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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4일 09시 03분 등록
 열정과 기질-20100524


1. 저자에 대하여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1943∼)

하워드 가드너는 지능과 리더쉽, 창의성의 근본을 밝히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는 미국내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이다.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 이론을 창시하면서, 이젠 세계가 주목하는 학자의 반열에 이미 들어선 인지주의 심리학의 무시할 수 없는 학자이다. 그는 1943년 미국 스크랜톤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아 피아노 치는 것을 즐긴 그는  음악이 자기 인생에 걸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말할 만큼 음악을 사랑한다.  하버드 대학에서 발달심리학과 신경학을 공부하였고, 하버드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어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현재는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이면서 보스턴 의과대학의 신경학 교수를 겸직하고 있다. 하워드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은 이미 일반인들도 알고 있는 용어가 되었고, 많은 국가에서 관련 분야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그의 연구 결과는 교육학과 심리학, 인지과학 분야의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기반이론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그는 현재 하버드 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미래의 교육에 대한 대안을 연구하는  <프로젝트 제로(Project Zero)> 연구소의 책임자이자 운영위원장이다. 가드너는 줄곧 인간의 정신능력 발달과 교육에 관한 일관된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는데, 세계의 리더들과 창의적인 결과를 산출해낸 걸출한 인물들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며 많은 논문 뿐 아니라 일반인이 읽을 수 있는 교양서적을 많이 출판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 책, <열정과 기질 Creating Minds>과 인지과학의 지평을 제시한 <마음의 틀 Frames of Mind>, <20세기를 움직인 11인의 휴먼 파워>, <다중지능 이론>, <다중지능: 인간지능의 새로운 이해>, <비범성의 발견>, <예술, 마음, 두뇌 Art, Mind and Brain>, <교육받지 않은 마음 The Unschooled Mind> <통찰과 포용 Leading Minds> <지능심리학> <체인징 마인드Changing Minds>등 18권이 있다.

가드너의 지난 삼십여년간 연구 성과는 지능과 창의력, 그리고 리더십에 관한 우리의 생각에 혁명을 일으켰는데, 그 탁월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 맥아더 프라이즈 펠로쉽을 수상했고, 1990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루이스 빌 그로메이어 상(교육 분야)을 받았으며, 2000년에는 구겐하임 재단 펠로십을 수여받았다. 또한 세계 20여개 대학으로부터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에 미국의 국제정책시사지인 [포린 폴리시]와 [Prospect]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100인에 선정되었다.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의 기반이 되는 열가지 다 차원 지능은 다음 표와 같다. 그는 다중지능을 기반으로 세계의 리더들과 예술가 학자들을 교류 비교하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하워드 가드너의 열가지 다차원 지능(출처: 지능 심리학)

지능

이 영역의 지력이

최고 수준으로 발휘된 상태

핵심적인 구성요인

논리 수학지능

(Logical-Mathematical Intelligence)

과학자, 수학자(퀴리부인, 파스칼), 건축 설계자, 엔지니어, 회계사

수학, 과학에 있어서 논리적 수리적  도안을 식별하는 능력과 민감성, 추리력에 대한 긴 연속물을 다루는 능력, 컴퓨터 언어, 관찰된 현상에 관하여 가설을 검증하고 구안하는 능력 

언어지능

(Linguistic Intelligence : 말하기, 쓰기)

시인, 언론인, 작가(버지니아 울프,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킹목사) 명 강의자(웅변가), 법률가, 정치적 토론가

소리 음률과 단어의 의미에 대한 민감성, 언어의 상이한 기능에 대해 민감하고 효과적으로 언어를 활용하는 능력

음악지능

(Musical Intelligence)

작곡가, 음악가(아마데우스, 베토벤, 장한나) 악기 제작자, 음악 평론가

리듬의 가락, 음색을 식별하고 연출하는 능력, 음악적 표현의 형식을 식별하는 능력, 음악을 감상, 이해, 창작하는 능력, 미성으로 성악, 악기 연주 능력, 악기 제작 능력 

공간지능

(Spatial Intelligence

항해사, 우주항공, 건축가, 디자인, 조각가, 화가, 체스선수, 세트디자이너, 사진사, 비디오 그래퍼

시각, 공간적 세계를 정확하게 지각하고 그리며, 최초의 지각의 변형을 시도하는 능력, 마음속으로 시각적 대상을 조작하고 상상하며, 자세한 것까지 헤아리고 주목하는 능력

신체운동지능

(Bodily-Kinesthetic Intelligence

무용가, 운동 경기자, 숙련공, 장인, 예술가, 외과의사, 운동선수, 사냥꾼,  어부, 농부

신체 움직임을 제어하고 숙련된 몸짓으로 대상을 다루는 능력

대인 지능
(Interpersonal Intelligence)

치료자(정신과의사), 세일즈맨, 교사, 전문 상담 치료자, 목사, 사회사업가, 배우, 정치가, 간호사

상대방의 기분, 동기 유발, 기질(체질), 긴장, 생각, 영향력, 다른 사람의 욕구에

적합하게 대응하고 식별하는 능력, 인간 친화능력

자성지능

(Intrapersonal Intelligence)

심리치료사, 종교지도자, 철학자, 작은 부분까지 세밀하게 정확한 자기 인식을 하는사람(예: 프로이트)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의 기초가 되는 능력, 자신의 강 약점 욕구 지능 동기 느낌 감성에 관한 지식(자아 정체성)이 행동을 자도, 자신을 변화시키는 능력

자연지능

(Naturalist Intelligence

자연 환경 보호자, 식물학자, 동물학자, 기상학자 

자연세계의 오묘하고 위대한 섭리, 양태를 이해, 보호, 이용하는 능력

영성 지능

(Spiritual Intelligence)

수도자, 목사, 승려, 설교자, 수녀

인간 생명의 기원, 내세 영혼의 세계에 관심

실존 지능 (Existential  Intelligence)

철학자, 신학, 종교학자, 심리학자

실존의 의미 발견과 목적에 많은 관심과 탐구, 민감성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감역자의 글 -창조성의 비밀을 풀다

[P. 5] 시대적 화두이자 가장 경쟁력 있는 특질은 다름 아닌 창조성이다.

[P. 5] 아놀드 토인비는 이미 20세기 초반에 “역사의 변화는 언제나 창조적인 소수에 의해 주도된다”며 창조성의 중요성을 갈파했다.

[P. 6] 그는 창조적 거장들에 대한 연구에 수십 년간 몰두해 왔는데, 그들이 IQdhksms 무관하게 수많은 혁신적 위업을 달성했음을 밝혀냈다. 

[P. 6] 이 책은 다중지능론을 주창했던 저자가 실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창조성의 비밀을 역동적으로 풀어낸 교양서이다. 이는 창조성의 본체를 밝히고자 출간된 근간의 어느 책보다도 깊고 방대하다. .....다중지능이라는 정신 능력의 이론 체계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갚고, 창조성과 관련된 실제 개인들의 심리적, 사회적, 시대적 조건 모두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넓으며, 영역이 서로 상이한 창조적 거장들을 일곱명이나 한꺼번에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방대하다.   
[P. 6] 책에는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엘리엇, 그레이엄, 간디 등 일곱 명의 창조적 거장들의 파란만장했던 삶이 등장한다.  

[P. 6-7] 이 책은 인간의 심리적 기질과 그가 처한 주변환경, 그리고 시대적 특성을 곁들여 창조성의 본질을 날카롭게 조명해낸 최초의 분석서이다.

[P. 7] 전통적으로 창조성에 대한 연구는 한 천재가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다르고 특이한가를 밝히는 특이성 연구(idiographic)이거나, 여러 천재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유사점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공통성 연구(nomothetic) 중 어느 한쪽으로 진행되었다. 가드너는 이 두 입장을 종합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창조적 업적을 낸 창조자를 선택한 후, 이들 인물들의 ‘특이성’을 자세하게 검토하고 그 속에서 ‘공통성’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P. 7-8] 이 책의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창조성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창조자의 배출을 가능하게 한 현대사회(modern era) 라는 시대적 특성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먼저 그 첫 번째인 ‘창조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서, 가드너는 이 질문을 ‘창조성이란 어디에 있는가?’ 로 전환시켜 대답하고자 한다. 그는 <개인(individual)-일(The work)-타인(other person)>이라는 창조적 소재 모형을 제시한다. 이 모형에 따르면 개인은 내부에 어떤 분야의 대가(master)가 될만한 소질을 싹으로서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것만으로는 창조성이 발휘되는 성인으로 성장해 가지 못하고, 우선 그러한 소질을 심화하고 강화시킬수 있는 적절한 일의 체험기회(교육, 훈련)를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며, 이러한 체험의 과정에서 타인(가족, 친구, 경쟁자, 후원자 등)으로부터 격려와 지원을 받는 의미 있는 인간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P. 8] 그는 창조성을 단일 능력으로 보는 입장에 반대한다. 무든 분야를 아우르는 창조성이 존재한다고 보지 않고, 창조성에도 종류가 잇다고 보는 것이다. 아인슈탕니은 모든 분야에서 창조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논리-수학 영역에서만 뛰어났다.간디는 인간친화 영역에서 창조성이 뛰어났으며, 마사 그레이엄은 신체 운동 영역에서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에서 엘리엇은 언어에서 프로이트는 자기 성찰 영역에서 그리고 피카소는 공간 영역에서 창조성이 돋보였다는 것이다,

[P. 8-9] 가드너가 보기에 한 개인 속에 잠재한 창조성의 본질은 지능적 요소와 기질적 요소의 특이한 조합이었다. 피카소의 시대에 피카소의 주변이나 그가 모르는 사회에는 그와 유사한 소질과 재능을 가진 사람이 수백명 이상 존재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유독 피카소만이 그런 창조적인 작품을 그렸고, 또한 명성까지 얻을 수 있었을까?
[P. 9] 개인의 구체적인 경험과 환경을 들여다봄으로써 공통적 패러다임을 추출해낸다.

‘10년 주기론’은 그 중 하나이다. 창조적 대가를 연구한 결과 그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10년간의 준비를 거쳐 창조성이 성숙하고, 10년간 창조성을 발휘하며, 다음 10년간 그 창조성을 다시 다른 분야로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P. 9]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이 대도시 외곽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산업 혁명의 비참한 모습을 비껴간 지역에서 유년기를 보내다는 점이다, .......근면과 드높은 성취라는 부르조아적 가치를 체험했을뿐더러...... 끔찍한 상처는 받지 않았던 것이다. 



들어가는 글 - 창조적 거장들의 삶을 지배한 실함정신

[P. 13] 이 책은 내 연구의 정점이자 출발점이다. 창조성이라는 현상과 역사적 실례(개별 사례)에 대한 평생 동안의 관심을 하나로 모았다는 점에서는 정점이며, 인간의 창조적 기질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는 출발점이다. 이 새로운 연구방식에서 나는 인문학의 전통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적 전통에도 의지했다.

[P. 15] 왜 어떤 아동들은 음악가나 시인, 혹은 화가로 자라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지, 그리고 이런저런 예술적 재능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떤 방식으로 개발되거나 혹은 위축되는가 하는 문제였다.

[P. 15] 사람들의 삶의 어느 영역에서도 창조성을 발휘할 수가 있고, 창조적이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의 작품들 중에는 떠들썩한 활기와 아름다움, 그리고 지복의 산간을 표사한 훌륭한 예술도 있지만, 한편으로 너무 지루해서 하품만 나오는 것들도 있다. 이처럼 창조성과 예술이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P. 16] ‘창조성이 대체로 뛰어난‘ 개인을 찾는 연구나 ’창조성‘을 시험하는 수단을 개발하는 작업이 내게는 헛된 노력으로 보였다. 지능이 다원적이라면, 창조성은 한층 더 다원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P.17-18] 프로이트가 언어(linguistic)지능과 논리(logical) 지능이 뛰어난 경우라면, 피카소는 공간(spatial) 지능과 신체(bodily) 지능이 우수한 경우이다. 두 사람이 자신의 지능을 활용한 방법도 굉장히 독특했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창조성이 어떻게 상이한 지능을 통해 발현되는가 하는 문제였고, 이 난해한 문제를 해결할 요량으로 서로 다른 지능을 대표하는 몇 명으 인물을 비교하고 검토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P. 18] 이 책을 쓰는 일을 애정이 깃든 작업이었다.


제1부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 취리히에서의 우연한 만남
[P. 35] 하지만 내가 지목한 일곱명의 창조적인 인물들과 그들이 활약한 분야가 현대의 다양한 판본을 창출한 수많은 후보 집단에서 공정하게 선택한 대표적인 존재라는 주장에는 그다지 이의가 없을 것이다,

[P. 35] 중요한 점은,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 파카소, 스트라빈스키, 엘리엇, 그레이엄 그리고 간디의 창조적 도약을 이해할 수 있으면, 분명 인간 창조 행위에 담긴 여러 가지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P. 36] 나는 세 가지 중요한 목표를 염두에 두었다. 첫째, 나는 대체로 1885년에서 1935년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이들 각자가 살았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다. 이를 통해 그들 나름의 특별하고 종종 기묘하게도 보이는 지적 능력과 성품, 그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 그들이 제기한 창조적인 의제, 힘겨운 노력, 그리고 그들이 성취한 업적의 특성을 밝힐 생각이다.  

[P. 36-37] 두 번째 목표는 창조적인 행위(기획)의 본질에 관해 대략적으로나마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세심하게 선택한 인물의 획기적인 업적을 좀 더 잘 이해하면, 분야에 상관없이 인간의 창조적인 행위를 통어하는 법칙을 추려낼 수 있을 것이다,   

[P. 37] 마지막 목표는 심한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어도 활기에 넘쳤던 시대, 즉 내가 ‘현대(the modern era)’라고 부르는 시대에 관해서도 내 나름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P. 38] 게다가 나는 창조적인 혁신에는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이 결합해 있다고 생각한다. 20세기의 고유한 천재들은 어린 아이의 감수성을 체화하고 있었다.
[P. 39] 혁신적인 인물이 어린아이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간파하는 것도 창조성 연구에서 매우 주요하다. 

[P. 40] 모든 창조적인 행위는 우선 한 개인과 객관적인 작업 세계의 관계에서 생겨나고, 그 다음 두 번째로 그 개인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서 성숙한다는 점이다.

[P. 41] 시대를 통틀어 프로이트만큼 전인미답의 영역을 고독하게 개척했던 연구자는 거의 없었다.

[P. 41] 나의 첫 번째 사례 연구에서는 고독한 탐구자로 출발해서 절친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아가 새로 탄생한 분야에 소속된 구성원들과 상호작용을 하게 된 변화의 궤적이 기본 틀이 된다,

[P. 41] 그는 당시 물리학의 지배적인 패러다임과 의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획기적인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대신 그는 제1원리로 돌아가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단순하면서도 가장 포괄적인 설명 원리를 찾고자 했다.

[P. 42] 그가 어린시절에 품었던 수수께끼-나침반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 광선에 올라타는 ‘사고 실험’ - 는 훗날 그의 가장 혁신적인 과학적 업적을 탄생시킨 원동력이었다. 따라서 나는 유년기에 흔히 품게 마련인 문제와 정교한 지적 분야에서 제기되는 까다로운 도전 사이에 펼쳐지는 지속적인 변증법적 대화를 강조하면서 아인슈타인을 살펴 볼 것이다.

