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미나
  • 조회 수 295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1년 12월 12일 21시 52분 등록

33. 장자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윤재근

 

1.     저자에 대하여 장자

1)    장자

본명이 장주인 장자가 살았던 연대는 미상이나 맹자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중국 전국 시대 송나라 출신의 중국 철학자이다. 제자백가 중에 도가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노자 사상을 계승 및 발전 시켰다. 후세에는 노자와 함께 노장이라 불리고 있다. 도교에서 남화진인 또는 남화노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철학과 사상이 담긴 책인 <장자> <남하진경>이라고도 불린다. 장자는 몽 칠원의 관리가 되었으나 이후에는 평생 벼슬길에 들지 않으며 10여만 자에 이르는 저술을 하며 생활은 매우 가난했다고 한다. <장자> 외편에 따르면 초나라 위왕이 사람을 보내 정치를 보좌해 주길 청했으나 거절하였다. 그의 저서인 <장자> 33(내편 7, 외편 15, 잡편 11)은 장주학파의 논설집으로, 기발한 우언과 비유로 문명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장자는 인위를 버리고 무위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한다.

 jangja.jpg

<장자의 사상>

인간의 마음은 일정한 시대, 지역, 교육에 의하여 형성되고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 이 마음이 외부 사물들과 접촉하여 지식이 생긴다. 이러한 지식은 시대, 지역과 사람들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보편타당한 객관성이란 항상 변화할 수 밖에 없다. 장자는 이러한 지식에 입각한 행위를 인위라고 한다. 물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길게 이어주거나 학의 다리가 길다고 하여 그것을 자르면 그들을 해치게 되듯이 인위는 자연을 훼손할 수 있다고 한다.

장자는 만물을 끊임없이 유동변화하는 것으로 보고, 그 유동변화를 도라고 하는 만물 일원론을 주창하였다. 그의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장자가 나비가 되어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꿈은 만물 일원론의 대표적인 사상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꿈을 꾸고 잠을 깨니 장자 자신이 꿈을 꾸고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을 꾸고 지금의 본인이 된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이는 또한 자연과 나는 하나라는 장자의 물아일체 사상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장자는 항상 상식적인 사고에 의문을 품고 유학자들이 말하는 도덕적 가르침 따위는 하잘 것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장자>에는 당시 유학자의 대표격인 공자를 비판하는 내용이 나온다.  장자는 노자의 생각을 이어받아 자연으로 돌아갈 것과 무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장자는 노자에 비해 정신적 절대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장자가 이야기하는 도 사상이란 이것과 저것의 대립이 사라져 버린 것을 의미한다. 이는 천지 생성의 원인이며 이끌어가는 원리이다. 현상 세계의 유한성과 모순 대립을 초월한 절대적 진리이다. 도는 일이며 대전이므로 대상이 없다. 도는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으므로 무위하다. 도는 스스로 자기존재를 성립시키며 절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자연하다. 도는 어디에나 있다. 도가 개별적 사물들에 전개된 것을 덕이라고 한다. 도가 천지만물의 공통된 본성이라면 덕은 개별적인 사물들의 본성이다. 인간의 본성도 덕이다. 이 덕을 회복하려면 습성에 의해 물들은 심성을 닦아야 한다. 도와 일체가 되면 도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만물을 평등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장자의 내편 중 하나인 <제물론>에서는 만물제동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만물을 하나로 보는 이론이다. 도의 관점에서 선과 악, 미와 추, 나와 너 등의 차별은 무의미하다고 얘기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을 차별하지 않는 정신적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지인또는 진인이라고 얘기한다. 이러한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는 방법으로 장자는 두 가지를 제시한다. 조용히 앉아서 우리를 구속하는 일체를 잊어버리는 것인 좌망 즉 좌선이 있다. 그리고 마음을 비워서 깨끗이 하는 것인 심재가 있다.

 

장자는 살육의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춘추전국 시대를 관통하여 치열하게 사유한 사상가이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이란 책에 따르면 장자는 개인의 탈속적인 초월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누구보다 철저히 타자에 대해 사유했고, 타자와 소통하고 연대할 가능성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그 결과 장자는 나와 타자를 구분하고 통제하는 국가 권력에 철저한 반대파가 되었다. 이런 면에서 장자의 사상은 무척 정치적이고 급진적이라고 볼 수 있다.

 

장자가 사상의 영향을 받은 노자 그리고 유가와 묵가를 비판한 것은 이든 겸애든 초월적인 이념이 강조되는 순간 개인은 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장자의 사상은 결국 초월적인 도구화된 이념에 눈멀었던 사람들이 타자를 직시하면, 그들은 더 이상 국가 권력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나 권력은 이에 기대지 않고 자립적이 되는 개인을 원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국가나 권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개인들은 자발적인 연대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 장자는 타자에게 자신을 열고, 소통하라고 한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집단 속에서 도구로써의 삶이 아닌 자기 스스로가 삶의 목적이 되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연합체를 타자와 함께 만들어 가라고 이야기 한다.

 a0101915_4e786225b2623.jpg

<장자,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의 저자 윤재근

윤재근 교수는 1936년에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문리대 영문과 및 동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였고, 경희대학교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문리대 국문과 명예교수이다. 1968문학비평에 평론 시정 변용과 표현의 배경을 발표하면서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였다. 이외에도 만해시의 미적 양식(1983)’만해시의 미적대상(1983)’ 등 만해시 연구는 그의 중요한 업적이다. 또한 한국근대문학 연구에 있어서 미학적 관점을 도입함으로써 근대문학의 연구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논어>, <장자>, <맹자>, <만해시 님의 침묵 연구’>, <문화전쟁> 100여편의 저작이 있으며, 현재도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장자, 공자, 노자, 맹자 시리즈들을 각 3권씩 건결하고 재미있게 역어 이솝우화처럼 편안하게 동양고전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강의>라는 책을 읽으면서 먼저 노자의 사상에 끌렸고, 그 다음에 장자를 읽자 장자의 사상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그의 사상에서 가장 이끌렸던 부분은 바로 장자가 주창하는 자유의 의미였다. 자유란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노니는 것이라는 것, 상식을 벗어나야 장자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이 내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는 너무나 많은 것들에 얽매여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충족되지 않아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것들로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이 과연 죽기 전에 가능할까? 장자의 말처럼 덕을 갖춘 지인혹은 진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아마 살아 생전에는 힘들 것 같다. 내 목숨이 끝나는 날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것들, 장자가 이야기한 문화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 있는 그 순간에 말이다. 사람의 자리가 아닌 마음이 그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한다는 말도 무척 와 닿는다. 살면서 끊임없이 마음을 갈고 닦아야겠다.

 

 

<참고자료>

1)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C%9E%A5%EC%9E%90

2)     장자 윤리사상 http://www.poori.net/ethics/425.htm

3)     http://mtcha.com.ne.kr/world-man/china/man132-1-jangja.htm

4)     장자가 신선 타령했다? 그건 지독한 오해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12624

5)     네이버 지식사전, 윤재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3694

6)     햇살 담은 길목에서윤재근 교수의 장자 시리즈 http://simpleway.tistory.com/70

 

2.     내가 저자라면

(1)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

-       <장자> 내편의 어록들을 본격적으로 보기 전에 많은 설명을 하고 있다. 특히 <장자>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설명하는 부분은 장자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어떤 부분들에 주목해야 할지를 알게 되어 뒤에 이해하기가 쉬웠던 것 같다.

-       <장자>를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는 바람에 비유해서 장자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비유는 우리가 <장자>를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장자>는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영향을 저자도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장자>를 해석한 저자의 이야기도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한다는 느낌보다는 <장자>의 이야기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       이 책을 읽고 나니 장자의 다른 이야기들, 외편과 잡편이 궁금해 진다. 그리고 나머지 책들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부분

-       장자와 관련된 다른 책들과 달리 <장자>에 대한 해석을 먼저 하고 이 후에 2부에서 장자의 어록이 담겨져 있다. 이렇게 쓴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장자를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겠지? 이런 방식은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 장점이라고 하면 독자가 놓칠 수 있는 장자의 메시지들을 잘 챙길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이라고 하면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인 것 같다.

