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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9일 10시 40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C. W. 체람 or 세람 (C. W. Ceram :January 20, 1915 - April 12, 1972) 은 본명이 쿠르트 W. 마렉(Kurt Wilhelm Marek,)으로 알려져 있는 독일의 신문기자, 연극 비평가, 로볼트 출판사의 출판인 이자 편집장이었다.

그는 1915년 1월 20일 베르린에서 태어나 1972년 4월 12일에 57세의 나이로 함부르크에서 사망했다.

세계2차 대전 중에는 Propagandatruppe의 멤버였고,  그 시기에 『Wir hielten Narvik, 1941Rote Spiegel - überall am Feind. Von den Kanonieren des Reichsmarschalls, 1943』를 저술했다.


 1949년에 발표한 이 책 『낭만적인 고고학의 산책』의 원제는 Götter, Gräber und Gelehrte 이고 영어판으로 Gods. Graves and Scholars: The Story of Archaeology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우리나라에는『낭만적인 고고학 산책』으로 여러명의 번역가가 번역하여 발표하였다. 이 책은 체람의 첫 저서로, 전 세계 독자들 사이에서 고고학 분야의 기념비적 업적을 쌓았으며, 고고학 분야의 명저가 되었다.  이 책은 세계 28개국으로 번역되어 500만부 이상 판매되었고 지금도 많은 기관에서 추천하는 필독서 목록에도 포함되고 있다. 

체람은 인류로 하여금 고대의 문화적인 유산의 중요성을 일깨워 당시 아스완댐 건설로 인한 아부-심벨의 유적이 수몰되자 않도록 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히타이트 문명 발굴을 위해  터키 고고학적 발굴에도 직접 참여하여 『 The Secret of the Hittites : 1956』, 『The march of Archaeology: 1958』『The First American 』을 발표했다.

그밖에도 실명으로 쓴 『Yestermorrow: Notes on man's Progress : 1961』과 『Archaeology of the Cinema: 1966』 『Hands on the Past:Pioneer Archaeologist Tell Their Own Story : 1966』등이 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P. 5) 애국적인 예술, 애국적인 과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모든 지고의 미덕들이 그렇듯이 예술과 학문도 모두 세계의 것 이며,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과거로부터 물려  받았거나, 과거로부터 배운 모든 것들을 존중하여 서로 자유롭게 영향을 미침으로써만이 예술과 과학은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괴테-

(P. 5)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올바로 바라보고자 원하는가? 그렇다면  멀찌감치 서서 자신의 시대를 바라보도록 하라. 그 먼거리라 함은 바로 클레오파트라의 코에 연연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면 될 것이다.


초판에 붙이는 서문

(P. 7) 고고학은 인간적인 측면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P. 7) 고고학은 모든 종류의 자극과 성취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모험은 학구적인 노력과 결부되며 낭만적인 여행은 학문적인 자기 수양과 절제와 보조를 맞춘다. 아득히 먼 과거의 폐허에서 탐사하고저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잔뜩 품고 세계 곳곳으로 발을 재촉한다.

(P. 7) 이 책은 고고학자들의 뛰어난 업적과 그 통찰과 그 끈기에 대한 찬가이다. 무엇보다도 순수한 겸손에서 재능을 숨긴 연구가들의 기념물이다.


제1부 조상들에 관한 장 

1. 나폴리의 여왕

(P. 16) 한 개인의 인생에서처럼 역사 속에서도 가끔 쉬운 것보다 어려운 과정이, 그리고 최장 거리가 최단거리 양 잘못 판단되기도 한다.


2. 빙켈만: 학문의 탄생

(P. 26) 빙켈만의 공로는 그때까지 철저하게 혼돈 상태에 있었던 것을 그의 능력의 한도 내에서 실제 지식을 근거로 한 추측으로 대리시키므로써 임시변통의 징서를 갖도록 한일이었다. 이러한 그의 체계적인 접근은 아주 오래된 문화를 시간의 심연으로부터 구해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었다. 

3. 막간극: 왜 과거를 탐구하는가?

(P. 28) 우리는 역사가들의 저서를 들춰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고대인들의 역사를 읽는다.

......... 우리는 그들의 역사를 무용담이나 전설로서가 아니라 연대와 숫자로  읽는다. 우리는 그들이 섬긴 왕들의 수를 알게 되고, 평화 시에 혹은 전쟁 시에 어떻게 살았는지도 알게 되고, 그들의 가정 생활이나 종교의식을 접하게 된다. 우리는 그들의 흥망성쇄, 즉 그들 문화의 고동소리가 멈추게 되는 마지막 연월일까지 상세하게 배우기도 한다. 

(P. 28-29) 그렇다면 이러한 과거에 대항 지식들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이 답변되어 진다하더라도 자동차를 운전하고 비행기를 조종하며 과거가 아닌 미래지향적인 20세기의 사람들에게 앗시리아의 왕이 그의 아들에게 설형 문자로 무어라고 썻으며, 이집트 사원의 기초 설계가 어떤 것이었는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것은 그럴듯한 질문이고 그에 합당한 답변이 있어야 한다.


이주하면서 그들은 그 건의 생활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대로 가지고 간 것임이 드러났다. 새로운 대륙에 온 사람들은 그들의 사고나 감정 속에 종교와 고나습속에  그리고 인생의 기본적인 제도인 사랑과 결혼과 노동과 의무에 대한 태도 속에 그리고 선과 악 신성과 마성의 원리에 대한 태도 속에 옛 조상들의 피를 이어받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들이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건 관계없이 그러했다.


(P. 30) 이것은 고고학자들의 웅대한 과제가 되었다. 즉 말라버린 샘이 다시 솟아오르게 하고 잊혀졌던 것을 다시 살리고, 죽었던 것을 다시 살리고, 우리가 브루클린에 살건 몽빠르나스에 살건 베를린에 살건, 칠레의 싼티아고 또는 아테네나 마이아미에 살건 간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역사의 흐름을 다시 한번 세차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흐름은 5천년동안 각각 다른  깃발아래서지만 같은 운명에 순응해 온 서구 사회의 위대한 문화공동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고학은 모든 사람의 관심사이지 그저 학문중의 난해하고 독특한 전문 분야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고고학에 몰두해 있을 때 전체로서의 인생사는 우리의 주제가 된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교차점에서 부단히 균형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P. 30) 안돌로가 기술한 석관에는 지금까지 그 가문이나 혈통이 분명하지 않은 에투르스카 사람의 하나가 누워있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마자 분리되어 다시는 원상복구 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극도의 부주의다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가져온 것이다. 

