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박미옥
  • 조회 수 5145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1년 10월 7일 13시 20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김찬호(1962년~)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를 취득하고 대학에서 문화인류학과 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학교 바깥 사회단체, 평생학습센터, 문화예술기관, 공무원연수원, 교원연수원 등지에서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청소년교육, 부모교육, 마을 만들기, 한국문화론 등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서울시대안교육센터 부센터장을 역임했다.

<사회를 보는 논리>,<도시는 미디어다>,<문화의 발견 : KTX에서 찜질방까지>,<휴대폰이 말하다>,<교육의 상상력>을 썼으며, 역서로 <작은 인간>,<학교현장과 계급재생산>,<이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경계에서 말한다> 등이 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머리말 우리의 인생에 삶이 없다

지금 모든 세대는 생애의 매 단계마다 윗세대가 경험하지 않았던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다 7

물리적인 시간과 생리적인 연명을 넘어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 삶이다 8

경험을 이야기로 빚어내고 그 의미가 타인에게 공명될 때, 인생은 ‘살맛’이 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여백이 필요하다 8

남녀노소의 생애 스펙트럼을 펼쳐 보이고 있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다른 세대나 이성의 경험세계에 비추어 자신의 실존을 바로 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9 ★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의 가장 큰 수확은 나의 한계를 조금 더 분명하게 직시하는 것이다 10 ★

1. 성장과 자립

구글의 사무실이 화제가 되는 것은 일과 놀이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디자인 때문 22 _ 내가 가정에서 이뤄내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노동’과 ‘휴식’의 경계를 허물고 싶다.

‘의미있는 타인’ : 한 개인의 자기 평가에 강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으로서, 사회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 지속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자아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상대 37

불확실하고 위험한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 갖춰야할 덕목 : 현실의 흐름을 폭넓게 조망하는 시야, 자기의 잠재력을 냉철하게 발견하는 통찰, 생애의 시나리오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 좋은 삶에 대한 믿음과 열망, 그리고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며 창조할 수 있는 용기 38

한국 유학생들은 대체로 우수하지만 타인의 비판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훌륭한 인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판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워야 하는데 한국 학생들은 일단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심리적으로 위축돼서 아예 학습 의욕을 잃는 경우를 자주 봤다. 비판을 생산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중의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55

생애를 통해 꾸준하게 커리어를 쌓아 나가야 하는 젊은이로서는 직장에서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기 보다는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장래의 청사진을 밝기 그리기는 어렵다 107

삼십대에는 지위나 연봉이나 성취로 환원되지 않는 ‘나’, 그 자체를 만나야 한다. 흑백론이 이분법은 금물이다. 사회적인 입지를 마련하는 일에 소홀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능력을 키우고 발휘하며 적절한 직함도 확보해야 하고 정당한 인정과 대가를 받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러나 그 결과가 자기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속물적인 기준으로 세워진 직업의 위계서열에 복종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도달하고자 하는 인생의 급수를 정하고 매진해야 한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존재의 비밀에 대해 계속 질문하고 또 다른 가능성들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정신의 스태미너가 필요하다. 그것이 충분하지 않을 때 삼십대의 생애는 취약한 기초위에 흔들리기 쉽다. 알량한 획득과 성과에 안주하면서 우쭐대거나, 상대적으로 뒤늦은 진출이나 일시적인 정체 또는 약간의 실패에 필요 이상의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110 _ 마이페이스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이겠지? 요즘 말도 못하게 불안하다. 혹시 언젠가 시에서 본 ‘함께 있어도 네가 그립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하면서도 자꾸만 시계를 보는 나는 대체 어떻게 설명하면 좋단 말인가? 괜찮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백만번쯤 이야기해주고 그래도 불안해하면 가슴이 터질만큼 꽉~~~ 안아주어야겠다!! 미옥아!! 쫄지 마!! 너 잘하고 있으니까!!

자기의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시간낭라는 스티브 잡스의 충고가 통렬하다 113

느림이라는 태도란, 삶의 과정에서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나만의 보폭으로 걸어가겠다 113

2. 남과 여

연애, 또 다른 행성으로의 모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사랑이 시작될 때 119 _ 이것이 어찌 인간과의 사랑에 국한된 진실이리..

서로에게 절대자가 된다는 것

빅토르 위고, 세상의 모든 것이 한 사람으로 축소되고, 그 사람이 곧 신이 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했다 120

연애감정은 일종의 중독 또는 착란 증세이고,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광기’라고도 할 수 있다. 선한 광기 120

연애의 매혹은 무엇일까? 나는 그에게 그리고 그는 나에게 유일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온전히 헌신하면서 절대자의 위치에 마주서고 싶어한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욕구는 오로지 그와의 배타적 관계속에서만 채워야 한다. 상대방이 나를 세상의 중심으로 치켜세워 줄 때 살아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그와 하나가 되어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곧 영원한 현재다. 그 어느 누구도 이 둘만의 오롯한 우주에 침입하지 못한다. 친구나 선후배 직장동료, 그리고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그렇듯 배타적인 관계가 맺어지지 않는다 122

열망, 살아 있다는 증거

사회학자 엔소니 기든스의 분석에 따르면, 근대사회는 합리성의 원리에 입각해 세계를 구축하면서 감정의 문제를 사적 영역으로 추방하였다. 거기에는 공적 영역의 이성과 대조적으로 친밀성이라는 정서가 중심 테제를 이룬다. 근대적 개인주의도 그러한 감정세계와 병행하여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123

가족 이외의 관계에서 나를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고 실존의 중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감격스러운 사건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간절하게 원하고 서로를 깊이 알아가려고 애쓴다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지고의 희열이다 123

연애는 자신이 처음으로 자발성을 발휘해 볼 수 있는 중대한 프로젝트로 부각된다 124

거절 당할지도 모르지만 나의감정을 ‘커밍아웃’한다. 그것은 일종의 모험이다. 좌절의 가능성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마음을 던지는 도전이다. 그 불확실성이 짜릿한 즐거움이다. 젊은이들은 무엇인가에 존재를 걸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연애를 통해 깨닫는다 124

현대인들은 자기가 살아 있다는 증거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학교와 사회에서는 거대한 관료제에 갇혀 지내야 한다. 엄격한 규율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개인은 통제와 조종의 객체 또는 사무처리와 평가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거기에서 마모된 자존감을 보상하는 영역이 바로 소비세계다. 그러나 상품 미학의 코드와 규격속에서 구매와 소유의 맥락을 떠난 자기를 실감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듯 스스로의 뜻대로 삶을 꾸리지 못하고 정체성이 희박해지는 시대에 연애는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처럼 여겨진다. 명령과 위계의 경직된 질서를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하고 소통하는 해방구가 거기에서 발견된다. 그 안에서 자신은 온전한 인격체로, 더 나아가 유일하고 특별한 사람으로 확인된다. 사랑은 그러한 상호승인을 향한 열렬한 소통이다 125

연애 감정의 모순들

쿨함 :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야박하지 않으면서 또한 자기의 실속을 잘 챙길 것...게임 감각으로 일상을 심플하게 풀어가면서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 것...열정과 감각을 필요한 순간에 발휘할 수 있는 신비스러운 자기포장술...126

연애감정의 모순...최초에는 오로지 상대방의 됨됨이 그 자체에 매료되고 그 사람 위주로 생각하고 행도한다. 그것이 사랑의 본디 모습이고, 누구에게나 그러한 순정이 있어서 연애의 처음 단계를 채워 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집이 싹튼다. 애당초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아낌없이 베풀었건만, 뒤늦게 그에 대해 보상을 요구한다. 서로의 감정을 견주는 게임이 관계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성적 충동이 중첩되면 강박은 고조된다. 하지만 그 변질을 자각하기는 쉽지 않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127

연애 감정의 또 한 가지 모순...상대방과의 안정된 관계를 희구하나 막상 안정되고 나면 감정이 희석되어 버린다 128

왜 그렇게 될까?...어쩌면 상대방을 사랑했다기 보다는 그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기의 감정에 도취되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대상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또는 정반대로 처음부터 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사랑이라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이 연애의 목적이었던 것이다...어떤 상대와 안정된 관계에 들어섰을 때 이제 그 사람의 마음을 쟁취하였기에, 나의 매력이 그를 사로잡을 수 있음을 확인하였기에, 더 이상 추가적인 ‘투자’가 필요없다 128 _ 이건 ‘마음’이란 녀석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에 부릴 수 있는 만용이다. 관계는 식물과 같다. 끊임없이 보살피고 투자하지 않으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다. 어찌 한 순간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해서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리라 확신할 수 있겠는가? 연애도 그렇지만 결혼 역시 한 순간의 결정에 의해 평생 유지되는 ‘종신계약’일 수 없다. 오히려 매일매일 갱신되는 ‘단기계약’에 가깝다. 오늘도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은 어제도 그가 나에게 최고의 사람이었다는 반증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자신의 가치를 ‘관성’에 의존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 강한 당신에게 방심할 여유 따위가 있을 리 없는 것이다.

에크하르트 톨레, 현대인들이 빠지는 사랑의 대부분이 에고의 결핍감과 욕구가 극대화된 것이고, 상대방에 대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중독된 것이라고 말한다 128

낭만적인 관계의 초기 단계에서는 상대방으로부터 매력을 끌기 위해 어떤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공통된 일이다. 특히 에고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나를 특별한 존재로 느끼게 해주고, 나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줄 사람’이라고 여기는 상대방을 유혹해 옆에 두기 위해서는 그것이 필요하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사람의 모습을 연기할테니, 당신은 내가 원하는 사람의 모습을 연기해 줘.” 말로는 하지 않지만 이것이 서로간의 무의식적인 동의이다. 하지만 어떤 모습을 연기하는 것은 힘든 일이며, 따라서 그 모습은 무기한 유지될 수 없다 129 _ 결혼당시 내가 연기하고 싶었던 인격체는 그야말로 ‘조신하고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최고의 가정을 만들기 위해선 나부터 최고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이미지에 맞지 않는 내 모습을 철저히 부정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도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는 모험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는 ‘좋은’ 나를 선별해내기 위한 탐색의 과정일 뿐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완벽한’ 나에게 그보다 먼저 싫증을 낸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내가 만든 시나리오속의 배역을 위해 스스로 폐기를 결심했던 나의 이면들이 너무나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그것들은 내 안의 어딘가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그에게 들키지 않게 이 그림자들을 하나둘씩 꺼내보는 것만이 내 삶의 유일한 즐거움이 되어버렸던 거다. 그와의 관계는 점점 매말라갔다. 자꾸만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온전한 나를 받아줄 수 없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변명하면서...

