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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6일 20시 14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1) 난중일기

난중일~1.JPG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에 쓴 7년동안 쓴 군중일기로 전란의 구체적인 기록이 담긴 진중일기이다. 왜적과 대치하는 엄청난 긴장감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거의 빠짐없이 매일 일기를 썼다. 1592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달인 5 1일부터 이순신이 전사하기 한달 전인 1598 10 7일까지의 기록으로, 친필 초고는 아산 현충사에 보관되어 일기 7책과 서간첩 1, 임진장초 1책까지 총 9권이 현재 국보 제 76호로 지정되어 있다.

난중일기에는 두 가지 전적이 있다. 하나는 이충무공의 친필초고본으로, 충남 아산의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충무공전서>에 있다. 원래 충무공은 일기를 쓰고, 그것에 특별한 이름을 붙였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조 때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면서 편의상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여 권5에서 권 8까지 수록한 이후부터 <난중일기>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충무공전서> 1795(정조19)에 완성되었다. 하지만 충무공 친필 초고본과 <이충무공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는 전서의 편찬자들-윤행임과 유득공-이 충무공의 친필 초고를 가져다가 정자로 베껴 판각에 올릴 때 생략해 버렸기 때문이다. 대신 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부분이 정작 충무공의 친필 초고본에는 빠진 부분도 있다. 일기에서 빠진 부분은 분실이나 소실 되었다기보다 조정의 모함과 무고로 인하여 주변이 시끄러워지고 마음이 심난해진데다 한산 통제영에서 체포 압송되어 의금부에 토옥되고 고문을 받기까지는 일기를 쓸 수 없는 조건이었다.

난중일기의 가치는 임진왜란 동안의 상황을 가장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자료로, 전란 전반을 살피는 사료로서의 가치와 영웅 이순신의 인간상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로 훌륭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생사를 걸고 싸우던 전쟁당시의 생생함이 돋보이고, 이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적은 전쟁사에 대한 기록 이상의 강치가 있다. 또한 당시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등의 여러 측면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며, 충무공의 인간 됨됨이를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2) 이순신의 사람, 유성룡

유성룡과 이순신은 1566년 지금 국립현충원이 들어서고 관악산과 우면산이 멀리 펼쳐져 있는 동작나루에서 처음 만난다. 유성룡은 1566 25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 부정자에 임명되어 고향 안동에서 친척어른들을 만나고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동작 나루에서 배를 타게 됐다. 배가 출발하고 나서, 나루터에서 인근에서 난폭하기로 소문난 야호라는 자가 배를 돌리라고 소리를 질러, 결국 나루터로 돌아가 그를 태웠다. 그런데 이 놈이 배에 타고 있던 가마로 다가가 혼례를 마치고 시가로 가는 새댁을 희롱하기 시작하였다. 그를 제지하려던 한 노인은 이 놈에게 얼굴을 마구 맞기 시작하고, 주변이들은 고개를 푹 숙인채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 한 청년이 몸을 날려 야호의 국부를 걷어차고, 늘어져 있는 놈을 강물에 던져버렸다. 모든 사람들이 놀라 그 청년을 바라 보았다. 배가 용산 나루에 도착해 유성룡은 그 젊은이를 기다렸고, 용기 있는 행동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인사를 청했다. 그러자 젊은이도 고개를 숙이며 저는 남산 기슭 건천동에서 사는 이순신이라고 합니다.”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이 때가 두 사람의 첫 만남이다. 이 후 유성룡과 이순신은 자주 만나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두 사람의 우정은 돈독해 졌으며, 유성룡의 권유로 문관집안 출신이면서도 이순신은 무과에 무관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아첨하지 않는 올곧은 성격탓에 승진에서 여러 차례 누락하며 변방을 전전하게 된다. 조정에서 추천해준 사람도 없고, 무과에 오른지 10년이 되도록 승진이 되지 않던 이순신을 안타까워하던 유성룡은 그의 됨됨이를 높이 사 임진왜란이 터지면서 그를 전라좌수사로 발탁해 관직에 오르게 하고 전쟁 중에 조정의 논의와 쟁점들을 이순신에게 계속 알려줌으로써 이순신이 겪게 될 백의종군 생활에 도움을 주는 등 꾸준히 보살펴 주게 된다. 이순신에게는 가족을 제외하고 가장 가까운 인물이 바로 유성룡이었다. 이때 발탁인사가 없었더라면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지켜낸 충무공은 역사속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성룡이 쓴 징비록에는 지면을 많이 할애해 썼을 정도로 이순신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순신을 설명하면서 국가와 백성의 안전을 지키는 장수가 갖추어야 할 면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징비록에서 이순신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순신의 사람 된 품은 말과 웃음이 적고 단정하여 몸을 닦고 언행을 삼가는 선비와 같았으나, 그의 뱃속에는 담기가 있어 자기 몸을 잊고 국난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으니, 이는 평소에 수양을 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1.Blog.daum.net/hoenkoo/7842113

2.k.daum.net//view.html?qid=00YIW

3.keyword.pressian.com/article.asp?guide_idx=3936

4.dhistoire.egloos.com/2303963

5) http://tln.kr/5kkpl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임진년 아침이 밝아 오다, 난중일기(2번 읽기) – 이순신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예전에 잘 몰랐던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순신을 제대로 알리기보다는 정권 강화, 유지를 위한 이용에 치중되었다.

 

::: <난중일기>와 이순신에 대하여 :::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부터 끝나던 해인 1598년까지의 일을 일기 속에 꼼꼼하면서도 간결하게 담아 냈다.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7년 동안의 상황을 가장 구체적으로 알려 주는, 전란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사료이다. 임진왜란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상뿐 아니라 조선 수군 연구와 전략, 전술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나 적에 맞서 싸울 때는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는 모두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아들과 조카에 대해서도 항상 염려와 따뜻한 보살핌을 보냈다.

그의 군사가 백성의 것을 훔쳐 먹었을 때는 엄하게 벌하고 대신 갚아 주기도 했다.

그가 점을 많이 치는 것도 힘들고 고독한 가운데 스스로를 위로받고자 했던 것 같다.

이순신은 그런 원균을 가소라고 표현하였다. 이 표현은 이 순신이 몹시 몹마땅할 때 쓰는 욕으로서 대부분 원균에게 쓰였다.

그는 병으로 자리에 누워 신음하면서도 그가 관장한 고을의 공문이나 백성들의 소장을 처리했다.

이순신의 용맹과 전략은 타고난 것이었다. 그것은 철저한 준비에서 비롯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군사 훈련도 철저히 하였다.

또 이순신은 전쟁에서 화학 무기가 승패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임을 알고, 전쟁 전에도 또 전쟁 중에도 무기 개발에 힘썼다.

è  선견지명이 있었던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전술에 밝았고, 군사를 다스리는 방법을 잘 알았다. 전쟁을 수행하면서 여러 지휘관이나 부하들에 대한 평가도 매우 철저하였다.

이순신은 그들의 활약을 칭찬했고, 그들의 죽음에 몹시 슬퍼했다. 그러나 함부로 도망간 병사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처형하였으며 아군의 위급을 못 본 체하는 자에 대해서도 냉혹하게 벌했다.

 

1592년 왜적의 침략이 시작되다

다만 어머니 곁을 떠나서 두 해째 남쪽에서 설을 쇠자니 슬픔이 북받쳐 온다. p23

è  아들 :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끊이지 않는 이순신. 효심이 정말 지극하다.

각 고을 전현직 관리들과 여러 색리들이 인사차 왔다.

è  장군 : 이순신에게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일주일에 반 이상은 사람들이 찾아와 이야기 나누고, 함께 활쏘기를 하고, 술을 마시고 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방답진의 병선 군관과 색리들이 병선을 고치지 않았기에 곤장을 때렸다.

è  장군 : 준비가 굉장히 철저한 사람인 것 같다. 준비에 소홀한 것에 굉장히 엄격하게 했음을 알 수 있다.

제 한 몸 살찌울 일만 하고 이와 같이 병선은 돌보지 않으니 앞일도 또한 짐작하겠다.

