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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3일 10시 17분 등록
 

신화의 힘


1. 저자소개

< 융합학문 학자로서의 조셉 캠벨 (Joseph Campbell) >


조셉 캠벨 (Joseph Campbell)에 대한 일차 조사는 ‘신화와 인생’ 리뷰 시에 개략적으로 하였기에
이번에는
학자로서의 조셉 캠벨을 살펴보고자 한다,


캠벨은 여러 학문과 다양한 종교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 그의 작품에는  방대한 종교배경과 비교종교학자로서의 흔적이 잘 드러나 있다. 원래는 부모님의 종교인 로마카톨릭 신앙에 영향을 받았고,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에도 관심이 있었으며 인도철학, 종교철학, 동양종교, 서양종교를 두루 섭렵하며 그는 비교종교학자로서의 이름값을 제대로 한 것 같다.

다트머스 대학에서 생물학과 수학을 전공한 후 컬럼비아 대학으로 옮겨서 중세 영문학으로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다고 하는데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공부한 것으로 봐서 기본 머리도 뛰어난 것 같고 다양한 학문을 넘 볼 만큼 지적 호기심과 열정도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미국이 좁다고 느꼈는지 유럽으로 건너가 파리 대학과 뮌헨 대학에서도 공부한 것으로 보아 그의 학문적 욕심도 알 수 있을 듯하다. 왜냐하면 현재는 세계가 미국중심으로 돌아가고 학문의 세계도 미국이 선두주자이지만 캠벨이 공부할 당시는 유럽이 학문의 요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유럽으로 건너갔다는 것은 그의 학문적 욕심을 조금 보여주는 단서가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유럽에서도 영국이 아닌 독일과 프랑스를 택했다는 것이 나를 또 놀라게 한다. 독어나 불어보다 영어를 쓰는게 편했을 텐데 영국이 아닌 프랑스와 독일을 선택한 것으로 봐서 그는 언어적 재능도 뛰어났을 것 같고 재능에 앞서 그의 열정이 한 가지 학문, 한 종류의 언어, 한 개의 타입의 방식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는 야생마 같은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이후 미국에 되돌아 와서도 원래의 석사 전공인 영문학 대신에 인도 철학과 미술공부를 하려고 하다가 박사학위 조차 취득하지 못한 채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하니 그의 천재성과 학문적 열정이 오히려 그에게 박사학위를 박탈하게 된 원인이라 여겨져 참 연구해 볼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이유로 캠벨은 생물학, 수학, 영문학, 중세문학, 비교종교학 등 다방면의 학문을 전공했고, 문화인류학, 생물학, 철학, 예술, 역사, 종교 책을 두루 섭렵했으며, 모국어인 영어뿐 아니라 독일어와 불어에 산크리스트어까지 구사했다고 한 것으로 알려진 것으로 보아 여러 개의 학문을 다양하게 섭렵하고 그들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융합학문을 추구하는 융합학자로서의 자질이 잘 드러나 보인다.


대부분의 학문마다 경계가 있고 그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생물학과 수학은 이학 근본이므로 통하는 데가 있겠으나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이 중세영문학으로 다시 학위를 딴다는 것은 그의 두뇌구조가 상당히 유연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가 인도철학에 종교학에 미술공부까지 시도한 것을 보면 진정한 학문적 흥미와 재능을 가진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화려한 그의 재능이 너무 부럽다.

그의 어학능력이 부럽고 학문의 경계를 아무 거리낌 없이 넘나드는 그의 뇌의 막강한 적응력이 부럽다.

그런 그가 자유롭기까지 했다는 것은 또 다른 충격이다.


원래 그의 전공인 비교종교학을 연구하는 동안 그는 힌두교와 불교 전통에 근거한 범신론 사상에 심취했고 그런 학문들로 인해 ‘신화’는 비교종교를 추구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규과정을 박차고 나와 칩거하면서 5년간 책만 읽으며 많은 지식을 책을 통해 섭렵하고, 방대한 분야를 넘나든 그가 결국 우리에게 ‘신화학’이라는 유산을 남겨주었고, 결국 신화종교학자, 비교신화학자로 불린다는 것은 ‘신화’와 ‘종교’에 대해 우리가 좀 더 깊은 고민을 해보아야 할 과제를 남겨준 것 같다.


그는 많은 책을 썼다. 그의 저서들을 보면 영웅과 신화에 대한 내용이 많은 것 같은데 특히 신화에 대해  많이 집필한 것 같다. 그는 왜 ‘신화’라는 주제로 그렇게 많은 신화 관련 책을 펴냈을까? 그렇게 많은 학문을 공부한 그가 마지막까지 놓지 않은 화두가 ‘신화’였다면 결국 ‘신화’ 속에 많은 학문의 핵심과 진리를 담을 수 있을 상징적인 무언가가 있었기에 캠벨이 그러한 것  같다.

캠벨은 ‘신화는 근본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신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신화가 말하는 의미, 다시 말해서 신화를 통해 캠벨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많은 학문을 두루 섭렵한 그가 우리에게 던져준 ‘신화’ 와 ‘신화학’

우리가 곰곰이 오래토록 고민해야할 주제인 것 같다.


캠벨은 자신의 말대로 그의 희열을 따라간 천복을 지닌 융합 학문을 연구한 학자로서 함께했던 사람들에게서 지혜롭다는 평을 받을 수 있었던 진정한 학자였던 것 같다.    

