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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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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8일 12시 07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저자는, 10년 전인 40대 중반에 직장 생활의 ‘길들여진 편안함’이 언제까지나 존재할 수 없으며 그것이 스스로에게 맞지 않는 삶의 방식이라 깨닫고는, ‘나다운 삶’을 찾아 ‘나만의 길’을 선택한다. 생활을 위한 많은 것이 보장되던 20년 동안의 익숙한 삶에 결별을 고하고  스스로 기업이 되는 모험을 한 것이다. 그는 스스로 일인 경영 기업이 되어 프리랜스, 강연자, 저술가의 길을 걷는다.


저자는 스스로 변화경영 전문가라 이름 지었다.

그는 사람들의 ‘자기 경영’에 인문학적 사유를 접목시켜,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아 경영’과 ‘변화의 기술’을 제시하며 호소력 있는 이야기를 저술들을 통해 들려준다. 세상은 변하고 우리도 따라서 변화해야 하지만, 스스로 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변화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찾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목표로 한다. 변화는 자기 성찰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저자는 사람들이 자기 성찰을 통한 자아의 새로운 발견으로 ‘나 다운 삶’을 찾도록 인도한다.


 그는 스스로의  변화된 삶을 통하여 이를 증명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보낸다. 그는 자신에 대한 성찰과 실험 그리고 실천을 통하여 ‘내가 잘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나선, 그래서 지난 10 년간의 성공적인 삶을 일구어 낸, 우리 시대의 전형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생활을 위해 가면을 쓰게 된다. 회사의 이름으로 , 가족을 위해, 때로는 경쟁자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가면을 쓴다.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 몇 겹의 가면을 쓰고 나면 나의 원래 얼굴이 어느 것인지 조차 분간하지 못하게 된다. 마치 화장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에게 얼굴을 내밀지 않는 여자와 같이. 저자는 이런 가면을 벗어던지고 ‘나다운 삶을 살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그는 ‘변화는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의 저술에서는 치열한 자아 혁신과, 스스로의 삶에 대한 당당함, 생활인으로서의 솔직함, 순수한 열정과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는 스스로 자유인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자아를 잃어버리고 현실의 가치들에 매몰되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저술들은 ‘꽃씨’가 되고 ‘불씨’가 되고 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p 30

자유는 빛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확실한 것, 굳건히 서있는 것들의 질서 안에서 자유는 끝난다. 절실하게 바라지만 자유가 주어지면 우리는 자유를 두려워한다. 이내 스스로를 함부로 던져 망가뜨리고 만다. 마르셀 푸르트는 이것을 “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모든 만족을 얻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함께 그녀를 배신한다.”고 표현한다.


p 31

현실은 늘 죽음 앞에서 무력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오직 삶만이 현실의 위력에 눌려 죽어지낸다.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현실적으로 밖에 살지 못했던 그 초라한 현실을 후회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 왜 강남의 아파트 한 채를 얻기 위해 모든 시간을 그 욕망에 다 쓰고 말았을까? 모호하고 불확실함 속에서 그것만은 가능한 성취로 보였기 때문일까 ?......

p 43

그가 취해 중얼거린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독백이 이어진다. 바쁘게 지낸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들고 말았지. 지금 의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공허한 한 남자를 말이야. 내 인생에 중요한 일이 벌어진 위대한 젊은 날을 과장하지 못한다면, 지금 이 허무를 견딜 수 없다는 것을 너희는 모르지. 지나간 과거에서 아무것도 건져내지 못할 때 마흔 살 남자는 낙엽처럼 부서지는 허망함 속에 서있게 된다는 것을 너희처럼 새파란 것들은 알 수가 없는 거야. (중략)

그리고 또 다른 그는 일 속으로 도망간다. 일밖에 없는 일꾼은 성공한 실패자가 되고, 부유한 노예가 되고, 가족에게 미안한 가장이 되고, 늘 바쁜 아비가 되어 무자비한 사다리의 꼭대기를 향하여 질주한다. 어플루엔자라는 ‘부자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정한 기준을 맞추기 위해여 동분서주하고, 공허한 인생을 위로받기 위해 지나치게 돈에 집착한다.

p 49

이상과 비전으로 상징되는 젊음의 마법이 사라진 후에 다가오는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이다. 일만이 생산적인 것이고, 지루한 일상을 견딜 수 있는 탈출구이다. 이리하여 일은 일상과 실제의 삶이 된다.

