분석심리학과 관련된 여러 저서를 1회독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융의 분석심리학을 통해 내가 배우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는 '마음의 구조' 를 통한 '자기실현' 개념에 대한 깊은 이해이며, 다른 하나는 심리적 유형론을 통한 '성격'의 이해다.

 

먼저 융의 '자기실현'의 개념은 '변화와 성장'과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의 도약'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있는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모형이 되어줄 것이다. '자기실현' 개념의 핵심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실현'이란 자기 전체의 인격을 실현하는 것으로 이는 인간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필연적 요구이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나인 페르소나에서 자아를 분리해 내고, 그 동안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그림자를 인식하고, 아니마, 아니무스를 의식화하며, 자기의 메시지를 자기가 상징을 통해 보내는 메시지에 자아가 깊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를 통해 듣게 되고 이윽고 자기 전체로서의 삶을 구현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 하나는 융의 심리적 유형론을 통한 '성격'의 이해인데, 이는 저마다 '자기실현'에 이르는 길이 다를 수 있음을 배우는 것이다. 외향적 vs. 내향적, 직관 vs. 감각, 사고 vs. 감정, 판단 vs. 인식 등 에너지의 방향, 정보수집의 방식, 의사결정 방식, 생활양식 등에 따라 달라지는 개인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나의 고객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나와 있는 모형을 재탕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알고 있는 것들과의 창조적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분석심리학의 '자기실현' 개념이 전체적 모형을 제공해 준다면, 세부적인 실천 지침이나 방법은 인간의 탁월성 연구의 결과물의 집합체인 신경언어프로그래밍(NLP)을 실천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조합에 덧붙여 내가 차별화 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생소하고 어려운 개념들을 어떻게 표면에 드러내지 않고 쉽고 친근감 있게 표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당장 고민할 문제는 아니고, 분석심리, NLP 이 두 가지 분야를 내 것으로 제대로 습득한다면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이 두 가지 조합이라면 나만의 차별성을 가진 조합이 도출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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