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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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8일 15시 02분 등록
 * 저자에 대하여


  구본형(1954년 충남 공주생)은 서강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역사학과 경영학을 공부했다. IBM에서 20년간 경영혁신 관련 일을 했다......


  스승님에 대한 가장 확실한 설명은 바로 변경연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이 이상 덧붙일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스승님에 대한 많은 꿈벗들의 사랑은 그 프로필로는 설명할 수 없다. 내가 사부님한테 대책 없이 끌리는 마음 또한 그렇다.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는다’는 좌우명은 그 자체가 아름답다. 10년동안 100명의 변화경영연구원을 양성하고 500명의 꿈벗 커뮤니티를 구성하겠다는 꿈은 더욱 아름답고 구체적이다. 연구원은 올해 6기를 뽑고 있으니 절반을 넘어가고 있고 26기까지 진행된 꿈벗 또한 어림잡아도 300명이 넘어간다. 이 많은 사람들이 과연 그 프로필만을 보고 모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인문학적 감성으로 경영의 냉혹한 세상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 또한 스승님의 저서와 강연의 강점이다. 2000년대 들어 불기 시작한 인문학 바람도 일부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 자기계발 프로그램과 자기계발 전문가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무엇이 변경연과 스승님을 유일하게 할까? 무엇이 이 많은 사람들의 대책 없는 애정을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꽤 오랫동안 이것이 궁금했다. 


  나는 작년과 올해 이 궁금함에 대한 세 가지 답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스승님은 우리가 모두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존재란 걸 진정으로 믿으신다. 스승님에게만 세상의 어리석음과 비열함이 빗겨가진 않았을 텐데, 긴 세월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만나면서 스승님의 이런 사람에 대한 사랑과 신뢰는 흐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강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 스승님의 아우라는 감히 우리를 그 기대에 어긋나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주술이 된다. 처음 스승님을 만나는 사람조차 이런 주술에 걸려 자신의 마음 속 깊이 숨겨져 있던, 때로는 자신조차 잘 모르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또한 그 앞에서는 세상의 때를 벗고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꿈벗과 변경연을 묶는 힘이 된다.     

  나 또한 스스로 확신하지 못한 나의 가능성을, 꿈을 아무런 의심 없이 들어주는 스승님의 모습에 내가 정말 꿈을 찾아갈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스승님 곁에서는 우리가 좀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스승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 스승님은 한결같다. 세상과 사람들의 변덕에 지친 우리들에게 늘 한결같은 마음과 모습으로 존재하는 스승님의 모습은 그 자체로 우리의 안식처가 된다.

  연구원 생활과 스승님에 대해 물어보는 질문에 어떤 연구원이 대답했다. 본인이 사람에 대한 평가가 후한 편이 아니지만, 몇 년을 지켜본 스승님은 정말 한결같으시다고. 보이대로가 바로 스승님이시라고. 나는 이런 칭찬을 그 누구에게도 들은 적이 없다.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감탄하다가도 나중에 실망할 것이 두려워 오히려 가까이 가기 겁나는 그런 맘을 가진 적도 있었다. 내가 지금 바라보는 스승님의 모습이 감히 진짜라면 나는 꼭 그 옆에서 그 향기를 맡고 싶다. ‘近墨者黑’이지 않는가, 언젠가 나도 내 주변 사람에게 내면의 향기를 베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세 번째, 스승님은 개인의 ‘꿈’과 ‘자기계발’을 이야기하시지만 세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놓지 않으신다. 작년 6월 변경연 홈페이지에 올라온 비난과 설왕설래들, 그리고 이에 대한 스승님의 답글(http://www.bhgoo.com/zbxe/188967).

  작가의 역사의식, 사회의식, 인간적 배려, 그리고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침묵에 대한 스승님의 명쾌한 글. 나는 이 글을 읽고 스승님이 진정 좋아졌다. 그리고 스승님으로 모시겠다고 결심했다. 이런 자세가 내가, 그리고 작가를 꿈꾸는 모든 이가, 그리고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이가 가져야할 자세라고 믿게 되었다.

  스스로 자신의 재속에 파묻힌 불씨를 찾게 해주는 불쏘시개, 부지깽이를 넘어서서 드디어 우리를 새로운 자신과 새로운 삶으로 마구 내모는 그런 사람! 스승님의 새로운 명함이다. 

‘Turning Point Spaker 새로운 삶으로 내모는 자’



* 내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그의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밖에 없던 세상에 나의 이야기(me-story)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나의 역사, 나의 문명이 존재하게 되었다. 나의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4]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끊임없이 나를 혁신시키는 일이다. 내 속에서 쉴 새 없이 새로운 나를 발견해내는 일은 아주 훌륭한 모험이다...

과거를 기록하면서 미래를 얻었다는 점이 이 책을 쓰면서 얻어낸 최고의 수확이다. [5]


미래는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를 딛고 이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과거를 충분히 썩혀 소화해내지 못하면 과거가 살아서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

‘미래에 대한 회고’, 이것이 개인사를 정리하면서 내 마음을 무찔러 들어온 생각이다. ...

과거의 기록이 건강한 미래를 계획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6]


나는 나의 문화사, 이 개인의 실록을 통해서 내가 넘어서고 극복해야 할 나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는다.’는 나의 비전은 먼저 이렇게 나에게 적용되었다. [7]


자신에 대해 쓰다 보면, 해보지 못해 안타까운 일들이 밝혀지고 절실해진다. 이때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은 그 일들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기회로 전환된다.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기 경영’은 바로 하로 싶은 일을 찾아 자신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10]


자신의 목표에 다가서는 자는 춤을 춘다 - 니체 [15]


과거는 늘 엄격하고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 감옥이기도 했다. [17]


고독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고독은 비 같은 것이다. 식물을 밤사이에 자라게 하는 그런 것이다. [25]


지식은 지식에 적용됨으로써 증식된다. 그리고 지식을 자신에게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체험한다. [26]


50대가 되기 전에, 노인의 모든 특성이 나타나는 그 끔찍한 나이가 오기 전에, 아직 젊음이 늦여름처럼 무더운 이 40대에 마지막 폭염 같은 사랑으로 성년의 절정을 매듭짓고 싶어한다. [27]


절실하게 바라지만 자유가 주어지면 우리는 자유를 두려워한다. [30]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현실적으로밖에 살지 못했던 그 초라한 현실을 후회한다. [31]


분명한 것은 마흔 살은 성취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라는 점이다. [32]


당혹스러움은 과거와의 연속성이 깨짐에 따라 생겨난다... 과거와 나 사이에 순간 구명이 뚫리게 된다. [34]


과거와의 연결, 심지어 미래와의 연결도 가끔 끊어버리고, 이 돌연한 시간적 격리를 휴가로 즐길 수 없다면 바보이다. [35]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문제에 끌려 다니는 것을 더욱 싫어한다. 나는 문제를 일상에 던져진 예기치 않은 모험과 도전으로 인식하곤 했다... 최선의 해결책에 도달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 [36-37]

마감시간에 쫓기는 숙제를 하듯이 달려들 필요가 없는 일들도 많다. 다이어리에 있는 모든 일을 해치워야 하는 과제(의무)로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내 삶에서 의무의 노예가 된다.