[P. 42] 유년시절부터 그는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10대 후반이 되자 당대의 다른 어떤 화가들 못지않게 훌륭한 솜씨를 드러냈다. 이것이 바로 75년간의 생애에서 그토록 왕성한 활동을 해낸 토대이다. 피카소는 일찍이 눈부신 솜씨를 발휘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불후의 업적을 남기게 된 ‘신동’에 대한 훌륭한 연구 대상이다. 우리 시대의 ‘모차르트 수수께끼’라고 할 수 있다.

[P. 43] 그의 창조적인 혁신은 전통적인 분야에 근본적인 변화를 촉진하는 사고를 자극했을뿐 아니라, 무용이나 연극과 같은 인접 분야에도 방향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P. 43] 하나의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기꺼이 이주하는 것은 현대의 두드러진 현상이며, 이 책에서 다루는 창조적인 거장들 역시 다양한 문화에 흠뻑 젖는 것이 필요하고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P. 44] 그레이엄은 이전 시기에 여성에게 부과된 여러 한계를 극복하면서 자기만의 예술 형식을 창조했고, 스스로 단체를 설립하고 자신의 예술적 유산을 남겼다. 

[P. 45] 내 연구에서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는 과학자로서, 내가 논리 수학 지능(아인슈타인의 경우)과 인성 지능(프로이트의 경우)이라 부르는 지능이 우수한 사람들이다. 다른 네명의 대가들은 모두 예술 분야에서 혁신인 도약을 이뤄냈으며, 각기 다른 지능을 대표한다.   

[P. 45-46] 간디는 그가 몸소 관여해서 폭넓게 검토하고 세심하게 실험하면서 인간의 갈등을 폭력 없이 해결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眞理把持) 는 소모적인 대결과 비열한 복종, 그리고 폭력에 대한 호소 없이 귀중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방도를 찾는다.  

[P. 46] 아인슈타인과 피카소의 사례 연구는 아동과 대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프로이트와 스트라빈스키, 간디의 경우는 창조적인 인물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엘리엇과 그레이엄의 사례연구에서는 이들이 활약하는 분야에서 비교적 경계적인위치에 속했다는 사실에 중점을 둘 것이다,

[P. 48-49] 특정한 지능과 성격을 지닌 개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뛰어넘어, 한 시대에 관해서도 일반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이와 같은 헤겔적인 사고방식은 널리 퍼져있다. 헤겔적 사고방식의 핵심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즉, 역사에는 고유한 추동력이 있어서 일정한 시대에는 특정한 시대정신과 주제가 전면에 나서고 시대가 바뀌면 다른 시대정신에게 자리를 내주는 식으로 역사가 나선형적(변증법적)으로 진행한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특정한 시대정신을 예측할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과거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한 시대의 고유한 모습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P. 49] 최근 프랑스의 혁신적인 이론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역사적 시대는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지식의 본성에 관한(보통은 무의식적인) 가설들에 의해 특징지워진다고 주장했다

[P. 54] 본 연구에서는 창조성이라는 현상에 사회과학과 인지과학의 통찰을 작용하고자 노력했지만 지성사와 문화사의 까다로운 인식론적 문제 까지 해결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곱 명의 탁월한 인물들의 생애와 정신, 그리고 세계를 탐구하면서 나는 좀 전 커다란 이야기도 할 수 있을지 여부를 확인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현대의 이야기’는 수세기에 걸쳐 생겨나고 19세기 내내 유럽 전역에서(그리고 유럽의 영향을 받은 많은 지역에서) 확고하게 굳어진 관습과 풍습, 그리고 분석틀이 해체되는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한다. 일단 전통과 관습이 특정한 예술 및 과학 분야에서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면, 다른 분야에서도 그런 전통과 관습이 도전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P. 55] 관습에 도전한다는 것은 사실 모든 혁명적 시대의 특징으로서, 그 도전의 성격은 별개의 문제이다.

[P. 55-56] 1900년 유럽은 특별한 성격을 갖는 시기로서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중요한 창조자들은 공통의 역사적 힘과 사건에 노출되었을 뿐 아니라, 서로의 활동 내용을 잘 알고 있었고,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들 각자의 노력을 독립적으로 연구하는 것도 그 자체로 의미있는 작업이지만, 특히 현대라는 시대를 공동으로 창조한 이들의 삶에서 비슷한 사건들과 통찰을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의 업적을 연구하면 더욱 더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2 창조성의 연구방법
[P. 58] 창조성이라는 용어는 지능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수많은 개인들이나 어떤 상황, 특정한 성과물에 붙는 명예로운 칭호로 여겨졌다. .......지능이란 용어와 마찬가지로 창조성의 온각 형태에 대해서는 좀더 엄밀한 정식화가 필요하다, 
[P. 59] 길포드가 생각한 창조성의 핵심 개념은 발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였다.
[P. 59] 창조적인 사람들은 어떤 자극을 받거나 문제를 보면 아주 다양한 연상을 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중 일부는 매우 유별나고 엉뚱하기 까지 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P. 59-60 ] 길포드의 도전적인 시도 이후 수십 년 동안 심리학자들은 상당한 논쟁과 실험을 거친 후에 다음 세 가지 결론에 도전했다. 첫째, 창조성은 지능과 다르다는 점이다. 창조성과 지능은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지능이 우수하지 않아도 창조성이 풍부한 사람이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게다가 재능이 풍부한 사람들을 검사할 경우에는 일단 IQ가 120이 넘으면 심리측정학적으로 창조성과 지능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P. 60] 창조성 검사는 신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한사람이 창조성 감사를 여러번 받아도 비슷한 점수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사람이 여러 종류의 창조성 검사를 받을 때도 그가 얻은 창조성 점수 사이에는 확고한 상관관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P. 60] 남은 결론은  전통적인 종이 시험(paper-and-pencil test)으로 창조성을 검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소 파멸적인(devastating) 진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조성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전문 직업이나 여기에서 창조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나 소속 문화권에서 창조적이라고 평가 받는 사람들이 반드시 창조성 검사에서 우수함을 입증하는 표시로 여겨지는 발산적 사고를 하는 것도 아니다. 

[P. 60] 하지만 인지과학(및 인접학문) 분야의 학자들은 창조성 검사에서 건절적인 아이디어를 얻었다.
[P. 61-62] 두 번째 대응은 인지과학(특히 인공지능)분야에서 나왔다. 인지과학 전통의 연구자들은 문제가 피상적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사고과정이 명료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심리측정학의 창조성 문항을 비판한다. 대신인지과학 연구자들은 독창적인 해답을 얻으려면 창조적인 사고가 필요한 본격적인 과학 문제 풀이를 컴퓨터를 이용해 고안해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P. 62]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지적했듯이 컴퓨터 프로그램은 인지과학자가 선호하는 특정 문제와 자료를 취급할 수 밖에 없으며, 미리 프로그램으로 주입된 알고리즘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P. 62-63] 내 생각에 인지과학자들이 취한 일반적인 접근법은 지나치게 흥분한 구석이 없지 않지만, 결정적인 일보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인지과학자들은 창조적인 사람이어떤 방식으로 가능성 있는 문제와 해답의 ‘공간’을 찾아내는지 보여주었다. 창조적인 사람은 바로 이 공간안에서 당면 문제에 적합한 접근법과 해답의 실마리를 찾으며, 더 철저한 연구가 필요할 때와 손을 뗄 때, 그리고 연구를 지속할 때를 결정한다.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창조과정을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다.  

[P. 65-65] ‘창조적인 건축가들’은 그들보다 창조성이 부족한 동료들에 비해 독립성과 자신감,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기민함 기꺼이 무의식에 내맡기는 성향, 야망, 일에 대한 집중력 등의 성격적 특색이 훨씬 풍부했다.  하지만 이미 이러한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창조적인 업적을 이루는 것인지, 아니면 창조성을 인정받은 결과로 이와 같은 긍정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P. 66] 무의식 과정에 대한 프로이트의 명료한 설명은 창조적인 행동이 창조자의 사려깊은 의도를 직접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에 그 핵심이 있다. 창조적인 행동의 원동력과 의미는 창조자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속한 공동체 사람들에게도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P. 66-67] 프로이트는 놀고 있는 아이와 백일몽을 꿈꾸는 성인 그리고 창조적인 예술가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는 사실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P. 67] 놀고 있는 아이는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거나, 혹은 자신이 즐거울 수 있도록 주변에 준재하는 사물을 재배열한다는 점에서 모두 창조적인 작가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창조적인 작가와 놀고 있는 아이가 하는 일은 똑같다. 창조적인 작가는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이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즉, 작가의 환상세계에는 그의 감정이 충전돼 있다. 물론 그는 환상의 세계와 현실을 날카롭게 구별한다.

[P. 68] 정신분석학 전통과 미국의 행동과학 학파는 공유점이 거의 없지만 두 학파는 모두 개인이 창조활동을 하는 것이 주로 물질적인 보상 때문이라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P. 68] 스키너(B. F. Skinner)의 행동과학적 관점에서 말하면, 사람들이 창조 행위에 나서는 것은 이전에 보상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 ‘긍정적인 강화’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P. 68] 사회심리학자 테레사 아마빌라(Teresa Amabile)는 일련의 탁월한 실험을 통해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의 중요성에 주목하도록 했다. 아마빌라는 고전적인 심리학의 설명과는 반대로, 사람들이 외적인 보상을 노릴 때보다 순수한 즐거움만으로 행동을 할 때 창조적인 해법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창조성‘이나 ’독창성‘을 기준으로 우리의 행동이 평가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오히려 행동의 반경이 좁아진다(비교적 상투적인 결과만을 얻는다). 반면에 그런 평가가 없을 때는 오히려 창조성을 자유롭게 북돋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P. 69]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해서 몰입 상태(flow state) 혹은 몰입 경험(flow experience)이라는 감정 상태에 관해 설명한 바 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내재적으로 동기화된 경험(intrinsically motivating experience)에서 자신이 관심을 쏟는 대상에 완전히 몰입되고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이러한 감정 상태는 어떤 활동 분야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몰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그 순간에는 자신이 무엇을 경험하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중에 반성적으로 자신이 완전히 살아있었고 자신의 모든 것이 실현되는 ’절정의 경험‘을 했다고 느낀다.

[P. 69] 한 개인이 어느 분야에 몰두하다 보면 몰입 경험의 궤적이 변하게 마련이다. 한 때는너무 어려운 도전이라 여겼던 일이 쉽게 달성할 만한일, 심지어는 유쾌한 일이 된다. 반면에 오래전에 성취했던 일이 더 이상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P. 70] 이러한 설명은 창조적인 사람들이 좌절을 겪더라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마치 도박판에서 ‘판돈’을 계속 올리듯 통례적인 보상을 받지 못할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더욱더 어려운 도전에 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P. 71] 이러한 연구결과 생산성이 가장 높은 시기는 보통 35살에서 39살 사이로 마타나지만, 정확힌 시기는 분야마다 조금씩 다르다. 가령 시인과 수학자는 20대나 30대에 절정에 도달하는 반면, 연사가나 철학자는 이보다 수십년 뒤에 정점에 이른다.

[P. 71] 뛰어난 창조자들은 대체로 왕성한 창조력을 보이는 법이어서 후세대가 존경하는 ‘훌륭한’작품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무시되어 온 ‘신통찮은’작품도 많이 창조했다

[P. 72] 창조성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과학은 어떤 식으로든 이 두 가지 접근법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P. 72-73] 나의 접근법은 네 가지 독립적 요소로 이루어진다.

 1. 구성적 주제(Organizing Themes)

 2, 구성적 틀(Organizing Framework )

 3. 경험적 조사 문제(Issues for Empirical Investigation)

 4. 새로 발견한 주제(Emerging Themes) 

[P. 74] 구성적 주제는 아동과 창조적인 어른의 관계, 창조적인 이물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 창조적인 인물과 작품의 관계이다.

[P. 75] 첫 번째 관심사는 아동과 창조적인 어른의  관계이다. 이는 어른이 지닌 창조성의 중요한 차원이 유년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내 믿음을 반영하는 주제이다,

[P. 75] 두 번째 구성적 주제는 창조적인 인물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 천착한다.

[P. 76] 세 번째 구성적 주제는 창조적인 인물과 그가 활동하는 분야의 관계이다. 대체로 창조적인 인물은 어린시절에 자신의 관심을 사로잡는 분야와 일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그 분야의 문화에 걸맞게 다른 사람들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이를 완전히 터득하려고 하지만 점차 자신이 속한 분야에 불편함을 느낀다.  

[P.  78] 어린시절부터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탐구하면서 주변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면,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창조성 자본’을 많이 축적하게 된다. 반면에 이러한 발견행위가 억압당하고 한쪽 방향으로만 떠밀리거나, 혹은 세상에는 정담이 하나밖에 없고 권위자들만 그 정답을 알고 있다는 고정 관념에 짓눌린 아이들은 자기만의 해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P. 78] 창조적인 인물은 유년기의 통찰과 감정, 그리고 경험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면에서 두드러진 모습을 보인다. 

[P. 78-79] 실상 창조적인 인물이란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에 품었던 수많은 의문점과 문제의식, 그리고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섬세한 감수성을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가장 선진적인 이해 방식과 ‘결혼’시키는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다.

[P. 79] 어느 분야의 전문 지식에 정통하려면 아무리 열광적으로 몰두했더라도 최서한 10년 정도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분야에서 통용되는 지식에 통달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10년 정도의 꾸준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의미있는 도약을 이룰 수가 없다. 

[P. 79-80] 하지만 10년 동안은 전문기술을 그저 추종하기만 하고 그 다음에  비로소 자기만의 혁신적인 업적을 내놓을 수 있다는 말은 옳은 얘기가 아니다. 창조족인 도약을 이룬 이물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탐구자이며 혁신가이고 사색가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다수를 따르는데만 만족하지 않으며,  선택한 분야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P. 81] 이들은 처음에는 해당 분야의 공통어 혹은 상징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곧 여기에는 부적절한 면이 있음을 발견한다, 이 경우에 그들은 보통 사소한 변화만을 꾀한다. 

[P. 81-82] 창조자는 이제 혼자서라도 복잡한 사장을 모두 감안하여 핵심 쟁점이나 성과물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상징 형식을 마련해야 한다. 처음 노력은 대개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며,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믿을만한 길잡이도 없다, 창조자는 자신의 직관을 믿어야 하고, 아무 보상도 없는 반복적인 실패에도 꿋꿋이 버텨야 한다,

[P. 82] 이제  일곱가지 사례 분석에서 반복해서 드러나는 발달상의 특징을 요약하겠다. (1) 세상의 일반적인 원리와(사례마다 다른) 특별한 문제에 대한 유년 시절의 관심 (2) 처음 흥미를 느낀 문제를 탐구하다가 이 흥미를 이어받아 특정 분야를 마스터하겠다고 결심 (3) 선택한 분야에 정통한 후에 모순적인 요소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요소를 창조, (4) 창조자가 신기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단계적(program)으로 탐구해가는 방식 (5) 고립의 시기에 주변 사람들이 행하는 격려와 지지 역할 혹은 방해역할 (6) 서서히 새로운 상징체계와 언어 혹은 표현 방식을 만들어 가는 모습 (7) 관련 비평가들의 첫 반응과 오랜 기간에 걸쳐 이 반응이 변화하는 모습 (8) 보통은 중년의 시기에 이뤄내는 좀 더 포괄적인 성격의 두 번째 혁신(및 이와 관련되는 사건들)

[P. 83] 창조적인 인물이란 어떤 분야에서 처음에는 참신하게만 여겨지지만 종국적으로는 특정한 문화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고 작품을 창조하고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을 말한다.

