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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2일 11시 23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러셀의 사상과 사회적 활동

나는 오랜 세월 평화를 바래왔다.

그러나 내가 발견한 것은 마음을 어둡게 하는 듯한 혼미요,

광기이고, 허전함이며,

고독의 괴로움이었다.

 

그러나 늙은 나이 인생 만년에

나는 당신을 알게 되었다.

당신을 알고 비로소

나는 희열과 평화를

둘 다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고독한 세월을 겪고 나서,

휴식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고,

생명과 사랑이 무엇인가도,

이제 내가 혹시 잠이 들게 된다면,

틀림없이 흡족하게 자게 되리라.

 

1967년 러셀이 95세를 맞이하여 쓰는 자서전 머리말에 그의 아내에게 바치는 글이다. 이 짧은 시에서 러셀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그가 평생을 평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노력만큼의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 그의 열정이 듬뿍 담긴 광기, 혹은 천재성이 폭발적으로 분출되었지만, 아마 주변이들이 러셀의 그런 에너지를 따라오지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외롭고 고독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러셀의 친구>

러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친구가 있다. 케임브리지 시절 그를 철학에 관심을 갖게 해 준 맥태거트가 있다. 러셀보다 6살 연상이었고, 러셀보다 더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성격이었다. 당시 맥태거트는 헤겔철학의 신봉자로 정열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러셀이 무어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영국철학의 새 경향을 받아들이면서 맥태거트와는 사상적으로 멀이지게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와의 만남>

결혼 후 러셀은 아내의 처남인 로건을 통해 페이비언 협회 사람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경제학과 사회주의 연구를 시작한다. 당시 그의 머리에는 수학 연구와 구체인 정치학과 경제학의 연구를 종합시킬 방법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베를린에서 러셀은 사회주의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마르크스라는 사상가를 알게 된다. 그는 <자본론> 세권을 독파하는 등 2년간의 독일 사회주의 연구성과를 2896년에 <독일 사회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첫 책을 냈다. 러셀은 사회주의에 대해 동정과 이해를 가지고 있었으나 마르크스의 사고방식에 전적으로 찬성하지는 않았다. 공식주의적, 교조주의적인 사고방식과 계급투쟁이론 그 자체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러셀의 사상적 자립시대>

독일에서 영국으로 돌아와 러셀은 조용하고 간소하게 평화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매일의 스케줄을 정했다. 칸트만큼은 아니었지만, 그아 유사할 정도의 규책적인 생활이었다. 오전 중엔 수학공부와 책낭독 그리고 산책, 오후엔 처남인 로건과 크로켓 경기를 하며 놀기, 야간안 수학공부와 책낭독 그리고 역사책이나 소설 공부, 때로는 웹부부와 잡담의 생활패턴을 유지했다. 이러한 시기를 거친구 드디어 러셀의 사상적 자립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24-25세에 그는 철학과 수학에서 독창적인 학문적 기초를 쌓아올렸다. 러셀은 독일로 가기 전, 칸트와 헤겔에 마음이 배앗겨 변증법을 중시하여 그것으로 여러 과학을 종합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 여행에서 칸토르, 데데킨드, 바이어슈트라우스 등의 수학 석학을 알게 되고 칸트와 헤겔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에서 오류를 발견한다. 이로써 러셀의 나이 26세쯤 헤겔과 이별하고, 경험주의자인 무어의 철학에서 영향을 받아 연구를 다시 시작한다. 헤겔주의를 벗어난 러셀은 세상이 갑자기 기쁨으로 넘친 것 같이 느껴졌다.

<1차 세계 대전과 사상의 전환>

1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러셀은 수학과 논리학의 연구로부터 정치적, 사회적 문제 연구로 관심을 차츰 옮겨 갔다. 사상의 전환이 되고 러셀은 나는 이제야말로 전 인격을 바쳐 해야 될 일을 발견하였다. 이 일에 종사하는 대만큼 아무 주저도 없이 온 정성을 기울일 수 있는 것은 없었다.”고 회고 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적극적으로 반전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러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다른 평화주의자와의 협력이었다. ‘징병반대동뭉위원회의 멤버가 되고, 이 단체의 중심에 서서 활약을 하게 된다. 또한 양심적 징병거부를 한 사람들의 그룹과의 모임에도 참석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던 중 1916년 반전관련 팜플렛에 대한 책임을 러셀이 지고 재판에 회부되고, 그로 인한 벌금형이 부과되었다. 이 일로 인해 그의 모교였던 케이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라지에서 강사였던 러셀을 해임시켰다. 이로인해 충격을 받긴 했으나, 이후에 그는 더 열심히 반전운동을 하게 된다. 2년 뒤 1918년에는 영국정부를 러셀 특유의 비판적 시각으로 비아냥 거리는 논평을 써서 당국에 소환되어 재판을 받고, 프링크스턴 감옥으로 호송이 된다. 옥중에서도 러셀은 매일 4시간의 철학 저술, 4시간의 철학 독서, 4시간의 일반독서를 읽는 일과를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수리철학 서설>의 집필을 끝내고, 존듀이의  <실험논리학 논집>에 대한 서평을 다 썼다. 이 때 보낸 비밀 편지에 인간에게 있어 하늘을 우러러 보고 친구와 어울려 다니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강조하고, 그 문명적인 대화가 그리워 견딜 수 없다고 썼다. 그가 얼마나 고독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russel.gif

100년 가까이 살았던 러셀의 말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혹시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한 번 그와 같이 살고 싶다

그가 한 평생을 얼마나 후회 없이,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는 말이다. 스스로도 이렇게 인정할 정도로 엄청난 일을 해 내면서 평생을 살아온 버트런드 러셀. 그가 극찬했던 스피노자만큼이나 인간 냄새 물씬 풍기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스스로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살아았기에 서양철학사를 쓰면서 그 수 많은 철학자들을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참고자료>

1)     , <러셀의 생애와 사상>

2)     사진 출처 , http://www.ling.fju.edu.tw/Biosemiotics/russel.htm

 

2. 내가 저자라면

1)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

- 서론이 전체 책의 내용과 철학사의 흐름을 매우 간략하게 정리해 놓아서 좋았다. 하지만,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 영향을 끼친 인물과 시간 순서로 책을 전개하고 있다. 각 장이 넘어갈 때 다음 장에 나올 인물이나 학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정리하고 있어서 인물이나 서로에 대한 영향력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쉬웠다.

- 전체 철학사에서 비슷한 철학자들 혹은 철학파들을 반복해서 여러 번 얘기를 해주었다. 각각의 철학사들은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비슷한 영향을 주고받은 학파나 학자들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있었다.

- 각 철학자들의 생애에 대해서 이야기함으로써, 각자의 개인사가 그의 사상에 적든 많든 영향을 미친 부분을 알 수 있어 좋았다.

- 전체 페이지수는 1000여페이지로 굉장히 많지만, 굉장히 세부적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읽으면서 지루하다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하나의 주제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 집중력과 이해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2) 읽으면서 아쉬웠던 부분

- 수학, 과학에 대한 전문지식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쓴 책인데 그런 내용들이 그렇게 상세하게 나올 필요까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전반적으로 이해가 정말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특히 가톨릭 철학에 대한 부분이 이해하기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던 것 같다.

- 가톨릭 철학을 제외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써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왠지, 1000여페이지의 책을 읽고 나서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데, 알게 된 것도 많지 않은 것 같아 왠지 기분이 좀 씁쓸하다.

3) 내가 저자라면

- 지금과 같이 크게 고대철학/가톨릭철학/근현대 철학으로 나누고, 각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들과 철학사상 위주로 책을 전개해 나간 것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목차만 봐도 철학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서 굉장히 좋은 것 같다.

- 내가 저자라면-러셀이라면- 어떻게 하면 각 세부 내용들을 조금 더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쓸 수 있을까를 조금 더 고민했을 것 같다.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조금 많이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 책을 읽으면서 계속 호기심이 생겼던 부분이 있었는데, 여러 철학자와 철학사상들이 히틀러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었다. 물론 다른 유명한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지만, 히틀러에게 영향을 미친 것들 중에 낭만주의가 있어서 정말 의외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질 만한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을 하나 정해서 그것에 철학이 영향을 미치게 된 과정을 매우 상세하게 해석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인물위주로 책이 전개되고 있지만,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하나 정하고, 그에 영향을 미친 철학자나 사상들을 설명하면서 철학사의 전체 흐름을 전개해보고 싶다. 그러면 읽는 이들도 더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싶다.

 

3.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옮긴이 서문

각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와 철학적 주제를 선택하는 능력의 탁월함과 더불어 자신감 넘치는 명료한 서술이 돋보인다. 러셀에게는 어떤 철학자도 존경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단지 비판의 대상으로 등장할 따름이다.

명료성이 바로 이 책의 미덕이다.

이 책이 철학사를 다룬 다른 서적들보다 뛰어난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저자의 고유한 철학적 관점을 드러내면서 수많은 철학자의 사상을 일관되게 해석하고 비판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철학과 사상, 정치환경이 어떻게 영향ㅇㄹ 주고받으며 발전했는지 보여준다는 점이다.

러셀의 해석에 따르면 철학은 그리스 문명 속에서 처음 과학과 분리되지 않은 형태로 탄생했는데 두 가지 경향이 그리스 문화를 지배했다. 하나는 열정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경험을 중시하고 합리주의를 내세우며 다양한 사실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이다. 전자는 오르페우스교에서, 피타고라스와 플라톤, 플로티노스를 거쳐 헤브라이즘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한 축으로 편입, 후자는 헤로도토스와 이오니아 자연 철학자들을 비롯 아리스토텔레스도 포함.

러셀은 철학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철학하는 방법의 측면에서 일관성을 유지했다. 그에게 철학이란 진리 추구의 열정을 품고 기존의 모든 지식을 비판하는 활동이었으며 분석적 방법을 통해 명료하고 확실한 지식을 얻고자 노력하는 과정이었다.

<러셀 서양철학사>는 이러한 진리 탐구의 여정을 압축해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p6

철학은 철학자가 몸담고 있는 사회,정치상황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한다.

일정한 시기에 사회 통합에 기여한 철학도 사회,정치 환경이 바뀌면 영향력이 약해져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다른 철학이 형성되면서 기존 철학을 대체한다.

근대 철학 :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은 스콜라 철학을 지적으로든 도덕적 또는 정치적으로든 구속으로 느꼈다. p7

17세기에 이르러 데카르트를 시작으로 개인주의와 주관주의 경향이 뚜렷한 근대 철학이 등장했다.

러셀은 이러한 경향이 일종의 광기요 바보짓이라 단언하고 건전한 철학이라면 이에 대한 해독제를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셀이 제시한 해독제는 합리적 회의주의자의 태도로 사태를 직시하고,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사회를 다듬고 재편해 나가자는 것이다.

철학하는 사람은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갑자기 깨닫는 순간에 지적 희열을 느낀다. p8

지은이 서문

여러 저자가 공동작업을 할 때는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잇다. 역사의 변화 과정에 통일성이 있으며, 먼저 일어난 일과 나중에 일어난 일이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하자. 이 점을 밝혀내려면 먼저 일어난 일과 나중에 일어난 일이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하자. 이 점을 밝혀내려면 앞선시기와 나중 시기를 한 사람의 정신 속에서 종합해야 한다 p9

각자 처한 사회 상황과 각 시대의 정치와 제도의 결과물이자 후대 정치와 제도의 근간이 되는 신념 체계의형성에 기여하는 원인 제공자이다.

철학 사상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경우에는 역사적 개요를 일부나마 간략히 소개했다. p10

서론

철학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지식으로 규정하거나 확정하기 힘든 문제와 씨름하는 사변적인 측면을 포함한다.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자리 잡고 양측의 공격에 노출된 채,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 무인지대가 바로 철학의 세계이다. p17

.한 시대와 한 민족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각각에 속한 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철학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어느 정도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인간과 환경의 상호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p18

확실한 진리는 없다고 주저하며 무기력한 상태에 바지지 않고 의연히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 철학 연구자를 위해 철학이 지금도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1기 철학> 고대에 철학의 길로 들어선 후, 그리스도교가 발흥하고 로마가 몰락했을 때 신학의 영향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2기 철학> 가톨릭 교회의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는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나 절정에 이른 혼란 속에서 파국을 맞았다.

<3기 철학> 과학의 지배를 더 많이 받는 형국이다.

철학자들의 세속화 경향에 영향을 더 크게 주고 중요한 역할을 한 쪽은 교회보다는 세속 국가이다. p19

아테네의 경우 종교적 박해가 드문드문 발생했어도, 가장 살기 좋은 안정된 시기에 시민들은 도시국가가 부여한 제한에서 벗어나 놀라우리만치 색다른 자유를 누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부터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이른 6세기 반 동안, 사회 결속은 철학이나 고대 그리스의 충성심이 아니라 무력에 의해 처음에는 군사력에 의해 다음에는 조직화된 행정 권력에 의해 보장되었다.

