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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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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4일 11시 24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엘리자베스 길버트

미국 코네티컷 출신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단편소설집 <순례자들>, 장편소설 <엄격한 남자들>,<마지막 미국인>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고, 지난 오년간 <GQ>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아 미국 잡지 대상에 세 번이나 후보로 올랐다.

특히 2006년 3월 발간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세계 40여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고, <뉴욕타임스>, 미국 서적상협회, 아마존 등 탑 베스트셀러로 랭킹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결혼해도 괜찮아>는 매혹적이고 유머러스하며 아프도록 진실한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에서의 삼색 여정’을 다룬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두 번째 이야기에 해당한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어마어마한 성공으로 더없이 안정된 마음으로 행복한 사생활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단다. 두 번째 책인 <결혼해도 괜찮아>를 쓰기 전 작가로서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그때가 인생의 위기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밝히는 그녀. 음..이 부분만은 참으로 부럽고도 부러운 그녀가 아닐 수 없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독자들에게 _ 결혼과 어떻게든 화해하려고 노력한 또 하나의 이야기

다만 그 책을 쓰는 동안 이렇게 사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을 독자들이 용서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다 8

과거에는 내 책을 읽어봐야 몇 명이나 읽겠느냐는 생각으로 늘 글을 써왔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면 대개 힘이 쭉 빠졌지만, 결정적으로 한 가지 사실만큼은 위안이 되었다. 졸작을 써서 망신을 당할지라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10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모른 채 그냥 되는대로 책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일년에 걸쳐 500페이지에 달하는 초고를 완성했다. 하지만 초고가 완성되자마자 왠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 속의 목소리는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누구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확성기를 통해 들리는, 오역된 목소리 같았다. 나는 원고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치워버리고 두 번 다시 들여다보지 않았다. 대신 다시 텃밭으로 나가 생각에 잠긴 채 땅을 파고, 쑤석거리고, 심사숙고했다.

쓰는 법을 잊어버렸던 그 시기, 아니 자연스럽게 쓰는 법을 잊어버렸던 그 시기가 내 인생의 위기는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그것만 제외하면 내 삶은 정말로 행복했기 때문이다. 만족스런 사생활과 작가로서의 성공이 너무도 감사해서 이 문제로 유난을 떨고 싶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심각한 문제임은 분명했다. 이대로 작가로서의 경력이 끝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은 아니지만, 설사 그것이 내 운명이라 해도 솔직히 아직은 때가 아닌 듯했다. 나는 더 많은 시간을 토마토 텃밭에서 보낸 후에야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11 _ 텃밭은 기다리는 장소다. 리즈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저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기만 해도 되는 여유를 쟁취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 그녀가 말한 만족스런 사생활과 작가로서의 성공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내가 자꾸만 조급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할 여유가 없다고 믿기 때문일거다. 이렇게 보낼 시간이면, 그 시간에 차라리 회사에 앉아있으면 몇푼이라도 손에 쥘 수 있을텐데...하는 마음을 지워버릴 수가 없는 거다. 이런 나와는 달리 그녀는 기다리는 것말고는 다른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아니 어쩌면 그 시간엔 기다리는 것 외엔 다른 일에 관여해선 안 된다는 것을 미리 체험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시한번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자신에게. 아직 그 기다림이 다 끝났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어쨌거나 어떤 확신도 없이 상당한 분량의 시간을 책상이라는 텃밭을 지킬 수 있었던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지금 누리는 약간이나마의 안정감과 자신감은 분명 그 시간을 이겨낸 댓가일테니까

결국 수백만 명의 독자들을 만족시키는 책은 죽었다 깨어나도 쓸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이 깨달음은 큰 위안이 되었다 11

우리는 써야만 하는 이야기들, 혹은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을 쓸 뿐이다. 그리고 책이 출판된 후의 일은 내 소관이 아니라는 심정으로 책을 출판할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수많은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내가 써야만 했던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이다 12

결혼이라는 복잡다단한 제도와 어떻게든 화해해보려는 노력을 담은 또 하나의 자전적 이야기다(거기다 사회-역사적 보너스 섹션까지 들어간다!) 책의 주제는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업었다. 단지 한동안 그 안에서 내 목소리를 찾기가 힘들었을 뿐이다. 결국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내 상상 속에서만이라도 책의 예상 독자를 대폭 감소시키는 것이었다 12 _내 책은 길버트 이종세트의 종합본정도가 되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만들어준 일년간의 연구원 수련과 결혼이라는 복잡다단한 제도를 재해석해 내 몸에 꼭 맞는 옷으로 다시 재단해 입는 과정을 담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결혼밖에서 자신을 찾는 여행을 햇다면 나는 틀안에서 여행을 진행했다는 것과, 그녀가 자기 몸에 꼭 맞는 새 옷을 찾아입었다면 나는 갖고 있던 옷을 리폼해서 입으려고 한다는 것 정도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누차 말하지만 어떤 게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내게는 나의 방법이 최선이었다는 믿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제1장 결혼, 불현듯 내 삶에 다시 끼어들다

결혼은 하기는 쉬워도 깨기는 훨씬 힘들다

우리는 필라델피아에 본부를 세우고, 잘 해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본격적인 가정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는 보석을 팔았고, 나는 한 곳에 머무르면서 연구를 병행해야 하는 집필 활동에 돌입했다. 그는 요리를 하고, 나는 잔디를 가꿨다. 가끔씩 둘 중 한 사람이 청소기를 돌렸다. 우리는 말다툼없이 가사를 분담하며 한집에서 사이좋게 살았다. 야심만만했고, 생산적이었으며, 매사 긍정적이었다. 사는 것이 행복했다. 하지만 이렇게 안정된 생활은 절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27 _ 그렇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결혼의 어려움이 등장한다. 결혼의 가장 핵심적인 구성요소인 사람(남자와 여자)는 필연적으로 변화하는 존재다. 그 변화의 요인은 지구상에 생존하는 생물체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하나의 요인에 대한 반응 역시 그에 필적할만큼 다양하다. 그 안에서 안정된 균형점을 이뤄가는 것이 어찌 만만한 일이겠는가?

뜻밖의 방해자, 미국 국토안보부

펠리페, 강제 추방당하다

부끄럽지만 젊은 시절의 나는 의리를 지키기는커녕, 변덕과 경솔한 행동이 주특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신의가 두터운 사람이 되는 일이 내게도 중요해졌으며 나이를 먹을수록 그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40 _ ‘이기적’으로 굴어선 진실로 나를 이롭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의미겠지. 그렇다면 나도 그녀의 깨달음에 마음을 섞고 싶다. 인생에서 가장 큰 약속인 ‘결혼’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것이 내게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행복한 신부가 되기 위한 열 달 동안의 여행

결혼의 기역 자도 모른 채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실수는 이미 저지른 적이 있다 42 _ 그렇다. 그녀가 첫 번째 결혼에 실패했던 건 결혼을 통해 결혼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이번 책을 위해 했던 작업을 이혼 전에 할 수 있었다면 그녀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혼하고 원기를 회복한 후 다시 결혼한 그녀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안도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지친 나를 추스르고, 또 결혼에 대한 진지한 숙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음에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영웅의 죽음>...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선언하는 조지 아우구스투스와 이사벨의 무지함, 그들의 상대적인 무지함을 체계적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였다 42

지금까지 살면서 운명의 장난은 때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심지어 그것을 극복하라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상황에 떠밀려 자신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일을 하다보면, 그것이 최소한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라는 사실을 굳이 대단한 천재가 아니더라도 깨닫기 마련이다 43

어쩌면 다시 한 번 결혼에 뛰어들기 전에 이 시기를 이용해 어떻게든 혼인 제도와 화해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어리둥절하고 성가시고 모순적이면서도 끈질기게 존속해오는 결혼 제도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조금 노력해보는 것도 현명한 일일 것이다 43

스테파니 쿤츠(Stephanie Coontz), 낸시 코트(Nancy Cott), 결혼을 연구한 저명한 역사학자들의 책 44

솔직히 말해서, 이 연구 때문에 여행은 제대로 할 수 없었다. 44

추방 기간 동안 고생스러웠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가뜩이나 이상하고 긴장된 생활은 불확실한 수입으로 인해 더 긴장되고 이상해졌다 44 _ 역시!!!

결혼에 대한 갈등과 편견을 지워나가며 마음에 위안이 되는 결론을 찾아 역사속으로 파고 들었다...지구상의 모든 결혼 풍습을 좀 더 심도 있게 고찰하는 것도 즐겁고 교육적일 테지만, 내게는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다...내게는 마감이 있었고, 시계는 똑딱거렸다...그런 상황이었기에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결혼에 대한 근거없는 개념, 우리 가족사, 내가 가진 여러 불안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일부일처제의 서구 결혼의 역사를 풀어나가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 45 _ 나 역시 시간이 없다. 리즈가 서구 결혼의 역사를 풀어내준 덕분에 훨씬 수월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내 경우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결혼에 대한 근거없는 개념, 우리 가족사를 더 철저히 연구하고, 여기에 우리 사회보다는 ‘사회적으로 진화(?)’된 서구의 결혼을 통해 우리의 나아갈 길에 대한 좀 더 안전한 제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과거의 경험상 뭔가에 대해 더 알게 될수록 그 대상이 덜 무서워졌다 46

행복하면서도,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일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는 신부 46 _ 그랬더람 결혼도 육아도 훨씬 수월했겠지? ^^

제2장 감히 결혼생활이 행복해지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베트남 몽족에게 결혼에 대해 묻다

유목민이자 이야기꾼이며, 전사, 타고난 반순응주의자로 자신을 지배하려는 나라에 끔찍한 해약을 끼친다 51

머나먼 낯선 나라를 방문한 거구의 외국인 여행객에게는 놀림감이 되는 일이 일종의 도리라는 것을 오래전에 터득했기 때문이다. 예의바른 손님으로서 최소한 그 정도는 해야 한다 53

몽족 남편은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친밀한 의논 상대가 될 필요가 없다. 아내가 감정을 다스리도록 조언해주고, 지적으로 아내와 동등해야 하며, 슬플 때 아내를 위로해줄 필요도 없다. 대신 몽족 여자들은 자매, 이모나 고모, 엄마, 할머니 같은 여자들에게 감정적 위안과 응원을 얻는다 55 _ 그들에게 결혼은 일종의 ‘주민등록’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 사회의 룰을 따르겠다는 서약인 것이다. 만약 결혼이라는 등록절차를 거부하면 그들은 사회로부터 사실상의 파문을 당하게 된다.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개인이 사회라는 안전망을 벗어나는 일은 그야말로 자살행위와 같다. 그러니 결혼은 ‘생존’의 다른 이름이다. 그들에겐 보다 나은 ‘생존’을 선택할 여유 따위는 없다.

결혼을 자기 삶의 중심에 두지 않는 몽족

내가 살던 산업화된 서구 사회에서 사람의 인격을 가장 잘 드려내는 요소를 하나만 꼽으라면, 아마 어떤 배우자를 선택했느냐일 것이다. 배우자는 곧 가장 반짝이는 거울이 되어 그 사람의 개성을 세상에 반사한다. 뭐니뭐니해도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은 가장 사적인 문제이고 그 선택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상당히 많은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현대 서구 사회의 평범한 여성에게 언제, 어떻게 남편을 만났고, 왜 남편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묻는다면 십중팔구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그 이야기는 실제 사건에 조심스럽게 살이 덧붙여졌을 뿐 아니라, 그녀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수차례 곱씹고 내면화하고 샅샅이 훑어본 이야기이기도 하다. 설사 상대가 생면부지의 남일지라도, 그 녀는 허심탄회하게 그 이야기를 들려줄 확률이 높다. 사실 나는 “남편을 어떻게 만나셨어요?”라는 질문이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최고라는 것을 오래전에 알게 되었다. 상대의 결혼생활이 천당이든 지옥이든 상관없다. 그 이야기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줄 것이다. 아마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60

세부사항이야 어떻든 간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대 서구 여성들은 온갖 각도에서 자신의 러브스토리를 검토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오랜 세월을 거치며 그녀의 이야기는 훌륭한 대서사시로 다듬어지거나, 씁쓸한 교훈적 이야기로 방부 처리된다 61

특별한 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보다 호감을 느낄 것이고, 죽은 사람을 그리워도 할 것이며, 누군가의 특별한 체취나 웃음소리에 끌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그런 낭만적인 연애가 결혼의 실제적인 이유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63 _ 취미와 직업이 같아야 한다는 강박이 비교적 최근의 경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못할 일도 아니다. 아직도 남아있는 고정관념중 하나인 ‘취미를 직업으로 삼지 마라. 즐거움이 사라질 것이다.’ 처럼 어쩌면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마라. 더 이상 인생에서 사랑의 환상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격언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결혼은 현실적인 것이고, 사랑은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명쾌한 이분법을 담담히 수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정략결혼’은 두 개인의 이익보다는 더 큰 집단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결혼을 말한다 64

좋은 남편도 나쁜 남편도 아니야. 그냥 남편이야.

