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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2일 00시 21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0810853639.jpg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철학자, 수학자, 사회운동가, 교육자이자 노벨상 수상자로 정의된다. 그는 1872년 영국 웨일스에서 귀족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영국 수상을 두 차례나 지낸 자유주의적 정치가 존 러셀 경이 그의 조부이다. 1890년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여 수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화이트헤드와 함께 페아노와 프레게의 수학 논리를 발전시켜 1910년에 대표작 <수학 원리>를 출간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11년 자신의 논리 철학을 잇는 비트겐슈타인을 만났으며, 그가 <논리 철학 논고>를 출간하고 학문 세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전쟁과 징병에 반대하는 글로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강사 자격을 잃고, 1918 6개월간 옥고를 겪었다. 1920년 러시아를 방문하여 레닌과 트로츠키를 만난 후 공산주의에 대해 실망했다. 같은 해 1년 동안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초빙교수로 철학을 강의한 체험을 바탕으로 <중국의 문제>를 펴냈다. 1927년 러셀은 아내 도라 블랙과 함께 영국 비콘 힐에 진보적인 대안 학교를 설립했다. 1938년부터 수년간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철학을 강연했고, 이 시기에 <서양철학사>를 집필했다. 1950년에 <서양 철학사> <인간 지식> <결혼과 도덕> 등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55년 핵무기의 위험성을 알리고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러셀 아인슈타인 성명>을 발표하고, 각국의 과학자가 참가하여 군축 평화 문제를 논의하는 <퍼그워시 회의>를 창설했다. 이후 <100인 위원회>를 결성하여 88세에 대중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했다. 1963 <버틀런드 러셀 평화 재단>을 설립했다. 핵 폐기 운동 외에도 베트남 전쟁, 케네디 암살 조사, 인도.중국 국경 분쟁, 쿠바 미사일 위기 등 많은 현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논리주의, 자유주의, 인도주의로 상징되는 러셀은 20세기 영미 분석철학의 문을 연 선구자로서 논리학, 인식론, 존재론, 윤리학, 사회철학을 비롯한 철학 전반에 걸쳐 분석적 방법을 적용한 독창적인 견해를 발표했다. 학문적인 면에서 수학을 논리학으로 환원하여 관계 논리를 포함한 기호 논리학을 확립했고, 비트겐슈타인으로 이어지는 분석 철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사회적인 면에서 과학을 힘을 믿는 무신론자이자 개혁적 자유주의자로서 인권과 시민권을 옹호하기 위해 권력에 맞서 싸웠다. 자서전에서 자신의 인생을 이끈 것이 사랑에 대한 열망, 지식에 대한 추구, 인류의 아픔에 대한 연민이라고 밝힌 러셀은 평생 70권 이상의 책을 출간하고 2천 편 이상의 글을 쓰는 초인적인 집필 활동을 했다.

 

러셀의 자서전 하권에 수록되어 있는 자유주의자의 10계명은 다음과 같다. (p286~287)

 

1.     어떤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하지 말라.

2.     어떤 것을 증거를 은폐하는 방법으로 처리해도 좋을 만큼 가치 있다고 생각지 말라. 그 증거는 반드시 백일하에 드러나니까.

3.     필히 성공할 것으로 판단되는 생각을 절대로 단념하지 말라.

4.     반대에 부딪힐 경우, 설사 반대자가 당신의 아내나 자식이라 하더라도, 권위가 아닌 논쟁을 통해 극복하도록 노력하라. 권위에 의존한 승리는 비현실적이고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5.     다른 사람의 권위를 존중하지 말라. 그 반대의 권위들이 항상 발견되기 마련이니까.

6.     유해하다고 생각되는 견해를 억누르기 위해 권력을 이용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그 견해들이 당신을 억누를 것이다.

7.     견해가 유별나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인정하고 있는 모든 견해들이 한때는 유별나다는 취급을 받았으니까.

8.     수동적인 동의보다는 똑똑한 반대에서 더 큰 기쁨을 찾아라. 현명한 지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태도이며, 그렇게 할 때 똑똑한 반대에는 수동적인 동의보다 더 깊은 의미의 동의가 함축되어 있다.

9.     비록 진실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철저하게 진실을 추구하라. 그것을 숨기려다 보면 더 불편해진다.

10.   바보의 낙원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을 절대로 부러워하지 말라. 오직 바보만이 그것을 행복으로 생각할 테니까.

 

러셀의 다른 주요 저서로는 <철학의 문제> <행복의 정복>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자서전> <회의주의자의 에세이> <서양의 지혜> <교육론> <자유와 조직> <권력> 등이 있다.

 

사부님은 여러 자리에서 러셀의 세 가지 열정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그의 저서라곤 달랑 <서양의 지혜> <서양철학사>만을 읽어 그의 인생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사양의 지혜> 뒤편에 실린 저자에 대한 글을 읽어보니 그는 정말 100년 가까운 세월을 정열적으로 살아낸 사람이었다. 70편에 가까운 책을 내고 수많은 사회운동에 참여했으며 결혼도 세 번이나 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지배한 열정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오직 인정받기 위한 욕구만이 보인다. 부끄럽다. 러셀은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으로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사랑을 했는데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단 말인가? 러셀의 저서를 더 읽어보고 싶다. 법정스님이 사랑한 <행복의 정복> <자서전>을 특히 읽고 싶다. 그의 인생이 더 많이 보이면 그가 더 좋아질 것 같다.

 

[참고자료]

<서양철학사> 저자 소개

오마이뉴스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04370

사진 http://www.scarecrowpress.com/Catalog/SingleBook.shtml?command=Search&db=%5EDB/CATALOG.db&eqSKUdata=0810853639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문구

 

P5 러셀에게는 어떤 철학자도 존경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단지 비판의 대상으로 등장할 따름이다. 비판을 거침없고 신랄하며, 어떤 부분에서는 자신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시인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명료하지 않은 부분은 없다. 명료성이 바로 이 책의 미덕이다.

 

이 책이 철학사를 다룬 다른 서적들보다 뛰어난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저자의 고유한 철학적 관점을 드러내면서 수많은 철학자의 사상을 일관되게 해석하고 비판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철학과 사회, 정치 환경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했는지 보여준다는 점이다.

 

러셀의 해석에 따르면 철학은 그리스 문명 속에서 처음 과학과 분리되지 않은 형태로 탄생했는데, 두 가지 경향이 그리스 문화를 지배했다. 하나는 열정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경험을 중시하고 합리주의를 내세우며 다양한 사실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이다. 전자의 경향은 오르페우스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피타고라스와 플라톤, 플로티노스를 거쳐 헤브라이즘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한 축으로 편입된다. 후자는 헤로도토스와 초기 이오니아 자연 철학자들을 비롯해 어느 정도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도 포함된다. 경험을 중시하고 합리주의를 내세우는 경향은 중세 시대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 철학 속에서 되살아난다.

 

P6 그에게 철학이란 진리 추구의 열정을 품고 기존의 모든 지식을 비판하는 활동이었으며 분석적 방법을 통해 명료하고 확실한 지식을 얻고자 노력하는 여정이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를 명료하게 명료하게 만드는 방법은, 부지불식간에 사용된 전제들을 세밀히 조사하고 기초 원리를 끈질기게 검토해 보는 것이다. 옳다는 근거가 없다면 어떤 전제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러셀이 말하는 분석적 방법의 핵심이다.

 

러셀은 철학이 소수 지식인들 사이에 일어난 논쟁을 문제 삼는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거나 해체하는 역할을 했다는 입장에서 철학사를 서술해 나간다. 이런 점에서 보면 철학은 철학자가 몸담고 있는 사회, 정치 상황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한다. 소크라테스 철학은 아테네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과 스파르타에 대한 동경, 오르페우스교의 요소를 염두에 두어야 제대로 이해가 된다. 마찬가지로 로마 시대에 독창적인 철학이 생겨나지 않고 일종의 처세 철학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로마 행정의 지배력이 강하고 일상의 삶이 투쟁으로 점철되었던 탓이다.

 

P7 일정한 시기에 사회 통합에 기여한 철학도 사회, 정치 환경이 바뀌면 영향력이 약해져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다른 철학이 형성되면서 기존 철학을 대체한다.

 

P8 철학하는 사람은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갑자기 깨닫는 순간에 지적 희열을 느낀다. 철학의 독창성은 기존의 사고방식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통찰하는 데서 나온다.