나중에 알았다. 나를 절반만 사랑한 건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음을.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어서 시도한 ‘커밍아웃’에 대한 그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너 그런 사람인 거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거든. 내가 사랑한 건 그런 모습까지 다 포함한 너야. 아직도 몰랐단 말이니? 힘들어할 때 말해주려고 했는데 네가 자존심 상해할까봐 참았던 거야. 이제 편하게 살자.’ 허무했다. 그동안의 내 마음고생은 다 무엇이란 말이냐...그러나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완전한 합일을 향하여

오래 사귀다 보면 서로를 편하게 대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그냥 헤어져 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렇게 멀어지기 전에, 서로를 아끼는 연인들은 함께 연절사(緣絶寺)에 가서 어제까지의 연인 사이를 청산하는 거짓 이별식을 치른다는 거지요...그러니까 연절사의 거짓 이별식은, 사랑을 영원히 지키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신을 상대로 벌이는 깜찍한 쇼와 같은 셈이죠.. 130_결혼기념일 이브 이벤트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연애 안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겨날 수 있는 모든 정황이 압축되어 있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주치게 되는 마음의 뭇 풍경들이 집약되어 있다. 연애에 입문하여 우리는 사람에 대해 깊이 공부하면서 자아의 여러 얼굴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131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길은 험난하다. 자연스럽게 끌리는 에너지와 저절로 타오르는 열정에만 편승하다가는 느닷없는 파국을 만나기 쉽다. 연절사에서 이별을 통해 더욱 탄탄한 인연으로 거듭나려는 연인들에게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호감의 절정을 지나, 그리고 갈등으로 점철되는 애증의 파노라마를 통과한 다음, 평상심으로 친밀한 관계를 건설해가는 과정에서 인격은 시험대에 오른다. 상황을 객관화하는 분별력, 자아에 대한 깊은 성찰력, 타자에 대한 상상력, 상대방의 허물을 보듬어 안는 포용력, 즐거운 체험을 빚어내고 나누는 창조성 등이 요구된다 131

깊은 속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이루어지는 사귐은 피상적인 심리유희요 상투적인 퍼포먼스다 132

부모에게 받아야 할 사랑, 사회적 성취를 통해 세워야 할 자존감까지도 애인에게 채워달라고 손을 벌린다 132 _ 나도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 찬찬히 생각해 보자

연애가 주는 최고의 선물...시행착오와 좌충우돌을 거듭하면서 변덕스러운 감정에만 나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감정들을 조련하고 다스리면서 인생을 하나둘씩 알아간다. 비좁은 나에서 해탈하여 더 큰 나로 나아간다. 누군가와 온전히 어우러지기 위해 집착과ㅏ 강박에서 탈각하는 기법을 배운다.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숱한 부대낌과 괴로움도, 나를 알아가기 위해 치르는 대가로 여긴다면 결코 낭비는 아니다. 감정에 대한 성찰과 자기에 대한 신뢰를 얻기 위한 수업료다 132

사랑이란 아무런 갈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환상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참 원인은 대부분의 사람이 느끼는 ‘갈등’이 진짜 갈등을 피해 보자는 의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그들의 깊숙한 내면적인 실체의 수준에서 체험하는 진정한 갈등은 결코 파괴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한 갈등을 거친 후 두 사람에게 모두 새로운 힘과 이해를 증진시켜주는 카타르시스를 겪는다. 사랑이란 두 사람이 모두 자기 실존의 가장 중심부와 교섭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다. 인간의 실체는 이 중심체험에 있으며, 여기에만 생명감이 있고 사랑의 터전이 있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중에서 133 ★★★_읽어 봐야겠다.

자율과 성찰의 소우주

시간에 쫓기기만 할 뿐 그 흐름에 가슴으로 완전히 몰입하지 못한다 134

사랑은 놀라운 세계를 열어준다. 거기에서 우리는 역할이나 지위나 소속을 벗어나 순수한 인격으로 서로를 만난다 134

연애는 서로의 유일성을 발견하고 절대화하는 만남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무조건적으로 용납하면서 존재를 전폭적으로 승인하는 관계다 134 _ ^^

두 사람이 관계를 정의하고 스스로 입법자가 되어 권리와 의무를 협상하는 사적 영역에서 일상생활의 민주화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성문화된 규칙이 아니라 서로의 인격을 신뢰하고 자율성을 훈련하면서 성찰능력이 육성된다 135

모든 인간관계는 사랑할 능력이 없는 사람과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 사이의 관계, 엘리어트 135

나르시시즘의 유혹을 물리치고 겸허한 마음으로 사랑을 차근차근 배워가야 한다 135 _ 지금까지의 내 사랑은 ‘나르시시즘’ 단계에 머물고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은 전혀 다른 행성에서 온 타자를 향해 뻗어 나가는 영혼의 운동이다. 그와 동거할 또 다른 행성을 건설하는 모험이다. 각자의 삶을 가치있게 향상시키면서 더불어 성장해야 하는 과제가 거기에서 주어진다 136

싱글, 마음과 대화하는 자유 시간

노처녀에서 골드미스로?

싱글,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지속가능한가? 141

한비야와 <섹스 앤 더 시티>, 그리고...

미혼 여성이 늘어나는 데는 더욱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여성들의 의식은 빠르게 변하는데 비해 남성들은 답보상태거나 너무 더디게 변한다. 그 이면에는 가부장제 질서가 의연하게 버티고 있다. 가사와 육아의 부담은 여전히 여성의 주된 몫으로 주어지고, 사회적․정책적인 지원도 아직 미미하다. 고부간의 갈등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이 여성에게 주는 메리트는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다.

1980년대 이후 도도하게 흘러온 페미니즘의 자장 속에서 많은 여성들이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게 되고 사회적 성취에 대한 욕구도 높아졌다. 기성 질서의 고루함에서 탈출하려는 몸부림 속에서 자의식은 예리하게 가다듬어졌다. 적어도 남녀관계의 측면에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적극적인 자기개조를 감행한다. 그 길에서 결혼은 걸림돌로 보이기 일쑤다. 아버지의 부당한 권력 행사나 무능함에 염증을 느끼고 그 속에서 고생을 하는 엄마의 구차한 삶을 보면서 결혼에 대하나 부정적인 관념이 형성된 경우도 적지 않다. 가정은 개인의 보호막이나 행복의 전당이 아니라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감옥으로만 기억된다. 엄마는 자기처럼 살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권유한다.

그렇게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여성들의 의식은 점점 진취적인 되어가고 있다. 아들 딸 구별 않고 자녀를 키운 부모들이 거기에 큰 몫을 했다. 경제력과 문화자본을 갖춘 고학력 부모의 슬하에서 태어난 알파걸들은 구김살없이 자랄 뿐 아니라 잠재력 개발에 충분한 지원을 받는다 146

가부장제를 미련없이 따돌리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146

싱글들을 여전히 힘들게 하는 것

타인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체면에 집착하는 부모는 자녀의 삶을 진지하게 헤아리지 않는다. 오로지 겉모습만을 견주며 수치심과 두려움에 젖어드는 부모의 마음은 자녀에게 정체없는 불안을 키워 줄 뿐이다. 그 조급함은 긴 호흡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151

싱글 여성들은 매우 속된 표현으로 ‘주인없는 물건’으로 여겨 만만하게 보는 남성들에게 종종 시달리게 된다 152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

아직 젊을 때 코드가 맞는 친구들을 열심히 사귀어 두어야 한다. 일정 기간 동거를 실행해 볼 필요도 있다. 막상 함께 몸을 부대끼며 생활하다 보면 그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마찰과 갈등의 지점들이 보인다. 그리고 나 자신의 모난 부분들도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결혼생활의 적응과정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153 ★

여성들은 관계 중심적이고 살림에 익숙한 편이어서 그런 실험이 크게 어렵지 않은 듯 하다 153 _ 난 여자가 아닌 게 분명하다. 쩝..--;;;

독신들의 공동생활도 결혼생활에 버금가는 수행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154

삶의 다양한 존재 가능성

누구나 마지막엔 홀로 된다 153

무상의 주부노동으로 지탱해 온 가부장제에 대한 거부감, 남녀 사이의 의식의 비대칭...다채롭고 매혹적으로 제시되는 자아실현의 시나리오들...156

결혼식, 경건한 어울림의 예악

사회 재생산의 핵심 기제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일상의 공간은 상징으로 가득찬 우주, 엄숙함과 흥겨움이 어우러지는 비일상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159

유일한 사회적 의례?