  

4. 쉴리만(1) : 일개상인 트로이의 황금을 파내다

(P. 38) 여기 동화가 하나 있다, 한 가난한 소년이 일곱 살 때 신화의 도시를 발견하겠다는 꿈을 품고 39년이 지난 후 길을 떠나 찾아 헤메다 그 도시를 발견했을 뿐 아니라 스페인 정복자들의 약탈 이래 처음 보는 보물들을 찾아낸 이야기이다


이 동화는 하인리히 쉴러만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고고학자들 중에서 뿐 만 아니라 어떠한 학문분야에 업적을 많이 남긴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경타할 만한 인물이었다.  

가난한 성직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소년에게 우화와 동화와 전설들 특히 그중에서도 호머의 영웅들이 싸운 전쟁들에 대한 것과 파리스와 헬렌, 아킬레스와 헥터 그리고 불에타서 쓰러진 막강했던 트로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P. 39) 소년 하인리히 쉴러만은 말했다. “내가 어른이 되면 가서 트로이와 왕의 보물을 찾아볼거예요”

일곱 살난 소년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고학자가 되어 있던 61세의 나이에도 그는 의욕적이었다.


(P. 42) 이것이 동화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성공한 사업가가 어렸을 때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모든 과거를 불살라 버리고 호머에 관한 것 이외에는 거의 아무런 지식도 없던 그가 그 시대의 학문에 도전하고 학문적인 접근보다는 곡괭이와 삽으로 의심많은 사람들과 언어학자들과 맞붙어 싸운 것이 동화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P. 47) 그리고 나서 이 신들린 사람은 작업에 착수했다. 그를 백만장자로 만들게 했던 모든 힘을 집중하여 쉴리만은 그이 꿈을 실현시키려 했다. 그는 물자와 정력을 아낌없이 쏟았다.

(P. 48) 그는 별로 중요해보이지 않는 벽돌을 헤치고 대담하게 언덕을 파들어 갔다. 그는 그곳에 한때 화려한 도시가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인 무기와 가재도구들과 장식물들과 그릇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하인리히 쉴리만이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최초로 울려퍼지게 할 만한 다른 것도 찾았다. 뉴 일리엄의 폐허 아래에서 그는 다른 폐허를 발견했고, 그 아래에서는 또 다른 폐허를 발견했다. 그 언덕은 마치 거대한 양파껍질과 같아서 층마다 계속 벗겨져 나갔다. 각 층마다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것 같이 보였다. 사람들이 살다가 죽었고, 도시들은 세워졌다가 곧 멸망한다. 칼과 방화자가 날뛰었고, 하나의 문명은 다른 문명으로 넘어뜨렸고, 계속해서 죽은 도시위에 살아있는 도시가 세워졌었다.

매일 새롭고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쉴리만은 호머의 트로이를 찾으러 갔었는데 그와 그의 인부들은 일곱 개의 묻혀있던 도시들을 발견했고 또 전에는 존재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원시시대의 두 도시까지 모두 아홉 개 도시를 발견했다.


(P. 49) 그는 그때까지 시적 상상이 빚은 허구인 단순한 모험담과 신화로만 여겨졌던 것들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성공했다.


(P. 49) 그것은 극적으로 발굴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이 광장한 발견에 대한 기록은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쉴리만은 아내와 함께 발굴 작업을 감독하고 있었다. 더 이상 뭔가 발견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습관적으로 인부들의 움직임마다 바짝 다가서서 지켜보고 있어따. ...갑자기 그의 시선은 넋을을 잃었다. 그는 신들린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만일 도둑질하는 버릇이 있는 인부들이 그때 쉴리만이 무얼보고 그렇게 놀랬는가를 알아차렸다면 무슨짓을 했을지 아무도 말할수 없을 것이다. 그는 아내의 팔을 잡았다. “금이야!” 그는 속으로 속삭였다, ....................


(P. 50)가능한 한 빠른 속도로 나는 큰 칼로 보물을 파냈다. 나는 이 일을 내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무서운 위험속에서 불굴의 투지로 해냈다. 왜냐하면 내가 파고있는 구덩이 위에서 무거운 성벽이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값비싼 보물을 보자 나는 무모해져서 위험같은 건 생각하지도 못했다.  


(P. 51) 꿈의 살현을 위해 전 생애를 희생해온 쉴리만으로부터 이 시점에서 지나치게 양심적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심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진귀한 황금의 보고를 유럽의 학문을 위해 보존할 결심이었다.


(P. 51) 쉴리만은 그가 ‘프리암의 보물’을 발견했을때 그의 일생의 정점에 달했다고 느꼈다, 이렇듯 눈부신 성공이 그에게 또 있을 수 있을까?   


5. 쉴리만(2) : 아가멤논의 마스크

(P.52) 어떤 사람들의 일생은 엄청난 성공의 연속이어서 믿기 어려울 정도인 경우도 있다. 이것은 쉴리만 일생에 있어서 특별히 잘 나타난다. 그의 공적들은 철저하게 전설적이다. 그의 고고학적인 설공은 세 번 정점에 달하는데 첫 번째가 ‘프리암의 보물’의 발견이었고, 두 번째는 마케네의 왕묘의 발굴이었다


(P. 54) 쉴리만은 호머에 의존해서 트로이를 찾았었다. 이번에는 이전의 고고학자들이 부정확하게 해석하고 잘못이해했다고 주장하면서 포사나이스의 몇몇 구절들을 그의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

쉴리만은 무덤들이 성안에 있었던 것이 틀림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학적인 사고보다는 고대인의 기록을 더 중히 여겼으며 이미 이라한 의견을 그의 저서 ‘이타카’에서 발표했다. 그의 의견대로 너무 심사숙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했다.

그는 계속해서 팠고 곧 그가 파야할 곳을 팠다는 것이 다시 입증되었다.


(P. 56) 후손들에 의해 전설의 세계로 사라져버린 트로이성 앞에서 싸우다 전사한 영웅들의 해골이 하나하나 계속해서 나타났다. 장구한 시간에 의해 부식되었으나 텅빈 동공과 패여진 코와 마지막의 어처구니 없는 일을 기억이나 하는 듯이 소름끼치는 웃음으로 뒤틀린 입등 아직 알아볼 수 있는 얼굴들을 들여다 볼 때의 쉴리만의 심정을 우리는 상상만 할수 있을 뿐이다. 어떤 뼈에는 아직도 살이 붙어있었다.