-       1부의 <장자> 각 편의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부분과 어록이 담긴 2부에서의 내용이 겹치는 부분이 많다. 앞에서 이해 하지 못했던 부분, 혹은 이해를 했지만, 다시 한번 장자의 메시지를 새길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다양한 어떤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       장자가 영향을 받은 노자사상, 그리고 당시에 장자가 비판했던 묵자나 유가에 대한 비판의 의미 등도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3)  내가 저자라면

장자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인물들을 대비해서 보여주고 싶다. 사람들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람들로. 그리고 내 삶과 장자의 사상들도 연결해 보고 싶다. 내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들 중에 장자의 사상과 맞닿아 있는 부분들도 있다. 이런 것들을 정리해 보고 싶다. 더불어 장자의 사상에 빗대어 나의 모습을 반성할 것들도 많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느새 계산하고 있는 나, 문화에 얽매여 가고 있는 나, 등 다양한 모습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개인을 포함하고 있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 대한민국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회적 현상들과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들을 보여주고 장자의 사상들로 이런 문제들을 어떤 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부에서는 <장자의 인물들>로 현재의 책과 같은 목차이지만, 각각의 등장인물들에 현실의 인물들을 찾아서 대입해 보는 부분들을 추가할 것이다. 2부에서는 <장자의 사상에서 찾는 나 >를 제목으로 하여 장자의 사상에 나를 대입해 본다. 3부에서는 <장자의 사상에서 길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회문제들에 장자의 사상으로 접근해 보고, 해결 방안들을 모색해 본다. 그리고 4부에서는 <장자의 어록, 내편>으로 지금의 책과 같은 방식으로 각각의 이야기들을 해석한다.

 

3.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서문 :::

30대를 보내면서 삶의 명암이 나를 서글프게 하거나 힘들어 지치게 할 때면 나는 성현들을 뵙고 나를 철들게 하려고 했던 버릇이 있었다.

<장자>를 만나 성현들의 말씀을 들으면 막막하던 미래가 밝아지고 옹색하게 묶여 끙끙거리던 나로부터 훌훌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장자>는 나에게 내 자신을 살펴보라고 한다.

그리고 나를 목마르게 하는 것들(, 명성, 출세 등등)을 홀홀 털어 버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보라고 한다.

 

제1부     장자의 인물들

1.     <장자>를 왜 읽는가?

사람이 사는 세상을 한 칸의 방이라고 친다면 <장자>는 언제나 시원하고 상큼한 새 바람을 넣어 주는 창문 밖에 있는 자연이다. p12

 

사람의 마음속에도 겨드랑이가 있고 항문이 있으며 사타구니도 있고 무좀이 득실거리는 발가락 사이도 있는 법이다. p13

 

<장자>는 언제나 사람을 무한히 편하게 하고 자유를 누리게 하는 까닭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마음의 한을 풀어 주기 때문이다. p14

è  이것이 바로 내가 장자에게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였던 것 같다.

 

2.     <장자>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장자>는 그러한 정신을 향해 눈짓을 할 뿐이지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고 정답을 부질러 주지 않는다. p15

 

본래 제대로 된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들려줄 뿐 언제나 해답은 이야기 밖에 맡겨 두는 법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의 분수에 걸맞게 나름대로 이야기를 듣고는 이것이 정답이지 저것이 정답이지 하면서 토를 단다. 진실하면서 재미나는 이야기는 수많은 뒷말을 남기는 법이다.

è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답을 제시하는 이야기가 아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줄 수 있는 글.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모습인 것 같다.

<장자>에 있는 괴상한 이야기들은 재미있게 듣게 한 다음 아하 그 말이 이말이었구나 새삼 생각하게 사람의 정수리를 친다. p16

 

<장자>가 주는 재미나 놀라움은 절대의 자유 그것이다. 아무것에도 걸림없이 그저 유장하게 사는 일들이 엮어져 있어서 자유로운 생활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p17

 

3.     <장자>의 무엇이 중한가?

장자의 진실은 인간의 자연을 발견하자고 한다. 그러나 플라톤의 진실은 인간이 자기를 발견하자고 한다. p19

 

자유 그것은 스스로 노니는 것이다. 이것이 곧 자연이다. <장자>는 이 자연이 사람에게 가장 중하다고 한다. p21

è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저 자유롭게 스스로 노니는 것이 가능할까? 왠지 장자의 이야기는 그런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4.     <장자>는 어떻게 말하는가?

그러나 생각한다는 것을 항상 새롭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함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뜻에서 생각 없이 사는 것을 <장자>는 매우 싫어한다. p22

 

<장자>는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하게 한다. 상상하게 하는 철학은 언제나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마음을 벙벙하게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을 자유롭게 따라가면 몹시 낯익지만 새로운 생각의 골목을 만나게 된다. p23

 

인간이 문화인이라는 것을 장자의 편에서 본다면 인간은 저마다 코에 코걸이를 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장자는 코뚜레를 걸고 사는 것들을 유위라고 이르고, 두 발로 사는 것을 무위라고 타일러 준다. p24

 

5.     <소요유>의 인물들

(1)  제해의 큰 새

상식을 의심하게 될 때 새로운 마음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상식을 벗어나야 <장자>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장자>의 이야기는 놀라움을 준다. p27

è  우리는 살면서 너무나 많은 상식들에 얽매여 살고 있다. 상식을 벗어나는 사람은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되고, 그 눈총이 어느 정도 합리화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눈총이 싫어 상식에 얽매여 살게 되는 악순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

 

(2)  송영자의 냉소와 열자의 바람

무엇에 의지한다는 것은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함을 말한다. p30

è  이 문장을 읽고, 나는 과연 무엇에 의지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가장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은 돈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에 얽매여 끊임없이 자책하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자유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서 완전히 자유로워 지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지만, 아마 벼슬과 거리를 둔 삶을 살고, 오로지 저술활동에 그의 생을 쏟은 장자였기에 이런 사상을 전파하는 것에 설득력이 있는 것 아닐까?

 

(3)  허유의 뱁새와 두더지

허유는 자기를 탐하지 않는다. 그러니 허유에게 자기를 꾸며 줄 명목이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왜 이렇게 혼란스럽고 편하지 못할까?

자기가 앞서야 되고 자기를 앞세워야 되는 세상에서 자기를 없앤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p31

 

(4)  견오의 장님과 귀머거리

연숙의 말에 따르면 상식적인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사실을 믿지 않으려고 하면서 변화에 대해서 무서움을 간직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p33

 

신인에게는 홍수도 자연이고 가뭄도 자연이므로 그렇게 내버려둘 수 있는 초연함이 있을 뿐이다.

신인이 바람과 이슬을 먹고 산다는 것은 곧 아무런 욕심도 탐하지 않음을 말하는 셈이다. p34

 

(5)  혜자의 바가지와 가죽나무

장자처럼 통이 큰 사람은 조롱을 당하면 조롱으로 갚지 않는다. 그러한 조롱을 통하여 조롱하는 자가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우치게 하여 조롱하는 짓을 부끄럽게 만든다. p35

 

사람의 편에서 본다면 몹쓸 목재이지만 가죽나무의 편에서 본다면 그 몹쓸 것들이 생명을 보전하게 한다는 이치를 혜자는 모르고 있는 셈이다.

작은 것이 큰 것이란 대지의 비밀을 혜자 앞에다 내놓고 있음을 헤아린다면 누구나 철이 들게다. p37

 

6.     자유와 하나 되기

아무것에도 걸림 없이 노니는 것이 <소요유>이다. 걸림 없이 노닐자면 아무것에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 걸림 없이 노닐자면 스스로 있어야 한다. 스스로 비롯된 것이 자유이다. p38

 

사람들은 무엇이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를 제 중심에 놓고 저울질하는 버릇이 있다. p40

è  여기서 무엇이란 사물뿐만 아니라 사람에도 해당하는 것 같다. 내게 쓸모가 있는 사람과 쓸모 없는 사람을 끊임없이 판단한다.

 

우리가 얼마만이라도 자기를 자유롭게 하려면 먼저 자기가 없다’ ‘공적이 없다그리고 이름이 없다는 이야기를 헛소리로 들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주장하고 고집하는 자유는 자기가 있어야 한다’ ‘공적이 있어야 한다그리고 이름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서 성립되기 떄문이다. p41

 

7.     <제물론>의 인물들

(1)  자기의 숨소리

어울려 사는 가장 좋은 길이 자기처럼 자기를 잊어버리는 이치일 게다. 하나의 바람이 불면 구멍은 제각각 제 소리를 택하고 내는 것을 안다면 되는 일이다. p44

 

(2)  장자와 퉁소

장자는 헤아리게 하는 이야기꾼이다. p45

 

(3)  장자와 머슴

자기의 감정에 주인이 된 사람은 자기를 잊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의 감정에 노예가 되는 사람은 자기를 잊지 못하는 사람인게다. p47

è  자기의 감정에 노예가 되는 사람이라는 대목에 왠지 뜨끔하다. 내 감정은 하루에도 몇번씩 널 뛰듯 우울과 평상심 사이를 시소타듯 왔다갔다 한다. 그리고 그 감정들에 너무 큰 영향을 받고 있다.

