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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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에 대하여
지난 번 리뷰에서 윌 듀랜트에 대해서 조사했으므로 이번에는 그의 제자이자 동반자, 그리고 공동연구자였던 에어리얼 듀랜트에 대해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에이다 코프먼(뒤에 남편이 사용하던 애칭 에어리얼로 개명함)은 1898년 5월 10일 우크라이나의 Proskurov(현재 Khmelnytskyi)에서 Appel Kaufman과 Joseph Kaufman의 슬하에서 차야(life의 의미로 영어로 Ida) 코프먼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머니, 세 명의 여자 형제와 오빠와 1901년 미국으로 이민했으며 뉴욕에 정착했다. 그녀는 13세 때 뉴욕의 페러 모던 스쿨에서 자유 교육을 전공하고 있었고 그 때 윌 듀랜트와 사제지간으로 만났다. 윌은 에어리얼과 결혼하기 위해 교직을 사임했는데 결혼 당시 그녀의 나이는 15세였다.
어린 나이에 감행한 결혼 생활은 쉽지 않았다. 그녀는 불안한 영혼이었고 남편이 매일 밤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일주일에 두 번 있는 강의를 준비할 동안 그의 등을 쳐다보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또한 낮 동안 그녀는 남편이 돈을 벌기 위해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하는 동안 집에 혼자 있어야 했다. 그녀는 결혼 초 적어도 두 번 집을 나갔지만 항상 남편에게 자리를 데리러 오라고 연락을 했다. 그녀는 철학자들 보다는 예술가와 시인들을 더 좋아했지만, 남편과 시간을 보낼수록 철학이 따분한 것이 아니며 실제 생활의 문제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곧 그녀는 열정에 사로 잡혀 남편과 특정 문제에 대해서 논쟁하기 시작했으며 버틀런드 러셀과 조지 산타야나와 같은 뛰어난 철학자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 부부는 1935년부터 75년까지 전 11권으로 구성된 <문명이야기>를 차례대로 발표하였다. 에어리얼은 <문명이야기> 각 권마다 그 집필에 참여했지만 7권 <이성의 시대가 시작되다 The Age of Reason Begins>가 출판된 1961년에야 그녀는 작품의 공저자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 이후 그녀는 공동 집필자로서 나머지 작업을 계속했고, 제 10권 <루소와 혁명>으로 남편과 공동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에어리얼은 LA시로부터 ‘올해의 여성’으로 지명되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1977년 발간된 <두 사람의 자서전 A Dual Autobiography>에서 자신들의 공동작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1981년 10월 25일 에어리얼은 세상을 떠났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13일 만인 11월 7일 남편 윌도 사망했다. 에어리얼과 그녀의 남편은 캘리포니아 주 LA시의 Westwood Village Memorial Park Cemetery에 잠들어 있다.
[참고자료]
Wikipedia Ariel Durant http://en.wikipedia.org/wiki/Ariel_Durant
Will Durant Foundation – Ariel Durant http://www.willdurant.com/ariel.htm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문구
이 책을 읽는 이에게
나는 생각하건대, 인식론은 근대 철학을 유괴하여 거의 그 몸을 파멸시켜버렸습니다.
나는 인식 과정의 연구가 심리학이 할 일이며, 철학은 경험 그 자체를 양식 및 과정의 분석적 기술이 아니라 모든 경험의 총합적 해석이라고 이해될 때가 올 것을 기대합니다. 분석은 과학에 속하며 우리들에게 지식을 주지만, 철학은 지혜를 위한 종합력을 가져야 합니다.
머리글 – 철학의 효용에 대하여
P13 우리는 브라우닝과 같이 ‘인생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나의 즐거움이다’1)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이란 우리의 본질과 경험하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빛과 불꽃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2) (니체 <즐거운 지혜>)라는 말을 이해하고 싶어합니다.
P14 우리가 지혜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그 밖의 모든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믿어야 합니다.
“먼저 마음을 선하게 하라” 베이컨은 우리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모든 것은 찾아올 것이며, 찾아오지 않더라도 고통은 되지 않을 것이다”(<학문의 진보>) 진리가 우리를 부유하게 못할지라도 그 대신 우리를 자유롭게 해줍니다.3)
P15 과학은 점령 지구로써 그 뒤는 안전 지대이며, 지식과 기술이 거기에 불완전하지만 놀라운 세계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철학은 갈 바를 몰라서 우뚝 서있는 것 같으나, 이는 철학이 승리의 과실을 그의 딸인 과학에 남겨 주고 자신은 숭고한 불만을 안고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여 놓은 까닭입니다.
과학은 분석적 기술이고, 철학은 종합적 해석입니다.
철학자는 사물을 결합시켜 종합적 해석을 합니다. 즉 탐구적인 과학이 분석적으로 분해한 우주라는 거대한 시계 장치를 전보다 더 훌륭하게 조립하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우리에게 지식을 줍니다. 그러나 오직 철학만이 우리에게 지혜를 줄 수 있습니다.4)
P16 자세히 말하자면, 철학은 연구 및 논술의 다섯 가지 분야, 즉 논리학, 미학, 윤리학, 정치학 및 형이상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논리학’은 사고 및 탐구의 이상적 방법에 대한 연구로, 관찰과 내성, 연역과 귀납, 가설과 실험, 분석과 종합 – 이러한 것이 논리학이 이해하고 지도하려는 인간 활동의 형식입니다. 그것은 우리 대다수 사람들이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 학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상사상의 위대한 사건은 사고 및 탐구의 방법을 개선한 것입니다. ‘미학’은 이상적 형태, 혹은 미에 대한 연구, 즉 예술의 철학입니다. ‘윤리학’은 이상적 행위에 대한 연구입니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최고의 지식은 선과 악에 대한 지식, 인생의 지혜에 대한 지식입니다. ‘정치학’은 이상적 사회 조식에 대한 연구입니다. (흔히 생각하는 관직의 획득 및 확보에 대한 기술이나 학문은 아닙니다.) 군주 정체, 민주 정체,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부인 운동 – 이것들이 정치 철학의 등장인물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형이상학’(이것은 철학의 다른 여러 형식과 같이 현실적인 것을 이상의 빛에 비추어 조정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매우 번거로운 일이 됩니다)은 사물의 ‘궁극적 실재’에 대한 학, 즉 ‘물질’의 진정한 종국적 본성에 대한 학(존재론)과 ‘정신’의 진정한 종극적 본성에 대한 학(철학적 심리학)과 지각 및 인식의 과정에 있어서의 ‘정신’과 ‘물질’의 상호 관계에 대한 학(인식론) 등입니다.
에머슨은 “제군은 참다운 학자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아는가? 누구에게나 내가 배울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 점에서 나는 모든 사람의 학생이다”5)라고 말합니다.
è 세 명이 길을 가도 배울만한 사람이 있다는 동양의 격언이 떠오르지 않는가?
P17 늙은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에게 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도리를 생각해서 철학 교사들이 옳은가 그른가를 따질 것 없이 오직 철학에만 몰두하라. 그리고 아주 충실하게 검토해 보라. 그 결과, 만일 철학이 나쁜 것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철학을 버리게 하라. 그러나 만일 철학이 내가 확신하는 것과 같다면, 철학을 따르고 섬기며 기운차게 살아가라.”6)
è 평생 철학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살면서 평생 마음과 머릿속에 두고 철학을 품고는 살아야 할듯싶다.
플라톤
P20 정치학에서 그들은 두 파로 갈라졌다. 한편은 루소처럼 자연은 선하고 문명은 악하며, 사람은 날 때부터 평등하지만 단지 계급이 만든 제도에 의해 불평등해졌을 따름이며, 법률은 강자가 약자를 속박하여 지배하기 위한 발명이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 파는 니체처럼 자연은 선악을 초월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불평등하고, 도덕은 약자가 강자를 구속하여 그 힘을 저지하기 위한 발명이고, 힘은 최고의 덕이며 인간 최고의 욕구이다. 그리고 모든 정치 형태 중 가장 현명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귀족정치라고 하였다.
P22 그가 생리학적인 영향의 모든 지시를 주었으므로 제자들은 그의 참석을 즐거워했는지도 모른다.
è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의미를 가늠할 수 없는 문장들을 만나곤 한다. 이 문장의 뜻은 무엇일까? 연회의 메뉴를 지정해 알려줬다는 뜻일까?
P23 그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그를 그토록 존경했을까? 그것은 그가 한 철학자였을 뿐 아니라, 인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전장에서 큰 위험을 무릅쓰고 알키비아데스의 생명을 구해 주기도 했고, 신사처럼 술을 사양하지도 않았으며, 도에 지나치게 술을 마시지도 않았다. 그러나 제자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그의 신중한 지혜에 가장 마음이 끌렸던 것이리라. 그는 지혜가 있다고 주장한 일이 없고 다만 지혜를 사랑하여 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7)
è 존경 받는 스승의 모습이 바로 이렇지 않을까? 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에서 나의 스승의 모습을 발견한다.
P23 철학은 사물의 의심, 특히 자기가 소중히 마음에 고수해 온 신념, 즉 교리나 원칙을 의심하게 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이들 신념이 어떻게 우리들에게 확고한 것으로 되었는지, 또 남모르는 소망이 사상의 옷갈피에 욕구를 집어 넣어 어느새 그 확실성을 만든 것이 아닌지, 그것은 알 길이 없다. 마음이 자기 자신을 검토하기 전에는 진정한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너 자신을 알라(Gonthi Seauton)’고 소크라테스는 말했다.8)
P24 철학자들에게는 모든 나무나 돌보다도, 또 모든 별들보다도 훨씬 더 가치 있는 대상이 있다. 즉, 인간의 정신이다.
P27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이상으로 빨리 가르치는 자는 결국 박해당하는 것이다.
P29 그의 다리와 몸이 점점 굳어갔다. 그것을 안 소크라테스는 자기 손으로 만져보고 “약기운이 심장까지 미치면 그만이겠지”하고 말했다. 하복부 근처가 식어지는 것을 느꼈을 때, 그는 손수 얼굴까지 덮었던 이불을 젖히고 말았다. 이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크리톤, 내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꾸었는데, 잊지 말고 갚아 주기 바라네.”
“틀림없이 갚겠습니다.” 크리톤은 말했다. “그 밖에 다른 부탁을 없습니까?” 이 말에는 대답이 없었는데 잠시 후 움직이는 기척이 있었으므로 옥졸이 이불을 벗겼다. 눈은 이미 움직이지 않았다. 크리톤이 눈을 감기고 턱을 괴었다.
이것이 내가 일찍이 알던 모든 사람 중 가장 지혜롭고, 올바르며, 가장 뛰어난 분이라고 진정으로 부를 수 있는 우리의 친구 소크라테스의 최후였다.
è 소크라테스의 죽음 장면을 그려보며 참으로 익살스러운 죽음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철학자는 죽음 앞에서도 그럴 수 있었나 보다.
P30 그는 민주정치를 파괴하고 가장 지혜롭고 선한 사람들이 다스리는 정치로 바꿔야 한다는 결의를 갖게 되었다. 가장 슬기롭고 선한 사람들을 찾아내어 국가를 다스리게 할 방도를 세우는 것, 이것은 플라톤이 일생을 통해 전념한 과제였다.
P32 즉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여성 해방론, 산아 제한과 우생학, 도덕과 귀족주의에 대한 니체적인 문제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자유교육론, 베르그송의 ‘생의 비약’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등 모든 것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재료를 아끼지 않는 주인에 의해 베풀어진, 선발될 손님을 위한 향연이다. ‘플라톤은 철학이요, 철학은 플라톤이다’9)라고 에머슨은 말하면서 올리바르(페르시아의 시인, <루바이야드>의 저자)가 ‘도서관을 불살라도 좋다. 그 가치는 코란에 있다’고 코란에 대한 한 말을 <국가론>에 헌사하고 있다.
P33 부정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부정을 행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고, 부정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부정을 비난하는 것이오.
