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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4일 10시 40분 등록

Y는 파리 여행을 꿈꾼다. 오래 전부터 가졌던 그녀의 꿈이었다. 낭만과 자유를 좋아하는 그녀는 파리의 이미지와 퍽이나 어울렸다. 나는 그녀가 어서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날아가기를 바랐다. 파리는 그녀의 로망이었다. 행복할 수 있고,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허나 수년이 지나도 그녀는 파리 여행을 구체적으로 준비한 적은 없다. 그저 마음속에 동경 하나를 품고 있을 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을 바라보듯 그렇게 자신의 꿈을 바라보고 있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파리지앵으로 살고픈 Y에게 몇 명의 파리지앵이 했던 이야기를 나눈다. 빅토르 위고는 19세기의 파리지앵이었다. 그는 자신의 연작시집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전 그 어느 때보다 동양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동양은 일반인이 깊이 몰두하는 주제가 되었으며, 이 책의 저자는 그 점에 경의를 표해왔다.”
파리는 Y에게 설렘과 흥분을 안겨다 주는 이국적인 나라다. 반면, 파리지앵에게는 동양이 이국적인 나라다. 적어도 19세기에는 그랬다.


“19세기 전반에 이국적이라는 말은 중동(中東)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 p.98)


동양을 갈망했던 이는 빅토르 위고만이 아니다. 소설 『보봐리 부인』으로 유명한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자신의 첫 번째 소설에 이렇게 썼다. “타오르는 태양, 파란 하늘, 황금 첨탑…… 모래를 헤치고 가는 대상(隊商)의 동양이여! 동양이여!…… 아시아 여자들의 햇볕에 그을린 올리브빛 피부여!”
플로베르에게 “행복이라는 말은 동양이라는 말과 바꾸어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1849년 10월 말 파리를 떠나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던 것은 그에게는 당연한 사건이었다.
파리지앵 플로베르는 파리를 떠났다. 그 곳은 Y가 꿈꾸는 곳이었다.

Y가 파리지앵으로 태어났다면, 그녀는 파리지앵으로 살았을까? 동양으로의 여행을 꿈꾸었을까? 답변은 그녀가 할 일이다. 혹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몇 명의 파리지앵의 이야기를 참고할 일이다. 동양을 갈망하는 서양과 서양을 갈망하는 동양, 그 사이에서 낯선 곳으로의 모험을 갈망하는 나를 발견한다. 우리는 이국적인 곳을 갈망한다. 두려워하면서도 그 곳으로의 모험(혹은 여행)을 꿈꾼다. 왜 그러한가? 알랭 드 보통의 두 문장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외국의 요소들이 새롭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나 신조에 좀 더 충실하게 들어맞기 때문에 귀중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외국에서 이국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 p.109


Y의 삶에 잠깐 간섭해 본다. 그녀가 파리에 가야 하는가?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 그녀의 꿈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그 꿈이 자기 것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느라 지나치게 고민하지 않기를 바란다. 삶으로 실험해 보아야 한다. 선택의 실수를 하더라도 괜찮다. 인류사는 실수로 인해 창조된 위대한 사건이 수두룩하다. 또한, 자기 머리로 판단한 것이라면 그것이 실수라고 해도 배움과 깨달음이 있다.
그리고 “파리에 가야하는가?”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도 있다. “왜 파리에 가고 싶어 하느냐?”는 질문이다. 답변을 찾는 과정 속에서 아직 채워지지 않은 자신의 갈망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묻기를 바란다. 이 갈망을 채우기 위한 시도를 이곳에서 해야 하는지, 저곳 파리에서 해야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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