결혼식없는 결혼은 한국처럼 집단 내지 관계가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163

결혼산업과 위세경쟁

결혼은 자신의 집안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를 가장 집약적으로 확인하고 보여주는 계기인지도 모른다 164

예의없는 의례

축하는 쉬워도 축복은 어렵다

‘주례사 비평’ : 텍스트에 대한 냉철한 분석 대신 입에 발린 칭찬으로 채우는 비평

인간의 긍지 빚어내는 생의 향연

부부, 사소한 것들의 중요함을 배운다

그이의 본색이 드러날 때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부부의 삶을 묘사하는 작품은 대부분 부부가 날카로운 대립 속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모습 178

연애가 비일상의 운문이라면 결혼은 일상의 산문 178

부부는 친밀한 적대관계

결혼은 인간의 발명품이다. 결혼은 하나의 제도로서, 결합하는 남녀와 그 사이에서 낳은 아이의 사회적 위치를 규정한다 179

결혼에 당사자들 사이의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지극히 최근에 생겨난 것이다...사랑과 결혼과 성이 삼위일체로 결합된 것은 근대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180

사회적인 제도로 묶여 있으면서도 서로에 대해 정서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관계가 현대의 부부다.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물줄기가 마르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그 본분에 소홀하면 곧 간극과 균열이 생긴다 180

가정은 그 자체로 삶의 궁극적인 행복을 누리는 전당으로 기대된다. 정서적 친밀감으로 소통을 돈독하게 다져가면서 관계의 질을 유지하지 않으면, 메마르고 공허한 껍데기만 남게 되고 거기에서는 작은 마찰이 걷잡을 수 없는 갈등과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 180

2002년 이후 결혼한 연예인들의 평균 결혼 유지기간은 약 23개월 181

근사했던 남성미는 치졸한 남성우월주의로 변질되어 간다 182

여성들의 의식변화와 걸맞지 않는 가부장제적인 문화가 존속하기 때문이다 184

표현과 공감의 생태학

자기가 좋아서 직장 다니면서 생색내지마 vs 내가 못났으니까 이렇게 살지 185

가학과 피학이 실타래처럼 꼬이면서 대물림되는 복잡다기한 가족사가 끈질기게 지속되는 것이다 185

우리는 자기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해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소통이 왜곡되고 비본질적인 것들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185

흔히 감정적으로 되는 것과 감정을 분명히 표현하는 것을 혼동하는데 그것은 서로 다르다. 감정적으로 되지 않고도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하면서 극도로 감정적으로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감정에 대해서 제대로 분명하게 말하려면 신중해야 한다. -더글러스 스톤 <대화의 심리학> 중에서 185

문제는 자신의 발화속에 깔고 있는 감정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또는 의식한다 해도 그것을 말로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고 빙빙 둘러 이야기하거나 퉁명스럽게 다르치고 따져 묻는 식으로 감정을 드러낼 뿐이다. 그것은 또 다시 상대방의 부정적인 감정 에너지를 자극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186

신체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진단을 받듯이, 부부도 관계의 건강을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대화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어떤 것들인가? 갈들이 일어나는 지점들은 일반적으로 무엇인가? 사소한 마찰이 걷잡을 수 없는 충돌 국면으로 돌변하게 되는 계기는? 말 한마디에 깔려있는 감정, 상대방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태도가 무엇인지 정직하게 분석해 보자. 단정, 비난, 추궁, 협박, 경멸, 무시...이런 것들이 기조를 이루는 소통이라면 더 늦기 전에 근본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가야 한다 186 ★★★

듣고 말하고 드러내자

누군가가 진정으로 들어 주면 암담해 뵈던 일도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187

감정이 오갈 수 있는 물길이 여러 갈래로 트여야 한다 188

논쟁으로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188

사람들은 자기를 이해해 주고 이야기를 자라 들어주고 존중해 준다고 생각하는 경우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변화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를 느낄 때 변화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상대를 대상화시키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따지고 드는 대신, 내가 소망하는 바를 분명하게 내놓으면서 공감의 지대를 넓혀가는 일이 필요하다. 나의 감정을 이해받았다고 느낄 때 변화의 동력이 안에서 우러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189

저마다 내면에 한 구석에 숨기고 있는 어둠을 사랑하는 이의 눈빛으로 비춤으로써, 자아를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면서 동병상련과 측은지심으로 유대를 돈독하게 할 수 있다 189

남편과 아내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이해하기 힘든 상대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상처, 콤플렉스, 죄의식을 알면 세상에 이해 못할 판단이나 행동이 없어지죠. 또한 콤플렉스, 상처, 죄의식은 드러낼수록 줄어듭니다. 살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부부가 서로의 감춰진 욕망과 상처를 안다면, 그리고 치유를 나누고 있다면 위기와 갈등에 훨씬 나은 결과를 낳지 않을까요? 결혼생활 첫 1~2년 ‘서로의 콤플렉스 드러내기’에 투자해 보세요. 남편과 아내가 ‘사람’으로, 또 ‘연민의 대상’으로 바뀔 것입니다 189 _ 제일 망가지기 싫을 때 아닐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

군자의 길로 정진하는 수행의 동반자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30년 내에 일부일처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인류사에서 일부일처제가 표준화된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로서,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제도인지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못한 상태다 190 _ 우리의 머릿속에 사랑과 결혼과 성이 삼위일체로 결합되어 있는 한은 유지되지 않을까?

연애 시절의 낭만적 열정이 자연스럽게 식어가는 과정에서 그 공백을 새로운 ‘의미’와 ‘재미’로 채워나가는 능력이 요구된다. 초고속 압축성장의 환경에서 외형적인 성취에만 매진해온 한국인들은 마음의 힘으로 삶을 디자인하는 감각을 많이 잃어버렸다. 결혼생활의 어려움은 거시적으로 보아 그러한 사회적 결손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191 ★★★★_ 결혼의 새로운 ‘재미’와 ‘의미’를 찾아내려는 시도,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자질을 제시하는 것이 내 책의 주제가 될 것이다.

가정, 학교, 지역 어디에서도 가족을 이뤄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와 거기에 필요한 자질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결혼에 대한 환상적인 이미지만 가득 부풀리는 문화의 폐해가 개개인의 불행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뒤집어보면 부부관계와 가족은 생의 보람을 일구면서 문화를 가꾸어가는 거점이 될 수 있다. 앤소니 기든스는 핵가족이 ‘상호인정에 기반한 소통의 잠재력이 자라나는 곳’으로서 일상생활의 민주화를 구현하는 장소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 가치는 단지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모든 영역에서 소통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감성지수나 사회적 지능이 강조되고 있다.(‘짝짓기 지능’이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가족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유능한 사람이 되는 시대다 191 ★★★★★★★★★★★★★★★★★★★★★★★★★ _ 내가 하고 싶은 말 종합 선물세트!!!

<리더십과 자기기만> 인간이 빠질 수 있는 자기 기만과 자기 배반의 속성을 분석하고 있다. 부부간에 벌어지는 사소한 갈등을 사례로 리더십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192 _ <리더십과 자기기만> 읽어보자!

결혼은 인간 사이에 맺어지는 가장 강력한 결합 가운데 하나. 부부는 살림살이를 분담하는 경제공동체이면서, 축제를 더불어 누리는 정서공동체다. 설거지, 청소, 기저귀 갈기 등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을 나눠야 하고, 감정을 온전히 섞으면서 언어의 향연을 차리고 성적인 희열에 함께 올라야 한다 192 ★★★★

사소한 일에 정성을 다하고 너그러움으로 상대방을 품어주는 그릇이 없으면 늘 어긋나고 끊임없이 부딪히게 되어 있다. 그 함정들을 조심스레 살피면서 원숙한 파트너로 동행하는 그 자체로 큰 수행이라 할 수 있다 192 _ 행복한 결혼을 일구기 위해 필요한 자질!

부부 사이에서 시작된 군자의 도가 천하에 이른다는 중용의 구절을 되새김질 해본다. 부부가 그러한 경지를 향해 정진하는 도반으로 맺어지면, 함께 내딛는 발걸음은 육중하면서도 가뿐하다. 경청과 공감의 지대를 넓히면서 변화와 성장을 꾀하고 그 대견한 모습을 격려하는 부부는 서로를 고분고분 닮아간다 192

외도, 바깥의 길은 어디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 짜릿함

저는 이제 다시 이성의 동무를 가진다 하여도 결단코 성적으로 불순한 곳에 이르기를 피하고 그저 재미있게 이야기나 하고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들어 주시고 비평하여 주실 정도의 남성을 친하고 싶소이다. 이것도 죄이리까요. -<애인과 남편> 중에서 194

기혼 직장인의 00%가 정신적 외도 경험 196

비밀을 공유하기에 돈독해지는 유대감

오랫동안 고장 나 쓰지 못했던 감정의 통신선이 갑자기 수리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97

“삶이, 참을 수 없이 하찮아. 하찮아서 미칠 것 같아.” 단지 심심하고 지루한 정도가 아니라 자기의 인생이 너무나 시시하다고 느껴져 견딜 수 없다는 절규(?)에 공감하는 부부, 특히 주부들이 적지 않으리라. 그 남루한 처지를 벗어 날 수 있는 출구는 없는가 198

위반은 죄책감을 자아내면서도 자신의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는 듯 하다 199

에로티즘과 관련하여 결혼이 지니는 함정은 습관이다. 무한히 허용되는 위반은 더 이상 위반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 결혼은 성행위를 습관화하고, 습관적 성행위에는 위반의 느낌이 약화되고, 위반의 부재는 관능의 부재를 야기한다. 만일 혼외정사가 에로티즘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면, 거기에는 육체적인 이유보다 정신적인 이유가 더 클 것이다 200

사이버세상이 넓어지면서 불륜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있다 201

<자유부인>에서 <바람난 가족>까지

1990년대 말은 불륜영화의 새로운 분기점, 남성의 관음적인 시선으로 여성을 대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결혼의 울타리를 적극적으로 뛰어넘는 여성의 내면에 천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극히 단조로운 남편과의 관계에 찌들어 있는 주인공들...섹스 그 자체에 병적으로 집착했던 애마부인과는 달리 그들의 에로티시즘은 사뭇 우아하고 깔끔해보인다 203 _ 정당화라기 보다는 문제제기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거겠지?