[P. 83] 나는 어떤 사람이 모든 분야가 아니라 어떤 특정 분야에서만 창조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P. 84] 창조적인 인물은 끊임없이 창조성을 추구하며 지속적으로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조정한다.
[P. 84] 창조성은 문제 풀이 뿐만 아니라 작품의 제작이나 새로운 질문의 고안도 포함할 수 있다, ................. 창조성은 새로운 유형의 작품을 제작하는 것, 혹은 지금까지 무시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문제의식이나 주제를 발견하는 것과 관련된다.
[P. 84] 창조적인 행위는 특정한 문화에서 받아들여질 때에만 제대로 인식된다.

[P. 85-86] 창조성을 이해하려면, 궁극적으로는 다음 네가지 분석 수준에서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 아(亞)개인성(The Subpersonal ), 2. 개인성(The Personal), 3. 비(非)개인성(The Impersonal), 4, 다(多)개인성(쏮 Multipersonal)

[P. 88] 칙센트미하이는 어떤 식의 창조성 연구에도 중요한 의미가 았는 세가지 요소(결절점)을 지적한다. (1) 재능있는 개인 (2) 그 개인이 활약하는 특정 분야나 학문 영역, (3) 인물과 성과물의 질적 수준을 판단하는 장(場) ............칙센트미하이의 설득력있는 설명에 따르면, 창조성은 어느 한 요소나 한쌍의 요소에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성은 이세요소가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으로 볼때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P. 90] 창조성은 예술가의 머리나 손에 있는 것도 아니고, 특정 분야나 심판관들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창조성이라는 현상은 오직 이 세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으며, 그럴 때 에만 좀 더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P.92] 합법적인 권위를 가진 장의 판단이 없으면, 어떤 사람이 ‘창조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P. 95] 살아가면서 창조성의 절정과 추락을 경험하는 패턴, 특히 10년을 주기로 혁신적인 도약을 이뤄내는 창조성의 10년 규칙을 입증한다. 

[P. 97-98] 창조자들이 중요한 지원과 격려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그 지원 체계에는 규정 가능한 요소가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우선 창조자들은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의 장서작인 지원도 필요하고, 자신이 이룬 획기적인 도약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인지적인 지원도 필요로 한다 한사람이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할 수 있는 상황도 있고, 이런 이중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거나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P. 98] 대체로 창조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특히 원만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이러한 계약의 성격은 사례마다 조금씩 다르다. 금욕적인 삶을 다짐하는 경우(프로이트, 엘리엇, 간디)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경우(아인슈타인, 그레이엄)도 이다, 피카소는 이런 거래가 거절된 나머지 다른 사람을 노골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스트라빈스키는 공평무사한 태도를 버리면서까지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갈들을 빚었다. 이 범상치 않은 협정에는 이런 계약을 강박적이리만큼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으면 자신의 재능이 손상되거나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서려있다. 실제로 계약이행이 느슨해지면 창조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가 있다.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3.  지그문트 프로이드- 세상에 홀로 맞선 사람

[P. 105] 수요 심리학회(Wednesady Society) 라는 모임은 프로이트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P. 105] 프로이트 스스로 가장 중요한 저작이라고 생각하는 [꿈의 해석(Die Traumdeutung)]이 출간된 후에야, 그는 다른 사람들도 자기의 이론을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일 터이고, 어쩌면 그들을 보다 넓은 세계로 인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이다.

[P. 107] 가장 중요한 점은 프로이트가 재능이 매우 뛰어난 아이였고, 주변 사람들이 그런 재능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P. 108-109] 그는 성경, 고대의 고전, 독일어나 영어로 출판된 세익스피어 작품, 세르반테스, 몰리에르, 레싱(Gotthold Lessing), 괴테, 실러 등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를 했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익혔고, 세르반테스를 원어를 읽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웠다. 미술과 연극을 좋아해서 자주 전시회나  극장에 들렀고, 자신이 본 작품을 날카롭게 비평했다. 

[P. 110] 젊은 시절부터 그는 자신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중요한 성취를 이루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문제가 있다면, 자신이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 그런 성취를 이룰 것인가였다. 이점에서 그는 내가 이 책에서 다루는 일곱명의 창조적인 인물 가운데 야심과 자신감을 가장 분명하게 밝힌 인문이다,

[P. 111] 프로이트는 언어 지능과 인성(personal) 지능이 우수했다. 즉, 안어와 인간을 다루는 분야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 

[P. 117] 에릭 에린슨의 용어를 빌면, 프로이트의 20대는 일종의 ‘심리사회적 유예기간(psychosocial moratorium)'이었다.
[P. 118] 이제 예전에 억압된 기억을 말로 풀어내면서 거기에 얹힌 묵은 정서(affect)를 발산하면, 증상을 없애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였다.

[P. 118] 이런 치료 방식을 파펜하임은 ‘대화 치료(talking cure)’라고 불렀는데 브로이어와 프로이트도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해서 기술했다.

[P. 119] 이 치료법은 말(言語)을 통해 억압된 감정을 발산하게 함으로써, 처음에는 소산되지 못했던 관념들의 작용력을 제거한다. 또한 그런 관념을 (가벼운 최면 상태에서) 정상 의식으로 끌어들이거나 치료자의 암시를 통해 제거함으로써, 그것을 연상 효과에 의해 교정(associative correction)하는 것이다.

[P. 120] 강력한 정서를 마치 물의 흐름을 막아놓은 댐처럼 막아버리면 히스테리 증상이 생기는데, 이 때 증상은 정서를 억누르지 않았을 경우에 소모되는 에너지와 똑같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치료는 카타르시스를 이용하는 방식인데, 억제된 에너지를 발산시켜 증상을 제거하려고 했다.

[P. 121]  여자와 마찬가지로 남자도 히스테리에 걸릴 수 있다는 점, 히스테리 증상의 근저에는 조숙한 성적 체험이 한 가지 이상 존재한다는 점 등을 밝혔다. 대담하게도 프로이트는 이렇게 단언했다. “어떤 원인이나 증상을 출발점으로 삼든, 종국적으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성적 체험이다.”
[P. 127] 당시 나는 고독의 극에 도달해 있었다. 옛 친구는 모두 잃었고 새 친구는 아직 생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는데, 그나마 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오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꿈의 해석] 집필을 막 시작한 참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시기를 살아내고 견뎌내서 나는 긍지와 행복감을 느꼈다.   

[P. 127]  [정신분석학 운동의 역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그 외로웠던 시절, 요즘과 같은 압박감이나 분망한 일이 없었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영광스러운 ‘영웅시대’처럼 느껴진다. 나의 ‘찬란한 고립’에는 분명 장점도 있었고 매력도 있었다.” 다른 혁신가들도 위대한 비약을 이루기 직전의 정신 상태를 회고할 때면, 감정상의 절정과 추락이라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P. 129] 그 핵심 개념은 억압(repression)이다. 좀더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표상(Vorstellung)들을 의식 아래로 억누르는 심리 과정을 일컫는다. 프로이트 자신도 이 개념의 중요성을 확언한 바 있다. “억압이라는 교의는 정신분석학 이론 전체가 서 있는 주춧돌이다.”

[P. 129] 억압 개념은 프로이트적 세계관의 핵심이다, 우선, 의식화되지는 않았지만 의식의 표면으로 튀어나오려는 일군의 표상들이 있다고 가정할 필요가 있다. 검열기제(censoring mechanism)는 의식에 닿기에 부적절한 표상들을 걸러내고 그것을 무의식 영역에 가두는 역할을 한다.

[P. 130] 만약 억압이 프로이트 이론 체계의 중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면, 꿈은 억압 과정을 이해하고 그 밖의 정신 생활(psychic life)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P. 130] 그는 꿈을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王道)’라고 불렀으며, 그 비밀을 밝히는 것은 ‘한 사람의 생애에 평생 한 번 허용될까 말까 한 통찰’이라고 말했다. 자기 이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1890년대에 프로이트는 서로 느슨하게 연결된 네가지 영역을 연구했다,

[P. 131] 전환 히스테리(conversion hysteria)는 정서(affect)의 변형 기제로, 강박증은 정서의 전위(displacement)로, 멜랑코리는 정서의 교환(exchange)으로  성격을 규정하면서 이들을 구별했다.

[P. 131] 신경증은 다양한 방어 기제에 의존한다. 방어 기제란 두려운 생각이나 정서적 불안을 야기할 만한 관념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심리 기제이다. 억압이 가장 중요한 방어 기제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승화(sublimation)라든가 반응 형성(reaction-formation), 투사(projection), 전위, 금지(inhibition)와 같은 다른 방어 기제도 존재한다.

[P. 132] 1895년 프로이트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묘한 학문적 시도라고 할 수 있는 작업을 착수했다. .............줄여서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P. 133] [프로젝트]는 읽기가 매우 까다로운 논문이다, 프로이트는 임상에서 발견한 무의ㅏ식 과정의 기제뿐 아니라, 주의(attention)와 지각(perception)과 같은 정상적인 심리현상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씨름했다. 
[P. 135] [프로젝트]는 어쩌면 프로이트 한사람만을 위한 논문이었다.
[P. 137] 1897년 무렵 프로이트는 진지한 마음으로 자기분석을 시작했는데, 이는 아마도 프로이트의 가장 고독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탐구작업이었을 것이다.  수면중에 꾼 꿈을 재료로 삼아 자유연상을 시도하고, 되도록 냉정한 자세를 잃지 않고 연상에서 비롯한 표상들을 분석하였다.

[P. 137] 프로이트는 모든 꿈에는 모종의 소원이나 환상이 담겨 있다고 믿게 되었다. 꿈은 억압된 소원이 위장 실현되는 과정이며, 예전의 결심이나 근심 혹은 욕망을 마음속에서 지속적으로 처리하는 수단이다.

[P. 138] 꿈을 형성하는 방어 기제로는 응축(condensation)과 전위, 다양한 종류의 방어막(screen)이 있는데, 굼의 의미를 제대로 해명하기 위해서는 이들 각각의 방어 기제를 끈기있게 해소해야 한다.

[P. 139] “나에게 가장 중요한 환자는 바로 나 자신이라네” 아마도 이 무렵에 프로이트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그는 ‘공감적인 청자(sympathetic listener)’의 역할을 자기 내부에서 스스로 창조한 정신분석가에게 맡겼던 것이다.

[P. 140] 확실히 가장 많이 쓰여진 주제이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 함직한 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인간의 심리 발달에 중심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다. 프로이트는 자기 내부의 깊은 곳에서 부모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발견했다.

[P. 140] 해소되지 않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바로 성인 신경증의 뿌리이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여성의 경우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P. 142] 꿈 분석과 자기분석을 통해 그는 어린 아이들은 유아기부터 강한 성욕(육체적인 쾌락뿐 아니라 정신적인 쾌락 추구)을 갖는다고 확신했다.

[P. 143] [꿈의 해석]에서 소름이 끼칠만큼 가장 뛰어난 부분인 마지막 장에서 프로이트는 ‘꿈 과정의 심리학’을 설명한다. 그는 다양한 심리조작ㅇ[ 관해 서술한다. 지각 조직(perceptual system)과 운동성 조직(motor system), 주로 기억을 담당하는 기능(이는 지각 흔적을 보유해야 한다).

[P. 144] 그리고 지각만 담당하는 기능(이는 지각 내용을 생생하게 보존하지만, 기억 능력이 없다), 프로이트는 기억 조직을 자세하게 탐구하면서 새로운 기반을 닦았다. 기억은 그 자체로는 무의식적이지만, 꿈은 무의식이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P. 144] 꿈의 동인(動因)은 무의식에서 생기며, 꿈에는 무의식적 소원이 잠복해 있다. 소원은 전의식으로 표출되고자 하는데, 낮에는 검열에 의해 왜곡되지만 저항이 약해지는 밤에는 다양한 위장과 타협형성(compromise formation)을 통해 꿈으로 분출된다.

[P. 144] [꿈의 해석]은 프로이트의 지적 재능이 지닌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P. 145] 프로이트의 저서는 거의 언어적 영역으로 이루어졌다, 적은 수의 간단한 도해조차 설득력 있는 서술에 대한 사족(蛇足)이상의 의미는 없다,  프로이트의 과학적 사유는 그 본질이 언어적이며, 공간적 요소는 거의 없고 논리적 요소가 얼마간 담겨 있을 뿐이다.
[P. 146] 히스테리 환지를 설명하려는 노력은 곧 신경증 환자의 모든 행동을 설명하려는 노력으로 발전했고, 결국 [프로젝트]에서 정상적인 심리 행동까지 포괄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P. 150] “빈은 이 도시가 정신분석의 태동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위해서라면 무슨짓이든 할 것이다, 빈에서 만큼 교양과 학식이 있는 사람들이 정신분석학에 대해 그처럼 적대적인 무관심을 단호하게 보인 도시는 없다,  ”

[P. 155 ] 융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명예롭지만 고통스러웠던 고립”에 관해 심정을 토로한 후에 이렇게 썼다. "고요한 확신이 내 마음에 들어차기 위해선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내게 응답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자네라네.

[P. 160] 하루에 여덟 내지 아홉 시간은 환자들을 보았고, 매일 산책ㅇㄹ 했으며, 가까운 친구들이나 브나이 브리스의 동료들과 어울렸으며, 책을 읽고 고대의 유물을 수집했다. 그리고 거의 매일밤 11시에서 새벽 1시나 2까지 글을 썼다. 

[P. 161]나는 창조적인 인물에 관해 연구하면서 ‘10년 규칙’을 발견했다. 즉, 창조적인 인물은 한 분야에서 10년 정도 종사한 후에 혁신적인 도약을 이루어내며, 이후에는 다양한 요인에 따라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이 규칙의 첫부분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꿈의 해석]은 그가 샤르코의 임상교실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한 지 거의 정확히 10년 만에 탄생한 업적이다. 물을 것도 없이 프로이트의 창조성은 이후 수십년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발휘되었다,  1
[P. 162] 프로이트는 생애에 마지막 날 까지도 활동적인 삶을 살았다.

[P. 164-165] 프로이트는 그가 흠모하는 영웅인 셰익스피어나 소포클레스와 비등하게 인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넓히는 데 공헌했으며, 프리드리히 니체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프로이트는 특이할 정도로 이들의 책을 읽으려 하지 않았다, 자기 생각의 많은 부분을 이들이 이미 예견했기 때문이다-처럼 인간 사회의 본성에 대해 통찰했다.
[P. 165]  내 논의에서 그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를테면, 그는 특정 지능을 활용하여 창조성의 절정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인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성찰하는 자성 지능을 통해, 그리고 아무도 공감과 이해를 보이지 않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통해 그런 성과를 보였던 것이다. 그런 다음에  프로이트는 에너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 자신을 적대하는 세상에게 자기 이론의 진실성을 납득시켰다.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영원한 아이

[P. 169] 내가 어떻게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보통 어른이라면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생각하느라 길을 멈추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점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P. 170] 아이의 마음과 창조적인 어른의 마음 사이에 깊은 유사성이 존재한자고 가정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세기 중반에 활약했던 시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Chrles-Pierre Baudelaire)는 어린 아이의 그림과 어른 화가의 그림을 연관지었고, 아이를 ‘근대 생활의 화가’라 부르기도 했다.