‘캠벨의 확신과 확신을 통한 평화는 곧 신화가 우리에게 안기는 희망일 것이라’는 이 책 역자 이윤기의 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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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초판 옮긴이의 말 -이윤기 서문


희망의 신화학


[P.7]<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는 세계의 신화가 지닌 주제에서 공통되는 요소를 찾아내고 이것을 분석하면서 신화와 종교에 관해 무수한 질문을 제기하던 그가,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뒤에 펴내는 이 <신화의 힘>에서는 바로 그 신화와 종교에서, 궁극적인 중심에 이르려는 인간 정신의 모습을 읽어내고는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휩쓸리면서 스스로를 구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캠벨의 자기 구원이 곧 우리의 자기 구원일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옵닏만, 캠벨이 그렇게 이르렀으니 우리도 그의 눈길과 용기와 깨달음을 길잡이 삼아 거기에 이르러야 하지 않을는지요.



빌모이어스의 서문


우주의 노래, 천구의 가락


[P.9] “ 이그쥬가르쥬크가 뭡니까?” ....

‘아, 이그쥬가르쥬크 말이요? ........... ‘참 지혜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서 아득히 떨어진 채 절대고속 속에 은거하는데, 이 참 지혜에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다. ’버리는 것과 고통스러워하는 것만이 세상으로 통하는 마음의 문을 열게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을 했지요.’

[P. 10] 켐벨은 재판관이라는 위치를 사회학적 용어가 아닌 신화학적 용어로 설명해낸다. 재판관이라는 위치가 단순한 직업의 역할만을 상징한다면 그 사람들은 굳이 검은 법복을 입을 핑요없이 회색 양복을 입고도 재판정에 들어갈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법의 권위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강제력 이상의 어떤 힘을 지니는 것이기 때문에 재판장의 권능이 의례화하고 신화화하는 것이다.

[P.11] “영웅의 역정에서 얻는 직관은 이성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랍니다. 영웅의 역정은 이성을 부인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지요. 부정적인 열정을 극복함으로써, 영웅은 우리에게도 우리 내부의 비합리적인 야만을 극복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답니다.”

캠벨은 언젠가, 인류는 ‘자기의 내부에 식인종적이고, 색정적인 열정’을 지니고 있는데도 이러한 존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탄한 바 있다. 그는 이러한 열정을 인류의 전염병이라고 불렀다.

[P. 12] “자기 내부에 자기 운명의 실을 풀어낼 힘이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는 그렇게 합리적일 수 없는 것이지요.” 아이러니컬하게도 캠벨에게 영웅 역정의 끝은 영웅의 자기 확장이 아니다.

[P. 12] 고명한 구도자와 영웅은 다른 점이 많은데, 그 다른 점 중에서도 가장 다른 점은 구도자는 자기만의 삶을 누리기 위해 도를 닦지만 영웅은 사회의 구원을 위하여 행동한다는 점이다. 조셉 캠벨은 인생은 모험이라고 확신한다.

[P. 12] 그는 문화인류학, 생물학, 철학, 예술, 역사, 종교 책 속에 파묻혀 살았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세계로 난 가장 확실한 길은 인쇄된 책의 갈피에 나 있음을 깨우쳤다.

[P. 14] "운명은 앞서서 뜻있는 자를 인도하지. 뜻있는 자의 멱살을 잡아끄는 것은 아니라오." 그는 큰 스승들이 그러하듯 예증을 통하여 가르친다. 말을 통하여 믿음으로 이끄는 일은 그가 좋아하는 방법이 아니다.

 [P. 15] “목사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는, 말로써 사람을 믿음에 이르게 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오. 자기가 보았던 빛을 신도들에게 넌지시 보여주기만 하면 될텐데 말이오.”

[P. 15]그는 독서와 삶에서 엄청난 기쁨을 누리고 살았는데 이것을  내비치는 솜씨또한 절묘했다.

[P. 15] 그는 자기의 작업을 관류하는 ‘중심 사상’이 ‘세계의 신화가 지닌 주제에서 공통되는 요소를 찾아내는 일’ 임을 인정한 바 있다.

[P. 16] 이렇게 해서 옛 모듬살이는 일찍이 ‘삶의 본질은 죽이는 것과 먹는 데 있다는 사실 그리고 신화가 다루어야 하는 위대한 신비가 바로 이것임’을 깨닫게 된다.

[P. 18]영적인 사람이었던 그는 인간의 믿음에 관련된 문학에서 인류 공통의 영적인 원리를 찾아낸다. 그러나 그가 찾아낸 인류 공통의 영적인 원리는 인종의 굴레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이것이 해방되지 못하면 세계의 종교는 (오늘날 중동과 북아일랜드에서 그렇듯) 타인에 대한 능멸과 공격의 수단밖에는 되지 못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신의 이미지는 무수하다. 그는 이것을 ‘영원의 가면’ 이라고 이름한다. 이 ‘영원의 가면’은 그 ‘영광의 얼굴’을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P. 18] 신화는 가시적인 세계의 배후를 설명하는 메타포이다. 그러나 이 신화의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각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

[P. 18] 캠벨의 책에서,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은 방심하는 죄악, 깨어 있지 않는 죄악인 태만은 방기하는 죄악이다.

[P. 19]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의 발달은 인간을 타락하게 하기는커녕 이 온 우주가 ‘우리의 내적 자연이 확대 ㆍ투사된 것’임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고대와 만나게 했다’.

[P 21] 그가 우리에게 열어준 많은 가르침의 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 살았던 삶 자체의 진정성이다.

[P. 21]캠벨의 무엇이 나를 그토록 끌었을까? 그렇다 지혜이다. 그는 대단히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박식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이야기에는 그에 걸맞는 표현의 방법이 있다. 그런데 그는 수천가지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었다.



1.  신화와 현대 세계


[P. 25] 우리는 우리 몫의 삶을 살면 됩니다. 삶이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요.

[P. 25]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우리가 정신의 문학과 친해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 일어난 그 시각에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에만 겨우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P. 26-27] 20대와 30대 심지어는는 40대에도 제임스 조이스와 토마스 만은 나의 스승이었어요. 이분들이 쓴 것은 죄다 읽었으니까요. 이 두 분이 쓴 작품들은 신화적 전통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에 대단히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P. 28] 완전한 인간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합니다.