한국 영화는 외도 중에 있는 남성의 마음에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204

모순과 자기 분열의 굴레

사랑은 종신형이지만 불륜은 벌금형이다...시작은 알 수 있으나 끝은 알 수 없는 미궁이라면, 불륜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시작이다 204

불륜을 감행하려면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을 각오도 해야 한다고 암시하는 듯하다 205

떳떳한 연애와는 달리 불륜은 그 자체에 근원적인 갈등과 분열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즉, 상대방에게 끌리면 끌릴수록 그 감정을 억제하고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야 하는 이유가 커진다.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수록 두려움도 커진다...만남의 미래상이 그려지지 않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지금의 만남을 즐기면서도 하루빨리 이 갈등상황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소망이 함께 자란다 205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 않기로 약속하고 시작한 혼외관계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쉬움이 생기고 주체할 수 없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다...인간의 마음은 그렇다. 미국의 히피족 등 급진적인 자유쥬의자들의 실험이 종종 있었지만, 남녀관계에서 배타적 소유욕까지 넘어서는 데는 늘 한계를 드러냈다 207

욕망과 감정의 모호한 신호

바깥에 있는 길에 설레는 마음으로 올랐지만, 목적지가 없는 것이다 208

이성을 향한 욕망의 정체는 쉽게 규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다...누구도 그러한 충동에서 자유롭다고 안심하지 못 한다. 제 아무리 고결한 인격의 소유자나 거룩한 성직자도, 그리고 일편단심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남편이나 정숙한 아내도 장담할 수 없다 208

사람이 사람의 욕망 그 자체를 단죄하기는 어렵다. 엄숙주의의 가면을 쓰고 손가락질하던 타인의 스캔들이, 원초적인 본능처럼 나의 실존을 휘감는 로맨스로 둔갑할 수 있다. 그 야누스의 얼굴은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에서도 발견된다. 우가 적지 않다. 불륜에 관한 소문에 귀를 쫑긋 세우고 온갖 악플을 달면서 이야기를 부풀려가는 사람들은 내심 그에 대한 선망을 도덕주의로 은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무의식에 도사린 정체불명의 에너지를 인정하지 않던 사람들이 그 부정과 억제의 고삐가 풀릴 때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일탈로 빠져드는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자기 안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욕망을 인정하는 것이 그것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내가 모르는 자아의 영역은 무한하다. 욕망은 그다지 신뢰할 만한 신호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에 주책없이 끌려갈 때 감당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리기 쉽다는 것을, 여러 현인들의 가르침에서 그리고 우리의 많은 경험에서 확인하게 된다 209 _ 모험과 도전도 허용되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히 행동하라.’는 메시지를 선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분별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감정은 매우 변덕스럽다.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듯 활력과 생동감을 주던 만남도, 부부관계와 마찬가지로, 또는 그보다 훨씬 빠르게 매너리즘에 빠지고 권태에 젖어든다 209

로맨틱한 사랑은 자신을 기만하는 것으로 시작해, 타인을 기만하는 것으로 끝난다, 오스카 와일드 209

나와 상대방의 인생에 무엇이 최상인가를 두루 살피고 냉정히 따지지 않으면 ‘순수한’ 사랑도 얼마든지 지옥을 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가 놓여 있는 삶의 조건까지도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210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세상에 살고 있고,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런 불완전성과 모순을 뛰어넘고 승화할 수 있는 것 또한 사랑의 힘이다 210

바깥의 길은 다시 안으로

모든 자유는 순간이다. 그것은 세속적 규율을 해탈시키는 듯이 보이지만 결국 더 큰 규약과 제재와 규율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한 규약과 규율의 질서를 획득하지 못할 때 사랑은 파괴적이 되고 만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비극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인간존재의 패러독스의 조건이다 211

자기의 욕망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성정을 채우고자 하는 충동을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212

인간이 만들어 온 모든 사회적 질서는 일정한 수준에서 개인의 욕망을 제어하는 기제였고, 거기에서 남녀관계는 통제의 핵심 대상이었다 212

대리만족을 위해 만들어진 스토리를 섣불리 실현하려 했다가는 난감한 궁지에 몰리기 십상이다 213

감정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랑에 대한 갈구, 그것은 실존의 결핍을 알려주는 신호일 수 있다. 새로운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충동은 사람을 온전히 ‘목적’으로 대하고 나 또한 그렇게 대접받고 싶은 갈망의 폭발이다. 타인과 온전히 하나가 되어 활활 불타오르고 싶다는 생명의 몸부림이다. 하여 그것은 구태의연하고 천박해진 삶, 도대체 살맛나지 않는 세상에 대한 항거일지도 모른다. 문제의 본질은 내 안에 있다. 변덕스러운 감정과 불확실한 타인에게 의지하기보다는,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213 ★★★★★★★★★★★ _ 정확한 진단!!

자기배반의 덫에 걸려들지 않고 삶의 절정을 맛볼 수는 없을까? 파멸의 위험을 떠안지 않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스릴은 가능할까? 외도의 유혹은 희박한 존재감에 대한 각성일 수 있다. 불륜의 번민은 자신을 깊이 알아가면서 삶을 크게 배우는 공부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바깥의 길은 다시 안으로 향한다. 사랑의 본거지에 이르는 여정이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에서 ‘쾌락’과 구별되는 ‘기쁨’을 환기시키면서, 그 핵심으로 ‘내적 탄생’을 역설했다. 매순간 다시 태어나면서 언제나 살아 있다는 느낌, 삶에 스며드는 희열과 자아의 신화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행복의 연금술사를 찾아 방황하는 우리에게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의 힘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214 _ 절대 동감!!

3. 양육과 노화

어머니, 자궁의 힘은 무엇인가

숭고함과 물신숭배 사이에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어머니는 각별하게 자리매김된다...아이에게 엄마는 절대적인 의존의 대상이요 존재의 기반이다 219

인간의 성장과 모성의 역할

진짜 늬들 엄마 이날까지 게으름 한번 안 피우고 열심히 살았어. 안 웃고 싶은 날도 웃으려고 애쓰고, 아픈 날도 안 아픈 척 이 악물고 참으면서 내 할 도리, 의무, 충실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았어 221

아들과의 관계, 그 애증

모권과 자궁가족

모권이 강했던 것은 분명하다....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모권이지 여권은 아니라는 것이 여성학자들의 해석이다. ‘어머니’가 아닌 ‘여성’으로서 가정이나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권한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시집에 아들을 낳아 그 핏줄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하기 시작하면서 권력이 생긴다. 그리고 아들의 성장과 함께 그 권력은 점점 더 커지고, 며누리가 들어오면서 배가 된다. 따라서 남편이 없는 과부보다 아들이 없는 어미가 더 가련했다. 여성학에서는 이를 가리켜 ‘자궁가족’이라고 하는데, 시집이라는 ‘타지’에서 자신의 존재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아들과의 밀착된 관계를 강화하고 며느리까지도 그 권한의 자장 속으로 흡수한다.

뿌리깊게 지속되어 온 고부 갈등의 정체는 바로 그러한 전통 가부장제의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며느리의 입장에서 남편은 배우자인 자기보다도 시어머니와 강한 유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 두터운 막을 뚫고 들어가서 독자적인 부부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채택되는 전략은 자기 나름의 자궁가족을 확보하는 것이다. 즉, 아들을 낳아 ‘여가장’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기약하면서 오늘의 설움을 참을 수 있다. 남편과 아내의 수평적인 관계보다는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수직적인 관계가 확고한 가족구조에서는 고부 간에 긴장과 억압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아들 하나 남부럽지 않게 키우는 것이 어머니들의 거의 유일한 소망이 되었던 것도 그러한 권력의 지형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들의 입신양명은 곧 어머니의 자아실현이다. 남편이 무능할수록 그 야망은 더 커진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 227

강박과 무기력의 악순환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 자녀의 장래를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의 노고는 나름대로 열매를 맺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지금은 전혀 엉뚱하게도 오히려 자녀를 무능하고 미성숙한 채로 묶어 두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230

엄마들의 헌신이 극진하면 할수록, 자녀들은 압박감에 시달리며 수동적인 인간으로 퇴화한다 231

체험적 모성과 돌봄 사회

오늘날 모성은 굉장히 도구화돼 있어요. 내가 살 길은 아들이 잘 되는 것밖에는 없으니까. 여자가 당당하고 자기 할 일이 있으면 진짜 아들 딸 차별하지 않고 다 사랑하게 돼요 231

지금 모성은 크게 위협받고 있다. 한편에는 끝없는 허욕에 치여 아이에게 초인적인 능력을 요구하며 심신을 혹사시키는 엄마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막막한 생계의 벼랑에 몰려 아이에게 기본적인 보살핌조차 제대로 해 주지 못하고 심지어 모성을 완전히 포기해 보리는 엄마들이 있다. 왜곡된 사랑의 힘을 거두지 않으면 모-자녀관계의 고통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최소한의 어미노릇을 하기도 버거운 워킹맘들에게 국가와 사회가 관심을 갖고 지원해주지 않으면 인간 재생산의 근간은 더욱 흔들릴 것이다 232

타자 안에서 하나의 신령한 인격을 발견할 때 자존과 공경의 관계가 싹튼다 232

어머니 자신의 생애를 의미화하는 작업도 필요 232

엄마들이 자기 삶을 사랑하지 못했던 지점들이 있어요. ‘나처럼 살지 마라.’ 그 말은 자기 삶에 충만함을 갖지 못했다는 거지요...사회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그렇게 산 엄마들의 삶을 되짚어 보고 인정하고 그 노고를 음미해보지 않았어요. 엄마의 인생을 제대로 조명하지도, 배려하지도 않은 결과 소설속의 엄마는 상처로 푹 패인 발에 파란 슬리퍼를 신고 추운 거리를 헤매죠 233