[P. 171] 그는 “우리가 아는 물리학이란 세 살 무렵이면 알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P. 171] 또 한 명의 존경스러운 물리학자 라바이(I. I. Rabi)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리학자들은 인간 피터팬이다. 그들은 결코 어른이 되지 않으며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세상 물정에 밝아지면, 호기심을 갖기에는 너무 많이,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된다.”

[P. 173] 어린 아인슈타인에게 종교적 성향이 강했다는 점은, 그가 영혼의 진한 갈증을 느꼈으며, 궁극적인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고, 관습적인 지혜에 반발할 수 있는 능력(충동적인 반발이 아니다)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P. 174] 탈마이는 “아인슈타인의 수학적 재능은 내가 더 이상 좇아갈 수 없을 정도로 높이 비약했다”고 회고한다. 철학과 과학 저서를 읽게 되면서, 어린 시잘 종교에 심취했던 마음은 거의 사라졌다. 

[P. 179] 자기 자신의 사고 실험과 정규 교육을 통해, 그리고 푀플 같은 저자들의 저서를 연구하면서 아인슈타인은 앞으로 숙고하게 될 일련의 문제를 이미 정해놓은 상태였다.

[P. 180] 모든 창조적인 도약은 특정한 분야나 학문 영역에서 벌어진다,

[P. 183] 뉴턴은 발견은 천체의 운동을 아주 정확하게 추론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뉴턴의 이론으로 설명하면 커다란 모순이 생기는 영역이 있었다. 뉴턴이 믿었던 것과는 달리 빛은 운동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입자가 아니라, 공기 중에서 소리가 지동하는 것처럼 가볍게 진동하는 파동과 같은 것으로 여길 필요가 있었다.
[P. 187] 지구상에서 지구가 움직이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쏜 빛의 속도는 그 반대 방향이나 수직 방향으로 쏜 빛의 속도와 약간 이라도 달라야 했다.
[P. 189] 상대성 이론을 예기한 또 한명의 위대한 인물은 프랑스의 박식한 수학자 푸엥카레였다. 푸앵카레는 ‘상대성 원리’라는 표현이 지구의 절대 운동을 측정하지 못하는 과학의 무능함을 나타낸다고 여겼다. 
[P. 191] 아인슈타인은 성공을 위해 자신의 육체와 장신을 팔았으며, ‘나’와 ‘우리’의 세계에서 ‘그것(사물)’의 세계로 날아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다소 역설적이게도 아인슈타인은 오랫동안 좋은 친구들과 사귀었고, 말년의 프로이트보다는 훨씬 호감가는 인물이었다.  
[P. 192] 올림피아 아카데미(Akademic Olympia)라는 작은 모임에서 어울렸던 친구들도 특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올림피아 성원들은 체계적인 독서계획을 세워 철학(밀, 흄, 스피노자), 수학(리만, 푸엥카레) 및 과학저서(칼 피어슨, 에른스트 마gm)를 읽어나갔다.
[P. 193]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 둘다 자신들이 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확고하게 알고 있었고, 누구라도 그들이 가는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P. 194] 아인슈타인은 남다른 집중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몇시간 심지어 몇일 동안이나 중단없이 같은 문제를 숙고할 수 있었다. 그가 관심을 두었던 주제 중에는 수십년 동안 마음속에 담아 둔 것도 있었다.
[P. 194] 갓태어난 아이가 처음 내보이는 ‘시각적 행동이 빛에 눈 초점을 맞추는 일이라는 사실이 전혀 우연은 아닐 것이다.
[P. 194-195] "나 같은 사람에게 발달의 전환점이란, 그저 덧없을 뿐인 개인적 관심사를 서서히 뒤로 하고 사물을 관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집중한다는 사실에 있다.“
[P. 196] 글이든 말이든 언어의 세계는 나의 사고 기제에서 별 역할을 하니 않은것 같다, 내가 생각을 전개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한 심적 요소는, 마음속에 ‘자발적으로’ 생겨나고 서로 결합되곤 하는 특정 기호와 다소 명징한 이미지이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결합과 연상 작용이야말로 생산적인 사고에서 가장 본질적인 측면이 아닌가 싶다. ……내 경우에는 시각적 요소와 근육 감각적인 요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P. 197] 아인슈타인은 어떤 문제에 관해 사고할 때 항상 이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정식화해서 사고방식이나 교육 배경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P. 197] 시각적 사유와 사고 실험을 결합하고 예술 만큼이나 아름다운 개념적 구상을 눈부시게 표현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다. 
[P. 199] 분명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로서 프로이트와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 두 사람모두 포부가 크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대담한 용기를 지녔고 기꺼이 홀로 일어서고자 했으며 논쟁을 반기기까지 했다.

[P. 203] 아인슈타인은 각각의 논문을 우선 형식적으로 불균형으로 진술, 혹은 심리적으로 부조화한 진술로 시작한다. 그런 후에 관찰된 현상의 불균형을 단숨에 해소하고 설명의 장황함을 제거하여 하나 이상의 경험적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우아한 원리를 제안한다.

[P. 204]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논문은 간결하고 단독 직입적으로 서술되었다. 학술적인 장식은 일체 배제되었다. 아인슈탕니은 참고문헌을 하나도 인용하지 않았으며, 친구 베소에게만 감사표시를 했고, 상대성 문제를 건드린 다른 전문가들은 논박하지도 않았다.  

[P. 207] 움직이는 시계는 정지한 시계보다 천천히 간다.

[P. 209 ]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1900년이 지나고 얼마 후에…… 나는 기지(旣知)의 사실을 토대로 추론을 통해 참된 법칙을 발견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다. 더 오랫동안 필사적으로 노력하면 할수록, 오직 보편적인 공식(원리)을 발견했을 때만 확실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커졌다.”

[P.209] 여기서 우리는 과학 혁명을 이끌어내는 데 필요한 전신적 능력과 마음가짐을 만나게 된다. 우선 특정 분야의 연구결과와 원리를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낳으면 이미 알려진 사실을 다시 발견 하는 경우가 생긴다. 실제로 아인슈타인도 초기에는 이미 알려진 결과를 중복해서 연구한 일이 몇 번 있었다.
[P. 211] 아인슈타인은 “우리의 지각 너머에 존재하는 시공간에 대한 상(像)을 새롭게 제시하기 위해, 마치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듯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 특정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새로운 물리학 관점을 창안함으로써.......자료와(공리와 개념에 의한)이론구성을 구별해야 할 필요성을 깨달음으로써” 볼츠만과 헤르츠, 푸앵카레, 마흐 등 여러 과학자들의 고유한 주장에 주목했다.
[P. 215] 푸앵카레는 수학자로서 물리학자의 사고 실험에 아무란 감흥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방정식의 기본 규칙과 관습적인 용법에 관심이 많아서, 방정식이 얼마나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현실에 대한 관념을 바꿀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사소하게 여겼다,
[P. 219] 아인슈타인 숭배지인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 은 상대성 이론을 완전히 이해한 사람이 세명이나 될지도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P. 221] 아인슈타인의 명서을 드높이는데 가장 기여한 요인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 수행된 중요한 실험 결과에 대한 전세계적인 반응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과 발표한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은 중력에 의한 적색 이동과 태양을 지나는 별빛이 1.7초 가량 휘어지는 현상을 예견했다.

[P. 222] 이전에는 우주의 모든 물질이 사라져도 시간과 공간은 그대로 남게 될 것이라고 ale었습니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 역시 물질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지요.

[P. 230]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아주 유명한 말을 하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에게 있어 과학이란 가장 작은 세계에서도 질서를 가져야 했다.

[P. 232] 나이가 들면 연구 시간을 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이제 세계적인 명사로 인장받기에 참으로 혁명적인 업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찬란한 고립”의 시기를 더 이상 가질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P. 234] 탁월한 젊은 과학자가 중년과 만년에도 계속해서 혁명적인 업적을 이루는 주된 방식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체계가 느슨하고 발전 방향이 다양한 분야, 가령 사회과학처럼 아직 발번 도상에 있는 분야에서 활동하는 경우이다.

[P. 234-235] 또 하나의 방식은 매우 중요한 발견을 이룬 다음에 남은 생애 동안 그 발견에 따른 지적 자본으로 연구 생활을 지속하는 경우이다. 프로이트도 마흔살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발견한 이론의 다양한 함의를 탐구하면서 말년을 보냈다.

[P. 236] "나는 신이 어떻게 우주를 창조했는지 알고 싶다. 이런저런 현상이나 이런저런 요소에 대한 각양각색의 견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신의 생각이다. 나머지는 지엽적인 것이다.“

[P. 236] 그는 분명한 확신을 갖고 일관성 있게, 그리고 인상적인 태도로 그런 주장을 했고, 덕분에 그의 중장은 우리 시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이 될 수 있었다.

[P. 237] 오랫동안 아인슈타인의 비서로 지냈던 헬렌 뒤카스(Helen Dukas)는 “아인슈타인은 만약 북극곰으로 태어났더라도 여전히 아인슈타인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가 음악가나 랍비 혹은 기술자가 되었어도, 항상 자신이 생각한 문제에 끈질기게 관심을 두는 모습과 삶의 다양한 영역들 간의 관계를 인식하고자 하는 열망이 나타났을 것이다.

[P. 240] 독창적인 과학자로서의 아인슈타인은 마흔살 때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는 과학과 철학, 심리학, 인간본성, 세계문제 등에 관해 계속 성찰하면서 남은 생애에서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했다.


간주곡1
[P. 243] 프로이트는 동료들이 무시했던 현상, 즉 무의식의 구조와 과정을 연구했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이론 모델과 어휘를 만들어냈다. 아인슈타인은 동시성, 시간 공간, 운동이라는 개념을 기존에는 정합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P. 244] 두 사람은 정신 우형과 활용한 상징체계가 서로 달랐다. 언어지능과 인성지능이 우수했다. 어린시절부터 인간의 본성에 남다른 관찰력을 보였고, 주로 언어에 기반해서 사고했으며, 공간적이거나 논리적 내용은 거의 없는, 주로 언어와 개념에 기반한 이론체계를 구성했다.  

[P. 245-246] 자신들의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  프로이트는 금욕적으로 성관계를 단념했고, 아인슈타인은 충만한 가정 생활을 일부러 혹은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P. 246] 아인슈타인이 여기서 오는 불편을 씩씩하게 견딘 반면, 프로이트는 선동가다운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를 아직도 가야할 곳이 남은 군사작전의 지도자로 여긴 탓이다,

[P. 246]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이 유년기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는 점은 현대에 대한 이 책의 연구에 적절한 면이 있다. 프로이트는 유아기의 사건을 성년의 감정과 인격을 좌우하는 주된 추진력으로 여겼다. 아인슈타인은 어린 아이의 마음을 중시해서 아이들이 물리학에 대한 직관적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5. 파블로 피카소-신동과 천재
[P. 251] 신동이 신경해부학적으로 타고난 존재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거기엔 문화적인 측면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P. 252] 신동의 출현은 특정 분야에 대한 어떤 문화권의 관심과 지원 이외에도, 언제나 여러 요인들이 ‘우연히 맞아 떨어져야(co-incidence)’ 가능한 현상이다. 그러니까,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뿐만 아니라,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P. 253] 대부분은 아닐지라도 많은 신동들이 유년기의 잠재력을 모두 발휘하지는 못한다, 피카소와 모차르트는 이점에서 분면 예외적인 존재이다.

[P. 254-255] 오랜 친구인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은 “피카소는 다른 아이들이 abc를 쓸 때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언제나 그가 말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피카소가 그림을 배우는 일반적인 단계, 그러니까 처음엔 연필로 낙서하듯이 끄적거리다가 원과 같은 순수한 기하학적 도형, 태양이나 꽃과 같은 단순한 형상을 그리고, 이후엔 ‘단조로운’ 화면구성까지 하는 단계 등을 거쳤다는 사실을 의심할 근거는 없다 

[P. 258] 이들 드로잉 노트를 보면, 피카소가 10대 초반에 벌써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대상을 솜씨있고, 재치 있게, 그리고 독창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는 점을 알게된다.

[P. 261] 이와같은 ‘신과의 거래’는 우리가 다루는 일곱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의 삶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P. 262-263] 음악과 달리, 회화 분야의 신동은 없습니다. 어린 천재란 그저 유년기의 천제일 뿐이지요. 나아가 좀더 들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집니다. 그런 아이도 미술가가 될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P. 263] 그리고 피카소는 아동 전시회에 관해 다소 수수께끼 같은 말을 농담처럼 던지기도 했다. “그 나이 적에 이미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지만, 그 아이들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기까지는 평생이 걸렸습니다.”

[P. 265] 주변 사람들은 피카소가 비상한 능력과 감수성의 소유자이며, 그가 침묵할 때 조차 타고난 지도자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피카소는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이 무한하다는 것을 생애 처음으로 명료하게 느꼈을 터인데, 유년 시절에 이미 이런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바 있다.  

[P.268] 생전에 갈채를 못 받는 훌륭한 예술가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비하면, 피카소는 놀랄 만큼 빠르게 명성을 얻는 편이다.

[P. 268] 그는 바로 이런 성급함 때문에 경박한 기교의 대가에 그칠 위험이 있다. 다작(多作)과 풍작(豊作)은 폭력과 활력이 다른 것 처럼 서로 다르다. 창조력이 왕성한 예술가가 그렇게 된다면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일 것이다, 

[P. 273] 피카소는 오랜 생애 동안 거의 매년 소묘와 회화, 조각, 판화 등의 작품을 수백점이나 창작한 거장이다. 하지만 피카소는 이들 작품을 그 중요도 면에서 구별했음에 틀림없다.

