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양경수
  • 조회 수 11121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1년 6월 26일 22시 54분 등록

1. ‘칼 융’에 대하여- 두 번 읽기

융_2_~1.JPG

휴머니스트 융

그는 시간에 인색하지 않아 각종 인터뷰에 응하고, 카메라 앞에 서고, 텔레비전에 출연하고, 강연을 하고, 일반인들을 위한 글과 편지 답장을 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는 고등학생부터 저명인사까지 누구에게나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또한 그는 상담실에서 자기 앞에 앉아 있는 개개인의 풍부하고 곤혹스러운 복잡성에 항상 마음이 끌렸다. 이론의 중요함을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앞에 앉아있는 그 사람이었다. 융은 이론보다 관찰 가능한 사실이 우선한다고도 주장했다.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융

신체적으로 그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으며 건장했다. 등산가였고 능숙한 선원이었다. 정원을 가꾸고, 장작을 패고, 돌 조각을 했으며, 집을 짓기도 했다. 스포츠를 즐겼고, 식욕도 왕성했으며, 와인을 마시고, 시가와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그는 활동적이고 건강한 사람이었다.

명랑한 태도와 멋진 유머 감각, 마음을 끄는 애정 어린 눈빛. 관점의 차이가 있어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질문에 여유롭게 잘 대처했으며, 간단 명료하게 말할 줄 알았다. 사람들은 그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맡은 사회적 역할

그는 개업의로 활동했고, 대학교수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들을 사회, 종교, 예술의 여러 경향 등 다방면에 적용해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박식한 학자였고, 위대한 저술가여서 1932년 취리히 시에서 저술가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충실한 남편이었고 아버지였으며 유식한 스위스 시민이었고, 민주당원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철저한 정신 연구가(심리학자)였다.

분석심리학

수년 동안 프로이트 학파의 정신분석 이론에 동조했으나,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이라는 저서를 통해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독자적인 정신분석 이론을 발전시켰다. 처음엔 그것을 콤플렉스 심리학이라 불렀고 나중엔 분석심리학이라 명명했다. 인격의 구조와 인격의 발달과정, 개인 성격의 유형 구분, 집단무의식 등 전문적인 개념을 발견해 내고 오늘날에는 개별 학문이자 상식으로까지 자리잡게 했다. 정신을 분석할 수 있을까? 융의 대답은 정신은 '의식', '개인무의식', '집단무의식'이라는 세 가지 수준으로 구분될 수 있다. 정신 기능을 사고, 감정, 감각, 직관 네 가지로 구분했고, 어떤 기능을 우선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성격유형을 구분했다. 이 네 가지 정신 기능 외에도 결정적인 두 가지 태도를 제시했는데, '외향성'과 '내향성'이다. 이 성격유형구분은 'MBTI'라는 이름으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개성화

'참된 자신'이라는 화두는 어른이 되고부터 나의 화두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참된 모습을 찾고 싶다는 소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융에 의하면 완전히 자기인 상태 혹은 자기실현을 향한 이 노력, 개성화는 원형적인, 즉 타고난 것이다. 개성화는 진정한 개성을 실현한다는 뜻이다. '참된 자신'이 된다는 의미이다. 유충이 나비가 되는 것처럼 인격체계는 단순한 구조에서 복잡한 구조로 발달해간다. 인간은 끊임없이 더욱 나은 상징을 탐색하고 있다고 융은 주장했다. 예를 들면 어린이는 단순한 음조의 노래나 가위, 바위, 보 만해도 즐거워하지만, 개성화된 어른은 만족하지 못한다. 어른에게는 종교와 예술 등 더욱 복잡한 상징체계가 필요하다. 신체가 성장하도록 정해져 있는 것처럼 인격 또한 개성화되도록 정해져 있다. 융은 자기실현은 반드시 완전해지는 것이기보다 비교적 온전(원만)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카를 융의 저서

1906(31) 연상 실험에 의한 진단 연구

1907(32) 조발성치매의 심리에 대한 연구

1912(37) 무의식의 심리학,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1916(41) 죽음에 관한 일곱 가지 설법

1921(46) 심리학적 유형

1928(53)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 정신의 에너지에 관하여

1929(54) 황금꽃의 비밀(리하르트 빌헬름 공저)

1941(66) 신화학 서론(케레니 공저)

1943(68) 무의식의 심리학에 관하여

1946(71) 전이의 심리학, 심리의 본질에 관한 이론적 고찰

1948(73) 심혼의 상징학

1951(76) 아이온, 자연 해석과 정신

1952(77) 욥에의 회답

1954(79) 의식의 뿌리에 관하여

1955(80) 융합의 신비

1957(82) 자서전(기억꿈사상)집필--> 1962년 출간

1958(83) 현대의 신화, 심리학적 입장에서 본 양심

1961(86) 무의식에의 접근

참고자료

융 심리학 입문, 캘빈 S. 홀, 버논 J. 노드비 지음, 2004, 문예출판사

분석심리학(개정증보판), 이부영, 1998, 일조각

카를융, 기억꿈사상, A.야페 편집, 2007, 김영사

2. 나 마음을 무찔러 든 글 귀 - 두 번 읽기

<두번째 읽을때 처음 들어온 글 귀(보라색),  첫번째와 두번째 읽기때 모두 무찔러든 글 귀(빨간색)>

 

옮긴이 서문

자서전은 학문적인 저작이 아니므로 융의 요청에 의해 전집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융의 제자요 여비서인 아니엘라 야페가 융의 나이 82세가 된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줄기차게 대담을 한 결과 역어진 자서전이다.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없었다.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정수 만이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자기실현은 '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무엇보다 신의 존재를 심리학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한 저서라고 할 만하다.

그는 신을 가리켜 '위대한 위험'이라고 규정했다.

카를 융은 죽기 2년전 BBC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그때 기자가 융에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수백만의 시청자들은 융이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긴장하며 기다렸다. 융이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신을 압니다."

 

프롤로그

11.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격 역시 무의식의 조건에 따라 발달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려고 한다.

 ☞ 역설적으로 외적인 사건들을 잘 관찰해보면 무의식에 대해 알 수도 있지 않을까?

11. 내적 견지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영원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보이는가는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

12. 인간은 자신을 무엇과도 비교해 볼 수 없다. 인간은 원숭이도, 암소도, 나무도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12. 오직 신화적 존재만이 인간을 넘어선다.

13. 인간은 일생이 어떻게 되어나갈지 모른다. 그러므로 생애의 이야기는 시작이 없으며, 그 목표지점도 단지 막연하게만 제시될 뿐이다.

13. 인간의 생애는 일종의 애매한 실험이다... 인생은 허무하기 짝이 없고 너무나 불충분하여,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 그 자체라 할 만하다.

13. 언제나 나에게 인생은 뿌리를 통하여 살아가는 식물처럼 생각되었다. 식물의 고유한 삶은 뿌리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지상에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단지 여름 동안만 버틴다. 그러다가 시들고 마는데 하루살이같이 덧없는 현상이다.

13.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  그 땅속 뿌리가 무의식이라는 거겠지. 집단무의식, 인류의 역사 내내 축적된 어떤 의식인데 인식되지는 않는 것.

14. 내 생애의 외적 사실들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희미해졌거나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다른 실체와의 만남, 즉 무의식과의 충돌은 나의 기억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14.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외적인 상황들은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 없다.

15.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생애의 특이성을 이루며, 나의 '자서전'은 그러한 내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 언제 결혼했고, 무슨 공부를 했고, 무슨 외적 사건들이 있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정리되거나 표현되지 않는다. 내적인 사건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간헐적으로 나올 뿐. 참 특이한 자서전이다. 역시 융이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유년시절

23. 나의 기억은 두세 살 적부터 시작된다.

24. 그날 저녁은 알프스가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자, 저쪽을 보렴. 산들이 온통 붉구나." 그때 처음으로 나느 알프스를 바라보았다!

25. 호수는 끝도 없이 멀리 펼쳐져 있었다. 그 호수의 광활함은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고 비길 데 없는 장관이었다. 그때 호수 근처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내 마음에 깊이 박혔다. 물이 없이는 아무도 존재할 수 없을 것처럼 여겨졌다.

26. 그후로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항상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함을 뜻하기도 했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출발하면서 함께 가져가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28. 이러한  일들은 무의식적인 자살충동이나 이 세상의 삶에 대한 숙명적인 저항을 시사하고 있었다.

31. 그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공포에 질려 허겁지겁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 계단을 후다닥 올라가서 다락방의 어두컴컴한 구석 들보 아래 숨었다. .. 물론 그후에 나는 검은 형상이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 카톨릭 신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카톨릭 신부, 예수회 수도사에 대한 두려움, 공포

31. 그 시기와 거의 같은 무렵에,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초의 꿈을 우연히 꾸었다.

 ☞ 꿈을 우연히 꾸었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할까. 꿈이란것이 우연하기도 하고 필연적이도 하다는 의미인가?

33.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두려움으로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 기억하는 첫 꿈을 꾼후의 반응

33. 누가 나의 내부에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누구의 정신이 이런 체험을 고안해냈을까? 얼마나 빼어난 통찰이 여기에 작용한 것일까?

37. 이들 점잖고 쓸모있는 건장한 사람들은 나에게 낙천적인 올챙이들처럼 여겨진다. 그 올챙이들은 아주 얕은 비물웅덩이에 가득 모여들어 햇볕을 받으며 즐겁게 꼬리치고 있으나 바로 다음날에 웅덩이가 말라버릴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37. 지금 나는 그 일이 가능한 한 많은 빛을 어둠속으로 가져가기 위해 일어난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그때 나의 정신적 삶이 무의식적인 출발을 한 것이었다.

 ☞ 얼마나 자기 안으로 들어간 것일까? 나의 무의식적 출발을 꼽으라면 중학교 시절 버스안에서 겪은 내적 경험을 들 수 있다. 문듣 든 '내가 저 사람이 아니라 나로 태어난 이유는 뭘까? 내가 저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생각에 빠져 들었는데, 왠지 삶의 비밀을 엿본듯한 느낌에 빠졌었다. 그 때의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38. 어느날 저녁, 아버지는 침대에 있는 나를 안고서 서쪽으로 나 있는 현관으로 데리고 갔다. 아버지는 나에게 휘황찬란하기 그지없는, 녹색으로 빛나는 저녁하늘을 보여주었다. .. 다른 날은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나가서 동쪽 지평선에 나타난 커다란 혜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 나도 민호에게 별, 호수, 바다, 산...을 보여주리라. 그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로서.

40. 고미술품전시실을 지나가게 되었다. 한순간 내가 경이로운 형상들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완전히 압도된 나머지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토록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아름다운 것은 절대적인 것인가? 누구에게나 아름답다고 느껴질까?

41. 여러 해 동안 나는 카톨릭 성당으로 들어갈 적마다 피와 넘어짐과 예수회 수도사들에 대한 은밀한 두려움을 느꼈다. .. 서른 살이 되어 빈의 성스테판성당으로 들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어떤 짓눌림 없이 '어머니 교회'를 느낄 수 있었다.

42.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혼자서 놀았다. . 다른 사람이 방해하지 말았으면 하고 바랐던 것은 기억하고 있다. 나는 놀이에 열중했고 노는 동안에 누가 지켜보거나 따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43. 내가 학교를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오랫동안 얻지 못했던 놀이친구를 드디어 거기서 찾았기 때문이다.

 ☞ 나에게도 동네 아이들과 저녁 먹을 시간까지 골목을 누비며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혼자인 민호에게도 그런 추억이 있어야 할텐데...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걸로 봐서 나보다는 친구가 많을것이다.

43.  온갖 종류의 일, 무섭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밤에 일어났다.

45. 그 유년시절에 나는 시골학교 학우들과 사귀는 동안 발견한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분리시켰다는 것이었다.