P35 정의는 사회 조직에 의존하는 개인간의 관계이며, 따라서 그것을 개인 행위의 성질로서 연구하기보다는 사회구조의 부분으로 연구하는 쪽이 좋다는 것을 지적한다.
P37 무정과 부정을 공무에서 몰아내고 공동의 복리를 위해 통치할 수 있는 가장 우수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준비할 방법을 강구할 것, 이것이 정치철학의 과제다.
P38 플라톤은 인간의 행동이란 세 가지 중요한 원천, 즉 욕망, 감정, 지식에서 흘러나온다고 말했다. 욕망, 욕구, 충동, 본능이 그 하나이고, 정서, 활기, 야심, 용기가 하나이며, 지식, 상상, 지력, 이성이 또 하나이다. 욕망은 허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것은 힘, 주로 성적 욕망의 터질 듯한 저장 장소이다. 감정은 가슴에, 즉 혈액의 흐름과 힘에 자리가 있다. 그것은 경험과 욕망의 유기적 공명이다. 지식은 머리에 있다. 그것은 욕망의 눈으로 영혼의 안내자가 될 수도 있다.10)
감정과 용기의 화신으로서 무엇 때문에 싸우느냐는 것보다 오직 승리 자체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물질의 취득보다 싸움을 좋아하고, 물질의 소유보다 권력을 자랑하며, 시장보다는 싸움터를 좋아하여 세계의 육해군을 만들었다. 이밖에 명상과 이해를 낙으로 삼는 소수의 사람들은 재산이나 승리보다 지식을 동경한다. 시장이나 싸움터를 떠나 조용한 사색에 몰두한다. 그들의 의지는 불이라기보다는 빛이며, 그들의 안식처는 권력이 아닌 진리이다. 그들은 세상이 돌보지 않는 지혜인들이다.
P39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현재의 왕과 군주들이 진지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철학을 하여 지혜와 정치적 지도력이 한 사람에게 겸비될 때까지… 국가와 인류는 결코 재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플라톤 사상이라는 아치의 key stone이다.
P41 교육의 원칙은…. 어릴 때에 일러두어야 한다. 그러나 강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 자유인은 지식의 습득에 있어서도 자유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요받은 지식은 머릿속에 오래 남지 않는다. 초기 교육은 하나의 오락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본래의 성향을 더 쉽게 찾아낼 것이다.
P43 그들에게는 철학을 가르친다. 그들은 이제 30세가 된 것이다. ‘고귀한 기쁨을 너무 빨리 맛 보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젊은이가 처음으로 철학의 맛을 보면 마치 놀이처럼 토론하고 반박하고 부정을 일삼기 때문이다. 마치 아무에게나 할퀴고 물며 재롱을 떠는 강아지처럼.’ 철학이라는 이 고귀한 기쁨은 주로 두 가지를 뜻한다. 명석한 사고, 즉 형이상학과 현명한 통치, 바로 정치학이다. 그러므로 선발된 젊은이들은 우선 명석한 사고를 배워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해서 이들은 이데아에 대한 학설을 연구하게 된다.
P44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감각에 의해 지각되는 사물의 세계와 사고에 의해서 추론된 법칙의 세계가 있다.
그러므로 플라톤에 있어서의 수학은 버트란드 러셀에 있어서와 같이 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주곡이며, 철학의 최고 형식이다. 플라톤은 그 아카데메이아의 문 위에 단테를 연상케 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내걸었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마라.’
P45 보다 높은 교육의 핵심은 이데아의 탐구, 즉 보편적인 것, 관련 법칙 및 발전의 이상 탐구이다.
이들 철학박사들은 철학의 언덕에서 사람과 사물의 세계라는 ‘동굴’속으로 내려와야 한다. 정의나 추상은 이 구체적인 세계에 의해 검토되지 않는 한 무가치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실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실무가나 완고한 개인주의자 또는 힘세고 교활한 인간들과 승패를 겨루는 것이다. 이 투쟁에 의해 그들은 인생은 배운다. 그들은 세상의 조잡한 실재에서 철학에 익숙한 손과 발을 다치고 이마에 땀을 흘려 먹을 양식을 번다.
è 마치 조셉 캠벨이 말한 영웅의 여정 같지 않은가? 세계로 귀환해 모험에서 발견한 것을 사람들과 나누며 부딪히는 영웅의 모습.
P47 ‘철학자란 어리석은 자이거나 악당이므로 미련하게 통치하거나 사리를 채우거나 아니면 두 가지를 다 한다’고 말한다. 청년 시절에 교양을 목적으로 철학을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성년이 된 뒤에 직업으로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악한 사람은 아니라 해도 별물이된다.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학교 교육과 동시에 생활 경험을 부과하여 이 곤란한 사태를 미리 막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해두면 그들은 사색인이라기보다 오히려 행동인 – 오랜 경험과 시련에 단련되어 높은 목적과 훌륭한 기질이 몸에 뭍은 사람 – 이 될 것이다.’ 철학이란, 플라톤에 의하면 활동력 있는 교양, 바쁜 실생활과 가까운 지혜를 의미하며 서재에 갇힌 비실제적인 형이상학은 아니다.11)
è 철학의 목적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이라면 플라톤은 진정 실생활에서 어떻게 철학 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철학자인 것 같다.
P49 특히 교육에 있어 여자나 남자나 똑같이 기회를 가지며, 국가 최고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똑 같은 기회를 가지고 있다. (중략) 분업은 소질과 능력에 의한 일이어야지 성별에 의한 일이어서는 안된다. 만일 여자가 행정능력을 가졌다면 그것을 할 것이고, 만일 남자가 접시닦이의 능력밖에 못 가졌다면 하늘이 부여한 그 직무를 행하게 한다.
è 플라톤의 여성에 대한 생각이 놀랍지 않은가? 그는 과연 인류 최초의 페미니스크가 아닌가? 그런데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어찌 그렇게 편협한 여성관을 가지게 되었는가?
P52 정의에 대해서 플라톤은 말한다. ‘정의란 자기 자신의 것을 소유하고 자기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12)
è 자기의 것을 가지고 자기의 일을 할 수 있는 사회라면 정의로운 사회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P53 정의란 단순한 힘이 아니라 조화된 힘이다. 즉 여러 가지 욕망과 허다한 인간이 이성과 조직의 본질인 질서를 얻는 것이다 정의는 강자의 권리가 아니라 전체의 유효한 조화이다.
사실 철학에서는 참신하다고 과시하는 학설을 불신의 눈으로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진리는 자주 그 옷차림을 바꾸지만 – 아름다운 여인이면 누구나 그렇듯이 – 그 몸은 언제나 같다.
è 이 책을 읽으며 듀랜트의 유려한 문장에 종종 매혹되곤 한다.
그리스도는 약자에게 친절한 것이 도덕이라고 했고, 니체는 강자의 용감함이라고 했으며 플라톤은 전체의 유효한 조화라고 했다. 완벽한 윤리학을 찾아내려면, 아마도 이 세 가지 학설을 결합시켜야 할 것이다.
P57 보통 어머니는 갓난아이를 기쁨보다 체념으로써 받아들인다.
è 평생 아이가 없었던 듀랜트는 어머니가 갓난아이를 체념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글쎄, 아이를 둘 키운 나로서는 오히려 기쁨 쪽이 아닐까 싶다.
P59 플라톤은 자기의 유토피아가 도저히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덧붙이는 것이 공정하다. 그 자신도 달성하기 어려운 이상을 그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나, 그러한 욕망을 그리는 자체에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의의는 보다 나은 세계를 상상하여 적어도 그 일부분이나마 실현시키려고 노력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토피아를 계획하는 동물이다. ‘우리는 앞뒤를 살펴보고 없는 것을 간절히 동경한다.’13)
è 그렇다. 인간은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기 위해 가지고 있는 것을 잃고 마는 존재인 것 같다.
P60 디오니시오스는 플라톤의 계획에 따르면 자기가 철학자가 되든지, 아니면 왕 노릇을 그만 두든지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자 낙심하고 말았다.
P61 라 로슈푸코는 ‘어떻게 늙어야 하는가를 아는 자는 적다’고 말했지만, 플라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솔론처럼 배우고 소크라테스처럼 가르치는 것이었다. 열의 있는 젊은이를 지도하고, 지적 동지애를 찾아내는 일이다. 학생들은 그를, 그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했다. 그는 그들의 철학자이고 지도자인 동시에 그들의 친구였던 것이다.14)
è 이 글을 읽으며 사부님과 우리의 모습이 바로 이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 아케데미아 플라톤이 아테네의 교외에 세운 학교, 이 지방에는 영웅 Akademos를 모신 신전이 있었으므로 이 이름이 생겼다. 근대어 아카데미의 어원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P64 플라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집을 ‘독서인의 집’이라고 부른 것은 매우 마땅한 찬사였던 것 같다.
그 높은 지위에 오른 헤르미아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그의 궁전으로 초청하였다. 그리고 기원전 344년, 과거의 은혜를 갚기 위해 누이동생(일설에는 조카딸)을 아내로서 그에게 주었다. 이것은 그리스인의 선물(나쁜 뜻을 포함하고 있는 선물)이라고 의심할지도 모르지만, 역사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천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충분히 행복한 생활을 보냈으며, 유언장에는 아내에 대한 애정어린 말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펠라 궁전으로 불러,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교육을 맡긴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의 일이다.
P65 아리스토텔레스는 13세의 거친 성격의 소년으로 성미가 급하고 간질 증세가 있었으며 거의 만성 알코올 중독자였다.
P69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철학이나 신화나 비유의 묘사로 구체화된 – 그리고 애매한 – 위대한 예술이 아니고, 전문적이고 추상적인 압축된 과학이다. 그는 플라톤처럼 글을 새롭게 표현한 것이 아니라, 과학과 철학의 술어를 확립한 것이다.
P70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위대한 공적은, 오직 혼자만의 엄격한 사색으로 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P73 시저보다도 오히려 로마를 사랑한 브루투스처럼, 아리스토텔레스도 ‘나는 플라톤을 사랑한다. 그러나 진리를 더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적인 의미에서 실재론자이다. 플라톤이 주관적 미래에 열중하고 있는데 반하여 그는 객관적인 현실을 취급하려고 굳게 결심하고 있었다.
P74 “소크라테스는 인류에게 철학을 주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류에게 과학을 주었다. 물론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철학은 있었고,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도 과학은 있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철학과 과학은 측량할 수 없는 진보를 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 르낭 <예수의 생애>
P79 여자는 남자보다 치아의 수가 적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며 또한 용서할 수도 없다. 아무래도 그는 여자에 대해선 꽤 호의적이었던 것 같다.
P80 무엇을 물을 줄 아는 것은 이미 반은 안 것이다.
P81 자연은 형상에 의한 질료의 정복이며, 생명의 부단한 진보와 승리이다.
P82 아리스토텔레스의 심리학에는 흥미있는 곳이 많이 있는데, 습관의 힘이 강조되어 그것을 제2의 천성이라 부른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15)
P85 왜냐하면 우리는 행복 그 자체를 위하여 행복을 구하는 것이지 그 이외의 무엇을 기대하여 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예, 쾌락, 지력을 구하는 것은… 그것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16)
P87 우리의 실재적인 철학자는 중용이 반드시 ‘행복의 비결’의 전부는 아니라고 한다. 우리는 상당한 정도의 재산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가난은 사람을 인색하게 하고 욕심쟁이로 만들지만, 재산은 사람에게 ‘귀족적인 침착한 태도와 매력의 원천인 걱정과 탐욕으로부터의 자유’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행복에 대한 외부의 보조수단 중 가장 고귀한 것은 우정이다. 실제로 우정은 불행한 자보다는 행복한 자에게 필요하다. 왜냐하면 행복은 남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불어나기 때문이다.
P87 친구를 많이 가지고 있는 자는 한 사람도 친구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P89 그는 인생의 재난을 위엄과 품위로써 견뎌내고, 환경에 선처하는 모습은 지략 있는 장군이 한정된 병력으로 전쟁을 인솔하는 것처럼 한다. 덕이 없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최악의 적으로서 고독을 두려워하나, 그는 자기 자신의 제일 좋은 친구로서 은둔을 즐긴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초인이다.