20대 또는 30대에 준비한 인생으로는 마흔 너머의 인생을 꾸려갈 수 없게 되었다. [38]


지나간 과거에서 아무것도 건져내지 못할 때 마흔 살 남자는 낙엽처럼 부서지는 허망함 속에 서 있게 된다는 것을... [44]

나에게 2008년에서 2009년 상반기가 이런 시기였다. 나의 20대와 30대를 돌아보면서 그 허망함에 울었다. 지난 세월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 버린 모래알갱이 같아서 그 허망함과 슬픔을 참을 수 없었다.

지난 과거를 통째로 부정하고 후회하던 암흑 같던 시절을 견디어 냈다.

지금은 나를 이만큼 키워준 과거를 받아들인다. 초라한 과거를 슬퍼하기엔 지금의 소중한 시간이 아깝고 앞으로 다가올 찬란한 미래가 서운해 한다는 것도 안다.


‘부자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정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공허한 인생을 위로받기 위해 지나치게 돈이 집착한다. [44-45]


나는 창조적 주체가 아니었다. 그저 짜여진 일과 속에 놓여 있었을 뿐이다.

직업을 통해 이루어야 할 내면적 발전이 없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인생 깊숙이 자리 잡은 피로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46-47]

40이 되기전에 나는 이미 다 늙어 있었다. 인생이 피곤하고 하루하루가 피곤했다. 일에서는 더 이상 도전을 받지 못했고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이러한 감정은 육체적-지적 탈진으로 이어졌다.  


일상의 걱정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어 가장 필요한 내적 성찰이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48]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을 수용한다. 따라서 개념의 깊이를 희생하는 대신 명료하고 구체적인 일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흔 살이 되면 인생의 마법을 떠나보낸다. 좀더 순수하고 자유로우며 장난기 어렸던 젊은 시절을 떠나보내고, 사회적 관습이나 책임, 자의식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일 때문에 놀이를 포기하고 책임 때문에 순수한 자유를 반환하게 되는 일상적 경험을 통해, 마흔 살은 개인을 군중과 대중 속의 이름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48-49]

...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비극이다. [50]

나의 경우는 반대로 나타났다.

대학교에 가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번도 자유롭고 순수하고 장난기 어렸던 젊은 시절이 없었던 듯 하다. 

이제 나는 내안의 어린 아이를 놓아주고 싶다.

더 늦기 전에, 아니 어린 아이가 발견한 길을 발견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따라갈 수 있을 때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의무와 당위의 굴레에서 매일매일 더 자유로워진다. 나는 이제 일을 버리고 놀이를 시작한다. 


이상과 비전으로 상징되는 젊음의 마법이 사라진 후에 다가오는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이다. 일만이 생산적인 것이고, 지루한 일상을 견딜 수 있는 탈출구이다. 이리하여 일은 일상과 실제의 삶이 된다. [49]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저만치 물러앉는다. 노력이란 얼마나 지루한 가시밭길인가! [50]


삶은 충분히 의미 있는 해석을 할 수 있다...

위대한 인생의 그림이 마흔이 되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내적인 관심이 자신에게서 가족에게로, 자식에게로 전이되는 것이다...

그동안 자신을 움직였던 힘과 지위와 성취에 대한 경쟁심리를 옆으로 치워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52]

남성들의 세계에서 남성과 경쟁하면 보낸 세월이 나에게 내안의 여성성을 부정하게 한 듯.

난 힘과 지위와 성취에 대한 내안의 욕구에 늘 시달렸다.

남성들과의 경쟁세계에서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타인을 배려하고 보살피고 양보하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훈련된 시간 안에서 나는 오히려 여성성을 혐오하고 싫어했다.


마흔이 넘으면 사람들은 외부를 변화시키는 것에 무력해진다. [52]

나는 아직도 꿈꾼다. 내가 변하고 나로 인해 누군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는 것을,,,

그래도 이제는 나는 나 자신을 바꿈으로써만 타인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흔 살은 남녀 모두에게 운명이나 숙명의 힘을 깨닫게 해준다...

냉정한 통찰력은 결국 과거를 용서하게 해준다.

마흔이 넘으면 불운과 실수에 대하여 스스로를 용서하게 된다. 실패와 무능력과 비겁함은 비난받아야 할 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 한계와 비극의 문제로 전환된다. [54]

마흔이 넘어 나타나는 창조성은 ‘발작적 불꽃’이 진화하고 성숙하여 하나의 습관과 태도로 변한 일종의 믿음직한 기술로 바뀌게 된다. 이때 에디슨의 말이 적용된다.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땀’이라는 말은 중년의 창조성에 대한 명언이다. 마흔 살 너머의 창조는 학습과 훈련과 가벼운 정신적 태도의 산물이다. [55]


융 학파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이 쓰고 있던 사회적 가면, 즉 페르소나는 중년이 되면 붕괴한다. 그리고 내면을 향해 들어가도록 강요한다. 중년의 과제는 각 개인의 내면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57-58]


두 개의 시선, 자신을 바깥에서 보는 시선과 안에서 보는 시선을 공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쓰임을 받으면 애써 일하고, 버림을 받으면 스스로 즐기면 된다. [58]


마흔 살의 문제는 결국 가슴과 영혼의 문제다. [58]


막연히 한 번 더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의미한다...

마흔 살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연극의 지루한 2막이 아니다. 오히려 연극을 끝내고 진짜 현실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59-60]


삶을 연극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만약 삶이 연극이 되면, 삶의 개념이 삶을 지배하게 된다. 연극이 삶이 아니듯 개념 또한 삶은 아니다. [60]


전환과 변곡, 이 두 단어야말로 40대를 묘사하는 가장 적합한 언어이다. [61]


위대한 하루가 없이는 위대한 인생도 없건만 하루하루는 잃어도 아까울 것 없는 푼돈처럼 낭비되었다. [62]


마흔 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62]


나는 마흔이 넘어서 바쳐야 할 목숨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으며,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이것은 비참한 일이었다. 푼돈 서푼짜리 인생이었다...

분명한 것은 바로 이 자리가 내가 죽어야 하는 자리라는 것이다. [63]


어떤 때는 이 부잣집에서 승부를 걸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68]


변화는 한가한 사람들의 과제였을 뿐이다. 변화는 바쁘지 않은 사람들의 일이었다. 변화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진 불행한 자들, 또는 불행을 인식하는 자들의 과제였다. [69]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할 때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가지고 평가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평가할 대는 그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로 평가하게 마련이다. [70]


임시성과 비정규성은 방법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특성이 되고 있다. [75]


나는 조직이 변하는 것보다 더 빨리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76]


지금의 하기 싫은 일을 버리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일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직장 속에는 그런 사람들이 적어도 80퍼센트는 되어 버렸다. [77]


필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늘 그 처신에 특별한 공유점이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적절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늘 학습한다. 자신의 과거와 경쟁한다.,,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어떤 분야든 자신을 불사르지 않고서는 핵심에 다가갈 수 없다.

