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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2일 22시 04분 등록
 [희망은 깨어있네] 이해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항상 그러했다. 봄이 왔으나 봄이 아니었다. 흉노족에게 강제로 시집간 왕소군도 아니면서 사람들은 춘래불사춘을 읊조리곤 했다. 너도 나도 해마다 춘래불사춘이었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이유는 1백개도 넘었다. 곁을 떠나지 않고 그림자처럼 몸을 얽어맨 그 많은 이유들 때문에 사람들은 봄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봄은 슬픈 듯이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꽃의 계절 봄은 되레 슬펐다.


졸음이 몰려오는 오후. 천천히 걸어 작은 공원에 갔다. 거기에 꽃이 있었다. 꽃이 피어 있었다. 연분홍 벚꽃과 희디 흰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꽃이 피어난 나무 아래에는 아이들 셋이 놀이를 하고 두개의 벤치에는 한 남자 한 여자가 정물처럼 앉아 있었다. 앉을 곳이 없어 나무 아래에 서서 꽃을 바라보았다.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는 눈 속으로 봄이 밀려 들어왔다. 눈 속으로 들어온 꽃은 강물이 되어 가슴 속으로 몰려갔다. 그 물결은 부드러운 듯 세찼다. 꽃잎이 몸 구석구석을 피처럼 몰려다닐 만큼 긴 시간동안 꽃을 바라보았다. 꽃이 있고 봄이 있어서 떠날 수 없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다 그만두었다. 카메라가 아무리 좋은들 눈과 가슴에 맺힌 꽃과 봄을 담아내지는 못할 일이다. 표현해내지 못할 장면이라면 몸에 새겨두는 게 낫다. 몸에 새긴 것들은 어느 때고 몸을 타고 떠오르니까.


봄이 멀리 있지 않은 시간에 이해인 수녀는 시집을 냈다. 암투병을 하고 있는 이해인 수녀는 자신을 고통의 학교에서 새롭게 수련을 받고 나온 학생이라고 말한다. 그 학교에서 세상을 더 넓게 보는 여유, 힘든 중에도 남을 위로할 수 있는 여유, 자신의 약점이나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유를 배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말한다. ‘다시 보는 세상은 얼마나 더 감탄할게 많고 가슴 뛸 일이 많은지’라고.

1백가지가 넘는 이유 때문에 멀쩡한 사람들이 봄조차 느끼지 못하고 살아갈 때 1천가지가 넘는 이유가 있을 이해인 수녀는 봄을 기쁘게 노래했다. 문득문득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순간에도 희망을 노래했다. 시인에게는 모든 것이 희망이었다. 아침에 잠이 깨어 옷을 입는 것은 희망을 입는 것이고 살아서 신발을 신는 것은 희망을 신는 것이었다. 그래서 치료를 받으며 힘겨웠던 시간에 흘러나왔던 시를 희망이라는 그릇에 담아냈다.


봄일기-입춘에


봄이 일어서니

내 마음도

기쁘게 일어서야지

나도 어서

희망이 되어야지


누군가에게 다가가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후략)



춘래불사춘(春來不死春).

봄은 죽지 않는다. 때가 되면 자취를 감추지만 또 때가 되면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봄은 그렇게 영원히 죽지 않는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1백개의 이유에 삶을 내어놓은 사람은 봄이 왔음을 느끼지 못하지만 삶을 피어내는 사람에게는 삶 또한 죽지 않는 봄이다.


작은 공원에서 꽃을 바라보던 순간에 몸을 얽어맸던 1백가지의 이유는 맥없이 풀려나갔다. 그 자리를 봄이 차지했다. 봄이 들어앉은 눈에는 꽃비처럼 눈물이 맺혔다. 봄이 오지 않아서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죽지 않는 봄이 황홀해서 눈물이 난다. 작은 공원 그 자리에 이제 꽃은 없다. 누군가의 눈에 누군가의 가슴에 담아버렸으니까.

봄은 죽지 않는다.

춘래불사춘(春來不死春).

 

IP *.163.65.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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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4.13 00:57:58 *.36.210.166
창= 진철 ???   emoticon    소리 없는 눈물  뚝뚝 쭈르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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