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좋은

함께

여러분들이

  • 신진철
  • 조회 수 4470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10년 2월 28일 16시 07분 등록

북리뷰3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1. 내가 만난 구본형

 

처음 사진을 보고, 황비홍에 나오는 이연걸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눈썹이 짙고, 별로 태나지 않는 쌍거풀, 두툼한 입술과 코. 딱 봐도 화는 잘 못낼 거 같고, 목소리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도 바흐에 무반주협주곡에 나오는 첼로 같은 중저음? 폴라티를 즐겨 입는 것도 보기 좋았다. 나를 포함해서 주변에 폴라티를 즐겨 입는 사람들은 대체로 격식에 얽매이는 것보다는 편안하면서, 따뜻한 그러면서도 세미정장하고도 어울리는 참 효용성이 높은 선택을 할 줄 아는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카쉬가 찍은 도꼬리 입은 헤밍웨이의 사진을 너무 좋아한다.)

 

다시 보니, 이마가 넓다. 막 벗어지기 시작한 오십을 넘긴 연륜이 보인다. 웃을 때 보이는 치아도 참 가지런하다. 하지만 저 웃음.. 글쎄.. 위험해 보인다. 한 번 빠지면, 못 헤어 나올 거 같다. 안경을 썼을 때보다 벗었을 때가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와인을 좋아 한다고 했던가? 어라? 변경연 홈페이지... 신종윤님 출판기념회 사진에 첨 시작은 맥주였는데.. 사부님 등장하고 나선 레드와인으로 바뀌었네? 와인 값은 사부님이 계산하신다고 했겠지? 설마하니.. ㅋㅋ

 

“나는 조용한 사람이고 무거운 사람이며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민감하고 진지한 사람 가운데 하나이지만, 세상을 밝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무거움의 대칭점에 서 있는 벚꽃의 화사함을 좋아하나 보다.”

 

굳이 벚꽃을 비유 삼은 설명이 없어도, 그의 글을 통해 이미 그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보인다. 아니 외모보다는 그의 눈 속을 통해 맘을 들여다보듯, 그의 글이 그를 읽게 해준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1년 반쯤 전에 맘이 갈피를 잃고 헤매기 시작할 무렵, <그대 자신을 고용하라>를 읽고 나서 <익숙한 것과의 이별>, 다시 <낯선 곳에서 아침을> 그리고 지난 여름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통해 그를 만났다. 종종 홈페이지에 들러 그가 남긴 칼럼을 뒤적거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문득 ‘글고리’가 잡히면, 공책을 펴들고 대여섯 페이지를 내리 달리기도 했다. 참 편했고, 진짜로 조용한 사람이었지만, 위험한 사람이었다. 나는 가랑비에 옷이 젖듯 어느새 흠뻑 빠져들어 있었다. 어디까지가 그의 삶이고, 어디까지나 나의 삶인지조차도 구분하기 힘들게 되어 버렸다. 아니 그것은 둘만의 문제가 아닌 듯싶다. 이미 레이스를 즐기고 있는 다른 글벗들의 삶의 궤적들에서도 그의 냄새가 짙게 베어 나온다. 그래서 그는 위험해 보인다.

 

지난 해 가을 구본형이 전주에 무슨 독서클럽에 강의를 다녀갔다. 내 사정을 좀 알기에, 그 모임에 열심인 후배 하나가 몇 번이나 함께 가보자고 권했다. 가서 한 번 만나볼까.. 잠시 망설여도 봤지만, 결국 별로 중요치도 않은 일을 핑계 삼았다. 맘이 내키지 않았다. 내가 준비가 덜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만나고 싶지 않았다. 당당하게 만나고 싶었다. 내가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들고서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야 우리 인연이 아름다울 수 있고, 오래갈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도 운이 좋았으면 좋겠다. 나처럼.

(독서모임 강연에 안 가길 천만다행이었다. 백 수십 명이나 모였다는 그 강의는 절반 이상이 졸았다며 속상해하는 후배를 위로하는 데, 약 삼만 원 정도의 술값과 담배 한 갑 값이 들었지만, 대신 내 맘은 편했다. - 아직 어정쩡한 호칭을 어찌하기가 참 거시기하네요.)

 

2. 가슴에 꽂히던 말들과 함께 스쳐간 단상들

 

※ 이번 리뷰부터는 함께 스쳐간 단상들도 함께 정리해보았습니다. 가슴에 꽂히면서 생기는 느낌이나 연상되는 나의 생각들이 나의 언어로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나의 이야기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나의 역사, 나의 문명이 존재하게 되었다. 나의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개정판 서문]

 

이것은 마흔 살의 혁명에 대한 기록이다. 변화경영 전문가로서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끊임없이 나를 혁신시키는 일이다.

 

과거를 충분히 썩혀 소화해내지 못하면 과거가 살아서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 즉 과거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관성, 과거의 습관, 과거의 자취와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의 온갖 흔적, 그 영욕을 묻어 깊이 썩혀두면 우리는 지혜를 얻게 된다. 그것이 앞길을 밝히는 불빛이 된다.

 

‘자서전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진실을 말하기에 더없이 좋은 수단’임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내가 살았던 삶이며 동시에 내 속에 있는 그들의 삶이었다. 나는 이러한 깨달음이 바로 인간에 대한 성찰의 확대라고 믿고 있다.

 

‘나에 대한 이야기(me-story)’는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기록이다. 즉 내 인생의 다음 장면을 그려보기 위한 시도이다. 자신에 대해 쓰다 보면, 해보지 못해 안타까운 일들이 밝혀지고 절실해진다. 이때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은 그 일들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기회로 전환된다.

 

무엇이 되었든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에 의해 편찬되어야 한다. 이것이 군중 속에서, 군중으로 흔적 없이 매몰되는 자신을 잊지 않는 길이다. ... 사라진 문명이 되지 않는 것, 나아가 남은 시간을 찬란한 문명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 프로젝트(Me-Story Project)'가 절실한 이유이다.

 

[프롤로그]

 

모든 좋은 것들은 웃는다.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서는 자는 춤을 춘다. -니체

 

역사와 소설의 중간 형태를 취하기로 했다. ‘무릇 심오함을 가장하는 자들은 가면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비밀로 남고 싶어 하는 과거도 있었고, 이미 지나갔지만 여전히 모호하고 불명확한 감정과 느낌으로 남아 있는 것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떼어내면 40대 10년간의 내 진짜 모습이 될 수 없었다. 나는 모든 것을 털어내되 그 이야기에 책임지지 않는 방법, 즉 화자와 이야기를 분리함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의 도움을 받았다. 그것이 소설이다. 소설은 거짓과 농담을 가장한 진실과 진담임을 알게 되었다. 꿈과 현실이 뒤섞이고, 실제와 가상이 어울리며, 미래와 과거가 전도되고, 욕망과 성취가 혼동되는, 그래서 더욱 나다운 그림을 그려보려 했다.

 

이 책은 놀이며 유희다. 채워지지 않은 욕망이고 욕망에 대한 절제다. 못 가본 삶에 대한 질투이다. 그동안 배운 학습의 노트이며, 읽었던 책들의 주석이다. 자전적 소설이고, 소설적 자전이다. 지나간 삶에 대한 파괴고, 앞으로 살 삶에 대한 창조이다. 나의 운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보려는 실험이다.

 

과거는 늘 엄격하고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 감옥이기도 했다. 과거가 날 만들었으니, 과거를 버리고 벗어나는 것이 또한 내 미래의 과제다.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였다. 살면서 나는 여러 번 죽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번 다시 태어나야 한다.

 

지난 10년

 

마흔 살은 오래 끓어 걸쭉해지기 시작한 매운탕이야. 바야흐로 인생의 뼛속 진국이 우러나오는 시기다. 마지막 젊음이 펄펄 끓어오르고, 온갖 양념과 채소들의 진수가 고기 맛에 배이고 어울리는 먹기 딱 좋은 시절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절정을 살짝 지나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마흔은 한 움큼 잡히는 옆구리 살에서 시작한다. 술 취한 다음날 아침이 괴로워지고 숙취가 길어지면 마흔도 익어간다. p21-22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마흔은 가끔 불면증과의 동행과 동침을 의미했다. 나는 오히려 불면을 즐겼다. 불면 역시 주어진 것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결코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 찾아오면 싸우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이 상책이다. ... 어쨌거나 고독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고독은 비 같은 것이다. 식물을 밤사이에 자라게 하는 그런 것이다. p24-25

 

유혹의 나이, 마흔

청춘도 지나간다. 서서히 육체의 쇠락이 팽팽한 낚싯줄처럼 감지되고, 은은한 불안이 검은 동굴처럼 다가오면, 여자와 불처럼 사랑을 하고 싶어진다. ... 그리고 비극적 사랑을 담고 싶어 한다. <설국>의 주인공처럼 눈으로 가득한 그곳에서 불행하지만 아름다운 여인을, 마지막으로 소설과 영화처럼 사랑하고 싶어 한다. p27

 

‘그녀와 함께 떠나자. 그녀와 함께 도망치자. 다시는 유럽으로 돌아오지 말고 그녀와 소박하게 살자. 태양이 있는 곳, 과일이 익는 곳에서 그녀의 육체와 더불어 살자. 다른 어느 것과도 연관을 맺지 말고 지나간 날의 모든 것으로부터 동떨어진 채,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 입 속에, 그녀의 젖가슴에 묻혀 살자.’ - 잉게보르크 바흐만 p29-30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모든 만족을 얻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함께 그녀를 배신한다. - 마르셀 프루스트 p30

 

그러나 사랑은 다른 애인을 찾아냄으로써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새로운 감정으로 위장된 반복 속에서 소모될 뿐이다. ...