 

(4)  장자와 하늘

도는 시비를 하지 않는다. 시비를 하지 않으므로 도에는 참과 거짓이란 상대적인 다툼이 있다. 그렇다면 도란 무엇일까. 여러 개의 구멍에서 여러 가지로 소리가 나는 하나의 바람과 같은 것일 게다. 그 하나의 바람을 제대로 들을 줄 안다면 도의 모습을 마주하는 편이다. p48

 

(5)  장자와 바람

크나큰 긍정을 부정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의 시비이며 편애이고 고집이며 자기 주장의 아우성일 게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본다면 수없이 많은 구멍 소리들이 제 소리가 제일이라고 우겨 대어 세상이 북새통이 되어 있다. p51

 

(6)  장자와 털끝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이란 사람들이 서로 짜고 조직한 것에 불과할 뿐 자연의 입장에 서서 본다면 털끝이나 태산이나 다 같다는 아주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p52

 

다만 사람들이 시간을 분별하여 상대적인 믿음을 확대해 갈 뿐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임을 말한다.

부단히 변전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 반복에 맡기고 인위적인 조작을 하지 않는 것이 곧 무위자연이다.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는 유위문화가 인간을 얼마나 불행하게 하며 고통스럽게 하는가. 유위문화 탓으로 인간은 절망하고 좌절한다. p53

è  이는 정말 상실을 벗어나게 하는 관점이다. 문화란 이름으로 많은 것들에 얽매여 살고 있는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어떤 문화로 인해 절망하고 좌절하는가?

 

(7)  왕예의 질문

네가 알고 있다는 것이 실은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니가 모르고 있다는 것이 실은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좀 안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안다 하더라도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올바른 지식이란 참으로 말할 수 없음을 왕예는 아주 쉽게 가르쳐 준다. p55

 

(8)  장오자의 반문

참된 깨어남이 있고 난 뒤에야 인생이 한바탕 꿈인 것을 아는 게요. p57

 

고역스러운 현실을 하나의 악몽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 있다면 미처 몰랐던 어리석음들을 깨우치게 될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p58

 

옳다 그르다고 하는 것이 인간이 걸려 있는 덫인 게다. p59

 

(9)  장자의 나비와 꿈

장주가 나비로 변하고 나비가 장주로 변하는 이러한 꿈속의 변화 말이다. 이러한 변화가 장주의 꿈에서는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즐거운 변화를 아마도 장자는 물화라고 한 모양이다. 즐거운 물화에는 상대도 없고 차별도 없으며 오직 무한 변화를 서로 즐기면 된다.

장자와 나비의 꿈은 우리에게 사람은 위대한 존재이고 나비는 보잘 것 없는 벌레에 불과하다는 판단이 얼마나 성급한 판단인가를 터득하게 한다. p61

 

8.     물화에 순응하기

제물이란 있는 것이면 모두 다 같다는 말이다. 그 같음을 해명하는 것이 곧 <제물론>인 것이다. p62

 

상대적인 눈금 중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고 싫어하는 것이 있어서 사람은 어렵고 고생스럽게 그리고 절망에 빠지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이러한 상대적인 저울질에 매달려 있는 셈이다.

è  상대적인 저울질로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좌절하고 열등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다.

물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면서 서로 해치지 않고 서로 기대어서 숨을 쉬게 하므로 아웅다웅할 필요가 없게 된다. 상대적인 시비는 없어지고 시비가 없으므로 갖가지 싸움도 없어진다. 상대적인 싸움이 없어지므로 서로의 욕심도 사라진다. 욕심이 사라지므로 내 것도 없고 네것도 없어져 버린다. p63

 

<제물론>이 인간에게 생각을 새롭게 하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물론>은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물을 다스린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사람이 제일이라는 생각부터 고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항상 상대성이란 덫에 걸려서 신음하게 된다. p64

 

9.     <양생주>의 인물들

삶으로써 앎을 충족하려는 욕심이 오히려 삶을 편안치 못하게 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양생주>란 안전하게 줄을 타는 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p66

 

(1)  포정의 칼질

그 틈새를 따라 마음이 노닐고 움직인다면 마음은 물길처럼 자연스럽게 흐를 것이 분명하다. 참으로 사람은 억지로 살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람은 억지를 부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의 뼈를 상하게 하고 삶의 살을 베이게 하여 피를 흘린다. p68

 

칼을 자주 바꾸는 백정은 칼질이 서툴기 때문이다. 삶이 변덕스러운 것 역시 사는 일이 서툰 탓이다.

 

삶을 유행처럼 살수록 삶의 도구들을 하루가 무섭게 새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삶이 막막할 때는 트이게 하면 되고 삶이 딱하면 풀리게 하면 되고 삶이 고달프면 낙락하게 하면 된다. p69

 

인간의 기술이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방법일 뿐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일 수는 없는 게 분명하다. p70

 

(2)  우사의 외발

(3)  진일의 곡

손가락이 장작을 지피는 일을 다하더라도 불은 계속 타오르고 꺼질 줄 모른다. p74

 

10.  하늘이 없는 시대

두께가 없는 것이 틈새가 있는 사이에서 노니는 것은 넉넉하다고 말하는 포정의 해명은 도의 모습을 해명하고 있는 셈이다. p77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하늘에 매달리는 것이고 죽은 것은 그 매달림에서 풀려나는 것이라고 진일은 해명한다. p79

 

11.  <인간세>의 인물들

없었던 것이 있게 되자면 있었던 것이 다시 없어져야 한다. 있게 된 것이 삶이고 없게 되는 것이 죽음이라고 친다면 나고 죽음이 하나의 사건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것이면 제 목숨을 하나의 커다란 사건으로 간직하면서 오래오래 살기를 바란다. 이러한 욕망은 하나의 순리일 수도 있다. p80

 

제 분수에 맞게 그리고 쓸모 없다지만 쓸모 있게 제 삶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음을 <인간세>는 깨우쳐 준다. p81

 

(1)  공자의 변신

옛날에 가장 출중한 분은 자기부터 도를 갖추고 나서 남도 갖추게 하였지. 자기가 갖추어야 할 것이 아직 만족스럽지 못한데 난폭한 자의 행위에 간섭할 기틀이 어디 있겠느냐. p82

 

덕은 명예욕 때문에 녹아 없어지고 앎이란 경쟁심에서 생긴다. 명예란 서로 헐뜯는 것이고 앎이란 서로 다투기 위한 도구인 게다.

천하를 유학으로 진정시키겠다는 것은 인간의 하찮은 욕심일 뿐이고 해를 낳고 또한 해를 입게 한다. p83

 

상대방을 감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착각이다. 남을 감화시키겠다는 것은 오직 자기 생각에만 잡혀 있는 셈이다. p84

è  나는 이런 착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대화를 하다보면 어느 새 훈계조나 조언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일 까?

 

안회는 재계를 모른다. 먹는 것, 입는 것만으로만 재계가 된다면 무어 그리 그것이 어렵단 말인가. 몸이 가난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해져야 가능하다는 것을 모른다. p85

 

(2)  자고의 속셈

스스로 자기 마음을 섬기는 사람은 눈앞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기쁘거나 슬퍼하는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법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마음 편하게 따르는 것입니다. 이를 덕이라고 합니다. p88

 

말에는 그 말을 전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양쪽이 다 같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말을 전하는 일이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지나침이란 필요 없는 것을 덧붙이며 애써 성공하려는 것은 위태롭게 하는 것입니다.

사물의 움직임에 따라 마음을 유유히 자유롭게 풀어놓고 어쩔 수 없는 상태에 몸을 맡겨 두고 중도를 지켜 가는 것이 제일입니다. p90

 

(3)  백옥의 명답

무도한 인간과 함께 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을 안합은 알고 있었다. p91

 

충성을 하되 제대로 충성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가장 모르는 법이다. 언제 어디서나 등잔 밑은 어둡다. p93

 

사람이 사람을 지도하고 인도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의 본성에 따라야 한다. 사람의 본성은 곧 사람의 자연일 게다. p94

 

(4)  장석의 상수리나무

사람의 편에서 본다면 쓸모가 없지만 상수리나무 편에서 본다면 그 쓸모 없음이 곧 쓸모가 있는 것이 되고 만다. p96

 

너나 나나 다 하찮은 것이다. 서로 하찮은 것들끼리 서로 하찮다고 헐뜯겠는가.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는 하찮은 산인이 어찌 산목을 알 것인가.