è  장군 : 개인적인 욕구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이순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동네 개를 잡아먹는 등 민폐를 끼쳤으므로 곤장 80대를 때렸다. p25

è  장군 ; 기본을 지키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무를 마친 뒤에 활쏘기를 했다. p26

è  장군 : 기본이나 연습에 충실함을 알 수 있다.

정오에 활쏘기를 하였다. p29

è  장군 : 활쏘기를 연습하는 시간도 제각각이다. 틈날 때마다, 하지만 꾸준히했음을 알 수 있다.

흥양 현감과 능성 현감 황숙도 그리고 만호와 함께 취하도록 마셨다. p32

è  친구? : 잘 놀고, 잘 마시고, 즐길 줄 아는 사람?

방비가 다섯 진포 가운데에서 제일 못한데도 순찰사가 잘 되었다고 장계를 올렸다니……

다행히 배가 어느 정도 완비되어서 반가웠다.

è  장군 : 녹을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진심에서 일을 즐기면서 했던 사람인 것 같다.

순찰사의 공문이 왔는데, 중위장을 순천 부사로 갈았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p33

è  장군 : 동료들의 아픔을 내 아픔과 같이 느끼고, 함께 슬퍼했던 것 같다.

일을 마친 뒤에 활 10순을 쏘았다.

조이립, 우후, 군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동헌에서 술을 마셨다.

좌의정이 편지와 함께 <증손전수방략>이라는 책을 보내왔다.

참으로 만고에 보기 드문 뛰어난 저술이다. p35

새벽에 순찰사에게 작별을 고하고 길을 떠나 선생원에 이르러 말을 먹인 뒤 본영으로 돌아왔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일찍 들어왔다.

è  개인 : 이순신은 자주 아프다.

심기가 편안하지 못하여 아침 내내 누워 앓다가 늦게야 동헌에 나가 일을 보았다.

è  장군, 개인 : 이렇게 아픈데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은 꼭 하고마니 책임감이 꽤 강하였던 것 같다. 어쩌면 완벽주의자의 성향이 있어서 남에게 일을 맡기지 못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보성에서 보내와야 할 판자를 아직도 납부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공문을 띄워 색리를 잡아들였다.

è  장군 : 약속을 지키는 것에 굉장히 엄격했던 것 같다.

발포권관은 군사를 거느릴 만한 재목이 못 되니 알아서 조치하도록 하라. p37

è  장군 : 강요하기보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게 만드는 리더십을 가졌다.

대마도주의 공문에 이미 배 한 척을 내어 보냈는데 만일 귀국에 다다르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바람에 파선한 것이리라.’ 하였다니 그 말이 극히 음흉하다.

è  장군 : 변명하고 거짓말 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던 것 같다.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우 다행한 일이다. p38

밥을 먹은 뒤 몸이 몹시 불편하더니 차츰 더 아팠다. 하루 내내 아픔이 계속되었고 또 밤새도록 신음하였다.

기운이 떨어지고 어지러워 밤새도록 고통에 시달렸다.

방응원이 방비 업무에 대한 공문서를 작성해 보냈다. p39

모두 패배하였다고 하였다. 분한 마음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저녁에 순천 군사를 거느린 병방이 석보창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군사들을 거느리고 오지 않으므로 잡아다 가두었다.

è  장군 : 전쟁중에 개인 몸 사리는 것을 정말 싫어했던 듯.

나도 일찍 아침을 먹은 뒤에 동문 위로 나가서 방비할 곳의 일을 직접 독려하였다.

è  장군 : 힘든 상황에서 아래 사람들을 잘 다독일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새벽에 망보는 일이 이상 없는지 조사하도록 군관들을 보냈다. p43

<이순신, 경상도를 구원하고자 노력하다>

이 말이 사실과 같다면 적에게 무기와 양식을 주는 격이 되어 본도로 침입하여 오래 머물러 퇴각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 창고와 무기고 등을 불살라 없애라

è  장군 : 상황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

<조선 수군의 전선, 거북선과 판옥선>

나는 모든 장수들을 독려하며 일제히 달려들었다.

군관 나대용이 총에 맞았으며 나도 왼쪽 어깨 위에 탄환을 맞았다. 탄환이 등을 뚫고 나갔으나 중상은 아니었다. p47

<옥포, 합포, 적진포 싸움>

망령되게 움직이지 말고 조용하고 무겁기를 산과 같이 하라. p48

여러 장수들은 한마음으로 분발하여 모두 죽을힘을 다했다. 배에 있는 관원과 군사들도 역시 그 뜻을 본받아 서로 격려하며 죽음을 각오하고 적을 동서로 에워싼 채 바람과 우레 같이 대포를 쏘고 활을 쏘아 대었다. p49

정오쯤에 배를 띄워 고성 땅 사량 앞바다까지 가서 군사를 쉬게 하고 위로하였다. p54

남김없이 모조리 무찔렀다. p55

<한산도, 안골포 싸움>

바다 한가운데 와서는 다시 여러 장수에게 명령하여 학의 날개처럼 진을 치고 일제히 진격하였다. p63

<부산 앞바다 싸움>

원균, 이억기 등과 함께 밤새껏 의논하였다. p72

전선을 수리하고 군량을 넉넉히 준비한 다음에, 또 육전이 또 크게 벌어지는 날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네 차례 출전하고 열 번 싸워서 모두 다 이겼다.

비록 목을 벤 것은 없었으나 힘껏 싸운 공로는 먼젓번보다 훨씬 더하였다. p75

è  장군 : 합리적인 칭찬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듯??

지극히 슬프고 가슴 아팠다.

곧 그를 대신할 만한, 특별히 무략 있는 사람을 속히 제수하여 내려보내기를 조정에 재촉하였으며, 그 틈을 메우기 위해 군관 전 만호 윤사공을 가장으로 하였다. p76

è  장군 : 사적인 감정과 일은 확연히  분리된다. 감정에 일적인 부분이 흔들리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1593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장계를 통해 본 이순신의 1593 1)

밤에 서울서 온 벗 이언형을 송별하는 술자리를 베풀었다. p81

è  장군 : 하루만 있다가 가도 이렇게 송별하는 술자리도 챙겨주는 이순신은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이었나보다.

우리 군대에 지레 겁을 먹고는 나올 듯하다고 들어가 버리므로 끝내 잡아 없애지 못하였다. 매우 분하였다.

두 번이나 웅포까지 쫓아갔으나 그래도 잡아 무찌르지 못하였으니 어찌할꼬? 분하고 분하였다. p83

큰 적을 무찌르려 작전을 약속하는 이 때에 술을 지나치게 마셔서 이 지경에 이르니, 그 사람됨이야 더 할 말이 없다. 분통을 이길 길이 없었다.

è  장군 : 중요한 일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 그리고 사람의 됨됨이(기본인격)가 이순신에게 사람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었던 것 같다.

이영남과 이여념이 보러 왔고 우수사 원균, 순천 부사, 광양 현감도 보러 왔다. p86

발포 2, 가리포 2선이 명령도 없이 뛰어들었다가 얕은 곳에서 (좌초에) 걸려 적들에게 공격당하고 말았다. 분하고 분하여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어머니의 편지도 왔다.

원 수사는 너무도 음흉하여 말로는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다. p87

배를 덮는 누추한 뜸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누추한 뜸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온갖 생각이 마음에 떠올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번잡하고 어지러웠다. p89

è  개인 : 많이 외로워보인다. 마음을 터놓고, 진짜 속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들을 얘기할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 같다.

걱정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사천 여인 한 사람이 붙잡혀 갔으나 도로 뺏어 왔다. p90

è  내 사람, 내 국민…..’ 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 같다.

밥을 먹은 뒤 원균이 거처하는 방에서 바둑을 두었다. 광양 현감이 술을 마련하여 왔다.

수사 이억기, 첨사 이홍명과 함께 바둑을 두었다.