모파상은 “진실한 사랑은 영혼이 육체를 감싸 안는다.”라고 표현했다.

 

훌륭한 작품은 ... (현실보다 극적이고, 현실보다 교훈적이며,)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p31

 

불과 몇 초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연결하는 시간의 끈이 절단된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불쑥, 어떤 끈으로도 과거와 연결되지 않은 채 지금이라는 무대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 나는 이 돌연한 과거의 상실을 즐긴다. 과거의 끈으로부터 갑자기 자유로워진 나를 상상한다. ... 이 돌연한 시간적 격리를 휴가로 즐길 수 없다면 바보이다. 나와 나의 불일치, 시간적 흐름에 대한 일탈과 소거는 아주 유쾌한 지구 탈출 같은 것이다. p34-35

 

이 꽃들처럼 싱싱함은 사라졌어도, 아니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쓰라리고 자극적인 향기를 풍겼다. 분명 지나쳐갔을 불행이 잠잘 때도 그 입가에 남겨놓은 비탄만큼 그녀를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낮이라면 머리카락을 내려 감추었을 목에 난 두 줄기의 주름이 그녀를 더 아름답게 했다. - 플로베르의 소설 <11월> p34

 

마흔 살

나는 그를 혐오했다. 그는 늘 과거를 과장했다. ...

그가 취해서 중얼거린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독백이 이어진다. 바쁘게 지낸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들고 말았지. 지금 의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해 공허한 남자를 말이야. 내 인생에 중요한 일이 벌어진 위대한 젊은 날을 과장하지 못한다면, 지금 이 허무를 견딜 수 없다는 것을 너희는 모르지. 지나간 과거에서 아무것도 건져내지 못할 때 마흔 살 남자는 낙엽처럼 부서지는 허망함 속에 서 있게 된다는 것을 너희처럼 새파란 것들은 알 수가 없는 거야. p44

 

‘미루나무가 서 있는 강 길을 걷는다. 강 건너 마을에 하나 둘 흔들리며 내걸리는 불빛들.

흔들리는 것들도 저렇게 반짝일 수 있구나. 그래 불빛, 흘러온 길들은 늘 그렇게 아득하다.

어제였든가. 그제였든가. 그토록 나는 저 강 건너의 불빛들을 그리워하며 살아왔던 것이구나. ... 폭포, 여기까지 흘러온 것들이 그 질긴 숨의 끈을 한꺼번에 탁 놓아버린다.

다시 네게 묻는다. 너도 이렇게 수직의 정신으로 내리꽂힐 수 있느냐. p46

 

마흔 살은 늙지도 젊지도 않다. ... 그러니까 빼도 박도 못하는 시기다.

마흔 살은 연령의 문제를 무시할 수 없게 된 나이다. ... 그래서 마흔 살의 이야기는 일상의거울 같은 것이다. ... 이상과 비전으로 상징되는 젊음의 마법이 사라진 후에 다가오는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이다. 일만이 생산적인 것이고, 지루한 일상을 견딜 수 있는 탈출구이다. 이리하여 일은 일상과 실제의 삶이 된다.

마흔 살은 당나귀의 삶이다. p47-50

 

모로코의 민담 ... 모든 사내아이는 100개의 악마와 함께 태어난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은 100개의 천사와 함께 태어난다. 해가 갈수록 남자와 여자는 서로 악마와 천사를 교환한다. 100년을 산다면 남자는 100개의 천사를 가지게 되고 여자는 100개의 악마를 가지게 된다. 중년의 여성은 ‘남성으로 변한 여성’이다. 성숙한 여성은 남자가 잃어버린 남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중년이 되면 남자와 여자가 그 성적 역할을 바꾸는 상징적 이미지다. 여성은 현명해지고 다소 교활해지며 강해진다. 그동안 여성은 억압받고 수동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중년이 되어 남자가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여성들은 숨어 있는 자신의 힘과 재능을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의지하여 일어선다. ... 그들은 남성이 벗어놓은 옷을 입고 굉장한 여행을 시작하기도 한다. p53

 

마흔 살 너머의 창조는 학습과 훈련과 가벼운 정신적 태도의 산물이다. p55

 

마흔의 나이에는 철학조차 실용적인 것이 된다. 이대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삶의 지혜다. 지혜란 ‘숭고하고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삶을 위해 필요한 실제적인 통찰력을 의미한다. p55

 

젊은 시절에 정체성을 찾기 위해 사용했던 이분법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삶의 전체 모습을 해석할 유연하고 더욱 복잡한 새로운 지혜를 모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p56

 

싸울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을 때 유머는 가장 적절한 해결책이다. ...이것은 환상적인 속임수이다. 진실의 꾸며댐일 수도 있다. 불가피한 것에 대항하는 부드러운 대응이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너무 가깝게 있으면 유머를 사용할 수 없다. 자신을 약간 떼어놓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때 자신을 소재로 농담을 할 수 있다. ... 유머는 중년의 고통을 치유해주는 엔돌핀이다. 그것은 스트레스와 비극을 완화시켜준다. p57

 

마흔이 되면 한계에 대한 자각이 젊은 시절의 끝없는 희망을 대신한다. 운명이 희망과 기대를 가리게 한다. 쉽게 절망하고 냉소적이 되기도 한다. 쉽게 절망하고 냉소적이기도 한다. ... 모든 믿음을 쉽게 버리는 함정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저 두 개의 시선, 자신을 바깥에서 보는 시선과 안에서 보는 시선을 공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쓰임을 받으면 애써 일하고, 버림을 받으면 스스로 즐기면 된다. 부름을 받으면 신명을 다하는 것이고, 그들이 잊으면 일상을 즐기면 스스로 벌어 궁색하지 않게 먹고살면 되는 것이다. p58

 

그것은 막연히 한 번 더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의미한다. p59

 

마흔 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p62

 

내게 꼭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그러나 나라가 선비를 기른 지 500면이 되었건만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도 죽는 이가 없다. 다만 그것이 가슴 아플 뿐이다. (매천 황현) p63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할 때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지고 평가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를 가지고 평가하게 마련이다. p70

 

좋은 성과를 낸 직원들이 단상에 올라 명예를 얻고 돈을 받으며 서서히 승진의 길을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할 일이란 초라하고 어두운 객석에 앉아 박수를 치는 일밖에 없다는 것이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p71

 

에게 해에는 꽃과 바위만 있는 섬이 있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는 잠깐 피었다 지고 말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꽃들과 그곳에서는 한 해에 두 번이나 크고 화려하게 만발한다고 한다. 옹색한 땅과 준엄한 바위가 오히려 개화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결핍이 꽃을 아름다운 꿈 안으로 몰아넣어 준 것’이다. p72

 

새로운 아이디어가 정착하고 위기를 지나게 되자 변화를 주도하던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 동안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정신적 작업은 사라졌다. ... 필요한 것은 유능한 변화경영 전문가가 아니라 튼튼한 근육을 가진 근면한 행정가였다. p74

 

그들은 부가가치가 낮은 지금의 일을 싫어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싫은 일조차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 적어도 80퍼센트는 되어 보였다. p77

 

진지하고 소극적이며 전통적인 사람들은 여전히 한 직장에서 옛사람들과 함께 오래도록 지내고 싶어 했다. 그들은 회사를 사랑했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성실하고 책임감 깊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회사의 부담이 되고 있었다. 회사는 이들보다 더 빨리 변해야 했기 때문이다. p78

 