P92 여자와 남자와의 관계는 노예와 주인, 수공 노동자와 정신 노동자, 야만인 – 그리스인이 아닌 사람 –과 그리스인의 관계이고, 여자는 낮은 발달 단계에 남게 된 남자이다. 수컷은 날 때부터 우수하며, 암컷은 날 때부터 열등하다. 한쪽은 지배하고, 다른 한쪽은 지배된다. 이러한 원칙은 필연적으로 전인류에 영향을 미친다. 여자는 의지가 약하며 따라서 독립적인 성격, 즉 자주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다. 여자는 조용한 가정생활에 가장 적합하며, 대와 관계에선 남자의 지도를 받으나 집안 일에는 더없이 우수하다. 여자는 플라톤의 공화국에서처럼 남자와 비슷해질 게 아니라, 오히려 차이점을 증대시켜야 할 것이다. 서로가 다른 것처럼 매력있는 일은 없다. ‘남자의 용기와 여자의 용기는 소크라테스가 가정한 것처럼 동일하지 않다. 남자의 용기는 지휘에서 나타나고, 여자의 용기는 복종에서 나타난다. 시인의 말처럼 침묵은 여자의 명예다.
[주] <동물발생론> <동물지> <정치학> 도한 바이닝거의 <성과 성격> 및 메러디드의 다음의 말을 참조하라. ‘여자는 남자에 의해 문명화 되는 최후의 것이리라.’ 그러면서도 남자는 여자에 의해 문명화된 최후의 것이다(또는 것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큰 문명화의 힘은 가족과 안정된 경제생활이므로 이것은 함께 부인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à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관을 읽으며 참으로 기가 막혔다. 그는 자신의 부인(도시국가 아타르네이오스의 참주가 된 부유한 헤르미아스의 누이동생(일설에는 조카딸))에 대해서도 위와 같이 생각했을까? 역사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천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충분히 행복한 생활을 보냈으며 유언장에는 아내에 대한 애정 어린 말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이 과연 사실일까? 그의 여성관에 따르면 그는 아내를 열등한 노예취급 했을 것 같다.
프란시스 베이컨
P108 평화의 비결은 우리가 성취하는 일과 우리의 욕망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욕망을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일이라 하였다. ‘당신이 갖고 있는 것이 당신에게 불만스럽게 생각된다면, 세계를 소유하더라도 당신은 불행할 것이다’17)라고, 로마의 스토아 학파 철학자 세네카는 말했다.
‘우리는 쾌락을 피할 것이 아니라 선택해야 한다’18) 따라서 에피쿠로스는 향락주의자가 아니다.
P111 ‘너의 소원을 성취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오히려 일이 되어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그리하면 너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사람은 미래를 지배하고, 세계에 군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P113 지식이 증대됨에 따라 공포는 감소되었다.
P116 결국 베이컨은 끌어올려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기어 올라갔다.
‘누구나 지금까지 이처럼 정밀하게, 이처럼 간결하게, 이처럼 무게 있게, 이처럼 발언 내용을 풍부하게 말한 자는 없다. 그의 연설은 부분 부분이 모두 베이컨 특유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청중은 기침을 하거나 한눈을 팔면 반드시 어떤 손해를 봤다. 그의 연설은 명령이었다. 누구도 그만큼 청중의 애정을 독차지한 사람은 없었다. 모든 청중이 걱정하는 것은 그의 연설이 곧 끝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고 벤 존슨은 말했다. 참으로 부러운 웅변가이다.
è 나도 베이컨처럼 강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P117 만족할 줄 모르는 야심은 그를 쉬게 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불만이 있었고, 1년 내내 수입을 가불하고 있었다.
è 예전의 내 모습이다. 나는 수입을 가불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미래의 에너지까지 끌어다 현재의 일을 해결하는데 사용했다.
P118 베이컨의 승진은 플라톤의 ‘철인왕’의 꿈을 실현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한걸음씩 정치적 권력을 획득함과 동시에 철학의 정상으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중략) ‘세상에 잘 숨는 자는 가장 잘 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표어였다. (중략) 학문은 그 자체가 복적이 될 수도 없고 그 자체가 지혜가 될 수도 없으며, 행위에 옹호되지 않는 지식은 창백한 연구의 허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P118 “학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나태이다. 학문을 너무 많이 장식으로 쓰는 것은 허식이다. 학문의 척도로만 판단하는 것은 학자 기질이다. 교활한 사람은 학문을 욕한다. 단순한 사람들은 학문을 감탄한다. 총명한 사람은 학문을 이용한다.19) 학문은 학문의 용도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르치는 것은 학문 이외의 지혜, 즉 관찰에 의해서 얻어진 학문 이상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스콜라 철학 – 지식의 이용과 관찰로부터의 절연 – 의 폐기를 표명하고 영국 철학의 특징을 이루며, 마침내 실용주의로 되어 가는, 경험과 성과를 중히 여기는 새로운 태도이다.
P120 베이컨은 문장을 길게 늘이기 위한 말이나 쓸데없는 말을 경멸한다. 그는 짧은 글 속에 무한한 보배를 담고, 논문에서도 한 두 장마다 인생의 주요 문제에 관한 달인들의 명민한 지혜의 정수를 실었다. 그 내용과 문체 중 어느 쪽이 더 우수한가를 말하기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운문의 최고봉인 것처럼, 그의 언어는 산문의 최고봉이기 때문이다.
P121 인간으로 하여금 본성에 대한 승리를 과신케 하지 마라. 왜냐하면 본성은 오랫동안 묻혀 있겠지만, 가끔 유혹에 따라 소생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솝의 우화에 나오는 것처럼 처녀로 둔갑한 고양이가 정숙하게 식탁 앞에 앉았다가 쥐가 앞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고 쫓아 가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전혀 그런 기회를 주지 않거나 자주 기회를 주어 마음이 너무 움직이기 않도록 하거나, 둘 중 어느 하나를 해야 할 것이다.’
è 천하제일의 연설가답게 베이컨은 참으로 글도 잘 쓴다. 처녀의 고양이의 비유는 정말 감탄할 만 하지 않은가?
P122 베이컨은, 순수하긴 하나 부드러운 금속을 견고하게 합금시키는 것처럼 정직에 위선을 알맞게 혼합할 것을 권한다. 그는 정신을 넓게, 깊게, 강하게, 날카롭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정통케 하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생활을 바라는 것이다. 그는 단순한 관상의 생활을 칭찬하지 않고 괴테처럼 행동에 도달하지 않는 지식을 경멸한다. ‘인생극장에서는 신들과 천사들만이 관객임을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20)
시시한 철학은 사람의 정신을 무신론으로 기울게 하지만 심오한 철학은 사람들의 정신을 종교로 이끈다.21) 왜냐하면 인간의 정신이 흩어져 있는 파생적인 여러 원인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은 때대로 이 원인에 머물러 있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만, 그러나 그 원인이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사슬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인간 정신은 섭리나 신성으로 달아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남자는 결혼 첫날에 그의 사고력을 7년이나 앞당기게 된다’ ‘덜된 남편이 훌륭한 아내를 가진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베이컨은 예외다)
P123 베이컨은 일에 너무 열중하여 사랑할 틈이 없었는지, 아마도 한 번도 사랑을 깊이 느낀 일이 없었던 것 같다.
P124 아이들의 기호나 재능이 특별하면 그것을 방해하지 않는 것은 좋으나, 대체로 ‘최선을 택하라, 습관은 그것을 유쾌하게 하고 용이하게 할 것이다’라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가르침은 올바른 것이다.
P126 베이컨의 마음은 성공 속에서도 무의식중에 철학에 이끌리고 있었다. 철학은 젊은 날의 유모였고, 관직에 있어서의 반려였고, 감옥에서 오명을 받고 있을 때의 위안이었다.
그야말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외하고는 철학사상 최초의 일이다. 이론보다는 실천을, 사변적 논리보다도 특수한 구체적 결과를 노리는 점 등이 다른 모든 철학과 그 취지를 달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식은 힘이지, 단순한 논증이나 장식은 아니다.
P129 우리가 상대하는 특수한 사람들의 일을 잘 조사해야만 한다. 즉, 그들의 기질, 욕망, 견해, 습관, 관습 등이다. (중략) 이 조사 전체의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다음 3개 조항이다. 즉 1) 사교의 기회를 많이 만들 것, 2) 자유로운 담화와 침묵에 알맞은 절제와 신중을 관찰할 것 3)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람의 본심을 잘 나타내고 자기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P130 베이컨에게 있어 친구는 주로 세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다.
P131 결국 과학보다는 철학이 베이컨의 애인인 것이다. 철학만이 소란과 비탄에 찬 생활에까지 오성의 고귀한 평화를 줄 수 있다. ‘학식은 죽음과 비운의 두려움을 정복하고 진정시켜 준다’
‘철학은 우리로 하여금 정신적 행복을 먼저 탐구하게 하는 바, 그 밖의 것은 행복으로 보충되거나 아예 결핍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22) 작은 한 조각의 지혜도 영원한 기쁨이다.
P133 철학을 풍요케 하는 새로운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불모지였다고 베이컨은 말한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큰 실책은 이론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관찰에는 시간을 쏟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사고는 관찰의 보조가 되는 것이지 관찰의 대용이 되는 것은 아니다.
P134 인간은 문제를 우선 자기 의지에 따라 결정하고, 그런 연휴에 비로소 경험에 호소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자기설에 맞도록 해석하고 개선 행렬 속의 포로처럼 끌고 간다.
P145 그는 자기 자신 위에 부과된 무거운 짐 때문에 쓰러졌다. 그는 그렇게 많은 일을 기획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므로 용서할 여지가 있다.
P147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세가지 의미의 종이다. 즉, 주권자, 또는 국가의 종, 명성의 종, 그리고 직무의 종이며, 몸과 행동 심지어 시간에도 자유가 없다.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힘든 일이며, 수고하여 더 큰 수고를 얻는 것이다.
그는 황제에게 큰 호감을 산 듯 1618년에는 베룰람 남작이 되었고, 1621년에는 성 엘반즈 자작이 되었다. 그리고 3년 동안 대법관이었던 것이다.
P148 베이컨은 자기가 좀 더 일찍 정치에서 발을 씻고 자기 시간을 문학과 과학에 쏟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최후의 시간까지 연구에 종사하였는데, 말하자면 정장에서 쓰러지고 싶었던 것이다. 수필 <죽음에 대하여>에서 그는 ‘상처를 입고 따뜻한 피가 흘러도 상처를 입은 순간에는 거의 아픔을 느끼지 않는 것과 같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때 죽고 싶다’고 말했다.
P148 유언장에 그는 다음과 같이 오만하고도 특색 있는 말을 써놓았다.
“나는 영혼을 신에게 유증한다. …신체는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슬쩍 파묻어라. 내 이름을 다음 세대와 외국의 모든 국민에게 전해 달라.”
스피노자
P155 최후로, 그리고 누구보다도 먼저 데카르트-그는 근대 철학에 있어 주관적인 관념론적 전통의 아버지였다(베이컨이 객관적인 실재론적 전통의 아버지였듯이)-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의 주의를 끈 것은 물질의 모든 형식의 기초에 있는 동질적 ‘실체’와 정신의 모든 형식의 기초에 있는 또 하나의 동질적 실체라는 데카르트의 착상이다. 실재를 이렇게 두 개의 궁극적 실체로 나누는 것은 스피노자의 통일화된 열정에 대한 도전으로, 그의 사상의 축적 위에 수태하는 정자와 같은 작용을 했다.
P158 사람을 옳게 재판한다는 것은 사람의 피부를 벗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곤란하다.
그는 평온한 용기로써 파문을 감수하여 ‘그것은 나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해서는 안 될 일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두운 밤의 휘파람이었다. 실로 이 젊은 연구가는 혹독한 고독에 몰려 있었던 것이다. 고독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그 중에서도 한 사람의 유대인이 동족 전체에서 고립된 것처럼 처절한 고독은 없다.
