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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10일 00시 03분 등록
휴(休)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 앉아 있는 모양이다. 식(息) 은 자신(自)의 마음(心)을 돌아보는 것이다.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 휴식이다. 즉 나무에 기대어 내가 나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 김정운 저, <노는 만큼 성공한다> 중에서

직장을 다니며 작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세 권의 책을 달리듯이 썼습니다. 그리고 3월 중순 들어 에너지가 바닥을 보이더니 월말에는 번아웃(burn-out) 됐습니다. 몇 개월 전부터 번아웃의 전조가 가끔 느닷없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럼에도 쓰고 싶은 책이었고 써야만 하는 책이었으며 쓸 수 있다고 믿었기에 하루하루를 불태웠습니다. 

번아웃을 처음 자각했을 때, 당황하고 황당했습니다. 왜냐하면 번아웃은 그 동안 겪었던 슬럼프와 본질적으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슬럼프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목표의 부재, 의욕 상실, 재능에 대한 의심과 같은 이유들. 하지만 번아웃은 달랐습니다. 번아웃 된 시점에서 저는 꿈과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향해 달리고 싶었으며, 달릴 수 있다는 확신도 강했습니다. 하지만 달릴 수 없었습니다. 에너지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의 소진, 이것이 번아웃입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슬럼프를 경험했지만 에너지가 다 떨어져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당황하고 황당했던 이유였습니다.

저는 그 11개월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 시기에 죠셉 캠벨이 말한 살아 있음을 경험했고, 독서와 글쓰기와 공명하며 빛나는 제 자신을 봤습니다. 이 기간을 통해 세 권의 책 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실함을 근육에 심은 것입니다. 저는 한 번도 스스로를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11개월 동안의 치열한 시간은 ‘이제 나도 성실한 사람’이라는 선언을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증발한 건 에너지이고 얻은 건 성실함입니다. 이 경험은 제게 오랫동안 좋은 밑거름이 되어 줄 겁니다. 나란 사람이 이렇게 불타오를 수 있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11개월이라는 시간은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제가 김정운 교수가 강조한 ‘일과 휴식의 밸런스 경영’을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번아웃 상태가 되고 나서야 휴식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자신의 소명을 따라 오래 즐겁게 가기 위해서는 성실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휴식으로 자신을 돌보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활동으로 삶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번아웃을 계기로 제 자신과 대화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휴식을 통해 내 안의 슬픔, 걱정, 스트레스를 보살피고 내보낼 수 있으며, 작은 기쁨과 행복을 음미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하는 것이 행복의 출발점’이라는 깨달음도 휴식을 통해 얻었습니다. 악보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음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쉼표도 연주해야 합니다. 쉼표 없는 음악은 소음에 가깝습니다. 삶이라는 악보를 연주하는 데도 일이라는 음표 외에 휴식이라는 쉼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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