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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8일 09시 59분 등록
독서를 통한 자기경영 모임(와우팀)을 수년째 진행해 오면서 저는 참 많이 배웠습니다. 배움 중의 하나는 책에 대한 팀원들의 반응에서 얻은 교훈입니다. 3기 와우팀까지의 독서목록 중에는 로버트 그린의 『전쟁의 기술』이 있었습니다. 현대의 마키아벨리라고 불리는 로버트 그린은 사람을 마음의 얻는 데 세계적인 권위를 가졌지만, 이 책에 대한 팀원들의 반응은 냉랭했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전제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법, 라이벌의 심리를 파악하는 법, 승산 없는 전투를 피하는 법 등 능수능란한 권모술수를 통해 자신을 지켜내고 승리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전하는 내용들이 꽤 불편했다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로버트 그린은 마키아벨리의 사상과 닿아 있습니다. 마키아벨리즘은 "공익, 특히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의 도덕적 선악보다는 효율성과 유용성만을 고려하는 마키아벨리의 정치 사상"을 지칭합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일상 생활에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처세 방식을 가리킵니다. 이런 처세술이 팀원들에게는 꽤나 불편하거나 더러는 충격적이었나 봅니다. 『군주론』을 훌륭히 번역한 강정인 교수는 충격의 원인을 잘 설명합니다. "마키아벨리에게는 도덕과 종교가 정치의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단순히 정치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불편할 수 있는 말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팀원 중에는 불편하지 않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 가지 점에서 공통점을 보였습니다. 하나는 40대 이상의 중년이라는 점, 다른 하나는 『논어』에 대하여 그리 큰 감동을 받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반면 로버트 그린의 저서를 불편히 여겼던 팀원들은 20대가 많았고, 『논어』를 좋아했습니다. 20대는 이상적이고 모호한 시절입니다. 그들의 꿈은 원대하지만, 그 꿈을 이뤄나갈 현실에 대한 인식은 다소 모호합니다. 중년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입니다. 꿈은 때론 왜소해 보일만큼 작고 현실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청년들보다 잘 압니다.

마키아벨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선행은 될수록 천천히 자신의 이름으로 베풀고, 악행은 가급적 부하의 이름으로 또는 재빨리 저지르는 것이 낫다. 인간이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을 수 있어도 자기 재산의 손실은 여간해서 잊기 어려운 법이다." 인간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구분해 둔 청년들은 자신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인정하기 힘들어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한 구석과 악한 구석을 동시에 가졌음을 경험으로 이해하고 깨달은 중년들은 마키아벨리의 조언에 공감합니다. 그들은 누구나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어느 정도 수준에서 마키아벨리즘을 실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공자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런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설파한 것이고, 마키아벨리는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구본형 선생은 지나치게 마땅함에 치우친 공자와 지나치게 위선과 욕망에 치우친 마키아벨리 사이에서 어딘가에도 치우치지 않는 처세의 장소를 찾으라고 조언합니다. 어딘가에도 치우치지 않으려면 양 극단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리더라면 마땅히 원대한 이상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세상이 실제로 어떤 동인에 의하여 움직이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저는 마키아벨리의 철학과 사상을 취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하자는 것입니다. 마키아벨리즘은 자신의 선한 목적이 희생되지 않도록 지켜내는데 유용한 사상입니다. 

『군주론』을 이상을 품은 리더의 필독서라고 권하는 것은 마키아벨리즘 자체를 사람을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하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에게서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실망하여 힘을 잃지 말고 그것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기적인 본성을 이겨내려는 선한 의지를 가졌음을 이해하라는 의미입니다. 그 선한 의지를 발휘하려는 노력을 한껏 기대하고 도와주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의 본성에 기대하면 실망합니다. 그들의 선한 의지를 기대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연약한 모습을 보일 때에 실망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을 한껏 기대하는 능력은 귀한 것입니다. 이것은 리더들에게 필요한 능력이고, 『군주론』을 들고 숙고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 『군주론』은 강정인 교수의 번역본이 좋습니다. 보다 쉽게 접근하려면 살림에서 출간된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 중의 한 권은 『군주론』을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강정인 교수가 마키아벨리와 그의 주요 사상에 쉽게 풀이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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