[P. 28] 완전한 것은 비인간적입니다. .... 하느님에게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 느낌은 진정한 사랑으로 연결될 수 없어요. 그러나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는 사랑스럽지요.

[P. 29] 그건 무슨 뜻입니까?  고통이라는 거지요. 고통은 불완전한 존재만 체험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인가적인 고통, 인간적인 분투, 인간적인 삶.......

[P.29]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의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어떤 실마리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랍니다.

그러니까 신화가 그 실마리라는 것이지요?

[P. 30] 모이어스 : 선생님께서는 그런 것을 어떻게 경험하실 수 있었습니까?

캠벨 : 신화를 읽었지요. 신화는 사람들에게 내면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줍니다. 신화를 읽으면 사람들은 상징의 메시지를 해독하기 시작하지요. 자, 다른 민족의 신화를 읽어야 하지,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를 읽는 것은 아니랍니다.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보다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어야 하는 까닭은, 우리에게는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를 믿음이라는 문맥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으면 메시지를 느끼게 됩니다. 남의 신화를 읽으면 경험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P. 31]신화가 가르쳐주는 바에 따르면, 결혼은 분리되어 있던 한 쌍의 재회(再會)랍니다. 결혼으로 재회하는 둘은 원래 하나였어요.

[P. 32] 결혼으로 맺은 관계를 인생의 가장 중요한 관계로 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혼을 아직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P. 32]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P. 33] 그래요. 결혼은 관계이지요. 우리는 대개 결혼을 통해서 한두 가지씩은 희생을 시킵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관계를 위해서 희생시켜야지, 상대를 위해서 희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P. 34] 중요한 것은 영적 수련입니다.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게 해야 하는 것이고요. 사람은 사회를 섬겨야 하게 되어 있지가 않아요. 사회가 사람을 섬겨야 하지요. 사람이 사회를 섬기게 되면 우리는 괴물이나 다름없는 상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P. 35-36] 롤로 메이는 오늘날 미국 사회에 범죄가 이토록 많이 일어나는 것은 젊은 남녀에게 위대한 신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P. 37] 왜 신화에 관심을 기울이느냐고 했더니, 거기에는 메시지가 있다는 겁니다.

[P. 41] 판사가 법정으로 들어오면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지요. 사람들은 그 친구를 보고 일어서는 게 아니라, 그 친구가 입고 있는 법복, 그 친구가 맡고 있는 역살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일어서는 것입니다

[P. 42]그러니까 우리가 일어서서 경의를 표하는 대상은 판사 자체가 아니라 신화적인 인격인 것이지요.

[P. 44] 신비체험에는 준비가 필요한 법입니다

[P. 47] 모이어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는 우리의 의식을 변모시킬수 있습니까? 

 캠벨: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달려있지요.

[P. 47] 그러면 영적인 의식이라고 하는 걸 어디에서 얻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신화가 필요한 겁니다. 신화는 영적인 의식의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P. 48]모이어스: 신화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닐까요? 캠벨: 아닙니다. 아니예요. 신화는 이세상의 꿈이지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닙니다. 신화는 원형적인 꿈입니다.

[P. 54] 인간은 외부에서 들어온 권능에 복종하지 않아요. 다스릴 따름이지요. 문제는 어떻게 다스리느냐 하는 거지요.

[P. 58]각기 새로운 신화가 필요하지요. 원수를 사랑하라. 열어라. 남을 평론하지 말라! 이것은 모두 불교에 있는 겁니다. 신화에 있는 겁니다. 옛날부터 있어 왔어요.

[P. 59] 신화 자체가 노래인 것 이지요. 육신의 에너지에서 부추김을 받는 상상력의 노래, 이것이 신화입니다.

[P. 61] 내가 아는 한, 지구라는 행성의 신화학에 가장 가까운 것은 불교입니다. 불교는 세상의 모든 존재를 부처로 보지요. 문제는 어떻게 이러한 인식에 이를 것이냐 하는 겁니다. 문제는 만유(萬有)라고 하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아는것, 그리고 형제애로써 이 만유에 반응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P. 64] 우리에게는 어떤 신화가 필요할는지요? 우리에게는 개인을 그가 속한 동아리와 동일시하게 만드는 대신 자구라는 이 행성과 동일시하게 만드는 신화가 필요해요.

 [P. 70]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어느 곳에 있는 어떤 사람이든지, 그 마음이 진리를 떠나 있지 않다면 진실을 말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진리를 떠나 있지 않은 사람은 마음을 가다듬기만 하면 곧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P. 71-72] 그들의 믿음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든지 하느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누구에게만 특별한 계시가 내리는 일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거죠.

[P. 74] 개인은 자기 삶과 관계된 신화의 측면을 자기 나름대로 찾아야 합니다. 신화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네 가지 기능을 지닙니다. 첫째는 신비주의와 관련된 기능입니다. 내가 밤낮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우주라는 것이 얼마나 신비스러운지를 아는 순간,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신비스러운 존재인지를 아는 순간, 우리는 이 엄청난 신비 앞에서 이미 경이를 경험합니다.

[P. 74]신화의 두 번째 기능은 우주론적 차원을 연다는 것입니다. 과학이 관심을 두는 영역이 바로 이 차원입니다. 그러나 과학은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신화는 신비의 샘으로서의 우주를 보여줍니다.

[P. 75] 신화의 세 번째 기능은 사회적 기능입니다. 신화는 한 사회의 질서를 일으키고 그 질서를 유효하게 합니다.