45. 그들은 내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는 다르게 되도록, 어찌해서든지 나를 유혹하거나 강요했다.

 ☞ 시골학교 학우들

46. 그 돌은 나의 돌이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종종 그 돌 위에 앉아 생각의 유희를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이돌에 앉아있다. 나는 위에 있고 돌은 밑에 있다.' 그런데 돌도 '나'라고 말하며 '내가 여기 이 비탈에 누워 있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인다. 그러자 의문이 들었다.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인가, 아니면 내가 돌이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단 말인가? 이런 의문은 그때마다 나를 당황하게 했다.

 ☞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때 아마 14살정도였을 것이다. 버스 안에서 밖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왜 내가 나로 태어났고, 저사람은 저사람으로 태어났을까? 내가 저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것은 누가 결정했지?'라는 질문이 들었다.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강렬했고 나란 존재를 느낀 순간이었다. 나와 타인, 그리고 관계라는 화두가 나를 사로잡았고, 그 질문이 나를 종교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갔던 것 같다.

47. 하지만 그 돌이 나와 비밀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몇 시간이고 돌 위에 앉아 돌이 나에게 내준 수수께끼에 사로잡혀 있었다.

49. 아무도 모르고 누구의 손도 미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 왜냐하면 나의 자신감이 그 비밀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0. 그 무렵 식물이나 동물, 그리고 돌 들에 대한 흥미가 부쩍 생겼다. 나는 항상 무언가 신비로운 것을 찾고 있었다.

51. 이런 회상을 함으로써 전통을 거치지 않고도 개인의 마음속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영혼의 고태적 구성요소가 있다는 확신이 처음으로나에게 생겼다.

52.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학창시절

56. 그때 나는 처음으로 우리가 가난하다는 사실,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 목사요 나는 그보다 더 가난한 목사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59. 사태가 아주 나빠질 때는 다락방에 있는 나의 은밀한 보물을 생각했다. 그러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되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쓸쓸할 때도... '다른 인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 위로가 되네, 내가 나이외의 다른 것일 수 있다는 것이.

59. 여든세 살의 나이에 지난날의 기억들을 적어나가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 그 기억들은 지하에서 서로 얽혀 있는 하나의 뿌리에서 각각 뻗어나간 작은 가지들과 같으며, 무의식의 발달과정에 있는 정류장들과 같다.

 62. 만일 내가 학우들처럼 a=b, 혹은 태양=달, 개=고양이 들과 같은 공식들을 갈등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수학이 끝도 없이 나를 속였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노년에 이르기까지 고집스럽게 가지고 있다.

63. 수학수업은 나에게는 정말 무섭고 괴로운 시간이 되고 말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나를 둘러싼 광대한 세계 앞에서 느끼는 왜소감은 내 마음에 의욕상실뿐만 아니라 일종의 은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것들이 학교를 극도로 싫어하게 만들었다.

 ☞ 다중지능 이론을 적용하면 그에겐 수학, 논리 지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64. 무엇보다 나는 신비로운 세계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 세계에는 나무들, 물, 늪, 돌, 짐승들, 그리고 아버지의 서재 등이 속해 있었다. .. 나는 방랑, 독서, 수집, 놀이 등으로 시간을 빈둥빈둥 보냈다. 그러면서도 나는 거기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음을 막연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65. "나는 얼만 안되는 재산을 다 써버렸어. 만일 그 아이가 자립해서 살아갈 수 없다면 그 아이는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라는 아버지의 대화를 엿듣고, 나는 벼락을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현실과의 충돌이었다. '아 그래. 그렇다면 나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쳤다. 그후 나는 진지한 아이가 되었다.

 ☞ 너무나 나와 비슷하다. 개인적인 경험이 보편적인 공감을 일으키는 사건.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던날 밤, 난 어쩌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부모님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고, "저 녁이 어쩔려고 저래?"라는 아버지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때 나도 처음으로 공부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중학교 반편성고사 문제집을 사서 공부를 했다. 중학교부터는 다른 인생이 시작되었다.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서의 삶이었다.

67. 왜냐하면 내가 나 자신에게 옳지 않은 일을 했으며 나 자신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구 탓도 아니다. 나 자신이 가증스러운 탈영병이었다!' 그후로 부모님이 나를 염려한다거나 동정하는 어조로 나에게 말하는 것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67. 신경증은 나를 결국 아주 꼼꼼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특히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했다. 그럴 무렵 나는 성실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무언가 덕을 보려고 하는 외관상의 성실성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성실성이었다.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아침 5시에 일어났따. 때로는 학교에 가기 전에 새벽 3시부터 아침 7시까지 공부한 적도 있었다.

67. 나를 다른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돌 하나, 식물 하나, 그 모든 것이 생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형용할 수 업는 듯이 여겨졌다. 그 무렵 나는 자연으로 빠져들면서, 말하자면 자연의 본질 속으로 숨어들면서 모든 인간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68. 한순간 갑자기,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는 의식과 함께,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68. 지금은 '내'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 '내'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

71. 어느 날, 고풍스러운 녹색  마차 한 대가 슈바르츠발트에서 달려나와 우리집 앞을 지나갔다. .."저것이다! 저 마차는 분명히 '나의' 시대에서 온 것이다."

73. 그 무렵 내가 괴테와 친척간이라는 전설적인 이야기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소위 조부가 괴테의 서자였다는 불쾌한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 '카르마'란 장에서 괴테와 자신의 연관성에 대한 인식을 얘기하고 있다. 그가 파우스트에 집착해서 파우스트가 얻지 못한 질문들에 대답하려고 했던 것이 왠지 저 전설로부터 기인한 느낌이다.

76. 그런데 누가 그것을 원하는가? 누가 나로 하여금 나 자신도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어떤 것을 생각하도록 강요하고 있는가? 이 무서운 의지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77. 하느님이 그들안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그들이 죄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78. '그러므로 그들이 죄를 지어야만 하는 것이 하느님의 의도였다.' 이와 같은 생각이 나를 지독한 괴로움으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하느님 자신이 나를 이런 상황에 처하게 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80. 나는 지옥의 불길 속으로 즉시 뛰어들려고 하는 것처럼 용기를 끌어모아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나는 내 앞에 대성당과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보았따. 하느님은 세상 저 위 높은 곳에서 황금보좌에 앉아 있고, 보좌 밑으로부터 거대한 똥덩어리 하나가 화려하게 채색된 새 지붕에 떨어져 지붕을 산산조각내고 대성당의 벽들을 모조리 부수고 있다.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엄청난 안도감과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저주를 예상했는데 그 대신 은총이 나에게 임하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이 임했다. 내가 하느님의 가차없는 준엄함에 쓰러져 복종하자 하느님의 지혜와 선이 나에게 드러났다. 그것은 마치 내가 계시를 체험한 것과도 같았다.

81. 그리하여 모든 것을 치유하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의 기적을 아버지는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성서의 계명을 자신의 규범으로 삼았다.

81. 내게 은총을 가져다준 것은 복종이었다.

81. 아버지는 살아서 직접 임하시는 하느님, 성서와 교회를 넘어서 전능하고 자유로운 하느님, 당신의 자유를 인간이 누리도록 촉구하고, 당신의 요청을 무조건 실현하기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견해와 신념들을 버리도록 강요할 수도 있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

82. 나는 내가 하느님에게 맡겨졌다는 것과 하느님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84.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84. '부디 제발, 그 비밀에 대해 뭔가를 아는 누군가가 어디에 있어야 할 텐데.어딘가에 진리가 있어야 할 텐데.' '이 사람들도 모르는구나'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85. 내가 돌이라고 생각하자 갈등은 멈췄다. '돌은 불확실한 것도 없고 자기를 알려서 전하려는 욕구도 없다. 돌은 영원하며 수 천 년 동안 살아있다.' 나는 생각을 이어갔다. '이에 반해 나 자신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에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87.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 이런! 너는 항상 생각하려고만 하는구나. 사람은 생각해서는 안되고 믿어야 해." 나는 생각했다. '아니다. 사람은 체험을 해야한다. 그러고 나서 알아야 한다.'

89. 물론 나는 내적인 불확실성을 외적인 확실성으로 보상했다. ... 나는 나 자신이 잘못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잘못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속으로는 언제나 나 자신이 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90. 여기서는 인간을 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이지, 그것은 마치 인간의 영혼이 하느님과 함께 똑같이 창조의 과정을 바라보는 것과도 같았다.

91.  나의 전생애에 걸친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 간의 대립은 일반적으로 의학에서 말하는 그런 '분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와는 반대로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다.

91. 교회는 점점 나에게 괴로운 장소가 되었다.

 93. 아버지는 자기 아들인 나를 이삭처럼 인간제물로 삼아 칼로 찌를 수 있을까? 아니면 불공정한 법정에 내맡겨 예수처럼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할 수 있을까?

93. 특히 인간보다는 하느님에게 더 순종하라고 재촉하는 말을 들을 때, 그런 말은 그저 강단위에서 생각없이 내뱉은 말이라는 것이 나에게 분명해졌다.

94.  하느님의 의지를 아는 체하는 자들 중에 하느님이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시켰는지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94.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언급되었지만, 그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유대적'이라 여겨졌고, 오래전에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관한 기독교 복음에 자리를 내주었다.

95. 그 무렵 나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며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96.  내가 더이상 혼자가 아닌 '그곳'에 있을 때면 언제나 나는 시간을 초월해 있었다. 나는 수백 년의 세월 속에 있었으며, 그때 답을 준 자는 이미 항상 있었고 지금도 항상 있는 존재였다. 그 '다른 인물'과의 대화는 나의 가장 심오한 체험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피흘리는 전투면서 또 한편으로는 극도의 황홀경이었다.

 ☞ 공감할 수 있는가? 사실인가?

97. 나는 혼자서 나 자신의 생각들에 빠졌다. 그러는 것이 나는 가장 좋았따. 나는 혼자서 놀았고 혼자 돌아다니며 공상하면서 나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품고 있었다.

102.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일을 갑자기 알게 되는 일이 내 생애에서 자주 일어났다. 그 인식은 나 자신의 착상인 것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어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 직관 같은 것?

106. 나는 성찬식이 뭔가 이미 계획되고 인습에 맞는 격식에 따라 행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버지 역시 그 일을 무엇보다 규범에 맞게 수행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듯이 보였다. .. 거기서는 예수가 죽은지 이제 1860년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한 마디 말도 없었다.

108. 예수가 사람으로서 하느님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아주 분명했다. 예수는 하느님이 좋은 아버지인 것처럼 그의 사랑과 자비를 가르친 후, 겟세마네와 십자가에서 회의에 빠졌다. 그도 역시 그때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했다. 그것을 나도 이해할 수 있었다.

109. 하느님은 위대한 위험이다.

 ☞ 사랑과 자비 VS 유혹과 파괴자

110. 나는 매우 진지하게 성찬식을 준비하고 은총과 계시를 체험하기를 기대했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느님은 그 자리에 없었다. 원, 세상에!

111.  종교란 ‘인간이 하느님과 자립적인 관계를 맺는 영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12. 하느님은 '인간 자아와 유사하게 상상될 수 있는 인격'으로서, 그리고 또한 '세계를 포괄하면서 세계를 전적으로 초월하는 고유의 자아'로서 스스로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15. 하느님이 대극의 세계를 창조하여 하나가 다른 것을 잡아먹도록 하고 인생이 죽음으로 향한 탄생이 되도록 의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116. 교리책은 늘어놓은 미사여구에 불과했다. 그것은 더 나쁘게 말하면, 하는 일이라고는 진실을 가리는 것밖에 없는 엄청난 바보짓이었다.