p 50

비로소 이때가 되면 자유로워진다. 제 좋을 대로 행동하지만 이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가 된다. 모든 관절이 녹슨 문짝처럼 삐꺽거리고 겨우 걷고 먹을 수밖에 없게 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비극이다.(중략)

그러나 이것은 환상일 뿐이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흔 살이 되면 사람들은 밀려드는 피로감 때문에, 자신에 대한 다소의 실망감 때문에,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대문에 저만치 물러앉는다. 노력이란 얼마나 지루한 가시밭길인가!

p 54

마흔이 넘으면 불운과 실수에 대하여 스스로를 용서하게 된다. 실패와 무능력과 비겁함은 비난받아야 할 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 한계와 비극의 문제로 전환된다. 사회에 대한 분노와 강한 자에 대한 비난은 탄식과 슬픔이 된다. 겸손과 동정과 베풂은 이런 비극적 통찰에서 나온 변환이다. 마흔 살은 융통성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동시에 어두운 곳에서 밝음을 보는 긍정적 지혜가 위로되는 시절이다.

p 51

마흔이 넘어 나타나는 창조성은 ‘발작적 물꽃’이 진화하고 성숙하여 하나의 습관과 태도로 변한 일종의 믿음직한 기술로 바뀌게 된다. 이때 에디슨의 말이 적용된다. ‘천재는 1 퍼센트의 영감과 99 퍼센트의 땀’이란 말은 창조성에 대한 명언이다. 마흔 살 너머의 창조는 학습과 훈련과 가벼운 정신적 태도의 산물이다.

p 57

융 학파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이 쓰고 있던 사회적 가면, 즉 페르소나는 중년이 되면 붕괴한다. 그리고 내면을 향해 들어가도록 강요한다. 중년의 과제는 각 개인의 내면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이 치료이며 재생을 위한 내적인 힘이다. 대체로 이러한 갱생의 힘은 절망과 고통 속에 감추어져 있다.

마흔이 되면 한계에 대한 자각이 젊은 시절의 끝없는 희망을 대신한다. 운명이 희망과 기대를 가리게 한다. 쉽게 절망하고 냉소적이 되기도 한다. 젊었을 때 사람들이 너무 희망적이었다면, 마흔 살이 되어서는 모든 믿음을 쉽게 버리는 함정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저 두 개의 시선, 자신을 바깥에서 보는 시선과 안에서 보는 시선을 공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부름을 받으면 신명을 다하는 것이고, 그들이 잊으면 일상을 즐기며 스스로 벌어 궁색하지 않게 먹고 살면 되는 것이다.

p 59

 마흔 살은 게임의 후반부나 연극의 2막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마흔 살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 것은 막연히 한 번 더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의미한다. 똑같은 실력을 가지고 후반전을 뛰어본들  또 한 번의 고배와 비웃음을 자초할 뿐이다. 1 막에서 엑스트라였던 사람이 2 막에서 돌연 주연으로 바뀌는 연극을 본 적이 있는가? 마흔 살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연극의 지루한 2 막이 아니다. 오히려, 연극을 끝내고 진짜 현실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파괴와 창조, 죽음과 재생이라는 이미지와  직결되며, 죽어야 살 수 있다. 이 치열한 반전을 사람들은 일부러 잊으려 하는 것인가? (중략)

나는 삶을 연극에 비유하는 것을 싫어한다. (중략)

삶을 연극에 비유하는 것을 미워하는 이유는 삶을 극장 안으로 몰아넣고 짜여진 연극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p 62

마흔 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p 63

나는 마흔이 넘어서 바쳐야 할 목숨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이것은 비참한 일이었다. 푼 돈 서푼자리 인생이었다.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바로 이 자리가 내가 죽어야 하는 자리라는 점이었다. 한 세상이 어둠에 쌓이게 될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은 어둠 속에서 새로운 빛으로 빛난다.

p 81

떠남이 모드에게 다 좋은 해결책은 아니다. 조직과 단체 속에서 더욱 빛나는 사람들도 많다. 혼자 떨어져 있으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 속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휘날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조직에 남아 그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p 84

나는 세일즈 대신 나를 마케팅 할 방법을 모색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찾아내는 방법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수동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를 과장하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 중요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설득했다. 수동성을 능동성으로 전환시키는 일은 어려운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쉽게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효과적인 일이 아니다. 유전자는 바뀌지 않는다.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은 괴로운 과정에 비해 지극히 평범한 성과를 돌려 줄 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은 수동성이다. 나는 능동성이라는 유전자 코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수동성을 강점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말하자면, 수동성을 적극적 수동성으로 전환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적극적 수동성, 즉 유혹은 늘 설득의 강력한 수단이 되어왔다는 것을 알아챘다. 경영학은 ‘유혹’이라는 싱싱한 단어를 죽은 단어, 즉 마케팅이라고 불러왔다.

p 85

유혹은 설득 이전에 이미 설득당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모든 위대한 리더는 유혹에 능한 사람들이다.