[P. 76] 신화에는 네 번째 기능이 있어요. 오늘날 우리가 한번 음미해보아야 할 것이 바로 이 기능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이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교육적 기능입니다. 신화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줄수 있어요.

 [P.76] 성서에 바탕을 둔 우리 서구의 이야기는 선사 시대의 우주관 위에 서 있어요. 이런 이야기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든지, 우주에 관한 오늘날의 개념과는 맞지 않아요. 이건 그 시대 사람들의 것이지 더 이상 우리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할 일은 온길을 되돌아 가 자연의 지혜와 조화되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2. 내면으로의 여행


[P. 85-86] 신화에는, 심연의 바닥에서 구원의 음성이 들려온다는 모티프가 있어요. 암흑의 순간이 진정한 변용의 메시지가 솟아나오는 순간이라는 거지요. 가장 칠흑 같은 암흑의 순간에 빛이 나온다는 겁니다. 어둠의 순간에 눈이 보기 시작한다“레트커의 시구처럼 말씀이지요?

[P. 87-88] 사람은 다 어떤 종류의 문턱을 넘어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꿈속에서의 시험이 이러한 보편적인 반영하게 될 경우에 이것은 개인적인 단계의 꿈이 아닙니다. 이런꿈을 원형적인 꿈이라고 합니다.

[P. 89] 꿈은 우리 의식적인 삶을 지탱시키는 깊고 어두운 심층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반면 신화는 사회가 꾸는 집단적인 꿈입니다. 그러니까 신화는 공적인 꿈이요, 꿈은 사적인 신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떤 개인이 꾸미는 사적인 신화인 꿈이 그사회의 꿈과 일치한다면, 그 사람은 그 사회와 무난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앞에서 기다리는 캄캄한 숲속에서 한바탕 모험을 해야 합니다.

[P. 107]마음은 인간의 육체가 하는 내적 경험입니다. 같은 기관, 같은 본능, 같은 충동, 같은 공포를 가졌으니 인간은 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바로ㅜ이 공통되는 바탕에서 융박사의 이른바 원형이 산출된다는 것입니다. 원형은 인간이 공유하는 신화의 관념이라는 것이지요.

 [P. 114]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는 궁극적인 진리를 발견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틀린 것입니다. ..............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자는 실은 알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안다는 것은 실은 모르는 것이고 모르는 것은 아는 것이다.” 

[p. 115]  그러나 죄악이라는 관념은 우리를 평생 처참하게 만들어버립니다.

[P. 118] ‘영혼의 자리는 외면의 세계와 내면의 세계가 마나는 자리‘인 것 입니다.

[P. 124] 신비 체험을 한 사람은 상징적인 드러냄이 말짱 헛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상징이라는 것은 체험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경험하지 못한 것을 두고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P. 124] 체험한 사람은 체험한 것을 최선을 다하여 이미지에 투사시켜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사회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기술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P. 127] '하느님' 이라는 말은 모든 사유를 초월해 있는 존재를 일컫는 말이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이라는 말 역시 사유를 통해서 생긴 것입니다. 

[P. 133]죽음에만 고통이 없을 뿐이에요

[P. 136] 우리 인생에서 견딜 수 없는 일 중 하나는 속으로는 구역질나는 타인, 혹은 타인의 행동, 혹은 타인의 조건에 대해서도 ‘옳다’고 해야 하는 것 입니다. 


3. 태초의 이야기꾼들


[P. 142] 성숙하면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P. 142] 즉 젊은이를 이 세상의 삶과 만나게 할 때도 신화가 끼여들고(여기에서 바로 종족 특유의 관념이 기능합니다), 이 삶에서 해방될 때도 신화가 개입합니다. 말하자면, 종족적 관념은 인류의 근본적인 관념의 껍질을 벗기는데, 이 근본적인 관념이 바로 우리를 내적인 삶으로 안내해준답니다.  이 신호는 다른 사람들은 그 내적인 삶의 길을 어떻게 갔고, 나는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줍니다.

[P. 156] 만물이 비롯될 때에는, 지혜와 지식은 짐승들에게만 있었다.

[P. 173] "귀신을 몰아낸답시고 그대 안에 있는 가장 귀한 존재를 몰아 내지 않도록 주의하라" 이런말을 한사람이 니체였지요?

[P.175]우리가 이를 깨닫지 못하면, 중심은 언제나 다른 사람 안에서 우리와 마주보고 있을 뿐입니다. 이게 바로 신화적인 홀로서기입니다. 우리가 곧 중심에 있는 산이고, 이 중심에 있는 산은 도처에 있는 겁니다. 


4. 희생과 천복


[P. 177]천복을 좇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되;q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P. 186] 왜 우리가 새삼그럽게 신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까? 신화는 우리 삶의 요체인 영적인 삶의  원형과 만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의례를 접하는것 이것이 우리 삶의 질서를 온전하게 바로잡아 줍니다.

[P. 189] 그것은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술가들이야말로 오늘날에도 신화와 교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예술가는 신화와 인간성을 이해하는 예술가이지, 대중에게 봉사하기를 좋아하는 사회학자는 아닙니다.

[P. 189] 시인도 예술가도 아니고, 초월적인 접신경험도 해보지 못한 보통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P. 189-190] 방에 앉아서 읽는 겁니다. 읽고 또 읽는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은 행위를 통해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삶에서 삶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항상 다른 깨달음을 유발합니다.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붙잡아서,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습니다. 

[P. 191] 사냥꾼에게, 평생을 해도 사냥에서 같은 상황을 두 번 경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상황이 때마다 다르다는 것이지요.

[P. 198] 한 문화권 이야기가 다른 문화권에서 그대로 발견되는 데에는 여전히 놀라고는 합니다.

[P. 203] 삶의 모습 자체는, 반드시 삶의 행위를 통해서 깨달아야 한다는 거지요.

