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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8일 22시 55분 등록

"이 책은 청년 시인 에커만이 대문호 괴테와 나눈 10년 간의 대화를 글로 기록한 작품이다. 에커만은 20대 중반에 괴테의 시를 처음 접하고 매료당해 이 원로시인과의 만남을 스스로 찾아 나섰다. 그 뒤로 자신의 소중한 30대를 고스란히 바쳐, 무려 1천 번 가량이나 괴테의 집 문턱을 들락거리며 발품을 판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그 대신 에커만 자신은 위대한 시인이 되겠다던 꿈을 접고 말았지만, 우리에게 이 불후의 명작을 안겨주는 공적을 남기게 되었다."
- 요한 페터 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옮긴이의 말 中
Johann Peter Eckermann, 『Gespräche mit Goethe』

독일 제2의 대도시 함부르크에 왔다. 독일 여행의 출발지를 베를린으로 삼고 싶었지만, 북부의 도시 함부르크까지 온 이유는 오직 피터 드러커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었다. 함부르크는 청년 드러커의 지적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드러커는 함부르크에서의 1년 3개월만큼 공부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페이디아스 이야기와 베르디의 일화를 읽었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8월 27일 오전 9시, 함부르크 대학으로 가는 길목의 조용한 벤치에 앉았다. 아침 식사도 해결하고, 독일에서 첫 장을 펼치고 싶었던 『괴테와의 대화』도 읽기 위함이었다. 감동적인 머리말에 이어진 옮긴이의 말에는 책의 탄생 과정을 위와 같이 짧게 요약해 주었다. 10년 동안 1천 번에 가까운 만남이라는 에커만의 헌신적인 노력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괴테를 향한 에커만의 열정은 드러커를 향한 나의 열망을 떠올리게 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물이 흘렀다. 이제는 드러커를 만날 수가 없기에 나의 실천 없는 열망이 미웠다. 에커만은 어떻게 용기를 내어 실천했을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늘 말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해외 인턴십을 지원했지만, 도중에 여행 에이전시의 부도로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2005년에 드러커는 9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다시는 나의 소원을 놓치지 않겠다, 실천하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 라는 다짐을 했다. 열망이 있었지만, 실천하지 않은 것이 오늘 느껴지는 안타까움의 원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책을 덮었다가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 도서관에서 다시 펼쳤다. 한 시간 동안 책을 읽다가 방금 전에 정리해 두었던 생각이 얼마나 얕고 추상적인지 깨닫는다. 내가 무엇을 실천하지 않은 것인지 인식하지도 못한 것이다. 에커만도, 나도 열정은 있었지만, 열정과 관련한 일을 실천한 에커만이었고, 그렇지 못한 나였다. 이것이 그와 나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의 문장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며칠 전에 바이마르에 도착해서, 오늘에야 처음으로 괴테를 방문했다. 그의 환대는 그야말로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의 인품이 내게 준 인상은, 이 날을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로 손꼽고 싶을 정도였다."
- 요한 페터 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p.53

괴테는 에커만을 환대했다. 대문호의 환대는 그의 훌륭한 인품 때문만은 아니다. 책의 첫 50페이지에서 에커만은 자신의 출신 성분과 성장 과정을 적어 두었다. 그 부분에서 괴테의 환대를 이해할 수 있는 힌트가 많다. 에커만은 그림 그리기에 아주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여러 시인들의 작품을 탐독했다. 그 중에서 괴테가 준 영감과 감동은 단연 최고였고 에커만은 그의 시를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으면서, 깊은 행복감을 느꼈다. 뒤늦게 들어간 대학에서 애초의 법학 공부를 포기하고 자신을 흥분시키는 언어학 공부에 몰두했다. 그는 <시학 논고>라는 논문을 완성했고, 이것을 편지와 함께 괴테에게 보냈다. 괴테는 호감을 가졌고, <예술과 고대>라는 잡지에 에커만의 시에 관한 글을 싣고자 했다.

환대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첫째, 괴테는 방문자에 대해 알고 있었다.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불청객을 환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에커만은 이미 편지와 자신의 작품을 보냈다. 둘째, 방문자는 이미 괴테의 마음을 얻었을 정도로 노력과 성과를 지녔다. 그가 보낸 글은 많은 시간 동안 공부하고 노력한 결실이었다.
나에게 부족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열정과 독립성은 가졌지만, 내 일에 대한 성과와 내놓을 만한 이력이 없었다. '일단 찾아가면 되겠지'라는 도전 정신은 빛났지만 지혜롭지 못했다. 열정은 뜨거웠지만 성실하지 못하여 이력을 갖추지 못했다.

드러커를 만나고 싶다는 열정만으로는 부족했다. 그의 저작을 탐독했어야 했고, 진지한 공부가 선행되었어야 했다. 이러한 노력이 부족했기에 열정이 점점 시들해졌다. (드러커의 사상에 대한 지식이 얕았으니 혹 운이 좋아 만났다 하더라도 깊이 있는 대화는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니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국치일을 기억하는 것은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나의 이 부끄러움들을 기억해야겠다. 보다 지혜로워질 내일을 꿈꾸며.


IP *.143.10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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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09.08.28 23:11:11 *.237.95.146
내가 언제가 읽을 리스트 중에 하나가 괴테인데.
너는 바로 그곳에서 그 책을 읽고 읽구나.
부럽고 멋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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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08.29 13:39:49 *.48.42.153
그대는 이미 지혜의 길에 들어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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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9.08.30 08:53:49 *.251.224.83
희석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선량하지만 
결코 무력하지 않은데다 지혜롭기까지 해서
스스로 배우는 학습인의 기질이 뛰어나 정말 앞날이 기대되는군.^^
위 글에서의 감탄과 깨달음, 회한이 모두 이해되지만,
드러커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다면 아직도 할 수 있는 일은 많다는 생각이 드네.

고미숙이 박지원을 사모하여 200년을 뛰어넘어 완벽한 사우가 된 것처럼,
드러커를 독창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은 
여전히 남아 있을 거야.
누군가 그런 작업을 한다면
내가 고미숙을 통해 박지원을 만난 것처럼,
드러커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는 일이니 그도 무덤 속에서 고마워 할꺼구.

열정과 실행력은 서로를 유지시키고 키워주는 쌍둥이 지줏대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열정이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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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30 14:03:23 *.160.33.197

 함부르크에 가 있느냐 ?  
아침에 시장 광장에 모여 춤추고 노래하고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맥주를 한 잔 했느냐 ?  
하루를 시작하는 법은 많다.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아 경험하거라.  
젊은 날의 크기는 경험의 크기이니,
호기심과 어리석음이 너를 지배하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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