우리 장수들이 이긴 것이 66번이었다. p91

그의 활 솜씨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서 가소로웠다. p92

<왜인 포로 송고로와 요사여문을 심문하다>

간사스럽고 거짓말을 되풀이하는 놈의 말이라 믿을 수 없었다. 다시 바른대로 말하라고 엄하게 형벌을 내리며 캐물었으나 다시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뜻이 매우 흉학하므로 팔다리를 찢고 목을 베었다. p93

선전관 이순일이 경상도에서 돌아왔기에 아침을 대접하였다.

해가 질 무렵 우수사, 순천 부사, 광양 현감, 낙안 군수 등과 같이 앉아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군관에게 편을 갈라 활을 쏘게 하였다. 농민의 바람을 만족시키니 매우 다행스러웠다. 저녁 내내 신정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병역에 관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으므로 순천 이방에게도 군볍을 시행하려 하다가 그만두었다.

è  장군 : 이순신도 사람이라서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구나. 오히려 이런 모습이 인간적이다.

밤에 달빛이 배에 가득한데 혼자 앉아 뒤척뒤척하였다. 온갖 시름이 가슴을 쳐서 자리에 들었으나 잘 수 없었다. 닭이 울 즈음에야 얕은 잠이 들었다. p97

마음이 매우 불편하여 드러누워 끙끙 앓았다. p98

통곡하여 마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세상일이 가혹한가!

대진은 이미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더욱 슬펐다.

적의 무리는 사방에 흩어져 불태우고 분탕질하고 있으니 분하고 분하였다. 하루 내내 큰 바람이 불어 마음도 어지러웠다.

아침 일찍 몸이 몹시 불편하여 온백원 네 알을 먹었다.

조금 있다가 설사를 하고 나니 편안해진 듯했다. p99

여러 장수가 애써 권하여 몸도 불편한데 억지로 고기를 먹게 되니 매우 마음이 슬펐다. p100

è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특히 몸이 아프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장군이기 때문에 억지로 밥을 먹었으니, 얼마나 괴롭고 싫었을까?

접대 절차를 물어보려 나대용을 내보냈더니 저녁에 방답 첨사가 와서 명나라 사람 접대하는 일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p101

늦은 아침에 경상 수사가 보러 왔다가 돌아갔다. p103

순천 부사와 이홍명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관보를 가지고 왔기에 보았더니 저절로 분통이 터졌다. p104

어머니 편지도 왔는데 평안하시다니 매우 다행스럽다. 아들의 편지와 조카 봉의 편지도 함께 왔다. p105

정걸도 또한 우리 배에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p106

하루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괘씸하고 한탄스럽기 짝이 없다.

광양 현감이 오고 소비포 권관이 왔다. 광양 현감이 쇠고기를 가져와서 같이 먹었다.

그런데도 매번 거짓말을 하기에 이날 목을 베어 매달았다. 모진 바람이 그치지 않고 마음도 어지러웠다.

수십일 동안 지긋지긋하던 비가 비로소 그쳤으니 진영의 모든 장병 중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p107

그 음흉한 꾀와 시기심은 이루 말할 길이 없다. 그래서 이날 밤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흰 머리카락이 있다고 하여 어찌 싫어할 일이겠냐만 위로 늙으신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뽑은 것이다. 하루 내내 혼자 앉아 있었다. p108

우수사와 충청 수사, 순천 부사, 낙안 군수, 방답 첨사를 오라 하여 함께 햇과일을 먹었다. p109

적의 꾀는 헤아리기가 매우 힘들었다.

한 잔씩 거듭거듭 마시다가 몹시 취하여 돌아왔다. p110

조상의 제삿날이라 하루 내내 혼자 앉아 있었다. 저녁에 방답 만호, 순천 부사, 광양 현감이 보러왔고 조붕과 그 조카 조응도가 보러 왔다.

우수사도 맞이하여 함께 앉아 술잔을 여러 순배 돌리고 나서 헤어졌다. 아침에 아들 회가 들어와 어머니가 평안하시다고 전하였다. 매우 다행스럽다.

배를 만들기 위하여 자귀로 나무를 깎기 시작하였다.

그 하는 짓이 아주 간교하였다.

새 배의 밑판을 다 만들었다. p111

밤기운이 매우 서늘하여 자리에 누웠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p114

초저녁에 원연과 원식 등이 와서 군중에 있었던 일을 멋대로 이야기했다. 우습기 짝이 없다. p115

초저녁에 우수사가 초청하였기에 그의 배로 갔더니, 가리포 첨사가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 놓았다. p119

몸이 매우 불편하여 하루 내내 신음하였다.

혼자 배의 뜸 밑에 앉아 있으니 마음이 몹시 산란하다. 달빛이 뱃머리에 들고 정신이 맑아지네, 누워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어느덧 닭이 우는구나

몸이 몹시 불편하였다.

저녁에 광양 현감이 진주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명부를 보내왔다.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p121

울이 들어왔는데 어머님이 평안하시고 염도 차도가 있다고 자세하게 말하였다.

울이 돌아갔다. 울이 되돌아갔다. p122

본영에서 탐색을 맡은 사람이 왔는데 염의 병이 낫지 않는다고 하니 매우 걱정스럽다.

이야기가 왕이 피난 가신 일에 미치자 눈물을 흘리고 탄식하였다. 적의 형세는 벌써 사그라졌다고 말하며 서로 실정을 의논할 즈음 좌우의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드는데 꿈이 깼다.

염이 아픈 곳에 종기가 생겨 침으로 찢으니 나쁜 피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며칠만 늦었어도 치료하기 어려울 뻔했다고 한다. 놀랍기 그지없다. p124

쓴웃음이 나왔다.

쇠고기를 얻어서 각 배에 나누어 주었다.

일을 의논하는 가운데 원 수사가 하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가소롭기 짝이 없다. p125

그러나 원수사와 그의 군관은 평서에도 헛소리를 잘 하니 믿을 수가 없다.

몸이 매우 불편하여 하루 내내 누웠다 앉았다 하였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누워서 하루 내내 끙끙 앓았다. p126

하루 내내 장기를 두었다. 몸이 매우 불편하였다.

제만춘을 불러와서 문초하니 분통 터지는 말이 많았다. 하루 내내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p127

원 수사가 말하는 가운데 음흉한 일이 많았다. 그의 속임과 거짓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꿈에 왜적이 나타났다. p128

원균이 술을 마시자고 하여 조금 주었더니, 잔뜩 취하여 흉측한 말을 자꾸 지껄였다. 매우 해괴하였다.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였다. p129

아침에 조카 봉이 진영에 들어와서 어머님이 평안하시다고 전하였다.

장계로 보고할 내용에 대하여 초안을 작성하여 내려보냈다. p130

하루내내 마음이 평안하지 않아 혼자 앉아 있었다.

저물 무렵에는 가슴속이 답답하고 열이 나서 창문을 닫지 않고 잤더니 바깥 바람을 쐰 탓에 머리가 몹시 아팠다. 걱정스럽다. p131

<11,12월 이순신, 군병, 군량, 군기를 도모하다>

1594년 명일간에 강화가 진행되다

해가 질무렵 관아에 들어가 조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헌에 나가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p137

<1월 이순신, 통제영에서 장계를 쓰다>

밤늦게까지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피난 다닐 때 어렵고 고생스러웠던 일을 낱낱이 말하였다. 개탄스러움을 거둘 수가 없었다.

아침에 어머니를 뵈러 배를 탔다. p139

선창에 되돌아오니 몸이 불편하여 바로 뒷방으로 들어갔다.

몸이 매우 불편하여 자리에 누워서 땀을 흘렸다.

아침에 남의길을 불러와서 이별의 술자리를 마련했는데 나도 몹시 취하였다. p140

원 수사와 공연수, 이극함이 서로 좋아하던 여자들을 모두 다 사사로이 관계하였다고 한다.

각 배에 옷도 제대로 못 갖춰 입은 사람들이 목을 움츠리고 추워서 신음하니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

병으로 죽은 사람을 거두어 장사 지내는 일을 맡길 사람으로 녹도 만호를 정하여 보냈다. p142

문서가 제멋대로 꾸며졌다고 한다. 놀랍고 놀라울 뿐이다.

