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좋은

함께

여러분들이

  • 수희향
  • 조회 수 4706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1년 2월 10일 11시 14분 등록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헤세의 삶을 쫓고 있다. 위대한 한 작가의 사상적 여정말이다.
"데미안"을 통해 자아를 분석하고, "싯다르타"를 통해 객관적 통찰을 정리하고
"황야의 이리"를 통해 치열한 자기해체를 통해 천 개의 영혼 속에 존재하는 고유한 정신 세계를 들어올리려 하고, 이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는 자신의 고유한 정신세계는 예술로 표현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은 우주의 근본에 귀의하는 것으로 헤세도 서서히 노년의 삶에 다가서고 있다.

그의 장엄한 삶이 남긴 커다란 발자욱 앞에 갑자기 주변의 내 시간까지도 낯설어진다..

"한 인간의 운명과 소명은 딱히 본인의 소원보다는 오히려 다른 어떤 것, 그러니까 예정된 섭리같은 것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으니까요.. (16)"

이성을 대표하는 사상가 나르치스의 말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였기에 나르치스는 골드문트 속에 내재되어 있는 본성, 즉 그가 이성의 세계가 아닌 감각의 세계에 속한 인간임을 알아차리고 세상과 그의 본성 사이에 가로막힌 두꺼운 장막을 거두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현실의 세계는 이 현실의 너머에 꿈으로 가득 차 있는 형상들이 세계를 감싸고 있는 얄팍하고 불안한 표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얄팍한 표피는 한번만 마음을 먹고 찌르면 금방 구멍이 뚫릴 것 같았다 (100)."

"그러면 평온해 보이지만 황량한 이 현실의 이면에서는 광란하는 심연의 모습을 드러내고, 영혼 속에 심어진 형상들의 세계가 고삐에서 풀려나 은하수처럼 강물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101)."

고대 철학의 시대부터 인류를 지배해온 두 가지, 이성과 감성.
감성을 대표하는 골드문트는 그렇게 수도원을 뛰쳐나와 세상을 향해 자신을 활짝 열어젖히게 된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걸러내거나 제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전부 흡수하게 된다. 심지어 모든 쾌락과 살인까지도 경험하면서..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마리아상을 보고 자신도 그와 같은 작품을 그리고 조각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낀다. 드디어 그의 오랜 방랑이 무언가의 형상으로 표출될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그 마리아 상의 아름답고 사랑스런 얼굴에는 너무나 많은 고뇌가 서려 있었고, 그와 동시에 모든 그 고뇌는 순연한 행복과 미소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목격하자 마리아 상은 마치 불길처럼 제 속을 스쳐갔습니다. 몇 해 동안 품어온 모든 생각과 꿈들이 입증되는 것 같았으며, 갑자기 이제는 더 이상 무용지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금방 알게 되었습니다 (238)."

신화학자 캠벨의 말을 빌자면 "우주와 공명하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그렇게 세상을 떠돌던 골드문트가 어느날 갑자기 예술의 불꽃을 느낀 이유는 뭘까..?

"컴컴한 거울처럼 비치는 샘물 속에 되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는 생각했다. 물 속에 보이는 이는 이 골드문트는 수도원 시절 또는 뤼디아를 좋아하던 시절의 골드문트와는 다른 사람이 된지 이미 오래라고. 숲속을 헤매던 골드문트와도 판이했다. 그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이 그 물속으로 흘러들어가 끊임없이 변신해서는 마침내 해체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반면 예술가에 의해 창조된 자신의 모습은 영원히 변치 않는 똑같은 모습으로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5)."

불멸..
흔희들 예술작품은 불멸의 세계에 속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은 덧없고 쉬이 사그러들지만 그 인간이 남긴 예술작품, 조금 더 엄격히 말하자면 그 작품 속에 녹아들어가 있는 인간의 정신세계는 영원히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아니 적어도 한 인간의 삶보다는 훨씬 더 길게 우주의 흐름 속에 그 흔적을 남길 수 있다고.. 그 세계에 골드문트가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리고나니, 지금까지의 세상 방황이 전부 그 이유가 되는 순간이다.
목적지도 없이 뜻도 없이 무작정 세상에 자신을 내어놓고 헤매고 또 헤메이던 그 모든 순간들이 갑자기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렇듯 삶은 때론 미래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지금의 현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 일보다는 분명 한 단계 다른 차원의 삶같이 느껴지는 예술세계이다.
한번쯤은 내 자신을 던져보고 싶은 유혹이 이는 한 걸음 더 들어간 그 세계는 과연 어떤 세계일까..?

"그가 복종해야 했던 대상은 스승도 미래도 아니었고, 궁핍한 처지에 굴복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예술 자체에 복종했다 (267)."

왜..? 어째서..?