(P. 57)쉴리만은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기는 했지만 거만하거나 남의 일을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 동안 왕이나 대신들과 전문을 주고 받을 때에도 그는 사소한 일에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고 신뢰하고 있는 사람에게 부당한 일이 가해졌을 때는 몹시 화를 내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6. 쉴리만(3) :  학자들과의 갈등

(P. 60) 그때는 (지금도 그렇지만) 어느 분야에서든지 선구자는 일반대중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집중 공격을 당하는 위치에 있었다.


(P. 62) 문외한의 성공에 대한 전문가의 불신은 천재에 대한 범인의 불신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미확인된 오솔길로 다니는(마르틴 루터의 표현을 빌면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는“ ) 사람을 은근히 경멸한다. 그리고 이 세상엔 범인들이 대부분이고 권좌 또한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학문의 역사를 통틀어 살펴보면 위대한 발견의 꽤 많은 수는 강박관념에 쫒긴 독학자들. 즉 직업적인 훈련이라는 제동장치도, 전문가들이 지닌 신호등도 없어서 전통적인 학문에 의해 생긴 장애물들을 쉽사리 뛰어 넘을 수 있는 예술 애호가들, 아마츄어들, 문외한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P. 63) 17세기 독일의 위대한 물리학자인 오토 폰 퀘리케는 직업적인 법학자였다. 18세기 증기기관의 발전에 선구자 였던 데니스 파핀은 의사였다. 비누제조업자의 아들이었던 벤자민 플랭클린은 대학 교육은 말할나위 없이 중등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위대한 정치가 일뿐아니라 저명한 과학자이기도 했다. 전기의 발견자인 루이지 갈바니도 의사였는데 빌헬름 오스트발트가 그의 잔기 화학사에서 밝힌 것에 의하면 그 분야에 대한 그의 지식의 결여 때문에 전기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스펙트럼에 관한 뛰어난 저서들의 저자인 요셉폰 프라운호퍼는 14살 될 때까지 읽지도 쓰지도 못했었다. 미카엘  파라데이는 대장장이 아들이었는데 제본업자의 견습공이었고 거의 독학으로 공부했다.

에너지 보존 법칙을 발견한 쥴리어스 로버트 메이어는 물리학자가 아니라 의사였다. 또다른 의사 헤르만 L. F. 폰 헬름흘츠는 26세때 같은 주제에 대한 첫 번째 책을 출판했다. 최초의 전신기를 설치했던 사람은 해부학 교수인 토머스 죄머링이었다. 사무엘 모르스와 루이스 다케르는 화가였는데 전자는 무선부호를 창안했고 후자는 사진을 발명했다. 비행선을 처음 만든 제페린, 그로스, 파르세발 등은 군장교들이었는데 기술적인 훈련을 받은 일이 없었다. 이런 명단은 끝이 없다. 만일 이 사람들과 그의 업적을 학문의 발전과정에서 삭제한다면 전체 구조가 붕괴되고 말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모두 그 시대에는 전문가들의 결멸과 조소를 당해야만 했었다.


고고학도 그 보조 학문과 함께 그러한 비전문가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 산스크리트어를 최초로 훌륭하게 번역해 냈던 윌리엄 존스는 동양학자가 아니라 뱅갈의 대 사법관이었다, 최초로 설형문자를 해독했던 그로테펜트는 고전 문헌학자였고, 그를 계승한 롤린슨은 군장교이며 정치적 지도자였다. 의사였던 토머스 영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하기 위한 긴여로의 첫발자국을 디딘 사람이었다. 이 작업을 완수한 상뿔리옹은 역사 교수 였다. 페르가몬을 발국한 후만은 철도 기술자였다.

만일 전문가들이 그러한 업적을 이루었다면 아무도 그 가치 여부에 대해서는 논쟁하러 들이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방법에 있어서 흠잡을데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라고 말했을때 우리는 이들 ‘문외한들’에게 특별히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P.64) 쉴리만이 초기 발굴 과정에서 중대한 실수를 몇 번 범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보존되어야할 고대의 건물들을 철거했고,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었을 벽들을 파괴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의 위대한  역사가 에드워드 마이어는 이렇게 말했다.
쉴리만이 그이 유적에서 맨 아래층으로 곧장 갔던 비조직적인 방법이 학문을 위해서는 아주 효과적인 것이었다. 좀더 조직적인 방법으로 발국했더라면 그 언덕안에 묻혀있는 더 오래된 층들은 뚫지 못하여 우리가 현재 트로이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초기의 해석들과 연대 추정들이 거의 다 잘못되었다는 것은 물론 불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콜럼부스가 미국을 발견했을 때 그는 인도제국을 빌견한 줄 알았었다. 그러나 그의 실수가 실제 업적의 가치를 적게 하지는 않은 것 같다.        


7. 쉴리만(4) : 미케네, 티린스 및 크레테

(P. 69) 죽기 1년전에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위대한 작업으로 나의 생애를 마감하고 싶다. 즉 내가 3년전에 발견했다고 믿고 있는 크레테 섬에 있는 고대 선사 시대의 크로노스 왕국을 발굴하는 것이다”


8. 에반스 : 크레테와 미노타우어

(P. 71) 에반스는 쉴리만과 정반대 되는 사람이었다.

........쉴리만처럼 에반스도 매장되어 있는 문화를 찾는데 옛날 전설과 민속을 따랐다.


제2부 : 피라미드들에 관한 장: 이집트의 제국

(P 83) 화강암으로 피라미드를 세우게 하고 그안에 거대한 공간마저 만들고 온갖 재주를 부려 아름답게 치장을 하였으나..... 그들의 제단은 뚝을쌓다 죽어간 자들의 애도해줄 이 없는 제단과 마찬가지로 비어있도다.

                      고대 이집트의 잠언 


9. 나폴레옹: 파로오의 땅에서

(P. 85) 나폴레옹 1세와 비방 드농은 이집트에서 고고학적인 발견을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황제와 남작, 장군과 화가 그들은 짧은 거리를 같이 여행했고 서로 잘 알았지만 천성적으로 공통적인 것은 없었다.