산인이란 쓸모없는 인간이면서 자신을 대단히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소인배를 말하는 게다.

è  자신을 대단히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함으로써 나오게 되는 것들이 바로 허세가 아닐까?

무용의 용 그것은 만물을 고르게 한다. 그리고 만물을 자유롭게도 한다. p97

 

(5)  꼽추 지리소

마음이 온전치 못한 자란 누굴까? 세상을 사람의 힘으로 다스려 볼 수 있고 그러한 다스림에서 자신이 으뜸이거나 그 다스리는 방법이 자신에게 있다고 장담하는 인간은 마음이 온전한 사람이다.

마음이 잘나서 탈을 내는 사람보다 마음이 병신이어서 탈을 내지 않는 사람이 차라리 쓸모가 있다고 극언을 하고 있는 중이다.

참으로 제 잘난 사람들이 언제나 탈이고 그렇게 난사람들 탓으로 세상은 무섭게 되어 버린다. p99

 

(6)  접여의 미친 짓

지금 이 세상에서는 형벌을 면하는 것이 고작일뿐 행복은 깃털보다 가벼워도 담을 줄을 모르고 재앙이 땅덩이보다 무거워도 피할 줄을 모르는구나 p99

 

공자는 사람이 쓸모 있는 구석만을 뒤져서 사람을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들어 보려고 했다. 사람과 짐승은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 것이 그러한 것이며, 옳은 것과 이로운 것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 것 역시 그러함이다. p100

 

장자는 무엇이 편하게 살 수 있는 법인가를 접여의 노래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며,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현명한 사람이 곧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는 어리석어야 한다. 이러한 말은 우리를 얼마나 편하게 하는가. p101

è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가. 이 말은 정말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12.  자기를 지켜 내는 사람

문화가 기승을 부릴수록 마음의 몸과 마음은 불편해지는 법이다.

장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문화는 사람을 끌고 가는 코걸이인 셈이다. p103

 

재주가 탈이라는 것을 장자는 알고 있었다. 장자의 말을 듣다 보면 모르는 것이 약이 되며 아는 것이 병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p104

 

우리가 지금 몹시 고달픈 것은 못난 사람들 것은 못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잘난 사람들 때문임은 분명하다. 나는 사공이 될 테니 너는 묵묵히 노나 저으라고 얼러 대는 재주꾼이 많아서 탈이다.

당신의 훌륭함을 자랑하여 상대방에게 거역하면 탈이 납니다.

만용을 부리는 사마귀가 제 힘을 믿다가 무자비한 수레의 밥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어떻게 팔뚝을 걷고 대적하려고 했겠는가. p105

 

13.  <덕충부>의 인물들

(1)  한 발의 잘린 왕태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가라앉은 물을 거울로 삼는다. 가라 앉아 잔잔한 물이기에 그 속에 가라앉은 온갖 것들을 잔잔하게 한다.

어려운 철학을 쉽게 하는 방법은 이야기가 으뜸이라는 것을 장자는 알았던 모양이다. p109

 

사람의 마음이 복잡한 것은 온갖 사물을 다 같다고 보지를 못하고 서로 분별하려 보려는 탓이다.

덕망이 많은 사람이란 누구인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사람이다.

덕이란 참으로 자연스러움이고 그러함은 곧 자유인 셈이다. p110

 

(2)  한 발을 잘린 신도가

자산은 병신인 신도가가 자신의 동문인 것을 부끄러워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함께 나다니기를 꺼렸던 모양이다. p112

 

현자라고 모두 다 덕을 간직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여 덕을 겸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란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됨됨이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됨됨이가 정해지는 법이다.

신도가는 마음이 차라리 날개라는 말을 믿는 사람일 게다. 편안하게 날게 하는 마음이 바로 덕인 셈이다. p114

è  마음에 따라 됨됨이가 결정되는 것이라면 나는 어떤 마음이고 어떤 됨됨이의 사람일까? 왠지 무조건적으로 나만 잘났다고 생각했던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장자는 이러한 덕을 내세워 세상의 불안과 공포를, 고통과 절망을 없애 주는 자유의 세계를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p116

 

(3)  너무나 못 생긴 애태타

애태타는 자신의 의견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p117

 

대권을 맡겨도 싫다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러한 사람은 분명 현실적으로 보면 바보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p118

 

어미를 사랑하는 것은 그 외형이 아니라 그 외형을 움직이고 있는 근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p119

 

장자가 덕을 이야기하는 우화에서 한사코 병신을 등장시켜 주인공으로 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덕이란 사람의 외모에 달린 것이 아니라 속에 달려 있음을 말해 주려는 까닭일 게다. 남자는 잘생긴 여자보다는 덕을 갖춘 여인을 만나야 할 것이고, 여자 역시 잘생기고 재물을 많이 가진 남자보다 덕을 갖춘 남자를 만나야 서로 사랑하면서 삶을 누리고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잊어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잊어버리고 산다. p121

è  이건 정말 요즘 시대에 좋은 짝을 만나려고 애를 쓰고 있는 주변의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물론 쉽게 다가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여자든 남자든 좋은 짝으로 좋은 사람덕을 갖춘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인 것 같다. 이는 내게도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4)  혜자와 장자의 대화

장자도 사람에게도 정이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한 정이란 곧 자연의 정이어야 함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정이란 모든 것을 사랑하고 아껴 주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덕인 모양이다. p122

 

14.  남을 편하게 하는 사람

아무런 조건 없이 돕는 것은 분명 덕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도 역시 덕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자유롭게 하는 것도 당연히 덕이다. 그렇게 돕는 마음,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그렇게 자유롭게 하는 마음, 그것들은 덕이 깃들여진 마음새들이다.

è  얼마 전, 대가를 바라고 도울 뻔한 적이 있어서 스스로 반성한다. 대가를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대가를 받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마음이 편안하다.

덕은 사람으로 하여금 돕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자유롭게 한다. 그래서 덕이 있는 사람은 남을 무조건 편하게 한다. p123

 

자기만을 위하려는 욕심이 곧 가장 무서운 부덕이다.

è  개인주의라는 단어와도 일맥상통하는 말인 것 같다. 나 역시 개인주의가 굉장히 심한 사람이다. 나만을 위해 사람도 사물도 내게 도움이 될것인가 말것인가로 관계를 결정짓는다. 이렇게 사는게 피곤한 이유를 찾은 것 같다.

겉을 꾸미고 신경을 쓰면서도 마음속이 얼마나 검고 뒤틀려 있는가 하는 무서움은 모르거나 잊어버리고 지나치려고 한다.

말을 믿지 못하는 세상은 분명 부덕한 세상이다. p124

 

사람의 마음이 그러한 자연처럼 된다면 마음은 저절로 잔잔해져서 투명한 거울이 되어 부끄러운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을 비추어 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덕은 인간을 부끄럽게도 하고 편하게도 한다. p125

 

15.  <대종사>의 인물

그저 마음을 비우고 만물의 변화에 순응할 것을 보여주는 분이 곧 대종사이다.

대종사가 따르는 길을 대도라 하였고 현자가 따르는 길을 반야라고 했을 뿐이다. 그 길은 모두 사람을 완전히 편하게 하고 완전히 자유이게 한다.

니체의 초인은 인간에게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장자의 지인은 그러한 방법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인간에게 가르쳐 준다.

 

(1)  지인은 누구인가

지인은 자연이 하는 일과 사람이 하는 일을 안다. 사람이 하는 일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하는 그대로 지인은 살아간다. 물론 그 자연은 사람이 하는 일을 안다. 그러나 그러한 앎에 머물지 않고 그러한 앎으로써만은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을 때까지 앎을 키워 나간다.