결혼 생활이 시작할 때보다는,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한 후 결혼 생활이 끝나갈 무렵에 부부가 서로에게 갖는 감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일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우리의 인생을 마법처럼 완벽하게 만들어줄 특별한 누군가가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고(아마 당신이 속한 집단 속에)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언젠가는 상대에게 호감과 애정이 생기리라 기대하면서, 앞으로 오랜 세월을 함께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것이다 67

우리 영감은 좋은 남편도 나쁜 남편도 아니야. 그냥 남편이야. 원래 남편이란 게 그렇잖아 68

행복 추구권은 우리 문화의 트레이트 마크

나는 20세기 말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비슷한 환경에서 태어난 수많은 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내가 특별하다고 믿으며 자랐다. 우리 부모님은 당신 자식들이 다른 아이들과 차별화되는 특출한 재능과 꿈을 가졌다고 믿었다. 나의 ‘나다움’은 언제나 높이 평가받았고, 나아가 언니의 ‘언니다움’이나 친구들의 ‘그들다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다른 사람다움’과 다르게 인식되었다. 분명 부모님은 날 버릇없이 키우지는 않았지만, 내 개인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아울러 내가 개인으로서 만족감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되고, 그 바람이 반영된 삶의 행적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믿었다 69 ★★★★★★★★

종교가 무엇이고, 경제 사정이 어떻든 간에 우리는 최소한 같은 교리를 받아들였다. 역사가 짧으면서도 매우 서구적인 그 교리는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된다. “너는 중요한 사람이다.” 69 ★★★★★★★★

대부분의 전통사회와 마찬가지로 몽족의 교리는 아마도 “너는 중요한 사람이다”가 아닌, “너의 역할이 중요하다”로 요약될 것이다. 그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우리의 인생에는 본분이라는 것이 있다. 남자는 남자만의 본분이 있고, 여자는 여자만의 본분이 있다. 누구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그 일을 잘해냈다면 자신이 좋은 남자 혹은 좋은 여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인생이나 배우자에게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몽족 여자들을 만난 날, 옛 속담 하나가 떠올랐다. “기대를 심으면 실망을 수확하게 되리라” 몽족 할머니는 아내를 미칠 듯이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남편의 의무라고 배우지 않았다. 애초에 미칠 듯히 행복해지는 일이 자신의 본분이라고 배운 적도 없다. 처음부터 그런 기대를 한 적인 없으니 당연히 결혼 생활에 특별히 환멸을 느낄 일도 없다. 할머니의 결혼은 그 역할을 완수했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본분을 다했으며, 결혼의 의미에 부합되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반대로 나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타고난(심지어는 국가적) 권리라고 배웠다. 행복 추구권을 우리 문화의 트레이드 마크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도 그냥 단순한 행복이 아닌 심오한 행복, 심지어는 가슴이 뛸 정도의 행복 말이다. 낭만적 사랑만큼 사람을 날아오를 듯이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나만 해도 결혼은 낭만적 사랑이 무성하게 번성할 수 있는 비옥한 온실이 되어야 한다는 문화적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따라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던 내 첫 결혼의 온실 속에 원대한 기대감을 심고 또 심었던 것이다 70

결혼이라는 배에 용량보다 훨씬 많은 기대를 싣고 있다

우리들이 거의 무한할 정도로 장대하고 무수한 가능성을 갖는 반면, 선택으로 가득찬 우리의 삶에는 또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감정적 불안과 신경 쇠약에 걸리기 쉽다 73

이 문제점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동시에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뭘 선택해야 할지 몰라 겁에 질리거나, 모든 선택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게 될 위험이 있다 73

어떤 상황이든 가능성이 두 개만 되어도 우리 삶에는 자동적으로 불확실성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매일 단순히 두 세 개가 아닌 수십 개의 가능성이 있는 삶을 생각해보라. 현대 사회가 그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많은 신경쇠약증 환자를 배출하는 기계가 돼버렸는지 감이 잡힐 것이다. 그렇게 가능성이 많은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맥이 빠질 수 있다. 혹은 현재의 인생 행로에서 탈선해 처음에 선택하지 않았던 문들로 나가보려고 애쓴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제대로 하겠다고 벼르면서. 아니면 강박적으로 자신과 남을 비교하라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을 늘 타인과 비교하며 그 사람과 같은 길을 갔어야 하지 않았나 남몰래 고민하기도 한다.

그렇게 강박적으로 자신과 남을 비교하다 보면, 당연히 니체가 말했던 ‘Lebensneid', 즉 “삶 전체에 대한 질투”라는 무기력한 증상만 초래한다. 즉 다른 누군가가 나보다 훨씬 운이 좋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그녀와 같은 몸매, 같은 남편, 같은 아이들, 같은 직업만 갖게 된다면 만사가 훨씬 쉽고 즐거워질 것이다.(상담가인 내 친구는 이 증상을 간단히 이렇게 정의했다. “싱글인 사람들은 내심 결혼하고 싶어하고, 결혼한 사람들은 내심 싱글이고 싶어하는 증상이지.”) 자신의 결정에 대한 확신을 얻기가 너무도 힘들다 보니, 누군가의 결정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소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우리를 ’좋은 남자‘ 혹은 ’좋은 여자‘로 만들어주는 보편적인 기준이 없어졌으므로, 인생의 항로를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감정을 헤아리고 탐색해야 한다.

이 모든 선택과 갈망으로 인해 우리 삶에는 이상한 유령이 어른거리게 되었다. 선택받지 못한 다른 가능성들이 그림자 세상에서 우리 주위를 영원히 맴돌며 이렇게 묻는 것이다. “이게 정말로 네가 원하는 거야?” 그리고 이 질문이 우리를 가장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곳이 바로 결혼이다. 극도로 사적인 선택이니만큼 감정적 갈등이 심하기 때문이다 74

자기 앞에 놓인 길이 하나뿐일 때 우리는 대체로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애초에 행복에 대한 기대치가 불가피하게 낮은 신부는 아마도 훗날 실망감에 몸서리칠 확률도 더 낮을 것이다 75

나는 그녀가 실수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친구는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다. 감히 행복을 요구했고, 감히 결혼생활이 행복하기를 요구했다. 그보다 더 큰 욕심이 어디 있겠는가? 76

세상은 내게 최고의 것을 기대하라고 허락해 주었다. 역사상의 그 어떤 여자들에게 허용된 것보다도 더 많은 것들을 삶과 사랑에서 기대하라고 허락해주었다 76 _ 음...

연인이 내 감정의 모든 부분을 마법처럼 동시에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77

행복에 대해 평생 간직해 온 기대를 한 사람의 손에 전부 쏟아붓는 순간부터 결혼은 고역이 된다...이제는 배우자로부터 무려 영감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것도 매일! 자기는 할 수 있어, 해봐!

그러나 내가 과거에 사랑에게 요구했던 것도 바로 그것(영감, 가슴뛰는 행복)이며, 지금 다시 펠리페에게 요구하려고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기쁨과 행복을 모든 면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기대감. 배우자로서의 업무 내역이 서로에게 가장 중요해야 한다는 기대감 77

아마도 나는 낡아서 삐걱거리는 결혼이라는 이상한 배에 원래 용량보다 훨씬 더 많은 기대를 실었던 것 같다 78

제3장 결혼은 수세기 동안 계속 움직인다

강제 추방되는 것보다 결혼이 낫다

결혼은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아서 누구도 그 초상을 또렷하게 그릴 수가 없다 81

이란의 시게(특별결혼), 이는 24시간 동안 연인의 혼인을 허가해 주는 제도로, 하루 동안만 유효하다. 이 허가를 받은 남녀는 마음놓고 사람들 앞에 함께 다닐 수 있으며, 심지어 섹스조차도 합법이다. 그야말로 코란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일시적으로 애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결혼보호제도인 것이다 82 _??

중국의 영혼결혼, 야심만만한 여성 사업가에게 좋은 집안의 시체와 결혼하는 것만큼 자율성을 보장받는 길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로 아내 노릇을 하는 데서 오는 어떤 불편함이나 제약 없이 결혼이 주는 모든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이다 83 ★★★★★_ 이 시대의 기러기 엄마들과 비슷한 마인드가 아닐른지...살짝 공감되는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결혼=아내=섹스=죄악=불결함, 그러므로 결혼하지 말 것 87

기독교에서 결혼 생활은 분명 도덕적 존재의 이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역사적으로 볼 때 기독교는 유대교처럼 결혼을 열렬하고도 일관되게 숭배해오지는 않았다. 최근에 와서는 그렇게 되었지만 처음부터는 아니라는 말이다. 기독교 역사의 초기 천 년간, 교화는 일부일처제나 매춘이나 오십보백보라고 보았다 87

솔직히 내가 도덕적 고뇌에 시달리던 그 시기에 기독교가 오랫동안 결혼을 적대시해왔다는 사실은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비교적 근대인 16세기에 와서도 영국의 한 목사는 “그 악취가 나는 가족의 의무 따위는 집어 치워라!”고 설교했다 88

인간으로서의 존재가 말소된 여성들

초창기 유럽 사회, 결혼은 재산 경영과 사회 질서의 가장 효과적인 형태로 간주되어, 더 큰 공동체 차원의 체계적인 구조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은행과 법, 정부가 아직 불안정하기 짝이 없던 시대에는 결혼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유일한 사업계약이었다.(지금도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의 재정 상에 배우자만큼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없다.)...당시 좋은 배우자와 결혼하는 것은 좋은 대학에 합격하거나, 종신 교수로 임명받거나, 우체국에 취직하는 것과 같았다. 다시 말해,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었다 91 _ 내가 우체국에 취직하는 기분으로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상기시키자!

오늘날 우리가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낭만적인 결혼식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10대 소녀였던 빅토리아 여왕이 레이스가 달린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시대를 초월한 결혼의 패션 트렌드가 탄생된 것이다. 그 전까지 유럽의 일반적인 결혼식날은 평상시와 별로 다를 바 없었다 92

역사학자 낸시 코트가 썼듯이 “결혼은 의무를 처방하고, 특혜를 조제”해주며 시민들에게 분명한 역할과 책임을 분배했다 92

초기 유럽 사회의 결혼(과 이혼)에서 내가 가장 놀랐던 점은 자유분방함이었다. 사람들은 경제적이고 개인적인 이유로 결혼했지만, 또한 경제적이고 개인적 이유로 헤어졌다 93

중세 독일에서는 심지어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법적 결혼이 존재했다. 구송력이 강한 평생 계약인 ‘Muntehe'와 '가벼운 결혼’이라는 말에 해당되는 ‘Friedelehe'가 그것이다. 후자는 결혼에 합의한 두 성인이 지참금이라든지, 상속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보다 부담 없는 계약이다. 이 게약은 언제든 한쪽에 의해 폐기될 수 있었다 94

1215년이 되면서 교회는 영원히 결혼을 장악...비밀스런 결혼은 절대 금하는 바다(바꿔 마하면, 모든 결혼은 반드시 교회에서 행해져야 한다)가 새로운 교리였다...교회에서 새롭게 발표한 엄격한 이혼금지령은 결혼을 종신형으로 만들어버렸다...결국 이런 족쇄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삶을 훨씬 더 힘들게 만들었다. 최소한 남자들은 집 밖에서 연애나 섹스가 허용되었지만, 여자들은 사회적으로 묵인되는 배출구가 없었다. 특히 상류층 여자들은 혼인 서약에 갇혀 남편이 무슨 짓을 하든 감내해야 했다. (농민들은 좀 더 자유롭게 배우자를 선택하거나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에 많은 재산이 걸려 잇는 상류사회에서는 그럴 여지가 없었다.) 유력한 집안의 딸들은 열다섯 살 전후에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로 보내져 마구잡이로 결정된 남편의 영지에서 시들어 죽었다 96

19세기에 와서도 영국의 윌리엄 블랙스톤 판사는 법정에서 ‘일체’개념을 옹호하며 유부녀는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여성의 존재는 보류된다”고 썼다 96

‘일체’라는 것은 두 개인을 합한다는 의미라기보다, 남자의 권력을 두배로 만든다는, 거의 부두교와도 같은 섬뜩한 개념이다 96

결혼은 교회의 강력한 이혼 방지 정책과 결합되어 13세기에 이르러서는 여성을 완전히 매장해 보리는 제도가 되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상류층에서 심했다. 인간으로서의 존재가 철저히 말소된 이 여성들이 얼마나 외로운 삶을 살았을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97

결혼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편견들

“결혼 계약서를 읽고도 결혼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녀는 어떤 결과든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이사도라 던컨의 말도 일 ‘일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97

결혼에 대한 내 반감이 비논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체’의 개념은 수세기 동안 서구 문명에 필요 이상으로 지속되어 왔고, 먼지 쌓인 낡은 법전의 가장자리에 악착같이 매달려 있었다. 아울러 여성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해 보수적 견해와 늘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예를 들어, 1975년 전까지 코네티컷 주의 기혼 여성은 남편의 승인문서 없이 대출을 받거나 응행 계좌를 만드는 일이 불법이었다. 1984년 뉴욕주에서 ‘혼인 강간 면제’라는 역겨운 개념을 뒤엎기 전까지 남편은 아내에게 성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잔인하거나 강압적인 일이라 할지라도. 아내의 몸은 남편 소유이고, 사실상 아내가 곧 남편이기 때문이다 98 _ 헉!

혼인 계약의 “유구한 개념” 즉, “남편과 아내의 신분을 합해 남편에게 지배권을 주는 개념 98

동성 결혼은 결코 결혼제도를 파괴하지 않는다

서방 세계에서 결혼은 새로운 사회적 기준과 정당함의 새로운 개념에 끊임없이 적응하며 매 세기마다 변화를 거듭했다. 사실 장난감 찰흙같은 결혼 제도의 유연함이야말로 우리가 지금까지 이 제도를 고집하는 유일한 이유다. 오늘날 13세기의 결혼 개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03

합법적인 결혼은 난잡한 성생활을 억제하고, 사람들에게 사회적 의무라는 멍에를 씌우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사회 성립에 없어서는 안 될 주춧돌이다. 결혼이 당사자들을 항상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제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것은 다른 문제다. 일반적으로 결혼 제도가 사회 질서를 상당부분 안정시키고, 아이들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07

법적인 혼인 제도에서 벗어난 동거커플이나 한 부모, 심지어 조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경우에도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안정되고 평온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107

동성애자들이 -오랜 세월 사회의 변두리에서 자유분방하게 살며 예술 활동을 해온 그들이 - 그런 사회 주류의 전통에 참여하고 싶어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108

자신만의 생각, 자신만의 시간은 자신만의 바람과 자신만의 사고방식으로 이어졌다. 집의 문이 닫히는 순간, 내 삶은 오로지 내 것이다. 나는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고, 감정의 선장이 될 수 있다. 나만의 낙원을 추구하고, 나만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천국까지 갈 것도 없다. 피츠버그 시내 한복판에서 사랑하는 부인과 함께 살면 그곳이 천국인 것이다(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집안에서 정해준 상대도 아니고, 그저 웃는 모습이 좋아서 내가 직접 선택한 배우자) 110

자유결혼 운동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내 영웅은 1887년경, 캔자스 주에 살았던 릴리언 허먼과 에드윈 워커부부다. 릴리언은 여성 참정권론자이자 유명한 무정부주의자의 딸이었고, 에드윈은 급진적 저널리스트이자 페미니즘 지지자였다...‘자율주의적 결혼’이라고 부르는 의식..각자 혼인 서약을 하고, 이 결합이 절대적인 프라이버시를 갖는다고 선언했다. 에드윈은 어떤 식으로든 아내를 지배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릴리언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릴리언은 한술 더 떠 에드윈에게 영원한 정절을 지키는 맹세도 거부했다. 하지만 “반드시 지킨다고 약속하지는 않겠지만, 언제나 내 양심과 판단력이 지시하는 대로 행동할 권리는 유지하겠다”고 분면하게 선언했다 111

한번 나온 치약은 다시 튜브로 들어갈 수 없다. 일리언과 에드윈이 원했던 것은 당시 사람들이 원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회나 법, 가족의 어떤 간섭에서도 벗어나 자신들이 정한 조건에 따라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원할 때 결혼하고, 원할 때 헤어질 수 있는 자유를 원했다. 결혼 생활에서 서로가 동등하고 공평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장 원했던 것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에 기초해 둘만의 관계를 규정할 수 있는 자유였다 111 ★★★

이혼의 고통은 사랑했던 사람이 원수가 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

사람들이 오로지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우자를 선택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리고 결혼이 ‘제도적’(더 큰 사회의 요구를 바탕으로 하는)이라기 보다 점차 ‘개인주의적’(나의 요구를 바탕으로 하는)이 되면서 이혼율은 계속 높아만 갔다 112

사랑하는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요구한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사랑이 식은 뒤에는 그 배우자와 이혼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주장할 것이다 113