온갖 종류의 구조조정에도 상관없이 한 조직 속에서 오래도록 남아 성장하고 싶다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첫째,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둘째, 그들은 적절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열린 관계가 유지되도록 적과 동지 사이의 제3의 꼭지점을 찾아내어 그 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 다른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장점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휴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 익숙하다. 셋째, 그들은 늘 학습한다. 이들은 대체로 겸손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애정 없이는 자신을 불태울 수가 없다. 어떤 분야든 자신을 불사르지 않고서는 핵심에 다가갈 수 없다. 마자막으로 그들은 세상의 흐름에 대한 대략을 알고 있다. 또 그들은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새로운 단추를 끼울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필요한 사라들은 떠남을 늘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 니체는 가장 위험한 조직원은 ‘그의 이탈로 조직 자체가 파괴되는 조직원’이라고 불렀다. p79

 

적극적 수동성, 즉 유혹은 늘 설득의 강력한 수단이 되어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p85

 

매력이 없는 리더는 없다. 리더는 반드시 자신의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유혹은 매력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매력은 가장 자기다운 것에서 발산되는 페로몬이다. p86

 

회사가 나에 대해 지루해할 때 쯤, 그리고 내가 회사에 대해 지루해할 때쯤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그리고 마흔을 넘어서는 그 위험한 시기에 나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모든 것을 다 바칠 만한 것을 찾고 싶었다. 관성에 따라 굴러가는 하루 말고, 전혀 새로운 뜨거운 하루를 가지고 싶었다. p91

 

나 이제 내가 되었네.

여러 해, 여러 곳을 방황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났네.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녹아 없어져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메이 사턴(May Sarton) <나 이제 내가 되었네>중에서 p97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의 내면을 그려내는 것이다. 초상화의 생명은 정밀묘사보다 그 인물이 풍기는 분위기와 느낌을 담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초상화의 매력이다. p99

 

내가 대머리가 아니라면 그렇게 관대한 해석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파리에 가면 좋은 모자를 하나 사고 싶다. 아이들에 대한 일상적 책임이 가벼워지면 갈 만한 곳으로 몇 군데를 남겨 두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파리다. p103

 

조심해야 할 것은 ‘서로에게’라는 말이다. ‘나에게 길들게’하면, 그것이 목적이 되면, 함께 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구두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가 구두를 사면 웃어준다. 그래서 나는 모자가 많고 아내는 신발이 많다. 그래서 가끔 싸움도 하지만 더불어 잘 살고 있다. p103

 

약간 돈 것은 아주 재미있다. 기존의 존재 방식에 대한 파격이 아니라 그 편견에 대한 비웃음이 재미있었다. p111

 

인간은 권력에 오염되어 있다. 물질적 권력이 아니라 지식을 통한 훈육권력에 매여 있다. 건강한 개인과 부강한 국가라는 거부하기 어려운 모토를 앞세워 개인의 삶을 규격화하고 통제하려는 권력이 우리를 묶어두고 있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만들어지고 조작되며 인위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p112

 

어느 날 나는 내게 ‘날마다 먹이를 주는 손’을 거부했다.

내 불꽃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아주 적게 먹고도 살 수 있다. 요만큼만 있어도 먹고살 수 있다.” p113

 

나는 그 때 인형을 움직이는 끈을 보았다. ...

인형은 실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인다는 것은 자유의 한 표현인데 인형의 자유는 모두 묶어놓은 실에서 온다. 인형의 자유는, 그러므로 아이러니하게도 속박으로부터 온다. 실을 끊으면 인형은 움직일 수 없다. p114

 

태어나 먹고살기 위해 애쓰다 아파트 한 채를 남기고 일흔 여섯 살의 나이로 죽었다. 라고 기록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p115

 

‘오동은 천 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p115

 

생명은 내면에 있다. 우리의 내면은 늘 신과 만나는 장소이다. 신은 복잡한 곳에 있지 않다. 바다 위에 머무는 햇빛, 푸른 하늘을 흐르는 구름, 미풍 속의 나뭇잎, 긜고 그 바람, 시냇물이 흰 바위를 스치며 내는 소리, 계류가 흐르다 모여 이룬 소(沼)속의 가을 물빛, 나뭇잎 하나와 거미줄 한 가닥에 매달린 작은 거미,비 온 뒤 흙길 위를 천천히 움직이는 지렁이 한 마리는 신이 가장 머물기 좋아하는 장소들이다. 아니면 고추 몇 개가 곁들여진 싱싱한 상추 한 접시와 된장이 놓인 소박한 여름 점심상에도 신은 머문다. p116

 

잡아야 할 손이 필요할 때, 따뜻한 손을 가진 그녀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p122

 

갈등은 마음이 스스로의 길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p125

 

친구는 생활의 일탈을 서로 돕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것이다. 혼자 하지 못하는 것을 함께하게 한다. p146

 

친구와 비즈니스를 같이하는 것은 안 좋다. 비즈니스는 그저 전문성을 나눌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하면 된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예의를 지킬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이다. p147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p160

 

곽박의 시에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냇물에는 멈춰선 물결이 없다.”라고 했는데, 입다 더 적절한 변화에 대한 묘사는 찾기 어렵다. “밖으로 자연의 조화를 본받고, 안으로 마음의 근원을 체득해야 한다. ” p163

 

때때로 나는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그때가 가장 마음이 편한 때다. 어떤 조화로움이 나를 밀고 여울처럼 가슴으로 퍼져오는데, 그때 평화를 느낀다.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노자의 말은 곧 나의 말이다. p164

 

참으로 이 세상에서 부족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감탄이다. 기쁨은 도처에 있고 ‘늘 활동중’이다.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가 “나는 스며든다. 초록빛 풀밭에, 꽃들에게, 그리고 살아 있는 물살에. 나는 깃든다. 죽지 않는 모든 것에. 나는 곧 생명이므로.” 라고 말할 때, 그녀는 바로 나였다.

 

나는 다시 사람들의 세계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이미 나는 자연으로부터, 특히 나무로부터 위대한 교훈을 사사 받았다. p166

 

나는 나무와 같다. 스스로의 그늘을 만들고 열매를 키워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고 찾아 오게 하는 것이 훨씬 나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67

 

향기가 있는 사람, 높은 고원지대의 피는 원추리의 향기가 더 강한 이유 ... 벌과 나비가 그곳을 찾는 것인가, 벌과 나비가 거기까지 이끌려 가는 것인가. 천리마를 얻은 지혜-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자신을 찾게 하라.

 

나의 내면은 땅과 같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두렵고 위대한 힘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가치가 뒤섞여 있고 뜨거운 용암으로 가득하다.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하고 무궁무진한 자산은 땅이다. 나는 땅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 이것이 첫 번째 교훈이었다. p168

 

나무는 또한 해마다 새로운 자신을 분만시킨다. 수엇이 자신을 탄생시킨다. ...

낙엽은 나무의 지혜다. 혹독한 겨울에 살아남기 위한 창조적 해결책이 바로 버리는 것이다.

나도 죽어야 한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죽어야 한다. p169

 

언젠가 한 번은 죽는다. 잘 죽으려면 그 또한 연습이 필요하다.

언젠가 한 번은 모두를 비운다. 잘 비우려면 그 또한 연습이 필요하다.

 

식물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번식시키기 위해 인간을 이용함으로써 위대한 진화를 이루었다. p171

 

우리는 이것을 인간의 승리라고 말한다. ... 우리가 그들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이용하여 번영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 식물들이 펼치는 고도의 유혹-먹고 그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우리는 즐겁게 걸려든 것이다. 인간은 식물을 위해 봉사한다. p172

 

나의 생각을 가장한 다른 사람의 생각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오리진이 어디에 있든지, 분명한 진실은 나의 것이 된 생각들, 즉 이미 ‘내게 귀화한 생각’들이라는 점이다. p173

 

그래서 내 마음속에 다음과 같은 전략을 써두었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배우게 마련이다. ...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며, 그 일의 가치가 빛나는 일을 하고,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로댕의 말을 잊지 말라.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 그 삶은 매혹적인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아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p174

 

“그러나 세상이 유행에 따르지 말라. 자연의 맛은 독특하고 차별적이다.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가진 품종을 만들어 내라.” p175

 

나는 회화나무를 닮고 싶다. 계절의 변화에도 더디고, 시류에 따르지 않는 고고함이 선비가 의당 따라 배워야 할 덕목을 가졌다. 서원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는 나무.

전주수목원 한 가운데 회화나무를 자기 나무로 가진 사람.

