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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9일 22시 22분 등록

북리뷰 77: 프라하의 이방인 카프카


 

책:<카프카> 클라우스 바겐바흐 지음. 전영애 옮김. 한길사. 2005.
원제: <Franz Kafka> Klaus Wagenbach. 1964. 2002 개정판.


 

*** 저자에 관하여

 

  Klaus Wagenbach는 1930년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1949년부터 주어캄프와 피셔 출판사에서 편집 수습을 거쳤고 11964년 부터는 자신의 이름을 딴 출판사를 직접 경영하고 있으며 현재는 베를린 자유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다. <카프카 청년기 전기> <카프카의 프라하> 등 많은 카프카 관련 저서를 냈고 카프카와 이탈리아 문학에 중점을 두고 작업을 하고 있다.

1990년 이탈리아 국가 공로상을 받았고 1995년 독일 연방 공훈 십자가 상을 수상했다.

 

 

*** 마무

눈 아프도록 응시하고 꿰뚫어본 삶과 세계의 진면목

카프카가 즐겨 걸었던 프라하 흐라드진 성으로 향하는 산책길.

프라하는 카프카가 몹시도 벗어나고자 했던 , 그에게 저주받은 도시였지만 그가 세계문학의 지도상에 하나의 메트로폴리스로 만들어놓은 도시이다.

 

뒤늦은 명성, 작가에게는 너무 뒤늦게

14. 카프카는 1883년 7월 3일 프라하에서 태어나 고향을 떠난 일이 아주 드물며 41년이라는 짧은 일생을 마친 후에도 역시 그곳 프라하의 슈트라슈니츠 묘지에 묻혔다. 14년 동안 프라하의 보헤미아 왕립 근로자 상해 보험회사에서 법률가로 일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저녁이나 밤에 “끄적거리는 일”을 유일한 욕구로 여겼다. 1924년 6월 3일 생을 마감했다.

 

15. 1920년대 소수 독일인들의 눈에 띄어, 프랑스, 앙드레 브르통, 카뮈, 사르트르에의해 발굴되었고.....1950년에야 공식적인 첫 독일어판 전집이 출간되었다. 1957년 최초 체코어 번역판이 나왔다.

16. 1933-1945 게슈타포 압류, 방해, 문서실 파괴, 자료 유실, 세 여동생 수용소에서 사망, 그의 일생을 이야기해줄 증인들이 살해당했다.

26. 카프카가 가장 좋아했던 외삼촌인 지그프리트는 특이한 괴짜요, 광적으로 나다니기를 좋아했던 사람으로 교양있고 독서를 많이 했으며 재치있고 남을 돕기를 좋아하고 겉보기엔 약간 차거워 보였으나 관대했으며 독신생활을 했다. 모라비아의 트리쉬에서 공의가 되었는데 카프카는 후에 그를 자주 찾아갔다. 카프카는 외가인 뢰비 가문에서 물려받은 유산을 예민한 감수성, 정의감, 불인이라고 했다.

 

37. 아버지께서는 바로 자신이 겪으신 대로만 아이를 다루셨지요. 완력과 큰소리와 격분으로요, 그 길고 그런 방식으로 저를 힘 있고 용감한 청년으로 키우려는 더없이 적합한 아버지의 뜻에 맞는 방식이었지요.

43. 카프카의 고립, 모든 방면으로의 연결 가능성이 있는 프라하 같은 환경에서의 이 불가해한 자기폐쇄는 무엇보다 현실을 무시한 실용주의적 교육이 원인이 되었다.


52. 카프카는 외적으로 눈에 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에 그는 어디서도 ‘조언을 받지 못한 인물’이라고 1916년 일기에 쓰고 있다.

53.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사람들은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지워 없애려고 애썼다.

55. 고유한 특성에서 얻어지는 진정한 이득은 결국 지속적인 자기 신뢰 가운데서 나타나게 된다. 죽기 3년전 막스 브로트에게 편지로 “자기는 성년의 숲을 어린아이처럼 방황하고 있다.”고 썼다.

 

56.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말일 혹은 마감이란 말씀을 하시면......나는 겁이 났다. 호기심이 없었기 때문에 설령 내 쪽에서 질문했더라도 오래 생각하는 버릇 탓에 들은 대답을 곧바로 소화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 그리고 어쩌다 희미하나마 능동적인 호기심이 떠올라도 질문과 대답이라는 행위 자체를 통해 이미 충족되기 일쑤여서 더는 어떤 의미 같은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일”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언제까지나 난감한 비밀로 남아버렸다.