 

P9 철학자들은 어떤 일의 결과이자 원인이다. 그들은 각자 처한 사회 상황과 각 시대의 정치와 제도의 결과물이자, 후대 정치와 제도의 근간이 되는 신념 체계의 형성에 기여하는 원인 제공자이다.

 

P10 나는 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철학자를 자신이 몸담았던 사회, 문화적 환경의 산물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공유되지만 모호하거나 산만하게 흩어진 사상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애쓰며 집중한 한 인간으로 조명했다.

 

철학은 애초부터 학파들, 곧 소수 지식인들 사이에 일어난 논쟁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철학은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는 역할을 했으며, 나는 바로 이 부분을 고찰하여 애썼다. 이러한 관점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P17 인간과 세계를 표방하는 철학적인사상 체계는 두 가지 요소에서 생겨난다. 하나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종교 체계와 윤리 사항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과학적탐구이다. 두 요소가 각기 다른 철학자들의 체계 속으로 들어가는 정도에는 큰 차이가 있으나, 철학은 두 요소를 다 어느 정도 포함한다.

 

내가 말하려는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 철학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지식으로 규정하거나 확정하기 힘든 문제와 씨름하는 사변적인 측면을 포함한다. 그러나 철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전통을 따르든 계시를 따르든 권위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 명확한 지식은 무엇이든 과학에 속하는 반면, 명확한 지식을 초월한 교리는 모두 신학에 속한다.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자리잡고 양측의 공격에 노출된 채,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 무인지대가 바로 철학의 세계다.

 

P18 철학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어느 정도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인간과 환경의 상호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철학을 거의 결정하며, 거꾸로 사람들이 형성한 철학이 환경을 거의 결정한다.

 

P19 생생한 희망과 두려움 속에서 불확실한 문제에 직면할 때는 누구나 고통을 느끼지만, 만약 마음이 편해지도록 위로나 주는 동화에 의지해 살고 싶지 않다면 그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철학이 제기하는 질문에 망각해서도 안 되고, 철학적 질문에 대해 의심할 수 없는 답변을 찾았다고 자신을 설득해서도 안 된다. 확실한 진리는 없다고 주저하며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지 않고 의연히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 철학 연구자를 위해 철학이 지금도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P21 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가 국가에 대한 의무보다 더 중대한 명령이라는 생각이다.

 

P22 교회는 단 한 번도 오늘날 고용주가 피고용인에게 요구해서 통용되도록 만든, 선행의 평온한 규칙과 질서를 군주들의 마음에 심어주지 못했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술을 마시고, 살인하고, 사랑하지도 못한다면, 그들이 세상을 정복한들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P23 교회가 주된 이유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지배자와 민중이 다 같이 교회가 바로 천국의 문을 여는 힘을 가졌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P25 가톨릭 교회는 세 가지 근원에서 유래한다. 성스러운 역사는 유대교에서, 신학은 그리스에서, 지배 방식과 교회법은 최소한 간접적으로라도 로마 법제에서 유래한다.

 

P35 철학과 과학은 원래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기원전 6세기 초에 동시에 탄생했다.

 

P41 참주정치는 반드시 나쁜 정치를 의미하지 않고, 다만 권력의 세습이 허용되지 않는 지도자 한 사람의 지배를 의미했을 따름이다. 민주정치는 모든 시민에 의한 정치를 의미했지만 노예와 여성은 시민에서 제외되었다.

 

P43 호메로스는 원시성과 거리가 먼 검열관의 위치에서 고대 신화들을 정리한 18세기식 합리주의 해석자이며, 상류층에 어울리는 도시풍의 세련된 계몽적 이상을 간직했다.

 

P48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주로 사려, 좀 더 의미가 넓은 용어를 쓰자면 예상이다. 문명인은 장래의 쾌락을 위해, 설령 장래의 쾌락이 꽤 먼 미래에 주어질지라도 현재의 고통을 기꺼이 참아낸다. 이러한 인내 습관은 농업의 발생과 더불어 중요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P57 그리스 문화를 지배한 두 가지 경향이 있었다. 하나는 열정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다. 다른 하나는 명랑하고 경험을 중시하며 합리주의를 내세우고 다양한 사실에 대해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이다. 헤로도토스는 후자의 경향을 대표하는 역사가이며, 초기의 이오니아 자연 철학자들도 후자의 경향을 따랐고, 어느 선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도 후자의 경향에 포함된다.

 

P59 과학과 종교의 갈등은 기원전 6세기에 헬라스 전역에 휘몰아친 종교 부흥에서 비롯되었는데, 학문의 무대가 이오니아에서 서방으로 이동하면서 일어났다.

 

P63 탈레스는 물이 근본 물질이며 물에서 만물이 형성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땅이 물 위에 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탈레스는 자석이 철을 움직이기 때문에 자석 안에 영혼이 있으며, 만물에 신들이 깃들여 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P64 아낙시만드로스는 만물이 제일 실체에서 비롯되지만, 그것은 탈레스가 주장한 물이 아니며 우리가 아는 다른 실체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무한하고 영원하며 나이를 먹지도 늙지도 않는 실체로서 여러 세계를 에워싸고 있다고 말한다.

 

P65 아낙시만드로스는 과학적 호기심이 왕성한 인물로서 최초의 지도 제작자로 알려졌다.

 

P66 아낙시메네스는 제일 실체가 공기라고 말했다. 영혼은 공기이며, 불은 희박해진 공기이다. 공기가 응축되면 처음에 물이 되고, 더욱 응축이 일어나면 흙이 되고,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돌이 된다. 그의 이론은 서로 다른 물질들 간의 차이를 오로지 응축의 정도에 따른 양적인 차이로 설명하는 장점이 있다.

 

밀레토스 학파는 성취한 업적이 아니라 철학적 시도로 인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학파는 그리스 정신이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문화를 만나 빚어낸 성과였다.

 

P68 증명하는 연역 논증이란 뜻의 수학은 피타고라스와 더불어 시작되며, 색다른 형태의 신비주의 사상 역시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수학이 철학에 미친 영향의 일부는 피타고라스에서 기인하며, 이후 심오하지만 유감스러운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P70 피타고라스가 창시한 종교의 주요 교리는 영혼이 윤회한다는 가르침과 콩을 먹는 것을 죄라는 가르침이었다.

 

P72 콘퍼드의 주장에 따르면 피타고라스에게서 영감을 받아 형성된 체계는 전부 내세를 믿는 경향이 있으며, 모든 가치를 눈에 보이지 않는 신과 일체가 되고 조화를 이루는 데 두면서 눈에 보이는 세계를 허상, 환상, 혼탁한 매개물로 비난한다.

 

P73 이론이란 낱말은 원래 오르페우스교의 고유한 말로서 콘퍼드는 정열과 공감에 휩싸인 관조로 해석한다.

 

경험을 믿는 철학자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에 매달리는 노예로 전락하기도 하지만, 순수한 수학자는 음악가처럼 질서정연한 미의 세계를 창조하는 자유로운 존재에 가깝다.

 

P75 피타고라스는 만물은 수이다라고 말했다.

 

P77 피타고라스에서 시작된 수학과 신학의 결합은 그리스와 중세를 거쳐 칸트에 이르는 근대 시기까지 종교 철학의 특징을 형성했다. 피타고라스 이전의 오르페우스교는 아시아의 신비 종교와 유사했다. 그러나 플라톤, 성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에서는 종교와 추리, 즉 피타고라스에서 유래한 무시간적인 영원한 존재를 향한 도덕적 염원과 논리적 동경이 밀접하게 결합되었다.

 

P80 사실 그리스인들은 추상적 사유에 더 오래 지속되는 불변적 가치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수학과 연역추리 기술을 발견한 것이다. 특히 기하학은 그리스인의 독창적인 발명품인데, 기하학이 없었다면 근대 과학은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수학과 더불어 그리스 정신의 일방적인 면이 드러난다. 말하자면 자명해 보이는 공리에서 시작하여 연역적으로 추론하지만, 관찰한 것에서부터 귀납적으로 추론해나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P85 탈레스는 만물이 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으며,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원시원소라 생각했고, 헤라클레이토스는 오히려 불이 원시원소라 생각했다. 마침내 엠페도클레스는 흙, 공기, , 물을 네 가지 원소로 허용하는, 정치가에게나 어울릴 법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P87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똑같은 길이다. – 헤라클레이토스

 

P92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이 변한다고 주장했고, 파르메니데스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맞받아졌다.