유혹은 매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매력은 가장 자기다운 것에서 발산되는 페로몬이다.

p 88

한 때는 공부를 더 해볼까도 고려했지만 그만 두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해놓은 것들을 읽고 분석하며 해석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것을 가지고 싶었다. 박사라는 사회적 인증의 과정과 틀은 내게 아무런 흥분도 주지 못했다. 전문가는 학위와 자격증에 의해 증명되지 않는다. 전문가는 과거에 의해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며, 오직 끊임없는 자기학습에 의해 날마다 새로워 질 뿐이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p 99

내가 일상의 여울 속에서 그 작고 미세한 감정의 파도들이 쌓아놓은 퇴적물로 화장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화장품 가운데 으뜸은 역시 세월이다. 생각은 머리를 통해 눈에 나타난다. 눈은 엄밀히 말하면 두뇌가 밖으로 나온 기관이다.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눈에 표현된다. 눈이 인상을 결정하기도 한다.

p 112

인간은 권력에 오염되어 있다. 물질적 권력이 아니라 지식을 통한 훈육 권력에 매여 있다. 건강한 개인과 부강한 국가라는 거부하기 어려운 모터를 앞세워 개인의 삶을 규격화하고 통제하려는 권력이 우리를 묶고 있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만들어지고 조작되며 인위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p 115,6

그저 태어나 먹고 살기 위해 애쓰다 아파트 한 채를 남기고 일흔 여섯 살의 나이로 죽었다‘라고 기록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의 자유를 천만금에도 팔지 않는다. 돈에 묶이지 않고 가볍기 때문에 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인형은 홀로 움직일 수 있는 생명을 얻게 된다. 생명은 내면에 있다. 우리의 내면은 늘 신과 만나는 장소이다. 신은 복잡한 곳에 있지 않다. 바다 위에 머무는 햇빛, 푸른 하늘을 흐르는 구름, 미풍 속의 나뭇잎, 그리고 그 바람, 시냇물이 흰 바위를 스치며 내는 소리, 계류가 흐르다 모여 이룬 소 속의 가을 물빛, 나뭇잎 하나와  거미줄 한 가닥에 매달린 작은 거미, 비 온 뒤 흙길 위를 천천히 움직이는 지렁이 한 마리는 신이 가장 머물기 좋아하는 장소들이다. 아니면 고추 몇 개가 곁들여진 싱싱한 상추 한 접시와 된장이 놓인 소박한 여름 점심상에도 신은 머문다.

p 117

나는 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다운 것에 천착하고 매달렸다. 니체가 말한 ‘거리에 대한 파토스’를 추구했다. 이것은 차이에 대한 열정이었다. 차이는 다름 아니다. 그것은 다른 것, 다른 사람의 것을 자신의 것과 구별 짓는 다름에 대한 열정이다.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은 어설픔과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러움과 긍정의 표상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더 다르게 만들려는 열정이다. 더 많은 차이를 만들기 위해, 차이를 끊임없이 생산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달라야 한다. 자기 경영의 근간이 되는 것은 실천의 철학이다. 바로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p 140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게 되자 새로운 방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차는 달빛을 타고 떠올라 전혀 다른 차원의 길을 달려갔다. 그리고 아주 다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수 없이 많은 길이 있다. 현실이란 그저 ‘지금의 상황에 대한 남들의 생각’일 뿐이다. 나는 나의생각을 가지고 있다. 에머슨의 말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관이 그 사람의 성격임을 종종 잊고 지내는 것 같다. 누구의 삶이든 그 것은 늘 그 주인을 닮게 마련이다.

p 143

내가 아내와 즐기는 시간의 3분의 1 정도는 이런 여향으로 채워졌다. 이것이 내가 새로운 삶을 가진 후 가능해진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다. (중략)