[P. 204] 우리는 공포와 욕망 때문에 ,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반드시 우리 삶의 선이어야 한다는데서 생긴 공포와 욕망 때문에 낙원에서 쫓겨난 겁니다,.

[P. 209-210] 쇼펜하우어는 그이 명편 에세이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사심없이 남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이들의 고뇌와 고통에 인류가 참가하는 것은 어떻게 된일인가? 우리는 자연의 제일가는 이법과 자기 보존을 기하는 일이 어떻게 함께 가능할 수 있는가?”

[P. 211] 쇼펜하우어의 말은 그런 심리적 위기가 형이상학적 깨달음의 돌파구임을 보여줍니다.  형이상학적 깨달음이란 ‘우리’라고 하는 존재가 사실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깨달음 ‘우리’라는 것은 한 생명의 두 측면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우리가 ‘우리’라는 것을 서로 별개인 둘로 인식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조건 아래서 형상을 경험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P.213] 아무리 현재를 사랑해봐야 현재는 곧 과거가 됩니다. 상실, 죽음, 탄생.... 죽음, 탄생.... 삶은 이렇게 돕니다. 십자가를 명상한다는 것은 곧 삶의 신비의 상징을 명상하는 것입니다.

[P. 213]우리는 육체적으로는 죽을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죽어야 하는 죽음은 영적인 죽음입니다. 이 죽음을 통해서 더 큰 삶의 길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P. 216] “목숨을 아끼되 그 목숨의 원수가 되어라”

[P. 217] 삶의 미로를 뚫고 지나가면 삶의 영적인 가치를 접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화가 드러내고자 하는 진실입니다.

[P. 218] 중세 신화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은 인류의 마음이 연민의 가슴으로 열린 순간, 즉 ‘열정(passion)’이 ’연민(compassion)’으로 변모한 순간입니다.

[P. 225] “모르겠네. 나들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10년이고 20년이고 기다릴 수 있겠는가? 아니면 대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자 하는가? 세상이 뭐라고 하건 자네가 정말 좋아하는 것만 붙잡고 살면 행복하겠다 싶거든 그 길로 나가게.”

[P.226] “내 의식이 제대로 된 의식인지, 아니면 엉터리 의식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존재가 제대로 된 존재인지, 아니면 엉터리 존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일에 천복을 느끼는지 그것은 안다. 그래. 이 천복을 물고 늘어지자. 이 천복이 내 존재와 의식을 데리고 다닐 것이다.”

[P.227] 천복을 좇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할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5. 영웅의 모험


[P. 229] ‘영웅’이라는 말은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요.

[P. 229-230] 사람의 행적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육체적인 행적입니다. 육체적인 행적을 보면, 영웅은 싸움에서나 남을 구하는 데서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주지요. 또 하나의 행적은 정신적 행적입니다. 이런 행적에 따르면, 영웅은 여느 인간의 영적인 삶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서 존재하는 희한한 체험을 하고는 우리 삶에 유용한 메시지를 가지고 귀환합니다. 보통, 영웅의 모험은 무엇인가를 상실한 사람, 자기 동아리에게 허용되어 있는 정상적인 경험에는 무엇인가 모자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의해 시작됩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뛰어들어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고난을 겪으면서도, 자기가 상실한 것, 혹은 생명의 불사약 같은 것을 찾아 헤맵니다. 영웅의 모험에는, 출발과 귀환 사이에 일종의 주기(週期)가 있지요.

[P 233] 영웅의 시련, 시험, 난관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굳이 말하자면, 이 사람이 정말 영웅인지 아닌지, 이 사람이 과연 이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여부, 정말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지 여부, 용기, 지식,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누군가가 예비해놓은 어떤 관문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P. 235] 영웅은 무엇인가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합니다. 이것이 바로 도덕적인 것이지요. 물론 반대 입장에서 보면, 영웅이 자신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옹호하려는 관념이 반드시 옳은 것일 수만은 없지요. 하지만 이것은 반대편 입장에서 보아서 그럴 뿐입니다. 반대 입장의 견해가 영웅이 이룬 업적이 지닌 고유의 영웅적 속성을 훼손시킬 수는 없는 겁니다.

[P. 238]영웅에는  두 종류가 있어요. 여행을 스스로 선택하는 영웅과 그렇지 않은 영웅이 있는 것이지요. 전자의 영웅은 모듬살이의 필요에 반응하여 자진해서 그 일을 하러 떠납니다.

[P 244] 이런 위험한 길을 갈 때는 자기 욕망과 열정과 감정을 따르되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위험이 우리를 다리 밑으로 밀어버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P. 263] 좋은 스승은 제자가 하는 양을 가만히 보면서 그 제자에게  무엇이 가능한가를 알아냅니다.  좋은 스승은 충고를 할 뿐 명령은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 했다. 그러니까 너도 이렇게 해야한다”는 식의 명령은 제자들에게 도움이 안됩니다. 

[P.265]<스타워즈>를 보면 마지막의 싸움이 벌어지는 절정에서 스카이워커의 귀에 “컴퓨터를 끄고 기계를 끄고 너의 느낌을 따라 너의 마음이 가는 대로 하라”는 벤 케노비의 da성이 들리지요? 스카이워커는 그가 시키는 대로 하고 결국 이 싸움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P. 272] 신화에는 개인이 지닌 완전성과 무한한 힘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고 그 세계를 날빛 아래로 드러내는 힘이 있어요. 괴물을 죽인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신화는 우리를 사로잡되, 우리 심층에 있는 것을 거머쥡니다.

 [P. 272] 어떻게 하면 우리 안에 있는 괴물을 죽일 수 있습니까? 우리 개인이 반드시 해야 하는 선생님의 이른바 ‘드높은 영혼의 모험’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일반적으로 학생들에게 내리는 처방은 “그대의 천복을 따르라”는 겁니다. 천복을 찾아내되, 천복 따르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P. 273] 우리 자신을 구하면 세상도 구원됩니다.