 

P93 는 불가능하며, 그대가 무를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까닭은 사유와 존재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사유와 사유의 대상이 동일한 까닭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한, 존재가 없는 사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파르메니데스

 

P95 어떤 단어가 유의미하게 사용될 수 있으려면, 그 단어는 무엇인가를 의미해야지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그 단어가 의미하는 대상은 어떤 의미에서 존재해야 한다.

 

P97 철학이 꽤 현대에 이른 시기까지도 파르메니데스에게서 수용한 사상은 역설의 극단을 보여준 모든 변화의 불가능성이 아니라 실체의 불멸성이었다.

 

P109 플라톤이 가르쳤던 아카데미는 다른 모든 학파보다 오래 살아남아,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에도 200년간 이교사상이 허용되는 섬처럼 존속했다.

 

P116 데모크리토스가 아니라면 레우키포스가 파르메니데스와 엠페도클레스로 각각 대표되는 일원론과 다원론을 중재하기 위해 원자론을 앞장서서 이끌었다.

 

P117 어떤 일의 목적인은 그 일을 발생시키는,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다.

 

P119 고대에는 경험으로 관찰한 성과와 논리적인 논증을 예리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P125 이후 철학은 이전에 성취한 비길 데 없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파멸의 씨앗이 몇 개 뿌려지고 나자 점차 타락했다. 데모크리토스 이후 가장 우수한 철학에서조차 우주보다 인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우선 소피스트들과 더불어 회의주의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알게 되는지에 대한 연구로 관심을 돌린다. 다음에는 소크라테스가 나타나 윤리를 강조하고, 플라톤은 스스로 창조된 순수한 사유의 세계를 지지하기 위해 감각 세계를 거부한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이 과학에 필요한 기본 개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재성을 갖추고 있지만, 그들의 사상 체계는 후대에 큰 해악을 끼친 결점을 드려냈다.

 

P126 우리가 살펴 본 소크라테스 이전의 위대한 사상 체계는 기원전 5세기 후반 회의주의 운동에 직면했는데, 이 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한 인물이 바로 소피스트틀의 우두머리 격인 프로타고라스이다.

 

P130 프로타고라스는 주로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즉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한다는 척도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척도이다라는 학설로 주목 받는다. 이것은 사람이 제각기 만물의 척도이며, 사람들의 의견이 다를 때 한 사람이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게 되는 객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프로타고라스의 학설은 본질상 회의적이고, 감각의 속기 쉬운 성질에 근거한다.

 

P131 그들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 지식은 종교나 덕과는 관련이 없었다. 그들은 논쟁술이나 논쟁술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가르쳤다.

 

P132 <국가> 1권에서 트라시마코스는 강자의 이익 이외에 정의란 없고, 강자의 이익을 위해 국가 조직이 법을 만들기 때문에, 권력 다툼을 벌일 때 사심 없이 호소할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고 주장한다.

 

P139 총명한 사람의 말을 우둔한 사람이 전하게 되면 도무지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는 까닭은, 우둔한 사람은 자신이 들은 내용을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이해할 수 있게 바꾸어 말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P143 오로지 신만이 지혜롭지요. 신은 신탁을 통해 인간의 지혜란 가치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 합니다. 소크라테스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이름을 사례로 써서 이렇게 말하려 했던 것뿐입니다. , 인간들이여,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지혜가 사실은 가치 없다는 것을 아는 자가 바로 가장 현명한 자라고 말이지요.

 

P150 플라톤이 그린 소크라테스는 스토아 학파와 키니코스 학파를 예상하게 한다.

 

소크라테스가 과학 문제보다 윤리 문제에 더 몰두했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하다.

 

P151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만큼 충분한 지식을 이미 가졌지만 사고하는 도중 혼란에 빠지거나 제대로 분석하지 못해서, 즉 이미 아는 지식을 논리적으로 능숙하게 이용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들은 소크라테스식 방법을 활용하여 적합하게 다룰 수 있다.

 

P152 논증의 대상이 사실이 아닌 논리와 관련된 경우라면 언제든 토론이 바로 진리를 이끌어내는 좋은 방법이다.

 

P161 헬레니즘은 그리스의 고유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한 세계주의적 예술, 사상, 정신들을 특징으로 하는 문화이다. 역사적으로 알렉산드로스의 죽음부터 로마 제국이 이집트를 합병한 시점까지 대략 3세기에 걸친 시기에 형성 발전했다.

 

P166 그리스도교 신학과 철학이 적어도 13세기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플라톤 사상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플라톤 사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는 다섯 가지이다. 첫째는 이상향으로서, 기나긴 역사 속에서 등장한 최초의 형태에 속한다. 둘째는 이상 이론으로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보편자 문제를 다룬 선구적 시도로 평가된다. 셋째는 영혼 불멸을 지지하는 논증이고, 넷째는 우주론이며, 다섯째는 지각이 아닌 상기로 간주되는 지식 개념이다.

 

P167 플라톤을 칭찬하는 평가는 언제나 옳다고 받아들였으나 그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 이는 위대한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처하게 되는 운명이다.

 

P176 플라톤이 통치자들조차 속아 넘어가기를 바라고, 어쨌든 통치자들 이외에 도시국가의 전체 주민을 속여 넘길 충성심에서 우러나서 꾸며낸 거짓말 한 가지가 있다. 그는 이 거짓말에 대해서 꽤 상세하게 설명한다. 거짓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이 인간을 세 종류로, 즉 금으로 빚은 최고 계급(수호자), 은으로 빚은 둘째 계급(군인), 동과 철로 빚은 평민 계급(수공업자)으로 창조했다는 교의이다.

 

P178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어떤 사람이 해야 할 일을 결정하는 것이다.

 

P180 트라시마코스는 강한 어조로 정의란 강자의 이익 이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선언한다.

 

P185 철학자는 진리를 통찰함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P186 플라톤의 학설에는 선대 철학자들에게 돌릴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무엇, 바로 이상 혹은 형상이론이 있다. 이상 이론의 일부는 논리 부문이고, 일부는 형이상학 부문이다.

 

P188 플라톤에게 철학은 일종의 통찰, 진리 통찰이다. 철학은 순수 지성의 활동만이 아니다. 철학은 지혜일 뿐만 아니라 지혜에 대한 사랑이리고 하며, 이러한 사유와 감정의 친밀한 합일은 스피노자가 말한 신에 대한 지적 사랑과 거의 같다. 어떤 종류이든 창작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정도가 크든 작든 오래 애쓴 끝에 진리나 아름다운 형체가 한순간 눈부시게 훤히 나타나거나 나타나는 듯이 보이는 체험을 한다 그저 사소한 일에서 시작해 체험하는 수도 있고, 우주를 바라보며 체험하기도 한다. 순간의 체험은 너무 확실해서 나중에 의혹이 생기더라도 그 순간의 확실한 느낌은 그대로 남는다. 나는 예술, 과학, 문학, 철학 분야에서 뛰어난 창작물들이 대부분 이런 순간의 체험이 빚어낸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한순간에 깨닫는 체험이 나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나는지 말할 수는 없다. 나로서는 어떤 주제로 책을 쓰고 싶으면 우선 주제와 관련된 다른 내용들 하나하나에 친숙해질 때까지 세부 사항을 차근차근 알아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운이 좋으면 각각 다른 내용이 서로 알맞게 연결되면서 전체 윤곽을 파악하게 된다. 그다음에는 파악한 내용을 적어 내려갈 따름이다. 꼭 닮은 비유를 들자면, 우선 안개 속에서 산책로와 산등성이와 산골짜기에 따로따로 익숙해질 때까지 구석구석 산을 돌아다녀보고 나서, 멀리서 밝은 햇빛에 드러난 산 전체를 보는 체험과 같다.

è  러셀의 책을 쓰는 방식이 흥미롭다. 나도 나의 주제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다보면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는 순간을 맞게 되겠지.

 

P191 여기서 차츰 유명한 동굴의 비유로 넘어가는데, 이에 따르면 철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앞만 보도록 사슬에 묶인 채, 뒤쪽에서 모닥불이 비쳐 앞에 가로놓인 벽에 그림자가 생기는 동굴 속에 갇힌 죄수들이 비유된다. (중략) 동굴에서 벗어난 사람은 난생 처음 실재하는 사물을 보고는 이제까지 그림자에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사람이 수호자에 적합한 부류의 철학자라면, 이전에 함께 지낸 동료 죄수들을 만나러 동굴로 되돌아가서 진실을 깨우치고 동굴 밖으로 나오도록 알려주어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P207 플라톤은 인간이 욕구를 최소로 줄이면 아주 적은 돈으로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맞는 말이다.

