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좋은

함께

여러분들이

  • 윤인희
  • 조회 수 4698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10년 5월 10일 22시 19분 등록

▣5-2리뷰: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고운기)

1. 저자에 대하여

이 책은 일연의 삼국유사를 다시 고운기가 쓴 책으로서 책속의 책이다. 내가 누구인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게 한 책으로서 매우 소중한 역사서이다.

최근 약 5년간 종친회에서 총무를 보면서 문중 어르신들을 뵈며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다. 총무보기 이전 약 5년을 합하면 총 10여년을 나의 뿌리를 찾으려 노력했다. 포항에 있는 시조 태사공 묘, 파주에 있는 5대조 윤관 대장군 묘 등 각종 시향이나 총회에 다녔다. 그 곳에 가기 위해 어르신들의 내 차에 태워 모시고 갔다가 끝나면 다시 귀가까지 책임지고 해 드렸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먼저 일연에 대하여
그는 1206년 경산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이씨는 태양이 배를 비치는 꿈을 꾼후 태기를 얻고 그를 낳았다 한다. 일연이라는 말 자체에 태양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뜻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특별한 스승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수양하였다.

그의 본래 이름은 김견명, 8살 때 홀어머니를 떠나 전라도에 있는 조그만 절에 공부하러 갔다. 14살 때 양양의 진전사로 가서 스스로 머리를 삭발하고 승려로서의 삶을 살게 되고 이 때 이름은 회연이었다. 그는 원래 박식하였으므로 쓴 책만도 약 100여권이 넘는다. 그는 삼국유사에서도 잘 드러나 있듯이, 신하 설화 야화 등을 기록함으로서 그 이야기가 지닌 상징적 의미를 재해석 한후 한국역사의 불교를 거듭나게 한 인물이다.

그는 성격과 기질은 매우 다양하다. 매사에 즐겁게 일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독창성이나 창의성이 뛰어나다. 70이 넘은 나이에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을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열정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삼국사기 등과는 다르게 구성하여 집필한 것은 타고난 창의성이 아니면 힘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승려임에도 불구하고 불교에 한정하지 않고 설화나 야화 등에 대해서도 폭넓게 포용하는 오픈 마인드가 있었음이 확실하다.

그는 특히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어린 나이에 홀어머니를 두고 출가하였으므로 더욱 그렇겠지만, 늘 어머니를 화두로 하였다한다. 실제 말년에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를 봉양하기를 희망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정성스럽게 모셨다고 한다.

고운기에 대하여

그는 1961년 전남 벌교 출생으로 한양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석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삼국유사에 매달려 20여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거의 삼국유사에만 몰두했다. 저자의 삼국유사를 읽는 것은 한 편의 아름다운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실제 저자는 일연이 태어났던 경북 경산군부터 일연이 숨을 거두었던 군위군의 인각사까지 모든 발자취를 밟아가며 그를 살려냈다. 그래서 그런지 고운기를 통해 우리나라 신화가 되살아났다. 그동안 서양 친구들의 그리스 로마신화에 주눅들어 있던 우리에게 민족적 자존심과 자부심을 불어넣은 역작이 삼국유사인 것이다.

그는 삼국유사와 관련한 연구로 ‘일연’, ‘길위의 삼국유사’, ‘일연을 묻는다’, ‘일연과 삼국유사의 시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를 냈다. 또한 그는 시인으로서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등 3권의 시집을 내기도 했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그는 독자가 공감할 만한 개인적 체험의 차원을 떠나지 않으면서 우리 시대의 갈등, 또 영원한 삶의 갈등을 읊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0 머리말 거기에는 정녕 안위와 감고의 어느 한 쪽이 아닌, 슬픔과 기쁨의 정반합으로 이르게 되는 변증법적 합일의 세계가 있다.

2 사실 두 책은 비교 우위를 가리는 일이 부질없을 만큼 절대적 권위와 가치가 있다. 그런데도 언제부터인가 한 쪽으로 몰아가는 분위기, 곧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책이 『삼국사기』라고 말한 선학의 명쾌한 자리 매김을 지나치게 해석하여, 무게 중심이 『삼국유사』쪽으로 치우친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3 문자에 대한 자신감, 이는 저술을 감발시키는 촉진제다. 첫번재 저술은 역사서로 정해졌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4 새로운 분위기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김부식의『삼국사기』로 대표되는 고려 전기 지식인들의 세계 인식은 사대로 요약된다.

세계관의 변화는 곧 역사관의 변화를 가져온다. 모든 것을 중국 중심으로 해석했던『삼국사기』의 역사 기술은 이쯤 와서 힘을 잃게 된다. 『삼국유사』탄생의 배경은 아무래도 이 두 가지 당대의 세계사적 사건으로 잡아야 할 것 같다. 1206년에 태어나 13세기를 온전히 살다 간 일연은 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시대의 변화를 겪었던 사람이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그가 승려였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이었다. 유학을 기본으로 하는 선비들이야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고 한들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 주는 데 반해, 승려들은 처음부터 중국 중심에 서 있지 않았으므로 보다 빨리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신라 말부터 유입된 선종은 사고의 혁신을 불교 안에서 먼저 이루어 사회로 퍼져나가게 했다.

5 『삼국유사』는 전체가 「왕력」·「기이」·「흥법」·「탑상」·「의해」·「신주」·「감통」·「피은」·「효선」, 이렇게 9개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8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면서『삼국사기』같은 역사서로만,『고승전』같은 불교서로만 만족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우리 고대사를 입체적을오 조망해 볼 어떤 틀을 만들어 냈다고 보아야 옳지 않을까.