로마 시대에 철학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20

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가 국가에 대한 의무보다 더 중대한 명령이라는 생각이다. p21

교회는 과거의 전통을 계씅한 곳이자 당대의 가장 뛰어난 문명을 대표하는 조직이 되었다. p22

정치적 혼란과 무질서의 양상은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에 나타나 있다. p24

가톨릭 교회는 세 가지 근원에서 유래한다. 성스러운 역사는 유대교에서, 신학은 그리스 사상에서, 지배 방식과 교회법은 최소한 간접적으로라도 로마 법제에서 유래한다. 종교개혁은 로마적인 요소를 거부하고 그리스적 요소를 완화했으며 유대교적 요소를 강화했다. p25

또한 하나로 통일된 개신교가 아니라 개신교의 여러 종파가 갈라져 나왔다. 스콜라 철학에 대립하는 한 가지 철학이 아니라 철학자들 수만큼 많은 처락이 존재했다.

문학과 마찬가지로 사상 면에서도 주관주의가 계속 심화되어, 주관주의는 초창기 다방면으로 정신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자유를 부여했지만, 결국 건전한 사회생활에 적대적이고 해로웠으며 개인을 사회에서 분리하는데까지 거침없이 나아갔다. p26

규율주의와 자유우의의 갈등은 모습을 달리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졌고, 수세대에 걸쳐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29

자유주의 학설은 지금까지 말한 끝없이 반복되어온 동요 상태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로서 등장한다. 자유주의의 핵심은 비합리적인 교의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서 사회 p29

1권 고대철학

제1부   소크라테스 이전

제1장       그리스 문명의 발흥

철학은 탈레스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달한 초기 문명의 연원은 나일 강,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이며, 강을 중심으로 농업이 발전하고 생산량도 늘어났다.

이집트 신학과 바빌로니아 신학의 차이는 컸다.

그들(이집트인들)은 또 영혼이 결국에는 육신과 함께 지상으로  되돌아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그래서 시신을 미라로 보존하고 휘황찬란한 무덤을 축조했다. p35

크레타인들, 사후의 삶을 믿은 증거가 있으며, 이집트인과 마찬가지로 지상에 살면서 행한 일에 따라 보상이나 응보를 받는다고 믿었다. p38

이렇게 본토에서 꽃피운 문명이 바로 미케네 문명이며, 왕의 죽음을 기린 무덤과 언덕 꼭대기에 세운 요새로 유명했다.

막연한 전설로 알려진 미케네 문명은 대부분 호메로스가 묘사해 전해주었다. p39

부의 증가에 따라 신분이 높은 여성들의 고립은 오히려 심화되어, 여성들은 스파르타와  레스보스를 제외하면 그리스 문명인의 생활에서 점점 더 멀어졌다.

참주정치는 반드시 나쁜 정치를 의미하지 않고, 다만 권력의 세습이 허용되지 않는 지도자 한 사람의 지배를 의미했을 따름이다. ‘민주정치는 모든 시민에 의한 정치를 의미했지만 노예와 여성은 시민에서 제외되었다.

이는 금광이나 은광을 소유한 데서 기인하고, 그들은 새로운 화폐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더욱 큰 부를 창출했다.

처음에 거의 구별되지 않던 교역과 해적행위가 그리스인들에게 초래한 가장 중대한 결과는 문자 기술의 획득이었다. p41

호메로스의 시는 중세 후기의 궁정 소설과 마찬가지로 교양을 갖춘 귀족 계급의 관점을 대표하며, 민중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온갖 미신을 서민적이고 비속하다고 해서 무시한다. 훨씬 후대에 이러한 미신들 가운데 다시 햇빛을 보게 된 미신도 많았다.

호메로스 : 겸열관의 위치에서 고대 신화들을 정리한 18세기식 합리주의 해석자이며, 상류층에 어울리는 도시풍의 세련된 계몽적 간직했다.

쇠퇴기에 이르자 호메로스가 단호히 제거한 원시 신앙들은 고대 내내 절반만 묻힌 채 존속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종교의식은 엄청난 집단적 흥분상태를 흔히 불러왔는데, 그 안에서 분리된 개체 의식을 상실하고 스스로 전체 부족과 하나라는 일체감을 느꼈다. p43

숙명은 그리스 사상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이 자연법칙에 대한 믿음을 도출하게 된 원천 가운데 하나였다.

호메로스의 작품은 이오니아, 즉 그리스의 소아시아 일부 지역을 비롯해 인접한 섬나라들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그리스 과학과 철학, 수학도 바로 이 무렵(6세기) 형성되었다. 기원전 6세기 문화의 근원이 된 중요한 사건들이 세계 곳곳에서 줄줄이 발생했다. 만약 존재했다면, 공자와 붓다, 조로아스터도 이 시대와 속한 인물들일 것이다. p45

주신 숭배로부터 후대 여러 철학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심오한 신비주의가 발생하고, 그리스도교 신학의 형성에도 한몫을 하게 되는 도정은 충분히 주목할만하다. p47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기준을 주로 사려, 좀 더 의미가 넓은 용어를 쓰자면 예상이다. p48

사유재산 제도는 여성을 예속시키며, 노에 계급을 만들어낸다. 한편으로 사회의 공동목적이 개인에게 강요되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인생을 전체 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습관을 몸에 익힌 개인이 점점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자기 현재를 희생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p49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면, 사상의 영역에서 문명이란 대체로 과학과 동의어이다. p50

피타고라스는 오르페우스가 디오니소스교의 종교개혁가였던 것처럼 오르페우스교의 종교 개혁가였다. 오르페우스교의 특징은 피타고라스를 거쳐 플라톤의 철학에 유입되었고, 플라톤을 통해 어느 정도 종교적 색채를 띤 이후 대부분의 철학속으로 스며들었다.

피타고라스는 성의 측면에서 여자들은 본래 경건함과 더욱 가깝게 타고 났다.”고 말한다. p54

그들(그리스인)에게는 어떤 일도 너무 지나치지 않게 하라는 격언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그들은 순수 사유의 측면에서나, 시나 종교나 도덕적인 죄 같은 모든 면에서 지나치게 행동했다.

종교적 기질이 두드러진 사람은 오르페우스교를 믿었던 반면, 합리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은 혐오하거나 경멸했다. p58

제2장       밀레토스 학파

탈레스에 대해 존경심을 느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지만, 아마 현대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철학자보다는 오히려 과학자로서 존경해야 할 것이다. p61

탈레스는 이집트를 여행한 이후 그리스에 기하학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그들(밀레토스 후계자들)의 사고방식은 어느 정도 탈레스에게서 이어받았다고 가정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터이다. p63

그는 철학자들이 원하기만 하면 쉽게 부를 축적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철학자들의 야심은 다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아낙시만드로스는 이렇게 알려진 요소들이 서로 대립하면서 존재한다고 말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과학적 호기심이 왕성한 인물로서 최초의 지도 제작자로 알려졌다. p65

밀레토스 학파는 …… 철학적 시도로 인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스 정신이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문화를 만나 빚어낸 성과였다. p66

제3장       피타고라스

수학이 철학에 미친 영향의 일부는 피타고라스에서 기인하며, 이후 심오하지만 유감스러운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p68

피타고라스는 크로톤에서 제자들과 공동체를 설립해서, 한동안 도시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콘퍼드 : “피타고라스학파는 과학적 경향과는 현격하게 차이나는 신비적 전통의 주요 흐름을 대표한다. “ p71

그는 음악에서 수가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발견했으며, 음악과 수학 사이에 확립된 관계는 수학의 전문 용어인 조화평균이나 조화수열로 살아남아 사용된다. p75

피타고라스에서 시작된 수학과 신학의 결합은 그리스와 중세를 거쳐 칸트에 이르는 근대 시기까지 종교 철학의 특징을 형성했다.

제4장       헤라클레이토스

형이상학적 체계들 각각에 따라 우주를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쁨이며 독단에 빠지지 않게 하는 해독제이다. p79

기하학은 그리스인의 도강적인 발명품인데, 기하학이 없었다면 근대 과학은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p80

인류를 경멸한 헤라클레이토스는 오로지 강제력을 동원해야만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을 위해 행동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83

만물이 유전한다는 학설은 헤라클레이토스가 제시한 가장 유명한 학설 p87

제5장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이 변한다고 주장했고, 파르메니데스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맞받아쳤다. p92

사유와 사유의 대상이 동일한 까닭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한, 존재 없는 사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p93

언어가 정말 무의미한 것이 되지 않으려면, 단어들이 어떤 존재를 의미해야 한다. p94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단어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고 분명한 단어가 의미하는 대상에 대해 말한다.

같은 말을 스는 두 사람이 마음 속에 독 같은 생각을 품고 있지는 않다. p95

조지 워싱턴이란 이름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바가 무엇이든 그것은, 우리는 그와 단 한 번도 알고 지낸 적이 없으므로,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지금 감각이나 기억이나 사유에 떠오르는 것일  수 밖에 없다. p96

제6장       엠페도클레스

엠페도클레스는 공기가 분리된 실체임을 발견함으로써 과학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p100

엠페도클레스는 이탈리아 의술 학교의 창시자였으며, 그가 권위를 세운 의술학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p101

엠페도클레스가 과학 분야 밖에서 보여준 독창성은 4원소설을 내놓고 사랑과 다툼이라는 두 가지 원리를 이용하여 변화를 설명한 데서 찾을 수 있다. p105

제7장       아테네의 문화

페리클레스 시대는 아테네 역사상 가장 행복하고 가장 영광스러운 시대였다.

페리클레스 시대에 아테네가 이룩한 성취와 업적은 어쩌면 온 역사를 통틀어 가장 놀라웠으리라.

갑작스러운 전쟁의 승리와 부의 축적과 재건의 필요에 자극을 받아, 현대에도 능가할 자가 없는 건축가, 조각가, 극작가들이 현대에 이르는 미래까지 압도할 만큼 걸작들을 쏟아냈다.

아테네는 단지 위대한 두 철학자, 소크라테p스와 플라톤의 이름을 남김으로써 철학에 이바지했다.

노동할 필요가 없었던 젊은이들은 여유 시간의 대부분을 과학, 수학, 철학 연구에 썼다.

극소수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그 시대에는 지성과 행복을 겸비하고 지성을 통해 행복해지는 일이 가능했다.

이러한 황금시대를 출현시킨 힘의 균형은 위태로워서 안팍으로 위협을 받았는데, 안에서는 민주정치가 그리고 밖으로는 스파르타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제8장       아낙사고라스

아낙사고라스는 이오니아인으로서 이오니아의 과학과 철학 전통을 이어 받았다. p110

아낙사고라스는 만물을 무한히 나뉠 수 있으며, 물질의 가장 작은 부분이라도 네 원소의 일부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p111

처음으로 아테네에 철학을 전파하고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형성하는 데 영향으 ㄹ준 철학자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p113

제9장       원자론자들

데모크리토스는 무한한 공간에는 위도 아래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영혼을 구성하는 원자들의 운동을 바람이 없을 때 햇빛 속에 떠다니는 티끌의 운동에 비유했다. Pp116

레우키포스, “무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생겨나지 않으며, 모든 것은 밑바탕에서부터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p117

빈 공간은 비존재이며 존재의 어떤 부분도 비존재가 아니다. p120

데카르트는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과 똑 같은 논증을 펼치는데, 연장은 물질의 본질이므로 물질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p121

지성의 지각은 지각되는 사물들에 의존할 뿐이지만, 감각의 지각은 감각에도 의존하므로 속기 쉽다

데모크리토스는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그리스 철학자들 가운데 고대 후기와 중세 사상을 타락시킨 특이한 결점을 보이지 않은 마지막 철학자이다. p124

제10장    프로타고라스

교육에 필요한 공공 설비가 전무한 상태에서 소피스트들은 사유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나 사유 재산을 소유한 부모를 둔 사람들만 가르쳤다. p126

아테네에서는 더 가난한 계층이 부유층에게 이중으로 적개심을 표출하기 시작햇는데, 하나는 선망에서 비롯된 적개심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을 고수하는 데서 비롯된 적개심이었다.p127

프로타고라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즉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한다는 척도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척도이다. p130

프로타고라스는 성년기 삶을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를 두루 돌며 일종의 종신 강의 여행을 하며 보냈는데, “실제 생활에 필요한 능력을 기르고 수준 높은 정신훈련을 받고 싶어하는 자라면 누구든 수업료를 받고 가르쳤다. p131

도시국가 아테네의 부는 급속도로 증대하고 문화도 빠르게 성장했는데, 특히 부는 외국과 무역을 하는데서 비롯되었다. 이는 전통 도덕과 전통 신앙이 파괴되는 시대에 늘 일어나는 일이다. p133

제2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제11장    소크라테스

아테네의 중간 계층 시민이었고, 논쟁하며 일생을 보냈으며 젊은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쳤으나 소피스트들과 달리 돈을 받지는 않았다. p138

나는 철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보다는 차라리 철학자들 가운데 나를 가장 호되게 비판하는 철학자가 내 사상을 전달해주기를 바란다. p139

플라톤은 위대한 철학자이자 상상력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문학적 재능이 탁월한 매력 넘치는 작가이다. p140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지혜가 사실은 가치 없다는 것을 아는 자가 바로 가장 현명한 자라고 말이지요. p143

키니코스 학파는 세속에서 추구하는 선을 경멸하고 문명 생활의 안락함을 피함으로써 경멸감을 표현했다.