순천 부사가 약속한 날짜에 늦었기에 죄를 주고 그대로 공문을 처리하였다. p143

원 수사의 군관인 양밀이 제주 판관의 편지와 말 안장 그리고 해산물, , 유자를 가지고 왔기에 바로 어머니께 보냈다.

늦게 원식이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왔기에 술을 대접하여 보냈다. p144

나는 몸이 매우 불편하여 하루 내내 땀이 흘렀다. 군관들과 여러 장수들은 활쏘기를 하였다.

늦게 활터에 올라갔다.

사량 첨사가 약속한 날짜 안에 오지 못하였으므로 벌을 주었다. p145

새벽에 꿈을 꾸었는데 좋은 말을 타고 바위가 겹겹이 쌓여 있는 큰 고개를 바로 내려갔다. 봉우리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구불구불 동서로 뻗어 있었다. p146

봉은 나누로, 분은 온양으로 갔다. 마음이 평안하지 않았다.

제만춘을 불러 그곳의 지형이 어떠한가를 물었다. 늦게 활터 정자에 올라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병사의 방에서 일하는 심부름꾼을 천인 신분에서 면하게 해달라고 하였다. p149

나라를 그르치는 교활하고 간사한 말이 진회가 무목을 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나라 때문에 겪느 아픔이 더욱 심하다.

해남 현감 위대기를 전령을 어긴 죄로 처벌하였다. p152

몸이 불편하여 하루 내내 나가지 않았다.

울이 우수사 배로 가더니 잔뜩 취하여 돌아왔다.

몸이 불편하여 하루 내내 끙끙 앓았다. p153

또 이별주를 마시며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p154

<이순신, 당항포 싸움을 준비하다>

3 4일 새벽에 전선 20여척을 견내량에서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게 하고 또 3도의 정예선을 가려내었다. p156

나는 심기가 매우 괴로워져서 앉고 눕기조차 불편하였다. p157

몸이 매우 괴로워 뒤척이는 것조차 어려웠다. 공문을 아래 사람을 시켜 만들도록 하였더니 글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병을 무릅쓰고 일어나 내가 글을 짓고 정사립에게 쓰게 하여 보냈다.

병세에 별 차도가 없고 기운은 더 축나서 하루 내내 끙끙거렸다.

몸은 점차 나아지는 듯하였으나 기력은 몹시 약해졌다.

기운이 썩 나아지지 않았다.

몸이 몹시 불편하였다.

기운이 조금 나아진 듯하였다.

몸이 여전히 불편하였다. p159

다만 산소가 모두 들불에 타버려 아무도 끄지 못했다고 하니 슬프기가 이를 데 없다.

조카 봉의 병세가 매우 무겁다고 하니 매우 걱정스럽다.

봉이 몹시 아픈 상태였기 때문에 걱정으로 밤을 세웠다.

늦게 삼가현상 고상안이 보러 왔다. p160

흐리다 새벽에 최천보가 세상을 떴다.

조방장 어영담이 세상을 떠났다. 이 슬픔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p162

저녁은 송두남이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장계에 따라 낱낱이 명령받은 대로 시행하였다.

함께 적을 토벌하는 작전 등을 논의하고 나서 같은 배에서 잤다. p164

늦게 곤양 현감 이광악이 술을 가져오고 장흥 부사도 왔다. 임치도 첨사도 같이 왔다.

새벽부터 몸이 몹시 불편하여 하루 내내 고통스러웠다.

밤새 앓았다.

병세가 매우 심해져서 거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p165

몸이 가뿐해졌다.

하루 내내 땀이 줄줄 흘렀으나 기분은 상쾌하였다. p166

그러나 간교한 놈들의 말이라 믿을 수가 없다.

술 세 순배를 돌린 다음 끝내고 돌아갔다. p167

곤양 현감이 편지를 보내면서 아울러 유정이 적진을 오가면서 문답한 초안을 가지고 왔다. 그 내용을 보니 분통이 터져 견디기 어려웠다. p169

29일이 장모님의 제삿날이 다가오기에 아들 회와 면을 보내고 계집종들도 보냈다. p170

나는 몸이 불편하여 일찍 돌아와 누워서 충청 수사와 배문길이 장기를 두는 것을 구경하였다. p171

3년 동안 눈앞에 두고 부리던 자가 하루저녁에 죽어 버리니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무 밭을 갈았다. p172

밤이 깊어 해가 부는 피리소리와 영수가 타는 거문고 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p174

밤에 소나기가 흡족하게 오는 것을 보니, 하늘이 백성을 가엽게 여긴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아내의 편지에는 면이 더위를 심하게 앓는다고 한다. 몹시 걱정스럽다.

면의 고통이 심하다 하니 매우 걱정스럽다. p175

인종의 제삿날이어서 하루 내내 혼자 앉아 있었다. p177

음란한 계집을 처벌하고, 각 배에서 여러 차례 식량을 훔친 자에 대하여 형을 집행하였다. 저녁에 나가서 새로 지은 수루를 보았다. p178

몸이 피곤하여 여러 장수를 만나 보지 않았다.

아침에 들으니 면의 병이 다시 심해져서 피를 토하는 증세까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울과 심약 신경황, 정사립, 배응록 등을 같이 보냈다. p179

울이 가는 길이 힘들지 않을까 매우 걱정스러웠다. 또 면의 병이 어떤 상태인지도 궁금하였다.

순변사에게 유정승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이 왔다고 한다. 이는 필시 유정승을 질투하는 자가 말을 만들어 그를 훼손하려는 것이리라. 분한 마음을 이길 길이 없다. 저녁에 마음이 매우 어지러웠다. 혼자 빈 동헌에 앉아 있으니 마음을 걷잡을 길이 없고 걱정이 더욱 심해져서 밤 깊도록 잠들지 못하였다.

다시 짚으니, 밤에 등불을 얻는 격이라고 한다. 두 괘가 모두 좋아서 조금 마음이 놓였다. 또 유정승에 대하여 점을 쳤더니, 바다가 배를 얻는 것과 같다는 괘를 얻었다. 다시 점쳐 보았더니, 의심하다가 기쁨을 얻는 것과 같다는 괘를 얻었다. 매우 좋았다. p181

이흥종이 환자 때문에 처벌을 받아 죽었다고 한다. 매우 놀랍다. 그 삼촌이 듣고 슾러해 마지 않았으며, 그 어머니 또한 그 소식을 듣고 병세가 더욱 위중해졌다고 한다. p182

같이 앉아서 내가 먼저 멀고 먼 바닷길을 고생하여 이곳까지 오시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하였다. p183

술을 조금 내놓았더니 의분에 찬 심정을 드러내었다.

명나라 장수가 수루위에 가기를 청하여 점심을 먹은 뒤 수루에 앉아서 술을 여러 잔 돌렸다. p184

종 목년이 들어왔다.

허실의 병세가 점차 중해진다고 하니 매우 염려스럽다.

나는 몸이 불편하여 조금 마셨는데도 몸이 좋지 않았다. 밤에 꿈을 꾸었다. p186

밤새 신음하다가 아침을 맞았다. p187

수루 방의 도배를 끝냈다. p188

밤에 그냥 수루 방에서 잤다.

밤새 앉아서 지냈다. p189

간단한 술자리를 만드는 바람에 크게 취하여 돌아왔다.

60통을 캐었더니 그제야 비로소 원 수사가 왔다.

저녁에 피리를 불고 노래도 부르다가 밤이 깊어서 끝마쳤는데 미안한 일이 많았다. p191

아침에 울의 편지를 보니 아내의 병이 심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회를 내보냈다.