[P. 273] 용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아에 속박된 ‘자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용 우리에 갇혀 있어요.

[P. 275]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 자기 삶을 가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여자는 자기의 용을 죽인 것이지요.

[P. 277]말하자면 서구인들은 ‘나’안에 잠재해 있는 삶의 과녁이자 이상을 살지, 절대로 남의 안에 있는 가능성을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이 위대한 서구적 진실이라고 믿어요.

[P. 278] 죽음을 이해할 수는 없어요. 죽음과 화해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요.

[P. 278]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면 인생은 전처럼 다시 즐거워집니다. 죽음을 받아들여야, 삶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측면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무조건적인 긍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삶이라고 하는것은 어차피 죽음으로, 죽음의 순간에 끝나는 법입니다. 공포를 정복하면 용기있는 길이 열리지요. 모든 영웅이 경험하는 모험 중 아주 중요한 통과 의례는 바로 공포의 극복입니다. 공포가 극복되어야 비로소 영웅적인 업적의 성취가 있는거지요.

[P. 279]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이 모습은 ‘나’라는 존재의 궁극적인 모습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가 이미 성취한 자기성(自己性)을 끊임없이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P. 297] “고통에서 놓여나고 싶거든 고통이 곧 삶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말고 용감하게 인정하세요. 우리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고상한 존재가 될 수 있답니다.”

[P.297] 고통의 원인은 당신에게 있다. 단신이 그 고통을 비롯되게 했다.

[P. 299] 우리가 이르러야  궁극적인 목적지는 바로 우리 안에 있어요.

[P. 300] 인생은 슬픈 것이라고 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과 슬픔으로부터의 탈출구가 있는데 이게 바로 비르바나입니다.

[P. 301] 깨달음이란, 만물을 통해 영원성의 찬연함을 인식하는 일이지요. 이 만물이라는 것은 이승에서의 선한 것으로 판별될 수 있고 악한 것으로 판별될 수고 있는 것인데, 바로 그 이면을 꿰뚫어 보아 버리는 것이지요.

[P. 302] 단언하거니와 신화는 우리 삶의 훌륭한 의지가지 같은 것이었어요. 내 삶으로 쏟아져  들어온 이런 종류의 지혜가 우리 삶에 일으켜놓은 기적은 정말 대단한 거랍니다.

[P. 303] 신화의 진리는 말씀 너머, 이미지 너머, 불교에서 말하는 전륜의 테 밖에 있어요. 신화는 우리의 마음을 이 테 밖으로 보냅니다. 이 테의 밖에 있는 것은 앎의 대상은 될망정 드러냄의 대상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진리에 버금가는 진리인 것이지요.


6. 조화여신(造化女神)의 은혜


[P. 305] 모든 종교 이미지와 신화 이미지는 우리 의식의 차원, 인간 전신에 잠재해 있는 경험의 장입니다.

[P. 306] 아버지 탐색은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를 이루지요.

[P. 320] 가슴 ‘차크라’라고 하는 것은 가슴과 관련된 상징적 중심이지요. 차크라는 ‘원’, 혹은 ‘영역’이라는 뜻이지요.

[P. 333] 우리는 어떤 경우에든, 참여하지 않으면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없어요.

7. 사랑과 결혼 이야기


[P. 341] 아가페적 사랑은 이웃을 사랑하라. 하는 식의 영적인 사랑이에요. 이웃이 누구이든 전혀 상관없이 사랑해야 하니, 이것도 개인적인 것일 수 없지요. 결국 에로스적인 사랑이 충동에 따르는 것이니까 개인적인 열정이라고 할 수 없듯이, 아가페적인 사랑도 사랑이라기보다는 자비에 가깝겠군요.

[P. 347] 자기 천복을 따를 때는, 어떤 사람의 어떤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든지, ‘내’ 삶과 행동은 나름의 가치를 지녀야 하는 겁니다.

사랑을 선택하는 데도 그래야 합니까?

사랑을 선택하는 데도 그래야 하지요.

[P.356]상처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 생긴 고통과 고뇌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상처를 낫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고통과 고뇌를 안긴 사람뿐이라는 뜻입니다.

[P. 356-357] 성배 이야기의 테마는 인간의 내적 관심이 떠나버린 땅이나 나라를 그 무대로 합니다. 인간의 내적 관심이 떠나버린 땅, 곧 황무지 아닙니까? 황무지의 기본적인 성적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살기는 살되, 죽은 삶을 살고 있는 땅, 자기 삶에 대해 아무 용기도 없이 사는 땅, 남이 하는 대로, 남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사는 땅이 바로 황무지입니다. <황무지>를 통하여 엘리엇이 표현하려고 한 것도 바로 이겁니다.  황무지의 거죽은 실제성을 표상하지 못합니다. 황무지 사람들은 죽은 삶을 살기 때문에, “나는 평생을, 하고 싶은 일은 한번도 해보지 못하고 살았다. 나는 시키는 대로만 하고 살았다.” 이런 말을 합니다. 들어봤을 겁니다.

[P. 357-358] 성배는, 뭐라고 할까......., 참 삶을 산 사람들이 획득한 것, 혹은 깨달은 것을 표상합니다. 성배는 결국, 인간의식의 가장 고귀한 영적 잠재성의 성취를 상징하는 것이지요.

[P. 358] 영적인 삶이라는 것은 인생의 꽃이자 향기인 동시에 개화이자 성취이지,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주어진 미덕이 아니라는 겁니다. 따라서 삶을 삶답게 하는 것은 자연의 충동이지 초자연적인 권위에서 내려오는 율법이 아닌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성배 전설의 상징적인 의미인 것이지요.