변증법은 파르메니데스의 제자 제논이 처음 체계적으로 사용한 듯하다. p150

제12장    스파르타의 영향

스파르타는 기원전 8세기 무렵 언젠가 이웃 나라인 메세니아를 정복하고 주민을 대부분 노예 신분으로 강등하였다. p154

평범한 시민들은 엄격한 통제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지자 비밀스럽고 불법적인 관능적 쾌락에 탐닉했다. p160

그리스는 언제나 정치 권력을 통한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 이상, 희망에 미친 효과를 통해 세상에 영향을 주었다.

낯선 민족들이 자기들을 정복한 나라의 문화를 퍼뜨릴만큼 감명을 준 사람들은 바로 그리스의 천재들이었다. p161

è  마치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두드러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김연아가 생각난다. 한명의 천재가 미치는 영향이란 실로 대단하다.

결혼 생활을 처음 몇 년동안 은밀한 일처럼 취급하는 습관은 남자와 여자 양쪽이 여전히 불타는 사랑을 계속하게 하고 상대방에 대한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p163

è  굉장히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여자가 아닌 남자들 간의 동성애는 스파르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풍습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춘기 소년들의 교육 과정에 포함할 정도로 공인된 부분이었다. p164

제13장    플라톤 사상의 근원

플라톤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문제 다섯가지.

첫째, 이상향, 둘째, 이상이론, 셋째 영혼 불멸을 지지하는 논증, 넷째 우주론, 다섯째 지각이 아닌 상기로 간주되는 지식개념 p166

그는 지성의 훈련과 도덕적 훈련을 겸비할 경우에만 선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p168

제14장    플라톤의 이상향

엄숙,예절,용기는 주로 교육을 받아 길러지는 자질인 듯하다. p171

국가는 상인 계급, 보조계급, 수호자 계급이 각각 자기 몫을 일하고 다른 계급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면 정의롭다. p176

증명이나 반증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고 플라톤이 바라는 국가를 좋아하느냐 않느냐는 문제만 남게 되지요. 당신이 플라톤의 국가를 좋아한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선하고, 당신이 싫어한다면 악한 셈입니다. p181

제15장    이상이론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철학 정신을 갖출 때 비로소 우리 국가는 살아나 햇빛을 볼 수 있다네 p184

철학자는 진리를 통찰함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p185

플라톤에게 철학은 일종의 통찰, 진리 통찰이다. p188

제16장     플라톤의 영혼 불멸설

<파이돈>은 순교자 한 사람의 죽음뿐만 아니라 나중에 그리스도교에 스며든 많은 학설을 설명하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p200

소크라테스는 철학 정신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반대로 죽음을 환영할 테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 까닭은 법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대화를 시작한다. p202

철학자는 먹고 마시는 일을 걱정해서는 안 되지만 물론 필요한 만큼 먹어야 한다. p203

경험주의자에게 육체는 우리가 외부의 실재계와 접촉하게 되는 통로이지만, 플라톤에게 육체는 이중으로 악한, 망원경을 통하듯 희미하게 보이도록 사물을 왜곡하는 매체인 동시에 지식 추구와 진리 통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정욕의 근원이다. p205

만물을 다 바꿀 수 있는 진짜 화폐는 바로 지혜라네. p206

정화는 오르페우스교의 개념으로 처음에는 전례를 의미했으나 플라톤에게는 육체와 육체의 욕구에 얽매인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자유를 의미한다. p207

사실상 선험적 지식은 신비스러운 통찰을 제외하면 플라톤이 실제로 지식이라고 인정한 유일한 지식에 속한다. p208

제17장    플라톤의 우주론

플라톤의 신은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의 신과 달리 무에서 세계를 창조하지 않고 이전에 존재하던 물질을 재배열했을 따름이다.

세계가 회전하는 까닭은 원운동이 가장 완벽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p214

철학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육상 동물이 되고, 어리석기 그지 없는 인간은 물고기가 된다. p219

제18장    플라톤의 지식과 지각

플라톤이나 다른 특정 학파에 속한 철학자들 사이에 지식이라 부를 만한 지식은 감각에서 유래하지 않으며, 유일하게 진정한 지식은 개념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전혀 다른 학설이 존재한다. p221

이 모든 주장은 지각 표상과 대조되는 추론에 관하여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어떤 올바름의 기준이 있음을 전제한다. 만약 내가 우연히 이끌어낸 어떤 추론이든 다른 어떤 추론과 꼭 마찬가지로 좋은 추론이라면, 사실상 플라톤이 프로타고라스에서 연역한 지적 무정부 상태에 이르게 된다. p232

제19장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을 읽고 이해할 때는 두 가지 방식으로, 곧 이전 철학자들과 관련짓거나 이후 철학자들과 관련지어 연구할 필요가 있다. p233

아리스토텔레스는 열여덟살 무렵 아테네로 가서 플라톤의 제자가 되었다. p234

그는 오늘 날의 교수처럼 글을 쓴 첫 인물이다. p235

사물과 성질을 구분하는 진짜 근거는 언어와 관련이 있으며, 구문론에서 유래한다. p238

존과 제임스는 실체이고, 현명함과 어리석음은 보편자라는 것이다. p239

사실 신학은 우리가 형이상학이라 부르는 학문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부르는 명칭이다. p242

제20장    아리스토텔레스 윤릭학

강제로라도 좋은 습관을 들이면 때에 맞추어 좋은 행동을 할 경우 기쁨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한다. p249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평등이 아니라 가끔씩만 평등을 수반하는 정확한 비례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p250

대범한 사람의 덕이 대체로 그가 누리는 특별한 지위에 의존한다는 뜻이다. p253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이란 목적, 말하자면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관점을 받아들인다. p255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외적 조건에 따른 행운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입법자는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이 선하게 생동하는 습관을 길러, 결국 덕을 실천할 때 쾌락을 느끼며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후덕하게 행동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p260

벤담과 공리주의자들은 정의평등으로 해석한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초기 철학자들에게 발견되지 않는 정서적 빈곤을 드러낸다. p261

제21장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정치학>은 국가의 중요한 가치를 지적하며 시작한다. 국가는 최고 단계에 이른 공동체로서 최고선의 실현을 목표로 삼는다. p264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는 힘이 우월한 덕이라는 함축이 숨어 있는 듯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 p265

플라톤은 부자관계가 가능한 연령대에 속한 누구에게든 아들이란 호칭을 부여하기만 하면, 한 남자가 수많은 아들에게 오늘날 사람들이 친아들을 대할 때 느끼는 감정을 갖게 될 테고, ‘아버지란 호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p267

è  호칭이 갖는 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감된다.

국가가 추구해야 하는 행복은, 때로는 전쟁이 국가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운 활동이어야 마땅하다. p272

고대 후기 내내 권력과 문화는 보통 분리되어, 권력은 거친 군인들의 손아귀로 넘어갔고, 문화는 권력을 쥐지 못한 그리스인들, 종종 노예들이 소유했다. p274

제22장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대개 르네상스 시대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권위를 잃었지만, 그의 논리학은 최고 권위를 누렸다. p276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에서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은 삼단논법이다. p277

연역체계 안에서 삼단논법에 우월한 지위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철학자들로 하여금 수학적 추리의 본성을 오도하도록 이끌었다. p281

범주란 용어에 대해 유일하게 내린 정의는 어떤 식으로든 혼합되지 않은 표현들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p282

그 문제가 순수하게 언어와 관련된 까닭은 낱말은 본질을 지니기도 하지만 사물은 본질을 지닐 수 없는 탓이다.

실체 개념은 본질 개념처럼 언어상의 편의에 지나지 않는 것을 형이상학에 옮겨놓은 결과물이다. p283

실체는 사실 사건들을 묶음으로 모으는 편리한 방식일 뿐이다. p284

제23장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자연학> <천체론> 두 저술은 영향을 크게 미쳐 갈릴레오 시대에 이르기까지 과학을 압도했다. p286

도토리는 도토리나무의 가능태라는 말이다. p288

제24장    초기 그리스 수학과천문학

그리스인들이 보여준 뛰어난 재능은 다른 분야보다 수학과 천문학에서 분명하게 발휘된다.

수학적 증명 방법의 기원은 거의 다 그리스인에게서 시작한다. p292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 <기하학원론>은 지금까지 저술된 위대한 저술 가운데 하나로서 그리스인의 지성이 보여준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p296

피타고라스 학파는 더 나아가 지구를 행성 가운데 하나로 간주했다. p298

로마 군대의 지배 아래서 그리스인들은 정치적 자유를 누리는 데 필요한 자신감을 잃게 되었고, 마비된 듯 무력하게 이전 학자들을 존경할 뿐이었다. 아르키메데스를 살해한 로마 병사는 로마가 그리스 세계 전체에 초래한, 독창적인 사상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인물이 되었다. p302

제3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고대 철학

제25장    헬레니즘 세계

철학분야에서는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기초를 놓았을 뿐만 아니라 회의주의를 명확한 형식의 학설로 정립하게 된다. p304

알렉산드로스의 짧은 생애로 그리스 세계가 급변했다. p305

원래 그리스인이 아니었던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인의 우월감을 타파하려 했다. p306

유대를 제외한 시리아의 도시들은 언어와 문학에 관한 한 헬레니즘에 완전히 동화되었다. 그러나 시골에 거주하는 민중은 보수 성향이 훨씬 강해서 그들에게 익숙한 종교와 언어를 계속 유지했다. p309

당시에 군인, 행정가, 의사,수학자, 철학자들이 존재했지만, 어느 누구도 모든 분야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그 시대는 돈을 가졌으나 권력을 탐하지 않는 사람은, 약탈을 일삼는 군대가 언제까지나 자신을 치는 일이 없을 것이라 가정하는 한에서 더없이 즐거운 삶을 누렸다. p311

과거 자유 시대를 풍미한 무질서는 시민 개개인이 자유 시대에 참여했기 때문이 견딜만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무질서는 무능한 통치자들이 시민들에게 강요한 것이기에 도저히 참아낼 수가 없었으며, 후대의 로마 복종 시대보다 견디어내기가 훨씬 힘들었다. p312

대의가 전혀 중요하지 않거나 안정된 상황에서 승리할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단호하게 대의를 고집하는 일도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다. 비위나 맞추는 변절만이 생존과 행운을 가능하게 만든다면 진실을 놓고 벌이는 논증이란 헛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p315

제26장     키니코스 학파와 회의주의 학파

프랑스의 위대한 작가들은 1750년 무렵 혁명가가 되었다. 독일의 위대한 작가들은 1813년 이후 국가주의자가 되었다. p318

(안티스테네스)는 세련된 철학은 전부 다 가치없다고 주장했던 까닭은 알려질 가능성이 있는 지식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알려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히 굼욕주의자는 아니었으나, 사치나 인위적으로 자극한 감각적 쾌락 추구를 전부 경멸했다. p319

디오게네스는 종교든, 예절이든, 옷차림이든, 집이든, 음식이든, 채면이든 인습이라면 전부 거부했다. 그는 을 성취하려는 열정으로 불탔으며, 덕에 비하면 현세의 좋다는 것들을 가치 없다고 주장했다.

스토아 학파는 이 점에 관해서 디오게네스의 학설을 치택했지만, 문명의 혜택을 거부한 면까지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p321

키니코스 학파의 사상은 현세의 좋은 것들을 피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그저 냉담하라고 가르쳤을 뿐이다. 키니코스 학파의 최고 수준에 속한 학설이 스토아 철학 속으로 흘러들어갔는데, 스토아철학은 훨씬 더 완전하고 원숙한 철학으로 발전했다. p322

회의주의는 자연스럽게 철학 정신과 거리가 먼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얻었다.

앞날에 일어날 일을 왜 걱정하겠는가? 미래는 불확실한 따름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불확실하니”. 차라리 현재를 즐기는 편이 낫다. 이 때문에 회의주의는 적지 않은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p323

(카토)는 노예란 언제나 일을 하거나 잠을 자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노예들이 서로 친구가 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그들이서로 싸우도록 조장하기도 했다.

è  마치 현재 악덕 기업들을 보는 것 같다.

제27장     에피쿠로스 학파

헬레니즘 시대에 새로 출현한 중요한 두 학파,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의 사상을 형성한 기초는 같은 시대에 세워졌다. p331

에피쿠포스 학파의 공동체 생활은 매우 단순하고 소박했는데, 한편으로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물론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p333

인간이 크나큰 고통 속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주장을 최초로 한 사람은 스토아 학파가 아니라 바로 에피쿠로스였다. p334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일부 회의주의 철학을 예외로 두면 당시에 유행한 모든 철학과 마찬가지로, 일차적으로 마음의 평정을 보장하려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p335

에피쿠로스는 유물론자였으나 결정론자는 아니었다. p339

에피쿠로스의 복음으 언제나 교양을 갖춘 소수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신경으로 남았다. p344

18세기 말 프랑스의 계몽철학자들이 에피쿠로스와 유사한 학설을 부활시켰고, 벤담과 그의 추종자들이 영국에도 도입했다. 이러한 경향은 그리스도교에 의식적으로 반대하면서 나타났으며, 계몽 철학자들은 에피쿠로스가 당대의 종교를 적대적으로 대한 태도 못지않게 그리스도교를 적대시했다. p345

제28장     스토아 철학

제논은 유물론자로서 키니코스학파의 철학과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을 결합한 학설을 내놓았다.

