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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5일 13시 02분 등록
[아내 - 순종 혹은 반항의 역사]

(메릴린 옐롬/ 이호영 역 / (주)시공사, 2003)

(A History of the Wife by Marilyn Yalom, 2001)


* 저자에 대하여

  매릴린 옐롬(Marilyn Yalom)은 스탠퍼드 대학교 <여성과 성별 연구소>에 재직하고 있는 사회문화사의 대가이자 저명한 원로 여성학자이다. 처음 불어와 비교 문학 교수로 하계에 발을 디뎠던 그녀는 1970년대 중반 여성해방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학자로서 평생이 보장되는 교수직을 버리고 스탠포드 대학 연구소의 부소장으로서 학문적인 연구작업에 몰두해 왔다.

  199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교육 공로 훈장을 받은 바 있고 작가이자 교수인 어빈 옐롬과 결혼하여 네 자녀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는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저서로는 <유방의 역사 A History of the Breast> <냉혈 자매 Blood Sister> <여성의 기억 속에 아로새겨진 프랑스 혁명 The French Revolution in Women's Memoty> <모성, 죽음, 그리고 광기의 문헌 Maternity, Mortality, and the Literature of Madness>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되고 잘 알려진 네 번째 저서인 <유방의 역사>는 ‘여성의 유방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도발적인 주제를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통해 다루고 있다고 하니(구입 후 아직 읽지는 못했음), 그 다음 저술인 <아내>와 많은 부분 연결이 되리라 생각된다.    

  저자는 <아내>에서 남성과 남성이 만들어낸 법률과 제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아내의 역사는 속박과 순종의 역사였다고 말한다. 고대에 아내는 남편의 재산이었다. 중세에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은 합법이었으며 아내는 출산의 그릇이었다. 불과 백오십여 년 전까지도 결혼하면 여성의 모든 권리는 남편에게 넘어갔다.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아내의 역사는 고난과 슬픔의 역사였다. 하지만 오늘날 전통적인 의미의 아내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책은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결혼과 아내상의 변화를, 실존했던 여성들의 삶과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제도와 관습을 중심으로 조망하여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또한 인습과 맞서 싸워 나간 평범한 여성들의 내밀한 속내와 살가운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구약성서, 그리스/로마 신화, 중세와 근대의 수많은 문학작품, 현대의 각종 신문기사와 광고, 엄청난 연구자료 분석 등을 통해 아내의 개념과 지위, 역할 등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떻게 변해 왔는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설명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여성의 지위향상과 남녀평등을 이루어온 동력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또한 앞으로 어떻게 결혼과 아내상이 바뀌어 갈지 추측할 수 있게 된다. 물론 46년간 결혼 생활을 하며 네 자녀를 길러낸 어머니이자 학자로서, 여전히 보다 남녀가 평등하고 서로 사랑하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는 저자가 가장 멋지고 존경스러웠다.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들어가는 글 - 아내는 멸종 위기인가?


‘마음이 끌리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이 이 남자와 결혼한다면 당신과 그 사람 둘 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해 줄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결혼하면 안 됩니다. 결혼은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그 사람과 결혼한 뒤) 스스로를 팔아넘겼다고 느끼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를 놓아주세요.’

(1998년 한 여성의 상담에 대한 유명 상담자의 신문 답신)  [9]

오늘날 더 이상 결혼을 강요받지 않는 독신모는 사랑-대부분의 성인이 경험한 적 있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하는, 섹스와 열정이 뒤섞인 도취-의 이름으로 결혼할 수 있다. 옛날 여성들은 다른 이유들 때문에-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 가족간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서, 아이를 낳기 위해서, 외로움 때문에, 다른 여자들처럼 무난하게 살기 위해서- 결혼을 했다.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타고난’ 소명을 완수했다는 사실을 세상에 대고 크고 분명하게 말하는 일이었다. 행복한 결혼을 했든, 그렇지 않든 결혼반지는 여성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었다. [11]


(저자는) 지난 50년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나타난 아내상의 변화가, 매우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변화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12]


‘아내’와 ‘어머니’ 사이의 경계는 분명치 않다. 아내의 의무와 어머니의 책임은 종종 겹치고 때로는 충돌하기도 한다. 아내이자 어머니인 여성이라면 누구나 아이에게 쏟는 시간, 정성, 에너지, 물질적 자원에 대해 불평하는 남편을 상대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여성은 아이들이 배우자간의 유대-부부가 두 사람의 사랑의 결과물을 통해 미래를 계획하게 하는-를 이끌어 내는 존재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경우일지라도 부부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공유하기 마련이다. [13]


아내들이 부양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남자들이 남성성을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지 고민하는 가운데, 양성간의 불만은 사상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여성이 가사를 전담해야 한다는 낡은 생각은 사라졌지만 가정과 직장에서 평등하게 일을 분담하는 새로운 결혼 유형은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15]


오늘날 남자들은 섹스, 사랑, 자식, 가사 노동을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돈까지 벌어 오는 아내를 찾고 있다. [18]


나는 아내를 가진다는 것, 그리고 아내가 된다는 것이-특정한 조건하에서는- 여전히 ‘행운’이라는 믿음을 갖고 이 책을 썼다. 그리고 그 조건에는 부부간의 평등, 상호 존중, 그리고 애정이 포함되어 있다.

최상의 조건하에서라면 우리는 결혼 생활을 통해 사랑이 넘치는 관계에서 자신을 발전시키고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를 통해 타협하는 방법과 서로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배운다. 우리는 인생이 우리 앞에 던져 놓은 호된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배우자의 위안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살가운, 생의 입회인과 함께 우리의 생각과 희망, 기쁨과 두려움, 슬픔과 경험, 그리고 추억들을 공유할 수 있다. [18]


남자 여자 모두 자신의 자유를 어느 정도 포기하지 않고서는 오랫동안 누군가의 배우자로 살 수는 없다. 결혼 생활은 융통성과 타협,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 그리고 끈질긴 인내를 필요로 한다. [19]


“나는 오늘부터 당신을 나의 아내(혹은 나의 남편)로 맞아들여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는 그날까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맹세합니다.” 원래 아내는 “복종할 것”도 함께 맹세했지만 얼마 전부터 이 대목은 삭제되었다. [19]


제 1장 재산 목록 1호는 아내 - 고대 세계의 아내들: 성서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아내상

오늘날 이러한 기대에 저항하는 아내들은 결국 2,000년 넘게 지속되어 온 관습에 반역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25]


성서에 나타나는 아내상

유대교와 초기 그리스도교를 놓고 생각해 볼 때, 두 종교의 결혼관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유대교도는 종족 번식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허락받은 유일한 수단이 결혼이라고 믿었다. 때문에 유대인 남성과 여성에게 결혼은 의무였다. 토라와 탈무드에 등장하는 많은 랍비들은 결혼의 신성함을 강조하고 있다. “아내를 얻는 것은 행복을 얻는 길, 야훼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잠언 18:22)  [44]


아내가 히브리인들에게는 “행복”으로,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구원의 방해물로 간주되었지만,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모두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등하며 일생에 걸쳐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여긴 것은 마찬가지였다. [45]


“아내들은 주님을 대하듯 자기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22)

바울 “부녀자들은 교회에서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발언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율법도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오히려 복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무엇인가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제 남편에게 물어야 합니다. 부녀자들이 집회에서 발언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1서 14:34-35) [46]


결혼은 하느님이 결정한 것으로 사람이 나눌 수 없는 결합 (마가복음 10:9) [47]


앞으로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교도 여인들은 마리아의 불가사의한 순결과 자신의 세속성 사이의 간극을 느끼게 될 것이다. [48]


고대 그리스 시대의 아내들

결혼의 후견인이자 여성의 보호자이며 제우스의 누이인 동시에 아내인 여신 헤라 [49]


페넬로페는 살아서 오디세우스를 만나려는 희망을 접고, 마음이 내키지도 않으면서 변장한 거지를 자신의 남편으로 맞아들였다. 그를 차갑게 맞이하고 그의 신원을 알기 위해 시험을 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유명한 책략가인 남편만큼이나 꾀가 많음이 밝혀졌다. 페넬로페가 고안한 시험은 부부의 동침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가 나이든 보모에게 침대를 침실 밖으로 옮기라고 지시하자 오디세우스는 불같이 화를 내며, 페넬로페에게 부부의 침대는-그가 청년 시절에 만들었던- 침실 전체를 이루고 있는 올리브 나무의 일부이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음을 상기시켰다. 이것으로 그가 오디세우스임이 증명되어, 페넬로페는 “우디세우스에게 달려가, 그의 몸에 팔을 두르고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 페넬로페가 몸을 내 맡기므로 오디세우스의 마음은 풀렸고, 자신의 팔에 그토록 충실하고 순종하는 아내가 안겨 있었기에 그는 눈물을 흘렸다.” 충실과 순종, 현명함과 정숙함, 이것들이 이상적인 아내인 페넬로페를 평하는 말이다. ...