회가 잘 갔는지 매우 걱정스러웠다. p193

10경부터 마음이 어지러워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른 아침에 세수를 하고 조용히 앉아서 아내의 병세를 점을 쳤더니, 중이 속세에 돌아오는 것 같다고 하였다. 다시 쳤더니, 의심이 기쁨을 얻은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저녁에 탐색선이 들어왔는데 아내가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기운이 몹시 약하다고 하니 매우 걱정이다. p194

이른 아침에 세수를 하고 조용히 앉아서 아내의 병세를 점을 쳤더니, 중이 속세에 돌아오는 것 같다고 하였다. 다시 쳤더니, 의심이 기쁨을 얻은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저녁에 탐색선이 들어왔는데 아내가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기운이 몹시 약하다고 하니 매우 걱정이다. p194

피리를 불게 하다가 밤이 깊어서 자리를 파했는데도 또 미안한 일이 있어서 쓴 웃음이 나왔다. p195

그런데도 그 사정은 보고하지 않았으니 매우 놀라웠다. 그래서 편지를 쓸 때 그 사실을 지적하여 보냈다. p196

장흥 부사가 술을 내놓아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주 취한 다음에야 끝마쳤다.

밤에 꿈속에서 아이를 보았는데, 이것은 경의 어미가 아들을 낳을 징조였다. p197

새벽에 촛불을 밝히고 혼자 앉아서 적을 토벌하는 점을 쳤다. 첫 점은 화살을 얻는 것과 같다고 나왔고, 다시 점쳤더니 산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고 나왔다. p200

띠풀을 183통 베었다.

흉도에서 띠풀을 3 60통 베었다. p202

밤에 꿈을 꾸었는데 두 가지 좋은 징조가 있었다. 울과 존서, ..와 정립 등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장계 초본을 수정하였다.

새벽에 꿈을 꾸었다.

왜놈들의 항복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한 꿈이었다. p203

몸이 몹시 불편하여 하루 내내 나가지 않았다.

좌도는 사도 첨사를, 우도는 우후 이정충을, 경상도는 미조항 첨사 성윤문 등을 장수로 정하여 수색하고 토벌하는 일을 맡도록 들여보냈다. p206

새벽에 영의정의 꿈을 꾸었는데 모습이 변한듯하였다. p207

혼자 방 안에 앉아 있으니 슬픈 마음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누이의 편지를 보니 눈물이 흐르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p208

새벽 꿈에 이일과 만났다. p209

밥을 먹은 뒤 대청에 나가 앉아서 좌우도에 나누어 보낸 항복한 왜적들을 모두 모아서 총을 쏘는 연습을 시켰다. p210

1595년 휴전 상태가 계속되는 속에서

대청에 나가 앉아 있자니 함평 현감 조발이 탄핵을 받고 돌아간다고 고하였다. p218

우수사, 장흥 부사, 신 조방장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들은 원균의 못된 짓을 많이 전하였다. 놀라울 따름이다. p219

또 새로 부임한 충청 수사 이계훈이 배 위에서 실수로 불을 냈다고 한다. 너무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p222

하루 내내 공무를 보았다.

같이 활쏘기를 하고 하루 내내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왔다. p224

노윤발이 미역 99다발을 따 가지고 왔다. p228

오늘은 어머니 생신이다. 직접 잔을 올리지 못하고 먼 바다에 홀로 앉아 있으니 가슴속에 품은 생각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으랴!

몸이 춥고 불편하였다. 심하게 토하다가 잤다.

여러 아들의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4일에 종 춘세가 실수로 불을 내어 10여 집이 탔다고 한다. p229

새벽 꿈자리가 아주 어지러웠다. 어머니께서 평안하신지 소식을 듣지 못한 지가 벌써  이레나 되어 몹시 마음이 탔다. 아들 해가 잘 돌아가긴 했는지 모르겠다. p230

늦게 우수사가 술을 가지고 와서 마시다가 취해서 돌아갔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p231

è  이순신은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한다. 많은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교환하려는 사람인 것 같다.

늦게 날이 개었다. 혼자 대청에 앉아 공무를 보았다. p232

김개가 지난 3월에 죽었다고 한다. 슬프고 가슴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p233

타색선이 오지 않아 어머니의 안부를 알지 못하니 답답하다.

나는 몸이 매우 불편하여 저녁 밥을 걸렀다 하루 내내 몹시 아팠다. p234

비가 하루 내내 내렸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누웠다 앉았다 하며 신음하였다.

저녁에 원수의 군관 이희삼이 왕의 분부를 가지고 왔는데 조형도가 수군 한 사람에게 매일 양식 5, 7홉씩을 나눠 준다고 거짓 보고를 하였다. 세상일이란 정말 놀랍다. 세상에 어찌 이런 거짓이 있을 수 있을까? p235

혼자 수루에 앉아 있는데 잠깐 졸았다. 꿈속에서 아들 면과 윤덕종의 아들 운로가 같이 와서 어머니 편지를 전했다. 병세가 나아진 것을 알았다.

하루 내내 수루에 앉아 있었다.

수사의 병이 그리 중하지는 않았으나 바람과 습기에 많이 상한 듯하여 매우 염려스럽다. p237

오늘 이언경의 생일이라 한다. 그래서 국수도 만들어 먹고 술에 흠뻑 취하였다. 거문고 타는 소리도 듣고 피리도 불다가 저물 무렵에 헤어졌다. p238

나라의 재앙이 심하고 원수가 사직에 남아 있어서 귀신의 부끄러움과 사람의 원통함이 땅에 가득하고 하늘  끝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아직껏 요사스런 기운을 재빨리 쓸어 버리지 못하고 원수와 함께 한 하늘을 이고 있어 고통스럽다. p240

스스로 회개하여 힘쓴다는 말을 듣지도 못하였는가? 만약 쓸개 있는 자라면 반드시 자결이라도 할 것이다.

è  기본이 안되어 있고, 개념이 없는 사람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알 수 있다.

밤이 깊어 수루에 등을 대니 초생달 빛이 수루에 가득 차서 갖은 생각을 이길 길이 없었다.

아침에 어머니께 편지를 올리고 다른 여러 곳에 편지를 써 보냈다. p241

군사들에게 휴가를 주었다. p242

밤에 희미한 달이 수루를 비추어서 누워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시를 읖조리며 기나긴 밤을 지냈다. p246

저녁에 경상 수사와 우후 그리고 정항이 술을 가지고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이 깊어서 헤어졌다.

비 오다. 혼자 수루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p250

저녁에 이종호가 목화만 가지고 들어왔기에 모두 나누어 주었다.

웅천에서 포로가 되었던 박녹수, 김희수가 와서 인사하고, 아울러 왜적의 정세를 알려 주었다. 각각 무명 한 필씩을 주어 보냈다. p252

è  잘한 것에 대한 칭찬과 보상을 확실하게 해 주었던 이순신.

일찍 수루 방에 올라가서, 하루 내내 공사를 감독하였다. p254

저녁에 달빛을 따라서 우수사 이억기의 송별연에 갔다.

밤에 바람이 몹시 싸늘하고 차가운 달빛이 낮과 같이 밝아서 잠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며 밤을 지샜다. 온갖 근심이 가슴을 친다. p255

항복한 왜적들에게 술을 먹였다.

è  적군도 이순신에게 반하지 않았을까?

홀로 앉아서 아버님을 그리워하니 떠올는 온갖 회포를 막을 길이 없다.

아침 일찍 도망한 왜인지 자기 발로 돌아왔다. p258

새벽에 왕에게 동짓날을 축하하는 절을 올렸다. p259

몸이 불편하여 밤새 끙끙 앓았다. p261

1596년 왜적이 드디어 철수하다

저녁에 어머니께 작별 인사를 하고 본영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몹시 어지러워 밤이 새도록 잠을 자지 못하였다. p265

이른 아침에 적이 다시 나올지 어떨지 점쳤더니, 수레에 바퀴가 없는 것 같다는 괘가 나왔다. 다시 점을 치니 임금을 뵙는 것 같다는 괘가 나왔다.

새벽 2시쯤 꿈을 꾸었는데, 잘 알지 못하는 곳에 가서 영의정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동안 둘이 다 의관을 벗어 놓고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서로 나라 걱정을 털어놓다가 끝내는 억울한 사정까지 쏟아 놓았다. p268

오늘 어떤 길흉의 조짐이 있는지 들으려고 점을 쳐 보니,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는 것 같다는 괘가 나왔다.