제논은…… 절충주의 철학자의 특징을 보였다. p347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자연의 경로는 자연 법칙에 따라 고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p348

남들은 외부 사정만을 마음대로 할 뿐이다. 참으로 선할 뿐인 덕은 완전히 개인에게 달려 있다. p349

키르시포스는 스토아 척할을 체계화하고 현학적인 철학으로 만들었다. p353

포세이도니오스는 스토아 철학과 아카데미가 회의주의에 기울어진 단계에서 망각한 듯한 플라톤의 가르침에 속한 많은 점들을 결합하였다.

역사의 측면에서 초기 스토아 철학자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인물은 로마와 관련된 세사람인데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 각각 행정장관, 노예, 황제였다. p355

세네카, “걱정하지 마라. 지상의 부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것, 덕이 높은 삶의 본보기를 남긴다.”

에픽테토스, “감정과 근심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행복, 그리고 당신의 일이 아무에게도 의존해 있지 않다는 의미는 훨씬 더 아름다운 법입니다.”인간은 저마다 연극 속의 배우이고, 신이 배역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배역이 무엇이든 우리의 배역을 훌륭하게 연기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p361

카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대가 바로 이 순간에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으니, 매순간 행동과 사고를 바르게 하라.” p362

개인의 의지는 자율성을 지니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외부 원인들의 강요로 죄를 짓게 되지 않는다. p364

칸트의 윤리체계는 스토아 학파의 윤리체계와 흡사하다. 그는 진실로, 선의지 외에 선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의지가 일정한 목적들로 향하되 목적들 자체에 무관심할 때 선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p366

제29장     로마제국의 문화

로마 세계에서 내란의 종식은 원로원의 소수당을 제외하고는 모두 환호할 만한 놀라운 사건이었다. p371

로마 세계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고, 틀에 박힌 사회로 변하는 과정은 후대 황제들의 치하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p373

포에니 전쟁 후, 로마의 젊은이들은 그리스인들을 동경하게 되었다.

로마인들은 고유한 예술 형식을 고안해내지 못했고, 독창적인 철학 체계도 구성하지 못했으며, 과학의 새로운 발견을 이루어내지도 못했다. p378

거친 군인들에게 문화란 아무 쓸모가 없었고, 문명화된 시민들을 그저 세금의 원천으로 간주했을 따름이다. 일반 서민들은 너무 가난해서 교육의 측면에서 많은 지원을 받지 못했고, 국가도 교육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p379

이 시기에 성취한 문화는 모두 몇몇 상업 도시의 소수 시민이 이루어냈다. p382

아랍인들은 연금술에 대한 지식을 그리스인들에게서 물려받았고, 연금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리스 철학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동로마 제국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던 그리스 전통의 일부분이나마 직접 계승한 자들은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바로 아랍인들이었기 때문이다. p384

제30장     플로티노스

플로티노스는 신플라톤 철학의 창시자로서 최후의 위대한 고대 철학자였다. p385

플로티노스는 중세기와 가톨릭 신학의 그리스도교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물이다. p386

철학은 특정한 분위기나 특정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을 잘 표현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판단되기도 한다. p387

플로티노스는 우울한 낙천주의자로 찬사를 받을 만한 본보기이다.

플로티노스는 스피노자처럼 도덕적 순수와 고결함을  갖추어 대단히 감명을 주는 인물이다. 그는 언제나 진지하고, 결코 신랄하거나 검열관 같은 비판적 태도를 보이지 않으며, 끊임없이 할 수 있는 만큼 간단한 방식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믿음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p388

플로티노스의 형이상학은 일자, 정신, 영혼의 성 삼위일체에서 시작한다. p390

플로티노스는 천체들이 신과 닮은 존재들이며 인간보다 헤아릴 수 없을만큼 우월하다고 확신한다.

물질은 영혼이 창조한 것이며 독립된 실재도 아니다. p395

영혼은 어떤 물체의 질료도 아니고 형상도 아니지만, 그 물체의 본질이고 본질은 영원하다. p396

창조된 세계는 영원한 세계를 복사한 세계로서 그 세계 자체는 복사물에게나 가능한 아름다움을 지닐 다름이다. p397

플로티노스는 끝이자 시작이다. 즉 그리스인의 관점에서는 끝이고 그리스도교 세계의 관점에서는 시작이다. p401

2권 가톨릭 철학

서론

부유층 사람들은 모두 읽고 쓸 수 있는 문명사회가 존재했으며, 철학자들은 계급분만 아니라 속인 계급의 마음에도 들기 위해 노력했다. p406

가톨릭 철학의 위대한 제1기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이교도의 대표 격인 플라톤이 지배한다. 2기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지배

철학의 관심사는 신앙을 옹호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리스도교에서 인정하는 계시의 정당성을 수용하지 않는 이슬람교도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맞서 논쟁하기 위해 이성을 불러냈다. p407

좋지 않은 현실 상황에 더하여 암울한 미신들이 유행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런 이중의 충성심으로 야기된 문제들은 철학자들이 필요한 이론을 내놓기전, 실제 삶 속에서 대부분 술술 풀려나갔다. p408

1부 교부철학

제1장     유대교의 발전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첫째 계명은 바빌론 유수 직전에 일어난 혁신에 대해 말해준다. p414

유대 민족과 다른 고대 민족을 구별하는 특징은 유대인들이 보여준 불굴의 민족적 긍지였다. p417

노예를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당나귀에게는 여물과 몽둥이와 짐을 안겨주고, 종에게는 빵과 벌과 일을 주어라. …… 종에게 어울리는 일을 시켜라. 만일 종이 복종하지 않거든 무거운 족쇄를 채워라. p419

유대교를 근절하기로 결정하고, 할례를 금지하며 음식에 관한 유대인의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선언했다. p420

<마카베오 4>는 다른점에서도 흥미롭다. 저자는 분명히 정통 유대인이지만, 스토아 학파의 표현법을 사용하고 유대인들이 스토아 학파의 계율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지키며 살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한다. p422

유대인들은 고유한 종교 의식을 통해 한 민족으로 단결하였으나, 율법을 강조함으로써 점차 독창성을 잃고 지나치게 보수적인 관습에 함몰되었다. p423

중세 시대 내내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문화 형성 과정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는데, 박해가 너무 심해 문명에 공헌할 기회가 없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해야 성당 건축 사업에 자금을 대는 일이 전부였다.

중세 시대 내내 이슬람교도는 그리스도교도보다 문명을 더욱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면에서도 훨씬 더 훌륭했다.

유식한 유대인들은 , 학식이 모자라는 스콜라 철학자들에게 풍부한 지식을 가르쳐 주었다. p429

제2장     초기 그리스도교

유대인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사상은 여전히 그리스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불쾌한 요소였다.

마니교는 육식을 비롯해 성과 연관된 모든 행위, 결혼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성교조차 죄로 여겼다. p431

성 바울로, “누구라도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망치지 못하도록 조심하십시오. p433

정신이 타락하면 영혼이 되고, 영혼이 덕을 갖추면 정신이 된다. p434

그리스도교는 국가의 정치에 참여해서는 안 되고 오로지 신성한 나라, 즉 교회의 정치에만 참여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p436

신도들이 바친 헌금은 주교가 관리하기 때문에 주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지 보류할지도 결정했다. 그래서 주교의 뜻에 기꺼이 따르는 궁핍한 무리가 생겨났다.

è  이때부터 교주들의 권력이 점점 커졌나보다.

교황은 공식적으로 교회를 대표한 가장 중요한 개인이었으나, 훨씬 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교회 전체를 지배할 권위를 인정받았다. p437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전, 그리스도교의 도덕이 평균적인 이교도의 도덕보다 월등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p439

그리스도교도는 소수이기는 했으나,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듯이 당시에 새로운 조직을 갖추어 모든 신자들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압력 단체로 성장했으며, 이 조직에 반대하는 압력 단체는 따로 없었다. p440

제3장     교회의 세박사

서방교회의 박사, 성 암브로시우스, 성 히에로니무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이다. p443

성 암브로시우스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한정하는, 교회 입장의 사상 체계를 확립했다. p444

그는 자신의 재물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때때로 닥치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자신의 남은 생애를 온전히 교회에 바쳤다.

그는 사냥에 빠져 통치를 게을리하다 결국 암살당했다.

그라티아누스 황제가 여신상을 다시 제거했고, 그 때문에 로마의 총독 심마쿠스의 주도 아래 원로원 대표단이 여신상의 복원을 다시 한 번 요구했다.

원로원의 그리스도교도 의원들은 여신상의 복원에 반대했고, 암브로시우스와 다마수스 교황의 협조를 얻어 황제가 그들의 견해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했다. p446

암브로시우스가 보여준 힘의 근원은 민중의 지지였다.

그는 국가가 교회에 양보해야 하는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새로운 원칙을 확립했다. p448

헤이로니무스, 은수 시기 이후 그는 콘스탄티노플로 여행을 떠나 로마에서 3년간 생활하는데, 그곳에서 다마수스 교황의 친구이자 조언자가 되었고 교황의 권유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p451

히에로니무스가 고대 세계의 멸망에 대해 온갖 통렬한 감정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처녀성 보존을 훈족과 반달족과 고트족에게 승리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예상 밖의 일이다. p455

성아우그스티누스, 정열이 넘치는 남자였으나 진리와 의로움을 추구하려는 내적 충동도 간직한 인물이었다. 그는 톨스토이처럼 나이가 든 후에 죄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너무 엄격한 인생을 살았으며 철학도 인간다움과 점점 멀어졌다. p456

유대인은 왜 번성하지 못했는가? 그들이 사악한 짓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p457

성아우그스티누스 사상 속에서는 두 분야(교회, 개인의 영혼)가 동등하게 조화롭게 공존한다. p458

성아우그스티누스가 마니의 교리를 거부한 첫째 이유가 과학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아주 흥미롭다. p461

그는 암브로시우스의 친절에 감동받고 흠모하게 되자, 마니교의 교리보다 가톨릭교의 교리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졌다. p463

악이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의 탈선에서 비롯된다고 믿게 되었다. p464

제4장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과 신학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방대한 분량의 책으 ㄹ쓴 저술가이며 주로 신학적인 주제에 대해 글을 썼다. p465

세계란 물질에서 창조되지 않고 무에서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p466

과거에 일어난 일들의 현재는 기억이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현재는 눈앞에 펼쳐지는 일이며, 미래에 일어날 일들의 현재는 기대이다. p467

시간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활동의 한 국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론은, 이미 살펴보았듯이 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 시대 이후 고대 세계에서 점차 증가했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주관주의이다. p468

로마는 사비니족 여인들의 강탈 이후 언제나 사악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의 여러 장에서 로마 제국주의가 빚어낸 죄악상을 다룬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에 대해 공감을 표현하고 호의적으로 설명하면서 어느 철학자들보다 우위에 놓는다. p472

부활에는 두 가지, 곧 죽을 때 일어나는 영혼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 날에 일어나는 육신의 부활이 있다. p477

유대 민족의 과거와 미래 역사는 어느 시대에나 억압받고 불행한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모형이었다. p480

제5장     5세기와 6세기

논란의 쟁점은 신성과 인성의 관계였다. 두 가지 위격이 존재한다면 하나는 인격이고 다른 하나는 신격인가? p484

6세기에 문화사에 이름을 남긴 중요한 인물 네 사람은 보이티우스, 유스티니아누스, 베네딕투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이었다.

보이티우스, 중세 시대 내내 감명을 주는 저자로서 칭송을 받았으며, 사람들은 언제나 그를 독실한 그리스도교도로 여겨 거의 교부들 가운데 한 사람인 양 다루었다. 그러나 그가 524년 처형을 기다리며 집필한 <철학의 위안>은 순수하게 플라톤의 사상을 계승한 저술이다. p487

우정은 가장 성스러운 사랑이다. p488

그가 살았던 시대 이전 2세기와 이후 10세기 동안, 유럽 어디에서도 보이티우스만큼 미신이나 광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학자는 없었다.

멀리 내다보는 식견은 고상하고 사심이 없어 숭고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어느 시대에 태어났든 비범한 학자로 주목 받았을 테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경탄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p492

로마는 다섯 번, 즉 비잔틴인들에게 세번, 고트족에게 두 번 점령당하면서 보잘 것 없는 도시로 전락했다. p493

제6장     성 베네딕투스와 그레고리우스 대교황

6세기 이후 수세기에 걸친 끝없는 전쟁으로 문명이 전반적으로 쇠퇴하던 시기, 무엇보다도 교회는 살아남은 고대 로마 문화를 보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교회의 세 가지 활동에 주목 : 첫재 수도원 운동, 둘째 교황 체제의 영향, 셋째 선교를 통한 이교도 야만족들의 개종 p495

수도원 생활은 처음에는 교회 조직과 거의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운동이었다. p496

3세기 중엽 수도자들이 존재하기 전 수녀들이 존재했던 듯하다.

서방 지역 수도원 생활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름은 성 베네딕투스로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창시자이다. p497

베네딕투스는 죄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기뻐하는 수도자에게 도리어 참회하라고 타일렀다.