 

의학기술이란 자연이 질병을 치료하는 동안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볼테르 p180

 

놀이정신은 사라지고 반복되는 일상의 한 장면이 된다. 출근하듯 운동을 한다. p180

 

8월 말이 지나면 나뭇잎은 아직 푸르지만 갑자기 그 속에서 가을의 느낌을 받는 이유는 이미 찬란한 여름의 모습을 나뭇잎 속에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푸르고 여전히 덥고 여전히 여름의 태양이 비치지만 나뭇잎은 이미 절정을 지나 빛을 잃고 있다. 물기를 잃고 낙엽의 바삭거림을 잉태하게 된다. p181 꼭 지금의 내 나이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이 커지고, 우리는 작아진다. p181

 

아리스토텔레스는 젊었을 때 “늙은이는 두려워하고 망설인다. 고약하고 이기적이며 겁 많고 차갑고 자괴감에 빠져 있다.”라고 말했다. p182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무르익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으로써 또 다른 성장을 이루어야 할 바로 그 때가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쓴 후에 남의 것을 탐할 수는 없겠지요.” 이러한 죽음에 대한 통찰이 의사나 과학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철학자나 문학자 또는 역사학자 그리고 치열한 삶은 살아본 위대한 인물들에 의해 훨씬 더 잘 해석되고 이해되는 것은 이런 동질성 때문인 것 같다. 철학은 의학을 선도한다. 생각이 늘 기술을 선도한다. p187

 

문명을 위한 최초의 토양은 농업이었다. 비로소 미래는 잠시 예측되었다. 씨를 뿌리면 시간이 지난 후 추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정착했고, 문명은 시작되었다.

문명은 인류가 여성화되는 과정이었다. 문명의 역사 대부분의 주인공은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화려하고 빛나는 존재’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따지면 윌 듀랜드의 지적대로 남성은 ‘자궁, 즉 인간이라는 종족의 주류인 여성에게 조공을 바치는 존재’였다. 여자들은 가축을 길들였고, 마지막으로 남자를 길들였다. 남자들이 가족에 대한 사랑, 절제, 협동, 공동체 활동이라는 사회적 특질을 배우고 익히도록 했다. p188

 

문명의 본질은 오랫동안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사냥꾼의 습성과 겨우 최근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사회적 본능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p188

 

‘멋대로 하지 말라.’고 하는 인간의 재갈, 즉 문명은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부모는 최초로 만나는 문명이다. 거역하면 패륜이 된다. 학교와 종교는 그 다음에 만나는 문명이다. 사회적 가치관을 만들어 정신을 지배하게 된다. 여론 그리고 법은 문명이 정한 행동을 넘어서는 것을 제약하는 통제선이다. 이 선은 대체로 굵고 선명하기도 하지만 군데군데 모호한 구멍이 뚫려 있기도 하고 간혹 희미한 곳도 있다. 인생은 그 속에서 이루어진다. ... 개인의 삶은 다양하지만 개인의 역사는 늘 자연과 문명의 갈등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p189

 

'쓰임을 받으면 행하고, 버림을 받으면 숨는다.' 여의치 못해 버려져 들어와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어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유가의 목표는 늘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다. 숨어 있는 것조차 ‘기다림’의 표시다. p190

 

고칠 수도 없고 원인도 알 수 없으며 그저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지겨운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에 화가 났다. 의사의 입에서는 지난 밤 마신 술과 담배가 섞여 역겨운 냄새가 났다. ... 쓰는 데까지 쓰고 못 쓰면 그만이다. 나는 편하게 마음 먹었다. 그땐 그때의 세상이 있을 것이다. p193

 

새는 가볍기 때문에 하늘을 날 수 있다. 이제 육체를 모두 잃으면 그 가벼움 때문에 하늘로 멀리멀리 날아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땅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벌레는 새의 몸을 티끌로, 먼지로 만들어 한 번의 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든다. 묘지도 비명도 없이 그들은 사라진다. p199

 

‘죽음이 명함을 남겨놓고’ 간 다음 적절한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에서, 참을 수 있을 만한 짧은 통증 속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 것이 좋을 일이다.

 

내가 이 벚꽃 흐드러지는 봄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한 40번 정도? 아뿔싸 마흔 번 밖에 남지 않았어. 아니, 어쩌면 두 번을 보기 어려울지도 모르지. 그런데 이미 지나쳐 버린 마흔 번의 봄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아이들에게 욕심을 부려본다. 좀 더 일찍 깨달으면 나처럼 후회하지는 않을 텐데. 하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달빛을 담아 마실 수 있으면 모든 술이 다 최상품이다. 달밤에 강물에 배를 띄우고 술을 마시는 것이 옛사람들 최고의 낭만이었음을 알게 된다. p204

 

세상의 아름다움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 아름다움은 사라질 것이기에.

비 내리는 오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불멸을 꿈꾸니.

이 오후 시간을 즐겨라. 어차피 가져갈 수도 없는 시간이니.

하루의 질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예술. p205

봄비가 내리는 2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후, 난 책마루 도서관에 살픗 졸듯이 널부러져 있다.

그리고 나무라디오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에 취했다. 시간마저 잊은 채. 빗소리가 좋다.

 

1978년 4월, 황사가 휘몰아치는 곳에 그녀가 분홍색 니트 투피스를 입고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함께 봄 길을 걸었는데 그녀의 어깨가 가끔 내 어깨에 닿곤 했다. p205

 

하나는 추억이고 하나는 꿈이다. 추억과 꿈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마흔아홉이 되어 지나온 삶을 되새겨보니 실제로 일어난 것과 상상 속에 존재했던 것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모두 한 줌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p206

 

마지막 숨은 이런 모든 것 역시 한순간에 일어난 찰나의 것들임을 증명해줄 것이다. p207

무엇이 추억이고, 무엇이 꿈인지. 지금 내가 쫓고 있는 것은 추억인지 꿈인지, 나도 모를 일이다. 단지 벽시계의 뾰족한 초침만이 가느다란 떨림으로 그 경계를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

 

‘모래 위에 배를 띄우다’였다. 그의 여행은 이제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되고, 그 꿈은 다시 누군가의 현실적 여행으로 이어진다. p208

 

나는 나를 ‘정신적 여행자’라는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날개 같은 것이다. 시간이라는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활공한다. 모든 것이 꿈으로 판명되는 마지막 날에 느끼는 그 아득한 자유를 지금부터 즐기지 못하는 것을 아쉽게 생각했다. 지금 이 책을 쓰고 있는 이유도 과거에 갇혀 있는 나를 미래의 빛을 따라 아름답고 화려하며 자유로운 이야기 속으로 데려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p209

 

추억과 꿈은 같은 것이다. 하나는 일어났다고 믿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꿈이다. p210

 

어딘가로 부터 날아든 씨앗 하나가 내 가슴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시작했다. 누구의 씨앗이며, 어디서 왔을까?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내 가슴에 자리를 잡고, 자라고 있다는 것 외에는. 이 나무, 나의 영혼의 자양분을 먹고 자라는 이 나무도 언젠가는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고 또 누군가의 가슴 속으로 날아가겠지.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된다.

 

욕망이 꿈을 만들고 꿈은 믿음에 의해 현실적 개념이 된다. 미래를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은 정신적 여행자들이 가지는 힘이다. 그들은 상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상상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산다. 그것이 생활의 일부이기도 하다. p211

 

나는 인생이란 답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훌륭한 인생은 정의될 수 있다.’는 가정이 나에 대한 탐험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이었다. 따라서 무엇이 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인생은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공하고 싶었다. 내가 계획한 어딘가에 반드시 도착하고 싶었다. 도착하는 것이 곧 성공이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p215

 

이것이 10년 동안 내 길을 가려는 노력의 결과로 알게 된 평범한 깨달음이었다. 길 위에서 죽은 여행자처럼 완벽한 여행자가 어디 있겠는가! p215

 

촛불을 켜고 싱싱한 장미꽃 화병 하나를 놓아둘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식사를 한다. 술을 곁들이고 웃고 떠들며 식사를 끝내면, 수북한 설거지 그릇이 쌓이게 된다. 먹고 나면 뼈만 남은 생선처럼 허망한 것을 그렇게 공을 들여 하루 종일 장만한단 말인가?