1797년 10월 17일 캄포 포르미오 평화조약이 조인되어 이태리 원정은 끝나고 나폴레옹은 파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폴레옹의 영웅 시잘은 끝났다!”고 스땅달은 말했다. 그러나 그는 틀렸었다, 사실은 코로시카 영웅으로서의 면보가 막 나타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을 휩쓸기잔에 그는 ‘비정상적인 두뇌에서 나온 터무니 없는 계획’을 채택했다, 야망으로 초췌해진 나폴레옹은 내심으로 자신을 알렉산더와 비교하며 한편으로는 아직도 이루어야 ㅡ할 무한한 과제에 절망을 느끼면서 좁은 방을 침착하지 못하게 왔다 갔다 하다가 이렇게 썼다.

‘파리가 납으로 된 외투처럼 나를 내리누르는구나! 우리의 이유럽은 두더지가 파놓은 흙더니일뿐이다. 6억 인구가 사는 동방에서만 위대한 제국을 세우고 위대한 혁명을 맛볼수가 있다.“


(P,87) 대화에서 악의와 농담과 재치가 번뜩이고 드농은 모든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든 사이좋게 지내고야 말았다,
(P. 89-90) 마침내 그는 상형문자로 써 놓은 것들을 보게 되었다. 그는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고 드제의 부대에는 그의 호기심을 풀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개의치 않고 그가 본 것을 그렸다. 그리고 곧 교육은 안 받았어도 예리한 그의 시선은 세 개의 다른 상형문자의 모양을 구별해 냈다. 즉 상형문자들은 깊이 새겨있거나 얕게 새겨있거나 또는 휑하니 뚫여있거나 했다.

그는 지치지도 않고 백개의 문이있는 테라스의 광활한 폐허들 사이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가 모든 것을 크레용으로 그리기도 전에 막사를 철수하라는 명령이 왔을 때 그는 절망했다. .............그는 막사를 운반하는 선봉이 움직이기 시작했을때도 스케치를 계속했다.


(P. 94) 그림자도 없는 황무지에 피라미드가 고개를 들고 서 있었다. 그들 중의 예순일곱개는 카이로 주위의 비어있는 땅에 서있었는데 왕들의 거대한 묘지인 ‘태양의 연병장’주위에 줄지어 있다. 그것들을 하나 건설하는 데에만도 2백 5십만개의 돌덩어리가 필요했고, 그곳으로 옮기는데에는 10만명의 노예가 20년동안 계속해서 일을 해야 했다.


(P. 94-95) "이집트인의 생활은 죽음을 향한 여행이었다"는 말이 있어 왔다. 이집트의 벽화에서 목적론적인 원칙이 얼마나 강조되었든지 현대의 어떤 문화 철학자는 이집트의 근본적인 상징을 깊은 의미에서의 유럽의 ‘공간’이나 그리스의 ‘육체’와 마찬가지인  ‘길’이라고 지적했다.


(P. 95) 이집트인은 고대의 다른 어떤 종족들보다도 쓰기를 좋아했던 것 같이 보인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에드푸에 있는 사원의 비명을 베끼기 시작해서 아침부터 밤까지 썼다면 20년이 걸려도 다 끝마치지 못할 것이다!”

죠르마는 이대단한 세계를 재빨리 유럽에 소개시켜서 학문의 위력과 과거의 놀라움을 깨닫게 해주었다. 


10. 상뽈리옹(1) : 로제타 석의 신비

(P. 98) 유명한 골상학자인 프란쯔 요셉 갈 박사가 두상으로 성격을 알아내는 그의 이론을 대중화시키기 위해 프랑스를 여행하고 있을때 -그 일정동안 그는 경이와 조소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명예를 얻기도 하고 중상을 당하기도 했는데- 파리에 있는 어떤 집에서 한 젊은 학생을 소개받았다. 그 학생은 곧 그의 관심을  끌었다. 길박사의 직업적인 눈은 그 젊은 학생의 머리에 가 닿았다, 그는 그 생김을 보고 깜짝놀랐다, “아, 어학의 천재로군!”그는외쳤다. 그 골상학 박사가 알고 있었건 모르고 있었건 간에 이 16세 소년은 이미 라틴어와 희랍어는 물론 여섯 개의 동양언어까지도 숙달하고 있었다.

19세기 쓰여진 아주 상상력이 풍부한 그의 전기에 기록된 쌍뽈리옹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는 기상천외한 것이다.

(P. 99) 1790년 12월 23일 새벽 2시에  쟝 프랑소와 샹뽈리옹은 태어났다. 그는 상형문자를 해독할 운명을 지닌 아기였다.  

(P. 100) 쉴리만은 일생동안 독학자였다. 그러나 샹폴리옹은 그의 머리가 너무나 빨리 발달하여 일찍이 동급생들을 뒤로 처지게 만들기는 했지만 교육면에서는 정통의 길을 몇발자국도 벗어난 일이 없었다. 쉴리만은 기술적인 지식이 전혀 없이 일을 시작했지만 샹뽈리옹은 그 시대의 모든 지식을 다 가지고 있었다.

그의 형이 그의 교육을 관장했다. 그는 소년의 지나친 지식욕을 억제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샹뽈리옹은 학문의 처녀림 속에서 종횡무진으로 최고봉만을 헤집고 다녔다. 열두실 때 그의 첫작품인 ‘명견들의 역사’를 썼다.

(P. 101) 13세때에 그는 아랍어와 시리아어와 칼데아어와 마침내 콥트어까지 배우기 시작했다, 이런 면에서 그가 배우고 행동하고 실제로 그가 부딪치게 된 모든 일들이 어떻게든 이집트와 관계되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가 그의 마음을 어디로 돌리든지간에 그는 무의식적으로 어떤 이집트에 관한 문제로 끌려가는 것 같았다.


(P. 101) 상뽈리옹은 그가 손댈수 있는 모든 자료를 이용하여 17세 되던 해 1807년 여름에 처음으로 파라오 왕국의 역사의 도표를 만들었다.

이 대담한 시도는 그에게 성경에 관련된 것들과 잘못 전해진 라틴어와 히브리어 원문과 또 고대 에집트어와 유일한 관련을 지닌 콥트어와 비교함으로써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그 진가를 인정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상뽈리옹은 파리로 옮겨 공부하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리세(18세기 파리에 개설된 학원) 당국은 그에게 마음대로 주제를 선택하여 논문을 쓰도록 했다. 그들은 그가 보통학생들이 쓰는것 같은 논문을 쓰리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훨씬더 나아가 ‘파라오 지배하의 이집트’라는 책한권의 개요를 기술했다.