여행은 우리가 서로 싸우는 것보다는 서로 인생을 즐기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p 146

나는 목적을 가지고 친구들과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 친구는 말 그대로 함께 놀기 위함이다. 오직 인생을 같이 가기 위함이다. 서로 떨어져 각자 자신의 인생을 살다 우연히 어떤 그리움의 교차점에서 만나 손을 잡고, 웃고 떠들고 헤어지는 것이 제일 좋다. (중략)

친구들 사이에 이해가 끼면 안 된다. 친구와 비즈니스를 같이하는 것은 좋지 않다. 비즈니스는 그저 전문성을 나눌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하면 된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예의를 지킬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이다. 나이가 들어 돈벌이를 하게 되면 친구들에게는 결코 아쉬운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친구들에게는 절대로 잘난 척해서도 안 된다. 친구의 성공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순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친구의 성공 속에는 늘 ‘그 동안 나는 뭘 했나?’ 하는 자신에 대한 문책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삶의 어둠을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고통 역시 개인의 몫이다. 각자에게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있고 나룰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들끼리 나눌 수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혼자 그 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짐을 각자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함께 있으면 훨씬 낫다.

p 157

자연이 우리를 설득하는 방식은 늘 같다. 먼저 우리를 감탄하게 하여 혼을 빼놓는다. 상상 너머의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잡은 다음 아주 ‘자연스럽게 마음을 굴복시키고 무릎을 꿇게 한 후 신의 음성을 불어넣는다. 이 아름다움이 보이느냐? 너의 초라함이 보이느냐? 네 마음  속에 서식하는 벌레의 꿈틀거림이 느껴지느냐? 어째서 그런 짓을 하였느냐? 이 어리석은 것아. 우매한 미망의 어둠에서 나와 가고 싶은 길을 가거라. 숟가락으로 먹은 모든 것은 결국 똥이 아니더냐. 마흔이 넘게 살아 온 긴 세월이 참으로 잠깐이고 꿈이 아니더냐. 다행히 아직 꿈이 끝난 것은 아니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죽음이 널 데려갈 때 좋은 꿈이었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여라.

p 160

변화 자체가 우리의 일상이 삶이다. 생명이 주어진 순간 삶은 시작되고, 삶이 주어진 순간 죽음의 시계도 카운터 되기 시작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왜 변화해야 하는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p 164

때때로 나는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그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한 때이다. 어떤 조화로움이 나를 밀고 여울처럼 가슴으로 퍼져오는데, 그때 평화를 느끼게 된다.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노자의 말은 곧 나의 말이다.

p 165

‘풀님에게 기도합니다.

당신을 밟고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내가 지나갈 때 당신이 고개를 숙여야 할지라도

내가 죽으면

나 역시 당신의 자매가 될 것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도-

p 166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인생을 오래된 방식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시작하기도 전에 좌초하는 것도 수없이 보아왔다.

p 167

나는 나무와 같다. 스스로의 그늘을 만들고 열매를 키워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고 찾아오게 하는 것이 훨씬 나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무를 통해 자연 속에서 하나의 자연이 된, 나에 대한 가장 유사한 상징성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나무다. 스스로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내가 서있는 곳은 땅이지만 가야할 곳은 하늘이다. 나는 땅에서 하늘로 간다. 몸이 땅에서 나와 영혼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듯, 땅을 움켜쥐고 온 몸을 던져 하늘을 향해 자란다. 나의 모든 힘은 어두운 내면으로부터 온다. 어두운 곳은 언제나 비옥한 토지였다.

나의 내면은 땅과 같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두렵고 위대한 힘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가치가 뒤섞여있고 뜨거운 용암으로 가득하다.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하고 무궁무진한 자산은 땅이다. 나는 땅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나는 나를 이용하고 활용한다. 가장 먼저 나의 가능성을 탐사하고 이용해야 한다. 내 내면을 뒤지고 곳곳에서 흐르는 에너지의 샘들에 깊고 굵으며 튼튼한 뿌리를 튼튼하게 박아두어야 한다. 이 힘들만이 나를 키울 수 있다. 이 것이 첫 번째 교훈이다.

p 174

스스로 정정한 나무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 그늘에서 쉬고 그 나무를 부러워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 나무의 열매를 가져다 심고 싶어 할 것 이다. 스스로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은 좋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며, 그 일의 가치가 빛나는 일을 하고,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중략)