생명을 틔우고 그 성장을 돌보는 어머니의 경험은 타자의 아픔과 약함을 어루만지는 측은지심의 원천이 될 수 있다 233

아버지, 그 침묵이 말하는 것

아버지됨의 어려움

집안에 자리가 없는 가장

근대 이전의 대다수 사회에서 아버지는 가정에서 분명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상징적인 권력에서든 실질적인 역할에서든 부권은 확고했다. 그런데 산업 사회로 접어들어 삶터와 일터가 분리되면서 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 바깥에서 보내게 되었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없고, 그와 따스한 관계를 맺기도 어렵다. ‘훌륭한 아버지 = 훌륭한 직장인’이라는 등식 속에서 일터에서 열심히 일해 돈을 잘 벌어오는 능력만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지난 백 여 년 이상 극도의 혼란과 고도의 압축성장을 거치는 동안 가정에서 아버지의 존재감은 더욱 희박해졌다...고난의 시대가 지나고 산업화의 화려한 성공신화를 써나갈 때는, 아버지들이 온통 일에 얽매여 있어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집안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분명했다.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그리고 일종의 슈퍼에고로서 위엄이 있었다....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경제가 주춤하게 되면서 아버지들의 존립 기반은 결정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IMF 금융위기 이후 그리고 최근의 글로벌 경제난을 겪으면서 아버지들은 다시 한번 패배자의 자리에 몰리게 되었다. 나라를 잃고 혼란했을 시대만 하더라도 그나마 가부장적인 문화가 존속하고 있어서 그 권위가 가까스로 보존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가냘픈 어깨에 풀이 죽은 뒷모습만 어렴풋이 비칠 뿐이다. 대량실직의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고개 숙인 남자들이 우두커니 서 있다. ‘부자 아빠’가 아니면 ‘가난한 아빠’로 이분화되는 현실, 살아남기조차 점점 버거워지는 혹독한 경쟁사회에서 대다수 아버지들은 도태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가족을 위해 온 몸을 바쳐서 일했는데, 일터에서 설자리를 잃게 되면 자신의 존재가치는 전면적으로 부정되기 때문이다. 돈 버는 기계로 마모되는 동안, 가족관계는 점점 불편하고 어색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와 정서적 관계의 기초를 놓아야 할 30~40대 초반에 야근과 출장이 가장 많다...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아버지는 어느 새 손님이 되어 있고, 애완견보다도 대접 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하기도 한다. 무기력함, 쓸쓸함, 초라함, 소외, 냉담...언제부터인가 아버지들을 묘사하는 수사는 그런 음울한 단어들로 채색되었다 239

신해철의 ‘아버지와 나’..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239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비좁다. 힘없는 독재자요, 나약한 직장인일 뿐이다 240 _ 남편을 구해내야 한다. 그를 사랑한다면 이런 초라한 아버지가 되어가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아버지는 무의미하게 해체되어간다. 예전에는 아버지의 부재가 일종의 허전함 내지 상실감으로 체감되었다면, 이제는 그 부재 자체가 아예 의식되지 않거나 오히려 홀가분하게 여겨지는 듯하다 240

자녀교육을 뒷바라지하느라 힘든 노동을 감수하는 노고에 감사하기는 커녕, 가정에서 오히려 낯설고 불편한 존재가 되는 것은 얼마나 억울한가 240

경제적인 여력이 있고 집의 평수가 넓어도 아버지의 방이 따로 있는 집은 거의 없다. 집에 와서 혼자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이다 240 _ 음...서재, 남편 방으로 얼른 내줘야겠다.

많은 아버지들이 가족을 위해 스스로를 도구화시킨다. 관계맺기와 소통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241

조폭에게도 애틋한 가족애가 있나니

가족을 위해 목숨 걸고 뛰어다니건만 돌아오는 것은 냉소와 짜증이다. 자상한 모습으로 다가가려 해도 항상 어긋나고 겉돌 뿐이다 244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어도

자기 앞에서는 가족들이 한 번도 그런 표정을 지은 적이 없다. 자기가 없이도, 아니 자기가 없기 때문에 저렇게 행복하구나 246

행복경제학을 연구하는 조승헌 박사, 한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 남성들의 행복 그래프는 40대 초중반에 바닥을 치는데, 그 시기에 자신이 목표로 세웠던 경제력이나 지위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가장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른바 선진국의 남성들은 그 나이가 지나면서 성공과 출세에 대한 집착을 서서히 거두고 행복의 새로운 출구를 모색한다. 가족, 취미, 종교 같은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사십대 초중반에 최저점으로 내려온 행복의 곡선이 생애 막판까지 거의 그대로 최저 수준을 유지한다고 한다. 사회적인 성취 이외에 대안적인 행복의 원천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장들은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 고초를 감내하지만, 설령 그렇게 해서 자녀들이 어떤 목표를 이루었다 해도 아버지 자신의 행복감은 증진되기 어려운 듯하다.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닫혀있는 마음, 막혀 있는 말길을 열기에는 벽이 너무 높고 두꺼워진 것이다. 평소 한국의 아버지들은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47 _ 그러니까 지금 내 프로젝트의 부제가 ‘내 남편 구하기’ 쯤 되는 건가?

아버지는 저절로 되지 않는다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점점 힘들게 느껴지는 세상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 하나만으로도 버거운데, 집안에서의 역할까지 요구된다.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라 하고 가족들과 친밀한 대화도 나누라 한다 247 _ 만약 가장이 가족중 유일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상황이라면, 다른 가족들이 가장의 부담을 덜어줄 의지도 능력도 없는 상황이라면 그야말로 심각한 문제가 된다. 몸의 건강을 위한 운동을 남이 대신해줄 수 없는 것처럼 마음의 건강을 위한 ‘관계활동’ 역시 위임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배분한 자원을 확보할 수가 없다니 이 얼마나 안스러운 상황인가.

만약 우리 가족의 현실이 이와 같다면 가족들은 가장에게 이에 합당한 예우를 해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때도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예우의 방식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고생하는 아버지를 대접한다고 그를 ‘독재자’로 만들어선 안 된다. 물론 그에 대한 존경에서 비롯된 자발적인 복종이라면야 문제될 것 없겠지만, 단지 ‘돈벌이’에 대한 예우 차원으로 ‘복종하는 척’하는 것은 오히려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 수 있다. 생계에 밀려 가정사에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는 그에게 가정사의 전권을 휘두르도록 한다는 것은 가족 모두에게 너무나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그에 합당한 예우란 대체 어떤 것일까?

가정이라는 민주 공동체에서 1/n의 존재감을 지킬 수 있도록 적극적인 배려를 해주는 것이다. 먼저 다가가 그에게 말을 걸고, 또 안아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가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돈’과 맞바꾸어도 되지 않을 수 있도록 가족 모두가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려는 노력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방법은 각 가정이 처한 현실의 종류만큼 다양할 것이다.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명심해야 할 것은 ‘아버지’도 인생을 즐길 권리를 갖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누구도 그에게 희생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잉태와 출산 그리고 수유를 통해 모성을 체득하는 어머니와는 달리 남성은 정자만 제공하고도 아버지가 될 수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만이 아버지의 자리를 가까스로 보장한다. 그나마 전통사회에서는 문화가 아버지의 위상은 든든하게 떠받쳐주었다. 존재 자체로 권위를 지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기반이 깨져버린 상황에서 부성은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 아버지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역할과 의미를 창출해가는 것이다. 아버지 노릇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일생에서 그것은 어떤 경험으로 자리매김되는가. 남자들은 자아를 향한 그 질문에 직면하게 되었다 248 ★★★★★★★★★★ _ 부모로서의 역할과 의미를 스스로 창출해야하는 것이 어찌 아버지만의 과제이겠는가? 부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나가야 할 공동의 과제가 아니겠는가? (3부의 주요내용)

‘가족친화적인 기업’ ‘일과 삶의 균형’ 등이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지극히 일부에서 시행되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 충분한 시간을 나눌 수 있도록 회사가 배려를 해주어야 한다...그러한 배려는 아버지 자신은 물론 그 가정과 더 나아가 사회를 위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아이가 어릴 때 몸과 몸이 부대끼면서 두텁게 쌓아 놓은 정서는 이후 튼실하게 관계를 이어가는 데 결정적인 바탕이 된다 249 ★★★★★★

세대 간 소통은 삶의 만남에서

보편적인 소통의 기반 250

문화적 이질화는 공동의 체험이나 활동의 영역이 사라진 데서 비롯된다. 일터와 배움터와 삶터가 제각각 분리된 현대사회에서 아이들은 세상에 관한 지식과 이미지를 교과서나 미디어를 통해 얻는다 250

결국 세대 간의 대화가 메마르게 되는 것은 그 안에 삶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어른은 자신의 내면을 감춘 채 간섭하고 훈계만 하려 한다. 그런 가운데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피상적으로 겉돌거나 상투적인 잔소리로 경직되어 간다 251 _ 잔소리란 ‘과정’이 생략된 결론의 강요가 아닐까? 글이 잔소리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과정’을 공유하는 데 더 정성을 기울여야할지도 모른다.

가끔은 살아가면서 겪는 애환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털어놓아 보자. 아이는 부모가 겪는 삶의 드라마에 조금씩 공감하면서 철이 들어간다. 어려움을 꿋꿋하게 뚫고 나아가는 모습에서 인간으로서의 부모를 발견하고, 또한 거기에 자아를 투영한다. 어른들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함으로써 젊은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다. 어버이의 인생은 자녀들에게 의미있고 재미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 251

주5일제 근무 및 수업이 확대되면서 늘어난 자유 시간의 창조적 활용방안이 다양하게 모색되는 지금, 세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만남의 레퍼토리를 멋지게 구상해 보자. 삶의 중심에서 중심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보자 251 _ 이 역시 3부의 내용!!