그의 철학은 바로 그 지인을 찾아가는 길이요, 방향이었던 까닭이다. p128

 

진인에게는 좋아하는 것도 하나의 입장이며 좋아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입장이다. 하나라는 것 역시 하나의 입장이지만 하나가 아니라고 하는 것 또한 하나의 입장이다. p131

 

사람들이 분별을 잊어버린다면 분명 행복할 것이다. 여래의 말을 빌린다면 차별상에서 벗어난다면 분명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사코 그 분별의 늪에서 허우적이면서 삶을 주어 수고하게 하고 죽음을 주어 쉬게 하는 자연을 모른다. p133

è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 죽음이 쉼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속세에서 살면서 받던 온갖 스트레스들과 영원히 이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2)  지인에 오른 여우

지인은 잘못을 해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무엇이나 그저 그대로를 말하는 까닭이다. p1324

 

삶을 죽이는 자에게는 죽음이란 없지요. 삶을 살려고 하는 자에게는 삶이란 없는 겁니다. 도란 모든 것을 보내고 받아들이며 모든 것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이룩하는 거요. 이런 것을 변화 속의 안정이라 하지요. 그러한 것은 변화가 있은 뒤에 비로소 이루어지는 겁니다. p136

è  아빠가 생각났다. 그래도 아빠는 저 세상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3)  자사와 자여, 자려 그리고 자래의 대화

자연은 내게 모습을 주었네. 그리고 삶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였고 늙음으로 나를 편하게 하였고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해 주네. 그러니 내 삶을 좋다고 함은 바로 내 죽음도 좋다 함일세 p140

 

(4)  자상호와 맹자반 그리고 자금장의 대화

장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저절로 마음이 편해진다. 이러한 편안함은 분명 마음을 자유이게 한다. 운명을 넘어서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해 보게 하는 이야기는 분명 사람을 크게 한다. 사람을 여물게 하고 철이 들게 하여 부끄럽게 하면서도 당당하게 된다. 왜 그럴까? 삶을 멀리서 바라보게 하는 비밀을 던지는 까닭일 게다. p143

 

(5)  어머니의 주검과 맹손재

사람은 어떠한 변화가 어떤 바람대로 치환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탐욕은 분명 사람의 꿈이다. 장자는 이러한 꿈에서 깨어나자고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있는 곳을 옮길 뿐이지 정말로 죽는 일은 없다. p144

 

남의 눈이나 낯 때문에 예를 지키는 일이 허다함을 간파한다면 장자의 비웃음이 마음을 뜨끔하게 한다. p145

 

(6)  코를 베인 의이자

사람만이 공치사를 할 뿐이다. 은혜를 입었으니 감사하고 갚으라고 하는 것도 사람의 짓일 뿐이다. 잘됐다고 우쭐하고 못 됐다고 탓하는 것도 사람의 짓일 뿐이다. 자연은 그런 짓을 아예 갖질 않는다. 자연은 도에서 노닐기 때문이다. 그러니 허유는 지금 의이자에게 자유롭고 걸림 없이 마음이 노니는 경지를 쉽게 풀어 준 셈이다. p147

 

16.  앎을 뒤집는 스승들

앎이라는 것을 한 번쯤 뒤집어 보게 하거나 그러한 다음 그 앎을 벗어나서 스스로 앎을 새겨 보려는 마음을 동하게 하는 분도 있게 된다. 이렇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선생은 오히려 마음속에다 무엇을 담아 주려고 하지를 않는다. p150

 

그 분은 가장 유식한 사람을 만나면 아 그러냐고 응대해 주고, 무식하지만 아는 것이 병이고 반을 안다면 차라리 모르는 것만 못하다면서 비가 와도 우산이 없음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벗을 하자고 할 게다 .p151

 

17.  <응제왕>의 인물들

무심하라. 나를 위해 남을 해치지 말 것이며, 남을 위해 나를 해치지도 말 것임을 그것은 먼저 요구한다. 그리고 무위하라. 그것은 무엇이든 꾸미거나 더하거나 덜하지 말라 함을 뜻하는 셈이다. 있는 그대로 있게 할 것이며, 하면 하는 그대로 할 것이지 어떻게 있게 해야 한다든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조작을 하지 말라 함이다. 이러함이 곧 자연에 순응함이다. p152

è  무심하고, 무위하라. 쉽지 않다. 덕을 온전히 갖추게 되면 무심하고 무위할 수 있게 될까?

 

인간의 삶이 몹시 긴장될수록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마음이 가라앉는 순간을 간직해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게 된다. p153

 

(1)  늦 트인 설결

사람의 분별은 사람을 아프게 하고 불편하게 한다. 장자는 이러한 허세와 거짓말을 왜 하느냐고 넌지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p155

 

(2)  깨우쳐 주는 광접여

먼저 스스로를 올바르게 한 다음에나 세상을 다스리는 게 가능하다는 셈이다. 무엇이 스스로를 올바르게 함일까? 욕심을 내지말라.

바로 아무런 욕심을 내지 않음이 곧 자연이다. p156

 

(3)  천근과 무명인의 대화

(4)  양자거와 노자의 대화

마음을 비웠다고 말하면서 높은 자리를 탐하는 사람들이 우리 옆에서 지도자라고 군림하고 있으니 노자가 보면 무어라 할까? 그들은 모두 사냥감이 호랑이거나 아니면 개줄로 목을 매야 하는 당사자임에 틀림없을 게다. p159

 

(5)  혼줄이 난 계함

점을 귀신처럼 맞힌다는 계함도 보이는 상을 보고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할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을 마음대로 짓는 호자는 어떠한 것에도 매어 있지 않은 자유 그것인 셈이다. p161

 

무엇에고 얽매이지 않는 자유가 바로 무심함에 있음을 알려 주려는 데 그 핵심이 있었을 것이다.

명예의 표적이 되지 말라, 모략의 창고가 되지 말라. 일의 책임자가 되지 말라. 지혜의 주인공이 되지 말라. 무궁한 도를 터득하고 허심에 노닐어라. 자연이 준 것을 온전하게 하고 스스로 얻는 바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오로지 허심해지는 것 뿐이다.

마치 계함이 도망치는 것을 점을 잘 친다는 자기의 고집 탓이요, 호자가 변함 없이 살아서 숨을 쉬는 것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았던 까닭임을 겨우 알만도 하다. p162

 

(6)  죽어버린 혼돈

구멍을 뚫어 주는 짓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사람의 짓을 말한다. 그러한 짓을 문화라고 해도 될 것이다.

자연을 자본으로 고집하는 인간은 지금 그 자연에 구멍을 내고 있는 셈이다. p163

è  철새 도래지에 인간의 힘으로 철새알 모양의 철덩어리를 만들어 철새들이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만든 이명박이 생각난다.

 

18.  왕이 되어도 될 사람

자자가 칭송했던 왕은 어떤 사람일까? 무엇보다 모든 것을 하나로 보는 지인의 경지에 있는 분이 그러한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떠한 억지도 부리지 않으며 무엇을 고집하거나 무엇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왕은 무릇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말라는 등의 명령이란 것도 모르며 사람이 얽어 매는 법이란 것을 믿지 않으며,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하고 모든 것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왜 이렇게 각박하고 무섭고 조여들고 암울하게 되어 가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이 모조리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를 타고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 달리기만 하는 까닭이 아닌가.

언제나 인간의 탐욕에서 나오게 마련이다. 높은 자리를 탐하지 말라. 자기를 고집하지 말라. 무엇이든 조작하지 말라. 그리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라. 이렇게 장자는 우리에게 타일러서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p165

è  나는 높은 자리를 탐하지는 않지만, 나를 계속 고집한다. 이상하다. 도대체 나의 무엇이 나를 고집하게 만드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너도나도 왕이 되어야 한다고 아우성인 세상이 가장 무서운 세상일 것이다. 그래서 민주의 시대는 더욱 무서운 발톱을 웃음 속에 감추어 두고 있는 세상일 수도 있는 법이다.

상처를 입은 마음을 달래 주면서 왜 마음이 상처를 입게 되었는가를 타일러 주는 지인은 언제나 매서운 겨울바람이 아니라 신선하고 산들산들한 봄바람과 같은 까닭이다. p166

 

우리를 아무런 부담 없이 사랑하고 우리가 아무런 부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지인은 언제나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왕이 되어도 무방할 것이 아닌가. p167

 

제2부     내편의 장자 어록

1.     <소유유>의 어록

큰 것과 작은 것은 서로 제 나름의 관계를 간직한다. 이러한 관계를 아는 일이 무엇보다 귀중하다.

사람들은 큰 것을 큰 것으로 알려 하지 않고 작은 것을 작은 것으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p170

 

하루살이는 밤과 새벽을 모르고 매미는 볼과 가을을 모른다. p171

 

제 요량대로 아는 것을 가지고 마치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한다면 그러한 짓은 하루살이의 짓이며 매미의 짓에 불과하다. p172

 

남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것은 곧 패배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가장 불행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자기이며 공적이고 명예일 게다. p173

 

사람은 많을수록 좋다고 하기도 하고 적을수록 좋다고 하기도 한다.

사람의 욕심이란 행복만을 탐하고 불행을 거부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까닭이다. p174

è  행복과 불행은 돌고 돈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것에서든 배우고 깨닫는 것이 있다.