è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P216 만약 인간이 잘 살면 죽은 다음에 자신의 별에서 행복하게 살게 된다. 그러나 악하게 살면 다음 생에 여자로 태어날 것이다. – 티마이오스

è  이 책을 읽다 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여성에 대한 철학자들의 생각이 많이 보인다. 역사적 상황과 시대가 그러했기 때문인 듯하지만 그래도 철학자들조차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P219 비겁하게 살거나 바르게 살지 못한 남자는 다음 생에 여자로 태어나게 된다. 수학을 알지 못해도 별을 관찰하기만 하면 천문학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 즉 죄를 짓지 않았지만 경박한 인간은 새가 된다. 철학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육상 동물이 되고, 어리석기 그기없는 인간은 물고기가 된다. – 티마이오스

 

P221 근대인들은 대부분 경험적 지식이 지각에 의존하거나 지각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플라톤이나 다른 특정 학파에 속한 철학자들 사이에는 지식이라 부를 만한 지식은 감각에서 유래하지 않으며, 유일하게 진정한 지식은 개념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전혀 다른 학설이 존재한다.

 

P228 내가 이것이 실존하다고 말하면 안 되는 까닭은 실존한다는 말은 이름과 대비되는 기술 어구에 적용했을 경우에만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실존은 정신이 대상들과 관련하여 의식하는 중요한 것들 가운데 하나로 처리된다.

 

P234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43년 당시 열세살이던 알렉산드로스의 가정 교사가 되었고, 필리포스 국왕이 열여섯살인 알렉산드로스를 성년이라 선언하고 나라를 비운 동안 자신을 대신하여 통치할 섭정으로 지명할 때까지 가장교사 자리를 유지했다.

 

P236 플라톤에게 스며들었던 오르페우스교의 요소가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희석되어 상식이라는 강력한 요소와 혼합되었다.

 

가장 강력한 논증은 3인간논증으로 다음과 같다. 만약 한 인간이 이상적인 인간과 유사하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보통 사람들과 이상적인 인간을 유사하게 만드는 한층 더 이상적인 인간이 존재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동물인데, 이상적인 인간이 이상적인 동물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이상적인 동물이라면, 동물들의 종들만큼 많은 이상적인 동물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다.

 

P239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자 이론은 플라톤의 이상 이론에서 한 단계 진보한 이론이라 확신하며, 철학의 진정한 문제를 다룬 매우 중요한 이론이라는 점도 확실하다.

 

P242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은 흥미롭고 형시상학의 나머지 부분과 밀접하게 연결되는데, 사실 신학은 우리가 형이상학이라고 부르는 학문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부르는 명칭이다. 그는 실체에는 세 종류, 곧 감각되고 소멸되는 실체, 감각되지만 소멸하지 않는 실체, 감각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 실체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첫째 부류에는 식물과 동물이 포함되고, 둘째 부류에는 천체가 포함되며, 셋째 부류에는 인간의 이성혼을 비롯한 신이 포함된다.

 

P243 아리스토텔레소는 스피노자처럼 인간은 신을 사랑해야 하지만,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신은 부동의 원동자로 정의될 수 없다.

 

P244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원인에는 네 종류가 있는데, 각각 질료인,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이라 불렀다.

 

플라톤은 수학에 기울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에 기울었다. 이러한 차이가 바로 그들이 제시한 종교의 차이를 설명해준다.

 

P245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론>에서 영혼과 정신을 구별하는데, 정신이 영혼보다 등급이 더 높아서 육체와 맺는 관계가 더 밀접하다.

 

P249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은 행복이며 행복은 영혼의 활동이라고 한다.

 

덕에는 두 가지 종류, 곧 영혼의 두 부분이 상응하는 지적인 덕과 도덕적인 덕이 있다. 지적인 덕은 가르쳐서 얻고, 도덕적인 덕은 습관으로 키워서 얻는다.

 

P255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이란 목적, 말하자면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관점을 받아들인다.

 

P256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인 덕은 목적이지만 실천적인 덕을 수단일 뿐이라고 말했으리라 생각한다.

 

P257 이미 살펴보았듯이 불평등한 관계, 예컨대 부부관계나 부자관계에서는 우월한 자가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되어 있다. 신과 친구가 될 수 없는 까닭은 신이 우리를 사랑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P269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두정치와 민주정치의 차이가 집권당의 경제적 지위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부유층이 빈곤층을 고려하지 않고 통치하면 과두정치가 되고, 권력이 궁핍한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서 부유층의 이익을 무시하면 민주정치가 된다.

 

P2778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에서 이룩한 가장 중요한 가장 중요한 업적은 삼단논법 학설이다. 삼단논법은 대전체, 소전제, 결론 세 부분으로 구성된 논증이다.

 

P304 고대 그리스어 문화권에 속한 세계의 역사는 세 시기로 나누기도 한다. 첫 시기는 자유도시국가 시대이다. 이 시기는 필리포스 왕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등장으로 멸망했다. 둘째 시기는 마케도니아 통치 시대이다. 이 시기의 마지막 잔재는 클레오파트라가 죽은 다음 로마가 이집트를 합병하면서 소멸했다. 마지막 시기는 로마 제국 시대이다. 첫 시기의 특징은 자유와 무질서이고, 둘째 시기의 특징은 복종과 무질서이며, 마지막 시기의 특징은 복종과 질서이다.

 

P312 마음이 머물 곳은 마음뿐, 마음먹기에 따라 지옥이 천국이 되기도 하고, 천국이 지옥이 되기도 하는 법이지 밀턴의 사탄

 

P317 뛰어난 지성과 사회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아주 다른 양상을 나타냈다. 행운이 따르는 시대의 뛰어난 지성인들은 대체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개혁안을 제안하면서 자신들의 제안이 환영 받으리라 확신할 뿐만 아니라 설령 개혁되지 않더라도 세상을 혐오하지 않았다. 그러나 행운이 따르지 않은 시대의 뛰어난 지성인들은 혁명적인 성향을 나타내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일부는 자신들이 지지한 결과로 가까운 장래에 변화가 일어나리라 기대했다. 이도 저도 아닌 시대의 뛰어난 지성인들은 세상에 절명한 나머지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만 변화가 일어날 가망은 없다고 체념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쉽게 절망감을 느끼고 현세의 삶이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생각에 빠져듦으로써, 오로지 내세나 신비스러운 변용에서 선을 구하고 희망을 찾게 된다.

 

P321 디오게네스는 욕망에서 해방됨으로써 덕과 도덕적 자유를 얻으려 했다. 행운이 따라야 얻게 되는 좋은 것들에 냉담해져라. 그러면 두려움을 떨치고 해방되리라.

 

디오게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시대에 살았지만, 제시한 학설에서 풍기는 기질은 헬레니즘 시대에 속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을 밝게 바라본, 그리스의 마지막 철학자이다. 이후 철학자들은 모두 이런저런 형태로 은둔 철학을 내놓았다.

 

P323 회의주의는 헬레니즘 시대에 출연한 여느 학설과 마찬가지로 근심을 떨쳐버리게 하는 해독제로서 권장되었다. 앞날에 일어날 일을 왜 걱정하겠는가? 미래는 불확실할 따름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불확실하니차라리 현재를 즐기는 편이 낫다. 이 때문에 회의주의는 적지 않는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P334 인간이 크나큰 고통 속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주장을 최초로 한 사람은 스토아학파가 아니라 바로 에피쿠로스였다.

 

P367 사실 스토아 철학에는 신 포도의 요소가 존재한다.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지만, 선해질 수는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선한 사람이라면 불행이란 문제가 되지 않는 척해보자는 말이다. 이 학설은 영웅주의를 보여주며, 불온한 세계에서는 쓸모도 있다. 그러나 결코 진실한 학설이 아니며, 근본적인 의미에서도 결코 진지한 학설이 아니다.

 

P369 로마 제국은 다방면에 걸쳐 각각 다른 방식으로 문화사에 영향을 미쳤다. 첫째는 로마가 헬레니즘 사상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이다. 이 영향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깊숙이 파고들지도 못한다. 둘째는 그리스와 동방 세계가 로마 제국의 절반을 차지한 서방 지역에 미친 영향이다. 이 영향은 그리스도교를 포함했기 때문에 깊고도 지속적인 것이었다. 셋째는 문화를 널리 보급하고 사람들이 단일 정치와 결합된 단일 문명이란 생각에 익숙해지도록 기여한 로마의 오랜 평화기가 갖는 중요한 가치이다. 넷째는 헬레니즘 문명을 이슬람교도들에게 전하고, 마침내 서유럽에 전달한 역할이다.

