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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3일 22시 42분 등록

알랭 드 보통은 걸출한 작가다. 지식과 상상력이 풍부하여 간단한 상황으로도 한 챕터의 글을 써 낸다. 정확하고 뛰어난 사고력은 독자들이 생각하도록 자극한다. 특유의 차분하고 냉소적인 유머는 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유쾌하게 읽히니 독서를 즐기려는 대중들도 좋아하고, 깊은 통찰을 보여 주니 책을 통해 배우려는 식자들도 그의 책을 읽는다. 어떤 소재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즐거운 교훈'이 된다. 읽을 때엔 즐거움이 가득하고 책을 덮은 때엔 남는 것이 묵직하다. 말하자면, 알랭 드 보통은 유쾌하면서도 능력 있는 교사다. (책을 통해 그를 만날 때에는 정말.)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책 한 권을 읽은 후 그의 다른 책을 집어 들었고, 두 권의 책을 읽고 나서 그의 팬이 되었다.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만드는 작가를 만난 셈이다. 나는 아직 읽을 수 있는 그의 책이 많이 남아 있으니 흐뭇하다.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는 마르셸 프루스트의 읽히지 않는 명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소재로 하여 풀어낸 드 보통이 전하는 인생살이 수업이다.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법, 여유 있게 사는 법, 훌륭하게 고통을 견디는 법, 책을 치워버리는 법 등의 주제를 다뤘다. 주제 하나하나마다 즐거운 교훈을 건질 수 있다. 무엇보다 그러한 교훈을 독자들의 가슴에 정확히 위치시키는 그의 글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초보 저자로서 나는 알랭 드 보통이 부럽다. 나는 그에게 매료되었다. 책의 한 구절도 소개하지 못한 채 이렇게 그를 찬양하고 있으니.


"병(病)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주목하고 배우게 되며, 그것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을 과정들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매일 밤 침대 위에 눕자마자 즉시 잠에 들어서 깨어 일어나는 순간까지 죽은 듯이 자는 사람은, 반드시 위대한 발견일 것까지는 없지만, 분명히 수면에 관한 작은 관찰조차도 꿈꿔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자고 있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한다. 약간의 불면증은 우리가 잠에 대해 감사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을 던진다는 점에서는 가치가 없지 않다. 기억을 잘하는 것은, 기억이라는 현상을 연구하는 데 그다지 큰 이점이 아니다."(프루스트)

물론 고통 없이도 우리의 정신을 사용할 수 있지만, 프루스트가 제시하는 것은 고통스러울 때에만 철저한 탐구심이 생길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앓는다, 고로 생각한다.

- 알랭 드 보통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생각의나무, p.92


최근 나를 참 힘들게 했던, 마음이 아파 길거리에서 엉엉 울게 했던 일이 있었다. 덕분에(!) 프루스트의 저 말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안다. 내가 겪었던(사실은 지금도 진행 중인) 상실의 고통은 하루 종일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들었다. 말로만 들었던 관광 명소 앞에 서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친구들의 위로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의 모든 감각이 멈춰 버린 듯했다. 오직 그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는 앓았다, 고로 (평소보다 엄청 많이) 생각했다."
고통은 생각하게 만든다. 고통 없이 떠오른 생각은 동기부여의 중요한 원천 하나를 결여한다는 드 보통의 생각에 나는 동의한다. 고통 자체는 어둡고 하염없이 긴 터널 같이 막막한 것이지만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통과하면 우리는 성장의 빛을 경험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건강한 세계관과 사고력을 지닌 자는 고통을 통해 더욱 건강해지고, 인생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좀 더 폐쇄적이고 염세적이 되는 듯하다.) 건강한 이들이여, 고통을 환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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