그들의 재미있는 술수와 친밀함, 오랜 별거에도 희석되지 않는 사랑, 성적인 쾌락으로 가득한 침실에서의 재결합, 그리고 ‘재미있는 대화’ 때문이다. ...

“그는 고결한 아내가 그의 집에서 감내했던 모든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들었다.  ... 그리고 그의 차례가 돌아오자 위대한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적을 괴멸시켰던 영웅담을 늘어놓았다.” 어떤 부부가 사랑을 나누기 전에, 혹은 사랑을 나눈 후에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워하지 않겠는가? [51~53]


법, 관습, 의식을 통해 결혼은 보호받았지만 그리스 시대에 결혼은 절대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58]


아테네 남자는 세 명의 여자를 취할 수 있다

세 명의 여자란 즉 후계자를 낳고 재산을 돌보는 아내, 자신의 몸에 매일 관심(성 관계를 의미)을 가지는 첩, 그리고 쾌락을 나누기 위한 헤타이라(매춘부)를 말한다. [59]


결혼은 후사를 보고 집안 살림을 잘 꾸려 나가게 해 주는 제도로서 존중되었다. 영혼의 반려에 대한 갈망을 결혼을 통해 채울 수 있다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았다. [60]


그리스의 아내는 자신의 주인이 아니었다. “합법적인 후사를 보기 위하여” 아버지가 남편에게 넘긴 존재인 아내는 성인기의 가장 많은 시간을 아이를 배고, 기르고 돌보며, 음식을 준비하고 의복을 만들며 보냈다. [62]


로마의 아내들

공화정 후기와 제정의 시대가 도래하자, 좀 더 평등주의적인 사상-남편과 아내의 파트너십을 강조하는-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63]


여성이 결혼 후에 남편의 ‘피보호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명목상 아버지의 후견을 받는 상태로 남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65]


여성들은 처녀일 것이, 대신에 남성들은 -특히 귀족 계급에서- 매우 예절바르고 믿음직하며 활력이 넘칠 것이 요구되었다. [66]


낙태는 흔한 일이었고 2세기 말까지는 법으로 처벌되지 않았다. 그리고 여자아이에 대해 더 많이 행해졌던 영아 유기를 방지할 법이 없었다. [70]


남성들이 아무런 비난을 받지 않고 쉽게 이혼을 요구하고 또 성취할 수 있었음

여성 또한 친정아버지의 동의를 얻기만 하면 이혼할 수 있었다. [72]


남편이 관리하던 결혼 지참금은 이혼할 경우에 아내에게 반환되었다. [75]


남성의 동성애 관행이 일반적으로 용인되었던 반면에 여성의 동성애가 고대 로마에서 한결같이 비난받았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89]


플루타르코스 “대화편”

“결혼한 부부에게 성교는 매우 신비한 애정, 친교의 기초가 된다”

부부 사이에 싹트는 “애정과 신뢰”, “우애”

“에로스가 부부의 결합에 거하는”것보다 위대한 조화는 없다. [90]


소유 관계에서 제한적이나마 동반자 관계로

고대 그리스에서 젊은 여성은 결혼하기 전까지 아버지의 소유였다. 그 다음에 그녀는 아버지에 의해 남편에게 ‘주어졌다’. [90]


시간이 지남에 따라 로마에서 신부의 동의가 법적, 사회적 무게를 지니게 된다.

실제로는 아마도 아버지가 남편의 선택에 관해 딸에게 의견을 묻고 딸이 거부하면 결혼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스 시대의 선배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혼의 가능성이 제정 로마의 여성들에게는 열려 있었다. [91] 


전통적인 인도와 고대 로마의 가족에게는 사랑이 결혼 후에 오는 것이 정상이었다. 사랑이 오지 않는다 해도 가정이 평화로우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은 안정적인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었다.

‘과도한 것은 피해야 한다’는 그리스의 이상과 ‘진실해야 한다’는 즉 가정과, 친구와, 조국에 충실해야 한다는 로마의 이상이었다. [92]


제 2장 섹스는 타락의 지름길 - 중세 유럽의 아내들, 1100~1500년

법적, 종교적 고려

결혼은 남자가 종교적, 법적 근거를 통해 아내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제도였다. [99]


대부분의 부부들은, 성 행위는 심지어 부부간의 정사조차도 원죄의 타락을 가져다준다고 여겼다. [111]


중세의 신학은 육체는 죄악에 이르기 쉬우며 결혼은 필요악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다. [112]


엘로이즈와 아벨라르 이야기

(엘로이즈) “아내라는 이름이 더욱 신성하고 강해 보이겠지만, ‘연인’이라는 이름은 첩이나 고급 매춘부라는 이름처럼 감미롭다.”


낭만적인 사랑의 탄생

사랑 “정신의 어리석음, 막을 수 없는 불길, 포만감 없는 굶주림, 유쾌한 통증, 달콤한 즐거움, 기분 좋은 광기” [128]


어머니이자 또 다른 노동자들

그리젤다와 바스의 아내

마저리 켐프의 이야기

크리스틴 드 피장

이탈리아의 지참금 문화

루잔나와 조반니의 이야기


결혼은 두 명의 배우자들이 각자의 재산과 능력을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168]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그이를 오랫동안 그리워해 왔습니다.” (남편에 대한 사랑) [169]


제 3장 청교도의 침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나?

 - 독일, 영국,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아내들, 1500~1700년

루터 시대 독일의 결혼

아내가 남편의 명령에 따르기는 하지만 아이들을 교육하고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데 남편의 공인된 동반자가 되는 형태였다. [191]


튜더와 스튜어트 왕조 시대 영국의 결혼

(청교도 신학자 윌리엄 구즈) 남편을 머리에, 그리고 아내를 가슴에 비유하면서 생존을 위해서는 둘 다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엄격한 청교도 아니면 온건한 국교회에 소속되어 있던 그 시대의 다른 성직자들과 마찬가지로 구즈는 가부장제의 질서가 하늘의 별자리의 질서만큼이나 바귈 수 없는 것이라고 믿었다. [195]


최상의 경우라면 그녀는 재정적인 후원자 겸 다정한 동반자를 얻을 것이다. 한 신심 깊은 목사의 표현에 따르면 아내와 남편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동료”가 될 것이다. 그녀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성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사랑으로 보살필 합법적인 자식을 낳을 수 있고 이들은 자라서 늙어가는 그녀를 돌보아 줄 것이다. 성스러운 결혼의 반열(이제는 독신보다 더 찬양받는 상태)에 입문함으로써 그녀는 그리스도교인으로서의 소명을 다할 것이다. [211]


이 시기 영국인들의 결혼관을 대륙의 결혼관과 구별지었던 것은 최선의 결혼이란 근본적으로 동반자 관계의 한 형태라는 믿음이었다.

한 쌍의 그리스도교도는 손에 손을 맞잡고 한 걸음씩 영생을 향해 자신들의 길을 가는 동시에 지상에서의 쾌락과 의무들을 함께 누리라고 권유받았다. [212]


청교도의 여행가방

(앤 브래드스트리트-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청교도 여인, 시인)

“당신의 살로 만들어진 살, 당신의 뼈로 만들어진 뼈

 저는 여기에 당신은 거기에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하나입니다.” [226]


미국의 여성들은 당연히 가사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고 가끔씩은 요리, 실잣기, 뜨개질, 바느질, 자수를 잘한다는 데 자긍심을 느꼈다. [239]


제 4장 혁명의 그늘에 선 사람들 - 공화국 미국과 프랑스의 아내들

18세기에 서양 여성들은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정치의식이었다. [253]


식민지 미국의 완벽한 아내


아내이자 애국자였던 애비게일 애덤스

그녀는 새로운 형태의 부부 관계 즉 남편이 아내의 주인이 아니라 부드럽고 애정이 넘치는 아내의 친구가 되는 관계를 제안했다. [262]


(애비게일의 남편, 존 애덤스- 미국 제2대 대통령-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

“나의 기쁨과 슬픔에 항상 동반하실 이여”

“한시 바삐 부드러운 결혼의 끈이 당신과 나를 묶어 주기를 소망합니다.” [266]


그들은 또래의 친구처럼 서로 사랑하는 편안한 관계로 맺어져 있었다. [267]


결혼 바로 몇 주 전, 존은 애비게일에게 그녀가 자신의 성품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믿음(18세기에 전형적이었던 믿음)을 고백했다. “당신은 인생에 대한 내 감정들을 윤택하고 세련되게 만들어 줄 것이며 나의 사교적이지 못한 기질과 모든 결점들을 고치게 해 줄 것입니다. 나아가 나의 지나친 솔직함과 신중한 분별력이 조화될 수 있도록 해 줄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은 아마도 오늘날의 독자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여전히 배우자가 상대방에게 도덕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기대하는가? 점잖고 관대한 짝을 고른 덕택에 더 친절하고 지혜로워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결혼하는 젊은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사람들은 더 큰 행복, 더 많은 부, 더 확실한 성공을 거머쥐기 위해 결혼한다. 그건 맞다! 그러나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결혼하다니! ...