P159 그가 바르흐라는 그 이름을 베네딕투스로 바꾼 것은 아마 이때일 것이다.
P160 가마리엘(바울의 스승인 예루살렘의 율법학자)이 말했듯, 노동은 사람을 유덕하게 한다. 그러므로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학자는 결국 부랑인이 되고 만다’는 이유에서다.23)
è 융도 이런 말을 했었다. 자신이 니체처럼 미치지 않은 것은 가정이 있고 직업이 있고 현실 세계에 발붙이고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활인으로 생계를 해결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바람직한 삶의 자세인 것 같다.
P166 스피노자는 <구약>이나 <신약>을 분리하지 않고, 일반 민중의 증오와 오해가 제거되어 철학적 해석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라는 서로 적대하는 신앙의 감추어진 핵심과 진수를 찾아내는 한 양자는 하나라고 보는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교적 신앙, 다시 말해서 사랑, 기쁨, 평화, 자제 및 만인에 대한 자선을 고백하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그처럼 악의에 불타는 원한으로써 서로 반목하고 매일 서로 그처럼 심한 증오로 적대하는 것을 보고 때때로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그들 신앙의 목표가 그들이 주장하는 덕보다는 오히려 증오가 아닌가 하고까지 의심하였다.”
P168 최대의 선한 것은 마음이 자연 전체와 공유하고 있는 통일된 지식이다. … 마음은 알면 알수록 자기의 힘과 자연의 질서를 더욱 잘 이해하고, 더욱 자기를 잘 지도하고 명령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마음은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면 할수록 더욱 쉽게 자기를 무용한 사물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완전한 방법이다.
P171 철학서에는 뛰어넘어 읽어서 손해가 없을 만한 곳은 거의 없다. 어느 부분이든 반드시 그 앞의 부분에 의거해 있으며, 어떠한 명백한 – 보기에는 불필요한 – 명제도 당당한 논리 발전의 초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를 읽고 잘 생각해야만 비로소 중요한 부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틀림없이’ – 스피노자는 이 책 제2부에서 말하고 있다 – ‘독자는 어쩔 바를 모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독자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게 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독자가 나와 함께 앞으로 나가 전부를 천천히 모조리 읽게 될 때까지 이것에 판단을 내리지 않기를 부탁한다’ 이 책은 전부를 단번에 읽어 버리지 말고 조금씩 몇 번이고 나누어 읽어라. 그리고 그것을 다 읽고 나면 간신히 그것을 알기 시작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라. 그런 다음에 어떤 주석서, 폴러크의 <스피노자>나 마키노우의 <스피노자 연구>를 읽어라. 두 책을 다 읽으면 더욱 좋다. 그리고 마지막에 <에티카>를 다시 한번 읽어 보라. 그러면 그것은 새로운 책같이 느껴질 것이다. 두번째 그것을 다 읽고 나면 여러분은 철학의 영원한 애호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è 듀런트는 이 책과 스피노자의 저작을 읽는 법에 대해서 이렇게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다.
P173 나는 신은 만물의 내재적 원인이지 외재적 원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이제 말한 바와 같이 만물은 신 안에 존재하고 신 속에 살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24)
P175 철학에 있어서 최대 오류의 근원은 인간다운 목적, 표준, 기호를 객관적 우주 속에 투사하는 데 있다.
P176 스피노자는 ‘신을 아직도 남성으로 그려내고 여성으로는 그려내지 않는 일반 민중의 신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여자의 남자에 대한 종속을 반영한 이 생각을 물리칠 만한 정중함을 지니고 있다.
P177 신은 정신이 아닐 분 아니라 물체도 아니다. 이중의 세계사를 구성하고 있는 정신의 과정과 물체의 과정 및 그러한 과정의 원인과 법칙이 신이다.
P179 관념이 의식 속에 존속하기를 결정하는 충동적인 힘을 가끔 의지하고 부르는데, 이것은 욕망이라고 불려야 할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질 그 자체다’
인간은 자신을 자유롭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자기의 의욕이나 욕망은 의식하고 있으나 그 소망이나 욕망으로 이끌어가는 원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P180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분명히 상반되는 철학자들을 무의식 중에 화해시키고 조화 있는 통일에 짜 넣어, 근대 사상의 최고 업적인 도덕학의 체계를 우리에게 주고 있다. 이것이 스피노자의 특색이다.
P181 그는 행복을 행동의 목표를 세우는 데서 시작하여 행복을 매우 단순하게, 쾌락이 있고 고통이 없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쾌락과 고통은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그것은 상태가 아니라 이행이다. ‘쾌락은 인간이 완전성 – 즉 완성 또는 성취 –이 낮은 상태에서 보다 큰 상태로 이행하는 것이다. 기쁨이란 자기의 힘이 증대되는 일이다. 슬픔은 인간이 완전성의 큰 상태로부터 보다 적은 상태로 이행하는 것이다.
덕의 기초는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노력에 불과하며, 행복은 인간이 자기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데 있다.
니체와 같이 스피노자도 그다지 겸손하지 않았다. 겸손이란 야심가의 위선이거나 노예의 비겁이거나 그 어느 쪽이든 힘의 결핍을 의미하며, 스피노자에게 모든 덕은 능력과 힘의 형태이다.
오만한 사람은 자신의 장점과 남의 결점만을 이야기한다.
그는 미움이란 어떻게든 사랑하려고 애를 쓰는 마음이라고 믿었다. 미움은 미움으로 갚는 것보다 사랑함으로써 더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더욱 간단하다. 왜냐하면 미움은 보복 당한다는 감정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P182 우리는 이길 자신이 있는 적을 미워하지 않게 되므로, 미움이라는 것은 자기의 단점과 두려움을 자백하는 것이 된다.25)
è 아, 이 글을 읽고 마음이 매우 괴롭다. 나의 증오의 한 면을 들켜버린 것 같다.
‘정신은 무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과 너그러움에 의해서 정복된다.’
P183 우리는 가장 격정적일 때가 가장 진정한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가장 수동적일 때이며, 그 때에는 타고난 격렬한 충동과 감정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휩쓸려 경솔하게도 사고 없이는 사태의 일면 밖에 포착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면에만 응하는 반응을 취하게 된다. 격정은 ‘불충분한 관념’이며, 사고란 어떤 문제의 중요한 모든 면이 적당한 선천적, 또는 후천적 반응을 불러일으킬 때까지 꾸물거리고 있는 반응인 것이다.
P188 최고의 복은 덕의 대가가 아니라 덕 그 자체다.
P191 국가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이 지배하는 일도, 공포에 의하여 구속하는 일도 아니며, 오히려 각자가 될 수 있는 대로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즉 누구를 막론하고 상처를 주는 일 없이 생존의 자연적 권리를 가장 잘 유지할 수 있도록 개인을 공포에서 해방하는 일이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목적은 자유이다.
P195 야코비는 괴테로 하여금 스피노자에 주목하게 했다. 이 위대한 시인은 – 그 자신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 <에티카>를 한 번 읽자 곧 개종하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괴테의 가슴속에 있던 영혼이 동경하던 철학이었다. 그 뒤 이 철학은 그의 시와 산문에 침투했다. 이 철학에 그는 ‘우리는 체념해야 한다’라는 가르침, 다시 말해 자연이 부과하는 제한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괴츠나 베르테르의 열광적인 낭만주의에서 후년의 고전적인 차분함으로 높여진 것은 어느 면에서 스피노자라는 조용한 공기를 호흡했기 때문이다.
P195 스피노자를 칸트의 인식론과 결합함으로써 피히테, 셸링 및 헤겔은 저마다의 범신론에 도달했다. ‘자기 유지의 노력’에서 피히테의 ‘자아’, 쇼펜하우어의 ‘살려는 의지’,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 베르그송의 ‘생의 비약’이 나온 것이다.
P196 많은 사람들이 스피노자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마 그의 철학이 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허용하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가치를 주기 때문이리라. 모든 심원한 말은 읽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전도서>가 지혜에 대해서 말한 것도 스피노자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최초의 인간은 지혜를 완전하게 알지 못했다. 최후의 인간도 지혜를 뿌리부터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혜는 바닷물보다 풍부하고 깊기 때문이다.”
볼테르와 프랑스 계몽주의
P200 쓰여진 것은 남고 이야기한 것은 사라져 버린다.
분명히 그는 동시대의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활동했으며, 많은 사업을 이룩했다. ‘일을 하지 않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결국 같은 것이다’ ‘게으른 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인간은 선하다’라고 그는 말했다. 볼테르는 시간에 매우 인색했다고 그의 비서는 말했다. ‘이 세상에서 생을 견디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는 일의 필요를 느낀다. 일은 오래할수록 대단한 즐거움이 되어 인생의 이상과 희망이 된다.’ ‘만일 자살하고 싶지 않으면 언제나 일을 찾아라’
è 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볼테르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인간이었다. 일중독인 많은 사람들 또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는 열심히 일해 99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는 자신이 충분히 활동했기 때문에 시대를 자기의 생명으로 가득 채웠던 것이다.
P201 이탈리아는 르네상스를, 독일은 종교개혁을, 프랑스는 볼테르를 가졌다.
P202 그의 허약한 몸은 어떤 것에도 정복되지 않는 그의 정신을 한평생 병으로 괴롭혔다.
P203 프랑소와는 ‘팽페트’라는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 숨 막힐 듯한 밀회를 계속하여, ‘나는 반드시 당신은 영원토록 사랑할 것입니다’라고 끝맺는 말의 열렬한 편지를 많이 썼다. 이 사실을 발각되어 그는 집으로 끌려갔다. 집으로 돌아오자 그는 단지 몇 주일 동안 그 연인을 생각했을 뿐이었다.
P204 바스티유에 있는 동안 어떠한 이유인지 그는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마침내 정말 시인이 되었다.
P204 그는 ‘철학을 하기 전에 우선 살아야 한다’26)는 유명한 금언을 존중했던 것이다.
è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어렵고 궁색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볼테르는 이 금언을 생활 신조로 삼았던 듯 하다.
P205 모든 성공 후에 오는 실패의 상처는 한층 더 강하게 느껴지게 되는 법이다.
P208 상대인 샤트레 후작 부인은 스물여덟 살, 볼테르는 슬프게도 이미 마흔 살이었다. 그녀는 비범한 여성으로 엄격한 모페르듀이, 끌레로와 함께 수학을 연구하였으며, 뉴펀의 <자연학의 수학적 원리>를 번역하여 여기에 박식한 주석을 붙였다. 그 뒤 곧 프랑스 학술원에 낸 불의 본질에 대한 현상논문을 써서 볼테르보다도 높이 평가되었다.
그는 남녀의 정신은 원래 평등하게 타고 났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이른 것이다.
P209 그는 무슨 일이든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한때는 ‘웃고 즐기기’를 자기의 목표로 했다.
è 마흔 살에 스물 여덟 살의 유부녀인 샤트레 후작 부인과 사랑의 도피행을 감행했던 철학자의 목표답다.
P215 15년 뒤 샤트레 부인에 대한 그의 사람도 점점 식어져, 그들은 말다툼조차 하지 않았다. 1748년 후작 부인은 생 람베르라고 젊고 잘생긴 후작을 사랑하게 되었다. 볼테르는 그것을 알고 격노했으나 생 람베르가 용서를 빌자 마음이 누그러져 이 사랑을 축복했다. 그는 바야흐로 인생의 산정에 다다라 멀리 죽음을 바라보기 시작했으므로, 청년이 인기가 있다하여 언짢아할 수는 없었다. ‘여자란 그런 것이다’하고 그는 철학자답게 말했다(그런 남자도 있다는 것을 잊고). ‘나는 리슈류(샤트레 후작)을 쫓아냈으나 이번에는 생 람베르가 나를 쫓아낸다. 그것은 사물의 순서다. 한쪽의 손톱을 밀어낸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그는 제3의 손톱에게 가련한 사행시를 바쳤다.
생 람베르여, 그대를 위하여
꽃은 피노라.