 

멀쩡한 두 눈으로 만물을 보면서도 그 만물을 모르고 멀쩡한 귀로 온갖 소리를 들으면서 그 소리를 듣질 못하는 사람이 진정한 장님이요, 귀머거리일 게다. p175

 

2.     <제물론>의 어록

사람과 짐승은 다르고 사람과 나무는 더더욱 다르고 사람과 돌은 엄청나게 다르다고 여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의 소리는 말소리로 듣지만 바람 소리는 말소리로 듣질 못한다.

 

사람이 사람의 소리를 말로 들을 줄 안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헛소리일 게다. 사람이 사람의 소리를 말로 들을 줄 안다면 왜 전쟁이 있고 공해가 있으며 강도짓이 있고 강간이나 치한이 있단 말인가. p177

 

사람과 사람 사이에 뜻이 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저마다 눈이 다르고 코가 다르고 입이 다르고 귀가 다르기 때문이다. p178

 

곰곰이 따져 본다면 저마다 구멍들은 남의 소리를 빌어서 내는 셈이다. 그러나 만물의 구멍들은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마치 제 구멍이 제 소리를 내는 양 착각을 범한다.

구멍마다 제 소리를 고집하면 세상은 언제나 요란할 뿐이다. p179

 

사나운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이 나일까 아니면 남일까.

결국 수많은 남이 아니라 바로 자기란 것을 알게 된다면 구멍마다 제 소리를 내려고 발버둥치는 꼴이 부끄럽게 된다. p180

 

하늘은 맑다고 기뻐하고 흐리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를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면 살수 없다고 확신하는 동물 중에서 맨 앞서리에 선다. p182

 

남의 밥에 있는 콩을 제 밥의 콩보다 크게 보는 눈은 사람의 눈밖에 없다. p183

 

서로 분별하지 않으므로 서로 다름이 없다. 서로 다름이 없으니 서로 다툴 일이 없게 된다. 서로 다툴 일이 없으므로 만물은 저마다 저절로 있게 된다. p184

è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분별하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 같다.

내 몸을 하나로 생각하듯이 만물을 하나로 생각한다면 마음이 무슨 욕심을 낼 것인가. p185

 

언제나 주인이 법을 만든다. 옛날에 임금이 법을 만들었고 지금은 백성이 법을 만든다고 한다. 백성이 법을 만드는 방법을 투표라고 한다. 투표는 숫자에 의해서 시비가 결판이 난다. p187

 

큰 지혜는 시비를 모른다.

큰 지혜는 만물이 다 하나라는 경지에 있으니 상대라는 표리의 보따리를 풀지도 않고 매지도 않는다. p188

 

천지가 하나의 수레라면 태풍은 그 수레의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일는지 모른다. p189

 

사람은 만물이 이것이거나 저것이 되어야 만물을 안다. 그리고 그러한 앎이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 되어야 한다는 착각을 옳다고 믿는 까닭에 사람은 시비의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달걀이 닭이고 닭이 달걀이라고 여기면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시비를 벗어난다.

시비가 상대라는 저울의 눈금인 것처럼 믿는 사람일수록 시비를 가리자고 삿대질을 하려고 한다. p190

 

주역의 첫마디는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로 말문을 연다. 여기서 권위도 비롯되고 질서도 비롯되고 나아가 윤리도덕도 비롯된다고 믿었다. p191

 

종교적인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그러므로 믿음의 동물도 인간밖에 없는 셈이다. p193

 

장자는 인간의 의지와 이성을 지혜로 탈바꿈하게 하는 비밀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한 비밀이 바로 한쪽에서 보면 나누어짐이고 다른 쪽에서 보면 합침이란 이야기이다. p194

 

욕심의 어리석음은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 만족해 버린다. p195

è  누군가와 만날 때, 모든 상황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이 그것에 숨겨진 의미를 아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감사할 일도 많아진다.

 

인간은 쇠거머리처럼 욕심만 가득 찬 자신의 배가 언제 터질지 모르고, 천지의 주인 눈에 띄어서 언제 내동댕이쳐질는지 모르면서 아침에 세 개가 아니라 백 개를 달라 하고 백 개가 아니라 천 개를 , 만 개를 달라고 밤낮없이 아우성친다. p197

 

무엇이든 있게 되려면 그 이전의 무엇인가는 파괴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완성과 파괴는 변화의 흐름인 것이다.

장자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문화는 없어져도 된다고 보았다. p198

 

완성과 파괴가 너무나 세차게 인간을 몰아쳐 물 먹은 시신처럼 몸만 퉁퉁 부어서 숨을 쉬려고 씩씩거리지만 숨질이 가빠서 죽을 지경인 인간을 보고 문화인이란 명패를 달기가 장자마저도 민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p200

 

사람은 이제 유만을 탐하려고 할 뿐 무를 잊은 지 오래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철학을 몰라도 살고 신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질 못한다. p201

 

무엇을 무엇이라고 집착하지 말라. 손바닥 하나로 어찌 하늘을 가릴 것인가. 차라리 손바닥을 치우고 하늘을 보라. 그러면 낮이면 구름을 볼 것이고 밤이면 별을 볼 것이다.

어딘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자고 하면 탈이다. p202

 

마음을 뒤집어엎는 일을 선이라고 한다. p203

 

만물을 새로 보는 눈을 갖고 새로 듣는 귀를 갖고 새로 말하는 입을 간직한다면 마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도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는 재주를 가질 것이다. p204

 

함부로 말하지 말라. 알아도 모른 척하라. 시치미를 떼라.

è  자나깨나 말조심. 함부로 아는 척 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 같다.

 

사람은 말을 해야 살 수 있다. 속에 있는 말을 뱉지 않으면 병이 나고야 만다. p206

 

슬프다고 말하는 것보다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슬픔이란 말보다 더 참말이다. 기쁘다고 말하는 것보다 함박 웃는 웃음이 기쁨이란 말보다 더 참말이다. 이처럼 참으로 말을 하려면 말을 말아야 한다. p207

 

호주머니에 돈이 가득 든 사람보다 마음이 욕심으로 게걸들지 않은 사람이 항상 부자인 셈이다. p208

 

가장 용감한 사람은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가 알 것인가. p209

 

먹는 버릇이 거처를 만들어 내는 법이고 자는 버릇이 거처를 이루어 내는 법이다.

올바른 거처를 안다는 것은 올바르게 산다는 말로 통한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사람은 올바른 생각이나 이해나 판단을 스스로 내릴 줄을 모른다. p211

è  . 정말 장자의 이런 사상은 너무 좋다.

 

달걀은 달걀이면 족하고 탄환은 탄환이면 족할 뿐이다. 그대로를 보면 될 것을 무엇이 되리라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이미 거짓말이 되어 버린다. p213

 

아내는 생은 좋은 것이고 사는 나쁘다고 구별을 해서 통곡을 하였고 남편은 그러한 구별을 넘어서 잊었으므로 노래를 불렀던 셈이다. 그러한 노래는 한계가 없는 곳에서나 부르고 들을 수 있는 노래일 게다. p215

 

만물의 변화를 사람의 뜻으로 맞추어 보려는 것은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나 마찬가지일 게다. 이러한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려면 장자처럼 나비의 꿈을 꾸어야 할 게다. 그리고 만물의 변화가 바로 자연임을 헤아린다면 장자가 나비가 되어도 되고 나비가 장자도 되어도 된다는 자유를 누릴 것이 아닌가. p217

 

3.     <양생주>의 어록

사물을 제대로 보려면 눈을 뜨지 말고 눈을 감으라는 말이 있다. p218

 

속이 편하자면 속이 자유로워야 한다.

새장에서 나온 들새처럼 되어야 한다. p221

 

4.     <인간세>의 어록

명예욕이 탐하는 덕이란 지렁이의 시체와 같다. 그리고 그러한 위인에게 몰려드는 사람이란 지렁이의 썩은 살을 한 점 얻어먹자고 모여드는 먹거리꾼에 불과할 뿐이다. p225

 

명예의 욕심은 사람을 시기하게 하고 지식의 욕심은 사람과 다투게 한다. 사람을 병들게 하여 앓게 하는 것이 바로 명예욕이고 지식욕인 것이다. 사람을 병들게 하여 앓게 하는 것이 바로 명예욕이고 지식욕인 것이다.

마음이 빈 방이 되면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으로 가득하게 된다. 이러한 마음을 텅빈 가득함이라고 해도 된다. p227

è  텅빈 가득함..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답게 보이려나

 

텅 비면서 가득하게 하려면 먼저 눈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귀를 버리고 입을 막아야 한다. 그러면 마음이 눈이 되고 귀가 되고 입이 되어 버린다.