삶은 그렇게 공을 들이고 잠시 즐기고 다시 깨끗하게 복원하여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다. ... 먹고 나면 다 똥이 되는 것임지만 아름다운 식탁을 차리기 위해 정성을 쏟는다. 손님이 돌아간 만찬처럼 인생은 허무한 것이다. p218

 

나는 산만하고, 꿈과 현실을 혼동하며, 모호한 은유 속에 나와 인생을 놓아두는 것을 즐기는 취향이다. 예전에는 그런 나를 싫어했던 것 같다. 좀더 분명하고 정확하기를 바랐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제는 나를 다른 사람과 바꾸고 싶지 않다. p218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많은 착오를 범하고 싶다. 지그 살았던 것보다 더 어리석게 행동하고 싶다. 사실 인생을 살며 심각한 일이 어디 그렇게 많겠는가? 그러니 더 미친 척 행동하고 싶다. ... 또 아이스크림도 원없이 먹을 것이다. 그 대신 콩은 조금 덜 먹을 것이다. 오! 나 자신만의 시간이 있었더라면! 그래서 난 나에게 속한 더 많은 시간을 경험해보고 싶다. 내가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맨 발로 다니고 싶다. 회전목마를 더 많이 타고, 더 많은 일출을 보고, 더 많은 아이들과 놀 것이다. 내가 다시 한 번 살 수만 있다면.’ p220

 

헬렌 켈러가 “난 너무나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p220

 

바람이 조금 있는 아름다운 날에는 밝은 햇빛 속을 반바지 차림에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산책하고, 우울한 날에는 집 안에서 그 기분에 어울리는 좋은 책 한 권을 볼 수 있다면 인생은 이미 행복하다. 이때 돈이란 밥 먹고 난 후 아이스크림 한 개, 또는 시원한 맥주 한 캔 마실 만큼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 인생이란 그렇게 간단한 것 아닐까? p222

 

아내는 방이 네 개쯤 달린 아파트로 이사를 하자고 한다. 나는 아파트가 싫은데... 주택이 싫은 이유를 물었더니, 관리가 부담된다고 한다. 나는 숨쉬기가 불편한데... 뭐 어쩔 수 있나. 식구들의 의견을 따를 일이지만, 나는 내가 택할 삶이 아파트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잠시 미룰 일이다.

 

얼마 전 신경숙 회장님의 49제를 다녀왔다. 세상에나. 49제를 지낸 그 절은 내가 대학원 시절 과제물로 마음의 집을 지어 내었던 곳이었다. 동남향으로 가까이 동네가 한 눈에 들어오고, 동네에서 큰 길로 나가는 길을 가로질러 전주천이 흐르고, 좀 더 멀리 기린봉이 한 눈에 들어오던 그 곳. 나는 한 눈에 그 곳이 맘에 들었었는데... 마흔 살만 젊었으면, 신국장한테 연애 한 번하자고 할텐데 하시면서, 볕이 좋던 가을하늘 오후에 깔깔깔 웃던 문학소녀. 그 소중한 분을 내 마음의 집에 모시고 돌아왔다. ‘이제 깃털처럼 가벼워지세요. 마디마디 힘들었던 여든의 삶을 내려놓고, 바람처럼 떠나세요.’

 

시간의 나그네가 되어 가벼운 투명외투를 걸치고 젊고 푸른 청년의 옆으로 기척도 없이 다가가 그때의 나를 지켜보기도 한다. 옛 책을 꺼내 읽다 얻게 되는 우연한 횡재다. p229

 

목련을 닮은 여인과 사랑을 해보고 싶다. 물론 위험할 거란 걸 잘 알고 있다. 작부의 삶이 그러하거니와 하물며 술집 작부와의 스캔들에 세간의 풍문이 어떨지는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른 봄비에 그 곱던 아이보리색 두터운 잎은 금새 상처를 입고, 뚝.뚝. 떨어져 갈색의 상처가 깊게 베인다. 매번 그 상처를 견디어 내는 그 여인의 한 어린 삶에 막걸리를 벗 삼아 취해보고 싶은 밤이다.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알 수 없다. 재미있는 영화를 본 것보다 더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노동은 노동 안으로 우리를 불러들인다. 노동 자체가 참선이고 수련이다. 다만 전혀 수련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게 하는 정신적 수련이다. 나는 빠져들고 몰두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정원 일을 하는 것은 즐거운 노동이다. ... 댓 평쯤 되는 텃밭에 매여 여름을 보내도 좋다. 즐거운 일다.

헤세도 그랬고, 스콧 니어링도 그랬다. 나도... 수배를 받고 쫓겨 살던 그 시절, 조롱박 세 그루. 여름 밤에 달빛과 흰 박꽃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 줄 몰랐다. 작년 봄, 시청 옥상에 심은 조팝나무가 때 이른 봄비에 맘이 바빠졌다. 벌써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얼마 못 참고, 곧 터져 나올 거 같다.

 

그러나 멍이란 결국 사라지는 것이다. 이윽고 은은한 아픔으로 남더니 조용히 사라졌다.

고통은 훌륭한 선생이었다. 그것은 내 일상으로 쳐들어와 점령하고 기승을 부렸다. 나는 때때로 싸우고, 욕하고, 화해하고, 다시 싸웠다. 그리고 읽고 생각하고 썼다. p258

 

책을 통해서만 사상을 더듬는 일당들,

책을 짓눌러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일당들,

머리를 종이 위에 처박고 있는 일당들,

부디 ‘문 밖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우시라.

그리하여 ‘진리의 노예’가 되지 말고, ‘지혜의 친구’가 되시라. ★ 니체+& p259

 

자유를 확보하는 순간 과거 생활의 장점들이 나를 공격했다. ... 안전을 지켜줄 울타리도 없어졌다. ... 내게 정규적으로 ‘먹이를 주던 손’도 사라졌다. 아침이 되면 가야할 곳도 사라졌다. 생명보험도, 자녀교육비 지원도, 의료보험도 다 사라졌다. 모든 것은 내 주머니에서 지출되었다. 돈은 얼마나 빨리 소리 없이 사라지는 초조함이었던가! p259

 

“두려움은 곧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무엇이랴.”라는 칼릴 지브란의 글을 발견했다. ‘씨발.’ 어쩌면 말을 이렇게 잘한단 말인가? 욕! 그것 참 좋은 것이다. 속에 콱 막혀 있다가 가래처럼 올라오는데 뱉고 나면 후련하다. ...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투명하기 그지없는 통렬한 동물적 으르렁거림이다. p260

 

나는 사라지는 것들에 내 성공을 의존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믿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기란 사라지게 마련이다. 사라지는 것 위에 성공을 쌓아올려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나의 생각이다. p263

 

의무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의무란 재미없는 것이다. 의무감이란 일상화 되는 것이고, 지겨운 것이며, 반복되는 것이고, 아무런 생명도 살 수 없는 무덤이기 때문이다. p263

 

나는 한 가지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을 자제했다. 읽기 싫으면 읽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썼다. 매일 쓰는 것은 다행히 아주 즐거운 놀이였다. 나는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와 느낌과 생각을 내 일상 속에서 매일 조금씩 찾아내고 표현해보려고 했다. 그것은 늘 살아 있다는 느낌을 선사했다. p264

 

심심하면 그저 심심함과 함께 놀았다. 그때 가끔 바람을 보기도 하고, 나뭇잎을 보기도 하며, 그 사이의 하늘을 보기도 하고, 그 하늘 속의 구름을 보기도 하고, 구름 속의 비를 보기도 하며, 빗속의 생명을 보기도 한다. 심심함이야말로 모든 창조적 발상의 원천이었다. p265

눈물이 나려 했다. 그날 이후로 파란 색만 보면 눈물이 났다. 구름도 없이 파란 겨울 하늘에 시렸고, 겨울 바다도 시렸고, 바람조차 파란 냄새가 묻어났다.

 

니체는 ‘노동은 최고의 경찰’이라고 했다. 노동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억제하고, 열망을 줄이며, 독립의 욕망을 피하는 현명한 자제의 방법이었다. 그래서 사회는 노동을 통해 안전해지곤 했다. 우리는 먹기 위해 일하고 일하다가 죽는다. 한 번도 살기 위해 일을 버린 적이 없다. 놀기 위해 산 적도 없다. p265

 

그저 미친 듯이 쓰면 며칠이란 아주 긴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꽤 두꺼운 책을 한 권 쓰기에 충분하다고 믿을 때도 있다. ... ‘내 힘이 아니라 신명의 도움을 받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한다. ... 나는 어떠한 줄거리도 없이 쓰기 시작한다. 그저 방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p268

 

독자는 작가와 같다. 그들 역시 책을 읽으면서 자신들의 책을 쓴다. 그들은 자신들의 체험과 사유의 한계 속에서만 저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 권의 책이 읽힐 때마다 다시 한 권의 책이 독자에 의해 쓰여’진다. ... 그래서 모든 독자는 자신이 읽은 책의 또 다른 저자이기도 하다. p270

 

무엇이든 눈길을 끄는 놈을 고른다. 싸움은 아무나 하고 붙어보는 것이 좋다. p272

 

책을 들춰보는 순간 천박한 놈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놈들과 싸우는 것은 좋지 않다. 싸움은 지저분해지고, 이겨도 얻을 것이 없다. 내 시간을 훔치는 놈들이며, 나를 화나게 하여 내 에너지를 고갈키는 놈들이다. 이럴 때는 번개처럼 얼른 손을 놓는 것이 좋다. p272