120.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양모를 갉아먹는 옷좀나방이 다른 옺좀나방들에게 오스트레일리아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

120. 어떻게 하느님이 나에게는 자명한 것이 되었을까? 하느님의 존재는 머리 위에 떨어지는 벽돌과도 같이 너무나 분명한데도, 이 철학자들은 어찌하여 하느님은 일종의 관념이며 자기들이 만들어낼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임의적인 가설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121. 그 무렵 나는 하느님은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경험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 나에게 하느님은 무엇일까?

128. 나는 단지 저 흐릿한 세계를 오늘날의 방법으로 밝혀보고자 시도할 뿐이다.

 129. 그 마을은 햇빛이 비치고 바람과 구름이 지나가고 모호한 것들로 가득한 밤의 어둠에 감싸이기도 했다. 그곳은 단순히 지도위의 장소가 아니라, 비밀스러운 의미들로 채워진 지정된 신의 세계였다.

129. 그들은 자신들이 질서있는 우주 속에, 신의 세계 안에, 온갖 것이 태어나고 온갖 것이 이미 죽어있는 영원 속에 살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131. 식물들은 무엇을 의도하는 일도 없고 이탈하지도 않으면서 신의 세계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표현했다. 나무들은 특히 신비로웠으며 나에게는 생명의 불가해한 의미를 직접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숲은 사람들이 생명의 심오한 의미와 그 경이로운 작용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131. 돌은 존재의 끝없는 신비, 영혼의 진수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 자체이기도 했다.

132.  나는 학교와 도시생활에 정신을 빼앗겼고, 증가된 나의 지식은 예감으로 가득한 영감의 세계를 차츰 침투해들어가 억압했다.

133. 이들은 모두 자기들이 받아들이지도 않고 진정으로 알고 있지도 않은 것을 논리의 곡예로써 억지로 꾸미려 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사실은 체험이 문제인 것이다!'

133.  나의 탐구가 가져다준 큰 소득은 쇼펜하우어였다. 그는 눈에 보이도록 여실히 우리르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고통, 그리고 혼란과 고난과 악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이었다. 여기에 비로소 세계가 어쩐지 가장 좋은 것만을 기초로 세워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철학자가 나왔다. 그는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창조의 섭리나 피조물의 조화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134. 그 대신 인류역사의 고통스러운 과정과 자연의 잔인성에는 일종의 결함, 즉 세계창조의지의 맹목성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135. 지성은 인간 마음의 기능으로, 마치 한 아이가 태양의 눈이 멀기를 기대하면서 태양을 향해 들고 있는 지극히 작은 거울 한 조각과도 같다.

136. 행복과 불행은 용돈의 액수보다 더 깊은 원인에 의해 좌우되었다. 나는 이전보다 더 많은 더 좋은 친구를 얻었다. 내 발을 받쳐주는 훨신 든든한 기반을 느끼며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까지 갖게 되었다.

 ☞ 그것은  철학을 통해서였다.

138. 모든 ‘초인간적’인 것들, 눈부신 빛, 심연의 어두움, 시공의 무한성이 지닌 차가운 무감정, 비합리적인 우연세계의 으스스한 괴기성 등이 ‘신의 세계’에 속했다. ‘신’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139.  나로서 서운한 점은, 자연과학에서는 의미의 문제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었고, 종교학에서는 경험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었다.

143.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신학자만 아니라면 말이야!"

144. 세속적인 사람들은 물론 그다지 고결하지는 못했으나 그 대신 훨씬 호감가는 사람들이었다.

145. 언제나 방학은 혼자서 즐길 수 있는 굉장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적어도 여름이면 아버지는 정기적으로 작셀른에서 휴가를 보내느라 집을 떠나 있었다.

 ☞ 배우러 어딘가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너 스스로 할 수 있다. 주어진 시간을 활용하라. 다 준비되어 있으니... 너의 절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라. (모닝페이지, 아티스트데이트)

147. 그곳에는 더 이상 안과 밖이 따로 없고 나와 타인,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 조심스러움과 소심함도 없었다.

 ☞ 술먹었어~

149. 이제 나는 이 어마어마한 산에 와 있다. 나는 산과 나 둘 중에서 어느 편이 더 큰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 내 고등학교시절의 북한산의 경험. 그 경이로움이 떠오른다. 그 뒤로 힘이 들때면 북한산의 나의 비빌언덕이 되어주었다.

150. 이 여행은 아버지가 일찍이 나에게 준 것들 중에서 가장 값지고 가장 좋은 선물이이었다.

152. 성스러운 은둔자로서 나는 더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 대신 나 자신만의 개인예배처를 갖게 될 것이다.

157. 나는 환상이라는 것이 어리석고 터무니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백일몽을 꾸는 대신 점토를 회반죽 삼아 작은 돌들을 가지고 성들과 정교하게 방어시설을 갖춘 광장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158. 식물은 외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하며 철학적인 경탄을 가지고 바라보아야만 했다.

 

아름다운 시간들 _ 대학시절

164. 그 순간 나는 자연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67. 제1의 인격 : 깊은 내적인 본질로는 세상에 등을 돌린 반계몽주의자였다.

169. 파우스트는 제2의 인격의 살아 있는 등가물이었으며, 나는 괴테가 그 시대에 제공한 해답이 바로 파우스트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170. 그것은 소용돌이치는 안개에 내가 들고 가는 불빛으로 비친 나 자신의 그림자였다. 나는 또한 그 작은 등불이 나의 의식이라는 것과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하고 유일한 보물이었다. 그것은 어둠의 힘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약했으나 그래도 하나의 빛이었고 나의 유일한 빛이었다.

 ☞ 불빛 = 의식

173. 인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개성적인 기질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며, 무엇보다 먼저 부모의 환경과 그들의 정신세계를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개성 때문에 부모의 정신세계와는 제약된 범위 안에서만 일치할 뿐이다. 그런데 가족정신은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나름대로 시대정신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는다. 시대정신 그 자체는 대게 무의식적이다.

  ☞ 집단 무의식이란 개념의 등장

174. 어린아이는 어른들의 말보다는 주위 분위기의 헤아릴 수 없는 미묘한 것들에 대해 훨씬 더 잘 반응한다. 어린아이는 그 분위기에 무의식적으로 적응한다. 즉, 어린아이 마음 가운데 보상적인 성격의 상호작용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175.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 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이와같이, 적어도 우리 존재의 일부는 수세기에 걸쳐서 살아온 것이다.

176. 서양종교는 분명히 말해 이러한 내적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2천년 전부터 내적 인간을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려 그 인격의 특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진지하게 노력해왔다.

 ☞ "동양철학는 분명히 말해 이러한 내적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2천년 전부터 내적 인간을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려 그 인격의 특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진지하게 노력해왔다. 결국 동서양의 종교와 철학의 깊은 곳은 같다." 같은 말로 쓸 수 있지 않을까.

179. 인식들 역시 증명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도 나에게 명백했다. 그것은 마치 일출의 아름다움이나 밤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공포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과도 같았다.

180. 나는 충격을 받고 화까지 치밀었다. 아버지가 얼마나 절망적으로 교회와 그 신학적 사고방식에 붙들려 있는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 만약 아버지가 그것들을 놓아버렸다면, 그는 구원을 얻었을까?

181. 만일 그들이 그 빛을 보았다면 '신학적인 종교'를 가르칠 리 만무했다. 그 신학적 종교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신에 대한 체험과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주지 않고 믿기만을 요구했다.

186. "아버지가 꿈속에서 돌아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아버지가 그토록 '실재'처럼 보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잊을 수 없는 체험으로,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사후의 삶에 대해 생각하도록 했다.

190. 묵계와 그의 변함없는 신의는 나에게 무척 소중한 것이었다.

192. '주 예수'는 나에게는 의심할 여지 없이 한 사람의 인간이었으며, 따라서 불확실한 존재거나 단순한 성령의 대변자였다.

193. 나는 철학 강의를 통해 마음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있을 수 없었다.

194. 왜 유령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무엇보다 그들의 불안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가? 나에게는 그러한 가능성이 아주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이었다. 그것은 나의 삶을 몇 배나 더욱 아름답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세계는 깊이와 배경을 획득하게 되었다.

196. 도시의 세계는 시골의 세계, 즉 산과 숲과 강, 동물과 '신의 생각' 들의 진실된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199.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호기심에 끌려 마침내 니체의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반시대적 고찰>이었다. 나는 무척 열광하여 그 다음 곧바로 <차라투르스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다. 이 책은 괴테의 <파우스트>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아주 강렬한 체험이었다. 차라투르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였다.

200. 니체는 제2의 인격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세상에다 그것을 거리낌없이 앞뒤 재지도 않고 밝혀버렸더. 그는 자신이 겪은 황홀경을 함께 느끼고 '모든 가치의 전도'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리라는 유치한 희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 니체에 대한 융의 이해

201. 나는 소 두마리가 도깨비마법에 걸려 그 머리들이 동일한 고삐에 매여 있는 것을 발견한 늙은 농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부의 어린 아들이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농부가 대답했다. "얘야, 그런건 말하는게 아니란다."

201. 나는 새로운 관념이나 단지 특이한 측면까지도 오직 사실로써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사실들은 남아 있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책상 밑에 버려져 있지 않고 언젠가 어떤 사람이 그것을 만나게 되고, 그는 자기가 찾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202. 철학자들은 온통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만 말을 늘어놓고, 정작 사실들을 가지고 답변해야 할 때는 침묵해버리기 일쑤였다.

206. 왜, 어떻게 해서 식탁이 갈라지고 칼이 파열된 것일까? .. 라인강이 우연히 단 한 번 거꾸로 흐른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207. 나는 영매의 넋두리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런한 관찰의 결과를 박사학위 논문에서 기술했다.

209. 정신의학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며, 인간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병적인 이상현상도 함께 고찰하려는 심리학이 없었다.

210. 정신의학은 자연과 정신의 충돌이 실제 사건이 되는 결정적인 분야인 셈이었다.

211. 내 옛날의 상처, 즉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서 소외자가 되는 느낌이 아프게 되살아났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유를 한층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이런 동떨어진 세계에 흥미를 가지리라고는 그 누구도, 아니 나 자신까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친구들은 놀라고 의아해하며 나를 바보로 여겼다.

211. 마치 두 개의 강물이 합류하여 세차게 흘러가면서 먼 목적지로 나를 가차없이 실어가는 것과도 같았다. '통합된 이중성'이라는 고양된 감정에 힘입어 나는 마법의 파도를 탄 것처럼 시험을 치러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모습

213. 정신의학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병든 정신과 ‘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의사의 정신 간의 대화이며, ‘병든’ 인격과 치료자 인격 간의 대결이다. 그런데 치료자 인격이라는 것도 병든 인격과 마찬가지로 원래 주관적인 것이다.

216. 그곳에는 아무것도 가려진 것이 없는 표피적인 일, 단지 시작만 하고 이어지지 않는 일, 관련이 없는 우연적인 사건, 점점 협소한 범위로 한정되는 지식,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허술한 일, 답답할 정도로 좁은 시야, 끝없는  사막 같은 일상 들이 있을 뿐이었다.

 ☞ 견딤의 시간

216. 반년 동안 나는 정신병원 생활과 그 정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나 자신을 수도원 벽 안에 가두고는, 정신의학적인 사고방식을 익히려고 <정신의학 잡지> 50권을 처음부터 통독했다.

 ☞ 캠밸처럼 그도 책 속에 깊이 들어갔었구나. 자신의 분야를 알아차리고 꾸준히 정진하는 모습.

217.  결국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 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

상처입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221. 취리히대학 정신병원 부르크횔츨리,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의 중심주제로 삼은 것은 '무엇이 정신병자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화급한 의문이었다.

 ☞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문제에 호기심으로 접근하여 질문을 던지는 모습. 질문이 중요하다. 그렇게 화두를 잡고 찾아가는 거다.