1849년 코네티컷주 법정에서는...단순히 내가 불행하다는 이유만으로 법적으로 이혼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원고의 행복을 영원히 파괴하는 어떤 행동도 결혼이 목적을 무효화한다”라고 판사는 발표했다. 이는 실로 혁신적인 판결이었다. 결혼의 목적을 행복으로 간주하는 일은 유사 이래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결혼학자 바바라 화이트헤드(Barbara Whitehead)가 ‘표현적 이혼’이라고 했던 현상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표현적 이혼이란 단지 사랑이 식었다는 이유로 이혼하는 경우를 말한다.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배우자에게 맞았거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다. 단지 사랑이 변했고, 마음속의 실망감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수단이 이혼이기 때문이다 113

사업계약이었던 결혼이 호감의 징표로 변모함에 따라 이 제도는 시간이 갈수록 약화되었다. 나중에 밝혀졌듯이 사랑에 바탕을 둔 결혼은 사랑만큼이나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114

내가 펠리페를 원하는 이유는 지난 오랜 세월 여자들이 남자를 필요로 했던 이유와는 완전히 다르다. 나는 그가 신체적으로 날 보호해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치안이 잘 되어있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날 먹여살려주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내 생계는 늘 내가 책임졌기 때문이다. 혈족관계를 넓히기 위해서도 아니다. 내게는 좋은 이웃과 이웃들이 많고 나만의 가족도 있기 때문이다. ‘유부녀’라는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다. 우리 문화는 독신 여성도 충분히 존중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엄마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사 아이를 원한다 해도 진보한 과학 기술과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 덕분에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갖고, 혼자서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결혼하려는 것일까? 왜 나는 이 남자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그저 그가 좋고,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즐겁고 편안하며, 내 친구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인생은 때로는 혼자이기에 너무 힘들고 너무 즐겁기” 때문이다 115 _ 앞의 세 가지에는 흔쾌히 동의할 수 있으나 뒤의 두 가지는 음...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다. 우리 문화가 ‘독신여성’을 충분히 존중하는 사회인가? 또 결혼이라는 테두리 바깥의 아이를 맘편히 기울 수 있는 사회인가? 는 글쎄..음....적어도 내 경우는 ‘유부녀’라는 사회적 신분을 얻는 것도 상당히 중요했던 걸로 기억한다. 또 아이만을 목적으로 결혼했던 건 아니었지만 기왕 낳은 아이들이라면 ‘정상적’인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남편이라는 사람이 완전 기대이하라 그를 감당하는 비용이 그를 통해 얻는 사회적 혜택보다 압도적으로 크다는 것이 명백하고, 이 상황이 개선될 여지 또한 없는 상황이라면 굳이 결혼자체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보면, 사회적 압력이라는 것도 못 견딜 만큼 위협적인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그 정도는 그녀를 품고 있는 미국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뭐 그렇게 본다면 나 역시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즐겁고 편안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다. 이건 이리 쉽게 결론 낼 문제는 아니다. 더 곰곰이 생각해보자!!

김새는 일이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좋아진 것은 언제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싫어질 수 있다. 그리고 둘만의 천국은 금세 둘만의 지옥으로 추락한다 115

이혼이 그토록 힘든 것은 이율배반적인 감정 때문이기도 하다. 이혼한 사람들이 전 배우자에게 오로지 슬픔만, 오로지 분노만, 오로지 안도감만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거나 아예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여러 감정들이 종종 불편한 정도로 설익은 모순의 반죽 속에 오랫동안 뒤엉켜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렇기 때문에 전남편에게 화가 나는 동시에 그를 그리워한다. 전 부인이 죽이고 싶은 만큼 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가 걱정된다. 이는 더없이 혼란스러운 일이다. 또한 대개는 이혼을 누구의 탓으로 돌려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다. 내가 지금까지 본 바에 따르면 어떤 이혼이든 양쪽 당사자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책임이 있다(어느 한쪽이 완전한 사이코 패스가 아닌 경우에는). 그러니 결혼이 실패했을 때 당신은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피해자인가 아니면 가해자인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이 둘을 나누는 선은 촘촘하게 맞물려 섞여 있다 116

어쩌면 이혼은 감히 사랑을 믿는 문화, 아니면 감히 사랑을 결혼 같은 중요한 사회 계약과 연결 짓는 문화에서 사는 대가로 우리가 다함께 내야하는 세금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랑과 결혼은 말과 마차처럼 함께 가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말과 마차처럼 함께 가는 것은....사랑과 이혼인지도 모른다 118

첫 번째보다도 훨씬 겸손한 마음으로 재혼할 것이다

오늘날 남녀관계의 진정한 딜레마는 만약 개인적 호감을 바탕으로 동반자를 직접 고르는 사회를 이루고 싶다면, 피할 수 없는 결과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인간의 마음(“참으로 역설적인 신체조직”)은 그야말로 수수께끼이기 때문에 사랑은 우리의 모든 계획과 의도를 위험천만한 도박으로 만들어버린다 118

모든 연인들,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죽고 못 사는 연인일지라도 자신의 의지와 달리 상대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 그것은 진리다 119

제4장 결혼, 낭만적인 사랑의 미혹을 넘어서다

약혼 비자를 기다리며 라오스를 가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아니 평생 처음으로 향수병에 시달렸다. 그러니까 집이 그리운 것이다. 나만의 집, 주소, 작은 공간이 미칠 듯 갖고 싶었다. 창고에 있는 책들을 몽땅 풀어다가 책꽂이에 알파벳순으로 꽂아두고 싶었다. 애완동물도 기르고, 집에서 만든 음식을 먹고, 오랜 친구들도 만나고, 언니네 가족 곁에서 살고 싶었다 127

세상을 휩쓰는 욕망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다. 때로는 그것이 부적절해 보이는 욕망일지라도.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불 보듯 뻔한 재앙에 스스로를 몰아넣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특권이다 130

아름답고, 젊고, ‘영적’인 존재들이야말로 가장 매력적이지 않았던가? 130

마치 자신과 똑같이 생긴 형제들 무리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오렌지색 금붕어처럼 131

사랑의 미혹은 인간 욕망 중 가장 위험한 것

누군가를 원하는 순간, 우리는 수술용 바늘로 그 사람의 살갗에 우리의 행복을 봉합해놓은다. 따라서 그 사람과 조금만 떨어져도 찢기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무슨 수를 써서든 그 욕망의 대상을 손에 놓어 다시는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런 원초적 욕망에 사로잡히면 더 이상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욕망의 하인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132

붓다..그는 평범한 인간일 때도 거칠 것 없는 영적 여정을 떠나기 위해 아내와 자식을 버린 사람이다 132 _ 음...

불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애착을 버리는 여정이고, 결혼은 배우자, 자식, 가정에 대한 본질적인 애착을 불러일으키는 상태다. 득도의 길은 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133

그들은 왜 그렇게 낭만적이고 성적인 결합, 심지어는 안정된 결혼생활까지 적대시했을까? 왜 그렇게 사랑을 거부했을까? 어쩌면 사랑이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예수와 붓다는 지구상에서 사랑과 연민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성인들이 걱정했던 것은 욕망에 수반되는 위험이 사람의 영혼과 정신, 마음의 평정상태에 미치는 영향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우리 모두가 욕망으로 들끓고 있다는 사실이다. 욕망은 우리 감정의 가장 큰 특징이며,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 있다. 아울러 타인들 까지도 134

수많은 인간들을 반으로 갈라놓으며 제우스는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런 감정을 주입했다. 즉 자신이 결코 완전하지 않음을 어렴풋이, 그리고 끊임없이 느끼는 것이다. 그 후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어딘가가 허전하다는-나 자신보다도 더 사랑하는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상실감을 느낀다. 아울러 그 반쪽이 세상 어딘가에서 다른 사람의 형체로 떠돌아다닌다고 느낀다. 또한 열심히 찾아다니면 언젠가 그 사라진 반쪽, 또 다른 영혼을 찾게 되리라고 믿는다. 다른 사람과의 결합을 통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다시는 외롭지 않은 것이다.

이는 친밀감을 갈망하는 인간의 마음을 가장 잘 비유한 이야기다. 1 더하기 1이 언젠가는 여차저차해서 하나가 된다는 이야기.

하지만 아리스토파네스는 이렇게 사랑을 통해 완전해지는 꿈이 불가능하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하나의 중으로서 너무 심하게 찢어진 탓에 단순한 결합만으로는 결코 완전히 복구될 수 없다. 인간이 사지가 여덟 개였을 때의 원래 반쪽들은 너무 멀리 흩어져버려, 어느 누구도 잃어버린 반쪽은 되찾을 수 없다. 성행위를 통한 결합은 일시적으로 완전한 만족감을 주지만, 결국에는 이래저래 다시 혼자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외로움은 게속되고, 인간들은 완벽한 일치를 찾아 계속 엉뚱한 사람과 결혼한다. 가끔씩 진정한 반쪽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지만, 우리가 찾은 것은 그저 또 다른 반쪽을 찾아 헤매던 누군가일 확률이 더 높다. 자신도 완벽한 반쪽을 찾았다고 간절히 믿고 싶어하는 누군가.

그래서 사랑은 미혹되기 시작한다. 미혹은 인간이 갖는 욕망의 가장 위험한 측면이다. 이것은 심리학자들이 소위 ‘침입적 사고’라고 부르는 상태로 이어지는데, 집착하는 대상 외에는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일단 사랑에 미혹되기 시작되면, 그 사람에 대한 환상을 키우는 것 외의 다른 모든 일, 대인 관계, 책임, 섭생, 수면에는 관심이 없어진다. 그 환상은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떠오르고, 계속 반복되어 우리의 진을 빼놓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뇌의 작용까지 변해 마치 마약이나 자극제를 잔뜩 복용한 상태가 된다. 최근에 과학자들이 사랑에 미혹된 사람들의 뇌사진을 찍고 감정기복을 조사한 결과, 그들의 상태가 마약 중독자와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미혹 상태는 중독이고, 중독은 뇌에 상당한 화학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인류학자이자 미혹 전문가인 헬렌 피셔 박사는 사랑에 미혹된 사람들은 마약 중독자처럼 “마약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건강도 해치고, 치욕적이며, 심지어 신체적으로 위험한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136

피셔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힘든 시기를 겪을 때 사랑에 더 쉽게 미혹된다. 감정적으로 불안정할수록 앞뒤 가리지 않고,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랑에 미혹되는 것은 동면 상태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의 감정 면역 체계가 약해지면 동면하던 바이러스가 즉각 공격해오는 것이다 137

마드리드의 버스 터미널 앞에서 스페인 남자와 키스했던 일은 죽을 때까지 내게 짜릿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137

휴가 중에는 절대 결혼하지 마라 137

부부 관계에 위기를 맞는 기혼자들 역시 새로운 연인과의 사랑에 미혹되기 쉽다 137

너무도 불행했고, 자아가 산산조각난 상태였기에 사랑에 미혹되기 딱 좋았고, 홀려도 아주 단단히 홀려버렸다 138

당연한 말이지만, 문제는 이런 미혹 상태가 신기루요 눈속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는 내분비 계통의 속임수라고 한다. 사랑에 미혹되는 것을 꼭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늘 돈을 꿔가기만 하고, 한 직장에서 진득이 일하지 못하는, 사랑의 육촌쯤 된다. 사랑에 미혹된 사람이 바라보는 대상은 연인이 아니다. 생면부자의 남에게 자신의 완성된 꿈을 투사해놓고 잔뜩 흥분한 자기 모습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연인에게 온갖 대단한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기 마련이다 138

물론 연인들이 상대를 너그러운 시선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 연인의 미덕을 과장하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적절한 일이다. 칼 융은 연애가 시작되고 6개월까지는 상대가 누가 됐든 순수하게 투사하는 시기라고 했다. 그러나 사랑에 미혹되면 탈선된 투사를 한다. 미혹에 바탕을 둔 연애에서는 제 정신이 도망가버리고, 끝없는 착각과 근거 없는 관점만 존재한다. 프로이트는 사랑에 미혹된 상태를 한마디로 “상대에 대한 과대평가”라고 정의했다. 괴테는 한술 더 떠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진정으로 만족한다면, 그들이 착각에 빠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라고 말했다 139 _ 근데 대체 뭘 기준으로 사랑과 미혹을 구분한단 말인가?

20대,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 내 전공

제정신으로 하는 진짜 성숙한 사랑, 매해 융자금을 갚고 방과 후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그런 사랑은 미혹이 아닌 애정과 존경에 바탕을 둔다 139 _ 이 아줌마가 뭘 알고나 쓰는 건지가 의심스럽다. 쩝..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무엇인가에 홀려 미친 상태를 ‘자기애적 사랑’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것을 ‘내 20대’라 부르겠다 140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신났던 때는 연애 감정에 휩싸였을 때다. 그런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영웅이자 신화적 존재, 인간을 초월한 불멸의 존재가 된 기분이 든다. 기운이 넘치고, 잠도 필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산소가 되어 폐를 채워준다 140

나는 두 사람이 마약과도 같은 환희를 맛보게 되어서 매우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그 당사자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더욱 기쁘다 140

내게 사랑에 미혹된다는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의미뿐이다. 그것을 꽤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을 파괴한다 141 _ 내 경우에도. 그 미혹은 꼭 사람에 대한 미혹에 한정되지 않는다. 난 무엇인가에 빠지면 대상과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휘발시켜버리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그러니까 그 대상에 ‘환멸’ 비끄무리한 감정을 느낄 때 쯤이면 이미 내 주변은 황무지로 변해 버린지 오래다. 그럼 나는 이중의 고통을 고스란히 감당해 내야하는 현실을 잊기 위해 또 다른 미혹거리를 찾는 것이다. 그야말로 진저리나는 악순환이 아닐 수 없다.