그것은 오래도록 지속된 사랑, 고통스러운 이별, 끈질긴 인내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애버게일은 죽기 얼마 전,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커다란 시련은 독립 전쟁중에 남편과 헤어져 있어야 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독립전쟁으로 인해 그녀는 “나의 수호자, 내 청춘의 벗, 나의 동반자이자 내가 선택한 남편”이라고 불렀던 사람과의 수년 동안의 이별을 강요당했다. 그녀가 죽었을 때 존은 그녀를 “45년을 나의 아내로, 그리고 또 많은 해를 나의 연인으로 살았던 내 생의 소중한 동반자”로서 기렸다. 당시에 ‘연인’이란 말은 구애의 대상인 정숙한 처녀에게도 그리고 결혼한 아내에게도 쓸 수 있는 말이었다. [268-269]

부부가 서로의 동반자가 되는 결혼 형태는 누구나 사랑의 이름으로 자신의 짝을 찾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것은 배우자들이 근본적으로 감정, 우정, 존경, 공통의 가치, 관심으로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새롭게 맺어진 부부가 자신의 부모들의 정체성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질 것이며 남편과 아내의 ‘수평적’ 관계가 부모와 자식의 ‘수직적’ 관계에 우선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했다. [269]


미국 독립 전쟁으로 인한 새로운 결혼 형태의 확산

공화파와 왕당파:프랑스의 아내들

공화국의 시민을 길러 내는 어머니


제 5장 도덕의 갑옷을 입은 낭만적인 사랑 -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대서양 양안의 아내들

대다수의 사회사학자들은 서구에서 근대적인 결혼관이 미국 독립 전쟁과 1830년 사이에 등장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재산, 가족, 사회적 지위가 여전히 결혼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지만 이 기간 동안 사랑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299]


영국에서의 사랑, 결혼, 그리고 돈

청혼을 받은 후 고민하고 열렬한 구애자가 과연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을 것인지, 혹은 자신이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아내가 될 역량을 갖고 있는지 알기 위해 노력하던 19세기 여성들 [301]


4개월 내지 8개월의 약혼 기간은 연인들이 서로가 잘 맞는지를 결정하는 데 충분한 기간으로 간주되었다. 약혼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연인들이 육체적 접촉을 가질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약혼 기간이 너무 길어지는 것을 피했다. [303]


결혼을 고려할 때 사랑의 환희는-그것이 도덕적 욕구와 결합했을 때조차- 결코 경제적 현실과 분리될 수 없었다. 문제는 근본적으로 남편이 아내를 먹여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것이었다. [305]


남편과 아내는 사랑으로 결혼했지만, 결혼한 후에는 역사가들이 “분리된 영역”이라고 지칭한 서로 다른 영역을 지키며 살아갔다. [307]


샬럿 브론테

“그에게 호감이 가고 또 그가 친절한 사람이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를 위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의 강렬한 애착은 내게 없어. 그리고 만약 결혼을 한다면 나는 남편을 열렬하게 사랑하고 싶어.” [311]


<제인 에어>의 결말부분

“결혼하고 10년이 흘렀다. 나는 전적으로 내가 지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산다는 것, 그리고 그와 더불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최고의 축복을-그것도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을- 받았다. 왜냐하면 남편의 삶이 완전히 나의 삶과 일치하듯 내 삶도 남편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어떤 아내도 나만큼 남편과 가까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의 뼈와 살은 완전히 나의 뼈와 살이다.” [312]


영국과 미국의 결혼에 관한 법률

유명한 속담 “남편과 아내는 한 사람이고 그 사람은 바로 남편이다.” [313]


영국에서 아내는 그의 남편의 집을 떠날 수 없습니다. 남편은 “부부간의 권리”의 복원을 주장하면서 아내를 제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녀가 피신처로 택한 친구집이든 친척집이든 쳐들어가서 물리적인 힘을 사용해 그녀를 끌고 갈 권리도 있습니다....

영국에서 아내가 부정을 저지르면 그녀의 남편은 재혼을 위해 그녀와 이혼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남편이 아무리 난봉꾼이라도 이혼을 할 수가 없습니다.  [316]


1870년 마침내 의회는 아내들이 독자적인 재산과 수입에 대한 처분권을 가지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의 기혼 여성 재산권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319]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19세기 페미니스트 운동의 지도자)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결혼은 남녀간의 사랑, 호의 , 평등에 기초한 결혼뿐이었다. [321]


미국에서의 아내 노릇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는 1999년에야 다른 인종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을 폐지했고

[326]


1850년대까지 ‘결혼 제도는 곧 노예 제도’라는 생각은, 불평등한 결혼을 반대하는 개혁가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327]


여성의 교육은 주로 훌륭한 결혼 상대를 만나기 위한 것으로 여겨졌고 무엇보다도 현모양처를 길러 내는 데 그 가치를 두었다. [328]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 아내, 어머니, 운동가

여성의 권리를 찾는 운동의 창시자가 결혼 이력 50년에 7명의 아이들이 있었다는 사실...

어떻게 이 아내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면서 노처녀 친구인 수잔 B. 앤서니와 더불어 19세기의 가장 유명한 여성 해방 운동가가 되었는가? 14세기의 마저리 켐프와 마찬가지로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은 아이들을 핑계로 자신의 소명을 저버리지 않았다. [329]


집안의 전 재산을 가지고 온 어머니가 마음이 맞지 않는 며느리와 방탕한 아들의 동정에 의존하는 불쌍한 식객으로 전락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330]

  

(그녀에게 청혼했던 한 법학도의 말) “적절한 시기에 네가 나의 아내가 되면 저 장신구들(그녀의 보석들)은 내 것이 될 거야. 나는 그것들을 가져다 금고에 넣고 자물쇠를 채울 테고 넌 내 허락 없인 그것들을 걸치지 못하게 될 거야. 내가 그것들을 시가 한 상자와 바꾸어 버릴 수도 있지. 그러면 너는 그것들이 연기로 변해 사라지고 마는 것을 바라볼 수도 있을 거야.” [331]


그녀는 혼인 서약에서 “‘복종’이란 단어를 뺄 것”을 요구했다 [333]


엘리자베스는 아이들에게 두 시간에 한 번꼴로 젖을 물렸으며 자신의 ‘어머니로서의 본능’을 믿도록 교육받았다. [335]


그들(19세기 여성)이 관장하는 가정은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들에게는 도덕적 성채를, 그리고 바깥 세계의 고된 세파로부터 돌아오는 지친 남편들에게는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하는 공간이어야 했다. [337]


(그녀의 말) “처음으로 한 가정의 안주인이 된 여성은 젊은 목사가 처음 집전을 할 때와 같은 자긍심과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네 벽으로 둘러싸인 집안에서 최고의 자리에 군림한다는 것은 한 여성의 생애에서 자랑할 만한 순간이다. 나는 가사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나 연구를 했고 그것을 몹시 즐겼다.” [337]


(베티 프리던) “... 표시가 날 정도로 하려면 양 손뿐만 아니라 머리도 끝없이 움직여야 했다. 이제는 살림을 하는 일이 주는 신선함도 사라져 버렸고 그토록 매력적이었던 집안일들이 넌더리가 났다.”  [338]


생애 최초로 엘리자베스는 자기가 마주하는 모든 일들-집안에 매어 있는 것, 너무 많은 의무들, 친구도 없고 자극적인 정신 활동도 없는 것-에 짓눌리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어떻게 여성이 절망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는지 알게 되었다. [338]


그녀는 자신의 개인적인 불행을 보편적인 차원으로 끌러 올려 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공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19세기 후반의 여권 운동의 역사는 한 미국 주부의 불만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살아서 1920년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한 순간을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 [339]


1902년 숨을 거둘 때까지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텐턴은 수잔 B. 앤서니와 더불어 남녀의 완전한 평등을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일했다. 그들의 강도높고 뚜렷한 목적을 공유한 우정은 종종 결혼에 비유되곤 했다. [340]


1892년 미연방 의회의 사법 위원회에서 “자아의 고독”이라는 제목의 교육, 고용, 정치 활동과 관련된 분야에서의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뛰어난 연설을 했다.

각각의 개인이 근본적으로 혼자라는 종교적 믿음에서 비롯된 뜨거운 외침이었다.