 

62. 카프카를 처음 사회주의로 인도한 사람은 루돌프 일로비 라는 급우였는데 그는 후에 사회 민주당원이 되었고 정치적 성격을 띤 서정시의 발행인인 체코인으로 카프카를 인도한 후 불가피한 이유로 김나지움을 떠났다. 카프카는 그 학년에서 유일한 사회주의자로 남아 여느때의 수줍은 성격과는 달리 전통적인 붉은 카네이션(사회주의자임을 드러내는 표시)을 가슴에 달고 다님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공공연하게 나타냈다.

 

63. 공동체에 대한 감추어진 동경. 우정에 대한 소망. 인간은 서로 서로 밧줄로 한데 묶여 있어서, 어떤 한사람을 동이고 있는 밧줄이 느슨해져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한 치라도 허공으로 가라앉게 된다면 고약한 사태가 되고 , 어떤 한사람을 동인 밧줄이 끊겨 그가 떨어지는 날에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

 

대학시절: 프라하 주변 세계와 언어

67. 1901년 7월 카프카는 졸업시험을 마치고 나서 외삼촌인 지그프리트와 함께 몇 주간 노르더나이와 헬고란트로 여행한다. 시험 전만해도 카프카는 철학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려 했다. 물론 아버지가 이 계획에 반대했다. 열나흘이 지나 유망한 법학과로 전과했다.

68. 법학을 전공함으로써 부모에 대한 채무감을 덜 수 있었던 것 같다. 카프카는 필수 과목만 들었고 학위에 필요한 최소한 여덟 학기를 마치자 박사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70. 학기 중에는 규칙적으로 체코어나 독일어 연극을 보러 다녔고 강연과 시 낭독회에도 규칙적으로 참석했다.

니체에 대한 카프카의 애착과 탐독의 연원은 오스카 폴락, 그리고 무엇보다 <Kunstart>로 소급된다. < 예술 파수꾼 쿤스트아트>는 니체가 창간 동인인 한 달에 두 번 간행되는 잡지로 젊은이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 잡지는 창업시대에 범람한 잡문주의에 반기를 들고 문학과 예술의 ‘순결한 근원성’을 지키고자 했다.

73.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하러 책을 읽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이란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처럼,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모든 사람을 떠나 인적없는 숲속으로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다가오는 책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이제 겨우 스무 살이 된 청년의 말이다.

 

82. 이러한 판단의 자율성을 가지기 위한 전제는 엄격한 자기분석이다.

“우리는 한마라 두더지처럼 자신을 헤집고 다니다가 새까매지고 헝클어진 머리로 우리의 무너져 내린 모랫더미를 뚫고 나온다.”

불확실에서 벗어나 확신을 얻는 유일한 길은 자기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세계 가운데서만 찾을 수 있었으니 그 자신만의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83. 불확실과 자기 분석, 심판의 마력과 사물의 낯섦, 놀라움, 머뭇거리며 두는 거리 그리고 우정에 대한 동경...이것이 젊은 법학도의 세계였다. 카프카가 감수했던 법학 공부는 특히 마지막 몇 학기에는 격심한 고문이었다. 그의 섬약한 체질은 이 무지막지한 공부를 거의 감당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1905년 7월 초 카프카는 요양소로 가게 되었다.

85. 1906년 7월 18일 카프카는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처음에는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했고 가을에는 암담한 마음으로 법률실무에 임했다. 그가 내세운 유일한 조건은 집으로부터 독립을 보장해주면서 동시에 글쓰기에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허락해주는 직업이어야 했다. 간단히 말해서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직업이었다.

88. 그의 문학 전반에 흐르고 있는 것은 프라하에 사는 독일인들의 섬사람 같은 폐쇄성이었다. 독일인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때 이미 7%밖에 안되는 사라져가는 소수집단이었다. 프라하의 유대인들의 상황, 그들의 외부에 대한 방어 자세는 종교적인 게토에서 사회적인 게토로의 이주라고 할 수 있다.

91. 아버지에 대한 증오 섞인 사랑 때문에 카프카는 이 점을 일반적인 자기 세대의 운명으로 보는 대신에 너무 지나치게 개인적인 운명으로 여기게 되었다.