세상의 흐름에 대한 대략을 알아 있다. [79-80]


조직과 단체 속에서 더욱 빛나는 사람들도 많다. [81]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은 괴로운 과정에 비해 지극히 평범한 성과를 돌려줄 뿐이다. [84]


적극적 수동성, 즉 유혹은 늘 설득의 강력한 수단이 되어왔다...

설득이란 언제나 스스로 이미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 설득할 수 있다...

유혹은 매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매력은 가장 자기다운 것에서 발산되는 페르몬이다. [85-86]


전문가는 학위와 자격증에 의해 증명되지 않는다. 전문가는 과거에 의해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며, 오직 끊임없는 자기학습에 의해 날마다 새로워질 뿐이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88-89]


미래를 평가의 잣대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확실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사람들만이 전문가로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89]


회사가 나에 대해 지루해할 때쯤, 그리고 내가 회사에 대해 지루해할 때쯤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90]


나는 제2의 인생 속으로 들어갔다. 조직에게 양도했던 힘과 권리를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91]


고착의 패악은 정신을 경직시킨다는 점이다. [112]


욕망이 자신을 충족해가는 것은 개인혁명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욕망은 부숴뜨려 땅에 묻어야 하는 끔찍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힘과 에너지다. [113]


한순간 ‘이렇게 계속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114]


산다는 것은 자신을 재료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그저 '태어나 먹고살기 위해 애쓰다 아파트 한 채를 남기고 일흔 여섯 살의 나이로 죽었다.‘라고 기록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115]


사회적 기대가 존재하는 곳에는 늘 인형을 움직이는 끈으로 가득하다. ‘어떤 행위가 칭찬받게 될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그 무엇이라도 성취해낼 수’있을 것이다. [116]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은 어설픔과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러움과 긍정의 표상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더 다르게 만들려는 열정이다. 더 많은 차이를 만들기 위해, 차이를 끊임없이 생산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달라야 한다. 자기경영의 근간이 되는 것은 실천의 철학이다. 바로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117]


너무 가까우면 지켜야 할 것이 지켜지지 않아 상처를 받고, 적절한 간격을 두면 그 간격이 허전하다. [123-124]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124]


부모로서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가르침 너머 함께 즐기고 어울리며 공유하는 친구로서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내게 ‘적절함’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또 ‘적절한 표현’에 대한 생각도 하게 했다. [124]

<명사의 자녀교육>이란 코너에서 선생님이 쓰신 글을 보았다. 더 정확히는 딸에게 쓴 편지를 보았다. 친구를 위해 거짓말을 한 딸을 혼내고(?) 반성문을 쓰는 벌을 주는 내용이었다. 차분하지만 엄격한, 자녀에 대한 사랑과 가르침이 함께 녹아있는 글이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적절함’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글이었다. 우리 딸에게 이런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가정이라는 것이 갈등이 없는 가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125]


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마 나일 것이다. 다행스럽게 우리는 사이가 참 좋다. [129]

나도 우리 큰 딸이나 작은 딸에 대해서 이런 표현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 전에 아이가 오면 함께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을 장만하기 위해 고민을 해야 했다...

그때 오늘은 무엇을 함께 먹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우스운 일이었지만, 나는 그런 일들을 즐겼다...

우리는 기쁨을 위해 산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행복이다. [129-130]

회사를 다닐 땐 딸들의 기억 속에서 엄마의 모습이 피곤함과 짜증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무서웠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 가지게 된, 아이의 간식을 준비하는 시간을 기쁨으로 준비하고 있는 가 반성한다. 처음 회사를 그만 두었을 때와 지금, 나의 마음이 달라지지는 않았는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소홀해지진 않았는가. 작은 것에 환호하는 아이들의 기쁨을 찾아주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기쁨을 기억하자. 짧지만 의미 있는 시간들이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꼭 기억하자. ‘우리는 기쁨을 위해 산다’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면 잘 되지 않는다. 가장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가 제 자식을 가르치는 일이다. 감정이 격해지고 더듬거리며 장황하게 된다. 아이는 아비가 답답하고 요령부득이라고 생각하고, 아비는 아이가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내 서로 포기하게 된다. [131]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치면서 정말 힘들었다. 아이를 혼낼 때도 비교적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소리도 지르고 딸의 작은 등허리도 때리게 되었다. 수학을 힘들어해서 점차 싫어하게 될까봐 더 늦기 전에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도와준다기 보다 결국 혼만 실컷 내게 되었다.

시험 결과는 좋았지만 수학을 좀 더 이해하고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나의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실패한 것 같다. 수학의 논리정연함과 체계성을 통해 큰 딸의 사고가 발전하길 기대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의 가장 큰 장점인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을 헤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아이에게 맞는 더 좋은 학습방법을 찾고 전달하는 방법을 찾는 노력을 계속해야겠다.


우린 세상을 바꾸려는 축이고, 아내와 큰딸은 세상을 즐기고 거부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134]

난 세상을 바꾸려는 축, 신랑은 세상을 관조하고 자기만의 즐거움을 누리는 편,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단언할 순 없지만 큰 딸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즐기는 편 일듯. 작은 딸은 잘은 모르겠지만 나를 좀더 닮은 듯. 아이들을 알아가는 것도 큰 즐거움일 듯하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나는 집에 있을 때가 많다. 아이들이 시간이 있을 때 나는 늘 그들과 함께할 시간이 있다. 나는 언제고 함께 놀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 다행스럽게 아이들은 나를 좋아해 준다. [136]


나는 마음껏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일은 언제고 하면 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남은 시간에 하면 된다...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은 그들의 시간과 맞아야 하지만, 내가 일하는 시간은 어느 때고 좋다.

나는 아무 곳에서나 어느 때나 일할 수 있다... 온통 일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노는 것은 내게 힘을 주었다. 적어도 내가 내 인생을 마음대로 즐기고 있다는 자부심을 주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그런 생각이 주는 무기력이 내게 불어넣었던 어두운 불안과 스트레스를 데려가 버리곤 했다.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 정도 글 쓰는 일에 몰두하는데..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

나는 시간의 불모지를 내게 불하했다. 그리고 가장 귀중한 나만의 시간대로 만들었다...

이 두 시간이 거의 변하지 않는 내 작업시간이다. 이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늘 가족과 친구들에게 우선적으로 열려있다. [137-138]


왜 나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곳에 머무는 것일까?..

가장 먼저 아내와 아이들이 떠올랐다. 가장 소중한 그들이 바로 나의 구속이 된 것이다...

책임과 의무만이 무성한 잡초처럼 내 마음의 벌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139-140]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길이 있다. 현실이란 그저 ‘지금의 상황에 대한 남들의 생각’, 즉 다른 사람들의 견해일 뿐이다. [140]


여행은 우리가 서로 싸우는 것보다는 서로 인생을 즐기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143]


집은 좋은 곳이다.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정겨운 모습으로 늘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우린 유목민에서 다시 정착민으로 돌아온다. [145]


친구들은 외로움을 견디게 해준다...

친구는 생활의 일탈을 서로 돕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것이다. 혼자 하지 못하는 것을 함께하게 한다. 삶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 친구들이다...