장미의 가시는 나를 위하여
장미의 꽃은 그대를 위하여
1749년, 샤트레 부인은 출산 중에 죽었다. 그녀의 남편과 볼테르, 생 람베르는 임종의 자리에서 만났으나, 한마디 비난도 없이 그들의 공통의 상실을 마주보며 서로 우의를 맺었다는 것은 그 시대적 특색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P225 언젠가 노래했었다. 좀 더 쾌활하게
세상의 일반적인 쾌락의 언제나 밝은 습관을.
세월은 바뀌고, 늙어서 경험을 쌓아
나 역시 덧없는 인간이다.
짙어가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으며
괴로움을 받지만 불평하지 않으리.
인간이 일찍이 휘두른 모든 지적 무기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볼테르의 조소다.
P229 라 메트리는 손가락을 덴 아이와 같이 깜짝 놀라 떨어뜨린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사상을 주워서, 대담하게도 전세계는 하나의 기계이며 사람도 그 예외는 아니라고 발표했다.
è 듀랜트의 표현이 참 재미있다.
P231 ‘사람에 따라서는, 한 권의 작은 책을 써도 장황한 자가 있다. 볼테르는 1백 권의 책을 써도 언제나 간결하다.’27)
P234 그는 단순한 문인이기를 그만두고 행동파 사람이 되었으며, 전투를 위해 철학을 버렸다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을 변화시켜 무정한 다이나마이트로 만들었다. ‘이 기간 중 나는 죄를 저지를 때와 같은 자책감도 없었고 미소를 짓는 일조차 없었다.’ 그가 그 유명한 표어 ‘비행을 분쇄하라’를 채택하여 교회의 나쁜 관습에 대해 프랑스의 정신을 분기시킨 것은 바로 이때였다.
è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철학을 변화시켜 다이나마이트로 만들다.
P235 그가 자신을 ‘나는 나의 생각을 꽤 명석하게 표현한다. 나는 깊지 못하기 때문에 투명하게 보이는 시냇물 같은 것이다.’ 라고 평한 것은 지나친 겸손이다.
매달, 매주마다 지치는 일 없이 과감하게 그의 작은 병사들을 세상에 내보내 일흔 살 된 노인의 풍부한 사상과 굉장한 에너지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P236 그는 고대의 모든 민족이 거의 비슷한 신화를 가지고 있었음을 제시하고 그것으로 속단하여 신화는 모두 사제가 발명했다고 한다. ‘최초의 성직자는 최초의 어리석은 자를 만난 최초의 사기꾼이었다.’ 그러나 그는 종교 자체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신학에 대한 책임을 성직자에게 지우고 있다. 그토록 격렬한 논쟁과 종교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것은 신학상의 하찮은 의견 차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P239 그는 자신의 교회를 지어 ‘신을 위하여 볼테르, 교회를 세우다’라는 헌사를 새겼다.
P240 그의 만병 통치약은 재산을 늘리는 것이다. 재산을 인격을 주고 자존심을 높인다. ‘재산이 있다는 의식은 인간의 힘을 갑절로 늘린다. 의심할 여지없이 토지 소유자는 남의 토지보다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토지를 보다 잘 경작할 것이다.’
P243 과거는 문으로 쫓아내면 창문으로 다시 들어온다.
P244 루소는 온통 열과 공상으로 가득 차 있고, 고귀하지만 현실성이 빈약한 몽상가이며, 파스칼과 같이 마음은 머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부르주아의 우상이었다.
볼테르는 항상 이성을 믿었다. ‘우리는 말과 글로 사람들은 보다 잘 계몽하고 개선할 수 있다’ 루소는 그다지 이성을 믿지 않았고 행동을 열망했다.
P245 미리 인간의 성질을 변화시키지 않고 여러 제도를 바꾸려고 하면 이 변함없는 성질이 머지 않아 낡은 제도를 부활시킬 것이라는 예시다.
P246 멀고 가까운 곳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볼테르의 도움을 청했다. 사람들은 그의 의견을 듣고 자신이 받은 부당함을 이야기했으며, 그의 펜과 재물의 원조를 간절히 청했다.
P247 ‘나는 공격을 받으면 악마처럼 싸웁니다. 어떤 사람에게도 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래는 좋은 놈이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웃고 맙니다.’
P248 볼테르는 그에 따르지 않고 다음과 같은 성명문을 써서 비서인 바그너에게 주었다. ‘나는 신을 숭배하고 친구를 사랑하며, 적은 미워하지 않고 미신을 혐오하면서 죽어갑니다. 볼테르(서명). 1778년 2월 28일
칸트와 독일 관념론
P251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이 19세기의 사상을 지배한 것처럼 하나의 사상 체계가 시대를 지배한 적은 없었다.
P252 볼테르는 계몽주의와 백과사전과 이성의 시대를 뜻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불타는 듯한 열의에 고취되어 전 유럽은 – 루소를 제외하고 – 과학과 논리학의 힘으로 마침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이 ‘무한히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리라고 무조건 믿었다.
P254 태어났을 때는 마음은 백지, 즉 타블라 라사이고 감각적 경험이 그 위에 잡다한 방법으로 글씨를 쓴다. 그리고 마침내 감각은 기억을 낳고, 기억은 관념을 낳는다.
P255 우리는 결코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실체를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개개의 관념, 기억, 감정 등을 지각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P257 이성이 좋은 안내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인생의 큰 위기, 생활태도,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도표에 따르기 보다는 차라리 감정에 의지한다.28) 이성이 종교에 반대한다면 그만큼 이성은 불리한 것이다.
P259 이들의 논의의 실마리를 총괄하고 버클리 및 흄의 이념을 루소의 감정과 결합하여 종교를 이성에서 보호하는 동시에 과학을 회의론에서 수호한다는 것이 임마누엘 칸트의 사명이었다.
P260 60년간에 걸쳐 그는 학생들의 사랑을 받았다. 실제로 그의 기본 방침 중의 하나는 보통의 능력을 가진 제자를 좀더 잘 돌보아 준다는 것이었다. 둔재는 도와 줄 길이 없고, 천재는 자력으로 해나갈 것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P261 칸트의 생활은 모든 규칙동사 중에서 가장 규칙적인 동사와 같이 질서 정연한 것이었다.
칸트의 생활은 모든 규칙동사 중에서 가장 규칙적인 동사와 같이 질서 정연한 것이었다. 기상, 차 마시기, 집필, 강의, 식사, 산책이 모든 것에 일정한 시간이 있었다. 임마누엘 칸트가 잿빛 연미복을 입고 손에 작은 등나무 단장을 쥐고 그의 집 문 앞에 모습을 나타내어 지금도 ‘철학자의 길’이라고 불리는, 보리수가 늘어선 산책길을 천천히 걸어가면, 그때가 꼭 3시 반이라는 것을 이웃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사계절 내내 그는 날마다 여덟 번 이 길을 오갔다. 그리고 하늘이 흐리거나 잿빛 구름이 끼어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으면 늙은 종 람페가 커다란 우산을 옆에 끼고 조심스럽게 뒤따라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è 나도 칸트를 생각하며 철학자의 길을 걸어보고 싶다.
P262 또 무엇을 할 때는 미미 주의 깊게 생각하므로 그 결과 평생 독신으로 살게 되었다.
‘결혼한 남자는 돈을 위하여 무슨 일이나 한다’고 탈레이랑은 말하곤 하였다.
칸트는 이미 스물두 살 때, 전능한 젊은이의 감격으로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나는 이미 내가 걸어가려는 길을 택했다. 나는 이 길로 갈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내가 이 길로 걷는 것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빈곤과 무명을 견디며 거의 15년 동안 최대의 저작을 구상하고, 쓰고, 그리고 고쳐쓰는 일에 몰두했다. 그것을 끝마친 때는 1781년으로, 그때 그의 나이는 이미 57세였다. 이처럼 느리게 성숙한 사람은 없었고, 또 이처럼 철학의 세계를 기습하여 전복시킨 책도 없었다.
<순수이성비판>이란 이 책의 제목을 무엇을 의미할까. 비판이란 논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평적 분석을 말하는 것이다. 칸트는 ‘순수한 이상’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 단 마지막에 가서 그 한계를 보여주긴 하지만 – 오히려 그것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사물을 그릇되게 하는 감각을 통하여 우리가 받아들이는 ‘불순한’ 인식 위에 그것을 높일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P263 칸트에 의하면 ‘순수’ 이성이란 우리의 감각을 통하여 들어 오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감각적 경험에서 독립한 인식, 다시 말해서 정신의 내적 본성 및 구조에 의해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인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의 물음은 경험의 소재와 도움을 모두 빼놓았을 때 우리는 이성만으로 어느 정도의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기대해도 좋으냐 하는 것이다.’
P268 감각이란 무질서한 자극, 지각이란 조직된 감각, 개념이란 조직된 지각, 과학이란 조직된 인식, 지혜란 조직된 생활이다.
P270 과학은 결국 소박한 것이다. 왜냐하면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의 외적 실재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철학은 좀 더 나아가서 과학의 재료가 모두 사물로 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감각과 지각과 개념으로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최대 공적은 현상과 물자체를 구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P272 이 책의 가장 설득력 있고 날카로운 부분은 신앙의 대상 – 자유와 불멸의 영혼과 인자한 창조주와 – 이성으로는 결코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설파한 것이다. 이리하여 종교는 ‘구원’을 받은 것이다.
P273 아침에는 훌륭한 결심을 하고 저녁에는 어리석은 짓을 한다.
그대의 행복을 걱정하지 마라! 그대의 의무를 행하라. ‘도덕이란 결코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행복을 알게 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다.’29) 우리는 남을 위하여 행복을 구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완전성을 구해야 할 것이다.
P279 인류의 역사는 대체로 자연이 인간에게 심어 놓은 모든 소질을 충분히 발달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상태로서의 어떤 내면적인, 또한 이 목적을 위해서는 외면적으로도 완전한 국가조직을 성립시키기 위한 자연의 숨은 계획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다.
P283 칸트의 위대한 사업은 – 다시 한번 말하지만 – 외계는 우리에게 다만 감각으로써만 알려진다는 것, 그리고 마음은 속절없는 단순한 타블라라사, 가만히 먹히기를 기다리고 있는 감각의 먹이가 아니라 경험적 사실이 다가드는 것을 선택하고 개조하는 적극적인 힘이라는 것을 증명한 일이다.
P286 칸트의 영향에 대하여 말하면, 19세기의 철학사상은 온통 그의 사상을 축으로 하여 회전하였다. 칸트 이후 독일 전체가 형이상학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쉴러와 괴테는 칸트를 연구하였으며, 베토벤은 인생의 두 가지 경이에 대하여 서술한 칸트의 말 중 ‘내 머리 위에는 별이 총총히 빛나는 하늘, 내 가슴에는 도덕법칙’이라는 저 유명한 말을 감탄하면서 인용하였다.
P290 헤겔은 ‘나를 이해하는 자는 한 사람밖에 없다. 그런데 그 한 사람조차도 정말로 나를 이해하고 있지 않다.’고 탄식하였다.
P291 주어진 상황은 반드시 어떤 모순을 포함하고 있으며, 발전은 그 모순을 조정하여 통일로써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P294 1년 동안에, 나폴레옹과 베토벤과 헤겔이 태어난 것과 같이, 독일은 1827년에서 1832년에 걸쳐 괴테와 헤겔과 베토벤을 잃었다. 그들은 한 시기에 종말에 서 있었던, 독일의 가장 위대한 시대가 낳은 최후의 훌륭한 인물들이었다.
[주] <순수이성비판>을 제1비판, <실천이성비판>을 제2비판, <판단력 비판>을 제3비판이라고 보통 줄여서 부른다.
쇼펜하우어
P297 위대했던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 ‘나는 이처럼 철저히 끝나 버린 세계 속에서 내가 지금 젊지 않다는 것을 신에게 감사한다’고 괴테는 말했다.