그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이 행동할 수 있게 하며, 그들이 실천하게 해야 한다. 다라서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과 색깔과 맛을 담은 향기로운 과육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유행에 따르지 말라. 자연의 맛은 독특하고 차별적이다.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가진 품종을 만들어내라.

p 209

나는 나를 ‘정신적 여행자’하는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 것은 날개 같은 것이다. 시간이라는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활공한다. 모든 것이 꿈으로 판명되는 마지막 날에 느끼는 그 아득한 자유를 지금부터 즐기지 못하는 것을 아쉽게 생각했다. 지금 이 책을 쓰고 있는 이유도 과거에 갇혀 있는 나를 미래의 빛을 따라 아름답고 화려하며 자유로운 이야기 속으로 데려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p 210

나는 내가 바라는 그 꿈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회의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내 꿈에 대한 믿음이 있다. 다만, 훌륭한 상상과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지금의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종종 그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을 때가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강박관념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이다.

이런 생각들이 내게 지금 무엇인가를 하게 한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한다.

p 211

욕망이 꿈을 만들고 꿈은 믿음에 의해 현실적 개념이 된다. 미래를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은 정신적 여행자들이 가지는 힘이다. 그들은 상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상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산다. 그 것이 생활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책을 쓴다. 말하자면 나의이야기를 하며 산다. 글쓰기는 꿈을 현실로 데리고 오는 나의 방식이다. 나에게 책이란 꿈과 현실을 잇는 통로이다. 매일 조금씩 책을 쓰는 것은 나의 일상이며 현실이다. 책을 쓰며 상상하는 모든 것 역시 나의 일상이라는 점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화되었든, 아직 생각으로 남아있든, 저술가에게 생각과 상상은 이미 일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분명한 현실이다.

p 214

나는 인생이란 답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훌륭한 인생은 정의될 수 있다.’는 가정이 나에 대한 탐험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 이었다. 따라서 무엇이 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인생은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공하고 싶었다. 내가 계획한 어딘가에 반드시 도착하고 싶었다. 도착하는 것이 곧 성공이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도착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 위에서 끝나는 여행도 위대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10년 동안 내가 내 길을 가려는 노력의 결과로 알게 된 평범한 깨달음이다. 길 위에서 죽은 여행자처럼 완벽한 여행자가 어디 있겠는가!

p 220

우리는 불행을 만들며 산다. 누가 불행을 원할까마는 결국 우리의 불행은 우리가 만든 것일 뿐이다. 볼 수도 없고 말 할 수도 없고 듣지도 못한 헬렌 켈러가 “난 너무나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습니다.”라고 말 할 때, 모든 것이 멀쩡한 우리는 돈을 벌지 못해서 불행하고, 약간의 손해를 보아 불행하고,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행하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 불행하다.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고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참지 못하고, 그리하여 세상을 원망한다.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행복한 사람이 드문 것은 행복해지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p 221

맑은 날 들판을 산책하듯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어려운 일을 당하여 그 일의 밝은 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과거 속에서 아름다운 순간을 늘 떠 올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중략)그리고 몰입된 순간순간을 살 수 있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이란 결국 왜곡된 거울에 불과하다. 늘 자신에게 비추어 자신을 발견하려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중략)

‘나는 어떤 일을 이루고 싶었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가?’ 이 질문의 답이 찾아지면 인생은 목표를 가지게 될 것이고, 결국 그 길을 갈 것이니 행복해 질 수 밖에 없다.

p 222

아, 내가 세사에 남기고 가는 것은 세월이 지나면 희미해 질 내 삶의 발자국이고, 내가 가지고 가는 것은 꿈과 추억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구체적인 삶, 이 유일무이한 구체성이 바로 내 삶이고, 따라서 그 의미 역시 나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것이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 안에서 죽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 속에서 죽는다. ‘

-플루타르크-

길은 없다. 이것이 길이다. 하루가 길이다. 하루가 늘 새로운 여정이다.

p 262

두려움은 서서히 옥죄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두려움은 또한 강렬한 힘으로 작동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지금 열심히 일하도록 했다. 계속 책을 쓰도록 했고, 계속 읽게 했으며, 그저 빈둥거리며 사는 것을 불편하게 했다.(중략)