11 이 땅의 첫 나라

뿌리를 찾았던 첫 세대의 상진

단군 신화를 실었다는 것 그 하나로 일연의 『삼국유사』는 특별한 대우를 받아 왔다. 애써 이 시기를 눈감아버린『삼국사기』의 태도와 견주어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나는『삼국유사』의 다른 곳이 아닌 그 책의 첫머리에 단군 신화를 실었다는 점으로 더욱 호들갑을 떨고 싶다.

12 그 쓰디쓴 경험이 사회와 역사를 보는 눈을 바꾼 것일까? 그렇다면 값비싼 희생을 치렀지만 귀중한 결과물을 얻은 셈이다. 승려 출신의 일연 같은 이가 『삼국사기』와는 다른 책을 편찬하겠다고 나선 것이 그 결과물의 하나였다. 다만 거기에도 무한정한 자유가 주어지지는 않았다. 글을 쓰는 것이 목숨과 바꿀 무게로 쳐지는 시대에서 단 한 글자도 허투루 적을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사실의 기록만이 아닌 상징이 자리잡는다.

사실을 그대로 써서 저촉되는 것을 상징으로 포장해 놓으면 규범이 만든 규제의 그물망을 벗어난다. 13세기의 일연 같은 이는 그 점을 간파했던 사람이다.

15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은 하늘 아래 사람이 사는 세상을 찾아가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 아래로 세 봉우리가 솟은 태백산을 굽어보니, 널리 사람 사는 세상을 이롭게 할 만하였다. 이에 천부의 증표 세 개를 주고, 가서 다스리도록 하였다.

21 그러나 단군 신화를 놓고 건국 신화인가 창세 신화인가 따지는 일이 다소 부질없어 보인다. 우리에게 굳이 창세 신화가 없어서 서운하기 때문은 아니다. 건국이냐 창세나 구분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네 관념의 소산이고, 그것은 특히 서양식 사고방식 아래서 그렇다. 지난 날 지구가 빙하기를 통해 몇 차례 뒤집어졌음은 이미 과학적 상식에 속한다.

23 모방이 창조의 원동력이라고는 하나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른다. 한껏 폼을 내 만들어 놓은『삼국사기』라는 명약이 우리만의 고유한 정신과 영역을 잠식해 들어가는 바이러스로도 기능할 줄은 아마도 그 찬술자들조차 몰랐던 것 같다.

세련된 장식으로 우리 역사를 볼품 있게 세워 놓았지만 그로 인해 본질을 놓친 것, 부작용이란 다름 아닌 ‘우리의 실종’ 이었다.

24 왜 민족의 주체성이었던가? 어떻게 민족이라는 각성이 가능했던가? 잘 알려져 있듯이 몽고는 중국의 변방에서 일어나 중국 본토를 삼키고, 거기에 나라를 세운 최초의 민족이다.

중국의 자존심을 하루아침에 땅바닥에 떨어뜨린 몽고의 원 건국, 남의 불행한 일에 잘됐다고 박수칠 일은 아니지만, 한편 변방의 나라들로서는 숨통이 트일 일도 되었다.

25 이 같은 분위기가 일연으로 하여금 우리 역사의 더 먼 곳에 관심을 갖게 했고, 거기서 단군이 발견되었음은 당연하다. 단군의 발견과 그 기록은 일연이 지닌 선각적 혜안만으로 이루어질 성질의 일은 아니었다.

34 사실『삼국유사』에서 단군 신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지만, 실은 일연이 단군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처음과 끝을 설명하고자 한 데 더 힘을 기울였다고 보아야 한다.

36 고조선과 위만조선을 최초의 국가로 인정한 일연으로서는 한반도가 다시 삼국으로 정립되기까지 있었던 여러 작은 나라들을 소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이 나는 무척 흥미롭게 보인다. 나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이 말을 어떤 역사의 흐름으로 공식화 해 달라는 생각도 없다.

42 “옛날 영품리왕을 모시던 계집종이 아이를 가졌는데 점쟁이가 점을 쳐보고서, ‘귀한 인물이라 꼭 왕이 되겠습니다’고 하였다. 왕은 ‘내 자식이 아니니라. 죽여야겠다’고 하자, 종이 말하였다. ‘기운이 하늘로부터 온 까닭에 제가 잉태한 것입니다.’ 아들을 낳자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우리에 버렸더니 돼지가 핥아주고, 마구간에 버렸더니 말이 젖을 먹여 주었다. 그리하여 죽지 않고 부여의 왕이 되었다.”

43 그러나 이런 난생 신화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 이리라. 첫 출발의 의미를 문학적으로까지 보이게 하는 이 표현은 곧 그 옛날 왕을 맞이하는 어떤 의식과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44 주몽의 이 같은 고난과 극복은 소설의 이론에서 말하는 ‘영웅의 일생’에 부합한다.

49 돌아오는 백성들이 매우 기뻐했다 하여, 나라 이름을 고쳐 백제라 했다. 이것이 곧 백제의 탄생이다.

57 “우리들은 위로 임금이 없어, 다스리려 하나 백성을 이끌지 못합니다. 백성들은 모두 제멋대로이고 하고 싶은 대로 하지요. 어찌 덕을 갖춘 사람을 찾아 임금으로 삼고, 나라를 세워 도읍을 두지 않겠습니까?”

70 시골 출신의 벼락 출세

용성국 출신이라는 기이한 남자 석탈해는, 헌칠한 체구에 꾀도 많고 덕망도 갖추었지만, 촌놈에서 출발해 왕의 사위에 이어 왕까지 된 ‘신라 드림’의 원조다.

