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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7일 09시 46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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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 Gustav Jung by Henri Cartier Bresson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 있는 사람을 구루로 삼지만, 늘 영혼을 구루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자서전 기억 꿈 사상 중에서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ˈkarl ˈgʊstaf ˈjʊŋ]1875년 7월 26일 - 1961년 6월 6일)은 스위스의 정신의학자분석심리학의 개척자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지 않고 바젤 대학교와 취리히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에서 일하면서 병원의 원장이었던 오이겐 블로일러의 연구를 응용해 심리학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이전 연구자들이 시작한 연상 검사를 응용하면서 자극어에 대한 단어연상을 연구하였다. 이 연상은 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당시 학계에서 자주 금기시 되고는 하였다. 그는 특정한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지금은 유명해진 '콤플렉스' 라는 단어를 사용해 이에 관련된 학설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또한 프로이트와 함께 정신분석학 연구를 하기도 했지만 프로이트의 성욕중심설을 비판하고 독자적으로 연구하여 분석심리학설을 수립하였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고 생각하였고, 개체로 하여금 통일된 전체를 실현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있음을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심리치료법을 개발하여 이론화하였고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들에게 '개체화' 라는 자신의 신화를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더 완전한 인격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ETH Zürich)의 심리학 교수, 바젤 대학교의 의학심리학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는 그의 저서들에 대해서 좀 더 모색해 보았다. 그 중에서 특히 Red Book 이라는 책에 눈길이 갔다. 그의 그림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그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Liber Novus' 새로운 책이라는 뜻의 라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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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d Book, also known as Liber Novus (Latin for New Book), is a 205-page manuscript written aillustrated by Swiss psychiatrist Carl Gustav Jung between approximately 1914 and 1930, prepared for publication by The Philemon Foundation and published by W.W. Norton & Co. on October 7, 2009. Until 2001, his heirs denied scholars access to the book, which he began after a falling-out with Sigmund Freud in 1913. Jung originally titled the manuscript Liber Novus (literally meaning A New Book in Latin), but it was informally known and published as The Red Book.[1] The book is written in calligraphic text and contains manyillumi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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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Red Book, Jung said:

The years… when I pursued the inner images, were the most important time of my life. Everything else is to be derived from this. It began at that time, and the later details hardly matter anymore. My entire life consisted in elaborating what had burst forth from the unconscious and flooded me like an enigmatic stream and threatened to break me. That was the stuff and material for more than only one life. Everything later was merely the outer classification, scientific elaboration, and the integration into life. But the numinous beginning, which contained everything, was then.

융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그가 남긴 또 다른 책과 이야기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그린 그림들에 관심이 갔는데 찾아보니 이런 책이 있어서 무척이나 흥분이 되었다. 그는 내면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하나 이상의 삶에 대한 궁극의 탐색에서 그가 본 것은 무엇일까. 무의식의 여행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탐구해 놓은 그의 여정에 동참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찾아보니 20만원이 넘네. 일단 서점에 가서 제대로 한 번 보고 싶다. 그의 그림들을 눈으로 보며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 그는 거기에서 무엇을 찾아냈는지 말이다. 그의 일생을 절대 살아 있을 적에 편찬하지 말라고했던 의도는 무엇이였을까. 내가 자서전을 낸다고 해도 그럴것 같기는 하다. 온전하게 솔직하기 위해서일까. 홀로 깊이 들어가서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융이 자꾸만 느껴진다. 누군가는 영혼에게 길을 물어본다고 한 그의 말에서 친밀감을 느낀다. 참으로 자기 자리에 있고자 했던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 나는 외롭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나이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듯한 사실, 그리고 그들이 알고자 하지 않는 사실들에 관해서 알고 있으며, 그것들에 관해서 말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외로움이란 어떤 사람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생각하기에 상당히 중요하게 보이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거나,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것 같은 견해를 어떤 사람이 지니고 있을 경우 더욱 생겨나기 쉬운 것이다. 나의 외로움은 내가 어릴 때 꿈을 꾸었던 때부터 시작되었다.


인간 존재의 유일한 목적은 단순한 존재의 암흑 속에서 한 가닥 등불을 밝히는 것이다.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난 이 깜깜한 방안에 촛불하나 켜둔 심정이였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이를 치유할 수 있다라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그 스스로 자신의 깜깜한 방 안에 촛불을 들여놓았기에 그의 삶에 대한 기술이 누군가에게 또한 등불하나 되어줄 수 있는 것이겠지. 그를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심리학 입문을 읽어보고 더 가까이갈 수 있는 노력을 해보고 싶다. 두 번 읽기를 통해서 난 좀 더 친근해진 그를 느낀다. 내면으로 깊숙히 더 빨려들어갈 것 같은 그런 느낌.  한 사람의 정신을 통해서 시대의 정신을 읽어내는 통큰 남자. 학자가 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저자라면]

처음 읽었을 때에도 그랬지만, 한 번에 읽어질 인생이 아니다 교보문고 간판에 보면 늘 글귀가 걸려있는데 이번의 글귀 또한 내게 와 닿았다. 한 사람이 오는 것은 하나의 인생이 오는 것이라는 그 말이 융의 자서전에 대한 내 생각을 대변하는 듯 했다. 한 권의 책 속에 한 사람의 인생을 담는 것이 자서전 아니던가. 그런데 그는 그의 삶을 의식에 탐구를 통해서 담아내었다. 일생을 거치는 이야기들과 함께 그의 심리적인 흐름 또한 함게 포착하여 이야기해주는 부분들이 매우 좋았다. 내가 그러한 부분에 관심이 많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거장의 책은 그 에너지의 파동이 남다른 것 같다. 그의 복잡했던 마음의 구조를 알려주어도 보기 힘든 그 여정이 고스란히 남는다. 인셉션이라는 영화 한 편을 보고나왔을때의 그런 느낌이랄까.. 그 층층의 의식들을 읽어내고있는 그도 신기하지만 그 여정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독자들도 대단한 것 같다. 

