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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8일 10시 28분 등록

랄프 왈도 에머슨의 『자기신뢰』를 읽으면서, 저자와 나의 사상이 자연스레 비교되었습니다. 어떤 대목에서는 나란히 흘러갔고, 어떤 대목에서는 흐름이 갈라지는 것을 지켜 보는 것이 퍽 재밌었지요. 한번쯤 정리해 두는 것이 유익할 것 같아, 늘 써 오던 방식에서 탈피하여 자유롭게 나의 철학에 대하여 써 보았습니다. (이런 저런 사례를 들어 설명하기보다는 그저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그쳐 불친절한 글일지도 모르겠군요.) 다음 글에서는 『자기신뢰』를 읽고 난 소감과 견해를 곁들인 리뷰를 올리겠습니다. 에머슨과 『자기신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저 한 청년이 자기 생각을 정립해 가는 과정을 슬쩍 엿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혹, 용어가 생소하면 글의 아래 개념정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나는 관념론자다. 살아가다가 어떤 문제로 고민할 때면 정신과 가치, 삶에 대한 태도를 문제의 본질로 여긴다는 말이다. 누군가와 '고민 상담'이라는 것을 할 때도 그가 놓치고 있는 태도의 문제와 정신적인 가치를 잘 집어내는 반면, 그가 발딛고 있는 현실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일상과 현실을 중요하게 여기어 이상과의 균형을 찾게 된 것은 구본형 선생의 영향이 컸다. 일상이 중요함을 깨달으면서 나는 지식의 현재적 가치, 도구적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좋은 지식을 얻게 될 때마다 '그것을 어디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삶을 해석해 주는 지식보다는 변혁시킬 수 있는 지식을 추구했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나는 실용주의를 추구했다. 관념론적 성향과 실용주의적 성향은 첫 책에서 어느 정도는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에서 주장한 것은 '책과 독서'가 아니라, 독서를 통한 '삶의 도약과 행복'이었다.

실용적인 지식만을 추구하다 보면 종교적 믿음과 도덕적 가치가 소외된다. 나는 여기서 윌리엄 제임스를 따른다. 그는 미국의 실용주의를 대중화시킨 걸출한 지성인인데,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종교적 믿음과 도덕적 가치의 유용성을 인정했다. 내가 윌리엄 제임스의 견해에 동의하는 것은 내가 기독교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종교적 교리(지식)가 종교적 체험(실천)을 더욱 강화시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용주의는 (도덕적인 차원에서) 최선이 아닌 차선을 주장할 때가 있다. 최선을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때이다. 이것은 현실을 감안한 지혜로운 모습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도덕적 타락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 때, 나는 다시 관념론자의 모습으로 달려들 것이다. '비현실적인 최선'을 실현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실용주의자의 접근 방법으로 관념론자의 삶을 살겠다는 말이다.

타고난 본성이 이상적이고 관념적이고 낙관적이고 물질보다는 정신 세계를 중시하는 나를 관념론자라 칭했다. 20대의 나는 분명 관념적인 사람이었다. 나에게 '관념적인 사람'은 부정적인 의미다.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문제를 물어 보면, 그것과 관련된 '나의 삶'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그것에 대한 '생각과 견해'를 정리하여 들려 주었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스승의 도움으로 서서히 관념적인 삶에서 벗어났다. 지금은 '일반적인 생각과 견해'를 정리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나의 삶'을 들여다보고 현실을 돌아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관념적인 삶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에 눈을 떠 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실용주의를 추구하게 된 것은 삶의 실천을 중요시하는 기독교의 가르침 덕분이기도 하고, 구본형 선생으로부터 배운 일상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 때문이기도 하다.

에머슨은 자신의 철학을 관념론으로 칭했으나 관념론자들의 주장이 현실과 거리가 먼 경우가 있음도 꿰뚫고 있었다. 에머슨이 강조한 것은 개인의 자기 신뢰다. 그는 물질적 세계를 초월하는 인간의 능력을 믿었고, 이런 능력을 의식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음을 주장했다. 그에게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차이를 하찮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거대한 존재"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문화와 질서에 '순응'하는 것을 최악의 가치로 여기어, 『자기신뢰』에서 불순응주의자가 되기를 권한다. "사회는 개인의 자신감을 혐오한다. 사회는 실체와 창조를 반기지 않으며, 명분과 관습을 중시한다. 개체적 인간이 되려는 자는 불순응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사건과 환경의 포로가 되지 말고, 초연한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다. 내가 여전히 사회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좀 더 자신감을 가져야 함을 에머슨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았다.

자유를 추구하며 나의 생각대로 인생길을 걸어가는 독립성을 에머슨에게 충분히 배우고 실천해야 함을 절절히 느꼈다. 그로부터 독립성을 배운 후에는? 아마도 에머슨에게서 한껏 머무른 후에는 그를 떠날 것이다. 에머슨은 정통 기독교 교리에 집착하지 않았고, 나는 기독교 복음주의의 교리를 더욱 깊이 공부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때의 내 관심은 종교적 믿음을 지니면서도 합리적인 철학인이 되는 것이리라. 철학을 종교의 시녀로 전락시킨 스콜라주의를 지양하며 신본주의적인 철학을 추구하는 것이 나의 길이 될 것이다. 종교적 믿음을 지녔으면서도 이성을 도구로 하여 철학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내 사유의 흐름이 될 것이다. 상대주의를 인정하지 기독교 유신론의 배타성을 생각할 때, 내가 한 말은 모순되지만, 역설과 모순 속에 숨겨진 진리와 지혜를 발견하고 싶다.

이성의 한계를 잘 지적한 복음주의자들의 견해를 공부하는 동시에 이성의 힘을 주장한 철학자들을 연구하여 그 건강한 균형점을 찾아보고 싶다. 그 곳은 에머슨이 보여 준 자기 신뢰, 복음주의자들이 보여 준 자기 부인을 모두 100% 받아들인 생각이 될 것이다. 두 가지의 상반된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가능성을 가졌다는 말은 두 가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없이 선해질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한없이 추해질 수 있는 가능성. 

이런 고민을 하는 동시에 윌리엄 제임스와 존 듀이의 실용주의 혹은 도구주의를 쫓아갈 것이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내용들이 일상 생활에 유익한 지식인지를 물으며, 지식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위한 지식을 추구할 것이다. 아마도 그 대목에서 니체의 철학을 한껏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는 죽음이 아닌 삶을 위하여, 특히 삶의 실재를 두고 철학을 하였기에. 이 모든 생각들이 과연 쓸 만한 것인지를 내 삶 속에서 실험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실험은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나는 결국 삶을 구경하는 관조자가 아니라, 길을 떠나는 여행자가 될 것이다. (실천적 지식인들은 나에게 작은 영웅들이다.)


<글을 위한 개념정리>
관념론
: 정신, 이성, 이념 따위를 본질적인 것으로 보고, 이것으로 물질적 현상을 밝히려는 이론.
실용주의 : 실제 결과가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철학 사상. 행동을 중시하며,
                사고나 관념의 진리성은 실험적인 검증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
관념적 : (실재와 현실을 간과한 채) 자신의 이상적인 견해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일반론만을 늘어 놓는.
복음주의 : 복음을 받들어 실천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주의. 특히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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