1807년 9월 1일 그는 이 계획된 작품의 개요를 발표했다. 그레노블에 있는 리세의 교수들 전원이 이 연약한 소년의 발표를 듣기 위해 모였다. 그는 아주 긴장해서 진지란 태도로 그들 앞에 섰다, 그의 얼굴은 천재들이 갖는 열에 들뜬 아름다움으로 빛났다. 그의 생각은 확고한 논리로 대담한 명제들을 계속하여 펼쳐져 나갔다. 교수들은 너무나 압도되어서 그 자리에서 그 소년을 교수가 되도록 결정했다.

(P. 102) 로놀동 총장은 일어서서 상뽈리옹을 포옹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너를 교수로 뽑은 것은 지금까지의 너의 업적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앞으로 네가 할 일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네가 우리의 기대를 만족시키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네가 이름을 날리게 되면 너의 천재성을 처음으로 인정해준 우리를 잊지말아라! ” 그래서 상뽈리옹은 하루밤 사이에 생도에서 교수로 승격했다.

리세 건물을 나오다가 상뽈리옹은 실신했다. 그때 그는 감수성이 아주 예민한 젊은이였고 감상에도 젖기 쉬운 격렬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미 그는 많은 것에서 천제로 인정받았고 그의 빠른 지적 성장은 잘 알려졌다.


(P. 104) 이집트 기록의 비밀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사실상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관점의 변화가 죽 관습의 굴레를 깨뜨릴 영감이 필요했다.


(P. 105) 그의 천성은 강제에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그는 엄격한 지적 훈련은 받을수 있으면서도 각 개인의 개성을 획일화하는 훈련의 전형인 군위병 대대가 행진하는 것을 보면 몸서리쳤다.       


(P. 107) 꿈속에서 그는 매일 매일 혼잡과 산만함에서 자유로워져 있었으며 그이 참존재는 무엇에 호리거나 광기에 사로잡힌것처럼, 상형문자의 마법에 걸린 사람으로서 qs명하게 서 있었다. 그의 꿈은 승리릐 암시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그가 목표를 이루기까지 아직도 12년이나 남아 있었다,



11. 상뽈리옹(2) : 반역과 상형문자

(P. 109) "너희 밭을 갈아라", 젠드-아베스타(조로아스터교)에 이런말이 있습니다. “스물네번의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불모의 땅 6에이커를 옥토로 만드는 편이 낫다”

(P. 115) 위대한 지적 발견들이 알맞게 적당한 때에 이루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것들은 한가지 문제를 다루느라고 정신을 단련하는 긴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발견들을 통해 얻어진 결과이다. 그것들은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의 교차 그리고 계획적인 관찰과 모험적인 꿈의 교차를 나타낸다, 단번에 해결을 보게 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또 위대한 발견들은 역사적 배경을 비추어 보게 될 경우 많은 빛일 잃게 된다.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볼때, 그 원리를 이미 이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실수는 어리석은 일 같고, 잘못된 개념은 청저한 무분별의 결과인 것 같으며, 문제는 간단해 보이기 쉽다.

(P. 116) 상뽈리옹은 열두개도 넘는 고대의 언어에 통달해 있었다,

(P. 117) 어떤 위대한 생각도 후에 생각하면 단순한 것이다.

(P. 120) 상뽈리옹은 하나의 유적에서 다음의 유적으로 다니면서 곳곳에서 자신의 생각이 확인되는 것을 보았다.

(P. 123) 그가 그때 직접본 모든 것들은 그가 이미 깨달았던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의 비범한 통찰력은 박식하기는 하나 이해가 빠르지 못한 그의 동료들을 놀라게 했다.

(P. 125) 상뽈리옹은 이집트 문자의 수수께끼를 풀었다. 긴 여정이 이제 시작될수 있었다.    


12. 벨조니, 렙시우스, 미리에트: 고대 이집트의 생활

(P. 126) 상뽈리옹이 상형문자를 해독한 후 수십년동안 이집트학상의 위대한 발견들은 다음 네사람들과 관련이 되어있다. 즉 수집가인 이태리인 벨조니와 목록 편집인인 독일인 랩시우스와 보존자인 프랑스인 마리에뜨와 측량하고 해석한 영국인 페트리가 그들이다

(P. 137) 모든 발견에 우연이란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리에뜨는 결코 유물을 처음 본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틀림없이 처음으로 그것과 카이로나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것들과의 유사점을 깨달은 사람이었다.


13. 페트리 : 아메네메트의 무덤

(P. 144) 고고학자들 중 상당수가 천재였음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쉴리만은 상점의 견습공 시절에 6개국어를 했다. 상뽈리옹은 12세에 정치적인 문제들에 관해 지적인 토론을 할 수 있었고, C. J. 리치는 9세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19세기 이집트학의 기초를 세운 네 명의 위대한 사람들 중 마지막 사람으로 측량가이며 해석가였던 윌리암 매튜 플린터스 페트리도 또한 조숙한 소년이었다. 그는 10세때 벌써 이집트의 발굴에 보통이상의 흥미를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어린나이에 그는 일생동안 지켜아갈 지침을 세웠다, 즉 학문에 대한 존경과 의욕을 항상 가져야 한다는 것과, 이집트 땅은 그곳에 무엇이 숨겨져있는지 보기 위해서뿐 아니라 그것들이 그 옛날 땅속에 묻히기 전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도 문자 그대로 한알 한알 긁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P. 114)  페트리가 학문적으로 출판한 저술의 수는 90권에 달한다.

(P. 149) 피라미드의 의미는 이집트의 신앙으로서만 이해될수 있다. 피라미드를 세우려는 충동은 육체가 죽은 후에도 영혼은 존재한다는 이집트의 근본적인 신앙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현세의 땅이나 하늘과는 별도의 장소에 내세인 미래가 있다.

(P. 149)죽은 왕에게 영원한 안식과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강제노역을 당한 수천명의 생명이 희생되었다. 자신의 무덤을 세우느라 10년, 15년, 20년을 보낸 한 파라오는 이집트사람들의 진을 빼놓았고 엄청난 빚을 그의 자녀와 그자녀의 자녀들에게까지 물려주었다. 죽은후에까지도 그는 계속해서 왕국의 재정을 약화시켰다.

(P. 150) 왜냐하면 그의 ‘카’는 주기적인 제물과 많은 제사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P. 150) 신앙의 힘은 어떤 정치적이나 도덕적인 문제보다 우선했다.