융을 인터뷰한 책도 있다고 하는데 그 책들을 읽고서 다시 자서전을 읽는다면 좀 더 이해가 쉽게 될까. 중간 중간 그 흐름을 놓치게 되는 때도 있는데 그건 아마도 그 외피를 벗기고 속살을 드러내어 보여주기 때문에 외피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빠른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 편의 시같은 인생을 아니 누구에게나 있을 그 의식의 구조를 융은 학자로서 보다 더 깊이 파헤쳐냈던 것 같다. 그림과 자필등 보다 그의 향기가 더 배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빨리 Red Book을 읽어보고 싶다. 

[마음을 무찔러든 글귀]

역자서문

8. 이 책은 융의 제자요 여비서인 아니엘라 야페가 융의 나이 82세가 된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줄기차게 대담을 한 결과 엮어진 자서전이다. 융이 한 문장 한 문장 손을 보았으므로 거의 융 자신의 집필로 이루어진 저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특징은 야페가 쓴 서문의 한 구절로 요약할 수 있겠다.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은 것이 없었다. 인생겨험의 정신적인 정수만이 그의 기억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 융은 처음에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자서전 출간을 거부했으나 자신이 죽은 후에 출간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동의했다. 

9. 융은 80세가 넘은 나이에 자기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일생을 한 마디로 규정했다. '나의ㅣ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자기 실현은 '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등 무수한 무의식 층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 '자기'의 소리가 '자아'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는 '자아'에게 꿈의 상징과 종교의 상징들을 통하여 그 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그와 같이 '자기'가 '자아'에게 보내주는 신호들을 포착해나가는 과정이 융 자서전의 중심내용을 이루는 셈이다. 

9. 무엇보다 신의 존재를 심리학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한 저서라고 할 만하다. 

10. 카를 융은 일생 동안 종교적인 주제에 매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신을 가리켜 '위대한 위험'이라고 규정했다. 섣불리 신에게 접근했다가는 어떤 위험스런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법이다. 그렇게 위험스럽긴 하지만 신은 탐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위대한 위험'인 것이다.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11.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Selbst:인격의 가장 깊은 구심점)실현의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격 역시 무의식의 조건에 따라 발달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려고 한다. 나는 이와 같은 형성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과학적인 문제로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적 견지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영원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보이는가는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 신화는 훨씬 개인적이며 과학보다 더욱 정확하게 삶을 말해준다. 

12. 이제 나이 83세에 나는 내 생애의 신화를 이야기하는 일을 감행하게 되었다. 나는 단지 직접적인 진술, 즉'지나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이야기들이 사실 그대로인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 '나의' 옛이야기, '나의' 진실인가 하는 것이다. 

12. 나는 내가 여러면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을 무엇과도 비교해 볼 수 없다. 인간은 원숭이도, 암소도, 나무도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나도 무한한 신성으로부터 떨어져나왔지만, 어떤 동물이나 식물 또는 돌에도 대비해 볼 수 없다. 오직 신화적인 존재만이 인간을 넘어선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떻게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결정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신성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라는 부분이 마음을 스친다. 늘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하고 요즘 천착하고 있는 관심사이기도 하다. 인간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의 자서전을 읽고나면 좀 답을 얻을 수 있으려나. 그가 답을 한다. 인간은 자신이 제어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지배하는 일종의 심적 과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과 자기 생애에 대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인간은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터이나, 기껏해봤자 그런 것을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이야기고 하고 있다. 

13. 사실 인간은 모든 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결코 알지 못한다. 한 생애의 이야기는 어떤 지점, 즉 그 사람이 기억해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데 이미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인간은 일생이 어떻게 되어나갈지 모른다. 그러므로 생애의 이야기는 시작이 없으며, 그 목표지점도 단지 막연하게만 제시될 뿐이다. 인간의 생애는 일종의 애매한 실험이다. 인생은 허무하기 짝이 없고 너무나 불충분하여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 그 자체라 할 만하다. 

13. 생명과 문화의 끝없는 생성과 소멸을 생각하면 전적으로 허무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나는 영원한 변화 속에서도 살아서 존속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감각을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엄밀히 말해 나의 생애에서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은 영원한 불멸의 세계가 무상한 세계로 침투했던 사건들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적 체험들을 주로 이야기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나의 꿈과 환상 들이 포함된다. 그것들은 동시에 나의 과학적인 작업에서 원재료를 이루고 있다. 

14. 무의식과의 충돌은 나의 기억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거기는 항상 충만하고 풍성하여 다른 모든 것은 그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14. 젊었을 때나 그 이후에 밖에서부터 나에게로 다가와 의미를 가지게 된 것들도 내적 체험의 표지가 찍혀 있는 것들이었다. 또한 젊었을 때나 그 이후에 밖에서부터 나에게로 다가와 의미를 가지게 된 것들도 내적 체험의 표지가 찍혀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외적인 상황들은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 없다. 그리하여 나의 생애는 외적인 사건에 있어서는 빈약한 편이다. 나는 외적 사건들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에게는 공허하거나 실제적이지 않은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21. 그러나 낮이 되면 새로운 위험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내가 나 자신과 불화를 느끼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23. 나의 기억은 두세 살 적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것들은 모호한 바다에 떠다니는 기억의 섬들일 뿐이다. 그것들은 서로 이어져 있지 않은듯이 보인다. 