"예술은 결코 거저 주어지는 선물같은 것은 아니었다. 예술은 결코 공짜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 대단히 많은 대가를 요구했고, 희생을 요구했다. 삼년이 넘도록 골드문트는 사랑의 쾌락말고 그가 알고 있는 최고의 것, 없어선 안될 것을 예술에 바쳤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유였다 (266)."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예술을 선택했는데 (어찌보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 당한것일지도..), 도리어 예술이 한 사람의 삶 그 자체를 요구한다. 어쩌면 예술가의 길을 걷거나 일상의 행복함을 추구하거나 인간에게 진정 자유란 카잔차키스의 말처럼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그래서 두려움없이 내게 주어진 운명을 즐길 수 있을 때 누릴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아닐런지..

결국 골드문트는 명성있는 예술가의 길을 접고 다시 길을 떠난다.
과연 그 길은 어떤 길인건지..

"그가 따라야 할 것은 예술이 아니라 어머니의 부름이었다 (288)."

헤세가 말하는 "어머니"란 어떤 의미일까..?

"꿈과 최고의 예술작품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그것은 다름아닌 신비였다 (286)."

"내가 사랑하고 또 찾고자 하는것은 다름아닌 신비였다 ... 달리 통합될 수 없는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한 대립물이 이 신비의 형상 속에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었다. 그 신비는 탄생과 죽음, 자비와 공포, 생명과 소멸을 동시에 포용하고 있었다 (286)."

"태초의 어머니의 모습은 결코 머릿속에서 짜낸 것이 아니다 (287)."

감성의 끝인 예술을 뛰어넘어, 머릿속, 즉 이성으로 짜낸 것도 아닌 신비의 세계.
헤세의 시대가 말년으로 넘어가며 다음 작품들이 "동방순례"와 "유리알 유희"가 기다리고 있음을 생각할 때
그가 서서히 예술조차 뛰어넘어 진리의 세계로 다가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싯다르타에서의 객관적 통찰이 아닌 주관적으로 체득하는 통찰의 세계로서, 그 세계는 이원적 사상으로 대립되는 세계가 아닌 통합의 세계로서, 그 자체가 "신비롭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안정적인 예술가의 삶을 버리고 다시 길을 떠난 골드문트는 이제 자신의 삶을 완성하기 위해 쾌락의 정반대 급부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전 독일이 흑사병에 휩싸이며 가는 곳마다 인간들이 가장 어두운 면을 경험하는 골드문트..

"그는 예술가들이 그러하듯이 진심어린 연민과 냉정한 관찰 정신이 기묘하게 뒤섞인 상태에서 넋을 잃고 죽은 자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310)."

"세상이 부르짖는 고통에 자신을 내맡겼다. 슬프면서도 속은 이글거렸고, 감각은 활짝 열려있었다 (341)."

쾌락과 죽음이 다르지 않고 서서히 그 안에서 하나가 되어간다..

"틀림없이 이 고통과 처참한 심경 역시 언젠가는 아득한 옛적의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언젠가는 지쳐서 이런 감정 역시 잊혀지고 말 것이다. 영원히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뇌조차도 (361)."

기쁨이 지나가듯 고통 또한 지나간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것은 없음을 점점 더 깊이 깨달아가게 되는 골드문트..

그래서였을까? 인간세상에 절대적인 것이 있다면 그건 오직 신의 세계에만 속하는 일인걸까?
운명적으로 자신이 죽을뻔한 상황아래서 나르치스를 만나 목숨을 건지게 되고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간다.
운명의 순환 사이클이 반복되어 흐른다..

"지나온 인생 모두가 이런 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별하고, 달아나고, 잊혀지고, 빈 손에 얼어붙은 가슴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다 (420)."

자신에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골드문트에게 나르치스는 또 한번 그렇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그의 전 삶은 결코 헛되지 않았을거라고. 자아실현을 위한 여정이었을거라고. 자아실현이 뭐냐는 골드문트의 질문에 나르치스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잠재적인 것이 실현되고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바뀔 때, 우리 인간은 참된 존재에 참여하게 된다네. 완전한 것, 신적인 것에 한 단계 더 가까워지는 셈이지. 그것이 곧 자아실현이라 할 수 있겠지. 자네는 이 과정을 스스로의 경험으로 터득해야 하네 (427)."

예술가로 불리던, 요리사로 불리던, 선생님으로 불리던 그게 전부가 아니다.
헤세가 생각하는 삶의 의미는 각자 안에 있는 잠재성을 최대로 끄집어내어 실현하는 삶.
우주의 부르심에 호응하여 참된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삶. 그것이 곧 우리들의 삶의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전적으로 스스로의 경험으로 터득해야 한다고..

"성스러운 말씀을 사람의 말처럼 말하고 들어선 안 되네. ...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심정으로 말씀을 따라하고 가슴에 새겨두어야 하네 (437)."

헤세는 분명 한 차원 높은 세계를 인정하고 있다..

"골드문트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비록 수월하긴 해도 양심적으로 수행하는 신앙의 수련을 통해 일상의 번잡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자신의 전 존재를 바쳐 보다 더 높은 질서에 귀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질서는 그로 하여금 예술 창조자의 위태로운 고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고 또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작품을 위한 싸움은 외롭게 혼자 감당해야 하고 감각과 영혼의 모든 열정을 그 싸움에 바쳐야 했지만, 예배 시간만큼은 언제나 그를 다시 순진무구한 상태로 인도해 주었다 (438)."