어렸을 때는 사랑에 미혹된 상태의 그 황홀감을 사랑했고, 그래서 습관적으로 사랑에 빠졌다. 여기서 ‘습관’이라 함은 마약 중독자들의 습관과 같은 맥락, 즉 주체할 수 없는 충동을 돌려 말하는 것이다. 나는 어디를 가든 열정적인 사랑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껏 흡입했다 141

찰나적인 연애와 섹스의 유혹이 있을 때마다 “이 선택이 장기적으로 볼 때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이득이 될까?”라는 어른스러운 질문으로 그 모든 유혹을 이겨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성장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은 감정적으로 너무도 복잡한 존재이기에 인생에서 두 번의 사춘기를 겪는다고 했다. 몸이 섹스를 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지는 때가 첫 번째 사춘기요. 마음이 섹스를 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지는 때가 두 번째 사춘기라고 했다 143

나는 사랑에 미혹된 상태가 아니었고, 내가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는 그가 내 인생이 위대한 해방자나 내 삶의 근원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나는 사랑스럽지만 초췌한 이혼녀로, 멜로드라마 같은 연애를 꿈꾸거나 상대에게 터무니없는 기대를 하는 성향을 조심해야 했다 145

서로에게 오로지 가능한 것만 요구했다. 약간의 친절함, 약간의 배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싶은 공동의 욕망 같은 것들이었다 145 _ 그녀를 믿고 싶지만 자꾸만 그녀가 자기변명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녀로선 이렇게까지 진행된 두 번째 사랑을 어떻게든 받아들이고 싶었으리라. 만약 명백한 불행의 그림자를 보았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아마 이 결혼을 감행하지 않았을까? 우리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하나둘씩 극복해나갈 것이다. 아니 익숙해져 갈 것이다. 역시 우리들 대부분이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펠리페에게 어떻게든 날 완벽하게 채워달라는 부담을 준 적이 한 번도 없다. 설사 그가 원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 숱하게 겪고 나니, 이제는 그것이 온전히 내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중요한 진실을 배운 뒤로는 어디까지가 내 영역이고, 어디서부터 다른 사람의 영역이 시작되는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로서는 사리분별을 잃지 않은 친밀함의 한계를 배우기까지 무려 35년이 걸렸다. C.S. 루이스는 그 한계를 멋지게 정의한 바 있다. “내 불행은 아내의 몫이 아닌 온전히 내 몫이요, 아내의 불행은 내 몫이 아닌 온전히 그녀의 몫이라는 것을 우리 부부는 알고 있다.” 다시말해, 때로는 1 더하기 1이 2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45

존 F. 케네디 부류냐, 해리 트루먼 부류냐

요즘 진화학계의 이론에 따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남자가 있다고 한다. 아이를 만드는 남자와 아이를 기르는 남자. 전자는 성관계가 문란하고, 후자는 한 사람만 바라본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아빠냐 망나니냐’이론이다. 진화학적으로 보자면 이 문제는 도덕적으로 I시시비비를 논하기보다, DNA 차원에서 따져 한다. 남자에게 실제로 ‘바소프레신 수용기관 유전자’라는 중요한 화학적 변이 유전자가 있다. 바소프레신 수용기관 유전자를 가진 남자는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섹스 파트너로 오랫동안 한 배우자만 고수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안정된 가정을 꾸려나간다. (이런 남자들을 ‘해리 트루먼 부류’라고 부르자.) 반면 이 바소프레신 수용기관 유전자가 부족한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집적거리고, 바람을 잘 피우며 언제나 성적 변화를 추구한다.(이런 남자들을 ‘존 F. 케네디’ 부류라고 부르자.)

살다 보면 대쪽 같은 정절도 휘청거리게 만드는 ‘상황’이 일어나는 법이다. 어쩌면 우리가 결혼할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그런 상황인지로 모른다. 주체할 수 없는 열정에 휩쓸린 나머지 언젠가 부부간의 유대감마저 끊어버리는 상황. 어떻게 해야 그런 상황을 피해갈 수 있을까?

이 주제에 관해 내가 유일하게 위안을 얻은 책은 거의팽생동안 부부간의 불륜을 연구했던 심리학자 셜리 P. 글래스의 저서였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가 그녀의 화두였다. 다시 말해, 그렇고 착하고 점잖고 심지어 해리 트루먼 같던 사람들이 어쩌다 갑작스런 욕망의 급류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와 가족의 삶을 파괴하는 걸까? 148

글래스는 연구를 통해 사람들의 불륜을 좀 더 파헤쳐보면, 반드시 그 시작점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시작은 처음으로 몰래 외간 여자나 남자와 키스하기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글래스는 남편이나 아내가 새로운 이성 친구를 사귀고, 둘 사이에 아무런 해악도 없는 친밀감이 싹트면서 대부분의 불륜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배우자가 새로운 이성 친구를 사귀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니다. 친구를 사귀는 것은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결혼했다 해도 이성 친구-혹은 동성 친구든-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글래스 박사는 기혼자들이 이성 친구를 사귀는 것은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단서가 붙는다고 했다. 부부 관계의 ‘벽과 창문’이 올바른 자리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래스 박사의 이론에 따르면 건강한 부부 관계는 창문과 벽으로 이뤄져 있다. 창문은 부부가 세상에 공개하는 그들 관계의 한 측면이다. 다시 말해 창문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상호작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구멍이다. 반면 벽은 부부간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지키기 위한 신뢰의 장벽이다.

그런데 이른바 아무런 해악도 없는 우정이 지속되면서, 우리는 결혼 생활 안에 감춰야 할 은밀한 비밀들을 새로운 친구와 터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비밀 -가장 은밀한 욕망과 좌절들-을 털어놓고, 그렇게 털어놓았다는 사실이 기분좋게 느껴진다. 단단한 벽을 세워야 할 곳에 창문을 낸 격이고, 이내 이 새로운 사람에게 심중을 털어놓게 된다. 괜히 배우자의 질투심을 부추기고 싶지 않기에 그 사소한 사실은 배우자에게 비밀로 한다. 이제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아무런 장벽도 없이 빛과 공기가 마음껏 순환되어야 하는 부부 사이에 벽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부부간의 친밀감이라는 구조물 전체가 완전히 재배치된다. 벽이 있던 자리에 대형 전망창이 생기고, 창문이 있던 자리는 마약을 거래하는 창고처럼 죄다 널빤지로 막아버린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륜의 완벽한 청사진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 실정이다 보니 어느 날 새로운 친구가 나쁜 소식을 듣고 울면서 사무실로 들어오면, 어느새 서로 껴안게 되고(그저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에!), 서로의 입술이 부딪치면서 아찔한 깨달음이 찾아온다. 난 이 사람을 사랑하는구나! 난 언제나 이 사람을 사랑했어! 이때는 돌이키기에 너무 늦다. 퓨즈에 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제 결혼 생활이 파탄나고, 배신감에 몸을 떠는 배우자를(당신이 아직도 많이 좋아하는 사람) 앞에 두고 누구에게도 상처를 줄 생각은 없었으며, 일이 이렇게 될 줄을 몰랐다고 흐느끼면서 구구절절 설명하는 일은 시간문제다.

글래스 박사의 말에 따르면 배우자와 이야기해야 할 비밀을 새로운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는 보다 현명하고 정직한 길을 택해야 한다. 집으로 가서 남편이나 아내에게 그 일을 말하는 것이다. 아마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좀 걱정되는 일이 있어. 이번 주에 마크랑 두 번이나 점심을 먹었는데, 그 사람과의 대화가 너무 친밀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예전에는 당신하고만 했던 이야기를 마크에게 하고 있더라고 . 우리도 처음 사귈 때는 그렇게 속마음을 터놓았는데 - 그리고 난 그게 너무 좋았는데 -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는 거 같아서 두려워. 당신하고 그렇게 이야기하던 때가 그리워. 우리가 옛날처럼 다시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151

끝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훗날 적어도 결혼 생활의 창문과 벽을 계속 보존하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했다는 사실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큰 위안이 된다. 또한 이혼이 불가피할지라도 배우자를 배신하는 일만은 피할 수 있는 데, 이것만으로도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151

결혼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이 효과적인 개념을 나는 거의 모르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나는 한때 욕망이란 인간이 손쓸 도리가 없는 토네이도가 우리 집을 강타해서 공중분해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수십 년이 지나도 금실이 좋은 부부들은 그냥 운이 좋다고, 운 좋게도 토네이도를 피해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그들이 토네이도에 대비해서 지하에 함께 대피소를 짓고, 바랆이 거세질 때마다 그 대피소로 피신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152

인간의 마음이 끝없는 욕망으로 가득 차고, 세상에 온갖 유혹과 사른 멋진 대안들이 우글거릴지라도 우리는 사랑에 미혹될 위험을 다스릴 수 있는 총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결혼 후에 발생할 미래의 ‘문제’가 걱정이라면, 그런 문제가 꼭 아무 이유없이 ‘그냥’ 일어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좋다. 문제라는 것은 부주의하게 동네방네 뿌리고 다닌 작은 페트리 접시(세균 배양 용기 -) 속에서 무심코 배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52

여러분에게는 이 모든 사실들이 너무 뻔할 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 152

이런 유용한 정보를 하나도 모른 채 무턱대고 결혼했다는 사실에 가끔씩 등골이 오싹한다 153

친구들 말에 의하면 간호사에게서 그 꼬물꼬물한 젖먹이를 넘겨받는 순간, ‘맙소사, 지금 이사람들이 나더러 이 애를 데리고 집에 가라는 말이야? 난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는데?’라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난다고 한다. 하지만 당연히 병원에서는 엄마에게 아기를 맡기고, 아기를 집으로 데려가게 한다. 모성애라는 것은 다분히 본능적이기 때문이다. 설사 엄마가 육아 경험이 전무하고, 육아라는 힘든 일에 대한 훈련을 전혀 받지 못했어도 자연스럽게 그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아이게 대한 사랑이 가르쳐줄 것이다 153 _ 잠깐!! 여기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초보 엄마가 아이돌보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은 본능이라기 보다는 책임감의 덕분이다. 나 말고는 아무도 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도 그럭저럭 해내게 되게 마련이다. 아마 저자가 ‘본능’이라고 말하는 것은 본래 지니고 있는 행동능력이라기 보다는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말해 모성애를 ‘본능’으로 타고 태어나지 않은 아빠도 부모로서의 기본적인 책임감만 회복한다면 얼마든지 엄마 못지않은 육아를 해낼 수가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나는 이런 책임감을 느끼는 능력이야말로 ‘부모의 가장 기본적인 자격조건’이라고 믿는다. 그게 여자든 남자든 이런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면 부모로서는 실격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당연히 그나 그녀에게 돌아갈 부모로서의 권리따위는 있을 리 없다.

우리는 결혼에 대해서도 그와 똑같은 믿음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두 사람이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한다면, 당연히 친밀감이 싹트고, 결혼 생활도 단지 사랑의 힘만으로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믿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결혼 생활에 무슨 전략이나 도움, 도구, 통찰력은 불필요하다고 믿었다 153 _ ‘사랑’이란 관계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능력이라고 믿는다. 이것도 앞서 말한 육아의 경우와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돌보고 싶다(혹은 돌봐야 한다)는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든 그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보라면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만큼 널려있는 세상이니까.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관계를 건강하게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든 그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적절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겠다고 불평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말할 것이다.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절실함’이 없는 걸 보니, 건강한 관계를 만들고 싶다던 당신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망설여지네요.” 당신이 부모라면, 오밤중에 미친듯이 울어대는 아가야를 진정시키기 위해 한두가지 방법을 써보는 걸로 포기할 수 있겠는가? 관계를 돌보는 것과 아이를 돌보는 것은 기본적으로 같다. 눈물과 땀없이 저절로 자라주지 않는다.

제대로 된 결혼을 위해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다

부부간의 신뢰는 한 번 깨지면, 다시 이어붙이기가 불가능할뿐더러, 설사 가능하다 해도 매우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우리 둘 다 알고 있다.(일단 오염된 강은 다시 정화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오염되지 않도록 하는 편이 훨씬 쉽고 비용도 적게 든다)

결혼계약시 검토할 사항...정절..장래 핵폭탄이 될 우려가 있는 집안일과 가사 노동도 꽤 간단하게 해결되었다...아기 문제..속궁합..이것저것 다 제하고 나니 우리의 결혼에 문제가 될 만한 중대한 요소는 딱 하나였다. 바로 . 그리고 돈에서라면 상의해야 할 문제가 꽤 많았다 155

문제가 없는 부분을 괜히 파헤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다 155_ ok? 다 들쑤시려들지 말고 필요한 부분만 해결하자. 나머지 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거다. 알겠지?

글을 쓰면서 자수성가한 여자로서 나는 언제나 내 생계를 책임졌고, 만나는 남자들까지 먹여 살린 과거가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내게 매우 중요했다 156

내게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은 제멋대로이고 유치한 생각이다. 어쨌거나 청춘 남녀가 아닌, 중년 남녀가 결혼할 때는 돈 문제가 항상 어려운 법이다 157

사랑의 끝을 상상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해냈다. 결혼은 둘만의 연애사가 아닌, 엄격한 규율이 집행되는 사회적, 경제적 계약이기 때문이다 158

사랑에 한껏 취해 있을 때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마음속에 우울함과 분노가 가득하고 상대에 대한 사랑이 식었을 때 이야기하는 것보다 쉽다는 것이다 158

갈매기도 25페센트는 이혼한다

“결혼생활이 불행한 것은 당사자들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에머슨이 썼듯이, 결혼 생활이 행복한 것도 특별히 당사자들의 공은 아니다. 어차피 모든 연애의 시작점은 다 똑같다.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애정과 욕망의 교차점에서 연애가 시작된다. 그러니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이 몇 년 뒤에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163 _ 난 그렇게 생각 안하다. 결혼은 ‘의지’의 문제다. 관계에도 1만시간의 법칙은 정확히 적용된다고 믿는다. 늘 가슴설레고 눈빛이 샤방샤방해지는 그런 감정상태를 지속하는 것이 훌륭한 부부생활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천복을 찾는 길이 어떤 고비도 없이 늘 가슴뛰는 희열만으로 가득차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과 같다. 물론 더 잘 맞고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일단 선택을 하고 난 다음에는 어느정도 ‘오기’와 ‘고집’이 있어야 자신만의 성배를 손에 넣을 수 있다지 않는가?

사랑하기에 그를 보호하고 싶다

<단둘만의 관계 : 미국 결혼의 변천사>...나는 그 보고서에 푹 빠지게 되었다 166

부모님이 이혼한 경우에 자식들도 이혼할 확률이 높다 166

다행스럽게도 룻거 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재혼 부부들은 남은 생애를 해로했다.(갈매기들과 마찬가지로 첫 선택은 잘못되었을지라도, 두 번째 파트너는 훨씬 잘 고른 것이다) 166 _ 이게 과연 ‘선택의 질’과 관련된 문제일까?

완벽한 척하면서 그를 유혹하고 싶지 않다

결혼 복원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항목

내용

교육

고학력 여성일수록 결혼생활이 더 행복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기 일을 하면서 늦은 나이에 결혼한 여성들이야 말로 결혼 생활을 오래할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들이다 169

자녀

어린 자녀를 둔 부부는 장성한 자녀를 두었거나, 자녀가 없는 부부들보다 결혼생활의 ‘환상이 깨질’ 확률이 더 높다 169

동거

결혼전에 동거 했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이혼 확률이 좀 더 높은 것 같다 169

이형배우자

커플 간의 인종, 나이, 종교, 민족성, 문화배경, 직업이 비슷할 수록 이혼 확률도 낮아진다 169

사회적 융화

친구나 가족들과의 관계가 단단한 커플일수록 결혼 생활도 단단해진다 170

남녀평등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보수적이고 제한된 시각을 가진 부부일수록 더 불행하고 유대감도 약했다. 바꿔 말하면, 서로를 동등하게 여기고,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해오던 자질구레한 집안일에도 남편이 참여하는 부부가 더 행복하다는 말이다 170 ★★★★★★★

유혹은 욕망의 하녀일 뿐이다. 유혹은 보는 이의 눈을 속인다. 원래 유혹이 하는 일이 그것이다 173

너울거리는 차이점 위에 균형 잡고 바로 서다

완벽한 보석은 두 번 볼 필요도 없어. 내 눈을 멀게 하니까. 좋은 보석들을 옆에 치워두고, 정말 형편없는 녀석들을 꼼꼼히 살펴봐야 해. 오랫동안 들여다보면서 ‘과연 이게 쓸모가 있을까? 이걸로 뭘 만들 수 있을까?하고 자문해 봐야지. 안 그랬다가는 좋은 보석 한 두 개가 섞인 쓰레기 더미를 사는 값으로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지불하게 되니까.