여성이 상대적인 피조물이라는 이론을 전적으로 부정했다. 어머니, 아내, 자매, 딸로서의 역할은 “부차적인 역할들”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남자의 진정한 본성과 마찬가지로 여자의 진정한 본성은 “각각의 영혼의 독립과 자주성의 필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여성들이 얼마나 많이 남성에게 의지하고, 보호받고, 또 지원받기를 원하는가에 관계없이, 그리고 남자들이 그녀들이 제발 그렇게 하기를 얼마나 원하는가에 관계없이 그녀들은 혼자서 인생이라는 항해를 해 나가야 한다.” [340]


남부의 여성들

(남부 여인들)

“...나는 남편을 우러러보는 것이 기쁘고 나보다 강한 남편에게 보호받으며 나의 여성적 연약함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무조건적인 복종은 아내의 첫 번째 의무”

“그곳에서 모든 숙녀들은 남편들에게 복종하도록 길러진다.” [343]


“...지상에서 가장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남편이 영혼을 다해 나를 사랑하기를 원한다. ... 완벽한 행복을 바란다면 바보이겠지만 나의 심장은 완벽한 사랑을 원한다.” [348]


(흑인 노예) “나의 엄마는 주인의 백인 아이 둘을 낳았는데 이들은 노예로 팔려 갔다.” [367]


그때나 오늘날이나- 대립하는 이데올로기와 서로 다른 대의를 따르는 부부들에게 결혼 생활이 전쟁터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372]


(한 농장주 부인) “신이여, 저의 소중한 남편을 축복하사 제가 죽는 날까지 제 곁에 있게 해 주소서. 우리는 늙어 가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의 사랑은 깊어만 간답니다. 우리는 23년 동안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374]


여성 개척자들에게는 육체적 강인함, 정신적 끈기, 용기, 재간, 나아가 일정 정도의 독립심마저 요구되었다. [375]


제 6장 서부의 흙먼지 속에서 살다간 여성들 - 빅토리아 여왕 시대 미국의 개척자 아내들

“아이오와 주 법은 재산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데 아내와 남편을 차별하지 않는다. 남편 소유의 부동산 전체 중 3분의 1이 남편이 사망할 경우 상속 재산권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처에게 귀속된다.” 는 1870년 선언 [380]


왜 이 여성들은 친숙한 환경, 가족, 친구 그리고 안정적인 공동체가 주는 안락함을 버리고 미지의 모험에 몸을 맡기게 되었을까? 대개의 경우 그것은 그들이 결정한 일이 아니었다. 이주를 결정한 것은 남편들이었다. 가족이 살 장소를 정하는 것은 법적으로 남편의 권한이었으므로 아내는 그 결정을 거부할 수 없었으며 특히 그 결정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내려진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382]


자신들 외에는 의지할 데가 없었던 부부는 ‘남성’의 영역과 ‘여성’의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해서 가사를 분담할 수 없었다. ... 이렇게 함께 일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결혼 생활에서 좀더 평등한 동반자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384]


일반적으로 어린이들은 여분의 노동력으로 간주되어 환영받았고 대가족이 선호되었다. [385]


몰리처럼 남편에게 사랑받고 또 남편을 사랑하는 사람조차도 자신의 ‘우울한’ 감정을 남편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것은 여성의 고립감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386]


오리건을 향하여

“남편이 나에게 책을 읽어 주는 저녁에 나는 바느질을 했다.”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것은 개척자 가족들의 기록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행위였다. [398]


“지금부터 70년 전인 1851년에 남부에는 흑인 노예제가 있었고 미국 전역에는 마누라 노예제가 있었다. 열네 살짜리 계집애가 대부분의 시간을 술 마시는 데 보내는 마흔네 살의 남편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402]


서부의 연애

(서부 여성의 일기)

“... 바이가 따스한 마음으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으며 나의 마음도 그러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나는 이제 나의 손을 그의 손에 맡길 수 있고 안락할 때나, 험난할 때나 변함없이 전 생애를 그와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과거의 어떤 애인보다 그를 더 많이 믿고 싶다. ...

과거에 기대했던 것처럼 미칠 듯한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한 걸음씩 천천히 ‘사랑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 나는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 영원하리라는 증거가 되어 줄 것을 희망한다.” [406]

“종종 나는 바이가 좀더 적극적이기를, 약간만 더 감성적이기를 바라곤 한다. 그는 매우 고지식하다. 하지만 만일 그가 지나친(감성적인) 사람이라면 나는 쉽게 그에게 질리고 말 것이다.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명민한 여자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는 멋진 모습이었고 나는 그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다.” [407]

“나는 내 마음이 그때와 마찬가지로 용기있고 진실될 것과 지금과 같이 행복할 것을 믿을 따름이다.” [409]

“그는 결혼기념일을 나와 함께 하기 위해 그토록 쓸쓸한 길을 16킬로미터도 넘게 걸어왔다.” [410]

우리는 많은 부침을 함께 겪었고 얼마간의 시련과 고난을 겪었지만 그런 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좀 더 가깝게 묶어 주었을 뿐이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살아간다.” [411]


남서부에서의 결혼 생활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만 이제 여성들이 돈을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412]


모르몬교의 중혼 풍습

일부다처제를 택한 모르몬교도는 전체의 15퍼센트 내지 20퍼센트에 불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424]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너무도 신성한 무엇이 있어서 가족 중의 제3자는 신뢰와 편안함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부부 관계를 방해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429]


모르몬교도 여성들이 일부다처제를 “종교적 의무로 간주했으며 그에 따른 불편을 감수하는 것을 일종의 종교적 고행이라고 여기고 견뎌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주입했다.” [429]


몇 가지 조심스러운 일반화

경제적, 사회적 계층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남자의’ 일과 ‘여자의’일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경향은 약화되었다. 생존의 문제가 제기되면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여자들은 자신과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432]


아내가 앓아눕거나 산후조리를 하고 있을 때조차 남편이 집안일을 돌볼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435]


“동의를 하든, 그렇지 않든, ‘복종’이라는 단어는 빠져야 했다. 나는 모든 자식들이 그런 것처럼 부모님의 후견을 받으며 자라났고 이제 그 시간은 끝났다. 나는 이제 성숙한 여자가 되었고 집안의 가장 역할 가운데 반을 떠맡을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말과 나의 말은 동등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추측컨대, 이것이 사랑으로 남편을 선택했고 평등한 결혼을 희망했던 많은 여성들의 입장이었을 것이다. [435]

베세니아 오웬스 아데어

14세 결혼

18세 때 2살 아이와 함께 남편의 폭행으로부터 도피

초등교육을 받은 후 일을 시작함.

세탁, 가르치는 일, 양장점, 모자가게 운영 등

자력으로 아들을 버클리 대학에 보낸 후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

마흔 살의 나이로 의학학위 받음

25년간 자신의 고향 오리건에서 전설적인 ‘여의사’로 환자를 진료함 [437]


제 7장 인형의 집 - 여성 문제와 신여성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제 3막에서 남편 헬마와 아내 노라는크게 충돌한다. 헬마는 노라에게 “모든 것에 앞서 당신은 아내이자 엄마야.” 라고 말하고 노라는 “난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모든 것에 앞서 인간이야. 당신이 그렇듯이 ....... 어쨌든 난 그렇게 하고 말 거야.” 라고 대답한다.

1789년 12월 코펜하겐 왕립 극장에서 이 작품이 초연되었을 때 큰 소동이 일어났다. 멀쩡한 여성이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본분을 부정하고 남편과 자식을 버린 채 자신의 길을 간다는 이야기는 사회를 지탱하는 가치들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되었다. ...

독일어판의 결말에서 노라는 문을 닫고 집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헬마의 강요에 못 이겨 잠자는 아이들을 바라본 후 막이 내리기 전에 마루에 주저앉아 울부짖는다. “아아, 이것이 나 자신에게 죄를 저지르는 일이 된다 해도 나는 아이들을 두고 떠날 수 없어.

그저 ‘인형이자 아내’(그 전에는 아버지의 ‘인형이자 딸’)였을 뿐인 ‘인형의 집’에서 탈출하여 자유를 찾기 위해 벌인 노라의 투쟁은 사회 속에서 완전한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싸웠던 많은 여성들의 투쟁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곧 노라라는 이름은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거부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살아갈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여성을 상징하게 되었다. [442] 


1874년 제정된 법에 의해 아내는 자신이 벌어서 얻은 소득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443]


역사를 통해, 여성의 자립성은 스스로 벌었든, 물려받았든 간에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했을 때 신장되었다. [444]


교황 레오 8세

“여성은 집안일에 적합하게 태어났으며 정숙하게 행동해야 하고, 아이를 잘 양육하고 가족의 안녕을 위해 힘쓰는 일에 가장 잘 어울린다.” [445]


영국의 신여성

신여성의 특징은 높은 교육 수준과 독립성, 가족의 전통적인 가치를 무시하고 남성과 여성이 지켜야 할 관습적인 영역의 경계들을 무너뜨리려는 성향이다. [448]


여권을 옹호하는 주장은 ‘진정한 여성성’ 즉 자기희생적이고, 모든 것을 돌보는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대한 공격으로 여겨졌다. [448]


모나 케어드는 여성이 수세기 동안 남성에게 종속되어 온 이유는 그것이 남자들의 이익에 부합했기 때문이고 결혼은 여성을 노예로 만드는 원시적인 제도라고 주장했다. [449]