혼자 앉았는데 마음이 어지러워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p269

늦게 대청에 나가 공문을 처리한 다음 항복한 왜인들에게 술과 음식을 먹였다. p270

혼자 앉아서 아들이 떠나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p273

해질 무렵에 창녕 사람이 술을 가져와 바쳤다. 밤이 깊어서 헤어졌다. p276

혼자서 높은 수루 위에 기대어 있노라니 마음이 몹시 어수선하여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p277

나는 너무 취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어났다 누웠다 하면서 밤을 밝혔다.

어제 술에 취한 것 때문에 심기가 몹시 불안하였다. p278

봄기운이 사람을 노곤하게 만들었다. p280

기운을 차릴 수 없고 땀이 흐르니 이것이 병의 근원이다. p282

잔뜩 취해 돌아오는 길에 이정충의 장막에 들렀는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또 술을 마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p284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몸이 피곤하여 누워서 신음하였다. p286

초저녁이 관란이 나서 한참이나 구토를 했는데 자정이 되어서야 조금 가라앉았다. 몸을 뒤척거리다가 일어났다 앉았다 하였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는 것 같아서 매우 한스러웠다. 너무 심심해서 군관 송희립, 김대복, 오철 등을 불러다가 종정도놀이를 하였다. p288

하루 내내 비가 내렸다. 늦게 들어가 부찰사와 마주 앉아 몹시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조붕이 보러 왔는데, 오랫동안 학질을 앓아서인지 몹시 마른 모양새가 보기에 매우 딱하였다. p292

밤 바다는 달빛이 차게 비치고 티끌하나 일지 않았다. 다시 식은 땀을 흘렸다.

습열 때문에 침을 20여 군데나 맞았다. 속에서 마치 신열이 난 것처럼 가슴속이 답답하고 괴로워서 하루 내내 방에 들어앉아 나가지 않았다.

아침에 남녀문을 통하여 풍신수길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기쁘기 그지 없었으나 다만 믿기 어려웠다. p294

일찍 목욕탕에 들어가서 한참 동안 있었다.

다시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물이 너무 뜨거워서 오래 있지 못하고 곧 나왔다. p295

오늘은 어머니의 생신인데 술 한잔 올리지 못하여 마음이 불편하였다. p296

몸이 몹시 불편하여 두 번이나 구토를 하였다. p297

음산한 안개는 걷히지 않고 남풍이 세게 불었다. p300

새벽에 태어난 지 대여섯 달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를 직접 안았다가 도로 내려놓는 꿈을 꾸었다. p302

술과 음식을 먹이고 다시 모여 활쏘기를 하여 승부를 겨룬 뒤 헤어졌다.

날씨는 맑았으나 몹시 더웠다. 경상 수사가 술을 가져왔다. p303

조방장, 충청 우후, 여도 만호, 사도 첨사 등을 불러 남해에서 가져온 술과 고기를 먹였다. p304

하루 내내 아주 즐겁게 지내다가 불을 켜 들고 돌아왔다. p306

새벽에 꿈을 꾸었는데 어떤 사람이 화살을 멀리 쏘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갓을 발로 차서 부수었다. 혼자 점을 쳐 보니 화살을 멀리 쏘는 것은 적들이 멀리 도망하는 것이요. 갓을 발로 차서 부스는 것은 머리 위에 있어야 할 갓을 걷어차니 적의 괴수를 모조리 잡아 없앨 징조라고 하겠다. p307

하천과 하동의 두 수령이 왔다.

저녁에 바다 위에 뜬 달이 하도 밝아서 혼자 수루에 기대고 있다가 10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p308

옥포에는 배 만드는 데 쓸 양곡이 없다고 하므로 체찰사의 군량 가운데 2곡을 내주었다. 웅천과 당진포에는 배 만드는 데 필요한 쇠 15근을 함께 주었다. p309

종 경이 심하게 앓는다고 하니 매우 걱정된다. 10시쯤 꿈속에서도 땀을 흘렸다.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영의정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꿈이었다. p311

수루에 앉아 아이들이 떠나는 것을 바라보느라고 바람에 몸이 상하는 줄도 몰랐다.

몸이 거북이처럼 움츠러들기에 곧 두꺼운 옷을 입고 땀을 내었다. p312

몸이 불편하여 공무를 보러 나가지 않았다.

아침에 김 조방장과 충청 우후, 경상 우후 등이 문병을 왔다.

경상 수사와 우수사가 보러 오고 배 조방장이 들어왔다고 해가 진 뒤에 돌아갔다.

밤에는 땀이 흘러 옷 두 겹을 적셨다.

늦게 강희로가 남해 현령의 병이 좀 나았다고 전하였다. 밤이 깊도록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침에 송한련에게 그물을 만들라고 삼마 40근을 주어 보냈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한동안 베개를 베고 드러누워 있었다. p314

늦게 우수사, 경상 수사와 두 조방장, 충청 우후, 경상 우후, 가리포 첨사, 평산포 만호 등 열아홉 장수들과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8시께부터 자정까지 땀을 흘렸다. p315

밥을 먹은 뒤 활터에 나갔다.

배 조방장, 김 조방장이 충청 우후와 함께 와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p316

하루 내내 노를 빨리 저어 밤 10시쯤 어머니가 계신 곳에 당도하였다. 백발이 성성한 채 나를 보고 놀라 일어나시는데, 숨이 끊어지시는 모습이 하루하루를 지탱하시기도 어려운 듯하다. p319

아침 일찍 떠나 배를 타고 가면서 체찰사와 부사와 함께 앉아 하루 내내 군사 이야기를 나누었다.

늦게 병영에 이르러 원균을 만나 밤이 깊어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이 남쪽 망대에 올라 좌우로 적들이 다니는 길과 여러 섬을 자세히 헤아려 보았다. p321

종 억만이 신원으로 나를 보러 와서 인사했다. p322

공헌을 생각하니 애처로운 마음을 이길 수 없었다. 수경이는 누가 내다 버린 아이인데 이염의 집에서 데려다가 길렀다.

고을 선비들도 많이 들어와서 고을의 폐단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p323

이중익이 군색한 말을 많이 하므로 옷을 벗어 주었다. 하루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물 무렵에 관아에 이르니 조카딸 둘이 나와 앉아 있어 오랫동안 못본 감회를 풀었다. 다시 작은 정자로 나와서 현감 그리고 여러 조카들과 함께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p324

늦게 목사를 보고 나서 막 길을 떠나려는데 명나라 사람 두 명이 이야기하자고 청하므로 술을 취하도록 먹였다.

일찍 떠나서 병사 선거이의 집에 이르렀더니 그의 병이 몹시 위급하여 걱정스러웠다. p325

남해 현령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침 일찍 어머니를 위해 수연을 베풀면서 하루 내내 매우 즐겁게 보냈다. 매우 다행스러웠다.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하루 내내 어머니를 모셨다. 내일 진중으로 돌아가는 것을 어머니께서 퍽 서운해하시는 기색이었다.

정오에 어머님께 가겠다는 인사를 하고 오후 2시쯤 배를 타고 바람 따라 돛을 달고서 밤새도록 노를 재촉해 온 것이다. p328

 

1597년 백의종군에 나서다

옥문을 나왔다. 남대문 밖에 있는 윤간의 종의 집에 이르러 봉, , , 사행, 원경 등과 한 방에 같이 앉아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사 윤자신이 와서 위로하고 비변랑 이순지가 보러 왔다.

정으로 권하며 위로하니 사양하지 못하고 억지로 술을 마셨더니 몹시 취하였다.

영의정이 종을 보냈고, 판부사 정탁, 판서 심희수, 찬성 김명원, 참판 이정형, 대사헌 노직, 동지 최원, 동지 곽영등이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p331

여러 조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업이 음식을 차려왔는데 매우 풍성하였다. p333

수원 부사 유영건이 와서 인사하였다.

수탄을 거쳐 평택 고을에 있는 이내은의 손자 집에 묵었다. 주인의 대접이 매우 정성스러웠다.

해가 뜰 때 길을 떠나서 바로 아산에 있는 선영에 이르렀다.

