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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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말했습니다. “‘왜(why)’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고.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인 빅터 프랭클은 이 ‘왜’를 ‘삶의 의미’라고 말합니다. 그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그의 주장의 가장 좋은 사례는 바로 빅터 프랭클 자신의 삶입니다.
빅터 프랭클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3년을 강제 수용소에서 보냈습니다. 이 시기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느닷없이 떨어진 폭탄 같은 시련이었습니다. 당시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28명 중에 1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죽음의 수용소’였습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프랭클의 아내와 자식이 가스실에서 생명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첫 책의 원고를 압수 당했습니다. 그는 절망했습니다.
“이제 나에게는 아무 것도, 어느 누구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육신의 자식은 물론 정신의 자식도!”
이런 상화에서 그는 자기 삶이 궁극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그는 이 질문의 답을 때로는 본능적으로 어떤 때는 의식적으로 발견해냈습니다.
한 번은 수용소에 발진티푸스가 퍼져 거의 모든 수감자가 전염 된 적이 있었습니다. 수감자들에게 아무런 치료도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몸이 약한 사람들부터 죽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빅터 프랭클도 발진티푸스를 피할 수 없었지만 그를 살려준 것은 약이나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몇 시간 동안 나는 마음속으로 글을 썼다. 아우슈비츠 소독실에서 잃어버린 원고를 다시 되살리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나는 작은 종이 조각에 요점이 되는 단어들을 속기로 적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그는 발에 생긴 심한 종기로 인해 극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런 상태로 수용소에서 작업장으로 이동하는 긴 행렬에 끼어 몇 킬로미터를 절뚝거리며 걸어야 했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만큼 그의 몸과 정신은 피폐했습니다. 그는 이 잔인한 상황을 잠시나마 피하기 위해 뭔가 좀 더 나은 생각을 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작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나는 불이 환히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 서 있었다. 내 앞에는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내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강제수용소에서의 심리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사람들에게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경험을 강의하는 건 실제가 아니라 상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상상이 그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공했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어려움을 스스로가 주도하는 흥미진진한 정신과학의 연구과제로 전환시킨 것입니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 나는 어느 정도 내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강제 수용소에서의 경험과 깨달음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겠다’는 소명이 빅터 프랭클을 살아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소명에 성실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을 쓰고 사람들에게 강의했으며 ‘의미 치료’라 불리는 로고테라피(Logotherapy)를 창시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대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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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3년을 강제 수용소에서 보냈습니다. 이 시기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느닷없이 떨어진 폭탄 같은 시련이었습니다. 당시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28명 중에 1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죽음의 수용소’였습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프랭클의 아내와 자식이 가스실에서 생명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첫 책의 원고를 압수 당했습니다. 그는 절망했습니다.
“이제 나에게는 아무 것도, 어느 누구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육신의 자식은 물론 정신의 자식도!”
이런 상화에서 그는 자기 삶이 궁극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그는 이 질문의 답을 때로는 본능적으로 어떤 때는 의식적으로 발견해냈습니다.
한 번은 수용소에 발진티푸스가 퍼져 거의 모든 수감자가 전염 된 적이 있었습니다. 수감자들에게 아무런 치료도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몸이 약한 사람들부터 죽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빅터 프랭클도 발진티푸스를 피할 수 없었지만 그를 살려준 것은 약이나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몇 시간 동안 나는 마음속으로 글을 썼다. 아우슈비츠 소독실에서 잃어버린 원고를 다시 되살리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나는 작은 종이 조각에 요점이 되는 단어들을 속기로 적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그는 발에 생긴 심한 종기로 인해 극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런 상태로 수용소에서 작업장으로 이동하는 긴 행렬에 끼어 몇 킬로미터를 절뚝거리며 걸어야 했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만큼 그의 몸과 정신은 피폐했습니다. 그는 이 잔인한 상황을 잠시나마 피하기 위해 뭔가 좀 더 나은 생각을 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작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나는 불이 환히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 서 있었다. 내 앞에는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내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강제수용소에서의 심리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사람들에게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경험을 강의하는 건 실제가 아니라 상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상상이 그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공했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어려움을 스스로가 주도하는 흥미진진한 정신과학의 연구과제로 전환시킨 것입니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 나는 어느 정도 내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강제 수용소에서의 경험과 깨달음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겠다’는 소명이 빅터 프랭클을 살아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소명에 성실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을 쓰고 사람들에게 강의했으며 ‘의미 치료’라 불리는 로고테라피(Logotherapy)를 창시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대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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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필살기 프로젝트 멤버셨군요. 제가 잘 몰랐네요. ^_^
제 삶의 의미는, 즉 제가 발견한 소명은 '햇살처럼 마음으로 침투하는 꽃씨와 불씨'입니다.
이 소명은 제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 의미는 이렇습니다.
내 안의 가장 위대한 그것을 발견하여 나다운 꽃으로 피어보자.
그것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불태워보자. 그렇게 살자.
두번째 의미는, 다른 사람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비범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거에요.
자기다운 꽃씨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사그라들은 불길에 작은 불씨를 더해주자.
저를 통해 나오는 컨텐츠가 무엇이든,
그것이 책이든 강연이든 교육 프로그램이든,
이 소명을 위한 수단이고, 이 소명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입니다. ^_^
제 삶의 의미는, 즉 제가 발견한 소명은 '햇살처럼 마음으로 침투하는 꽃씨와 불씨'입니다.
이 소명은 제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 의미는 이렇습니다.
내 안의 가장 위대한 그것을 발견하여 나다운 꽃으로 피어보자.
그것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불태워보자. 그렇게 살자.
두번째 의미는, 다른 사람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비범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거에요.
자기다운 꽃씨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사그라들은 불길에 작은 불씨를 더해주자.
저를 통해 나오는 컨텐츠가 무엇이든,
그것이 책이든 강연이든 교육 프로그램이든,
이 소명을 위한 수단이고, 이 소명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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