 

P371 그리스 정치 체제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원인은 두 가지였다. 첫째 원인은 도시마다 절대 주권을 주창한 것이고, 둘째 원인은 도시들 대부분의 내부에서 부자 계층과 빈자 계층 간에 벌어진 가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투쟁이다.

 

P374 정력이 넘치는 두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세기 312년부터 337년까지 군림한 것이 분명한 콘스탄티누스가 제국의 몰락을 막아내었다. 두 황제 때문에 로마는 동쪽과 서쪽으로 절반씩 나뉘게 되었고, 이는 대략 그리스어권과 라틴어권의 구분에 상응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동쪽 절반 지역의 수도를 비잔티움에 세우고, 콘스탄티노플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불렀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한동안 군대의 지위체계를 바꿈으로써 군대를 제어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 이후 가장 유능한 전투 병력은 야만인들, 주로 게르만 민족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에게도 모두 최고 지휘관 자리가 개방되었다.

 

P377 공인된 철학 학파들, 아카데미 학원, 페리파토스 학원, 에피쿠로스 학원, 스토아 학원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폐쇄할 때까지 존속했다.

 

P382 본질적인 측면에서든 관념 속에서든, 로마인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은 로마 제국은 세계적인 나라였다. 이러한 개념이 교회 조직에 전해져 불교도와 유교도와 후에 이슬람교도가 존재하는데도 가톨릭(보편적인이란 뜻)’ 교회라 부르게 되었다. 온 세계의 판단은 확고하니라라는 금언은 후기 스토아학파의 학설을 구현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이다. 이 금언은 분명히 로마 제국의 보편성에 호소하고 있다.

 

P404 내가 사용할 가톨릭 철학이란 말은 아우구스티누스부터 르네상스가지 유럽 사상을 지배한 철학을 의미한다.

 

P407 가톨릭 철학의 위대한 제1기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이교도의 대표 격인 플라톤이 지배한다. 2기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지배하는데,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의 후계자들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 보다 훨씬 중요하다.

 

P412 후기 로마가 야만인들에게 넘겨준 그리스도교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 첫째 요소는 철학에서 유래한 몇 가지 믿음으로, 주로 플라톤과 신플라톤 학파 철학자들에게서 비롯되지만 일부는 스토아 학파에서도 유래했다. 둘째 요소는 유대인들에게서 유래한 도덕 개념과 역사 개념이다. 셋째 요소는 대체로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특징이라 할 만한 몇 가지 이론, 특히 구원 이론으로, 일부는 오르페우스교와 근동 지역의 유사한 이교 종파에서 유래한다.

 

P413 유대인들은 구세주가 현세의 번영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여기 지상의 적들에 맞서 승리를 거둘 것이라 믿었다. 게다가 구세주는 장차 나타날 분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스도교도에게 구세주란 역사 속에 등장한 예수로서 그리스 철학의 로고스와 동일시되기도 했다. 또 구세주를 따르는 자들이 적들에게 승리를 거둘 곳도 지상이 아니라 천국이었다.

 

P414 우선 야훼는 이스라엘 백성을 각별히 보살피는 부족 신이었을 뿐이고, 다른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으며 다른 신을 숭배하는 관습도 인정했다.

 

P417 유대 민족과 다른 고대 민족을 구별하는 특징은 유대인들이 보여준 불굴의 민족적 긍지였다. 다른 민족들은 모두 정복을 당하면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으로도 복종하곤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유독 민족적 탁월성을 계속 믿으며, 자신들이 겪는 불행이 신앙과 종교의식의 순수성을 잃은 탓에 신의 노여움을 샀다고 확신했다.

 

P425 유대교도는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 죄에 대해 많이 생각했으나, 그들 자신을 죄인이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스스로 죄인이라 생각하는 태도는 주로 그리스도교의 혁신을 통해 나타났으며, 바리새파와 세리의 비유로 도입되어, 율법 학자와 바리새파를 책망한 그리스도의 설교에서는 덕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스도교도는 그리스도교의 겸손을 실천하려 노력했으나 유대인은 대개 겸손을 덕으로 여기지 않았다.

 

P430 그리스도교는 처음에는 유대교의 개혁을 목표로 유대인이 유대인에게 설교한 가르침이었다. (중략) 그리스도교는 성 바울로 덕분에 이방인들이 동화되기 너무 힘든 특징을 과감이 버리면서도 유대교 교리의 매력적인 요소를 보유하게 되었다.

 

P432 예수를 신이 아니라 예언자로 인정한 무하마드는 예언자들의 결말이 나빠서는 안된다는 식의 계급 감정을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가현설(예수의 육체는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봄)을 받아들였는데 이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건은 단지 환영에 지나지 않는데도 유대인과 로마인이 그런 환영에 현혹될 만큼 무능하고 무지해 쓸데없는 보복을 했다는 것이다. 그노시스주의의 일부는 이렇게 이슬람교의 정통 교리에 편입되었다.

 

P443 서방 교회의 박사로 불리는 네 사람은 성 암브로시우스, 성 히에로니무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이다.

 

P448 암브로시우스가 보여준 힘의 근원은 민중의 지지였다. 그는 민중을 선동한다는 비난을 듣자 이렇게 응수했다. “민중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것은 내 권한에 속하지만 민중을 조용하게 만드는 것은 하느님의 손에 달려있다.”

 

P450 히에로니무스는 주로 오늘날까지 가톨릭의 공인 성경 판복인 불가타 성서의 번역자로 유명하다. 히에로니무스의 시대 이전 서방 교회는 구약성서를 70인 성서 번역본에 의존했는데, 히브리어 원본과 중요한 점에서 차이가 났다.

 

P458 가톨릭교는 교회를 강조하고 개신교는 개인의 영혼을 강조했으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사상 속에서 두 분야가 동등하게 조화롭게 공존한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신이 미리 구원하기로 정해둔 자들이다. 이로써 영혼은 신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세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의 일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로써 교회는 영혼과 신을 중개하는 매개자가 된다.

 

P464 대체로 말하자면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 학파에 속한 철학자의 책 속에서 형이상학적인 로고스 학설을 찾아 냈으나 육화 교리와 그것에 당연히 뒤따르는 인간 구원 교리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P466 아우구스티누스의 답변을 이해하려면 우선 구약성서에서 가르친 로부터 이루어진 창조가 그리스 철학과 섞이기 어려운 이질적인 사상이었다는 논점을 파악해야 한다.

 

P467 신이 자신의 시간 창조에 앞서 존재하지 못하는 까닭은 시간 창조에 앞서 존재할 경우 신이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뜻일 텐데, 사실 신은 시간 흐름 밖에서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P468 시간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활동의 한 국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론은, 이미 살펴보았듯이 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 시대 이후 고대 세계에서 점차 증가했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주관주의이다.

 

P469 <신국>은 중세 시대를 관통하여 지대한 영향을 미친 책으로, 교회가 세속 군주들과 투쟁하는 경우에 특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P474 악한 의지는 결과를 낳는 원인이 아니라 결핍을 일으키는 원인일 뿐이다. 다시 말해 악한 의지는 결과를 산출하는 힘이 아니라 결핍에 지나지 않는다.

 

P484 테오도리쿠스는 니벨룽겐의 노래에서 디트리히 폰 베른(베른은 베로나를 가리킴)으로 등장한다.

 

P485 키릴루스가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편협한 신앙의 시대에도 신플라톤 학파를 신봉하며 수학에 자기 재능을 바쳤던 뛰어난 여성 학자 히파티아에게 사적 형벌을 가한 사건이다. 그녀는 마차에서 끌어내려져 벌거벗겨진 채 교회까지 질질 끌려가 낭독자 페트루스와 야만스럽고 무자비한 광신도들에게 무참히 도살당했다.

è  철학사에서 여성 철학자를 찾기란 정말 어렵다. 히파티아란 이름이 반가웠는데 가혹한 형벌로 목숨을 잃었다니 안타깝다.

 

P485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 안에 두 가지 위격, 곧 인격과 신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네스토리우스는 이를 근거로 성처녀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로 부르는 새로운 관례에 반대했다. 그는 성처녀 마리아는 인격의 어머니일 뿐이므로 신격에는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P487 6세기 문화사에 이름을 남긴 중요한 인물 네 사람은 보이티우스, 유스티니아누스, 베네딕투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이었다.