당시 사람들은 아내의 미덕이 남편의 명예를 빛내는 것만큼이나 아내의 부덕함은 남편의 “명예를 실추시킨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행동이 아닌 다른 사람의 행동 때문에 과연 명예가 실추될 수 있는가?” [450]


“스스로의 자유를 희생한 대가로 결혼을 생활의 한 방편이라고 여기고 안주하는 대신에 결혼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상대적으로 안락한 생활을 거부하는, 점점 그 수가 늘어나는 여성들”이 택한 길, 결혼 자체의 거부 [450]


(케어드) 그녀가 원하는 것은 ‘파괴’가 아닌 ‘재탄생’ 즉 불행한 결혼을 한 사람들에게까지 함께 살 것을 강제하는 법률을 포함한 결혼 제도의 잘못된 점들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결혼은 비로소 의무감이 아니라 사랑과 우정에 기초한 진정한 선택의 문제가 될 것이다. [451]


그들은 결혼 초기의 적응, 출산, 찢어지는 가난 등으로 힘든 시기에 통과해야 했으나 말년에 이르러서는 신의 은총에 감사하고 있었다. 이러한 예는 노년기가,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는 부부들에게 “황금기”일 수 있다는 몇몇 현대 심리학자들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460]


영국과 대륙 사이의 논쟁의 진전

전통적인 결혼 수호

결혼으로 이룬 가정을 “평화”와 “사랑”의 안식처로 묘사

여성의 참정권은 남편과 아내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기 때문에 결혼 생활에 좋지 않다 [466]


미국에서의 여성 문제

1874년, 개혁주의자 애버 굴드 울슨

“나는 아내, 어머니, 교사이기 이전에 먼저 나 자신을 위해 존재할 권리를 가지 여성으로서 존재한다.” [467]


바이얼릿 블레어 자닌 [470~]

“나는 절대로 사랑하지도 결혼하지도 않을 것이다.-어떤 남자도 나의 주인이 될 수는 없기에- 나는 절대로 복종 서약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 (1868년)

“나는 어떤 남자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그 어떤 남자의 노예도 되고 싶지 않다.” (1870년)

“남편이자 친구로서 사랑하는 것이지 주인으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님” (결혼 생활 중)

바이얼릿은 계속해서 자신의 소득으로 살아갔고 그들은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떨어져서 지냈지만 서로 화해하고 만년에 새롭게 애정을 확인했다. [475]

자닌은 사랑하는 남편에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고 서로 다른 도시에서 따로따로 각자의 삶을 살아 갔으며 자기 몫의 재산을 관리하고 수많은 여성 클럽과 조직에 관여했다. 노쇠와 병환으로 남편이 쇠약해졌던 인생의 말년무렵에만 그녀는 남편을 구완하는 인습적인 책무를 다했을 뿐이다. [487]


불행히도 오늘날 대다수의 아내들은 그들이 원하는 경우에조차 집안일을 독립적인 직업으로 선택할 수가 없다. 그들에게는 40시간을 밖에서 일하고 집에 와서 20시간을 더 일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아직도 가사 노동을 아내와 동등하게 부담하고 있지 않으며, 다른 가족들은 가사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또한 맞벌이 부부의 어려움을 줄여 줄 사회적 장치는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480]


<유한 계급론> 서스타인 베블런 [481]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남편의 사회적 지위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과시적 소비”


<여성과 경제> 샬럿 퍼킨스 길먼

남자의 소득에 의존해서 사는 것이 여성이 열등한 지위를 부여받게 된 제1의 원인이라는 주장

길먼은 결혼 그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삶을 제약하고 약한 존재로 만드는, 그러한 형태의 결혼을 거부했을 뿐이다. 전통적인 결혼 생활에서 “여성은 가정에 의해 편협해지고 남성은 그 여성에 의해 편협해진다.”

길먼은 가정에서의 여성 노동이 “남자들이-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은 부를 창출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진정한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경제적 가치는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정당하게 보상받지도 못했다.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여성들이 가장 적게 받는다. 그리고 가장 돈 많은 여성들이 가장 적게 일한다.”

길먼이 경제 문제를 여성 해방의 열쇠로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제시한 비전은 이미 한 세대 전에 여성에게 모든 면에서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자유의지에 따라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주창했던 애버 굴드 올슨이 표방했던 것보다 광범위한 목표들을 포괄하고 있다. 노동은 자아 실현의 기본적 수단으로서 존중되었다. “일하고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은 깊은 만족을 선사할뿐 아니라 건강에도 좋다. 오늘날 자아 실현의 욕구를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지 못하는 소녀들은 거의 없다.”

전문화는 가정생활에서 축복으로 여겨졌다. 모든 아내가 요리사, 청소부, 유모일 필요는 없다.

“남녀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며 인류가 가족에 대한 의무보다 더 큰 의무와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한 결혼, 행복한 가정, 행복한 여성, 행복한 남성이 많아질 것이다.” [482-484]

그녀는 한번 이혼했고 딸의 양육을 기꺼이 포기했으며 전업작가로서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갔고 연하의 남자와 평등한 결혼 생활을 했다. 인생과 작품을 통해 그녀는 결혼한 여성들의 변화를 주도했다. [487]

길먼은 여성이 다양한 직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더라도 결혼은 변함없이 대다수의 여성들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 되리라는 것을 인정했다.

길먼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일을 하는 것이 독신 여성뿐만 아니라 기혼 여성들에게도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처럼 명확히 지적한 적이 없었다.

비곡 1990년대까지도 완전하게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기혼 여성을 포함하여 여성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노동력이 될 것이라던 길먼의 예언은 확실히 들어맞았다. [487]


제 8장 임신, 여성의 원죄인가? - 미국에서의 섹스, 피임, 낙태, 1840~1940년

이데올로기와 경험

“남녀가 공유하지 않는 욕망은 있을 수 없다.” [493]


대다수의 여성들은 “출산은 의무이다”라는 그리스도교인들과 다윈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라 임신을 성교의 가장 주된 목적이라고 여겼다. ...

그러나 그들이 종족 번식이 의무라는 것을 받아들였을지라도, 이 여성들 가운데 많은 수는 성을, 부부를 특별한 “정신적” 끈으로 묶어주는 사랑의 표현으로 여겼다.

<1892~1920년 사이의 연구>

“내게 성은 정신적 결합을 위해 육체가 보내는 신호이자 다시 한 번 결혼 서약을 하는 일이다.”

“부부 관계는 그 어떤 관계보다 친밀해야 한다. 잠자리는 이것을 낳는 수단이다.”

“육체적 사랑을 자주 나누는 것은 부부가 정신적으로 공감할 수 있게 해 주고 두 사람의 결합을 완성시킨다. 그것은 시간이 흘러 열정이 희미해진 다음에도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서로가 원할 때 부부간의 성관계는 행복한 부부들만이 누릴 수 있는 사랑과 공감의 끈을 만들어 낸다.”

“성은 오직 한 사람의 상대와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에게 다정하고 친밀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결혼 생활을 한결 안정되게” 만들어 주고 부부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정상적인 욕망과 욕망의 합리적인 추구는 사람들을 한층 더 건강하게 만든다.”

“나는 서로의 결합을 완성하려는 남편과 아내의 욕망이야말로 성생활을 하는 첫 번째이자 가장 고결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자식을 얻고자 하는 것은 성생활을 하는 매우 가치 있는 동기이지만 부차적인 것이다. 서로를 원하는 마음 없이 그런 이유만으로 성 관계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 남편과 나는 성 그 자체를 즐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그것을 원하며 육체적이라기보다는 정신적으로 그것을 갈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임을 보여 주는 가장 성스러운 표현이기 때문이다.” [496-497]


피임

엘리자 더피 <여성이 알아야 할 것>

“낙태 합법화 지지”라는 말이 나오기 100여년 전에 이미 그녀는 “개인에게 자신의 문제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면, 여성에게 아이를 가지는 문제를 결정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 여성은 출산 전과 후에 고통을 참아야 하고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하며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 자신의 건강과 인내력에 대해 당사자인 여성이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503]


낙태

마거릿 생어와 산아 제한 운동


새로운 성 문화

미국인들은 점점 더 “소비, 욕구충족, 쾌락”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출산 중심적인 결혼에서 사랑과 동반자로서의 부부 관계, 그리고 즐기는 성에 기초한 결혼이라는 이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성은 원래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며 성은 두 사람이 함께 즐기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평등한 결혼 생활을 이루어 나가는 추진력이 되어 주었다. [512]


미국 주류 사회는 여전히 여성들에게 결혼하기 전에는 순결해야 하고 결혼 후에는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만족하라고 강요했다. [514]


성은 출산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부부간에 성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성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515]


(데이비스&해밀턴 조사)

여성들 가운데 4분의 1은 결혼 후 첫 번째 성 경험 때 불쾌감을 느꼈으며 반 이상이 결혼 생활이 길어지면서 성을 즐기게 되었다고 했다. [515]


사회가 그들에게 어떤 성적인 욕망도 품어서는 안 된다고 했기 때문에 19세기 중반의 아내들은 강렬한 욕망을 느끼면 불안해하곤 했다. 반면에 1세기 후 아내들은 성적 욕망이나 만족을 경험하지 못하면 불안해했다. [516]


1920년 여성의 참정권 인정!