(P. 151) 형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문화는 발생과 멸망에 있어서 유사점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한번 문화적인 감각이 일깨워지면 하늘을 찌를듯한 기념물들을 세우는 경향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P. 151) 피라미드는 순전히 근육의 힘만으로 만 세워졌다. 모카탐산에 있는 채석작에서 돌에 구멍을 뚫었고 나무막대기를 돌에 박았고, 물에 적셔져서 부푼 막대기가 바위를 깨뜨렸다.

(P. 153) 그리고 불확실한 점이 있는 곳에는 논리적인 가설이라는 형태로나 제멋대로의 추론이라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추측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가성ㄹ은 어느 학문에서나 연구 방법에 속하며 확정된 결과로부터 나오는 합리적인 사고의 형태이다, 그것은 많은 가능성을 찾지만 그뒤에 있는 의문부호를 없애려 하지는 않는다. 그반면에 순수힌 추론은 한계를 모른다. 이러한 추론의 전제들은 시험도 해보지 않고 희망적인 성격을 띈다.  


14. 왕들의 계곡의 도전들

15. 미이라

(P. 169) 왕들의 계곡은 역사도 없는 지옥의 변방으로 어둠속에 가리어졌다,

          왕들의 계곡은 황량하다...............

 “장엄과 왕의 긍지가 초라한 빈곤으로 바뀌었다. 왕의 값비싼 거주지가 은둔지의 오두막집으로 좁혀졌다. ”

(P. 176) 미이라를 뜻하는 'mummy'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이것은 12세기 아라비아의 여행가인 압드 에-라티프가 mummies가 약용으로 싸게 팔리고 있다는 것을조사한데도 나타나 있다. mumiya 또는 mumiycai는 압드 엘-라프티에 의하면 역청또는 ‘유태인의 송진’을 뜻하는 아라비아어의 단어이다.

(P. 179-180) 학자로서 브룩쉬는 보물의 발굴보다 더 감명을 주는 어떤것을 보았다, 기선이 나일강을 천천히 미끄러져 갈 때 그가 본 장면은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아직 감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P. 180) 남자들은 죽은 파라오들에게 경의를 표하여 소총을 쏘았고, 여자들은 얼굴과 몸에 흙과 진흙을 칠하고 가슴에 모래를 문질렀다. 기선이 가는대로 멀리서 애도하는 물음소리가 따랐다. 그것은 기이한 행렬이었으며 그 슬픔의 표현은 자연스러웠고, 기삭이 없었으며 깊은 감동을 주었다. 


16. 카터 : 루텐카렌의 무덤

(P. 188) 삽질의 속도가 빨라졌고 카터의 흥분은 시간이 흐를수록 고조되어 갔다. 자갈더미를 헤칠때마다 계단이 하나하나 나타났고 이집트이 땅거미처럼 눈깜짝할 사이에 열두번째 계단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차단되어지고 회칠되어지고 봉인되어진 출입구의 상단이 빼꼼히 드러났다, 닫힌 문이라니-정말로 진자배기이다! 발굴자에게는 떨리는 순간이었다! 카터는 봉인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왕릉의 봉인이었다.  


17. 카터 : 파로오의 저주

(P. 204) ... 그러나 우리의 순수한 마음을 가정 깊게 감동시킨 것은 초상의 이마께에 놓여진 한 묶음의 화한이었다. 그것은 청상과부가 된 어린나이 왕비가 남편에게 바치는 마지막 작별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그 화환은 3000년의 세월이 진실로 얼마나 짧은 순간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렇다. 어제와 오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실로 자연의 아련한 자태가 고대와 우리의 현대문명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는 것이다,

(P. 204) 카터는 이러한 경건한 마음을 진실로 가졌었나보다, 학문을 하는 사람 역시 영혼의 솔직한 고백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옆에서 보기 흐믓한 일이라 하겠다.


(P. 206) 6년 이라는 준비기간 끝에 투탄카멘의 시신이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카터는 말했다, “그러한 경우 우리의 감정은 매우 복잡하고 혼돈에 휩싸여 언어를 잃게된다!”

(P. 209) 그러나 투탄카멘 묘의 발굴에는 관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또 다른 일면이 있었다. 즉 ‘파라오의 저주’가 그것이다. 유명한 무덤의 발굴과 한때나마 일지라도 관련을 맺었던 스무명 남짓한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수수께끼 같은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P. 212) “어떤 점에 있어 우리의 도덕적 발전의 수준은 점잖은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믿는 것보담 훨씬 덜한것 같다“고 까지 말하였다.


제3부 : 탑들에 관한 장 :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및 수메리아의 왕국

18. 보타 : 니느베를 발견하다

(P. 223) 이와같이 반복된 헛수고를 꾸준히 해낸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우리들은 상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미래의 발굴자에게 어떤 뚜렸한 동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이 구릉에는 발굴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쫒겨서 .............



19. 그로테펜트 : 설형문자의 해독

(P. 264) 설형문자의 해독은 참으로 천재적인 작업이랄수 있었다,

그것은 인간두뇌의 가장 뛰어난 업적의 하나로 손꼽히는 것이며, 인간 정신이 성취한 위대한 과학적 창안과도 대등한 가치를 갖는 것이었다.

(P. 267) 천재란  무엇보다도 착잡하게 얽히고 설킨것을 평이하게 만들고 내부의 구성원리를 알아내는 재능의 소유자를 말한다. 그로테펜트의 영감은 놀랄 정도로 단순한 것이었다.



20. 콜린슨 : 느브갓에잘의 점토판 사전

21. 레이아드 :호사가 피샤의 허를 찌르다


22. 죠지 스미스 : 홍수 이야기

(P. 307) 너희는 자신들을 잘 볼지어다. 그리하면 인간들이란 모두가 멍청한 바보들임을 잘 알것이니라. 과거 현재 즉 역사 속에서 반복하여 일어나는 일들을 비교해 보면 그말이 참되다는것을 알 수 있을것이다.


23. 콜데봐이 : 바벨의 힘

(P. 322) 바빌론은 당시에는 어떤 공격 수단으로도 감히 함락시킬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였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바빌론이 함락당한 것은 어쩔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에대한 설명은 오직 한가지 뿐이라 하겠으니 그것은 적이 외부로부터 침입해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적들은 호시 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었고, 바빌론시의 내정은 끊임없이 혼란에 빠져있었다. 이리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요새는 결국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다. 콜데봐이는 느브갓네잘의 바빌론을 발굴했다.