--> 원래부터 기억의 불완전성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자신의 기억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해서 잘 인지하고 있다. 그 모호함들의 섬을 이해한다. 

25. 그 호수의 광활함은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고 비길 데 없는 장관이었다. 그때 호수 근처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내 마음에 깊이 박혔다. 물이 없이는 아무도 존재할 수 없을 것처럼 여겨졌다. 

26. 1878년의 나의 병은 아마 부모의 일시적인 별거와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 부모의 평화로움 가정의 안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특히나 아이들의 성장과 많은 연관이 있음을 요새 더더욱 많이 느끼게 된다. 부모 교육에 관심이 간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사랑으로 성장한 아이들이 결코 사회에 악의 존재가 될거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26. 어머니의 오랜 부재로 나는 무척 힘들었다. 그후로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항상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함을 뜻하기도 했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출발하면서 함께 가져가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나중에는 인생 초기의 이러한 인상들이 수정되었다. 나는 친구를 믿었다가 그들로 인해 실망하기도 했지만, 여성들은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들에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 어렸을적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이후의 관계성에서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또한 중요하다. 

30. 이러한 불길한 유추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주 예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예수는 크고 다정하고 자비로운 새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검은 프록코트와 높은 모자에 광택나는 검정 구두를 신고 검은 상자를 나르는 음울한 사람들과 연관되었다. 

33. 나는 그 꿈을 여러해 동안 골똘히 생각했다. 오랜 후에야 비로소 그 기이한 형상이 일종의 남근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의식을 행할 때 쓰이는 남근상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나는 어머니가 '저것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야'라고 했을 때 '저것'에 강조점을 두었는지 아니면 '사람을 잡아먹는 것'에 강조점을 두었는지는 정말 알 수 없었다. 전자의 경우라면 '예수'나 '제수이트'가 어린아이들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남근상이 잡아먹는다는 의미가 되고 후자의 경우라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일반적으로 남근상으로 표현되고, 음울한 '주 예수' 와 예수회 수도사 그리고 남근상은 모두 동일하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34. 아무튼 그 꿈속의 남근상은 보통은 언급되지 않는 지하의 신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나의 젊은 시절 내내 그런 의미로 남아 있었는데 누가 '주 예수'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해서 말할 때마다 다시 생각나곤했다. '주 예수'는 나에게 결코 온전한 실체가 도리 수 없었으며, 완전히 받아들일 수도 없었고, 전폭적으로 사랑할 만한 대상도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예수의 대역인 그 지하의 신이 자꾸만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가 구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주어진 무시무시한 계시였다. 

--> 때로... 구하지도 않는데 다가오는 계시들이 있다.. 

37. 그때 무엇이 내 안에서 말을 한 것일까? 누가 뛰어난 문제제기를 표현하는 발언을 한 것일까? 누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함께 섞어, 나의 후반기 생애를 격렬하기 그지없는 폭풍으로 채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제공했단 말인가? 하늘과 땅 양쪽에서 온 그 낯선 손님 이외에 그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42. 나는 학교에 다니는 것도 그리 싫지는 않았다. 다른 아이들보다 늘 앞서 있었기 때문에 학교공부도 내게는 쉬웠다. 

42. 내가 아직 글을 읽지 못했을 때 어머니에게 <오르비스 픽투스>를 읽어달라고 졸랐던 일이 기억난다. 그 책에는 다른 나라 종교들, 특히 인도 종교에 관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었다. 브라마, 비시누, 시바의 삽화들도 있었는데, 그것들이 내게는 너무나 흥미진진했다. 

42. 이런 어린이답지 않은 행동은 한편으로는 예민한 감수성과 상처받기 쉬운 성격과 연관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유년 시절의 깊은 고독감과도 연관이 있었다. 누이동생은 나와 아홉살 차이가 났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혼자서 놀았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무엇을 하면서 놀았는지 기억할 수는 없다. 다만 다른 사람이 방해하지 말았으면 하고 발랐던 것은 기억하고 있다. 나는 놀이에 열중했고 노는 동안에 누가 지켜보거나 따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45. 그 유년시절에 나는 시골학교 학우들과 사귀는 동안 발견한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분리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집에 있을 때와는 달라졌다. 나는 그들과 장난도 치고 집에서는 결코 생각도 못했던 그런 일을 스스로 꾸미기도 했다. 물론 나 혼자 집에 있을 때도 온갖 것을 꾸밀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나로서는 나의 변화가 학우들의 영향 탓이라고 여겨졌다. 그들은 내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는 다르게 되도록 어찌해서든지 나를 유혹하거나 강요했다. 

45. 보다 넓은 이 세계, 내가 부모 이외에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된 이 세계의 영향력은 전적으로 수상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의심스럽게 여겨졌다. 또한 막연하긴 하지만 적의에 차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황금빛 햇살이 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비치고 있는'밝은 대낮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차츰 인식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무섭고도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들로 차 있는 피할 길 없는 어둠의 세계를 예감했다. 

--> 요즘의 나의 심경같다. 우리는 이런 빛과 어둠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분법적인 세상에서 앤드문화를 어떻게 양립시킬것인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생의 문제이다. 풀어나가야할 숙제이다. 융은 이러한 생각을 어쩌면 이렇게도 어렸을적부터 했을까 놀라울 따름이다. 

45. 나의 밤기도는 낮을 잘 마감해주고 편안히 밤과 잠으로 인도해주는 종교의식적인 피난처인 셈이었다. 그러나 낮이 되면 새로운 위험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내가 나 자신과의 불화를 느끼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나의 내적 안정이 위협을 받았다. 