 

P495 6세기 이후 수세기에 걸친 끝없는 전쟁으로 문명이 전반적으로 쇠퇴하던 시기, 무엇보다도 교회는 살아남은 고대 로마 문화를 보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다루는 시기에 나타난 교회의 세 가지 활동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수도원 운동이다. 둘째는 교황 체제의 영향, 특히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의 재위 시절에 두드러진 영향이다. 셋째는 선교를 통한 이교도 야만족들의 개종이다.

 

P552 예언자 무하마드가 세운 종교는 정교한 삼위일체설이나 육화 신학으로 뒤얽히지 않은, 단순한 일신교였다. 예언자 무하마드는 자신을 신이라 주장하지도 않았고, 그를 따르던 신도들이 자기를 신이라 주장하지도 못하게 했다. 그는 조각한 우상의 숭배를 금지하는 유대인의 풍습을 부활시켰으며 포도주 사용도 금지했다. 신자들의 의무는 이슬람교의 확장을 위해 가능한 한 세계의 더 많은 지역을 정복하라는 명령을 이행하는 일이었으나, 그리스도교도를 비롯하여 유대교도나 조로아스터교도, 즉 쿠란에서 경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라 부른 성서의 백성을 박해하지 않았다.

 

P553 661년 무하마드의 사위 알리가 죽은 뒤 이슬람교도는 두 종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었다. 수니파가 더 큰 종파이고, 시아파는 알리를 계승했으며, 그리하여 우마이야 왕조를 칼리프 직위 찬탈자로 여긴다. 페르시아인은 오랫동안 시아파에 속했다.

 

P591 토마스 아퀴나스는 스콜라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 생각된다.

 

P593 아퀴나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목적은 가톨릭교의 신앙이 공언하는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자연 이성을 수단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이교도가 성서의 권위를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 이성은 신의 일을 아는 데는 부족하여, 신앙의 어떤 부분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다른 부분은 입증하지 못햔다.

 

P595 <신학대전>에서는 다섯 가지 신 존재 증명이 제시된다. 첫째, 위에서 말한 부동의 원동자 논증이다. 둘째, 1원인 논증으로서 다시 한 번 무한 후퇴의 불가능성에 의존한다. 셋째, 모든 필연성의 궁극적 기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논증이다. 이것은 둘째 논증과 거의 같은 논증이다. 넷째, 우리가 세계에서 여러 가지 완전한 것을 발견하고, 이 완전 것들이 완벽하게 완전한 무엇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는 논증이다. 다섯째, 생물만이 내부에서 생겨나는 목적을 가질 수 있으므로 목적이 외부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무생물조차 어떤 목적에 이바지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발견한다는 논증이다.

 

P597 신은 만물을 동시에 이해한다. 신의 인식은 습관이 아닐 뿐만 아니라 추론적 지식이나 논증적 지식도 아니다. 신은 진리 자체이다.

 

신이 미래에 우연히 일어날 일을 아는 까닭은 시간 속의 각 사물을 마치 현재에 있는 것처럼 보지만, 신 자신은 시간 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P602 신을 아는 세 가지 길이 있는데, 이성으로 통하는 길과 계시로 통하는 길, 그리고 오직 계시로 미리 알려진 중요한 것을 직관함으로써 통하는 길이다.

 

P605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도자들은 전반적으로 도미니코 수도회 수도자들보다는 덜하지만 나무랄 데 없는 정통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켰다. 두 수도회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서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도자들은 성 토마스의 권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 사람은 로저 베이컨, 둔스 스코투스, 오컴의 윌리엄이다. 성 보나벤투라와 아쾨스파르타의 마태오도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P606 로저 베이컨은 지리에 관한 좋은 글을 남겼다. 콜럼버스는 베이컨 저작의 지리 관련 부분을 읽고 영향을 받았다.

 

P612 황제를 만난 오컴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황제께서 검으로 저를 지켜주신다면, 저는 펜으로 황제를 지켜드리겠습니다.”

 

단체는 황제와 교황을 독립된 존재로 보며, 둘 다 신이 내린 직위라 생각한다. <신곡>에서 그가 묘사한 사탄은 입이 세 개이며, 각 입으로 유다와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끊임없이 씹고 있는데, 세 사람은 모두 반역자로서 첫째 사람은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다른 두 사람은 카이사를 배반했다.

 

P615 오컴은 정작 그의 저작에서 발견되지 않지만 오컴의 면도달이란 이름을 얻은 격률로 유명하다. 격률에 따르면 존재들은 필요 없이 늘어나서는 안 된다오컴은 이 격률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똑 같은 효과를 내는 말을 했다. “더 작은 수로 할 수 있는 일을 더 큰 수로 하는 짓은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만약 어떤 과학 안에 포함된 무엇이든 가설로 도입한 이런 존재나 저런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도 해석할 수 있다면, 그것을 가정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P638 근대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특징은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 과학의 권위가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근대 문화는 성직자보다 속인의 삶과 관계가 더 깊다. 국가의 힘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문화를 조정하는 정부 권력 기구가 교회를 대체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P642 고대 세계는 로마 제국이 무정부 상태에 빠져들면서 종말을 맞았으나, 로마 제국은 이상이 아니라 냉엄한 현실로 존재했다. 가톨릭 세계는 교회를 통해 무정부 상태를 종결시키려 했지만 교회는 이상으로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결코 구현되지 못했다. 고대식 해결도 중세식 해결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전자는 이상이 되기 어려워 만족스럽지 않고, 후자는 현실이 되기 어려워 만족스럽지 않다.

 

P655 사보나롤라의 비참한 최후는 그에게 깊고 분명한 인상을 남겨서, 마키아벨리는 무장한 예언자는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으나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정치적으로 패배했다는 논평을 하기도 했다. 그는 실패한 예언자의 부류에 속한 인물로서 사보나롤라를 꼽으며, 다른 쪽 부류에는 모세, 키루스, 테세우스, 로물루스를 꼽았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술인 <군주론> 1513년에 집필하여 로렌초 2세에게 바쳤는데, 메디지 가문의 호의를 얻으려는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군주론>은 공국들이 어떻게 정권을 쟁취하고 유지하며 잃게 되는지를 역사와 당대에 일어난 사건들 속에서 찾아내려는 저술이다.

 

P657 마키아벨리가 당시 교회에 가한 비판의 핵심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교회가 악행으로 말미암아 종교적 신앙을 훼손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교황의 지상권이 거기서 비롯된 정책과 맞물려 이탈리아의 통일을 방해했다는 점이다.

 

P658 <군주론>은 이탈리아를 야만인들(프랑스인들과 스페인인들)의 악취 나는 지배에서 해방시켜달라고 메디치 가문에 요구하는 웅변적 호소로 끝난다.

 

P659 <군주론>은 통치자의 행동과 관련된 기존의 도덕을 명백히 거부한다. 통치자가 늘 선하게 행동한다면 비명횡사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군주는 여우처럼 교활하고 사자처럼 맹위를 떨쳐야 한다.

 

그는 이어서 무엇보다 군주는 종교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P661 권력은 자유로운 경쟁 속에서 권력을 잡을 만한 기술에 능통한 자를 위해 존재한다. 마키아벨리는 대중의 인기를 얻는 정부를 선호하는데, 이는 권리의 개념에서 비롯되지 않고 대중의 인기를 얻은 정부가 전제 정부보다 잔인성, 비도덕성, 변덕의 정도가 덜하다는 현실적인 관찰에서 나온 결론이다.

 

P662 결국 핵심은 바로 권력이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떤 종류든 권력이 필요하다. 이런 평범하고 분명한 사실은 정의가 이긴다다시 말하면 악은 승리해도 오래 가지 못한다는 표어에 묻혀 버린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이 이긴다 해도, 그것은 그쪽의 힘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P733 스피노자는 위대한 철학자들 가운데서 고결한 품성을 갖춘 매력 넘치는 인간이다. 지적인 면에서 그를 능가할 철학자가 몇 사람 있지만, 윤리적인 면에서는 아무도 따르지 못할 최고 수준에 이른 철학자이다.

 

P736 스피노자에 따르면 모든 일은 절대적이고 논리적인 필연에 따라 정해진다. 정신 영역의 자유의지나 물질계의 우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P738 스피노자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처럼 그른 행위는 모두 지적인 과오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한 사람은 현명하게 행동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는 불행으로 여겨질 일에 닥쳐서도 행복해할 줄 안다.