P300 괴테는 쇼펜하우어 부인이 초대할 때, 크리스티아네를 동반하여도 좋다는 것을 허락하였으므로 그녀를 좋아하였다. 그러나 괴테는 그녀에게 당신 아들은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난처하게 되어 버렸다. 이 어머니는 한 가족 중에 천재가 둘이 있다는 말 같은 것은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논쟁은 최고도로 달하여 어머니는 아들과 말 상대자 – 괴테 - 를 층계를 밀어 떨어뜨렸다. 이때 우리의 철학자는 당신은 나 때문에 후세에 그 이름이 알려질 것이라고 극언하였다.
P301 이 사람들은 이처럼 비슷한 환경만으로도 염세주의자가 될 운명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몰랐던 – 그보다 더욱 곤란한 일은 어머니의 미움을 받았던 것이다 – 사나이가 이 세상을 좋게 볼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연애가 세상을 증오했는데, 그런 결과는 성격과 철학에 영향을 미쳤다.
성공과 명성을 놓쳐 버렸기 때문에 그의 눈은 내면으로 향하여 자기 자신의 마음을 괴롭혔던 것이다. 그에겐 어머니가 없었고, 아내가 없었고, 자식도 가정도 없었고, 조국도 없었다. ‘그는 철저히 혼자였으며, 진정으로 마음을 주는 친구라고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 경우 한 사람이 있다는 것과 한 사람도 없다는 것 사이에는 무한히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P303 사려 깊은 염세주의자답게 그는 낙천주의자들이 빠지기 쉬운 과오, 즉 펜으로 생계를 이으려는 생각을 각지 않았다.30)
è 그래, 어쩌면 글을 써서 먹고 살겠다는 생각은 너무나 낙천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저녁은 언제나 ‘영국 집’에서 먹었지만, 그는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금화 한 닢을 테이블 가장자리에 놓았다가 식사가 끝나면 다시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마침내 분개한 종업원은 – 그는 팁을 주려는 줄 알았다 – 이 의례적인 버릇은 무엇을 뜻하느냐고 물었다. 쇼펜하우어는 대답하였다. 여기에 오는 영국 장교들이 식사를 하면서 경 마나 여자나 개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하면 당장 이 금화를 자선함에 넣으려고 말없는 내기를 하고 있었다고.
P304 마치 철학 상의 진보는 모두가 아카데미의 담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그의 주장을 밝히기라도 하듯이.
P305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펼치면 바로 독자를 사로잡는 것은 문체이다. 여기에는 칸트식 용어의 중국식 난해함도, 헤겔식 혼미함도, 스피노자식 기하학도 없다. 모두가 명쾌하고 정연하며, 모두가 의지로서의, 따라서 투쟁으로서의, 그리고 고통으로서의 세계라는 근본사상에 한결같이 집중되어 있다.
우선 생활하고 그 다음에 철학한다.
쇼펜하우어만큼 세상의 칭찬을 열망한 자도 없었기 때문이다.
P306 세상은 쇼펜하우어를 발견하는 데 한 세대나 걸렸다. 그것은 그가 처음에 되도록 나쁜 인상을 주어서 자기 자신의 사상을 2백 페이지나 되는 낡은 관념론의 벽장 속에 감춰 놓았기 때문이다.
P308 우리는 욕구할 만한 이유를 찾아내면 어떤 것을 욕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욕구하기 때문에 그 욕구의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다.31) 우리는 자기의 욕구를 숨기기 위해서 철학이나 신학을 애써 만들어 냈다. 그러므로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형이상학적 동물’이라고 부른다. 인간 이외의 동물은 형이상학 없이 욕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과 다투고 있다 하자. 여러 이유와 설명을 들어 상대를 설득시키려고 애쓰는 데도 결국 상대방에게는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을 때, 문제는 상대방의 의지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처럼 화나는 일은 없다.
P309 지성은 지치는 일이 있지만 의지는 결코 지치는 일이 없다. 지성은 수면을 필요로 하지만 의지는 수면 중에도 활동한다. 피로는 고통과 같이 그 자리를 뇌 속에 가지고 있으며 대뇌와 결부되어 있지 않는 근육 – 심근과 같이 – 은 결코 지치지 않는다.
P313 아름다움이 없는 젊음에는 여전히 그 힘이 있으나 젊음이 없는 미에는 힘이 없다. 사랑에 빠졌을 때에는 반드시 일정한 구조를 가진 개체를 는 일이 유일한 목표가 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의 교환이 아니라 소유가 중요한 일이라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
P3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결혼만큼 불행한 결합은 없다. 결혼의 목적은 종의 영속에 있지 개체의 쾌락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연애로 결혼하는 자는 비애 속에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스페인의 속담이다. 결혼 문제를 다룬 문학의 대부분은 결혼을 종족 보존을 위한 준비로 보지 않고 반려자를 구하는 일로 보기 때문에 우스꽝스러워 지고 만다. 자연은 어버이들이 ‘앞으로의 영원한 행복’이냐, 아니면 생식의 목적이 달성된 그날만의 행복이냐를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 않는다. 양쪽 배우자의 어버이들에 의해 정해진 결혼이 연애결혼보다 더 행복할 때가 있다. 어버이의 뜻을 물리치고 연애결혼을 하는 여자는 어떤 의미에서 칭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가장 소중한 것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자연의 – 좀 더 정확하게는 종의 – 정신에 맞게 행동했지만, 어버이 쪽은 개인적 이기주의의 정신에서 권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애는 최상의 우생학이다.
P315 역사의 표어는 본질은 같으나 양식은 다르다이어야 한다.
인간도 사물도 단지 꿈에 불과한 것이라고 아직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철학적 재능이 없는 사람이다.32)
P316 일반적으로 현자는 어느 시대에나 항상 같은 말을 해왔으며, 어느 시대에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항상 현자의 말과는 반대로 해왔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될 것이다. 볼테르는 말했다. 이 세상은 우리가 떠날 때도 우리가 왔을대와 마찬가지로 어리석과 사악할 것이라고.
그러나 만일 세계가 의지라면 세계는 고통의 세계일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의지 자체가 욕망이며, 의지는 항상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하기 때문이다. 어떤 충족된 소망은 채워지지 못한 소망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욕망은 무한하고 실현은 한정되어 있다.
P317 현자는 쾌락을 구하지 않고, 근심과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를 구한다.
인생은 악이다. 왜냐하면 ‘곤궁과 고뇌가 그치자마자 홀연 권태가 다가와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심심풀이를 필요로 하는 것’ 이지만 그것은 또다시 고통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P318 그러나 만일 투쟁이 모두 그쳤다면 권태는 고통과 마찬가지로 견딜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이 같은 관계로 인생은 시계추처럼 고통과 권태 사이를 좌우로 왔다 갔다 한다… 인간이 모든 고통과 번뇌를 지옥으로 옮겨 놓았기 때문에 천국의 손에는 권태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들은 선공하면 할수록 권태를 느낀다.
P319 인생의 전경은 바라보기에는 너무도 고통스럽다. 인생은 우리가 그것을 잘 모르고 있을 때만 살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단테는 지옥의 재료를 우리의 현실 세계가 아닌 어디서 가져 왔을까.
P320 우리는 결혼하여도 불행하고 결혼하지 않아도 불행하다. 우리는 몸을 녹이기 위해 떼지어 모여 있는 고슴도치와 같은 것으로, 너무 빽빽이 모여 있으면 마음이 거북하여 좋지 않고 그렇다고 서로 떨어져 있으면 비참하다. 모든 것이 야릇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개인의 생활을 전체적으로 살펴 가장 중요한 특징을 찾아보면 그 본래는 언제나 비극이다. 그러나 세부에 들어가보면 그것이 언제나 희극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낙천관은 말할 수 없는 인류의 고통에 대한 통렬한 조롱인 것이다.
청년이 쾌활하고 발랄한 것은 아직 인생의 산을 오르고 있을 때에는 산 저쪽 기슭에 누워 있는 죽음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P321 인생이 얼마나 짧은 것인가를 알기 위해 사람은 오래 살았던 것이다. 생명력에 대해서는 36세까지는 이자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비교할 수 있다. 오늘 소비되는 것은 내일 다시 되돌아 온다. 그러나 36세 이후에는 자기 자본에 손을 대는 자본가와 비슷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소유에 대한 애착이 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죽음과 만난다. 바로, 경험이 정돈된 지혜가 되기 시작한 때와 뇌와 육체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은 다만 한 순간 제자리걸음을 하고, 그리고 갑자기 죽음으로 달음질한다.’
P322 마지막 피난처는 자살이다. 불가사의한 이야기지만 마침내는 그것에서 사고와 상상이 본능을 이겨내는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호흡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 살려는 의지에 대한 이 승리는 개체적이고 개별적인 것에 불과할 뿐 의지는 종 속에 존속한다. 생은 자살을 비웃고 죽음에 미소짓는다. 자발적인 죽음이 하나 있을 때마다 무수한 비자살적인 탄생이 있다.
부의 획득에 바쳐지는 인생은 만일 우리가 부를 기쁨으로 바꾸는 법을 터득하고 있지 못하다면 무익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교양과 지혜를 필요로 하는 기술이다.33)
P323 자기 자신 그 자체가 자신의 소유물보다 훨씬 더 많이 자기 자신의 행복에 이바지 한다는 것이 확실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신의 수양을 쌓는 것보다는 부를 획득하는 일에 천 배나 더 힘을 쓰고 있다. ‘정신적 욕구를 갖지 않은’ 인간은 ‘속물’이라고 불리며, 속물은 자신의 여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 한가하면서 마음이 고요하기는 어렵다. 그는 욕심 많게 이리저리 새로운 감각을 찾아 헤매며 결국 할일 없는 부자나 분별없는 난봉쟁이에 가해지는 천벌, 즉 권태에 정복된다.34)
P324 모든 불가사의 중 가장 알 수 없는 것은 세계의 정복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정복자이다.35)
이와 같이 철학은 의지를 순화시킨다. 그러나 철학이란 경험과 사고로 해석해야 하며 단순한 독서나 수동적 공부로 알아서는 안된다.
대부분 학자의 독서벽은 자기의 머리가 비어 있기 때문에 일종의 진공의 흡입력이며, 두뇌의 공허는 그만 남의 사상을 빨아들여 버린다. 어떤 논제에 대하여 스스로 사색하기 전에 남의 것을 읽는다는 것은 위험하다. 독서한다는 것은 남이 자기를 대신하여 생각하는 것으로서 우리는 단순히 남의 정신적 과정을 반복하는 데 불과하다…. 그런 이유로 하루의 대부분을 독서로 소비하는 사람은… 서서히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자기의 경험은 일종의 본문이고, 성찰과 지식은 그 주석이라고 볼 수 있다. 경험이 적고 성찰과 지식이 많은 것은 각 페이지에 본문을 두어 줄 뿐인데, 주석은 마흔 줄이나 되는 책과 같은 것이다.
è 독서를 통해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는 과정이 꼭 필요한 것 같다.
그리하여 첫째 권고는 책보다 생활이 먼저이고, 둘째 권고는 주석보다 본문이 먼저라는 것이다. 해설자와 비평가의 것보다는 창작자의 것을 읽어야 한다. ‘철학사상은 오직 그 사상을 만든 사람에게서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므로 철학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철학의 불멸의 스승을 그 스승들의 저서라는 조용한 성소에서 찾아야 한다.’ 천재의 한 권의 책은 천 권의 주석서에 해당하는 것이니까.
è 쇼펜하우어는 김용규 선생님과 유사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용규 선생님 역시 칸트에 대한 해설서를 읽지 말고 칸트가 쓴 책을 읽으라고 하셨다.
P325 우리의 행복은 우리가 주머니 속에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것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참된 행복의 거처로서 남의 머리는 참으로 한심한 장소이다.
대개의 인간은 결코 사물을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참한 것이다. 그런데 사물을 순수하게 지성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일은 자유를 향한 비상이다.36)
천재와 여자와는 적대관계에 있는 것이며, 여자는 생식의 화신으로 살려고 하는, 생명을 낳으려는 의지에 지성을 복종시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여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질 수는 있으나 천재일 수는 없다.’ 여자는 항상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모든 것을 자기와 관련짓고 전부를 개인적 목적에 대한 수단이라고 본다.