97. 보헤미아의 중심에서 체코의 지방 사람들에 둘러싸여있는 독일인들은 문어체의 독일어를 썼는데 그러다보니 토착적인 표현이 부족했고 방언의 다양한 형태들도 빈약했다. 한마디로 그 언어는 빈곤했다. 실제로 프라하에서 독일어는 고립의 압박을 받으면서 점점 통용어라기보다는 국가의 보조를 받는 특수 언어로 변해갔다.

98. 카프카의 독특한 순수 지향, 냉정한 문장구성, 그리고 적은 말수는 프라하 독일어라는 배경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99. 거꾸로 사물에 대한 카프카의 저 ‘낯섦’은 언어상의 원인도 있으니, 메마르고 문어체적인 프라하 독일어는 일반적으로 구어나 사투리가 가지는 직접적인 친밀감을 자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101. 프라하에 사는 독일인들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카프카는 아주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독일 국민 속에서 산 적이 없다.’ 고 표현하고 있다.

 

어느 격투의 기록: 보험국 공무원, 그의 직업, 그의 계획들 그리고 여행들

103. 스물 세 살의 카프카. 나의 생활에는 이제 질서라곤 없다. 아무튼 나는 80크로네라는 쥐꼬리만한 봉급과 8,9시간의 엄청난 작업시간이 따르는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나는 지금 일반 보험회사에 있다. 보험제도 자체는 흥미로우나 나는 내가 임시로 하는 일은 처량하다.

104. 근무시간이 주는 압박,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는 시계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것, ‘기쁨의 도약판’인 일이 끝나는 순간.

106. 막스 브로트를 통해 카프카는 프라하 근교를 알게 되었고 이탈리아 북부 바이마르 파리 스위스 같은 곳으로 휴가 여행도 함께 갔다. 또한 브로트는 카프카를 음악 카페나 밤새 영업하는 술집, 카페 같은데도 데리고 다녔고 프라하의 문인 사회로 안내하기도 했다. 언제나 망설이는 카프카에게 이 친구들의 모임에서 자작품을 낭독하라고 격려하고, 새로운 작품을 쓰라고 고무하고 또 그것을 출판하도록 종용함으로써 카프카 주변 세계에 대한 자기폐쇄를 막아 주었다. 그가 친구의 재능을 남보다 먼저 알아보기도 했거나와 카프카의 인품에 끌렸던 것이다.

* 막스 브로트: 카프카의 평생 친구이며 카프카 작품의 척 발행인이자 그의 전기 작가. 1884년 프라하에서 출생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법률가. 1913년 시온주의자가 되었고 1939년에는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여 그곳 하비마 극장에서 극작가로 일했다. 1968년 텔아비브에서 사망했다.

112. “인간관계가 없으면 나 자신 속에 그 어떤 가시적인 거짓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정된 원은 순수하다.”

113. 9개월 후 카프카는 일반 보험회사를 그만두고 2주 후인 1908년 8월 보헤미아 왕국 근로자 상해 보험회사에 들어가 거기서 1922년 퇴직할 때까지 일했다. 근무시간이 오후 2시 까지였다.

125. 카프카는 1910년 렘베르크에서 온 이디시(독일어와 유사한 동유럽 유대인들이 쓰던 고유언어)로 공연하는 유대인 유랑극단의 공연을 통해 동유럽 유대인들의 종교를 접하게 되었다.

 

이렇게만 글은 씌여진다.

132. 가차없이 있는 힘을 다 쏟아부음으로써 이 해 가을 첫 주요작품들이 탄생했다. <실종자1장7장> <대화> <판결> <변신>들이 그것이다.

133. 카프카는 언제나 집중해야만, 즉 밤에 완전히 격리된 상태에 있어야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카프카 자신도 1912년을 언제나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보았다. 10년 뒤 밀레나에게 판결에 대하여 ‘그 이야기에서는 문장 하나 하나, 단어 하나하나-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음악 하나하나가 불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시 어느 긴 밤에 처음으로 그 상처가 터졌습니다.’라고 썼다.

134. 특징적인 것은 이때부터 일기에도 편지에도 불안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외부 세계가 자기만의 고유한 현실 속으로 침투해오리라는 불안, 또는 이러한 내면의 자유가 죄에 의해 파괴되리라는 불안, 그리고 살지 않은 생에 대한 후회, 무에 대한 불안.

* 카프카 생존시에는 책이 7권만 나왔다.