46. 나는 이 돌에 앉아 있다. 나는 위에 있고 돌은 밑에 있다. 그런데 돌도 '나'라고 말하며 '내가 여기 이 비탈에 누워있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의문이 일어났다.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인가, 아니면 내가 돌이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단 말인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은 불분명한 채로 남아 있었고 나 자신의 불확실성은 기묘하고 매혹적인 어둠의 느낌을 동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돌이 나와 비밀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몇 시간이고 돌 위에 앉아 돌이 나에게 내준 수수께끼에 사로잡혀 있었다. 

47. 그것은 마치 다른 세계와 다른 시간으로부터 온 기별처럼 낯설게 여겨졌다. 그것은 유혹적이면서 동시에 충격적이었다. 내가 심취했던 유년시절의 세계는 영원한 것이었으며, 나는 그것으로부터 떨어져나와, 계속 굴러가며 점점 더 멀어져가는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만 것이었다. 나는 나의 미래를 잃지 않기 위해 그 장소에서 억지로 몸을 돌려야만 했다. 나는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내 유년시절의 영원성이 번개와도 같이 내게 깨달아졌기 때문이다. 이 '영원성'이 의미하는 바는 곧 내가 열살이 되었을 때 분명해졌다. 나 자신과의 불화와 거대한 세계 속에서의 불확실성은 나로 하여금 그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어떤 조치를 하게 했다. 

49. 그 글은 내가 고안해낸 비밀문자로 학교 수업시간에 적어둔 것이었다. 

--> 나도 학교 다닐때에 중학교때 비밀문자를 만들어서 친구들과 쪽지를 주고 받곤 했는데 그 당시의 기억이 생각난다. 

49. 아무도 모르고 누구의 손도 미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그것은 결코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치의 비밀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자신감이 그 비밀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해서 그런가 자문해보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50. 의식의 차원에서 나는 기독교적 의미로 종교적이었다. 그러나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확실하지 않다'면서 늘 깎아내리거나 '땅 밑에 있는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하는 질문이 항상 따라붙었다. 종교적인 가르침이 나에게 주입되면서 '이것은 아름답고 선한 것이다'라는 말들을 듣게 될때,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그렇긴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아주 신비로운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야.'

-> 바로 이 부분에서 그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 그 다른 무언가 신비로움에 대한 이끌림 나도 그러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 유독 시선이 간다. 

52. 아트마빅투 즉 '생명의 숨결'이라는 이름

52. 그 모든것은 사실 외투에 싸여 '키스타' 속에 감추어져 있는 일종의 카비르(Kabir:위대한 신들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때는 소인으로 어떤 때는 거인으로 묘사되며 창조적인 것, 생명의 발생과 관계가 있음)로 여겨진다. 키스타에는 생명력을 저장해두는 물품 즉 길쭉하고 검은 돌이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이런 연관성은 훨씬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그 일이 나중에 아프리카 원주민에게서 발견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행해진 것이었다.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53.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엶,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59. 여든세 살의 나이에 지난날의 기억들을 적어나가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주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 기억들은 지하에서 서로 얽혀 있는 하나의 뿌리에서 각각 뻗어나간 작은 가지들과 같으며 무의식의 발달과정에 있는 정류장들과 같다. 

59. 열한 살 때부터 신의 관념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나는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순이 없는 듯이 여겨졌으므로 어쨌든 나를 만족시켜주었다. 신은 나의 불신감으로 어수선해지는 그런 대상이 아니었다. 

60. 너희는 어떤 형상이나 어떤 닮은 것도 만들지 말라

60. 학교 생활이 따분해졌다. 그것은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았다. 

--> 마치 요즘 나의 직장생활이 따분한 것과 마찬가지다. 

63. 나는 그 재능이 근본적으로 나 자신의 기분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시 말해 나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대상만을 그릴 수 있었다. 

66. 모든 속임수는 끝이 났다! 여기서 나는 신경증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67.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돌 하나, 식물 하나, 그 모든 것이 생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형용할 수 없는 듯이 여겨졌다. 그 무렵 나는 자연으로 빠져들면서, 말하자면 자연의 본질 속으로 숨어들면서 모든 인간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68. 한순간 갑자기,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는 의식과 함께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안개의 벽 같은 것이 나의 등뒤에 있었고, 그 벽 너머에는 아직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 '나에게 내가'생겨났다. 이전에도 내가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모든 일이 단지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 '내'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대단히 중요하고 새로운 것으로 여겨졌다. 나의 내부에 '권위자'가 자리잡았다. 

70. 그때 몹시 난처하게도 나 자신이 실제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수학도 잘 모르고 자신감이 없는 학생이었으나 다른 하나는 위대한 권위를 지닌 중요한 인물로 경시해서는 안 될 사람이며 그 공장주보다 더 막강하고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73. 이러한 소심증은 세계와 그 가능성에 대한 불신과도 관련이 있었다. 이 세상은 나에게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이긴 했으나 막연한 위험과 무의미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따라서 나는 항상 무엇이 내게 닥치는지 그리고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알고 싶어했다. 

79. 내가 안개 속에서 빠져나와 '나'를 의식하게 된 대략 그 순간부터 하느님의 통일성과 위대함, 그리고 초인성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를 결정적으로 시험삼아 써보려고 하는 존재가 하느님이며 모든 것이 하느님을 바르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내 마음에서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결국 굴복을 강요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문제는 내 영혼의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이었다. 