나는 남녀관계도 그와 같다고 생각해. 사람들은 언제나 상대방의 가장 좋은 면을 보고 사랑에 빠지지. 누군들 안 그러겠어? 상대방의 가장 훌륭한 점을 사랑하는 일은 누구든 할 수 있어. 그건 똑똑한 게 아니야. 진짜 똑똑한 건 상대의 단점도 받아들이는 거야. 파트너의 단점을 솔직하게 바라보면서 ‘이건 그럭저럭 넘길 수 있어. 어떻게 해볼 수 있을거야’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거지. 왜냐하면 좋은 건 없어지지 않거든. 항상 예쁘게 반짝거릴거야. 하지만 그 밑에 있는 쓰레기는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어 176

상대방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 그 사람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는 것만큼 우리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훌륭한 선물은 없다 177

이런 단점들을 다 알고도 나를 계속 사랑해준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행위가운데 가장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178

남녀가 오랫동안 함께 살다보면 서로의 단점을 알게 되지만, 또한 상대방과 나의 존경스럽고 훌륭한 점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178

누군가의 모순-심지어는 어리석음까지도- 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그릇을 넓히는 것은 신성한 일이다. 득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산꼭대기나 수도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식탁에서 매일같이 배우자의 제일 짜증나고 꼴 보기 싫은 단점을 받아들이는 것도 곧 득도다.

그렇다고 해서 배우자가 당신을 학대하거나 무시하거나 경멸하거나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거나 알코올 중독이라거나 바람기가 있는데도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결혼 생활이 이미 악취가 풍기는 슬픔의 무덤이 되어버려다면, 기운을 내서 다시 잘 해보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세상에는 시간이 흐르면 그냥 썩어버리는 결혼도 있는데, 그런 결혼은 반드시 끝내야 한다 179

그러니까 여기서 내가 말하는 ‘참아야 한다’는 상대의 지독한 행동들까지 참아내라는 뜻이 아니다. 평상시에는 좋은 사람이 가끔씩 아주 꼭 보기 싫은 눈엣가시처럼 구는 것을 가능한 한 너그럽게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상대를 용서하는 법을 수련해야 한다. 결국에는 우리도 상대에게 용서받고 싶기 때문이다..집안에서 벌어지는 그런 사소한 용서 역시 도 다른 의미의-조용하면서도 무한한-기적이 아닐까?

나는 일단 눈을 뜬 뒤에는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몸에 경련이 일어난다 180 ★★★ _ 나도...

결국 누군가와 친밀해지면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인 실망감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용서한 겨만이 유일하게 현실적인 해독제인 것 같다 181

누군가와의 완벽한 결합을 갈구하고 원하며 피 흘리는 욕망은 탯줄이 끊긴 배꼽처럼 언제나 우리를 따라다닌다. 그런 우리를 간호해주는 것이 용서다. 용서는 한 치의 틈도 없는 완벽한 융합은 불가능하지만, 우리가 예의를 지키고 친절을 베풀고 피를 너무 많이 흘리지 않도록 조심한다면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181

제5장 여성과 결혼이라는 주제는 사방이 수수께끼다

집집마다 이혼과 맹장염 사연은 하나씩 있는 법!

내가 케오에게 했던 질문들은 대부분 결혼에 관한 것이다. 올해 내 주제가 결혼이니만큼 당연한 일이다 188

‘이혼 같은 것이 없는’ 곳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파보면 반드시 어딘가에 실패한 결혼 이야기가 묻혀 있다. 예외는 없다 192

세상의 모든 결혼은 거대한 사회적 베틀로 짠 천 속의 씨줄과 날줄처럼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195

자기 뜻대로 사는 미혼 여성, ‘적군의 폭탄보다도 더 위험한 존재?’

다 같이 가난할 때는 남자들이 돈을 못 벌어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돈을 잘 버는 부류-젊은 여자들-가 생겨나자, 모든 균형이 깨져버렸다. 마을의 아가씨들은 이제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익숙해졌고, 그로 인해 결혼을 미루기도 한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요즘 젊은 남자들은 결혼을 하고 나면, 아내가 벌어온 돈을 쓰는데 금세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자긍심이 전혀 발달하지 않았기에 술과 도박에 쉽게 빠져든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지켜본 미혼 여성들은 최근에는 아예 결혼하지 않겠노라고 마음을 먹는다 197

어떤 사회든 여성들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발생하는 첫 번째 현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결혼이다. 이는 나라와 민족을 막론한다. 경제적으로 자립한 여성일수록 결혼을 하지 않거나, 해도 늦은 나이에 한다.

이를 사회 붕괴라고 비난하며,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망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여성들이 집을 지키며 가족을 돌보고, 이혼율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평온한 시절을 그리워하는 전통주의자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수세기 동안 많은 여성들은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이혼하지 못한 채 비참한 결혼 생활을 계속했다. 오늘날에도 미국 여성들의 평균 수입은 이혼한 뒤로 30%가 준다. 그러니 과거에는 오죽했을까?...결혼이 평생 지속되는 문화를 이상적으로 생각하지만, 결혼 생활의 지속도가 곧 결혼 생활의 만족도라고 단정짓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198

불륜과 폭력을 제외하고 가난, 파산 빚보다 부부관계를 더 좀먹는 것은 없다 199

케오의 일상으로 들어가 또 하나의 결혼을 보다

마치 강아지의 작은 체구가 자기 삶의 수준이나 야망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이 204

나는 펠리페가 삶은 황소개구리 한 덩이를 또 삼키느니, 차라리 자기 신발을 삶아 먹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착한 마음씨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이 남자는 지구 어디에 떨어져도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거야.’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210

외할머니의 인생에서 가장 확고한 단어는 ‘퍼준다’

외할머니는 언젠가는 독신 여성으로서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므로 반드시 교육을 받아야 했고, 덕분에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다 213

외할머니에게는 당신만의 돈이 있었다. 수세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외할머니의 조상들이 눈 씻고 찾아봐도, 자신만의 돈을 모았던 여자는 찾지 못할 것이다 215 ★★★★

자식을 위해 평생 당신이 소유했던 물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물건을 포기한 일은 우리 외할머니 세대의 모든 여성들(아울러 그 이전의 여성들)이 가족과 남편, 자식을 위해 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가장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부분을 싹둑싹둑 잘라 아낌없이 주었다. 자신의 소유였던 물건들을 다시 본떠 가족을 위한 물건을 만들었다. 정작 본인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다. 저녁 식탁에 가장 마지막으로 앉는 사람도 그들이었고,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 다른 가족들을 위해 썰렁한 부엌을 따뜻하게 데운 것도 그들이었다. 그것만이 그들이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일이었다. 그들의 길잡이이자, 인생의 가장 확고한 원칙이 되어준 단어는 ‘퍼준다’였다 218

외할머니도 분명 자부심과 생기에 넘치고, 자신의 처지를 감사하는 아내이자 어머니였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어떻게 1936년에 행복할 수 있었을까? 2006년에 노이가 행복한 것과 같은 이유다. 즉 자신이 누군가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동반자가 있고, 그 동반자와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 두 사람이 만들어나가는 미래에 확신이 있고,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220

설마 좋은 남자를 만났다고 해서 바로 결혼하고, 아이 낳고, 글 쓰는 일을 그만둘 생각은 아니겠지? 221

완벽한 결혼이라는 판타지에 세뇌된다는 것!

여성과 결혼이라는 이 주제를 조금이라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결혼이 여성들에게는 남성들만큼 큰 혜택을 주지 않는다는, 불쾌하고도 냉정한 사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사실은 내가 지어낸 것도 아니고, 나도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지만, 많은 연구에 의해 입증된 슬픈 진실이다. 반대로 유사 이래 결혼은 언제나 남자들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었다. 보험 통계 도표에 따르면, 남성의 경우 오랫동안 행복하고, 건강하고, 부유하게 살고 싶다는 가정하에서 자신을 위해 내릴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결정은 결혼이다. 기혼 남성들은 미혼 남성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훌륭한 삶을 산다 222

현대의 기혼 여성들은 미혼 여성에 비해 삶의 질이 더 떨어지는 실정이다. 미국의 기혼 여성들은 미혼 여성들보다 수명이 짧고, 돈도 더 적게 벌고, 일에 있어서도 미혼 여성들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 한다. 또한 미혼 여성들보다 건강도 상당히 나쁘고, 우울증에 시달릴 확률도 높으며, 폭력으로 사망할 확률도 높다. 특히 폭력으로 사망하는 경우에는 범인이 주로 남편이다. 이것은 통계적으로 봤을 때 평균적인 여성의 삶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다름 아닌 남편이라는 우울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223

결혼 혜택 불균형...혼인 서약을 통해 남자들은 많은 이득을 얻는 반면, 여자들은 주로 많은 이득을 잃는다는 뜻이다 223 _ 어떻게든 이 균형을 바로 잡지 않고는 결혼생활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더 많이 교육받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늦게 결혼하고, 아이들을 더 적게 낳고, 남편으로부터 가사도움을 더 받는다면 기혼여성의 삶도 나아질 것이다 224

딸이 언젠가 행복한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면, 공부를 끝까지 다 마치고, 가능한 한 결혼을 미루고,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며, 아이들을 너무 많이 낳지 말고, 기꺼이 욕조청소를 해주는 남자를 찾으라고 조언해주어라. 그러면 우리 딸들도 미래의 남편과 비슷하게나마 행복하고 건강하고 부유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224

평생을 갈구하던 인생의 공동 목격자가 되어줄 남자를 찾고 싶은 욕망 225

결혼하고 싶다는 건 곧 누군가에게 선택받고 싶다는 욕망이야. 그녀는 누군가와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것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정말로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결혼식에 대한 욕망이라고 했다. 결혼식은 “내가 영원히 누군가의 선택을 받을 만큼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특히 나 자신에게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하는 공적인 행사이기 때문이다 225 _ 자존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한번 일깨워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결혼 역시 이런 이유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까..

기다림은 곧 감금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신부의 폭정’이라고 이름 붙인 생각의 인질로 살아온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마법을 깨기로 결심했다 227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여성은 성인이거나 바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강렬한 본능 때문에 우리 집안 여자들은 종종 스스로에게 해로운 선택을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일을 위해 자신의 건강이나 시간, 이익을 포기하고, 또 포기한 것이다. 아마도 자신이 특별한 존재이며, 누군가의 선택을 받았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중요한 느낌을 계속 강화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229

남편이 아내보다 더 많이 포기하거나, 육아와 살림에 더 많은 시간을 쏟거나, 전통적으로 여성이 해오던 보살핌의 역할을 더 많이 맡는 가정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집은 정확히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229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의 성향에 대해 두 가지 통설이 있는데, 두 가지 모두 내 성에 차지 않는다. 하나는 여성들에게 유전적으로 남을 돌보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성들이 부당한 가부장 제도에 속아 자신들에게 유전적으로 남을 돌보는 성향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반대되는 두 가지 가설을 여성들의 희생정신을 미화하거나, 병적인 증상으로 치부한다.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여자들은 타의 모범이거나 잘 속은 사람, 성인 혹은 바보인 것이다 230 ★★★·

딸들은 결혼하기 전에 최소한 엄마의 결혼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230

이 아름답고 지적인 신부는 널 위해 모든 걸 포기했어. 그러니까 그 여자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해서 여자를 호강시켜주란 말이야 235 _ 얼마나 호강해야 그 희생을 만회할 수 있을까? 쩝..

20년후, 그 때쯤이면 아이들은 장성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고, 필리스는 집밖에 모르는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삶의 즐거움을 포기하며 믿음직스럽고 훌륭한 가장으로 살아온 채드는 그 대가가 우울증에 빠진 부인, 반항적인 아이들, 축 처진 뱃살, 지지부진한 커리어라는 사실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실제로 1970년대 후반, 미국 전역의 많은 가정이 그 문제로 결혼이 파탄났기 때문이다 235

‘뉴잉글랜드 묘지 신드롬’을 안고 사는 현대 여성들

다방면에서 가족의 기본적인 생계 욕구가 충족되자 마침내 여성들은 사회 부조리, 심지어 감정적 욕구라는 더 세분화된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36

잠깐만, 내가 인생에서 진짜로 원하는 게 뭐지? 우리 딸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게 뭐지? 왜 내가 매일 저녁마다 이 남자를 위해 저녁을 차리는 거지? 만약 나도 밖에서 일하고 싶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남편은 교육을 못 받았지만 내가 공부를 하는 것은 가능할까? 그나저나 왜 내 명의로 통장을 개설하지 못하는 거야? 그리고 꼭 아이를 계속 낳아야 해? 237

언제, 몇 명의 아이를 낳을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인 피임 수단이 생긴 후에야 비로소 여성들은 삶과 결혼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238

오랫동안 엄마가 말없이 의문을 품었던 문제들이 처음으로 공론화된 것이다 238

특히 엄마가 관심을 가진 문제는 여성의 몸과 성적 건강, 그리고 그에 얽힌 위선 행위였다 238

여성의 성도덕은 중시하면서 남성의 성도덕은 따지지 않는 사회는 뒤틀리고 비윤리적이라는 결론이었다 239

커리어는 엄마 존재 자체의 표현이었고, 그 일을 하는 매 순간을 사랑했다 240

엄마는 자신의 일을 커리어로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취미 정도로 생각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삶에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엄마의 그런 취미활동을 반대하지 않았다. 계속 집안일을 하는 한 엄마는 직장에 나갈 수 있었다. 당신 부모님은 가정을 돌볼 뿐 아니라, 작은 농장도 운영했기 때문에 할 일이 무척 많았다. 그런데도 수두 사건이 있기 전까지 엄마는 모든 일을 그럭저럭 해나갔다. 직장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한편, 텃밭도 가꾸고, 살림도 하고, 식사도 차리고, 아이들도 키우고, 염소젖도 짜고, 그러면서도 매일 저녁 다섯시 반이면 퇴근하는 아버지를 위해 저녁에는 늘 집에 있었다 241 _음...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는 안 살고 싶다.

가족과 직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남편의 도움과 격려없이 두 가지 모두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둔 것이다 242

나는 우리 엄마를 포함한 많은 현대 여성들이 가슴에 자신만의 뉴잉글랜드 묘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가족을 위해 포기했던 꿈들이 그 묘지 안에 말없이 묻혀 있는 것이다...그리하여 이 여성들은 새로운 현실에 적응했다.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 애도한 후에 -대부분 내색하지 않고- 계속 살아나갔다 243

실제로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우리 가족의 삶은 훨씬 나아졌다(엄마만 빼고) 244

솔직히 엄마가 꿈을 포기하고, 집에 남아 우리를 돌봐주었을 때 우리는 너무 기뻤다 245

어린 시절 내가 누렸던 엄청난 혜택은 엄마의 희생이라는 유골을 바탕으로 했다 245 ★★★★_ 나 역시도...