함께 있다는 것의 소중함

조정래, <아들과 떠난 여행>, 자신이 아비 노릇을 잘못했구나 하는 자각이 들엇다고 한다. 외아들이라 자칫 응석받이가 될까 염려해 어릴 때부터 조금만 잘못해도 심하게 매질하는 등 너무 엄하게만 키웠고, 부부가 글 쓰는 직업으로 바쁘게 지내면서 아이에게 정성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아이는 사람보다 장난감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아버지는 무서워하기만 했다. 어느 나라 그는 아버지는 자신에게 아무 관심도 없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더 이상 그대로 방치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아버지는 집필계획으로 빡빡한 일정에서 과감하게 며칠을 비워 아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이들이 고등학교 1학년때였다 253

우리는 살아가면서 함께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잊을 때가 많다. 같은 장소에 공존하다는 것, 몸과 몸이 부대끼면서 체온을 나누는 것,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 그냥 느끼는 것, 그 분위기를 공유하는 것 등이 얼마나 고귀하고 감사한 일인지를 망각하는 것이다 253

그 묵직한 정 표시에 나는 가슴이 시리며 글 쓰는 고달픔도 잠시 잊고는 했다 254

공감은 살아갈 힘을 불어넣어 준다. 남루한 마음자리를 보듬으면서 존재에 깊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친밀한 소통으로 재건되는 그 관계에서 아버지는 침묵 속에 감춰 두었던 지혜의 보석들을 하나둘씩 꺼내 건넬 수 있다.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면서 원대한 소망을 그려낼 수 있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그립다 255

중년여성, 갱년을 어떻게 할까

왈순 아지매에서 몸짱 아줌마로

임신과 출산, 육아는 사적인 세계로 은폐되고, 여성의 몸은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만큼만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된 듯하다 257

공공의 영역에서 배제되는 것은 임산부나 육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른바 ‘살림’이라는 것 자체가 뭔가 뒤처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 증거로 광고에서 아줌마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257

몸짱 아줌마...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었다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몸..그녀는 ‘아줌마’의 사회적 이미지를 깨고, “설거지가 쌓이든 말든 하루에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무엇에도 양보 안하는 것이 제 몸매의 비결”이라 당당히 밝혔다 258 _ 만감이 교차하는 멘트. 그게 몸매든 뭐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가 아닐까?

초경에서 폐경까지

결혼 후에 임신하고 출산하고 아이를 키우는 모든 과정 역시 여성에게 엄청난 짐으로 부과된다. 지장이나 학업과 육아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가 가정주부로 ‘들어앉는’ 결단을 내리기도 하는데, 이는 남자들에게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여자들은 그렇게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붓기에 모두 출가시키고 난 이후 허전함(빈둥지 신드롬)도 남자보다 훨씬 심하다 260

아줌마는 힘이 세다. 하지만...

아줌마의 힘 : 호된 시집살이를 견디고, 권위주의적인 남편의 비위를 맞추며,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가계를 꾸리고 자녀교육까지 번듯하게 시키는 과정에서 단련된 강인함 262

빈부나 학력에 상관없이 아줌마들에게 공통점이 한 가지가 있다. 익명의 존재라는 점이다 263

수다, 경험이 이야기될 때

산업사회에서 주부들은 사인화(私人化)되었다. 가정이라는 사적인 영역을 지키면서 허드렛일만 하는 역할로 제한된 것이다. ‘집구석’이라는 표현대로 사회의 중심은 공적 영역에 있고

그 권력은 남자들이 주로 쥐고 있다. 그러나 후기 산업사회로 들어와 주부들이 처함 삶의 자리는 새로운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주부들의 이러한 위상을 갖게 된 것은 물건을 구매하고 생활을 경영하는 경험에서만 생겨날 수 있는 특유의 감각 때문이다. 기업의 제품 개발이나 마케팅에서 주부들의 코드를 무시하면 성공할 수 없다...사소한 경험들을 갈고 다음어 놀라운 작품으로 빚어낸 주부 작가들 또한 국내외에 수없이 많다 265

갱년기는 인생의 갱신기

가부장제사회에서는 여성들은 더 이상 여성으로 인정되지 않는 폐경의 나이가 되어야 인간이 된다는 거지 266

한국에서 나이든 여성들은 서럽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었다가 사교육비라도 보탤 요량으로 다시 직업을 찾으려 하면 마땅히 갈 곳이 없다 267

한국 여자의 일생에서 절정기는 이십대에서 삼십대 초반 정도까지가 아닐까 싶다. 아리따운 아가씨들은 대접을 받는다...그 매력을 자원으로 권력과 재력을 가진 나이 든 남자와 맞장 뜰 수도 있다 267 _ @@

한국 사회에서 아줌마는 섹시함을 지고의 가치로 숭상하는 문화, 그 맹목과 강박을 투사하는 사회적 범주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세련되지 못한 ‘타자’로 싸잡아서 대상화되고, 아줌마들 스스로도 그 덫에 걸려 ‘그래, 나 아줌마다. 어쩔래?’하는 식의 자기 비하와 몰염치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 아가씨들이 아줌마가 되면 지금 아줌마들보다 행복할까? 어쩌면 더 불행해질 수도 있다. 지금 아줌마들이 보냈던 젊은 시절에 비해 훨씬 섹시함이 강조되는 세상에서 외모에 안주해 아무 준비없이 있다가는 초라한 아줌마가 되기 쉽다. 대중매체가 유포하는 상품미학의 허상으로 자아를 치장하다가 자기 나름의 삶의 탄탄한 시나리오를 구성하지 못한 채 나이가 들어버리는 것이다 268

중년의 남성과 마찬가지로 중년의 여성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삶을 아름답게 가꿔갈 자원과 실존의 공간이다 269

중년 남성, 이모작의 갈림길에서

안개 속에 사라지는 이정표

앞이 보이지 않고, 옆으로 비껴갈 수 있는 갓길도 없는 것이 한국 중년의 실존인가 보다 273

신사를 찾습니다

지금 한국인의 생애주기에서 중년은 경제적으로 가장 부담이 많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이런 저런 책임들을 감당하느라 분주하게 살아가다 보면 자기의 건강을 챙기지 못해, 의사로부터 엄중한 경고 또는 느닷없는 중병통보를 받는다. 이러한 부하를 얼마만큼 견디는가는 경제력과 어느정도 관련이 있다. 그 ‘능력’에 따라서 중년의 삶은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게 분포된다. 한편으로 보자면 지금 한국의 중년은 산업화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일제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의 혹독한 시기를 통과한 부모세대의 기반 위에, 이들은 고도 성장기에 자라나거나 사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하면 된다’는 믿음을 구체저긴 경험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그러나 그러한 권력의 이너서클에 들어가 있거나 성공의 신화를 구현한 이들은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더 많은 중년들은 경제위기 속에서 삶의 기반 자체를 잃고 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해 보려 해도 나이 제한에 걸려든다. 그렇게까지 극심한 곤경에 이르지 않았다 해도 피곤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나날을 이어가는 것이 대부분의 중년의 삶이다. 언제 정리해고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 점점 늘어나는 업무에 대한 중압감, 자녀를 남부럽지 않게 뒷바라지해야 한다는 책임감,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초조감...276

감정이 늙기 시작하면?

장유유서의 문화 속에서 나이가 들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헤아릴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대접을 받는 교사 등의 직업군은 정서지수(EQ)가 낮다고 한다 278

한국은 기적같은 경제 성장을 이룩하여 많은 사람들이 큰돈을 벌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훨씬 가혹해졌다. 게다가 초고속으로 급성장하다가 삽시간에 마이너스 성장시대에 돌입한 한국 사회는 지금 일종의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전쟁같은 삶을 영위한다. 돈 몇 푼 손에 넣기 위해 또는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포기한다. 권력관계가 예민하게 의식되면서 경직된 시스템과 문화가 형성된다. 타자를 오로지 경쟁이나 조종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세상에서 감정의 소통은 불가능하다 279

수정하고 결단해야 할 때

상담 심리학자 임경수 교수는 중년의 위기가 불가피한 과정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흔히 중년에서 발생하는 격동과 혼란은 심리적인 원인에서 비롯되기 보다는 개인들이 철저하게 교육받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결과로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중년의 심리경향을 전혀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교육을 통해 초자아를 잘 형성하고 그것으로 적절하게 현실의 자아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중년의 위기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그는 분석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성인이 되는 과정에 대해 제대로 학습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어느 교과과정에서도 중년 이후의 삶을 어떻게 빚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배운 바 없다 281 _ 내 책은 ‘중년이 되는 과정’에 대한 교육적 기능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칼융, 중년기는 ‘인생의 정오’, 40세 전후가 인생의 탈바꿈을 할 수 있는 결정적 전환기 281

발달심리학자 에릭슨...중년에 직면하는 문제의 본질을 ‘생산성 대 정체(generativity vs. stagnagion)'이라는 구도로 설파. 그에 따르면 이 시기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기가 죽고 난 후에도 지속될 그 무엇을 창조하거나 양육해야 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이로움을 끼치는 긍정적인 변화를 꾀함으로써 가능하다.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낸다면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라는 확신과 충만감을 얻게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세계와 피상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삶이 정체되어 버린다 282

소설가 김형경 <천개의 공감>, 생애 초기에 우리가 설정한 삶의 목표는 그 시기의 결핍감이 반영된 것들입니다. 그동안 삶을 추진시킨 에너지 역시 성적 욕망과 공격적인 추동에서 나왔습니다. 그것은 사랑받기 위해, 결핍을 메우기 위해, 질투하고 시기하는 힘에 의해 추진되는 에너지였습니다...이제는 새롭게 형성된 정체성에 맞춰 삶의 목표를 수정해야 합니다. 하던 일을 바꾸라는 게 아닙니다. 그 일을 계속해서 더욱 전문성을 쌓으면서 내면의 목표를 수정하라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사업을 해서 멋진 사옥을 짓는 게 목표였다면, 이제는 그 사업을 통해 어떻게 사회적인 책임을 완수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282 _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남편을 배우자로 선택한 이면에는 나의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젊음이란 어쩌면 ‘결핍을 채우는 시기’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이것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다. 지금까지 내게 부부관계의 가치가 ‘이를 통해 내가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되었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이를 통해 얼마나 많은 공헌을 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다고는 해도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라는 소명을 이루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여전히 부족할지도 모른다. 한 눈 팔 시간이 없다. 그에게 나의 백퍼센트를 던져 보자!!