출산을 위한 성은 이제 “그 자체가 목적”이자 “행복의 주요 구성 요소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된 성의 뒷자리로 물러났다.


밀리어드 에버렛 <결혼의 위생학>

“출산은 결혼의 유일한 목표도, 주요한 목표도 아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결혼의 궁극적인 목표를 찾으려고 한다면, 그는 그것이 성적인 친교와 동반자 관계에 대한 욕망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517]

그는 부부 관계의 초기 단계에서 낭만적인 사랑을 향한 욕구, 그리고 부부 모두에게 침실 안에서의 성적 자유를 인정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남편과 아내 사이의 “근본적인 평등”을 대단히 강조했다. 그는 남녀에게 “모든 면에서 비슷한 사람과 결혼할 것”을 권유했다. 그는 여성들에게 “경제적인 독립”을 쟁취하라고 충고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단지 남성과 여성을 좀더 나은 동반자 관계로 만들어 주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좀더 많은 자유를 누리도록 만들어 줄 것이고 결과적으로 남성의 부당하고 위압적인 행동을 참아야만 하는 일이 적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남성과 여성들이 세상의 일들을 똑같이 공유하고 여성들이 임신 때문에 중요한 활동에서 배제되지 않을 .... 그리고 그것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어느 누구도 ‘집안의 가장’이 되지 않고 진정한 동반자 관계가 되는” 그런 날이 오기를 고대했다. [518]

억압적이지 않은 성생활, 평등한 결혼, 일하는 아내란 경제 공황기였던 30년대에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

일하는 여성에게는 남성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이유로 공공연한 비난이 쏟아졌고 결혼한 여성들의 고용을 제한하는 법이 제정되기까지 했다. [519]


피임과 낙태 : 대공황 시기

1937년 미국 의사 협회는 공식적으로 산아 제한을 반대하는 입장을 포기했다. [520]


1973년 낙태 합법화


신뢰할 수 있는 피임법을 통해 원치 않는 임신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여성만이 자유롭게 성을 즐길 수 있다

자식의 수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고 자신의 신체적, 경제적 필요에 따라 아이들의 터울을 조절할 수 있는 아내만이 건강한 아이들을 기를 수 있다. [525]


제 9장 전쟁, 예기치 못한 기회 - 아내, 전쟁, 그리고 일, 1940~1950년

대공황 때에는 일하는 아내가 “남자의 직업을 뺏는다”는 이유로 공공연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면, 이제는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일하는 아내가 칭송되었다. [536]


당시 전시인력관리위원회는 어머니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자식을 돌보며 가정에 있는 것이라는 통념에 따랐으나, 머지않아 태도를 바꾸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식이 있든 없든 모든 사람이 필요했다. [537]


미국은 일하는 아내와 어머니에게 폭넓은 편의를-주간 보육 시설, 파출부, 매점, 조리된 음식 및 1주일에 한 번씩의 쇼핑을 위한 오후 자유시간 등- 제공하는 영국의 모범을 따르지 않았다. 더구나 영국은 기혼 여성을 위해 2교대제를 시행했는데, 이를 통해 2명의 여성이 교대해 가며 종일 근무자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540]


조선소의 아내들

군수 공장 노동자로 일한 남부 여성들


전쟁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도 환영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전통적으로 삶을 아름답고 풍요하게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여성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전쟁이 여성에게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책임과 독립성을 부여하고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553]


미 여군과 여성 비상 자원 봉사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가내 전선에서의 살림살이

자원봉사 활동


전후의 아내들

“예전에는 한 사람의 가장이 명령을 했는데 이제 두 명의 가장이 명령을 했다.” [579]


전쟁이 시작되기 20년 혹은 30년 전에 출생한 여성들은 아내와 남편, 특히 어머니에게는 각각 정해진 역할이 있다는 것을 믿도록 사회화되었다. 한 여성은 수년 후에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나는 좋은 어머니가 되는 데 헌신했다.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우리 세대의 여자들은 모두 좋은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그것이 인생의 목표였다.” [580]


아이들의 안녕과 남편의 안락뿐만 아니라 남편의 성공까지도 아내의 책임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만약 남편이 성공하지 못하면 그건 의심할 바 없이 아내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582]


<라이프 매거진>1947년 

“미국여성의 딜레마”라는 특집 기사에서 가족을 사랑하는 많은 아내들과 어머니들이 바깥 세상에 참여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 여성들이 어떻게 집안일과 사회생활을 동시에 할 수 있겠는가? 사회는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582]


제 10장 내일을 향한 한 걸음 - 새로운 아내상을 향하여, 1950~2000년

“일하는 모든 여성에게는 마누라가 필요하다.” (20세기 대중 속담)


나이가 지긋한 어머니들은 자기들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딸들의 행동을 받아들였고 종종 딸의 전례에 따라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기까지 했다. [589]


성 혁명 : 킨지 보고서부터 코스모 보고서까지

“여성의 기본적인 지위는 남편의 아내, 그의 아이들의 어머니로서의 지위이다.”

사실 이 시기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젊은 여성들이 가장 열망하는 것은 유능한 남자의 아내이자 성공한 자식들의 어머니가 되는 일이었다. 그들의 지위는 남편의 경력과 아이들의 성취에 달려 있었다. [593]


텔레비전 드라마, 할리우드 영화, 광고는 예쁜 옷을 입고, 멋진 머리 모양을 한, 침착한 가정주부라는 환상을 만들었다. 결국 많은 노동절약형 가전제품과 인스턴트 식품이 보급된 후에 집안일은 땀 흘릴 필요가 없는 쉬운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실제로 새로운 상품들이 여성이 집안일을 하는 시간을 줄여 준 것은 아니었다. 전업주부들은 주당 평균 51시간에서 56시간을 집안일을 하는 데 소모했다. 텔레비전과 여성 잡지, 가정 문제 상담서와 광고의 선전 즉 집을 청결히 하고 매력적인 아내가 되도록 부추긴 것은 주부들에게 더 많은 할 일과 걱정거리를 가져다 주었다. [596]


아내는 아이들의 교육뿐만 아니라 결혼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결혼 생활이 잘못되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그녀의 잘못이었다. [600]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1949년 프랑스 출간, 1953년 영어 번역)

1929년부터 1980년까지 그녀와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던 장 폴 사르트르와 그녀는 결혼을 실존주의 적 자유와 양립될 수 없는 부르주아지의 제도라며 철저히 거부했다. 그녀는 모성에 대해서는 더욱 가혹했다. 그녀는 모성이야말로 여성을 스스로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창조자가 아니라 출산을 위한 수동적인 그릇으로 만드는 주범이라고 믿었다.

어떻게 보면 그녀의 분석은 그다지 새롭지만도 않지만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점에서 그녀는 옳았다. 첫째, 그녀는 상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여성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둘째, 그녀는 여성이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하는 한 영원히 제2의 성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이 두 가지는 이후 수십 년 동안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의 신조가 되었다. [601]


“왜 어머니들은 덫에 걸렸다고 느끼는가?”라는 기사는 아내, 어머니,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들에게 요구되는 수많은 역할에 의해 “밀고 당겨짐”을 느끼는 “절망적으로 불안한”주부들의 모습을 포착해 냈다. [603]


어떤 이들은 집에 있는 것이 너무도 불행하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했다. 다음은 한 아내가 다시 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막내가 10살쯤 되었을 때였을 거예요.... 나는 그 아이가 벽에다 손자국을 내는 것을 보며 머리를 쥐어뜯는 나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머리를 스티는 생각이 있었죠.... 내가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게 아니라 가정이 나를 이끌어 나가고 있구나.” “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내 인생이 너무나 갑갑해서 내가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나는 이 집에서 나가야 해요! 나는 다른 성인들과 함께 있고 싶어요.”

(남편) “여기 돈이 있어. 당신 뭐가 사고 싶어서 그래? 그럼 이걸로 사.”