225. 정신의학 사례 중 많은 경우 환자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개인적인 사연을 조사한 다음 비로소 진정한 치료가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환자의 비밀이며, 바로 거기서 좌절하고 만 것이다.

226.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꿰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230. 나에게는 환자 스스로 어떤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해가는지 환자 자신으로부터 들어서 아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꿈이나 무의식의 다른 표현들을 주의깊게 분석해보는 것이 필요했다.

 ☞  스스로 할 수 있다. 모닝페이지, 꿈일기, 아티스트 데이트... 자신의 반응에 대한 관찰 등

235. 결국 모든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때로는 동물이나 식물까지도 그 죄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36. 결정적인 점은 환자 '사연'의 문제다. 그것이 인간적인 배경과 인간적인 고통을 드러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의 치료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237. 내가 우왕좌왕하며 암중모색을 하고 있는데 반해 그들은 확신이 넘치는 듯이 행동했다. 나는 정신의학의 주요과제는 병든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보았으나 그때까지는 그런 것들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이제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분야의 직업에 들어선 셈이었다!

241. 하나의 인격, 하나의 인생사, 하나의 희망과 욕망이 그 배후에 있었다.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단지 우리의 문제일 뿐이다. 나는 정신병에 보편적인 인격심리학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과, 여기서도 오랜 인류의 갈등이 재발견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우둔하고 감정없이 멍청하게 행동하는 듯한 환자들의 마음속에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일, 훨씬 의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정신병에서 새로운 것이나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의 존재의 바탕과 마주치게 된다.

 ☞ 영화 '케이팩스' 우주에서 왔다는 정신병자의 이야기. 그가 진짜 우주에서 온것이던 아니던 그가 정신병원에서 겪은 일들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

242. 사람들은 환상의 내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이를테면 그냥 일반적으로 '피해망상'이라는 식으로 말해버렸다.

243. 주의깊은 개입이 지속적인 치료효과를 가져다 주는 것을 보았다.

 ☞ 관심, 들어주는 것, 우연적, 무의식적인 것들에서 뭔가 찾아 내는 노력

247. 그후 나는 정신병 환자의 고통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그들의 내적 체험의 의미있는 현상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과거의 사건-->내적체험-->현재의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었나?

248. 나는 환자들을  될 수 있는 한 모두 개별적으로 다루는 편이다. 문제의 해결은 항상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원칙은 다만 최소한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249 의도적으로 체계적인 것을 멀리하고 있다. 나에게는 각 개인에 대한 개별적인 이해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환자에게 각각 다른 언어가 필요한 법이다.

249. 1909년에 나는 이미 잠재적 정신병의 상징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신화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250. 마음은 이를테면 세계의 절반으로, 우리가 그것을 의식할 때에만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은 단순히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제이며, 정신과의사는 전체 세계에 관여해야 한다.

 ☞ 마음은 세계의 절반이다.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무시당해왔다니..

251. 환자의 치료는 말하자면 의사로부터 시작된다.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251. 교육분석에서 의사가 개념체계를 습득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의사는 피분석자로서 분석이 바로 자기 자신과 관계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교육분석은 실제적인 삶의 한 부분이지 무조건 암기하여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252.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이 이 상황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가?"하고 항상 자문해보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꿈을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세심한 데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자기 자신을 환자와 마찬가지로 관찰해야 한다.

 ☞ 정신과 의사의 자세

253.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Persona)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254. 여자들은 남자가 보지 못하는 측면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남편이 초인이라고 확신하는 부인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257. 그가 나에게 꿈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그의 정상성은 일종의 보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내가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망각의 힘이 강한것이 내면의 분열에 대한 외적 보상인가?

259.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부인들이 질투심이 많아 남편의 교우관계를 깨뜨리는 일은 흔히 일어나는 법이다. 그러한 부인들은 자신들이 남편에게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남편이 자신에게 전적으로 속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

 ☞ 사실일까? 정말? 관계에 있어서 나 자신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질투에 의해 나의 교우관계 마저 포기 해서야 되겠는가.

261. 무의식에서 시간과 공간을 상대화함으로써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었다. 집단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의 공감'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261. 나에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환자가 자기 자신의 견해를 가지도록 하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환자의 숙명과 부합하는 대로 이교도는 이교도요, 기독교도는 기독교도요, 유대인은 유대인일 뿐이었다.

264. 나는 사람들이 인생문제들에 대해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해답으로 얼버무릴 때 신경증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그들의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그런 이유로 인격발달이라는 관념이 나에게는 처음부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264. 오늘날에도 신자는 교회에서 상징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미사나 세례, 그리스도 본받기, 그리고 다른 많은 체험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징의 삶과 체험은 신자의 활발한 참여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은 바로 이것이 결여되어 있다.

266. 저항은 특히 완강할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개 그런 저항은 그냥 지나쳐서는 안되는 경고를 뜻하기 때문이다. 치유에 효과적인 것은 독일수도 있어 모든 사람이 다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는 하지못하도록 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그런 수술이 치료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268. 그 환자에게 필요했던 것은 남성적인 반응이었다. 이 사례에서는 환자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전적으로 틀린 것이 되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 주도하라! 나의 남성성을 찾아라!

269. 환자와 의사 간의 교감은 끊임없는 비교와 조정, 그리고 서로 마주 대하고 있는 두 정신적 실재의 변증법적 대결 속에서 이루어진다.

270. 문제는, 신화의 상실을 견디지 못하고, 외적인 것에 불과한 세계, 즉 자연과학의 세계상으로 향한 길을 찾을 수도 없고, 지혜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언어의 지적인 즉흥연주로 만족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271. 개념적인 것으로 옮기는 것은 체험으로부터 실체를 빼앗고 그 대신 단지 이름들만 붙이는 셈이다. 이제는 진실의 자리에 이름들만 들어서게된다. 개념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혼은 개념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사실들 가운데 깃들어 있다.

 ☞ 개념화를 경계하라.

272. 심리적 수준이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로서는 유명인사들과의 단편적인 대화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었다. 나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성과가 있었던 대화들은 이름없는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275. 나의 정신적 발달을 향한 모험은 정신과 의사가 됨으로써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나는 정신병 환자를 임상적으로 밖에서부터 관찰하기 시작했다.

278. ".. 사람은 인생을 거짓 위해 세울 수 없다."

279. 1907년 2월 빈에서 우리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오후 1시에 만나 열세 시간 동안이나 그야말로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프로이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281. 프로이트 : "친애하는 융, 성이론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나에게 약속하십시오. 그것은 가장 본질적인 것입니다. 보시오, 우리는 성이론을 가지고 하나의 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보루 같은 것 말입니다."

281. 교리, 즉 논의할 필요도 없는 신앙고백은 오직 의심을 단번에 눌러버리려고 할 때 사람들이 내세우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과학적 판단과는 더이상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개인적인 권력충동과 관계가 있을 뿐이다.

 ☞ 프로이트에 대한 그의 생각

282. 심리적으로 더 강력한 공포의 대상에 '신적'이거나 '악마적'인 속성이 부여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프로이트에게는 '성적 리비도'가 '숨은 신'의 역할을 맡게 된 셈이었다.

284. 프로이트는 왜 자신이 성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야만 하는지, 왜 그러한 생각이 자신을 그토록 사로잡고 있는지 한 번도 자문해보지 않았다.

 ☞ 자문했다면 그는 구원받았을 것, 자유로웠을 것, 그것이 명상의 힘

285. 사람들이 밖에 관하여 말할 때, 프로이트가 그랬듯이, 전체의 반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무의식에서 반작용이 일어나는 법이다.

 ☞ Balance!

287. 신성한 힘의 체험으로 마음이 격렬히 동요하게 되면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실이 끊어질 위험이 항상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사람은 절대적인 긍정으로, 또 다른 사람은 그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부정으로 빠지게 된다.

287. 마음의 진동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신성한 힘은 사람을 극단으로 잘못 인도하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은 진리를 진리의 전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 모든것은 지나간다. 어제의 진리가 오늘은 허위가 되며, 그저께 잘못된 결론으로 간주되던 것이 내일은 하나의 계시가 될 수도 있다.

 ☞ 진동추의 이미지를 기억하라. 절대적인 것은 없다.

289. 덧없을 정도로 작은 의식이 어떤 것을 인식해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는 아직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289. 융 VS 프로이트의 일화

294. 나는 진리탐구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개인적인 명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295. 그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의 권위를 위태롭게 할 수는 없어!" 그 순간 그는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299. 프로이트의 지적인 역사는 뷔히너, 몰레스호트, 뒤부아 레몽, 그리고 다윈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 나의 지적인 역사는 어디서 시작하는가? 자문해보니 빈약하기 그지 없구나. 스티븐코비, 장회익, 파올료코엘료, 이외수, 뉴에이지 저자들...

300. 식물이 가능한 한 자라나려 하고 동물이 가능한 한 먹이를 찾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이, 꿈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어떤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301. 무의식이 의식의 경향에 대해 얼마나 강하게 저항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307. 자연(본성)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물론 신경증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조로운

일상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때에만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부터 억압해오던 것에 머물기를 너무 좋아하기만 한다.

 ☞ 가족이 함께 할 수있는 자연 활동이 뭐가 있을까? 생태적 감수성을 깨울 수 있는 활동, 산책, 등산, 캠핑, 별보기...

308. 인간은 어떤 삶의 방식도 그것이 다른 것으로 교환되지 않는한 버릴 수 없다. 완전히 이성적인 삶의 영위란 경험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대개 불가능하다.

310. 프로이트와 결별하게 된 후 나의 모든 친구나 친지들은 나를 떠나갔다. 사람들은 나의 책을 쓰레기라고 내놓고 말했다. 나는 신비주의자로 간주되었고, 이것으로 사태는 끝장을 보게 되었다.

311. 프로이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아마도 신경증 환자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들의 독특한 개인적인 심리를 파고들어간 데 있을 것이다.

311. 그가 우리 문화에 준 충격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꿈을 무의식과정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인정함으로써, 잃어버려 이제는 어쩔수 없다고 여겨진 가치를 과거와 망각으로부터 되찾아왔다.

312. 철학적으로 성찰해보면, 오늘날의 문화의식은 무의식개념과 거기에 따르는 결과들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반세기가 넘게 무의식과 직면해왔으면서도 말이다. 우리 정신의 존재가 두 개의 극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통찰은 여전히 장래의 과제로 남아 있다.

 ☞ 무의식 VS 의식

 

내 안의 여인 아니마

315. 나는 단지 질문만을 던졌다. "그것과 관련하여 당신에게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당신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여깁니까?" "그것은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 "당신은 그것에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의 질문이었다.

316. 꿈은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사실이다.

316. "너 자신은 그 신화 속에서 살고 잇는가?" "솔직히 말해, 아니오! 나는 그 신화 속에 살고 있지 않소" "그럼 우리는 이제 아무런 신화도 가지고 있지 않단 말인가?" "그렇소. 우리는 이제 아무런 신화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오." "그러면 무엇이 너의 신화인가? 너는 어떤 신화 속에서 살고 있는가?"

318.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 자신의 환상에 주의를 기울이며 기다리는 것밖에 없어다.

 ☞ 꿈에 대한 기록, 모닝페이지... 환상의 기록(토피카)

319. 물론 나는 무의식에는 고대 체험의 유물이 남아 있다는 프로이트의 견해에 동의하고 있었다. --> 원형설 

320. "이토록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둬보자." 그리하여 나 자신을 의식적으로 무의식의 충동에 맡겨버렸다.

320. 내가 그 시절과 다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돌아가 아이의 놀이를 하면서 아이의 삶을 한번 더 살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이 내 운명의 전환점이었다.

  ☞ 융은 그래서 다시 돌을 모으고 작은 집을 만들었다.