그러나 직장을 그만두고 홀로 서면서부터 무협지를 읽지 않게 되었다. 시간의 낭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무협지를 즐길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나는 공부하고 생각하고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에 다닐 때 보다 더 열심히 학습해야 했다. 나 이외의 다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나를 보호해 줄 아무런 울타리도 없었다.

p 263

학습은 성공을 오랫동안 빛나게 해준다. 나는 학습이 의무가 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은 작가들에게 하나의 의무이다. 이 짐을 견디지 못하면 더 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짐을 견딘다고 해서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무는 아무 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의무란 재미없는 것이다. 의무감이란 일상화되는 것이고, 지겨운 것이며, 반복되는 것이고, 아무런 생명도 살 수 없는 무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읽고 쓰는 것이 의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했으며, 이것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되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취미가 여전히 취미일 수 있도록 애를 써야 했다. 취미가 직업으로 바뀌면서 순수한 호기심과 재미를 잃어버린 전문가를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경계해야 했다. 나는 한 가지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을 자제했다. 읽기 싫으면 읽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썼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조급함에 그 이유 없음을 질타하곤 했다.

p 265

바쁘다는 것은 지우개와 같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그리움을 지우며 의미를 지우고 생각을 지운다. 바쁘다는 것은 사람을 거저 움직이게 한다. 먹이를 나르는 개미처럼 그저 한없이 움직이게 한다. 경제라는 본능에 따라 프로그램이 된 것처럼 낮도 밤도 없이 움직이게 한다. 똑 같이. 지겨운 반복적 소모를 ‘일 한다.’라고 부른다.(중략)

우리는 먹기 위해 일하고 일하다 죽는다. 한 번도 살기 위해 일을 버린 적이 없다. 놀기 위해 산적도 없다. 그래서 살기 위해 산 적이 없는 것이다.

p 274

나는 모든 배움을 삶의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삶이 아니면 음악이 아니고 소설이 아니고 철학이 아니고 경영도 아니고 이윽고 삶이 아니다.

p 275

좋아하는 일이 즐거움이 되려면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보기 싫은 책은 보지 않는다. 독후감 숙제를 하기 위한 독서 같은 것은 없다. 오직 마음이 가는 대로 읽는다. 글을 쓰는 스타일도 자유롭다. 논문처럼 형식을 갖추어야 하는 글쓰기는 싫어한다.(중략)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하여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질문하고 대답하고 싶다. 이때 지적 작업은 즐거운 산책이 된다. 그리고 깨달음의 과정이 된다.

p 277

니체는 ‘불꽃처럼 게걸스럽게 스스로를 불사르고 스러지고’ 싶어 했다. 불꽃이야말로 바로 그였다. 그의 본질은 넘실대는 불꽃같은 변화였다. 그에게 있어 완성에 이르는 길은 살인적인 자기파괴와 가지고 있던 믿음의 상실, 자기 해체로부터 생겨났다. ‘자기 처형’ 없이는 새로운 자기가 있을 수 없다. 단순한 자기 변화로부터 스스로에게 반대하고 자신의 적이 되려는 데서 그의 기쁨이 생겨났다.

p 283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만일 하루를 춤추듯 보낼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매일 그럴 수 있으면 자신의 행복을 찾은 것이다. 그 것은 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는 끝없는 여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길 위에 있다. 한 곳에 짐을 풀고 쉬더라도 그것은 길 위에서의 숙박이다.

p 288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아 경영’ 이것이 바로 내 학습의 중요한 테마 가운데 한 줄기를 이룬다. 또 하나의 줄기는 ‘변화의 기술’이다. 나는 이 테마 속에 조직의 진단부터 조직의 변화 모델로 이어지는 기술을 담으려고 한다. 변화의 철학과 기술, 이 두 개의 축을 나에게 적용해봄으로써 변화 경영을 하나의 예술로 만들어보려 한다.(중략)

도전이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번 다른 실패를 딛고 나 일 수밖에 없는 길로 운명적으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첫 번째 도전은 실패를 이기는 것이다. 두 번째 도전은 실패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도전은 매일 실험을 즐기는 것이다. 이때는 이미 실패도 성공도 사라진다. 여행을 즐기는 자는 끝없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세계에 탐닉한다. 그들은 춤추듯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p 294

모든 일에는 고객이 있다. 이것이 경영의 관점이다. 누가 내 일의 첫 번 째 고객인가?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의 첫 번째 고객은 나이다. 내가 내일의 가장 최우선적인 목적이다. 따라서 내 일은 반드시 나를 만족시켜야 한다.

p 297

인생을 파괴하지 않는 직업, 삶을 빛내는 직업만이 훌륭한 직업이다. 어떤 직업이 좋은 직업인가는 무의미한 질문이다. 눈부신 삶을 살게 하는 일, 그 일 때문에 삶을 즐길 수있는 일, 그것이 위대한 직업이다.