나는 그에게 이 일은 돈과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을 설명하려 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언제 마루를 닦았는가, 혹은 슈퍼마켓에서 싸게 산 물건이 있다든가 하는 것뿐이었다. 내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 머리가 굳어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내가 남편에게 내 뜻을 이해시키게 되자 그는 흥분하지 않고 만약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나를 후원하겠다고 말했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행복하기를 바랐던 그녀의 남편... [607]


지위가 높은 남성들이 사회적 지위가 낮은 남성들보다 집에서 허드렛일을 더 많이 하고 있었다. 성공한 화이트 컬러 계층 남성들은 “여자가 일하는 것”이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만큼 충분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608]


결혼 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처음 20년 동안 하강 곡선을 그리다가 다시 상승한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세상으로 나가면, 결혼 생활의 문제는 줄어들었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부부들은 연구자들이 이른바 제2의 허니문이라고 불렀던 것을 경험했다. 이는 40년 뒤 오늘날의 연구자들이 발견한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결혼 생활의 궤적이다. [609]


베티 프리던 <여성의 신비> “이름을 가지지 못한 문제”

1963년 베티 프리던의 미국은 사회적 변화를 수용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성숙한 상태였다.,


어머니의 날에 그들은 백악관 앞에서 “카네이션말고 권리를 달라.”고 외쳤다. [613]


글로리아 스타이넘, 1971년 12월 잡지 [미즈(Ms.)] 창간

“주부의 진실한 순간”, “성 역할 없이 아이를 기르는 법”, “여성들이 낙태에 관한 진실을 밝힌다”, “복지는 여성의 문제이다”, “왜 나는 마누라를 원하는가?” [616]


중년에 갓 접어든 이들은(45~46세) 자신의 현재의 삶에 대해 잃은 것도 있고 얻은 것도 있다고 평가했다. ...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경험은 대부분의 경우 성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을 포함해서 여성들이 자신감과 자기애를 갖는 데 기여했다. [620]


100년이 채 되지 않아, 아내들은 결혼을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성적 만족을 위한 전쟁터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아내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남편을 연인이나 두 번째 남편으로 갈아 치울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626]


성 혁명의 절정기에조차 대부분의 여성들이 만족스런 성생활보다 더 많은 것을 원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사랑, 따스함, 존경, 우정, 헌신을 원했다. 즉 바람직한 부부간의 성 관계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좀더 젊은 아내들-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애인과 결혼 전에 성 관계를 가졌다-은 결혼하기 전에 적어도 자신과 남편이 침대에서 궁합이 맞는지 아닌지 알고 있었고 결혼이 지속적인 성적 만족감을 제공할 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성취감, 즉 동반자, 경제적 안정, 그리고 자녀들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왜 결혼하겠는가? [627]


노동 혁명 : 맞벌이 부부의 증가

아내의 일은 남편의 일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며 아내는 남편의 일을 위해 자신의 일을 희생해야 한다는 믿음은 1960년대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

부부 모두가 직장에서 성공하는 것은 종종 부부가 각자의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했고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모든 결혼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맞벌이 가족을 떠받치던 평등주의적 철학에도 불구하고 아내들은 계속해서 남편보다 많은 가사와 육아 부담을 져야 했고, 이러한 부당함은 일하는 부부 사이에서 꺼지지 않는 갈등의 불씨로 남아 있었다. [629]


아주 조금씩, 많은 남편들이 비록 부인만큼 집안일에 많은 시간을 쏟지는 못하더라도 자신들 역시 가사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630]


가사 분담에 대한 남편과 아내의 생각을 비교한, 1989년에 시행된 한 조사는 “기대와 행동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다.”는 것을 폭로했다. 남편과 아내들은 모두 자신이 상대방이 그렇다고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가사 노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대부분 남편들이 돈 관리와 집수리, 그리고 마당일에 1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데 동의했고 남편들 중 3분의 1은 집안일을 규칙적으로 거들고 있었다. 

교육을 많이 받은 남편들은 교육을 적게 받은 남편들에 비해 가사에 대한 책임을 더 잘 받아들였다. ...

교육을 많이 받은 남편들에게는 소득 수준이 비슷한, 일하는 아내가 있을 가능성이 많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남자는 생계부양자이고 여자는 가정주부라는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유지할 근거가 별로 없었다. [631]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징표 가운데 하나는 공항의 남자 화장실에 아이의 기저귀를 갈 수 있도록 테이블을 설치한 것이다. [631]


“집에 있는 남편들”

남편들 가운데 많은 수가 1차적인 양육자로서의 새로운 역할에 만족했지만 동시에 고립감과 우울증, 그리고 지위의 상실감을 호소했다. 이러한 불만들은 이미 오랫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미국 가정주부들의 입을 통해 나왔던 것이다.

“아이들을 기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표가 나지 않는 일이다.”

“살림을 도맡아 한 지 3년 반 만에 나는 ‘여자의 일은 해도해도 끝이 없다’는 격언이 진실임을 알게 되었다.”

“문명화된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어머니들이 행하는 중요한 역할”을 직접 해 봄으로써 절감하게 되었다. [634]


대부분의 아내들은 힘겹게 두 개의 장소에서 두 개의 “교대 근무”를 그때그때 적당히 해 나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경우 직장과 가족 사이의 갈등은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지속적인 문제들을 양산한다. 13명의 일하는 어머니를 포함한 30명의 여성을 1972년부터 20년간 연구한 바 있는 심리학자 루텔렌 요셀슨은 직장과 아이를 가진 모든 여성들이, 특히 아이들이 아직 어렸을 때, 직장인으로서의 의무와 부모로서의 의무 사이에서 짓눌려 지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요셀슨에 따르면 이들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가 없는 여성들보다 일을 통해 더 큰 행복을 느꼈다.


(전업주부)“살림은 찬사를 받는 일은 아니지만 중요한 일이다. 자신의 발전보다 아이들의 행복을 중시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며 그 가치는 인정받아 마땅하다.”

“나는 일과 아이 기르기를 동시에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해서 직업을 갖지 않았다.” [635]


부부가 함께 살기 위해서는 타협이 필요한 것이지만 언제나 희생하는 것은 아내였고 여성은 결국 적은 임금과 남편보다 못한 일자리로 만족해야 했다.

대부분의 경우 스탠퍼드 대학 졸업생들은 계층과 관계없이 모든 맞벌이 부부가 맞닥뜨리는 것과 동일한 문제들을 놓고 씨름하고 있었다. 그 문제란 밥벌이를 하는 가장은 집에 있는 마누라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여전히 만연해 있는 사회에서 일과 직장과 아이들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636]


우선 순위를 매긴 뒤 결혼을 그 맨 위에 올려 놓으려고 하는 의식적인 노력은 몇몇 부부들에게 특히 효과가 있었다. [637]


“인터뷰에서 그녀들은 비록 적당한 보육 시설을 찾는 어려움, 그리고 남편과 잡다한 집안일을 두고 밀고 당기면서 겪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일을 통해 얻는 사회적 존경과, 자긍심, 그리고 동료애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런 입장을 지지하면서 쿤츠는 3분의 1에 채 못 미치는 일하는 여성만이 생계를 위해 일하고 돈 문제가 해결되면 집에 있고 싶어한다고 보고한 1995년의 해리스 조사를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639]


기혼 여성들이 일을 하고 싶어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제일 큰 이유는, 그들이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남자에게 부양받는 한 여성은 언제나 제2의 성으로 남을 뿐이라던 초기 페미니스트들의 교훈을 잊지 않았다. ...

많은 이들이 돈을 버는 일이 자신을 남편과 동등한 반열에 올려 놓는다고 느꼈다. ...

대부분의 여성들은 젠더 이론가인 스트로버와 챈이 말한 “교섭력 이론(theory of bargaining power)”를 본능적으로 체득한다. 즉 “더 많은 자원, 특히 경제적 자원을 가져오는 배우자일수록, 그 혹은 그녀는 더 큰 교섭력을 갖게 된다.” 교섭력은 누구의 일이 더 우선시될 것인지부터 가사 노동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부부가 내리는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부부 관계를 노골적으로 경제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결코 학자들만이 아니다.

“부부간의 세력균형은 한 사람이 돈을 벌기를 멈추거나 시작할 때 변화한다.  ... 권력은 자동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640]


미국의 여자 대학, 그리고 대부분의 남녀공학 대학은 19세기 후반에야 만들어졌으며 주로 중상류층 출신의 여학생들에게만 그것도 아주 적은 수에게만 문호를 개방했을 뿐이다. [641]


개인에게 일은 그 사람의 사회성뿐만 아니라 지성을 요구하는 도전이다. 그것은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사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종종 삶에 변화를 가져 오기까지 한다.