322. 내 후반기 인생에서 장애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언제나 그림을 그리거나 돌을 다루었다. 그런 일은 늘 그 다음에 이어지는 생각과 일을 위한 통과의례였다.

325. 나는 자주 흥분되어 내 감정을 요가로 제어해야만 했다. 그러나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경험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기 때문에, 요가는 내가 안정되어 무의식과 더불어 다시 작업을 시도할 수 있을 때가지만 했다. 나 자신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느낌을 갖자마자 나는 감정제어를 풀고 환상의 이미지와 내부의 소리가 새롭게 말하도록 했다. 인도 사람들은 이와 반대로 다양한 정신 내용과 이미지를 완전히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요가를 사용하고 있다.

326. 나는 최선을 다해 환상을 기록해나갔다. 그리고 환상이 생기게 된 정신적인 전제들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327. 가장 심각한 어려움들 중 하나는 나의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는 일이었다.

 ☞ 융도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는게 가장 힘들다고 했는데, 하물며 나와 해심이는 어쩌랴.

335. 나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지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지닌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필레몬은 내가 아닌 다른 힘을 나타내고 있었다.

336. 나는 내가 알지 못하고 내 생각이 아닌 것들을 말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내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것은 심지어 나에게 적대적일 수 있는 것들까지도 말할 수 있었다.

339. 환상을 기록하는 동안 .. 내 안에 어떤 소리가 있었다. "이것은 예술이에요." 나는 매우 놀랐다. 나의 환상이 예술과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340. 왜 사람들은 그것을 여성적인 것으로 상상하는가? 나중에 나는 내 안에 있는 여성상이 남성 무의식 속에 있는 전형적인, 또는 원형적인 형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아니마'라고 불렀다.

341. 매일 저녁 나는 글쓰는 일에 매달렸다...우리가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고 마음만 먹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적어놓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될 수 있는 한 정직하려고 노력했다. 옛 그리스 격언을 따른 것이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라. 그러면 받으리라."

341. 우리가 그 내용을 인격화하여 의식으로 하여금 그 인격들과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무의식 내용에서 힘을 제거할 수 잇다. 그렇지 않으면 무의식이 그 힘을 의식에 행사하게 된다.

 ☞ 의식과 무의식 내용을 구별하는 방법, 내 무의식에 이름을 붙이자. Little Yang(L.Y)  어때? 아니마는 무의식의 대변자이다. 결정적인 것은 언제나 의식인데, 의식이 무의식의 표현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자기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무의식 내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법을 알게 된다면 중재자도 필요없게된다.

343. 아니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무의식의 이미지를 의식에 전달해주는 것이 바로 아니마다. 이것이 내게는 중요했다.

345. 삶을 대체할 만한 완전한 언어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언어가 삶을 대체하려고 시도한다면 언어뿐 아니라 삶도 망가지고 말 것이다. 무의식의 전제의 횡포에서 자유를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지적인 작업을 완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윤리적 의무를 갖는 일이다.

346. 환상에 관한 작업을 하던 바로 그 무렵, 물론 나는 '이승'에 발판이 필요했다. 그것은 가족이며 직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니체는 현실의 발판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내면세계가 그를 소유하게 되었다고 표현한다.

347. 비현실성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었다. 나는 저 세상이 아닌 이 세계의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나의 좌우명은 '도전에 맞서 싸워라!였다.

349. "적합하면 그것은 나타난다!" 지적인 측면에서는 물론 거기에 대해 자연과학적 인식을 장황하게 떠벌릴 것이고, 심지어 그 모든 체험을 변칙적인 것이라 하여 지워버릴 것이다. 변칙이 없는 세계는 얼마나 암울할 것인가!

350. 나는 원초적 체험을 스스로 겪어야 했고, 더 나아가 내가 체험한 것을 현실의 토대 위에 세우는 작업을 해야만했다.

351. 나의 저작, 즉 내가 정신적으로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은 다 초기의 명상과 꿈에서 나온 것이다. 1912년에 그러한 명상이 시작되었으니 이제 거의 50년이나 되었다. 인생 후반기에 내가 이루어놓은 것도 모두 초기의 체험 속에 이미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감정이나 이미지의 형태로 있었지만 말이다.

 ☞ 꾸준한 명상과 꿈의 기록. 서양적인 해석의 노력에 그의 성향이 얹혀져, 새로운 것을 세상에 드러내게 되었다.

351. 사람들은 이미지들이 그대로 떠오르도록 하면서 거기에 대해 무척 놀라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고 만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려고 고심하지 않는다. 거기서 윤리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일은 더구나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결국 무의식의 부정적 작용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353. 뭔가 엄청난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것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내 인생을 충만히 채울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 나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이미 알게되어 있다. 그냥 아는것이다.

353.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이런 일은 내가 학문적 출세를 포기했을 때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늘 겪어왔다.

 ☞ 공감된다. 공기업을 떠난다는 것은? 내면의 소리를 귀기울여보라. 그 선택을 따르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355. 어쨌든 현대예술은 무의식으로부터 예술을 창조해내려고 모색하고 있다. 이런 주장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공리주의와 자만심은 내 마음에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354. 당시에는 그 두 세계 사이의 상호작용을 지금 내가 이해하듯 인식할 수 없었다. 나는 단지 '안'과 '밖'의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을 보았을 뿐이었다.

356. 만다라가 참으로 무슨 의미인지 나는 차츰 깨달아갔다. 그것은 '형성, 변화, 영원한 마음의 영원한 재창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즉 인격의 전체성이었다. 모든 것이 잘돼가면 조화로우나 자기기만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

357. 나는 우선 나 자신을 무의식의 흐름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가 없었다. 만다라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 모든 것, 내가 걸어온 모든 길, 나의 모든 발걸음이 하나의 점, 즉 중심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그것은 중심을 향한 길, 즉 개성화의 길이다.

360. 중앙이 목표다. 누구도 중앙을 넘어서 갈 수 없다. 그 꿈에서 나는 '자기'가 방향성과 의미의 원리이며 그것들의 원형임을 이해했다. 그 안에 치유의 기능이 들어있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나는 내 신화에 대한 예감을 처음으로 가졌다.

361. 그 무렵 프로이트를 넘어서 내가 아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어둠속으로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361. 나의 내적 이미지를 추적하던 그 몇 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 기간에 온갖 본질적인 것이 정해졌다. 그 무렵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세부적인 것은 단지 보충하거나 명료하게 하면 되었다. 내 후기의 작업은 모두 그 기간에 무의식에서 솟아나와 나를 휩쓸었던 자료들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는데 있었다. 그것은 필생의 작업을 위한 원재료였다.

 

 연금술을 발견하다.

366. 연금술은 하나의 중세 자연철학으로서 한편으로는 과거 즉 그노시스주의에,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 즉 현대 무의식의 심리학에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367.연금술은 하나의 중세 자연철학으로서 한편으로는 과거 즉 그노시스주의에,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 즉 현대 무의식의 심리학에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371. 어느날 밤 그 문헌을 공부하고 있을 때, 문득 내가 '17세기 안에 갇혔던' 꿈이 생각났다. 마침내 나는 그 의미를 파악했다. "아, 그렇구나! 이제 나는 연금술을 처음부터 전부 연구해야 될 운명에 처했구나!"

373. 원초적 이미지와 원형의 본체가 내 연구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고, 역사 없이는 심리학 특히 무의식의 심리학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73. 나의 생애는 하나의 과제, 하나의 목표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것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즉, 인격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과제요 목표였다.

374. 그때 나 자신에게 던진 첫 질문은 "무의식과 더불어 무엇을 하는가?"였다. 거기에 대한 회답으로 저술된 것이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였다.

 ☞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자신 안에서 답을 찾는다. 그게 1인격이든 2인격이든...

376. 나는 사색과 탐구를 통해 내 심리학의 핵심, 즉 '자기'라는 개념에 도달했다. ... 갖가지 수많은 논문과 강연은 말하자면 여러 해에 걸친 내적 몰두에 대한 평형추 구실을 해주었다. 그것들은 나의 독자나 환자 들이 내게 던진 질문들에 대한 회답을 포함하고 있었다.

377. 리비도를 에너지로 본다면 일종의 통일된 관점을 갖게 된다. 내가 심리학을 위해 이루려고 한 것은 자연과학영역의 일반적인 에너지론과 같은 그러한 통일성이었다.

377. 연금술을 배워서 알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무의식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무의식 내용에 대한 자아의 관계에 의해 정신의 변환과 발달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정신의 변환과 발달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했지? 그건 '무의식과 자아의 관계'에 의해서라고 융은 대답한다.

378.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변환과정에 대한 연구와 연금술의 상징에 대한 이해를 통해 나는 '개성화과정'이라는 내 심리학의 중심개념에 이르게 되었다.

381. 한편으로는 유대전통에, 다른 한편으로는 이집트 호루스 신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고대적 안트로포스 관념은 기독교시대 초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시대정신에 부합했기 때문이었다.

382. 목수의 아들 예수가 복음을 전파하고 세상의 구주가 된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는 것은 심각한 오해일 것이다. 그는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그 시대의 기대를 그토록 완벽하게 표현하고 기술할 수 있을 만큼 비범한 재능을 지닌 인격의 소유자였음에 틀림없다.

382. 그 시대에 신적인 카이사르에 의해 구현된 로마제국의 막강한 권력은, 수없이 많으 개인뿐 아니라 모든 민족이 자주적인 삶의 방식과 정신적인 독립성을 빼앗긴 세계를 만들어냈다. 오늘날의 개인이나 문화공동체도 비슷한 위협, 즉 대중화의 위험에 처해 있다. 그리하여 많은 곳에서 그리스도 재림의 가능성과 거기에 대한 희망이 이미 활발하게 논의되고 환상을 보았따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는데, 그것은 구원을 기대하는 마음의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것이 취한 형태는 과거에서는 비교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고, '기술시대'의 전형적인 아이의 모습을  보일 뿐이다. 미확인비행물체 현상의 전세계적인 확산 같은 것이 바로 그렇다.

 ☞ 대중화시대의 반작용

390. 물리학자가 원자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떤 성질을 가졌다고 말하거나 그 모형을 그린다고 해서 그가 영원한 진리를 표현하고자 의도하는 것은 아니다.

394. 내 안의 무엇이 반항했다. 그리고 말 못하는 물고기처럼 되지 않기로 했다. 그런 것이 자유인 속에 없었더라면 <욥기>는 그리스도 탄생 수백 년 전에 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신적인 소명 앞에서도 결행을 유보하는 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자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자유를 위협하는 자를 위협할 수 없다면 그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397. 초월적인 것, 원형 그 자체의 본질에 관해서는 더이상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397.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생애는 내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397. 나의 모든 저술은 말하자면 내부로부터 부과된 과제인 셈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강요로 이루어졌다. 내가 쓴것은 내부로부터 나에게 엄습해온 것들이다. 나는 나를 충동질하는 영혼으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허용했다. 나는 나의 저술에 대해서 어떤 뜨거운 공감을 기대한 적이 없다... 나는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해야만 했다.

 ☞ 스스로 assingment를 하고, 스스로 작업을 한다. 그를 통해 말해져야 할 것들을 놓치지 않고 표현했던 것이다.

 398. 그런데 나에게 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내가 말해야만 했던 것이 말해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가능한 것이면 무엇으든 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물론 더 많이 더 훌륭하게 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 나를 통해 반드시 말해져야 하는 것은?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402. 그 탑에서 내가 누린 휴식과 재생의 느낌은 처음부터 매우 강력했다. 그곳은 나에게 모성적인 장소 같은 의미가 있었다.

403. 외딴방에 나 혼자 있다.

405. 단순한 일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런데 단순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405. 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생각들, 그에 따라 먼 미래를 내다보는 생각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여기서는 창조의 고통이 완화되며 창조성과 유희성이 거의 하나로 어울린다.