실존의 의미 충전방식을 근원적으로 리모델링하지 않으면 허욕에 치여 옹색해질 것이다 283

산을 오를 때는 꽃이 보이지 않는다. 정산이 꽃이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르려는 내 의지, 내 체력이 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상에 도달하는 순간, 그 꽃은 져 버린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오르막길만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와 젊은이만 있다. 올라야할 정상만이 있다. 마흔 줄에만 들어서도 곧곧에서 찬밥 신세다. 내리막길에는 안내판도 없다. 진짜 꽃은 홀로 내려오는 하산 길에 피어 있다. 그런데 난감하다. 내리막길에서 발견한 이 꽃, 이 꽃을 누구에게 바치랴 284

쓸모없는 잉여인간이 아니라 아직은 능력있는 직업인으로 자기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 조기 퇴직자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그것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잠깐의 실직이 무의미한 공백이 되지 않도록 하는 완충장치 같은 것이 필요하다. 자기 존중감을 보전하면서 인생의 다음 단계로 이행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 말이다...직장을 잃은 중년들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당장의 사회적 지위에 얽매이지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위신이다 285

직장을 잃은 이들이 자존감을 잃지 않으면서 새로운 진로를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사회에서, 인생 후반부의 존재방식을 다양하게 구상하는 문화적 역량은 한결 풍부해질 수 있다 286 ★★★★_ 사회적 기반이 마련된다면야 더없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건 나의 통제력 밖의 일인지도 모른다. 일단은 개인적인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방법중 하나가 배우자의 꿈에 대한 투자가 아닐까? 현재 우리 사회구조상 남편들이 40대에 겪는 정신적 갈등을 아내들은 30대에 미리 겪는다. 인생 리모델링의 압력을 남자들보다 10년정도 먼저 치르게 된다는 말이다. 만약 남편들이 이때 아내의 꿈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다면 남편들이 뒤늦게 비슷한 위기에 놓일 때쯤이면 아내는 남편에게 포근한 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을만큼 성장해 있을 것이다. 어떤가? 그렇다면 훨씬 마음 편하게 제2의 인생설계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내의 입장에서도 이보다 더 뿌듯한 일이 어디있겠는가? 이렇게 실존의 중심을 잇는 핫라인을 유지하는 부부에게 위기는 둘 사이의 ‘관계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는 고마운 기회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즐거운 인생은 어디에

과거의 출세나 성취에 스스로를 묶어두지 않고 끊임없이 자아를 새롭게 창조하며 살아가는 중년은 멋지다 286

문화의 시대다. 행복의 다양한 시나리오가 요구된다. 우리 사회가 비정하고 잔혹해지는 까닭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생 목표가 몇몇 한정된 자원의 획득으로 집중되어 제로섬 게임만 하기 때문이다. 삶의 보람을 발견하고 재미를 창출하는 다양한 영역들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성공과 위신에 대한 압박에서 그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다 288

알량한 권력에 비굴하게 기대지 않고 자존의 힘을 넉넉하게 세울 수 있는 남자들이 많아질수록 사회의 격조는 높아진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자기의 삶을 즐겁게 꾸려가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89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290

노년, 無를 향한 정진

사회의 짐이 되어 버린 노인들

노년이 점점 연장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노인들의 삶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293

늙음을 바라보는 시선

근대 이후 사람들은 늙음을 감추거나 멀리 하고 싶어 한다 294

노인이 되면 일종의 ‘삶의 시간표’ 혹은 ‘문화적 각본’이 갑자기 ‘증발’해 버린 채 남은 생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에 대해 매우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297

노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초> 중에서 298

문화적인 창의력과 수용능력은 꾸준한 학습과 연마를 필요로 한다. 지금의 노인들은 그러한 시간과 잉여를 허락 받지 못한 채 황혼을 맞이했다 299

자아상의 빈곤은 사회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노년을 궁색하게 만든다. 아니, 현역 시절에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일수록 퇴직 후의 삶을 ‘리셋’하는데 오히려 더 어려움을 겪는다...‘아랫사람’들로부터 대접받는 데만 익숙해져서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스스로 챙기는 데 너무 미숙하고,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에 얽매이는 것에 자괴감마저 느낀다. ‘이래 뵈도 왕년에 내가 00였는데...’라는 아집이 현재의 처지와 인지부조화를 일으킨다 299

내면이 초라한 노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여러 가지 스펙트럼으로 나타난다. 끝없는 노욕으로 권력을 움켜쥐고 사회의 부가가치를 고갈시키거나, 알량한 권위의식으로 가족들에게 계속 군림하다가 끝내 외면당하거나, 알코올 중독 등으로 제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해 거의 부랑자가 되어 시설에 수용되거나,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300 _ 이런 불행한 노년을 맞지 않도록 열심히 준비해야겠다. 나뿐만 아니라 내 남편까지도...

도전과 개척으로 잘 여물어가자

학습의 연장선상에서 노인들의 생애를 정리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엮어내는 작업도 중요할 것 303

초라한 퇴장? 우아한 격상!

나이가 들면 인생을 한 폭의 그림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고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그러한 시야가 열린다면 노년은 초라한 퇴장이 아니라 우아한 격상이 될 수도 있다 305

소설가 박완서는 나이 일흔을 넘기면서 늙어가는 것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고 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나날이 새롭게 열리면서 어떤 고귀한 경지에 이르게 되어 황홀한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인생의 가혹함과 축제의 절정을 모두 겪은 뒤 지나온 날들에 얽힌 영욕의 파노라마를 회고하면서 체득하는 혜안, 생의 막바지 길목에서 뭇 욕심들을 홀연히 떨쳐 버리는 마음자리에서 은총처럼 임재하는 깨달음이라고 했다. 물론 이것은 평생 치열한 고뇌와 각고의 언어로 정신세계를 수련해 온 작가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305

죽음이 말을 걸어올 때

살아가는 형편과 처지로 보아서 결코 즐거울 수 없는데 저토록 행복해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308

일상 속에 매몰되어 있고 있던 자신에 대해 깊이 성찰하기 시작한다 308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308

3. ‘내가 저자라면’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남녀노소의 생애 스펙트럼을 펼쳐 보임으로써 독자들이 다른 세대나 이성의 경험세계에 비추어 자신의 실존을 바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건강한 가족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명분하에 남편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지만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엄마, 아내, 그리고 여자’로서의 내 입장에 매몰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철저히 나의 입장에서 관계를 고찰해보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족의 주 구성원인 남편과 아이들의 입장이 간과된다면 공들여 가족네비게이션을 만드는 의미가 반감된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찾아 읽은 책이 <생애의 발견>이었다.

리뷰를 하면서 단순히 ‘읽는 것’과 ‘정리하는 것’는 전혀 다른 체험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머릿속에서 떠돌기만 할 뿐 좀처럼 말로 형상화되지 못하던 개념들에게 엉성하나마 제짝을 찾아 줄 수 있었다는 것이 리뷰를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수확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경우, 서두에 밝혔듯이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 단순히 가정내에서의 파워게임에서 남편을 이겨먹어 보겠다는 치졸한 의도를 넘어서는 일임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리뷰를 마치고 다시한번 내용을 훑어보면서 핵심적인 부분을 추려보았다.

삼십대에는 지위나 연봉이나 성취로 환원되지 않는 ‘나’, 그 자체를 만나야 한다 110

낭만적인 관계의 초기 단계에서는 상대방으로부터 매력을 끌기 위해 어떤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공통된 일이다. 특히 에고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나를 특별한 존재로 느끼게 해주고, 나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줄 사람’이라고 여기는 상대방을 유혹해 옆에 두기 위해서는 그것이 필요하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사람의 모습을 연기할테니, 당신은 내가 원하는 사람의 모습을 연기해 줘.” 말로는 하지 않지만 이것이 서로간의 무의식적인 동의이다. 하지만 어떤 모습을 연기하는 것은 힘든 일이며, 따라서 그 모습은 무기한 유지될 수 없다 129 _ 결혼당시 내가 연기하고 싶었던 인격체는 그야말로 ‘조신하고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최고의 가정을 만들기 위해선 나부터 최고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이미지에 맞지 않는 내 모습을 철저히 부정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도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는 모험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는 ‘좋은’ 나를 선별해내기 위한 탐색의 과정일 뿐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완벽한’ 나에게 그보다 먼저 싫증을 낸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내가 만든 시나리오속의 배역을 위해 스스로 폐기를 결심했던 나의 이면들이 너무나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그것들은 내 안의 어딘가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그에게 들키지 않게 이 그림자들을 하나둘씩 꺼내보는 것만이 내 삶의 유일한 즐거움이 되어버렸던 거다. 그와의 관계는 점점 매말라갔다. 자꾸만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온전한 나를 받아줄 수 없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변명하면서...

나중에 알았다. 나를 절반만 사랑한 건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음을.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어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시도한 ‘커밍아웃’에 대한 그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너 그런 사람인 거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거든. 내가 사랑한 건 그런 모습까지 다 포함한 너야. 아직도 몰랐단 말이니? 힘들어할 때 말해주려고 했는데 네가 자존심 상해할까봐 참았던 거야. 이제 편하게 살자.’ 허무했다. 그동안의 내 마음고생은 다 무엇이란 말이냐...그러나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제라도 사랑이란 두 사람이 모두 자기 실존의 가장 중심부와 교섭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느니 말이다. 인간의 실체가 이 중심체험에 있으며, 여기에만 생명감이 있고 사랑의 터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연애 시절의 낭만적 열정이 자연스럽게 식어가는 과정에서 그 공백을 새로운 ‘의미’와 ‘재미’로 채워나가는 능력이 요구된다. 초고속 압축성장의 환경에서 외형적인 성취에만 매진해온 한국인들은 마음의 힘으로 삶을 디자인하는 감각을 많이 잃어버렸다. 결혼생활의 어려움은 거시적으로 보아 그러한 사회적 결손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191 ★★★★_ 결혼의 새로운 ‘재미’와 ‘의미’를 찾아내려는 시도,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자질을 제시하는 것이 내 책의 주제가 될 것이다.