사회 보수주의자들이 자식을 위해서는 양쪽 부모가 모두 존재해야 하고, 엄마가 부엌을 지키는 것이 이상적인 가정이라는 식의 타령을 해댈 때 내가 불만스러운 점도 바로그것이다. 그들이 이상적이라고 주장하는 가정환경의 수혜자로서 나도 바로 그런 가정환경 덕분에 내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그들도 그런 가정환경을 만드는 일이 여성들에게 등이 휘어질 정도로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단 한번이라도 인정하기를 바란다. 그런 사회 시스템은 엄마들에게 스스로의 존재가 거의 사라질 정도로 이타적이 되어서 가족을 위한 모범적인 환경을 조성하라고 요구한다. 보수주의자들은 그런 엄마들을 ‘성스럽다’느니 ‘고귀하다’느니 칭찬만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그런 건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다함께 노력해야 할지 고민할 수는 없을까? 여자들이 자신의 영혼 밑바닥까지 벗겨내지 않고서도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건강한 가정이 많아지는 그런 사회 말이다 246 ★★★★★★★★★★★★★★★★★★★★

또 다른 선택, ‘이모 연대’에 합류하다

불혹이 가까운 나이에도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것은 아마도 내가 사랑하고 존경했던 여자들이 엄마라는 멍에 아래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봤기 때문일 것이다 246

결혼 생활의 다른 문제점들을 보며, 과연 이 남자와 내가 육아라는 힘든 일을 진정으로 함께 견뎌낼 준비가 되었는지 의심스러웠다 248

작가라는 일이 점점 더 좋아졌고, 한시도 그 교감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파도>에 나오는 지니처럼 나도 가끔씩 내 안에서 ‘수천개의 능력’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낀다. 나는 그 모두를 끝까지 추적해서 마지막 하나까지 발현시키고 싶다 249 ★★★

나도 일하고 싶었다. 아무 방해없이. 즐겁게 249

아이를 키우는 일이야말로 양가 감정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지. 그렇게 지긋지긋한 동시에 가슴 뿌듯한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가끔 말문이 막혀 250

아이가 셋이나 있는데도 화려한 커리어를 계속 유지하고, 가끔씩 해외 출장에 아이들을 데려가는 또 다른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한번 해봐요.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엄마가 되었으니 넌 더 이상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모든 세력과 맞서 싸우면 그만이에요.” 250

엄마 역할을 면제받음으로써 나는 내가 되고자 했던 사람이 될 수 있었다 252

출산과 육아는 너무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기에 엄마들은 그 힘든 과업에 파묻혀버린다. 그나마 죽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다. 따라서 여분의 여성, 고갈되지 않은 에너지를 가지고 곁에 있어줄 여성, 혼란한 상황에 뛰어들어 종족을 지원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여성들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254

아이가 없는 여성들은 젊을 때는 자유롭고 부유하고 행복할지라도, 노년이 되면 결국 자식이 없는 것을 후회하며 혼자 외롭고 쓸쓸하게 죽어간다는 통념이다 254

오해를 바로 잡자면, 그 말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증거는 전혀 없다. 최근 미국의 양로원에서 자식이 있는 할머니들과 자식이 없는 할머니들의 행복을 비교해 연구한 결과,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특별히 더 불행하거나 행복하지 않았다. 할머니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전반적인 요소는 따로 있었는데 바로 가난과 질병이다. 그렇다면 자식이 있든 없든 처방은 분명하다. 열심히 저축하고, 치실을 사용하고, 안전벨트를 메고, 건강을 유지하라. 그러면 언젠가 행복한 노인이 될 것이다. 내가 장담한다 255 ★★

가끔은 버릇없이 굴도록 내버려두는 일이다 255

전 세계적으로 ‘자식이 없는 많은 여성들의 얼굴’에서 피터팬의 이미지와 정수, 행복한 기운을 발견했노라고 257

이 세상 부부는 자신들만의 법칙과 경계를 만들어나간다

너희들을 키우던 시기에는 행복한 일이 너무 많았어. 너희 아빠는 평생 가도 나처럼 너희들을 잘 알지 못 할거야. 나는 너희들 곁에서 너희들이 커가는 것을 지켜봤지. 그건 대단한 특권이었고, 그걸 놓치고 싶지 않았어 258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님이 서로에게 육체적으로 만족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귀한 선물이다 259

일상은 여유롭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취미로 하던 일들도 수준급이 되었다 260

결혼은 별다른 특징 없는 2천번의 아침을 먹으면서 나누었던, 별다른 특징없는 2천번의대화이며 바로 거기서 친밀감의 바퀴가 서서히 굴러간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친밀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나 일이다 260

엄마가 결혼생활을 하면서 아버지보다 야망을 더 많이 포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엄마가 아버지에게 요구한 것이 아버지가 엄마에게 요구한 것보다 훨씬 많다. 아버지는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엄마는 그러지 못했다 261 _ 그랬다면 엄마는 훨씬 불행했을 거다.

엄마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버지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한다. 사람을 조종하는 기술이 어찌나 교묘하고 우아한지 상대가 눈치채지 못할 때가 많다 262

놀라운 점은 95페센트를 엄마에게 빼앗긴 아버지의 분노보다, 나머지 5퍼센트를 끝내 차지하지 못한 엄마의 분노가 더 크다는 것이다 262 _ 놀라울 것 없다. 이미 엄마는 100이상을 전부 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니까

그리스 정교회가 결혼을 의식이라기보다 신성한 순교로 본다는 신기한 사실이 떠오른다. 그들은 장기간의 동반자 관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양쪽 모두에게 어느 정도 자아의 죽음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263

나는 결혼 제도와 가족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사상을 주입받으며 자랐다. 나와 펠리페는 아마도 언니와 내가 ‘아내없는 가정’이라고 했던 가정을 이루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혼자서) 전통적인 아내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는 가정이다. 언제나 여성의 몫으로 당연시되었던 집안일은 좀 더 공평하게 분배될 것이다...마찬가지로 아버지나 외할아버지와는 달리 펠리페가 전적으로 생계를 부담할 필요도 없다. 사실 아마도 가계 소득의 대부분은 항상 내가 책임지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집은 아마 ‘남편없는 가정’도 될 것이다. 아내도 없고,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는 가정...역사상 이런 가정은 많지 않은터라 참고할 만한 본보기가 없다. 우리는 함께 살면서 우리만의 법칙과 경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부부들이 함께 살면서 자신들만의 법칙과 경계를 만들어나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265 ★★★★_ 내가 만들고 싶은 가정도 이런 모습이다. 고지가 머지 않았다. 분발해보자!!!

자신의 인생에 오로지 한 가지 감정만 가질 수 있다는, 사치스러울 정도의 순진한 환상은 오래전에 버렸을 것이다...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엄마는 모순이라는 거친 바위가 솟아 있는 친밀감의 들판에 꽤 편안한 자신만의 안식처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나 혼자서 언젠가 나만의 안식처를 조심스럽게 마련할 방법을 알아낼 일만 남았다 267 ★★★★

제6장 결혼생활에서 상대를 풀어주고 구속하는 법을 배운다

수렁 속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데서 오는 고통

남자들은 대체로 무력감을 느낄 때 단점이 드러난다. 펠리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점점 더 안절부절못하고, 걸핏하면 화를 냈으며, 심하게 긴장했다 272

언제나 차분함을 잃지 않는 미국 중서부 출신의 어머니와 과묵한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나나는 펠리페가 전형적인 브라질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유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 272 _ 문화적 우월감이 느껴진다...이런 평가를 받을 줄 알면서도 드러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리즈의 매력이긴 하지만...

내가 결코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모욕이 있다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실망스런 행동을 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272

하지만 독자 여러분은 내가 사소한 갈등만 생겨도 감정적 마찰이라고 판단해버리는 민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전염병 수준’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273

여행이란 것, 특히 지금 우리처럼 돈을 아껴가면서 더러운 숙소에서 지내는 여행은 일이 틀어지고 못마땅한 상황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274

나는 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뿌루퉁한 남자에게 대처하는 엄마의 방법을 따랐다. 즉 내가 더 기운을 내고, 더 활달해지고, 짜증날 정도로 쾌활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274

난 그저 이 상황을 최대한 좋게 받아들이려는 거라고요. 더 좋은 생각이나 계획이 있으면, 제발 부탁이니까 어디 한번 말해봐요. 그리고 제발이지 무슨 방법이 있으면 좋겠네요. 솔직히 말해서, 당신 투정 받아주는 건 이제 질렸으니까요. 정말 지겨워요 277

어떤 남자들-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호강시켜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가끔씩 잊어버린다. 기본적인 능력을 박탈당할 대 남자들이 얼마나 위험할 정도로 위축되는지 잊어버린다. 그것이 남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인지 잊어버린다 278 _ 그래서 걱정된다. 어쩌면 나의 주장이 그에게는 당황스러운 선언일지도 모른다. 지금껏 해오던 자기 스타일의 사랑법을 부정당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니까...조심조심 가자! 나의 진짜 목적은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이지. 그를 개조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순간에 내가 원했던 것은 그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좀 더 상냥해지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좀 더 인내심을 발휘하고,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나를 호강시켜주거나 보호해줄 필요는 없었다. 그의 남자다운 자존심도 필요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그가 긴장을 풀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바랐다. 물론 다시 미국에 돌아가 가족들 곁에서, 진짜 집에서 살면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날 짜증나게 하는 것은 이렇게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생활이 아니라 그의 뚱한 태도였다 279

연인 사이에는 갈등을 미연에 방지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감정의 범람과 함께 상대방을 일반화하기 시작하면, 지옥문이 열리는 셈이다. 그러니 범람을 막는 것이 최선이다. 내 오랜 친구의 말대로 결혼 생활의 행복은 홧김에 하려는 말을 참으려고 혀를 깨물 때마다 생기는 흉터의 개수로 정해지는 것이다 283

아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펠리페는 연인 사이에는 갈등을 미연에 방지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말다툼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체포해두자는 것이다 284

틈틈이 여행 다니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내 일상적인 삶은 어디까지나 내 나라에서, 내 집에서, 모국어로 이야기하면서, 가족들 곁에서,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믿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었다 289

사랑에 빠진 인간은 추운 겨울밤의 고슴도치와 같다

부부가 서로에게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때로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서로 피해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은유다 293

고슴도치 춤 : 계속 협상하고, 계속 재조정하고, 서로의 의지가 존중되는 동시에 협력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계속 찾으면서 상대방의 영역에 침범했다가 후퇴하기를 반복한다 295

막상 나 혼자 잠시 캄보디아에 다녀오는 문제를 상의하려고 하나, 그 말을 꺼내기가 놀랄 만큼 두려웠다.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 몰라서 며칠을 고심했다. 그의 허락을 구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펠리페를 마치 내 주인이나 부모로 대접하는 일이었고, 나로서는 부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착하고 배려심 많은 남자를 옆에 앉히고, 그가 싫든 좋든 나 혼자 떠나겠다고 퉁명스럽게 통보할 수 없었다. 그것은 독재자처럼 제멋대로 구는 꼴이었고, 분명 그에게 부당한 일이었다 296 _ 참 어려운 일이다. ‘내 행동을 일일이 결제받으며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게 남편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모든 일을 해버리겠다는 의미는 분명 아니었다. 일상의 한켜한켜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있는 부부의 삶에서 ‘일정의 통보’는 나의 일정을 수행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상대방의 일정을 조정해달라는 요청일 것이다. 그러니 내 일정을 짜는데 상대방 일정과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필요하다. 그 균형이 반드시 5:5의 지점에 위치할 필요는없다. 서로 납득할 만할 수 있다면 일시적인 불균형 쯤이야 별 문 제가 안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늘 불균형을 이룬다면 그건 분명 문제다.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사안의 경중이 아니라, 사람에 있다면 그건 분명 바로 잡아야 한다. 남편의 일은 무조건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남는 공간에 아내의 일정을 배치하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물론 그 반대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어떤 이유로든 부부관계에 ‘위계’가 생기면 오래가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공적인 조직에서도 그런 식의 권위를 주장하는 상사는 경멸의 대상이 된다. 배려없이 자신의 권리만 주장해서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결혼은 분재와 같다. 나무는 나무지만, 잘 다듬은 뿌리와 잘라낸 가지를 달고 화분 속에 갇혀 있다. 분재는 몇 세기 동안이고 계속 살 수 있지만 그 부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은 그런 제약의 결과이며, 아무도 분재가 넝쿨처럼 계속 뻗어나가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297

지그문트 바우만, 그는 현대인들이 친밀감과 자유 모두를 가질 수 있으며, 가져야 한다는 감언이설에 속아서 산다고 했다. 즉, 삶에서 친밀감과 자율이 똑같은 비율을 차지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기만 하면, 구속감은 전혀 느끼지 않은 채 결혼생활이 주는 안정감만 누릴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여기서 마법의 단어, 맹목적으로 숭배되기까지 하는 단어가 바로 ‘균형’이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절박할 정도로 이 균형을 추구하는 듯하다. 바우만이 썼듯이 우리는 결혼 생활 속에서 “어떤 권력도 빼앗기지 않은 채 얻으려고만 하고, 불가능해지는 일 없이 가능한 일만 있고, 의무는 거부한 채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기만을” 바란다 297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기에 상대를 풀어주는 동시에, 극도로 조심스럽게 상대를 구속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절대, 단 한 순간도 서로에게 구속되지 않은 척해서는 안 된다 298

펠리페를 두고 혼자 떠난 캄보디아 여행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과 친해져야 직성이 풀린다 300

구명보트를 하나로 이어 붙이고 항해를 계속하다

나는 캄보디아에 가야만 했기에 캄보디아에 갔다. 엉망친창이 되어버린 여행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 삶은 엉망진창이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항상 올바른 길로 갈 수만은 없다 306

그가 꼭 안전하지만은 않은 일, 꼭 완전히 납득할 수만은 없는 일, 꼭 내가 꿈꾼 대로 완벽하게 이루어지지만은 않은 일을 해보라고 격려해준 것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어떤 말로도 그 고마움을 표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솔직히 말해서 나는 분명 그런 짓을 또 할테니까 306 _ 존중이란 상대방이 ‘꼭 안전하지만은 않은 일’을 감당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나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상대방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리고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만큼 가치있는 일일 거라는 믿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꼭 그가 꿈꾼대로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상대방이 그 시행착오를 통해 충분히 배울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는 믿음이다. 즉 상대방이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건 건강한 관계를 위한 기본 구성성분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자기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제일 먼저 까먹어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보호받고 싶어하는 여자들. 이와는 반대로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을 존중해야하는 의무를 제일 먼저 까먹어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보호하고 싶어하는 남자들.. 리즈는 내내 펠리페가 자기의 주인이나 부모가 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이미 그가 그렇게 군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 상태에 들어간 것 같다. 그런 그녀였기에 펠리페가 보여준 기본적인 존중에 이처럼 감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제7장 모든 결혼은 정부를 전복하는 행위다

상대의 이야기를 물려받고 교환하며 밤을 세우다

내가 지난번 책을 집필했던, 방 모퉁이의 조용한 책상도 그대로였다 312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밤이 되면 사막에 피운 모닥불 근처에 남자들이 모여들고, 각자가 아무 단어나 하나씩 댄다. 예를 들어, ‘누이’ ‘늑대’ ‘묻혀있는 보물’과 같은 단어들이 나오면, 돌아가면서 한 명씩 누이, 늑대, 묻혀있는 보물과 관련된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후로 상인들은 에우페미아를 떠나 혼자 낙타를 타고 사막을 횡단하거나, 중국까지의 머나먼 항해길에 오른다. 그럴 때의 지루함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은 기억 속을 훑어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상인들은 기억이 정말로 교환되었음을 깨닫는다 314

시간이 흐르면 친밀감도 그런 효과를 발휘하낟. 오랜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 상대의 이야기를 물려받고 교환한다. 그런 식으로 서로가 서로의 부록이 되고, 상대의 생애가 덩굴처럼 휘어감고 자랄 수 있는 시렁이 된다 314

그렇게 어둠 속에서 이야기를 교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친밀감이다 316

결혼은 혼자서 하는 기도가 아니야!