어떤 이론도 어떤 조언도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설득하기는 어렵다. 변화는 오직 스스로 시작할 때만 효과적이며 그때에만 비로소 행복한 전환이 이루어진다. 변화 경영이라는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스스로의 변화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자격 요건이다. 이것이 내가 겪은 통렬한 아픔이었다. 변화 경영 전문가로서 나에게 적용되는 엄격한 규율을 만들었다.


<먼저 나에게 적용할 것. 반드시 성공할 것.

그 다음 상이한 조건에서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활용할 수 있는지 실험할 것.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을 나누어주려는 잘못을 범하지 말 것.>

p 298

오늘을 놓치면 삶을 놓치는 것이다. 하루를 즐길 수 있으면 훌륭한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하나의 물결로서,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내가 나에게 바라는 목적이다.

p 299

글쓰기는 우선 모방이다. 많은 글을 읽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고는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중략) 얼마나 많이 모방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감동하느냐가 중요하다. 사업이든 글쓰기든 가슴이 설득당하지 않고는 자신의 철학이나 깨달음으로 전환하기 어렵다. 설득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설득은 감정의 폭우를 필요로 한다. 감정을 담지 못하면 설득에 성공하기 어렵다. ‘한 작품을 모방하면 표절이고, 여러 작품을 모방하면 연구이다.’

p 304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 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p 306

나는 개인에게 있어 ‘변화라는 것은 본래의 자기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본래의 자기란 무엇일까?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과 기질을 이해하고 그 강점을 계발하여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기다움으로 돌아가는 좋은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p 311

" 유일한 사람이 되어라. 이것은 최고가 된다는 뜻이다. 유일한 자만이 최고로서 칭송받을 자격이 있다. 최고가 된다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을 모두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만이 성공할 수 있다. 이것저것 다 잘하는 매력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은 늘 한 길로만 간 사람들의 것이다. 적어도 나는 한 길을 가기에도 숨이 차다. 다른 것들은 넘볼 시간도 여유도 없다. 나는 그저 내 일만 해도 저녁에 이미 탈진한다. “

유일한 사람이 되는 길은 신의 쪽지, 즉 ‘자신에 대한 기록’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자신만이 유이함의 원천이다. 자신을 활용하지 않고는 유일함에 도달할 수 없다.(중략)


누구든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인물을 얻어야 한다. 그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자신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살려내지 않고는 내면에 숨어있는 영웅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는 것, 이것이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이다.


p 317

나는 글을 쓸 때 나에게 주술을 건다.

“ 내가 쓰는 글은 감동적이어야 한다. 감동이라는 껍질에 싸여 있는 씨앗이다.(중략)

피와 영혼과 정신의 어느 부분을 건드려 그들 역시 알 수 없는 환상과 내면의 열정 속으로 빠져들게 해야 한다. (중략)

그리하여  자신 속에서 위대한 힘을 감지하게 만들어야 한다.(중략)

내 글은 강렬한 유혹이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지배해서는 안 된다. 삶에 대한 하나의 사례로서 나는 내 삶 자체가 매혹적이기를 바란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을 나는 매혹적인 삶이라고 부른다. 나는 나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고, 다른 삶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다. 끝없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즐거운 여행, 이것이 내가 그리는 삶이다.“

p 319

쏟아내는 것이 들어오는 것보다 많으면 이내 밑천이 딸리게 마련이다. 이것은 치명적 결함이다. 지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너무 바쁘면 안 된다.

p 342

막막할 때, 주저앉아 있을 때, 우연히 자신의 안에서 스스로 불을 켤 수 있도록 잠시 불을 빌려주는 예기치 않은 쏘시개 불꽃이 되는 것,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p 343

자신의 꽃씨를 뿌리게 하는 것,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신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심어주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나는 조용한 선동가이다. 모든 씨앗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속삭인다. 그 꽃이 무슨 꽃인지는 피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꽃이 다른 꽃들과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을 선동한다. 그리고 , 그 꽃을 피워내 이 세상에 그 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선동한다.