[P. 358] 토마스 만은, “인간이 d;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존재인 것은 바로 인간에서 물질과 정신이 만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 말은 성배의 상징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까?

[P. 359] 성배는, 자기의 의지력으로 사는 삶, 자기 충동의 체계로 사는 참 삶을 상징합니다. 선과 악, 빛과 어둠 등의 대극 사이로 난 길로 우리를 이끄는 것은 바로 이 참 삶인 겁니다.

[P. 359]가장 바람직한 삶은 빛을 향하여, 남을 이해함으로써 남의고통에 동참하는 자비를 통해서 가능해지니는 화합의 관계를 향하여 나아가는 삶입니다.

[P. 361] 그러나 이 모듬살이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간섭하고 나서는 것은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우리는, 모듬살이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모듬살이가 용납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나름의 삶의 모양을 빚어가면서 살아야 합니다. 삶의 어려움 중 하나는 모듬살이가 베풀어주는 마당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삶을 실제로 버티어주는 것이 모듬살이가 될 때 이삶은 그만큼 더 어려워집니다.   

[P. 364-365] 결혼은 우리가 참가하는 엄연한 약속입니다. 우리의 결혼 상대는 극자 그대로 우리의 잃어버렸던 반쪽입니다. 이렇게 두 개의 반쪽이 모임으로써 하나가 되는것, 이게 결혼입니다.

[P. 365] 그러나 결혼은 평생의 약속입니다. 평생의 약속이니까 우리 삶의 가장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지요. 만일에 결혼을 하고도 그 결혼을 가장 큰 관심사로 치지 않는 사람은 결혼한 사람이 아니지요.

[P. 365] 어떤 시련이나 고통이 따르더라도 진심을 다하는 것, 이러한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속이는 않는 태도, 약점을 따지지 않는 태도……. 이런 걸 성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P. 367] "사랑에 빠지면 여자가 아홉 배쯤 더 좋아하지요."

[P. 370] 사랑의 고통이란 다른 고통이 아니라 곧 삶의 고통입니다. 고통이 있는 곳에 삶이 있는 거죠.

[P. 371] 지옥의 고통 중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사랑하던 것’과 함께 할 수 없는 데서 오는 고통입니다. 사탄에게 이 ‘사랑하던 것’은 신이었어요. 그러니 사탄에게 지옥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곳이었을 테지요.

[P. 371] 이 세상에도 지옥은 있습니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지옥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채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참 일리 있는 말 입니다.

 [P. 373] 사랑 자체가 고통, 혹은 진정하게 살아 있음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지요.

8. 영원의 가면


[P. 375] 신화의 이미지는 우리 모두의 영적 잠재력을 반영하고 있어요. 바로 이 신화 이미지를 명상함은 우리 내부에 있는 이 잠재력을 촉발하는 겁니다. 

[P. 378]기도도 실제로는  명상이겠지요? 기도는 신비에게 말을 걸고 명상하는 행위이지요. 자신의 내부로부터 힘을 불러내는 행위라는 뜻일는지요?

[P. 379] 우리가 뛰어넘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예수의 이미지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어떤 신의 이미지는 결정적인 장애, 궁극적인 장벽이 되는 수가 많아요. 자기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자기 나름의 소아병적인 생각에 집착해 있는 사람은, 하느님에 대한 어마어마하게 큰 체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보다 큰 체험이 접근해오는 순간에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이미지에 매달림으로써 거기에서 도망쳐버리려고 합니다. 이걸 사람들은 신앙으로 오해하고는 하지요.

[P. 382-383] 원수의 도발을 받아보지 않고, 원수가 하는 일을 용서하지 않고,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가르쳐드리지요. 원수의 눈에 들어 있는 티끌을 뽑아내려 하지 말고, 내 눈에 들어있는 들보를 뽑아내는 겁니다.

[P. 384] 나는 자비를 근본적인 종교 체험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자비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거지요

[P. 394] 삶의 시작에는 두려움도 없고 욕망도 없어요. 그냥 시작되는 것일 뿐이에요. 그러다 존재하게 되니까 여기에서 두려움과 욕망이 시작되는 겁니다. 두려움과 욕망을 버리고, 우리가 시작되었던 바로 그 한 점으로 돌아가 보세요. 이한점이 바로 요체랍니다.

[P. 405] 천국은 끝나지 않은 시간입니다. 끝나지 않은 시간과 영원은 달라요. 영원은 시간 너머에 있어요. 시간이라는 개념은 이미 영원을 나타낼 수 없어요. 이 현세적인 고통과 말썽이 오고가는 곳은 영원이라고 하는 심오한 경험 저 너머에 있어요.

[P. 413] 이 세상의 종말은 미래의 어떤 순간이 아닙니다. 심리적인 변화가 오는 순간, 세계를 보는 방법이 바뀌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 이런 순간을 경험하면 이 세상은 물질의 세상이 아닌, 빛의 세상이 될 겁니다.

[P. 415] 의미는 결국 언외에 있군요.  그렇습니다. 말이라는 것에는 조건이 있고 제한이 있어요.

[P. 415] 그래서 절정의 순간은 이 언어 밖에 있는 것, 이 한마디, “아 ....”, 이 한마디 밖에는 할 수 없는데 있는 것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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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가 저자 라면


1) 책의 개요

이 책 ‘신화의 힘’은 죠셉 캠벨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계기가 된 미국의 PBS 방송국에서 제작한 대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한 빌 모이어스와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의 구성은 8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신화와 현대사회, 내면으로의 여행, 태초의 이야기꾼들, 희생과 천복, 영웅의 모험, 조화여신의 은혜, 사랑과 결혼이야기, 영원의 가면으로 편집되어 있다.