사람들은 자기가 원한다면 몇 번이고 결혼해도 괜찮지만, 거창하고 화려한 결혼식을 올릴 자격은 인생에 한 번뿐이라고 말했다 320 _ 초혼 재혼 커플은 어쩐단 말인가? 애초에 말도 안되는 룰..

결혼식은 그저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야. 오히려 하객들에게 이 결혼에서 한 몫을 차지해달라고 부탁하는 거지. 그들은 네 결혼을 도와줘야 해. 펠리페나 너, 둘 중 한 사람이 비틀거릴 때 너희들을 응원해줘야 한다고 325

고상하고 허울 좋은 약속 뒤에는 흄의 표현대로 하자면 ‘은밀한 딴생각’이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인이 있으면 설령 내색하지 않은 다른 꿍꿍이가 있다 해도 모두 무효가 된다. 이제는 당사자가 진심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 약속을 했고, 제3자가 그 장면을 목격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따라서 증인은 약속을 굳건하게 해주며, 약속을 공증해준다 326

대체 공적이고 법적인 결혼식이 뭐길래?

의식이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의식은 중요한 사건을 평범한 일상과 분리하기 위해 중요한 사건 주위에 일종의 원을 그리는 행위다. 의식은 우리를 인생의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이끄는 마법의 안전벨트로, 그 과정에서 우리가 넘어지거나 길을 잃지 않도록 해준다. 우리는 의식을 통해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변화에 대한 두려움 한 가운데를 조심스럽게 지나갈 수 있다 329

친구들과 가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명확히 파악한 후에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330

그리스 문화-특히 고대 아테네의 황금기-는 세속적 인간주의와 개인의 신성함을 물려주었다. 그리스 문화는 민주주의와 평등, 개인의 자유, 과학적 근거, 지적 자유, 열린 마음의 사상을 주었다. 오늘날의 소위 ‘다문화주의’라고 하는 것도 그리스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그리스인들은 도시적이고 박식하며 탐험적이고, 언제나 의심과 토론의 여지를 많이 남겨 놓는다 331

그와 반대되는 것이 히브리 사상이다. ‘히브리’의 의미는 부족주의, 신앙, 복종, 존경으로이루어진 고대의 세계관을 줄여서 말한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씨족 중심적이며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고 도덕적이고 의식을 중시하며 본능적으로 외부인을 의심한다. 히브리적 사고는 세상을 선과 악의 게임으로 보며, 신은 항상 ‘우리편’이라고 굳게 믿는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옳거나 그를 뿐, 중간은 없다. 집단이 개인보다 중요하며, 도덕성이 행복보다 중요하고, 서약은 절대 깨어져서는 안 된다 332

문제는 근대 서구 문화가 고대의 이 두 세계관을 모두 물려 받았으나 , 그 둘을 화해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둘은 결코 화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는 그리스 사상과 히브리 사상의 우스운 혼합물이 되어버렸다. 법적 규정은 대부분이 그리스적인 반면, 도덕적 규정은 대부분이 히브리적이다. 독립과 지성, 인간의 신성함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그리스 사상을 따른다. 반면, 정의와 신의 뜻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히브리 사상을 따른다. 공정함은 그리스적 개념이고, 정의는 히브리적 개념이다. 그런데 사랑에 있어서는 이 두 가지가 복잡하게 뒤엉켜버렸다...미국인들은 결혼에 대해 완전히 모순된 두 가지 신념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온 국민이 결혼은 평생 서약이 되어야 하며, 절대 깨져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또 한편으로는 인간은 언제나 각자의 사정으로 이혼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어떻게 이 두 가지 사고가 동시에 진실일 수 있을까? 미국인들이 혼란스러운 것도 당연하다 333

완벽하게 그리스적인 연인은 관능적이며, 완벽하게 히브리적인 연인은 정절을 지킨다 333

결혼은 약속에게 하는 약속이다 334

당신이 원하는 것만 골라! 그게 브라질 방식이잖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빌려다가 마구 섞어서 새로운 걸 창조하지 335

우린 그 두 가지 모두를 취할 거야. 인간 존중과 명예. 그 두 가지를 섞어서 우리의 결혼을 만드는 거야. 그걸 브라질식 혼합물이라고 부르자고. 우리만의 규범에 따라 그 혼합물의 모양을 잡아가는 거야 336

우리가 아무리 현대적이고 똑똑한 연인이라고 자부해도 결혼이라는 생산 라인에 발을 올려놓는 순간, ‘배우자’라는 틀속에 들어가 사회에 이롭고, 철저하게 전통적인 형태로 변할까봐 두렵다. 그런 불안함에 떠는 까닭은 나 스스로를 막연하게나마 보헤미안이라고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무정부주의자는 아니지만, 나 자신이 획일적인 삶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337

세상의 모든 연인들은 둘만의 작고 고립된 나라를 만든다

베갯머리에서 어떤 사소하고 진지하고 점잖은 이야기가 오가든 간에 그 고요한 시간은 오로지 함께 있는 두 사람만의 것이다. 어둠 속에 누워있는 연인들 간의 대화야말로 ‘프라이버시’의 정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프라이버시는 섹스만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전복적인 일면, 즉 ‘친밀함’을 뜻한다. 세상 모든 연인들은 시간이 흐르며 둘만의 작고 고립된 나라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제3자는 참견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문화, 자신들만의 언어, 자신들만의 도덕 법규를 만드는 일이다 339

왜 미국 노예들에게 결혼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노예 주인으로서는 자신의 수중에 있는 사람이 결혼에서 싹트는 다양한 감정적 자유와 은밀함을 누리도록 허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은 마음의 자유를 대표하고, 노예들에게 그런 일은 용납될 수 없었다 340

대중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한 사람만 선택하는 일을 계속한다 341 _ 그래, 결혼은 사회적 의무가 아니라 권리 일지도 몰라!! 우리만의 나라를 가질 수 있는 특권. 문제는 그 나라를 살기좋은 곳으로 만드려는 노력인 거야.

현대의 가장 과격한 페미니스트 레즈비언들의 투쟁 목표가 무엇인가? 바로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것이다 342

만약 그녀가 ‘결혼 적령기’였던 1950년대에 결혼했다면, 그녀는 남편의 소유물 혹은 잘해야 남편의 똑똑한 조력자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2000년이 되면서 미국 여성은 결혼을 해도 아내인 동시에 인간일 수 있게 되었다. 여성이 시민으로서 갖는 모든 권리와 자유가 온전히 보장된 것이다. 상당 부분 그녀의 부단한 노력 덕분이었다 343 _ 내가 해야할 노력의 방향성이기도 하다. 우리사회의 기혼여성의 위치는 여전히 이 둘 사이의 어느지점인가 일테니까. 아내이기 전에, 엄마이기 전에 인간임을 존중받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것이 나의 할 일이라고 믿는다.

우리 둘만의 작은 세상을 창조하기 시작했다...우리의 관계에서 타인을 배제했다...감정적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둘만의 친밀감을 갈망한다. 둘만의 친밀감에 빠져있을 때도 그것을 갈망한다 344

나는 지금까지 이 모든 것을 완전히 거꾸로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회가 결혼을 만들어내서 인간들에게 함께 살라고 강요했다는 생각은 어쩌면 터무니없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사회가 치과의사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이가 자라도록 강요했다고 믿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혼을 만들어낸 사람은 우리다...그렇다면 결혼은 어느정도 게임이다. 게임의 규칙을 정한 것은 그들이다. 우리는 그 규칙 앞에 순순히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면, 원하는 일은 뭐든 할 수 있다 349 ★★★★★★

결혼해도 괜찮다고 나 스스로를 설득하는 떠들썩한 노래

특정 문화권에서는 여자들이 결혼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듯하다. 몇몇 문화권에서는 여자가 프러포즈를 받아들이도록 열심히 유혹하는 일이 하나의 의식, 심지어는 예술 형태로까지 발전했다 350

결혼 제도에 사회 전복적인 요소가 내제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페르디난드 마운트의 든든한 이론이 꼭 필요하다. 이 이론은 내 마음을 달래주는 진정제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이론이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만큼 그 이론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353

시대를 막론하고 궁극적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 즉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약간의 프라이버시를 얻기 위해 온갖 짜증나고 성가신 헛소리를 참아낸 다른 고집스러운 연인들을 기리며 354

제8장 결혼은 가장 공적이면서 사적인 일이다

드디어 국토안보부의 승인을 얻다

가장 급한 일은 결혼 후에 영원히 정착할 집을 찾는 일이었다. 호텔과 월셋집을 전전하는 떠돌이 생활은 충분했다. 이제는 우리만의 보금자리가 필요했다 357 _ 보헤미안 기질을 가졌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그녀가 ‘영원히 정착할 집’을 찾고 있다. 사실 그만큼 떠돌아다녔으면 나라도 그럴 것 같다. 그렇다. 다 시기가 있는 것이다. 이제 자유도 정말 지긋지긋하다. 고 생각될 쯤에 정착하면 되는 거다. 만일 아직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당분간은 더 떠돌아도 좋다는 신호로 받아들여도 좋다.

마침내 법적인 부부가 되다

3. ‘내가 저자라면’

나를 뒤흔드는 불안의 정체, 경제적 무능감과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증후군

쓰는 법을 잊어버렸던 그 시기, 아니 자연스럽게 쓰는 법을 잊어버렸던 그 시기가 내 인생의 위기는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그것만 제외하면 내 삶은 정말로 행복했기 때문이다. 만족스런 사생활과 작가로서의 성공이 너무도 감사해서 이 문제로 유난을 떨고 싶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심각한 문제임은 분명했다. 이대로 작가로서의 경력이 끝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은 아니지만, 설사 그것이 내 운명이라 해도 솔직히 아직은 때가 아닌 듯했다. 나는 더 많은 시간을 토마토 텃밭에서 보낸 후에야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11 _ 텃밭은 기다리는 장소다. 리즈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저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기만 해도 되는 여유를 쟁취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 그녀가 말한 만족스런 사생활과 작가로서의 성공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내가 자꾸만 조급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할 여유가 없다고 믿기 때문일거다. 이렇게 보낼 시간이면, 그 시간에 차라리 회사에 앉아있으면 몇푼이라도 손에 쥘 수 있을텐데...하는 마음을 지워버릴 수가 없는 거다. 이런 나와는 달리 그녀는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아니 어쩌면 그 시간엔 기다리는 것 외엔 다른 일에 관여해선 안 된다는 것을 미리 체험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시한번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자신에게. 아직 그 기다림이 다 끝났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어쨌거나 어떤 확신도 없이 상당한 분량의 시간을 책상이라는 텃밭을 지킬 수 있었던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지금 누리는 약간이나마의 안정감과 자신감은 분명 그 시간을 이겨낸 댓가일테니까(추방 기간 동안 고생스러웠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가뜩이나 이상하고 긴장된 생활은 불확실한 수입으로 인해 더 긴장되고 이상해졌다 44 _ 역시!!!)

책에 대한 생각 다지기

결혼이라는 복잡다단한 제도와 어떻게든 화해해보려는 노력을 담은 또 하나의 자전적 이야기다(거기다 사회-역사적 보너스 섹션까지 들어간다!) 책의 주제는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업었다. 단지 한동안 그 안에서 내 목소리를 찾기가 힘들었을 뿐이다. 결국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내 상상 속에서만이라도 책의 예상 독자를 대폭 감소시키는 것이었다 12 _내 책은 길버트 이종세트의 종합본정도가 되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만들어준 일년간의 연구원 수련과 결혼이라는 복잡다단한 제도를 재해석해 내 몸에 꼭 맞는 옷으로 다시 재단해 입는 과정을 담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결혼밖에서 자신을 찾는 여행을 햇다면 나는 틀안에서 여행을 진행했다는 것과, 그녀가 자기 몸에 꼭 맞는 새 옷을 찾아입었다면 나는 갖고 있던 옷을 리폼해서 입으려고 한다는 것 정도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누차 말하지만 어떤 게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내게는 나의 방법이 최선이었다는 믿음을 갖고 있을 뿐이다.

결혼에 대한 갈등과 편견을 지워나가며 마음에 위안이 되는 결론을 찾아 역사속으로 파고 들었다...지구상의 모든 결혼 풍습을 좀 더 심도 있게 고찰하는 것도 즐겁고 교육적일 테지만, 내게는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다...내게는 마감이 있었고, 시계는 똑딱거렸다...그런 상황이었기에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결혼에 대한 근거없는 개념, 우리 가족사, 내가 가진 여러 불안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일부일처제의 서구 결혼의 역사를 풀어나가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 45 _ 나 역시 시간이 없다. 리즈가 서구 결혼의 역사를 풀어내준 덕분에 훨씬 수월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내 경우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결혼에 대한 근거없는 개념, 우리 가족사를 더 철저히 연구하고, 여기에 우리 사회보다는 ‘사회적으로 진화(?)’된 서구의 결혼을 통해 우리의 나아갈 길에 대한 좀 더 안전한 제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결혼의 기역 자도 모른 채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실수는 이미 저지른 적이 있다 42 _ 그렇다. 그녀가 첫 번째 결혼에 실패했던 건 결혼을 통해 결혼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이번 책을 위해 했던 작업을 이혼 전에 할 수 있었다면 그녀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혼하고 원기를 회복한 후 다시 결혼한 그녀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안도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지친 나를 추스르고, 또 결혼에 대한 진지한 숙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음에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 숱하게 겪고 나니, 이제는 그것이 온전히 내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중요한 진실을 배운 뒤로는 어디까지가 내 영역이고, 어디서부터 다른 사람의 영역이 시작되는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145_ 내 책의 2부에서 다루어야 할 핵심 내용!

세상은 내게 최고의 것을 기대하라고 허락해 주었다. 역사상의 그 어떤 여자들에게 허용된 것보다도 더 많은 것들을 삶과 사랑에서 기대하라고 허락해주었다 76 _ 음...내 남편 나름 괜찮은 남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가운데도 그를 가만히 놔두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일 거다. 나 역시 나름 괜찮다고 자부하면서도 끊임없이 더 나은 나를 추구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유일 것이다. 여기에 대해 시비거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와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다. 내게 ‘최고의 나’를 만나고 싶은 나를 부정하라는 것은 숨쉬기를 포기하라는 말과 동의어이므로.