관찰 1912. 화부 1913.변신 1915. 판결 1916. 유형지에서 1919. 시골의사 1919. 단식광대 1924.

136. “왜 후회가 그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살 수 있는데 살지 않는다는 결론에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

살지 않은 인생에 대한 이 죄책감은 생애의 마지막 10년에 이르러 점점 커졌고 오로지 글쓰기를 통해서만 정당화되었던 생의 허무에 대한 불안도 커갔다.

138. 나는 작가이며 글을 쓰지 않는 작가는 정신착람이나 유발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조건하에서만 그렇다. 쓴다는 것은 달콤하고 경이로운 보수다. 그것이 악마를 섬긴 보수임이.... 그러나 나는 이렇게 밖에 쓸 줄 모른다.

140. 작가의 실존이란 정말 책상에 매여있기 때문이다. 결코, 미쳐버리고 싶지 않다면 책상에서 멀어져서는 안된다. 이를 악물고 단단히 매달려야만 한다.

141. 이러한 이유로 카프카는 1912년 이후 어떤 교우관계도 맺지않고 이런 이유로 ‘언제까지나’ 프라하를 떠나지 않았으며 또 이런 이유로 세 번 파혼했다.(1914, 1917,1919.)

145. 카프카에게 여인상은 말하자면 어느 정도까지는 창녀로 구상되어 있다. 그들과의 결합이란 결혼에는 도달할 수 없고 다만 정신없는 상태에서만 이루어지며 낯선 고장에서의 유혹과도 같다.

 

삶인가 문학인가, 약혼들, 소송

157. 1913년 초부터 카프카는 육체적인 일을 함으로써 ‘자학’을 끝내려고 노력한다. 주로 긴산책, 목공소 일 거들기, 승마, 수영, 조정 등이다.

158. “나는 의식불명에 이르기까지 나 자신을 모든 사람으로부터 차단시킬 것이다. 모든 사람과 불화하리라. 그 누구와도 말하지 않으리라.”

160. 왜 직장을 버리고- 저는 재산이 없습니다 - 문학적인 활동에 전념하여 그것을 호구지책으로 삼으려하지 않느냐......다만 스스로 제 처지를 살피건데 차라리 직장에 머물러 있으면서 파멸해가는 게, 아무려나 급속히 파멸하는 것보다 낫겠다는 가련한 대답뿐입니다.

어머니와는 지난 몇 년동안 하루에 평균 스무 마디도 말을 나누지 않았으며 아버지와는 인사말 이상을 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결혼한 누이동생이나 매제들과는 그들에 대해 화났을 때를 빼놓고는 전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다만 그들과는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문학 아닌 모든 것이 지루하고 싫습니다. 그런 것들은 저를 방해하고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가정생활에 대해 제가 가진 감각이라고는 관찰자의 그것뿐, 그 밖의 모든 감각은 결여되어 있습니다. 혈연의 감정 따위는 전혀 없고 누가 왔을때 그 사람들에게서 보는 것은 실로 저를 향한 악의뿐입니다. 제 직장이 저를 변화시킬 수 없듯이 결혼역시 저를 변화시킬 수 없을 겁니다.

167. 파혼, 전쟁 발발, 친가와의 거리감으로 카프카는 마침내 열망하면서도 두려워하던 고독을 얻는다. 며칠 후 일기에 이렇게 적는다.

‘나의 꿈같은 내면생활의 서술에 대한 감각이 다른 모든 것을 부수적인 것으로 밀어냈다. 그래서 그것들은 형편없이 위축되고 또 위축되기를 그치지 않는다. 다른 그 무엇도 결코 나를 만족시킬 수 없다.’

이 달에 카프카는 소송을 쓰기 시작한다. 이 소설 역시 ‘처벌의 환상’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서른한 번째 생일을 앞둔 전날 밤, 주인공 요셉 K는 처형당한다.

179. 카프카는 자신의 내면 상황이 글쓰기를 허락한다고 믿을 때면 재빨리 외적 환경을 조성하는 능력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흐라드진 성 위의 연금술사의 골목에 혼자 조그만 셋집을 얻어 사는 누이동생 오틀라가 저녁과 밤에는 자기 집에서 글을 쓰라고 제의하지 받아들였다. 그 집은 중세에 성벽의 휜 부분에 지어져 본디 파수병들의 거처로 씌였던 손바닥만한 집 가운데 하나였다.