 ☞ 그런 공간, 나 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406.

여기 돌이 있네, 보잘것없는 것.

값도 아주 싸고......

바보들로부터 무시당할수록

현자들로부터는 더욱 사랑을 받는다네.

409. 사람들에게 무의식이 얼마나 낯선 것인지,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인상적인 경험이다.

 ☞ 우리의 대화, 활동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곳에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나, 교류가 있는가? 거의 없다. 그것은 홀로 있을때 불쑥불쑥 찾아오긴 하지만, 그나마 잘 알아차려지지 못한다.

411. 깬다는 것은 현실을 자각한다는 뜻이다.

413. 동시성 현상 : 우리가 내적 감각으로 지각하거나 예감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외부의 현실과 자주 상응하게 되는 것.

417.  부모로부터 아이들에게 넘겨진 비개인적인 카르마가 가족에게 존재한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나는 조상들에게 숙명적으로 던져졌으나 아직 해답을 얻지 못한 물음에 내가 대답해야 하며, 지나간 세대가 완성하지 못한 채 남긴 것을 내가 완성하거나 계승해야만 할 것같이 늘 여겨진다.

 ☞ 나의 부모가 이루지 못한 것은, 삶에 대한 열정으로 사는 것. 지적인 일어섬

 419. 나는 미래가 장기적인 전망으로 미리 무의식적으로 준비되며, 그리하여 투시력을 가진 사람은 훨씬 이전부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아맞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지금도 일반인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418. 파우스트가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고 나에게 구원과도 같은 말을 하긴 했지만, 그런 이분성의 원인을 규명해주지는 않았다.

418. 그 죄를 속죄하거나 그것의 재발을 막아야 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여겨졌다.

419. 나는 미래가 장기적인 전망으로 미리 무의식적으로 준비되며, 그리하여 투시력을 가진 사람은 훨씬 이전부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아맞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지금도 일반인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 괴테가 <시와 진실>에서 말했듯이, "소망이란 우리들 속에 들어있는 능력의 예감이다" 그의 영향인가?

420. 나는 내 작업을 의식적으로 파우스트가 간과한것에 연결시켰다. 영원한 인간권리에 대한 존경, 옛 것에 대한 인정, 그리고 문화와 지성사의 연속성.

421. 사람들은 점점 깊어지는 결핍감과 불만, 초조감에 사로잡힌 채, 새로운 것을 향해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돌진하고 있다. .. 현재의 빛 속에서 살지 않고 미래의 어둠속에서 살고 있따. 사람들은 그 어둠속에서 적절한 때에 해가 솟아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람들은 모든 좋은 것이 나쁜 것들의 대가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422.  시간을 단축하는 조치들은 아주 불쾌한 방식으로 속도만 빠르게 하여 이전보다 더 시가닝 부족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옛스승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모든 성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다."

423. 볼링겐에 있는 나의 탑에서는 사람이 마치 수백 년을 사는 것처럼 산다. 그곳은 나보다 더 오래 남아 있을 것이며, 그 위치와 양식을 통하여 아득한 과거를 가리키고 있다. 거기에는 오는날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주 적다.

 

여행

427.  나는 유럽인들을 한번 외부에서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어느 모로 보나 생소한 환경 속에서 유럽을 보고 싶었다.

 ☞ 융의 전제조건이 서양 기독교인이라면, 나의 전제조건은 샤머니즘, 유교,불교,기독교적 동양인이라는 것.

429. 나는 말할 수 엇이 순진한 인류의 청소년기로 수세기를 거슬러 올라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431. 시계라는 것은 소위 중세 이래로 시간과 그 동의어인 진보가 유럽인에게 슬며시 들어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그들로부터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436. 아랍문화와의 만남은 충격! 격정적이고 기분대로 살아가며 생 그 자체에 한층 가까이 있으면서도 성찰을 모르는 이렇나 인간존재가 우리 안에 있는 저 역사적 층에 강력한 암시효과를 주었다.

437. 어린이답다는 것은 다른 한편 그 순진성과 무의식성 덕분에 훨씬 완벽한 '자기'의 이미지, 즉 꾸밈없는 개성을 갖춘 전인격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어린이나 원시인을 보게 되면 성숙한 문화인의 마음속에, 채우지 못한 욕구와 필요로 말미암은 갈망이 일어난다.

437. 나는 인식을 통하여 그를(인간 전체상에서 떨어져나간 인격부분) 더욱 의식화하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와 함께 살아가는 방도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438. 유럽인은 합리적인 특성을 꽤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이 생의 열정을 희생하고 얻은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원시적 인격 부분이 국부적인 지하존재로 떨어지는 운명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439. '하지만 위험이 있는 곳에 또한 구원이 싹튼다'는 휠덜린의 말이 그런 상황에서 주주 떠올랐다. 그 '구원'은 경고해주는 꿈의 도움으로 무의식작용을 의식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439.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 것인가, 잊혀진 것을 회복할 것인가, 두 가지 가능성을 두고 따져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잊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그것이 충분한 이유없이 다시 그러한 발언을 할릴가 없기 때문이다.

439. 살아있는 정신구조에서는 단순히 기계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관리되며 전체와의 관계성 속에서 일어난다.

441. 비평의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대상의 외부에 관점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를 밖에서 볼 기회를 한 번도 갖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나라의 특성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 (떨어져서 바라보라!)

441.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모든 것은 나 자신에 대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 관계에서 걸리는 부분을 잘 살펴보라.

443. "그들은 머리로 생각한 것을 말하오." "그거 당연한 것 아닌가요? 당신은 어디서 생각하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하오" 그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448. 내가 얻은 유일한 대답은 "태양은 신이오. 누구나 그것을 알 수 있소"라는 것뿐이었다. 누구도 태양이 주는 엄청난 인상을 피할 수는 없지만, 이 성숙하고 위엄에 찬 남자들이 태양에 관해 말할 때 숨길 수 없는 감동에 사로잡히는 것을 본다는 것은 나로서는 깊은 울림을 안겨주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451. 지식은 우리를 성숙하게 해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이전에 살던 신화적인 세계에서 더욱 멀리 떨어지게 한다.

452. 인간의 제의적 행위는 신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응답이며 반응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 이상의 것, 즉 적극적인 '실현' 주술적 강요이기도 할 것이다.

452. '신과 우리'라는 이러한 동등한 관계가 인디언들의 저 부러워할 만한 의젓함의 근거가 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한 인간은 문자 그대로, 참으로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이다.

457. 연금술에서는 "자연이 불완전하게 둔 것을 예술이 완전하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행위를 창조주의 몫으로만 돌려왔다.

457. 인간은 창조의 완성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비로서 객관적 실재가 되게 하는 두 번째 세계창조자인 것이다.

458. 인간의 의식은 비로소 객관적 실재와 의미를 만들어냈으며 이로써 인간은 그의 위대한 존재확립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 신과 인간의 관계를 고찰한 부분, <신과 나눈이야기>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무의식의 발견이 인류 의식의 고양을 이뤄낸 것이 맞나보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인식이 보편적인 관점이 될 수 도 있겠다. 뭉클한 감동이 인다.짠하다.

463. 흑인들의 직관적인 인식방법 가운데 하나는 상대방의 말씨, 몸짓, 걸음걸이를 기가 막히게 흉내내면서, 이런 방식으로 상대방이 되어 보는 것이다.

 ☞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법, 다른 삶을 체험하는 방법 : 상대방의 말씨, 몸짓, 걸음걸이를 흉내내 보는 것!

464. 삼위일체의 원형이 드러났고, 이러한 원형이 역사에서 언제나 반복하여 나타나듯이...

 ☞ 해심, 민호, 나 이렇게 세 가족이 삼위일체의 원형이라는 생각, 지금이 완벽하다.

467. 무의식적인 질서는 장애가 발생하면 금방 무너지고 만다. 그 장애는 오직 의식작용에 의해서만 보상될 수 있고 또한 그렇게 보상되어야 한다.

469. 나는 백인여성의 남성화가 그녀들의 천연적인 전체성의 상실과 연관된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여성의 결핍에 대한 보상이 아닌가, 그리고 백인 남성의 여성화는 여성의 남성화에서 야기된 후속 결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자문해보았다.

  ☞ 결국 현대사회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화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조화 Blance!는 나의 중요한 주제이다.

470. 우리의 야영지생활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 중 하나였다.

474. "아이크, 아디스타, 아디스타 아이크!"

 ☞ 아디스타는 처음 떠오른 순간의 태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직 그 순간에만 태양은 '뭉구' 신이 된다.

475. = "나는 신에게 나의 살아 있는 혼을 드립니다."

477. 이 평원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날마다 나를 새롭게 압도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479. 그 무렵 나는 마음속에 태초로부터 빛에 대한 동경이 깃들어 있다는 것과 태초의 어둠에서 빠져나오고자 하는 절실한 갈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짐승의 눈에는 슬픔이 배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짐승의 혼인지 혹은 저 태초의 존재가 표현하는 간절한 마음인지 알지 못한다.  사실은 자연의 밤보다도 그와는 전혀 다른 어둠이 이땅을 짓누르고 있다. 빛에대한 동경은 의식에의 동경인 셈이다.

486. 아프리카 내륙에서 이집트로 향한 여행은 나에게 마치 빛의 탄생의 드라마와 같은 것이었다.

488. 나는 소위 '성자'라고 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모두 피했다. 내가 그들을 피한 것은 나 자신의 고유한 진리로 만족해야만 했기 때문이며, 나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것 이외의 다른 것들은 받아들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지혜는 그들에게 속하고, 나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만이 나에게 속할 뿐이다.

490. 나는 인간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지도 않으며 나로부터도 자연으로부터도 그러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내게는 형언할 수 없는 경이이기 때문이다. 자연, 영혼, 그리고 인생은 나에게 활짝 피어난 신성처럼 여겨진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나에게 존재의 최고의미는 오직 그것이 존재한다는 데 있지, 그것이 원래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이제는 더이상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하는데 있지 않다.

491. 나에게는 해방이란 것이 없다.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을 때 비로서 가능한 법이다.

491. 자신의 열정의 지옥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포기하고 내버려두고 겉으로 잊어버린 체하고 있을 경우, 그 포기한 것과 내버려둔 것이 두 배의 힘으로 되돌아올 가능성과 위험이 상존한다.

495. 나는 부처의 삶을 개인의 인생 전체를 통해 스스로를 주장한 '자기'의 실현으로 이해했다.

495. 그리스도 역시 부처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구현자다. 하지만 전혀 다른 뜻에서 그러하다. 둘 다 세상을 극복한 자들이다. 부처는 이를테면 이성적 통찰로써, 그리스도는 숙명적인 희생으로써 그 일을 이루었다. 기독교에서는 더 많이 고통을 겪는 데 주안점을 두고, 불교에서는 더 많이 깨닫고 행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496. 역사적 발전은 '그리스도 모방'으로 이어져, 개인이 전체성에 이르기 위해 자기 고유의 숙명적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간 길을 본받아 따라가려고 한다. 동양에서도 부처를 신앙적으로 모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 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

497. 그리스도도 유대인들에게 "당신들은 신들이다<요한 10:34>"라고 외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 신과학, 뉴에이지, 시크릿류의 철학에 영향 , 요한복음을 찾아보라. 더 깊이 이해될 것이다.

503. 북 :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부처에 대한 경배가 아니라 깨달은 사람의 자기구원의 여러 행위 중 하나다. 인도는 어떤 자취도 없이 나를 스쳐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영원에서 다른 영원으로 옮겨가는 자취들을 나에게 남겨놓았다.

 

환상들

507. 남자의 아니마는 현저히 역사적인 성격을 띤다. 아니마는 무의식의 인격화로 역사와 선사에 깊이 물들어 있다.