[P. 275] 여러 밑그림을 조사하고 X선 사진을 찍어 최종작을 연구한 결과 피카소는 [인생]을 준비하면서 꽤 많은 실험을 했음이 밝혀졌다.
[P. 277] 피카소의 중요한 작품들은 거의 모두 하나의 정점이자 선취(先取, anticipation)이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그가 이전에 보았던 것, 그리고 최근까지 작업해 왔던 것을 훌륭하면서도 독창적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인생]은 이 재능있는 젊은 스페인 예술가의 작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상징이자 징후이며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P. 278] 피카소는 불과 20대 초반의 나이에 벌써 반 고흐나 폴 세잔과 같은 앞 세대의 위대한 화가들과 같은 반열에 올랐으며, 스스로 비교 상대로 여겼던 동시대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와 동급으로 인정받았다. 
[P. 279] 아폴리네르는 두 부류의 예술가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자연에 의존하는 ‘모든것을 한데 모으는(all-put-together)’ 스타일의 명인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에 의존하는 성찰적이고 지적인 ‘조립가(structurer)’ 형의 예술가이다.
[P. 285] 피카소의 그림은 완성작이라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 거의 없다. 대개는 그 자체로도 충분할지 모르는 해당작품의 초기 판본이있고, 후기 판본으로 간주될만한 후속 작품이 있다.
[P. 287]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P. 289] 피카소와 브라크는 공동 작업을 통해 예술적 혁신에 주력했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공동 작업을 하면서 입체주의라는 새로운 미술양식을 창안하고 탐구했다.
[P. 293] “우리가 입체주의를 창시했을 때는 입체주의를 창안하겠다는 의도는 없었고, 그저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P. 295] 입체주의의 일부 역설적인 특징은 피카소와 브라크의 성격이나 가량이 두렷하게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연유했을 것이다.
[P. 300] 입체주의 운동의 역동적인 측면을 두 사람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공동작업을 한 덕분으로 모두 돌리는 것은 다소 위험한 발상이다. 
[P. 305] 자신의 작품을 열광적으로 지지한 사람들조차 자신이 정작 성취하고자 했던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피카소는 스스로가 호기 있게 시도한 예술적 반역을 망각했으며 여러 악평들로 인해 마음이 흔들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피카소는 브라크가 전장으로 떠난 마당에 연인 에바까지 결핵으로 k망하면서 상당한 일신상의 변화를 겪었다.
[P. 307] 내가 나 자신을 반복해서 흉내낼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과거는 더 이상 내게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 나 자신을 베낄 바에야 차라리 다른 사람을 모방하겠다. 그러면 적어도 새로운 면을 추가할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난 새로운 걸 발견하기를 좋아한다. ...... 화가란 결국 무엇이겠는가? 다른 사람의 소장품에서 본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소장품으로 만들고 싶은 수집가가 아니겠는가. 시작은 이렇게 하더라도 여기서 색다른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P. 309] 피카소는 예술 작품이 관람자에게 충격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람자에게 아무런 감정상의 동요도 일으키지 못하고 관람자가 그저 대충 훑어보는 예술작품은 아무 의미가 없다. ......관람자가 비록 상상 속에서라도 어떤 반응을 보이고 스스로 창조에 대한 열망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 ............관람자를 마비 증상에서 일깨워야 한다.” 피카소는 확신을 갖고 이렇게 말했다.
[P. 309] 운명이 등을 돌리고 정열이 퇴조하면 작품 활동에 위기가 닥치게 마련이다. 피카소 역시 이런 곤경에 처했다. 
[P. 310] “결국은 무언가에 거역하는 작품을 만드는 수 밖에 없다. ........... 나는 가슴을 찌르는 그림을 그린다. 폭력, 심벌즈의 쨍그렁소리.......... 폭발.... 훌륭한 그림, 아니 모든 그림(!)에는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면이 있어야 한다. ”
[P. 313] “내 그림은 탐구다. ……이 탐구에는 논리적인 순서가 있다. 내가 번호를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간 순서에 따라 실험을 하고, 여기에 번호와 날짜를 적어두었다. 이런 점을 고맙게 생각할 날이 올 것이다.” 이를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 예술가의 작품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가 언제, 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작업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는 과학이 존재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과학이라고 불릴 수도 있을 터다. 창조적인 인물을 탐구해서 인간 일반에 관해 알고자 하는 그런 과학이다.”
[P. 317] “그림이란 기본적으로 변하는게 아니다. 외양은 어떨지 몰라도 처음의 구상은 거의 온전하게 남는다.” 나는 이미 완성작을 본 연후에나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이들 스케치에서 최종 완성작의 흔적을 볼수 있다.
[P. 321] 피카소는 모든 갈등, 스페인 내전으로 폭발한 사회적 갈등 분만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폭력과 성, 예술 창조에 관한 갈등까지도 화폭에 담아냈다.
[P. 322] “예술가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백치(白痴)이다. ……정치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심장을 뒤흔드는 정열적이거나 행복한 사건에 민감한 사람이다. ……그림은 집 따위를 꾸미는 수단이 아니다. 그림은 적을 공격하고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전쟁의 수단이다.
[P. 322] 게르니카는 심미적인 최고선(最高善)의 경지에 오른 작품이다. 

[P. 324] 평생에 걸쳐 성장과 발전이 가능한 부야에서 활동했기에 피카소는 새롭고 신선한 경험과 예술적 자극을 얻을 수 있었고, 스스로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P. 330] 우리가 다루는 현대의 창조자들 누구도 성인(聖人)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을 오만하게 무시하는 면에서는 파카소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 없는 듯하다.
[P. 331] 그는 예술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세속적인 관심사보다 자신의 작품과 생존을 우선시했다.


6.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 음악가이자 정치가

[P. 334]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자서전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음악은 그 본질상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는 무력하다.”이런 문장을 보면 스트라빈스키의 곡을 들어본 청중은 깜짝 놀랑 것이다.
[P. 334] 정치라는 외부적인 자극요소가 없이는 음악 창작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웅변한 실례인 것이다,
[P. 340] 자신의 말대로라면 스트라빈스키는 훌륭한 학생은 아니어서 학급에서 평균 혹은 평균이하 수준에 머물렀던 것 같다.  하지만 학습 능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었던 피카소와도 달라서 그저 정규교육에 흥미가 없었을 뿐이고 평생동안 스스로 배워 익히는 방식을 선호했을뿐이다.

[P. 342] 훗날 스트라빈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을 배우든 신참자가 걸어야 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학습 과정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지만, 이것은 자기만의 표현 방법을 자유롭고 힘차게 추구할 수 있는 수단으로만 삼아야 한다.“
[P. 343] 비평가들에 따르면, 스트라빈스키의 초기 작품은 별볼일 없는 태작에 불과하다. 여느 창조자와 마찬가지로 스트라빈스키 역시 처음엔 선배들의 언어를 열심히 터득했고,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도 골고루 사숙했다. 
[P. 346] 스트라빈스키는 디아길레프에 관해 이런 글을 남겼다. ”그는 새롭고 신선한 구상을 단숨에 알아채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거기에 몸을 던질 줄 아는 대단하고 신기한 능력을 지녔던 사람이다.“

[P. 348] 스트라빈스키는 배움에는 열심이어서 무엇이든 빨리 익혔고 활발하게 반응했다.
[P. 351] “당시에 작곡된 민속음악 중에서 가장 활기찬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게 독창적인 작품은 아니다. 하긴 이정도면 성공의 조건은 다 갖춘 셈이다” 물론 스트라빈스키는 오만함이나 의기소침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창조력이 풍부한 예술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다음 작품을 구상하느라 바빴을 뿐이다, 
[P. 355] 공전의 성공을 거듭하는 가운데서 이례적인 실패를 맛보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아무리 창조성이 뛰어난 혁신가라 해도 길을 잘못 들어설 수가 있는 법이며, 이들은 본래부터 오류 따위는 범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만 그 실패를 딛고 재기하는 방식이 보통 예술가와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우는 사실인 까닭이다.

[P. 357] [봄의 제전]은 거의 모든 요소가 새로웠다. 주제, 민속적 소재, 로에리히와의 공동작업, 안무를 담당한 니진스키 등이 모두 새로웠고, 무엇보다 작곡가 자신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음악 형식을 창안하고 있었다는 점이 쉽지 않았다.
[P. 364] [봄의 제전]은 관객의 관습적인 이해 범위를 벗어났고, 그래서 무질서한 소동이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극장 무대에 오른 재주꾼들이 모두 관객을 놀라게 하고 자극하고 불편하게 하려는 노력만 했던 셈이었으나, 관객은 그저 이런 노력에 협조하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P. 365] 스트라빈스키는 [불새]이후로는 병치기법을 자주 활용했는데, 이번에는 불협화 화음과 불규칙한 리듬, 이국적인 음계, 변칙적인 강세 유형등이 관객에게 마치 소나기처럼 퍼부어진 것이다.
[P. 366] 분명히 이 작품은 여러 이유로 처음 듣는 청중을 소외시킨 면이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와 똑같은 이유로 결국에는 수용되고 인정받았던 것이다. 물론 변한 것은 작품이 아니라 장(場)이었다.
[P. 367] 「봄의 제전」에 대한 드뷔시의 평이 정곡을 찌른다. “기상천외하고 난폭한 음악이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모두 갖춘 원시 음악 같다.” 드뷔시의 평을 바꿔 말하면, 스트라빈스키는 [봄의 제전]을 작곡하면서 원래의 착상을 표현하기 위해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조치와 기교를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P. 368] 스트라빈스키는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더 지속적으로 [봄의 제전]을 수정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P. 373] 그가 부자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구두쇠로 굴었고 툭하면 소송을 일삼는 버릇을 버리지 않았다. 이런 인색한 성품은 아이들이나 불운한 첫 부인과의 서신 왕래에도 유감없이 나타났다. 
[P. 374] 탁월한 창조자들은 언제나 완벽주의자이다. 처음의 구상을 세목 그대로 애써 실현하고자 하며, 수정이 꼭 필요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경도 가하지 않으려고 한다. 용기 있는 창조자들은 어떤 권리도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으려 하며, 설사 의식적으로는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도 무의식적으로는 원래의 착상을 그대로 고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 타인의 말을 듣기를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P. 377] [결혼]은 신중하게 악기 편성을 바꾸면서 오랜 기간을 거쳐 작곡한 작품이지만 일관된 통일성이 있었다.
[P. 381] 앞에서 내가 10년 규칙이라 부른 규칙이 이 경우에도 적용됨을 알 수 있다. 즉, 처음 10년 동안 해당 분야의 지식과 기법을 완전히 터득하고 이후 대략 10년을 주기로 혁신적인 작품과 새로운 방향 전환을 이룬 작품(이론)을 창조한자는 법칙이 스트라빈스키에게도 적용된다는 얘기다.
[P. 381] 부쿠레슐리프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음악사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다. 당시 그가 매혹되고 영감을 받은 것은 무엇이든 때와 여건을 불문하고 활용하여 스트라빈스키 자신의 색깔이 담긴 새로운 작품으로 창조하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이다.”
[P. 381] “피카소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나는 무엇을 자장 칭찬해야 할지 모르겠다. 색채감, 디자인, 창의력 등 이 비범한 사내는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
[P. 381-382] [풀치넬라] 는 스트라빈스키가 매우 중대한 시점에 놓여 있을 때 작곡한 작품이다,  ......... “풀치넬라는 과거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 발견이 있었기에 나의 모든 후기 작품이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처음으로 뒤를 돌아다보는 일이긴 했지만, 내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했다.“
[P. 383] 스트라빈스킨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상으로 우리와 더 가까운 시기가 더 먼 시기보다 일시적으로는 우리와 더 많이 떨어져 있는 게 세상 이치다.”

스트라빈스키와 피카소가 과거와 자극적인 대화를 지속적으로 했다는 점은 두사람이 오랫동안 창조성을 발휘할 수 았었던 중요한 이유였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를 재창조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한층 더 심화시킬 수 있었다. 이는 과학자나 수학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들이 이런 식으로 과거와 유희하지 않았다면 훨씬 개인적이고 급진적인 작품은 창조했겠지만, 이는 기껏해야 창조력을 갉아먹은 곤란한 재주에 불과했을 것이다.
[P. 384]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엘리엇과 내가 낡은 배를 수리하지 않았는가? 낡은 배를 수리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진정한 임무다. 예술가는 이미 말해진 것을 그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P. 385] 스트라빈스키는 과거의 음악에 기반하여 작품을 창조하는 와중에 인격이 성숙하는 체험을 했다.
[P. 386] “나의 재능은 신이 주신 것이다. 나는 매일 그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신에게 기도한다. 어린 시절에 이미 이 재능은 내가 잠시 보관하는 것에 불과함을 깨달았을 때, 내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맨 처음에 말한 생각이 중요하다. 재능은 신이 주신 것이라는.” 그리고 로버트 크래프트에게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종교적인 음악을 작곡하려면 “상징적 의미뿐만 아니라, 악마도 믿어야 하고 교회의 기적도 믿어야 한다. ”
[P. 387] 그는 오랜 세월을 걸쳐 하루에 적어도 열시간 동안 일을 했다, 오전에는 피아노로 바흐의 푸가를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ㅇ해서, 이후 네댓 시간 동안 작곡에 몰두하고, 오후에는 관현악 편곡과 기악 편곡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P. 388]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작곡 행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성찰했다.
“창조적인 음악가로서 나는 매일매일 짐을 풀 듯이 내 마음 속의 아이디어를 표출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나는 작곡가라는 운명을 타고났고 다른 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곡을 했다. ……나는 영감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잘 모를 수도 있다.”(프로이트 역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영감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맞으러 마중나간다.”) 스트라빈스키는 작곡의 우연성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뜻밖의 참신한 생각이 떠 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 메모를 해두고 적절한 때를 적절하게 활용한다.”.
[P. 388] “이 적품을 작곡할 때 무엇보다 나를 매료시킨것은 손가락이 알아서 상이한 리듬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손가락을 얕봐서는 안된다. 악기와 늘 접촉하는 영감의 원천이 바로 손가락이다,”
[P. 390] 역설적인 의미로 가득한  [음악의 시학]의 마지막 대목에서 스트라빈스키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의 행동 반경을 좁힐수록, 그리고 내 주위에 장애물을 더 많이 쌓아둘수록, 나의 자유 역시 더욱 커지고 풍부해진다. 속박을 없애면 그만큼 내가 발휘할 힘도 줄어든다. 더 많은 제한을 부과할수록 우리는 영혼을 구속하는 사슬에서 더 자유로와진다.”
[P. 392]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인생의 세 번째 시기를 맞을 만큼 운이 좋았다.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독창성을 잃지 않고 작곡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에너지와 영감은 그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두명의 젊은 예술가와의 만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P. 394-395] 스트라빈스키는 20대에는 디아길레프와 교제하면서 음악적 영감을 얻었고, 중년에는 고전 음악을 사숙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얻었으며, 만년에는 음렬주의 음악을 접하면서 창조력의 원천을 얻었다. 대부분의 예술가달이 엘리엇처럼 작품 활동을 완전히 그만두거나 이따금 피카소가 그랬듯이 자신의 예술 스타일을 그저 반복하는데 머무는 인생의 시기에 들어선 무렵에도 스트라빈스키는 새로운 작곡 기법에 의존하여 작품을 창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P. 397-398] 그에겐 피카소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와 변화무쌍한 능력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피카소에겐 부족했던 작업 방향이나 철학의 일관성과 자신의 아이디어를 음악과 언어로써 명확히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 


7.  T. S. 엘리엇 - 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P. 402] 엘리엇은 1914년 경에 이 작품(혹은 이 작품에 포함된 운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수천행에 이르는 초고를 완전히 끝낸 것은 1921년 말이었다,

[P. 403] 45년후에 초고가 발견된 일은 문학상의 미스터리을 밝혔음은 물론, 뛰어난 문학 작품의 탄생과정을 통찰할 수 있는 값진 실마리를 제공했다.
[P. 407] 엘리엇에게 하버드는 무미건조한 곳이어서, 그는 인문학을 경시하는 대학 풍토에 고통을 느꼈다.

[P. 409] “신과 교감을 했다고 볼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정신이 졀정화(結晶化)된 것이라고 볼수도 있다.
[P. 411]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시가 영시에는 전혀 없었다. 프랑스 시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

[P. 412] 산스크리트를 공부해서 힌두교와 불교의 경전을 읽었고, 계속해서 시를 썼다.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의 용어로 말하면, 엘리엇은 다수의 정체성과 상이한 목소리를 실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P. 414-415] “1909년 이나 1910년에 시가 처한 상황은 오늘날의 잚은 시인으로서는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침체해 있었다.” 거칠 것이 없었던 이 젊은이들은 서로에게 기법을 배웠다. 가령 엘리엇은 파운드의 에둘러 말하기, 이미지의 파편화, 독자를 충격하는 병치기법에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또한 서로의 용기를 북돋웠다.
[P. 419] 엘리엇은 철학적인 목소리와 산문체의 평범한 목소리를 결합시켰고, 일성 생활의 언어와 이미지로 자기가 관심을 두고 있는 철학적인 주제를 표현할 줄 알았다. 