183. 항가리에서 돌아온 후 며칠 뒤인 1917년 8월 초 카프카는 8절 노트에 ‘각혈’에 대해 적는다. 그것은 그후 한 달이 지나서 확인된 폐결핵의 시초였다.

 

상처

187. 뇌가 쌓인 근심과 고통들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뇌는 말했다. “나는 이것들을 포기한다. 아직 이 전체를 그대로 유지하는 일에 뜻이 있는 자가 있거든 나에게서 이 짐을 좀 가져가라. 그때 폐가 나섰다. 폐야 잃을 것도 별로 없었던 것이다. 내가 알지못하는 사이에 벌어진 뇌와 폐의 이 협상은 끔찍했던 것 같다.”

190. 그는 방금 F.를 역까지 데려다주고 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으며 엄숙했다. 그런데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때 그가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이 장면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하리라. 그는 흐느끼며 말했다. “그런 일이 꼭 일어나야만 한다는 것이 끔찍하지 않어?”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이때 말고는 한 번도 그가 당황해서 자제력을 잃는 것을 보지 못했다.

191. 취라우에서 보낸 몇 달은 카프카에게 모든 것, 즉 펠리체, 사무실, 프라하, 아버지와 절연하려는 한 시도이며 그 한 예였다. 아홉 살 아래인 막내 누이 오틀라가 그 점에서 그를 뒷받침해 주었다. 오틀라는 막스 브로트와 더불어 카프카가 비밀을 갖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196. <성>의 구상은 이 취라우에서의 겨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일기에 계획한 소설 이야기가 나오고 또 처음 알게 된 농부들의 생활이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그는 이것을 수많은 메모로 묘사해 두고 있다.

198. 그 이후의 6년간 그는 여러차례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요양원들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이 요양원 체류는 자주 도망치듯이 프라하로 돌아오는 바람에 번번이 중단되었다.

207. 1919년 5월 <유형지에서>가 나왔다. 늘 그래왔듯이 카프카가 작가 증정용으로 보내온 책 중에서 한 권을 건넸을 때, 아버지는 이번에도 역시 저녁 카드놀이 도중에 방해한다고 화가 나서 “테이블에 놔둬!” 라고 말했다.

208. 유대인 부르주아 계층의 규범안에서 율리에 보흐리체크의 아버지의 직업(유대 교구의 관리인)은 최하층을 의미했던 것이다. 카프카가 전하는 말로는 아들에게 욕을 퍼붓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카프카더러 (이때 서른여섯 살) 차라리 사창가에나 가라는 충고로 끝맺었다.

210. 약한 생활력, 잘못된 교육, 독신 생활은 회의론자를 낳는다. 그러나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회의를 살려내기 위해 어떤 회의론자는 결혼한다. 적어도 관념상으로라도. 그러고는 신앙을 가지게 된다.

 

옷 입은 사람들 가운데 벌거벗은 사람 하나

214. 카프카도 알다시피 사랑을 한 쪽은 그녀, 밀레나였다. 그녀에게 사랑은 유일하게 진정 위대한 생을 의미했다....그녀는 수줍음이 없었고 또 강렬하게 느끼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사랑이란 무언가 분명한 것, 자명한 것이었다.

카프카는 분명 처음에는 밀레나의 도전적이며 단호한 사랑 앞에서 놀라 뒤로 물러섰을 것이다.

216. “그 여자는 하나의 살아있는 불꽃이야. 내가 아직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그런... 게다가 지극히 사랑스럽고, 용감하고 영리하며, 또 그녀는 모든 것을 희생 속으로 던져 넣어 버리지. 아니, 말하자면 모든 것을 희생을 통해 획득했다고나 할까....”

219. 1921년 10월 카프카는 그녀에게 자신의 일기 전부를 건네주고 (실종자의 원고 및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는 이미 그녀가 보관하고 있었다.) 다시는 돌려달라고 하지 않았다. 이 일은 카프카의 여느 때의 수줍음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믿기지 않는 신뢰의 증거이다.

221. 중국 책을 한 권 읽고 있소...오직 죽음만 다루고 있군. 어떤 사람이 임종을 맞아 누워 있소. 죽음이 가까이 왔으니 더는 구애될 것도 없어서 편안한 심경으로 이렇게 말하는 거요. “나는 쾌락에 저항하며 생을 마치는 것으로 나의 인생을 보냈다.” 그러자 제자 하나가 죽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스승을 비웃으며 “선생님께서는 자꾸 죽음에 대한 말씀만 하시고 정작 돌아가시지는 않으시는군요.” 하자 그 사람 대답이 이렇소.