67. 그것은 내가 무언가 덕을 보려고 하는 외관상의 성실성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성실성이었다.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아침 5시에 일어났다. 때로는 학교에 가기 전에 새벽 3시부터 아침 7시까지 공부한 적도 있었다.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돌 하나, 식물 하나, 그 모든 것이 생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형용할 수 없는 듯이 여겨졌다. 그 무렵 나는 자연으로 빠져들면서, 말하자면 자연의 본질 속으로 숨어들면서 모든 인간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78. 하느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하지 말라는 것인가? 나는 하느님이 무엇을 워하는지 그것도 지금 당장 나와 함께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알아내야만 한다. 

78. 하느님의 의지가 무엇이며 하느님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전에는 복종할 수 없었다. 

79. 내가 안개 속에서 빠져나와 '나'를 의식하게 된 대략 그 순간부터 하느님의 통일성과 위대함, 그리고 초인성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를 결정적으로 시험삼아 써보려고 하는 존재가 하느님이며, 모든 것이 하느님을 바르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내 마음에서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결국 굴복을 강요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문제는 내 영혼의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이었다. 

84. 그 책들을 모조리 탐독했으나 그것으로 현명해지지는 않았다. 나는 또다시 이 사람들도 모르는구나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85. 돌은 불확실한 것도 없고 자기를 알려서 전하려는 욕구도 없다. 돌은 영원하며 수천 년 동안 살아 있다 나는 생각을 이어갔다 이에 반해 나 자신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에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89. 나는 내적인 불확실성을 외적인 확실성으로 보상했다. 더나은 표현을 쓰면 결점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를 보상했다. 나는 나 자신이 잘못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잘못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속으로는 언제나 나 자신이 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90. 그러한 세계 옆에는 또 다른 영역이 있었다. 그 영역은 사원과 같아서 그 속에 들어가는 자는 누구나 변화되었다. 그는 우주 전체의 광경에 압도되어 자기 자신을 잊을 정도로 다만 놀라고 경타날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에 그 '다른 인물'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하느님을 숨어 있는 인격적인 존재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초개인적인 비밀로 알고 있었다. 여기서는 인간을 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이지 그것은 마치 인간의 영혼이 하느님과 함께 똑같이 창조의 과정을 바라보는 것과도 같았다. 

91. 무엇보다 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제2의 인격, 즉 '내적인간'에 대해 말해왔다. 제2의 인격은 내 생애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내부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길을 열어주려고 노력했다. 제2의 인격은 전형적인 형상인데도 대개 의식이 가진 이해력으로는 사람이 제2의 인격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158. 식물은 살아 있는 존재로서 오직 성장하여 꽃을 피우는데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숨겨진 비밀스러운 의미, 일종의 신의 뜻이었다. 식물은 외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하며 철학적인 경탄을 가지고 바라보아야만 했다. 

161. 나는 궁핍한 시절을 굳이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시절에는 하찮은 물건까지도 아끼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나는 언젠가 여송연 한 통을 선물로 받은 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왕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 이런 선물하고 싶다.. 이런 자세가 된 사람에게 주는 선물은 주는이나 받는이가 사라지는 궁극의 경험을 하게 된다. 


280. 성욕이 프뢰트에게는 일종의 누미노숨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Numinous (pronounced /ˈnjuːmɨnəs/) is an English adjective describing the power or presence of a divinity. The word was popularised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by the German theologian Rudolf Otto in his influential book Das Heilige (1917; translated into English as The Idea of the Holy, 1923). According to Otto the numinous experience has two aspects: mysterium tremendum, which is the tendency to invoke fear and trembling; and mysterium fascinans,[citation needed] the tendency to attract, fascinate and compel. The numinous experience also has a personal quality to it, in that the person feels to be in communion with a Holy other. The numinous experience can lead in different cases to belief in deities, the supernatural, the sacred, the holy, and the transcendent.


287. 신성한 힘의 체험으로 마음이 격렬히 동요하게 되면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실이 끊어질 위험이 항상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사람은 절대적인 긍정으로 또 다른 사람은 그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부정으로 빠지게 된다. 동양에서는 '니르드반드바'를 말한다. 나는 이것을 명심하고 있다. 마음의 진동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신성한 힘은 사람을 극단으로 잘못 인도하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은 진리를 진리의 전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 

288. 모든 것은 지나간다. 어제의 진리가 오늘은 허위가 되며 그저께 잘못된 결론으로 간주되던 것이 내일은 하나의 계시가 될 수도 있다. 이럴진대 우리가 실제로 아는 것이 너무도 적은 심리학적인 사실들에서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덧없을 정도로 적은 의식이 어떤 것을 인식해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는 아직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294. 난 진리탐구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개인적인 명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299. 그것은 말하자면 나의 내부에 있는 원시인의 세계 의식이 다다를수도 없고 해명할 수도 없는 세계였다. 선사시대의 동굴을 인간이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기 전에는 대개 동물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인간의 원시적인 마음은 동물의 혼의 활동과 가까이 접하고 있다. 

300. 나는 꿈을 배후에 그 의미를 숨기고 있는 '가면'으로 이해하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 의미는 이미 인식된 바 있으나 소위 악의적으로 의식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꿈이란 자연의 일부로서 속이려는 의도를 품고 있지 않았다. 식물이 가능한 한 자라나려 하고 동무링 가능한 한 먹이를 찾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이, 꿑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이러한 생명의 형태들은 우리의 눈을 속이려고 하지 않으나 우리 자신이 근시안이어서 스스로를 속일지도 모른다.우리는 귀가 먹었기 때문에 듣지 못하는 것이지 귀가 우리를 속이는 것은 아니다. 프로이트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나는 무의식과 무의식의 직접적 표현인 꿈을 자연의 과정으로 여겼다. 