[P. 424] 중요한 작가가 되는데는 오직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아주 많은 작품을 써서 온갖 지면에서 제 작품을 볼 수 있게 하거나 아니면 아주 조금만 쓰는거지요. 
[P. 427] 독자는 이제 곤혹스러운 중년 남자의 언어만이 아니라, 광대한 시공간에서 끌어온 다양한 인물의 의식과 사물을 반영하는 온갖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P. 428] 파운드의 업적은 작품을 산만하게 만드는 과장된 진술부분을 잘라내고, 필요없고 오해를 살만한 단어나 구절을 삭제해서 남은 부분을 날카롭게 가다듬었고, 애매하고 막연한 정조를 씻어낸 데 있었다.
[P. 429] [황무지]의 작시 과정은 창조적인 걸작품의 탄생에는 다른 사람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P. 430] 이미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 피카소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이번에도 역시 창조적인 인물이 자신의 가장 극적인 업적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부모 자식 간이나 동기 간에 버금갈 만큼 친밀한 사이에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P. 431] [황무지]는 난해하기 이를데 없어서, 소수의 교양있는 독자나 이해할 수 있는 시행과 아무리 장황한 주석을 달아도 완전한 해독이 불가능한 암시로 가득한 작품이다. 

[P. 432] [황무지]에 대한 초기의 서평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나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과 같은 다른 획기적인 작품에 비하면, 상당히 우호적인 편이었다. 
[P. 435] 시행 하나 하나 연 하나하나가 의미로 가득했고, 개별적인 주제를 다룬 독립적인 시가 될수 있었다.

[P. 435] 현대의 또다른 걸작, 가령 [율리시즈]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처럼, 처음ㅇ[는 한쪽 방향으로 전개되다가 나중에는 다른 방법으로 변주된 다양한 주제들 역시 작품의 효과를 높이는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P. 436] 엘리엇은 20대 초반에 [프루프록]을썼고, 30대 초반에 [황무지]를 썼다. 이번에도 10년을 사이에 두고 엘리엇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P. 437] 소설가 마샤 데이븐포트(Marcia Davenport)는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시인은 모두 요절했다. 소설은 중년의 예술이고, 에세이는 노년의 예술이다.”
[P. 438] 엘리엇은 개인적인 불행을 끊임없이 일에 몰두하는 방법으로 극복했다.

[P. 440] 엘리엇은 자신의 깨지기 쉬운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엄격한 신앙을 가질 필요가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점차 관조적인 태도가 깊어지면서, 엘리엇과 더불어 성장했던 사람들은 그에 대한 호감을 잃어갔다.  
[P. 441] 엘리엇의 설득력은 글의 내용보다는 글을 쓰는 방식에서 연유한바가 크다.

[P. 443] 엘리엇은 시를 정서나 개성의 표출이 아니라, 오히려 정서와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로 여겼다. 그는 개성과 정서를 소유한 사람만이 거기서 도피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완벽한 예술가일수록, 번민하는 자아와 창조하는 자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
[P. 444] 시를 읽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논리가 개입하면 방해가 될 수 있는 정서적인 체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시를 가장 좋은 시라고 생각했다. 즉, 무의식의 리듬에 기반해서 창조되고, 그 리듬에 부합하는 시를 가장 좋은 시라고 생각한 것이다.
[P. 444]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정서를 명확히 표현하는 일련의 객관 대상이나 상황, 사건인데, 해당 정서를 환기하려면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부적인 상(像)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객관적 상관물을 창조할 수 있는 시인이 가장 훌륭한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비상한 감수성과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결합시킬 줄 아는 시인이 없다면, 우리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능력까지도 퇴화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P. 446] 재능 있는 젊은이들은 마치 희귀종 생물처럼 자신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동료들을 금방 찾아낸다는 점이었다. 젊은 피카소는 프랑스어를 거의 하지도 못하는 처지에서 일찍부터 막스 자코프와 거투루드 스타인, 기욤 아폴리네르, 앙리 마티즈, 조르쥬 브라크와 만나 어울렸다.  

[P. 447] 재능이 뛰어난 젊은이들은 한 분야에서, 드물게는 여러 분야에게 기존의 업적을 오나전히 배워 익힌다. 이미 당대의 첨단에 이른자들은 한층 더 나아가기를 열망한다, 
[P. 452] 엘리엇의 중년 작품은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 그레이엄의 후기 직품이 지닌 힘을 갖지 못했고, 오히려 아인슈타인이 만년에 시도한 노력이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경우와 비슷하게 그저 관심의 이동만을 나타냈을 뿐이다

[P. 455] 우리가 다루는 현대의 거장들은 모두 여러모로 경계인으로 볼 수 있다. 마사 그레이엄은 남성 위주의 무용계에서 혁신적인 안무가와 무용단장으로 활약한 여성이었고, 마하트마 간다는 영국인과 남아프리카인에게 저항한 인도인이었으며, 스트라빈스키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한 러시안인이었고, 프로이트와 아인슈탕니은 반유대주의기운이 점차 고조되는 유럽에 살았던 유대인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엘리엇처럼 단호하게 경계인으로만 살지는 않았다. 경계인으로 살았던 엘리엇의 생애는 역설적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경계인으로 살았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런 길을 선택했다. 주류에 속하지 않는다고 느끼면서 일부러 경계인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분명히 엘리엇은 경계인이 되고자 하는 충동을 강하게 느꼈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자 스스로 경계인의 위치로 나아간 것이었다.

[P. 456] ..............스스로를 일컬어 ‘이방인’이라고 자주 불렀다, 그는 일종의 파우스트적인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기를 요구한다. 가족도 버리고 오직 예술만을 좇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예술은 인간이 어느 가족이나 계급, 당 혹은 동인의 일원이 아니라 그저 그 자신일 뿐이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P. 457]  이렇듯 엘리엇은 앞에서 다룬 현대의 거장들 모두에게 내재한 성향을 집약하고 있다. 경계인이라는 느낌과 인생전부를 걸고 경계성을 탐구하는 능력이 그에겐 있었다. .게다가 엘리엇은 저절로 경계인이 될 수 없는 처지였기에, 생산적인 비 동시성의 수준에 이르기 위해 스스로 경계인이 되기로 선택한 인물이었다. 경계인이란 오직 공동체를 전제하고서야 성립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창조적인 인물의 생애에서는 경계인이라는 느낌을 갖는 순간과 공동체에 속한다는 느낌을 갖는 순간이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궤적을 엿볼 수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세계 전체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만 홀로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양극을 오가는 모습이랴말로 창조자의 생애에 긍정적인 비동시성과 부정적인 비동시성을 동시에 가능케 한 요인일 것이다.



간주곡 2
[P. 459] 그들은 창조력의 원천을 잃지 않고 새로운 작품을 계속 추구하기 위해 일종의 협약, 아주 인상적인 계약을 맺었다는 점이다,
[P. 459] 지적 능력에 있어서  폭넓은 편차를 보인다……종교 문제에 관련해서도 주목할 만한 차이점을 보인다. 
[P. 460] 10년을 주기로 작품세계를 쇄신하는 놀라운 창조력을 보여주었다.

[P. 461] 이 세 인물의 창조 활동의 본질은 무엇인가?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의 경우와 달리,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 엘리엇이 어떤 난해한 문제를 풀거나 새로운 이론 체계를 구상했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특정 장르에서 새로운 예술 작품을 창조하고, 자신들의 변화하는 예술적 비전을 반영하는 창조물을 축적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인 것이다.
[P. 462] 피카소와 세잔, 스트라빈스키와 드뷔시, 엘리엇과 라포르그 사이에는 연속성이 개재한다. 이들 혁신가들 사이에는 인상적인 유사점이 있다. 파편적인 요소와 형태 자체에 대한 관심, 일상의 세속적인 삶에서 겪는 긴장, 원시에의 동경, 과거의 무거운 주제, 세속의 사소한 일들과 고상한 전체 주제 사이를 왕복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P. 462-463] 그러한 이러한 역사적 설명만으로는 이들 작품의 분명한 성격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우선 이들은 장인 정신이 투철한 예술가였다. 매일같이 작업실에 들어가 거의 홀로, 완성까지 몇 달 혹은 몇 년씩이나 걸리는 작품 제작에 몰두했다.

[P. 464] 실상 엘리엇이나 스트라빈스키는 좀 뒤늦게 태어났다면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그들의 모든 작품을 창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카소 역시 그런 것에 익숙하다면, 아예 작품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컴퓨터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세 명의 예술가들은 앞 장에서 다루었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연구실 혹은 작업실의 창조자라고 할 수 있다.

[P. 464] 마사 그레이엄이나 마하트마 간디와 구별되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을 보게된다, 이 두사람의 창조적인 활동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이루어진 것이긴 하지만 특정 시기에 그들의 공개적인 행동(performance) 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에 따라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8. 마사 그레이엄-무용계에 혁명을 몰고 온 여자
[P. 466] 많은 무용가들이 이런 역사적인 창조에 기여했지만 가장 중요한 인물은 마사그레이엄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논의하는 창조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여성이며 미국에서 삶을 영위한 인물이다,

[P. 466] 마사 그레이엄의 혁신은 무용의 두가지 흐름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P. 467] 일반적으로 무용을 현대에 진입시킨 최초의 인물은 이사도라 던컨으로 알려져있다. .........흔히 이사도라는 신체를 무엇보다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로 여겼다고 한다. 그녀는 무용을 위대한 음악 작품의 반주에 맞춰 공연하는 진지한 예술 형식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P. 468] 용기있는 성격에다 미학적인 모험을 추구하였던 이사도라는 당연하게도 무용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녀의 기술적인 혁신은 많은 사람의 추종을 불러올 만큼 숙련성이나 일관성을 갖고 있지 못했다. 이사도라의 성공 요인은 제자나 ‘양녀’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주로 그녀의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와 ‘몸의 본능적인 움직임’에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사도라는 통상적으로 새로운 무용 전통의 창시자라기보다는 고독한 선구자로 여겨진다. 날카로운 식견을 지닌 무용 비평가 애그니스 드 밀(Agnes de Mille)은 이렇게 말한다. “이사도라는 무대에 널린 쓰레기를 모두 청소했다. 그녀는 거대한 빗자루였다. 그녀로 인해 비로소 무대가 깨끗하게 청소된 것이었다.”

[P. 470-471] 그레이엄의 아버지는 딸이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내가 모를줄 아니? 네가 나를 속인다는 걸 항상 네 몸짓이 말해 준단다. 네가 말하는 내용과는 상관없이 네 모습에 다 써있어. 주먹을 쥐면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등이 뻣뻣해지고 발을 끌거나 눈을 내리깔고 있잖니. 몸짓은 거짓말을 못하는 법이란다.” 딸의 잘못에 대한 이런 통찰력 있는 부모의 대응은 나중에까지 커다란 의미로 남았다.

[P. 473] 신속하게 자기 분야를 마스터하는 것은 거장들의 일반적인 특징인데, 그레이엄 역시 곧 주연 무용수가 되었고, 강사가 되었으며, 관능적인 무엉인의 집시 풍 무용인 [세레나타 모리스카(Serenata Morisca)] 의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숀의 가르침을 모두 배운 그레이엄은 이후 평생동안 세인트 데니스의 인간상과 인격 그리고 무용에서 지속적으로 영감을 받았다. 

[P. 474-475] 거의 서른 살이 된 이 시점에서 그녀는 마음속에 번지는 모든 의심을 접어두고 프로이트나 피카소에 비견할 만한 태도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나는 정상에 오를 것이다. 누구도 아무것도 나를 막지 못한다. 그리고 나 홀로 그 길을 갈 것이다.”

[P. 478] 그레이엄의 무용을 묘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그녀의 바람대로 영상으로 담아낸 초기 무용이 별로 없고, 공개적으로 상연할 만한 작품은 더욱 없다..........예술 장르 가운데 무용은 특히 언어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P. 480]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의 삶은 신경을 자극하고 날카롭게 후비는, 뒤죽박죽 엉켜 있는 삶이다.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하다. …… 내 무용에 표현하려는 것이 바로 이런 삶이다.”
[P. 481] 신들을 모방하고자 했을 때 우리는 신들의 춤을 추었다. 그런 후에 우리는 바람과 꽃과 나무 등 자연의 힘을 재현함으로써 자연의 일부가 되고자 했다. 춤은 더 이상 의사소통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다. ……현대 무용은 고집스럽게 추함만을 극화하는 거도 아니고 신성한 전통에 타격을 가하려는 것도 아니다.  ……  표현주의적인 무용의 장식적인 형식에 대한 반역이 일어난 것이다. 대단히 엄격한 간소함의 시대가 온 것이다. 

[P. 482] 그레이엄은 어떤 춤을 어떻게 출지에 관해서 미리 정하는 법이 없었다. 무대 배경이나 의상을 언제까지 준비 완료해야 하는지도 생각하지 않았다.

[P. 483-484] 가벼운 즐거움과 여흥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실망해서 돌아갈 것이다.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 프로그램에는 열정과 항의가 생생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용가로는 용서받지 못할 일을 하는 셈이다. ……관객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P. 484] 윗킨스는 “무용은 더 이상 예술의 의붓자식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마틴과 마찬가지로 그레이엄을 각별히 칭찬했다.

[P. 485] 처음 그레이엄을 보았을 때는 그녀의 태도를 오해하고 그녀의 방식을 혼동해서 모두가 낡고 촌스럽고 요령부득인데다다 별로 흥미도 없는 무용이라고 생각했다. …… 이 고독한 무용가, 여자답지도 않던 그녀는 세련되니 않고 거만해 보였으며 스파르타의 여인같은 무용수 단운을 이끌고 있었는데, 이들도 내게는 그레이엄의 분신, 즉 철의 여인들로 보였다.

[P. 486] 그레이엄에게 추종자가 생긴 것은 아마도 그녀 스스로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고 알리는 노력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P. 492] 바바라 모건은 이렇게 썼다. "무용수들은 비트 때문에 걷는 것처럼 보여지만, 그레이엄은 비티에 떠밀려서 억지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 같았다."

[P. 498] 미국의 무용가는 미국인 관객에게 빚을 지고 있다. 미국이란 나라 자체에 절맞는 힘을 자진 예술을 낳기 위해서 우리는 미국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던컨이나 데니스에게는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은 곡물을 지배하는 것을 뜻하고 손을 흔드는 것은 비가 내리는 것을 암시했다.  

[P. 504] 도날드 맥도너프(Donald McDonough)는 이렇게 말한다, “그레이엄이 창작의 방향을 새롭게 취할때면 언제나 이런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단원이 꼭 생겨났다.”

[P. 505] [프론티어]가 그레이엄의 명성을 확고하게 해준 작품이라면 [애팔레치아의 봄]은 아마도 가장 의미폭이 넓은 작품일 것이며 불후의 명성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앗는 작품일 것이다.