 

P741 “신에 대한 사랑이 정신 영역에서 최고로 중요한 차지해야 한다는 말은 본래 도덕덕인 훈계가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듯이 반드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에 대한 설명이다.

 

P742 정신의 불건전함과 불행은 대체로 변하기 쉬운 대상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데서 생긴다.

 

P746 그런데도 당신의 운명이 인류의 범상한 운명보다 더 비참한 역경을 참고 견디어낼 수 밖에 없는 처지라면, 우주 전체를 생각하거나 아니면 당신의 슬픔보다 더 큰 문제를 생각하라는 스피노자의 원리는 유익한 교훈이다. 악과 고통으로 가득한 인생을 우주적 차원의 생명에 속한 극히 작은 일부로 생각하면,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사색은 하나의 종교를 구성하기에는 불충분할지 몰라도, 고달픈 세상에서 제정신 차리고 사는 데 힘을 보태며, 아득한 절망의 늪에 빠져 무기력해진 경우에는 무력감을 치유할 해독제가 되기도 한다.

 

P474 대중에게 알려진 라이프니츠가 바로 이 세계는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 최선의 세계라는 학설을 창안한 사람이다.

 

P748 미적분을 누가 먼저 고안했는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은 양측(뉴턴과 라이프니츠) 모두에게 발행하고 망신스러운 일이었다. (중략) 결혼하는 신부가 고맙게 여겼는지에 대해 역사는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P749 그는 죽을 때까지 1009해에 이른 역사를 기록했는데, 1843년에 비로소 출판되었다.

 

P750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데카르트나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실체 개념에 근거하지만, 정신과 물질의 관계나 실체의 수에 관해서는 그들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데카르트는 세 종류 실체, 즉 신과 정신과 물질을 인정했고 스피노자는 신만을 실체로 승인했다.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연장이 물질의 본질인데 반해, 스피노자의 철학에서는 연장과 사유가 둘 다 신의 속성이다. 라이프니츠에 다르면 연장은 실체의 속성이 되지 못한다. 그 까닭은 연장이란 나뉘기도 하는 복합물의 특징이므로 실체들로 구성된 복합물에만 속하고, 각 단일 실체는 연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단자라는 무한 수의 실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중략) 라이프니츠는 물질의 실재성을 부인하고 물질을 영혼들의 무한 집합으로 대체했다.

 

P752 존재론적 논증의 내용을 상세히 검토하기 전에, 근대 이후 신학자들이 더는 존재론적 논증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중세 신학은 그리스 지성의 파생물이다. 구약성서의 신은 권능의 신이요, 신약성서의 신은 사랑의 신이지만, 신학자들의 신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칼뱅에 이르기까지 지성에 호소한 신이다. 그러니까 신의 존재는 우주에 대한 이해를 표현하는 논증 과정에서 생긴 특정한 난점을 해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말이다.

 

라이프니츠가 신의 존재를 증명한 논증은 네 가지인데 1 존재론적 논증, 2 우주론적 논증, 3 영원한 진리에 의한 논증, 4 예정 조화에 의한 논증이다.

 

P753 라이프니츠의 증명은 신을 가장 완전한 존재, 즉 완전한 것들을 전부 소유한 주체로 정의하며 완전한 것은 긍정적이고 절대적이며, 그것이 표현하는 무엇이든 아무 제한 없이 표현하는 단순 성질로 정의한다.

 

P757 라이프니츠 철학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여러 가능 세계가 존재한다는 학설이다.

 

P775 로크는 마땅히 경험주의 인식론자뿐만 아니라 철학적 자유주의자로도 다루어야 한다.

 

P784 아직까지 아무도 신뢰성과 일관성을 동시에 갖춘 철학을 세우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로크는 신뢰성을 자기 철학의 목표로 삼았으며, 목표에 이르려 일관성을 포기했다. 위대한 철학자들은 대부분 로크와 반대로 일관성을 위해 신뢰성을 포기했다. 그러나 일관성 없는 철학은 논리적인 면에서 완벽하게 참될 수 없을 뿐이지만, 일고나성을 갖춘 철학은 신뢰성의 측면에서 보면 완전히 헛것이 될지도 모른다. 가장 풍성한 결실을 맺은 철학 체계는 하나같이 눈에 거슬리는 비일관성을 분명히 포함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참된 내용을 담기도 한다. 모순을 포함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참된 내용을 담기도 한다. 모순을 포함하지 않는 일관된 체계가 로크의 체계처럼 다소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체계보다 더 많은 진리를 포함한다고 가정할 근거는 없다.

 

P786 자유는 참된 행복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필연성과 정념 통제에 좌우된다.

 

P788 우리는 오로지 쾌락을 욕구한다. 하지만 사실상 많은 사람은 쾌락 자체가 아니라 가까운 쾌락을 욕구한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쾌락 자체를 욕구하기 때문에 악하다는 학설과 모순을 일으킨다.

 

P870 루소는 낭만주의 운동의 시조이자 인간의 감정에서 인간성에 위배되는 사실을 추론한 사상 체계의 창시자이며, 전통적인 절대 군주제에 대립하는 유사 민주주의적 독재정치를 옹호한 정치철학을 고안한 사상가였다. (중략) 현대에 와서 히틀러는 루소의 후예로, 루스벨트와 처칠은 로크의 후예로 평가된다.

 

P876 루소는 미묘한 감정을 표현한 편지를 볼테르에게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저는 당신이 밉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당신이 원했다면 나는 기꺼이 당신을 사랑했을 것입니다. 당신을 향한 내 마음에 가득 찬 모든 감정 가운데 거부할 수 없어 남아 있는 것은 당신의 뛰어난 재주에 대한 탄복과 당신의 저술들에 대한 애착뿐입니다. 만약 당신의 재주 이외에 내가 존경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해도, 그것은 나의 잘못은 아닙니다.

 

P882 루소에 따르면 민주정치는 작은 국가에 가장 적합하고, 귀족정치는 중간 정도 규모의 국가에 가장 적합하며, 군주정치는 큰 국가에 최선인 정치체제라고 말했다.

 

P883 자유는 루소 사상의 명목상의 목표였고, 사실 그가 진심으로 높이 평가하며 자유를 희생시켜서라도 지키려 한 가치는 평등이다.

 

P910 19세기의 반항은 매우 다른 두 가지 형태로 등장했는데, 하나는 낭만주의적 반항이고 다른 하나는 합리주의적 반항이다. 낭만주의적 반항은 바이런, 쇼펜하우어, 그리고 니체를 거쳐 무솔리니와 히틀러까지 이어진다. 합리주의적 반항은 프랑스 혁명기의 프랑스 계몽철학자들과 더불어 시작되며 얼마간 완화된 형태로 영국의 철학적 급진파에게 전해지고, 그 다음에 마르크스의 사상 속에서 더욱 심화되고 난 뒤 소련에 유포되었다.

 

P921 인간이 지닌 힘의 한계를 보여 준 믿음을 대표하는 몇몇 개념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 중요한 개념 두 가지가 바로 신과 진리이다.

 

P924 헤겔 철학은 난해하며 위대한 철학자들 전부를 통틀어 가장 이해하기 힘든 철학이다.

 

P925 다소 유사한 형이상학적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다른 사상가들과 헤겔을 구별하는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논리학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헤겔은 실재의 본성을, 실재는 자기 모순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단 한 가지 원칙을 참고하여 연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특징은 첫째 특징과 밀접하게 관련된, ‘변증법이라는 3단계 운동이다.

 

헤겔이 이해한 논리학은 형이상학과 동일한 학문으로, 이것은 보통 말하는 논리학과 아주 다르다.

 

P928 헤겔은 이성은 실재하는 모든 존재에 대한 의식의 확실성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개별적인 어떤 사람이 실재 전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자신의 개별성 안에서는 전혀 실재하지 않지만, 그 사람 안에 실재하는 요소는 전체인 실재에 참여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가 더욱 이성적인 존재가 되는 정도에 비례하여 실재 전체에 참여하는 정도는 증가한다.

 

P929 나는 헤겔 자신의 형이상학에 기초한, 즉 세계의 역사가 변증법의 이행 단계들을 반복한다는 견해에 대해 정당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 그렇긴 해도 바로 이것은 헤겔이 <역사철학>에서 전개한 논제로서, 충분히 흥미를 끌 만하며 인간 역사를 통해 일어난 혁명적 사건들에 통일성과 의미를 부여한다.