내가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의 대화편을 길게 인용한 까닭은 세 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레고리우스의 대화편은 베네딕투스의 생애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성 베네딕투스가 세운 수도회 규칙서가 아일랜드 사람들이 건립한 수도원을 제외하면 모든 서방 수도원의 모범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둘째, 6세기 말엽 생존한 교양인들 대부분의 정신적 분위기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셋재 서방 교회의 넷째 박사이자 최후의 박사이며 정치측면에서 교활등 가운데 가장 저명한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이 직접 쓴 작품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유치하고 경박한 면을 드러내지만, 정치가로서 용의주도하고 지배자다운 뛰어난 기량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세상에 어떻게 대처할지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p502

그는 교황이 되자 앵글족을 개종시키려 성 아우그스티누스를 켄트 지방으로 파견했다.

그레고리우스는 잉글랜드의 이교도 신전을 파괴하지 말고, 우상을 파괴한 다음 신전을 정화하여 교회로 만들라고 명한다. p509

è  현명한 사람이다.

2부 스콜라 철학

제7장     암흑기의 교황체제

수도자들은 황제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려 했고, 바로 그 때문에 때로는 교황의 편을 들었다. p512

교황이 비잔틴 지배에서 벗어나 해방된 역사의 진행 과정은, 교회가 세속 군주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독립성을 유지하고, 교황 군주제를 서방 교회의 최종 정치 체제로 확립하는 데 필수적인 단계였다. p515

그들의 상호 의존관계로 인해 양측 모두 괴로워하면서도 수세기 동안 괴로운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p517

앨퀸은 당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물이다. p520

교회 권력은 중세 시대 내내 왕들의 이혼 문제에 깊이 관여했다. p521

교회 자체도 세속 사회와 똑같이 무정부 상태에 빠져든 희생양처럼 보인다. p524

그들은 경건한 신자들이 기부한 재물에서 비롯된 부와 권력으로 타락했다. p524

제8장     요한네스 스코투스의 사상

요한네스 스코투스(에리우게나 또는 에리게나) 9세기에 생존한 인물로서는 경탄을 자아낸다.

신플라톤 학파에 속한 학자이자 그리스어에 조예가 깊은 학자이고, 펠라기우스주의자이자 범신론자였다. p527

7세기 후반기에 지식에 대한 갈망이 가장 강한 곳은 아일랜드였고, 교육 사업이 가장 활발했던 곳도 아일랜드였다. p528

그는 참 종교는 참 철학이라고 말했다.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번역을 마쳤는데, 그 까닭은 자신의 견해가 당대 이후 서방의 가톨릭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디오니시오스의 견해와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 p531

그는 플라톤이 철학자들의 정점에 위치한다고 주장한다. p533

제9장     11세기 교회 개혁

유럽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11시게에 처음으로 후대에 잃어버리지 않은 급속한 진보를 이룩했다. p536

사제들은 연옥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연옥의 체류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믿었고, 적당한 돈을 받고 기꺼이 미사를 집전했다. p537

모든 개혁 성직자들이 온 힘을 다해 반대했던 최고이ㅡ 악습은 성직매매와 축첩 두 가지였다. p538

다른 한편 상인 계급과 하층 계급은 성직자들이 경건해지기를 소망했다. 성직자의 독신생활을 지지하고 촉구하는 폭동이 곳곳에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대주교와 대주교의 지지자들의 입장에 맞선, ‘파타리노 운동이라 부르는 강력한 개혁 운동도 전개되었다. p544

그레고리우스 7세는 성직자의 독신생활을 어떤 전임교황보다도 더욱 강화했다. p545

10세기에는 제르베르를 제외하면 철학자들이 전혀 배출되지 않았고, 제르베르도 철학자보다는 수학자에 가까웠다. p547

안셀무스, 그는 하나님은 의로운 존재가 아니라 의로운 자체라고 말하기도 한다. p549

제10장  이슬람교 문화와 철학

예언자 무하마드가 세운 종교는 삼위일체설이나 육화 신학으로 뒤얽히지 않은, 단순한 일신교였다. 예언자 무하마드는 자신을 신이라 주장하지도 않았고, 그를 따르던 신도들이 자기를 신이라 주장하지도 못하게 했다. p552

페르시아인은 아주 일찍부터 종교심이 깊고 사색의 수준이 높았다. p553

아랍 경제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농업, 특히 숙련된 관개기술의 사용인데, 그들은 물이 부족한 곳에서 살명서 관개기술을 배웠다. 오늘날까지도 스페인의 농업은 아랍인이 건설한 관개 시설 덕을 보고 있다. p555

아베로에스는 이슬람교 철학보다 그리스도교 철학에서 더욱 중요한 인물이다.

아베로에스는 유럽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는데, 스콜라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영혼 불멸을 부정하고 아베로에스 신봉자들로 불리던 대다수으 ㅣ비전문적인 자유사상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p560

마이모니데스, 신앙을 잃어버린 철학자들에게 부치는 <방랑자를 위한 길잡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이 책의 목적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유대교 철학을 화해시키는 것이었다. p561

제11장  12세기

스콜라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존경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랍의 어떤 철학자보다, 사실 플로티노스 이후 어느 누구보다, 아니 적어도 아우그스티누스 이후 어느 누구보다 더욱 독창성을 보여주었다. p563

자유도시들의 발흥은 교황과 황제 사이에 벌어진 기나긴 투쟁에서 비롯된 최후의 가장 중요한 결과였다. p567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는 세속문화를 발전시켜 문학,예술, 과학에서 최고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p568

십자군 전쟁의 선동으로 자극받아 종교적 열의가 커짐에 따라 교황들의 권력은 증대되었다. 전쟁 선동의 또 다른 효과는 수많은 유대인의 학살이었다.

십자군 운동의 또 다른 결과는 큰소탄티노플과 문학적 교류를 자극했다는 점이다.

무미건조한 스콜라 철학 방법과 정반대로 강한 신비주의 운동이 일어났는데, 성 베르나르두스가 이 운동의 지도자였다. p574

성 베르나르두스의 활동이 초래한 결과는, 물론 세속의 일에서 교황의 권력이 두드러지게 강화된 것이다. p575

초기 스콜라 척학 전체는 정치적 측면에서 교회 권력 투쟁의 지류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p577

제12장  13세기

인노켄티우스 3, 성 프란체스코, 프리드리히 2, 토마스 아퀴나스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각 유형에서 최고 권위를 갖는 대표자들이다.

우리가 직접 관심을 갖고 다룰 사안은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가 발표한 스콜라 철학이다. p578

인노켄티우스 3 : 신성의 기미가 없는 최초의 대교황이었다.

프리드리히 2 : 역사상 대단히 주목받을 만한 통치자들 가운데 한 사람 p580

사람들은 그를 세계의 불가사의이자 기적의 혁신자라 칭했다. p481

발도파, 그는 1170년 그리스도의 율법을 준수하기 위한 십자군을 일으킨 광신자였다. p586

이단 색출은 주교의 일이었다.

성 프란체스코 : 매력적이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p587

성 도미니코 : 그의 주요 목적은 이단과 싸워 이기는 것이었고, 목적에 이르는 수단으로서 청빈을 채택했다. p589

도미니코 수도자들 :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도의 조화를 위해 헌신했다. p590

제13장  성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 스콜라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 생각된다. p591

신앙은 무지한 사람들, 젊은이들, 실생활에 여념이 없어 철학을 배울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필요하다. p594

성사는 악한 성직자들이 베풀더라도 유효하다. 이것은 교회 교리의 핵심 하옴ㄱ이었다. p602

(아퀴나스)는 독창성보다 체계화하는 능력이 훨신 더 뛰어났다. p603

만약 그가 신앙의 어떤 부분을 지지하기 위해 분명한 이성적 논증을 찾을 수 있었다면, 훨씬 더 나은 철학을 하게 되었으리라.

결론이 미리 주어진 논증의 발견은 철학이 아니라 특별한 변론에 지나지 않는다. p604

제14장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스콜라 철학자

프란체스코 수되 수도자들은 성 토마스의 권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 사람은 로저베이컨, 둔스 스코투스, 오컴의 윌리엄이다. p605

로저 베이컨은 백과사전적 지식의 소유자였으나 체계성은 없었다.

그는 무지의 원인이 네 가지 있다고 말한다. 첫째, 부정하고 부적합한 권위의 사례. 둘째, 관습의 영향, 셋재 무식한 군중의 의견, 넷째, 외견상의 지혜를 과시하며 무지를 은폐하는 짓이다. p606

베이컨은 수학이 확실성의 유일한 원천일 뿐만 아니라 천문학과 점성술에도 필요한 학문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베이컨은 아베로에스를 추종하여 능동지성이 본질의 측면에서 영혼과 분리되는 실체라 주장한다. p607

둔스 스코투스는 온건한 실재론자였다. 그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었으며, 펠라기우스 사상에 대한 지식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로 증거, 곧 증명 절차를 밟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물에 흥미를 느꼈다. p609

개별화의 원리는 스콜라 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였다. p610

오컴의 윌리엄은 성 토마스 이후 가장 중요한 스콜라 철학자이다. p611

단테는 시인으로서 위대한 혁신자였으나 사상가로서는 어딘가 시대에 조금 뒤처진 인물이었다. p612

파도바의 마르실리오. 정치의 측면에서 보면, 마르실리오가 오컴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입법자는 다수 민중일 뿐만 아니라 다수 민중에게 군주들을 처벌할 권리도 있다고 주장한다. p613

모든 스콜라 철학자들 가운데 오컴은 루터가 오히려 좋아한 유일한 철학자였다. p614

형상은 이해되는 무엇은 아니지만, 그것에 의해 사물을 이해하게 된다. p617

감각 영혼은 공간을 차지하고 물질적인 면을 갖지만, 지성 영혼은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고 물질적인 면도 갖지 않는다.

오컴의 윌리엄 이후 위대한 스콜라 철학자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p619

제15장  교황 체제의 쇠락

후기 유대교는 이미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을 배웠는데, 그리스도교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 그리고 천국에 이르고 지옥을 피하는 길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내렸다. p622

독립 정신을 품은 도시들은 이제 황제가 더는 위협 요인이 아니게 되자 교황에게 저항하는 경향을 보였다. p623

위클리프는 옥스퍼드 출신의 중요한 스콜라 철학자들 가운데 마지막 인물이었다. 철학자로서 그는 진보주의 성향은 아니었다. 그는 실재론자로서 아리스토텔레스 지지자라기보다 플라톤 지지자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신의 계율은 어떤 학자들이 주장했듯이 임의성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 p630

잉글랜드에서는 그의 교리가 지하로 숨어들어갈 수밖에 없었으나, 교황 체제에 대한 반감은 사람들의 정신 속에 살아남아 개신교의 싹이 트는 토양이 되었다.

투르크인들이 최후의 고대 도시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자, 이탈리아에 피신한 그리스인들은 인문주의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바스코 다 가마와 콜럼버스는 지상계를 확장하고, 코페르니쿠스는 천상계를 확장했다. p633

3권 근현대 철학

제1부   르네상스에서 흄까지

제1장     일반적 특징

가중 중요한 두 가지 특징 :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 과학의 권위가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왕정이 쇠퇴하고 점차 민주제나 참주제가 등장한다. p638

우리가 관심을 갖는 문화 형태는 주로 자유주의적인’, 즉 상업과 자연스럽게 연결된 문화이다.

교회의 권위를 거부하는 경향은 근대를 구분하는 소극적 특징으로 과학의 권위를 수용하는 적극적 특징보다 앞서 나타난다. p639

정신적인 족쇄를 벗어던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놀라운 천재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사회는 불안정했다. p640

과학 기술의 발전에서 영감을 받은 철학이 바로 힘을 강조하는 철학이다. p642

제2장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

피렌체는 세계에서 가장 문명이 앞선 도시로 르네상스 운동의 중요한 원천이자 본거지였다. 문학사에 자취를 남긴 거의 모든 위대한 이름, 예술사 초창기의 위대한 이름과 후기의 몇몇 이름은 피렌체와 관계가 있다. p645

르네상스기의 정세는 개인의 발전을 지지했으나 불안정한 상태였다. 불안정한 정세와 개인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경우처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안정된 사회 체계는 필요하지만, 여태까지 고안된 모든 안정된 체계는 비범한 예술가와 지성인의 장점을 살리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곤 했다. p653

제3장     마키아벨리

정치철학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린 니콜로 마키아밸리가 출현한다.

그의 정치철학은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학설로 사태를 직시하며 스스로 경험한 것에서 나온 결과물인데, 목적의 선악 여부와 상관없이 정해진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내는 데 관심을 두었다. p654

마키아벨리는 무장한 예언자는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으나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정치적으로 패배했다는 논평을 하기도 했다. 그는 메디치 가문의 호의를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저술가로 살 수 밖에 없었다. p655

그가 당시 교회에 가한 비판의 핵심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교회가 악행으로 말미암아 종교적 신앙을 훼손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교황의 지상권이 거기서 비롯된 정책과 맞물려 이탈리아의 통일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군주론>은 이탈리아를 야만인들의 악취 나는 지배에서 해방시켜달라고 메디치 가문에 요구하는 웅변적 호소로 끝난다. p658

군주, 귀족, 평민은 모두 헌법상 제각기 맡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면 세 계급의 세력은 호혜적으로 서로 견제하게 된다.” p659

정치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선 가운데 특별히 중요한 세 가지는 바로 국가의 독립, 안전, 질서정연한 법체계이다.

성공은 목적이 무엇이든 목적을 달성했다는 뜻이다. p661

결국 핵심은 바로 권력이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떤 종류든 권력이 필요하다.

