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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8일 23시 50분 등록

늦지 않았다 - 한명석 (북하우스, 2009)



나의 2009년이 간다. 언젠가부터 시간은 참, 늘, 이 모양이다. 부지런한 녀석을 따라다니다가 올해도 다 보냈다. 작년엔 어금니 잇몸 수술하느라 서울대병원까지 다니며 다달이 예약 챙기다가 결국엔 해를 넘기더니 올해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선물해 준 생애전환기 건강검진 받느라 또 시간을 보냈다. 뭐가 생기긴 생긴 것 같아서 조직검사까지 받았는데 다행히 악성은 아니라고 했다. 나이를 더한다는 걸 몸이 더 먼저 아는 걸까? 번번이 내 몸이 건네는 소릴 해독하느라 쩔쩔 매는 꼴이라니.


내게 마흔은 정직했다. 아이들은 내 키를 훌쩍 넘겨 친구가 우선이 되었고, 남편과는 저만치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과 휴식, 그 틈새로 온몸 구석구석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왔다. 자꾸만 아팠다. 조금 지나면 나아지려니 하다가 또 그랬다. 30대의 내가 꿈꾸던 마흔의 독립적인 삶은 조금씩 미뤄졌다. 그렇게 또 하루살이가 되어 살고 있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고작 나 하나 잘 살라는 것일 리가 없을 텐데, 분명히 뭔가 더 있을 텐데, 내 몸뚱이 하나 챙기지 못해 질질 끌려 다니고 있었다.

 

인류 최대의 질병은? ‘장수’란다. 오래 사는 것이 최대의 질병이 되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도대체 행복인지 불행인지 헷갈린다. 평균 수명을 참고하면 마흔을 넘긴 나도 앞으로 그만큼 이상은 더 산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이지 큰일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당장은 견딜 수 있다는 이유도, 살기 바쁘다는 이유도 떨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제 때에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결국 후회한다는 것도 알아버렸으니 말이다. 돌아보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걱정이 산더미인데 나와는 띠동갑 언니뻘인 저자는 말한다. 늦지 않았다, 고.


참 고맙고 위로가 되는 말인 것은 알지만, 다시 한 번 내게 묻게 된다. 정말 늦지 않았을까? 그리곤 꼬리를 문다. 그렇담 조금 더 미뤄둬도 좋을까? 아예 이참에 미루고 미루다가 죽기 직전에야 돌변해서 잠깐 동안 반짝이다 떠나버릴까? 기껏 한다는 생각하고는! 산다는 건, 개구리나 풍뎅이, 개미, 토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산다는 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는 미루고 미루다가 미련하게 사라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뭐, 나를 보면 그렇단 얘기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질문인 “난 누구?”에 대한 답은, 미련곰탱이.


우리는 살면서 남에게 주었던 것들을 가지고 떠난다고 한다. 욕심쟁이인 난 뭐든 많이 가져가고 싶건만 돌아보니 빈손이다. 그동안의 난 뭘하고 살았단 말인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늦지 않았다는 사실일까? 아니다. 어쩌면 늦었다. 너.무. 늦지 않았을 뿐이다. 50대의 인생 선배인 저자는 ‘어떻게 나이 들어 갈 것인가’에서 시작된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내비게이션이 되어 책이라는 지름길을 찾았다. 그리고 당당히 얘기를 건넨다. “그래! 역시 되는 거였어”라고 말이다. 참으로 멋지다.


'삶이 다시 열리는 시간 / 중년의 인생 매뉴얼'이란 부제의 이 책에는 120명이 넘는 실명이 나온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이도 있고, 모르는 이도 있다. 어디서 그 많은 자료들을 다 모았을까? 무척 고마운 일이다. (물론 내 이름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들 중에는 중년을 넘어 노년에 이르러 알토란같은 선물을 남기고 떠난 이들도 있다. 미치도록 부럽고 샘이 났다. 정말 늦지 않았다면 나도 따라하고 싶은 충동에 책을 덮고 먼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실명 중 다수는 현역들이다. 특히 책장을 마구 접어놓았던 부분은 조성권 씨의 ‘10년간 행할 10가지의 은퇴 준비 리스트’였다.


월10만원 적금 통장 매년 만들기, 자격증 10개 따기, 박사학위 도전하기, 평생 친구 10명 만들기, 전국의 좋은 산 100곳 오르기, 꼭 읽어야 하지만 못 읽은 책 100권 읽기, 책 10권 쓰기,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 10가지 하기, 건강 챙기기, 등등. 구체적이고 다양한 계획들이 눈에 보일 듯하다. 이처럼 인생의 어느 한 때, 문득 돌아본 자신의 과거를 통해서 미래를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 빈손이어서 더 절실하고 더 치열한 중년의 모습을 나는 이 책에서 보았다. 그리고 내가 빈손이어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미래를 그리지 못해서 부끄럽다는 것을 알았다.


알면? 그럼, 됐다. 그 다음은 하면 된다. 이 책의 제목처럼 고맙게도 아직 늦지 않았다!

2010년이 온다. 문득 양희은이 부른 ‘인생의 선물’이란 노랫말이 뜨겁게 다가온다.

♬ 만약에 누군가가 내게

다시 세월을 돌려준다하더라도

웃으면서 조용하게 싫다고 말을 할 테야

다시 또 알 수 없는 안갯빛 같은

젊음이라면 생각만 해도 힘이 드니까

나이든 지금이 더 좋아

그것이 인생이란 비밀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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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9.12.29 09:02:16 *.108.48.236
ㅎㅎ 내가 책에서 배우는 사람이라 인용이 많아요.
근데 120명을 세었어요?  귀여워라~~^^

시골 친구들이 조촐한 출간기념회를 해 주면서 붙여놓았던
'늦지 않았다'라는 글씨를 가져와서 컴 앞에 붙여 놓았거든요.
시도 때도 없이 보이는데 참 좋은 것 있지요?

나는 하나에 꽂히면 다른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단세포인지라
마음을 따라가는 데는 문제가 없어요.
가령 120명이 내게 말해주는 메시지를 알아 들었을 때
그저 따라 가기만 하면 되는 거지요.

내년 이맘때 위 글을 읽으며 가만히 미소짓는 미영씨를 떠올려 봅니다.
아무 것도 늦은 것은 없다고 진심으로 생각해요.
더군다나 띠동갑 동상인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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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현
2009.12.31 15:54:19 *.155.7.112
글보고, 반가움 마음에 댓글달아요.
잘 지내시죠? 어디 아프신거 같아서,,,걱정이 되네요.
건강 꼭 더 잘 챙기시구요,..
2010년은 바라시는 삶의 모습과 더욱 일치되시기를...
그래서 작고 큰 행복들이 소소하게 찾아드는 그런 한해 되시길 바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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