509. 나는 내적인 것이 외적인 거처럼, 외적인 것이 내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우리가 무의식에 대한 이론을 확립하기 전에 무의식과 관련하여 더 많은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515. 내가 일찍이 살면서 경험하고 행한것, 내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것은 지금도 나에게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 지금의 느낌을 관찰하는 것, 위빠사나의 명상법

516. '나'(자아)는 성취된 것과 지금까지 있었던 것의 그와 같은 묶음이다... 나는 말하자면 객관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즉 나는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이었다. 나는 마침내 나 자신 또는 나의 인생이 어떤 것과 역사적으로 관련되어 있는가를 이해하게 되리라 또한 확신했다. 나는 무엇이 내 이전에 있었고 왜 내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내 인생이 어디로 계속 흘러갈 것인지 알게 될 것이었다.

516. 실망한 마음으로 나는 생각했다. 이제 다시 나는 저 '작은 상자 체제' 속으로 들어가야 한단 말인가!

524. 그 환상과 체험 들은 완전한 실재였다. 그 어떤것도 상상체험이 아니었고, 모든 것은 그야말로 객관성을 지니고 있었다.

 ☞ 그의 말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526. 전체성을 대면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 현상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그만 말을 잃게 된다.

527. 어떤 순간에도 우리가 과오나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안전한 길을 가는 자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

528.  나는 또한 사람이 자기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온갖 평가를 뛰어넘어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사후의 삶에 관하여

531. 엄밀히 말해 내 저작들은 이승과 저승의 조화에 대한 물음에 답을 주려는 늘 새로워지는 시도였다.

532. 요즈음의 비판적 이성은 다른 많은 신화적 관념뿐만 아니라 사후의 삶에 관한 관념도 없애버린 듯하다... 합리주의와 교조주의는 우리가 앓고있는 시대병이다. 그것들은 모든 것을 아는 체한다.

533.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치가 있고 치유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화롯가에 앉아 파이프담배를 피우며 유쾌하게 유령이야기를 나누는 것과도 같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에 관해서는 확실한 증거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534.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인생이 현존을 넘어서 무한정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535. 우리가 어떤 것을 알 수 없는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지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을 단념해야 한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 우주만물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문제를 학문적이거나 지적인 문제에서 제외시켜야만 한다. 하지만 거기에 관한 어떤 관념이, 예를 들어 꿈이나 신화적인 전승을 통해 나에게 제공된다면 나는 그것들을 기록해둘 것이다

536.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약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화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과대평가된 이성은, 그것이 지배하면 개인이 궁핍해진다는 면에서 독재국가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539. 신화는 과학의 맨 처음 형태다.

540. 시간과 공간에 관한 우리의 관념과 인과론이 다 함께 불완전하다는 점이 판명된다.

542. 어쨌든 부인하는 자는 '무'를 향해 가는 반면에, 원형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두 사람 다 불확실성 속에 있다. 그런데 전자는 자신의 본능을 거스르고 있고, 후자는 본능을 따르고 있다. 이것은 현저한 차이이며 후자에게 이로운 점이 있음을 의미한다.

543. 무의식의 형상들도 '정보를 잘 받지 못한다'. 그래서 '앎'에 이르기 위해서는 의식과의 접촉이나 인간을 필요로 한다.

545. 그것은 단지 적절한 시간의 상황에서만 의식에 의해 파악될 수 있을 뿐이다. .. 그는 아마 여러 해 동안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을 품고 지내다가 나중 어떤 순간에 그것이 참으로 깨달아질 것이다.

  ☞ 내가 현재 품고 있는 예감은? 내 안의 잠재력이 발휘될 것이다. 난 자유인이 될 것이다.

546. 그러나 죽은 자의 혼령들도 그들이 죽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알고 있던 것만 '알고' 그외에는 모르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의 앎에 참여하기 위해 인생 속으로 밀고들어오려고 애쓴다.

551. 아주 오랜 옛적부터 어떤 잠재의식적 과정의 진행을 표현하는 신화소가 있었지만 오늘날에 와서야 비로소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551. 신화는 피할 수도 면할 수도 없는, 의식적 인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간단계다.

556. 다른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하나의 즐거운 사건으로 여겨진다. 영원의 관점에서 죽음은 일종의 결혼이며 융합의 비의다. 영혼은 이를테면 자신에게 결여된 반쪽에 도달하여 통합을 이루게 된다. 무덤으로 소풍가는 풍습.

558. 시공간의 상대성 때문에 무의식은 지각만을 처리하는 의식에 비해 더 나은 정보원을 가지고 있다. 

559. 동양적 존재의 정신적 특성에 어울리게 출생과 죽음의 연속은 끝없는 현상이요, 목표도 없이 계속 굴러가는 영원한 운명의 수레바퀴로 여겨진다. 사람은 살고 인식하고 죽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오직 부처에 이르러 목표에 관한 관념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이를테면 지상적 존재의 극복인 셈이다.

* 서양인과 동양인의 차이.

560. 서양인은 의미를 투사하여 객체에 의미가 있는 듯이 추정한다. 동양인은 그 의미를 자신 속에서 느낀다. 그런데 의미는 밖에도 있고 안에도 있는 것이다.

561. 추측하기로는, 내가 죽으면 나의 한 일들이 따라올 것이다. 나는 내가 한 일을 함께 가지고 갈 것이다.

562.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가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563. 내가 보기에 하나의 믿음은 믿음의 현상을 증명할 뿐 그 믿은 내용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내가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경험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565. 자신을 성찰하고 이미지로 바꾸는 회고는 '전진을 위한 후진'을 의미하게 된다. 내 인생을 통하여 이 세계 안으로 이끌었고 다시 이 세계 밖으로 인도하는 그 줄(노선)을 보려고 시도한다.

 ☞  내가 자서전을 쓴다면그 내용은 나를 성찰하고 이미지로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566. 죽은 후에 우리가 가는 세계는 거룩한 신성과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처럼 웅대하며 두려운 곳일것이다.

570. '아, 그렇구나. 그 사람이 나를 명상하고 있었구나.' 그가 하나의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나다. 그가 깨어난다면 나는 더이상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571. 우리의 무의식적 존재가 참다운 것이며 우리의 의식세계는 일종의 환각이거나 일정한 목적을 위해 세워진 하나의 가성적 현실임을 가리키고 있다.

572.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 "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시금석이다. 무한한 것이 본질적...

572. 무한한 것이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 때에야 비로소 나는 결정적인 의미가 없는 하찮은 일에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다.

573. 오로지 삶의 공간을 넓히고 합리적인 지식을 어찌해서든지 증가시키는 데만 관심을 두는 시기에는 자신의 단일성과 유한성을 의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574.  우리가 인릭할 수 있는 한, 인간실존의 유일한 의미는 존재 그 자체의 어둠속에 빛을 밝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무의식이 우리에게 작용하듯 우리 의식의 증가가 무의식에 작용한다는 사실까지도 추정해볼 수 있다.

  ☞ 매트릭스의 세계관이 닮았다. 융을 통해 철학의 진화를 본다.

 

 만년의 사상

578.  이미 기독교 초기에 성육신 관념은 '우리 속의 그리스도'라는 관념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로써 무의식의 통합성은 내적 체험의 심리영역으로 엄습해왔고 인간에게 통합적인 형상을 예감하게 했다. 그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창조주에게도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579. 악은 결정적인 현실이 되었다. .. 우리는 그것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580. 중독 대상이 알코올이든 아편이든 또는 이상주의든 그 어떤 형태의 중독이든 똑같이 모두 악에서 나온다. 우리는 선악의 대극에 더이상 이끌려서는 안된다.

580. 선과 악(또는 불완전함)이 상대적이라고 해서 선악이라는 범주가 가치가 없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도덕적 판단은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하며 특유한 심리적 결과가 뒤따른다.

582. 교육은 오로지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각 개인의 사적인 경험에 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그것을 결코 실현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실현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 다만 직책상 그런 것들을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 교육자체의 문제다. 교육자체의 모순.

583. 우리는 오직 의식을 확장해주는 학문을 통해서만 자연의식에 이르게 된다. 그와 같이 심화된 자기인식도 학문, 즉 심리학을 필요로 한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광학지식 없이 이른바 손목이나 좋은 의지만으로 만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583. 정말 참다운 진실은 우리가 악의 상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악의 상상이 우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584. 신화가 생동하지 않고 더이상 발전하지 않으면 신화는 죽은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의 신화는 벙어리가 되었고 아무런 해답도 주지 못한다. 잘못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은 신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런 방면의 온갖 시도를 억압한 우리 자신에게 있다.

586. 하느님 자녀로서의 지위를 받아들인 모든 다른 사람은 그들 자신이 흙에서 태어난 자생적인 동물일 뿐 아니라 두 번 태어난 존재로서 신성에 뿌리박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588. 사람들은 우리가 중요한 시대적 전환점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만, 그것이 핵의 분열과 융합이나 우주 로켓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늘 그렇듯이 사람들은 그와 동시에 인간정신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

 ☞ <의식혁명>이라든지, 인도철학의 전파, 심리학의 발전.... 조금씩 이루어지고 알려지고 있다.

589. 긴장을 느끼는 쪽에서 통합을 통하여 타협을 꾀한다. 이 타협의 중개는 상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591. 과학적 의식은 '무의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럼으로써 과학은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다.

591. 우리는 미지의 것, 생소한 것이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안다. 꿈이나 어떤 착상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진 저절로 생겨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듯이 말이다.

592. '데몬' '신'이 무의식이라는 말고 동의어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그런 용어들을 사용한다.

593. 신화는 결국 유일신교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전능하고 선한 신 곁에 영원한 어둠의 적수를 지금까지 두고 있는 이원론은 포기해야 한다.

 ☞ 서양의 신에 대한 논증을 떠올리게 한다.

595. 창조주가 자신을 의식했다면 그는 의식을 가진 피조물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과 피조물을 생산해내는 데 수백만 년을 소비한 지극히 우회적인 창조과정이 목적지향적인 의도에서 나왔다는 것은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다.

 ☞ 창조주는 자신을 의식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것을 인간의 정신의 역사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595. 정신의 역사는... 의도되거나 미리 내다본 것이 아니라 '어두운 충동'으로부터 예감되고, 느낌으로 알게 되고, 손으로 더듬어 찾아진 것이다.

596. 통찰이 생기지 않는다면 사색은 의미가 없다.

597. 우리는 '영감'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착상'이 우리가 궁리해낸 결과가 아니라 그런 생각이 어떤 식으로든지 '다른 곳에서' 우리에게로 스며들어왔다는 것을 안다.

598. 욥이 이미 파악했듯이, 본능이 우리를 긴급히 도와주고 신이 신에 맞서 우리를 지지해주리라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601.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되어 자기 자신의 발로 서는 것이 개인의 고유한 과제임을 여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온갖 집단적인 동일성, 예를 들어 어느 조직체의 일원이 되는 것. 무슨 주의나 그와 같은 것들을 신봉하는 것등은 장애물이 될 수 있다.

 ☞ 비밀결사는 개성화에 이르는 과정의 중간단계일 뿐이라는 말의 설명. 개성화는 융의 중요한 개념으로 보인다. 자기실현의 다른 말 같기도 한데, 더 공부해봐야 겠다.

602. 그는 홀로 걸아갈 것이며 동반자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 그 자신이 여러 가지 의견과 경향으로 이루어진 다양성 그 자체인 셈이다.

 ☞ 자기 안에 인간의 모든 성향이 담겨있다고 보진 않는다.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성향과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행동적,사고적 모습들이 있기 마련이다. 진정한 도반 공동체나, 집단을 통해 그길을 갈 수 도 있다. 가까운 곳의 거울이 되어주는 사람들... 그런데 결국 그 과정이 홀로,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은 틀림없다.