친구는 말 그대로 함께 놀기 위함이다...

서로에게 아무 부담도 없다. 오직 인생을 같이 가기 위함이다. 서로 떨어져 각자 자신의 인생을 살다 우연히 어떤 그리움의 교차점에서 만나 손을 잡고, 웃고 떠들다 헤어지는 것이 제일 좋다. 진짜 친구와는 외로움과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좋다...

순수한 놀이집단이 친구들이다.  [145-146]


비즈니스는 그저 전문성을 나눌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하면 된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예의를 지킬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이이다. [147]


친구의 성공 속에는 늘 ‘그동안 나는 뭘 했나.’ 하는 자신에 대한 문책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147]


각자에게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있고 나눌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들끼리 나눌 수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자신의 짐을 각자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함께 있으면 훨씬 낫다...

즐거움은 우리가 지고 가는 삶의 무게를 덜어준다. [147]

평생 가고 싶으면 늘 반갑고 그리운 관계가 되도록 애써야 한다...

따질 것도 없고 계산할 것도 없다. 마음이 가는대로 함께 가는 것이 친구들이다. 친구란 함께 어울림이다. 서로에 대한 애정 없이는 그 어울림이 빛날 수 없다. [148]


회사를 나와 내 사업을 시작하기 직전인 2000년 3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남도를 한 달 반 정도 줄곧 걸은 적이 있다. [154]


자연이 우리를 설득하는 방식은 늘 같다. 먼저 우리를 감탄하게 하여 혼을 빼놓는다. 상상 너머의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잡은 다음 아주 ‘자연’스럽게 마음을 굴복시키고 무릎 꿇게 한 후 신의 음성을 불어넣는다. [157]


죽음이 널 데려갈 때 좋은 꿈이었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여라. [157]


사람은 왜 변화해야 하는 것인가요? ...

그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작은 세포가 아이가 되고 젊은이가 되고 장년이 되고 노일이 되고, 그리고 죽는 것이 삶이다...

변화 자체가 우리의 일상이고 삶이다. 생명이 주어진 순간 삶은 시작되고, 삶이 주어진 순간 죽음의 시계도 카운트되기 시작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왜 변화해야 하는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159-160]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재미있게 본 영화가 생각난다.

매일매일 일어나면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영화, 똑같은 하루하루를 못 견디게 지루해 하던 주인공이 바뀌는 순간 다시 시간이 흐르던 영화였다.

우리는 왜 변화해야 하나? 지루하니까, 내가 변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까.


사랑 자체가 온갖 변화를 다 껴안고 있는 복잡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이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고 삶이다. [161]


왜 변해야 하느냐고? ... 그것이 존재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161]

이번 장을 읽으면서 변화경영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겠습니다.


“밖으로 자연의 조화를 본받고, 안으로 마음의 근원을 체득해야 한다.” [163]

역시 이것이 진리이다. ‘내 마음을 알고, 세상과 자연을 받아들이는 것‘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조화롭게 살 수 있다 [164]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삶을 시작하지 못하는 바보들이기도 하다. [164]


참으로 이 세상에 부족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감탄이다. [164]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던 20년을 떠나와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곳은 그곳이었다. 나는 그때 치유가 필요했다... 세상을 보는 시각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가져야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인생을 오래된 방식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아왔다.

과거의 시선과 패러다임으로 두 번째, 진짜 삶을 규정짓지 말 것.

늘 명심하고 기억하라,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지난 10년과 똑같다.


자연 속으로 숨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방식을 나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데려왔다. [166]


나는 나무다. 스스로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땅이지만 가야 할 곳은 하늘이다. 나는 땅에서 하늘로 간다. 몸이 땅에서 나와 영혼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듯, 땅을 움켜쥐고 온몸을 던져 하늘을 향해 자란다...

나의 내면은 땅과 같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두렵고 위대한 힘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가치가 뒤섞여 있고 뜨거운 용암으로 가득하다.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하고 무궁무진한 자산은 땅이다. 나는 땅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나는 나를 이용하고 활용한다. 가장 먼저 나의 모든 가능성을 탐사하고 이용해야 한다. 내 내면을 뒤지고 곳곳에서 흐르는 에너지의 샘들에 깊고 굵으며 튼튼한 뿌리를 견실하게 박아두어야 한다. 이 힘들만이 나를 키울 수 있다. [168]

나는 무엇일까? 아직은 나를 규정할 수 없다. 그 답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나를 찾아가는 나의 여행의 즐거운 목적이다.


자라는 방법은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탄생하는 과정이다... 죽음과 삶을 반복하는 것이다. 파괴와 생성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장이다. [169]


혹독한 겨울에 살아남기 위한 창조적 해결책이 바로 버리는 것이다. [169]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좋지만, 그 생각이 한 곳에 갇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만들어낸다. [170]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하나의 씨앗처럼 날려 보내는 것이다... ‘변화에 대한 생각들’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날려 보내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들 역시 아주 특별한 인간으로 스스로를 탄생시키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173-174]

나와 선생님의 첫 만남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었다. 98년 처음 나온 책을 99년 18쇄. 3월 16일에 읽었다. 이 씨앗은 정말 오랜 시간 내 안에 묻혀 있었으나 그 존재만으로도 긴 밤 나를 뒤척이게 하는 작은 불씨였다.

어느 날 나는 내 안의 씨앗을 기억해냈다. 다행히 그동안 썩지 않고 내안에서 잘 숙성되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나의 씨앗으로 바꾸어 싹을 틔우기로 결정했다. 이제 이 씨앗은 나의 것이 된 것이다.   


스스로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은 좋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아주 많은 씨앗을 날려야 한다. 어떤 것은 실종되고, 어떤 것은 시멘트 같은 마음속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으로 들어갈 것이다. 자연은 아주 많은 낭비를 즐긴다. 이것이 자연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이유이다. [174-175]

자연의 맛은 독특하고 차별적이다.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가진 품종을 만들어 내라 [175]


운동은 하나의 의무가 된다. 다녀와야 책임을 다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놀이정신을 사라지고 반복되는 일상의 한 장면이 된다. 출근하듯 운동을 한다. [180]

수영, 즐거움을 잃지 않고 놀이로 끝까지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 의무로 만들지 말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고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나 자신을 즐길 것!


늙는다는 것은 그 속에 붕괴된다는 모멸과 서서히 몰락한다는 수치심을 포함하고 있다. [182]


영원히 스승의 빛에 가려진 제자는 결국 스승을 욕보이게 한다. [183]


죽음은 생명과 함께 시작된다. 또한 생명은 죽음과 함께 다시 시작한다. 이것이 생명의 순환이다. [184]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나에게 삶과 죽음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준 동화책이 있다.

미카엘 올리비에의 <엠마의 인생수업>, 할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엠마라는 아이가 삶과 죽음에 대해 알아가는 이야기이다.

‘인생이란, 아무것도 아니에요.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죠.’

‘죽음은,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해 주는 힘이란다. 삶이란 짧은 방학과 같단다. 언젠가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아니까 많은 일을 하려고 하는 것야. 일하고, 공부하고, 놀기도 하고... 살아있는 동안 모두들 최선을 다하지.’