 

이미 마흔이 넘은 사람이다. 이미 삶의 웬만한 구석들은 혀로 핥아 본 사람이다. 저자의 권위에 눌려 살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해한 것을 생활 속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것도 바쁜 일인데, 언제 그들의 중언부언을 들어줄 시간이 있겠는가? 단칼에 내 심장을 찌르지 못하는 자들은 나와 인연이 없는 것이다. p273

 

나는 배움이란, 이해와 인식으로부터 시작할지 모르지만, 그 너머에 있는 다른 차원의 무엇인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273

나는 모든 배움을 삶의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삶이 아니면 음악이 아니고 소설이 아니고 철학이 아니고 경영도 아니고 이윽고 삶도 아니다. p274

 

좋아하는 일이 즐거움이 되려면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보기 싫은 책은 보지 않는다. 독후감 숙제를 하기 위한 독서 같은 것은 없다. 오직 마음이 가는 대로 읽는다. 글을 쓰는 스타일도 자유롭다. 논문처럼 형식을 갖추어야 하는 글쓰기를 싫어한다. ... 사회적 필요성과 자격의 취득이 목적인 경우는 그들의 위엄과 전통을 따라야 할 것이다. 힘은 그들에게서 오니까. ... 이제는 그러고 싶지않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하여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질문하고 대답하고 싶다. 이때 지적 작업은 즐거운 산책이 된다. 그리고 깨달음의 과정이 된다. 깨달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알레테이야(aletheia)’의 어원은 ‘촛불을 끈다’라는 뜻이다. p275

 

망연히 어둠 속에 서 있던 덕산은 어둠 속에서 찬연히 빛나는 별빛을 보게 된다. p276

 

“어둠이 가장 짙을 때 깨달음의 길이 열린다.” 다음 날 덕산은 “잡다한 이론은 태허의 허공에 털 하나를 던지는 것과 같다.”고 말하며 <금강경>해설집을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선의 황금시대(The Golden Age of Zen)>의 저자인 오경웅은 이 깨달음을, 임종에 이르러 저술을 계속하라는 비서에게 고백하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연결시킨다. “여보게, 레지날드. 나는 더 이상 쓸 수 없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지금까지 저술한 것들이 죄다 휴지같이 느껴진다네.” p276

 

사람들 속에 기억되는 그는 예의 바르고, 합리적이며 대부분 조용조용 차분히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안다. 그것은 자신이 아님을. 그는 가장 자유로운 미친놈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니체는 ‘불꽃처럼 게걸스럽게 스스로를 불사르고 스러지고’ 싶어 했다. 불꽃이야말로 바로 그였다. 그의 본질은 넘실대는 불꽃같은 변화였다. 그에게 있어 완성에 이르는 길은 살인적인 자기파괴와 가지고 있던 믿음의 상실, 자기해체로부터 생겨났다. ‘자기처형’없이는 새로운 자기가 있을 수 없다. 단순한 자기변화로부터 스스로에게 반대하고 자신의 적이 되려는 데서 그의 기쁨이 생겨났다. p277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은 니체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는 변신의 힘이며, 가장 극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라는 단호한 유혹에 따라 늘 ‘떠나야 할 곳은 알지만 도착할 곳을 모르는 배’를 타고 있었다. p279

 

그에게 자신을 찾는 일은 ‘항상 자신을 잃어버리고 부정함으로써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었다. 니체를 읽는 것은 그러므로 피 끓는 방랑의 유혹이지마, 그를 알기는 어렵다. 잡았다고 생각하는 그곳에 허물만 남기고 이미 빠져나가 버리고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과거의 니체가 아니었다. ‘계속되는 변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림으로써 자기를 생성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니체라는 이름은 어떤 정체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

‘미래란 과거와 현재에 이어지는 다음 시간이 아니라, 이미 와서 우리 곁에 있지만 감지되지 않거나 오해받고 있는 시간’이다. ... 그는 늘 ‘너무 일찍 와서’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시대의 아들’이 되지 못하고, 시대에 적응한 모든 사람들에 의해 ‘광인’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p280

 

배움은 결국 삶의 실천에 의해 가장 잘 얻어진다.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p281

 

어느 일요일 아침, 밤사이 내린 눈에 골목길이 온통 하얗다. 아직은 발자국조차 드문 골목길, 아침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우고 나서 나는 장갑을 끼고, 대빗자루를 들었다. 대문 앞부터 큰 골목에 이르는 길까지 다시, 교회 앞마당까지 이르는 길을 쓸었다. 늘 골목길 눈을 제일 먼저 쓸던 어르신이 오늘은 늦으셨다. 덕분에 교회 앞마당까지 이르는 골목길은 내 차지가 될 수 있었다. 평소 어르신한테 진 빚을 갚을 좋은 기회다. 얼마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집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가, 내친 김에 천당 가는 마일리지를 더 쌓기로 맘먹었다. 할머니 혼자서 폐휴지와 고물을 모아 생활하시는 것이 쉽지도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마침 새벽 예배에 참석하려는, 검정색 성경책을 가슴에 꼭 끼고 내 옆을 지나는 분들이 몇 분 있었다. 교회 앞마당에 이르렀을 때, 나는 큰 길까지 내쳐 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다시 금 망설였다. (다시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이미 큰 길에서 교회 앞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골목은 차들로 길바닥 눈길은 단단하게 광을 내고 있었고, 교회에서 사역을 맡아 보시는 분들은 눈 대신 차량 주차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담배를 마저 피우고 난 나는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혜롭지 못한 선행은 때로 게으름마저 깨닫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20년이 흘렀건만 나는 아직도 길 위에 있다네

내가 허비한 20년,

그렇게 애를 썼건만

내 노력은 매번 전혀 새로운 시작이 되고

매번 전혀 다른 실패였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하여,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기 위하여,

떠나야 할 곳에서 떠나기 위하여,

황홀함이 없는 곳을 지나야 한다. T.S. 엘리엇 p282

 

어제 읽던 책은 중요하지 않다. 보게 되면 보는 것이고, 오늘 못 보면 언젠가 보면 되는 것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는 나만의 방식이다. p284

 

선비처럼 섬세하고 무사처럼 선이 굵을 것. -소설가 최인훈의 글 p286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아경영철학. 또 하나의 줄기는 ‘변화의 기술’이다. p288

 

첫 번째 도전은 실패를 이기는 것이다. 두 번째 도전은 실패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도전은 매일 실험을 즐기는 것이다. 이때는 이미 실패도 성공도 사라진다. 여행을 즐기는 자는 끝없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세계에 탐닉한다. 그들은 춤추듯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p288-289

 

어느 날 악마가 속삭였다. “네가 현재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온 생이 다시 한 번, 나아가 수없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거기에는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이 없을 것이다. 일체의 고통과 기쁨, 일체의 사념과 탄식, 너의 생애의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크고 작은 일이 다시금 되풀이 될 것이다. 모조리 그대로의 순서로 되돌아온다. 너는 다시 한 번, 수없이 계속 이 삶이 반복되기를 원하느냐?” ★ 니체<즐거운 지식> p294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소명은 나를 연구하는 것이다. p294

 

<동물기>로 유명한 시튼이 내게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p296

멕시코시티의 큰 시장 그늘진 구석에 포타 라모라는 나이 든 인디언이 앉아 있었다. 그는 그 앞에 20줄의 양파를 매달아 놓았다. 시카고에서 온 어떤 미국인이 노인에게 와서 물었다. “양파 한 줄에 얼마요? ” “10센트입니다.” <중략>

“그럼 20줄 전부를 얼마에 파시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20줄 전부를 팔지 않을 것입니다.”

“안 판다니요? 당신은 양파를 팔기 위해 나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나는 내 삶을 살려고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 북적대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붉은 서라피 모포를 좋아합니다. 나는 햇빛을 사랑하고 바람에 흔들거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합니다. 나는 페드로와 루이스가 와서 ‘브에노스디아스’라고 인사하고, 담배를 태우며 아이들과 곡식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기서 친구드을 만나면 즐겁습니다. 이게 바로 내 삶입니다. 그 삶을 살기 위해서 여기 이렇게 하루 종일 앉아 양파를 파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에게 이 양파를 몽땅 다 팔아버리다면 내 하루도 그걸로 끝나버리고 말겁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사랑하는 것들을 다 잃게 되지요. 그러니 그런 일은 안 할 것입니다.”