거짓을 범하지 않으려면 분별하려는 눈을 감아야 하고 분별하려는 귀를 막아야 하고 분별하려는 입을 닫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p228

 

행복이란 편안한 마음인 까닭이다.

편안한 마음은 텅 빈 방에 햇빛이 가득한 모습과 같다. 행복은 따뜻하고 안온하며 언제나 밝다. p229

 

마음을 있는 그대로 줄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의 씀씀이가 헤프지만 남용은 하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을 그대로 줄 수 있는 사람은 흔치가 않다. 말하자면 마음씨가 좋은 사람은 언제나 돋보이는 법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을 사고 팔다 보면 마음에 값이 붙어서 더해지기도 하고 깎이기도 한다. 이해타산이란 바로 이러함이다. p231

 

마음을 그대로 주되 지나치지 않으면 우선은 탈이 없게 된다. p232

 

말이란 그러한 득과 실 사이를 널을 뛰듯이 놀아나거나 물방아처럼 돌고 돈다. 마음의 널을 득과 실이 번갈아 뛴다면 마음이 어찌 안전할 것이며 마음의 물방아가 득과 실의 방아로 찧어 댄다면 마음이 어찌 부서지지 않고 안전할 것인가.

 

얼마가 과하고 얼마가 모자람인지 사람은 모른다. 왜냐하면 사람은 많을수록 좋다는 욕심과 적을수록 좋다는 욕심을 함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p235

 

사람들은 무병한 세상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이 약 저 약을 만들고 사서 마시고 먹는다.

더함도 아니고 덜함도 아님을 중도라고 한다. p236

 

힘이 하나의 재주라고 믿게 되면 탈이 난다.

만용 중에서 가장 비겁한 것은 힘만 믿고 덤비는 경우이다. p238

 

먹는 것도 이처럼 알맞게 먹어야 하고 그 양을 넘어서면 뒤탈이 나는 법이다.

삼가는 사랑이란 뭉근 불처럼 명이 길지만 지나친 사랑은 센불처럼 활활거리다가 졸지에 꺼져 버린다. 그렇게 해서 남는 재를 미움이라고 한다. p239

 

산인은 그럴 듯한 탈을 쓰고 자기에게 이로우면 쓸모가 있고 해로우면 쓸모가 없다고 단정해 버린다. p240

 

쓸모없는 나무를 산목이라고 한다.

그러니 산목이라 나무 편에서 본다면 가장 쓸모가 있는 셈이다. p241

 

가진 것이 별로 없다면 문에다 자물쇠를 놓을 필요가 없을 것이고 도둑을 물어뜯을 개를 키우지 않아도 되어 밤이 되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단잠을 자게 된다. 단잠을 자는 마음이란 언제나 가볍다.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다. p243

è  나는 지금 마음이 무거웠다가 가벼웠다가 요동을 친다. 내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들과 무겁게 하는 것들을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생각해 본다는 것 자체가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제 자랑에 겨워서 노닐다가 제 꾀에 제가 빠져 험한 꼴을 당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입질에 오르내리게 된다.

저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도 등신이고 남들이 알아주게 수작을 부리면 더더욱 등신이 되어 버린다. 등신이 겹치면 천치가 되는 셈이다. p244

 

5.     <덕충부>의 어록

무상이란 변화의 수레바퀴가 멈추지 않고 돌고 돈다는 말이나 같다.

노자는 도의 움직임을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기쁘기도 했고 슬프기도 한 것이 삶의 자연이라면 기쁨이 슬픔으로 되돌아오고 슬픔이 기쁨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된다. p247

 

자연은 미운 놈만 골라서 젖게 한다거나 이쁜 놈만 골라서 젖게 하지 않으며 이것에게는 햇빛을 주고 저것에게는 햇빛을 거두는 짓을 모른다. p248

 

덕이란 무엇인가? 한사코 분별하려는 안경을 깰 수 있는 망치 같은 것이다. p249

 

사람도 멈춘 물처럼 된다면 제가 제 속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사람이 철이 들었다는 것은 스스로 제 속을 남몰래 들여다볼 줄을 안다는 말이다.

고요한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멈춘 물속처럼 거울이 되어 제 모습을 제가 보게 되고 제가 지은 밝은 곳이나 어두운 곳을 숨김없이 보게 된다. p250

 

마음이 살아서 숨을 쉬려면 고여 있어야 하고, 마음이 상해서 썩으려면 한사코 흘러야 한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소인은 정신없이 쏘다녀 마음을 잃어버리고 대인은 때때로 가만히 마음을 가누어 그 마음이 거울이 되게 하여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는 게다. p251

 

사람을 잃게 하고 나아가 자유를 잃어버리게 하는 명성이 사람의 마음에 걸린 수갑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손에 수갑이 채워지는 것은 부끄러워하면서 마음에 수갑이 채워지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p257

 

덕이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풍겨 나오는 모습에서 마음을 서로 따뜻하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 덕은 고작해야 침묵이 아니면 미소와 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것을 응해 주면서 품 안에 안듯이 감싸 준다. p258

 

덕이 뛰어나면 겉 따위는 잊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잊어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잊고 있다. 이러한 잊음을 성망이라고 한다.

재주는 작고 덕은 크다. p259

è  이 말은 내게 큰 힘이 된다. 겉 따위는 잊게 만드는 것.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치아교정을 하려고 그렇게 애쓰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처럼 덕은 올라가는 법보다 내려오는 법을 줄꾼에게 잊지 않게 하고 외줄에서 재주를 부리다가 땅에 내려와 피로에 잦은 심신을 쉬게 하는 일을 잊지 않게 한다. p260

 

사람에게만 삶의 고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만이 그러한 고통을 이겨내려는 마음을 먹는다. 그런 마음먹기가 바로 인위인 셈이다. 그 인위에서 사람의 삶이 더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을 인간은 알면서도 그 인위를 버릴 수가 없다. p261

 

문명은 자연을 남용하고 훼손하고 엄청난 상처를 앓게 하여 몹시 화나게 한다. 자연이 노하면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옛 사람은 알았지만 현대인들은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p262

 

나를 해치는 것이면 무엇이든 증오하고 오로지 나를 사랑해 주는 것만을 사랑한다는 단서가 붙어 다닌다. 이처럼 사람의 정은 항상 단서 조항을 달아두고 저울질을 한다. p264

 

사람이 자연인 것을 안다면 마음이란 창고의 문짝은 헐어져 버리고 감추어 둘 것도 없고 편애할 것도 따로 없어져 버리게 된다. p266

 

이러한 정이란 많을수록 탈이고 없어질수록 다행이다. 그래서 장자는 인간에게 정이란 것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는 인간이란 바로 자연인 까닭이고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사람을 말하기 때문이다. p267

 

6.     <대종사>의 어록

개는 성한 것도 먹고 쉰 것도 먹고 썩은 것마저 먹는 놈이어서 그 똥은 무엇보다 거름 구실을 잘 해낸다.

무수한 책을 읽어서 아는 것과 그 노인이 알고 있는 것은 서로 비교되질 않는다. 하나는 책으로 배웠고 하나는 살아가면서 자연을 통하여 알았기 때문이다. 자연을 통해서 배우게 되면 자연이 하는 일은 무엇이고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를 나름대로 배우게 된다. 그리고 자연이 하는 일을 사람이 범할 수 없음을 알고 겸손하게 되지만 책을 통해서 배운 사람은 겁을 모른다. p269

è  겸손해져야겠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참 아는게 많이 없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입이 가벼운 사람은 남의 말하기를 탐한다. 본래 말이란 눈사람을 닮아서 굴릴수록 불어나는 법이다. p271

 

제 속이 텅 빈 사람은 밖의 일로 자신을 결정해 버린다.

욕심이 사람을 봉사로 만든다고 한다. 눈에 무엇이 씌어서 도둑질을 했다고 한다. 그 무엇이란 무엇인가? 바로 욕심인 게다. p272

 

무심히 자연을 따라가고 무심히 자연을 따라올 뿐이다. 그 시초를 모르고 그 끝을 알려 하지 않는다. p273

 

문명이 인간을 편안하게 해 준다고 환호하다가 문명이 강요하는 부담을 느낄 때마다 그저 푸념 삼아 자연에 살리라 이렇게 넋두리나 하는 셈이다. p274

 

땅을 죽이고 무엇이 살아 남을 것인가. 편애란 이러한 제초제 같은 것이다. p276

 

무엇이든 다 안다는 선비만큼 선비가 아닌 자는 없으며 내가 전문으로 하는 분야에서는 나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자만하는 선비가 있다면 그는 선비가 아니라 미친 사람일 게다. p277

 

내 목숨이 아까우면 풀잎의 목숨도 아깝기 때문이다. p278

 

자연은 자연대로 하고 사람은 사람대로 한다. 사람대로 하는 것을 자연대로 하면 어리석다 하고 사람대로 하면 똑똑하다고 한다.