73 박노례 닛금은 처음에 왕이 되었을 때, 매부인 탈해에게 자리를 양보하려 했다. 탈해가, “무릇 덕 있는 자는 이가 많으니, 마땅히 이를 가지고 시험해 봅시다”하고, 떡을 물어 살펴보았다. 노례왕의 이가 많으므로 먼저 자리에 올랐는데, 이 때문에 닛금이라 이름을 지었다. 닛금이라 부르는 것이 이 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74 내기는 기실 이번 차례에 오르지 않으려는 꾀에 불과하다. 왕의 사위까지 되었지만, 탈해로서는 서라벌이 아직도 남의 동네다. 뭔가 자신의 기반을 확실히 닦은 다음 굳건한 위치에서 왕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78 달리 생각하면 이만큼 인간 냄새가 나는 이야기도 없다. 하늘과 땅이 부리는 조화로 자신의 신성성을 포장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 인간 대 인간의 투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매우 정치적인 모습이 나온다. 신화가 설화로 돌아서는 지점이다.

91 즐거운 상상력에 민족적 쇼비니즘이 끼여들면 곤란하다. 이런 주장들이 대체적으로 처음에는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찾는다는 그럴듯하면서 거창한 명제 아래 시작한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는 대목에 이르면 김일 선수 박치기를 보듯이 흥분하고, 흥분하다 보면 사실과 상상을 혼동하며, 나아가 그렇게 흥분하는 심리란 열등감의 역설적 표현에 지나지 않아 보여 뒷맛이 개운치 않다. 살아 있는 역사란 그런 의미가 아닐 것이다.

92 제8대 아달라왕이 즉위한 지 4년은 정유년이다.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연오가 바다에 나가 해초를 따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가 나타나 그를 태워서 일본으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는 비상한 사람이다”라고 하여, 이내 왕으로 삼았다.

96 해와 달을 섬긴 사람들의 이야기

일연은 승려다. 승려 생활을 구름이나 강물처럼 머물러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 운수행각이라고 한다. 일연 또한 거기서 예외일 수 없었고, 그래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았지만, 13세기의 혼란스런 고려 사회가 그 삶을 더욱 모질게 했다.

98 일관이 이르기를 ‘일월지정’이라 했다. ‘정’을 편의상 ‘정령’이라 번역했는데, 이 의미에 주목해 보자.

101 정령의 의인화야말로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사람이 사는 세상의 사람으로 바뀐 이 같은 이야기 구조는『삼국유사』전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곰이 사람으로 바뀌는 단군 신화에서 시작하여 호랑이가 아름다운 처녀로 바뀌는 김현의 전설까지 다양하게 퍼져 있지만, 여기 해와 달의 정령을 사람으로 설정한 데서 아름다움은 극치를 달린다.

111 제상은 왕명을 받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임금이 욕을 보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쉽고 어려움을 따진 다음에 행한다면 충성을 다한다 하지 못할 것이요, 죽고 사는 것을 가린 다음에 움직인다면 용맹스럽지 못하다 할 것입니다. 저는 비록 불초한 몸이오나 명령을 받들면 행하겠습니다.”

114 “제가 만약 같이 간다면 왜인들이 알고서 쫓아올까 저어됩니다. 바라건대 저는 남아서 쫓아가는 것을 막을까 합니다.”

“이제 나는 그대를 부모 형제와 같이 여기게 되었소. 어찌 그대를 버려두고 나 혼자 돌아간단 말이오.”

“저는 공의 생명을 구하여 대왕의 마음만 위로한다면 족합니다. 어찌 살아남기를 바라겠습니까?”

115 “차라리 신라 땅 개돼지가 될지언정 왜나라의 신하가 되지는 않을 것이오. 차라리 신라 땅에서 갖은 매를 맞을지언정 왜나라의 벼슬은 받지 않겠노라.”

117『삼국유사』의 「기이」편은 왕의 재위 순대로 엮겼다. 그러면서 그 왕대에 일어난 일이나 특이한 사람을 하나 소개하고, 그것이 제목을 만드는 재료가 되기도 한다. ‘미추왕 죽엽군’이라고 하면, 미추왕 때의 죽엽군 사건을 쓰면서, 미추왕의 재위 기간을 정리한 것이다. 자질구레한 여러 가지 일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특징적인 사건 하나로 한 왕대의 성격을 나타내 버리는 것이다. 일연의 특이한 기술 방법이다.

119 일연의 눈은 보다 더 크고 궁극적인 데로 향하여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도 걸리게 했다는 점만 유의하기로 하자.

120 무릇 큰 강은 어느 지류도 마다 않고 받아들여 함께 흐르고, 그러기에 거꾸로 생각하면 큰 강이 된 것과 다르지 않게, 사람도 큰사람이 있는 법이고, 큰사람이 이룬 일에 대대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는다.

이제 우리가 읽을「기이」편의 ‘도화녀와 비형랑’조는 그 가운데서 대표적인 경우다. 점잖은 승려의 신분으로 입에 담기에는 어딘지 껄끄러운 이야기다. 그것을 스스럼없이 해내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일연의 그릇을 헤아려 보는 것이지만 말이다.

139 산신은 원광에게 “이제 법사를 생각하니 오직 이 곳에 있을 만하오. 그러나 자리만 행하고 이타의 공이 없으면, 지금에는 높은 이름을 떨치지 못할 것이요, 나중에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오.

140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옛 유대 성인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은 진리다. 최소한 한반도에서 신라는 그 말씀이 진리임을 입증한 나라였다.