산소 아래에서 곡을 하며 절하고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하였다.

멀고 가까운 친척들과 친구들이 모두 와서 오랫동안 못 본 정을 풀고 갔다. p335

늦게 홍 찰방, 이 별좌 형제, 윤효원 형제가 보러 왔다. 이언길, 허제가 술을 가지고 왔다.

새벽에 꿈을 꾸었는데 몹시 번잡스러워서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p336

늦게 어머니의 시신을 관 속에 모셨다. 친한 오종수가 맡아서 정성껏 해 주니 뼈가 가루가 되어도 잊기 어렵다.

천안 군수가 들어와서 상여를 준비하였다.

마을을 바라보고 통곡하니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것인가?

늦게 계원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모여서 함께 계에 관한 일을 의논하고 헤어졌다. p338

신 사과와 응원이 보러 왔다. p340

아침에 울의 이름을 열이라고 고쳤다. 싹이 처음 트거나 초목이 무성하게 자란다는 뜻이어서 글자 뜻이 매우 좋다. 늦게 강소작지가 보러 와서 울음을 터뜨렸다. p341

어머니 생신이다. 슬프고 애통함을 참을 길이 없었다. 닭이 울 무렵에 일어나 앉아 눈물만 흘렸다.

정사준이 와서 하루 내내 돌아가지 않았다.

꿈에 돌아가신 두 분 형님을 만나 서로 붙들고 울었다. p342

두 형님의 혼령이 천리 밖까지 따라오셔서 이와 같이 근심하고 걱정하시니 슬프고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저녁에 정원명이 한산도에서 와서 흉악한 자가 저지른 짓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하였다.

우수사가 편지를 보내어 조문하였다.

아침에 정혜사의 승려 덕수가 미투리 한 켤레를 바쳤으나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새벽 꿈에 사나운 범을 때려 잡아서 껍질을 벗겨 휘둘렀는데, 이게 무슨 징조인지 알 수 없다.

음흉한 원균이 편지를 보내어 조문하였는데 이것은 원수가 명령하였기 때문이었다.

뇌물로 실어 보내는 짐이 서울에 잇닿아 있으며, 헐뜯는 것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니, 스스로 때를 못 만난 것만 한탄할 따름이다. p344

정사립과 양정언이 와서 부찰사가 고을에 이르렀는데 그가 공무로 나를 보러 오겠다고 한다고 전했는데 몸이 불편하다고 거절하였다. p345

정사립과 양정언이 왔다가 닭이 운 다음에야 돌아갔다. p346

나의 행색이 낭패를 봐서 민망스럽다.

어둘 무렵에 가서 뵈었더니 체찰사는 흰옷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히 일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체찰사는 연방 탄식해 마지않았다. 밤이 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일찍이 임금으 ㅣ분부가 있었는데, 그 속에 거북한 말이 많아서 마음속으로 의심스럽고  그 뜻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늦게 체찰사의 종사관 김광엽이 진주에서 이 고을로 들어오고, 배백기 영공도 온다는 편지가 왔다. 그간 쌓인 정회를 펼 수 있을 터이니 매우 다행스러웠다. 혼자 앉아 있자 어머님 생각이 슬프로 비통하여 견디기 어려웠다.

체찰사가 사람을 보내어 부르기에 가서 뵙고 조용히 의논하였다.

혼자 쓸쓸히 시골집에 기대어 앉아 있으니 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말이 길을 가기 어려워 엎어지며 자빠지며 간신히 악양 이정란의 집에 이르렀는데, 이 집은 문을 닫고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p349

나는 아들 열을 시켜 간청하여 겨우 들어가서 잤다. 짐이 모두 젖었다.

몸이 몹시 불편하였다. 그래서 떠나지 못하고 머무르며 조리하였다. 현감은 정이 어린 말을 많이 하였다. p350

일찍 떠나려는데 현감이 문안 편지와 함께 여비까지 보내왔다. p351

구례 사람과 하동 현감이 보내 준 종과 말들도 아침에 모두 돌려 보냈다.

늦게 모여곡 주인집의 이웃에 사는 윤감, 문익신이 보러왔다. p352

원수의 군관 박응사와 유홍 등이 보러왔다. 원수의 종사관 황여일도 사람을 보내어 문안하기에 곧 답례를 하여 보냈다.

몸이 불편하여 저녁을 먹지 않았다.

오늘은 우신의 생일인데 혼자 변방에 앉아 있으니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p353

아들 열이 곽란을 앓아 간밤에 내내 신음하여 걱정으로 속이 다 탔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열이는 닭이 울어서야 차도가 조금 있어 잠이 들었다. p354

늦게 병사의 우후 김자헌이 보러 왔기에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심을 대접해 보냈다. p355

원수가 오늘 산성으로 가려 한다고 하였다. 나도 뒤따라 큰 냇가에 이르렀으나 혹시 다른 뜻이 있을까 염려되어 냇가에 머물면서 정상명을 보내어 병이라 아뢰도록 하고 그대로 돌아왔다.

하루 내내 혼자 앉아 있었으나 아무도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p357

적은 한 놈도 잡지 못하고 벌써 두 장수를 잃어버렸으니 가슴 아파서 무슨 말을 더 할 것인가.

늦게 중군장 이덕필과 변흥달, 심준 등이 보러왔다. p360

작은 워라말이 죽어서 내다 버렸다.

늦게 황여일이 보러 와서 한참 동안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p361

새벽에 앉아 있으니 싸늘한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든다. p362

제사에 쓸 중배끼 다섯 말을 꿀에다 재어서 봉해다가 시렁 위에 얹었다.

꿈에 원균과 한자리에서 있는데 내가 원균 위에 앉아서 음식상을 받을 때 원균이 즐거운 기색을 보이는 것 같았다. 무슨 징조인지 알 수 없다.

밤에는 달빛이 대낮같이 밝아서 어미니를 그리는 슬픔으로 울다가 밤이 깊도록 잠들지 못하였다.

새벽에 열과 변존서를 보낼 일 때문에 앉아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일찍 아침을 먹은 다음 솟구치는 정을 스스로 억누르지 못하고 통곡하며 떠나보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p364

열이 길을 가는데 어떻게 견디었을까 염려되었다. 더위가 너무 심하여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p365가장 늦게 중군 이덕필이 왔다가 저물녘에 돌아갔는데, 그 편에 수군 20여척이 적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우 분하였다. 막을 방책이 없는 것이 한스럽다. p367

오전 10시께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어떻게도 의견을 정할 수가 없었다. 내가 직접 해안 지역으로 가서 듣고 본 뒤에 방책을 정하겠습니다.”하고 말했더니 원수가 매우 반가워하였다. p369

늦게 찰방 이시경이 보러 오고 조신옥, 홍대방 등도 보러 왔다.

혼자 수루의 마루에 앉았으니 어머님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어떠하랴.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p373

옥과 현감은 병을 핑계 삼아 처음엔 나오지 않았다. 붙잡아다가 곤장을 치려고 하였다. 그런데 현감 홍요좌가 이내 내뜻을 알고 서둘러 나왔다.

내가 말에서 내려 명령을 내렸더니 한꺼번에 나와 절을 하였다. 내가 왜 피해 다니기만 하느냐고 책망하였더니 모두 그 죄를 병사 이복남에게 돌렸다. p375

관리와 백성들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p377

여러 장수들에게 왕이 내린 교서와 유서 앞에 엎드려 절하게 하였다. 배설은 교서와 유서에도 예를 올리지 않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새벽 2시쯤에 곽란이 일어났다. 차게 해서 그런가 생각하여 소주를 마셔 치료하려 했다가 그만 인사불성이 되어 거의 죽게 되었다. 토하기를 10여차례나 하고 밤새도록 괴로워 하였다. p379

새벽 6시쯤 적선 여덟 척이 갑자기 덤벼들어 여러 배들이 겁을 먹고 후퇴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경상 수사도 달아나려고 하였다. 나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깃발을 휘두르며 추격을 명령하였다.