‘바로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더 이상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인생은 아무 이유 없이 왔다가 가는 것이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이다.

길을 걷고 있는 저 사람들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그래도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용기일 것이다. 나는 그 사람들과 내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인생은 선물이에요. 하지만 크리스마스나 생일에 받는 선물과는 달라요. 이유 없이 받는 선물이지만 아주 소중한 선물이지요.’


‘좋은 브레이크는 좋은 엑셀러레이터만큼 중요한 것’이다. [185]


죽음은 무분별하고 과다한 욕망을 제거해줌으로써 생명체의 조화로운 성장을 도와준다. [186]


생각이 늘 기술을 선도한다. [187]


문명의 본질은 오랫동안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사냥꾼의 습성과 겨우 최근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사회적 본능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188]


갈등은 인간의 숙명이다. - 부모, 학교, 종교, 여론, 법 [189]


개인의 삶은 다양하지만 개인의 역사는 늘 자연과 문명의 갈등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때때로 한쪽에 치우치고 때때로 반전하고 이윽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적절한 융합과 균형을 잡아가기도 한다. 문명은 욕망이 과도한 탐욕과 결함을 지닌 불완전한 복제를 시도할 때 제동을 걸어준다. [189]


자연은 우리가 자연적 힘을 발휘하여 자신이 내린 시련을 극복하게 도와준다. [198]


마흔은 죽음이 삶과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영적인 나이의 시작이다. [199]


열심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성공학자들의 말을 나는 조롱한다... 근거 없는 이야기, 뿌리를 알 수 없는 낙관, 유치한 전개, 더덕더덕 기운 미덕과 잠언의 누더기로 치유가 아닌 잠시의 진통 효과를 과장하는 시시한 돌팔이들의 이야기를 싫어한다. 내 말은 미래의 꿈 그 자체가 믿음을 통해 추억만큼 분명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207]


나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과거시제로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일을 과거시제로 쓰는 순간 내게 이미 일어난 일이 된다. [208]


가끔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잊고 있는 것을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훌륭한 상상과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지금의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종종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을 때가 있다. 모르기 때문에 그 일을 지금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강박관념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이다.

이런 생각들이 내게 지금 무엇인가를 하게 한다. [210]

내가 ‘지금’ 해야 하는 일들이 또다시 나를 얽매는 강박관념이 되지 않도록...


욕망이 꿈을 만들고 꿈은 믿음에 의해 현실적 개념이 된다. [211]


저술가에게 생각과 상상은 이미 일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분명한 현실이다. [212]


나는 인생이란 답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이 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인생은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공하고 싶었다. 내가 계획한 어딘가에 반드시 도착하고 싶었다. 도착하는 것이 곧 성공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도착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 위에서 끝나는 여행도 위대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15]


사는 동안 생명을 모두 소모하므로 죽음이 찾아왔을 때 완전히 비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216]

가장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죽을 때 자신 안에 너무 많은 것을 남겨두고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길을 찾아 최선을 다한 사람은 그 끝이 언제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묘비명은 ‘다 쓰고 가다’가 되었다.


예전에는 그런 나를 싫어했던 것 같다. 좀더 분명하고 정확하기를 바랐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제는 나를 다른 사람과 바꾸고 싶지 않다... 오히려 주어진 나를 즐기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18]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행복한 사람이 드문 것은 행복해지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 속에서 아름다운 순간을 늘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무엇인가를 할 때 다른 것을 계획하지 않고, 어떤 것을 계획할 때 다른 행위를 하지 않으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다. 그리고 몰입된 순간순간을 살 수 있으면 행복하다...

늘 자신에게 비추어 자신을 발견하려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나는 어떤 일을 이루고 싶었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가?’

이 질문의 답이 찾아지면 인생은 목표를 가지게 될 것이고, 결국 그 길을 갈 것이니 행복해 질 수밖에 없다. [221]


사소한 일이 주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면 언제나 행복할 수 있다. 인생의 대부분은 아주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222]


오늘 새롭게 주어진 하루가 또 하나의 멋진 세상이 되지 못한다면 어디에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223]


내게 독서와 꿈과 글쓰기는 책 속의 경험을 배워 원래 내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던 근본을 이해하는 학습이다. [231]


밭을 재배한다는 것은 자신이 심고 싶은 것을 심는 것이다. 심고 싶은 것, 즉 욕망을 따른다는 점에서 자연스럽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에서 자라난 또 다른 욕망들을 뽑아낸다는 점에서 반자연적이다...

왜 하나의 욕망이 그렇게 중요한지, 동시에 왜 다른 욕망들은 절제할 수 있어야 하는지, 

[241]


나는 조용한 사람이고 무거운 사람이며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민감하고 진지한 사람 가운데 하나이지만, 세상을 밝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246]


노동은 노동 안으로 우리를 불러들인다. 노동 자체가 참선이고 수련이다. 다만 전혀 수련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게 하는 정신적 수련이다. 나는 빠져들고 몰두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249]

언젠가 나도 정원을 가지고 싶다. 매일 오전 정원 일을 하고 그 정원을 바라보며 향기 좋은 차 한 잔을 마시는 것, 나의 로망이다. 로망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런 정원이 주어져도 도망칠지도 모른다. 

 

우리의 육체가 거리낌없이 쉴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이다. 아이들은 커서 집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려고 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세상에서 지쳐 집으로 돌아오려 한다. 숱한 상처들을 치유하고 고달픈 일에서 벗어나 몸을 눕혀 쉴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이다.

지친 몸을 눕혀 쉴 수 있는 공간, 집의 가장 원초적인 의미이다. 집이 때로는 족쇄와 괴로운 일터가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집안에서도 의지적으로 나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기도의 방’까지는 못되더라도 작은 책상하나 들여놓고 책 한 권, 차 한 잔과 함께 휴식이 되는 공간, 안식처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집 전체가 바로 일터인 주부들은 특히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명상은 나를 즐기는 것이다... 원래 있었던 아름다운 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명상은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나의 내부에서 평화를 건져내는 것이다.

성당에 나가지 않은지 오래 되었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한 마디 “너희에게 평화를 주노라” 성당의 고즈넉함과 미사의 평화로움, 은은한 파이프오르간 소리와 함께, 신부님의 그 말 한마디에 요동치던 마음이 가라앉곤 했다. 내가 나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언젠가 종교로 다시 돌아간다면 아마 그 소리의 여운 때문일 것이다.  


“두려움은 곧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무엇이랴.” [260]


두려움은 서서히 옥죄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두려움은 또한 강렬한 힘으로 작동했다. [261]

회사를 그만 둔 후 나를 움직이게 했던 가장 큰 동기는 두려움이었다. 자칫하면 집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잊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이대로 가라앉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욕망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보다 훨씬 더 창조적이어야 했고, 더 열심히 학습해야 했다. 나 이외의 다른 것은 믿을 수 없었다. [262]


학습은 성공을 오랫동안 빛나게 해준다. 나는 학습이 의무가 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은 작가들에게 하나의 의무이다. 이 짐을 견디지 못하면 더 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짐을 견딘다고 해서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무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의무란 재미없는 것이다. 의무감이란 일상화되는 것이고, 지겨운 것이며, 반복되는 것이고, 아무런 생명도 살 수 없는 무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읽고 쓰는 것이 의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했으며, 이것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되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취미가 여전히 취미일 수 있도록 애를 썼다. 취미가 직업으로 바뀌면서 순수한 호기심과 재미를 잃어버린 전문가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경계해야 했다.