604. 두 가지를 다 하려는 사람, 즉 개인적인 목표를 따르면서도 집단성에 보조를 맞추려는 자는 누구나 신경증적인 사람이 된다.

604. 자신의 다이몬의 충동에 따라 감히 중간단계의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곳에 정말로 이르게 된다.... 대개 그와 같은 의무들의 충돌이 나타나지 않는 동안만 '사람이 없는 땅'으로의 여행이 계속되다가, 의무들의 충돌이 멀리서 낌새를 보이기만 해도 그 여행은 급히 끝나버린다.

 ☞ 나의 여행이 그렇게 급히 끝나버린 것이 아닐까? 다시 떠나야 한다.

605.. 내적 대극과의 대결만큼 의식화를 증대시키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 예측하지 못한 사실들이 고발될 뿐만 아니라 변론 역시 아무도 일찍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반론을 구상해내야 한다. 그럼으로써 한편으로는 외부세계의 적잖은 부분이 내면에 이르게 될 뿐 아니라 외부세계도 그만큼 비고 부담을 덜게 된다. 

610. 신체가 수백만 년의 해부학적 전사를 가진 것처럼, 정신체계도 그러하다. 그리고 현대인의 신체가 모든 부분에서 이러한 발달의 결과를 나타내고, 어느 부분에서나 현재가 있기 전의 단계를 내비치고 있는 것처럼, 정신도 또한 그러하다.

610. 어린아이의 정신은 전의식 상태에서 결코 백지가 아니다.

613.  정신은 자신을 뛰어넘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정신은 절대적 진리를 확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고유한 양극성이 진술의 상대성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614. 비정신적인, 초월적인 객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관해 자연과학은 묵묵히 확신하고 있다.

615. 나는 나의 무지로 자족해야만 한다. 하지만 원형이 작용하고 있음이 증명되는 한, 비록 그 진정한 성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나에게 실재인 것이다. .. 우리는 온통 정신적인 세계에 어쩔 도리 없이 갇혀있다.

616. 정해지지 않은 수의 개인이 내적인 충동에서 동일하게 진술하고 각자 어떤 하나의 견해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 그 진술이 저지되거나 무시되면... 노이로제, 집단적인 망상 형성이 발생한다.

 ☞ 신경증의 증가, UFO, 종말론 등

617. 원형적 과정을 실제적으로 고려하면 종교의 본질을 찾아낼 수 있다.

619. 내게는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이라고 한 바울의 조건문이 모든 인식 중에서 최초의 인식이며 신성 그 자체의 진수인 것처럼 여겨진다.

619. 오직 전체만이 의미가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딘다"<고린도전서 13:7>. 이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 아무것도 덧붙일 것이 없다.

620. 사랑은 그의 빛이며 그의 어둠이며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다.

620. 그는 사랑에다 온갖 이름을 마음대로 갖다붙일 수 있겠지만 그는 단지 끝없는 자기기만에 빠질 뿐이다. 그가 한줌의 지혜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며 미지를 미지라고, 즉 신의 이름으로 명명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열등함, 불완전성, 그리고 의존성을 시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진실과 오류 사이에서 선택의 자유를 증언하는 것이다.

  

회고

623. 어떤 사람이 강에서 한 번 모자로 물을 가득 퍼냈다고 하자.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그 강물이 아니다. 나는 강에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거기 서서 자연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보고 경탄할 뿐이다.

624.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때 생기는 법이다.

625. 고독은 반드시 공동체에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고독한 사람보다 공동체에 대해 더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모든 개체가 자신의 개성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동일시되지 않는 곳에서만 만개하게 된다.

 ☞ 오로빌!

625. 예기치 못한 일들과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일들이 바로 이 세계에 속하는 것들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삶은 온전해지는 것이다. 나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무한히 크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628.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한다... 나 자신이 달라졌더라면 많은 일이 다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 대로 그렇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생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 긍정주의자. 낙관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629. 나는 내 고집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던 어리석은 많은 일을 후회한다. 하지만 내가 그런 어리석음을 갖지 않았다면 나의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실망하면서도 실망하지 않는다.

629. 우리가 태어난 이 세계는 거칠고 잔혹하며 동시에 신성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무의미와 의미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하다고 믿느냐 하는 것은 기질의 문제다.

630. 모든 형이상학적 문제가 그렇듯이 아마도 양족이 다 진실일 것이다. 인생은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또는 인생은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가지고 있지 않기도 하다. 나는 의미가 우세하여 전투에서 이겼으면 하고 마음 졸이며 희망하고 있다.

630. 인생을 충분히 보아온 노인의 원형은 언제까지나 진실이다.

630. 내가 나 자신에 관해 불확실해질수록 온갖 사물과의 친화성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 그렇다. 마치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와 갈라놓았던 저 생소함이 나의 내면세계로 옮겨와서 나 자신에 대한 예기치 않은 낯설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 노년의 사상. 마지막 구절이다. 인간속에 있는 영원한 것들이 그를 충족시켰다고 말한다.

 

편집자의 말

633. 1958년 봄에 융은 그의 유년시절, 학창시절, 대학시절에 관한 세 장을 마무리 했다.

 ☞ 사후의 삶에 관하여, 만년의 사상, 케냐와 우간다, 푸에블로 인디언

635. 섬광처럼 유의 외적인 삶과 그의 작업을 단지 잠깐만 비추어줄 뿐이다. 그 대신 그 장들은 마음을 가장 진정한 현실로 여겼던 한 인간의 체험과 그의 정신세계의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다.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없었다.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정수 만이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640. "중세였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화형시켰을 것이다.!"

641. 학자로서 융은 경험론자인 셈이다. ...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만이 융의 주관적인 진술이 자기에게도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게 된다.

 ☞ 관념이 공감을 얻으려면 체험에서 나온 진실이 있어야 한다.

642. 나의 모든 생각과 나의 모든 노력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자서전'은 단지 소문자 아이(i)의 윗점, 즉 전체를 완성하는 최후의 한 점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643. 느낌을 따라 인도한다는 그러한 목적을 융의 '자서전'은 고도로 충족시키고 있다.

1961년 12월, 아니엘라 야페

 ☞ 이 책과 함께 편집자 또한 인류의 유산이 되는 구나.

3. 내가 저자라면 - 두 번 읽기

늙은 융에 대한 감사

융의 저서를 살펴보니 그는 70대에 가장 많은 책을 썼다. 나이가 들수록 의사나 교수같은 사회적인 역할에서 자유로운 시기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신만의 탐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젊어서는 논문 등 다른 저술들을 많이 썼던 것 같다. 만년의 종교적인 저술들은 많은 비판을 받았었다. 자서전에서도 그에대한 언급이 많다.

"중세였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화형시켰을 것이다!" 라는 그의 말은 세상의 비판에 대한 그의 충격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도 그의 체험과 사상을 유산으로 남겨준 것에 감사한다. 그의 자서전 속 '신과 인간에 대한 사색 '이 나에게 전율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는 뭉클한 감동과 짠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두 번 읽기 책이었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시작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첫 번째 읽기에서는 잘 와 닿지 않았던 '여행'장 이후의 내용들이 두 번째에는 한장 한장 그냥 넘어갈 수 가 없을 정도로 와 닿았다. 행간에 숨겨진 신비로움에 빠져 멍하니 있던 적도 있다. 때문에 다시 책을 읽고, 타이핑을 하는 데만 많은 시간을 써야했다. 특히 인간이 창조행위를 창조주의 몫으로만 돌려옴으로써 우리가 인생과 존재를 무의미한 기계로 여기게 되었다는 인식에 놀랐다. 더 나아가 인간의 위치를 창조의 완성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승격시켜 인간을 두 번째 세계창조자로 인식했다고 선언하고, 인간이 위대한 존재확립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자리를 차지했다(457~458)는 표현에 난 말을 잃었다. 인간 존재의 의미, 곧 나의 의미가 확고해지는 것 같았고, 어디선가 에너지가 솟아올랐다. 무의미하고 권태롭기만한 기계적인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유기체로 바뀌는 인식이었다. 그가 말년에 쓴 책들을 찾아 읽어야 겠다.

"인생을 충분히 보아온 노인의 원형은 언제까지나 진실이다."(630쪽)라고 말했듯이, 늙은 칼 융의 사색이 아무리 관념적이고 망상이라는 비판을 하더라도 나에겐 진실 되게 다가온다. 융에 대한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다.

내가 자서전을 쓴다면

융은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에 너무 초점을 맞추어서인지 그의 자서전 '기억,꿈,사상'은 그의 현실적이고 외적인 사건들이 거의 나와 있지 않다. 자서전을 읽으며 그의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 사회적 위치에서 생긴 갈등이나 성취 등 궁금한 것들이 많이 생긴다. 그렇게 때문에 그의 자서전은 또 다른 평전을 요구하게 한다. 심리학자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나는 무의식의 흐름만을 쫓아 가면서 자기실현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낀다. 새벽에 꿈을 기억하는 것 조차 드문일인데, 어린시절의 꿈을 기억해서 해석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때문에 나는 내가 기억하는 외적인 사건들로부터 시작하고 싶다. 나의 체험으로 남아있는 외적인 사건에서 시작해서, 그것을 통한 내적인 체험을 기록할 것이다. 관찰자로서 그 사건을 바라보고 나의 무의식의 모습을 찾아볼 것이다. 나의 기질과 성향을 찾아보고 '참된 나 자신'으로 '자기실현'해 나가는 모습을 남기고 싶다. 인생의 말년에 쓰는 회고록이 아니라, 인생의 중간에 내 모습을 반성하고 어디로 갈 것인지 방향을 가늠해보는 작업으로 '자서전' 쓰기에 도전하고 싶다. 이 작업은 나 뿐아니라 '자기실현'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일이다. 그들을 위한 방법을 찾고 싶다.

IP *.111.51.11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2 단테 신곡 세린 2012.05.28 11031
51 [리뷰017]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정 혁명 - 마커스 버킹엄 외 [6] [3] 香山 신종윤 2007.07.17 11097
» [리뷰] <기억꿈사상>_카를융 자서전_두 번 읽기 file 양경수 2011.06.26 11121
49 3-9. 엄마수업 - 법륜스님 콩두 2014.09.04 11267
48 성공하는 한국인의 7가지 습관을 읽고.. [5] [1] 목창수 2004.10.08 11295
47 # 37 의식혁명 - 데이비드 호킨스 file [5] 샐리올리브 2013.01.15 11383
46 (18) 사람의 성격을 읽는 법 [14] [1] 時田 김도윤 2007.07.23 11393
45 그리스 비극(Greek Tragedy) file [2] 장재용 2012.05.07 11458
44 직업으로서의 정치 -막스 베버- file 장재용 2013.12.31 11589
43 원칙중심의 리더십 [1] [15] 박유미 2004.10.12 11607
42 생각의 지도-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 도명수 2006.07.07 12067
41 (09) 역사란 무엇인가 - E. H. 카 [9] [2] 박승오 2007.05.07 12163
40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 / 고 녀석 맛있겠다 한정화 2013.07.20 12192
39 15th Review-러셀 서양철학사 (버트런드 러셀지음/서상복 옮김/을유문화사) file [46] 사샤 2011.07.12 12219
38 문명과 수학_리처드 만키에비츠_경문사 [1] 세린 2013.01.28 12230
37 그리스 비극 file [2] 레몬 2012.05.07 12692
36 No 42.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2) file 미스테리 2014.02.17 13250
35 운동학습과 제어 [3] 백산 2009.11.16 13634
34 니가 수학을 못하는 진짜 이유 - 임익 세린 2013.01.06 14428
33 [리뷰] <신화와 인생>_조지프 캠벨 _ 두번 읽기 file 양갱 2012.01.09 14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