146 “바라옵건대, 우리 부처님께서 화랑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십시오. 제가 늘 가까이 모시고 받들어, 두루 시중을 들겠나이다.”

147 공주까지 가는 길에 발걸음마다 예불을 드렸다는 진자, 정성이 지극하기만 하다. 어떤 일본 사람이 인도까지 성지 순례를 가는데, 오직 걸어서 그리고 한 걸음마다 절 한 번씩 하면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히말라야 성지를 오르는 순례자들이 한 걸음마다 오체투지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이미 우리 신라시대에 진자가 실행했던 정성이다.

그러나 그 같은 정성에도 불구하고 진자의 첫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보고도 보지 못하는, 눈에 씌운 아상은 그토록 완고한 법이다.

149 힌트는 어디선가 주어져 있는 법이다. 그것을 찾고 못 찾고는 지혜의 눈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달렸다. 어떤 점에서 진지왕은 영민한 사람이다.

150 “저희들은 꽉 막혀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한 말씀 주셔서 죽기까지 계를 삼기를 바랍니다.”

“불교에는 보살계가 있고 따로 열 가지가 있다. 자네들은 남의 신하가 된 몸으로 감당할 수 없을 듯 싶다. 그래서 세속오계를 주노라. 첫째, 임금을 섬기되 충성으로 할 것이요, 둘째, 부모를 섬기되 효성스럽게 할 것이요, 셋째, 친구와 사귀되 믿음으로 할 것이요, 넷째, 싸움에 나가서는 물러서는 일이 없을 것이요, 다섯째, 산 것을 죽이되 가려 해야 할 것이다. 자네들은 이를 행하고 소홀히 하지 말라.”

원광은 본디 귀족 출신이므로 유학에도 소양이 깊은 사람이었다.

153 외교가 중요하다는 사실

한반도의 한 족에 치우쳐 농토도 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서는 일본으로부터 안으로는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끊임없는 침공에 시달려야 했던 신라다. 시련 속에서 연단되는 것일까, 그같이 불리한 조건이었기에 살아나갈 보다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몸부림쳤는지도 모르겠다.

185 “짐은 죽은 뒤에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겠소. 그래서 불법을 높이 받들고 나라를 지키겠소.”

“용은 짐승인데 어찌 하시렵니까?”

“나는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 지 오래되었소. 만약 악한 업보 때문에 짐승으로 태어나더라도 짐이 평소에 가진 생각과 맞는다오.”

189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치료되며, 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홍수 때는 맑아지며,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잔잔해지는 것이었다.

195 덧붙이는 신라의 관습이 있다. 예컨대 김유신은 각간이었지만, 더 공을 세우자 대각간이라 했고, 다시 더 공을 세우자 태대각간이라 한 것이 그렇다. 만파식적이라는 이름만으로더 더할 데 없는 보배이나, 거기에 공을 더 세우니 글자를 하나씩 더 붙여 주었던 것이다.

196 곧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를 요리해 먹는다는 말에서 유래한, 권력의 비정한 뒤통수치기를 나타내는 이 말은 이미 비유도 아니다. 권력을 잡은 자의 마무리 과정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모두 이 한마디에 쓸쓸한 제 인생을 깊은 한숨과 함께 무상한 세월로 돌려보냈다.

200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삼국시대를 신라 중심으로 기술했다고 하지만, 좀더 엄밀히 말하면 신라의 김씨 왕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부식과 일연이 다 같이 경주 출신에 김씨여서 였을까?

228 ‘뭇입은 쇠라도 녹인다’는 말은 원문에서 ‘중구삭금’이라 표현되어 있다. ‘중구’란 곧 오늘날의 여론, 또는 민중의 소리라고나 할까? 사람들의 일치된 생각과 거기서 나오는 힘이 저 신물의 가공할 위세를 쳐부술 수 있다는 것이다.

229 정치란 예나 이제나 같은 모양이고, 그것이 핍진한 현실임을 누군들 부인하랴.

향가가 신라 이후에도 승려층에 의해 전승된 것은 고려 초의 스님 균여가 향가를 남기고 있는 점을 통해 입증되지만, 같은 스님인 일연이 ‘삼국유사’속에 공들여 향가를 모아 놓은 점을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다.

월명사 이야기를 하나 보태고 가자. 그를 말하면 ‘제망매가’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노래는 서정 시가로서 신라 향가 최고의 명편이다.

생사의 갈림길

여기 있으니 두려웁고

“나는 갑니다” 말도

못하고서 갔는가

어느 이른 가을 바람 끝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가지에 나고

가는 곳은 모르겠네

아, 미타찰 세상에 만날 나는

도 닦아 기다리리

이후 신라 왕실은 김양상과 김경신등 내물왕계 후손이 다시 왕위에 오르고, 김춘추 직계는 어찌되었는지 알기 어렵다. 쓸쓸한 종막이다.

253 성공하면 충신이요 실패하면 역적인 것이 쿠테타다.

258 고구려의 경우, 연개소문이 도교에 심취하면서 불교가 상대적으로 왜소해져 버린 것도 당나라의 영향이었다. 삼국 통일 후에는 신라에도 도교를 전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여기저기서 보게 되는데, “당나라 사신이 ‘도덕경’등을 보내와 왕이 예를 갖추어 받아들였다”는 그 한예에 불과하다. 사신으로 오고 가는 국가의 공식적인 교류에서 도교가 전면에 등장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269 한번 일어나면 한번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대체로 흥망성쇠를 유전하기 마련이다.