여기서 어리석음은 어진 곳으로 향하고 똑똑한 것은 무서운 곳으로 향함을 알게 된다. p279

 

목숨이란 무엇인가? 사는 것과 죽는 것 사이의 숨결일 게다. p280

 

모든 목숨은 먼저 제 본능대로 살아가고 죽어 간다.

자연을 따르면 자연은 한없이 따뜻하고 어기면 자연은 한없이 냉엄하다. p281

 

고친 코가 탈이 나서 본래의 코보다 더 흉하게 문질러지는 경우를 당하여 아무리 울고 불어도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길이 없게 되어 버린다. 자연은 단 한번의 모습을 주고 마는 까닭이다. p282

 

말하자면 땀을 흘려서 제 몸을 움직이게 하는 기운을 자연에서 얻어내야 한다. p283

 

몸은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살아 있는 모습이란 불과 물이 만난 것이고 죽은 모습이란 바로 물은 물대로 불은 불대로 흩어지는 것과 같은 셈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분명 죽음은 쉬는 것이다. 이것도 자연이다. p284

 

자연은 모든 것을 드러내 놓고 감추어 둔다. 낮이면 모든 것을 보여 준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모든 것을 감추어 버린다. 이렇게 큰 손이 인간에게는 없다. p286

 

도둑은 항상 제 발에 걸리는 법이고 그 법은 자연이 쳐놓은 그물인 게다.

시간이란 있다면 있는 것이고 없다면 없는 것이다. 사람은 시간이 있다고 하지만 하늘이나 땅은 시간을 모른다. p287

 

삶을 죽이는 자에게 죽음이란 없다. 삶을 살려고 하는 자에게 삶이란 없다(이것이 도이다). 도란 모든 것을 보내고 모든 것을 맞아들이며 모든 것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이룩한다. p288

 

나를 위한 욕망을 버리면 곧장 죽어 버리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범부이다. 나를 위한 욕망이란 곧 소유욕으로 나타난다. 소유욕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려고 한다. 좋은 것이면 많이 간직하기를 바라고 나쁜 것이면 하나도 갖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이 소유욕의 이중성이다. 삶을 죽인다는 것은 이러한 이중성을 죽인다는 말과 같다.

편애함이란 한쪽을 그만큼 미워함을 말한다. p289

 

누가 죽음과 삶, 있음과 없어짐이 하나임을 알 수 있을까. p290

è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가슴으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다.

 

7.     <응제왕>의 어록

많이 알면 알수록 미련스러울 수가 있다. p292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물품은 만 가지로 늘었지만 생활이 편한 것은 하나도 없다. 만 가지의 물건을 사느라고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자니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녀야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남과 팔씨름을 하듯이 경쟁을 하려니 숨이 목구멍까지 차서 헐떡거린다. p293

 

성스러운 곳에 구멍을 파고 사는 쥐는 현명한 쥐이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일게다. 현명한 사람이 제왕이 된다면 안심하고 살 수 있을 것이고 폭군이 제왕이 된다면 하루도 안심하고 살 수 없는 일이 아닌가. p294

 

누가 더 삶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인가. 나무 밑에서 양반 체면을 지키고 있는 양반인가. 아니면 홀랑 벗고 냉수욕을 하고 있는 상놈인가. 넓은 들판에 사는 사람은 냉수욕을 하는 상놈이고 갇혀서 사는 사람은 바로 양반이란 위인일 게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란 매인 몸을 자랑거리로 내놓는 어리석음일게다. p296

 

속 없는 놈을 바람꾼이라고 한다. 바람꾼일수록 겉멋을 부린다. 그리고 옷이 날개라고 칭얼거리면서 좋은 옷만 탐하고 마음은 시궁창의 구정물처럼 썩어 문드러져도 아랑곳 않는다. p297

 

자연에는 선이란 것과 악이란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오로지 사람이 이것은 선이고 저것은 악이라고 분별해 놓고 얽매여 있을 뿐이다. p298

 

이렇게 만물이 하나일 때 이것은 저렇고 저것은 이렇다고 따질 것은 없는 일이다. 이 얼마나 편한가. p299

 

허식을 깎아 내 버리고 소박함으로 돌아가 무심히 일이 일어나도 얽매이지 않는다.

 

삶의 대부분은 사서 하는 고생으로 연속된다.

마음이 소박하면 그렇게 화를 낼 것은 없다. p300

 

허식이란 허세를 넒힐수록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옥죄이게 한다.

그저 걸림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살기를 바란다. 이것이 삶의 독립이다.

소박함은 꾀를 부리지 않는다. 언제나 성실할 뿐이다. p301

 

경쟁의 시대는 시험을 치르는 시대일 게다. 시험을 치면 붙고 떨어지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무엇을 물었을 때 잘 알아야 정답을 맞힐 수가 있게 된다. 그렇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가장 실력 있는 자는 누구일까? 지식의 주인이 되어야 가장 뛰어난 실력자가 되는 법이다.

지식의 주인이 되지 말라고 하는 말은 당치 않은 말이 된다. 그러니 장자의 말은 실없게 된다. 그러나 성적이 나빠서 죄송하다고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초등학교 학생의 부모에게 가서 물어 보라. 그러면 그 부모는 장자야말로 참말을 하고 있다고 증언할 것이다. p303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평면 거울이 되어서 들여다본다면 만신창이가 된 자신을 보여 줄 것이 아닌가. 먼저 사람이 철이 들자면 제 모습을 제 모습대로 보고자 할 일이다. p305

 

만물은 제 스스로 있을 뿐이지 인간의 자원이 되어 문명의 재료가 되려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문명이란 송곳이 마지막 구멍을 뚫게 되는 시간은 언제일까? 그날이 오면 인간도 화석으로 발견되는 맘모스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게다. p306

 

물론 육신의 병은 문명이 내놓은 의술로 고칠는지 모르지만 살기와 광기로 가득 찬 인간의 마음을 고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 정신의 살기와 광기는 바로 문명이란 송곳이 인간의 마음에 뚫어 놓은 구멍이기 때문이다. p307

è  살기와 광기로 가득 찬 인간의 마음. 참 무서운 말이다. 실로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는 살기와 광기로 가득 찬 사람이 많다. 더 무서운 것은 어느 누구나 살기와 광기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IP *.246.72.28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32 No 40 .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file [2] 미스테리 2014.02.04 2944
1631 3-23. 나의 살던고향은 꽃피는 자궁 - 이유명호 콩두 2015.01.31 2944
1630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lt;이권우&gt; [2] 놀자 2005.09.19 2945
1629 [12] 오쇼 라즈니쉬 자서전-태일출판사 [2] 범해 좌경숙 2009.06.22 2945
1628 우리가정말알아야할 삼국유사 -고운기 file 학이시습 2012.09.11 2945
1627 Book Review_06 [생각의지도/20050505] [1] 이익상 2005.04.29 2946
1626 신화의 힘- 조셉 캠벨, 빌 모이어스 file [1] [2] 세린 2012.04.09 2946
1625 오뒷세이아 - 호메로스 [3] 레몬 2012.05.15 2946
1624 3번 읽은 파우스트 file 레몬 2013.03.25 2947
1623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_ 나탈리 골드버그 레몬 2013.03.04 2948
1622 블루오션전략 -김위찬, 르네 마보안(完) 손수일 2005.06.09 2949
1621 발칙한 한국학.. 김미영 2005.09.24 2950
1620 부유한 노예 [3] 바람처럼 2008.02.09 2950
1619 컬처 코드 [1] 예원 2009.12.15 2950
1618 북리뷰 64 : 모리의 마지막 수업 - 모리 슈워츠 범해 좌경숙 2011.01.02 2951
» 33. <장자,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 윤재근 file 미나 2011.12.12 2950
1616 아직도 가야할 길 - 스캇 펙 신재동 2005.10.05 2954
1615 국화와 칼 -일본 문화의 틀 예원 2009.12.06 2954
1614 난중일기 - 이순신 [1] 루미 2011.06.06 2955
1613 화인열전 -유홍준(完) 손수일 2005.06.30 2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