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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3일 23시 49분 등록

다산은 양계를 시작했다는 작은 아들의 소식을 듣고 써 보낸 편지에서 양계는 생업으로서 훌륭한 일이지만, 독서한 사람은 생업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고 써 보냈다. 독서한 사람은 양계라는 생업의 결과를 연구와 연결시켜 민생에 도움이 될 양계법의 저술로 이어낼 수 있어야 하고 개인적으로는 관조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시정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여유를 지녀야 한다고 타이른다. 인생을 즐길 줄 안다는 것도 다산이 생각하기에는 인간의 중요한 조건의 하나였다. 그것이 생존의 차원을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이룩하는 '문화'의 기본요소였다.

- 정약용 저, 박무영 역 『뜬 세상의 아름다움』, 태학사


일은 밥벌이의 지겨움이 아닙니다. 일은 즐거움과 의미만을 추구하는 취미와도 다릅니다. 우리에게 밥과 의미를 모두 만족시켜주는 행복의 근원, 그것이 일입니다. 다산은 일을 통해 생업을 꾸려가야 하는 것의 중요성과 더불어 일이 생계의 수단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특별히 독서한 사람들이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일의 의미를 승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첫째, 식솔들의 굶주림을 외면한 독서를 멀리해야 합니다. 다산은 어느 날, 집에 들어서다가 부인 홍씨가 계집종을 훈계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오랜 장마로 끼니가 끊기자, 계집종이 훔친 호박으로 죽을 끓여 주인께 올렸던 것입니다. 깐깐한 부인 홍씨가 "누가 너더러 도적질을 하라더냐?"며 매를 드는 것을 본 다산은 "그 아이 죄 없다. 꾸짖지 마라. 이 호박은 내가 먹을테니, 다시는 이러쿵저러쿵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육체적인 배고픔을 외면한 책읽기가 얼마나 위선적일 수 있는지를 깨닫고 탄식합니다. <가난>이라는 시에서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안빈낙도하리라 말을 했건만, 막상 가난하니 '안빈'이 안 되네. 아내의 한숨 소리에 그만 체통이 꺽이고, 굶주린 자식들에겐 엄한 교육 못하겠네." 저는 다산의 가르침을 따라, 현실적인 문제들을 초월적인 태도로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
해 왔습니다.


둘째, 독서하는 이라면,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자신의 업을 연구하여 공유할 기회를 모색해야 합니다. 직업 뿐만 아니라, 자기 삶에 일어난 일들을 하나 둘 해결해 나가면서 다른 이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원칙과 노하우를 연구해야 합니다. 다산은 6남 3녀를 낳아서 4남 2녀를 잃었는데, 대부분 마마 때문이었지요. 다산은 이 비통한 심정을 『마과회통』이라는 저술로 연결시켰습니다. 이 책은 마진(麻疹:홍역)의 치료법을 다룬 의학서로 우리 나라 마진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평가 받는 책입니다. 다산은 삶의 힘겨운 고통을 학자의 소명으로 끌러올려 세상을 향한 공헌으로 연결시킨 것입니다.


셋째, 독서하는 이라면, 인생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수성을 가져야 합니다. 다산은 유배지 강진에서 백성들의 참상들을 고발하는 시를 쓰는 한편, 유배지의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에 대해 맑은 서정을 담은 시도 썼습니다. 『뜬 세상의 아름다움』에서는 누추한 삶에도 아름다움이 깃들 수 있음을 알고 그것을 잡아내는 시인이라고 다산을 평했습니다. 저자 박무영은 다산의 논리 정연한 논설문과 감수성 깃든 서정적 성격의 글들을 함께 음미해야만 그의 전모를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뜬 세상의 아름다움』은 서정적 성격의 산문들을 뽑아 낸 책입니다. 만약 다산의 서신, 논설, 여행기, 상소문, 잡문 등을 다양하게 읽고 싶다면 솔출판사의 『다산문선』을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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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4 00:43:17 *.140.33.115
"안빈낙도하리라 말을 했건만, 막상 가난하니 '안빈'이 안 되네. 아내의 한숨 소리에 그만 체통이 꺽이고, 굶주린 자식들에겐 엄한 교육 못하겠네."

이 부분을 읽으며 너와 낮에 나눴던 대화가 생각나서 슬며시 웃었다. 생계를 의지하고 있는 현재의 일에 마음을 다하지 못하는 내가 한편으로는 한심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다른 가능성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음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이런 고민도 정리해두면 비슷한 과정을 거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련만...... 매번 게으름 탓만 하고 있구나.

이 약속을 지키려 그리 뛰어갔구나. 에고, 고생했다. 네 덕에 오늘 하루가 즐거웠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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