307. 자연(본성)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물론 신경증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311. 프로이트가 우리 문화에 준 충격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꿈을 무의식과정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인정함으로써, 잃어버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진 가치를 과거와 망각으로부터 되찾아왔다. 


[내 안의 여인 아니마]

313.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가는 불확실한 길에 자신을 맡기는 일은 위험한 실험이나 수상한 모험으로까지 여겨진다. '외람되게도 저 문을 열어젖혀라. 사람마다 통과하기를 주저하는 저문을... 

320. 아하 여기에 삶이 있구나 그 작은 아이는 여전히 여기에 있고 내게 결여되어 있는 창조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그 시절과 다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돌아가 아이의 놀이를 하면서 아이의 삶을 한 번 더 살아보는 수 밖에 없었다. 이 순간이 내 운명의 전환점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마침내 그 놀이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322.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너는 종교의식을 치르듯이 작은 마을을 세워 완성해가고 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내 신화에 이르는 길을 가고 있는 중이라는 확신은 느끼고 있었다. 

331. 별안간 꿈의 의미가 밝혀졌다. '그것은 이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 문제가 아닌가 

332.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 

336. 필레몬과의 대화에서 나와 내 사고의 객체 사이에 있는 차이가 분명해졌다. 그는 이를테면 객관적인 태도로 나는 대했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고 내 생각이 아닌 것들을 말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내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것은 심지어 나에게 적대적일 수 있는 것들까지도 말할 수 있었다. 

339. 아마도 나의 무의식이 내가 아닌 어던 하나의 인격을 이루었고 그것이 자신만의 고유한 견해를 말로 표현하는가 보다 

341.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라 그러면 받으리라 

350. 그 후로 내 인생은 보편성에 속하게 되었다. 나로서는 중요하다고 여겨져 찾아본 지식들은 당시 학문에서는 아직 만날 수 없었다. 나는 원초적 체험을 스스로 겪어야 했고 더 나아가 내가 체험한 것을 현실의 토대 위에 세우는 작업을 해야만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 체험은 생명력 없는 주관적 가설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 무렵 나는 영혼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기로 했다. 

353.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이런 일은 내가 학문적 출세를 포기했을 때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늘 겪어왔다. 

353. 감정이 극에 달하게 되면 언제나 감정이 바뀌어 우주적인 고요가 뒤따랐다. 

355. 무엇보다 중요한 사건은 내가 만다라 그림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1918~1919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첫 만다라를 1916년 <죽은자를 향한 일곱 가지 설법>을 쓰고 나서 그렸지만 물론 그 무렵에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355. 현대예술은 무의식으로부터 예술을 창조해내려고 모색하고 있다. 

361. 꿈을 통한 명증성은 나로 하여금 나를 채우고 있는 것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연금술을 발견하다]

363. 연금술을 배워서 알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무의식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무의식 내용에 대한 자아의 관계에 의해 정신의 변화과 발달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65. 나의 가설이 역사 속에서 어디에 나타나는가 

367. 나의 심리학적 발견의 핵심도 이와 같은 내면의 변환과정, 즉 개성화였다. 

372. 나는 곧 분석심리학이 연금술과 기묘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77. 연금술을 배워서 알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무의식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무의식 내용에 대한 자아의 관계에 의해 정신의 변환과 발달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각 개인의 경우 그 과정을 꿈이나 환상에서 읽어낼 수 있다. 

387.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 지어다 <마태복음>

394. 자유를 위협하는 자를 위협할 수 없다면 그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395. 피할 도리가 없이 노쇠, 질병,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인연의 사슬은 큰 깨달음으로 끊어진다. 그리하여 존재의 환영은 소멸된다. 

398. 나에게 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내가 말해야만 했던 것이 말해졌다는 사실이다.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399. 우리에게는 중세와 고대, 원시시대가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우리는 발전의 분류로 휘말려들어가 거친 폭력으로 미래를 향해 밀려가고 있으며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우리의 뿌리로부터 떨어져나가게 된다. 

406. 바보들로부터 무시당할수록 현자들로부터는 더욱 사랑을 받는다네 

407. 시간은 어린이다. 어린이처럼 놀며 장기를 둔다. 어린이의 왕국. 이것은 우주의 캄캄한 곳을 두루 다니며 별처럼 깊은 곳에서 빛나는 텔레스포로스다. 그는 태양의 문에 이르는 길, 꿈의 나라에 이르는 길을 인도한다. 

411. 깬다는 것은 현실을 지각한다는 뜻이다. 

413. 최우선적으로 동시성현상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리가 내적 감각으로 지각하거나 예감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외부의 현실과 자주 상응하게 되는 것을 동시성현상이라고 한다. 

418. 파우스트가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고 나에게 구원과도 같은 말을 하긴 했지만 그런 이분성의 원인을 규명해주지는 않았다. 

421. 사람들은 현재 소유하고있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미래의 약속에 의지하여 살고 있으며 현재의 빛 속에서 살지 않고 미래의 어둠속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그 어둠속에서 적절한 때에 해가 솟아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람들은 모든 좋은 것이 나쁜 것들의 대가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보다 큰 자유에 대한 희망은 국가에 대한 예속의 증대로 사그라들고 만다. 가장 눈부신 과학의 발전이 우리에게 끔찍한 재앙을 가져온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찾던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우리도 그만큼 더욱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온힘을 다하여 개인의 근원과의 단절이 심화되도록 부추긴다. 그러면 각 개인은 집단의 한부분으로 단지 '중력의 혼'을 따라 가게 된다. 