272 대개 ‘기이’편에서 조의 제목은 왕,나라이름,사건을 중심으로 붙여진다. 그런데 ‘이른 눈’이라는 제목은 이것들과는 다르다. 일찍 눈이 내렸다는 제재도 묶은 것이다. 게다가 한 왕대의 일이 아니라 여러 왕대에 걸쳐있다. 같은 제재를 여러 군데서 찾아 한 자리에 묶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메시지를 표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객관적 사실만 나열시켜 놓고, 읽는 이에게 그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일종의 상징적 기술임을 알 수 있다.

280 우리 옛 이야기 속의 용은 그다지 나쁜 역할을 맡지 않는다.

284 신라 헌강왕대는 사치가 극성했지만 바야흐로 기울어 가는 시기였다. 엄연한 유부년가 외간남자와 정을 통하는 이 장면에서 당시의 사회상을 읽을 수 있다. / 일연은 역사적으로 사실로서 광란스런 왕들의 혈전을 쓰는 것보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한 토막으로 더 실감나게 당시 모습을 전해 준다. 그것이 ‘삼국유사’다.

287 신라의 멸망 원인 가운데 무엇이 선두에 설까? 나는 무엇보다 ‘ 골품제의 동맥경화 현상’을 내세우고 싶다. 중앙과 지방의 중요한 관직을 성골과 진골로만 채우는데, 그들이 나라일을 맡아 해낼 능력도 의지도 부족해 졌을 때, 신라는 탄력성을 잃고 둔해지기 시작했다.

288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289 거리에 나 붙었다는 ‘다라니’는 일종의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일 것이다. 우리 나라의 1980년대에, 혹독한 군사 정권을 비판하는 데 큰 몫을 했던 노가바의 출생 배경을 생각해 보면, 이 다라니의 유행 경위도 짐작할 수 있다.

293 배를 타고 가던 일행이 풍랑을 만나자, 일종의 제비뽑기로 희생양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구약성서’의 요나 이야기와 닮았다. 물론 배를 타는 계기는 다르지만, 배를 탄 본디 목적과 다른 행로를 밟게 된 이 사람이 결국 구원자의 역할을 하는 것은 비슷하다.

297 신라 멸망의 상징으로 포석정 연회를 든다. 마치 박정희의 마지막 만찬처럼.

302 백성의 입장에서야 누구의 백성이 된들 무슨 상관이랴? 더욱이 넘쳐나는 새로운 힘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 백성의 삶이 더욱 윤택해질 교체라면, 어느 개인의 사유물처럼 정권을 휘둘러 무고한 희생만 초래하는 것에 비길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하늘의 뜻이요,왕조 사회에서 그렇게 표현하는 백성의 힘이다.

303 조선조에 들어 김부식은 사대주의에서도 민족적 주체성에서도 모두 공격을 받았다. 완벽한 중국 중심에 빠져든 한편의 유학자들은 그를 얼치기 사대주의자 정도로 보았고, 실학의 바탕에서 우리 고대사를 새롭게 보려 했던 다른 한편의 유학자들은 민족의 주체성을 모르는 지식인 정도로 보았다.

304 일연은 오히려 올바른 김부식 팬이었다. 좋은 부분을 인용하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엿보이고, 좋지 않은 부분을 놓고 비판한다거나 굳이 자기관점에서 해석하지도 않았다. / 신라멸망의 원인으로 김부식이 제시한 불교 비판 부분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 비단 주고 승직을 산 승려들을 비꼬아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말이 능수좌,나선사다. / 자신이 비록 승려지만, 불교의 말폐를 지적하는 것은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이면서 불교가 살아날 길이기도 했다.

307 일연의 수고와 노력으로 그나마 우리가 알게 되는 삼국시대의 살아 있는 역사를 고마워하면서도 아쉬움은 분명 있다. 그것은 일연이 삼국의 다른 두 축을 이루는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에 어찌 그다지 인색했는가다. 다만 시조 왕의 사적을 잠깐 언급한 다음, 나머지는 신라에 비해 옹색하기 그지 없다. / 고구려의 전성기만큼이나 우리 역사가 중국에 떳떳한 적이 드물었으며, 일본의 초기 왕실이 백제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상정했을 때 그 아쉬움은 커진다.

325 ‘일본’이라는 국호의 최초 사용을 보여 주는 의미 있는 대목이다. 종주국 백제의 멸망 후 7년, 국호의 변경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그것은 백제에 대한 일본 왕실의 독립선언으로 보인다.

326 그 이후 일본의 왕실에서 백제의 흔적 지우기는 끈질기게 계속되었다./나는 그것을 일본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 독립의 비원으로 본다.

327 맹랑하기 그지 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누구도 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난국을 돌파하는 꾀는 맹랑한 자에게서 나온다.그런 명랭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330 영웅은 자기가 타고난 비법한 재주로 고난을 극복해 낸다.

331 어떤 목적한 상황으 이미 이룬 것처럼 상정하고 있다는 데에서 참요 도는 예언요

337 재미있는 이야기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나 전파되기 마련이고,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야기가 서로 비슷한 경우마저 있기도 하다.

343 미륵불은 여성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미륵이 본디 남자였지만 이렇게 바뀌는 것은, 미륵불이 자비와 영원불멸의 생산을 의미하는 여성적인 성격을 가진 데다 남성인 석가불에 대응하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 미륵은 자비의 부처다.

369 가야는 고대 한반도의 남부를 설명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이곳은 완충지였다. / 그런 가야의 역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오직 일연의 손에 의해 거둬들여진 이 짧은 기록 하나가 전부다.