 

초라한 미국인과 거대한 인디언 노인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철학의 힘이다. 나는 이 양파장수처럼 살고 싶다. p297

 

얼마나 많이 모방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감동하느냐가 중요하다. 열정과 가슴의 힘 없이는 현장의 바람에 대항할 수 없다. 설득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설득은 감정의 폭우를 필요로 한다. 감정을 담지 못하면 설득에 성공하기 어렵다. 열정을 가진 사람처럼 믿어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p300

 

한 작품을 모방하면 표절이고, 여러 작품을 모방하면 연구이다. p300

 

글쓰기는 또한 혁명이다. 죽어 있는 정신을 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흥미가 살아나고 열정이 살아나며 삶이 살아난다. 그리고 끊임없이 실험하게 된다. p301

 

내가 배우는 방법으로 가장 그럴듯한 것이 배운 것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여 책을 쓰는 것이었다. p302

 

나는 개인에게 있어 ‘변화라는 것은 본래의 자기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p306

남들이 할 수 있는 일이면, 굳이 내가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나에겐 반드시 내가 해야 할 이유가 필요하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 우선은 나를 찾는 일이다.

 

나를 키워준 것은 오히려 약한 마음이 늘 얻어오는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은 치유력이었다. 갈등이 나를 키워주었다. 마음속의 싸움을 통해, 비록 더듬거리기는 했지만 내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싸움은 생각보다 나쁜 것이 아니었다. p307

 

돈이 없어서 일을 못해본 적은 없다. 얼마를 버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 주머니에 담긴 돈의 액수는 무의미하다. 세상에는 많은 돈을 가지고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돈 버는 일에 습관처럼 매달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누구든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인물을 얻어야 한다. 그 첫 번 째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p313

유비보다는 제갈공명이 되고픈 사람. 언제가 유비가 찾아 올 거라 믿고, 자신이 제갈공명만큼의 내공과 혜안을 지녀야 된다고 믿고 있는 미숙한 현자. 나는 나를 그렇게 준비하고 싶다. 그리고 내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사람, 유비를 기다릴 것이다. 천리마를 얻은 지혜처럼 굳이 나서서 구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사람은 오게 되어 있다. 서로를 찾고, 서로를 알아보게 되어 있다. 그것이 운명이다. 운명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알게 된다.

 

고원에 핀 꽃의 향기는 더 없이 진하다. 덕유산 정상에 핀 원추리 향기를 맡아 본 사람은 알 수 있다. 그 높은 곳까지 자신의 유전적 본능을 도와 줄 존재의 도움을 끌어내는 그 힘을 과연 수동적이라 할 것인가?

 

가슴이 뛰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가슴이 뛰지 않으면 이미 사랑이 아니다. 일이 사랑이 되지 않으면 그 일은 내 일이 아니다.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다른 여자를 향해 달아나는 애인처럼 한때 사랑했던 그 일은 이제 벗어나고 싶은 지루함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늘 새롭게 사랑하는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p317

 

자신의 목에 감긴 밧줄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당기는 행위가 바로 쏟아냄이 들어옴을 초과하는 지식 유출을 방관하는 행위다.

그거 충만하게 차고 넘쳐서 자연스럽게 익어 흘러나오는 그때... 너무 많이 익어 무르지도 않고 설익어 풋내 나지도 않는... 과일은 그때가 제 격이다.

 

그러나 이 속에는 늘 불안이 있다. 인기라는 것은 덧없는 것이며, 언젠가 떠나는 것이다. 떠나는 것에 의지한 자는 불안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늘 변하고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기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인기를 추구하는 자는 인기를 잃음으로 해서 결국 불행해지거나 스스로의 왜곡에 빠지기 쉽다. 지지자로 둘러싸인다는 것이 위험한 이유이다. p325

 

무대에 설 때마다 떨리고 흥분돼요. 연애하는 것과 비슷해요. 관객과의 데이트 말이에요. 거기서 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 무대에서만 나는 살아 있어요. 무대에서 나는 가장 아름답고 당당해요. 나는 노래를 위해 태어났고 노래로만 나를 증명할 수 있어요. p329

 

모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모근 것이 유일한 목표여서는 안 된다. 내 목표는 그 이상이다.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 그것은 반드시 청중 속의 누군가를 움직여 스스로 자신의 고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p332

 

그 순간 내 일이 매우 위험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짝 덮고 있는 행복의 껍질을 뜯어내는 것이 매우 적대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의 불행은 행복이라는 초콜릿으로 살짝 덮여 있었다. 그들은 그 초콜릿 덮개가 벗겨지는 것에 분개한다. 그리고 적대적이 된다. 솔직한 것이 위험한 이유이다. p333

 

불행한 사람들만이 변화에 관심이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지금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행복을 가장한 사람들 역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도 때때로 변화를 바란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뼛속 깊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p334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오늘 강연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어쩌면 아직은 자리를 빛내는 들러리인지도 모른다. p335

 

간혹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을 해야 되거나, 강의를 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데서도 대학시절 연극반 경험은 든든한 밑천이 되어주었다. 내 발음은 비교적 정확한 편이고, 복식호흡을 하고, 감정을 실어 의사를 전달해야 하는 경우, 가끔씩 스스로도 ‘괜찮다’라는 느낌들을 받을 적이 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이 그리 크게 부담되는 일만은 아니었다. 때로 강의를 통해, 지식을 전달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생각의 흐름과 호흡을 당겼다가 늦추기도 하는 마치 무슨 지휘자가 된 기분들을 느낄 때도 종종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나는 반드시 내가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뒤에서 연출하는 역할을 더 즐겨한다.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흐름과 판을 읽기에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일단 그것이 읽히고, 시야 안에 흐름이 잡히면 그 때부턴 여유가 생긴다. 요리에 양념을 치듯, 적당한 농담들과 에드립으로 판을 더 흥겹게 만든다. 물론, 아주 꽝인 날도 있다. 이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익숙한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말이 막히고, 등허리를 타고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지면 시간이 매우 천천히 간다. 그런 날은 말 한마디 한마디를 넘기기가 힘이 든다.

 

하지만, 연극을 통해 가장 소중하게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삶 속에 몰입해 보는 경험이었다. 다른 사람의 삶 속에 들어가, 그 사람처럼 느끼고, 그 사람처럼 생각하고, 그 사람처럼 행동하는 일. 일상에서 이런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나처럼 자신의 세계에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런 과정을 통해 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훈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뿐이 아니다. 연극은 타인과의 소통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도 그리고 더 나아가 신과 소통하는 방식의 하나로 오래 동안 자리해 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기 조차 하다.

 

변화는 달콤한 과정만으로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변화 속에는 늘 피의 냄새가 난다. 형태상으로 아주 부드러운 변화도 있다. 코코 샤넬은 화장품의 개념을 바꿈으로써 부드럽고 향기로운 혁명을 만들었다. 그러나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든, 혁명은 언제나 기존의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만 가능하다. ... 진정한 변화는 자신에 대한 치열한 사랑이다. 치열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다. ... 이 일은 매우 주제넘은 짓이기도 해서, 나는 힘겹게 행복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의 적이 되어야 했다. 이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속성이다. p337

 

강연은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한다. 그들이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 속으로 드어가야 한다. 그들이 그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내 강연의 목적은 그들이 자기 자신이 되어 스스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p338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실수하거나 마음에 차지 않으면 매우 불쾌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이 때 자신의 분야가 나를 찌르는 비수가 된다. 그러므로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p340

 

“우연한 쏘시개 불꽃”, “an unexpected sparkle toward the destiny” p341

 

꽃씨와 불씨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하는 비즈니스이다. 내가 자연으로부터 배운 방식이다. p343

 

구급차가 오고, 사람이 실려가고, 사람들이 모여 도랑에 사람이 빠져 많이 다쳤다는 것을 수군대고 있을 때조차 여전히 그 도랑을 찾아가 스스로 빠진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p346

 

다시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것이다. 이것이 내 첫 번째 계획이었다. 그리고 유일한 계획이었다. p348

 

나는 세 가지 종류의 시간의 강줄기를 만들어 냈다.

하나는 나를 위해 흐르는 시간의 강이다. 이 시간의 강물 위에서 나는 읽고 생각하며 자연과 만나고 쓴다. ... 또 하나의 시간의 강줄기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 세 번째 시간의 강줄기는 세상과 내가 만나는 시간이다. p351

내게는 친구가 있다. 늘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선뜻 떠나기를 주저하는 A형의 소심함 뒤로 수어 버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있다. 이따금 술을 한잔 나누면서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푸념을 늘어놓고, 그 푸념에 장단을 넣고 그러다가 깊은 허무의 한숨으로 헤어지곤 했다. 그녀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내가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지역사회 리더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강연을 하고 싶다. 그대들의 꿈, 그대들이 만들어 가고픈 세상을 함께 그려보는 그림, 얼마나 멋진 일인가. 전주의제21이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지표에 함께 하셨던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나는 그들의 꿈을 볼 수 있었고, 그들에게서 유산을 물려받기도 했으며, 미래도 보았다.