배설이 제종을 시켜 소지를 올렸는데, 병세가 몹시 위태로워 조리를 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육지로 내려가 조리하라고 결재해 주었더니 배설은 우수영에서 육지로 내렸다. p380

늦게 적선 두 척이 어란포로부터 바로 감보도로 와서 우리 수군의 수를 정탐하려고 해서 영등 만호 조계종이 끝까지 추격하였다. 적들은 당황해서 배에 실었던 물건을 모두 바다 가운데 던져 버리고 달아났다. p382

아들 회는 내 심정을 알고 무척 언짢아하였다. p3833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군율대로 시행해서 작은 일이라도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하고 엄하게 약속하였다. 밤에 신인이 꿈에 나타나 가르쳐 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 하였다.

군관들도 배 위에 총총히 들어서서 화살을 빗발처럼 쏘아 댔다. 그러자 적의 무리가 감히 대들지 못하고 쳐들어왔다 물러갔다 하였다. p385

몸이 좋지 못하여 끙끙 앓았다. p389

마음이 몹시 어지러워 편지를 쓸 수 없었다.

아들 회가 배를 타고 올라갔는데 잘 갔는지 모르겠다. 이 마음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으랴! p390

이희급의 부친이 보러 와서 포로가 되었던 경위를 알려 주는데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초저녁에 달빛이 비단결 같아 혼자 뜸집에 앉았으니 생각이 만 갈래로 일어났다. p391

새벽 2시쯤 꿈에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를 가다가 말이 발을 헛디뎌 냇물 가운데 떨어졌는데 말이 거꾸러지지는 않았다. 그 다음에 아들 면이 엎드려 나를 안는 듯하더니 깨었다. p393

내 이제 세상에서 누구에게 의지할 것이냐! p394

하룻밤 지내기가 한 해를 지내는 것 같구나

내일이 막내아들의 죽음을 들은 지 나흘 때 되는 날인데도 나는 마음 놓고 울어 보지도 못하였다.

새벽에 고향 집의 종 진이 내려오는 꿈을 꾸었다. 나는 죽은 아들을 생각하며 통곡을 하였다. p395

밤에 앉아 아들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렸다.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으랴! 이제 죽은 영혼이 되었으니 이렇게 불효를 저지를 줄을 어떻게 알 것인가! 슬픔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여 가눌 길이 없었다. p396

저녁에 양밀이 도양장의 벌레먹은 곡식을 제멋대로 나눠 준 일에 대한 벌로 곤장 60대를 때렸다.

나도 웅크리고 배 밑창 방에 앉아 있었더니 마음이 편안하지 않아서 하루를 지내는 것이 한 해를 지내는 것 같았다. 이 슬픔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을 것인가! p399

새벽 2시쯤 꿈을 꾸었는데 물에 들어가 고기를 잡았다. p401

아침에 군공을 세운 여러 장수들에게 상품과 직첩을 나누어 주었다. p404

사사로운 정이야  비록 간절하지만 나랏일이 한창 바쁘고, 옛사람의 말에도 전쟁에 나가서 용맹이 없으면 효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예에도 원칙을 지키는 경이 있고 방편을 취하는 권이 있는 것처럼 꼭 원칙만 지킬 수는 없는 것이다. 경은 내 뜻을 잘 깨달아서 소찬 먹는 것을 그만두고 권도를 좇도록 하라. p405

아침에 홍산 현감이 목포에서 보러 왔고, 늦게 배 좆방장과 경상 수사가 보러 왔다가 크게 취해서 돌아갔다.

아침에 열이 돌아갔는데, 제 어머니의 병 때문이다.

방백과 방에 앉아 조용히 군사 대책을 이야기하였다. p406

 

1598년 마지막 싸움에 나서다

나로도에 머물면서 도독과 술을 마셨다.

나로도에 머물며 진린과 함께 술을 마셨다. p413

하루 내내 서로 싸웠는데 적들은 허둥지둥 달아났다. p415

도독부를 방문하여 위로연을 베풀었다. 하루 내내 술을 마시고 어두워서야 돌아왔다. p416


2. 내가 저자라면

1)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

- 일기 형식이라서 처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안될 수도 있는데, 그래서 중간중간에 당시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가적인 자료나 설명이 있어서 좋다.(, p56)

2) 내가 저자라면

내가 만약 이순신이라면, 힘든 전쟁의 상황에서 나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통로가 아니라. (물론 이 부분도 포함이 되겠지만. 어떤 글을 쓰듯 그렇듯이) 나의 역사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면, 난중일기의 모습은 조금 바뀌었을까?

난중일기를 읽으며 궁금한 것이 하나 생겼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이다. 이순신의 주변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 과연 이순신과 진심으로 속마음까지 편안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었을까? <난중일기>에서 주로 보여지는 모습이 고민이 생기거나 의논이 필요할 때 늘 찾아가서 의논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이순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반대로 이순신이 힘들때나, 중요한 선택이나 결정을 해야 할 때에 과연 누구를 찾아가서 조언을 구했을까? 아마 앞에 얘기한 이순신을 매우 아꼈던 유성룡이 그런 역할을 해 주었을 것 같다. 아마 이순신이라면 그런 사람이 유성룡뿐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이순신이 되어 당시의 일기를 쓴다면, 괴테가 <시와 진실>에서 등장인물들의 외모나 성격 등에 대해 먼저 서술했듯이, 그가 매일매일 만나고, 찾아왔던 많은 이들에 대해 간략하게라도 기록을 남겨두었을 것 같다. 물론 지금의 <난중일기>에도 나와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당시 그들의 상황이나 말, 행동 등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만 확실히 알 수 있는 부분이라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상상하고 추측을 해 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더불어 이순신의 인상에 중요했던 사람들과의 관계형성에 대한 혹은 이순신이 그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중요했던 사건들을 조금 더 자세히 썼을 것 같다. 이렇게 쓰면 이순신을 알 수 있고, 그와 관련되 사람을 알 수 없고, 당시의 사건으로 인해 문화나 정치적 상황 등을 알 수 있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역사적으로 더욱 가치 있는 사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 내가 역자라면

<난중일기>의 원문을 최대한 복원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다시 쓰게 된다면, 역자로서 이 글을 재해석해 보고 싶다. 일기에서 읽을 수 있는 이순신을 둘러싼 관계들, 예를 들면 가족, 장군으로서, 그리고 이순신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지인들의 관계를 그의 일기에서 찾아 내서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풀어내 보고 싶다. 그리고 그의 일기에서 찾아 낼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인 상황들에 대해서도 풀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책의 목차는

난중일기의 탄생 스토리

난중일기에서 찾는 이순신이라는 사람.

난중일기에서 찾는 정치적 상황

난중일기에서 찾는 경제적 상황

이순신의 스트레스 해소법 혼자 달빛을 벗삼아 수루에 있는 모습, 술을 마시고, 장기를 두는 모습, 무밭을 갈거나, 칡을 캐는 모습들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이순신의 사람들 이 부분에서 이순신을 좋아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순신과 굉장히 대립하고 서로 싫어했던 원균의 이야기도 자세히 풀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이 써 보고 싶다. 이렇게 써보면 왠지 이순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IP *.201.228.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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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6.27 16:23:43 *.35.19.58
미나랑 나랑 취향이 비슷한가봐.
사기열전에 이어 난중일기도 같이 읽었네.
우리 둘이 외향적인 사람이라서 그런가?
난 이순신한테 왜 이리 끌리냐?
아우, 좋아~~
프로필 이미지
미나
2011.06.27 16:42:04 *.142.255.23
ㅋㅋㅋ 언니.. 그러게.. 이번에 우리 둘 빼고 다 융 읽었네..ㅎㅎㅎ..

난 융도 좋지만, 왠지 이순신이 끌려서.. 뭔가. 우리가 끌릴만한 무언가 매력이 있는것 같다는. ㅋㅋㅋ..

난 외향적인가요?? 예전엔 외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시간이 지나면서 내향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ㅎ

나도 이순신 완전 좋아염!!! 뭔가.. 까도까도 계속 무언가 나올 것 같은 양파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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