423.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이 너무 뚜렷하면 우리는 오늘의 시간에 제약을 받아 우리 조상들의 혼이 오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지 다시 말해 무의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감지할 수가 없다. 


[여행]

425. 내가 끝없는 시간의 연속과 그 가운데에서도 거의 변함이 없는 존재의 모습들로 말미암아 깊은 감명에 여전히 젖어 있을 때 갑자기 내 회중시계가 생각났다. 그리고 유럽인의 가속화된 시간을 떠올렸다. 

433. 사람들은 자신들의 격정으로 살고 있다. 다시 말해 그 격정에 의해 그들의 생이 영위되고 있다. 그들의 의식은 한편으로는 공간에서의 방향설정과 외부에서 받은 인상으 ㄹ전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적인 충동과 격정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그 의식은 성찰을 하지 않고 자아는 독립성이 결여되어 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강렬함이다. 

439. 살아 있는 정신구조에서는 단순히 기계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관리되며 전체와의 관계성속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특정한 목적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441.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모든 것은 나 자신에 대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448. 태양은 신이오 누구나 그것을 알 수 있소

451. 우리가 온갖 유럽의 합리주의에서 잠시 시선을 돌려 우리 자신을 한쪽은 넓은 대륙의 초원으로 다른 한쪽은 잔잔한 바다로 기울어지는 저 고적한 고원의 맑은 공기 속으로 옮겨놓을때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세계의식성을 버리고 그 대신 그 너머에 놓여 있는 세계무의식성과 더불어 긑이 없는 듯이 보이는 지평을 확보할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푸에블로 인디언의 견해를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453. 조물주의 손에서 나온 것은 모두 좋다 -루소

475. 나는 신에게 나의 살아 있는 혼을 드립니다. 

486. 나는 아프리카가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고 싶었고 그리고 그것을 체험했다. 

488. 내가 성자들로부터 배우고 그들의 진리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나에게 도둑질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들의 지혜는 그들에게 속하고 나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만이 나에게 속할 뿐이다.  오직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하고 나의 내면이 말하는 것이거나 본성이 내게 가져다주는 것으로 살아야 한다. 

491. 나에게는 해방이란 것이 없다. 내가 소유하지 않고 내가 행하거나 체험하지 않은 그 어떤 것들로부터도 나를 해방시킬 수 없다.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으 ㄹ때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내가 참여하지 않고 물러서면 거기에 해당하는 영혼의 부분을 그만큼 절단하는 셈이 된다. 물로 ㄴ그러한 참여가 나에게 무척 어렵게 여겨지는 경우도 생길 것이고 내가 나 자신을 온전히 헌신할 수 없는 그럴듯한 구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무능'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내가 아마도 본질적인 어떤 것을 단념하고 과제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찰하게 된다. 나의 부적격성에 대한 이러한 깊은 인식은 적극적인 행위의 결여를 대체한다. 

491. 자신의 열정의 지옥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497. 당신은 신들이다 <요한복음>

503. 인도는 어떤 자취도 없이 나를 스쳐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영원에서 다른 영원으로 옮겨가는 자취들을 나에게 남겨놓았다. 

507. 남자의 아니마는 현저히 역사적인 성격을 띤다. 아니마는 무의식의 인격화로 역사와 선사에 깊이 물들어 있다. 아니마는 과거의 것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남성이 그의 선사에 관해 알아야 할 것들을 남성 속에서 대신 보충해주고 있다. 남성 속에 아직도 살아 있는 이미 잇었던 모든 삶이 아니마다. 아니마와의 관계에서 나는 늘 나 자신이 원래 어던 역사도 가지고 있지 않느 야만인처럼 여겨진다. 마치 이전도 이후도 없이 그야말로 무에서 생겨난 자같이 생각된다. 

510. 사람들이 가는 데마다 그곳을 지배했던 정신에 의해 마음 깊은 곳에서 충격을 받을 때 그리고 거기 있는 성벽 잔해와 둥근 기둥 하나가 내 눈에 이제 막 새롭게 인식될 때 문제는 달라지는 법이다. 


[환상들]

511. 나는 병을 통하여 또 다른 것을 얻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긍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었다. 주관적인 반론 없이 말이다. 현존재의 조건을 내가 보는 그대로 내가 이해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525. 사람들은 '영원'이라는 표현을 꺼려한다. 하지만 나는 그 체험을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하나인 무시간적 상태의 지복이라고 밖에 달리 일컬을 말이 없다.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거기서 하나의 객관적 전체성으로 통합된다. 아무것도 더이상 시간으로 쪼개질수도 없고 시간개념에 따라 측정될 수도 없었다. 그 체험은 우선 하나의 상태, 즉 사람들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감정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제와 동시에 오늘과 내일 존재한다고 어덯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어떤것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다른 것은 너무도 분명한 현재이며 그리고 또 다른 것은 이미 끝난 일이었으나 그 모든 것이 그래도 하나였다. 

528. 나는 또한 사람이 자기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온갖 평가를 뛰어넘어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사후의 삶에 관하여]

529. 나는 깊은 충격을 받고 잠에서 깨어나 생각했다. 아 그렇구나 그 사람이 나를 명상하고 있었구나 그가 하나의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나다 그가 깨어난다면 내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533.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신화적 측면은 오늘날 심히 무시되고 있다. 인간은 이제 더이상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리하여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치가 있고 치유를 가져오는 법이다. 