[P. 509] 그녀의 활동 분야는 간디의 활동 분야와 가장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간디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공연’을 했어야 했거니와, 더 가질 수 없는 처지였다. 분명히 그레이엄은 모든 현장에 참여하고자 했다. 그녀에게 있어 공연이란 삶 자체였고, 자신의 페르소나를 완전히 실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형식의 삶이 요구하는 긴장은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P. 515] 호킨스는 이렇게 지적한다. “마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 자신의 감정이었다. 그녀는 춤을 추면서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발산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감정을 다른 무용가에게 전달하는 일은 그녀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P. 519-520] “300년동안 발전된 발레를 전혀 활용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시간 낭비다. 나는 발레 자체와 싸운적이 없다. 다만 고전 말레의 경우는 뭔가 충분히 말하지 않는다는것, 특히 강렬한 극적 상황이나 열정의 문제에 관해서는 이런 점이 두드러진다는 것이고, 이런 부족함 때문에 내가 하는 종류의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P. 520] 그레이엄은 훌륭한 무용수가 되기 위해서는 10년이 걸린다고 생각했다.

[P. 521]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을 갖추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니진스키는 단 한번의 탁월한 도약을 위해 수천 번이나 도약 연습을 했다.”

[P. 522] 그레이엄은 무용 동작의 표현 능력을 굳게 믿고 있었고, 동작을 위한 동작은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동작을 우리가 느끼는 감정, 그녀가 표현하고 싶은 감정과 연관지었다.

[P. 523] 그레이엄은 작업 과정에서 초자연적인 기적을 바라지 않았다.

[P. 524] “나는 무용가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는 무용가로 선택된 것이다.” …… 마치 동물처럼 다른 생각하나 없이 오직 이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선택은 없습니다. 동물이 일체의 속임수나 야망없이 먹고 마시고 새끼를 치는 것처럼 말이죠“

[P. 526] “누구나 실패할 권리는 있다. 실패했더라도 더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용기만 있다면 실패를 발판으로 새로운 단계로 오를 수 있다. ……한 가지 대죄(大罪)가 있다면 그건 범용(mediocrity)이다. 이게 내 믿음이다.”

[P. 526] “당신이 무용단에 소속해 있으면, 마사는 당신을 위해 죽는 시늉까지 할 것이다. 하지만 무용단을 떠나는 순간 당신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된다.”

[P. 535] 무용보다 더 극적으로 추세가 변한 분야는 없었다. 19세기에도 무용은 예술 형식으로 인정받았지만, 이것은 점차 낡은 형식이 되어가던 장중한 발레에만 해당되는 얘기였다.

[P. 536] 20세기의 100년 동안 현대 예술을 형성한 다섯 예술가를 고른다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벨라 버르토크,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마사 그레이엄이라고 생각한다.
[P. 538] 자신의 한계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하면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더욱 과감하게 밀고 나갈줄 알았다.  몸도 젊었고 마음은 더욱 젊었던 그레이엄은 피카소만큼이나 오랫동안 창조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책에서 다루는 다른 어떤 거장들보다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했던 것이다,

[P. 539] 조셉 캠벨이 자아의 전부를 인생에 바치는 것에 대해 말했을 때, 그레이엄은 이렇게 반박했다. “내가 만약 그런 길을 택했다면 나는 예술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


9.  마하트마 간디 - 신념을 실천한 정치 지도자

[P. 544] "나는 보통이하의 능력밖에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다.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괘념치 않는다. 지성의 발달에는 한계가 있지만 마음의 성장에는 그런 한계가 없다. " 모한다스는 어린시절부터 옳고 그름의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다.

[P. 549] 해외에 거주하는 동안 간디는 엄청난 독서와 풍부한 산 체험을 자기 것으로 소화했다. 

[P. 552] 만년에 간디는 자신이 남은 인생동안 매진하게 된 정치 운동이라는 사명의 기원이 마리츠버그의 기차역에서 오들 오들 떨면서 지새운 그날밤에 있다고 회고했다. “나는 인도인 정착자들의 힘든 상황을 글로 읽고 귀로 들어서 뿐만 아니라 내 몸으로 직접 체험해서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남 아프리카는 자존심 있는 인도인이 살 곳이 못 된다는 것을 알았고, 어떻게 이런 상태를 개선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내 마음은 점점 더 사로잡혔다.”

[P. 558] “진정한 치유는 영국이 이기심과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문명을 버리는 것, 아무런 목적도 없고 헛되기만 할 뿐인, 그리고……. 기독교의 정신을 부정하는 그런 현대 문명을 버리는 것에 있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P. 559] 간디는 사티아그라하가 단지 수동적인 저항에 그쳐서는 안 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생명의 힘이 되어야 한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P. 560-561]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적 창조자들은 주로 개념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하고, 스트라빈스키나 피카소 같은 예술가들은 기존의 상징체계로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한다. 반면 간디와 같은 정치적 창조자들에게 있어 창조적인 작업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보다 넓은 목적을 위해 움직이도록 추동하는 능력에 있다. 이들의 개인적인 행위는 그들의 사명을 실현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표현의 매개이다.

[P. 567-568] 이미 앞장에서 설명한대로, 우리는 창조적인 도약에는 언제나 한사람(조르쥬 브라크)이나 작은 집단(아인슈타인의 올림피아 아카데미나 스트라빈스키의 디아길레프 발레단)이 인지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창조자는 새로운 언어로 작업하는 만큼, 이를 이해하고 창조자가 표현하려는 내용이 그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음을 알아주는 지지자가 꼭 필요한 법이다.

[P. 573] “위대한 공상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간디 역시 명상적인 천품(天品)과 활동성 그러니까 열정적이고 활동적인 일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와 능력을 결합했다.”

[P. 574] 무엇보다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은 톨스토이의 저작이었다. 톨스토이를 읽은 경험으로 말미암아 그는 영원히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서 폭력에 호소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났을 뿐 아니라, 인간의 권리보다는 의무, 그리고 모든 인간 문제에서는 사랑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P. 575] 개인적인 자유는 사회에 봉사하는 자유가 되어야 했고, 개인적인 비폭력은 보다 넓은 갈등의 무대에서도 실현되는 비폭력이 되어야 했다. 

[P. 575 ] 에릭슨이 그의 간디 연구에서 강조한 것처럼, 종교적인 혁신가란 자신의 개인적인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해답이 궁극적으로는 보다 넓은 공동체의 난국을 해결하는 데도 효과가 있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

[P. 576-577] "내가 이루고 싶은것, 지난 30년 동안이나 내가 애타게 갈망했던 것은 자기 실현, 신과 대면하는것, 다시 말해 모크샤(Moksha) (대체로 ‘신과의 하나됨’을 뜻함)를 이루는 것이었다." (이러한 표현은 놀랍게도 신의 생각을 알고자 했던 아인슈타인의 겨만한 욕구와 일맥상통한다.)

[P. 577] 아인슈타인을 상대성이론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프로이트를 무의식과, 혹은 파카소를 입체주의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간디 역시 사티아그라하의 거장이었다. 

[P. 578] “아무리 심한 고통을 당할지라도 진리파지자는 결코 물리적 힘을 쓰지 않았다.” 간디는 전통적인 대결 방식과 사티아그라하 방식의 차이점을 간결하게 설명한다. “폭력을 사용해서 정부가 법안을 폐기하도록 강제한다면, 나는 몸의 힘을 사용하는 셈이다. 법에 복종하지 않고 그 대가로 주어지는 처벌을 달게 받는다면, 나는 영혼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엔 자아의 희생이 수반된다.”

[P. 581] 사티아그라하의 유별난 점, 그리고 사티아그라하를 인간의 위대한 성취로 만든 요소는 그것이 실천적인 철학을 대표한다는 점에 있다.
[P. 581] 사티아그라하를 실행하는 일은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P. 585] “단식은 적에 대항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단식은 오직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이고, 오직 우리 자신의 복리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단식에는 그 나름의 체계적인 수련법이 있다. 내가 아는 한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원숙한 경지에 오른 간디는 인도인 전체를 그의 가족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러한 정신적 도약을 기꺼이 감행했다.

[P. 586] 간디의 묘한 인품과 묘한 사상을 알게 된지 이제 35년이 되어 간다. 그를 만난 일은 마치 정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즉각적인 효과가 있었다. 그 충격은 위로하고 우리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우리의 마음은 발다른 방법이나 논리없이 만들어진 이 새로운 사상을 소화하기 위해 씨름해야 했지만 조직 전체는 그의 사상에 반응했고 그것의 영향 아래에서 성장했다.

[P. 592] 1930년대 초반에 네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서적으로는 강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점점 더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어서 다소 유감이다. 그가 끊임없이 신을 말하는 것은 나를 무척 화나게 한다. 그의 정치적 행위는 한치의 오차도 앖는 본능에 인도되고 있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지 않는다”

[P. 599] 기자들에게 간디는 힘차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인도 국민을 대변하고자 합니다. 말도 못하고 헐벗은 굶주리는 인도인들은 대변하고자 합니다. 나는 협상하기 위해 런던에 온 것이 아닙니다.”

[P. 600] 간디는 비폭력을 신봉했지만, 점차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고 있음을 암시했다. “자유는 여러분의 생득권(生得權)이듯 우리의 생득권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 피를 흘리는 것을 우리는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께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자유를 얻는 데 희생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갠지스 강을 피로 물들인다 해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P. 605] “그는 태풍의 눈속으로 들어갔다. 가장 잔혹한 폭력이 저질러지는 장소로 들어갔다. 그는 사티아그라하의 유일한 실천자가 되었고, 몸소 시위를 하고 설교를 하고 단식을 거행함으로써 폭력에 대한 싸움에 온몸을 던졌다. ”
[P. 607] 간디는 그의 시대와 상황에서 최선의 업적을 이루었다는 견해가 널리 인정된다. 간디는 인도 사상뿐만 아니라 서양의 사상도 받아들여서 그 자체로 효과적인 행동 프로그램이기도 한 독창적인 철학을 창조했다. 네루는 간디가 “마치 정신분석학의 전문가가 환자의 과거를 깊이 조사해서 그의 콤플렉스의 원인을 밝혀내고 이를 환자에게 알려주어서 병증을 제거한 것 처럼 사람들의 심리적인 변화를 이루어냈다”고 말했다.

[P. 609] 아인슈타인은 좀 더 시적인 말로 이런 생각을 표현하기도 했다. “아마도 후세대인들은 이런 인물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으로서 이 지구상에 걸어다녔다는 사실조차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간주곡 3

[P. 610] “나의 전문 분야는 행동이다” -마하트마 간디-

[P. 610-611] 그레이엄은 기본적으로 공연가(performer)였다. 그녀의 예술적 공헌은 특정한 역사적 순간, 그리고 관객의 즉각적인 반응과 긴밀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중요한 점에서 그녀는 간디와 유사한 창조자라 할 수 있다. 인도의 지도자 간디 역시 특정한 역사적 순간에 펼친 활동(Performance) 과 이 활동 내용에 대한 사람들(그를 접한 사람들과 그의 행적을 멀어서 알게 된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갈린 창조자였다.

[P. 611] 간디와 그레이엄은 아주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들의 육체로서 창조 활동을 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적인 외양, 그리고 자신들의 몸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그들의 창조 활동의 핵심이다.

[P. 613] 그레이엄과 간다는 둘다 그들의 사상과 신체로 형성된  공간에서 활동했다. 그런데 이 공간은 그들의 사상(관념)과 이 관념을 특정한 역사적 순간에 신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간의 변증법적 공간이라고 할 만하다. 
[P. 614] 이들 창조자 가운데 오직 간디만이 어떤 집단이나 분야에 속한 성원이로서가 아니라 인간성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말을 걸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이력과 재능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뜻이 통하는 그런 이야기와 사상과 존재 방식을 창조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한분야를 쇄신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새로운 인간의 이야기를 창조하고, 그것을 설득력있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이유로 간디의 업적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제3부 창조성의 조건
10.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


[P. 622] 전형적 창조자(Exemplary Creator) 의 초상을 묘사하는데 그다지 불편한 느낌은 없다.  EC는 자신이 출생한 사회의 중심 지역, 권력과 영향력이 가장 많은 지역에서 다소 떨어진 지방에서 다소 떨어진 지방에서 나고 자라지만, 가족이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을 아예 모를 정도는 아니다. 가족은 부유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비참한 궁핍 생활을 하는 편도 아니어서 어린시절에는 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다. 집안 분위기는 따뜻하기보다는 반듯한 편이고, EC는 자신의 생물학적 가족에는 다소 소원함을 느낀다. .......EC의 가족은 교육 수준이 높지는 않아도 배움과 성취를 높이 평가해서 이런 방면에 대해 자식들에게 거는 기대가 큰 편이다.  

[P. 623] 포부와 사회적 위신을 소중히 여기고 고된 일을 높이 평가하는 전형적인 부르주아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EC는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재능을 보이고 가족은 안정된 직업인이 될 수 없다는 우려를 하면서도 이런 관심을 고무한다, 
[P. 623] EC는 이미 10년 이상 어느 분야를 완전히 통달하기 위해 노력한 상태이고 그 분야에서 거의 최전선에 와 있다. 가족이나 지방의 전문가에게는 더 이상 배울것이 없기 때문에 다른 뛰어난 젊은이들과 겨루고 싶은 시급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청년이 된 EC는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활동이 활발한 중심 도시로 과감하게 이주한다. 
[P. 625]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EC의 창조력도 한계에 부딪친다. 이런 경우에는 젊은 동료를 통해 새로 젊음을 되찾기도 한다. 독창적인 작품을 새로 만든다는 것이 점점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EC는 존경받는 비평가나 주석자가 된다. .... 우리가 살펴본 EC의 경우는 오랫동안 살면서 많은 추종자를 얻게 되고 죽기 직전까지 커다란 공헌을 한다. 

[P. 629] 창조성의 현저한 특징은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의 결합에 있다. 이런 결합은 성

격만이 아니라 사고방식(관념)에서도 나타난다. 아이다운 특성이 순진함과 참신함으로 나타나면 긍정적인 색채를 띠게 되지만, 반대로 이기심과 보복심리로 나타나면 부정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P. 629] 성인 프로이트는 아이다운 성격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P. 632-633] 창조의 긴장이 높은 시기에는 만만찮은 괴로움을 겪었다. 내가 아는 한 이들 모두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낙담하고 의기소침했으며 거의 모두가 일종의 신경쇠약에 걸린 적이 있다. 
[P. 633] 프랑스의 소설가 구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남들은 도착이라 할지 모르나 나는 내 작품을 미친 듯이 사랑한다. 마치 고행자가 배를 할퀴는 마모직 셔츠(hairshirts)를 사랑하듯이 말이다.”
[P. 633] 어릴때부터 해야 할 일을 반드시 지켰고, 학과 공부나 전문 지식을 빨리 습득했다. 이들은 모두 억압적인 통제에 반발했다.

[P. 634] 유년기에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모델을 만났다는 점이다.
[P. 635] 첫째, 많은 사람들과 편안하게 지내던 시기에는 극도의 고립 속에서 중대한 발견을 이루는 시기를 거쳐 결국 나이가 들면 다시 더 크고 더 포용적인 세계로 회귀했다. 둘째, 극도의 고립을 겪는 시기에 한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그에게서 필요한 도움과 격려를 얻었다는 점이다. 
[P. 637] 대략10년을 사이에 두고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었다. 인지 심리학 계통의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한사람이 어느 분야를 기본적으로 통달하는데  필요한 기간은 대략 10년 정도이다.

[P. 637] 10년간의 견습 기간을 거쳐야 중대한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약은 대개 일련의 시험적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는 편이지만, 일단 도약을 하게 되면 과거로부터 결정적인 단절을 이룬다.