è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관에 이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이다. 쇼펜하우어의 여성관 역시 많이 왜곡되어 있는 것 같다.
P326 대체로 사람은 정신적으로 가난하고 일반적으로 비속할수록 사교적이다.
P329 궁극의 지혜는 열반, 즉 자기의 욕망이나 의지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일이다.
P330 이 경우 죄는 여자에게 있다. 인식이 무의지에 도달하였을 때, 여자의 생각 없는 매력이 남자를 유혹하여 다시 생식으로 달려가게 하는 것이다. 청년은 이 매력이 얼마나 짧고 덧없는 것인가를 간파할 만한 분별이 없으며, 그 분별이 생겼을 때는 이미 늦었다.
P331 부인의 재산권을 인정하다니 이 무슨 부조리인가! 혹 예외는 있지만 모든 여자는 낭비벽이 있다. 왜냐하면 여자는 다만 현재에만 살고 있으며, 바깥 운동이란 물건 사는 일뿐이기 때문이다. 돈 버는 일은 남자의 일이고 그것을 소비하는 일은 자기들의 일이라고 여자들은 생각한다. 이것이 여자들의 분업 개념이다. 그러므로 내 의견을 이렇다. 여자들에게는 결코 중대한 일을 맡겨서는 안 된다. 아버지도 좋고 남편도 좋고 아들도 좋다. 항상 남자의 감독을 받게 하여야 한다. 동인도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따라서 여자에게는 재산을 관리할 능력이 없으므로 무조건 재산 소유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
P332 언제 우리는 ‘의지’의 눈 앞에 도전장을 내던지며, 인생이 감미롭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죽음이야말로 가장 고마운 것이라고 의지에 가르쳐 줄 용기를 떨쳐 일으킬 것인가.
P333 인격 진단의 단서인 인간의 행복은 외부 사정에 의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본질에 좌우된다고 쇼펜하우어는 인정하고 있다.
염세주의자이기 위해서는 여가가 있어야 한다. 바쁜 생활은 언제나 심신을 건강하게 한다.
정말 한가한 중에서 마음 편하기는 어렵다.
철학자들이 우울해지는 경향은 앉아서 일한다는 부자연성에 기인하는 것으로써, 너무 자주 인생에 공격을 퍼붓는 것은 배설의 기술이 상실되었다는 증거이다.
여자나 남자에 관한 쇼펜하우어의 젊었을 때의 경험이 스탕달이나 플로베르나 니체의 경우와 같이 그를 지나치게 병적으로 의심이 많게 만들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염세관에는 상당한 이기주의가 포함되어 있다. 세상이 충분하게 친절을 베풀어주지 않기 때문에 철학으로 세상을 경멸하는 것이다. (중략) 스피노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들의 도덕적 비난 및 시인의 언사는 인간의 판단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것을 전체로서의 우주에 적용시키면 대개 들어맞지 않는다. 아마도 생존에 대한 혐오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를 은연중 가리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P334 호레스 월포울이 말한 것처럼 ‘세계는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희극이지만 느끼는 사람에게는 비극’이기 때문이다.
P335 ‘행복은 소유와 포만이 아니라 성취에 있다.’
건강한 사람은 행복을 구하는 것보다 자기의 능력을 드러낼 기회를 구하려고 애쓴다.37)
우리는 설령 고통이라는 희생을 치르더라도 인생을 강하게, 또 깊이 경험하고 싶은 것이며 설령 환멸이라는 희생을 치러서라도 인생의 가장 깊은 비밀을 헤치고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P336 죽음의 공포 대부분은 정상적인 생활을 했을 때는 사라진다. 올바르게 죽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생은 감미로우니까 죽음이 두려운 것이지, 생이 감미롭지 않다면 왜 죽음이 두렵겠는가.
P337 괴테는 서른 살을 넘으면 아무도 염세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스무 살 이전도 대부분이 염세주의자는 아니다. 염세관은 자의식이 많고 자존심이 강한 청년기의 사치품이다. (중략) 스무 살 이전에는 육체의 기쁨이 있고, 서른 살 이후에는 정신의 기쁨이 있다. 스무 살 이전에는 보호와 안전의 향유가 있고, 서른 살 이후에는 자신의 가정과 자식의 기쁨이 있다.
쇼펜하우어의 불행의 가장 깊은 이유는 정상적인 생활의 거부, 여자와 결혼과 자식의 거부였다.
스펜서의 불가지론
P342 세상을 개혁하려는 자기 대개 그렇게 느끼듯이 콩트도 자기 자신의 집을 다스리는 것이 어지간히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P344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지도를 그렸기 때문에 신세계(미국)가 그 이름을 따서 불려졌듯이 허버트 스펜서는 다위 시대의 베스푸치이며, 또한 어느 정도 이 시대의 컬럼버스이기도 했다.
P345 이 아들은 40세가 될 때까지 교육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P346 그는 칸트도 읽지 않았고, 밀도 일지 않았으며, 세드빅 이외에는 어떤 윤리학자의 책도 읽지 않고 <윤리학>을 썼던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 받은 엄격하고도 가차없는 교육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P347 대부분은 독서에 의해서보다는 오히려 직접적 관찰에 의해서 ‘익혀 얻은 것’이었다. 그의 호기심은 언제나 눈을 뜨고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야기 상대의 주의를 오직 자기 눈으로만 보아 온 어떤 주목할만한 현상으로 돌렸다.38)
즉, 그는 서적 학문에는 정통하지 못하여 이른바 교양에는 물들지 않았고, 더욱이 일하면서 생활 자체에 대하여 배우는 자로서의 자연적이고 실제적 지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스펜서는 노동에 의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 직업은 그의 사고의 실제적 경향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기 때문이다.
P348 이주를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와 나쁘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비교표로 만들어 그 이유들의 가치를 숫자로 표시한 것은 그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참으로 끈기 있는 사람이었으나, 그 반면 또 매우 고집이 세고 완고했다. 자기가 세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우주 전체를 내다볼 수도 있었지만, 남의 입장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는 생활을 분석하고 기술하는 데 바빠서 자기 생활을 할 여유가 없었다.
P351 그러나 40세라는 나이를 생각할 때 불현듯 절망을 느꼈다. 이 나이에, 병약한 한 인간이 어떻게 죽을 때까지 인간 지식의 전 분야를 답파할 수 있겠는가.
내부에 숨어 있는 힘을 자각했기 때문에 몸의 허약을 더욱 괴로웠다.
스스로 선택된 일에 이토록 불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으며, 인생의 황혼기에 이토록 큰 일을 선택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P353 나쁜 일 속에 친절한 영혼이 존재할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오류 속에 진리의 정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어버리고 있다.39)
P354 단 하나의 정직한 철학은 헉슬리의 말을 빌리자면, 불가지론이다.
P357 새로운 순환은 시작되고, 그것은 무한히 되풀이되지만, 이것은 영원한 대단원이 될 것이다. ‘너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삶의 얼굴에 씌어 있으며, 모든 탄생은 쇠망과 죽음의 서곡이다.
P358 스펜서는 인간의 노력은 허무한 것이라는 소펜하우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승리를 얻은 인생행로의 마지막에,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심정을 밝혔다. 그도 먼 앞날만 바라볼 뿐 눈앞의 조촐한 생활의 즐거움을 모르는 ‘철학자의 병폐’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스펜서는 ‘삶이란 내적 관계에 대한 부단한 적응인 것이다’라는 유명한 정의에서 시작했다.
P359 지적 발달은 번식력에 적의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철학자들은 어버이가 되기를 제일 회피하는 인종으로 유명하지만, 다른 한편 여자는 어머니가 되면 보통은 지적 활동이 감퇴한다. 그리고 아마도 여자의 청년기가 짧은 것도 일찍부터 생식의 희생이 되기 때문인 것 같다.
P372 그는 정치적 권리는 하잘 것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부인이 정치적 권리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은 극히 중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전쟁을 공공연히 비난하면서 부인은 전투에 생명을 걸지 않기 때문에 투표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따위는 여자의 출산 고통에서 태어난 남자의 논의로서는 부끄러운 것이다. 스펜서는 여자들은 지나치게 이타적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두려워하고 있으면서도 그의 저서는 산업과 평화는 이타주의를 발달시켜 이기주의와 균형을 유지하고, 그렇게 하여 철학적 무정부주의자의 자발적 질서를 전개할 ㄱ서이라고 통찰함으로써 그의 이론은 절정에 달한다.
P373 왜냐하면 논리적으로 까다롭게 말하자면, 어느 것을 알 수 없다고 하는 단언은 이미 어느 것에 대하여 무엇인가 알고 있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실제로 스펜서는 이 열 권의 책 모든 것에서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놀랄 만한 지식’을 과시하고 있다. 헤겔이 말하듯이, 이성을 추론에 의해 제한하려는 것은 물에 들어가지 않고 헤엄치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스펜서는 단편을 주워 모은 것이지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베르그송은 말한다.
P375 ‘나는 구체적인 인간성의 관찰이 서툴다. 추상적인 것에 너무 지나치게 빠져들었기 때문에’라고 스펜서는 말한다.
P379 ‘어떠한 사람도 스스로가 쓴 책만큼 훌륭하지 않다’고 그는 썼다. ‘정신활동 최상의 소산은 그 사람이 쓴 책이다.40) 책 속에서 그 사람의 정신적 산물은 일상의 대화 속에 섞이는 많은 졸 작품을 떨어 버리고 나타난다.’
è 김용규 선생님이 말씀하신 ‘책은 저자의 최고이자 최선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P380 명성이 쇠퇴한 것은 실증주의에 대한 영국의 헤겔학파 반동 때문이었고, 자유주의 부활은 다시 그를 그 세기 사물과의 새로운 접촉을 부여하여 철학을 현실주의로 이끌어갔지만, 이 현실주의를 옆에 두고 바라보면 독일 철학을 가냘프고 창백하게 보일뿐더러 신경질적일 만큼 추상적으로 보였다.
프리드리히 니체
P383 니체는 다윈의 아들이었고, 비스마르크의 동생이었다.
P384 인생이라고 불리는 이 전투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친절이 아니라 힘, 겸손이 아니라 긍지, 이타심이 아니라 확고한 지성이라는 것, 평등과 민주주의는 도태의 본질에 반대된다는 것, 민중이 아니라 천재가 진화의 목표이며, 정의가 아니라 권력이 모든 싸움과 운명의 심판자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와 같이 생각되었다.
P385 니체에게는 이 뻔뻔스러움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닌 것이야말로 나에게 신이며, 덕이다.
P386 쇼펜하우어 철학의 어두운 빛은 영원히 니체 사상에 그림자를 남겼다. 단지 스피노자와 괴테만이 그를 소펜하우어로부터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침착과 운명애를 설교했으나 결코 그것을 실행한 것은 아니다. 현자의 평정과 균형있는 정신의 침착성은 결코 그의 것이 아니었다.
P387 만일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나에게 오류이다.
처음으로 나는… 살려고 하는 극한 최고 의지는, 생존경쟁이라는 보잘것없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고, 싸우려는 의지, 권력에의 의지, 압도하려는 의지로써 표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P389 염세관은 퇴락의 표시이며, 낙천관은 천박의 표시이다.41)
P394 인간의 위대성을 나타내는 나의 정식은 운명애(Amor fati)다. 필연적인 것을 단지 참고 견딜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다.42)
긍지 높은 철학자도 마음이 약해져서 그는 갑자기 여성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러나 루 살로메는 그의 사랑에 응하지 않았다. 니체의 눈은 그녀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에는 너무나 날카롭고 깊었던 것이다. 니체는 절망하면서 달아나 버렸다.
P395 나는 앉아서 기다렸노라.
-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면서.
선악의 저편에 때로는 광명을
때로는 그늘을 즐기면서.
지난 날은 오직 오후와 한낮과 끝없는 시간뿐
그때 돌연히, 벗이여, 하나는 둘이 되어
차라투스트라 내 곁을 지나가도다.