(P. 326) 그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벽돌을 빚어 불에 단단히 구워 내자’ 이리하여 사람들은 돌대신 벽돌을 쓰고 흙대신에 역청을 쓰게 되었다. 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ㅇ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의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짖 않도록 하자” 

(P. 326) 콜데봐이가 실제로 발굴한 것은 이탑의 거대한 기초에 뷸과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 탑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그 예날 존재했었다.

(P. 327) 바벨탑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기울어지고 낡아버리자 우리 주말둑께서는 나에게 명령하시길 탑을 다시 지으라고 하셨다. 그는 탑의 기저를 땅속 끝 중심부에 공히 다져놓고 하늘끝까지 쌓아올리라고 하셨다.

(P. 328) 구약성서의 유태인들이 인간의 오만의 표징으로 todr가했던 이 탑의 거대한 건조물은 장엄한 제사관들의 궁전들과 넓은 창고 그리고 수없이 많은 희한한 공간들- 흰벽돌에다 청동의 문을 달고 눈은 현관과 1천여개의 탑을 지닌 위협적인 방벽들-에 둘러싸여 위대함, 권력, 풍성함 등과 같은 압도적인 인상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와 흡사한 인상은 관대한 바빌로니아 제국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P. 328) 바빌로니아의 대도시는 모두 지구라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것도 ‘바벨탑’에 필적하지 못한다. 8500만개의 벽돌이 그 건축에 사용되었으며 탑은 거대하게 우뚝솟아 주위의 경관을 압도하고 있었다.

바벨탑도 역시 노예들이 세운 것이다. 여기서도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조에서와 마찬가지로 채찍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근본적인 다른 한가지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즉 피라미드는 한사람의 지배자가 그의 짧은 인생중에 그 자신만을 위하여 건조했던 것이나 계단식탑은 수세대의 지배자가 세운것이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무너지거나 도굴당하여 파괴 약탈당해도 그것을 재건하거나 또는 새로운 보물로 채우고자 아무도 손하나 까딱 하지 않았으나 바빌로니아 지구라트는 붕과되고 몇 번씩 파괴되어도 다시 재건되고 새롭게 치장되곤 하였다.

왜냐하면 지구라트의 건설에 관계한 지배자들은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인을 위해서 참여했기 때문이다. 지구라트는 민족의 성역으로서 신들중의 신인 말둑에게 경배드리기 위한 수천 수만의 순례자들의 행렬이 집결되는 곳이었다.    


(P. 333) 다시한번 성서의 진실이 전설의 베일속에서 나타났다. 예어자 다니엘이 바벨의 사자울에서 야훼에 의해 기적처럼 구조되었을때 그는 미래의 수천년동안 지켜주실 자신의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하여 용이 얼마나 무력한가 하는것을 증명했던 것이다.  


24. 올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

(P. 335) 우리들 대부분은 포유동물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시간의 흐름속에서 이 유산을 지니고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P.338) 천문학의 위대한 승리중의 하나는 인류가 본적도 없고, 또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특정 유성이 미리계산해낸 일정한 궤도를 따라 일정시각에 일정 위치에 나타나게 되는것을 미리 예측했다

(P. 338) 인류학 분야에서도 같은 경우가 있었다, 핵켈은 순수 이론학상으로 유인원과 인간의 중간형을 설정하여 피테칸트로푸스라고 붙였고 이 잃어버린 고리인 피테칸트로푸스는 실제로 1892년 자바섬에서 유젠느 뒤브와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헥켈이 그려낸 상상도와 세부적인 면에서 매우 흡사하다.

(P. 349) 즉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최대의 희생, 다시 말해서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바친것이다. 여기서 울리는 의식절처에 따라 행해진  인신공양을 보게 된것이다, 사제들은 이러한 의식을 행함으로 해서 왕의 신성을 확인해 보여 주고자 했었나 보다,     


제4부 : 신전들에 관한 장

25. 코르테스(1) :목테즈마의 보물

26. 코르테즈(2) : 목이 잘린 문화

(P. 373) 십자가의 깃발아래서 스페인인들은 진군을 계속하였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에스피리뚜 산또!’하며 성령에 의지하기만 하면 만사형통하였다. 그리고 일단 자리를 잡으면 먼저 십자가를 이어서 성당을 세웠다. 사제들은 전투전에는 언제나 고해성사를 베풀고 전투가끝나면 감사의 미사를 울렸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기는 했지만 그들은 아즈테크인을 개종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P. 381) 기적적으로 전세는 뒤바뀌었다. 이 백인 약탈자 손에 전승의 깃발이 쥐어져 있는것을 본 아즈텤인들은 코르테스가 그들의 신보다도 힘세보였으며 그리하여 너나 할것 없이 허둥대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헤르난도 코르테스가 아즈텍 기를 뺏는 순간 멕시코는 사라졌고 최후의 목테즈마 왕국은 멸망했다,


27. 죤 로이드 스티븐슨 : 장글의 도시를 사다

28. 간주곡

(P. 407) 문화생성의 보다 넓은 조건으로서 농경과 가축의 그 사육능력이 거론되기 마련이다, 마야족은 농경문화를 지녔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그들이 문화는 독특한 양상을 띄고 있다.

마야 문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한 가축이나 운반용 동물 그리고 어떠한 종류의 마차나 수레도 갖지 않은 유일한 문화였다.

29. 버려진 마야인 도시들의 비밀

(P. 420) 마야의 과거, 다시 말해서 마야 역사의 신제국에 대한 이렇듯 새로운 고찰들은 학자들에게 커다란 자극제가 되어 주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칠람 팔람의 책들’속에 연대순으로 정돈되어 기록되어 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역사적 사실들이 정 반 합이라는 실제적인 관계속에서 재 정돈되기까지는 수많은 학자들이 피땀어린 연구가 있음으로 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P. 424) 마야인 집단체는 자기 중심적으로  향하는 제국주의였다. 팔다리로부터 시작해서 심장으로 향하는 성장과정인 것이다, 그것은 사실상의 성장이었고 또 ‘확장’이었다. 이제국은 주위에 그들보다 우세한 세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아무런 압력도 받지 않았다.

30. 에드와드 허버트 톰슨 : 지첸-이챠와 성스러운 연못

31. 아즈테크, 마야 및 톨테크 : 그들은 어디서 왔는가?


제5부 : 아직도 다 쓰지 못한 장

인간으로서의 겸양을 배우고자 할진데 굳이 하늘의 별을 쳐다볼 필요는 없다. 우리보다 수천년 앞서 존재했으며 위대했던, 그러나 이미 사라져 없어진 수많은 문화세계로 눈을 돌리면 족한것이다.