536. 실제로는 우리가 매일매일 우리 의식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약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화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542. 무를 향해 가는 반면에, 원형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545. 질문과 대답이 영원 속에 이미 옛날부터 존재해온 것이라면 나의 노력이 아무런 필요도 없을 것이고 그것들은 어떤 다른 세기에 발견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 본성에 제한없는 지식이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는 하지만 그것은 단지 적절한 시간의 상황에서만 의식에 의해 파악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아마 여러해 동안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을 품고 지내다가 나중 어떤 순간에 그것이 참으로 깨달아질 것이다. 

551. 어딘가에서 이미 도달하게 된 의식성의 수준은 내가 보기에는 죽은 자가 도달할 수 있는 인식의 상한을 이룬다고 여겨진다. 

558. 신화적 상상에서 중간세계가없다면 정신은 교조주의에 갇혀 경직될 위험성이 있다. 또한 반대로 신화적인 내용을 고려하는 것이 피암시적인 약한 마음의 소유자들에게는 예감을 인식으로 여기고 환상을 실체화할 위험이 있다. 

563. 카르마의 문제는 개인적인 재생이나 영혼의 윤회문제와 마찬가지로 내게는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재생에 대한 인도인의 신앙 고백을 '자유롭고 빈 마음으로' 존경하는 태도로 들으며 나의 경험세계에서 재생의 경향을 보여준다고 당연히 생각될 만한 어던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지 어디서든 어떻게 해서든지 둘러보며 살핀다. 

565. 내적 이미지는 개인적인 회고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막아준다. 

572.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 '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 '

572. 인간이 그릇된 소유를 고집할수록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덜 느끼게 될수록 그의 삶은 더욱더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573. 오로지 삶의 공간을 넓히고 합리적인 지식을 어찌해서든지 증가시키는 데만 관심을 두는 시기에는 자신의 단일성과 유한성을 의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단일성과 유한성은 동의어다. 이것 없이는 무한성을 지각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의식화라는 것도 없다. 


[만년의 사상]

575. 신화는 델피의 신탁이나 꿈처럼 이중의미를 지니고 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된다. 또한 융이 이미 파악했듯이 본능이 우리를 긴급히 도와주고 신이 신에 맞서 우리를 지지해주리라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579. 아무튼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방향설정, 즉 일종의 메타노이아를 필요로 한다. 

580. 모든 인간 판단의 불완전성은 우리의 견해가 어느 때나 옳은 것이냐 하는 회의가 들게 한다. 

580.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미래에 행해지거나 의도되거나 생각되는 온갖 질문은 세계가 우리를 위해 돌아가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우리 마음을 응징할 것이다. 

589. 모든 것이 잘되면 해답은 본성에서 자발적으로 제시된다. 오직 이때에만 해결은 확실한 것이 된다. 해결은 사람들이 그렇게 일컫는 바와 같이 '은혜'로 여겨진다. 

596. 물고기는 아들, 즉 아직 무의식적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 

597. 우리의 자유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우리는 '영감'을 설명할 수 없다. 

607. 자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호조치의 도움으로 수천 년의 과정을 거쳐 서서히 이루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아라는 것이 가능해진 것은 모든 대극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619.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 전체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부분적인 측면에서 말하는 것은 항상 너무 과하거나 너무 부족하다. 왜냐하면 오직 전체만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그리고 '모든 것을 견딘다'<고린도전서>

620. 그가 한줌의 지혜라고 가지고 있다면 그는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며 미지를 미지라고 즉 신의 이름으로 명명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열등함 불완전성, 그리고 의존성을 시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진실과 오류 사이에서 선택의 자유를 증언하는 것이다. 


[회고]

621.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한다. 내 인생은 풍성했으며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어떻게 내가 그토록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나 자신이 달라졌더라면 아마도 많은 일이 다르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대로 되었다. 

623. 사람들이 나를 현명하다거나 '지자'라고 한다면 나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어떤 사람이 강에서 한 번 모자로 물을 가득 퍼냈다고 하자.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나는 그 강물이 아니다. 나는 강에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강에 있지만 그들은 대개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벚나무 줄기가 자라도록 돌봐야 할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거기 서서 자연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보고 경탄할 뿐이다. 

624.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게 되면 그는 고독해진다. 하지만 고독은 반드시 공동체에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고독한 사람보다 공동체에 대해 더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모든 개체가 자신의 개성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동일시되지 않는 고에서만 만개하게 된다. 

625. 우리가 비밀을 가지고 알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을 지니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인생을 어떤 비개인적인 신성한 힘으로 가득 채운다. 이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중요한 것을 놓친 셈이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면에서는 비밀로 가득 찬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해야 한다. 

630. 노자가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이 늙은 나이에 느끼는 바다. 노자는 빼어난 통찰을 지닌 사람의 모범이다. 

 
[편집자의 말]
그는 망원경으로 자신의 영혼을 바라보았다. 
온통 어지러웠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별자리처럼 보였다. 
그는 세계 속에 감추어진 세계를 그의 의식에 보태었다. 
-콜리지의 노트에서-

636. 항상 그랬듯이 내 인생에서 모든 외적인 것은 우연한 것이고, 오직 내적인 것만이 실체성이 있으며 결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숙명적이네 그 결과 외적인 사건에 대한 기억드른 모두 희미해졌네 아마도' 외적인' 경험들은 한 번도 실재가 된 적이 없거나 아니면 단지 나의 내적 발달 단계와 일치할 때만 실재가 되었을 것이네 내 존재의 이러한 '외적인' 발현들 중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나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네 그것은 내가 모든 정력을 기울여 그러한 일들에 참여했기 때문인 듯이 여겨지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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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
2011.06.28 16:37:58 *.13.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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