“죽으려는 것이다. 방금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있는 중인 거야. 어떤 사람의 노래는 좀 길고 , 또 어떤 사람의 노래는 좀 짧지. 그러나 그 차이는 몇 마디 말을 더하는 정도밖에 안되지” 맞는 이야기요. 그리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무대에 누워 아리아를 한 곡 부르는 영웅같은 사람을 비웃는 건 옳지 못해요. 우리야말로 여러 해를 드러누운 채 노래만 부르고 있으니 말이오.

222. 1920년 가을 카프카는 오랜 침묵 끝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나는 며칠 전부터 나의 전시 근무, 좀 더 정확히 말하지면 ‘기동훈련 생활’을 다시 시작했어요(카프카는 오후에는 잠자고 밤에는 글을 쓰는 소위 ‘기동훈련 생활’을 1912년 시작했었다).

223. 말년의 카프카의 친교 관계는 훨씬 어린 (10~20살 터울)사람에 대해 충고하고 도와주는 관계라는 점에서 모두가 닮았다. 누이 오틀라, 매우 불우한 가정형편에서 성장해야 했던 야노우흐(카프카와의 대화의 저자), 민체 E. 두 번째 약혼녀 율리에, 마지막 반년 동안의 벗 도라 디아만트에 대한 우정 등이 그렇다.

227. 카프카는 장편소설 <성>을 슈핀델뮐레에서도 4주일간(1922)쓰고, 그다음 몇 달은 프라하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루쉬니츠 강가의 플라나에서 썼다. 그러나 프라하로 돌아가기 직전에 이미 브로트에게 쓴다. “<성>이야기는 분명 영원히 미완으로 남겨둘 수 밖에 없었다.”고

229. 카프카와 도라 디아만트는 베를린의 슈테글리츠에 있는 집을 세낸다. 그리고 처음 몇 달 카프카는 몹시 행복했다. 드디어 온갖 저항을 물리치고 프라하로부터의 퇴거를 관철시킨데다 뜻밖에도 자신의 가정을 꾸며 즉흥시의 분위기 속에 산다.

231. 다음 몇 달 동안 병이 급격하게 악화된다. 무엇보다 인플레이션의 겨울에 먹는 것이 변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233. 1924년 3월 초 상태가 심하게 악화되어 지그프리트 아저씨와 막스 브로트가 베를린으로 와 카프카를 프라하로 데려간다. 결핵이 후두에까지 번져 회복할 가망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234. 4월 초 카프카는 ‘빈의 숲’이라는 결핵 요양원에 보내졌다가 거기서 빈의 대학 병원으로, 4월 말에는 다시 닥터 호프만 결핵 요양원으로 보내진다. 로버트 클롭슈톡과 도라 디아만트가 밤낮으로 곁을 지키고 죽마고우 막스 브로트가 또 몇 번 찾아온다. 1924년 6월 3일 마흔한 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프란츠 카프카는 죽어 프라하에 묻힌다.

* 카프카의 원고들

막스 브로트는 자신의 원고를 없애달라는 카프카의 유언을 지키지 않았다. 오로지 그렇게 해서 작품이 구조된 것이다.

처음 막스 브로트는 <소송 1925>을 편집했고 그 다음에 <성 1925>과 <실종자(아메리카)1927>를 편집했다. 나치가 프라하로 진군한 직후 브로트는 이스라엘로 피신하였고 원고들을 두 번째로 구조했다.

비평본 작품집의 기초가 된 이 원고들은 오늘 날 대부분은 옥스퍼드의 보들리언 도서관에 있고 일부는 마르바하의 독일 문학 문서실에 있다.

 

 

*** 내가 저자라면

우선 목차를 살펴보자.

