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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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들에게 전원을 남겨줄 만한 벼슬이 없다. 오직 두 글자의 신령스러운 부적이 있어, 이것으로 삶을 두터이 하고 가난을 구제하기에 충분하다. 이제 너희들에게 주노니, 너희는 우습게 여기지 말아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과 비옥한 땅보다 훨씬 나으니, 일생을 쓰더라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 정약용, <또 두 아들에게 보여주는 가계(又示二子家誡)> 중에서
= 정민 지음,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에서 재인용
‘근(勤)’과 ‘검(儉)’, 정약용 선생님이 유배생활 중에 두 아들에게 간곡하게 준 가르침입니다. 다산 선생님은 18년간의 유배생활 동안 자식들에게 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간절하게 당부한 말씀이 부지런함과 검소함입니다.
부지런함이란 무엇일까요?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아침나절에 할 수 있는 일을 저녁까지 늦추지 않는다. 갠 날에 할 일을 미적거리다가 비를 만나게 하지 않는다. 비오는 날에 할 일을 꾸물대다가 날이 개게 하지 않는다.”
검소함에 대서는 “옷은 몸을 가리기 위한 것”이니 “매번 옷 한 벌 지을 때마다 모름지기 이후에도 계속 입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또한 “음식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것”인데 아무리 비싸고 좋은 음식도 “입에 들어가기만 하면 더러운 것이 되어 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리하면 먹고 입는 데 사치를 부리지 마라는 뜻입니다.*
요즘 제 책상에는 정약용 선생님에 관한 책들이 쌓여 있습니다. 전에 읽을 때는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마음에 새겨야 할 가르침’으로 들어옵니다. 이전 사정과 지금이 다르고, 지금의 마음이 이전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5년 동안 삶의 지침으로 삼을 잠명(箴銘)으로 세 글자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각 글자 아래 세부 지침을 마련했습니다. 잠명 세 글자 중 두 글자는 정약용 선생님이 말씀하신 ‘근(勤)’과 ‘검(儉)’입니다. 이 두 자를 가슴에 새기고 튼실하게 실천하면 굶어죽지도 비루해지지도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다산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라는 마음으로 ‘근’과 ‘검’을 실행하겠다고 다짐 또 다짐합니다.
세 글자 중 나머지 한 글자는 공자님 말씀에서 따온 ‘낙(樂)’입니다. 공자님은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서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고 하셨습니다. 일과 독서 그리고 책쓰기를 통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공자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강의>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임에 비하여 낙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지”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낙’의 수준이 ‘지’와 ‘호’를 거치지 않고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능할 것도 같은 데 저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 같은 경우는 ‘지-호-낙’ 순인 것 같습니다. “지와 호를 채우고 낙을 추구하겠다”는 것이 제 결심입니다.
저는 ‘낙’은 목표나 결과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과정이든 즐기는 마음과 자세가 바로 낙입니다. ‘놀이와 학습과 노동’을 눈덩이 굴리듯 찰지게 통합한 상태가 낙입니다. 삶에서 ‘밥’과 ‘존재’가 따로 가는 것이 아닌 손잡고 춤추는 겁니다. ‘근’으로 존재를 튼실히 하고 ‘검’으로 밥을 지키며 ‘낙’으로 일상의 꽃을 피워내고 싶습니다. ‘근’과 ‘검’과 ‘낙’이 하나로 통합된 나, 그런 일상을 만들 겁니다.
* : ‘근(勤)’과 ‘검(儉)’에 대한 정약용 선생님의 말씀은 정민 교수님의 <다산어록청상>에서 발췌했습니다.
- 정민 지음, 다산어록청상, 푸르메, 2007년
IP *.255.183.217
- 정약용, <또 두 아들에게 보여주는 가계(又示二子家誡)> 중에서
= 정민 지음,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에서 재인용
‘근(勤)’과 ‘검(儉)’, 정약용 선생님이 유배생활 중에 두 아들에게 간곡하게 준 가르침입니다. 다산 선생님은 18년간의 유배생활 동안 자식들에게 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간절하게 당부한 말씀이 부지런함과 검소함입니다.
부지런함이란 무엇일까요?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아침나절에 할 수 있는 일을 저녁까지 늦추지 않는다. 갠 날에 할 일을 미적거리다가 비를 만나게 하지 않는다. 비오는 날에 할 일을 꾸물대다가 날이 개게 하지 않는다.”
검소함에 대서는 “옷은 몸을 가리기 위한 것”이니 “매번 옷 한 벌 지을 때마다 모름지기 이후에도 계속 입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또한 “음식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것”인데 아무리 비싸고 좋은 음식도 “입에 들어가기만 하면 더러운 것이 되어 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리하면 먹고 입는 데 사치를 부리지 마라는 뜻입니다.*
요즘 제 책상에는 정약용 선생님에 관한 책들이 쌓여 있습니다. 전에 읽을 때는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마음에 새겨야 할 가르침’으로 들어옵니다. 이전 사정과 지금이 다르고, 지금의 마음이 이전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5년 동안 삶의 지침으로 삼을 잠명(箴銘)으로 세 글자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각 글자 아래 세부 지침을 마련했습니다. 잠명 세 글자 중 두 글자는 정약용 선생님이 말씀하신 ‘근(勤)’과 ‘검(儉)’입니다. 이 두 자를 가슴에 새기고 튼실하게 실천하면 굶어죽지도 비루해지지도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다산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라는 마음으로 ‘근’과 ‘검’을 실행하겠다고 다짐 또 다짐합니다.
세 글자 중 나머지 한 글자는 공자님 말씀에서 따온 ‘낙(樂)’입니다. 공자님은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서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고 하셨습니다. 일과 독서 그리고 책쓰기를 통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공자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강의>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임에 비하여 낙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지”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낙’의 수준이 ‘지’와 ‘호’를 거치지 않고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능할 것도 같은 데 저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 같은 경우는 ‘지-호-낙’ 순인 것 같습니다. “지와 호를 채우고 낙을 추구하겠다”는 것이 제 결심입니다.
저는 ‘낙’은 목표나 결과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과정이든 즐기는 마음과 자세가 바로 낙입니다. ‘놀이와 학습과 노동’을 눈덩이 굴리듯 찰지게 통합한 상태가 낙입니다. 삶에서 ‘밥’과 ‘존재’가 따로 가는 것이 아닌 손잡고 춤추는 겁니다. ‘근’으로 존재를 튼실히 하고 ‘검’으로 밥을 지키며 ‘낙’으로 일상의 꽃을 피워내고 싶습니다. ‘근’과 ‘검’과 ‘낙’이 하나로 통합된 나, 그런 일상을 만들 겁니다.
* : ‘근(勤)’과 ‘검(儉)’에 대한 정약용 선생님의 말씀은 정민 교수님의 <다산어록청상>에서 발췌했습니다.
- 정민 지음, 다산어록청상, 푸르메,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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