 

P931 독일 정신은 새로운 세계정신이다. 독일 정신의 목표는 자유를 무제한으로 스스로 규정해나가는 절대 진리의 실현이며, 자신의 절대 형식 자체를 목적으로서 갖는 자유이다.

 

P952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의 길을 택했지만, 다른 철학자들은 대부분 어떤 의미로든 낙관주의의 길을 걸었다. (중략)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철학을 형성하게 된 세 원천이 칸트, 플라톤, 우파니샤드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가 스스로 생각한 만큼 플라톤의 사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P956 우주의 의지는 사악하다는 말이다. 요컨대 의지는 사악하거나 적어도 우리가 겪는 끝없는 고통의 근원이다. 고통은 모든 생명에 도사린 본질적인 요소이며 지식이 더 해질 때 마다 고통의 양도 증가한다.

 

P959 쇼펜하우어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두 가지로 압축하면, 하나는 염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의지가 지식보다 우월하다는 학설이다. 그의 염세주의 사상은 모든 악이 설명되어 사라질 수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지 않고도 인간이 철학에 몰두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이것은 염세주의가 해독제로서 유용하다는 뜻이다.

 

P961 니체는 존재론이나 인식론 분야에서 전문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이론을 형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선 윤리학의 측면에서 중요한 인물이며, 다음으로 예리한 역사 비평가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P962 다툼 이후 니체는 바그너를 맹렬히 비난하다 못해 유대인이라고 고발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니체의 사상은 <니벨룽겐의 반지>에 나타난 바그너의 견해와 흡사했다. 니체의 초인은 그리스어를 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지크프리트와 유사하다. 참으로 이상야릇해 보이지만 내 탓을 아니다.

 

P963 니체와 마키아벨리는 둘 다 권력을 지향하고 계획적으로 그리스도교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 윤리학을 세우지만, 이 점에서는 니체가 더 솔직한 편이다. 마키아벨리와 체사레 보르자의 관계는 니체와 나폴레옹의 관계와 같은데, 위대한 자는 열등한 적대자들에게 패배를 당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P964 니체는 선의 승리와 악의 근절을 목표로 삼는 일을 의무라고 보게 되면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선의 승리와 악의 근절을 의무로 보는 견해는 영국적인 전통에 속하며 얼간이 존 스튜어트 밀이 전형적인 인물인데, 니체는 특히 악의에 차서 밀을 경멸한다.

 

P965 작은 민족들 전부가 당하는 불행을 다 합쳐도 의지가 강한 자들이 느끼는 불행의 총량에 미치지 못한다.

 

P966 니체의 윤리학이 응용된 두 가지 경우는 주목할 만한데, 하나는 여성을 경멸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교를 지독하게 비판한 경우이다.

 

P969 그렇지만 니체 사상에는 과대망상 환자의 말이라고 간단히 치부해도 좋은 부분이 많다. (중략) 니체의 여성관은 여느 남성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여자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 훤히 드러나는 두려움의 감정을 객관화한 결과이다.

 

니체가 그리스도교의 사랑을 비난한 까닭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970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일을 하게 되리라. 그리하여 이 땅에 공포를 불러오리라.

 

P976 내가 니체를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그가 고통에 대해 숙고하기를 좋아하고, 기만을 의무로 세우며, 그가 찬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복자들로서 평범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영리함을 명예로 삼기 때문이다.

 

P989 헤겔 철학의 영향으로 형성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유물론은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 전통적인 유물론과 달랐으며, 오늘날 도구주의라 불리는 사상에 더 가까웠다. (중략) “인간이 사고를 통해 객관적 진리를 파악하느냐 파악하지 못하느냐는 이론의 문제가 아닌 실천의 문제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사유의 진리, 다시 말하면 사유의 현실성과 힘은 실천을 통해서 증명되어야 한다. 사유의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둘러싼, 실천과 유리된 논쟁은 단순히 현학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자들은 단지 여러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과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일이다.

 

P990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은 헤겔과 영국 고전 경제학이 뒤섞여 형성된다. 그는 헤겔처럼 세계는 변증법적인 정칙에 따라 발전한다고 생각하지만, 발전의 원동력에 대해서는 헤겔과 의견이 완전히 다르다. 헤겔은 정신이라는 신비적 존재가 <논리학>에서 제시된 변증법의 여러 단계에 따라 인간의 역사가 발전하도록 이끈다고 믿었다. (중략) 마르크스에 따르면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 추진력이다. 그러나 물질은 인간적 요소가 완전히 말살된 원자론자들의 물질이 아니라 우리가 고찰해온 독특한 의미를 갖는 물질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에게서 추진력은 실제로 인간이 물질과 맺는 관계이며, 그러한 관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생산 양식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실질상 경제학이 된다.

 

P991 대체로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철학은 도시국가에 적합한 사고방식을 표현했다고 말해도 좋다. 스토아 철학은 세계적인 전제정치에 알맞고, 스콜라 철학은 교회 조직의 지배를 지성의 힘을 표현한 산물이며, 데카르트 이후나 적어도 로크 이후 철학은 상업에 종사하는 중산층의 편견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경향이 짙었다. 또 마르크스주의와 파시즘은 현대 산업국가에 적합한 철학인 셈이다. 내 생각에 이것은 사실이고 또 중요한 점이다. 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마르크스의 판단을 틀렸다. 첫째, 설명되어야 할 사회 상황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얽혀 있다. 사회 상황은 권력에 좌우되며 부는 권력의 한 형태일 뿐이다. 둘째, 사회적 인과관계는 대개 세부적이거나 전문적인 문제에 이르게 되면 효력을 상실한다.

 

P993 관습상 철학은 두 가지 다른 요소로 이루어진다. 한편에는 과학적 문제나 논리적 문제가 있고, 이 문제들은 사람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방법에 따라서 해결된다. 다른 한편에는 많은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관심을 표명하지만 어떻든 확실한 증거를 대기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 후자에 속한 문제들 가운데 무관심할 수만은 없는 실천적 문제들이 포함된다.

 

P994 순수하게 철학자로 고찰하면 마르크스에게는 심각한 결점이 있다. 그는 지나치게 실천에 치우치고 당대 문제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휘둘리고 말았다. 그의 시야는 지구라는 이 행성에, 그것도 지구 안의 인간에게 국한되었다.

 

3.    내가 저자라면

 

솔직히 책을 다 읽지 못했다. 그리고 읽은 부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서양의 지혜>를 읽어 대략적인 흐름은 보이는데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해서는 읽어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러셀의 책을 쓰는 과정이다. 그가 책을 쓸 때는 우선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하나하나 알아간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다른 내용이 서로 연결되면서 전체 윤곽을 파악하게 되고 그 다음에 파악한 내용을 적어 내려간다고 한다. 나도 나의 주제에 대해서 탐구하다 보면 전체의 그림이 한 눈에 들어오고 이에 대해서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서양철학사>에 비해서 중요한 철학사조와 철학자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어 도움이 되었다. 관심이 있는 철학자에 대해서 찾아 읽기도 좋다. 또한 철학 사조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있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기에 큰 도움이 된다. 번역 또한 유려하게 되어 있어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또한 가끔씩 보이는 러셀의 유머도 읽은 재미를 더해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더구나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 이해하기는 불가능한 책이다.

 

러셀은 이 책에서 각각의 철학자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솔직하게 언급한다. 니체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며 스피노자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다. 이러한 평가가 독자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자칫하면 철학자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니체에 대해서는 의외로 부정적인 언급이 많아 다소 놀랐다. 사부님이 인용하는 니체의 말들은 너무나 멋스럽고 아름다워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말이다. 니체에 대한 책은 다시 한 번 읽어 봐야겠다. <서양의 지혜>도 그렇지만 논리 분석철학을 끝으로 최신 사조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다소 아쉬웠다. 김용규 선생님께 들은 하이데거의 사상에 대해서 궁금했는데 너무 최근 철학자여서인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제 나의 주제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으니 인정’ ‘경쟁등의 키워드를 염두하고 책을 봐야겠다. 철학자 중에는 누가 이런 주제에 대한 언급을 했던가?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다음 주 필독서인 <철학이야기>에서 그 답을 열심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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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북No.12 –괴테 자서전 '시와 진실' file [4] 유재경 2011.06.19 4655
3 북 No.34 - 구본형의 글로벌 경영전략, 코리아니티 file [2] 유재경 2011.12.19 4762
2 북 No.32 - 신영복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file 유재경 2011.12.04 6064
1 북No.2 -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1,2' file [8] [3] 유재경 2011.04.12 7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