2) 이 책의 장점

‘신화의 힘’은 이전에 읽은 ‘신화와 인생’에 비해 이해가 조금 쉬웠는데 대담형식인 구어체로 되어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빌 모이어스가 간혹 질문하거나 되묻는 형식을 통해 반복과 강조가 계속되는 것도 우리의 이해를 돕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대담 녹화를 책으로 편집한 형식은 다른 대담을 엮은 책들과 비슷하게 저자가 자신의 지식을 총 동원하고 있는 사례가 많아, 독자인 우리는 그들의 박식함이 펼쳐 보이는 파노라마를 즐길 수 있어서 참 흥미롭다. 또한 질문이 바뀌면서 나타나는 주제 변경과 각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선각자의 지혜는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과 통찰을 안겨준다. 이 책 역시 그런 점이 훌륭했다.

또한 이 책은 서문에, 8년간 캠벨과 교우하면서 작업을 했다는 빌 모이어스가 캠벨과 그의 사상에 대해 미리 요약, 정리를 해두었는데 나 같은 캠벨 초보 독자에게는 캠벨 사상의 이해를 돕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캠벨은 많은 저서를 통해 세계의 신화가 지닌 주제에서 공통되는 요소를 찾아내었고 이것을 분석하면서 신화와 종교에 관해 무수한 질문을 제기했다고 하는데, 캠벨의 말년인 사망 2년 전에 이루어졌다는 이 대담을 읽다보면 캠벨이 신화와 종교 연구를 통해 그 자신 나름의 구원을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만약 캠벨이 10년만 더 살았더라면 우리에게 어떤 지혜를 던져줬을까? 


3) 내 생각을 조금 추가하자면

각 장들의 편집 순서는 괜찮았는데 각 장에서 핵심적으로 얘기하고자 하는 캠벨의 사상을 각 챕터 말미에 박스나 테이블의 형태로 정리해 두었다면 좀 더 효과적으로 캠벨 사상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대담형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내용이 좀 산만하고 체계적이지 못한 느낌이 있고 그런 점은 독자에게 캠벨 사상을 체계적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단점이 될 수 있으므로 각 장들의  끝부분에  각 장에 대한 요약을 하면서 캠벨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리해 두었다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듯하다.

또 하나는 저자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책의 앞이나 뒤에 추가해 두었다면 그의 배경에 대한 이해가 쉬웠을 것이고 그의 사상이 변천해간 순서도 체계적으로 정리가 될 수 있었을 듯하다. (물론 숙제하기도 쉬웠을 것이고.....)   


IP *.250.2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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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경수기
2010.04.23 10:57:36 *.145.204.123
원래의 순서대로 하려면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리뷰해야  하는데
 지난주 금요일 칼럼을 '나에게 신화란 무엇인가' 주제로 쓰지 못했기에(부주의하여)
이번주에  그 주제로 칼럼도 써야 해서 책리뷰도 '신화의 힘'을 먼저 올립니다.
이 책도 어차피 리뷰해야 해서 순서를 바꿔 먼저 리뷰한 점 이해해 주세요 emoticon
다 못한 레이스 용 책 나머지 3권은 금요일 정오에 맞춰서 매주 차례대로 칼럼과 함께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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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0.04.23 12:55:43 *.219.109.113
화                                                      이                                      팅 !

아아 ~~~ 무써워요. 이빨을 드러내고  마구 쫒아오는 딥따 큰  멍이 같아여.
어떻게 어디로 도망을 가야하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제자리를 뱅뱅 돌고 있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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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 헉헉~~
2010.04.23 13:11:42 *.145.204.123
웨버님 화이팅 감사~~
힘들지만 열심히 따라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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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4.24 00:51:39 *.219.109.113
워쩌지요 ~ 우리 가랑이는 이미 찢어져 너덜너덜해 대신 뛰어 줄 수도 없고,
두께에 질려서  앙탈을 부려서 좀 얇게 되었어도 목침 수준이고
음~ 어떻게 하면 위로가 될 까요?
그냥 저 처럼  찢어져 드시면서 하면 어떨까요? 메에에~~~ 메에에~~ 하면서 말이에요.
아이쿠 하는 말마다 만두 속 터지는 소리같아 조용히 사라질께요.
아자자자자>>>>>>>>>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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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 엉엉~~
2010.04.23 14:54:02 *.145.204.123
근데 사실은...
읽어내야할 책 두께에 질려서 펑펑 울고 있답니다emoticon
(가랑이는 이미 찢어졌구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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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es saint laurent
2011.05.31 18:39:33 *.111.182.3
Wear your high heels in a sitting position and around the gianmarco lorenzi shoes home first. After a period of gianmarco lorenzi pumps time they will become comfortable and you gianmarco lorenzi boots will probably forget you are even wearing them.If you are giuseppe zanotti shoes planning to wear heels outdoors or at a club on the weekend, wear giuseppe zanotti boots them around the house for a few hours first until they feel nat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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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제8기 레이스 4주차 '내 인생의 시집 한 권']이길수 file [4] 길수 2012.03.11 5060
245 <북리뷰>부의 제국 록펠러 [1] 구름을벗어난달 2010.11.19 5069
244 내 인생의 첫 책 쓰기 - 자신의 삶을 사랑한 결과물 [2] 신재동 2008.12.11 5080
243 제9기 레이스 <솔로몬 탈무드> -최재용 file [1] jeiwai 2013.02.25 5088
242 나는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 file [2] 문경춘 2010.07.31 5092
241 비범성을 탄생시키는 3가지 요소 [4] 승완 2010.02.03 5095
240 삶이라는 악보의 쉼표, 휴식(休息) [1] 승완 2009.09.10 5096
239 <10기 레이스 북리뷰 3주차>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조현연 file [1] 에움길~ 2014.02.24 5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