당신의 적수보다 당신이 정치적 기량과 덕을 갖춘 듯이 보이게 하는 데 선전선동이 유리하며 탁월한 기량과 덕을 갖춘 듯이 보이게 하는 방법은 바로 탁월한 기량과 덕을 갖추는 방법이라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정치가들은 도덕적 고려에 무관심한 주민들에게 의존할 때보다 덕을 알아보는 주민들에게 의존할 때 더 나은 행동을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p663

제4장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모어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모어 경 두 사람은 북부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로 알맞다.

두 사람 다 학식이 풍부했으며 스콜라 철학을 경멸했다. p664

재치와 해학을 겸비한 고도로 숙련된 저술가였다. p665

에라스무스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낡은 생각에 매달린 스콜라 철학자들을 혐오했다.

그는 1499년에 처음 영국을 방문했는데, 당시의 동성애 풍습에 호감을 느꼈다. p666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야수에 가장 가까운 이성을 벗어던진 사람이다. p667

<우신 예찬>은 참된 종교는 바보 여신 숭배 같은 형태를 띤다는 진지한 암시로 끝난다. p668

북부 유럽의 감상주의를 내세워 그리스의 지성주의를 거부한 셈이다.

에라스무스는 이 세상에 관심이 있었지만 생생한 세상을 그대로 소화할 수 없었을 터이다. 그래서 세상을 자기 식으로 흡수하여 이해하기 전에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요리해야만 했다. p669

그는 교회의 성직 남용과 교황들의 사악한 행동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는 늘 소심하고 겁이 많았는데, 그가 살았던 시대는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에게 더는 적합한 시대가 아니었다. 정직한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유일하게 영광스럴운 길은 순교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었다.

토머스 모어 경 : 그는 인문주의자였지만 깊고 경건한 신앙심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p671

유토피아는 남반구에 있는 섬인데, 거기서는 모든 일이 가능한 최선의 방식으로 일어난다.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한다. 그 까닭은 사유재산을 인정하면 공공의 선을 증진하기 어려우며 공산제 없이는 평등도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 역시 너무 커지면 다른 도시로 이주시킨다. p674

모어의 <유토피아>는 여러 면에서 놀라우리만치 자유주의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하지만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사는 삶이 대부분의 다른 유토피아에서 사는 것 못지않게 지루해서 견디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p676

제5장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세 위인이 바로 루터, 칼뱅, 로욜라이다.

종교개혁이 개시된 다음 이어진 세기는 철학의 관점에서는 불모의 시대이다. p678

종교개혁의 개인주의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한 개신교도들은 교황에게 복종하는 것 만큼이나 왕에게 복종하는 것도 무척 꺼렸다. p679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의 결과는 처음에는 지성계 전반에 나쁜 영향을 미쳤으나 종국에는 유익한 편이었다. p680

제6장     과학의 발흥

16세기는 신학에 열중한 면에서 보면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보다 더욱 중세적 사고방식을 드러낸다. 근대 세계는 17세기에 비로소 시작된다.

근대철학의 정초자로 평가받는 데카르트는 바로 17세기 과학을 창안한 과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p681

과학자를 과학자답게 구분해주는 특징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왜 그것을 믿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는 한없는 인내를 요구하는 관찰이고, 다른 하나는 대담하게 가설을 세우는 능력이다. p684

새로운 천문학이 뛰어난 장점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고대 시대 이후의 믿음들이 거짓일지도 모른다고 인정했으며, 둘째로 인내심을 가지고 사실들을 수집하고, 사실들을 함께 묶는 법칙들을 대담하게 추측함으로서 과학의 진리를 시험한 것이다. p685

갈릴레오는 근대 과학을 정초한 과학자들 가운데 뉴턴을 제외하고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힌다.

역학에서 가속도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p688

과학의 발전이 초래한 다른 결과는 인간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일이다. p695

제7장     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은 근대 귀납법의 창시자요, 과학적 탐구 절차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려 노력한 선구자로서 영원히 기억할 만하다.

그의 철학 전체를 꿰뚫는 기본 정신은 실제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 과학적 발견과 발명을 수단으로 인류에게 자연을 지배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p700

베이컨은 삼단논법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수학의 가치도 실험정신이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낮게 평가했다. p702

제8장     홉스의 리바이어던

홉스는 경험론이나 합리론 어느 한쪽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철학자이다. 그는 로크, 버클리, 흄과 마찬가지로 경험론자였지만 그들과 달리 순수 수학뿐 아니라 응용수학과 관련된 수학적 방법의 가치를 인정한 철학자였다. p705

눈에 보이지 않는 권능에 대한 두려움이 공개적으로 허용되면 종교이고, 그렇지 않으면 미신이다. p709

홉스는 왜 인간은 개미나 벌처럼 서로 협동해서 살지 못하는거라는 문제도 고찰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같은 벌집에 사는 벌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즉 벌들은 명예를 추구하지 않고 이성을 사용해 정부를 비판하지도 않는다. p710

그는 또 민주주의를 시민 개개인이 입법과 행정 분야에 직접 참여하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체제로 생각한다. 적어도 이것이 홉스의 견해인 듯하다.

자유는 운동의 외적인 방해 요인이 없다는 말이다. p712

제9장     데카르트

르네 데카르트는 흔히 근대 철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데, 내 생각에도 옳은 평가이다. 그는 고도의 철학적 능력을 갖춘 최초의 인물로서, 그의 철학관은 새로 등장한 물리학과 천문학에서 깊은 영향을 받는다.

선대 철학자들이 닦아 놓은 기초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완전한 철학 체계를 새롭게 구성하려 노력했다. p719

17세기에 네덜란드가 사상의 자유를 인정한 나라로서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데카르트가 소심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는데, 좀 더 호의적으로 말하면 방해받지 않고 연구하기 위해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소망했다. p721

데카르트는 철학자이자 수학자이며 과학자이기도 했다. 철학과 수학 분야의 연구는 최고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p722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이 참된 주장은 너무 강하고 확실해서 회의론자들이 아무리 허황된 가정으로 뒤집으려 해도 뒤집지 못한다. 따라서 나는 이 명제를 그토록 찾아 헤매던 철학의 제일 원리로서 주저 없이 수용하겠다. p727

관념은 세 종류로 나뉘는데, 1) 정신 능력이 본래 가진 관념, 2) 외부 자극에서 생긴 외래 관념 3) 내가 꾸며서 만들어낸 관념 p729

데카르트 철학은 그 밖에도 두 가지 점 때문에 탁월성을 인정받았다. 첫째, 플라톤에서 시작되어 대개 종교적 이유로 그리스도교 철학에서 발전한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완성했거나 거의 완성했다.

제10장   스피노자

위대한 철학자들 가운데서 고결한 품성을 갖춘 매력 넘치는 인물이다.

윤리적인 면에서는 아무도 따르지 못할 최고 수준에 이른 철학자이다. p733

감정이론, “인간의 정신은 신의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에 적합한 지식을 가진다는 놀라운 명제에 이른다. p737

희망과 공포는 둘 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견해에 의존해서 생겨나며, 지혜가 없기에 생겨난다.

논쟁할 때에도 점잖고 합리적인 태도로 일관했으며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설득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p739

명석하고 판명하게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이해한 사람은 신을 사랑하며,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신을 더 많이 사랑하게 마련이다. p740

사실들을 발견하려면 추리가 아니라 관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논리적 필연성이 아니라 경험 자료를 바탕으로 확립한 원리에 의거해 미래의 일을 성공적으로 추론한다.

스피노자의 관심사는 우리가 인간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도 고결하게 사는 방법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는 만물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학설로 인간의 한계를 실제보다 더욱 한정한다. p743

자유로운 인간은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네 친구에게 무관심하라!”는 스토아 학파의 원리는 악하다. p744

복수 자체는 해치는 행동에 대한 최선의 반응이 아니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모든 죄는 무지에서 비롯되므로, 그는 저들이 한 일을 모르기 때문에 저들을 용서하라.” 그러나 그는 당신이 죄의 원천으로 보이는 제한된 시야에서 벗어나라고, 아무리 큰 불행이 닥쳐도 슬픔의 세계에 갇혀 지내지 말라고 권고했으리라. p745

그러나 사악한 자가 권력을 쥐고 있는 한, 당신이 그를 증오하지 않는다고 확신해보았자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다. 사악한 자는 당신의 말에 나쁜 동기가 감추어져 있다고 말할 테니까.

당신의 운명이 인류의 범상한 운명보다 더 비참한 역경을 참고 견디어낼 수 밖에 없는 처지라면, 우주 전체를 생각하거나 아니면 당신의 슬픔보다 더 큰 문제를 생각하라는 스피노자의 원리는 유익한 교훈이다. p746

제11장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최고 수준의 지성 능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되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칭찬할 만하지 않다. p747

인간이 하는 행위에는 언제나 동기가 있게 마련이지만, 행위의 충분한 이유가 될 정도로 논리적 필연성을 갖지는 않는다. p752

라이프니츠 철학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여러 가능 세계가 존재한다는 학설이다. p757

그는 수리 논리학의 개척자로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던 중요한 의미를 통찰했다. p764

제12장  철학적 자유주의

자유주의 운동 전반에 걸친 독특한 점은 넓은 의미의 개인주의인데, 이 개인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더 상세한 정의가 필요하다. p767

제13장  로크의 인식론

존 로크는 역사상 일어난 혁명 가운데 가장 온건했으며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둔 1688년 명예혁명의 주창자이다.

로크는 스콜라 철학과 독립교회파의 광신 성향을 모두 혐오했다. p774

로크 사상의 특징은 바로 독단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는 점인데, 이 점은 그에게서 시작되어 자유주의 운동 전체로 전파되었다.

로크 학설의 다른 점은 진리란 식별하기 어려우며,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의심하면서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는 취지로 드러난다. p777

로크가 사용한 이성의 역할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우리가 확실하게 인식한 내용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개연성만 지니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지지할 수 없는데도 실제 생활에서 수용하면 좋을 면제들에는 어떤 부류가 있는지 탐구하는 일이다.

로크는 어떤 명제이든 명제에 부여한 찬성의 정도는 그것을 지지해주는 개연적인 근거에 의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p778

우리의 지성은 종종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에 이성을 믿고 따를 수 밖에 없으며, 타인의 의지와 지시에 맹목적으로 복종해서는 안 된다.

냉대받는 자리에 있을 대처럼 이해관계나 속셈의 의혹을 느낄 경우라면 더욱 고집스러운 태도를 보이게 된다. p779

대단히 취약한 근거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덧없는 행동과 무분별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안다기보다는 믿을 수 밖에 없는 삶의 모습을 감안한다면, 남의 자유를 빼앗고 의견을 강요하지 말고 부지런히 자신을 알고 분별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마땅하다.

경험론이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유래한다는 학설이라면, 로크는 아마 경험론의 창시자로 생각될 만하다. p780

로크는 지각이란 지식에 이르는 첫 단계이자 지식을 얻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재료가 모이는 입구라고 말한다. p781

로크는 신뢰성을 자기 철학의 목표로 삼았으며, 목표에 이르려 일관성을 포기했다.

로크는 벤담처럼 인정 많고 상냥한 정서로 충만한 사람이었는데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행복이나 쾌락만을 위한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p784

사려의 강조는 자유주의의 특징이다. 사려가 자본주의의 발흥과 관련된 까닭은, 사려를 잘하는 자가 부유해지는 반면, 사려를 하지 못하는 자는 가난해지거나 여전히 가난한 상태로 머물기 때문이다. p786

우리는 오로지 쾌락을 욕구한다. 하지만 사실상 많은 사람은 쾌락 자체가 아니라 가까운 쾌락을 욕구한다. p788

제14장  로크의 정치철학

인류는 모든 종속에서 벗어날 자유를 자연적으로 부여받았으며, 어떤 정부 형태를 선호할지 선택할 자유와 누구든 타인을 지배할 권력은 처음부터 대중의 재량에 따른 결정의 결과이다. p790

영국에서 왕권신수설이 타파된 주된 원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종교의 다원화이고, 다른 하나는 군주와 귀족 계급, 상류 자본가 계급 간의 권력 투쟁이다. p792

전통적인 권력 기반은 무너졌지만 민주주의의 성공적 실천에 필요한 기질이 성숙할 시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p794

로크의 법 이론은 개인의 권리가 국가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는 견해에 기초한다. p801

로크를 대표 이론가로 꼽을 수 있는 다른 유형의 이론은 사회계약론이다. p803

나는 정치 권력이란 사형을 비롯한 재산으 ㅣ규제와 봏를 위한 형벌들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그러한 법률을 집행할 때나 외국의 침입에서 국가를 방위할 때 사회의 힘을 사용할 권리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일은 오직 공공선을 위한 것이다. p804

최고 권력도 어떤 사람에게서 당사자의 동의 없이 재산의 어느 한 부분도 가져갈 수 없다. p806

우선 누구나 자기 노동의 결과로 얻은 사유재산ㅇ르 가지거나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p808

노동가치설은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윤리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 측면이다. 말하자면 생산물의 가치는 생산물에 들인 노동에 비례해야 한다는 주장, 또는 사실상 노동이 가격을 규제한다는 주장이다. p810

사람이 제각기 노동의 산물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원리는 산업이 발달한 문명사회에서는 무용지물이다. p811

로크의 정치철학은 산업혁명 때가지는 전반적으로 적절하고 유용한 사상이었으나, 이후 점점 중요한 문제들에 대처해나갈 수 없게 되었다. 거대 주식회사에 통합된 재산의 힘은 로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우리가 정부가 약속한 이점을 누리려면, 먼저 국가들 간의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어야 한다. p815

제15장  로크의 영향

칸트는 주장한다. 쾌락이 곧 선은 아니지만 유덕하고 고결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다면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p821

제16장  버클리

버클리는 철학사에서 물질의 존재를 부정했다고 알려진 중요한 인물로서 재치 있고 교묘한 논증들을 통해 이 점을 지지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물체는 오로지 지각됨으로써 존재한다. p824

우리가 한 사건이 지각된다고 말할 때 분명 그 사건이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수준 이상을 의미하는 것 같다.