 

자연은 무수히 쏟아내고 선택한다. 이것이 바로 자연이 ‘최선’을 골라내는 방식이다. 운을 시험하고, 필사적 노력을 시험하며, 바다를 향한 그리움을 시험한다. 푸른 그곳이야말로 삶의 본향이기 때문이다. p354

 

나는 두 개의 하루, 두 개의 태양을 갖게 되었다. 한 곳에서 살던 짐을 꾸리고, 다른 곳에서의 삶을 위해 다시 짐을 푸는 시기가 내겐 바로 마흔이었다. 하나의 세계가 닫히면서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위대한 시기였다. p357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은 채, 든든한 밥그릇 하나 챙겨두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그 쩨쩨함의 끝을 묻고 싶었다. 새로운 인생을 건설해야 하는 시점에서 여전히 망설이기만 하는 나에게 무엇을 더 기다리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p360

 

이 세상에는 늘 가난과 부유함이 같이 있곤 했다. 가난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그저 누가 부유하고 누가 가난한가의 문제에서 내가 어느 쪽에 속하는 지가 개인적 관심사였다. p363

 

돈이 면죄부 역할을 하는 것을 타락이라 부른다. 본업으로 사회를 도와야 그 일 자체로 의미와 보람이 된다. p364

 

인생은 결국 자신의 주인을 닮게 되어 있다. p364

 

 

3. 내가 만일, 이 책을 쓴다면(?)

 

변경연 제6기 연구원 모집 공고를 보고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마감 며칠을 남겨두고 마무리한 서른아홉페이지의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지원서를 몇 번이고 훑어보면서 스스로 참 대견해라 했었다. 참말이지 그렇게까지 쓸 말이 많을 줄은 몰랐다. 아직 구성도 허접하고, ‘사랑’이나 ‘가족’과 같이 상투적이면서도, 관심이 확 땡기는 주제는 아직 소화하기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를 다시 보면서, 새삼 놀랬다. 어디까지가 구본형이고 어디까지나 나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우선은 마치 트레이싱페이퍼를 대놓고, 원본 그림을 배껴 낸 것처럼 생각의 흐름이 닮아있는 점에 놀랐다. 그래서 다시 물어야 했다. <나의 언어>로 쓴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진짜로 <나의 언어>로 쓰고 있는지를.

 

여하튼 이 책은 나를 위한 책이었고, 변경연에 응시하기 위해 지난 1년 반 동안 스스로에게 얼마나 절박한 지를 묻고, 답할 수 있게 해 준 책이었다. 그리고 Me-Story를 쓰게 했던 지침서였고, 나중에 <나의 자서전>을 쓰겠다는 무식한 용기에 불쏘시개가 되어 주었다.

 

나는 ‘은유와 상징’을 좋아한다. 약간 신비스럽기도 하고, 적당히 감출수도 있으면서, 저마다 다른 느낌을 갖게 할 수도 있는 그리고 그런 맛 때문에 어쩌면 자유롭고 새로운 해석의 여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 탓인지 <신화>와 관련된 첫 주와 <철학>을 공부한 둘째 주의 느낌이 많이 달랐다. 분량으로야 단연 <서양철학사>가 압도적이었지만, 이런저런 ‘딴생각’을 해가면서 읽기를 좋아하는 독서스타일상 <신화와 인생>을 읽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는 은유를 좋아하는 구본형의 스타일이 잘 드러나 보인다. 이런 책은 매번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불과 6개월 간격이었는데도 밑줄이 그어지는 문구들이 달라졌고, 옆에 붙여 두었던 포스트잇을 읽는 느낌도 재미있었다. 각 장 앞에 짤막하게 <죽음과 탄생>에 관한 짧은 소설 같은 구성은 전체적인 흐름을 끌어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뭐랄까. 각 장이 독립된 영역으로 단절되어 읽힐 수 있는 부담을 굴비를 엮듯 하나로 이어주는 것 같았다.

 

당당한 일상의 경험에서부터 깨달음을 기쁨을 찾아내는 것은 일상의 구체적인 사실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도 있어야 하겠지만, 그 사실을 통해 깨달음을 본질을 녹여낼 수 있는 깊은 성찰과 고민이 우선 되어야만 글이 들뜨지 않을 것 같다. 결국 나의 언어로 쓰라는 말에 대한 숙제가 남게 되었다. 삶 속에서, 실천 속에서, 치열하게 부딪히는 현실 속에서, 그리고 이 글을 읽게 될 독자들의 가슴속에서 출발해야만 그 글은 공감을 얻고, 감동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니체를 비롯해서, 스콧니어링, 쇼펜하우어, 최인훈, 시튼 등의 우정출연이 너무 많지 않아서 좋았다. 대부분의 이런 책들이 자칫하면, 자기 자신의 세계로 빠져들어서 구체적인 사실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빠져들 수 있을 터이고, 책이 그렇게 되는 순간 독자들의 호감은 거부감으로 바뀔 지도 모를 일이다. 반대로 이런 저런 유명한 사람들의 잠언 집에서 인용한 내용이 너무 많다보면 자서전으로서의 재미를 상실하고 독자로 하여금 차라리 괜찮은 잠언집을 사는 것이 나았겠다는 본전생각이 들게 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같이 이름도 없는 사람의 자서전을 세상이 주목해 줄만큼 세상 사람들이 관대하거나 여유 있어 보이지는 않은데. 그냥 일상에 대한 단상보다는 이 책의 제목처럼 이제 막 마흔앓이를 하고 있고 있는 대상을 겨냥했던 틈새전략(?)이나 또는 특정분야로 한정하여 차별화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의 이야기, 자기만이 할 수 있는 분야를 개발하고 거기에 자신의 삶과 생각을 투영해보는 이른 바 ‘자서전적 여행기’나 ‘자서전적 노거수이야기’ 같은 식의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IP *.154.57.140

프로필 이미지
박미옥
2010.02.28 16:59:09 *.53.82.120
어디까지가 구본형이고 어디까지나 나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나의 언어>로 쓴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진짜로 <나의 언어>로 쓰고 있는지를.

저도 글쓰다가 화들짝 놀라 사부님의 책들을 막 뒤진답니다.
이거 나도 모르게 표절하고 있는거 아냐..함시롱.. ㅋㅋ
프로필 이미지
신진철
2010.02.28 18:02:03 *.154.57.140
저도 그랬지유... 친절한 사부님 그 뒤에 처방전도 써놓으셨더군요
한 사람거 배끼면 표절이지만, 여러사람 거 배끼면 연구래요..ㅋㅋ
(이거 너무 재밌네요...이모티콘)
emoticon
프로필 이미지
한명석
2010.03.02 20:42:03 *.88.56.230
내 기억으로는 2006년 이후로,
북리뷰의 중간토막을 이렇게 창의적으로 변용한 경우는
처음인 것 같네요.
프로필 이미지
신진철
2010.03.03 03:00:16 *.186.57.133
그 말씀 칭찬이지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북리뷰 안보이시는 분들 일단 파일첨부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4] 관리자 2009.03.09 90633
498 서양철학사(발췌) 박미옥 [2] [1] 깨어있는마음 2010.02.22 4509
497 러셀의 <서양철학사> [1] 김연주 2010.02.22 4422
496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를 읽고 - 김영숙 [3] 김영숙 2010.02.24 4808
495 [6기후보리뷰3] 연착륙, 경착륙 마흔 세살 심장호 2010.02.25 4422
494 [6기후보리뷰4] 靈媒같은 科學者..카를 융 심장호 2010.02.25 4341
493 죠셉 캠벨과 홍승완이 말하는 글쓰기 [2] 승완 2010.02.26 4433
492 3.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4] 박미옥 2010.02.27 4491
491 3rd.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 구본형 미나 2010.02.27 4420
490 리뷰3주차-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이은주 2010.02.28 4396
489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배학 2010.02.28 4488
488 3.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저자와 구성 [1] 맑은 김인건 2010.02.28 4650
487 북리뷰3.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이선형 2010.02.28 4407
» 3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4] 신진철 2010.02.28 4470
485 3주차 김창환,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야콘 2010.02.28 4541
484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Review [1] 박현주 2010.02.28 4704
483 나-구본형의 변화 이야기 Review [3] 최우성 2010.03.01 4393
482 리뷰 3주차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윤인희 2010.03.01 4340
481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구본형) 김용빈 2010.03.01 4412
480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김연주 2010.03.01 4387
479 북 리뷰3.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2] 박상현 2010.03.01 4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