나는 한 가지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을 자제했다. 읽기 싫으면 읽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썼다. 매일 쓰는 것은 다행해 아주 즐거운 놀이였다. [263-264]


심심함이야말로 모든 창조적 발상의 원천이었다. [265] 


바쁘다는 것은 지우개와 같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그리움을 지우며 의미를 지우고 생각을 지운다. 바쁘다는 것은 사람을 그저 움직이게 한다...

노동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억제하고, 열망을 줄이며, 독립의 욕망을 피하는 현명한 자제의 방법이었다. [265]

점차 빨라지고 바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마음 가는 대로 휘둘리되, 여유를 잃지 않는 것이 올 일 년 나의 목표이다. 과정을 즐기려면 적당한 여유는 필수임을 잊지 말자. 


아침에 일어나 책을 쓰기 시작한 지 8년이 되었다. [269]

조급해 하지 말 것! 새벽에 일어나 나의 시간을 가지게 된지 이제 겨우 5개월째.

찬찬히 한 발자국씩 나아갈 뿐이다.


나는 내가 읽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독자는 자신들의 체험과 사유의 한계 속에서만 저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 권의 책이 읽힐 때마다 다시 한 권의 책이 독자에 의해 쓰여’진다. [270]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는 그래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서른 여덟 살에 다시 시작하고 있다. 이 책에서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여 감동적이고 또 나를 새로운 사유로 이끄는 글귀를 발견하고 설레인다. 또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혼자가 아님을 발견하고 위로받는다. 이것이 책읽기의 참 즐거움이다.  


학습은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학습의 핵심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 답에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271]


단칼에 내 심장을 찌르지 못하는 자들은 나와 인연이 없는 것이다. [273]


학습은 지식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획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늘 버리고 늘 떠나는 것이기도 하다.

배움이란, 이해와 인식으로부터 시작할지 모르지만, 그 너머에 있는 다른 차원의 무엇인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73]


학습은 어느 순간 이질적인 삶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낯선 소리, 낯선 얼굴, 낯선 삶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곧 학습의 즐거움이다. [274]


좋아하는 일이 즐거움이 되려면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보기 싫은 책은 보지 않는다. 독후감 숙제를 하기 위한 독서 같은 것은 없다. 오직 마음이 가는 대로 읽는다. [275]

지금의 훈련과정을 숙제와 과제가 아닌,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이끌어 주는 안내자로 받아들일 것.


노자 “어둠이 가장 짙을 때 깨달음의 길이 열린다.” [276]


제자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별빛을 보게 하는 스승만이 위대한 스승이다. [277]


철학이란 ‘개념을 만들어내는 활동’... 새로운 사유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다. [279]


배움이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삶을 변화시키는 예술로서의 철학 또는 자기경영은 가능할까?

‘삶의 방식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기경영 철학 [281]


학습이란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282]


혁명은 늘 하루를 바꿔줌으로써 스스로를 실현한다. [283]


출가가 깨달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초심을 지키는 발심의 끊임없는 자기개혁이 구도자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은 암자에 앉아 참선에 빠지는 일상의 의무적 반복에 의해 영혼이 해탈하는 것이 아님을 뼈아프게 느끼곤 한다. 깨달음이 하루의 일상으로 쳐들어와 하루를 바꾸어놓지 못하면 실천되지 않은 것이다.  [283]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283]


나는 늘 새벽에 일어난다. 그리고 새벽에 쓴다. 두 시간쯤 쓰면 지친다. 이 피곤이 나를 살게 해준다. [284]


그날그날 특별한 메뉴들로 하루를 채워간다. 하루는 실험장이다. 실험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실험장. 실험이 목적 그 자체가 되어버린 실험... 내겐 이것이 하루이다. [285]


학습의 문화 속으로 자신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좋은 전문가의 필수적인 수련과정이다. [286]


냉정하고 가혹한 경영 속으로 뜨거운 김이 솟구치는 인문학적 유산을 배치시킴으로써 돈으로 피폐한 영혼과 벌거벗은 몸을 돌아볼 수 있는 정신적 공간을 제공하는 것...

‘현실세계 속으로 꿈을 침투’시키는 작업이었다. [286]


자제와 절제라는 방법보다는 내 마음이 흐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288]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아경영 철학’ [288]


도전이란 매번 다른 실패를 딛고 나일 수밖에 없는 길로 운명적으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288]


내가 내 일의 가장 최우선적인 목적이다.

나의 새로운 목표도 비슷하다.

1. 나를 깊이 있게 이해할 것

  내안의 것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 그럼으로 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

2.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할 것

  머리로서가 아니라 가슴으로 타인을 이해하게 되는 것

3.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시켜 가는 것

  세속적 욕망으로 끓는 세상이 아닌, 행복과 기쁨의 터전이 되는 세상을 알아가는 것.

  그럼으로 세상 속에서 나의 자리를 잡고 타인의 자리를 함께 인정하는 것


수없는 반복을 통한 훈련이 아니라 수없는 변화를 통한 훈련이 내 방식이다. [295]


일은 삶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일이 품삯이어서도 안 되고, 삶의 다른 요소들을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

인생을 파괴하지 않는 직업, 삶을 빛내는 직업만이 훌륭한 직업이다...

눈부신 삶을 살게 하는 일, 그 일 때문에 삶을 즐길 수 있는 일, 그것이 위대한 직업이다. [297]


어떤 이론도 어떤 조언도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설득하기는 어렵다. 변화는 오직 스스로 시작할 때만 효과적이며 그때에만 비로소 행복한 전환이 이루어진다. 변화경영이라는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스스로의 변화에 성공해야 한다. [297]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을 나누어주려는 잘못을 범하지 말 것 [298]


나를 변화시켰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내 하루가 바뀌었는지 물으면 확실해진다. [298]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것부터 시작한다. 새벽의 두 시간은 그렇게 지나간다. [299]


글쓰기는 우선 모방이다.

- 정보수집 = 많이 읽기

<모방할 때의 요령 두 가지>

- 얼마나 많이 모방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감동하느냐가 중요하다

   설득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을 담지 못하면 설득에 성공하기 어렵다.

   열정을 가진 사람처럼 믿어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 ‘한 작품만 모방하면 표절이고, 여러 작품을 모방하면 연구이다’

   많이 보고 많이 감동하는 것은... 훌륭한 성과를 내기 위한 근면한 배움의 요결이다.


