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좋은

함께

여러분들이

  • 조회 수 5141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10년 3월 22일 22시 28분 등록
 

[학문의 즐거움 ]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 김영사


‘밥을 많이 먹으니 배가 부르더라’고 말을 해보자.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해보자.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한 발 더 나아가서 어떤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이 ‘밥을 많이 먹으니 배가 부르더라’고 한다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을 할까. 잠시 묘한 표정을 지으며 이게 뭔 소리야 하는 표정을 할 것이다. 그 표정이 사라질 즈음에는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바보 아니야?’ 하는 자연스런 의문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밥을 많이 먹으면 배가 부르다’는 말은 그렇게 당연한 말이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의심하지 않는 이유는 누구나 경험을 해보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세상 누구나 알고 있는 그리고 세상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상식을 아주 진지하게 또는 깨달음을 얻은 듯이 외친다면 반응은 뻔하다. 싱거운 사람이 되거나 웃긴 사람이 되거나 미친놈이 된다.


‘학문의 즐거움’을 쓴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저명한 수학자다. 장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입시 일주일 전까지 거름통을 들고 밭에서 일을 했다. 대학 3학년때 수학자의 길을 택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드상을 받았다.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면 모를까. 수학의 노벨상을 받은 사람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유명 문학가나 경제학자라면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도 수학자는 아무리 저명하다고 한들 누가 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히로나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도 드물다. 그래도 이 책을 쓴 사람이 정말 유명한 수학자라는 것 정도는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책의 표지에는 ‘즐겁게 공부하다 인생에도 도통해버린 어느 늦깎이 수학자의 인생이야기’라고 쓰여 있다. 평생 수학에 빠져 학문을 연구한 수학자가 인생을 살아보니 이렇더라고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책은 심심하다. 그것도 많이 심심하다. 저자가 살아온 길을 되짚어 보면서 얻은 것들을 펼쳐내고 있지만 그리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들은 아니다. 저자가 힘주어 말하는 것들도 힘주어 말하는 목소리에 비하면 충격이 그리 크지 않다.

저자가 말하는 것들을 몇 가지 짚어보자. 저명한 수학자가 배우고 깨우친 것이니 뭔가 다른 뭔가 대단한 것이 있으리라고 미리 생각했다면 기대를 접는 게 좋다. ‘배우는 것은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끈기가 필요하다’ ‘인생은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이고 시행착오는 절대로 낭비가 아니다’ ‘목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전이 없는 인생은 놀라움이나 기쁨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무림 고수의 비법은 없다. 저명한 수학자가 힘주어 알려주는 이야기 치고는 심하게 간결하다. 혹시 행간에 비법 같은 것을 숨겨놓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것은 없다. 책은 간단하고 담백하다. 대부분 알고 있을, 긴 인생을 살지 않았어도 알고 있을 이야기들은 펼쳐 놓는 저자의 말은 마치 ‘밥을 많이 먹으면 배부르다’고 말하는 듯 하다.


‘밥을 많이 먹으면 배부르다’고 말하면 싱겁거나 우스운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은 그 말이 담고 있는 말을 사람들이 너무 우습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작 우스운 것은 그 말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너무 당연한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 너무 행하지 못하는 것이 누구인가. 그게 우리라는 사람들이다.

많이 먹으면 배부르다는 것을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 쉬지 않고 먹어대는 것이 누구인가. 몸무게가 어떻고 비만이 어떻고 하면서도 몸의 변화를 이뤄내지 못하는 것이 누구인가. 우습게 여겨야 하는 것은 심심하고 상식적인 말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의 모습이어야 한다.

‘배우는 것은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는 저자의 말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보다 먼저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무엇을 배우려고 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끈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가. 남에게 노력과 끈기를 가지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노력을 했는지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 ‘인생은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이고 시행착오는 절대로 낭비가 아니다’라는 구절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어제만 해도 작은 일 하나에 왜 나는 이렇게 돼는 일이 없느냐고 속 터져 하던 게 당신이다.


저자는 독자를 앞에 앉혀 놓고 조근조근 말을 하듯이 자신의 삶을 들려주고 자신이 삶에서 얻은 것들을 들려준다. 행여나 듣는 사람이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칠까봐 애태우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저자는 그런 와중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말한다. 이것은 잊지 말았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을 책을 읽는 독자들이 가슴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가 긴 인생의 길에서 길어 올린 것들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것들이다. 그 이유는 인생의 길을 가는데 특별한 비법이 없어서 일지 모른다. 누구의 삶이든 대단한 비결로 채워진 인생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나치게 단순하고 당연한 것들로 꾸려가는 것이 삶일 터인데 사람들은 애써 다른 것들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답은 이미 알고 있지만 혹시 다른 답이 있을지 모른다는 헛된 기대로 엉뚱한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밥을 많이 먹으면 배부르다’는 말은 비웃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알고만 있으면서 행하지 않은 결과를 몸은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아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는 것이 많아서 머리만 가득 찬 사람들은 머리만 팽팽 돌리고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은 사람들이 쏟아낸 불만들로 가득 차 있다. 알고 있다면 가슴으로 발로 움직여야 할 일이다. 가슴으로 발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불만을 토로할 시간도 없다.

IP *.163.65.122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10.03.24 16:42:50 *.88.56.124
'밥을 많이 먹으니 배가 부르다'  에서 조금 더 발전하면
저 유명한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가 되는 건가요?

인생이 단순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인생의 굽이를 어지간히 넘은 뒤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지요.

나도 이 책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어요.
http://www.bhgoo.com/zbxe/?mid=mailing&search_target=nick_name&search_keyword=%ED%95%9C%EB%AA%85%EC%84%9D&page=2&document_srl=38160
찾아보니 무려 3년 전이군요.
이토록 빠른 세월이라니 ㅠ.ㅜ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북리뷰 안보이시는 분들 일단 파일첨부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4] 관리자 2009.03.09 90808
378 [책읽기 세상읽기] 희망은 깨어있네 [1] 2010.04.12 4595
377 위로의 달인이 전하는 인생수업 [2] 이희석 2010.04.07 4448
376 4-1리뷰 신화의 힘 조셉 캠벨 [1] 윤인희 2010.04.05 4917
375 북리뷰5 신화의힘 The Power of Myth [1] 신진철 2010.04.05 4722
374 [책읽기 세상읽기] 나무야 나무야 [2] 2010.04.02 4821
373 '타이탄' 보다. 맑은 2010.04.02 4375
372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읽고 [4] 2010.04.01 4552
371 이 책은 알람시계이기를! [2] 이희석 2010.03.30 4571
370 고민하는 힘이 살아가는 힘! [2] 이희석 2010.03.26 4429
369 다석 마지막 강의 맑은 김인건 2010.03.24 4373
368 『고민하는 힘』- 강상중 [7] 이희석 2010.03.24 4809
367 '셔터 아일랜드'를 보다. [4] 맑은 김인건 2010.03.23 4412
» [책읽기 세상읽기] 학문의 즐거움 [1] 2010.03.22 5141
365 다시올립니다 <4 카를융 기억꿈사상> [4] 신진철 2010.03.09 6006
364 광장으로 나와서 말씀해보세요.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3] 김혜영 2010.03.08 4447
363 <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김연주 2010.03.08 4324
362 미션 4 카를 융 '기억 꿈 사상'-김창환 야콘 2010.03.08 4352
361 기억,꿈,사상 Review [1] 박현주 2010.03.08 4800
360 네번째 북리뷰_기억 꿈 사상 김혜영 2010.03.08 4402
359 4. 카를융, 기억, 꿈, 사상_저자, 구성 맑은 김인건 2010.03.08 4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