뒤늦은 명성, 작가에게는 너무 뒤늦게
사업가의 아들, 프라하에 유실되어
보헤미아 군주국 왕립 김나지움에서는 무엇을 배우는가
대학 시절: 프라하의 주변 세계와 언어
어느 격투의 기록: 보험국 공무원, 그의 직업, 그의 계획들 그리고 여행들
이렇게만 글을 씌어진다
삶인가 문학인가, 약혼들,『소송』
상처
옷 입은 사람들 가운데 벌거벗은 사람 하나


연보
카프카를 밝혀주는 작은 등불ㅣ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프란츠 카프카는 끝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 그는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를 통해 그의 삶의 기록들을 남겨 놓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주입식의 강압적 교육을 추구했다. 카프카는 어린 시절부터 “말일”, “마감” “결과물”이란 단어들에 대하여 신경증에 가까운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그의 전기 작가들은 대부분의 작품들이 끝을 맺고 있지 않는 것에 대하여 이런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 연결해서 해석하기도 한다.

 

카프카는 임종에 즈음하여 그의 죽마고우 막스 브로트에게 그의 모든 원고를 불태워 소멸시켜 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막스 브로트는 친구의 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정성껏 편집하고 다듬어서 출간했다. 그리고 선견지명으로 일찍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전쟁의 포화와 나치의 횡포로부터 원고들을 지켜냈다.

카프카의 작품은 독보적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함께 보는 투시법으로 사건을 구성하고 이야기를 구성했다. 카프카의 작품은 20세기 후반에서야 겨우 이해받고 존중되기 시작했다. 또한 카프카의 작품에는 현실과 비현실이 수수께끼처럼 뒤섞여 있고 결론이나 단언도 찾아볼 수 없이 그저 출구없는 막막한 삶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모습은 마치 한 장의 기묘한 그림처럼 압축되어 형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모두 미완성으로 끝난 세편의 장편소설 뿐 아니라 한 두 문단의 단편들도 모두 불가해한 신비함이 있다.

이 책 <프라하의 이방인, 카프카>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카프카의 작품과 생애를 잘 연결시켜 주고 있다. 작품이 씌여진 시기와 그때의 상황을 잘 설명해 줌으로써 작품에 대한 해석을 돕고 있다. 이 전기는 작은 책이지만 마치 카프카처럼 한 문장 한 문장에 큰 공을 들인 작품이다. 원작은 1964년에 나와 오랜 세월동안 36쇄를 거듭하며 꾸준히 읽혔고 2002년에 개정판을 냈다. 그러나 개정판의 내용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고 시간이 흘러도 더 보태거나 바뀔 것이 없는 책이다.

카프카가 눈이 아프도록 응시하고 꿰뚫어 본 삶과 세계의 진면목이 드러나 있고 이런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카프카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은 텍스트를 이해하고 또 저자를 이해하는 데에 탁월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고맙다. 분명 작가에 대한 깊은 공감과 애정이 없이는 이렇게 정교하고 섬세한 작가의 삶을 따라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카프카의 주변에 있었던 인물들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람의 일생은 그가 관계 맺은 사람들에게 남은 인상으로 결론 지어지는 것 같다. “무감어수 감어인”, 물에 비춰보지 말고 사람에게 비춰보라는 말이다. 이 책에는 세 번이나 약혼을 하고 한번도 결혼을 하지 않았던 카프카의 여인들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펠리체 바우어, 밀레나 예젠스카, 율리에 보흐리제크, 도라 디아만트. 그리고 카프카의 평생 친구 막스 브로트, 오스카 바움, 펠릭스 벨취에 대한 자세한 기록도 남아있다.

 

 아마 사실관계의 자료 확인을 위해 이 전기 작가는 프라하를 수없이 다녀갔고 사람들의 기억을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혹독한 나치의 박해를 받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아우슈비츠에서 연기로 사라져갔다는 소식만 되돌아 왔다. 그러나 이런 전기 작가들의 노력에 힘입어 프라하는 카프카의 도시가 되었고 카프카가 살았던 모든 집들은 발굴 보존되어 있다.

이런 저자의 노력으로 우리는 인류의 문학사에, 사상사에 분명한 획을 그은 카프카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게 되었다. 오래 전부터 여러 번 읽었다고 생각되는 그의 책들도 겨우 제목과 황당했던 기억만 남겨가지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을 읽고 다시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주는 책, 이런 책을 쓰는 것은 참 힘이 드는 일이지만 그만큼 보람이 있기도 할 것 같다.

이번에는 작가로서 작품을 쓰는 모습에 초점을 맞춰서 리뷰를 했다. 특히 마무를 옮겨 적으면서 상황의 요약보다는 내가 흥미있는 부분을 우선적으로 선택했으므로 흥미있는 사람에게는 책을 더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이 책은 원서도 훌륭하고 번역 또한 매우 성실하게 잘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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