글쓰기는 또한 혁명이다. 모방만 가지고는 좋은 글쓰기가 완성되지 않는다. 가지고 있던 것을 버리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연결해야 한다. 창조성이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창의적 발상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었다. [300]


죽어있는 정신을 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흥미가 살아나고 열정이 살아나며 삶이 살아난다. 그리고 끊임없이 실험하게 된다. 실험이 곧 창의성이다. 글쓰기에서의 실험이나 사업에서의 새로운 시도와 모색은 다를 바가 없다. [301]


인간이 하는 일들은 바로 그 인간이라는 주체 때문에 종류와 관계없이 서로 닮았다. [301]


세상을 살며 그것이 보내는 신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배움과 학습은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다. ‘자아경영’은 터득한 지식과 경험을 나를 위해서 먼저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나아지는 수련이다. 그 다음에 비로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내가 배우는 방법으로 가장 그럴듯한 것이 배운 것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여 책을 쓰는 것이었다. [302]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 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일상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이야기가 되어야 실천할 수 있다. [304]


강점을 발견하고 계발하면 쓸 만한 것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 셈이었다. 강점은 꿈을 이루는 도구와 같은 것이다. 어떤 꿈이든 그것을 현실의 세계로 데려오기 위해서는 적절한 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자신의 강점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기질이다.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른 재능의 배합을 가지고 있듯이 기질 역시 다르다.  [304]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은 바로 지금의 나처럼 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확신한다. 나는 개인에게 있어 ‘변화라는 것은 본래의 자기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타고난 재능과 기질을 이해하고 그 강점을 계발하여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기다움으로 돌아가는 좋은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깨우는 일에 능숙해지면 다른 사람들이 깨어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자기를 깨우고 난 후에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수신이 이윽고 가정과 공동체로 스스로 확장하게 된다. [306]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이 자신의 특성을 강점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약점이나 장애라고 여기는 것들이 얼마든지 강점처럼 활용될 수 있다. [306]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는 것은 세상과의 싸움을 의미했다...

자신의 원칙이 통용되는 자신의 세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이 세계를 침범하려는 ‘일반의 세계, 군중의 세계’와의 오랜 싸움을 전제로 했다...

쉽게 물러나는 타입은 아니다. 나를 키워준 것은 오히려 약한 마음이 늘 얻어오는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은 치유력이었다.  [307]

아마 선생님이 싸움꾼이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주변에 모여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를 선생님에게 끌리게 하는 것은 투사로서의 선생님이 아닌, 상처받고 치유하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치유력을 가지게 된, 그래서 그 치유력을 나누어 주는 선생님의 모습일 것이다.


그 지겨운 연습, 그것이 내 목을 조른다. 어디에도 마술같이, 노력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을 바꾸어주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성공에는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익히는 것일 뿐이다. 손에 익고 머리와 가슴 사이에 어떤 괴리도 없이 자연스러운 강줄기가 흘러갈 때 우리의 것이 된다. 그때 성공은 우리의 특징이 된다...

성공 뒤에는 성공을 향한 탐욕이 있었다. 경쟁에 대한 에너지, 시기와 질투와 원망이 있었다. 그것들이 끊임없이 모방하게 하고 배우게 하며 연습하게 하고 익히게 했다. [310-311]


나는 이미 성공의 비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배우고 익히는 것은 모두 당사자의 몫이다. [311]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은 늘 한 길로 간 사람들의 것이다. [312]


가장 중요한 것은 깊숙한 곳에서 잠에 취해 있는 자신을 깨워내는 것이다...

이 내면의 영웅이 스스로 일어나 초려에서 나오도록 설득해야 한다.  [312]


누구든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인물을 얻어야 한다. 그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자신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살려내지 않고는 내면에 숨어 있는 영웅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는 것, 이것이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이다. [313]


나는 그들을 읽는다기보다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사유를 기초로 내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좋았다. [315]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자신의 영웅, 이들이 바로 ‘유일한 자’들이다...

‘유일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숙달해야 한다. 손과 머리 사이에 자연스러운 교감과 조화가 이루어지면 익숙해진 것이다...

일단 숙달하면 일탈한다...

다른 방식을 찾아보고 새로운 방식을 다시 익힌다. 다시 배우는 불편과 새로 배우는 흥미를 반죽하면 일상은 다시 깨어나고, 일은 같은 일이지만 새로운 얼굴로 다가온다...

가슴이 뛰지 않으면 이미 사랑이 아니다. 일이 사랑이 도지 않으면 그 일은 내 일이 아니다.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이제 벗어나고 싶은 지루함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늘 새롭게 사랑하는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317]


내가 쓰는 글은 짧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자신 속에서 위대한 힘을 감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317]


사람들은 이 속에서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주는 터무니없는 위로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자신이 희망적 현실주의자로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되어야 한다.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는 가능한 꿈을 꾸어야 한다. 가능한 꿈을 꾸는 현실주의자, 나는 이것을 희망적 현실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꿈으로 가는 길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내 앞에 놓인 냉혹한 현실을 망각하지도 않는다. [318]


자신에 대한 존중감으로 가득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지만, 늘 스스로 새롭게 생성되는 사람들이다. [318]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다는 것, 매혹적인 삶 [318]


지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너무 바쁘면 안 된다. [319]


늘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텍스트를 창조할 수 없다면 강연자는 스스로를 교살하는 셈이다. [320]


책을 쓰는 것의 장점은 그 내용의 핵심이 언제나 머릿속에서 꺼내 쓸 수 있을 만큼 정리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321]


개인적 관심사와 맞지 않으면 객관적으로 좋은 내용이라도 진심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 [321]


모범집단, 놀이집단 [325]


나는 차분하고 논리적이며 민감한 감수성을 건드리는 타입이다. [327]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공격하지 않고는 과거를 떠날 수 없다. 자기의 창조와 생성은 어쨌든 스스로를 공격해야 한다. 씨앗을 쪼개야 싹이 나올 수 있다.

불행한 사람들만이 변화에 관심이 있다...

변화를 꿈꾸지만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 나는 그들 속에서 불행을 감지한 치열한 사람들을 찾아내야 했다. [334]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그 자리에 앉아 내 이야기에 공감하지만,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면 모든 것을 잊을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어제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게 될 것이다.

어디에고 하루를 바꾸고 일상을 바꾸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먼저 그들이 그럭저럭 봉합시켜놓은 일상에 대한 만족을 헤집어놓는다. [335]


내가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만 깨닫게 되도 우리는 금방 불행해진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며, 그런 모든 인생의 재미를 희생한 대가로 받는 보상이라는 것이 시시할 정도로 쪼들리는 월급이라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불행해진다. [336]


혁명은 언제나 기존의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만 가능하다...

진정한 변화는 자신에 대한 치열한 사랑이다. 치열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다...

변화의 대상이 되면 필연적으로 공격을 받게 되어 있다... 변화의 주체가 되는 것, 상황의 먹이가 되어 쫓기기 전에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는 주인이 된다는 것이 변화의 요결임을 강조한다... 그 길은 껍데기를 버리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붙잡고 일어서야만 하는 자기존중과 애정이 필요한 대장정이다. [337]


그저 불꽃놀이처럼 들뜨게 하다가 되돌아와 풀이 죽어버리는 작은 위안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강연’이 되지 못한다...

내 강연의 목적은 그들이 자기 자신이 되어 스스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들이 시작하도록 돕는 것...