결혼에 대한 나의 신념

부끄럽지만 젊은 시절의 나는 의리를 지키기는커녕, 변덕과 경솔한 행동이 주특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신의가 두터운 사람이 되는 일이 내게도 중요해졌으며 나이를 먹을수록 그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40 _ ‘이기적’으로 굴어선 진실로 나를 이롭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의미겠지. 그렇다면 나도 그녀의 깨달음에 마음을 섞고 싶다. 인생에서 가장 큰 약속인 ‘결혼’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것이 내게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혼에 대해서도 그와 똑같은 믿음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두 사람이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한다면, 당연히 친밀감이 싹트고, 결혼 생활도 단지 사랑의 힘만으로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믿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결혼 생활에 무슨 전략이나 도움, 도구, 통찰력은 불필요하다고 믿었다 153 _ ‘사랑’이란 관계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능력이라고 믿는다. 이것도 앞서 말한 육아의 경우와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돌보고 싶다(혹은 돌봐야 한다)는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든 그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보라면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만큼 널려있는 세상이니까.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관계를 건강하게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든 그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적절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겠다고 불평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말할 것이다.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절실함’이 없는 걸 보니, 건강한 관계를 만들고 싶다던 당신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망설여지네요.” 당신이 부모라면, 오밤중에 미친듯이 울어대는 아가야를 진정시키기 위해 한 두가지 방법을 써보는 걸로 포기할 수 있겠는가? 관계를 돌보는 것과 아이를 돌보는 것은 기본적으로 같다. 관계도 아이도 눈물과 땀없이 저절로 자라주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그 관계가 오로지 나의 땀과 눈물만으로 이루어져있다면 그 역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당신이 성인이거나 바보가 아니라면 말이다.)

배우자에 대한 나의 기대

내가 펠리페를 원하는 이유는 지난 오랜 세월 여자들이 남자를 필요로 했던 이유와는 완전히 다르다. 나는 그가 신체적으로 날 보호해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치안이 잘 되어있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날 먹여살려주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내 생계는 늘 내가 책임졌기 때문이다. 혈족관계를 넓히기 위해서도 아니다. 내게는 좋은 이웃과 이웃들이 많고 나만의 가족도 있기 때문이다. ‘유부녀’라는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다. 우리 문화는 독신 여성도 충분히 존중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엄마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사 아이를 원한다 해도 진보한 과학 기술과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 덕분에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갖고, 혼자서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결혼하려는 것일까? 왜 나는 이 남자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그저 그가 좋고,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즐겁고 편안하며, 내 친구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인생은 때로는 혼자이기에 너무 힘들고 너무 즐겁기” 때문이다 115 _ 앞의 세 가지에는 흔쾌히 동의할 수 있으나 뒤의 두 가지는 음...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다. 우리 문화가 ‘독신여성’을 충분히 존중하는 사회인가? 또 결혼이라는 테두리 바깥의 아이를 맘편히 키울 수 있는 사회인가? 는 글쎄..음....적어도 내 경우는 ‘유부녀’라는 사회적 신분을 얻는 것도 상당히 중요했던 걸로 기억한다. 또 아이만을 목적으로 결혼했던 건 아니었지만 기왕 낳은 아이들이라면 ‘정상적’인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남편이라는 사람이 완전 기대이하라 그를 감당하는 비용이 그를 통해 얻는 사회적 혜택보다 압도적으로 크다는 것이 명백하고, 이 상황이 개선될 여지 또한 없는 상황이라면 굳이 결혼자체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보면, 사회적 압력이라는 것도 못 견딜 만큼 위협적인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그 정도는 그녀를 품고 있는 미국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뭐 그렇게 본다면 나 역시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즐겁고 편안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다. 이건 이리 쉽게 결론 낼 문제는 아니다. 더 곰곰이 생각해보자!!

당시 좋은 배우자와 결혼하는 것은 좋은 대학에 합격하거나, 종신 교수로 임명받거나, 우체국에 취직하는 것과 같았다. 다시 말해,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었다 91 _ 내가 우체국에 취직하는 기분으로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상기시키자!

그들에게 가장 원했던 것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에 기초해 둘만의 관계를 규정할 수 있는 자유였다 111 ★★★

부부의 역할에 대한 내 생각

친구들 말에 의하면 간호사에게서 그 꼬물꼬물한 젖먹이를 넘겨받는 순간, ‘맙소사, 지금 이사람들이 나더러 이 애를 데리고 집에 가라는 말이야? 난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는데?’라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난다고 한다. 하지만 당연히 병원에서는 엄마에게 아기를 맡기고, 아기를 집으로 데려가게 한다. 모성애라는 것은 다분히 본능적이기 때문이다. 설사 엄마가 육아 경험이 전무하고, 육아라는 힘든 일에 대한 훈련을 전혀 받지 못했어도 자연스럽게 그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아이게 대한 사랑이 가르쳐줄 것이다 153 _ 잠깐!! 여기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초보 엄마가 아이돌보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은 본능이라기 보다는 책임감의 덕분이다. 나 말고는 아무도 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도 그럭저럭 해내게 되게 마련이다. 아마 저자가 ‘본능’이라고 말하는 것은 본래 지니고 있는 행동능력이라기 보다는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말해 모성애를 ‘본능’으로 타고 태어나지 않은 아빠도 부모로서의 기본적인 책임감만 회복한다면 얼마든지 엄마 못지않은 육아를 해낼 수가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나는 이런 책임감을 느끼는 능력이야말로 ‘부모의 가장 기본적인 자격조건’이라고 믿는다. 그게 여자든 남자든 이런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면 부모로서는 실격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당연히 그나 그녀에게 돌아갈 부모로서의 권리따위는 있을 리 없다. 아이들 돌볼 수 있는 ‘본능’을 타고 태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부모의 역할을 소홀히 한 데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보수적이고 제한된 시각을 가진 부부일수록 더 불행하고 유대감도 약했다. 바꿔 말하면, 서로를 동등하게 여기고,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해오던 자질구레한 집안일에도 남편이 참여하는 부부가 더 행복하다는 말이다 170 ★★★★★★★

결혼 혜택 불균형...혼인 서약을 통해 남자들은 많은 이득을 얻는 반면, 여자들은 주로 많은 이득을 잃는다는 뜻이다 223 _ 어떻게든 이 균형을 바로 잡지 않고는 결혼생활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딸을 위해서!!

엄마는 자신의 일을 커리어로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취미 정도로 생각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삶에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엄마의 그런 취미활동을 반대하지 않았다. 계속 집안일을 하는 한 엄마는 직장에 나갈 수 있었다. 당신 부모님은 가정을 돌볼 뿐 아니라, 작은 농장도 운영했기 때문에 할 일이 무척 많았다. 그런데도 수두 사건이 있기 전까지 엄마는 모든 일을 그럭저럭 해나갔다. 직장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한편, 텃밭도 가꾸고, 살림도 하고, 식사도 차리고, 아이들도 키우고, 염소젖도 짜고, 그러면서도 매일 저녁 다섯시 반이면 퇴근하는 아버지를 위해 저녁에는 늘 집에 있었다 241 _음...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는 안 살고 싶다.

나는 결혼 제도와 가족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사상을 주입받으며 자랐다. 나와 펠리페는 아마도 언니와 내가 ‘아내없는 가정’이라고 했던 가정을 이루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혼자서) 전통적인 아내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는 가정이다. 언제나 여성의 몫으로 당연시되었던 집안일은 좀 더 공평하게 분배될 것이다...마찬가지로 아버지나 외할아버지와는 달리 펠리페가 전적으로 생계를 부담할 필요도 없다. 사실 아마도 가계 소득의 대부분은 항상 내가 책임지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집은 아마 ‘남편없는 가정’도 될 것이다. 아내도 없고,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는 가정...역사상 이런 가정은 많지 않은터라 참고할 만한 본보기가 없다. 우리는 함께 살면서 우리만의 법칙과 경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부부들이 함께 살면서 자신들만의 법칙과 경계를 만들어나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265 ★★★★_ 내가 만들고 싶은 가정도 이런 모습이다. 고지가 머지 않았다. 분발해보자!!!

막상 나 혼자 잠시 캄보디아에 다녀오는 문제를 상의하려고 하니, 그 말을 꺼내기가 놀랄 만큼 두려웠다.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 몰라서 며칠을 고심했다. 그의 허락을 구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펠리페를 마치 내 주인이나 부모로 대접하는 일이었고, 나로서는 부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착하고 배려심 많은 남자를 옆에 앉히고, 그가 싫든 좋든 나 혼자 떠나겠다고 퉁명스럽게 통보할 수 없었다. 그것은 독재자처럼 제멋대로 구는 꼴이었고, 분명 그에게 부당한 일이었다 296 _ 참 어려운 일이다. ‘내 행동을 일일이 결제받으며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게 남편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모든 일을 해버리겠다는 의미는 분명 아니었다. 일상의 한켜한켜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있는 부부의 삶에서 ‘일정의 통보’는 나의 일정을 수행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상대방의 일정을 조정해달라는 요청일 것이다. 그러니 내 일정을 짜는데 상대방 일정과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필요하다. 그 균형이 반드시 5:5의 지점에 위치할 필요는없다. 서로 납득할 만할 수 있다면 일시적인 불균형 쯤이야 별 문 제가 안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늘 불균형을 이룬다면 그건 분명 문제다.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사안의 경중이 아니라, 사람에 있다면 그건 분명 바로 잡아야 한다. 남편의 일은 무조건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남는 공간에 아내의 일정을 배치하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물론 그 반대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어떤 이유로든 부부관계에 ‘위계’가 생기면 오래가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공적인 조직에서도 그런 식의 권위를 주장하는 상사는 경멸의 대상이 된다. 배려없이 자신의 권리만 주장해서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가 꼭 안전하지만은 않은 일, 꼭 완전히 납득할 수만은 없는 일, 꼭 내가 꿈꾼 대로 완벽하게 이루어지지만은 않은 일을 해보라고 격려해준 것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어떤 말로도 그 고마움을 표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솔직히 말해서 나는 분명 그런 짓을 또 할테니까 306 _ 존중이란 상대방이 ‘꼭 안전하지만은 않은 일’을 감당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나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상대방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리고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만큼 가치있는 일일 거라는 믿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꼭 그가 꿈꾼대로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상대방이 그 시행착오를 통해 충분히 배울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는 믿음이다. 즉 상대방이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건 건강한 관계를 위한 기본 구성성분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자기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제일 먼저 까먹어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보호받고 싶어하는 여자들. 이와는 반대로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을 존중해야하는 의무를 제일 먼저 까먹어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보호하고 싶어하는 남자들.. 리즈는 내내 펠리페가 자기의 주인이나 부모가 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이미 그가 그렇게 군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 상태에 들어간 것 같다. 그런 그녀였기에 펠리페가 보여준 기본적인 존중에 이처럼 감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녀가 ‘결혼 적령기’였던 1950년대에 결혼했다면, 그녀는 남편의 소유물 혹은 잘해야 남편의 똑똑한 조력자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2000년이 되면서 미국 여성은 결혼을 해도 아내인 동시에 인간일 수 있게 되었다. 여성이 시민으로서 갖는 모든 권리와 자유가 온전히 보장된 것이다. 상당 부분 그녀의 부단한 노력 덕분이었다 343 _ 내가 해야할 노력의 방향성이기도 하다. 우리사회의 기혼여성의 위치는 여전히 이 둘 사이의 어느지점인가 일테니까. 아내이기 전에, 엄마이기 전에 인간임을 존중받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것이 나의 할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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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이 추수보고서였다면, 이번책은 농경기획서같은 느낌이다. 전작이 문학작품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번책은 학술서같은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다루고 있는 주제인 결혼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얻을 수 있어서 참 좋았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그녀가 나를 위해 대신 도서관에 다녀와준 느낌이랄까.) 왠지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전작의 소재가 되었던 1년간의 여행을 통해 그녀는 다짐했다. 다시는 남이 만들어놓은 인생에 자신을 맞추며 살지 않겠다고. ‘내 몸에 완벽하게 편안한 인생’이야말로 그녀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었으니까. 그런데 얄궂게도 삶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의 연인 펠리페는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 3개월간격으로 갱신되는 미국 장기체류를 시작했고, 그 결과 영원히 미국에서 추방될 위기에 놓인다. 이것은 그에게 단순히 지구상 수많은 나라중 한 나라에 입국을 거부당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였다. 그는 미국에 오랜 고객을 가진 사업가였던 거다. 그가 미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될 경우, 그의 경제상황은 그야말로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이제 그녀에게 이 결혼은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계속 ‘결혼’을 부정할 경우, 자신에게 한없이 친절했던 한 노년남자의 삶이 기반부터 흔들리게 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에게 그녀는 정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붙들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 되어버린 거다. 그녀가 그를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 그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그녀로서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솔직히 엄청난 중압이었을 거다. 그래서 그런지 책이 전반적으로 무겁다. 그건 단지 그녀가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았던 ‘결혼’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휴가중에 결혼하지 말라’는 자기 자신의 조언을 울며 겨자먹기로 어겨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작가의 마음의 무게가 고스란히 글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라면 내가 너무 의심이 많은 걸까?

다행히 책은 그녀가 펠리페와의 법적인 결혼식을 마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는 데 성공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를테면 ‘해피한 앤딩’을 지켜보면서도 맘편히 그녀를 축복해줄 수가 없으니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내가 그녀처럼 전남편의 생활비를 아직도 지불하는 것에 별 거리낌을 갖지 않는 미국사람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녀가 그에게 갖는 무한한 만족감을 이해할 만큼 유연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그녀와 그의 결혼은 발란스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이런 말까진 정말 하고 싶지 않지만 그녀에게 펠리페는 XY염색체를 가진 가정부같은 느낌이다. 물론, 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전통적인 ‘아내’역할을 바라지 않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이야말로 배우자에게 기대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그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더구나 펠리페는 여성의 공간이었던 부엌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훌륭한 재능까지 갖추고 있으니 그녀의 만족감이 얼마나 클지 어느정도는 알 것도 같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괜찮은 걸까? 17살차이. 사십대 초반과 오십대 후반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녀가 과연 연인의 피부에 거뭇거뭇 피어오르는 검버섯까지 감당해 낼 수 있을까? 그것도 자신은 여전히 팽팽한 피부를 갖고 있는 그 어느날에 말이다.

그래. 나도 안다. 걱정도 팔자라는 거. 그치만 자꾸만 걱정이 되는 걸 어쩌겠는가? 그리고 이쯤에서 전작이 그녀에게 선사했던 부러운 수식어 ‘매혹적이고 유머러스하며 아프도록 진실한’을 거둬 들여야 할 것 같다. 이미 너무나 연약해져 바스라지기 직전인 자신의 연인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 그녀는 더 이상 거침없이 진실할 수 없었고, 그 진실을 피해가는 과정에서 매력과 유머감각을 상당부분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그 심정 역시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그녀이기에 나는 아직도 그녀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숙제가 주어진다. 내가 하고 있는 작업 역시 그녀와 비슷한 선택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걸까?

남편에게 보약이라도 한재 지어 먹여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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