370 가야는 규모 면에서 작은 나라였다. 나라의 이름만 아니라 임금과 신하의 호칭 또한 없었으며,다만 아홉 사람의 9간이 다스리는 100호에 7만 5,000명의 인구가 전부였다.

396 종교를 처음 전할 때 의술이 따라다닌 것은 동서의 고금을 두고 다르지 않음 모양이다.

402 일연은 삼국의 역사에서 신라를 중심에 두었다. 왜 그랬는지 그 기준은 ‘삼국사기’와 비슷할 터이나, 한가지 추가한다면 불교역사주의적 의식이 작용했다는 점도 앞서 지적했다. 신라의 불교는 신라 한 나라에만 그치지 않는 한국 불교의 화두다. 한국의 불교라는 강물은 신라에서 물꼬를 터서 흘러 나왔다. 일연은 그 점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413 백제에 비한다면 고구려에 대한 일연의 태도는 노골적으로 비판적이다. 도교를 신봉하면서 상대적으로 불교가 쇠퇴해진 데 대한 아쉬움이 컸겠지만, 굳이 그것만으로 이유를 댈 수야 없다.

414 고구려의 후반기에 도교가 번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적는 일연의 태도는 현저히 불교와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입장이다. 나라가 망한 이유가 불교를 멀리하고 도교를 가까이 한 것 때문이라는 결론에서 그 의도는 명백해 진다

415 삼국의 흥망을 불교역사주의적 관점에서 보려 했던 일연의 태도는 의천의 이 같은 입장과 더불어 결론 내려지고 있다.

428 불교미술사학자들은 불상의 출현을 서기 1세기경의 쿠샨왕조 때로 보고 있다./ 아쇼카왕때 벌써 불교가 전해졌고, 그리스 조형 예술의 기술도 들어와 있었다. 거기서 불상은 탄생했다.

434 중국과 인도의 불교 문화 그리고 가까이는 백제로부터 들어온 기술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인 곳이 황룡사다.

435 싸움이나 싸움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천지가 평화로워지는 꿈, 그것은 일연이 구층탑을 보며 꾼 것이다.

439 일연은 문수 신앙의수행법의 하나인 문수오자주를 염송하며 감응이 있기를 기다렸는데, 과연 벽 사이에서 문수보살이 나타나 피난처를 알려주었다.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기는 다음 해 여름이었다. 우리는 이 같은 기록을 통해, 일연의 불교 사상이 문수 신앙으로부터 시작한 것은 아닌가, 잠정적인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문서 보살을 흔히 출가한 보살이라 한다.

454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그렇게 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인연은 그렇게 오는게 아닐가?

456 한 시인이 쓴 ‘절’

내 마음 오늘

절에 가서 절을 한다.

잎 한 장 한 장 만들어지는 동안

온기가 없어 차가운

오랜 그 옛 마룻바닥에 엎드려

일어난다 다시 쳐다본다

즐겁고 깨끗하고 늘 있는 나는

지난 봄이 사라진 숲 속에

가을의 마지막 시간 속에

덧없음만 항상하고 아름다워라

나 이길로 다시 돌아오라고

새싹의 아픔으로 돌아가라고

잎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동안에도 모든 것 향해 절할 수 있도록

내 마음 오늘

절하며 간다.

476 ‘부처를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야 하고, 진리를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찾는다’ 는 말은 평범 속의 비범이다.

480 성불을 돕기 위해 나타나는 관음보살이 흔히 여자의 모습인 것은 ‘삼국유사’안에 여기 말고도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여자의 모습인가는, 일연이 결론 부분에서 “여자는 부녀자의 몸으로 나타난 섭화자라 할 만하다. ‘화엄경’에서 ‘마야부인 선지식이 열한 군데에 살면서 부처를 낳아 해탈문을 환상했다’는 거소가 같다. 이 이야기에서 여자가 아이를 낳은 숨은 뜻이 여기에 있다” 고 말한 데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자비롭고 희생적인 어머니의 정성과 같은 성격을 가진 이가 관음보살이다. 이는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진 다음 더욱 강화된 생각이라고 한다.

496 다른 경로를 통해 나중에 알게 되는 이 우연의 메커니즘, 사실 우리들의 만남은 대부분 이렇다.

497 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 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

499 오늘날 우리가 선종이라 부르는 불교의 한 방식은 당대에 이단이나 마찬가지였다. 선종 초기 중국 쪽 사정과 마찬가지고 신라 땅에서도 금기시되거나 폄하 받기 일쑤였다. / 처녀가 남자와 관계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이야기는 ‘신약성서’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504 세상살이의 헛됨을 비유하는 말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단지몽(邯鄲之夢) / 온갖 영화와 패배를 맛보는 꿈을 꾸고 깨어보니 밥이 되어 있었다는데, 한 세상사는 온갖 영고성쇠가 한솥밥 끓는 사이에 불과하더라는 이 절묘한 비유

508 좋은 시간 금세, 마음은 어느새 시들고

근심은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

이제 다시 메조 밥 짓다 깨닫던 이야기 들추지 않아도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 꿈인 걸 알겠네.

허망한 줄 모르면서 이전투구하고, 알면서도 뭔가 이뤄보려 악착을 부리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이다.

513 기록자가 자기 시대의 이념만을 고집해 당대의 생생한 자취를 남겨 주지 못한 점, ‘삼국사기’는 거기서도 비판 받을 여지가 있다./ 불교는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종교다. 무릇 2천 년을 바라보는 오랜 역사에다, 거기 누벼진 사연이 많기도 많아, 불교야말로 이성으로만 받아들이는 어떤 형식으로서가 아닌 우리들 심성 깊숙이 내린 튼튼한 뿌리다.