물리학의 언어로 말하자면, 만약 발생한 어떤 사건이 특정한 종류의 효과를 낸다면 그 사건은 지각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p833

누구나 알고 있듯이 관념론자는 정신이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유물론자는 물질이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독자들이 관념론자들은 덕을 중시하지만 유물론자들은 사악하다는 사실도 인식하기를 바란다. p837

제17장  

흄은 매우 중요한 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로크와 버클리의 경험주의 철학을 발전시켜 논리적 결론을 이끌어냈고, 일관성을 보여줌으로써 경험주의 철학이 대단한 사상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p838

흄은 철학적으로 구분할 수 잇는 일곱 가지 관계, 즉 유사성, 동일성, 시간과 장소의 관계, 양의 비율이나 수, 질의 정도, 반대(불일치), 인과 관계에서 시작한다.

단지 관념들에만 의존하지 않는 세 가지 관계는 동일성, 시공관계, 인과관계이다. p843

그는 자기 이론을 믿음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지지하는데, 믿음이란 현재의 인상과 관계를 맺거나 그 인상으로 인해 연상된 생생한 관념이다. p845

흄은 자신의 논증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내가 아는 한, 내가 마주했거나 앞으로 이 논고의 진행과정에서 논의할 역설들 가운데 현재 직면한 역설이 가장 억지스럽다. p848

미래가 과거를 닮는다는 가정은 어떤 종류이든 논증에 근거하지 않고 전적으로 습관에서 유래한다.”

자연은 완전무결하며 제어 불가능한 필연성으로 우리가 숨을 쉬거나 느낌을 가지듯이 판단하도록 결정해놓았다. p851

그는 로크와 마찬가지로 감각과 경험의 개념과 함께 출발하여 그 외의 어떤 것도 신뢰하지 않으면서, 경험과 관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면 무엇이든 찾아내려 한다. 그러나 흄은 로크보다 더 뛰어난 지성 능력과 더 예리한 분석력을 가진 반면, 모순을 편안하게 수용하는 면에서는 덜 관대했는데 경험과 관찰에서는 어떤 지식도 얻을 수 없다는 비참한 결론에 도달한다. p853

완전히 경험적이거나 대부분의 경우에 경험적인 철학의 테두리 안에서 흄의 문제에 대한 답변이 있는지 찾아보는 일은 중요하다. p854

경험주의자들이 아닌 사람들이 왜 한 가지 출발점은 용납되고 다른 출발점은 금지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p855

 

제2부   루소에서 현대까지

제18장  낭문주의 운동

낭만주의 운동을 최초로 이끈 위대한 인물은 루소이지만, 그는 단지 이미 존재하던 낭만주의 경향들을 일정한 한계 내에서 표현했을 뿐이다. 18세기 프랑스의 교양인들은 감수성을 높이 찬양했는데, 감수성은 감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표현하는 특히 공감의 정서를 잘 느끼는 경향이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은 빈곤 상태로 버려진 농부 가족을 보고 눈물을 쏟지만, 농민 계급 전체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심사 숙고한 끝에 마련한 계획에 대해서 냉담하기 일쑤일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의 눈에 가난한 사람들은 도시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으며 산업 노동과도 무관했다. p859

낭만주의 운동 전체의 특징은 한마디로 공리적 기준을 미적 기준으로 대체한 것이다. p861

18세기 말엽 독일의 낭만주의자들은 기운찬 젊은 청년들이었는데, 젊음에 가장 잘 어울리는 특징적인 견해와 사고방식을 표현했다. p862

è  왠지 현대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실행력까지 갖춘 젊은이들과 오버랩이 된다.

인간은 자기 이익을 위해 집단을 형성하게 되었지만 본능의 차원에서 대부분은 고독한 존재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미래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만족을 포기하는 습관은 고리타분하고 싫증나는 일이다.

사회의 구속에 반하는 고립 추구 본능에서 비롯된 반항은 보통 낭만주의 운동이라 불릴 뿐만 아니라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낭만주의의 결과를 특징짓는 철학, 정치학, 정서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p866

낭만주의 운동의 본질은 인간의 개성을 사회적 규약과 도덕성의 족쇄에서 자유롭게 하려는 목표에 있다. p868

인간은 고립된 고독한 동물이 아니며, 사회생활을 통해 살아가는 한에서 자아 실현이 윤리학의 최고 원리일 수는 없다. p869

제19장  루소

루소는 18세기 프랑스어의 의미에 따르면 계몽철학자였으나 오늘날 말하는 의미의 철학자는 아니었다. p870

아마도 루소는 재정적인 면에서나 지적인 면에서 그녀보다 우월하다는 확신과 그녀가 자신에게 완전히 의존한다는 느낌을 즐겼을 터이다. p873

문명사회와 거기에서 귀결된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은 사유재산제에서 찾아야 한다. p874

그의 감수성은 그에케 쾌락보다는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안겨준다.  p878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자연스런 감정은 공동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이끌지만, 이성은 이기심을 부추긴다. p880

그러므로 일반 의지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으려면, 국가 안에 종속된 사회단체가 존재해서는 안 되며, 시민 각자가 오직 자신의 소신에 따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일은 다른 사람에 대한 권한을 양도받은 사람에게서 정의와 이성의 의미를 빼앗아가는 쪽으로 일어난다. p887

루소도 지적하듯이 직접 민주주의가 결코 완전하게 실현할 수 없는 제도인 까닭은 국민들을 언제든 소집하기 어려우며 그들이 언제나 공적인 일에 전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p889

제20장  칸트

18세기 철학은 로크, 버클리, 흄이 대표한 영국 경험론이 지배했다. p890

칸트는 인과 법칙이 종합 명제의 특징을 가진다는 견해를 수용했는데도 선험적으로 인식된다고 주장했다.

칸트의 말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은 개념이 아니라 직관형식이다. p897

신과 내세의 삶이 존재하며 자유가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덕이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적 가치는 인간이 의무감으로 행동할 경우에만 있을 수 있다.

정언 명령은 종합적이면서 선험적인 특징을 가진다. p900

정치철학은 필요한 경우에 소수의 이익은 다른 다수의 이익을 위해 희생될 수 있다는, 다수의 이익이 우선한다는 것과 같은 원칙을 요구한다.

칸트의 도덕 원리는 개개인이 절대적 목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다수에게 영향을 끼치는 행동을 결정할 때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취급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p901

칸트는 마음이 감각의 처리되지 않은 재료를 정돈하고 배열한다고 주장하지만, 왜 마음이 다른 식이 아니라 지금 하는대로 정돈하고 배열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 않는다. p905

제21장   19세기 사상의 흐름

19세기 지성인들의 삶은 이전 어느시대보다 복잡.

첫째, 관계를 주고받는 구역이 전보다 넓어짐

둘째, 새로운 경험의 주요 원천이었던 과학이 지리학, 생물학, 유기화학 분야에서 새로운 업적 달성

셋째, 기계에 의한 생산은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으면서, 물리적 환경에 관계하는 새로운 힘의 개념 제시

넷째, 사상, 정치학, 경제학 분야의 전통적인 체계에 반하는, 철학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 둘다에 걸친 의미심장한 반항(낭만주의적 반항 : 바이런, 쇼펜하우어, 니체, 모솔리니, 히틀러, 합리주의적 반항 : 프랑스 게몽철학자, 영국의 철학자 급진파, 마르크스, 소련)

 

독일 철학은 독일 문학과 에술보다 프로이센과 더 깊은 관련이 있었다. 칸트는 프리드리히 대왕이 신하였으며, 피히테와 헤겔은 베를린 대학의 교수였다. p912

인간은 바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무지한 상태로 태어난 것이다. 그들은 단지 교육에 의해 바보로 양육된 것 뿐이다.(엘베시우스)

벤담이 채택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원리는 분명히 민주주의적 감각에서 비롯되었으나 인권의 학설에 대립하는 측면도 포함하는데, 그는 둔하게도 인권의 학설을 무의미한 이론으로 단정했다. p915

벤담과 존 스튜어트밀에게는 있지만 맬서스나 제임스 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열광주의 경향은 이 과학에 의해, 특히 인구론에 대한 맬서스의 침울한 해석에 의해 엄정한 견제를 받았다.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주의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벤담주의자들은 대체로 노동자 계급에게 등을 돌리고 고용주의 편을 들었다.

낭만주의적 반항은 합리주의적 반항과 적지않은 차이점을 드러내지만, 둘다 프랑스 혁명과 혁명 직전의 계몽 철학자들에서 유래한다. 낭만주의적 반항은 바이런에서 비철학적인 옷을 차려입고 등장했으나, 쇼펜하우어와 니체에서는 철학의 언어를 몸에 익혔다.  p916

역사적 관점에서 흥미로운 점은 다윈이 철학적 급진파의 특징이던 경제학을 생명체 전반에 걸쳐 확장한 것이다. p918

예전에 산과 폭포는 자연 현상으로만 보였다. 오늘날 불편한 산은 허물어버릴 수 있고, 편리한 폭포라면 새로 만들 수도 있다. p920

사태를 조종하는 지배자들이나 지배자들과 접촉한 사람들 사이에는 힘을 둘러싼 새로운 믿음이 생겨난다.

인간이 지닌 힘의 한계를 보여준 믿음을 대표하는 몇몇 개념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 중요한 개념 두 가지가 바로 신과 진리이다. p921

민주사회의 분열은 헤겔 이후 철학자들이 대부분 열중할 수 밖에 없는 문제였으며, 다수의 이익과 소수의 이익 사이에 나타난 첨예한 대립은 실제로 파시즘으로 표출되었다. 철학자들 가운데 니체는 서슴지 않고 소수의 편에 섰고, 마르크스는 전심전력을 다해 다수의 편을 들었다. 아마 벤담은 상반된 이익 관계에서 비롯된 갈등을 조정하려 한 유일하게 중요한 인물이었으리라. p922

제22장  헤겔

헤겔은 자주 칸트를 비판했지만, 칸트가 없었던들 자신의 철학 체계를 결코 세울 수 없었을 터이다.

마르크스는 청년기에 헤겔 철학을 공부했으며, 그가 완성한 체계 속에서 헤겔의 영향을 받은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나타나 있다. p923

그는 말년에 애국심이 강한 프로이센 사람이자 국가에 충성하는 종복으로서, 이미 인정받은 자신의 철학적 성공을 편안히 즐겼다. 그러나 젊은 시절 헤겔은 프랑스가 예나 전투에서 승리한 사건을 기뻐할 정도로 프로이센을 경멸하고 나폴레옹을 찬미했다.

è  나이가 들수록, 가진 것과 지킬 것이 많아질수록 보수적인 성향으로 바뀌는 것은 국가를 막론하고 다 똑같나보다. 왠지 조금 씁쓸하다.

그는 전체를 제외한 무엇도 궁극적으로 완벽하게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복잡한 체계로 생각한 점에서 파르메니데스나 스피노자와 다르다. p924

헤겔은 전체, 즉 복잡한 존재 전부를 총괄하여 절대자라고 부르는데, 절대자는 정신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예시는 정,, 합으로 이루어진 변증법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해도 된다.

진리는 아저씨 단독의 속성이거나 조카 단독의 속성이 아니라 아저씨와 조카로 이루어진 전체의 속성이다. p926

헤겔은 이성은 실재하는 모든 존재에 대한 의식의 확실성이다라고 말한다.

절대이념은 주체의 이념과 객체의 이념의 통일로서 이념의 개념, 즉 그것의 대상은 이념 자체이고 이에 대한 객체는 이념 그러니까 그것의 통일 속에 모든 특성들을 포괄하는 대상의 개념이다. p928

헤겔에게 자유는 법에 따라 행동할 권리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p931

군주가 일반 의지를 구현하는 반면에 의회의 다수는 모든 사람의 의지를 구현한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편리한 학설이 아닐 수 없다. p932

헤겔에서 국가는 마르크스에서 계급이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p933

만약 그의 학설을 수용한다면, 상상할 수 있는, 국내에서 행해지는 모든 전제정치와 외국의 모든 침략 행위의 정당성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p937

헤겔은 시민과 국가의 윤리적 관계를 눈과 신체의 관계에 유비해서 이해한다.

윤리 문제에 대한 진술은 한 가지 중요한 점, 즉 목적과 수단의 구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함이 있다.

