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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6일 19시 41분 등록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0

  최근 대한민국 독서계가 ‘정의’라는 화두로 들썩이고 있다. 하버드에서 최고 인기라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를 책으로 묶은『정의란 무엇인가(원제, Justice:What's the Right Thing to Do?』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거나 또는 읽은체를 하는 듯이 보인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명박 정부도 최근들어 ‘공정’을 국정의 핵심과제 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정의에 관한 모든 이론들의 바탕에는 존 롤스(1921∼2002)가 있다. ‘정의’를 연구하는 미국의 대부분 학자들은 롤스를 닮거나 혹은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학문을 발전시켜 왔다. 롤스의 ‘정의론’은 자유주의적 정의론의 대변서이며 마이클 샌델 교수 역시 공동체주의적 관점에서 이를 비판하며 그의 이론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 밖에도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밀, 롤스 등 도덕철학, 사회 정의 분야의 고수들을 한 자리에 불러 들인다.

  저자는 자유사회의 시민은 타인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정부가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건 정당한가, 자유시장은 정말 공정한가 등의 문제제기를 통해 정치철학사를 일관된 눈으로 꿰뚫는다. ‘어떤 상처를 입어야 상인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구제금융을 둘러싼 분노, 철로를 이탈한 전차,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대가를 받는 임신’ 등 제목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구체적인 사례들이 가득하다. 난해한 철학적 명제를 주제로 삼고 있음에도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는 까닭은 그나마 이처럼 풍부한 사례와 시사성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정의를 둘러싼 딜레마적 요소로 제시하는 키워드는 행복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요약되는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의냐, 개인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정의냐, 아니면 공동체의 미덕을 장려하고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냐? 저자는 겨우 책의 끝부분에 가서야 이중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세 번째 방식에 호감을 갖고 있음을 슬쩍 표시한다.

  샌델의 여정은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의 정의관에서 시작하여 칸트의 도덕철학과 롤스의 정의론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론으로 넘어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정의관인 ‘좋은 삶(good life)'과 ’공동선(common good)'을 동원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도덕적 미덕은 습관의 결과로 생긴다. 행동으로 터득하는 것이다. 미덕은 우선 그것을 연습해야 얻을 수 있다. 공정하게 행동해야 공정한 사람이 되고, 절제된 행동을 해야 절제하는 사람이 되고, 용감한 행동을 해야 용감한 사람이 된다”며 도덕을 회피하는 정치보다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를 촉구한다. 즉 가치 중립이란 없다는 뜻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 물음에 직접적으로 답하지는 않는다. 단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례들 속에서 논쟁의 핵심을 끄집어내며 독자들에게 판단과 그 근거가 되는 원칙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데 집중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기대한 독자라면 자칫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책은 미리 만들어진 해답을 속 시원하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독자들에게 꾸불꾸불한 길을 보여주며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 주는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어느 길로 들어서든 막다른 골목에서 반드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마주치는데 안타깝게도 正義에 대한 定義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이 무수히 많은 사례로 가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이유다. 어쨌든 2010년 한 해 동안 한국인들이 ‘정의’라는 샘물 앞에까지는 겨우 오긴 했는데 제대로 목을 축이고 갈증을 얼마나 해소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끝- (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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