515 (원광) 본디 유학과 도학을 배웠으나 좀더 깊은 공부를 위해 중국 남북조 시대의 남쪽 진나라에 왔다가 불교를 만난다. “평소 세상의 경전에는 익숙해 이치를 궁구하는 데는 신통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불교 공부를 하자 도리어 썩은 풀 같았다. 헛되이 유교를 공부하는 것이 실로 생애의 두려움으로 다가와” 드디어 출가한다.

518 자리(自利)만 행하고 이타(利他)의 공이 없으면, 지금에는 높은 이름을 떨치지 못할 것이요, 나중에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오.

521 일연은, 이미 13세기에, 이 땅에 뿌리내린 불교의 모습을 주체적으로 인식한 이였다고 보아 무방하리라.

530 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다.

537 무애의 원효가 지향하는 바는 관념이나 치장으로서의 불교가 아닌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불교였다. / 어려운 불교의 교리를 쉽게 풀고, 누구나 가까이 하는 불교를 만들었다.

538 고고한 학승만으로, 폐쇄적인 선승만으로 아닌 모두의 승려, 무엇에도 얽매지 않았던 인간 원효를 가장 잘 바라본 이는 아마도 일연이 처음 아니였을까?

541 태어나지 말 것을, 죽음이 괴롭구나.

죽지 말 것을, 태어남이 괴롭구나 /

죽고 남이 괴롭구나.

543 원효는 대체로 낮은 자리에 사는 사람들의 친구였고, 우리는 이런 장면들에서 바보 같은 원효가 진정 바보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이다.

551 원효의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567 “솥 안의 국 맛은 한 점 고기로도 충분하다”

569 (인도) 힌두 문화의 오랜 전통 속에서, 이 세상의 영화보다 저 세상의 부귀를 더 갈망하는 그들의 심성 속에서는 헛된 세상의 욕심을 버린지 오래고, 심지어 고통스럽게 사는 이 세상을 더 달가워한다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된다.

586 지장보살은 누구인가? 지장은 대지의 태, 곧 땅속에 묻어 있는 어떤 것이다. 땅이 지닌 덕을 의인화하였다고도 하는데, 지장보살은 현세의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과 함께, 죽은 이들의 구제자가 된다.

590 ‘삼베를 붙들고 황금을 버린다’

604 더 극적이어서 가치가 높다는 말은 아니다. 평범한 속에서도 진리는 엄연히 존재하고, 그래서 깨달은 무상의 존재들은 얼마든지 있다.

656 정작 큰 스승들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법이 드물다. 진리는 단순한 법이기에 그런 것일까, 유독 진신과의 만남을 중요시 여기는 불교에서 그 만남은 곧 진리의 깨달음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겠는데, 단순하기만 한 진리를 전하는 진신은 이렇듯 슬며시 다가온다.

670 고려는 기본적인 국가 체계를 유학의 이념에 두었다고 해야한다. 불교의 권위는 여전했으되 신라만큼 그렇게 철저하지도 절대적이지도 않았다.

673 불교적 인식의 숨음과 드러남을 이해하자면 보다 복잡한 변증법적 사고가 필요하다.

686 숨되 숨는 것이 아니요, 드러나되 드러난 것이 아니라는 불교의 변증법적 피은의 논리란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699. 복을 빌어 받되 받은 다음에는 제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704 (향가) 우리 고대 가요 중에 그 정형성을 최초로 획득했으며 지극히 높은 정신 세계를 구축한 시가 장르

711 향가의 최고의 작품, 충담사의 ‘찬기 파랑가’

열어 제치자

벗어나는 달이

흰구름 쫓아 떠간 자리에

백사장 펼친 물가에

기랑의 모습이 겹쳐져라.

일오천 자갈벌

낭이 지니시오던

마음의 끝을 쫓노라

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

눈이라도 못 덮을 화랑이여

725 일연, 혼미 속의 출구

순수 불교의 자리에서 약간 벗어난 듯한 일연의 태도에서 우리는 괴승의 요소보다는 시대가 요구하는 어떤 점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선각자적 태도를 발견한다.

728 밝음이 어둠이요 어둠이 곧 밝음이며, 어둠과 밝음은 종국에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의 깊은 진리가, 일연의 개명 과정에는 숨어 있다.

733 이른바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선 선승의 눈에 비친 시대상은 한마디로 파탄과 혼란그 자체였다 / 새롭게 서야 할 질서, 그것을 일연은 불교 안에서부터 보았던 것은 아닐까? / 새로운 시대상을 창출한다는 명제 앞에서 다른 산문의 경전을 해석하는 일이나 다른 산문의 고승을 스승으로 삼는 일이 무엇이 대수이겠는가. 오히려 거기에 가르침의 본질이 있다면 가서 배워야 하고, 그 업적을 널리 현창하여야 하는 일이다.

734 본질 앞에서 방편은 수정되어야만 한다.

741 일연은 종교와 문학등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으려 한 혁신적 승려였다.

3 내가 저자라면

“삼국유사는 중국에 없는 신화만 모았습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건국신화부터 중국신화의 틀을 그대로 가져가서 이름만 바꿨지만, 삼국유사는 중국 얘긴 안하겠다는 원칙을 만든 것 같습니다.”(2006년 오마이뉴스 인터뷰) 그렇다. 일연은 고려 무신정권의 혼란스러움과 몽고와의 전쟁 등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갈등하던 한반도에 ‘민족적 자존심’을 다시금 살리려 만든 것이 바로 일연의 삼국유사이고, 고운기가 다시 복원한 것이리라.