헤겔과 관련하여 제기해야 할 실제적인 문제는 이것보다 국가가 목적으로서 자체로 선한지 여부이다. p939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한 진실, 즉 논리가 형편없을수록 거기서 생겨난 귀결은 더욱 흥미롭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p942

제23장  바이런

바이런의 감수성과 인생관은 외국에 전해져 발전하고 변형되면서 널리 퍼져나가 마침내 중요한 대사건을 발생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바이런의 철학은 역사의 각 단계에 맞추어 지성인과 예술가들이 사유하고 느끼는 방식에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 p945

대학생으로서 난생 처음 자기 힘으로 소득을 올리게 되었을 때, 그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된 존재로서 느낀 감상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바이런은 수줍어하는 성격에 더하여 친구가 없다는 외로움에 지쳐 애정 행각에서 위안을 찾았다. p946

나의 긍지를 낮추는 것은 무엇이든 거짓으로 판단해야 한다.

비극은 우리가 가슴과 머릿속에 엄밀한 진리 추구의 방법을 가지는 한, 종교 교리와 형이상학적 독단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데서 발생한다. p947

니체에게 위대한 인간은 신과 흡사한 존재이고, 바이런에게는 으레 자기 자신과 싸우는 티탄이다. p948

그는 클라우제비츠, 스탕달, 하이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피히테와 니체 사상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이탈리아 애국자들의 활동을 자극했다. p949

루소는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감상적인 인물인 반면, 바이런은 격렬한 감정의 소유자였다. 루소의 비겁한 성격은 명백하게 드러나지만, 바이런의 비겁한 성격은 숨어 잇다. p951

제24장  쇼펜하우어

그는 염세주의자의 길을 택했지만,…

국가주의에서 자유로웠던 만큼 자기 나라 독일의 작가들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저술가들의 사상에도 정통했다.

자신이 믿는 철학을 탐구한 예술가와 문인들에게 호소했다. p952

쇼펜하우어는 사물 자체를 존속시키면서 사물 자체를 의지와 동일시했다. 그는 나의 몸처럼 지각에 나타난 현상이 실제로는 의지라고 주장했다.

실재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마찬가지로 자연의 전체 과정 속에 나타난, 하나의 거대한 의지이다. p955

이루지 못할 소망은 고통을 낳고 욕망을 성취해봐야 싫증만 날뿐이기에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p956

그의 삶에서 동물에게 친절한 면을 제외하면 덕을 행동으로 보여준 증거는 찾기 어렵다. 그는 과학적 호기심과 과학의 이득을 위한 동물 생체 해부에 반대하기까지 했다. p959

염세주의자가 되느냐, 낙관주의자가 되느냐는 기질의 문제이지 이성의 문제가 아니다.

è  왠지 이성이 아닌 기질의 문제라니 안심이 된다. 성격과 같이 바뀔 수 없다는 것이지 않은가. 그냥 생긴대로 살되 내게 주어진 기질 안에서 더 잘 살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의지가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는 학설은 여러 현대 철학자들이 주장했는데, 그 가운데 니체, 베르그송, 제임스와 듀이가 두각을 나타냈다. p960

제25장  니체

윤리학의 측면에서 중요한 인물이며, 다음으로 예리한 역사 비평가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p961

마키아밸리와 유사점, 니체의 정치철학은 <군주론>에 제시된 학설과 유사하다. p963

진정한 덕은 유익하거나 타산적이지 않고, 그 덕을 소유한 자와 그러지 않은 다른 자를 구별해주며, 질서에는 적대감을 표현하고 열등한 자에게는 해를 입힌다. p964

그는 열정적인 개인주의자요, 영웅 신봉자이다. p965

니체의 윤리학, 하나는 여성을 경멸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교를 지독하게 비판한 경우이다. p966

니체가 여자들을 향해 퍼부은 독설은 전부 자명한 진리인 양 제시되지만, 역사나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증거에 의해 지지되지 않으며, 여자들에 관한 경험은 거의 누이동생에게 국한되었다. p967

야수는 야생에서는 광채를 내지만, 길들면 빛을 잃는다.

그가 귀족적인 탁월한 품성에서 잔혹성이 하는 역할을 기꺼이 인정한 까닭은 고급문화라 부르는 것이 거의 대부분 잔혹성의 영성과 강화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p968

스피노자에 대해 병약한 은둔자의 겉치레는 소심하고 상처받기 쉬운 개성을 얼마나 많이 보여주는가!”

니체의 여성관은 여느 남성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여자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 훤히 드러나는 두려움의 감정을 객관화한 결과이다. p969

개별적으로 약한 자들이 모여 이루는 단결이라면 모두 반대하는 까닭은, 약자들의 결집력이 개별적으로 강한 자들의 결집력을 능가하지나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p973

윤리문제는 공감에 대한 문제이다.

니체의 윤리에는 공감이 들어설 자리가 전혀 없다. p974

고통을 사랑하고 삶에 대한 사랑을 부끄럽게 여기는 당신이야 그럴테지요. 그러나 아무도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는 행복할 수 없을테지만, 정말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행복해질 겁니다.

내가 니체를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그가 고통에 대해 숙고하기를 좋아하고, 기만을 의무로 세우며, 그가 찬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복자들로서 평범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영리함을 명예로 삼기 때문이다. p976

제26장  공리주의자들

벤담의 철학의 근거, 하나는 연합원리이고 다른 하나는 최대 행복 원리이다. p978

벤담의 장점은 공리주의 학설이 아니라, 다양한 실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학설을 강력하게 적용한 데 있다. p979

벤담이 점ㅊ차 급진주의로 나아가게 된 근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쾌락과 고통의 계산에서 연역적으로 추론되는 평등의 신념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일을 그가 이해한 이성의 중재에 맡기려는 불굴의 결심이다. p980

벤담의 체계에는 명백한 결함이 한가지 있다. 만약 사람이 언제나 제각기 자신의 쾌락을 추구한다면, 입법자가 인간 일반의 쾌락을 추구한다는 점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p982

호지스킨은 만약 리카도가 가르쳤듯이 모든 가치가 노동에 의해 부여된다면 보상은 모두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p986

제27장  카를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어떤 면에서 호지스킨처럼 철학적 급진파의 영향으로 성장한 철학자로서 급진파의 합리적 성향과 낭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이어받는다. 다른 면에서 보면, 그는 유물론을 부활시킨 학자로서 유물론을 새롭게 해석해서 인간의 역사의 새로운 방식으로 관련시킨다. p987

신문 기고가로서 활동했으나 그가 편집에 참여한 라인 신문은 논조가 과격하다는 이유로 당국에 의해 발매가 금지되었다.

가난과 병과 자녀의 죽음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지치지 않고 저술에 몰두하며 지식을 쌓았다. 살아 있는 동안에 가능하지 않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리라는 희망이 언제나 마르크스의 연구를 고무했다.

è  남들이 봤을 때, 마르크스의 말년은 너무 비참했을지 몰라도, 그 스스로는 하나의 희망을 가지고 계속해서 공부를 쌓을 수 있음에 굉장히 행복한 삶이었을 것 같다.

고전 경제학자들은 의식을 하든 못하든, 지주와 임금 노동자 양측과 대립한 자본가 계급의 복리를 목적으로 삼았다. p988

주체와 객체, 인식하는 자와 인식되는 사물은 양측이 상호 적응하는 과정 속에 있다.

변증법적 인식론에서는 영국 경험론자들이 생각해낸 감각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그들이 말한 감각에 가장 가까운 의미에서 일어나는 감각은 주목이며 일종의 실천을 포함한다. p989

어느 철학자나 편견에 의해 철학을 하게 되었으며, 철학적 견해에 대해 흔히 의식하지 못한 채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는 점에 기꺼이 동의한다. p991

아주 일상적인 의미에서 철학은 이렇게 이성의 범위 밖에서 일어나는 결정사항들이 유기적으로 모인 전체를 가리킨다. p993

순수하게 철학자로서 고찰하면 마르크스에게는 심각한 결정이 있다. 그는 지나치게 실천에 치우치고 단대 문제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휘둘리고 말았다. p994

설득하려 하지 않고 게급투쟁에 모든 희망을 건다. p996

제28장  베르그송

베르그송의 철학은 대부분의 예전 철학과 달리 이원론 체계에 속한다.

생명력의 일부는, 언제나 자유로운 활동 능력을 유지하면서 늘 생명의 새로운 출구를 찾아 분투하고, 늘 마주선 물질의 장벽들 사이로 더 자유롭게 운동하려 한다. p999

최고 상태에 이른 본능을 직관이라 부른다.

지성은 자연의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생명 없는 고체를 주요 대상으로 삼아서’, 비연속적이고 활동력이 없는 대상이라는 명석한 관념을 형성할 따름이다. p1000

베르그송 철학의 두드러진 특색 가운데 하나, 시간과 공간을 전혀 다르게 본다는 점이다. p1001

베르그송은 보통 기억에는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과거는 두 가지 별개의 형태, 첫째 자동기계작용의 형태로, 둘째는 독자적인 상기의 형태로 살아남는다.’

과거는 물질에 의해 작동하고 정신에 의해 상상되지 않으면 안 된다. p1003

누구나 추측하듯이 만물은 두뇌에 의해 지각될 테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사물만 지각할 따름이다. p1004

제29장  윌리엄 제임스

그는 근본 경험주의라는 학설을 창안했고, ‘실용주의도구주의로 불리는 이론을 주창한 세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다. p1009

분명히 나는 기억나는 것을 경험하지만, 뚜렷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일들이 내가 지금도 가진 습관을 형성했을지도 모른다. p1012

가장 넓은 의미에서 실재와 일치한다는 말은 곧바로 실재나 실재의 주변으로 인도한다는,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일치하지 않았던 실재보다 더 좋은 방식으로 실재나 실재와 관련된 무엇을 다루며 효과적으로 실재와 접촉하게 된다는 뜻일 뿐이다. p1015

만약 신이 존재한다는 가설이 가장 넓은 의미에서 만족스러운 효과를 낸다면 그 가설은 참이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는 가설이 유용하다면, 그것을 충분하다는 말이다. p1017

제30장  듀이

그는 고매한 인격자로서 견해는 자유롭고 대인관계에서는 관대하고 친절하며 지치지 않고 연구하는 인물이다. p1019

교육은 듀이가 관심을 둔 가장 중요한 분야였고, 그가 미국 교육에 끼친 영향도 매우 컸다. p1020

다른 언어로 쓰인 문장들이 같은 의미를 가지기도 하기 때문에 콜럼버스에 대해 기술한 문장이 인지거짓인지 결정하는 요소는 낱말이 아니라 낱말의 의미이다. 당신이 문장을 단언할 때는 믿음을 표현하며, 믿음은 다른 언어로 똑같이 표현해도 무방하다. p1021

듀이는 절대적으로 이 될 판단들을 목표로 삼지 않으며 ,모순된 판단들을 절대적인 거짓으로 단정하지도 않는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탐구라 불리는 과정은 유기체와 환경 사이에 상호 조정이 이루어지는 한 형식이다. p1023

듀이 박사는 누구나 그렇듯이 믿음을 두 가지 부류, 하나는 좋은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나쁜 믿음으로 나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하나의 믿음이 한때는 좋은 믿음이 되기도 하고, 다른 때는 나쁜 믿음이 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p1025

듀이와 나의 주된 차이는 듀이가 믿음을 결과에 의해 판단하는 반면 나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관련된 원인에 의해 믿음을 판단한다는 점이다. p1027

듀이의 철학, 힘의 철학으로서 공동체의 힘을 가치잇는 것으로 생각한다.

자연의 힘을 통제하는 인간의 지배력에 더 깊은 인상을 받은 사람들에게, 도구주의 철학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 요인도 바로 사회적 힘이다. p1028

이러한 광기는 피히테와 더불어 철학속으로 침투한 후로 철학자이든 아니든 현대인들이 쉽게 빠져드는 힘의 도취이다. 나는 이러한 도취가 우리 시대에 가장 커다란 위험 요소이며, 의도하지 않더라도 힘의 도취에 일조하는 철학은 모두 끔찍한 사회 재앙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확신한다. p1029

제31장  논리 분석철학

철학의 작업이 대부분, 지금까지 사용된 관레보다 다소 넓은 의미로 사용해야 하기는 하지만, ‘구문론이라 불러도 좋은 체계로 환원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졌다. p1032

사실상 수학은 언어와 관련된 지식일 뿐이다. p1034

양자 역학의 주된 철학적 가치는 물리 현상을 비연속적인 방식으로 가능한 현상이라 생각한 점이다. p1035

현대 분석적 경험주의의 방법은 과학의 방법과 유사하다. 나는 철학적 지식이 가능한 한에서 철학은 분석적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또한 분석적 방법을 통해 예부터 이어진 많은 문제들을 말끔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p1036

철학은 역사를 관통하면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혼합된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한 부분은 세계의 본성에 대한 이론이고, 다른 한 부분은 최선의 삶의 방식에 대한 윤리 혹은 정치학설이다. p1037

광신 행위들이 뒤죽박죽 뒤엉켜 갈등을 빚는 혼란한 상태에서 통일을 이루어 내는 소수의 힘들 가운데 하나가 과학적 진실성으로서, 이는 우리의 믿음을 가능한 한 지역적 편견이나 기질적 편견에서 벗어난 객관적인 관찰과 추론에 바탕을 두게 하는 습관을 의미한다. 이러한 덕을 철학에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철학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의 고안은 내가 속한 분석철학 학파의 주요한 장점이다. p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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