가정, 학교, 지역 어디에서도 가족을 이뤄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와 거기에 필요한 자질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결혼에 대한 환상적인 이미지만 가득 부풀리는 문화의 폐해가 개개인의 불행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뒤집어보면 부부관계와 가족은 생의 보람을 일구면서 문화를 가꾸어가는 거점이 될 수 있다. 앤소니 기든스는 핵가족이 ‘상호인정에 기반한 소통의 잠재력이 자라나는 곳’으로서 일상생활의 민주화를 구현하는 장소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 가치는 단지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모든 영역에서 소통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감성지수나 사회적 지능이 강조되고 있다.(‘짝짓기 지능’이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가족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유능한 사람이 되는 시대다 191 ★★★★★★★★★★★★★★★★★★★★★★★★★ _ 내가 하고 싶은 말 종합 선물세트!!!

사소한 일에 정성을 다하고 너그러움으로 상대방을 품어주는 그릇이 없으면 늘 어긋나고 끊임없이 부딪히게 되어 있다. 그 함정들을 조심스레 살피면서 원숙한 파트너로 동행하는 그 자체로 큰 수행이라 할 수 있다 192 _ 행복한 결혼을 일구기 위해 필요한 자질!

감정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랑에 대한 갈구, 그것은 실존의 결핍을 알려주는 신호일 수 있다. 새로운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충동은 사람을 온전히 ‘목적’으로 대하고 나 또한 그렇게 대접받고 싶은 갈망의 폭발이다. 타인과 온전히 하나가 되어 활활 불타오르고 싶다는 생명의 몸부림이다. 하여 그것은 구태의연하고 천박해진 삶, 도대체 살맛나지 않는 세상에 대한 항거일지도 모른다. 문제의 본질은 내 안에 있다. 변덕스러운 감정과 불확실한 타인에게 의지하기보다는,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213 ★★★★★★★★★★★ _ 정확한 진단!!

자기배반의 덫에 걸려들지 않고 삶의 절정을 맛볼 수는 없을까? 파멸의 위험을 떠안지 않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스릴은 가능할까? 외도의 유혹은 희박한 존재감에 대한 각성일 수 있다. 불륜의 번민은 자신을 깊이 알아가면서 삶을 크게 배우는 공부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바깥의 길은 다시 안으로 향한다. 사랑의 본거지에 이르는 여정이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에서 ‘쾌락’과 구별되는 ‘기쁨’을 환기시키면서, 그 핵심으로 ‘내적 탄생’을 역설했다. 매순간 다시 태어나면서 언제나 살아 있다는 느낌, 삶에 스며드는 희열과 자아의 신화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행복의 연금술사를 찾아 방황하는 우리에게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의 힘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214 _ 절대 동감!!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비좁다. 힘없는 독재자요, 나약한 직장인일 뿐이다 240 _ 남편을 구해내야 한다. 그를 사랑한다면 이런 초라한 아버지가 되어가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점점 힘들게 느껴지는 세상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 하나만으로도 버거운데, 집안에서의 역할까지 요구된다.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라 하고 가족들과 친밀한 대화도 나누라 한다 247 _ 만약 가장이 가족중 유일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상황이라면, 다른 가족들이 가장의 부담을 덜어줄 의지도 능력도 없는 상황이라면 그야말로 심각한 문제가 된다. 몸의 건강을 위한 운동을 남이 대신해줄 수 없는 것처럼 마음의 건강을 위한 ‘관계활동’ 역시 위임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배분할 자원을 확보할 수가 없다니 이 얼마나 안스러운 상황인가.

만약 우리 가족의 현실이 이와 같다면 가족들은 가장에게 이에 합당한 예우를 해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때도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예우의 방식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고생하는 아버지를 대접한다고 그를 ‘독재자’로 만들어선 안 된다. 물론 그에 대한 존경에서 비롯된 자발적인 복종이라면야 문제될 것 없겠지만, 단지 ‘돈벌이’에 대한 예우 차원으로 ‘복종하는 척’하는 것은 오히려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 수 있다. 생계에 밀려 가정사에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는 그에게 가정사의 전권을 휘두르도록 한다는 것은 가족 모두에게 너무나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에 합당한 예우란 대체 어떤 것일까?

가정이라는 민주 공동체에서 1/n의 존재감을 지킬 수 있도록 적극적인 배려를 해주는 것이다. 먼저 다가가 그에게 말을 걸고, 또 안아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가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돈’과 맞바꾸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가족 모두가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려는 노력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방법은 각 가정이 처한 현실의 종류만큼 다양할 것이다.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명심해야 할 것은 ‘아버지’도 인생을 즐길 권리를 갖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누구도 그에게 희생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잉태와 출산 그리고 수유를 통해 모성을 체득하는 어머니와는 달리 남성은 정자만 제공하고도 아버지가 될 수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만이 아버지의 자리를 가까스로 보장한다. 그나마 전통사회에서는 문화가 아버지의 위상은 든든하게 떠받쳐주었다. 존재 자체로 권위를 지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기반이 깨져버린 상황에서 부성은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 아버지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역할과 의미를 창출해가는 것이다. 아버지 노릇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일생에서 그것은 어떤 경험으로 자리매김되는가. 남자들은 자아를 향한 그 질문에 직면하게 되었다 248 ★★★★★★★★★★ _ 부모로서의 역할과 의미를 스스로 창출해야하는 것이 어찌 아버지만의 과제이겠는가? 부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나가야 할 공동의 과제가 아니겠는가? (3부의 주요내용)

상담 심리학자 임경수 교수는 중년의 위기가 불가피한 과정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흔히 중년에서 발생하는 격동과 혼란은 심리적인 원인에서 비롯되기 보다는 개인들이 철저하게 교육받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결과로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중년의 심리경향을 전혀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교육을 통해 초자아를 잘 형성하고 그것으로 적절하게 현실의 자아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중년의 위기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그는 분석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성인이 되는 과정에 대해 제대로 학습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어느 교과과정에서도 중년 이후의 삶을 어떻게 빚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배운 바 없다 281 _ 내 책은 ‘중년이 되는 과정’에 대한 교육적 기능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직장을 잃은 이들이 자존감을 잃지 않으면서 새로운 진로를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사회에서, 인생 후반부의 존재방식을 다양하게 구상하는 문화적 역량은 한결 풍부해질 수 있다 286 ★★★★_ 사회적 기반이 마련된다면야 더없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건 나의 통제력 밖의 일인지도 모른다. 일단은 개인적인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방법중 하나가 배우자의 꿈에 대한 투자가 아닐까? 현재 우리 사회구조상 남편들이 40대에 겪는 정신적 갈등을 아내들은 30대에 미리 겪는다. 인생 리모델링의 압력을 남자들보다 10년정도 먼저 치르게 된다는 말이다. 만약 남편들이 이때 아내의 꿈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다면 남편들이 뒤늦게 비슷한 위기에 놓일 때쯤이면 아내는 남편에게 포근한 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을만큼 성장해 있을 것이다. 어떤가? 그렇다면 훨씬 마음 편하게 제2의 인생설계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내의 입장에서도 이보다 더 뿌듯한 일이 어디있겠는가? 이렇게 실존의 중심을 잇는 핫라인을 유지하는 부부에게 위기는 둘 사이의 ‘관계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는 고마운 기회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IP *.53.82.33

프로필 이미지
우성
2011.10.09 16:13:43 *.220.23.66

 오늘,  의미없이 지나는 하루가 될 뻔 했는데,
 너의 리뷰가 멋진 의미를 선물해 주는구나..
 묙!!   따봉!!! emoticonemoticon
프로필 이미지
미옥
2011.10.10 07:33:20 *.53.82.33
달콤한 칭찬, 감사합니다. ^^
말도 못하게 불안하담서도 도저히 컴을 놓을 수가 없는 건 아마도
이런 순간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빠, 다시 한번 고마워요~!!  emoticon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972 25th Review - 필살기 [1] 사샤 2011.10.16 2472
2971 25. 구본형의 필살기, 구본형, 다산라이프 강훈 2011.10.16 2685
2970 64.<결혼해도 괜찮아> 엘리자베스 길버트 박미옥 2011.10.14 2989
2969 63.<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엘리자베스 길버트 [2] 박미옥 2011.10.12 3220
2968 24th Review - 강점혁명 file 사샤 2011.10.10 3231
2967 24.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 강훈 2011.10.10 2550
2966 24. 위대한 나의 발견 * 강점혁명 file 미선 2011.10.09 2742
2965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 - 마커스 버킹엄 루미 2011.10.09 3229
2964 리뷰 No.24 -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 file 유재경 2011.10.09 5084
2963 [리뷰] 강점혁명_행복한 인생 양경수 2011.10.09 4124
2962 24.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 file [2] 미나 2011.10.09 4274
» 62.<생애의 발견> 김찬호 [2] 박미옥 2011.10.07 5145
2960 [북리뷰11] <우리는 왜 사랑에 빠지는가> 헬렌 피셔, 2004 [2] [1] 2011.10.07 5589
2959 [북리뷰10]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엘리자베스 길버트, 2007 2011.10.06 2725
2958 61.<화> 틱낫한 박미옥 2011.10.05 2955
2957 60.<WISHCRAFT:소원을 이루는 기술> 바버라 셔 박미옥 2011.10.04 3628
2956 23rd Review - How to live (윌리엄 브리지스) file 사샤 2011.10.03 2945
2955 23. 코끼리와 벼룩_찰스 핸디. 생각의 나무 [8] 강훈 2011.10.03 2526
2954 23. 포트폴리오 인생 - 찰스핸디 file [2] 미나 2011.10.03 3078
2953 포트폴리오 인생 - 찰스 핸디 루미 2011.10.03 2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