이런 책 류를 보면 크게 세 가지이다. 원문에 충실한 책, 원문을 풀어서 옮기되 해제없이 내용만 쉽게 풀어서 쓴 책, 그리고 시대적 배경 등을 곁들여 해설서로 쓴 책이다. 이 책은 바로 마지막의 유형에 속한다. 단군신와에 대한 저자의 의미 부여로 시작하는 책은 단순히 설화를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삼국유사의 구성 형태에 담긴 의미부터 역사적 배경 등이 왜 우리에게 소중한지를 설명한다.

감동적인 부분은,

왕과 신하간의 충성이 매우 극명하게 나타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박제상이 일본에 볼모로 간 눌지왕의 동생을 구하려 간 이야기이다. 이는 영웅적인 사내의 의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또, 모자간의 사연이다. 저자는 진정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즉, 효도를 마치고 출가를 하고자 하는 아들에게, “부처님의 법을 만나기는 어렵고 인생은 짧은데 효도를 마친 다음이라니? 그건 너무 늦다. 내가 죽기 전에 도를 듣고 깨우쳤다는 소식을 듣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가거라.” 참으로 대단한 위인들이시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책에 대한 장점은,

먼저, 알기 쉬운 해설과 문체이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역사서에 대해 잠시나마 접하게 할 수 있게 한다. 초등학생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단어와 해석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삼국유사라는 고대서를 친숙하게 한 것 만으로도 고운기와 양진이 업적은 크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외면하고 있었던 신화에 대한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게 하였다.

둘째, 사진을 배치함으로써 이해도를 높이고 흥미를 가미시키는 효과가 있다.

세째, 후반부에 향가에 대한 자료나 일연의 삶에 대한 평가는 이 책의 원저자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아쉬운 점은,

첫째, 이 책이 신라위주로 기록되다 보니, 고구려와 백제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빈약하다. 지면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 부분에 대해 더 배려하여 기술하였으면 한다.

둘째, 사진의 많은 나열이 도움이 되기는 했으나 너무 많다 보니 읽어나가는 데 속도감이 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았다.

셋째,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은 단군시대부터의 지형들을 이해하겠으나 부분 부분마다 당시의 지도를 곁들여 놓았으면 사진 만이 아니 지도를 통한 지식의 흐름을 원활히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넷째, 설화와 역사를 함께 기술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으나, 설화는 설화대로 역사는 역사대로 따로 떼어서 풀어가는 방식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섯째, 연도 표기에서 서기 만을 표기할 것이 아니라, 단기도 병행하여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를 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섯째, 불교 용어가 많이 나오는 데 이해하기 힘들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상세한 풀이를 해 주었으면 가독성를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IP *.142.217.241

프로필 이미지
yves saint laurent
2011.05.31 18:22:52 *.111.182.3
Wear your high heels in a sitting position and around the gianmarco lorenzi shoes home first. After a period of gianmarco lorenzi pumps time they will become comfortable and you gianmarco lorenzi boots will probably forget you are even wearing them.If you are giuseppe zanotti shoes planning to wear heels outdoors or at a club on the weekend, wear giuseppe zanotti boots them around the house for a few hours first until they feel natural.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북리뷰 안보이시는 분들 일단 파일첨부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4] 관리자 2009.03.09 91804
418 [북리뷰 13] 난중일기 [6] 신진철 2010.05.31 4486
417 [북리뷰 12] 열정과 기질 Creating Minds [4] 신진철 2010.05.24 4552
416 리뷰따라하기-12-<열정과 기질:하워드 가드너> [3] [4] 청강 경수기 2010.05.24 4449
415 5-4리뷰 열정과 기질: 하워드 가드너, 문용린 [3] 윤인희 2010.05.23 4431
414 [북리뷰 11] 역사 속의 영웅들 Heroes of History [4] 신진철 2010.05.19 4689
413 [북리뷰 11] 역사 속의 영웅들 Heroes of History [1] 신진철 2010.05.17 4461
412 리뷰따라하기-11 < 역사속의영웅들:윌듀런트 > [1] [2] 청강 경수기 2010.05.17 4503
411 내가 뽑은 최고 글빨의 작가 [4] 이희석 2010.05.16 4505
410 5-3리뷰 역사속의 영웅들 윌듀런트 [1] 윤인희 2010.05.16 4512
409 리뷰따라하기-10<카를융:기억 꿈 사상>-밀린숙제5 [10] 청강경수기 2010.05.14 4467
408 리뷰따라하기-9<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 [5] 청강 경수기 2010.05.11 4460
407 [북리뷰 10] 삼국유사 [4] 신진철 2010.05.11 4711
» 5-2리뷰 우리가 정말 알~ 삼국유사(고운기) [1] 윤인희 2010.05.10 4698
405 꿈꾸는 다락방과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를 보고… [1] 미나 2010.05.10 4497
404 나를 수다쟁이로 만든 『아웃라이어』 [6] 이희석 2010.05.07 4470
403 [외식경영] 오진권의 맛있는 성공 [9] 향인 이은남 2010.05.06 4944
402 리뷰따라하기-8<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밀린 숙제4 [10] 청강 경수기 2010.05.06 4480
401 리뷰따라하기-7<사기열전: 사마천> [1] 청강 경수기 2010.05.03 4545
400 [북리뷰 9] 사기열전 史記列傳 [1] 신진철 2010.05.03 4604
399 5-1리뷰 사기열전 [1] 윤인희 2010.05.02 4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