내 비즈니스는 나를 변화시키는 최초의 목적에서부터 다른 사람의 변화를 돕는 비즈니스로 확대된다. [338-339]


전에는 시간이 다른 사람의 것이었고 그들이 바라는 대로 쓰여졌다. 그러나 이제 내 편이 되었다. [341]


누구든 자신의 길을 갈 때는 내면의 등불을 밝히고 가야 한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등불이나 등대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가는 여행은 우리 속으로의 여행이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갈수록 오직 자신을 태우는 등불로 길을 밝혀야 한다...

스스로 불을 켤 수 있도록 잠시 불을 빌려주는 예기치 않은 쏘시개 불꽃이 되는 것,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내 말을 듣고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속에서 떠날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나는 그저 그 속에 불씨 하나를 던져넣는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타오르는 것을 보며 즐긴다. [342]


어느날 문득 누군가의 마음이 자신의 꽃씨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꽃씨를 뿌리게 하는 것,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신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심어주는 것,

모든 씨앗에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속삭인다. 그 꽃이 무슨 꽃인지는 피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꽃이 다른 꽃들과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을 선동한다. 그리고 그 꽃을 피워내 이 세상에 그 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선동한다. [343]


이제 누구도 내게 명령하지 못하게 하리라. 다시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것이다. [348]


그 무수한 반복 속에서 차마 실천하지 못했던 그 특별한 삶을 획책했다. 그리고 그 계획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부드러운 소리를 들었다. [348]


* 나를 위해 흐르는 시간의 강

  - 읽고 생각하고 자연과 만나고 쓴다. 새벽을 가장 많이 활용함

*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 가족, 친구

* 세상과 내가 만나는 시간

  - 책과 강연과 홈페이지의 만남  [349-351]


밤의 시간은 지나치게 자유롭고 낮의 생각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나는 새벽의 생각을 좋아한다. 새벽의 생각은 밤의 이상주의가 꿈으로 빚어낸 생각이고, 앞으로 다가올 낮 동안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다. 현실 곳에서 이루어진 꿈... [350]

 

나는 인생을 참아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자신에게 분노하며 늘 긴 여행을 선망했다. 언젠가 떠나리라. 언젠가는 말이야. 그러나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353]


나는 더 이상 선택하지 않는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문제는 이미 죽어버린 고민이다. 나는 배치하고 연결한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본다. 또는 이것과 저것을 함께 접속하여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모든 것이 실험이다. [353]


움직이는 것과 머무는 것 사이의 균형 능력을 증진시키고 싶었다. [354]


‘시간은 돈’이 아니다. 시간 자체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삶이다...

하루에 몇 시간은 책을 볼 수 있고 적어도 두 시간은 쓴다. [355]


지칠 때까지 일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일에 대해 늘 ‘아니오’라고 말할 자세가 되어 있다. 일은 늘 내일 해도 좋은 것이다. 일이란 놓치면 ‘다시 튀어오르는 공’같은 것이다. [356]


이룸에 대한 집착이 내 삶을 깨는 것을 보곤 했다. 일 년에 한 권씩 책을 쓰는 것은 내 목표가 아니었다. 그건 그저 즐거움의 결과였다...

결과와 목적을 늘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나의 목적은 하루를 잘 사는 것이다. 하루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각성과 준비의 제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하루답게 사는 것이다...

하루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희생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 자체를 빛냄으로써 인생 전체를 빛나게 하고 싶었다. 이것이 목적이다. 내겐 좋은 하루 그 자체가 목적이다. [361]


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고나 가난 때문이 아니다. 즐길 수 있는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돈을 더 벌기 위해 내 시간을 돈벌이에 더 많이 쏟아 붓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363]



* 내가 저자라면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는 구본형 개인의 자서전이다.

  하지만 그 형식이 일반적인 자서전과는 좀 다르다. 보통 자서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시간 순으로 기록되며, 저자의 개인적인 삶의 기록과 생각, 그리고 세상과의 교류와 그 안에서의 행적을 담는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책은 ‘마흔’이라는 특정 시기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즉 저자의 표현대로 앞으로 10년마다 쓰여 져야 할 자서전의 시작일 뿐이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저자가, 어느 날 자신에게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는 결심을 하고 이를 실천하면서 살아온, 자신의 삶에서 가장 외적 변화가 컸던  40대에 대하여 때로는 감정적으로 때로는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이미 죽었거나 임종을 앞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시간차는 개인별로 약간 있을지 몰라도 우리와 동일 시대를 살고 있는 바로 우리 주변의 이야기이다. (물론 본인이 ‘주변의 보통 사람’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긴 어렵다. 이미 저자는 우리 시대의 ‘스승’이며 보통 사람의 ‘신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비슷한 시대적 상황에서 한 평범했던 개인이 위대한 인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너무나도 자세히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구본형 개인의 미시사인 동시에 우리에겐 삶의 교본이 된다.

 

  ‘지난 10년, 마흔 살, 직장생활’ 챕터에서 우리는 그가 지루한 일상을 벗어던지게 된 사고와 결심의 과정을 알아가게 된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고 직장 생활을 10년 이상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사회와 자신과의 갈등이 있고, 그 갈등에 묻히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주체적 주인공이 되려는 저자의 노력을 따라가며 공감하게 된다. 또한 나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게 된다.

  제 4장 ‘얼굴’은 약간 재미있다. 어찌 보면 전체적인 맥락과 좀 관계없는 뜬금없어 보이는 내용이 오히려 편안한 미소를 띠게 한다.

  ‘가족, 자연, 건강, 집-공간’은 저자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들에 대한 담담한 서술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자의 가치관이 가장 잘 드러나는 챕터이기도 하다. 가족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살 수 있는 저자의 삶에 대해 가장 많은 부러움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길에서, 학습, 일’에서 많은 세부적인 삶의 지침들을 건져 올릴 수 있었다. 결국 저자를 가장 자신답게 만든 것은 자신에게 준 새벽 2시간의 선물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마음을 따라간 결과가 지금의 저자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픽션 작가가 아닌 이상, 독자는 그 저자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특히 우리에게 변화를 촉구하는 글을 쓰는 작가라면 그 저자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는 그 주장을 실천하고 있는지 가장 궁금할 것이다. 구본형 본인이 책에서 말하듯이 스스로 실천하지 못하는 가르침을 타인에게 주려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는 구본형의 저서들을 읽고 또 그의 칼럼들을 읽으며 가지게 된 궁금증을 말끔히 해소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개인적인 마음속의 이야기까지 솔직히 쓰여 있어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자세한 내용을 읽을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


  이제 우리는 저자의 주장이 표피적인 것이 아님을 확인했고, 많은 사유의 깊이 속에서 저자의 내면에서부터 끌어올린 진정한 것임을 발견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가다 막히면 다시 이 책을 보면서 나의 소리를 찾자. 언젠가 우리도 저자처럼 ‘인생은 결국 자신의 주인을 닮게 되어 있다’고 또한 ‘내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깨달음이 하루의 일상으로 쳐들어와 하루를 바꾸어놓지 못하면 실천되지 않은 것이다.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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