꽃씨와 불씨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하는 비즈니스이다. 내가 자연으로부터 배운 방식이다.

p 341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전보다 훨씬 자유롭다. 시간을 마음대로 배정할 수 있고,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쓰고 있다. 전에는 시간이 다른 사람의 것이었고 그들이 바라는 대로 쓰여 졌다. 그러나 이제 내 편이 되었다. 나는 전보다 풍요로운 사람이 되었다. 자신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처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나이가 들면 자신을 넘어 다른 삶에 손을 내미는 일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된다.

p 360

하고 싶은 일이무엇인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은 채, 든든한 밥그릇 하나 챙겨두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그 쩨쩨함의 끝을 묻고 싶었다. 새로운 인생을 건설해야 하는 시점에서 여전히 망설이기만 하는 나에게 무엇을 더 기다리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p 363

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고나 가난 때문이 아니다. 즐길 수 있는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자서전은 형식이 없이 자유로운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 가운데 하고 싶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자유로이 펼쳤다.

각 장의 맨 첫 페이지의 (초록색 지면 위) 글 들은 띄엄띄엄 읽게 되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별 다른 흥미와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저자의 자작시가 몇 편 들어가면 저자의 농축된 내면을 더 잘 표현하고 인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각 장 시작 둘째 페이지의 짤막한 인용문, 경구들은 인상적이다.


각 장마다 여백에 있는 세로로 된 글들은 불필요하다. 강조하기 위한 의도이겠으나 독자에 따라 저자가 선택한 글귀 보다는 다른 글에서 더 강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지면의 낭비이다. 나는 한 번도 세로 글에 눈이 가지 않았다. 저자는 각 목차의 주제를 말하는 것으로 족하고 나머지는 독자의 몫으로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감동적인 장절

- 2장 마흔 살 : 비수로 찔러내는 처절한 각성이 감동적인 공명을 울린다.


[ 마흔 살은 게임의 후반부나 연극의 2막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마흔 살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 것은 막연히 한 번 더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의미한다. 똑같은 실력을 가지고 후반전을 뛰어본들  또 한 번의 고배와 비웃음을 자초할 뿐이다. 1 막에서 엑스트라였던 사람이 2 막에서 돌연 주연으로 바뀌는 연극을 본 적이 있는가? 마흔 살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연극의 지루한 2 막이 아니다. 오히려, 연극을 끝내고 진짜 현실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파괴와 창조, 죽음과 재생이라는 이미지와  직결되며, 죽어야 살 수 있다. 이 치열한 반전을 사람들은 일부러 잊으려 하는 것인가? ]

[나는 마흔이 넘어서 바쳐야 할 목숨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이것은 비참한 일이었다. 푼 돈 서푼자리 인생이었다.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바로 이 자리가 내가 죽어야 하는 자리라는 점이었다. 한 세상이 어둠에 쌓이게 될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은 어둠 속에서 새로운 빛으로 빛난다.]

-4장 얼굴,5장 가족: 스스로에 대한 진솔한 드러냄이 사람의 마음을 다가서게 하고, 당당함으로 느껴진다.
 

-6장 자연 : 내게는 가장 감동적인 장이다. 자아의 발견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때때로 나는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그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한 때이다. 어떤 조화로움이 나를 밀고 여울처럼 가슴으로 퍼져오는데, 그때 평화를 느끼게 된다.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노자의 말은 곧 나의 말이다.]


[스스로 정정한 나무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 그늘에서 쉬고 그 나무를 부러워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 나무의 열매를 가져다 심고 싶어 할 것 이다. 스스로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은 좋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며, 그 일의 가치가 빛나는 일을 하고,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 8 장 길에서 : 남들이 안가는 나만의 여정을 가면서 반드시 겪을 수 있는 정신적 갈등과 고뇌에 대해 질문하고 이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한다.


[나는 인생이란 답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훌륭한 인생은 정의될 수 있다.’는 가정이 나에 대한 탐험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 이었다. 따라서 무엇이 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인생은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공하고 싶었다. 내가 계획한 어딘가에 반드시 도착하고 싶었다. 도착하는 것이 곧 성공이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도착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 위에서 끝나는 여행도 위대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10년 동안 내가 내 길을 가려는 노력의 결과로 알게 된 평범한 깨달음이다. 길 위에서 죽은 여행자처럼 완벽한 여행자가 어디 있겠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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