32. 오랜 제국에서의 새로운 연구

(P. 460)여기서 ‘아직도 다스지 못한장’에 대해서 기술하는 이유는 발전된 규모에 있어서 우리가 이미 탐사한 문화들보다 결코 뒤지지 않는 고도한 세 개의 문화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들 세 개의 문화는 히타이트 문화, 인더스문화, 잉카문화이다.

(P. 461) 설사 우리가 이 책 4부에 또다시 3부를 더 추가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모든 고도의 수준에 달한 문화를 상세하게 기술했다고는 결단코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시대의 일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독교적 유럽 유산을 제외하고는 그리스-로마 문화만이 우리의 생생한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왔다.   

(P. 468) 이제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지금 이시간에도 땅을 파내는 작업은 온세계 도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백년 앞을 내다보기 위해서 우리는 지나간 5000년의 역사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어느 출판사의 서평에서 이 책『낭만적인 고고학 산책』을  <인디아나 존스>보다 더 흥미진진한 고고학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나는 불행히도 이 책을 안경숙씨가 번역한 평단문화사의 1984년판으로 읽었다. 내가 읽은 이 책은 최근에 번역한 양장 컬러본과는 달리 흑백으로만 구성되었고  인명과 고유명사 외래어 표기법등에서 오역이 있어 보이는 오래되어 누렇게 바래 버린 정말 읽기 싫어지는 책이었다. 흥미롭게 시작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재미없어 보이는 책은 일어갈수록 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새로 번역된 컬러본으로 읽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숱한 삽화가 컬러였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이고 더 이해가 쉬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놀드 토인비는 이 책을 “현대 서구 문명이 이룬 가장 큰 업적에 대한 아주 매혹적인 보고서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 역사학자인 저자 C. W. 체람은 인간이 남긴 유적, 유물을 통해 과거의 문화와 역사를 너무나 소설처럼 재미있게 쓴 것 같다. 재미없고 읽기 싫어지는 오래된 누런 책 속에서도 그런 흥미를 끌 수 있는 것을 보면 잘 구성되고 잘 번역된 최근의 책으로 본다면 감동이 더 컷을 것 같다. 


고고학 전공자도 아닌 저자는 우리가 배운 4대 문명 발상지가 아닌 그리스와 로마 문명, 이집트 문명, 바빌로니아 문명, 아즈텍 문명의 4대 문명을 기점으로 고고학의 모험을 소설보다도 재미있게 저술했다.  황하와 인더스 문명을 제외한 것으로 봐서 아마 현대 서구 문명이 이룬 업적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듯하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 조상들에 관한 장은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묻힌 폼페이와 트로이, 미케네, 크레테를 통해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이야기한다. 피라미드들에 관한 장인 제2부에서는 나폴레옹 원정에서부터 시작하여 로제타석을 신비를 푼 상형문자 해석 대가 상뽈리옹, 미라와 피라미드 발굴을 통한 이집트 문명을 이야기한다. 탑들에 관한 장이라는 제3부에서는 니느베, 느브갓네잘의 점토판, 홍수이야기, 바벨탑등 성경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되면서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문명을 이야기한다. 신전들에 관한 장이라는 제4부에서는 아즈텍, 마야 문명을 이야기한다. 아직도 다스지 못한 장이라고 부제를 단 마지막 제5부는 앞에서 언급한 이야기 이외의 새로운 발굴 기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상당히 재미있게 썼다. 저자는 이 책에서 수 많은 영웅을 등장시키는데 전설과 신화로 여겨지고 있던 트로이를 발굴한 슐리만, 로제타석을 보고 이집트 상형문자를 최초로 해독한 언어천재 상뽈리옹, 더 이상 발굴할 것이 남지 않았을  듯 여겨졌던 이집트에서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한 카터, 느브갓네살의 점토판 사전을 찾은 롤린슨, 바벨탑의 콜데바이, 정글도시를 산 존 로이드 스티븐스 등등 이 책에는 수 많은 영웅이 등장한다.

 그리고 저자가 소개한 고고학자와 발굴자 외에도 곳곳에서 저자는 놀라운 업적을 이룬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P.63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영웅을 등장시키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문외한으로서 자기 분야이외에 업적을 이룬자들이다. 그들은 한계를 몰랐고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았고 훈련도 되어 있질 않았다. 그랬기에 그들은 자신의 잠재력의 한계를 정하지 않았고 그 결과 엄청난 업적을 이룬자들이었다. 저자 C. W.체람은 왜 그들을 소개 하는데 그리 긴 설명을 했을까? 그들이 고고학 분야에 업적을 이룬자들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저자가 이런 사례를 통해 자신이 고고학자가 아닌 것을 방어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고고학자가 아닌 저자가 논픽션을 픽션처럼 꾸며서 쓴 고고학 소설이야기.....

비평을 받을 소지가 있었을지 모르기에 저자는 애써서 자기 방어로 그 많은 비전문가, 문외한, 다른 분야의 학자가 자기 전공외에서 업적을 이룬 이야기를 소개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았어도 되었을텐데....

또한 저자는 서구 문명만을 소개하는 약간의 편협함을 보여주고 있다. 재미있었다. 그러나 조금 아쉬웠다. 왜 인더스와 황하문명을 소개하지 않았을까?

저자의 박식함과 상상력이었다면 2차 저술활동으로 동양문명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고고학 산책2를 탄생시켰을 텐데 말이다.


<내가 저자라면>

내가 저자였다면 이 책을 더 확대하여 세계4대 문명의 발상지부터 출발하여 발굴이야기를 썼을 것이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그 중심에 있다는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우선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수메르 문명, 이집트문명, 황하문명, 인더스 문명을 출발하고 이를 각 기점으로 세계에 산재해 있는 숱한 고고학적 유물들의 발굴이야기를 쓴다면 아마 그 작업은 평생이 걸릴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특정 문명, 특정 지역, 특정 인종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인류 전체의 역사와 인류가 진화해온 방향에 대한 조망을 하려면 이런 전일적인 관점에서 글을 써야할 것 같고 절름발이 지식이 아닌 온전한 지혜를 독자와 후손에게 줄 수 있을것 이기 때문에 나는 오래 걸리는 그 작업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자자의 다른 저서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비평을 하는게 상당히 위험하고 조심스럽지만 이 책 한권 만 읽은 나의 생각에는 저자가 조금 더 넓은 가슴을 지닌 저술가였다면 하는 아쉬움에서 쓰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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