[P. 638] 프로이트의 [프로젝트]와 아이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엘리엇의 [황무지], 그레이엄의 [프론티어], 간디의 아메다바드 파업을 결정적인 도약으로 간주한다.

이어서 창조자는 자신의 혁신적인 도약과 타협을 한다. 혁신에의 열정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후속적인 혁신은 보다 폭이 넓고 종합적인 성격을 갖게 마련이다. 

[P. 638]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혹은 [토템과 터부]), 아이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 피카소의 [게르니카], 스트라빈스키의 [결혼], 엘리엇의 [4개의 사중주], 그레이엄의 [애팔래치아의 봄], 간디의 소금행진 등이 두 번째로 정점에 오른 도약이라 할 수 있다.

[P. 639] 두 번째 10년이 지난 후에는 다른 종류의 기회가 생긴다. 관련 분야를 역사적으로 혹은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기 시작할 수도 있다.

[P. 639] 피카소는 성년이 된 이후로는 하루에 평균 한 작품을 그렸고, 프로이트는 수십권의 저서와 수백편의 논문을 썼다.

[P. 641] 프로이트 역시 매년 10여 편의 논문을 써냈지만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고, 그 자신은 언제나 새로운 생각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10년이란 기간은 이런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독립적인 작품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한정된 기간 안에 한사람이 내 놓을 수 있는 진정으로 혁신적인 작품이나 사상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P. 646] 어쩌면 하나의 패러다임이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는 것은 새로운 접근 방법이 매우 빠른 속도로 폭넓게 수용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최적의 표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P. 654] 어떤 개인이 다소 추상적인 의미에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났더라도 어떤 분야에 참여해서 해당 장(場)에 의해 평가받는 성과물을 내놓지 않으면 그 사람이 실제로 ‘창조적’ 이라는 평가에 합당한지 여부를 결정하기는 불가능하다.
[P. 654] 창조적인 이물의 특징적인 모습은 창조성의 삼각형에서 어떤 부조화, 혹은 부드러운 연결의 결여를 장점으로 활용할 줄 안다는 점이다.
[P. 655] 나는 몇몇 지점에서 비동시성을 겪으면서 동시에 거기에 따르는 중압감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만이 창조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가정했다. 
[P. 656] 이 책에서 다른 인물들은 모두 '경계(edge)'에 존재하는 전율 혹은 몰입 체험을 하기 위해 비동시성의 조건을 의도적으로 추구했으며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은 왜 이런 바동시성의 과실을 경험하고 싶어 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P. 657] 힘든 상황에서 도전을 거듭하며 성격은 더욱 강해졌고(엘리엇은 이렇지 못했다.) 덕분에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든 원래 처한 상황 때문에 생긴 것이든 여러 비동시성의 조건에서도 무용가로 대성할 수 있었다.
[P. 662] 그렇다면 창조적인 도약의 시기는 정서적으로나 인지적으로 매우 긴장이 높은 시기일 수 밖에 없다. 이때는 유아기 아래 다른 어떤 시기보다도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P. 663] 파우스트 전설이란 창조적인 인물은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점에서 특별나지만 그런 재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치르거나 모종의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통념의 가장 유명한 판본일 뿐이다. ...전문작가나 공연가로 계속 활동하려면 자신의 재능을 지속적으로 갈고 닦아야 한다. ....결국 우리는 창조적인 인물은 개인적인 신이나 정령과 결탁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창조적인 인물들이 자신의 재능을 잃지 않기 위해서 미신을 믿거나 비합리적이고 강박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에 상당히 놀랍다.
[P. 664] 프로이트와 간디, 엘리엇의 극단적으로 금욕적인 삶 역시 파우스트적 계약의 다른 모습이다.
[P. 665] 자신이 대단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무엇인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거래를 되도록 분명하게 확정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하면서 창조력을 최대한 발휘할 때는 다른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가 큰 도움이 된다.


에필로그 -현대와 현대 이후

[P. 669] 한 시대에 특정한 이름표를 붙이는 것, 한 시대를 일률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위험하다, 입증할 수 없는 주장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 676]“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 우리가 허용했던 것보다 힘이 더 큰 역할을 하는 세상, 기본적인 안정성이 사라진 세상, 문명의 두터운 껍질을 뚫고 갑자기 군력에 대한 야만적인 욕망과 삶에 대한 냉담이라는 배후의 힘이 드러난 세상이 되었다.” .역사가 윌리엄 파프(William Pfaff)의 말은 더욱 단호하다. ”제1차 세계대전은 현대 서양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임이 분명해졌다. 그 효과는 아직도 소진되지 않았다.“
[P. 678] 현대 예술은 끊임없는 변화라는 맥락에서 탄생한다. 그것은 전통을 송두리째 거부하고 비평가 해럴드 로젠버그(Harold Rosenberg)의 말대로 ‘새로움의 전통’을 창조하려는 단호한 노력이다.
[P. 682] 내 생각에 모든 창조적인 도약에는 겉보기엔 전혀 이질적인 두 영역의 결합이 있다. 하나는 관련 분야에 대한 철저하고 조숙한 통달이고, 다른 하나는 유년기의 의식과 관련된 이해 방식과 직관이다. 창조적인 도약은 이런 두 영역의 성공적인 결합에 있으며, 이런 결합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그 도약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P. 683] 현대의 거장들은 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아이다운 천진성과 자기분야의 가장 선진적인 사고방식을 결합 할 수 있었다.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정의하는 특징(defining characteristic)은 정규 교육의 문턱에 들어설 나이, 즉 4살에서 7살 사이의 마음을 되살리는 데 있다.
[P. 685] 창조자가 젊은 시절에 해당 분야를 거의 터득하고 그 정점에 오르지 못하면 창조적인 업적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그들의 창조적인 도약은 원숙한 인물의 원숙한 작업의 결과이다. 그러나 아주 어린 시절, 거의 유아기의 감각과 시점을 보유할 수 있는 자만이 창조적인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보들레르가 말한 대로 천재란 유년기를 다시 찾을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P. 690] 현대의 거장들은 과거의 짐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고 했지만, 실제로는 과거에 깊이 젖어 있었다. 그 과거가 종교든 역사든 전통이든 학문이든 혹은 이런 것들의 혼합이든 그들은 과거를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했다. 그들은 심연 가까이 접근했지만 다시 뒷걸음질 쳤다. 점차 아니가 들었기 때문일수도 있고, 전통의 존재 이유를 다시 발견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P. 691] 인간이란 어쩌면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방향, 장르 혼융의 방향으로 무한정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혁신과 전통, 모더니즘과 역사주의, 창조적인 도약의 시기와 인간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는 정체 혹은 퇴행적인 시기를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1900년 경의 현대적 정신이란 아마도 인간의 모험적 능력을 보여주는 실례일 것이며, 그들이 그처럼 활기찬 정신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역사의 그처럼 짧은 기간에만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옮긴이의 글
[P. 692] 저자 하워드 가드너는 다중지능 이론으로 유명한 교육학자다. 우리는 흔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보고 “똑똑하다”거나 “지능이 우수하다”고 말하곤 하지만, 가드너는 이런 발상이 틀렸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지능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서 “어떤 한 사람이 무조건 지능이 우수하다거나 열등하다고 단정짓는 생각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는 것이다. 프로이트처럼 언어 지능과 논리 지능이 우수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카소처럼 공간 지능과 신체 지능이 우수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능이 다원적이라면 창조성(혹은 창의성creativity) 역시 다원적이라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P. 693] 어릴 때 품었던 꿈을 이제는 기억조차 못할 정도로 아스라이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가드너는 창조성이란 바로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평생 동안 지닐 수 있었기에 이 책에서 다루는 거장들은 그토록 열정적으로 자신의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다는 게 저자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것 같다.
[P. 693-694] 저자가 현대(modern age) 혹은 현대성(modernity)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어떤 특정한 시기를 말한다기보다는 ‘새로운 정신의 태동’을 의미하는 것이라해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터다.
[P. 694] 창조성은 단순히 재기(才氣) 나 문제풀이 능력이 아니다. ........창조성은 단지 한 개인의 특월한 재능만으로 실현되거나 발휘될 수는 없고, “오직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ㅡ 그리고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P. 695] 천재나 거장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사회의 총제적인 문화 역량이 축적되어 있을때나 뛰어난 개인이 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창조의 거장이 탄생하여면 “그 분양[ 우호적인 문화와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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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가 저자라면


(1) 책의 구성

이 책은 저자 하워드 가드너가 오랫동안 인간의 발달과 지능, 심리의 연관성을 연구한 후 창조성이 어디에서 발현되는지를 밝히기 위해 일곱명의 창조성이 짙었던 분야별 대가를 비교 분석한 책이다.  이 책에는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엘리엇, 그레이엄, 간디 등 일곱명의 창조적 거장들의 삶과 그(혹은 그녀)들이 처한 주변환경, 시대적 특성을 곁들여 창조성의 본질을 조명해낸 분석서이다.

책의 편성은 3부 10장으로 되어있다. 제1부는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왜 이 연구와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창조성 연구배경과 방법, 인물선정 기준 등에 대해 논하고 있다, 제2부의 7장에 걸쳐 나오는 인물들의 분석 이전에 방법론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1부의 내용이다.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이라는 제목의 제2부에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각 분야 거장(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엘리엇, 그레이엄, 간디)들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각 인물들의 가족, 성장과 교육환경 등을 창조성이라는 주제에 맞춰서 분석하고 관련성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제3부에서는 ‘창조성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제1부와 제2부에 언급한 내용을 요약하고 다시 정리하여 독자들에게 창조성에 대한 개념을 다시 심어주려고 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 나오는 7명의 대가를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간주곡’이라는 제목으로 각 대가들의 장이 전부 다 끝나는 부분에서 그 비교분석 결과를 정리해 두고 있다.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은 학문적인 마인드를 창조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공통점으로 간주곡1에 모아두었다. 간주곡2에서는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엘리엇을 20세기 예술가라는 틀에서 비교하고 있다. 간주곡 3에서는 다소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그레이엄과 간디를 운동, 활동지능이라는 맥락에 맞춰서 비교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각 간주곡에 비교한 대가들 외에 다른 그룹으로 분류한 대가들도 함께 비교하고 있고, 또 여기서 선택한 대가가 아닌 인물들(예: 뉴턴, 마틴루터킹, 니진스키)과도 비교하고 있다.

(2) 책의 장점

하워드 가드너는 이미 다중지능이라는 새로운 지능의 개념을 전 세계 학계에 이미 전파한 대가이다. 그가 쓴 책을 읽는 것은 무척 흥분되는 일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채택한 ‘창조성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 대가를 비교하는 방법’은 다른 책에서도 이미 많이 발표한, 저자가 매우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저자는 Leading Minds(통찰과 포용)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도자 11명(대처, 킹, 루즈벨트 등)을 비교 분석했고, 비범성의 발견에서는 모차르트, 프로이트, 울프, 간디 등 비범성을 표출한 인물들을 비교하고 있다. 그 외의 저서에서도 대가나 인물들을 비교 분석하는 것을 상당히 즐기는 듯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각 대가의 출생과 성장, 교육환경, 사회적 배경까지 고려한 종합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차짓 교육학으로만 연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워드 가드너는 교육학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종합적인 분석을 하고 비교하고 있는 점이 좋았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창조성에 대한 연구는 한 천재가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다르고 특이한가를 밝히는 특이성 연구이거나, 여러 천재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유사점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공통성 연구로 진행된다. 그런데 가드너는 이 둘을 결합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창조적 업적을 낸 창조자를 선택한 후, 이들 인물들의 ‘특이성’을 자세하게 검토하고 그 속에서 ‘공통성’을 찾으려고 시도한 점이 이 책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고 저자의 연구 결과가 갖는 의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3) 보완할 점

[P. 54] 에서 저자는 “본 연구에서는 창조성이라는 현상에 사회과학과 인지과학의 통찰을 작용하고자 노력했지만 지성사와 문화사의 까다로운 인식론적 문제 까지 해결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라고 했는데

사회과학을 통해 창조성을 본 것은 동의가 되지만 인지과학의 통찰을 사용했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별로 많이 찾아볼 수가 없다, 마음의 종합적인 변화, 정신의 변화과정에 대한 설명은 별로 많이 하지 않고 외부로 드러나는 현상과 저자 본인이 볼 수 있는 발달적인 면만을 많이 강조한 것 같다. 저자의 다른 저서 <체인징 마인드>에서 처럼 마음의 변화과정이라는 관점에서 각 대가가 창조성을 어떤 지점에서 발화하게 되었는지를 언급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②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가 교육학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지 창조성의 기초를 어린시절의 영향에서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그는 페이지 75에서 “ 첫 번째 관심사는 아동과 창조적인 어른의  관계이다. 이는 어른이 지닌 창조성의 중요한 차원이 유년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내 믿음을 반영하는 주제이다,” 라고 하며 창조성의 기초에 ‘발달과정’을 너무 크게 두고 있다. 결국 제3부 685페이지에서 “창조자가 젊은 시절에 해당 분야를 거의 터득하고 그 정점에 오르지 못하면 창조적인 업적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그들의 창조적인 도약은 원숙한 인물의 원숙한 작업의 결과이다. 그러나 아주 어린 시절, 거의 유아기의 감각과 시점을 보유할 수 있는 자만이 창조적인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보들레르가 말한 대로 천재란 유년기를 다시 찾을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라고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소속된 학과가 교육학과이므로, 교육학에서 바라보는 관점으로 결론을 지은 것이라 생각이 들어 조금은 이해되기도 하지만, 어린시절의 영향에서 벗어나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증거를 우리는 역사에서 많이 수집할 수 있으므로 그의 이론이 100% 옳다고 동의 할 수는 없다.

③ 각 대가를 비교하는  방법이 너무 복잡하고 체계적이지 않았다. 또한 이 책에 나온 인물 외에 다른 인물과도 비교하고 있는 대목(이사도라, 니진스키, 킹, 뉴톤 등)이 있는데,  체계적으로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언어로 비교하는 것이라 읽고 나서 별로 남는 게 없다, 

저자는 627 페이지에서는 표를 그려 일곱 명의 강점 약점을 나열하고 있는데, 이 방법을 간주곡에도 도입했더라면 더 이해가 쉬웠을 것 같다. 간주곡을 쓸 때 각 그룹의 대가를 비교한 것을 표로 만들어두고, 비교하는 인자들도 정리해 두었다면 독자들이 쉽게 대가의 특성과 다른 대가와의 공통점과 차별성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IP *.145.20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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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0.05.24 13:30:19 *.219.109.113
까오~ 멋져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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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 경
2010.05.25 10:17:06 *.145.204.123
은주님
저자 정리에 신경을 많이 쓸려고 하는데 어렵네요
(다들 하시는 것 보면~~대단 신통 방통)
다음주에는 저자소개를 내 언어로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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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es saint laurent
2011.05.31 18:19:12 *.111.182.3
Wear your high heels in a sitting position and around the gianmarco lorenzi shoes home first. After a period of gianmarco lorenzi pumps time they will become comfortable and you gianmarco lorenzi boots will probably forget you are even wearing them.If you are giuseppe zanotti shoes planning to wear heels outdoors or at a club on the weekend, wear giuseppe zanotti boots them around the house for a few hours first until they feel nat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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