"그러자 다시 뜻대로 되었다. 욕망에 사로잡히고 긴장해있던 자아는 다시 원만한 질서 속에 소멸되었으며, 존귀한 말씀은 다시 하늘의 별처럼 그 자신을 넘어서 있으면서 그의 내면을 속속들이 비춰주는 것이었다 (439)."

그리하여 만들어낸 작품을 보고 나르치스는 드디어 친구가 소우주를 창조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되었다. 골드문트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바로 그 시간이 돌아왔다..
육체의 극심한 고통에서 스스로를 분리하는 골드문트..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머니는 나를 끌어안으시더니 내 가슴을 열어젖히고 손가락을 갈비뼈 사이로 깊숙이 집어넣어 내 심장을 떼어내려고 하시더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이해하자 고통이 사라지더군 (475)."

드디어 온전히 세상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그녀는 삶 자체였고, 사랑이요, 쾌락 자체였지. 그런가 하면 때로는 불안과 굶주림과 충동으로 나타나기도 하셨어. 이제는 죽음의 모습으로 오셨다네 (476)."

어머니 우주는 우주만물 그 자체이시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인간의 이원적 사고로 분리될 수 없는 영원불멸의 그 자체말이다..

"내 손으로 어머니의 손가락을 형상화하기는커녕 어머니의 손가락이 나를 만들어주신 걸세 (477)."

내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삶이 표현될 뿐..

"그런데 나르치스, 자네는 나중에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작정인가? 자네한테는 어머니도 없잖은가? 어머니가 없이는 사랑을 할 수 없는 법일세. 어머니가 안 계시면 죽을 수도 없어 (478)."

골드문트가 나르치스에게, 아니 헤세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문장이다.
나는 과연 죽음을 어찌 이해할것이며, 그래서 또 삶은 어찌 살아낼 것인지..

헤세의 위대함 가르침은 겨울과 어울린다.
침묵 속에 듣고, 침묵 속에 생각하고.. 너무도 큰 가르침..

----------------------------------------------------------------------------------------------------------------------------------------------------
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어린 소녀를 향한 중년남성의 광적인 사랑, 영화 "로리타" 리뷰: http://blog.daum.net/alysapark

 



IP *.12.196.131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북리뷰 안보이시는 분들 일단 파일첨부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4] 관리자 2009.03.09 90724
338 더나은 자본주의를 촉구한다 -『그들이 말하지않는 23가지』 구름을벗어난달 2010.12.31 4341
337 [북리뷰] 러브 마크 - 브랜드의 미래 lovemarks [1] [22] 하모니리더십 2011.01.02 5428
336 [먼별3-8] 우주를 떠도는 영혼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 [2] 수희향 2011.01.05 4393
335 [먼별3-11] <자크 아탈리의 "깨어있는 자들의 나라"> 프랑스... 수희향 2011.01.12 4385
334 <북리뷰>한국판 잃어버린 10년이 온다-『2020 부의전쟁 in ... 구름을벗어난달 2011.01.17 4299
333 [먼별3-13] <스티브 킹의 자서전 "유혹하는 글쓰기"> 천재는... [4] 수희향 2011.01.19 4407
332 북] 불안 - 알랭 드 보통 (Status Anxiety) [3] 하모니리더십 2011.01.20 4404
331 [먼별3-15]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칠레가 낳은 세계적인... [1] 수희향 2011.01.26 4569
330 <북리뷰>풍경 너머로 흔들리는 부성의 부재-『내 젊은 날의... 구름을벗어난달 2011.02.01 4330
329 <북리뷰>아파트 신화의 덫에 걸린 사람들 -『하우스푸어』 구름을벗어난달 2011.02.01 4390
328 [먼별3-17]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 천 개의 영혼 수희향 2011.02.02 4962
327 억압받는 자들이 가야 할 길.. [위건부두로 가는 길] -조... 날고픈돼지 2011.02.07 4418
326 이기는 사람과 지는 사람 김호진 2011.02.09 4362
» [먼별3-19]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예술 너... 수희향 2011.02.10 4706
324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꿈꾸는 다락방] -이지성 [1] 날고픈돼지 2011.02.13 4405
323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하모니리더십 2011.02.15 4407
322 [먼별3-21] <자크 아탈리의 "살아남기 위하여"> 미래사회 7... 수희향 2011.02.16 4338
321 <북리뷰>자본주의, 너는 누구냐?-『자본주의 : 어디서 와서 ... 구름을벗어난달 2011.02.17 4431
320 [7기도전리뷰] <신화의 힘> 조셉캠벨&빌모이어스_내마음을무... 양경수 2011.02.19 4357
319 [7기도전] <신화의 힘> 저자에 대하여 file [5] 양경수(양갱) 2011.02.19 5543