나는 노동의 본질에 대한 어떤 환상도 품고 있지 않다. 노동이 항상 지성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경우 역시 드물다. 노동은 스트레스와 고통을 줄 수 있고 사적인 삶에 손상을 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 노동이 사라질 것이라고 상상하기란 어렵다. 남편들과 마찬가지로 아내들 역시 노동을 통해 자신 안에서 그리고 집 안에서 찾기 힘든 만족을 추구한다. [642]


이론적으로 가정주부들, 특히 파출부나 전문 청소부를 고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주부들은 직장 여성들보다 독서, 이메일 답장, 인터넷 서핑, 텔레비전 시청, 테니스, 요가, 헬스, 하이킨, 피아노, 음악감상, 그림, 편지 쓰기, 혹은 글쓰기, 자원봉사, 친구 만나기 등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많고 자신의 리듬에 맞게 살아 갈 수 있다. 그러나 전업주부들은, 특히 아이가 있는 주부들은 더더욱 자신의 생활을 여가라고 여기지 않는다. 집과 가족, 사회에 대한 의무들은 항상 자기만을 위해 확보하고 싶은 시간들을 빼앗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집안일이란 그 본성상 항상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부가적인 소득원이 없는 경우에 가정주부들은 집에 있기 위해서 종종 물질적 보상을 포기해야만 한다. 어떤 여성들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충분한 보상이라고 여긴다. 가정주부의 인생은 그것이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일 때, 그리고 배우자의 소득이 충분할 때, 혹은 자기 앞으로 된 충분한 재산을 갖고 있을 때 성취감을 준다. 오늘날 이런 삶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여성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다. [643]


그녀는 인생의 3분의 1만을 본격적으로 자식을 기르는 데 쓰는 셈이 된다. [643]


1980년대 보수파의 반격

아내가 남편을 망친다는 이유로, 그리고 어머니가 직장에서의 성공을 위해 아이들을 희생시킨다는 죄목으로, 여성의 노동은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언론은 여성이 가정과 직장에서 동시에 성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며 “양손에 떡을 쥐려고 하는” 일하는 여성들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644]


이 기사는 결혼을 유지하는 데 섹스와 돈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부부가 함께 돈 문제를 책임질 때 부부 사이에 강한 유대가 형성된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 남성이 혼자서 가족의 재산을 관리했던 시대와 달리 오늘날 평등한 부부 사이에서 섹스와 돈은 부부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 주는 공동의 모험으로 여겨진다. ...

훌륭한 섹스는 결혼을 지속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라는, 20세기 중반 킨지의 믿음은 이제 미국인들에게 진부한 것이 되어 버렸다. 성적인 만족이 특히 결혼 초반에 부부의 행복을 평가하는 민감한 지표로 널리 인정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투른 또는 최소한의 성생활을 해도 행복한 부부가 있고, 훌륭한 성생활을 하면서도 불행한 부부가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성욕과 낭만적인 사랑이 적당히 버무려지면 남녀는 영원히 함께 살겠다고 맹세하게 된다. 그러나 섹스와 사랑만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령 그럴 수 있다 쳐도 일생 동안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길게 보면 관계를 유지하는데 공통의 취미, 가치와 목표,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도덕적 책임 등이 섹스, 사랑, 돈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 증명된다. [650]


부부가 서로의 동반자가 되는 결혼이라는 오래된 이상은 부부간의 평등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651]


“여성들이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결혼하고 싶어하는 열망은 그만큼 줄어든다.” (수잔 팔루디)

아이가 없는 여성의 시간당 임금은 대략 남성의 90퍼센트 정도인 반면에 아이가 있는 여성의 시간당 임금은 대략 남성의 90퍼센트에 불과하다. [655]


아이들은 유아기에, 그리고 청소년기에 부부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스트레스로 가득찬 자녀 양육 기간을 잘 보낸 부부들은 이후의 삶 속에서 보너스를 얻는 행운을 누리기 쉽다. 나이든 부부들은 자주 둘만의 추억을 토대로 특별한 유대 관계를 맺게 된다.

마크 트웨인 “어떤 남자, 혹은 어떤 여자도 결혼 후 25년이 지나지 않고서는 완전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누군가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할 것을 서약할 때, 그 사람은 “슬플 때”를 거의 상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의 슬픔과 비극, 질병, 그리고 죽음은 결혼의 일부로서 특히 말년에는 늘 따라붙게 되어 있다. 그러고 나면 그는 일생을 함께하는 반려자-당신이 옛날에 어땠는지를 기억해 주는 사람, 그리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변함없이 돌보는 사람-의 지지와 사랑에 특별한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타인의 가장 친밀한 증인이 된다는 것은 오직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가치를 완전히 인정할 수 있게 되는 특권이다. 결혼 초기와 중기의 폭풍우-아이들과의 씨름, 한 사람 혹은 둘 다의 부정, 한 쪽 부모의 죽음, 자식들이 어른이 되기 위해 겪는 고통의 시간-에 맞서 싸우는 것을 통해 당신은 그 세월을 함께 한 이에 대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애착을 갖게 되는 것이다. [659]


남편이나 아내가 불륜의 사랑을 하게 될 때는 수많은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만 섹스 그 자체는 일부에 불과하다. 불륜은 부부가 자기들 사이의 관계를 더욱더 면밀히 살펴보게 하고, 결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상대방에게 헌신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

무엇보다도 나는 그들이 수 세기에 걸쳐 이룩해 온 평등한 결혼이라는 이상을 향해 지치지 않고 나아갈 용기를 가지기를 기원한다.

아내, 배우자, 파트너, 동반자, 그리고 모든 연인들이 사랑과 깊은 이해를 통해 자신이 선택한 짝과 맺어지기를 원한다. 그러한 결합은 헌신, 거듭되는 헌신을 요구한다. [660]


오늘날 남편에게 의존하고 남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전통적인 아내상은 더 이상 이상적인 아내상을 대표하지 않는다. 아내로서 살아갈 것을 선택한 많은 여성들은 경제적 독립을 바탕으로, 그리고 걸음마 단계이긴 하지만 남편과의 동등한 가사 분담을 통해 한 층 더 완벽한 부부 관계를 창조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661]

감사의 글

늘 그렇듯이 내가 글을 쓰는 동안 남편인 스탠퍼드 대학 정신의학과의 명예교수 어빈 옐롬이 꼼꼼하게 글을 읽고 평을 해 주었다. 의견이 서로 엇갈릴 때마다 우리는 활발한 토론을 했다. 그와 결혼한 지 46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아내’라는 단어 속에 숨겨진, 셀 수 없이 많은 의미들을 알게 되었다. [713]


옮긴이 후기

메릴린 옐롬의 <아내-순종 혹은 반항의 역사>는 서구 역사 속에서 아내의 위치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리고 아내들은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해석했고 세상이 정해 준 자신의 위치를 변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싸워 왔는지를 잘 보여 주는 책이다. ...

이 책은 무엇보다도 아내에 관한 책이지만, 결혼, 이혼, 성, 그리고 사랑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714]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공통적으로 연상하는 따뜻함, 그리움, 사랑, 본능적인 회귀의 욕구 등의 감정과는 달리 아내라는 말 속에는 복잡다단한 애증의 실타래가 얽혀 있는 것이다.  [715]


아내의 역사가 결혼, 이혼, 여성성, 모성, 섹슈얼리티 등 페미니즘과 연관된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게 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

여기서 아내는 일방적인 희생자도, 영웅적인 투사도 아니다. 자신의 서사(narrative)를 구성할 줄 알고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성찰하며 관계의 지속과 단절에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그려질 뿐이다. [716]


저자는 기꺼이 이 책을 한때 아내였거나 지금도 아내인, 혹은 아내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헌정하고 있지만 옮긴이로서는 한때 아내를 둔 적이 있거나 지금 아내가 있는, 혹은 아내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718]



* 내가 저자라면


  일 년간의 연구원 생활과 버트런드 러셀(그리고 스승님)이 선물한 <서양철학사>가 아니었더라면, 700페이지에 달하며 하드커버로 단단하게 둘러싸인 이 책<아내>를 쉽게 시작하지 못 했을 것이다. 결혼과 부부관계, 여성의 자기실현에 대해 책들을 읽으며, 특히 유럽과 미국의 책들을 읽으며 여성사를 개괄적이라도 알아야겠다는 결심이 점차 강해졌지만 말이다. 
   50페이지가 넘는 주석과 참고문헌이 어마어마하기는 했지만 이런 막대한 자료조사를 통해 저자의 의도대로 몇 천 년의 여성의 역사가 생생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특히 여성작가의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평범한 여성들의 편지글(심지어는 애인과 주고받은 편지까지), 시대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광고 문안 등이 이 책에서 살아났다. 여성의 참정권과 자기재산 소유권 등 현대의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여성의 권리들이 법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 미처 몇 백 년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들. ‘행복한 결혼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책임질 수 있는 두 남녀의 정신적, 물리적, 육체적인 영속성 있는 동반관계’-아직 ‘남녀’라는 틀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었다-라는 내 생각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주로 여성들-의 투쟁이 있었던가.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자, 종속물로 여겨질 때에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던 여성들도   일부 있었지만 여성이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존재보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먼저 지닌다는 ‘노라’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현대의 여성은 없을 것이다. 당연히 이와 동반할 수밖에 없는 책임이 우리에겐 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결혼이 남성을 자신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 모든 의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설사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라도 의무를 ‘함께’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남성과 여성만이 동반자관계로서의 결혼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작은 깨달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 결혼과 여성의 역사 또한 함께 보아야겠다는 결심으로 <새 여성학 강의>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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