이제야말로 그의 혼은 ‘기쁨에 넘쳐흘렀다’ 그는 새로운 스승 ‘조로아스터’를 새로운 신 ‘초인’을, 그리고 새로운 종교 ‘영겁 회귀’를 발견한 것이다.
그 때문에 저자는 출판 비용을 자비로 충당해야만 했다. 팔린 것은 40부였고, 7부는 기증본. 수령증을 준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고,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았다. 니체처럼 이렇게 고독한 사람도 결코 없었을 것이다.
è 위대한 철학자 니체도 자신의 책을 자비로 출간했다니 만약 내 책을 출간하지 못하거나 출간했는데 잘 팔리지 않더라도 너무 낙심하지 말아야겠다.
P396 “왜냐하면 옛 신들 – 고대 그리스의 신들 – 은 오래 전에 생을 마쳤다. 참으로 그것은 신들의 좋은, 즐거운 최후였다!
신들은 죽음의 황혼 속을 저회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허구이다. 오히려 신들은 옛날에 웃으며 죽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떤 신 – 기독교의 신 –이 스스로 가장 신을 모멸하는 말, 즉 ‘신은 오직 하나일 뿐이다!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고, 말했을 때 일어났던 것이다. 나이 많은 분노의 신, 질투의 신이 이렇게 말할 정도로 자기를 잊었다.
그리고 그때, 모든 신들은 그 자리에서 웃어대며 외쳤다. ‘신들은 있다. 그러나 유일의 신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틀림없는 신성이 아닌가?’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397 “선악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자야말로 먼저 파괴자가 아니면 안 된다. 그리고 모든 가치를 부숴버려야 한다.
최고의 선에는 최고의 악이 필요하다. 이러한 선은 곧 창조적인 선이다.
자아, 이것을 말해 보자. 너희들 현명한 사람들이여, 비록 말하는 것은 나쁠지라도 잠자코 있는 것은 더 나쁘다. 말하지 않는 진리를 모두 독으로 바뀐다.
우리 진리에 부딪혀 부서지려고 하는 것은 모두 부서져 버리는 것이 좋다! 또한 많은 집들이 세워져야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398 무엇이든 네 능력 이상을 탐내지 마라. 네 능력을 지나쳐서 유덕한 일은 없으리라. 그리고 확신에 반대되는 일을 자신에게 요구하지 마라.43)
나는 행복을 너무 오랫동안 원했다. 나는 나의 사업을 원한다.
è 마치 1인 기업을 준비하는 누군가의 말 같다.
P400 ‘위인은 세상의 불행이다’라는 중국의 속담이 있다.
P409 상인, 기독교도, 암소, 여자, 영국인 및 그 밖의 민주주의자들은 모두 같은 일당이다.
P411 여자에게 평등을 인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여자는 그것을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진정한 남자라면 기꺼이 남자에게 복종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여자의 완성과 행복은 어머니가 되는 데 있다. ‘여자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의 해결을 가지고 있다. 즉 임신이라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있어서 수단이다. 목적은 항상 자식이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에게 무엇일까… 가장 위험한 장난감이다.’ ‘남자는 전쟁을 위하여, 그리고 여자는 전사의 휴양을 위하여 교육되어야 한다. 그 외는 모두 어리석은 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여성은 완전한 남성보다도 한층 높은 인간의 전형이다. 즉 훨씬 희귀한 것이다.’
존재 전체를 평가하는 것을 자기의 과제로 선택한 자가 가족의 시중, 즉 처자의 부양, 안전 및 사회적 지위의 획득을 인수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로 생각된다. 그런 이유로 해서 자기 아이가 태어났을 때 죽어 버린 철학자가 적지 않다.
P417 ‘철학자가 자기 자신에 대하여 구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은 무엇이냐’ 그는 묻는다. 그것은 ‘자기 속의 그 시대를 초극하는 것, 무시대적으로 되는 것’이다.44)
니체는 젊은 괴테로부터 초인이라는 말뿐 아니라, 실은 그 이상의 것을 얻었으며, 훗날 괴테의 올림푸스 산 같은 침착성을 매우 부러운 듯이 비웃었다.
P419 니체의 저서 중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가장 비판 받지 않았다. 애매한 것이 그 이유의 하나이며, 또 하나는 뛰어난 공적이 모든 흠잡으려는 노력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P420 니체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여러 본능의 지위와 가치를 지나치고 있다. 왜냐하면 자기 중심의 개인주의적인 충동을 철학에 의해 강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랑을 구하다 실패한 그는 철학자에게는 있을 수 없는, 남자로서는 부자연스럽도록 과격하게 여자에게 맞섰다. 아버지가 될 기회를 놓쳤고, 친구까지도 잃었기 때문에 그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지배와 전쟁보다도 상호 관계와 우애에서 생긴다는 것을 몰랐다. 그의 생활은 길지도 넓지도 못했기 때문에 자기 반쪽의 진리를 원숙하게 하여 지혜로 만들 수 없었다.
P423 ‘자기 자신을 넘어서 창조하기를 바라며, 그런 후에 몰락해 가는 자를 나는 사랑한다’고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45)
‘난 인간이 왜 웃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웃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괴로워하기 때문이다.46)
현대 유럽의 철학자들
P427 근대철학의 역사는 물리학과 심리학의 싸움이라는 관점에서 기록될 수 있다. 사고는 그 대상으로부터 시작하여 결국은 시종일관 자신의 신비한 실재를 물질적 현상과 기계적 법칙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든지, 아니면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여 논리의 일목요연한 필연성에 의하여 만물을 정신의 형식과 소산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P428 베르그송은 스펜서를 연구할수록 유물론적 기계관에 대하여 류머티스를 앓고 있는 세 개의 관절부, 즉 물질과 생명, 육체와 정신, 결정론과 자유의지와의 관계를 더욱 강렬하게 의식하게 되었다.
P443 베르그송은 일직이 그 인기를 넓혔지만, 그것은 그가 인간의 가슴속에 영원히 솟아나오는 희망을 변호하였기 때문이다. 철학을 존경하면서 영생과 신성을 믿을 수 있다고 알았을 때, 사람들은 기뻐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였다.
그는 사물의 우연성은 포착하기 힘들며, 정신에는 물질을 다시 만들어 내는 능동성이 있음을 역설하였는데, 우리는 그러한 주장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계를 미리 순서가 정해진 쇼라고 간주하고, 거기에서 우리의 창의란 자기기만이며, 우리의 노력이 신들의 짓궂은 장난이라고 생각하려는 무렵이었던 것이다. 베르그송 이후, 우리는 세계를 우리 자신의 창조적 무대이며 재료라고 보게 되었다. 베르그송이 나오기 전에 우리는 죽은 기계의 톱니바퀴나 수레바퀴였지만 지금은 – 만약 우리들이 원한다면 – 창조의 드라마 속에서 스스로 자기의 역할을 써넣을 수 있다.
P444 베르그송은 마음에 그려 보는 환상을 인간을 기만할 만큼 명쾌하게 표현하는 신비주의자이며, 크로체는 애매모호한 것에 대해 거의 독일적인 천부적 재질을 갖춘 회의주의자이다. 베르그송은 종교적 기질의 사람이면서도 철저한 진화론자인 것처럼 말하였고, 크로체는 교권 반대론자이면서도 미국의 헤겔 학도와 같은 글을 썼다.
아마도 이탈리아 인은 우리 같은 다른 나라 사람보다 현명하여 진리는 단순한 가상이지만, 아름다움은 – 아무리 주관적이라 하여도 – 현실의 소유물이며 실재라고 인정할 것이다.
P445 그는 빈곤이라든가 교수직과 같은 통상적인 벌금을 지불하지 않고 철학자가 되었다.
P449 예술은 오로지 상상력에 지배된다. 심상은 상상력의 유일한 재산이다. 예술은 대상을 구별하지 않고, 대상을 확실하게 현실적이니 비현실적이니 하지 않고, 대상을 규정하지도 정의하지도 않고 느낌으로써 표현한다.
P453 케임브리지 대학이 러셀의 평화주의 때문에 그를 퇴직시켰을 때 그는 세계를 그의 대학으로 삼고 여행한 소피스트(일찍이 영예로운 칭호였던 이 말의 원래 뜻에 있어서)가 되었지만 세계는 즐겨 그를 지지하였다.
현대의 미국 철학자들
P472 신화를 비평하는 데는 두 단계가 있다. 첫째는 화를 내어 그것을 미신으로 취급하고, 둘째는 미소 지으며 그 시를 읽는다. 종교는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해석된 인간의 경험이다.
P478 ‘지혜는 환멸에 의해 생긴다’고 산타나는 말한다. 그러나 또 한편 그것은 지혜의 시작에 불과하다. 회의가 철학의 시작인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지혜의 끝도 완료도 아니다. 목적은 행복이며, 철학은 수단에 불과하다. 만약 철학을 목적이라고 해석한다면 우리는 아랫배에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인도의 신비가와 같이 되어 버린다.
윌 듀랜트와 그의 즐거운 철학이야기
P502 1953년에 발표된 <철학의 즐거움>은 고리타분한 상아탑 속에만 들어 앉아 있는 철학을 대중들 앞으로 끌어내, 그것이 결코 인생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인생을 생각하는 철학자임을 가르쳐 준 획기적 명서이다.
<철학이야기>는 먼지 낀 서재에서 잠자는 철학을 해방시켜 대중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 유명 철학자들의 생애를 통해 철학에 다가가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P503 <철학이야기>는 위대한 철학자의 학설을 빌려서 쓴, 듀랜트의 ‘인생론’이라고 할 수 있다.
P505 철학이 오늘날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녀가 지녔던 모험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P506 데카르트의 ‘나’는 정신적, 비물질적인 영혼이라고 알려졌다. 그런데 한 물체가 다른 물체와의 관계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추측이 옳다고 하며, 비물질적인 영혼이 뇌수의 미분자에 작용하는 것은 무엇에 의한 것일까하는 의문이 생겨난다.
막다른 골목에서 세 갈래의 길이 생겨났다. 즉 유물론, 유심론=관념론, 물심병행론이다. 병행론자는 주장한다. 정신과 뇌수가 엄연히 별개의 것인 이상, 양자 사이에 상호 작용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물적인 것과 심적인 것, 뇌수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두 계열을 이룬 사상이 마땅히 서로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고 각기 떨어져 있어야 할 텐데 기적적으로 병행되고 있다고. 유물론자는 말한다. 정신이 물질에 작용한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정신은 쓸개즙 같은 물질, 물체적 존재여야 한다고. 그러면 유심론자는 뭐라고 하는가. 그들은 이렇게 내세운다.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실재는, 데카르트가 그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은 ‘사유의 실재’ 즉 ‘생각한다는 것’밖에 없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우리에게 지각의 대상이 되고 우리의 마음에 의해 구성될 때만 실제적인 것이라고. 따라서 육체는 지각이고, 물질은 단순한 관념의 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3. 내가 저자라면
듀랜트의 책을 두 번째 읽으니 처음에 지나쳤던 주옥 같은 구절들이 눈에 들어온다. 기가 막힌 여성관을 가진 아리스토텔레스, 쇼펜하우어, 니체도 있었지만 페미니스트 뺨치는 플라톤과 여성의 재능을 인정했던 볼테르도 있었다.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일했던 베이컨과 볼테르를 만났다. 그들과 나는 공통점이 많았다. 성공에 목마른 사람들이었고 시간을 아까워했다. 경쟁, 인정, 성공을 테마로 두고 책을 읽다 보니 플라톤과 쇼펜하우어의 말이 귀에 들렸다.
아울러 저자에 대해서도 더욱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자신의 제자를 사랑해 열 다섯 살의 소녀와 결혼하기 위해 교직을 떠나야 했던 윌 듀랜트, 그의 용기와 열정이 보인다. 어린 나이에 열 세살의 연상의 남자와 결혼해 불안한 결혼 생활을 해야 했던 에어리얼, 그녀가 남편과 함께 철학을 연구하고 글을 쓰고 퓰리처 상까지 수상하기까지 그녀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했을까?
윌 듀랜트 재단의 에어이얼 듀랜트 코너에는 그녀와 윌의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